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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금빛으로 더 빛나는 몸매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금빛으로 더 빛나는 몸매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고 있는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디자이너 아미르 슬라마(Amir Slama)의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레드’로 강렬한 섹시미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레드’로 강렬한 섹시미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고 있는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디자이너 아미르 슬라마(Amir Slama)의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키니에 스카프로 멋내기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키니에 스카프로 멋내기

    3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고 있는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디자이너 아미르 슬라마(Amir Slama)의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끈으로 어깨 감싼 독특한 수영복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끈으로 어깨 감싼 독특한 수영복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수영복 브랜드 ‘레니 니메여(Lenny Niemeyer)’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키니 수영복으로 다시 느끼는 여름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키니 수영복으로 다시 느끼는 여름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수영복 브랜드 ‘레니 니메여(Lenny Niemeyer)’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허리까지 파인 V라인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허리까지 파인 V라인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패션 브랜드 ‘아구아 데 꼬꼬(Agua de Coco)’의 디자이너 리아나 토마스(Liana Thomas)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치웨어도 ‘시크하게’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비치웨어도 ‘시크하게’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패션 브랜드 ‘아구아 데 꼬꼬(Agua de Coco)’의 디자이너 리아나 토마스(Liana Thomas)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잘록한 허리 돋보이는 비치웨어

    [포토] 상파울루 패션위크, 잘록한 허리 돋보이는 비치웨어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상파울루 패션위크 중 패션 브랜드 ‘아구아 데 꼬꼬(Agua de Coco)’의 디자이너 리아나 토마스(Liana Thomas)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 조선] 가장 기쁜 날도 가장 슬픈 날도 함께한 ‘인생 예복’

    [런웨이 조선] 가장 기쁜 날도 가장 슬픈 날도 함께한 ‘인생 예복’

    시속(時俗)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현대인은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렇다면 선현들은 궁금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들은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 해결하거나 스스로 옛것을 고증하면서 그 연원을 찾았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시속은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그럼에도 예를 실천하고 지켜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사람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하나로 합쳐지는 대동(大同)의 풍속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늘 패션이 있었다.조선의 유학자 박만선(朴萬善)은 혼인할 때와 죽어 무덤에 들어갈 때 어떤 복장을 해야 할지 좀처럼 기준이 서지 않았다. 그즈음 시속의 여인들은 두 경우 모두 ‘원삼’(圓衫)을 입곤 했는데 이것이 과연 예에 합당한지, 또 허리띠는 어떻게 생긴 것을 해야 예법에 맞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바로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예학자인 송시열에게 글을 보냈다. 이에 송시열은 “명백하게 혼사와 상사에는 옷을 구분하여 입어야 한다. 혼사에는 염의(?衣)를 입고, 상사에는 심의(深衣)를 입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으며, “허리띠도 각각의 옷에 맞는 것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학자로서 당연한 답변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학자 심의에 붉은 띠 두른 혼례복 그렇다면 송시열이 말한 혼사에 입는 ‘염의’와 상사에 입는다는 ‘심의’는 어떤 옷일까. 이 두 옷의 기원은 모두 심의에서 출발한다. 심의는 유학자에게 최고의 예복(禮服)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따로 마름질하여 허리에서 연결한 포(袍)다. 특히 심의는 깃, 소매 끝, 옷자락의 가장자리에 검은색의 선을 둘러 꾸민다. 혼사에 입는 염의는 여기에 붉은색 선을 둘러 혼례복으로서의 의미를 더한다. 두 옷이 똑같은 형태로 선의 색깔만 다를 뿐이다. 예복에서의 허리띠는 단순히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실용적인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띠를 묶지 않게 되면 옷이 풀어지고 가슴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창피(猖披)다. 그러니 당시 예학자들에게 있어 띠는 예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심의에 두르는 허리띠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흰색의 허리띠에는 심의에서와 같이 가장자리에 검은색의 선을 두른다. 허리띠 전체에 검은색의 선을 두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허리 부분은 빼고 허리띠를 묶는 부분과 묶고 난 후 아래로 늘어뜨려진 부분에만 선을 두른다. 옷을 꾸몄을 뿐 아니라 입었을 때 흑백의 조화가 유학자의 모습을 보다 경건하고 기품 있게 만들어 준다. 염의는 혼례복이다. 경건함보다는 밝고 화려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심의에 두른 검은색 대신 붉은색을 두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같은 옷에서 출발했지만 의미에 따라 장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예복으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땅으로 시집가는 날’ 상례복으로도 그런데 문제는 원삼이다. 김장생(1548~1631)의 ‘사계전서’에는 “부인의 상(喪)에 대수(大袖)를 입는다”고 하면서 대수는 원삼이라고 했다. 또 그의 아들 김집도 ‘신독재유고’에서 “수의로 원삼에 대대(大帶)를 사용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했다. 그러니 송시열 이전부터도 이미 혼례복인 원삼을 상사에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원삼이 어떤 옷이기에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에도 입고 가장 슬픈 날에도 입게 된 것일까.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원삼은 외재 이단하(1625~1689)의 부인이 입었던 옷이다. 원삼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옷깃을 맞대어 둥글게 만들었으며, 좌우 깃이 포개지지 않고 앞 중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대금(對襟)이다. 또한 앞이 뒤보다 짧으며, 앞길과 뒷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터져 있다. 소매 끝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색의 색동을 달고 마지막에 흰색의 한삼을 달았다. 특히 어깨와 소매, 앞·뒷길의 끝부분에 금박을 하고, 가슴과 등에 흉배를 붙여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더욱이 긴 허리띠는 뒷자락과 함께 늘어져 뒷모습까지 품위를 드러낸다. 크고 긴 소매와 길게 늘어진 옷자락과 허리띠. 화려한 금박 등의 장식은 의식을 보다 성대하고 화려하게 만든다. 조선 후기 이재가 쓴 ‘사례편람’에는 “원삼은 큰 옷으로 색깔 있는 견(絹)이나 명주로 만들며, 이른바 가례(嘉禮)의 대수(大袖)”라고 했던 것처럼 화려한 원삼은 여전히 상복으로 기능했다.분명 혼례복이 있고, 상례복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혼례복을 상례에 입혔을까. 이는 죽음을 ‘땅으로 시집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든, 땅으로 시집을 가든 혼사와 관계된 일이니 혼례 때 입었던 원삼을 수의로 입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시대가 바뀌며 옷의 형태가 바뀌고 명칭이 달라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옷이 갖고 있는 의미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생각으로 재탄생하는 복식이야말로 예를 지켜 나가는 새로운 방법일 것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포토] 런웨이 위 모델들 ‘이런 포즈는 처음이지?’

    [포토] 런웨이 위 모델들 ‘이런 포즈는 처음이지?’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패션 페어 ‘샤포&모스퍼(Chapeau&Mosfur) 2017’에서 모델들이 독특한 포즈를 취하며 패션 브랜드 ‘클럽 밀리너리’의 의상과 모자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 조선] 조선 곤룡포는 적색? 청색·황색도 있다

    [런웨이 조선] 조선 곤룡포는 적색? 청색·황색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킷을 벗은 채 커피를 들고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대통령의 모습과는 달랐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격의 없는 편안한 모습에서 국민과 소통하고자 한다는 의지가 자연스럽게 투영되었다. 그러나 단지 편안함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여 의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사선 무늬 넥타이로 강인함은 물론 젊음과 역동성을 나타냈다. 복식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사례다.조선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왕이 평상시 집무복인 곤룡포를 입고 있는 어진이 3점이 남아 있다. 태조, 영조, 고종의 어진이다. 똑같은 곤룡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같은 옷이 아니다. 그것은 각 시대가 요구하는 국왕의 모습이 다르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국왕의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곤룡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을 상징하는 용의 모습이다. 발톱이 5개인 용을 둥근 원 안에 담아 일명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라고 하는 이것을 앞가슴, 등 뒤, 양어깨 4곳에 부착한다. 시대에 따라 직조를 하기도 하고 이금(泥金·금가루)으로 그리기도 하며 별도의 직물에 수를 놓아 붙이기도 한다. 이는 시대에 따라 변화된 양식의 차이일 뿐 중요한 것은 용의 모습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청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그러나 임금의 복색은 홍색, 그중에서도 가장 밝다는 대홍색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태조는 왜 청색을 입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청색이 길색(吉色)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 중국으로부터 홍색의 곤룡포와 함께 고명(誥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둘 다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길색이기 때문에 입었다고 하기보다는 태조가 스스로 길색인 청색의 곤룡포를 만들어 입었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누가 준 것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정해진 색을 입은 것도 아니다. 그의 자주성과 독립성이 복식을 통해 완성됐다고 보고 싶다.태조가 입은 청곤룡포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단연 용의 모습이다. 오조원룡보는 앞가슴과 양어깨에 붙은 보(補)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크다. 그리고 정중앙에 있는 용은 S자로 휘어져 있으며, 입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용은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으며, 손과 발의 발톱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온몸에 서려 있는 기운에서 하늘로 올라가고자 힘차게 밀어붙이는 비룡(飛龍)의 모습이 보인다. 나라를 힘겹게 건국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았을 테니 새로운 멋진 나라를 만들기 위한 그의 의지를 용에 담고 싶었으리라. 힘차게 날아오르려는 용. 그것이 바로 태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영조의 홍곤룡포는 어땠을까. 오조원룡보의 크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용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홍곤룡포에 담긴 용은 양팔과 양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균형 잡힌 용이다. 그리고 구름이 그 용을 삥 돌아가며 감싸고 있다. 마치 하늘로 올라간 용이 구름을 관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농경사회에서 적절한 때 흡족한 비를 내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안정되어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던 영조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면서 최초의 황제였던 고종은 복색 자체를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으로 바꾸었다. 오조원룡보의 크기도 전대(前代)의 왕들에 비해 현저히 작아졌다. 그리고 몸판 자체에 용의 모습을 그리거나 직조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천에 수를 놓는 형태로 바뀌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달라진 용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황제에 올랐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보의 중심에서 조금 내려온 배꼽 위치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흰색의 여의주를 넣어 신령한 하늘의 섭리를 얻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여기에 용의 얼굴은 정면을 응시하고 좌우의 손발은 대칭을 이루며 안정된 모습이지만 몸통은 아래로 곡선을 이루면서 꼬리가 활기차게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다. 도약을 꿈꾸는 고종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태조와 고종은 힘찬 용을 통해 역동성과 강인함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고, 영조는 번영기에 들어섰으므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용의 모습에서 국왕의 고뇌와 함께 꿈이 읽힌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런웨이 조선] 왕조 정통성 가리는 예절 논쟁 ‘예송’… 그 중심엔 ‘상복’

    [런웨이 조선] 왕조 정통성 가리는 예절 논쟁 ‘예송’… 그 중심엔 ‘상복’

    장례 예복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사람 사는 동네는 예나 지금이나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다. 매일매일이 사건이고 사고다. 그중에서도 상중(喪中)에 지키는 상례와 관련된 일은 더욱 그렇다. 왕가(王家)가 다르고 사가(士家)가 다른 것은 물론이려니와 집집마다 다르다. 그러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더욱이 상례는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예고된 것이 아니기에 더욱 혼란스럽다. 복제(服制)는 특히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장렬왕후는 인조의 계비다. 15살의 나이로 왕후가 된 장렬왕후는 남편인 인조, 장남 소현세자, 효종 내외와 손자뻘인 현종 내외까지 무려 6번이나 상복을 입어야 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대비가 되었고,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대비가 대왕대비가 된 것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효종을 아들로 볼 것인가 국왕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효종을 아들로 본다면 둘째 아들이니 어머니가 입어야 할 상복은 일 년 동안 입는 기년복이다. 그러나 국왕으로 예우할 때에는 3년간 입는 참최복(斬衰服)을 입는 것이 법도다. 그런데 효종은 국왕이긴 하지만 장자(長子)는 아니기 때문에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은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휴, 윤선도 등의 남인은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맏아들이나 다름없다”며 삼년복인 참최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종의 상례에 장렬왕후의 복장을 두고 일어난 논쟁은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1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1647년 효종의 부인인 인선대비 장씨가 사망하면서 다시 조대비 장렬왕후의 상복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복장이니 전례에 따르면 9개월 동안 입는 대공복(大功服)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인의 주장에 따라 1년간 기년복을 입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런 논쟁으로 인해 조대비는 며느리 상에도 아들 상과 같은 기년복을 입게 되었다. 이 논쟁이 서인과 남인 간의 엎치락뒤치락 정권 싸움의 시발이 된 예송(禮訟) 논쟁이다. 1년복을 입느냐 3년복을 입느냐 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주도권이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였기에 더욱 살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가장 큰 상엔 ‘극추생포’로 만든 ‘참최복’ 상복은 친소 관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가장 큰 상에는 가공하지 않은 제일 굵고 거친 생포인 극추생포(極?生布)로 만든 참최복을 보통 3년간 입는다. 특히 마름질한 생포의 가장자리를 바느질하지 않음으로써 죄인으로서 가장 극한 슬픔을 표현한다. 재최복(齊衰服)은 보통 1년간 입는다. 재최복의 ‘재’는 ‘옷의 끝단을 꿰맨다’는 뜻일 뿐 굵은 생포로 만드는 것은 참최복과 같다. 다음은 9개월가량 입는 대공복이다. 대공복은 생포가 아닌 숙포(熟布)로 만든다. 원사(原絲)가 가늘어지며 옷의 거칠기는 나아지지만, 머리에 쓰는 관은 거친 원사로 만든다. 5개월간 입는 소공복(小功服)도 있고, 3개월간 입는 시마복(?麻服)도 있다. 소공복부터는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형편에 따랐다. 생활 형편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대로 지켜지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왕실에서 그것도 국왕이 돌아가셨다면 그것은 가장 큰 슬픔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조대비는 서인과 남인의 논리 싸움에 휘둘리며 효종의 상에도 효종비의 상에도 모두 기년복을 입었다. 그것은 친소 관계를 뛰어넘어 국가운영의 근간이었던 예학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또한 예학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남인과 서인의 정치생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예송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다. 송시열은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학문적 명성에 힘입어 2년 뒤인 1635년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의 스승이 되었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그러나 1659년 효종이 갑자기 사망하자 정치적 판도는 남인 쪽으로 기울었다. 송시열은 이에 낙향하여 은둔 생활을 하고자 하였으나 현종 또한 송시열에게 융숭한 예우와 함께 관직으로 돌아올 것을 거듭 제안하여 잠깐 관직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남인의 세력에 밀려나게 되었다.●사림사회 ‘예’를 실천하던 수단 ‘복식’ 현종에 이은 숙종은 남인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자 이를 경계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이 궁궐의 유악(油幄·기름 먹인 천막)을 허가 없이 가져다 사용한 사건이 벌어졌다. 숙종은 대로했고 이는 곧 남인이 집권하고 있던 조정을 서인으로 모두 갈아치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서인의 힘은 더욱 커져 송시열은 조선 후기 가장 강력한 영향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상례의 복장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이유는 당시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하는 사림사회에서 예의 문제는 모든 사회질서의 기본적인 규범이었고, 그 예를 수행하는 수단이 바로 복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포토] ‘경기장을 런웨이로’

    [포토] ‘경기장을 런웨이로’

    벨기에 Nafissatou Thiam이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7종 경기 800m를 달린후 주먹을 쥐어 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예슬, 길거리를 런웨이로 만드는 힘 ‘어떤 드라마 촬영 중?’

    한예슬, 길거리를 런웨이로 만드는 힘 ‘어떤 드라마 촬영 중?’

    배우 한예슬이 길거리를 런웨이로 만들었다. 한예슬은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드라마 촬영 비하인드 사진을 올렸다. 한예슬은 화이트 컬러의 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거리 한복판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특히 그의 군살 없는 각선미가 돋보였다. 한예슬은 MBC 새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로 브라운관에 컴백한다. 극 중 안소니의 팬이자 아이돌 출신 연기자인 ‘사진진’을 맡았다. 이상우와 러브라인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한편 ‘20세기 소년소녀’는 감성 로맨스 극이다. 어린 시절 한동네에 자라온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오는 9월 첫 방송. 사진 = 한예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단횡단 논란 김사랑, 신호 바뀌는 줄도 모르고 공항 런웨이 ‘청순 가득’

    무단횡단 논란 김사랑, 신호 바뀌는 줄도 모르고 공항 런웨이 ‘청순 가득’

    배우 김사랑의 청순 가득한 공항 패션이 공개됐다. 26일 김사랑은 화보 촬영 차 영국 런던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김사랑은 화이트 티셔츠와 블랙 미니 스커트로 베이직한 공항패션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비주얼을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사랑이 횡단보도를 걸어오는 모습은 그 자체가 화보같은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나 하이힐을 신고 천천히 걷는 바람에 보행신호가 적색으로 바뀌면서 무단횡단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한편 김사랑은 김은숙 작가의 새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사진제공=디마코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런웨이 조선] 쪽빛부터 학·호랑이 장식까지… 色 입고 美 더한 ‘신분의 상징’

    [런웨이 조선] 쪽빛부터 학·호랑이 장식까지… 色 입고 美 더한 ‘신분의 상징’

    지금처럼 한복을 가깝게 느꼈던 때가 또 있을까. 결혼식이나 집안 행사에서 겨우 입었던 한복은 이제 다양한 해석과 더불어 즐겁게 사용되고 있다. 경복궁이나 인사동, 전주의 한옥마을 등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한복 체험이 필수 코스다. 또한 거의 매일 방송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아이돌 연기자가 평소 요란한 옷차림을 내려놓고 곱게 차려입은 한복으로 시청자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예쁘기만 한 옷으로 보기에는 한복에 담긴 의미가 깊다.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 중요한 신분을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복식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옛 사람들의 복식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드러나는 여러 가지 장치가 담겨 있다. 옷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소재다. 그러니 높은 신분일수록 고급의 직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비단으로 만든 옷인지 무명으로 만든 옷인지는 가까이 다가가 보거나 만져 보지 않으면 쉽게 판별이 어렵다. 어느 정도 옷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분별이 가능한 것이다. 소재보다 조금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색상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사람이 즐겨 입은 색은 염색하지 않은 기본적인 색, 소색(素色)이다. 여기에 잦은 세탁이 더해지면서 소색은 점차 흰색으로 바뀌어 너도 나도 흰색 옷을 입게 되었다.왕실을 비롯해 권세가 있는 사대부가에서는 쪽빛을 비롯해 붉은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즐겼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청색을 길색(吉色)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쪽염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쪽은 가성비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벼를 심어 쌀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소출이 적을 뿐 아니라 점점 진한 색을 좋아하다 보니 쪽은 더 많이 필요했고, 염색을 하는 데 드는 공력 또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쪽물을 들인 청색 옷이 좋다 해도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소색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붉은색은 또 어떤가? 사대부는 물론 심지어 천례(賤隷)에 이르기까지 좋아했던 색이 자색이라고 한다. 자색 역시 한번 염색으로 얻을 수 있는 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번 염색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사치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 통치자 입장에서 염색을 금해야 하는 이유이다. 염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구별 짓기의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색상 외에 또 다른 방법은 문식(文飾)이다. 문식은 아름답게 꾸며 장식하는 것인데 가슴과 등에 무늬를 넣어 표식하는 것으로 흉배(胸背)가 대표적이다. 흉배는 문무백관의 집무복에 붙이는 장식물로 그 무늬에 따라 문관과 무관을 구분하고 품급까지 구분한다. 그러나 조선 초부터 관리들의 의복에 흉배를 달았던 것은 아니다. 1446년(세종 28) 우의정 하연과 우참찬 정인지 등이 평상시 의복은 화려한 것이 필요하지 않지만 조정의 관복은 등차(等差)를 분명하게 하고 존비(尊卑)를 분별하는 것이니 예법에 따라 흉배를 달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흉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영의정 황희는 흉배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정치가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억제하는 일인데 “단자(段子)와 사라(紗羅) 같은 비단이 우리 땅에서는 생산되지 않을 뿐 아니라 흉배를 준비하는 것도 어렵다”는 이유였다. 또 “존비하는 등차를 두기 위한 것이라면 이미 금대(帶)·은대(銀帶)·각대(角帶)를 사용해 구분하고 있으므로 굳이 흉배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임금까지 황희의 손을 들어 흉배를 달자는 논의는 일단락되었다. 다시 흉배제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1454년(단종 2) 검토관 양성지가 흉배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이다. 그는 경연자리에서 “풍속을 금하는 법령이 다 없어져 상하의 차등이 없어질까 두려우니 흉배를 입어서 조정의 의식과 법식을 엄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험 삼아 종친에게 먼저 흉배단령을 착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뒤이어 문무관의 상복에도 문장을 정해 신분을 구분하였다. 이에 따라 대군은 기린, 도통사는 사자, 제군은 백택으로 하고 문관 1품은 공작, 2품은 운안, 3품은 백한으로 정했으며 무관 1품과 2품은 호표, 3품은 웅비, 대사헌은 해치로 정했다. 이때 문신은 날짐승, 무신은 길짐승으로 기준을 정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는 점점 문란해져 무신이 간혹 날짐승인 학 흉배를 착용하자 영조(英祖)는 법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흉배제도의 문란을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배제도가 정비되지 못하다가 1873년(고종 10년) 조신의 흉배제도를 학과 호랑이로 구분하고 당상관은 두 마리, 당하관은 한 마리만을 수놓게 했다. 근검절약보다는 문무백관의 품식(品式)과 절문(節文)을 우선시하여 예법에 맞추고자 했던 흉배는 아름다움은 물론 간편함까지 챙겼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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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 ‘관능미 폭발’ 수영복 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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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관능적 볼륨 완성’ 수영복 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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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섹시 시스루’ 수영복 런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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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이 2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에서 열린 스윔 위크 중 FUNKSHION 패션쇼에서 Luli Fama 수영복을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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