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광표 한국 구세군사령관
‘왜 겨울이지요?’ 이런저런 설(說)이 많다. 재미있는 근거(?) 하나.‘겨’는 지금의 계시다는 말에서 유래했고 ‘울’은 올아비라는 의미란다. 그러니까 오라비, 남자가 집에 있다는 뜻이란다.‘겨울’에는 농사일이 없기 때문에 사내들이 집을 나설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추운 겨울이다. 따뜻함이 기다려진다. 문득 붉은 세 다리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이 보인다. 제복을 입은 구세군의 손에서 울리는 딸랑딸랑 종소리도 정겹게 들려온다. 경쾌한 캐럴송, 금빛 꼬마전구들이 밤하늘을 반짝반짝 수놓는다.
해마다 이맘때, 성탄절을 앞두고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가 우리들 곁에 나타난다. 어느새 세밑의 풍물 중 하나가 됐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처럼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됐다.
그렇다면 자선냄비의 첫 종소리는 언제 울렸을까. 궁금해진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 성탄을 앞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선보였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도시의 빈민 1000여명이 슬픈 성탄을 맞게 된 것. 이때 구세군의 한 사관(조지프 맥피 정위)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오클랜드 부둣가로 가서 그곳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빌려 삼각형 모양의 받침대를 만들어 거리에 내걸었다.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고 성탄절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결국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깊은 마음이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됐고, 오늘날 전세계 111개국으로 퍼지게 됐다.
한국에는 1928년 12월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종로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을 메가폰을 통해 호소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 77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인들 가운데에는 깔끔한 유니폼에 모자를 쓴 모습 때문에 군인이 아니냐, 또 자원 봉사자가 아니냐며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 말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서울 구세군교회에서 전국의 자선냄비를 총지휘하는 전광표(65) 한국 구세군사령관을 만났다. 막 지방 출장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는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모금액이 9%가량 늘어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먼저 감사 표시를 했다. 이어 “작년에는 25억 5000만원을 달성했는데 올해는 조금 높은 27억원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날씨가 추운데도 따뜻한 성원이 계속 답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간 자선냄비의 경험을 보면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돕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2년 전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50대 초반의 중년 신사가 3752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 뭉치를 넣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면서 경제가 어렵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추위와 싸우는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19개 늘어난 230개의 자선냄비를 전국 76개 지역에 설치했다.”면서 “종전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기부자들을 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올해는 미니 자선냄비를 만들어 은행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T머니를 통한 기부, 각종 상품권 기부 등을 비롯해 거리, 지하철, 은행, 우체국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단다.
올해의 경우 명동과 서울역,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에서 모금이 잘된다면서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를 기부하는 익명의 시민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성금이라는 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전 사령관은 올해의 77주년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민족의 아픔과 더불어 해마다 발생하는 이재민 구제, 빈곤 속에서 고생하는 불우한 이웃,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해왔단다.1928년 당시에는 자선냄비가 명동, 종로, 충정로 등 서울에만 20군데 놓여져 성금도 겨우 몇백원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예전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많아 계수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많다 보니 계수시간이 1시간 정도로 단축됐다고 한다.
이어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눌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나눔은 아픔을 치유하는 시발이며 인격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라면서 자선냄비는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선냄비에 얽힌 에피소드를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세월의 길이만큼 여러 사연이 있다.”고 전제한 뒤 “어린 아이들이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와 자선냄비에 넣는 일을 보면 눈물이 찡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 전에는 서울 삼성역에서 어느 장애인이 자신이 모금한 성금을 자선냄비에 기부한 경우도 있다.”면서 따뜻한 커피, 식당 쿠폰, 문화상품권을 기부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코 묻은 동전 몇 닢, 폐품을 수집하는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가다 꺼낸 쌈짓돈, 아름다운 처녀와 데이트하느라 돈이 떨어진 탓에 헌혈증서를 내놓는 동네 청년도 있기에 추운 겨울이 그저 훈훈하단다.
전 사령관은 194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13세 되던 해 충청지방에 속한 덕암 구세군 교회 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71년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천연 구세군교회, 삼성구세군 교회, 영등포 구세군 교회, 과천구세군 교회 등에서 담임 사관으로 몸담았다. 이후 구세군 전라·충청·서울 지방관을 거쳐 2004년 서기장관에 임명됐으며 올해 1월1일자로 한국 구세군사령관에 취임했다.
그의 부인은 한국 구세군 여성사업총재, 즉 여성 사령관 직책으로 남편과 함께 구세군을 이끌고 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식구가 다 구세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묻자 “학창 시절 탁구선수까지 했지만 요즘에는 통 운동을 못한다.”면서 틈틈이 걷는 일이 유일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왜 빨간색이냐고 하자 “예수님의 보형을 상징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의 극치”라면서 사랑의 마음에 빨강을 사용하는 기독교적 문화유산이 내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불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희생하는 사랑이 담긴 선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1년 논산 출생
▲71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71년 서울 천연교회 담임사관
▲83년 영등포교회 담임사관
▲90년 국제사관대학 졸업
▲95년 동양사관대학 졸업, 구세군 전라 지방장관
▲98년 구세군 서울지방장관
▲99년 한국기독교협의회(NCC) 실행위원
▲2000년 대한기독교 서회 이사, 교경 중앙회 부회장
▲03년 국제종합장기증센터 부총재
▲04년 NCC 부회장
▲05년 1월 한국 구세군사령관,CBS방송 이사, 한국기독교연합재단 이사
●구세군 이란
일반인들도 구세군 교회에 출석하면 누구나 구세군이 될 수 있다. 성직자가 되려면 구세군 사관학교(7년)를 마쳐야 한다. 처음 2년 동안 합숙훈련, 임관 이후 2년간의 논문심사,3년간의 선교신학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세군에 다른 기독교 종파와는 달리 여성 목회자들이 많은 이유는 철저한 남녀평등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구세군은 군대조직과 유사한 상명하달 체계와 계급제를 갖고 있다. 군인처럼 임관 후에 ‘정위’라는 계급을 달고,15년 이상 사역했을 때에는 ‘참령’으로 승격된다. 그 위로는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으로 계급이 높아지는데 대장은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9개 지방본영에 63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총사령관의 계급은 부장이다.
구세군 복장을 보면 붉은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S’자 배지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S’자는 ‘Salvation(구원)’,‘Soup(수프)’,‘Soap(비누)’ 등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Salvation’은 인간의 영혼을 구한다는 의미이고,‘Soup’와 ‘Soap’는 먹을 것을 주고, 몸을 닦아 준다는 육체적인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에는 1908년 영국에서 파견된 로버트 호가드 정령이 이끄는 10여명의 사관이 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교세를 확장해 왔다. 의료선교 및 고아원, 양로원, 육아원 등을 경영하며 교육기관을 통해 포교에 힘쓰고 있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