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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수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

    연말이면 서울 명동 등 전국 곳곳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이웃과 희망을 나누려는 구세군 자선냄비 소리다. 거리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이달 초 시작해 31일이면 종료된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효시가 된 자선냄비 모금운동을 펴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의 이수근(60) 사무총장에게 올해 자선냄비 모금 상황과 나눔의 의미에 대해 들어 봤다. 이 총장은 지난해 구세군에서 발족한 자선냄비 본부 사무총장으로서 2년째 모금 및 배분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1982년 구세군 사관학교 신학과를 졸업, 사관에 임명돼 33년째 사관의 길을 걷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종로구 새문안로 구세군 자선냄비 사무총장실에서 진행됐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부터 소개해 주시죠. -1891년 12월 성탄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자선냄비가 첫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도시 빈민들과 배가 좌초돼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조지프 맥피라는 한 여사관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내걸었고 그 위에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기금을 마련했고 그 후부터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126개국에서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는 자선냄비 행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자선냄비가 처음 나왔나요. -우리나라 구세군은 1908년에 조직됐으며 자선냄비는 1928년에 나왔습니다. 홍수와 가뭄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 얼어 죽은 변사체가 발견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당시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이 정부에 공식 모금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해서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15일 서울 명동 등 20여곳에서 처음으로 자선냄비가 나왔죠. 반응이 좋아서 그때 돈으로 848원 67전이 모였고 이 돈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사와 땔감을 제공하는 데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한국 사회 모금사업의 효시이자 192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해 겨울 한 번도 쉼 없이 86년간 지속돼 온 한국 나눔문화의 유산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금 및 배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모금은 서울시내 100곳을 포함해 전국 360곳에서 합니다. 모금이 되면 161개의 전문사회복지시설을 포함한 640곳 나눔처소를 통해 배분합니다. 배분은 지역에서 모금한 것은 해당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결식아동, 노인을 위해 쓰인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의 경우 홈리스나 독거노인을 위해 쓰고 에이즈 예방사업, 미혼모를 위해서도 씁니다. 각 지역에서는 배분 이후 본부에 그 집행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모금액의 10% 정도는 구세군 국제대표부가 나가 있는 몽골, 캄보디아를 비롯해 구세군 활동이 없는 필리핀, 중국 등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고 있습니다. →기부금의 투명성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자선냄비 본부는 외부 회계감사, 행정자치부 감사, 자체 감사, 그리고 국제 감사까지 네 번의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로서는 이처럼 다 감사를 받는데 구세군 종교법인으로서는 감사 대상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자선냄비 본부가 투명하지 못하다고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죠.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 및 배부 내역은 연간 사업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모금 실적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한국 구세군은 모금 기간을 11월에서 그다음 해 10월 말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12월 모금을 겨냥해 11월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2012년에 49억원, 13년 64억원, 올해 9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체 후원과 일반 시민들의 십시일반이 모여 모금 실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 11월부터 새해 10월 말까지는 120억원 모금이 목표입니다. →전체 모금 중 순수한 거리모금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100억원 모금 목표에 98억원을 모금했는데 11, 12월 두 달간 모금액이 63억원입니다. 이 중 순수 거리모금액은 30억원 정도 됩니다. 올해 11월부터 내년 10월 말까지 모금 목표액 120억원 가운데 11, 12월 두 달간 65억원을 모금할 계획입니다.(30일 현재 구세군은 66억 2000여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거리모금을 통해 기부하는 사람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 -올해까지 4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1억여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름을 알려고 해도 거절합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신월동 주민’이라고만 자기소개를 한 분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자기앞수표와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올해에는 “나의 기부 뜻을 이해해 주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위, 딸들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 주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편지글로 미뤄 어렵게 자수성가한 분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후순위채권 5000만원을 압구정 자선냄비에 넣어 주신 중년 신사가 있는데 올해에도 같은 금액을 넣고 갔습니다. 후순위채권은 소지자가 은행에 가면 바로 환전이 가능한데 암시장에서는 7000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더군요. 이 밖에 아기 돌반지, 금으로 된 교정치아, 헌혈증서 20여장을 내주신 분도 있습니다. 아기 돌반지는 아기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가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헌혈증서 같은 경우 병원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에 수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 오면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손연재 선수도 1000만원을 냈습니다. →자선냄비에 편지 봉투가 들어오면 봉사자들 가슴이 두근두근하겠습니다.(웃음)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봉투 기부자가 많은데 이는 미리 기부를 준비한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저희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죠. 붉은 옷을 입고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로선 “내가 봉사 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많이 들어왔다” 하는 기쁜 마음을 가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선냄비 모금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아무래도 왕래객이 있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모금은 장소를 포함해 모금 일정을 정부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아서 합니다. 올해는 360곳에서 모금 중입니다. →자선냄비엔 신용카드 단말기도 장착돼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요즈음 현금보다는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세태를 감안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신용카드를 통한 모금액은 많지 않습니다. 카드는 2000원, 5000원, 1만원, 2만원 단위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기업 등 기부자가 지정 기탁하면 본부에서는 그냥 따르나요. -그렇습니다. 다만 그냥 (임의로) 기부해 주시면 필요한 곳에 쓰는데 지정 기탁하면 중복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만 옛날부터 대통령들은 우리가 이야기 안 해도 빠짐없이 기부를 했습니다. 우리가 모금하는 장소에 얘기하지 않고 반드시 옵니다. 오시기 몇 시간 전에 연락이 와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모금 시작을 격려하는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대통령 기부액은 얼마나 되나요. -금액은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현금으로 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금액은 어떻게 관리하는지요. -그날 모금한 것은 우체국이나 은행에 바로 집어넣습니다. 거리모금은 12월 한 달만 하는데 20일까지는 오후 6, 7시까지 하며 그 이후는 8시까지 합니다. 서울의 경우 각 거리의 자선냄비 모금통을 자루에 넣고 봉인해서 구세군 본부로 가져오면 자선냄비 본부에서 다시 대형 자루에 넣어 우체국으로 보냅니다. →자선냄비 모양은 세계적으로 같나요. -거의 비슷합니다. 약간씩 다르나 방패 모양은 똑같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우리나라 자선냄비는 8년 전 주방기기업체인 휘슬러에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사용하다 깨지거나 끊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무료로 다 제공해 주고 있어요. 그전에는 양철로 만든 것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구세군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자선냄비 본부 발족 계기가 있었나요. -지난해 5월 10일에 본부로 출범했습니다. 본부 출범 전에는 구세군 홍보부에서 모금을, 사회복지부가 배분을, 재무부에서 기금 입출금을 각각 담당했는데 보다 체계적으로 모금 및 배분 업무를 하기 위해 나눔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 필요했죠. 본부가 생기면서 연중 모금으로 전환됐고요. →우리나라 기부 수준은 어떤가요. -10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높아졌습니다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습니다. →기부 수준이 낮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시민들이 여유가 없어 기부를 못하는 측면과 여유는 있으나 기부 의사가 없는 점, 그리고 모금단체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이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모금 방식을 본받아 모금 및 배분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부처 개발, 사업 유형, 배분 기술이 10년 정도 뒤진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신뢰도 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세군 자선냄비 활동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죠. -새해 10월 말까지 목표액 120억원 모금을 다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리는 86년 역사가 말해 주듯 가장 낮은 곳을 향한 나눔의 단체입니다. 정부에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지만 정부가 가난 구제를 다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민간도 나서야죠. 사회적 안전망이 느슨해지면 안 되는 만큼 우리가 촘촘하게 이 안전망을 기워 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가장 오래된 나눔단체로서, 국민기부금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서, 더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청렴한 단체로 활동하겠습니다. 박현갑 부국장 eagleduo@seoul.co.kr ■구세군은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기독교의 한 교파로 1865년 영국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런던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908년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도입됐다. 자선냄비와 같은 사회봉사 활동으로 선교 활동을 대신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구세군이라는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된다.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사관으로 임명된다. 신도는 협력자를 포함해 12만명이며 사관은 이수근 사무총장을 비롯해 현재 670명이 활동하고 있다. 정년은 만 65세다. 사관은 종교법인인 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 산하의 300개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를 맡거나 사회복지법인 구세군복지재단 산하 161개 전문 사회복지시설에 원장이나 사무국장으로 파견된다. 구세군대학원대학교와 기술고등학교라는 구세군 학교법인에서 교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사관은 일반 직장인의 월급에 해당하는 생활비로 가계를 꾸린다. 생활비는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수준인 160만원 정도로 교회재정(헌금)에서 충당되고 있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정부 위탁시설이 많아 정부 보조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목회자 생활비보다 많이 받으면 차액을 재단에 반납하게 돼 있다.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영상] 英여객기 착륙장치 고장 아찔한 ‘비상착륙’ 포착

    [영상] 英여객기 착륙장치 고장 아찔한 ‘비상착륙’ 포착

    영국 런던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던 버진 애틀랜틱 항공 소속 보잉 747-400기가 착륙장치 고장으로 비상 착륙하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오전 11시 45분 승객 447명과 승무원 15명을 태운 보잉 747-400기가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나 출발 직후 착륙장치 고장이 확인된 기체는 항로를 돌려 다시 출발지인 런던 개트윅 공항으로 회항했다. 문제는 착륙 바퀴 중 하나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것. 이에 기장은 지상에 있는 기술팀이 사고 부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공항 주변을 무려 4시간이나 저공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착륙장치 고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기장은 바퀴가 하나 없는 상태에서의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당시 사고기에 탑승한 한 승객은 "비상착륙한다는 기장의 방송에 모든 승객들이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가 됐다" 면서 "충격에 대비해 충격방지자세(Brace Position)를 취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이날 오전 162명을 태운 싱가포르행 에어아시아 여객기(QZ8501)가 실종된 사고 소식을 접한 터라 승객들의 공포는 더했다. 공항 측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3시간 이상 활주로를 폐쇄시킨 공항 측은 소방차와 구급차를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곧 만반의 준비를 마친 여객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자 바닥과의 마찰로 불꽃이 일기 시작했으며 기체는 한쪽으로 기울었으나 다행히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버진애틀랜틱항공 측은 "일부 승객이 경상을 입은 것 외에 별다른 피해는 없다" 면서 "바퀴 중 하나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일반적이지 않은 착륙을 했다”고 밝혔으며 사장이자 괴짜 억만장자로 유명한 리처드 브랜슨 역시 "승객과 승무원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세계의 창] 올 5차례 외국 방문… 英 런던~버밍엄 등 154조원 수주

    [세계의 창] 올 5차례 외국 방문… 英 런던~버밍엄 등 154조원 수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스스로를 ‘고속철 세일즈맨’(高鐵推銷員)이라고 부른다. 해외 순방 때마다 중국 고속철 세일즈에 나서면서 ‘고속철 외교’(高鐵外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는 “외국에 나가 중국의 고속철을 팔기 위해 홍보할 때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힘이 우러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16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중국-중·동부 유럽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의 철도는 물론 전력, 항만 등 기초시설(SOC)을 홍보하는 데 총력을 쏟았다. 그는 포럼에서 “중국의 고속철 기술과 장비는 우수하고 시공 경험이 풍부하며 가격 경쟁력까지 월등하다. 중국은 모든 나라의 상황에 맞는 고속철을 시공할 능력이 있다. 여러분의 요구를 100% 만족시켜 드리겠다”며 세일즈맨을 연상케 하는 멘트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같은 기간 그는 해당 지역 정상들과 만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그리고 그리스의 동남부 항구도시 피레우스까지 연결되는 고속철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는 특히 리 총리의 고속철 외교 성적이 더욱 빛을 발했다는 평이다. 그는 지난 5월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최근 아시아·동유럽 3개국 순방까지 다섯 차례의 외국 방문을 통해 고속철 등 인프라 분야에서 총 1400억 달러(약 154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수주했다. 지난 5월 아프리카 순방길에 나이지리아·케냐 등과 철도 건설 협약을 맺었고, 6월 영국 방문에서는 런던~버밍엄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따냈다. 10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만나 중국 업체 주도로 모스크바와 카잔을 잇는 770㎞ 구간에 고속철을 건설하는 100억 달러 규모의 계약도 체결했다. 신경보는 중국의 고속철이 해외에서 잘나가는 것은 베이징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리 총리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치켜세웠다. 고속철은 어느 나라든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중국의 철도 회사가 혼자 힘으로 나선다고 공사를 따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인지배 체제 구축으로 총리 본연의 경제 분야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은 리 총리가 해외 고속철 사업 수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세계경제연구소 천펑잉(陳鳳英) 연구원은 “중국은 과거 에어버스 비행기 한 대를 들여오기 위해 8억개의 와이셔츠를 수출해야 하던 수출 1.0 시대에서 고속철과 같은 큰 사업을 내다팔 수 있는 수출 2.0시대로 성장했다”며 “리 총리가 그 선봉에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英해리 왕자 친부는 누구?

    영국에서 해리 왕자의 출생 비밀을 다룬 연극이 상연을 앞두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새달 9일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진실, 거짓, 다이애나’가 영국 왕실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해묵은 루머를 다시 한번 촉발시키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연극에는 작고한 다이애나비와 연인관계였던 승마교사 제임스 휴잇(56) 전 소령이 해리 왕자의 아버지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휴잇 전 소령을 연기한 인물은 극중 인터뷰에서 “다이애나와는 해리가 태어나기 1년여 전에 연인관계였다”고 고백한다. 이어 “그런 사실이 내가 친부라는 걸 증명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단지 불편한 진실일 뿐”이라고 애매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을 쓴 존 콘웨이는 연극을 위해 휴잇을 2년간 심층 인터뷰했다.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 전 휴잇 전 소령과 연인관계를 유지해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의 출생을 둘러싼 의혹에 시달렸다. 휴잇은 2003년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해리 왕자와 머리색깔 등 생김새가 비슷하긴 하지만 친부는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앱 팔아 300억 대박…英천재소년의 ‘알바’ 화제

    앱 팔아 300억 대박…英천재소년의 ‘알바’ 화제

    지난해 불과 17세 나이에 자신이 만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무려 3000만 달러(약 330억원)에 팔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청소년이 있다. 바로 영국 런던 출신의 '천재 소년' 닉 댈로이시오(19). 그는 뉴스를 자동으로 요약해주는 앱 '섬리'(Summly)를 야후에 매각해 순식간에 10대 천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최근 해외 IT매체들은 '이중생활' 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근황을 전했다. 현재 닉의 공식 '본업'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학생. 철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인 그는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실리콘벨리로 건너가 야후의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로 일하는 것. 방학 중에만 일하는 그는 야후 이사진 및 팀원들과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기 위해 일한다. 최근 IT 매체들이 그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야후 측이 닉을 앞세워 애플의 아이워치용 앱 '뉴스 다이제스트'를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글에 밀려 고전 중이던 야후가 본격적으로 모바일 사업을 강화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닉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 면서 "야후 측과도 방학에만 회사에 나와 일하는 것으로 계약을 맺은 상태" 라고 밝혔다. 이어 "앱 개발을 완료하는 대로 다시 옥스퍼드로 건너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면서 "언젠가는 인공 지능과 관련된 큰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 나의 꿈" 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류, 120만년전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인류, 120만년전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석재도구가 발견되면서 인류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확산한 시기가 기존 생각보다 훨씬 이전인 120만 년 전쯤이라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영국과 터키, 네덜란드 공동 연구팀은 터키 서부 고대강인 게디즈에서 인위적으로 깬 규암 조각을 발견했고 두 가지 연대측정법을 사용해 이런 형태로 깨진 시기가 124만 년 전부터 117만 년 전쯤까지라고 밝혔다. 이는 초기 인류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시아로부터 나와 확산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결과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다니엘 슈리브 런던대 로열홀러웨이 지리학과 교수는 “이 조각은 초기 인류가 유럽으로 확산한 시기와 경로를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서 “이는 당시 초기 인류가 강에 떨어뜨린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조각의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동위원소 측정법과 고지자기 측정법을 사용했다. 이전 터키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은 2007년 서부 코카바스에서 나온 고인류(호미닌) 화석이지만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었다. 슈리브 교수에 따르면 이 규암 조각은 게디즈강의 굽은 곳에서 침전물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그는 거기서 분홍색 돌을 보고 살펴보니 인위적인 것임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한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제4기 과학 리뷰’(Quaternary Science Reviews)에 발표됐다. 사진=런던대 로열홀러웨이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랭킹은 숫자일 뿐… NO 1의 꿈

    랭킹은 숫자일 뿐… NO 1의 꿈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벼르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결전의 땅 호주에 입성, 현지 적응에 들어갔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8일 오전 호주 시드니에 도착, 1차 베이스캠프인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손흥민(레버쿠젠)을 비롯해 구자철, 박주호(이상 마인츠), 차두리(FC서울), 남태희(레퀴야) 등 국내파와 해외파 선수 21명이 동행했다.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볼턴)은 잉글랜드 리그 일정을 소화한 뒤 캠프에 합류할 계획이다. 태극전사들은 시드니의 매쿼리 대학 스포츠필드를 훈련장으로 삼아 담금질을 시작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드니 입성 뒤 “선수 개개인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게 당면 과제”라고 밝혔다. 선수단에는 리그를 마치고 몇 주 동안 휴식한 선수, 지난 주말까지 경기를 치른 선수들이 섞여 있어 컨디션이 제각각 다를 수 있다. 고강도의 체력, 전술 훈련을 소화하려면 컨디션을 균일하게 끌어올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 슈틸리케 감독은 “일단 몸 상태부터 지켜볼 것”이라며 “무엇보다 선수들의 감각을 균일하게 맞추는 데 주력하겠다”면서 “오늘은 여독이 덜 풀려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며 “오늘부터 준비해 1월 5일이나 6일까지 모든 선수가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 계획을 세워뒀다”고 말했다. A조에 편성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오만, 쿠웨이트, 호주와 차례로 맞붙는다. 새달 4일 시드니 퍼텍경기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 평가전을 마친 뒤 10일 오만 1차전에서 구사할 전술, 전략을 구체화한다. 슈틸리케호는 새달 6일 시드니 캠프 일정을 모두 마치면 캔버라로 건너간다. 오만, 쿠웨이트(13일)와 1, 2차전을 같은 장소에서 치른 뒤 이튿날 브리즈번으로 이동, 17일 호주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한국은 1956년 홍콩, 1960년 서울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 한 차례도 아시안컵을 제패하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리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아시아 ‘넘버3’이지만 이번에 그 순위를 바꾸겠다”면서 “결승에 올라 우승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편 대표팀의 주장 후보는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으로 압축됐다. 관례대로 하면 연장자인 구자철이 완장을 찰 가능성이 높지만 누가 주장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모든 선수가 모여 상황을 의논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자철이 주장을 맡되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경우 기성용, 이청용 순으로 완장을 넘긴다는 데 선수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이재철 미디어담당관은 귀띔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은 2009년 U-20(20세 이하) 월드컵,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올해 브라질월드컵 등에서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新국토기행] ‘교통요지’ 평택…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新국토기행] ‘교통요지’ 평택…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경기도 서남부에 있는 평택시는 인구 45만명의 도농복합도시이다. 평택시는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땅으로 부산현으로 불렸으나 통일신라 때 진위로 바뀌었다. 위치 탓으로 충청도와 경기도를 오락가락하다가 1914년 경기도 진위군이 됐다. 수원군과 충남도에 속했던 평택군이 진위군에 통합된 1924년에 평택군이란 이름을 달게 됐다. 1981년 송탄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평택군에서 떨어져 나갔고, 1986년엔 평택읍이 평택시로 승격, 분리됐다. 이렇듯 뿌리가 같은 한 지붕 세 가족은 1995년 평택시로 통합되면서 면적이 457.4㎢로 늘어났고 3개 읍, 6개 면, 13개 동 체제를 갖췄다. 평택은 ‘평평한 땅과 연못밖에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전체 토지의 45.5%가 농경지다. 해발 164m에 불과한 덕암산이 평택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평택이 경기미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것은 진위천과 아산만 주변 넓은 평야에서 재배한 평택 쌀 덕분이다. 특히 아산만 방조제가 축조된 뒤 해안 인근에 있는 광대한 농경지가 안전답으로 바뀌면서 벼농사 조건이 훨씬 좋아졌다. ‘슈퍼오닝’ 브랜드로 팔리는 평택쌀은 시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해외 수출도 활발하다. 평택 배도 유명하다. 저장력과 당도가 높아서다. 평택이 배 주산지로 떠오른 것은 일본인들이 1910년쯤 비전동 지역에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량은 전국에서 5번째로 많다. 제조업 발전이 미미했던 평택이 서해안시대 대중국 수출 교두보이자 기업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상전벽해가 실감 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평택하면 떠오르는 게 평택항이다. 1986년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한 평택항은 2000년 말 정기 컨테이너선이 처음 취항하면서 서해의 대표 국제 무역항으로 시동을 걸었다. 올해로 개항 28주년을 맞는 평택항은 총 화물처리량 1억t을 돌파하며 전국 항만 중 최단기간 달성과 4년 연속 자동차 수출입 처리 1위를 기록하는 등 종합 무역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택항의 경쟁력은 수심이 14m에 달해 5만t급 이상의 대형 선박 기항이 가능하고 배후지역이 자동차 및 부품산업 등 중국과의 연계성이 높은 산업으로 특화돼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절반 이상이 중부권에 자리 잡은 것도 발전의 원동력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중국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평택항은 동북아 물류 중심항으로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2010년 기준 평택시 지역내총생산(GRDP)은 18조 627억원으로 경기도 4위를 차지했으며 1인당 GRDP는 4379만원으로 경기도 1위, 전국 3위를 기록했다. 놀라운 성장으로 밑거름은 포승·평택·송탄산단 등 10곳에서 가동 중인 2000여개 공장이다. 게다가 2020년이 되면 평택시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을 버팀목으로 권역별 균형발전을 거듭해 인구 80만명 이상의 대도시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유치는 인근 충남북 지역까지 경제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호재다. 지난해 5월 착공한 삼성전자 고덕산단은 고덕면을 비롯해 지체동, 모곡동, 장당동 일원 395만㎡(약 120만평)에 조성된다. 규모는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사업장의 2.4배에 달하며 내년 12월 완공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100조원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과 의료기기 등 미래산업을 이끌어 나갈 신수종사업 생산시설을 설치한다. 반도체 라인이 가동되면 생산직, 관리직, 연구직 등 모두 3만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1000억원 이상의 지방세수 확충이 기대된다. 이뿐만 아니라 경기도에는 기흥·화성·평택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반도체 클러스터가 구축된다. 이곳에서 11㎞쯤 떨어진 진위면 LG 디지털파크 산단과 역시 LG가 입주하는 진위 2산단에도 미래형 자동차, 신재생 에너지 등 첨단산업 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고덕산단 옆에는 1342만㎡ 규모의 고덕국제신도시가 들어서 13만 5000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이처럼 평택에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은 교통 요지이기 때문이다. 평택은 예로부터 서울에서 삼남으로 내려가는 길목이었다. 조선시대 하윤은 이곳을 가리켜 “길이 남과 북으로 통한다”고 했다. 현재 경부, 서해안, 평택~충주, 평택~서수원 고속도로와 함께 1번, 39번, 43번, 45번 국도와 동서로 38번, 82번 국도가 연계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또 경부선과 호남선 국철이 통과하며 내년에는 KTX 수서~평택 구간이 개통돼 신평택역을 이용하면 수서까지 18분, 부산 1시간 50분, 광주 1시간 40분이 걸린다. 평택과 인근 도시 주민들의 휴식처인 평택호는 1977년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와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 사이에 삽교 방조제(2564m)가 건설되면서 관광지로 지정됐다.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지정된 관광단지다. 평택호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1조 8000억원이 투입돼 개발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덕면 권관·기산·대안·신왕리 일대 274만 3000㎡를 국제적인 수변 관광단지로 조성한다.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런던아이를 본뜬 높이 110m의 대관람차 ‘평택아이’와 1만 7820㎡ 규모의 돔형태 생태체험관 ‘시티팜’ 등이 랜드마크로 세워진다. 평택에는 미군기지 두 곳이 있다. 팽성읍 안정리에 있는 K6(캠프 험프리스)와 신장동(옛 송탄)·서탄면 일대에 있는 K55(오산 공군기지)이다.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주둔하면서 생겼다. K55를 송탄에 있는데도 오산공군기지라고 하는 것은 미군이 조종사들의 통신 편의를 위해 송탄보다 철자 수가 짧고 발음하기 쉬운 오산을 택했기 때문이다. 오산역으로부터 7㎞ 남쪽에 있다. 전쟁으로 의지할 곳 없었던 빈민들에게 미군기지는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부대를 중심으로 기지촌이 형성되고 입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상권도 자리를 잡았다. 두 곳의 호황기는 1960~1970년대였다. 특히 신장동은 먹고 놀고 쇼핑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 나면서 오키나와, 필리핀에 주둔한 미군들이 전세기를 타고 몰려들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군이 감축된 데다 달러의 가치도 떨어진 탓이다. 1997년에 신장동을 관광특구로 지정, 쇼핑몰을 설치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지만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미8군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에 희망을 건다. 두 기지에 2016년까지 6만여명의 미군이 들어올 예정이다. 이렇듯 평택은 잇단 호재를 만나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등 지역 전체가 들썩인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Mr.왕 “니~하오” Buy 서울특별시

    [단독] [커버스토리] Mr.왕 “니~하오” Buy 서울특별시

    지난 25일 오전 11시 중국인이 소유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건강식품 매장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4대의 버스가 연이어 주차돼 있었고, 30여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매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떠나자 바로 2대의 버스가 그 자리를 채웠다.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들은 옷깃을 여미며 건강식품·화장품 매장 등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연남동은 중국인 전용 면세점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홍대 앞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자 성산동, 망원동 등으로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마포구에 있는 외국인 전용 관광기념품 판매점은 2010년 3곳이 문을 연 이후 올해까지 36개로 늘었다. 중국인의 부동산 취득이 늘자 연남동 일대의 대지 가격은 3년 전보다 2배 정도 뛰어 3.3㎡(1평)당 4000만~5000만원을 호가한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서대문구에서 건강식품 매장을 운영하는 중국인의 경우 연남동에 추가 매장을 열기 위해 물색 중”이라면서 “1·2층 매장의 월세가 3000만원 선이니 중국인들도 건물을 매입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식점 주인 김모씨는 “좁은 2차로뿐 아니라 대로변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관광버스들이 늘어서 있어 주민들만 교통 불편을 겪는다”면서 “중국 관광객 대부분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여행사, 판매점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땅값과 월세만 올릴 뿐 상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 중국 자금은 명동의 대형 빌딩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중국건설은행이 이달 말 잔금을 지급하면 총 510억원에 동양생명 명동사옥을 완전히 인수하게 된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은행의 건물 매입은 처음이다. 중국은행(BOC)도 빌딩 매입을 물색 중이며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도 R&D센터 건립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서울 토지 매입 건수는 2012년 1109건에서 올해 1993건으로 79.7% 증가했다. 아직 미국(올해 1만 3528건)보다 적지만 증가율은 미국(1.8%)뿐 아니라 유럽(17.5%), 일본(0%)도 크게 앞지른다. 지난해 10월 시는 베이징과 투자유치를 위해 전략적 협력을 하자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제주도와 부산 일대에서 이뤄지던 중국 자본의 지자체 사업 투자도 서울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서울에 투자하는 994개 중국기업 중 970개(97.6%)가 100만 달러 이하의 소규모 기업이다. 중국인 전용 여행사나 면세점 등을 포함한 서비스업은 923개(92.9%)에 이르는 반면 제조업은 56개(5.6%)에 불과하다. 중국 자본이 한류를 점령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문화, IT 산업 등으로 중국 투자가 다변화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단일 대형프로젝트 투자가 없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영국의 경우 런던 로열 앨버트 부두를 2025년까지 개발할 계획인데, ABP차이나홀딩스가 중국 자금 약 2조 9500억원을 투자한다. 1만 6000명의 고용창출이 예상되며 투자로 인한 창출 금액은 약 10조 4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시는 국내 기업도 해외 투자에 더 집중하는 환경에서 외국자금 유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저성장시대로 진입한 상황에서 외국 자금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면서 “우리나라 전체로 봐도 외국인직접투자는 전 세계 평균(명목GDP의 20~30%)에 크게 낮은 1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에서 경험한 ‘먹튀’ 등의 부작용이다. 세계 각국에 5000억 달러(약 551조원)를 투자해 온 중국은 보호주의 장벽 우회, 기술획득, 자원확보 등의 목적을 위해 무리한 인수·합병(M&A)을 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획득이 목적인 것으로 알려진 2005년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매입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투자, 고용시장 및 산업의 긍정적 파급효과 여부, 투자 수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공공성이 확보됐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삼성전자 런던 최대 매장 8개월 만에 폐쇄

    삼성전자가 지난 4월 애플에 대적하고자 영국 런던에 야심 차게 열었던 플래그십 매장의 문을 닫았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런던 최대 쇼핑몰인 웨스트필드 쇼핑센터에 있는 삼성전자의 체험형 매장인 ‘익스피리언스 스토어’에는 매장을 폐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엔가젯은 삼성 측이 웨스트필드 매장 외 나머지 9개 매장의 운영에 집중할 계획이며 폐점 매장 직원들의 고용 승계 등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매장 철수 소식은 올해 삼성이 스마트폰 부문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FT는 삼성이 런던에서 애플의 입지에 맞서려던 야심 찬 계획을 포기하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삼성은 그동안 ‘애플 스토어’를 모방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유럽 곳곳에 체험형 매장을 설치해 왔다. 지난 4월 이후 영국에만 10곳을 열었으며, 독일 등 유럽 전역에 2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웨스트필드 매장은 런던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FT는 삼성이 올해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실적이 크게 하락하는 등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4조 600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60% 줄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英 사이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커플 약혼

    英 사이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커플 약혼

    영국에서 사이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커플이 결혼을 약속했다고 AFP 등 외신이 보도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사이클 여자 단체추발과 옴니엄 금메달을 목에 건 로라 트로트(22)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케니와 가족들 덕분에 굉장한 나날을 보냈어요”라며 남자친구인 제이슨 케니(26)에게서 약혼이라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케니 역시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 스프린트, 개인 스프린트 금메달을 따며 2관왕에 올랐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단체 스프린트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들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나란히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대 남녀 미슬토 달고 키스 요구…남성들만 우르르?

    20대 남녀 미슬토 달고 키스 요구…남성들만 우르르?

    처음 보는 남녀가 각각 키스를 요구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슬토(겨우살이 나무줄기)’를 머리에 매단 남녀가 행인들에게 키스를 요구했을 때 각각의 반응이 담긴 실험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영국의 톰(26)이라는 남성과 엠마(22)라는 여성은 ‘미슬토 아래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서양의 크리스마스 미신을 이용하여 머리에 미슬토를 매단 채 런던의 길거리로 나섰다.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누가 더 키스를 많이 받나 대결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영상을 보면, 미슬토를 머리에 매단 톰과 엠마가 행인들에게 ‘메리 키스마스(Merry Kissmas)’라며 크리스마스 안부를 전한다. 엠마가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하면 남성들의 키스 세례를 받는 것과는 달리 톰은 여성들에게 번번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키스를 거절 받던 탐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마음씨 좋은 여학생들에게 단체로 키스를 받으며 조금이나마 엠마를 따라잡는다. 결과는 탐이 여성들에게 9번의 키스를, 엠마가 남성들에게 18번 키스를 받으면서 엠마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난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뻔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이다” “미슬토만 매달면 키스가 가능할까?” “어쨌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영상=ilikeTwoo/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앰브리시오의 레드, 리마의 블루, “22억원 짜리 브라...빅토리아 시크릿 ‘절정’...”

    앰브리시오의 레드, 리마의 블루, “22억원 짜리 브라...빅토리아 시크릿 ‘절정’...”

    브라질 출신 톱모델인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34)와 아드리아나 리마(34)가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함께 섰다. 둘 다 브라질 출신이다. 게다가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특별 이벤트인 ‘판타지 브라(Fantasy Bras)’를 입는 영예를 누렸다. ‘판타지 브라’의 가격은 22억원 이상이다. 앰브로시오는 레드 버전을, 리마는 실버 앤 블루 버전이다. 판타지 브라는 1만 6000개에 달하는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루비로 장식됐다.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 모아와드(Mouawad)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보석뿐만 아니라 18캐럿짜라 금으로도 꾸몄다. 상하의 세트 2벌을 제작하는데 총 1380시간을 쏟아부었다. ‘판타지 브라’ 시리즈는 1995년부터 시작됐으며, 그 해의 메인 모델이 착용하고 있다. 지금껏 티아라 뱅크스와 하이디 클룸, 지젤 번천, 미란다 커 등 유명 모델들이 ‘판타지 브라’를 걸쳤다.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의 인스타그램
  • 앰브리시오의 레드, 리마의 블루, “22억원 짜리 브라...빅토리아 시크릿 하이라이트”

    앰브리시오의 레드, 리마의 블루, “22억원 짜리 브라...빅토리아 시크릿 하이라이트”

    브라질 출신 톱모델인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34)와 아드리아나 리마(34)가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함께 섰다. 둘 다 브라질 출신이다. 게다가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특별 이벤트인 ‘판타지 브라(Fantasy Bras)’를 입는 영예를 누렸다. ‘판타지 브라’의 가격은 22억원 이상이다. 앰브로시오는 레드 버전을, 리마는 실버 앤 블루 버전이다. 판타지 브라는 1만 6000개에 달하는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루비로 장식됐다.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 모아와드(Mouawad)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보석뿐만 아니라 18캐럿짜라 금으로도 꾸몄다. 상하의 세트 2벌을 제작하는데 총 1380시간을 쏟아부었다. ‘판타지 브라’ 시리즈는 1995년부터 시작됐으며, 그 해의 메인 모델이 착용하고 있다. 지금껏 티아라 뱅크스와 하이디 클룸, 지젤 번천, 미란다 커 등 유명 모델들이 ‘판타지 브라’를 걸쳤다.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의 인스타그램
  • 클라인펠터증후군, “정자 수 극히 적어” 아들 판정에 결국 비관 자살 ‘충격’

    클라인펠터증후군, “정자 수 극히 적어” 아들 판정에 결국 비관 자살 ‘충격’

    ‘클라인펠터증후군’ 클라인펠터증후군 판정을 받은 생후 1개월 된 아들과 현직 경찰관 엄마 A(33·여)경위가 함게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클라인펠터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이란 남성이 여성의 성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게 돼 발달과 생식 능력에 장애를 초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난자나 정자가 생기는 과정 중에 X염색체가 쌍을 이루었다가 단일 X로 분리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여분의 X염색체가 더 있는 난자나 정자가 수태되면 클라인펠터증후군이 생긴다. 클라인펠터증후군 환자에게서는 고환 기능 저하(남성호르몬 분비 저하, 정자 생성 불가능)와 다양한 학습 및 지능 저하가 나타난다. 또 50% 정도의 환자에게서는 심장 판막의 이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한편 영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 메일은 평생 남성으로 살다가 2년 전 자신이 중성이란 사실을 알게 된 아델 마캄(31)을 소개한 바 있다. 마캄은 “어린 시절 여자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걸 좋아하는 등 내가 남자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아버지는 외동아들인 나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오히려 남성호르몬 치료를 받게 했다”고 고백했다. 사춘기에 들면서 마캄의 성정체성 고민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16세에 집을 떠나 런던에서 살기 시작했다. 마캄은 런던에서 자신의 성을 숨긴 채 동성애자로 살았다. 이후 마캄은 성전환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수술 전 몇 가지 검사를 받던 마캄은 그의 성염색체가 ‘XY’(남성)도 ‘XX’(여성)도 아닌 ‘XXY’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캄은 ‘클라인펠터증후군’(성염색체이상증후군)을 앓았던 것. 마캄은 자신이 중성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매일 힘들었지만 “남성으로 알고 살았던 지난 시간보다 지금이 행복하다”며 “성전환수술 후 언젠가 남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집에서 발견된 A경위의 유서에서는 “아들이 장애 판정을 받아 괴롭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클라인펠터증후군) 뉴스팀 chkim@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로 ‘신개념 건축’ 추구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로 ‘신개념 건축’ 추구

    193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피터 쿡은 건축가보다 교육자로, 비평가로 잘 알려진 건축계의 거장이다. 런던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건축환경학부인 바틀릿건축대학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재능 있는 건축가들을 다수 배출했다. ‘현대 건축의 힘’ ‘실험적 건축’ ‘액션과 플랜’ ‘드로잉’ 등 그의 저서들은 예술 비평과 건축 전공자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버네머드예술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런던건축가협회의 마스터과정을 졸업한 그는 1961년 워런 초크(1927~1987), 론 헤론(1930~1994) 등 다섯명의 친구와 함께 전위적인 건축가그룹 ‘아키그램’을 결성했다. 아키그램이란 건축(아키텍처)과 전보(텔레그램)의 합성어로 날로 무의미해져 가고 척박해져 가는 전후 주류 건축계와 디자인계의 현실에 긴급 전보를 때려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드로잉과 콜라주로 이뤄진 자신들의 작품을 잡지로 발간하고 전시와 세미나를 통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개념을 발표하며 건축계를 뒤흔들었다. 아키그램은 1961~74년 9차례 잡지를 발간했다. 활동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유럽 현대건축사에서 돋보이는 흔적을 남겼고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며 실험성 강한 영국 건축을 대표하고 있다. 보편적인 건축보다는 즐거운 건축, 창의적인 건축을 지향하는 그는 우주선 캡슐 모양의 주택을 포함하는 플러그인시티 등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건축뿐 아니라 다른 시각예술과 개념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지루함’이라고 할 정도로 튀는 아이디어로 신개념의 건축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은 때로는 지나치게 전위적이어서 실제로 지어진 것은 불과 몇 작품이 안 된다. 하지만 전통과 아방가르드의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연출하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건축가로서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재설정시킨 걸작으로 꼽힌다. 아키그램 그룹의 설립 멤버들과 함께 그는 2002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가 주는 골드메달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영국 여왕이 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런던대학 바틀릿건축대학의 학장을 맡았던 그는 교단에서 은퇴한 뒤에도 건축가로, 평론가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의 조감독 역할을 맡은 1944년 런던 태생인 콜린 푸르니에는 런던대학 바틀릿건축대학 교수로 도시디자인 전문가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의 파트너로 파리의 라빌레트파크를 설계했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미술관 건축은 어느 건축 분야보다 건축가 자신의 미학과 철학을 살릴 여지가 많은 편이다. 건축가의 상상력과 선진적인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은 독창적인 미술관들이 현대 건축 순례지에 포함되는 이유다. 오스트리아의 제2도시 그라츠에 있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는 형태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미술관이 세계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꼭 가 봐야 할 건축물로 꼽히는 이유는 외형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관이, 문화와 예술이 그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역사 1000년이 넘는 중세도시에 들어선 외계 생명체 같은 이 파격적인 미술관은 도시의 해묵은 과제인 동·서 간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적 불협화음을 말끔히 해소시키면서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 빈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 떨어진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수도 빈의 그늘에 가렸고,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처럼 매력적인 관광 요소가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9세기 도나우강의 지류인 무어강을 끼고 헝가리와 슬로베니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에 건설된 그라츠는 수 세기 동안 슬로베니아 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들의 수도인 류블랴나보다 더 중요한 곳이었다. 조용하고 목가적이며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라츠의 구시가지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도심 중 하나로,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역사지구로 보존되는 구도심은 마치 박물관 같다. 16세기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란트하우스와 시청인 라트하우스, 그라츠의 상징인 슐로스베르크 시계탑(우어투름)과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대성당, 바로크 양식의 에겐베르크궁전 등 많은 고전 건축물들이 구시가지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육도시로 유명한 그라츠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한 유서 깊은 명문 대학들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크고 두 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그라츠대학을 비롯해 건축으로 유명한 그라츠기술대학 등 6개 대학에 4만 40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전체 인구가 25만명인 도시에서 6명 중 1명이 대학생인 셈이니 고풍스러운 도시에 지적인 분위기와 젊음의 활기가 넘친다. 2003년 그라츠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등장했다. 바로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다. 쿤스트하우스는 도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무어강의 서쪽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디자인한 현대미술관 쿤스트하우스 그라츠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외형 때문에 한동안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고 여러 개의 촉수를 가진 거대한 연체동물 같기도 한 이상한 모습을 한 낯선 침입자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공공 기능을 가진 건물에 어디까지 작가의 상상력을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설계안을 놓고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80%가 반대했을 정도로 기괴한 모양이었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에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외형의 미술관이 들어선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라츠 시민들이 이 괴상한 건물을 ‘친근한 외계인’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형은 좀 독특하지만 도시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반영해 설계한 미술관은 도시의 해묵은 과제를 시원하게 풀어주며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해묵은 과제란 바로 동서 간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불화였다. 그라츠는 무어강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뉜다. 동쪽은 요새에서 출발해 발달한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해발 473m의 슐로스베르크 언덕을 중심으로 구릉을 따라 상점가와 고급 주택가, 대학이 들어서 있고 모든 행정·문화·종교·교육·상업시설도 구도심에 밀집해 있다. 반면 서쪽에는 기차역, 공장, 양조장, 제련소 등의 산업시설에 정신병원과 감옥, 홍등가 등이 자리했다. 동쪽은 중세 이후 귀족, 부르주아 계급의 거주지였고 서쪽은 노동자와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 건물 임대료도 동쪽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강 양안의 공간 구조는 완전히 이질적이고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극심했다. 그라츠시는 그 해결책으로 서쪽 지역에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방치돼 있던 무어강 서쪽에 1848년 지어진 철제 건물과 그 옆 공터에 미래적 디자인의 현대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1998년 현상설계를 실시했다. 사실 현대미술관 건립은 그라츠시의 숙원 사업이었다. 이미 1980년대에 현대미술관 건립 계획을 수립해 두 차례 현상설계를 하고 당선작까지 뽑아 놓은 상태에서 정권 교체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무산됐던 터였다. 무산된 두 번의 계획은 무어강 동쪽에 현대미술관을 짓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동서 간 격차가 심한데 현대미술관마저 동쪽에 짓는다는 계획은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웠다. 세 번째 시도를 하던 중 마침 그라츠가 2003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그라츠시의 미술관 건립 계획은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무어강 서쪽에 쿤스트하우스를 유치해 ‘예술을 통한 사회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정치·사회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런던의 건축가인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는 무어강을 사이에 두고 이질적으로 발전해 온 도시의 역사적 설정과 그들의 혁신적인 디자인언어를 인상적으로 합성해 쿤스트하우스를 완성했다. 건물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위압적이거나 위화감을 주지 않고 주변의 오래된 건축물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설계한 두 건축가의 공이 크다. 4층 규모의 유선형 건축물은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건물들 사이에 연착륙한 외계 생명체 같다. ‘피부’에 해당하는 외벽은 두게 15㎜의 투명한 청색 아크릴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붕에는 16개의 관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튀어나와 있다. 채광창 역할을 하는 건물의 촉수는 이 도시의 상징인 강 건너편 슐로스베르크 언덕 위의 시계탑을 향해 휘어 있다. 마치 이 도시의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교신하는 것 같다. 미술관은 ‘친근한 외계인’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건물 외부에서 매시 50분마다 5분 동안 초저음의 진동이 나도록 설계했다. 건물 외벽에는 아크릴판 아래로 930개의 원형 형광 전구가 설치돼 있다. 구도심을 향한 동쪽 입면은 개별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해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하며 밤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부드러운 곡면 스크린에 표현되는 미디어 이미지, 애니메이션은 마치 외계 생명체가 자기만의 언어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건물 상층부에도 ‘바늘’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전망대가 설치돼 강 건너 맞은편의 도시와 소통하도록 했다. 2003년 쿤스트하우스의 완공과 함께 그 주변으로 고급 레스토랑과 상점, 영화관, 식당과 카페, 재즈바 등이 속속 들어서 도시의 새로운 문화 축으로 금세 자리 잡았다. 무어강에는 2003년 유럽문화도시 선정에 따라 길이 50m, 넓이 20m의 인공 구조물 ‘무어섬’도 완공돼 쿤스트하우스와 함께 도시 서쪽의 전위적인 풍경을 이룬다. 양쪽 강변에서 팔을 뻗어 거센 물살 위에서 힘차게 악수를 하고 있는 모양으로, 사회적 통합을 상징하는 인공섬이자 인도교에는 카페와 공연장이 들어서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인터페이스 같은 쿤스트하우스가 들어서면서 동서 간 문화적 이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무어 강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한 시민은 “쿤스트하우스는 그라츠의 미래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공공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자신의 의족 드러낸 세계 최초 외다리 가수 ‘빅토리아 모데스타’

    자신의 의족 드러낸 세계 최초 외다리 가수 ‘빅토리아 모데스타’

    자신의 첫 뮤직비디오에서 의족을 멋지게 드러낸 가수가 있어 화제다. 그 주인공은 라트비아 출신의 영국 모델 겸 가수인 ‘빅토리아 모데스타’(Viktoria Modesta). 그녀는 엉덩이와 다리가 탈구되는 선천적 장애로 인해 15번에 걸칠 수술에도 불구 자신의 장애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무릎 밑 왼쪽 다리를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이번 뮤직비디오는 최근 영국의 채널4가 ‘Born Risky’라는 브랜드 캠페인을 론칭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채널4는 “세계 최초의 다리를 절단한 팝 아티스트”라고 빅토리아를 소개했다. 뮤직비디오는 “장애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잊어버려라”(Forget what you know about disability)라는 문구로 시작되며 빅토리아는 뮤직비디오 내내 화려하게 꾸민 의족을 선보이며 노래를 부른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절망하지 않고 4년 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해 현재 런던과 밀라노 패션위크와 런던의 클럽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2일 유튜브에 게재된 그녀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323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한편 그녀의 뮤지비디오를 접한 해외 누리꾼들은 “섹시하네요”, “새로운 레이디가가가 탄생했네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등 다양한 댓글을 달았다. 사진·영상= www.viktoriamodesta.com / Channel 4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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