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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물산 주총 참석률 83.57%…합병안 통과, 최대주주는 누구?

    삼성물산 주총 참석률 83.57%…합병안 통과, 최대주주는 누구?

    ‘삼성물산 주총 참석률 83.57%’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통과돼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하게 됐다.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삼성은 지난 5월26일 양사 합병 발표 이후 53일 만에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합병전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삼성물산은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제1호 의안인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 주총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는 이날 낮 12시47분께쯤 “1억 3235만 5800주가 투표에 참여해 이중 총 9202만 3660주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 위임장을 제출하거나 현장 표결로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의 참석률은 83.57%로 집계됐다.전체 주식 총수(1억 5621만 7764주)에 대비한 합병 찬성률은 58.91%다. 이로써 엘리엇의 합병 저지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대표적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은 지난달 초 삼성물산 지분 매입 공시 이후 지속적으로 합병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법원에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 소송을 포함해 삼성을 상대로 한 전면적 파상공세를 펼쳐왔다. 삼성물산은 이날 표결에서 특수관계인·계열사(13.92%), KCC(5.96%), 국민연금(11.21%), 국민연금 외 국내기관(11.05%) 대다수 등 42%대의 안정적 지지표 외에 소액주주와 외국인으로부터도 16%대의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애초 박빙 승부를 내다봤던 시장 예측을 깨는 삼성의 ‘압승’으로 풀이된다. 확실한 반대표는 엘리엇(7.12%)과 메이슨캐피탈(2.18%)을 포함한 외국인 및 소액주주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총 주식수 대비 반대표는 25.82%다. 앞서 제일모직도 이날 오전 9시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빌딩 1층 컨퍼런스홀에서 임시 주총을 열고 삼성물산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통과시켰다. 이어 엘리엇이 주주제안한 제2호 의안인 현물배당안은 부결됐다. 최 사장은 “이익을 배당할 때 보유주식 등 현물로 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 일부 변경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현물배당안은 찬성률이 45.93%에 그쳐 정관을 개정하는 데 필요한 주총 참석 지분 3분의 2 이상, 전체 지분 3분의 1 이상 동의에 미치지 못했다. 역시 엘리엇의 주주제안인 제3호 의안인 중간배당안도 45.82%의 찬성률로 부결됐다. 삼성물산 최치훈·김신 사장과 제일모직 윤주화·김봉영 사장은 CEO 공동메시지를 통해 “그동안 성원과 지지를 보내준 주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번 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됐다. 양사 사업적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가치를 높여 기대에 보답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엘리엇은 이날 주총 폐회직후 입장 자료를 통해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져 실망스러우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향후 합병 무효 청구소송을 내거나 통합 삼성물산의 주주로서 삼성을 상대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엘리엇의 지분(7.12%)은 1대0.35 비율로 계산하면 통합법인에서는 2.03%로 줄어든다. 이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9월1일자로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으로 출범하게 됐다. 법인사명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그룹 창업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삼성물산을 사용한다. 합병회사는 오는 2020년 매출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을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51.2%의 지분을 보유한 그룹 신수종사업 바이오부문에서 2조원 이상의 시너지효과를 목표로 한다. 합병 반대주주는 주총일로부터 20일내에 회사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는 1조 5000억원이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5만 7234원인데 삼성물산 주식이 이보다 높아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법인은 9월4일 기업결합신고와 합병등기를 완결하고 9월15일 합병신주를 상장한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De Facto Holding Company)로서 위상을 갖춰 미래 신수종 사업을 주도하고 그룹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이번 합병 성사로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던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구조가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됐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질적 지주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아울러 이 부회장으로의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한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에서 16.5%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통해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은 통합 법인에서 각각 5.5%의 지분을 갖게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경제] “亞 인프라 시장 잡아라” ADB-AIIB ‘錢의 전쟁’

    [글로벌 경제] “亞 인프라 시장 잡아라” ADB-AIIB ‘錢의 전쟁’

    “2020년까지 8조 달러(약 8764조원) 규모의 방대한 아시아 인프라 투자 시장을 장악하라.” 중국과 일본 간에 아시아 인프라 투자 시장을 둘러싸고 주도권 다툼이 뜨겁다. 올해 말 출범 예정인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참가 예정국이 크게 늘어나면서 AIIB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의식한 일본이 자국이 이끄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본금 증액 방침을 밝히며 발 빠르게 대처하는 등 벌써부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나카오 다케히코 ADB 총재는 지난 6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ADB 2015년 연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ADB의 대출 한도가 아시아 인프라 수요를 충족하기에 불충분하다”며 “ADB는 인프라 구조 및 기타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대출 규모를 50%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7일 보도했다. ADB는 연간 130억 달러 규모인 대출 한도를 200억 달러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출 규모로는 여전히 수요에 크게 못 미쳐 자본금을 늘려 대출 한도를 추가로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1966년에 설립된 ADB는 일본(지분율 15.67%)과 미국(15.56%)의 주도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에 경제발전과 빈곤퇴치, 환경보호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금융 지원을 하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개도국의 인프라 구축에 지원함으로써 국제 금융기구로서 위상을 다졌다. ADB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 개도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투자자금의 수요는 8조 달러, 연간 8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ADB와 세계은행(WB)은 총자본금이 3830억 달러에 불과한 만큼 아시아 지역 인프라 개발 자금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ADB는 이번 연례회의에서 아시아 인프라 구축 기금을 늘리는 등 사업 방향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관 합동 방식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인프라 구축 기금 규모를 최대 1억 5000만 달러로 늘린다는 복안이다. 향후 늘어나는 기금을 활용해 인프라 구축 사업을 위한 사전조사의 필요 경비까지 충당할 전망이다. ADB는 이와 함께 자금 수요국의 요구에도 적극 부응하기 위해 대출 심사 기간도 15개월로 6개월 이상 단축하기로 했다. 신속한 심사를 강조하며 압박하는 중국에 대한 사전 대응 성격의 조치다. ADB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위상이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와이 호 청 바클레이스 싱가포르지부 이코노미스트는 “AIIB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ADB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해 AIIB를 설립하는 중국의 반격도 만만찮다. AIIB 임시사무국이 AIIB 설립 협의 과정에서 초기 자본금 증액을 참가 예정국에 제안했다. AIIB는 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로 출범해 증자를 통해 1000억 달러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참가 예정국이 ADB(회원국 67개국)에 조금 못 미치는 57개국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출범 때부터 초기 자본금 규모를 늘릴 여건이 충분히 마련됐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당초 500억 달러보다 배가 많은 1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AIIB가 아시아 투자기관의 핵심이었던 ADB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셈이다. 중국은 ADB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집중 공격했다. ADB 규정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이 대출을 받으려면 해당 정부의 투명성, 이데올로기의 형태 등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하고 환경보호, 고용, 입찰 등 다양한 규정도 통과해야 하는 등 심사조건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대출심사 기간이 2년 가까이 소요되고 ADB가 근본적으로 인프라 투자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도 거론했다. 하미드 사리프 ADB 베이징 주재 중국대표처 수석대표는 “아시아 지역은 연간 8000억 달러의 투자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나 ADB는 이 중 5%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ADB 지배구조 변화까지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중국 재정부장은 ADB 증자를 염두에 두고 “ADB 는 제대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한지와 화지/서동철 논설위원

    건칠불(乾漆佛)은 일반적으로 삼베로 감싸고 옻칠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 뒤 단단히 반죽한 옻칠로 세부를 표현해 마무리한다. 나무를 깎거나 금속을 틀에 부어 만드는 불상보다 훨씬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다른 재질의 불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벼워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 어렵지 않게 대피시킬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유행했는데 경주 기림사와 영덕 장륙사의 건칠보살반가상은 특히 삼베가 아닌 종이를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륙사 것은 조선 태조 4년(1395), 기림사 것은 연산군 7년(1501)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지(韓紙)는 1000년을 간다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 불상’의 수명은 짐작조차 어려운 일이다. 식물의 잎면을 기록 용도로 쓰기 시작한 것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보듯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물성 섬유를 분리한 뒤 다시 모아 만드는 오늘날의 종이는 중국에서 기원을 찾아야 한다. 초기의 종이는 거울 같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완충재로 썼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이미 개발되어 보편화된 식물성 섬유의 활용방법을 2세기 초 기록 용도로 넓힌 사람이 후한(後漢) 시대 채륜이다. 중국의 제지술은 이후 동쪽으로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일본서기’에 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승려 법정과 일본에 종이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반도에 종이가 전래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기록 이전에 이미 고구려에는 제지법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지의 주원료는 닥나무다. 닥나무 섬유는 가늘고 길어 종이의 조직이 조밀하고 일정하다. 닥 섬유는 빛 반사율이 높아 광택이 좋고, 물이 잘 들어 아름다운 색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수명이 긴 데다 섬유 조직 사이로 통기성 또한 좋아 최근에는 환상적인 자연 섬유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종이 화지(和紙)도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주원료인 삼지닥나무 또한 닥나무처럼 섬유가 길어 화지 또한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습기에 강하다. 오늘날 한지와 같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종이의 용도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유럽에서는 미술이나 패션, 인테리어에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물론 특히 옛 문서와 회화, 벽화, 조각 등의 보존처리와 복원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로 떠올랐다. 문제는 화지가 오래전부터 ‘동양을 대표하는 종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반면 한지는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바티칸의 교황청이 ‘요한 23세 박물관’의 지구본을 복원하는 데 한지를 쓰기로 했다는 어제 서울신문 보도 내용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많은 사람이 한지를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종이 전쟁’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정부 대변인 ‘우먼 파워’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中정부 대변인 ‘우먼 파워’

    지난달 26일 오후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부두에 정박 중인 해군 88함선의 기자회견장. 하얀색의 여름 해군 장교복에 옅은 화장을 한 40대 여성이 사뿐히 걸어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인민해방군 해군 최초의 여성 대변인으로 발탁된 싱광메이(邢廣梅·44) 해군 대교(大校·준장급)가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싱 대교는 “27~28일 해군 88함선에서 청·일전쟁 120주년 연구토론회를 개최하고 부근 해역에서 해상 제례의식을 거행하겠다”며 “지금은 (중국이) 해양 강국을 건설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북양해군의 장병들을 위한 제례의식을 통해 청·일전쟁의 치욕과 처참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려는 것”이라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호감을 샀다. 해군군사학술연구소 세계해군연구실 주임인 그는 지난해 11월 해군 대변인에 발탁됐지만 단독 기자회견에 등장하기는 처음이었다. 법학박사 출신으로 중국군사과학회 군사분회 부비서장을 지낸 해상안보정책 전문가로만 알려졌을 뿐 개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첫 등장을 계기로 인터넷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인민해방군 최초의 여성 대변인이 계급이 높고 미인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싱 대교는 남자 대변인인 량양(梁陽) 상교(上校·대령)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이다. ●해군 최초 싱광메이 대교 발탁 중국 정부 부처에 여성 대변인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과 국무원 타이완(臺灣)사무판공실, 교육부, 국가위생계획생산위원회, 최고인민검찰원 대변인에 이어 인민해방군 대변인에도 늠름함과 지혜를 겸비한 여성이 처음으로 공식 등장했다고 신경보(新京報)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주요 부처에 여성 대변인을 잇따라 발탁하고 있는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정치체제의 폐쇄성을 불식시키고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포석이며 ▲최근의 여성파워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베이징 정가의 분석이다. 현재 활약하는 여성 대변인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외사위원회 주임과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신문사(국) 부사장, 쑹수리(宋樹立)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 선전사 부사장, 쉬메이(續梅) 교육부 대변인, 샤오웨이(肖瑋) 최고인민검찰원 신문대변인, 판리칭(範麗靑) 타이완사무판공실 신문국 부국장 등이다. 푸잉 주임은 이들의 ‘대모’ 격이다. 몽골족 출신인 그는 1988년 필리핀 대사로 임명돼 첫 소수민족 여성 출신 대사, 최연소 여성 대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1977년 중국 외교관의 산실로 불리는 베이징 외국어학원 영어과를 졸업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 등 최고 지도자들의 통역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호주·영국 대사 등 영어권 대사를 주로 맡았다. 지난해 3월 전인대에서 중국의 개혁 방향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여성의 섬세함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푸잉 전인대 외사위 주임이 ‘대모’격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2012년부터 외교부 다섯 번째 여성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강(秦剛)· 훙레이(洪磊) 대변인과 함께 매일 내외신 브리핑을 번갈아가며 맡는다. 친강 수석 대변인은 발탁 이유와 관련, “20년 외교 업무에 종사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양호한 소통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일본이나 베트남 등과 해상 영유권 분쟁이 심해질 때 화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면 중국에 우호적인 외신기사가 많아진다는 분석도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여성이 하늘의 반쪽을 떠받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는 말을 남겼다. 마오는 외교부에 여성 대변인을 두는 걸 염두에 뒀으나 이루지 못했다. 중국에 대변인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오의 생각은 1987년 리진화(李金華)가 외교부 대변인에 기용되면서 실현됐다. 난카이(南開)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중국 외교부에 대변인 제도가 생긴 이후 7대 대변인이다. 외교부 신문사의 전신인 정보사 도서자료실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대변인 역할을 깔끔하게 수행했다. 중국 외교정책의 원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대 여성 대변인은 판후이쥐안(範慧娟) 전 아일랜드 대사다. 외교학원 외교학과 영문반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 등에서 근무한 뒤 56세이던 1991년 외교부 대변인에 임명됐다. ●마오쩌둥 “여성이 하늘 반쪽 떠받쳐” 최연소 외교부 여성 대변인 기록을 가진 장치웨(章啓月)는 부부 외교관이다. 남편은 류제이(劉結一) 주유엔 대사다. 아버지가 일본 대사 등을 지냈으며 어머니도 외교부 관리였다. 3대 여성 대변인인 그는 당시 외신기자들 사이에서는 “답변이 간결하고 시원시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1년 발생한 중·미 정찰기 충돌 사고 당시 사고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등을 보여주며 중국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진가를 높였다. 단아한 미모로 유명한 장위(姜瑜)는 네 번째 여성 대변인이다. 2009년 스페인의 언론이 선정한 ‘세계에서 아름다운 여성 정치인 및 공직자’에 중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차갑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상냥한 편이다. 그는 대변인 시절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줄 때마다 옅은 웃음을 띠어 ‘미소 대변인’이라는 별칭도 있다. 쑹수리 국가위생계획생육위 대변인는 베이징중의약대를 졸업한 뒤 10년간의 강사 생활을 거쳐 공직에 입문했다. 중의학에 대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그는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중국 내 상황을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전해 중국 보건 정책에 대한 해외 불신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쉬메이 대변인은 2008년부터 교육부 대변인을 맡아 대변인 경험이 풍부하다. 베이징사범대를 졸업한 뒤 교육부 산하 언론기관에서 일하며 언론 감각을 키웠다. 샤오웨이 최고검찰원 대변인은 20여년간 검찰일보에 근무한 덕에 법 집행에 따른 검찰의 딱딱하고 강한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화사 기자 출신인 판리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홍콩의 ‘점령시위’와 ‘타이완독립’ 통합물결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홍콩 사회를 어지럽히고 양안관계를 깨뜨려 국가를 분열시키는 세력에 대해서는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며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khkim@seoul.co.kr
  • 야누스의 얼굴 ‘화’, 본능과 폭력 사이 해법을 찾다

    야누스의 얼굴 ‘화’, 본능과 폭력 사이 해법을 찾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없으면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고 했다.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자 그만큼 강력하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진 이것은 바로 ‘화’, ‘분노’다. 분노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우면서도 폭력적인 감정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200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화두로 꼽혀 왔다. 특히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현대사회는 우리를 더욱 화내기 쉬운 조건으로 내몰아 가고 있다. 어느새 삶의 불청객이 된 ‘화’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감정의 고유 영역으로 존재하는 이 강력한 힘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금기시하기만 했던 화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런 취지로 14~16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되는 EBS ‘다큐프라임’은 우리가 무엇을 ‘화’라고 여기고 있는지 오해와 진실을 규명한다. 또 욱하거나 꽁한 반응 뒤에 감춰진 ‘화’의 진짜 원인인 ‘내면 아이’를 통해 그 출발점을 탐색한다. 14일 방송되는 1부 ‘원초적 본능, 화’ 편에서는 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 살펴본다. 툭하면 남편과 동생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40대 주부, 몇 년째 같은 집에 사는 어머니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들 등 다양한 사례자들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화의 원인과 표현 방법을 들어본다. 이들의 일상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 보고, 각자에게 맞는 분노 해결 트레이닝을 적용해 화를 해결하면서 놀랍도록 변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비리 산시방 ‘곡소리’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비리 산시방 ‘곡소리’

    위안춘칭(袁純淸) 산시(山西)성 당서기는 지난달 20일 오전 ‘성(省) 상무위원회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공산당중앙 기율검사위원회가 전날 오후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링정처(令政策)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과 두산쉐(杜善學) 부성장 등 산시성 최고위급 간부 2명을 면직 처리했기 때문이다. 산시성 인민대표대회 주임을 겸하고 있는 위안 당서기가 주재한 이날 회의는 리샤오펑(李小鵬) 성장과 러우양성(樓陽生) 부서기, 쉐옌중(薛延忠) 정협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산시성 당 서열 1~5위인 이들은 “링정처 전 정협부주석과 두산쉐 전 부성장의 엄중한 기율 위반 조사는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가 벌이는 반부패 투쟁의 중요한 조치 가운데 하나”라면서 “청렴 정치의 당풍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 강조하며 반부패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부패와의 전쟁’을 다짐했다고 신화통신 등이 보도했다. ●석탄 등 광물 풍부… 광산주·고위 관리 결탁 중국의 ‘산시방’(山西幇)이 서산낙일(西山日)의 운명에 놓여 있다. 석탄 주요 생산지인 중국 동부 산시성 지역을 연고로 석탄광산회사 임원들과 고위 관리들로 이뤄진 인맥인 산시방의 인사들이 부정부패 혐의로 줄줄이 체포돼 조사를 받는 바람에 와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산서일보(山西日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산시성 전·현직 고위 간부 23명이 무더기로 낙마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사법 처리 임박설이 나도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 정법위원회 서기의 세력 기반인 ‘석유방’(석유산업을 매개로 한 정치 세력), ‘쓰촨방’(四川幇·쓰촨성 출신의 관료 집단)의 몰락에 이어 산시방에도 조종(弔鐘)의 소리가 울리고 있다. 낙마한 산시방의 대표적인 인물은 링정처 전 부주석, 두산쉐 전 부성장 외에 진다오밍(金道銘) 전 산시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선웨이천(申維辰) 전 중국과학기술협회 상무부주석, 딩쉐펑(丁雪峰) 산시성 뤼량(呂梁)시장, 양샤오보(楊曉波) 전 산시성 가오핑(高平)시장, 왕샤오린(王曉林) 전 산시성 교통청장, 돤젠궈(段建國) 전 산시성 교통운수청장 등이다. 이들은 재직 중 뇌물수수, 직권남용, 국유재산 손실 등 크고 작은 각종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웨이천 전 상무부주석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산시성 성도(省都)인 타이위안(太原)시 당서기를 지내는 동안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친형 링정처 전 정협부주석 조사 대상에 진다오밍 전 부주임과 딩쉐펑 전 시장은 지난 2월 ‘저우융캉 사건’ 연루설이 흘러나오면서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면직됐다. 딩쉐펑 전 시장은 2012년 잘 알고 지내던 저우 전 서기의 둘째 부인 자샤오예(賈曉曄)에게 “시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면서 2000만 위안(약 32억 4940만원)을 건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장밍(張鳴) 인민대 정치학과 교수는 “산시성에는 석탄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이 있으며 이는 광산 소유주들과 고위 관리들 간의 심각한 결탁으로 이어졌다”면서 “관리들과 재계 인사들이 비슷한 이익을 공유하는 그룹을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면직된 링정처 전 정협부주석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대내총관(大內總官·비서실장에 해당)이던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의 형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링정처 전 부주석이 당국의 조사 대상에 오른 것은 링 부장에 대한 ‘사정 예고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가 분석했다. 링정처 전 부주석은 산시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1984년부터 산시성 지방 정부에서 근무하다 2008년 산시성 정협부주석에 올랐다. 후 전 주석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 온 링 부장은 2012년 11월 제18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할 유력한 후보였다. 일각에서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다. 이에 따라 산시성의 일부 고위 인사들이 링 부장의 정치국원 진입을 위해 조직적인 후원 움직임을 보였다는 후문도 있다. ●아들 교통사고·부인 축재 의혹도 악재 그러나 링 부장은 고배를 마셨고 통일전선부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2012년 초 23살의 아들이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에 젊은 여성들을 태우고 질주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그의 아내 구리핑(谷麗萍)의 축재 의혹이 불거진 탓이다. 링 부장은 당시 공안부와 사법부의 총수인 저우 전 서기에게 아들의 사고 사실을 은폐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저우 전 서기 외에도 ‘아들 허진타오(賀錦濤) 부패 조사설’이 나도는 허궈창(賀國强)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부정부패 등의 비리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가깝게 지냈다. 이 때문에 베이징 정가에는 2012년 여름 제18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링 부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을 막기 위해 저우 전 서기 및 보 전 당서기와 함께 정변을 공모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링 부장의 당내 직급과 위상이 높아지면서 형 링정처 전 부주석 역시 직급이나 권력이 높아졌다. 베이징 정가의 소식통은 “링정처의 정협 부주석이라는 직급은 비록 차관급이지만 동생의 막강한 권력이 뒷받침되면서 산시성 관료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산시성 내 주요 인사는 산시성 당서기가 아닌 링 부주석이 쥐락펴락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산시방 몰락 6세대 리샤오펑에 불리 산시방의 잇단 낙마는 6세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리샤오펑 산시성장에게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리펑(李鵬) 전 총리 아들로 대표적인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 인사로 꼽혀 온 그는 국유전력기업인 화넝(華能)그룹 회장을 지내다 2008년 산시성 부성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성장으로 고속 출세했다. 하지만 2012년 성장 취임과 동시에 터널 붕괴 사고, 화학 물질 누출 사고에 이어 고위급 부하 직원의 낙마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khkim@seoul.co.kr
  • [김종면 칼럼] ‘총리 리스크’ 언제 끝나나

    [김종면 칼럼] ‘총리 리스크’ 언제 끝나나

    글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로는 마음속의 참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동양고전 ‘주역’에 나오는 서불진언(書不盡言) 언불진의(言不盡意)라는 말을 풀이하면 그렇다. 아무리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전달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스스로에 취한 나머지 편견에 사로잡힌 글을 써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말 또한 마찬가지다. 세 치 혀를 움직여 역사의 대업을 이루기도 하지만 패가망신의 흉기로 돌변하기 일쑤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운 일도 없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금 그 운명과도 같은 ‘글감옥’, ‘말지옥’의 늪에 갇혀 고초를 겪고 있다. 문 후보자는 주필 시절 칼럼집을 펴내며 광야의 외침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광야에 외치는 자로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글을 쓰고 말을 하며 도덕적 확신가의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한 가지 예만 들어도 그의 신념 어린 내면 풍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최근 대학 강의에서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 서늘한 경세(警世)의 가르침이 적이 놀랍다. 이 같은 대일 시각은 “일본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입으로 과거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2005년 칼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식민사관 논란이 커지자 그는 결국 “말뿐인 사과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더욱 중요하다는 취지”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청문회를 앞둔 억지춘향식 사과로만 비치니 영 미덥지 않다. 과거사 문제를 놓고 일본과 ‘역사전쟁’을 치르는 대통령과 식민사관에 침윤된 총리의 조합이라니 이건 완전 블랙 코미디다. 문 후보자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언론인 시절 언론인으로서 한 일”이라며 “공직을 맡게 된다면 그에 걸맞은 역할과 몸가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모독’이다. 사람의 생각은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공직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다를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삶의 철학과 세상에 대한 인식이 이리저리 바뀐다면 그 자체로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온몸으로 시대를 성찰하고 고뇌하는 언론인으로서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면 차라리 박수를 받았을 법하다. 권력으로 가기 위해 이 정도의 수모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기부정이다. 권력과 부를 향한 마키아벨리적인 삶보다 명예와 의무를 존중하는 세네카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한 말은 괜히 해본 소리인가. 진정으로 명예의 의미를 안다면 지금 당장 물러나는 게 옳다. 시대가 더 이상 자신을 요구하지 않으면 나만의 진실을 간직한 채 나귀를 거꾸로 타고라도 떠나는 게 언론인의 도리다. 낙마한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 후보자도 문제 인물로 드러나 온 나라가 시끄러우니 이 무슨 국가적 낭비요 국민적 수치인가. 한두 번도 아니고 국민도 국가도 골병이 들 지경이다. 문제는 다시 청와대다. 총체적 난맥상에 빠진 인사검증 시스템을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텐가. 국가개조에 무풍지대란 있을 수 없다.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이 무겁다. 청와대 개조가 급하다. 인사시스템의 개선과 함께 다시 한번 국민통합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통합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문창극 파문’은 이런 시대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 상징적 사건이다. 역사관도 민족관도 국가관도 통합과는 거리가 먼 ‘국민충돌형’ 이념의 전사를 굳이 총리로 불러내 쓸 이유는 호무하다. 인재 풀이 협소하다는 얘기는 한갓 핑계에 불과하다. 미국 대통령 링컨의 ‘정적(政敵) 기용’ 교훈쯤은 누구나 다 아는 세상 아닌가. 인사권자 의지의 문제다. 인재를 낚는 배를 좁아 터진 저수지가 아니라 드넓은 난바다에 띄워라. 그래야 준척이든 월척이든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생명력이 충만한 물건을 건져 올릴 수 있다. 국민은 ‘그들만의 눈높이’ 인사에 염증을 느낀다. 국민통합을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어제도 오늘도 한결같다. jmkim@seoul.co.kr
  • 여왕의 작별 인사… 소치에 울린 ‘평화’

    여왕의 작별 인사… 소치에 울린 ‘평화’

    ‘피겨 여왕’은 작별 인사도 아름다웠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로 18년 선수 인생을 마무리한 김연아(24)가 올림픽 마지막 은반에서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23일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갈라쇼. 김연아는 갈라프로그램 ‘이매진’(Imagine)을 연기했다. 이매진은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이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곡으로, 시작 전부터 각종 테러 위협에 시달렸던 이번 대회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두 팔을 뻗어 회전하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모두가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라”는 가사가 흐를 때 깔끔한 더블 악셀과 ‘유나 스핀’을 선보였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라”는 구절에서 트리플 살코를 시도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1회전 처리했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없던 깜찍한 손짓과 표정을, 또한 절정부에서는 격렬한 팔동작을 보여줬다.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는 부분에서 스파이럴 연기를 보여 준 김연아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른다”는 후렴구에서 다시 더블 악셀 점프를 선보였다. 노래가 끝나자 크게 팔을 뻗어 가슴으로 끌어안아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동작으로 연기를 마무리했다. 매끄러우면서도 메시지 전달에 집중한 화합과 친선의 무대의 주인공다운 연기였다. 연기가 끝나고 큰 박수와 환호를 받은 김연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마지막 갈라쇼를 지켜봐 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물론 앞으로도 아이스쇼 등에서 연기는 하겠지만 선수로서 대회 일정을 마친 뒤 갖는 갈라 무대에 설 일은 없다. 김연아는 피날레 무대에서 평창대회 홍보 도우미 역할도 했다. 김연아가 화려한 기술을 선보인 뒤 갈라쇼 참가자들 사이에서 링크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췄고, 소치올림픽 로고 옆으로 평창올림픽의 로고가 선명히 드러났다. 관객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김연아는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소치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황정순 별세, 50년간 배우로 활동..향년 89세 ‘대표작품은?’

    황정순 별세, 50년간 배우로 활동..향년 89세 ‘대표작품은?’

    ‘황정순 별세’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어머니’ 황정순 씨가 별세했다. 향년 89세. 황정순 씨는 최근 요양병원에 머물다 폐렴이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17일 오후 9시45분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4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약 50년간 배우로 활동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산업화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인내와 자애를 바탕으로 포근한 어머니상을 연기했다.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인 1940년 동양극장에서 연극을 하다가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해방 이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에서 며느리 역할로 주목을 받았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어머니 역할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에서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했고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서는 가족을 따뜻하게 보듬는 새엄마 연기로 주목받았다. 유현목 감독의 ‘장마’(1979)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지닌 어머니로, 김수용 감독의 ‘굴비’(1963)에선 어렵게 키운 자식에게 홀대당하는 어머니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1967년부터 김희갑과 호흡을 맞춘 ‘팔도강산’ 시리즈도 수작으로 손꼽힌다. 고인은 생전 연극 200여편, 영화 430여편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김약국의 딸들’ ‘화산댁’ ‘내일의 팔도강산’ ‘육체의 고백’ 등이 있다. 역대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최다 수상자이자 제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고인은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황정순 별세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황정순 별세..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정순 별세..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다”, “황정순 별세..큰 별이 지다”, “황정순 별세..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정순 별세..한국 영화계의 어머니”등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1) 매생이 봄을 품다

    [김준의 바다 맛 기행] (1) 매생이 봄을 품다

    제철 해산물은 흔히 보약에 비유됩니다. 영양의 보고인 데다 입맛까지 돋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철 해산물만 잘 알아도 식탁은 한결 풍성하고 건강해질 겁니다.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자 해양학자인 김준(51) 박사가 제철 해산물에 담긴 이야기들과 음식궁합, 맛집 등에 대한 정보를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의 식탁으로 배달할 예정입니다. 섬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엿보고, 바다와 사람의 맛있는 만남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매생이는 남도의 후미진 선창에 자리를 잡는다. 술꾼들이 옴팡진 단골집에 똬리를 틀 듯 그렇게. 그러고서 북서풍 끝자락을 붙잡고 봄의 불씨를 지핀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더욱 잘 자라고 입에 척척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선창이나 기웃거리지 않는다. 외골수로 단골집만 찾듯 바닷물이 잘 통하고 유속이 느린 청정해역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바로 뜯은 생생한 이끼’가 아니던가. 동해안은 물론 서해안에서도 보기 힘들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전남 완도, 장흥, 고흥, 강진, 해남 일대의 연안에서 볼 수 있는 녹조식물문의 매생이과에 속하는 일년생 해조이다. 매생이 양식은 김 양식과 달리 큰 목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양식장의 관리부터 채취, 가공을 오롯이 인간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 몸에 좋다는 입소문에 냉장기술까지 발달해 비싸든 싸든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섬마을 노인들에게 이보다 효자가 없다. 손자보다 반가운 것이 겨울철 매생이다. 그런데 금년에 작황이 심상찮다. “뭔 일인지 모르겠어라. 양은 작년만 못한디. 값은 작년보다 떨어졌응께.” 완도군 고금면 넙도리에 사는 오보선(64)씨는 매생이를 뜯다 말고 이제 대책을 세울 때가 됐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후 변화와 연안 오염으로 매생이도 ‘안녕’하지 않을 날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생이는 김이나 미역처럼 인간의 힘으로 포자(씨앗)를 붙일 수 없다. 하지만 매생이가 머물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녀석들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심을 부리는 것은 어민이고 매생이를 탐하는 인간들이다. ‘자산어보’는 매생이를 매산태(?山苔), ‘신동국여지승람’은 매산(?山)이라 했다. 손암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통해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었다. 그런데 유배지 흑산에 남도의 선창처럼 옴팡진 바다가 있었을까. 몇 자(1자 30.3㎝)에 이른다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해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손암의 정배지였던 흑산도나 우이도에서 매생이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전라도 남쪽 어민들의 겨울 밥상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매생이가 ‘국민음식’으로 자리한 이유가 뭘까. 매생이는 패스트 푸드와 달리 칼로리는 낮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철분, 칼슘, 칼륨, 엽산, 요오드 등 각종 무기염류와 비타민 A, 비타민 C 등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 풍부하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좋다. 또 피부를 맑게 하고 위나 장의 점막을 강화하기 때문에 여성과 노인에게도 좋다. 결국 가족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식품이라는 결론이다. 매생이가 서울 사람들 밥상에 오르기 전 한정식집에 먼저 소개됐다는 것이 호사가들의 이야기다. 당시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입맛 하면 또 ‘공무원 입맛’이 최고 아닌가. 낯선 곳에서 끼니를 해결할 곳을 찾지 못할 때 관공서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어디에 그런 맛과 멋이 숨어 있었을까. 후루룩, 후루룩. 양반이든 상놈이든 그릇에 코를 박고 먹어야 한다. 젓가락질은 사양하고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담아야 한다. 코가 석 자라도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 맛있게 먹기 어렵다. 입안에서 느끼는 뜨겁고 물컹한 것이 오장육부를 감싸며 몸을 덥힌다. 엄동설한에 바다를 품듯 말이다. 매생이는 국이라 하지 않고 ‘탕’(湯)이라 부른다. 국의 높임말이다. 음식에도 격이 있다. 홍어도 ‘홍어탕’이라고 하듯이. 매생이를 한주먹 쥐고 곱게 빗어 넘기며 ‘재기’(덩이)를 만들던 한 아낙이 “매생이 박사가 뭔 김을 이렇게 붙여 놨당가”라며 오씨를 쳐다봤다. 옆에서 매생이를 씻던 다른 아낙이 “박사니까 그 정도지 다른 집은 김도 매생이도 없당께”라며 말을 받았다. 오씨는 말이 없다. 약산도, 고금도 일대의 옛날 지주식 김양식장은 모두 매생이밭으로 바뀌었다. 특히 오씨가 사는 작은 섬마을은 매생이 덕에 유명해진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그를 ‘매생이 박사’라고 부른다. 그는 객선도 닿지 않는 열댓 가구 사는 작은 섬마을을 매생이 하나로 완도군에서 최고 소득을 올리는 섬으로 바꾸었다. 김양식을 할 때는 매생이가 ‘웬수’였다. 이제 매생이가 주인공이니 김이 ‘웬수’다. 오전 내내 뱃전에 가슴을 붙이고 뜯어온 매생이가 예년 같지 않고 김이 많이 섞였다. 양식시설이 물에 잠기는 정도에 따라 김, 매생이, 파래 등이 각각 붙는다. 사실 김이 약간 섞인 매생이가 맛이 있다. 하지만 도회지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어민들이 김발에 약을 쳐서 매생이를 제거하고 시꺼멓고 깨끗한 김을 만들어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젠 반대로 김이 전혀 섞이지 않는 매생이를 원한다. 가슴을 뱃전에 붙이고 엎드려서 바다에 펼쳐진 발을 들어 올려 한 올 한 올 훑어서 채취하는 것이 매생이다. 어민들 가슴에 멍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가슴 아프게 번 돈이 있을까. 일이 끝나면 아무리 추워도 등에 김이 모락모락, 얼굴에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손이 시리고 발은 저린다. 밥상 위 매생이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고충을 알까. 그런데 사람보다 먼저 매생이를 탐하는 놈들이 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매생이를 사람만 탐하라는 법이 있던가. 오리들이 나누어 먹자고 야단이다. 이들의 먹성을 볼라치면 장난이 아니다. 혼자 독식하겠다고 나온다. 급기야 어민들이 총을 들고 나섰다. 오리와 전쟁이다. 탕! 탕! 탕! 상인에게 넘겨줄 재기를 만드는 내내 총소리가 울렸다. 글 사진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요리 매생이를 흐르는 물에 잘 흔들어 바구니에 건져 낸다. 굴은 소금을 살짝 뿌려 찬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냄비나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굴이 익어 갈 때까지 볶는다. 이때 대파 흰 부분을 다져서 넣는다. 물을 약간 넣고 굴을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매생이와 국간장을 약간 넣고 한소끔 다시 끓인다. 매생이탕의 핵심은 ‘덕음’이다. 소금으로 나머지 간을 하고 한 번 더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면 특유의 향이 없어지고 물처럼 녹아 없어지므로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비릿함을 싫어한다면 굴 대신 소고기를 넣기도 한다. 소고기는 넣기 전에 미리 볶아야 한다. 명절에 먹고 남은 떡을 썰어 넣으면 매생이 떡국이 된다. 남녘에서는 매생이탕을 걸쭉하게 끓인다. 매생이영양죽은 쌀죽을 끓이다 마지막에 매생이를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물이나 육수는 적게 잡아서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노인들에게는 골다공증 예방에 좋은 매생이영양죽과 혈압 안정에 좋은 매생이전이 좋다. 아이에게는 매생이 수제비, 매생이칼국수가 인기다. 이외에도 매생이김치, 매생이무침 등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매생이 파스타, 매생이 피자도 등장했다. 남쪽 5일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먹어본 사람이 찾던 매생이는 이제 겨울철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으로 식탁에 자리하고 있다. →음식궁합 1. 매생이탕을 끓일 때 다시마로 국물을 내면 좋다. 2.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해역의 매생이와 피부에 좋은 바다의 우유 굴은 환상콤비다. →매생이 선별요령 매생이는 파란색보다는 검푸른 색깔이 나는 것이 좋으며 들어 올렸을 때 끊어지지 않고 길게 매달리는 것이 좋다. →맛집 해태식당(061-43402486) 강진군 강진읍 평화식당(061-867-1090) 장흥군 대덕읍 동산회관(061-532-3004) 해남 송지면 정애네집(062-234-4398) 광주광역시 충장로
  • 中정부 “막장 범죄 엄벌” 네티즌 “정부가 더 막장”

    중국에서 연일 ‘묻지마’식 테러 범죄가 이어지면서 당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네티즌들 사이에는 법치와 공평 부재가 사태를 키우는 근본 원인이라며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공안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폭력 테러를 비롯해 개인의 극단적인 폭력 범죄, 총기·화약류 형사 사건을 극악 범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처하기로 했다고 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포털 인민망이 26일 보도했다. 공안부 황밍(黃明) 부부장(차관급)은 25일 전국 공안기관 회의에서 폭파·협박 행위는 물론 허위 테러 소식 유포자도 엄벌해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 같은 사정당국의 강력한 지시가 나온 것은 개인의 테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건의 가해자들이 나름대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지난 20일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서 사제 폭발물을 터뜨려 왼쪽 팔이 절단된 장애인 지쭝싱(冀中星)은 오토바이 택시기사로 일하다가 2005년 치안관리원들에게 쇠파이프로 가격을 당해 반신불수 장애인이 됐다. 이번 폭발물 사건을 계기로 보상을 받기 위해 투쟁해 오던 그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관련 당국을 향한 네티즌과 언론의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베이징 광밍러우(光明樓)에서 발생한 빵집 폭파 사건도 단순 사고로 발표된 것을 두고 네티즌 사이에는 억울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1주일간 하루가 멀다 하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칼부림 사건들이 이어진 데 대해 당국이 범인들의 정신병력을 사건 발생 원인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베이징이공대 법학과 쉬신(徐昕) 교수는 “중국에서는 힘없는 사람이 억울한 사건을 당해도 법원의 중재 등을 통해 보상받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서 “당국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법치가 실현되는 사회 안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임진왜란뒤 유성룡의 애끓는 심정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쓰다

    임진왜란뒤 유성룡의 애끓는 심정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쓰다

    징비(懲毖)록. 서애 유성룡(1542~1607)이 남긴 임진왜란 기록이다. 선조의 피란, 명과의 교섭,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등에 깊숙이 개입했던 서애였기에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서책으로서는 드물게 국보 132호로 지정됐다. ‘징비록1·2·3’(김기택 옮김, 이부록 그림, 알마 펴냄)은 그 징비록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쓴 책이다. 단순히 옮긴 정도가 아니다. 김기택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지훈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시인이다. 번역문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다듬었을 뿐 아니라, 각 장 뒤에 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붙여넣어 ‘다듬어 쓴 이의 말’로 정리했다. 문인이라 아무래도 전쟁 장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사 연구자인 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 선임연구원의 글까지 가져다 붙였다. 또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인 이부록은 임진왜란 관련 각종 자료를 섭렵한 뒤 상황에 걸맞은 그림들을 그려넣었다.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의미다. 징비록의 가치는 책 제목인 징비, 그 자체다. 벌함으로써(懲) 후세가 삼가토록(毖) 하기 위한 기록이다. 전쟁 뒤 폐허가 된 나라를 보며 서애가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봐야 하는 건 위대한 의병, 위대한 이순신, 위대한 권율, 위대한 거북선 따위가 아니다. 가령, 선조는 전쟁이 터지자 울부짖는 백성들에게 “왕실과 나라가 이곳에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 해놓고는 몰래 도망간다. 거기다 아예 명나라 망명, 아니 망명을 넘어 귀화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운다. 명나라 조정은 너무 많이 오면 부담스러우니 딱 100명만 받겠다고 답할 정도였다. 그처럼 거들먹거리던 양반들이 이러는 판국이니, 백성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선조가 서울에서 도망가자 백성들은 형조에 있던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개성에서는 임금이 탄 가마에 돌멩이가 날아들었고, 함흥 가는 길에서는 백성들이 중전이 타고 가던 말을 때리는 등 폭동 일보 직전까지 갔다. 백성들은 왜군에 투항하고 그들의 앞잡이가 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선을 버티게 해준 것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선 의병들이었는데, 조정은 그마저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간 온갖 잘난 척 다해왔는데 정작 나라는 이름 없는 선비와 백성이 지켜냈다면, 낯이 서질 않는다. 기득권까지 놓칠 판이다. 그러니 전쟁에서 이긴 건 무조건 명나라 덕분이라 해야 한다. 그게 양반 사대부들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 주야장천 떠들어댈,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의 큰 은혜 ‘재조지은’의 실체다. 우리의 근현대 풍경이 슬쩍 비춰지는데, 징비의 뜻을 오늘날 우리가 잘 살피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1권 1만 1500원, 2·3권 1만 35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1960∼70년대 기타 하나 들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신중현(75). 그에겐 ‘록의 대부’며 ‘록의 비조’ ‘6현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은 역사의 기억 너머로 묻혀졌던 그의 묵은 음악을 다시 꺼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현을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당대의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고 배출한 불세출의 명인이지만 정작 그의 삶은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그 질곡의 길을 걷게 한 단초는 배고픔과 외로움이라고 신중현은 말한다. 하지만 그의 삶과 분신인 음악에 담긴 메시지는 한 가지, ‘새로운 것들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 그래서일까, 한국 가요계의 이단아이자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2006년 은퇴를 앞두고 내놓은 자서전 제목도 이렇게 썼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06년 7월 신중현이 전격 은퇴 선언을 한 뒤 마지막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할 무렵,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록의 대부’라는 제목으로 신중현의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양지면의 거처에서 만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기억하느냐’는 첫 질문에 신중현은 “나도 의외였다”고 했다. 유난히 작은 키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이 겹쳤다. 신장이 얼마나 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한 번도 재 본 적이 없어 모른다”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 “돌이켜 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꼭 곡예 같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움직이는 꼴이라고 할까.” 용인 거처는 은퇴와 함께 1986년부터 20여년간 음악 활동의 아지트로 썼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우드스탁’ 생활을 마감하고 2007년 새로 튼 보금자리. 거처 겸 연습실, 작은 공연장을 갖춘 공간이다. 지금도 대패며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을 다듬고 만들고 있다. 혼자 작업실을 꾸미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린 시절 그 험한 고생을 했는데 이까짓 거야”라며 초년 시절로 이야기를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주에서 이용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6·25전쟁 통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충북 진천으로 옮겨 어렵게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사별한 고아. 동생을 친척 집에 맡기고 상경해 제약회사를 하는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서러웠어요. 판자 쪼가리에 군용 전화선을 매어 만든 기타를 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장 일을 해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서 혼자 연습하다가 고교 2학년 때 집을 뛰쳐나와 서울 종로 바닥을 전전했다. 당시 종로엔 ‘기타 잘 치는 신중현’이란 명망이 파다했고 미8군 무용수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플로어쇼에 데뷔한 게 음악 인생의 시작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보수도 당시로선 큰돈이었고 미군부대 공연 때마다 최상급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재키’ ‘히키’ ‘스코시’라는 별명이 미군들 사이에 퍼졌고 공연이 끝나면 악수를 청하는 미군들이 줄을 섰다. 미군 정보부 요원들이 출입하는 용산역 건너편 ‘시빌리언 클럽’에서 1960년 가졌던 첫 기타 독주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주가 끝난 뒤 떨려서 인사도 못 하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보니 미군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미8군 스타 생활을 5년 정도 했을까. 베트남전이 터지고 주한 미군이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부대 쇼도 시들해졌다. 미8군 생활을 접은 건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을 하면서 늘 외국곡을 그대로 따라 연주하고 부르는 데 회의가 들곤 했지요.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 가던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남진, 나훈아로 대변되는 트로트의 세상. ‘한국 가요계를 바꿔보자’며 국내 가요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중들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천착했던 로큰롤이며 사이키델릭 록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다. “우리 가요계의 수준이 서방세계의 음악과 너무 차이 났어요. 당시 미군부대 공연 때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미군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훌륭한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화적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걸까.’ 그 창피함과 문제의식은 이후 한국적 특성을 살린 록으로 뻗친다. 한국 최초의 록 밴드 ‘애드4’(Add4)를 시작으로 그룹 ‘조커스’ ‘던키스’ ‘퀘스천스’ ‘더 맨’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을 구가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룹 활동을 하면서 발굴해 낸 스타들은 숱했고 음반사와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빗속의 여인’이며 ‘커피 한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그리고 그 노래들을 부른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미화, 장현, 박인수…. 인생의 굴곡은 사이클을 이룬다고 했던가. 전국에 ‘신중현표’ 음악이 깔리고 입을 통해 번져 갈 무렵, 그는 군사정권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괘씸죄’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다.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던 게 미운털이 됐던 것 같아요.” 죄목은 ‘대마초 공급책’이다. “미군부대 공연장엔 당시 월남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많이 모였어요. 대마초며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즐겼던 그들은 우리 집에도 드나들었고 집에 그런 환각제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모진 고문과 심문 끝에 정신병원과 교도소 신세를 졌고 그가 만든 100여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그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1987년에야 그의 곡들이 해금됐지만 ‘대마초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기만 한 생트집이다. “따져 보면 저를 지옥으로 몰아간 이벤트지요.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어요.” 이후 소공연을 하면서 기타 산조 ‘무위자연’이며 ‘김삿갓’ 같은 한국적인 곡들을 발표했지만 회생 기미가 없었다. 마침내 2006년 은퇴선언을 하고 용인에서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건 2009년 미국 기타 전문 회사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수여받은 일이다.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에디 반 헤일런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만 받았다는 그 기타다. 세계에선 여섯 번째, 아시아에선 처음이라는 펜더 기타 헌정. “마치 신의 선물 같았어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계시라고나 할까.” 그는 ‘신의 부름’이라는 그 사건 이후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무엇보다 록 음악이 태동된 본향으로부터 이어진 그에 대한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은 2011년 사이키델릭 록 모음집과 그가 제작한 김정미의 ‘나우’를 발매한 데 이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CD로 제작해 현지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엔 미국 음반사의 초청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대에도 섰다. 오는 10월 그 음반사의 초청으로 같은 장소에서 재공연도 예정돼 있다. 칩거에 들었던 황혼의 음악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좀처럼 뒤돌아볼 줄 모르는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은 먼저 치열한 수양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지요.” 실제로 신중현이 ‘6현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탕엔 뼈를 깎는 수행과 노력이 있다. 미8군 데뷔 전 기타 교습서며 주한 미군방송 AFKN을 통해 접한 곡들을 손이 갈라지도록 연습했다. 1960년대 초반엔 해군 군악대장을 지낸 이교숙 선생을 사사하며 화성법을 배웠고 그 덕에 작곡에 천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약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 중 세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3·3주법’이며 5음계를 적용한 화성법이나 곡 편성도 전 세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철학은 또 무엇일까. 놀랍게도 노자와 장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두 살 연하인 부인 명정강씨가 가져다준 노자와 장자 책은 그의 음악과 인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낮은 자세로 살다 보면 다칠 게 없어요. 책을 보면서 마음을 비울 때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도 낮은 데로 묵묵히 흐르는 물을 이길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에게 낮음의 철학을 깨우치게 한 책들을 소개한 부인은 미8군 시절 만난 여성 그룹 드러머 출신.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큰아들 대철, 기타와 키보드에 모두 능한 둘째 아들 윤철, 드럼 스틱을 잡은 셋째 석철은 모두 아버지 신중현의 길을 따르고 있는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다. 4부자는 지난해 12월 함께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대견합니다.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걱정스러우면서도 흐뭇하지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실력자라는 세 아들을 포함해 가족들에겐 못난 가장이자 아버지였다고 말하는 신중현. “지금은 떨어져 사는 부인과의 사실상 별리도 음악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그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었으면서도 드러난 스캔들 한 번 없었다는 그의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그가 남은 생애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평생을 받쳐 천착했던 한국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입에 올린다. 각설이 타령조를 록에 얹은 ‘미인’과 국악풍의 전설 같은 노래.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들고 세상을 향해 외쳤지만 번번이 외면받았던 노래들을 요즘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다시 찾아 불러 신이 난단다. 요즘은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작은 공연을 생중계할 수 있는 공연장 만들기도 한창이다. 6가닥의 기타 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노장의 버팀목은 철석같은 의지일 것이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6년 만에 돌아온 움베르토 에코, 19세기 유럽의 증오·음모 겨누다

    6년 만에 돌아온 움베르토 에코, 19세기 유럽의 증오·음모 겨누다

    “유대인은 에스파냐 사람처럼 허영심이 강하고, 크로아티아 사람처럼 무지하며, 근동 사람처럼 탐욕스럽고, 몰타 사람처럼 배은망덕하며, 집시처럼 뻔뻔하고, 영국인처럼 더러우며, 칼미크 사람처럼 기름기가 많고, 프로이센 사람처럼 오만하며, 피에몬테 지방의 아스티 사람처럼 험담을 잘할 뿐만 아니라 발정을 억누르지 못해 간통을 쉽게 저지른다.”(1권 17쪽) 6년 만에 접하는 움베르토 에코(81)의 신작 소설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 펴냄·2권)는 첫 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19세기 유럽에 팽배했던 인종, 종교, 여자에 대한 편견들이 뒤섞여 역겨움을 한껏 자아내더니 어느새 예리한 칼날이 유대인을 겨누고 있다. 작가는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증오와 음모가 어떻게 발생해 번져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에코의 표현처럼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론의 ‘비조’(鼻祖)격에 해당한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시모니니는 무신앙과 냉소주의를 몸에 익혔고 사르데냐, 프랑스, 프로이센 등을 오가며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한다. 그가 내놓은 일생 최악의 위작은 바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란 허위 문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조세프 발사모’의 천둥산 회의 장면은 유대인 랍비들의 프라하 묘지 회의 장면으로 바뀌고, 외젠 쉬의 ‘민중의 신비’에 나오는 예수회 신부의 글은 랍비의 연설문이 된다. 실존했던 이 문서는 1921년 허위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문서는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 음모’를 퍼뜨리는 데 기여하며 20세기 유대인 학살의 단초가 됐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에코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은 속임수에 바탕을 둔 전쟁이었고 CIA조차 이를 인정했다. 사담 후세인이 평생에 걸쳐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된 그 짓만은 하지 않았다. 하나의 거짓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에코는 2010년 이 소설을 고국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했다. 이탈리아에선 65만부, 스페인에선 초판만 200만부가 팔렸다. 에코는 출간 전 번역자들에게 19세기 문체를 과장되지 않게 재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910년대 신문에 연재되던 번안 소설의 문체가 활용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개들의 전쟁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개들의 전쟁

    한때 조폭장르로 분류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조폭장르는 난데없이 출몰해 짧은 전성기를 누리다 순식간에 멸종하고 말았다. 이름처럼 형편없는 족보를 지닌 장르에게 주어진 당연한 운명이었다. 주먹과 의리로 먹고 사는 사나이들의 진한 세계를 그린 1960~70년대 액션영화의 후예처럼 보이지만, 조폭장르의 특징은 인물을 희화하고 천박한 문화를 반영한 데 있다. 당시 등장했던 조폭장르 영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은 조범구다. 엄격히 따져 조폭장르의 변주에 해당하는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은 쓸모없는 남자들의 쓰라린 정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싸구려 웃음을 위해 몸을 팔기보다 건달의 본모습에 충실하기를 원했던 두 영화는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잊혀졌다. 조폭장르의 규칙을 위반한 대가는 썼다. 조병옥의 ‘개들의 전쟁’은 조범구의 시도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뚝방전설’이 중심에 진출했다가 변두리의 본거지로 돌아온 건달의 이야기였다면, ‘개들의 전쟁’은 돌아온 악당에 맞서 본거지를 사수하려는 건달들의 이야기다. 소도시의 변두리 혹은 시골마을로 보이는 공간. 상근과 패거리는 그곳을 휘젓고 다닌다. 일거리라고 해봐야 동네 사람 사이의 채무관계를 정리해주고 품삯을 떼는 정도가 전부인 유치한 삶. 왕년의 형님인 세일이 돌아오면서 상근 패거리의 시대는 위기를 맞는다. 세일에게 매를 맞던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악몽을 떨치고 새 바람의 맛을 보여줄 것인가. 유쾌한 대장 상근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개들의 전쟁’은 가난한 영화다. 볼거리 없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을 맡은 김무열 외에 눈에 익은 배우라곤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조병옥은 과욕을 버리고 성실한 이야기와 현실감 넘치는 연출로 임했다. 어이없는 거창한 아이디어 대신 시골 건달들에 관한 설득력 있는 접근이 ‘개들의 전쟁’의 힘이다. 상근과 세일은 다방 앞 주차 공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유머와 스릴이 풍부하게 쓰인 이 장면은 세력 간 대결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다방 옥상에서 벌어지는 매질이란 설정도 좋다. 세일은 상근 패거리를 한 명씩 불러내 매질하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그들이 맞고 때리는 광경을 바라본다. 패거리 안의 심각한 상황과 반대로 사람들은 그것을 심심한 구경거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기를 쓰고 싸우는 건달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프다. 조폭장르의 주인공인 깡패는 대중영화의 주인공으로 삼기에 모순적인 존재다. 깡패는 사회악이기에 죽거나 사라져야 하고, 그들이 벌이는 사업은 부정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깡패를 다루는 대중영화가 인물에게 그런 운명을 부여할 수는 없다. 깡패들은 대개 두루뭉술한 결말 앞에서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다였다. ‘개들의 전쟁’의 상근 패거리는 깡패라기보다 잠시 한량으로 지내는 악동에 가깝다. 폭력으로 억압하던 앞 세대에 저항하고 짧은 청춘을 즐겁게 보내는 것 외에 따로 바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세일 같은 깡패의 삶과 별 앙금 없이 단절하는 게 가능하다. 클라이맥스의 손가락 절단은 주제의 함축적 표현이며, 그 결과 변두리 아이들의 순수성은 보호받는다. 그들은 웃기는 존재가 아닌 존중받는 인물로 남는다. 조폭장르 특유의 지저분한 결말 따위는 여기 없다. ‘개들의 전쟁’의 결말은 여름비처럼 개운하다. 영화평론가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1910년 9월 8일 밤, 시문(詩文)으로 인근에 조금 알려진 한 시골 선비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그 평생의 마지막 시가 될 글을 써 내려갔다. “추등엄권회천고(秋燈掩卷懷千古)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 (가을밤 등잔 밑에서 책 덮고 옛일을 되돌아보니, 사람 세상에서 글 아는 이 노릇하기 어렵구나) 시 넉 수를 다 쓴 그는 다시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쓴 후 소주에 아편을 타 마시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열흘 뒤의 일이었다. ●지조 굽히라는 세상에 날 세운 ‘황현’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855년 전라남도 광양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는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천품(天品)을 타고 났으나, 재주와 뜻을 펼치기에는 출생시대, 출생지, 가문 중 어느 하나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러 대에 걸쳐 서울에서 벼슬을 한 ‘경화사족’(京華士族) 출신이 아니고서는 과거에 합격하기 어렵고, 설령 어렵사리 합격한다 해도 고위직에 오를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된 시대가 이미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꿈이 없었겠는가마는 세상은 그에게 꿈을 접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현실을 확연히 깨달은 것은 나이 30이 넘어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였다. 1888년 성균관 생원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그는 말로만 듣던 과거(科擧) 부정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보고 느꼈다. 세도가 자제들이 글 써주는 사람과 글씨 써주는 사람을 다 따로 고용하여 대리시험을 치는 관행은 더 이상 비난거리도 아니었다. 돈과 연줄 없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과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는 자식들도 자기와 같은 출발점에 세우겠다는 절망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강위, 김택영, 이건창 등 마음이 통하는 명사(名士)들을 사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만 위안으로 삼고 낙향했다. 서울에 올라오기 얼마 전에 구례로 집을 옮겼던 그는, 그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짓는 한편 자기가 보고 들은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세상, 선비에게 지조를 기르라고 당부하는 대신 지조를 굽히라고 요구하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었다. 대원군도, 왕후와 그 친척들도, 왕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혼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더러우면 발을 씻을 것’이라는 옛 어부의 말대로 처신했다. 그의 귀에는 전기나 기차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관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들이 세상을 맑게 바꿔주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생애 두 번째 ‘선택’을 했다. 그를 버렸던 나라이자 그가 경멸하고 증오했던 더러운 자들이 지배한 나라였지만, 그는 이 뒤에 그를 기다릴 세상은 더 더러운 세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 “나라가 망했으나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원통치 않겠는가?”라고 썼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나라를 위해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자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에 앞장서는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계속 위세를 부릴 세상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시구는 “증무지하반연공(曾無支廈半椽功) 지시성인불시충(只是成仁不是忠)”(일찍이 나라를 위한 공이 없었으니, 내 죽음은 다만 인(仁)을 이루고자 함일 뿐 충(忠)은 아니로다)이었다. ●日·러·美 연줄 없던 이완용 처세로 부귀 누려 황현이 목숨을 끊던 바로 그 무렵,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은 일왕에게서 백작의 작위와 15만원의 은사금(恩賜金)을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과 친인척 관계가 없는 인물로서는 가장 높은 작위였다. 그는 며칠 전까지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으나 어차피 허울뿐인 자리였다. 그에겐 남은 생애를 부귀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이완용은 황현보다 3년 늦게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었으나 가문은 황현 집안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 그 역시 어려서 남달리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집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의 일생도 황현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1세 때, 그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집안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먼 친척 아저씨인 이호준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양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서형(庶兄)인 이윤용(李允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82년, 당시 이조판서이던 양부 덕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규장각 대교, 홍문관 수찬, 세자시강원 사서 등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886년 신설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입학했다. ‘나라에서 영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육영공원은 미국인 교사가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는 신식 학교였다. 때는 갑신정변 2년 뒤였고, 조야(朝野)에 개화파에 대한 적개심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모험일 수도 있는 육영공원 입학을 ‘선택’했다. 양부가 비록 고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문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다른 것으로 만회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왕의 뜻이 있는 곳, 왕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그의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덕에, 그는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과 주미 공사 대리로 두 차례나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고, 국내 정치에서 계속 영향력을 키우던 미국인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1890년 귀국 후 관계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1894년 모친상을 당했다. 일본군을 배경으로 수립된 개화파 내각은 그에게 입각(入閣)을 제의했으나, 그는 모친상을 핑계로 일단 거절했다. 이듬해 학부대신으로 내각에 들어갔지만 을미사변(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실각했다. 친일 내각의 적으로 지목되어 미국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그는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숨을 건 정치적 도박에 가담했다. 왕을 미국공사관으로 옮기려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으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려 한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서리 등을 지내면서 한때 독립협회 회장도 맡았다. 독립협회는 애초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세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과 만백성에게 알릴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을 넘어 내심으로 ‘군민동치’(君民同治)와 ‘입헌정체’까지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독립협회를 떠났다. 러시아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국왕은 일본을 견제하려고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러시아는 이 기회에 한국을 자기 세력권 안에 넣으려 했다. 미국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교육, 군사, 경제 각 부문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그는 러시아의 침탈에 반발했으며, 러시아 공사는 그를 증오했다. 고종은 그를 전라도관찰사로 좌천시켜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나, 그 자리조차 오래 지킬 수 없었다. 1901년 양부 이호준이 죽자, 그를 핑계로 낙향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4년 초,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고종은 그를 다시 궁내부 특진관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이완용은 또 한 차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도, 러시아도 그의 배경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배경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일본 편이었고,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미국의 선택을 따랐다. 주지하듯이, 을사늑약 이후의 그는 ‘친일 매국노’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그 자격으로 한일병합 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일제 강점기 공중변소들에는 흔히 ‘이박식당’(李朴食堂)이라는 낙서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이완용과 박제순이 밥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들을 똥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완용 자신은 자기가 시세의 흐름을 잘 살펴 처신한 덕에 계속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한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사실 그는 그 험악한 정변의 시대를 귀양살이 한 번 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이재명의 칼에 맞은 자리가 쑤시고 아플 때마다, 자신이 동포들의 저주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스펙·연줄·기회 강조 現사회, 제2이완용 키우나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몇 권 집어들어 훑어 보았다. 스펙을 쌓아라, 인맥을 다져라, 시세의 흐름을 살펴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등. 다들 이완용처럼 살라고 가르친다. 지조를 지켜라, 기개를 길러라 따위를 가르치는 책은 없다. 누구나 이완용을 욕하면서도 다들 이완용을 본받으려 드는 시대다. 물론 10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나 이완용처럼 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가, 모두에게 계속 안전할 수 있을까? 전우용(역사학자)
  • 충무로, 사회로 뛰어들다

    충무로, 사회로 뛰어들다

    ‘영화의 중심에서 세상을 외치다!’ 한국 영화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흥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정치·사회적 소재의 영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사회참여형 영화들은 내용이 무겁고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엔 영화적인 의미는 물론 대중적인 흥행에도 성공을 거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신문 사회면이 스크린 속으로 광주인화학교 성폭행 사건(‘도가니’),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완득이’), 석궁 테러 사건(‘부러진 화살’) 등 신문 사회면에서나 볼 만한 사건들이 연일 영화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4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도 노태우 정권때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기 전까지 이권을 둘러싼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던 1980년대의 시대상을 풍자하고 있다. 이들 영화에 비해 사회성은 짙지 않지만, ‘댄싱퀸’ 역시 서울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현실 정치를 풍자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영화계는 이 같은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념적인 성향을 드러내거나 예술적인 면에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사회에 대한 오랜 불만 표출하기도 영화 평론가 전찬일씨는 “‘도가니’가 흥행했던 2011년을 기점으로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처럼 부담스러우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전 평론가는 “요즘 시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의 독점이 줄어들어 점차 비밀이 없어지는 시대이며, 특권층과 일반인들사이의 정보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관객들도 정치·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고, 영화도 일방적인 편들기나 종래의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을 벗어나면서 정치·사회적 영화들이 각광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영화들을 통해 사회에 쌓인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영화홍보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이러한 영화들은 선과 악의 구조가 분명하고, 주인공이 개인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러한 영화들의 흥행을 보면서 그동안 사회에 쌓인 불만들이 표출되거나 혹은 관객들이 그러한 탈출구를 찾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사 숲의 조옥경 대표도 “사회참여형 영화의 흥행은 최근 ‘나는 꼼수다’나 정봉주 사건 등 대중적으로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 리얼리티 선호하는 관객 입맛에도 맞아 영화적으로는 리얼리티(사실성)를 강조한 소재주의에서 흥행 요인을 찾기도 한다. 길영민 JK필름 대표는 “관객들은 한국 영화의 경우에 리얼리티가 살아 있고 현재의 이슈들과 맞닿아 있는 소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더 드라마틱하다는 인식때문에 실화에 기반을 두고 리얼리티를 강조한 사회참여형 영화들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소 어렵고 딱딱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영화적인 접근법이 과거에 비해 세련돼졌고 관객들의 수준도 성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기존의 정치·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거칠고 혁명적인 어법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감성적이고 세련된 접근 방식으로 바뀌었고 영화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면서 “천편일률적인 조폭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벗어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민감한 소재를 차용함으로써 다양화에 기여하고,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나 예술 영화의 흥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의 영화를 보는 시각도 훨씬 깊어지고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연배우 안성기는 “아무리 민감한 이슈를 다뤘다고 하더라도 영화적인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다면 주목받을 수 없다.”면서 “‘부러진 화살’은 규모는 작지만 연출과 촬영, 편집, 연기 등 영화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지나친 상업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한국 영화가 사회와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영화적인 기능을 회복했다는 시각도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주연 최민식은 “영화라는 영상 콘텐츠는 오락적·예술적 기능도 있지만, 사회적인 기능도 중요하다.”면서 “이처럼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이 나오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화·다원화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점에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어지러우면 빈혈?… NO ~ 뇌신경계 질환입니다

    어지러우면 빈혈?… NO ~ 뇌신경계 질환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지럼증을 느끼면 “빈혈인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대뜸 철분제 등 영양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어지럼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 대부분이 “빈혈약을 먹는데도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는다.”거나 “보약까지 먹는데 어지럼증은 더 심해진다.”고 말하곤 한다. 전문의들은 “이런 섣부른 생각 때문에 병을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빈혈이 전부는 아니다 물론 빈혈 때문에 어지럼증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실제 빈혈이 어지러움을 유발하려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 수준인 12∼16㎎/㎗보다 훨씬 낮은 7㎎/㎗ 정도일 때 생긴다. 이는 급성 출혈이나 중증 질환이 있을 때 보이는 수치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대부분의 어지럼증은 빈혈과 무관하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어지럼증을 빈혈이나 영양 부족과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회적 체험 때문이다. 굶주리거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영양실조로 인한 현기증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지럼증은 왜 생길까. 사실 어지럼증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과음·스트레스·과로 또는 뇌혈관이나 전정신경계의 문제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전문의들은 “어지럼증은 중요한 인체의 이상 신호”라며 “따라서 증세를 정확히 파악,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어지러울까 흔히 ‘어지럽다’ ‘현기증이 난다’ ‘핑∼ 돈다’ ‘어찔어찔하다’ 등으로 표현되는 증상은 모두 인체의 균형감각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다. 인체의 균형은 귓속의 전정기관이 담당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정기관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기관과 뇌신경·근육·말초신경·골격계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실제로 인체는 눈을 통해 주변의 상황과 거리·장애물 등을, 근육·피부·관절의 신경을 통해 신체의 대응과 관련된 정보를 받아들인다. 또 귓속 측두골에 있는 전정기관은 머리의 움직임과 중력 정보를 수용한다. 이런 정보들이 뇌로 전달돼 기존의 기억정보와 함께 통합적으로 분석되고, 척수와 운동신경을 통해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을 조절해 균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여기에 관여하는 일부 기관이라도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어지럼증이 나타나고, 동작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어지럽다면 원인부터 일반인들은 구분이 어렵지만 어지럼증이 생기는 원인은 무척 다양하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또는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나면 검진을 통해 정확한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최근에는 어지럼증을 전문적으로 진단·치료하는 센터나 클리닉이 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영상안진검사(VNG)나 동적자세검사기(CDP) 등을 이용해 비교적 간단하게 어지럼증의 원인과 균형감각의 문제를 분석·진단할 수 있다. 또 만성적인 어지럼증 환자들을 위한 ‘균형감각재활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환자 개인별로 어지럼증의 원인인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훈련시켜 중추신경의 통합기능을 강화하는 치료법으로, 미국 등 해외에서는 활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세란병원 뇌신경센터&어지럼증클리닉 박지현 부장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어지럼증을 겪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단은 기피하고 있다.”면서 “ 어지럼증은 뇌신경계와 관련된 질환인 만큼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세란병원 뇌신경센터&어지럼증클리닉 박지현 부장
  • 46 g 골프공 ‘코어 전쟁’

    46 g 골프공 ‘코어 전쟁’

    무게 46g, 지름 43㎜. 밤알 만한 골프공을 놓고 지금 업계에선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골프공 시장이 커지면서 항공우주산업에서나 쓰일 법한 최첨단 소재와 공법이 도입된 신제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올해의 트렌드는 골프공의 알맹이인 ‘코어’의 변화다. 요 몇 년새 골프공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필드 인구 증가에 활발한 해외 여행 덕이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을 수입 판매하는 아쿠쉬네트코리아 김영국 사장은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라운드 횟수가 2700만여건을 기록하는 등 골프공 시장이 해마다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국내 골프용품(의류 제외) 시장 규모는 5000억~8000억원. 그 중 골프공은 1500억원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마추어들도 프로급인 3·4피스를 즐겨 쓴다. 코어와 커버(껍데기)만 있는 2피스는 초·중등자용이다. 코어와 커버 사이에 맨틀(중간 레이어)이 있는 3피스, 맨틀이 두겹인 4피스는 회전력(스핀)이 좋고 공이 예민해 프로선수들이 애용한다. 가격이 한 세트 3개의 경우 3만~4만원 더 비싸다. 세계적 골프용품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체들은 매년 제품을 업그레이드해 내놓는다. 한동안 공기 저항을 줄여준다는 골프공 딤플(홈)을 놓고 경쟁이 붙었고, 몇 년 전부터 피스 경쟁이 불붙어 5피스 공까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업체 볼빅이 시작한 ‘컬러공’ 열풍이 불었다. 구분하기 좋게 네 가지 컬러로 돼 있어 골프장 캐디들에게 인기를 끌다가 유행이 됐다. 볼빅은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5배 늘어난 덕에 10% 미만이던 시장점유율이 17%가량(업계 추산)으로 훌쩍 뛰었다. 올해 코어의 변화가 큰 것은 후발업체들이 업계 1위 타이틀리스트를 따라잡기 위한 추격의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캘러웨이골프는 지난달 28일 신제품 ‘헥스 디아블로 투어’(3피스)를 내놓으며 ‘파워 리액션 코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그동안 코어 강도는 일정했는데, 코어의 가운데는 부드럽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딱딱하게 했다. 코어 안이 부드러우면 탄성이 뛰어나 멀리 날아가고 딱딱한 바깥은 타구감 향상을 도모할 수 있어 컨트롤이 잘된다는 것이다. 던롭코리아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스릭슨 New Z-STAR(3피스)와 New Z-STAR XV(4피스)는 ‘초박형 커버’로 승부를 본다. 커버가 얇아진 만큼 코어를 크게 만들 수 있다. 탄성이 높은 합성고무인 폴리부타디엔으로 만든 코어가 클수록 공이 멀리 나갈 수 있다. 던롭코리아 측은 “XV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얇은 0.3㎜의 우레탄 커버를 사용함으로써 어프로치 성능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우레탄은 값이 다소 싼 플라스틱 소재의 아이오노머(설린)보다 딱딱하고 무거워 타구감이 좋고 스핀이 많이 된다. 물질의 안보다 바깥의 성분이 무거울수록 회전이 더 많이 되는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했다. 나이키골프코리아는 코어의 소재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록 이시이 나이키골프 볼 개발 총괄책임자는 지난달 28일 “합성고무가 아닌 레진 소재의 코어로 만든 신제품을 한국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소재의 레진은 고무보다 더 가벼운데, 이를 코어에 사용하는 것은 나이키골프가 처음이다. 타이틀리스트의 수성도 만만치 않다. 같은 날 2011년형 Pro V1(3피스)과 Pro V1x(4피스)를 새롭게 내놓았다. 코어를 약간 줄여 맨틀을 늘리면서 스핀이 많이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새로운 딤플 디자인을 채택해 비거리와 컨트롤 모두를 잡는 ‘토털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박용균 아쿠쉬네트 부장은 “그동안 1개 축을 중심으로 20면체 딤플 구조를 썼는데 축을 3개로 늘리고 24면체 딤플을 구현하면서 축이 늘어난 만큼 공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켰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저마다 비거리와 정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주겠다고 하지만 비거리 향상 정도 등 정확한 수치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기존 제품을 조금만 손질해 소비자들에게 팔기 급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48)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고전 톡톡 다시 읽기](48)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 라블레와 반(反)영웅의 계보학 ‘오디세우스’나 ‘일리아드’는 고대의 영웅들이 독점 출연하던 모험담이었다. 그들은 원대한 소명을 안고 태어났고, 근엄한 표정으로 놀랄 만한 위업을 추구했다. 건국과 구국(救國), 최고의 목적을 위한 희생 등은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영웅의 삶도 평범할 수 없다. 아서왕 전설과 롤랑의 노래, 이고리 원정기 등 중세 기사 무훈담도 비범한 영웅들을 찬양했다. 어릴 적부터 주변을 놀라게하는 총명함과 신앙심, 용맹함이 그들의 자질이었다. 모험담이 화려하고 감동적일수록 민중의 일상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음은 당연하다. 중세의 끝무렵, 그토록 존귀하던 영웅의 족보에 난데없는 돌연변이들이 등장한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우며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광대와 난봉꾼들이 나타났다. 신화와 서사시를 패러디하며 튀어나온 그들은 단숨에 민중의 상상 세계를 사로잡는다. 위대한 업적과 아름다운 덕행 대신, 그들은 끝모를 난장(場)과 황당한 우스개를 벌였다. 평범하고 무지한 민중에게 다가와 때론 치고받기도 하고 때론 농담도 주고받는 친구가 된 것이다. 16세기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에 나오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그 최초의 주인공들이었다. 2. ‘지금 여기’의 삶과 ‘위-대한’ 영웅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바보 같지만 온유하고 게으른 왕 가르강튀아의 나라에 탐욕스러운 이웃나라의 군주 피크로콜이 시비를 걸어 벌어진 전쟁 스토리가 전부다. 하지만 두 나라, 두 왕의 다툼은 엄숙하고 비장한 숙명의 대결이 아니다. 전쟁은 어리석음의 경주이자 황당함의 극치를 다투는 놀이로 바뀐다. 피크로콜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분노하며 파괴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데 반해, 가르강튀아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사는 걸 원한다는 게 요점이다. 두 욕망이 빚어내는 두 가지 다른 삶의 양상. 우리는 새로운 영웅의 풍모와 삶의 방식, 그 세계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르강튀아는 키가 산만큼 크고 몸집은 대궐만 한 거인이지만 생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가령,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낮잠을 즐긴다. 그러다 누군가 싸움을 벌이면 술과 고기가 가득한 잔치를 벌이고 놀이를 제안한다. 끝! 국부를 증진시키려고 고민하거나, 영토를 늘리려고 전쟁을 벌이는 일, 책략을 짜서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따위는 그가 가장 귀찮아하는 짓들이다. 그저 배불리 먹고 등따뜻하게 한세상 사는 게 삶의 목적이라면 목적. 하긴 이런 천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나 보다. 그는 엄마가 순대를 지나치게 먹던 날 ‘똥싸듯’ 태어났으며, 세상에 나오자마자 “응애, 응애, 술줘! 너희도 한잔 마셔!”하며 소리쳤다니까! 출생부터 기이한 가르강튀아의 행적이 범상할 리 없다. 오줌을 누면 강이 만들어져 마을이 떠내려가고, 똥을 누면 산이 몇 개 생겨날 지경이다. 먹고 마시는 스케일은 또 얼마나 큰지! 전투 후 벌어진 연회에서 그가 먹어치운 짐승들이 얼마인지 셀 수도 없다. “우선 소 16마리를 굽고, 암소 3마리, 송아지 32마리, 염소 63마리, 양 95마리, 양념을 친 돼지 300마리, 메추리 220마리, 도요새 700마리, 수탉 400마리와 다른 닭 1700마리, 암탉 600마리와 비둘기, 토끼 1400마리, 병아리 1700마리. 또 산돼지 11마리, 사슴 18마리, 꿩과 산비둘기 140마리, 오리, 물떼새, 왜가리, 황새, 칠면조….” 황당해 보이지만, 영웅이란 본래 위대(偉大)한 존재 아닌가? 그러니 좀 ‘위-대’(胃大)한들 어떠리! 피크로콜과의 전쟁도, 정처없는 모험도 모두 위-대함의 산물이며 이야기다. 위대한 영웅은 신화에나 있지만, 위-대한 영웅이라면 민중의 밥상머리나 술자리, 놀이판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단지 웃기는 코미디일까? 그 시대를 지배하던 교회는 라블레에게서 신이 주신 언어와 사물에 대한 허황된 요설, 신성모독적인 패설을 읽어냈다. 특히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이 수도사들과 어울려 취하도록 마시고 난폭하게 다투며 불경한 욕설을 퍼부을 때, 교회는 분노했고 유죄를 선고했다. 위엄과 경건함을 상실했다는 죄목이다. 하지만 삶에서 먹고 마시는 것, 육체를 살찌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초인적인 업적이나 덕행보다 중요하다는 게 라블레의 생각이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먼 신화 속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이라는 사실! 3.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비전과 웃음 라블레 시대의 민중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읽으며 이 세상을 상상했다. 그것은 비장하고 엄숙한 소명의 세계도 아니고, 금욕을 통해 힘겹게 버텨야 할 불가피한 현실도 아니다. 라블레의 소설은 삶은 먹고 마시며 놀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삶에는 병마와 고통,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괴로움에 초점을 맞출 때 삶은 그 자체로 무거운 짐이 된다. 신화와 서사시는 그런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지만, 그만큼 이 세계는 갑갑하고 살아갈 ‘맛’을 잃고 만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보여주는 세계엔 어떤 비밀스럽고 신성한 목적이 없다. 대신 주린 배를 채우고 힘겨운 노역에서 벗어난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에 대한 비전이 있다. 마음껏 먹고 실컷 잘 수 있는 세상, 삶의 간난신고를 잠시 잊은 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란 민중이 역사 이래로 늘 염원하던 세상이 아닌가? 그 출발점은 현세의 삶, 온갖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이 넘치는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데 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라블레라는 천재가 혼자 쓴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년간 쌓여온 민중적 삶의 흔적과 소망, 비전이 집대성되어 표현된 산물이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하지만 너무나도 친근한 반(反)영웅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웃음이 평범한 민중의 웃음과 뒤섞여 들리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최진석 서울신문·수유+너머N 연구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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