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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흙 우주서 합칠 계획”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될 고산(32)씨가 오는 4월 우주에 체류하는 동안 남북한의 흙을 가져가 한데 합칠 예정이다. 미국 휴스턴의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서 훈련중인 고씨는 15일 화상회견에서 “우리는 아직도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북한 흙을 언제 반입할지와 우주에서 어떻게 행사를 치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고씨는 이어 “우리가 또 다른 우주인을 보낼지는 알 수 없지만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는 우주탐사를 위한 장기 계획 및 달 탐사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임무가 끝난 뒤에도 (예비 우주인 이소연씨와 더불어) 이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고 장래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오는 4월8일 발사 예정인 러시아 우주왕복선 소유즈호에 러시아인 선장 세르게이 볼코프, 우주비행 엔지니어 올레크 코넨코와 함께 탑승한다.10일간 임무를 수행하며 우주에 체류한 뒤 19일 귀환할 계획이다. 3만 6000여명의 경쟁자를 뚫고 발탁된 고씨는 지원자 공모 소식을 들었을 때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최고의 후보자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한국 첫 우주인으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희망을 본 사람들] (5) 영구귀국 사할린 동포 1.5세대 박준석씨 부부

    [희망을 본 사람들] (5) 영구귀국 사할린 동포 1.5세대 박준석씨 부부

    여섯 살 소년에게 사할린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배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개썰매까지 타고도 꼬박 석 달이 걸렸다. 박준석(72)씨는 그후 66년을 사할린 동포 1.5세대로 살았다. 러시아인도 한인도 아닌 무국적자의 서러움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지난 10월 한국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영구귀국한 그는 내년 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받는다. ●배고픔과 국적 없는 이중 설움 27일 인천 남동구 논현고잔동의 한 아파트. 정부에서 마련해준 56㎡(17평)짜리다. 박씨는 부인 이인숙(68)씨와 러시아산 차를 마시며 서투른 한국말로 얘기하고 있었다.“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나.”라는 박씨의 눈에 지난날이 하나둘씩 스쳐 간다. 1940년에 사할린으로 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박씨 가족은 사할린의 주도(主都)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정착했다.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살았다.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은 모두 떠나고 조선인만 남았다. 농사도 잘 안 되는 동토(凍土)에서 쌀을 구할 데가 없어 배를 곯았다. 장남인 박씨는 조선인 학교를 7학년(지금의 중학교)까지 마치고 자동차 수리센터에 취직해 수리공으로 일했다. 엄격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국적자로 사는 건 녹록지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했다.3개월에 한 번씩 신분증을 갱신해야 하는 것도 불편이었다. 부인 이씨도 어느새 말을 거든다.“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무국적 신분이 들통나면 내려야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다가 들켜도 우리만 벌금을 냈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경찰서만 보면 벌벌 떨고 살았다.” 부인 이씨는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나이부치 탄광으로 끌려온 할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사할린에 정착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소학교 4학년까지 마치고 17살에 출가했다.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8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의 남편 박씨와 만나 새로 가정을 꾸렸다. 한국으로 와서 살고 싶다는 뜻이 맞아서였다. ●“봄엔 일자리도 구할 것” 둘은 2005년에 결혼하고 지난 10월에 영구 귀국했다.“한국에 오면 생활형편도 좋고 연금 받아서 풍족히 살 수 있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부부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아 매달 각각 31만원씩 지원받는다.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로 30만원쯤 남는다.“그래도 사할린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형편이 낫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박씨는 말한다. 하지만 사할린에 두고 온 자식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매일 전화하지만 곁에 두고 보는 것보단 못하다. 날이 풀리면 한번 가보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걱정이다. 봄이 되면 박씨는 자동차 수리센터를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해 볼 생각이다. 박씨는 “주민등록증 나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55년간 자동차 수리를 했으니 기술은 자신 있다.”고 했다. 박씨의 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러시아 미술사/민음인 펴냄

    한치 앞도 모른다는데,10년 후의 일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1996년 처음으로 러시아에 갔을 때, 문학 공부를 하던 내가 러시아 미술사에 관한 책을 쓰게 되리라고, 그리고 미술 현장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게 될줄 어찌 알았겠느냐 말이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스탕달 신드롬’(뛰어난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일으켰다. 이렇게 시작된 러시아 미술 공부는 아마 알지 못했으면, 평생 후회했을 그런 아름다운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 책은 러시아 본토에서 러시아 미술을 공부한 사람으로 러시아 미술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는 사명감과 공부하면서 느꼈던 행복함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쓴 책이다. 러시아 미술은 격렬하고 열정적인 러시아인들의 삶 자체와 그것의 예술적인 승화를 보여준다. 19세기까지 존속했던 농노제와 억압적인 차르 통치, 공산주의 혁명과 개혁 등 남다른 역사는 이 나라의 예술 문화에 독특한 특성을 각인했다. 현실이 남루하고 비참할수록, 그것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정신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열망이 러시아 문화 전반의 특징이다. 나는 이러한 열망을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이라고 요약했다.19세기의 이동파의 그림, 칸딘스키, 말레비치, 타틀린 같은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이러한 유토피아적 열망과 좌절의 과정을 눈앞에서 그림으로 직접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러시아 미술을 소개하되, 딱딱한 연표 외우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야기의 구조를 택했다. 한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인들의 삶과 역사,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샤갈의 환상적인 푸른색의 비밀, 심수봉이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백만송이 장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이야기의 구조를 빌렸기 때문에 책에 넣을 수 있었다. 또한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생생한 초상화가 그려졌던 상황도 이 책에서는 전한다. 러시아 미술이라는 특정한 나라의 미술로 시작했으나, 종국에 가서는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창조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은 이 책을 끝까지 쓰게 만든 힘이었다.‘일상을 잘 영위하는 것(well-being)´이라는, 다소간 미적지근한 화두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요즘, 뜨거운 삶의 흔적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의 현실은 불우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풍요로웠다.
  • 러시아 영혼의 상징, 모스크바

    도시는 현대문명의 꽃이다. 도시는 지나간 역사의 모든 흔적을 집적해 놓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며, 물질과 정신문화가 촘촘하게 교직되어 있는 거대한 집합 공간이다. 그래서 유서 깊은 도시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 인간, 문화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고대유럽을 접하기 위해서는 아테네와 로마를 가봐야 하고, 근대유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런던과 파리를 경험해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모스크바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러시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인류의 문화적 지형도에서 가장 북방에 위치한 나라다. 러시아인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면서 광활하고 황량한 벌판에 세계 최고수준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창조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준 높은 정신문화 유산을 연대기적으로 응축시켜 놓은 상징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는 8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고도(古都)다. 모스크바가 최초로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1147년 4월4일이다. 역사의 기록에 근거해서 러시아인들은 바로 이 날을 모스크바의 생일로 정하고 있다.12세기 당시에 모스크바는 당시 300여개에 달했던 고대 러시아의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모스크바는 인구 1000만이 넘게 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중 하나가 되었고, 수많은 역사 유적지와 자연 경관을 보전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책은 필자가 모스크바에 살면서 읽은 것,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대화한 것, 깨달은 것, 생각한 것 등을 기행형식으로 써본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러시아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거리, 광장, 박물관, 극장, 미술관, 대학가, 수도원, 공원, 공동묘지, 호텔, 레스토랑과 모스크바 주변의 유적지 등을 기행하면서 러시아의 정신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오버랩시켜 보았다. 그것은 절대 권력과 자유로운 영혼, 아름다움과 죽음, 러시아의 팜므 파탈, 보드카와 광기 등의 주제와 연결된다. 러시아는 겨울에 가야 제 맛이 난다고들 한다. 러시아의 겨울을 체험해본 사람들은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것은 아마도 러시아의 겨울 체험이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게다. 필자는 독자들께 이 책을 통해서 모스크바의 겨울을 체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러시아 대자연의 혹독함과 풍요로움 사이에서 어느덧 겸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병훈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
  • 푸틴 “영국문화원 문 닫아라”

    “러시아 내 영국 문화원 문닫고 떠나라.”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관계가 삐걱거려 온 영국에 다시 일격을 가했다. 러시아는 자국 내 15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영국문화원 가운데 모스크바 본부를 제외한 나머지 14곳에 대해 내년까지 철수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러시아 외무부는 12일(현지시간) 영국문화원 측에 이런 방침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영국은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러시아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영국문화원측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1963년 빈 영사협약 및 1994년 영·러 문화협정에 따라 러시아인에게도 문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거부 의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측은 지난 7월 러시아 외교관의 영국 추방 이후 문화원 활동 규정에 관한 양자 협정을 고쳤다면서 거부할 경우 강제적으로라도 폐쇄를 밀어붙일 기세다. 이로써 양국간 일련의 갈등이 비정치적인 분야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두 나라는 지난 7월 전 연방보안국(FSB. KGB의 후신)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피살사건의 용의자 안드레이 루고보이의 신병인도를 놓고 외교관을 맞추방하면서 냉랭한 사이가 됐다. 외신들은 러시아 총선 직후 한숨 돌린 크렘린측이 직접 영국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전했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러시아는 영국이 실형선고된 망명 석유 재벌 베레조프스키의 러시아 소환은 거부하면서 루고보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서 “이번 조치는 미운털이 박힌 영국에 내정간섭을 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용어 클릭 ●리트비넨코 사건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 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2006년 11월 안드레이 루고보이 등 전직 FSB 동료 2명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만난 뒤 방사능 물질 ‘폴로늄210’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4)강화 연등국제선원 지도법사 일조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4)강화 연등국제선원 지도법사 일조 스님

    강화의 연등국제선원(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85-1)은 한국불교에 귀의한 외국인 스님들이 모여 사는 특이한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다른 선방과 고향을 찾아 잠시 떠나 두 명만이 선원을 지키고 있지만 평소엔 10여명의 외국인 스님이 각자 소임을 맡아 절집 살림을 꾸리고 수행에 매진하는 이색공간. 이곳에 가면 외국인 템플스테이며 일반인 참선을 지도하느라 늘상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 푸른 스님이 단연 눈에 띈다. 한국 불교계의 웬만한 스님들이 다 이름을 알 정도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러시아 출신 지도법사 일조(日照·34·본명 표트르 가브릴렌코) 스님. 한국에 출가한 외국인 스님 가운데 ‘어렵다 못해 혹독하다.’는 서슬 퍼런 강원과 율원 과정을 가장 먼저 마치고 비구계를 받은 푸른 눈의 납자(衲子)이다. “한국불교를 제대로 배우자.”며 한국으로 출가해 이젠 여느 한국인 스님과 다를 바 없이 ‘한국 스님’이 다 된 일조 스님. 그에게 한국은 배움의 땅이자 소신의 실천처이다. 일조 스님은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 통과하는 러시아 중남부 도시 케메로보에서 태어난 옛소련 출신. 직장을 옮기게 된 아버지를 따라 중앙아시아 북부 키르기스스탄으로 4살 때 이주해 살아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의 이중국적자 신원이다. 비록 국적은 한국이 아니지만 1998년 한국불교에 귀의한 뒤 9년간 줄곧 한국에 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온 자칭 타칭 ‘한국인’이다. 한국에 사는 뭇 외국인들처럼 일조 스님, 아니 표트르도 한국과는 참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불제자의 길을 걷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16살 때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종교서적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러시아인이 쓴 ‘무신론자’란 제목의 일종의 종교 사전이자 종교 비방서. 옛소련 종교를 탄압하던 시절 발간되어 기독교를 비롯해 불교, 도교, 유교 등 모든 종교를 짤막짤막하게 개괄한 책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님은 책의 의도와는 달리 불교 부분을 읽고 ‘큰 발견’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독실한 정교회 신자이며 자신 역시 정교회의 의식을 따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침수세례를 받았다는 일조 스님. 그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 중생의 성격과 신분 차를 짓는 근본 원인이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책 ‘무신론자’중 ‘과거 지은 업에 따라 태어난다.’는 구절에 마치 큰 숙제를 푼 것만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단다. 세상의 어느 가르침과 교훈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 일반인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이른바 윤회의 ‘업(業)’에 신경을 이었으니 분명 예사 사람은 아니다. 그 이후로 늘상 불교와 ‘업’을 머릿속에 넣고 살다가 일종의 예비대학을 졸업하고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지역 군(軍)에 입대해 소위로 군 생활을 하던 중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지역 신문에서 비슈케크에 한국 사찰 ‘보리사’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치 오래 기다렸던 그 누군가를 만난 듯 설다고 한다.1992년의 일이다. 당시 보리사 개원식에 참석한 은사 원명(2003년 입적) 스님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학력을 인정받아 장교로 근무한 때문에 병영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다.6년간 보리사를 다니며 일요일 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한 것은 물론 평일에도 가끔씩 찾아 법문을 듣고 절집 일도 돕고 참선을 이어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보리사는 고려인과 현지인 30명 정도가 법회에 참석할 만큼 보잘것없는 포교원.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었지만 영 맘에 차지 않았다. 언어 소통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조금이나마 한국불교에 더 다가가기 위해 비슈케크 인문대학에 입학해 아시아역사와 한국어, 한문을 파고들었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한국의 원명 스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머물 곳이 있으니 강화 연등선원으로 오라는 전갈이었지요.” 모든 것을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연등선원으로 들어왔다.1998년 연등국제선원이 막 개원했을 때의 일이다. 연등국제선원은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인 원명 스님이 서울 안국동에서 외국인 대상의 포교원격으로 운영하던 국제불교회관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선원. 현 선원장 겸 주지 원유 스님은 원명 스님의 맏상좌이자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한국인 스님이다. “처음 연등선원에 왔을 때 체코 스님과 한국인 스님 한분을 빼곤 도무지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무서울 만큼 갇힌 상태에서 행자생활을 했지요. 그러던 중 선원을 찾은 한 스님의 ‘공부 제대로 하려면 송광사로 가라.’는 말에 솔깃한 것이지요.” 행자생활 1년을 마치고 절집 살림을 꾸리는 원주 소임 1년째였다.“한국 스님들과 몸을 부대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란 생각에 송광사 강원으로 가기 위해 봇짐을 쌌다. 함께 수행하던 스님들이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며 “못 견디면 언제든지 연등선원으로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봇짐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원 공부는 한국인 스님들도 절반가량이 도중에 포기할 만큼 어려운 과정. 일조 스님과 함께 공부를 시작한 한국인 동기 스님 37명 가운데 16명만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치문, 사집, 사교, 대교의 4년과정을 견뎌냈다. 한국어가 서툰 데다 생활방식도 다르고 선배들이 너무 무서워 눈칫밥을 먹고 잠 자는 것은 물론 숨쉬는 것도 수행의 연속이었다. 하루 다섯 시간 잠을 자지만 선배들에게 불려가 밤새도록 엄한 참회(일종의 단체기합)를 받거나 절을 하느라 꼬박 밤을 새운 날도 부지기수. 가장 낮은 과정인 치문 때는 화장실 청소며 밥짓기 같은 힘든 소임도 도맡아야 했다. 강원을 졸업한 2004년 마침내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됐지만 내쳐 송광사 율원에 들어 2년간의 힘든 과정을 마치고 ‘제2의 고향’인 이곳 연등선원에서 뜻을 펴고 있다. “나는 대수롭게 인터뷰할 사람이 못된다.”며 묵묵히 차를 따르던 스님이 은사 스님의 유언을 불쑥 꺼낸다.“세상 만사 모두 헛되니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라.” 한참 공부에 빠져 있던 송광사 강원 학승시절, 병중의 원명 스님이 마지막 대면에서 남긴 한마디는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처음이자 끝이 되어 있는 듯했다.“인생에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인데 나는 큰 스승을 만났으니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많은 불교 가운데 한국불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중국불교는 원 속성을 잃은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일본불교는 정통의 수행방식에서 비켜났지요. 티베트 불교가 밀교성격의 복잡한 의식에 치우쳤다면 남방의 소승불교는 보살사상이 빠졌습니다.” 오랜 공부 때문일까 스님의 입에선 온갖 불교의 속성들이 술술 풀어진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존중하는 ‘중생’개념과 내가 아닌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해 산다는 ‘보살사상’이야말로 대승 한국불교의 핵을 이루는 백미가 아니냐고 묻는다. 무릇 불가에 귀의한 모든 중생들의 귀착점은 ‘아누다라 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일 터.‘더 이상 갈 곳 없는 최고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를 향한 수행이야말로 일조 스님에게도 예외없이 가장 큰 목표일 것이다. 그런 스님에게 지금 할 일이 너무 많다. “‘보살행’의 큰 가르침을 오롯이 담은 한국불교의 제 가치를 만방에 알리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큰 업(業)입니다.” 그래서 안거(案居)가 아닌 산철엔 틈날 때마다 러시아며 우크라이나 등지의 한국 사찰을 돌며 참선지도와 법회를 이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틈틈이 전통의 한국불교 수업기관인 강원·율원 등의 교육시스템 안내 책자 짓기와 번역작업에도 매달린다. “죽을 날을 생각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생일수록 속된 것들과의 반연(攀緣·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일조 스님.“부처님이 되는 성불(成佛)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버려가는 과정인데 아직도 이렇게 버릴 것이 많으니 부처님 되기엔 아직 멀었다.”며 선원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두 손을 모았다. 강화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일조 스님은 ●1973년 옛소련 케메로보 출생. ●1977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이주. ●1992∼1997년 비슈케크 한국사찰 보리사 신도로 활동. ●1998년 한국행,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출가. ●2000년부터 4년간 송광사 강원생활. ●2004년 원명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2004년부터 2년간 송광사 율원생활. ●2006년 송광사 율원 졸업 및 러시아 등지 만행. ●현재 강화 연등국제선원서 선원장 원유 스님을 도와 내외국인 상대로 참선지도 중.
  • [01일 TV 하이라이트]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상적인 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를 꾸준히 연구해온 백낙청 교수. 민족문제와 분단의 문제 전문가 백 교수가 얘기하는 21세기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의 길은 무엇인지 들어본다. 그가 강조해온 ‘시민참여형 통일’은 어떤 것인지도 이야기를 나눠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굽거나, 찌거나, 으깨거나, 튀기는 등 다양한 형태로 요리할 수 있는 감자. 러시아인들은 감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요리가 아니라고 말할 만큼 감자 사랑이 남다르다. 전 세계 15개국에서 150여명이 참가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린 감자 축제.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감자 시장을 외국인에게 양보할 리 없다.   ●다큐 10(EBS 오후 9시50분) 암벽 등반가로 명성을 날린 론 카우크는 14세에 암벽 등반을 시작한 이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등반사에 길이 남는 기록들을 세웠다. 최근 ‘미션 임파서블 2’에서 톰 크루즈의 대역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등반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대자연 속에서 깨우쳤던 등반과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왕과 나(SBS 오후 9시55분) 처선이 자궁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월화는 쇠귀노파에게 이를 따지듯 묻는다. 쇠귀노파는 하늘이 처선에게 내려준 삼능삼무의 운명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 한편, 자궁을 하려는 까닭을 묻는 월화에게 처선은 판내시부사의 양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산(MBC 오후 9시55분) 한밤중에 산은 자객에게 암살될 뻔한 위기를 맞는데, 그 자객은 극약을 먹고 목숨을 끊어버린다. 갑자기 등장한 영조 또한 이 상황을 의아해한다. 다음날 화완옹주가 찾아와 근심 가득한 영조의 기분을 풀어주며 지난밤의 이야기를 꺼낸다. 저잣거리에서 최석주를 만난 화완옹주는 그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   ●경제비타민(KBS2 오후 8시50분) 홍석천이 10억원대 재산가가 되어 돌아왔다. 커밍아웃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홍석천은 자신을 지켜 줄 것은 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종자돈을 마련했다. 월세 30만원짜리 사글셋방에서 시작해 48평 아파트를 마련하기까지, 홍석천의 재테크 성공기를 공개한다.
  • [한국 첫 우주인후보 탄생] “우리 모두의 꿈 우주서 펼쳐 보일 것”

    [한국 첫 우주인후보 탄생] “우리 모두의 꿈 우주서 펼쳐 보일 것”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내년 4월 우주 비행에 나설 우주인으로 선정된 고산씨는 5일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겨 주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이 우주에 첫발을 내딛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우리 모두의 꿈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올라가 우주에서 멋지게 펼쳐 보이겠다.”고 말했다. 고씨는 최종 후보 선정 당시의 선발 성적에서 이소연씨에게 뒤졌지만, 러시아 현지훈련과 국내 과학실험 평가에서 월등히 높은 성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위 관계자는 “러시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씨가 함께 팀을 이뤄 우주선을 탈 러시아인들과의 관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면서 “성공적인 우주인이 될 거라는 확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현지 훈련서 탁월한 성적 올려 고씨는 함께 경쟁했던 이소연씨에 대해 “열심히 노력해 주어서 고맙고 혼자였다면 훨씬 힘들었을 길을 함께해서 쉽게 달려 왔다.”면서 “앞으로도 경쟁자이기 전에 유인 우주개발 동반자로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부산 출신인 고씨는 한영외고와 서울대 수학과, 서울대 인지과학 협동과정 석사과정을 거쳐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컴퓨터 및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카투사 출신으로 영어에 능하고 중국어 회화도 가능하다.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인 고씨는 평소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지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언제나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어머니와 이미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예비후보 이소연씨 “멋진 어시스트할 것” 고씨는 “함께 우주비행을 하게 될 러시아 우주인들 역시 이번이 첫 비행이지만,10년 넘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비행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면서 “남은 기간 부족한 경험을 대신할 수 있도록 세심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일시 귀국 ‘한국 우주인’ 후보 고산·이소연씨

    “누가 ‘우주인’이 되든 상관 안 해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평생 우주인의 길을 걸을 생각입니다.”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훈련 중인 ‘한국 우주인’ 후보 고산(30)·이소연(28)씨가 국내 훈련을 위해 일시 귀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4일 귀국한 이들은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지난 3월부터 받은 러시아 현지 훈련에 대한 소감 등을 밝혔다. 고씨는 “우주복을 실제 착용하고 우주에서의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 재미있었다.”면서 “이제는 조금씩 몸이 우주복에 맞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주일 동안 질리도록 바다 구경을 해야 했던 해양생존훈련이 무척 힘들었다.”고 밝혔다. ●‘한국 우주인´ 이달 말 최종 결정 이달 말 이들 중 한 명은 최종 ‘한국 우주인’으로, 다른 한 명은 ‘보조 우주인’으로 확정된다. 과학기술부는 항공우주연구원 원장 등 7명으로 구성된 한국우주인선발협의체를 구성해 후보선정 때 성적 30%, 러시아 훈련성적 60%, 종합평가 10% 등을 반영해 객관적인 평가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고씨는 “당연히 선발되고 싶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면서 “선발된다면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되더라도 나보다 더 잘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주로 가기 싫다면 거짓말이며, 선발되든 되지 않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고 당당히 말했다. ●통역 없이 러시아어 소통 가능 두 후보는 최종 선발 결과 이후 삶에 대해 모두 “우주인 훈련 경험을 살려 한국의 우주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데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두 후보는 출국 직전에 비해 많이 건강해졌다. 특히 신체적 변화 외에도 러시아어와 우주 관련 지식이 놀랄 정도로 늘었다고 소개했다. 러시아어는 현지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다. 이들은 훈련 내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씨는 “훈련 중 만난 한 러시아인으로부터 ‘최고는 바뀌어도 최초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첨엔 마음이 상했다.”면서 “이 말을 뒤집으면 최고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되듯이 우리나라도 우주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한국 우주인 양성과정이 ‘우주 여행객’에 불과한 이벤트성 사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 대해 이씨는 “부모가 자녀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듯이 우주개발도 당장 결과물을 바라는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산·이소연씨는 오는 13일부터 2주간 국내 우주과학실험 임무훈련에 들어간다. 이후 이달 말 최종 후보 확정과 함께 국내의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오는 26일 러시아로 출국, 가가린훈련센터에서 하반기 우주인 훈련을 재개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일제, 공문서 훼손 어떻게 했나

    일제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규장각 도서 정리작업을 통해 조선의 기록관리 체계를 조직적으로 무너뜨리고 식민통치 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2004년부터 진행한 ‘한국 국가기록 체계화 사업’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의 고의적인 문서 조작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증빙 자료가 묻혀 있었다. ●절반이 경제 관련… 경제적 식민화과정 규명 기대 연구팀은 재분류한 공문서 가운데 5000∼6000여종이 경제 관련 공문서인 점에 주목, 이번 재분류 작업을 토대로 일제의 황실 재산 침탈과 경제적 식민지화 과정을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 ‘대한제국기 황실재정 공문서 발굴·정리와 체계화사업’을 2007학년도 연구 과제로 정하고, 황실 재정과 관련된 공문서 분석을 통해 1904년 이후 일제가 ‘황실재정정리’를 명분으로 황실의 재산을 침탈해간 과정을 밝힐 계획이다. 조선총독부는 황실 재정 관련 서류들은 여러 책을 한 권으로 묶고 내용과 관련 없는 제목을 붙여 은폐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궁내부제실재산정리국(宮內府帝室財産整理局)’이 1908년 생산한 수십종의 문서들을 단행본으로 취급해 구체적인 내용을 숨기는 효과를 냈다. ●도서명 고의로 조작·은폐 ‘전라남도각군문서급소장철(全羅南道各郡文書及訴狀綴)’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서철에는 경상도와 경기도 등에서 생산한 문서를 포함시키고 문서뿐만 아니라 보고서, 지령 등을 한데 묶었다. 규장각 목록에는 실제 내용과 상관없는 ‘본청관원 4월 조봉급지출청구서(本廳官員四月條俸給支出請求書)’라고 적었다.‘각도청원철(各道請願·1905년)’ 등에는 청원 내용과 첨부 문서, 조치 내용 등을 각각 별개의 도서에 포함시켜 알 수 없도록 하는 등 연관된 문서를 별개 도서명의 책으로 묶어 분산시키기도 했다. 또 의병 활동과 조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문서인 1907년 충청도 임천군 입포리에 내걸린 의병의 격문은 아예 목록에서 제외했다. 연구팀은 대한제국기 백두산에서 압록강을 경계로 설치된 진위대의 대지도형을 묶은 공문서철인 ‘진위대대지도형(鎭衛隊岱地圖形)’과 간도에 한인이 거주했다는 간도 영토주권에 관한 공문서인 ‘함경남북도내거안(咸鏡南北道來去案·1903년)’을 찾아냈다. 또 통상 및 개방에 관한 공문서인, 인천항에 거류하는 일본인 거류지를 표시한 채색지도와 1900년 강원 통천군의 일부 지역을 러시아인에게 조차한 공문서와 지도·관세관 등의 복장 및 견장·모자 등의 그림을 담은 ‘관세관복장(管稅官服將·1906년) 규칙 및 복장도식(服將圖式)’ 등과 함께 토지개혁 공문서인 ‘대한제국전답관계(大韓帝國田沓官契)’, 근대적 교육에 관한 공문서인 ‘사범학교교습합동(師範學校敎習合同·1897년)’ 등을 체계적으로 재분류했다. ●대한제국기 중요 공문서 체계적 분류 이상찬(국사학과) 서울대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정리작업’은 그 목표가 식민통치 정책 수립을 위한 문헌 조사에 있었다.”면서 “조선시대 기록관리 체계를 복원시키고 묻혀 있던 자료 연구를 통해 식민화 과정을 낱낱이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공문서 목록을 ▲최종 소장 관리기구별 ▲문서 생산 기관별 ▲규장각 도서 번호순 ▲도서명순 등 4가지 형태로 간행할 예정이다. 또 목록을 규장각 홈페이지와 ‘e-규장각’에 공개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60나이에 베스트앨범 낸 ‘록의 대부’ 한대수

    60나이에 베스트앨범 낸 ‘록의 대부’ 한대수

    가수 한대수가 나이 60에 처음 해보는 것 세가지. 우선 몽골계 러시아인 옥사나(38)씨와 결혼 15년만에 첫 딸을 얻어 늘그막에 ‘아빠’소리를 듣게 됐다. 오는 10월 경기도 이천에서 열릴 ‘원월드 뮤직페스티벌’에서는 ‘위원장’이란 ‘거창한’ 감투도 썼다. 그리고 최근 가수 인생 33년을 되돌아보는 베스트 앨범도 냈다. 그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가 바야흐로 펼쳐지려는 겐가.‘철저한 고독주의자’ 한대수를 장맛비가 내리는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딸 이름은 양호라 지었어요. 양호한 시절, 양호한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이제껏 일부러 안 가지려 한 것도, 애써 가지려 한 것도 아니었어요. 옥사나가 노산(老産)이라 걱정도 됐지만, 엄마와 아이 둘 다 건강은 양호해요.” 국내 대중음악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편이지만 음악가들과 음반 기획자 등이 돈 되는 음악에만 몰리고 있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래서 ‘원월드 뮤직페스티벌’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하루아침에 고쳐질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영·미 쪽 음악가들은 아예 초청을 안 했어요. 음악 수용자들에게 음악적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해야죠. 이런 일들을 하는 데 내가 할 역할도 있더군요.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감투를 썼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 보면 관념의 문이 넓어지고, 인종차별도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번 페스티벌 주제가 ‘음악을 통한 나눔과 배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주 노동자들이 늘면서 인종차별 등 문제가 생기고 있죠. 미국, 유럽 등 국가들도 처음엔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이런 행사들을 통해 시행착오 기간을 줄였으면 하는 겁니다.” 이번 행사에 브라질의 이방 린스나 쿠바 최고의 인기 밴드 로스 방방 등 세계적인 뮤지션 외에 동남아권 가수들도 함께 초청했다. 사상, 종교, 피부색 등은 달라도 음악으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자는 것. 그가 1974년 ‘물 좀 주소’가 담긴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이래 발표한 정규앨범은 모두 13장. 얼마전 100여곡에 달하는 노래 중 36곡을 추려 베스트 앨범을 냈다. 포크와 록으로 장르를 구분해 2장의 CD에 담았다. “베스트 앨범은 일생에 단 한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내년이면 환갑이니 이제 낼 때도 됐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직접 선곡하지는 못하겠더군요. 다 좋으니까요. 팬들과 음반사 관계자들이 함께 골랐죠.” 신곡 발표 계획도 있을까. “60세 넘어 음반 내는 사람은 아마 믹 재거와 나, 둘뿐일 겁니다. 작곡은 연애와 같아요.20대 초반까지 절정을 이루죠. 지금은 놀랄 일이 별로 없는 나이예요. 창작자로서는 치명적인 상태죠. 노력은 할 겁니다(웃음).”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아내와 사별한 뒤 17년 동안 홀로 아들을 키워 온 김한배와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워 온 러시아인 발렌티나. 이 두 사람이 결혼하면서 단란한 가족이 탄생했다. 체조선수 출신답게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발렌티나는 아이들의 건강은 물론 올바른 정신까지 책임진다. 발렌티나와 그 가족들을 만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한국인을 표적삼은 금융사기가 영국에서 판치고 있다. 사기꾼의 수법은 은행에 예치된 돈을 찾기 위해 세금을 대납해 주면 웃돈을 주겠다는 식이다. 이런 사기들의 특징은 서툰 영어실력을 가진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국과 다른 영국금융시스템을 악용하고 사무실까지 만드는 치밀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똑똑! 교육충전소(EBS 오후 8시) 자신감이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이라고 여겼던 완진과 소리. 하지만 솔루션 위원들의 정성과 부모님들의 격려로 두 아이는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 속 상처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된 드라마 치료에서 아이들은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이 싫다며 드라마 치료를 거부하는데….   ●쩐의 전쟁(SBS 오후 9시55분) 봉여사는 지난 일은 용서하라며 나라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라는 여사님이 안타깝다며 차연이를 그만 이용하라고 말한다. 천사리 마을에 간 넘버3는 김상사에게 돈을 건네며 블루엔젤 지분을 넘기라고 한다. 김상사로부터 천사리마을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독고철은 나라와 보령에 간다.   ●메리대구 공방전(MBC 오후 9시55분) 자신이 아버지라는 풍운의 말에 대구는 풍운과 싸우기 시작하고, 메리는 그만하라며 대구를 말린다. 메리는 성자에게 혹시 대구와 자신이 이복남매가 아니냐고 묻고 그 말에 도철은 유전자 검사를 한 번 해보자 한다. 소란은 은자와 함께 간 점집에서 받은 부적을 대구의 속옷에 붙이려고 옥탑방으로 간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노인성 난청은 신체의 여러 기관의 노화와 마찬가지로 청각계에도 갖가지의 노화현상이 일어나 청력이 약화된 경우를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에 장기경기침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장년층에서 갑작스러운 난청증세를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난청의 진단법과 예방을 알아본다.
  • 대륙은 달린다 대륙이 달린다

    대륙은 달린다 대륙이 달린다

    대륙은 달린다. 기차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대륙이 달린다. 시베리아 횡단 철로(TSR)를 따라 모스크바부터 블라디보스톡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일주일, 총 9500킬로미터 남짓 거리이다. 2인 1실의 특실도 있지만, 보통은 4인 1실 쿠페의 침대 한켠에 둥지를 틀고 모든 일상사를 해결해야 한다.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모두 열차 안에서 이루어지며, 정식으로 씻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한 러시아학도가 일종의 사명감으로 그 구간을 단순 왕복한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오던 때의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보통 반 구간만 기차를 타고 남은 거리는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구 1/4바퀴의 대륙을 12명의 우리 팀은 쿠페 세 칸을 잡아 2주일간 횡단했다. 비행기로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이틀을 지낸 뒤 이틀간 열차로 우랄 산맥 지역의 예카테린부르그에 도착, 그곳에서 하루 지낸 뒤 다시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까지 기차로 가 하루 지내고, 또 다시 3박 4일을 기차로 달려 블라디보스톡에 다다르는 식이었다. ’거지꼴’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빨랫거리 한 짐과 보드카를 안고 인천 공항에 내린 우리 꼴은 초췌했고, 2주일 전의 ‘광휘’(처음 우리를 모스크바에서 본 유학생들이 그런 단어를 썼었다)와는 역시 비할 바가 못 됐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여행이었는데, 그 행로란 것이 비행기로 9시간 만에 다다른 길을 그저 다시 ‘시작!’하여 기차로 되돌아오는 것이었고, 그래서 한편으론 사서 한 고생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은 바로 그 ‘사서 한 고생’이 우리의 낭만이었고, 그것의 극복이 우리 여행의 목표였다. 아는 이들은 그것을 ‘러시안 엑스트림’(극한의 러시아)이라고 부른다. 최첨단 수단과 풍요가 겸비된 안락한 관광이 아니라, 거칠고 위험하고 불편한 모험의 감행. 힘들면 힘들수록, 원시적이면 원시적일수록, ‘엑스트림’의 가치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시베리아 횡단이라면 이미 수년 전 여름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와 달리 설원을 가로지르며 러시아인조차 일생에 한 번 하기 힘들다는 대륙 횡단을 두 번 완수해 낸다는 일이 내게는 분명 ‘엑스트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1만 킬로에 달하는 철도 여행, 열차 내 감금 생활, 영하 40도의 혹한,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동서 양극의 목격, 그리고 그 과정이 수반하는 삶의 미니멀리즘을 상상하며 당연히 흥분했다. 흡사 문명사회를 등진 채 야만의 이국으로 향했던 19세기 유럽 낭만주의자들의 후손이라도 된다는 듯이. 여행팀의 명칭도 그래서 ‘다이하드’였다. 여행의 공식 테마가 ‘동양과 서양의 접점’이었기 때문에, 하이라이트는 예카테린부르그의 우랄 산맥 언저리에 위치한 동서양 경계비를 찾아가 단 한 줄의 초록색 경계선 양쪽에 두 발을 딛는 일이었다. 무릎까지 눈 쌓인 곳을 개척해 올라 마침내 경계선을 확인하고, 이후 상상 가능한 온갖 포즈로 수없이 사진을 찍어대던 우리 모두에게 그러나 동서양의 접점이라는 물리적 현장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최소한 충격적인 감회 따위는 없었다. 사실 긴 여행의 중간 지점인 그곳, 흰 눈과 자작나무 숲과 흰 도로로 끝없이 이어진 그곳에 ‘경계’란 없었다. 솔직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부여한 의미 이상의 그 무엇도 거기엔 없었다고 봐야할 것이고, 경계점을 찾아 나선 그곳에서 우리는 오히려 무경계 혹은 경계의 증발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서양 대륙 횡단의 실제 의미인 동시에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극한의 간접 체험이었던 것이다.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길. 사방이 하얗게 뒤덮인 상태에선 더더욱 그것이 절감되고,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은 여름보다 겨울이 제격이다. 달리는 대륙은 공간의 경계성을 불허한다. 시차 경계선을 지나며 시간 또한 계속 바뀌는 통에 그 안에서는 자연의 시각과, 한 인디언 시인이 말했던 “내 심장의 고동”만이 유효할 따름이다. 말하자면 시공(時空) 모두 철저히 유예된 진공 상태이다. 그렇게 기차는 달리고, 그렇게 달리던 어느 한순간, 드디어 왜 유독 기차 여행이 삶의 메타포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고 만다. 그것은, 인생의 기차란 것은, 종착역에 이르러 완전히 정지하는 그때까지 재생도, 되감기도, 건너뛰기도, 우선멈춤도 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일단 올라 탄 이상, 모든 순간과 모든 배경이 공평하게 흘러가며, 불의의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하늘이 두 쪽 나도 거기에 예외란 없다. 그것이 자신을 무력하게, 그러나 동시에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기차로 며칠 달리다 도시의 땅을 밟을 때면, 대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육지가 낯설다. 오직 내 안팎의 자연과만 마주해 있던 철로 위의 공간에 비해 세상의 땅은 당연히 복잡하다. 그래서 기차를 내려서는 으레 ‘육지 적응 중’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또 그 적응이란 게 참 빠르기도 하여라. 이 땅에 내린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난 다시 휴대폰을 켜고, 문자를 날리고, 시간을 고정시키고, 재빨리 직장과 집의 틀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무한하던 시베리아의 털옷과 털신을 훨훨 벗어젖히고 어느새 새봄의 문턱으로 코를 들이민다. 누군가 내게 “눈만 본 그 눈 버리지 말라”고 했건만, 하긴 서울 봄의 황사 탓에 눈부터 아프긴 하다. 글·사진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문과 교수
  • 한국인13명 탑승한 ‘캄’ 전세기 추락

    한국인13명 탑승한 ‘캄’ 전세기 추락

    한국인 관광객 13명 등 승객과 승무원 22명이 탑승한 러시아제 기종 AN-24 전세기가 25일 오전 캄보디아 유명 관광지 앙코르와트 인근 시엠레압 공항을 이륙한 뒤 추락했다고 현지 항공당국이 발표했다. 현지 목격자들은 추락한 전세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항공당국은 이날 캄보디아 승객과 승무원의 계산 착오로 전체 탑승객 숫자를 22명->27명->22명으로 정정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오낙영 참사관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고 추정 지점인 보코르 산 기슭에서 항공기 꼬리 부분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발견됐다는 수색대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산세가 험하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수색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사고기엔 한국인 13명과 체코인 3명, 러시아인 부조종사 1명, 캄보디아 승무원 5명 등 모두 22명이 탑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확한 인명 피해 상황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항공 관계자는 사고 현장이 밀림 지대라는 점에서 생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탑승자들은 KBS 보도국 조종옥(36) 기자 가족 등을 포함, 국내업체인 하나투어를 통해 단체여행에 나선 일가족 등으로 드러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조 기자는 최근 휴가원을 내고 부인, 두 아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쌍둥이 아들 1명은 동행하지 않았다. 사고기는 이날 현지시간으로 오전 10시쯤(한국시간 낮 12시) 캄보디아 휴양지인 시아누크빌로 떠나기 위해 앙코르와트 인근의 시엠레압 공항을 이륙했다. 이후 50분쯤 뒤 전세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지면서 실종됐고, 현지 관리들은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30㎞ 떨어진 보코르 산 부근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아누크빌에서 60㎞ 떨어져 있다. 힘 사룬 시엠레압 공항 수석국장은 “사고기가 10시50분쯤 남부 캄포트 지역의 캄차이 산악지대와 보코르 산 사이를 통과하던 중 레이더상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밝혔다. 탁 콘 캄포트 주지사는 “캄차이 산악 지역의 깊은 밀림지대 가장자리에서 잔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대를 급파했지만 사고 현장이 휴대전화도 통하지 않는 지역이어서 생존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세기는 캄보디아 소형 항공사인 프로그래스멀티(PMT) 소유로 지난 1월부터 시엠레압∼시아누크빌 노선에 취항했다. 사고를 낸 항공사는 지난해 캄보디아 동북부 라타나키리 지역에서도 비상 착륙하는 등 추락 사고를 일으킬 뻔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관계자들은 사고기가 낡은 러시아제인데다 우기를 맞아 계속 비가 내린 점으로 볼 때 기체 결함과 기상 악화 등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20% 증가한 170만명이며 그 중 한국인 관광객이 22만 1000명으로 가장 많다. 캄보디아에서는 1997년 베트남 항공기가 프놈펜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추락해 한국인 21명을 포함, 모두 65명이 숨진 바 있다. <한국인 탑승자 명단> ●하나투어 이용 여행객 이충원(47)-황미혜(42·여)-이정민(16·여)-이준기(15) 가족, 조종옥(36)-윤현숙(34·여)-조윤후(6)-조윤민(1) 가족, 서유경(26·여)-최찬례(49·여) 가족, 이명옥(28·여)-노정숙(28·여) 친구 ●현지 가이드 박진완(34) 안동환 이재연기자 sunstory@seoul.co.kr
  • [이젠 포스트 BRICs] (15) 카자흐스탄 (상)

    [이젠 포스트 BRICs] (15) 카자흐스탄 (상)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경제수도로 불리는 알마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엔 벤츠, BMW, 포르쉐,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 대리점이 넘쳐났다. 먼지가 자욱한 시내에서도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 최고급 승용차 등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거리에 유리창이 깨진 전동차와 전동버스, 만든 지 20년이 넘는 러시아제 LADA 승용차도 함께 질주하고 있다. 아스팔트는 곳곳이 파여 있다. ●오일머니·천연자원으로 급성장 지난 1991년 12월 구(舊)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 경제는 2000년부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2000년 경제성장률 9.5%를 시작으로 2004,2005년 2년 연속 9.4%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0.6%로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같은 경제성장은 가계소득 수준을 끌어올렸다.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83달러. 독립국가연합(CIS) 중 러시아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알마티나 수도인 아스타나 등 주요 도시의 1인당 GDP는 1만∼1만 1000달러로 러시아를 뛰어넘었다. 이 같은 급성장의 배경에는 원유와 천연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원유매장량은 322억배럴로 세계 7위다. 금·은·구리·아연 등의 매장량도 세계 10위권이다. 카자흐스탄 국내 텔레비전 방송인 NTK는 뉴스가 끝나고 일기예보 전에 두바이산·북해산 등 국제 유가, 금·은·구리·텅스텐 등 각종 광물의 국제가격을 알려준다. 원유와 천연자원의 비중이 카자흐스탄에서 얼마나 큰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카자흐스탄 경제경영대학(KIMEP) 이상훈 교수는 “지난해 카자흐스탄의 분야별 성장률은 금융 43%, 건설 33%, 통신 20%를 기록했다.”면서 “에너지는 6.5%에 불과했지만 실질적으로 석유 등 자원거래 대금을 위한 금융거래, 원유생산을 위한 플랫폼 건설 등 모두 에너지, 자원 등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카자흐스탄의 석유와 천연자원을 탐내고 있다. 지난 10년 간 중앙아시아에 투자된 외국인투자(FDI)의 80%이상이 카자흐스탄에 집중됐다. 특히 카스피해 인근의 석유개발 등 자원개발에 몰려 있다. 카자흐스탄은 오일머니를 종자돈으로 금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뛰어넘어 CIS 금융허브로 발돋움하려는 계획이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금융·무역허브로 등장한 중동의 두바이가 모델이다. 중동에 두바이가 있다면 중앙아시아, 러시아권에서는 카자흐스탄이 있는 셈이다. 특히 알마티를 지역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엔 특별금융센터로 외국투자유치와 외국기업 기업공개(IPO) 등을 지원하는 알마티 파이낸셜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아리스타노프 아르켄 알마티 파이낸셜센터장은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꿈꾸듯, 카자흐스탄도 러시아권의 금융허브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개발독재시절과 비슷 카자흐스탄의 경제발전에서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1991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05년 삼선에도 성공했다.2012년까지 임기가 보장돼 20년 이상 권좌에 머물게 됐다.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외국인에게 투자의 문을 활짝 열었다. 외국인 투자를 바탕으로 한 경제드라이브는 현재의 성공을 낳았다. 독립 직후 중앙아시아 최빈국 가운데 하나라는 오명도 벗었다.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 체코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전까지 중앙아시아의 맹주였던 우즈베키스탄을 제치고 지역맹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극심한 빈부격차, 도·농(都農) 갈등 등이 생겨나고 있다. 투자할 돈은 넘쳐나는데 투자할 만한 제조업체는 없다. 주식시장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알마티, 아스타나 등 주요 도시의 땅값, 건물 가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자고나면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할 정도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서 2년 동안 병원세탁일을 했던 미하일(29)은 “집값이 한국에 가기 전보다 2배 이상 올랐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도시와 농촌과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이 교수는 “알마티 등 도시지역의 1인당 소득은 우리나라의 2000년대 초반수준인 1만 1000달러 수준이지만 농촌지역의 경우 2000∼3000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newworld@seoul.co.kr ■ 현지 비즈니스때 유의점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 올림픽 축구나 월드컵 예선에서 카자흐스탄과 우리나라가 맞붙은 적이 있을까. 정답은 한번도 없다. 카자흐스탄은 유럽 예선을 치르기 때문이다. 인근의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아시아예선을 치르지만 카자흐스탄은 다르다. 이들은 스스로를 유럽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유라시아’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아시아이기는 하지만 유럽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코트라(KOTRA) 알마티 무역관 박성호 관장은 “몸은 동쪽(아시아)에 있지만 고개는 서쪽(유럽)을 보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소비나 생활스타일도 유럽, 특히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지향한다. 모스크바에서 유행한 것들은 6개월이 지나면 카자흐스탄에서도 유행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또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 바다와 같이 넓은 카스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국토가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거의 모든 물류가 수도인 아스타나가 아닌 남쪽 알마티로 들어온다. 도시간 거리도 멀다. 하지만 철도 등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돼 있지 않다. 비행기나 육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물류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13년 전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김상욱씨는 “이곳에서는 비즈니스의 단계, 단계마다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법인 설립·관리 대행 등을 하고 있는 김씨는 “약탈경제라고도 볼 수 있는 유목생활을 경험해서인지 비즈니스를 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신뢰가 낮아 계약서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은 131개의 다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카자흐인 절반 이상은 생김새나 정서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 카자흐인들은 정이 있다. 반면 두 번째로 많은 러시아인들은 에누리나 정보다는 시간에 철저하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다. 때문에 현지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작은 돈은 러시아 사람들이 벌어주고, 정작 큰 돈은 카자흐 사람들이 벌어준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인맥을 통한 비즈니스는 금물이다. 카자흐스탄 사람 중에는 정부 또는 유력인사와 친분을 자랑하면서 인맥이나 자금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장된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한사람만 건너면 다 대통령이나 총리랑 친하다.”면서 인맥을 너무 믿지 말 것을 당부했다. newworld@seoul.co.kr ■ 진출 10년만에 1000억원대 자산 일군 천산개발 김영남씨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올림픽으로 치면 이제 예선전을 통과한 셈입니다. 앞으로 1조원을 벌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영남(47)씨는 대뜸 ‘1조원’이라는 금액을 말했다. 한국사람들에겐 ‘금메달리스트’인 김씨는 카자흐스탄에선 ‘성공한 사업가’로 통한다. 김씨는 부동산개발과 자원개발을 하는 천산개발을 설립했다. 천산개발은 알마티에서 성원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아 183가구를 짓고 있는 ‘상떼빌Ⅰ’의 시행사다. 현재 천산개발의 자산은 부동산과 사우스 카르포브스키(South karpovsky) 석유광구 지분 등 1000억원대에 달한다. 김씨는 1997년 카자흐스탄을 찾았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레슬링 국가대표 감독, 삼성생명 레슬링 선수단 감독 등을 거쳤다. 월급과 연금 등 매달 1000여만원을 받던 그가 어머니 등 가족들의 반대에도 새로운 터전을 찾은 것은 ‘공허감’때문이다. 그는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리그가 있는 종목과 달리 레슬링은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목표를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그가 다른 나라가 아닌 카자흐스탄을 택한 것은 서울 올림릭 레슬링 결승전에서 자신과 맞붙었다 패한 다울렛 툴루카노프(46)의 영향도 컸다. 서울올림픽 이후 카자흐스탄 체육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툴루카노프는 서울 올림픽 결승전을 인연으로 김씨와 의형제를 맺었다. 김씨의 빠른 정착을 위해 툴루카노프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김씨의 성공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았다. 정착 초기에는 수입자동차를 팔기도 했고 시장에서 주방용품을 팔기도 했다. 그가 부동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볼링장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알마티에 3개의 볼링장을 차린 그는 임대가 아니라 아예 건물을 샀다. 볼링장 영업수익보다 건물값 상승 수익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외국인이 부동산 인·허가 등을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떼빌Ⅰ 인·허가에도 꼬박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사업에는 무엇보다도 인맥이 중요하고 인맥이 탄탄하면 인·허가도 빨리 받아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한국사람이라는 점은 강점’이라고 강조했다.‘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시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우리는 카자흐스탄의 발전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우리가 30년 동안 겪은 것을 카자흐스탄에서는 10년에 겪고 있는 것”이라며 “카자흐스탄이 다음에 어떤 단계를 겪을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에는 주식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긴 했지만 앞으로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주식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를 대비해 미리부터 주식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석유나 천연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면서 “과열 우려를 낳고 있는 부동산 시장도 2년정도는 상승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내년쯤 우리나라와 카자흐스탄 양국에 스포츠 장학재단을 만들 예정인 김씨는 “레슬링을 하고 5년이 지나자 넘기는 기술을 이해했고 10년 뒤에는 넘기기 도사가 됐다.”면서 “카자흐스탄에 온 지 이제 10년이 되니까 돈이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고 활짝 웃었다. newworld@seoul.co.kr
  •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봄볕…꽃길… 1만여 하나되어 달렸다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봄볕…꽃길… 1만여 하나되어 달렸다

    1만여 ‘달림이’들이 환상적인 코스와 화창한 봄 날씨를 만끽하며 자연스레 하나가 됐다.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과 한강시민공원 난지·망원지구 일대에서 열린 ‘제6회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1만여명의 마라톤 마니아들은 코스를 완주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최고 기온이 24도로 예상보다 높지 않은 데다 시원한 강바람이 땀방울을 식혀 주었다. ●완주의 즐거움, 우승은 기쁨 두 배 개인 자격으로 5명이 참가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마라톤동호회 회원들은 하프코스와 10㎞ 부문을 석권하는 엄청난 ‘내공’을 과시했다. 남자 하프코스에서 우승한 신호철(41)씨는 “지난해 6위에 그쳐 입상을 못했는데 1등을 해서 너무 기쁘다.”면서 “진행 요원들이 잘해 줘서 편하고 즐겁게 뛰었다.”고 말했다. 풀코스(42.195㎞) 최고기록 2시간37분6초의 아마추어 최고수인 신씨는 “기록이나 완주 횟수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자 10㎞에서는 신씨의 동료인 여흥구(31)씨가 몸풀듯 가볍게 우승했다. 여자 하프코스에서 우승한 유정미(37)씨는 충남 공주에서 올라온 마라톤 마니아다. 하프코스만 86번째 도전이라는 유씨는 “처음 우승해서 무척 기쁘다. 상품으로 받은 쌀과 서울신문 1년 구독권도 유용할 것 같다.”면서 “5㎞에 출전한 남편이 마라톤에 재미도 느끼고 살도 뺐으면 좋겠다.”며 남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결승선 프러포즈 눈길 결승선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한 커플도 있었다.10㎞ 부문에 출전한 박연철(29·경희의료원 레지던트)씨는 여자친구 박윤정(26·이화여대 대학원)씨가 결승점에 도착한 순간 후배들과 함께 “마라톤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준 당신! 인생을 끝까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윤정아! 오빠랑 결혼하자.”란 플래카드를 펼쳐 주위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박씨가 장미꽃 100송이를 건네며 청혼하자 여자친구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군대·동호회원끼리 ‘으으’ 회사나 동호회 등 단체 참가자들도 두드러졌다. 단체상을 받은 LG카드는 사내에 마라톤 동아리가 따로 없지만, 홍보팀 주도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LG카드 채권기획팀의 이승철(32)씨는 “동료들과 함께 뛰니까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덩달아 높아진다. 앞으로도 서울신문 마라톤대회에 계속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권영호(42) 중령 등 장교 10명과 사병 22명도 하프코스를 여유 있게 완주했다. 권 중령은 “내가 워낙 뛰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보다는 부대원들이 함께 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자원자를 받았는데 너무 많아 32명만 추렸다. 부대원들끼리 팀워크도 다지고 좋은 날에 좋은 곳에서 뛰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마라톤 동호회 ‘달리는 사람들’ 회원 29명도 5㎞,10㎞, 하프코스에 출전해 갈고 닦은 기량을 뽐냈다. ●다문화가정·외국인도 함께 어성태(35)씨와 러시아인 부인 올가(29), 아들 슬라바(9)도 마라톤 축제에 참가했다.10년 전 어씨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가정을 이룬 이들은 슬라바를 응원하기 위해 월드컵공원을 찾았다. 뜀박질을 좋아하는 슬라바가 하프코스를 고집했지만 어씨가 간신히 말려 5㎞에 출전했다. 슬라바는 “우주 비행사가 꿈이에요. 비행사가 되려면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 저녁 3㎞씩 뛰었어요.1등 상금으로 엄마랑 쇼핑하고 싶었는데 아쉬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판교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코리 시클리스(32)도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시클리스는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너무 게을러져 좀 더 활기차게 살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강변을 따라 달려 코스도 좋고 날씨도 환상적이어서 참가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톤은 영원한 내사랑 지난해 대회의 최고령 완주자였던 최근우(84)씨는 올해도 역경(?)을 딛고 10㎞를 완주했다. 레이스 도중 넘어져 팔과 어깨에 찰과상을 입고 무릎은 피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깊게 파였다. 최씨는 “그늘이 져서 돌이 나온 걸 보지 못해 넘어졌다. 힘들었지만 완주해서 기쁘다.”며 웃었다. 키즈러닝 고학년(초등학교 4∼6학년) 부문에서 1등을 한 김규민(11·수원 태장초6)군은 매일 두 시간씩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마라톤 꿈나무’다. 김군은 “달릴 때는 힘들지만 완주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봉주 아저씨 같은 마라토너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키즈러닝 저학년(1∼3학년) 부문에서는 장지웅(9·인천 동수초3)군이 우승했다. 장군은 “어제 발목을 삐어서 걱정했는데 우승까지 할 줄 몰랐어요. 커서 도둑 잡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임일영 이경원 한상우기자 argus@seoul.co.kr
  • EU·러시아 외교관계 갈수록 꼬인다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연합(EU)과 러시아의 관계가 갈수록 냉랭해지고 있다. 에스토니아 등 옛 소련에 속했던 EU 신규 회원국과 러시아의 갈등으로 관계가 악화된 양측은 18일(현지 시간) 러시아 사마라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EU순회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당국이 시위를 추진하던 반체제인사들을 체포한 것을 놓고 날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반체제 인사들이 체포된 것과 관련, 메르켈 총리는 “일부 인사들이 사마라에 오지 못하고 저지당한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그들의 견해를 표명할 기회를 갖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경찰이 시위를 앞두고 취한 예비조치”라고 맞받아친 뒤 에스토니아 등 구 소련에서 EU에 가입한 나라에서 러시아인들의 인권이 탄압받고 있다고 역공했다. 현재 양측의 가장 큰 현안은 올해 만료되는 동반자 관계 재협상 문제. 러시아의 육류 금수조치에 반발한 폴란드는 EU와 러시아의 포괄적 경제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 협상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또 리투아니아도 러시아의 10개월 에너지 공급 중단에 항의해 동반자협상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에스토니아가 옛 소련시절 세운 소련군 참전 기념동상을 철거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러시아는 EU측에 이들 신규 회원국들을 설득해달라고 요구해왔고 EU는 불가함을 밝혀왔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도 양측은 종전 입장만 확인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아무런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동선언도 채택하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더 악화됐다. EU 지도부는 러시아가 올 연말과 내년 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민족주의가 강화돼 양측의 관계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vielee@seoul.co.kr
  • [깔깔깔]

    ●태양에 가는 법 러시아인과 미국인, 금발의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아인 : “우리가 처음 우주에 갔지.”미국인 : “달에는 우리가 처음 갔지.”금발의 여성 : “우리가 처음으로 태양에 갈 거야.”러시아인과 미국인이 고개를 저었다. “바보야, 태양에는 착륙할 수가 없어. 타 죽을 거라고.” 그러자 금발의 여성이 대답했다. “밤에 가면 되지.”●아내? 어머니?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 밤 한 남자가 와서 스위트롤 두개를 달라고 했다. 그 날씨에 고작 스위트롤 두개를 사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제과점 주인으로서는 놀라웠다. “결혼했어요?” 하고 그는 손님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이렇게 궂은 밤중에 심부름을 내보내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 中, 阿진출 위기 맞나

    中, 阿진출 위기 맞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수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 중인 중국 기업과 중국인들이 무장단체나 반군들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사건·사고에는 정치적 요소도 내포돼 있어 중국의 근심이 깊어가고 있다. 에티오피아 동부지역의 한 유전에서 일하던 9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무장 괴한들의 총격에 사망했다고 25일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7명의 노동자는 피랍됐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당한 피습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중무장한 괴한들은 200여명으로 알려진다.100명 이상의 군인들이 포함돼 있었으며 50여분간 총격전이 벌어졌다. 에티오피아 직원 65명도 사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 시설은 한때 괴한들에게 점거됐다. 중국은 현장 조사단을 급파했으나 지난 24일 벌어진 일이라 아직 정확한 원인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무장 세력을 맹비난하고, 에티오피아 당국에 납치된 노동자들의 구출에 최대한 노력을 다해줄 것과 안전 보장을 촉구했다. 이번 피습은 과거 다른 사건에 비해 ‘정치색’이 훨씬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에티오피아의 분리주의 반군단체 ‘오가덴 민족해방전선(ONLF)’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자신들이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임을 주장했다.ONLF는 자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외국 정유사에 떠날 것을 수차례 경고해왔다.ONLF 대변인은 “우리 허가 없이는 누구도 우리 땅에서 석유를 채굴하도록 놔둘 수 없다.”면서 “중국은 식민주의자로 변하고 있다. 러시아인과 미국인들이 그랬는데, 이제는 중국인들이 그렇다.”고 주장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에티오피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앞으로 ONLF 같은 무장 세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이는 비단 에티오피아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무장단체들이 국가 석유지분의 일정량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습격을 감행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여러 유전에서 독점적인 석유 개발권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 각국은 치안 능력이 크게 부족, 중국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9명의 중국인들이 납치됐고,3월에는 2명이 추가로 피랍돼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른 5명의 통신기술자들도 2주간 납치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향한 중국의 발걸음이 여기서 늦춰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의 절대적인 ‘전략 지역’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에너지 공급기지’일 뿐 아니라 상품 판매처이다. 나아가 국제 정치·외교에 있어 주요한 파트너이다. 아프리카 일부 나라들에 대해 거론되고 있는 인권 문제에 ‘내정 불간섭’ 원칙을 세우고 유대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최근 아프리카 최대 석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의 옛 수도 라고스 주변에 대규모 자유무역구를 조성, 아프리카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아시아 지역 맹주를 다투는 일본 각계에서는 “아프리카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 jj@seoul.co.kr
  • 옐친 25일 장례식… 러시아 ‘국가 애도의 날’ 선포

    옐친 25일 장례식… 러시아 ‘국가 애도의 날’ 선포

    동서 냉전시대를 종식시켜 ‘공산주의를 무덤에 보낸 사나이’로 불리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3일(이하 현지시간)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은 심장혈관 질환 때문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크렘린궁은 24일 옐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25일 모스크바에 있는 노보데비치 사원에서 거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보데비치 사원은 니키타 흐루시초프 옛 소련 전 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 작가 안톤 체호프 등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또 25일 예정됐던 푸틴 대통령의 연례 국정연설은 옐친의 장례식 관계로 26일로 하루 연기됐다. 옐친 전 대통령이 숨진 모스크바 중앙클리닉병원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원장은 “옐친이 이날 15시45분 숨졌으며, 사인은 심장혈관 조직의 활동성 부족 때문”이라고 밝혔다. 옐친은 중앙클리닉병원에서 1996년 11월 심장수술을 받은 바 있다.99년 12월31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모스크바 근교의 바르비하 별장에 살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옐친이 러시아의 첫 대통령으로서 러시아와 전 세계 역사 반열에 올랐다면서 고인이 민주국가로서 러시아의 탄생에 기여했다고 치하했다. 세계 각국 정상급 인사들도 그를 “역사적인 격변기에 활약한 용기 있는 투사”로 치하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옐친이 “러시아의 정치·경제 개혁을 진전시킨 것은 물론 동서화해를 촉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옐친이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부인 로라 여사와 함께 그의 타계를 깊이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옐친의 정치적 경쟁자이기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도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러시아 현 정부에 대항하다가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출신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옐친이 자신에게)“자유의 의미를 가르쳐 준 교사와도 같은 사람”이었다며 “러시아는 탁월한 개혁가를 잃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진정한 러시아인이었으며, 그만큼 러시아에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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