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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21세기를 향해 뛴다(15대 그룹의 신도약 전략:14)

    ◎“아태시대 주력항공사로 비상”/첨단 보잉기등 총65대 확보/「2천년형 인재」 학사적 양성/타이어·유화도 병행육성… 총매출 7조 목표 「기업을 키우려면 먼저 사람에 투자하라」. 아시아나항공을 설립,일약 국내 15대 재벌속에 끼어든 금호그룹 박성용회장의 경영신조이다. 서울의 남산3호터널 입구에 자리한 금호그룹 본사 사옥인 아시아나빌딩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아담한 도서관과 마주친다.규모는 작지만 늘어선 서가에는 2만여권의 각종 도서가 꽂혀있다.장서의 종류도 경제·경영·법학·어학 등 전문서적은 물론 문학·종교·역사 등 교양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도서관 한쪽 구석에는 열람용 테이블과 최신식 대형복사기가 놓여 있어 사원들이 언제든지 필요로하는 정보를 손쉽게 뽑아볼 수 있도록 돼있다.요즘은 정부의 북방정책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그밖에 동구권 국가들의 언어·역사·지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대출되고 있다는 것이 사원전용 도서관 직원의 얘기다. ○1시간씩 자율학습 금호그룹은 상오9시에 업무를 시작하지만 모든 사원들은 8시까지 출근해야만 한다.출근시각을 앞당겨 매일 1시간씩 자율학습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자율학습시간에는 전사원이 10여명씩 소그룹으로 나뉘어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선택하는 사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호그룹 사원들중 근속년수 3년이상 된 대리 이상의 직급자는 모두 「금호MBA과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또 하나의 필수코스를 밟아야 한다.금호MBA는 금호그룹이 서울대 경영정보연구소와 연세대 산업경영연구소,고려대 기업경영연구소,서강대 경영대학원 등 4개 대학에 위탁해 금호사원들만을 위해 별도로 개설한 경영학 석사과정으로 과목·수강기산 등 교과과정은 정규대학원과 동일하지만 이수기간을 5개월로 단축,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울대 20명,연세대·고려대·서강대 각 30명씩 한기에 1백10명이 이 과정을 밟고 있으며 서울대의 경우 지난 7월 3기를 배출하고 현재 4기가 교육을 받고 있다. ○그룹 약진 승부처로 이수기간중에 회사근무가 면제되며 월급 전액이 지급되고 학비도 일체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금호MBA 이수자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사원에게는 특별승진의 선물이 안겨지지만 성적미달자는 지원받은 학비 전액을 회사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인사·승진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밖에도 금호그룹은 박회장의 선도로 본사 사옥 전체를 금연빌딩으로 선포,회사에서 사원들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소문나 있다. 흡연이 불필요한 체력소모와 근무·학습능률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룹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기업을 만들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주체가 누구입니까.기업스스로 필요한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장래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미예일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박회장은 더욱 치열해져가는 21세기 국제경쟁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방면에서 유능한 인재를 미리 양성하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타이어·운수·항공 등이 주력업종인 금호그룹은 지난해 2조2천억원 수준이었던 그룹총매출액을 오는 2000년에는 7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를 위해 진출업종 가운데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고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판단되는 타이어·항공·육상운수 및 건설·석유화학 등 4개분야에 전력투구한다는 전략이다. 타이어부문에서는 90년대말까지 매출액 2조원 달성을 목표로 고품질과 판매력 강화에 역점을 둔 장기경영전략을 추진중이다.세계 타이어업계는 최근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규모를 거대화 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따라서 미·일·유럽 등 선진국의 유수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기술개발·사무자동화·공장자동화 등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나갈 계획이다. 금호가 2000년대 그룹사활의 승부처로 삼고 있는 분야는 새로 참여한 항공부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88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총1천1백50억원의 누적적자를 내고 있으며 지난해에만도 적자규모가 3백46억원에 이르고 있다.이같은 누적적자는 항공산업의 특성상 초기 투자단계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매출액이 90년 1천79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천9백38억원으로 두배 가까운 급신장을 하고 있어 오는 93년에는 흑자기조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보잉737기와 보잉767·747F 등 첨단기종 6대를 도입,보유대수를 22대로 늘릴 예정이며 오는 2000년까지 매년 3∼5대씩을 추가 도입,총65대를 확보해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력 항공사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전략을 갖고 있다.이밖에 석유화학분야도 90년대말까지 매출액 1조원의 세계적인 종합소재메이커로 키우기 위해 그룹이 전력을 쏟고 있다.
  •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 현장르포/(원동 러시아를 가다:4)

    ◎1863∼64년 한인65명 첫 공식 이주/연해주 이민사/맨처음 정착지 지신하·카자키 창설/1850년대엔 러시아땅 밀정작/중앙아 추방전 하산라이온 주민의 85% 점유/인근 포시예트,해삼위 보조항으로 개발 추진 ○동지이명 가능성도 블라디보스토크역사연구소의 알렉산더 페트로프박사(40)가 갖고있는 러시아 주정부 기록사본에는 연해주에 한인들이 최초로 이주해온곳은 자바이칼스키 카자키라는 마을로 돼있었다.하산 라이온의 수도인 슬라비앙카와 하산읍 중간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의 우리동포들은 선조들의 최초이주지를 두만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신하라는 곳으로 믿고있었다.자바이칼스키 카자키와 지신하가 동일장소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겠으나 어느쪽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최초이주시기에 대해서도 1863년 12월과 이듬해인 64년 1월의 두가지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연해주 한인들은 당시 선조들이 쓰던 음력과 러시아력 차이로 기록상 그같은 혼란이 생겼을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어쨌든 1863년말에서 1864년초 사이에 한인들의 최초이주가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최초이주자수는 13가구 혹은 14가구라는 기록들이 있으나 총수는 65명이었던 것으로 돼있다.이들은 당시 러시아 국경초소에 정식으로 이주신청을 해,그곳 초소장이 연해주지사에게 이들에 대한 정착허가를 요청,이주허가서를 받아주었다고 한다.최초로 넘어온 한인들은 무척 구차한 농민들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박 표트르옹(77)은 한인이주시기에 대해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박옹은 『사실은 1850년대부터 많은 한인들이 몰래 두만강을 건너와 산지를 개간,곡식을 심고 가을이면 다시 와 추수해서 몰래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많이 들었다』고 했다.당시 러시아는 국경경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지만 강을 건너다 잡혀서 죽은 한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박옹은 어릴 때 노인들로부터 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8명의 조선인이 두만강을 건너려다 조선병졸들에게 잡혀 모두 사형을 당하게 됐는데 그중 한명은 12살짜리 소년이었다.그런데 함께 잡힌 7명의 어른중 한분이거짓으로 그 소년을 자기 아들이라고 말해 그 소년은 목숨을 건지게 됐다.당시 조선형법에서는 부자를 한꺼번에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소년은 후일 연해주로 넘어와서 살았는데 자기를 구해준 7분의 제사를 같은 날 모두 지내더라』는 이야기였다. ○시베리아철도 연계 우수리스크에 거주하는 전 니콜라예비치옹(90)은 1875년 조부 때 고향인 평양에서 연해주로 이주해온 한인 3대로 하산 라이온의 파타셰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전옹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기 전까지 하산 라이온에는 전체주민의 85%정도인 3만여명의 한인이 살고있었다』고 말했다.지금 하산 라이온의 인구는 총4만여명,그러나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고 한인은 거의 살지 않고 있다. 하산읍에는 한인으로 유일하게 사할린 출신의 한순옥이라는 중년부인이 철도통역원으로 일하고 있을 뿐이다.크라스키노를 비롯해 포시예트에서 하산읍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과거 한인들이 농사를 짓던 평야지대는 갈대만 우거진채 전답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수가 없었다.다만 훈춘일대의 중국인들이 간혹 육로로 국경을 넘어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훈춘으로 통하는 도로 곳곳에 러시아어와 중국어 표기가 나란히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하산역에는 북한·러시아간 농업계약에 의해 아무르주 등에 농사를 지으러 왔다가 겨울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북한노동자 20여명이 북한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김씨라고 밝힌 30세의 한 북한노동자는 『콩·채소를 주로 재배하는데 7월부터 12월까지 일하고 겨울휴가를 지낸 다음 3월에 다시 아무르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철로폭이 북한 것보다 조금 넓어 하산에서 두만강을 건너기 전에 객차를 들어 바퀴를 좁힌 다음 북한쪽 레일에 얻는다고 했다. 승객들은 객실에 그대로 앉아있으면 된다. 스테파노프 하산읍 최고회의의장은 『최근 한 국제기구의 연구조사팀이 와서 하산지역의 동해안 일대를 답사하고 이 일대 해안의 물·공기·모래의 청정도가 관광지로 개발하기에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관광지로의 개발가능성에도 큰 기대를 갖고있었다. 연해주 한인들이 목구라고 부르는 포시예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구상중인 소위 「대블라디보스토크」개발계획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보조항으로서 큰 역할을 맡게돼있다.특히 슬라비앙카에서 하산읍에 이르는 1백㎞의 도로는 90년말 완공된 비포장 2차선 도로로서 앞으로 포장만 되면 훌륭한 산업도로로서의 기능을 할수있을 것같았다.하산이나 포시예트항을 통과할 하물들이 이 도로를 통해 슬라비앙카로 가면 그곳에서 배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될수있기 때문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철도로 모스크바를 비롯,러시아전역으로의 하물수송이 가능하다. 포시예트는 3개의 선착장을 갖춘 인구 2천명의 소항으로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에게 철저히 폐쇄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개방,외국투자가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고르부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포시예트 최고회의의장(32)은 『현재 한국·일본등으로 수출되는 석탄이 이 항을 통해 나가고 캄차카 등지로 나가는 연해주산 시멘트가 여기서 배에 실린다. 이 항을 통해 반입돼는 주산품은 일본제 산업용 금속튜브를 들수있다』고 말했다. 고르부노프의장은 그러나 『포시예트를 국제항으로 개발한다는 대원칙은 서있으나 예산이 없어 자체 개발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일본·중국이 국제항 건설에 필요한 투자에 참여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주택개량 집착 앞으로 대블라디보스토크 개발계획이 가동될 경우 포시예트는 분명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북한·중국·러시아의 3국국경지점인 하산읍까지 자동차로 2시간이고,30분 거리에 우수리스크를 통해 시베리아철도로 연결되는 마할리노역이 있다.특히 바다가 결빙되는 1∼2월을 제외하고는 배편으로 바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다. 화물선은 6시간,여객선인 경우 3시간이 걸린다. 포시예트를 국제항으로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과제는 도로·통신·숙박시설 등을 갖추는 일로 보였다.철도역인 마할리노역에서 포시예트까지는 비포장 1차선 도로가 유일한 연결선인데 하루에 몇번씩 부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소형버스가 유일한 수송수단이다.그외에 낡은 3인승 사이드카 몇대가 눈에 띌뿐이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호텔.명색이 국제항이라는데 외지인이 묵을 호텔이 단 한곳도 없다.기자도 이곳에 사는 유일한 한인인 김 텔미르선장(58)이 임시로 쓰는 선원숙소에서 이틀밤을 묵을 수밖에 없었다.식당도 물론 없고 상점이 2곳 있었으나 들어가보니 그곳 주민들만 쿠폰을 갖고와서 물건을 사갈수있게 돼있고 그나마 진열대는 거의 텅텅비어 있었다. 시험삼아 서울로 국제전화를 신청하려고 소비예트의장 사무실에서 교환번호를 돌렸는데 2시간 가까이 돌려도 교환수가 나오지 않았다. 고르부노프의장은『개발계획을 마련하는데 일차적인 장애는 바로 포시예트 최고회의 대의원들』이라고 색다른 고민을 토로했다.『부두노동자·사무원·선원·군부대 등 각계 대표 20명으로 최고회의가 구성돼있는데 모두들 출신지역의 도로건설·주택개량같은 것만 우선적으로 요구해 항구전체의개발안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계획이 실제로 결실을 맺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될 것같았다.
  • 학습부담 경감·지역특성화교육에 중점/초중고 교육과정 어떻게 바뀌나

    ◎교련 줄이고 야영·극기훈련등 추가/실업계도 음악·미술 필수과목 지정/국교 「바른생활」,공중도덕·질서지도에 역점 오는 95년부터 실시될 제6차 교육과정개정안은 초·중·고교 교육의 자율화및 지방분권화에 초점을 맞춘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교육부가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권을 독점해왔고 이에따라 학교별·지역별 특색이나 차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으로 지적돼 왔다. 이같은 반성위에서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권을 각 시·도 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재량에 대폭 위임함으로써 지역별로 실정에 맞는 교과내용을 짤 수 있도록 한 것이다.또한 새 교육과정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감안한 교육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특징은 초·중학교보다는 고교에서 특히 두드러져 오는 95학년도부터 고교의 교육과정은 편성·운영에 있어서 상당한 융통성과 탄력성을 갖게 될것으로 이해된다. 이와함께 국민학교 4·5·6학년의 경우 수업시간을 1주일에 1시간씩,중학교는 주당34∼36시간을 34시간으로 각각 감축하고 고교는 2백16단위를 2백4단위로 제한,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을 다소나마 덜게 됐다는 점도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1단위는 1주1시간씩 한학기). 또 중학교에 한문·컴퓨터·환경등 선택교과제를 처음으로 도입,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한 점은 두드러진 변화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고교의 경우 교육부 지정과목은 2백4단위중 86단위인 공통필수 10과목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도 교육청이 필수과목 1백6단위,일선학교가 선택과목 12단위를 각각 맡아 구성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각 시·도별 과정별 학교별로 교과목이 다양해지게 됐다. 교육부는 이같은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해 1년에 걸쳐 공청회 1회,현장교원세미나 1회,관련학회장협의회 1회,언론보도 1백20건,민원 건의 56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사상 처음으로 시안연구단계부터 공개해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때문에 여론수렴과정에서 지나치게 형평성을 잃은 집단이기주의적인 주장까지받아들임으로써 당초의 개혁의지가 다소 빛이 바랬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고등학교◁ 교육부가 지정하는 공통필수 과목을 84단위의 12교과에서 70단위의 10교과로 줄였다.윤리 국어 공통수학 공통사회 국사 공통과학 체육Ⅰ 음악Ⅰ 미술Ⅰ 공통영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택과목의 경우는 현행 34과목에서 60과목으로 확대했으며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학기당 이수과목을 현행 18∼20과목에서 12과목으로 축소 조정했다. 시 도 교육청이 결정하는 과목은 인문사회·자연·직업 등이며 또 각 학교는 교양선택등 2∼3개 과목을 자율로 정한다. 학생들의 적성·능력을 감안,현재 인문사회 자연 직업등 3종류인 이수과정에 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체육·예술 등을 기타과정으로 증설할 수 있게 됐다. 교련은 현행 12단위에서 10단위로 축소되고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특히 이중 4단위는 특별활동으로 야영 등산 극기훈련등 단체활동을 하게 함으로써 실제교련시간은 주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어든 셈이다. 국제화 개방화에 맞춰제2외국어를 10단위에서 12단위로 늘리는 한편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 선택과목에 포함시켰다. 환경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환경과학과목을 교양선택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게 했으며 국민윤리를 윤리로 그 명칭을 바꿔 시민·사회·직업윤리·윤리학적 판단을 강조토록 했다. 철학 논리학 심리학등 교양선택과목이 2단위에서 4단위로 늘고 실업·가정과목에는 진로·직업과목이 신설됐다. 이와함께 국사의 경우 일반계 6단위,상업계 4단위등 계열과 과정에 차이가 나는 과목별 이수단위를 동일하게 하고 음악 미술을 실업계에도 필수과목으로 했다. ▷중학교◁ 2·3학년중 주2시간씩 교육하던 국사가 사회과목에 통합되고 전학년에서 주당 1∼2시간씩 컴퓨터 한문 환경등을 선택교과목으로 채택했다. 전학년 모두 주당 2시간이던 특별활동을 주1∼2시간으로 조정,각 학교 재량에 맡기고 주당 3∼4시간이던 2학년 수학과 과학을 각각 4시간씩으로 정해 수학과 과학교육을 강화했다. ▷국민학교◁ 바른생활 과목이 1·2학년에만 국한되고 교과내용에서도 기존의 사회중심에서 공중도덕 질서의식 교통안전교육등 기본생활 습관과 예절위주로 가르친다. 대신 「바른생활」에서 분리된 사회영역은 주당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어난 자연과목인 「슬기로운 생활」에 흡수된다. 현재 교육부가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은 1학년」은 각 시·도교육청이 구성하게 된다. 3∼6학년 과정에서 주당 1시간의 학교재량시간이 신설돼 컴퓨터·영어·한자 등을 학교 선택에 따라 가르칠 수 있다.또 4∼6학년에서 가르치던 실과과목을 3학년부터 가르치며 대신 학급시간을 주당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였다.
  • 원동러시아를 가다:1

    ◎본사 이기동특파원 현장르포/두만강하구/「한민족의 한」 서린 동토… 남북합작 꿈 “일렁”/개방바람 타고 「3각특구」로 각광/“한국서 왔다”에 군차량까지 선뜻 내주며 취재 안내/개발결실땐 한인정착촌이 중심권으로 부상 시베리아의 동쪽끝 러시아 원동지방이 1월1일 블라디보스토크 개방과 함께 긴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겨울이면 영하 40도를 오르내리고 바다가 얼어붙는 이곳은 우리민족의 근대사 한토막이 버려져있는 한맺힌 땅이기도 하다.구한말 굶주림을 견디다못해,그후에는 일제의 핍박에 고향땅을 두고 두만강을 건넌 우리 선조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곳이다.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끌려가기까지 20여만명의 선조들이 그땅에서 살았고 지금도 10여만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곳이다.서울신문은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을 이곳으로 보내 「금단의 굴레」를 벗어던진 원동러시아의 변모하는 모습과 거기서 살아온,그리고 살고있는 한인들의 실상을 취재,신년특집기획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두만강­.일제통치하 나라 없는 우리 민족이 앓아야 했던 이산과 망향의 상흔을 가장 가슴아프게 전해주는 민족의 강. 나라 잃은 백성들,조국땅에서 굶주리고 버림받은 숱한 우리 혈육들이 이 강을 건너 만주로 시베리아로 흩어져간 한맺힌 강이다.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반세기.서울에서 기차로 5∼6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이 강을 가기 위해 기자는 남의 땅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블라디보스토크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다시 기차로 10여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분단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영하40도 오르내려 두만강을 끼고 있는 북한·러시아의 국경도시 하산은 4백여 가구에 주민 1천명이 사는 작은 강변마을이다.불과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외국기자라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금단의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블라디보스토크,나홋카,포시예트,하산지대를 잇는 경제특구개발에 포함된 탓에 외국인들에게도 개방,개발 분위기에 조금씩 들떠가고 있다.하산마을 초입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설치된 국경경비대 검문소의 차단기는 말끔이 치워져 이방인의 출입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하산지구 국경경비를 관장하는 슬라비앙카주둔 국경경비대에 취재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포시예트 최고회의의장을 찾아갔더니 젊고 활기찬 고르부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32)의장은 공식적으로 하산에 취재온 「최초의 한국기자」라며 협력해 줄 것을 흔쾌히 약속했다. 2시간만에 군당국으로부터 『취재해도 좋다』는 정식허가가 나왔고 놀랍게도 국경경비대 포시예트지구에서 군용 지프까지 취재차량용으로 제공해 주면서 서툴지만 한국어를 곧잘하는 장교 한사람까지 따라붙여 주었다. ○외국인에 최근 개방 잿빛 날씨속에 기자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만강은 수량이 많지 않아 얼어붙은 강물이 강폭의 절반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한반도와 러시아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인 두만강 철교위로 때마침 목재와 소련제 카마즈 트럭을 가득 실은 열차 한대가 북한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산읍 최고회의의 스테파노프 이반 블라디미로비치(31)의장은 길이를 제외하고는 두만강철교에 대한 소상한 소개를 해주었다.북한에서는 조소친선교라 부르고 러시아측에서도 같은 뜻의 러시아어로 「모스트 드루즈바」라고 부르는 이 철교가 개통된 것은 1959년 8월.그 이전에는 해방직후인 46년 자동차 목교가 이 자리에 건설됐었고 51년 철도목교가 대신 들어섰는데 57년에 있은 연해주(프리모리 크라이)대홍수 때 이 철도목교가 파괴돼 잠시 임시철교가 가설돼 있었다. 스테파노프의장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두만강 일대 개발계획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북한은 향후 20여년에 걸쳐 총3백억 달러를 투자해 이 일대에 세계최고수준의 공업지대를 조성한다는 개발안을 91년 10월 밝힌바 있다.일차적으로는 북한의 선봉,러시아의 포시예트,중국 훈춘으로 연결되는 소3각권으로 국제적인 경제특구를 이 지역에 만든다는 의욕적인 개발계획이다. UNDP(유엔개발계획기구)가 적극 나서고 남북한과 중·소·일등 주변국 모두가 적극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는 두만강하구개발계획이 결실을 맺을 경우 하산지구 일대는 그 중심권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북한·중국 3국 국경이 연결되는 교통요충지로서 하산을 통하면 기차 자동차로 그리고 두만강하구 준설작업이 완성되면 뱃길로도 어느 방향으로든 갈수 있다』면서 『남북한이 빨리 통일돼 한국의 질좋은 기계 제품들이 북한을 통해 철도로 이곳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만강 개발계획이 결실을 맺을 경우 하산일대는 우리 민족의 「한맺힌 땅」에서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통해 통일의 날을 앞당겨 줄 희망의 땅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산지역은 현재 소련극동지역에 거주하는 10여만명의 한인들에게는 바로 고향같은 곳이다.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하산마을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일대이기 때문이다.1863년 13가구의 한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최초로 자리를 잡았던 곳이 인근의 자바이칼스키 카자키 마을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립도서관의 한 문서보관소에는 당시 하산지역 러시아군수가 이들 한인 13가구의 이주를 정식으로 허가한 증명서가 보관돼 있는데 기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역사연구소의 알렉산더 페트로프(40)박사가 갖고 있는 이증명서 사본을 통해 한인들의 이주 연도와 가구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곳곳에 한글식 지명 한인들이 이주해와 살면서 이 지역 일대에는 앞산·하산·백산·수풍·남강 같은 한글식 지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하산마을 어귀에는 북한으로 연결되는 철도가 가로지르는 작은 둔덕같은 산이 있는 데 이 산밑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이 하산.러시아 이름 하산(XACAH)은 당시 한인들이 붙인 조선 이름 하산을 음차한 것이다. 연해주(프리모리 크라이)일대에는 지금도 그 당시 이런 식으로 한인들이 붙인 우리식 이름들이 많이 있는데 한인들은 지금도 이 이름들을 사용한다.예를들면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삼위.당시 해삼이 많이 잡히던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소왕령(우수리스크),수청(파르티잔스크·이 마을 옆을 흐르는 파르티잔스키강물이 맑다 하여 붙여진 이름),동개터(동쪽이 열리는 곳·나홋카),목구(포시예트),흥개호(항카호수),하마탕(라즈들느이),연추(그라스키노),신안천(페르바야 레츠카)등 현재 이곳에 사는 한인사이에 통용되는 이런 식의이름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남아있는 건 지명 뿐이 아니다.
  • 「남북평화협정」 결실의 두 주역

    ◎남측 정원식총리/소리없이 일하는 「토론명수」 「남북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타결을 이번에도 「현장」에서 조율해낸 정원식총리는 지난 5월24일 「강경대군 사건」여파로 물러난 노재봉총리의 뒤를 이어 입각,6공의 4기 내각을 이끌고 있는 조타수다. 지난 6월3일 강의중 외대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당시 파국으로 치닫던 정국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일화.임명 당시 「공안통치의 연장」이라는 야권과 재야의 주장과 달리 「조용히 일하는 내각」의 모습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화와 타협에는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원칙만은 끝까지 고수하는 「소신파」라는게 정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정총리는 전교조파동 당시 전국의 교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는가 하면 학생이나 교수들과 논쟁도 서슴지 않았으며 야당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하는 고행도 불사. 특히 세종대사태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직접 방문했다가 타고있던 승용차가 학생들에게 파손당하는 봉변을 겪기도했고 부산대에서는 학생들에게 감금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직접 현장을 뛰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에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극적으로 합의가 도출된 것도 따지고보면 정총리의 이같은 적극성,타협정신,원칙고수의 자세와 무관치 않은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황해도 재령출신인 정총리는 서울대 사대를 졸업하고 57년 미국에 유학,피바디대학에서 교육심리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63년부터 서울대 사대에서 교육학을 강의했다. 79년부터 서울사대학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심리학회장·교육학회장·교육개혁심의회 교육발전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학교안팎에서 교육발전에 힘써 왔으며 6공 2기내각에 문교부장관으로 입각,2년1개월의 장수를 누렸다. ◎북측 연형묵총리/권력서열 4위의 혁명2세대 정원식총리와 함께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타결을 이끌어낸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는 북한 권력서열 4위의 혁명2세대. 1932년 평남산인 연총리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북간도에서 살다가 해방후에돌아와 만경대학원과 김일성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북한의 대표적인 테크어 크랫이다. 훤칠한 키에다 당당한 체구,거무스름한 얼굴에다 오른 손을 번쩍들면서 활짝 웃는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김일성주석과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를 경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표정이 믿음직스럽다며 친근감이 든다는 사람도 적지않다. 그는 현재 정무원총리로 북한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처음 진출,88년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소련·동구권 등을 방문하는등 김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일어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총리는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는데 김정일의 신임 역시 두텁다고.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세번째 서울을 찾은 그는 비빔국수와 비빔밥을 좋아하는 대식가이기도. 부인 김성숙(57)은 김일성의 친척이며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 몰도바공서 무력 분규/“독립 반대” 러시아인들,경찰서 습격

    【치시나우(소몰도바공) AFP 연합】 소련 몰도바공화국내 러시아어 사용지역에서 러시아계 국가수비대들이 몰도바 경찰을 습격했다고 아나톨 플루가루 공화국치안장관이 7일 밝혔다. 플루가루 장관은 지난 1일 독자적인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 드네스트르 지역의 러시아 국가수비대들이 벤데리시 근교에서 몰도바 경찰차량을 향해 총을 쏘아 시민 1명이 중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슬로베지아시에서도 무장한 15명의 러시아인들이 경찰서를 점거했다고 전하면서 경찰은 그러나 어떠한 도발에도 대응치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응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충돌은 몰도바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일어난 것으로 드네스트르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이 선거를 반대하고 있다.
  • 유럽에 또하나의 「대국」출현 예고/우크라이나가 독립깃발을 올리면…

    ◎인구 5천만… 영토는 한반도의 3배/소 곡물의 40% 생산… 핵기지도 산재 지난 1일 실시한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표차로 소련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의사를 결집할 것으로 전망되는 우크라이나공화국은 여러면에서 러시아공화국 다음을 잇는 「버금」대공화국이다. 우선 인구가 5천3백여만명으로 러시아공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점이 우쿠라이나공의 큰 자원이다.그중 70%가 우크라이나인이며 러시아인도 20%를 점하고 있다.나머지는 백러시아·몰다비아·폴란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화국 영토는 60만3천㎦로 러시아공은 물론 카자흐공에 뒤지지만 한반도의 3배에 가깝다.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백러시아,서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남쪽으로는 몰다비아공화국 및 헝가리·루마니아와 접해 있다. 러시아공과 함께 1천년이 넘게 존속되어온 역사를 자랑하는 우크라이나의 「전통」적 우월감은 수도 키예프에서 한창 빛나고 있다.모스크바와 제정시대의 페테르부르크 이전 시절에 러시아를 대표하고 상징했던 고도 키예프인구는 2백60만명. 독자적인 우크라이나어를 가지고 있으며 공화국이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해온 이 언어는 슬라브계통으로 러시아,백러시아,폴란드어와 가깝다.지난해 러시아어를 밀어내고 공화국의 공용어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알짜배기 가치는 경제적 측면에서 평가되고 있어 러시아와 함께 소련경제의 핵심을 이루어왔다.소련 전체 공업생산량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소련 곡창지대라는 성가에 어울리게 소련곡물의 40%이상을 제공하고 있다.옥수수 생산은 소련전체의 2분의1을 담당하고 있고 또 육류와 감자생산량은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소련 연방의 대유럽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백러시아·카자흐공 등과 함께 핵무기 기지가 산재해 있어 지난 8월의 독립선언과 함께 그 귀속및 처리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게다가 우크라이나는 국민투표 전날 최대 40만 병력의 자체군대 창설계획을 재천명했었다. 우크라이나는 1천년이상 러시아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다.키예프는 989년 동로마제국을 몰아내고 13세기 타타르족의침입이 있기까지 번성했던 러시아 최초 국가인 루스공국의 수도였다. 1654년 러시아제국과 합병됐는데 서부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떨어져 나갔다.2차대전 후에야 우크라이나 영토가 통일됐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1917년 소생돼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창설했으나 1923년 소련연방 헌법의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그러나 유엔엔 개별 자격으로 가입됐다. 89년 권좌에서 밀려나기 전까지 강경 공산주의자 블라디미르 슈체르비츠키가 우크라이나를 강압정책으로 지배했었다. 지난해 3월 의회선거가 실시 됐으며 의회는 곧 소연방 법보다 우위의 자체 법률을 제정했다. 지난 8월 모스크바 군사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얼굴)

    ◎개혁파의 핵심… 소·동구문제 전문가 전기침 외교부장은 30여년만의 중소관계정상화와 13년만의 중·베트남 관계정상화를 실현시킨 현중국외교의 주인공.멀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국 외교관계 수립에서도 중국측 주역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88년 외교부장 취임이래 동구를 휩쓴 민주화물결,천안문사태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고립,냉전체제의 종식과 걸프전쟁및 소련공산주의의 붕괴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경제블록화 추세등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속에서 중국의 외교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치를 정립시킨 제1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1928년1월 상해에서 출생한 전부장은 중국공산주의 청년당원에서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전임외교부장이었던 오학겸부총리와 인연을 맺은뒤 이를 바탕으로 외교무대에서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온 외교관료출신이며 등소평의 개혁노선을 열렬히 지지하는 개혁파의 핵심이다.그는 소련대사관에서의 오랜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소련및 동구문제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어 외에도 영어와 불어등 외국어에 능통한데다 항상 뛰어난 화술과 유연하고 침착한 행동을 유지,동료외교관들은 물론 국내외 기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 “소 세달 식량 폭동”/KGB의장 경고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빅토르 이바넨코 러시아공화국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은 오는 12월중 소련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고 5일 경고했다.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고위 보좌관인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는 4일 『소련에 파시즘이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바넨코 의장은 이날 한 주간지와의 회견에서 급격한 가격 인상을 포함한 강력한 경제조치를 지난주에 발표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해 이미 환멸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고 관영 타스통신이 인용,보도했다. 그는 『12월중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으며 그가 사용한 「분트」라는 러시아어는 급작스럽고도 자연발생적인 폭력사태의 분출을 의미한다. 지난 8월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저항하는 쿠데타에 성공적으로 저항해 큰 인기를 끈 옐친대통령은 지난주 시장주도의 급격한 조치를 발표했으나 올겨울 물자 부족과 궁핍으로 그의 인기는 하락할 것이 분명시된다.
  • 고르비/섭섭한 사람은 어머니냐·미테랑이냐

    ◎「쿠데타」 영·불판 내용 달라 화제/“정치적 이유로 어휘 바꿨다” 풀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최근 그의 저서 「쿠데타」에서 그가 크림에 있을 때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전화를 해주지 않은 것을 섭섭해 했으나 지난달 31일 미테랑을 만나서는 그런일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여기서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책에 기술된 내용을 부인함으로써 미테랑이 둘러쓰고 있던 「불분명한 태도」의 불명예를 벗겨주었으나 이 책의 불·영 두 번역판의 차이가 왜 생겼는가 하는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포로스에서 나는 조지 부시와 통화했다.미테랑이 전화해주도록 돼 있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나는 오늘날까지 이를 섭섭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부분이다. 반면 하퍼스 앤드 콜린스사에서 나온 영어판에는 「미테랑」이 「어머니」로 돼있다. 러시아어판 교정을 본 모스크바의 노보스티 출판사의 한 간부는 그 교정쇄에는 분명히 「미테랑」이 아닌 「어머니」로 돼 있었다면서 『불·영 두 나라에 서로 다른 텍스트가 간 것같다』고 말했다. 시테출판사의 책임자는 고르바초프의 법적 대리인인 영국 출판업자가 넘겨준 원고를 충실히 번역해 출판했다고 밝히고 있다.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해 이 출판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쇄에 들어가기 조금전에 고르바초프의 외교 자문역 한 사람이 문제의 부분을 「어머니」로 바꾸기 위해 런던에 갔었으나 영어판 출판사가 우리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잊었거나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정치적 이유로 자신의 저서내용 일부를 사후에 고쳤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된다. 저자의 생전에 나오는 자서전,특히 정치인의 그것은 솔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인 한 예가 될 것이다.
  •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 이모저모

    ◎고르비,국내문제 주로 언급… 소 실상 반영/「이」­아랍 직접대면 않게 좌석 「T자형」으로/테러 비상속 건물 옥상엔 저격수 배치… 총력 경비/“부시 연출의 할리우드 쇼”… 프라우다지,강력 비난 ○라이사여사도 동행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부인 라이사여사가 지난 8월 소련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해외 나들이에 나서 주목.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마드리드에 온 라이사여사는 이날 평화회담이 열리는 동안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국왕의 부인인 소피아왕비와 함께 13세기 회교문화와 유태문화,기독교문화등이 공존하며 번성했던 유서깊은 중세도시인 톨레도시를 관광. 성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주민들은 두 퍼스트레이디의 방문을 반갑게 맞았으며 라이사여사는 시종 환한 웃음을 잃지 않고 역사 유적에 깊은 관심을 표시,동행한 취재카메라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는 중동평화회담을 소련의 전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지는 「미국외교가 연출하는 할리우드 쇼」라고 비난하고부시와 고르비가 시나리오 부문과 제작부문등에서 「중동의 오스카상」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 프라우다는 또 이번 회담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회담의 성공은 내년 선거를 앞둔 부시대통령에게 유리한 것이 될것으로 전망. 한편 고르바초프에 대해서는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국내정치에서의 실패를 어느정도 보상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언급.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중동평화회의 개막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이외로 상당부분을 소련 국내문제에 할애,참석자들을 어리둥절케 하기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세계 공동체는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지역분쟁이라기 보다는 다른 지역의 중대한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서방의 소련에 대한 우의와 승인의 말에는 이제 소련재건을 위한 실제적 지원이 뒤따르고 있으나 소련재건은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등 중동회담과는 관계없는 국내문제를 언급해 소련의 다급한 국내외정세를 반영. ○의제밖 연설에 “당황” ○…역사적인 중동평화회의 개막일인 30일 오전 각국대표단들은 회의장인 로열 팰리스로 속속 도착. 자그마한 체구인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총리는 76세의 고령에도 불구 건강한 모습으로 도열한 호위병들을 지나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국왕과 반갑게 악수를 교환. 대표단들은 상오 10시20분 회의장내 T자형 테이블에 착석했는데 T자형 테이블은역사적으로 숙적관계에 있는 국가간의 관계를 고려해 이번 회의를 주선한 미국과 소련측이 특별히 고안해 마련한 것이라고. ○“「중동오스카상」 노려” ○…30일 열린 중동평화회의 개막식장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백명의 외교관과 함께 수천명의 보도진들이 취재에 돌입,회담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기자들은 잇따라 팔레스타인인들과 인터뷰를 가졌으며 각국 대표단들이 고용한 통역사들은 회의연설을 대비해 아랍어와 히브리어의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 이번 중동평화회의 연설은 아랍어와 히브리어간에 동시통역되는 것은 물론,프랑스어·영어·러시아어·스페인어로도 동시에 통역될 예정이라고. ○6국어로 동시 통역 ○…평화회의와 관련된 폭탄테러위협 등이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인구 4백만의 마드리드시는 43년간 이어져 온 중동지역의 유혈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열리는 중동평화회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모습. 마드리드시 일원에는 1만4천명이상의 보안병력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으며 경찰들은 시내호텔 등 주위도로에 방책과 경계선을 설치.또한 중무장한 준군사적 시민수비대들은 현장에서 신분확인을 실시하고 있고 있으며 저격수들이 건물옥상에 배치돼 있는 상태. ○…마드리드 중동평화회의의 개막일은 우연하게도 중동역사상 중요사건인 수에즈전쟁 35주년일과 일치. 이집트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 사건을 「수에즈전쟁」이라고 배우지를 않고 프랑스·영국·이스라엘 「3국에 의한 이집트침략」이라고 배우고 있다. 수에즈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간 4차례의 전쟁중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반대입장을 보인 유일한 전쟁이었다. ○…올리브 나무가지를 든 약 3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30일 개막되는 아랍­이스라엘간 평화회담에 대한 자신들의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29일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 집결,회담 지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군소식통들이 말했다. 이 소식통들은 시위 참여자들의 일부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올리브가지를 건네주었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또 회교 저항단체인 하마스운동 소속의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은 회담반대 시위를 벌이고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다고 전하고 그러나 군이 시위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소 정상 개막연설/요지/“타협의 정신으로 「공포없는 중동」 만들자” ▷부시 대통령◁ 이번 회담의 목표는 단순히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이 지역이 번창하고 발전해서 더 이상 공포와 테러에 희생되지 않는 중동으로 변화 시키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이러한 평화는 직접 협상과 타협,서로 주고 받는 공평한 거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중동 밖의 강대국들이 당사국들에 해결책을 강요할 수는 없고 평화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중동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중동지역국가 정부들과 그 국민들에 달려있다. 평화협상추진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대비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데도 양측이 타협을 꺼려하는 것은 잘못이며 이해할수 없는 일이므로 타협의 정신으로 협상에 들어가야 할것이다. 당사국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무도 이러한 평화의 기회가 다시 찾아 올것이라고 장담할 수없을 것이다. ◎미·소 정상 개막연설/요지/“「개별적 입장」 포기해야 「평화의 승리」 도래” ▷고르바초프 대통령◁ 당사국들이 개별적인 승리를 포기할 때만 평화가 승리할 수 있고 모두가 그들의 증오와 분쟁의 역사에 대한 공동의 승리를 나눌 수 있다.「지속적인 평화」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뜻한다. 이 회담에서의 미소 양 강대국의 역할은 외부로부터의 해결책 강요가 아니고 단지 좋은 진료소일 뿐이다. 20세기의 황금시대라는 논리를 깨뜨리고 새로운 논리를 창조해야 하며 아직도 우리 뒤에 있는 낡은 사고의 망령을 폐기해야 한다. 중동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으로 미소 화해후 핵무기 위협이 양 강대국에서 이 지역으로 확산됐다. 중동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평화의 강력한 초석이 될 이해관계의 현실적인 균형을 실현하도록 힘써야될 것이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4

    ◎“일본이 무릎 꿇었다” 주민에 선전/대일 수교 추진의 뒤안/배상금에 눈독… 일본과에 인재 모아/“중·소는 말뿐” 경제원조 더 기대 안해 북한의 외교전문가들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으며 대북수교도 이같은 입장에 따라 남북간 세력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북조선의 힘이 약해지고 남조선의 힘이 올라가니까」 자신들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력을 갖출 때까지,다시 말해 경제적 지위에 맞는 국제적인 힘을 갖출 때까지 「남조선은 기다려라」는 심정으로 북조선에 돈을 줘서 남북이 비슷해지도록 한 다음 남에는 북카드,북에는 남카드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이 「꿩잡는게 매」라는 생각으로 50억달러로 기대되는 배상금을 겨냥,대일수교에 임하고 있지만 「어느 놈」이 주든 간에 힘이 세진 다음에는 일본도,남조선도 때려잡을 수 있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북한이 대일수교를 추진하게 된데는 잘 알려진대로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없다」는 경제적 위기감이 최고 지도층 사이에서도 공감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80년대말부터 소련에 대해서는 더 이상 경제원조를 기대할 수 없으며 중국도 「말은 잘하지만」 무역관계에서는 「에누리가 없는」 철저한 실리주의를 추구하고 있어 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 왔다. 김일성부자와 김영남외교부장·연형묵정무원총리·김용순당국제부장등이 모여서 대일수교를 추진키로 합의보았는데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북한경제가 적어도 몇년간 만이라도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일본이 줄 배상금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북한은 주민들의 「밥그릇의 고봉만 높여주면」 20∼30년간은 버틸 수 있는 체제이다.그런데 기본적인 이러한 욕구마저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대일수교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및 남조선과 함께 최대 적대국가의 하나로 지난 80여년간 교육해왔던 일본과의 수교를 추진하면서 대주민설득용으로 내세운 명분은 다음과 같다. 즉,『위대한 김일성수령님의 명성앞에 일본이 지난 36년 뿐아니라 전후 45년동안의 죄과에 대해 먼저 무릎을 꿇고 사죄해왔다.또 일본을 이토록 유도한 것은 김정일지도자동지의 탁월한 영도력이었다』는 것.이 논리는 지난해 당에서 외교부에 전달된 「외교관을 위한 강연교본」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소련에 북방4개도서를 빼앗겼다면 우리(북한)는 미국에 국토의 절반을 떼였다.땅을 남에게 떼인 사람들의 심정은 우리나 일본이나 같다.일본의 입장을 지지한다』 지난해 9월 연풍호반의 김일성별장에서 있은 단독회담에서 노정치가 김일성이 북방영토회복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물은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일본부총리에게 밝힌 대답이다. 김일성이 이같은 노회한 정치적 화술앞에 가네마루 신은 세번이나 무릎을 꿇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이로써 1차단체회담시의 냉랭한 분위기는 일신돼 북한 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당 대표들은 빠른 시일내에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원칙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북한은 대일수교의 원칙이 결정된 지난해 10월 외교부의 일부 조직을 개편했다.이전까지라틴아메리카국및 동남아국에 별개 과도 없이 소속됐던 미국과 일본담당부서를 하나의 국,다시 말해 미·일국으로 신설,조직한 것.이에따라 일본과의 직원이 2명에서 15명으로 늘었으며 미국과에는 8명의 외교관이 배치됐다.특히 일본과에는 『금싸라기같은 인재를 골라들이라』는 김영남 외교부장의 특별지시로 유능한 인재들이 선발됐다. 당초 북한은 적어도 올 8∼9월까지는 수교교섭이 매듭지어지지 않겠느냐고 쉽게 생각했다.수교원칙에 합의한 가네마루 신이 일본내각을 움직이는 거물실세이며 일본 사회당도 「북조선판」이 아니냐는 것이 그 판단 근거였다.그러면서 「빌어먹을」핵사찰문제가 끼어들어 현재와같이 지지부진한 국면을 맞게 됐으나 그래도 92년 상반기중에는 수교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은 수교회담시 일본에 제시한 문건에서 배상청구액을 모두 1백억달러로 명시하고 있는데 전액을 받겠다는 것보다 『협상을 하다보면 적어도 50억달러는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기대하고 있다.여기에 덧붙여 민간차관이 들어오면 침몰직전의 북한경제가 당장은 한 숨돌릴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최근 일·북간에 북송 일본인처들의 고향(일본)방문문제가 하나의 쟁점이 되고 있으나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6천여명에 달하는 그들이 일본에 가서 「입을 트면」(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아마 양국간에 이 문제에 관해 정치적인 타결책이 모색될 것이다. 한편 최근 북한사회에는 대일수교움직임과 관련,일본풍이 불고있다.내년 상반기중 국교가 수립되리라는 관측아래 기술전문가들및 대학교원,학생들 사이에 너도 나도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일본어가 러시아어·영어등을 제치고 제1외국어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 초·중·고 교과목 대폭 개편/95학년도부터

    ◎고교 학기당 과목 12개로 축소/교육과정 결정권 시도 교육청에 95학년도부터 교육과정 선택결정권이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로 대폭 이양되고 교과서내용도 크게 개편된다. 또 고등학생들의 입시부담등을 덜어주기 위해 학기당 18개과목을 12개과목으로 축소하고 수업시간도 줄인다. 이와함께 국제화·정보화에 대비,중학교의 자유선택과목으로 컴퓨터환경등의 기초과목을 신설하고 고등학교의 제2외국어에 러시아어과목이 추가된다.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개정에 관한 연구를 위탁받은 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회(위원장 한명희동국대교수)는 27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시안을 확정,삼청동중앙교육연수원에서 공청회를 가졌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10월말까지 정부의 개정시안을 마련하고 공청회등을 열어 내년 6월말까지 최종시안을 확정,94년까지 교과서개편작업을 마친뒤 95년 3월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새 교육과정을 적용하게 된다. 개정시안에 따르면 고등학교의 경우 그동안 교육부가 일률적으로 인문사회계 26과목,실업계 25과목씩 지정해주던 교육과정편제결정권을 개선,교육부는 교과목의 32%인 9개 공통필수과목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지방교육청(54%)과 학교(14%)에서 지역실정등을 감안해 결정하도록 했다. 또 고등학교의 교과목 가운데 학생의 능력에 따라 학습에 큰 영향을 받는 수학·과학·영어등은 현행 단순·획일적인 교과목 대신 2∼3종류의 복수교과목으로 개편된다. 중학교에서는 한문과목의 성격을 생활한자교육으로 바꿔 국어과에 포함시키고 지금까지 소홀히 다루어온 진로직업과목을 신설하도록 했다. 또한 국민학교 교육과정에 처음으로 자유선택과목을 신설,컴퓨터·영어·한자·독서등 필요한 과목에 대해서는 학교장이 재량껏 선택과목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 위기의식속 방황하는 소수민족(탈공산주의 소련을 가다:4)

    ◎공화국 독립따라 종족간의 갈등 심화/모스크바­고향 놓고 갈곳 못정해 고심 소연방의 해체와 함께 출신공화국을 떠나 모스크바의 연방정부 등에서 일하고 있는 고급엘리트들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모스크바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인가,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하는 문제다.보다 심각한 것은 모스크바 인구의 약20%에 달하는 비러시아민족,비러시아공화국에서 일하고 있는 러시아주 모두에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이 만족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데 있다. 소연방의 붕괴로 발트3국과 우크라이나·우즈베크스탄·아르메니아·그루지야등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갔거나 떨어져나갈 것이 확실시된다.국경들에는 새로이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세관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다.경제공동체의 구성등으로 여전히 15개 공화국간에 비자없는 통행이 가능하겠지만 어쨌거나 다른 공화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나라 아닌 다른 나라가 된것이다.스탈린의 러시아화정책으로 지금껏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쓰고 있던 이들 독립공화국들에서 점차 고유의 언어를 공용으로 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에따라 공화국간의 보이지 않는 문화·언어·종족적 장벽은 높아갈 것임에 틀림없다. 25세로 동갑인 스타스와 알레그는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모스크바 외교관 양성대학인 국제관계대학을 나란히 졸업했다. 이들 두사람에게,같은 길을 걸어왔던 두 동창생에게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전공언어로 영어를 택했던 순수 우크라이나 사람인 알레그는 지금 일하고 있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다.『우크라이나는 젊은 인재를 필요로하고 있고 내가 더이상 러시아공화국 주민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한국어를 전공언어로 택했고,유태인의 핏줄인 스타스의 입장은 그렇지 못하다.『내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더라도 알레그와 같은 역할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그럴바에야 모스크바,잡다한 종족이 섞여사는 이 도시가 오히려 내게는 더 유리할 수도 있다.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일만 생겼다』 잘 알다시피 공포의 철권으로 15개공화국 모두를 단시일내에 러시아화시켰던 스탈린은 그루지야출신이었다.혁명의 아버지 레닌도 순수러시아인이 아닌 동양계의 핏줄이 섞였었다.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기전 소련사람들에겐 어떤 출신이었는가는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았다.주요한 요직을 대부분 러시아계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소수민족출신 엘리트가 출세하는데 종족의 벽은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화 정책으로,또 중앙에서 출세하고자하는 엘리트들의 본능적이다시피한 상경으로 전체 소련방의 20∼30%가 다른 공화국 출신들로 채워져 있는 상태다.소수민족들은 법률적 보호를 받을 것이 확실하다.그러나 민족문제는 단순히 법률적인 평등보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소수민족은 무시당하게 돼있고 사회적 차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에스토니아의 탈린 출신으로 소련 외무성에서 정착,국장급에 오른 우르마스씨(47)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지금껏 에스토니아 출신이라해서 정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부담을 느꼈던 적이 없다.나는 그저 열심히 일만하면 됐고 내능력에 따라 자리를 배정 받았다.그러나 연방이 해체된 지금 나는 소수민족출신으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연방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곧 이들기구와 건물들은 러시아공화국정부로 귀속될 것이다.러시아공화국 외무성은 이미 예전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로 옮겼고 연방정부의 인재들로 공화국 외무성을 확대,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서두르고 있다.우르마스씨가 러시아공화국 외무성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는 역시 러시아민족이 주체인 기구에 참여하는 소수민족일 뿐이다. 『내가 젊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그러나 생활의 터전이 모스크바에 있고 에스토니아정부도 나를 필요로 하겠지만 그들이 내게 보내는 눈길은 좋지 않을 것이다.내가 돌아가더라도 연방정부에 협력했던 사람이상의 대접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연방의 붕괴와 함께 각공화국에 산재해 있는 소수민족의 서러움이 시작되고 있다.
  • 소 공산당원 중국 망명 러시

    ◎수천명 월경… 중국,모두 수용키로/일 시사통신 보도 【도쿄 AFP 연합 특약】 수천명의 소련공산당원과 국가안보위원회(KGB)요원들이 지난달 실패로 끝난 보수강경파의 쿠데타 이후 정치적 망명을 구하기 위해 중국국경을 넘어 도주하고 있다고 일본의 시사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날 도쿄의 중국소식통을 인용,중국정부가 이들 망명객의 처리를 위해 수백명의 러시아어 사용가능자를 동북3개성과 신강­위구르 자치지역으로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공산당은 이들 소련인망명객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해 국경지방근무 지원자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소 소수민족도 독립 바람

    ◎나고르노 카라바흐,탈 아제르공 선언/몰다비아공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도 【모스크바·티라스폴 로이터 연합】 소련 공화국안에서도 소수민족의 독립바람이 불고 있다.지난 3년간 유혈 민족분쟁을 벌여왔던 아제르바이잔공화국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이 2일 아제르바이잔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와 북부에 인접한 샤우미얀 지구의 최고평의회 합동회의는 이들 지역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아르메니아공화국」이라는 국호아래 독립을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또 몰다비아 공화국내 러시아어 사용 지역인 드네스트르 지역 의회도 2일 루마니아와의 유대관계 강화하려는 공화국내의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드네스트르 지역 의회는 이날 몰다비아 공화국내 루마니아어 사용권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가결했다.
  • 세관원이 「러시아어 교본」펴냈다/마산세관 손정배씨 8개월 노력끝에

    ◎소 선박 통역관 찾아다니며 발음·문법등 완성/입출국절차 용어등 정리… 선박회사에도 배포 한소국교수립후 소련과의 직교역량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세관직원이 통관상담과 항만출입국절차 등 세관업무에 필요한 「세관러시아어 교본」을 손수 제작,실무에 활용하고 있다. 마산세관 감시과 서기 손정배씨(35)가 그 주인공. 손씨는 현재 근무중인 마산세관으로 옮기기 직전인 지난 7월초 부산본부세관에서 해상감시업무를 담당할 때 자주 접촉하는 소련선박의 통역관들의 도움을 받아 8개월여의 작업끝에 이 교본을 완성했다. 손씨가 만든 「러시아어 교본」은 부산세관은 물론 소련인들이 출입하는 전국 세관과 관련 선박회사 등에 1백50권이 배포돼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세관직원들에게 유익한 참고서가 되고 있다. 2백84쪽 분량인 이 교본은 1,2부로 나뉘어 1부에는 러시아어 발음과 국민학교 수준의 기초문법 및 기본단어·숙어 등이 우리말로 토가 달려있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2부에는 통선·과세·통관검사 등 세관업무에 필요한 회화와 택시요금 지불,전화거는 법,여행자 안내 등 간단한 생활회화가 실려있다. 손씨가 이 교본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12월 쯤이다. 『한소수교 이전인 88서울올림픽 이후부터 부산항을 드나들기 시작한 소련선박의 입출항이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나고 소련선원들의 입국도 급증했으나 러시아어를 할수 있는 직원들이 거의 없어 불편이 많은 것을 보고 교본발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무렵부터 일과가 끝나면 부산항에 정박중인 소련선박의 통역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생 끝에 교포2세로 소련에서 영어교사를 지내 우리말과 영어,러시아어등 3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신나타샤씨(35·여)를 만날수 있었다. 신씨의 도움으로 1개월여만에 관세공무원교육원이 발간한 「세관영어회화」의 러시아어 번역판을 만들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번역판은 소련선원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손씨는 다시 소련배의 통역관들을 찾아다닌 끝에 지난 2월 입항한 캄차트리브프롬호의 통역관 옐리나씨(34·여)의 도움을 받게 됐다. 손씨는 「세관러시아어교본」의 전 내용을 4차례에 걸쳐 옐리나씨의 목소리로 녹음한 90분짜리 테이프 5개를 제작했다. 「세관러시아어교본」 제작에는 부산세관이 2백50만원을 지원한 외에 손씨가 자기돈 1백50만원을 들였다.손씨는 『내손으로 만든 교본이 유익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 본사 송정숙논설위원 타슈켄트 기행:중

    ◎레닌종합대학에 「한국경제과」 등장/대한 관계개선 위한 인재양성 목표/조선족만 입학 허용… 「시장이론」 교육 타슈켄트 레닌종합대학에는 지난 90년에 「한국경제학과」와 「일본경제학과」가 신설되었다.한국경제학과의 첫학년 입학생은 7명.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이 대학은 7월 하순에 입학시험이 있다. 한국경제학과는 한국계 학생에게만 입학이 허용된다.보통의 경우 이 공화국에서는 민족감정이 강해서 소수민족에 대한 암암리의 차별이 적지 않다.같은 조건이면 우즈베크계의 학생을 뽑는다.그런데도 아무리 「한국경제학과」지만 한국계 학생에게만 입학자격을 준다는 단서를 두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일까.일본경제학과는 그렇지가 않았다.어차피 일본경제학과에 뽑을만한 「일본인」은 그곳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및 일본경제학과를 신설한 이 타슈켄트 레닌종합대학에서는 최근 「타슈켄트 동방대학」을 분리독립시켰다.중국·인도·아랍·한국·일본이 포함된 9개 동방언어학과와 한국경제·일본경제가 포함된 국제경제학과,동양사·이슬람종교사 및 중앙아시아역사학과가 있는 역사학부등 3개 학부 30강좌를 가진 대학이다. 이 새로 분리된 대학의 네마트라 이브라기모프 초대총장은 입학시험때문에 외부인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총장실로 「한국손님」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그는 한국경제학과를 신설한 것은 한국경제의 모델을 자기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도입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특히 88년이후(올림픽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카리모프대통령(우즈베크공)께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서 우리 대학의 한국경제학과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그는 만나자마자 「상호교류」와 「협조관계」의 길을 다소 성급할만큼 들고 나오며 「한국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볼 겨를도 없는 듯이 서둘렀다. 지망자가 몰려 40대 1이 넘는 경쟁을 보였다는 한국경제학과에 한국계 학생만을 뽑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인재양성이 목표인 학과이므로 한국과 연고가 있는 한국계 학생이라야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선선이 대답한다. 우즈베크공화국은 약45만㎦의 땅에 69%의 우즈베크인과 러시아인 11%,타타르사람과 카자흐·타지크인이 각각 4%,2%의 카라­칼팍인과 1%의 조선족으로 이뤄진 약 2천만의 인구를 가진 「소련 사회주의공화국」이다. 우즈베크사람이 아니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급 정부관리가 될수 없고 대학총장도 물론 될수 없다.비교적 자원이 풍부하고 공화국간에도 영향력이 큰 편이며 재정형편도 타공화국에 비해 상위에 속한다. 본디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며 여러개의 민족사회를 구성해온 터키계 유목국가 사람들인 카자흐·키르기스·우즈베크·신강위그르 등의 이 공화국들은 18세기 후반에 러시아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었다.러시아발전의 원료공급처를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이들 공화국들은 혁명이후에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붙여 혁명정부가 계속 지배해왔다. 그 때문에 「우즈베크」사람들은 뼛속깊은 곳에 민족의 원한같은 것을 묻어두고 있다고 한다.언젠가는 이 부자연스런 합병관계를 벗어나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작년에 공화국 정부는 중요한 선언을 했다.『앞으로 8년후에는 우즈베크공화국의 공식언어는 우즈베크어만으로 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러시아어는 공화국간의 상호 통용어로만 쓰겠다는 것이다.「분리독립」의 강력한 의지를 내연시키고 있는 것이다.중앙아시아 사막속의 오아시스 주변에 자리한 이들 나라들은 황량하고 허전하다.거기다가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쓸쓸하고 덧정없어보이는 환경속에 오래 있은 탓인지 아득하게 늘어져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눈이 푸르고 살결이 가무잡잡한 신비하도록 아름다운 여인들을 볼수 있다. 속으로 콧대가 높고 다소 배타적이어서 언젠가는 타민주,특히 러시아민족을 내쫓고 민족자결을 선언할 속셈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의견이 별로 잘못되어 보이지는 않는다.이런 공화국이 한국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사람들을 척후병삼아 훈련할 계획을 세우고,학생교류·교수교환같은 구체적 사업을 어떻게 하면 논의할 수 있겠는지 골똘히 탐색중이다.우연히 들른 방문객을 붙잡고도 그런 일을 주선해 줄 수 없겠느냐고 간곡하게 묻는다. 이렇게 의욕적으로 개설해 놓은 한국경제학과를 도대체 어떤식으로 이끌어갈 계획인가 물어보았더니 『…우선 3년간은 교양과정이므로 일반 경제학 전공에준하고 한국어교육을 집중할 것이며 처음 뽑은 학생들이 4학년이 되었을 때는 한국교수등 합당한 자격의 전공교수를 모실 계획』이라는 대답이었다.이곳 대학은 5년과정이다. 그러나 교수의 봉급이 강좌주임의 경우 7백50루블이고 교수는 6백,조교수는 5백루블인 수준에서 교수교환을 생각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1달러가 27루블 안팎이므로 교수봉급은 20달러인 셈이기 때문이다.어떻게 견주어도 같은 수준에서의 「교류」는 무리인 것이다.그점에 대해 「한국측의 지원」으로 그 격차를 메우는 묘수가 없겠느냐는 것이 이브라기모프총장의 「관심」인 듯했다. 타슈켄트 대학에서는 이미 마르크스·레닌을 커리큘럼 내용으로 하는 「소련공산당 역사」를 없애고 그대신 「소련정치사」로 바꿨으며 「과학적공산주의」강좌도 없애고 「사회주의 기본이론」으로 바꿨다. 또한 어떻게든 「시장경제」를 학습하여 사회체제를 변화시켜가야겠다는 생각에 집권계층의 사람들은 강력하게 집착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 국민들은 전혀 그런 훈련도 태세도 되어있어 보이지는 않는다.손님이 밀리거나 말거나 관광식당의 웨이트리스들은 손님석에 앉아 자신부터 식사를 하고 국영상점에 관광객이 몇사람만 몰려들어가도 팔 능력이 없어서 물건을 쌓아두고도 장사를 못한다. 거기 비하면 똘똘하고 부지런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조선족인 것같았다.구석구석에서 여러가지 「돈벌이」를 창의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 타슈켄트 한인들의「위대한 삶」(본사 송정숙 논설위원 현지탐방:상)

    ◎사막에 일군 「콜호즈」는 타민족의 귀감/만나는 동포마다 “서울 한번 가보고 싶소”/「황성옛터」 부를땐 백발노인 몸떨며 통곡 『나의 조국,대한민국을 사랑하리.영원토록 사랑하리…』 4천석의 좌석은 물론,입석까지 그득히 메운 「레닌인민궁전」극장에서 한국의 가수 태진아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기쁨에 차서 목청껏 불렀다.이틀 연속 공연으로 연인원 1만명이 동원된 관객들은 노래마다 박수로 장단을 맞췄고 무대마다 긴 갈채로 화답을 보냈다. MBC가 기획한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를 찾아서」의 타슈켄트공연.레닌동상이 광장마다 서있고 사회주의식 구호가 붉은글씨로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 멀고먼 중앙아시아땅에서 우리의 가수 코미디언들의 공연이 이토록 성황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웃기기 잘하는 가수 김상국씨가 「황성옛터」를 부르던 마이크를 들이댔을때 객석에 앉아있던 성이 「짐가」라는 백발의 노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통곡을 했다.쉽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을 것처럼 앉아있던 이 「고려사람」은 「원동」으로부터 그 악몽의 「강제이주」를 당해온 당세대의 한인이다.이곳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모두가 그때의 당사자거나 그 2세거나 3세였다. 타슈켄트는 소연방 15개 공화국중의 하나인 우즈베크 공화국의 수도다.이 공화국에만 「고려사람」 20만명이 산다.수도 타슈켄트시에만도 5만명이 살고 있다.그들은 애당초 「유랑하는 가축」처럼 살길을 찾아 모국땅을 떠나온 한인들이었다.1900년대 초기부터 부지런하고 쌀농사 재능이 뛰어났던 그들은 혁명러시아의 토지법에 의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많은 악조건을 물리치고 성공적인 정착을 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7년 9월,그들은 아직도 확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스탈린의 음모에 의해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농사도 몽땅 버리고 다시 「가축」같은 신세가 되어 화차에 실린채 맨몸으로 서른날씩 마흔날씩 걸려 이곳 중앙아시아로 실려와 염분섞인 땅,갈대만 우거진 늪지대에 던져졌었다.지금의 중앙아시아에 사는 35만명은 그들과 그 자손들이다. 「치모페이」「웬체슬로바」「와렌티나」「보리스코프」…소련식 이름을 단 그들 「카레이스키」(한국인)2,3세들은 토굴을 짓고 산 할아버지 이야기,고사리와 미나리죽으로 봄기근을 이겨준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가슴속에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앙아시아의 한국인들은 숱하게 많은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한결같이 잘살고 있다.타슈켄트에서도 사마르칸트에서도 알마아타 푸른제에서도 영특하고 지혜롭게 잘살고 웬만한 집에서는 다 아들 딸 모두들 대핵고(대학교)까지 필업(졸업)시켰고 도시의 직장에 진출시켰다. 이유없이 「적성민주」의 딱지를 붙여 공민권을 빼앗고 이주의 자유도 여행의 자유도,친척끼리 모여 사는 일도 허락받지 못했던 시기에도 그들은 사막땅을 일궈 쌀농사를 짓고 목화를 심어 혁명러시아가 산업화해가는데 원자재를 대고 전쟁중에는 인민의 식량을 보탰다.1%도 안되는 소수민족의 신분으로 이만큼 공헌한 사람들은 카레이스키(고려인)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타슈켄트의 도심을 벗어나면 포리토구역에 잘사는 한인 콜호즈(집단농장)가 있다.많은 사람들이 이 성공적인 콜호즈를 찾아온다.2만1천명이 일하는데 그중 조선인은 4천명밖에 안된다.그래도 이 농장은 「한인콜호즈」로 불린다.애당초 이 농장은 강제이주된 조선인들만으로 만들어졌던 집단농장이다.그들의 「일 좋아하고 부지런한」특성때문에 벼농사 삼베농사 목화농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타민족보다 부유해졌다.그러자 1951년 소련정부는 그들을 타민족의 콜호즈와 병합시켜 버렸다.말하자면 가난한 콜호즈와 병합시켜 하향 평준화시킨 것이다.능력없는 민족까지 이끌고 발전시키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콜호즈의 한인마을에는 전용회관이 있다.러시아어간판 옆에 「어서 오십시요」라는 간판도 붙여 놓았다.우리 일행이 찾아갔을 때는 전속 가무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어린이들이 꼭두각시춤도 추고 아주머니들이 우리말 노래도 불렀다.2∼3년에 한번쯤 평양에서 「선생님」을 모셔다가 지도를 받아오는정도이고 스스로 엮어가는 가무단이라 가무가 약간 국적불명이긴 하다. 박이나겐치부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해 이 농장의소득은 농사지은 것 모두에 대해 국가가 수매해준 대금 1천7백80만루블이었다.배당하는 방법은 1인당 월급을 2백70∼3백루블씩 받고 그 나머지분을 배당금으로 나누게 된다.지난해에는 1인당 1년에 8천루블쯤 돌아갔다.노동자 평균임금이 월2백50루블이고 고급층 월급이 5백루블이상인 그나라 수준으로는 높은 소득이었다. 소득이 그만못한 또다른 솔호즈(국영농)로 우리를 안내해준 사람은 보리스라브 강씨였다.타슈켄트의 한인문화센터 일을 맡고 있는 건축설계 전문가다.40대초반인 그 역시 「37년 강제이주」한 고려인 2세이고 솔호즈에서 자랐다.그가 자란 곳인 솔호즈 근처에는 「강우주거리」라는 길이 있다.강우주는 바로 그의 아버지라고 한다.15년동안 솔호즈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헌한 것을 평가받아 거리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솔호즈에 이를 무렵,한집안에서 흥겹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중앙아시아식 경쾌한 음악에 맞춰 우즈베크계의 농민들이 춤추고 있었다.아마도 그들 민족 전통방식의 결혼식이 있는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그 집의조그만 아들형제가 할례를 받아 그 잔치를 벌인 것이라고 했다.솔호즈 유지자격으로 한인회장도 참석하고 있었다. 예고없이 찾아든 한국인 여행객을 정도이상 반기면서 음식을 안기고 연설을 해라,춤을 춰라 하며 놓아주지 않았다.한인회장도 「시늉이라도 해야」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요령을 일러주었다.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때에는 아이들의 큰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친척들이 줄줄이 한참동안을 따라 나왔다.그중의 할아버지뻘인 우즈베크노인 하나는 술에 취한채 조선말로 『우리집에 갑세…』를 연신 외쳤다.그 사회에서의 한국인 위치가 지도자적인 자리임을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였다. 공민권도 뺏고 삶의 터전도 뺏고 어느날 느닷없이 「적성민주」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열사의 사막 한복판에 실어다 버린 형국이었던 「카레이스키」들이 반세기가 지난뒤 그 선혈섞인 땀으로 이뤄낸 오늘의 위치는 위대한 것이라고 말해서 전혀 과장된게 아니다. 거기다가 새로 떠오르기 시작한 고국 「한국」은 중앙아시아의 몇개 공화국에 사는 「강제이주된 고려사람들」의 지위를 점점 더 높여주고 있다.그래서 만나는 동포마다 은근한 목소리로 『서울에 한번 기차게 가보고 싶소』라고 말한다.
  • 한국전에 소 지상군도 투입/전 북한 외교부부부장 첫 확인

    ◎“2개 포병연대 파병,야전병원도 지원” 소련은 한국전 당시 후퇴를 거듭하던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2개 포병연대와 대규모 야전병원을 파병했었다고 북한의 전 고위관리가 13일 밝혔다. 박길용 전 북한 외교부 부부장(71·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원·모스크바 거주)은 북한군이 유엔군과 국군에 밀리기 시작한 50년 10월께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있던 수풍댐 보호를 위해 소련은 압록강 건너편에 1개 포병연대(약 4백명)를 긴급배치한 데 이어 유엔군이 밀리자 청천강다리 근처에 1개 포병연대를 배치했으며 평양근교 산속에 위치한 북한인민군 최고사령부 주위에 또다른 1개 고사포연대를 배치했다고 말했다. 소련군의 포병이 북한에 실전투입된 사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씨는 당시 소련포병이 모두 중국지원군 복장으로 위장했으며 주로 미군기의 폭격에 응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포로가 될 것을 우려,후방에 주둔했었다고 밝혔다. 또한 소련의 미그15공군기들이 신의주에서 압록강 건너편 안동(지금의 단동),장춘,심양 등3곳에서 발진,북한상공에서 미군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는데 역시 중국지원군 복장을 한 이들 소련 조종사는 평양에서 이남으로 넘지 말 것과 비행중 절대 대화하지 말도록 하는 엄중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종사가 포로가 되거나 무심코 러시아어로 교신한 것이 미군에 감청될 경우 소련의 참전이 국제여론화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박씨는 소련 조종사들이 참전초기 많이 희생됐으며 이들의 묘지가 하얼빈과 장춘에 있다고 말했다. 소련은 이밖에 평양 동북방 1백㎞ 지점 양덕부근에 군의관과 간호원 등 1백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야전병원도 설치,운영했는데 한번에 8백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어서 전쟁기간중 북한의 가장 중요한 야전병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련군의 의무지원 외에도 헝가리,폴란드,불가리아 역시 소규모 야전병원을 차렸다. 박씨는 북한이 신의주 쪽으로 밀리게 됐을 때 소련은 미군이 압록강을 건널 것에 대비,5개 기갑사단을 배치했으며 원동과 시베리아 일대의 군에 대해서도 비상동원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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