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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만주 한인의 조국애 그려/국립극단,광복 50돌 기념 「눈꽃」공연

    ◎고설봉·강계식씨 등 원로배우 특별출연 국립극단(단장 권성덕)은 광복 50주년 기념공연 「눈꽃」(우봉규 작·김석만 연출)을 2일부터 11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국립극단이 실시한 장막희곡 공모에서 당선작 없이 뽑힌 가작 2편가운데 하나인 「눈꽃」은 북만주의 연해주 지방을 배경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스탈린의 강제이주에 떠밀린 유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정통극.우리 역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시대에 조국과 민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강제이주를 피해 중국 만주의 돈화에 정착,샘골과 바람골에 논을 일구고 살아가는 한인들의 조국애와 이념갈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중국인과 타협해서 마을을 지키려는 촌장 김정(권성덕)과 이에 반대하는 젊은이들,그리고 소련 공산당 대표에 의해 원산으로 잠입하는 김정의 아들 상영(이상직)의 이야기를 통해 조국을 잃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그려낸다.역사적인 사실을 형상화하기 위해 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는 물론이고 평안도와 함경도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당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국립극장에 연수중인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한인동포 성악가 송게오르기씨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배워 삽입시켰으며,알타미아 국립조선극단의 배우 김학년씨는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또 이 공연에는 무대미술의 이태섭,의상의 김현숙,음악의 김철호 청주 시립국악원 상임지휘자,영상의 김형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안무의 김나영 국립무용단 수석단원등 쟁쟁한 스태프들이 제작에 참여했다.국립극단 전단원들의 친목단체인 단우회의 고설봉·강계식·신구·김성원·이치우·기정수·심우창씨 등이 특별출연 한다.평일 하오7시30분,토·일 하오4시 공연.문의 271­1741
  • 시베리아의 수도/노보시비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26)

    ◎「아카뎀 고로독」엔 연구소만 22개/주민 144만명 대도시… 대학 16개/2차대전중 산업문화시설 피란처/“영하 30도”… 철교는 금속튜브로 덮어 노보시비르스크시에 가까워지면서 러시아 최대의 강 오브강이 나타난다.본류만 따져 3천6백50㎞이고 발원지인 남쪽 중국 국경지역에서부터 치면 알타이주의 바르나울∼노보시비르스크∼톰스크로 이어지는 길이 5천4백10㎞의 장강이다. 시베리아의 수도 노보시비르스크시는 이 오브강과 시베리아철도가 만나는 곳에 건설돼 절묘한 지리적 이점을 자랑한다. ○오브강­철도 교차 이곳이 낙농으로 번성하기에는 스텝이라는 자연적 여건 위에 독일인들의 이주가 큰 기여를 했다.러시아와 독일의 관계가 최초로 활발하게 시작된 것은 피터대제의 딸인 엘리자베스1세 여왕때부터.엘리자베스 1세는 후사가 없어 독일에서 친척인 아나 요아나브나를 후계 왕으로 초빙했는데 이때 독일의 영향이 크게 강해졌다.이후 독일공주 출신인 에카테리나 2세여왕때 유럽의 영향은 최고 정점에 달했다.이때부터 러시아의 귀족들은 의무적으로 독·불어를 배워야했다. 러시아어에 독·불어의 어휘가 많이 섞여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예를 들어 열차와 관계있는 것만 해도 「쿠페(침대칸)」「메트로(지하철)」「레스토랑」「빌레트(표)」등 얼마든지 있다. 제정 러시아시절 서부 시베리아에 낙농을 발전시킨 주역들은 바로 독일 이주민들이었다.에카테리나 2세는 외국인 토지취득허용 칙령을 내리고 특별자유지역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면세로 토지를 취득케 했다.그래서 10만∼20만명의 독일인들이 보헤미아에서 이주해와 러시아내 수천 곳에 흩어져 농사를 지었다.이들은 주로 스텝지역에 이주해 농업,낙농등에 종사했다. 전성기인 1939년도에는 거의 1백만명의 독일인이 러시아에 살았다.이들은 2차대전 직전인 1941년에는 볼가지역인 사라토프에 독일자치 공화국까지 건설했고 서시베리아에도 대거 진출해 알타이,노보시비르스크주,옴스크주등에 모여 살았다.소연방 해체 뒤 이들은 거의 절반이 독일로 되돌아갔지만 이들이 러시아의 낙농발전에 끼친 영향은 지금도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 볼가강뱃길여행을 해보면 지금도 사라토프시 맞은 편에 당시 독일공화국 수도였던 엥겔스시와 마르크스시등 독일이름을 가진 도시들이 남아있다. ○독인 낙농 발전 기여 기차는 상오 8시에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도착했다.1939년에 지은 역사는 흰색과 녹색이 조화를 이룬 엄청난 규모의 전형적인 스탈린식 건물이다.첫인상은 새로 건설된 탓인지 아무 특색없는 전형적인 소비에트식 도시를 연상시켰다.시베리아 여행중 제일 멋없고 지저분하고 불친절하고 덜 개방적인 곳이 바로 이 노보시비르스크였다. ○전형적 스탈린식 도시 우선 다음날 떠날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매표소로 갔더니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외국인에게 표를 파는 특별 매표소가 따로 있는데 그곳은 또 주말에 문을 닫는다.할수없이 이 멋없는 도시에서 월요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외국인은 누구도 주말에 이 도시에서 열차로 빠져나갈 재간이 없는 것이다. 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인구 10만명이 채 안되는 아무 특색없는 소도시였을 뿐이다.1893년 오브강 철교가 건설되며 크리바쇼코바라는 작은 마을이 들어선 게 도시의 시발이다.이후 주민수가 늘면서 1903년 노보 니콜라예프스크라는 이름으로 정식 도시가 건설됐다.그러다 혁명 뒤 볼셰비키들이 정책적으로 이곳을 시베리아의 중심도시로 키우기로 함에 따라 도시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21년 6월,주(오블라스티)에 해당하는 구베르니가 이곳에 만들어졌고 25년에는 이곳을 수도로 시베리아 크라이(대주)가 탄생했다.동서 시베리아를 모두 관장하는 행정수도가 된 것이다.그리고 26년 도시이름을 지금의 노보시비르스크(새 시베리아)로 바꾸었다.노보 니콜라예프스크는 황제 니콜라이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시베리아의 중심지였던 옴스크,톰스크등에 있던 군사,행정,문화,대학,언론기관등이 대거 이곳으로 옮겨져왔다.그리고 32년부터는 강 서안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산업시설들이 들어섰다.러시아 최대 농기계 제작공장인 「시베리아 마시」도 이때 건설됐고 시베리아 문화혁명을 주도한 과학문화센터도 31년 건설됐다.인구도 크게 늘어나 35년에는 33만명,41년에 40만명을 넘어섰다. 시베리아에 있는 대도시들의 공통점이지만 노보시비르스크도 2차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 유럽쪽에 있던 산업,문화시설들이 대거 피란옴에 따라 엄청난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50여개의 공장이 이곳으로 옮겨왔고 러시아 최대미술관 트레차코프미술관이 모스크바에서 옮겨온 것을 비롯,레닌그라드에 있던 오페라,발레극장이 대거 옮겨와 전시 시베리아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최대 약점은 혹한이다.지난 겨울에도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이 혹한 탓에 오브강을 지나는 철교는 금속튜브를 덮어씌워 놓았다.그 금속통속으로 열차,지하철이 다니는 것이다.현재 오브강의 교량은 5개가 건설돼있는데 이것이 만들어지기 전 겨울철에는 언 강위로 차량들이 지나다녔다. ○불친절하고 폐쇄적 이런 악조건의 자연속에서 이 정도의 대도시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총주민수 1백44만명에 16개의 대학이 있고 항공기제작,핵발전소 기계제작,발전소장비,주석가공공장등 각종 첨단,중장비 제작공장이 즐비하다.그리고 시베리아 최대의 도서관이 이곳에 있다. ○한국의 대덕단지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볼셰비키들이 최고 자랑거리로 내세운 걸작품은 바로 도시 남쪽 30㎞에 세워진 「아카뎀 고로독(학문의 도시)」이다.우리나라의 대덕연구단지를 연상시키는 순수 연구소 단지다.현재 22개의 연구소와 대학이 입주해있고 백화점,극장,호텔등 각종 편의시설과 연구원,가족,행정요원들이 사는 아파트들로 이루어져있다.연구원수는 모두 3만여명에 이중 아카데미 정회원이 18명,준회원 33명,박사 5백명,준박사(칸디다트,서방의 Ph D에 해당)3천여명이 있다.
  • 낙농의 중심지/바라빈스크(시베리아 대탐방:25)

    ◎끝없는 초원… 러시아 제2버터산지/목축업 최적지… 강물엔 염분 많아/오일·가스 다량매장,유럽까지 가스공급관 연결/서시베리아 전역 같은 시간대… 모스크바와 4시간차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배 생활을 했던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즈 미술관 본관건물을 연상시키는 3층 건물이 있는데 녹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건물이다.주립오페라·발레극장인데 모스크바의 아르바트거리에 있는 예브게니 바흐탄코바극장이 2차대전 때 바로 이 극장으로 피란왔던 것으로 유명한 건물이다.1층 현관 왼쪽에 「달러 체인지」라고 써붙인 환전소가 들어서 있어 건물 분위기를 해치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건물이다. 옴스크 거리에서 특별히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이다.옛 서시베리아의 수도답게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레닌거리에 있는 세라핌 차소브냐라는 작은 교회는 이 도시의 상징처럼 된 예쁜 건축물이다. ○3종류로 교회 분리 러시아의 교회 건물은 크게 3종류로 나누어진다.가장 큰것이 「사보르」라고 부르는 대성당으로 큰 도시에 보통 1개씩만 있다.예외로 모스크바에는 4∼5개,레닌그라드에는 3∼4개의 사보르가 있다.그다음 규모가 각 구역별로 있는 「체르코프」라고 부르는 일반교회다.신도들이 예배를 보기 위해 들르는 통상적 교회를 일컫는다.마지막으로 「차소브냐」라는 기념교회가 있다.차소브냐는 「차스(시간)」에서 온 말로 중요한 사건을 기념해서 세운 교회 모양의 기념건축물인 셈이다.건물 내부에는 그 사건과 관련된 작은 박물관도 꾸미고 교회성물을 파는 작은 매점이 하나씩 있는게 전형적인 차소브냐의 풍경이다.금년에 제2차대전 승전 50주년을 기념해 모스크바에 새운 차소브냐,에카테린부르크의 황제처형장소에 세워진 목조교회 등이 차소브냐의 전형적인 예다. 혁명전 모스크바의 교회수를 나타내는 말로 「소록(40) 사라코프(제곱)」라는 말이 있다.3가지 종류의 교회를 모두 합쳐 교회 수가 1천6백개에 달한데서 생겨난 말이다.모스크바 전역을 4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각구역에 40개의 교회를 지었던것이다.러시아어에서 「소록 사라코프」라는 말은 현재 「수도 없이 많다」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구로도 쓰인다. ○폴란드도 연결 계획 서시베리아는 오일·가스의 주산지다.오브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수르구트·니즈니유간스크 등 한티 만시자치구의 석유주산지들이 있고 좀더 북으로 가면 가스의 주산지가 나타난다.특히 야말반도에서 나는 가스는 러시아 전역은 물론 옛 동구지역과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까지 공급된다.최근에는 코미공화국∼야로슬라블∼백러시아를 거쳐 폴란드로 직접 가스관을 연결하는 건설 계획이 확정됐다.현재 가스파이프라인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가 계속 높은 통행세를 요구해 새 가스파이프의 건설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과거 브레즈네프 시절까지만 해도 이 지역의 오일·가스는 군수산업을 위한 주요 외화가득원이었는데 최근 수년 사이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톰스크주·옴스크주 북부에도 오일·가스가 많이 매장돼 있는데 옴스크는 특히 시베리아 최대 정유단지가 조성돼 있어 튜멘에서 이곳까지 직접 파이프라인이 건설돼 있다. 옴스크에서 하루를 묵은 뒤 이튿날 하오 7시(현지시간으로는 하오 10시) 노보시비르스크로 가기 위해 옴스크역을 출발했다.열차이름은 옴스크를 관통하는 강 이름을 딴 「이르티시호」.옴스크역을 벗어나는 지점의 푯말은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가 2천7백15㎞라고 가리키고 있다.원래 지도상으로 노보시비르스크주부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1시간이 더 벌어져 4시간이 된다.하지만 지난해 이곳 주정부의 결정으로 서시베리아 전역이 같은 시간대를 쓰기로 해 실제 시차변경은 하지 않는다.자칫 낡은 여행정보를 갖고 왔다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낭패를 당하게 된다. 열차가 통과하는 노보시비르스크주 중서부지역은 모스크바주 북쪽 볼로그다주에 이은 러시아 제2의 버터 산지다.바라빈스카야 스텝·쿨룬딘스카야 스텝 등 목축에 최적인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 덕분이다.한때 유럽으로 수출되는 버터는 대부분 이곳에서 생산됐다.그리고 시베리아 혹한에서 신는 긴 가죽장화 「펠트」의 주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소득수준 매우 높아 이곳으로 들어서며 기차는 유난히 작은 강을 많이 지난다.러시아에서 작은 강·호수가 제일 많은 곳을 통과하는 것이다.북동 시베리아의 언 땅이 녹으며 생성된 작은 강들이 서남쪽으로 일제히 흘러들면서 막대금을 비스듬히 그은 듯한 모습으로 줄줄이 생성돼 있다.이곳에 만들어진 호수들은 또한 염분이 많기로 유명하다.그래서 목축 외에 농업은 거의 불가능하다.열차 안에서 파는 이 지방의 생수도 거의 소금물에 가까워 입을 댈 수 없을 지경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주의 첫번째 역은 타타르 이름인 타타르스크다.19 11년 지금은 카자흐 영토가 된 남동쪽 쿨룬다시로 대시베리아철도가 연결되며 건설된 도시다.주민 3만1천명의 소도시이지만 버터의 주산지로 소득 수준은 매우 높다.이곳에는 유난히 타타르 이름이 많다.치크·옴·출림·찬늬 등 단번에 타타르 이름임을 알 수 있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당연한 현상이지만 동으로 나아갈 수록,즉 모스크바로부터 멀어질수록 러시아에 정복되기 전 원주민들이 쓰던이름이 많이 남은 것이다.이 부근에서 러시아식 이름의 도시는 볼셰비키들이 새로 건설한 노보시비르스크 한 곳 뿐이다. 옴스크를 떠난 열차가 노보시비르스크로 향하며 북쪽으로 20∼30여㎞ 거리를 두고 거의 평행되게 따라오는 강이 있다.바로 옴강이다.시베리아철도가 건설되기 전까지 서시베리아의 교역로는 이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그리고 이 교역로의 중심지로 성장했던 도시가 바로 쿠이비셰프다.쿠이비셰프와 남쪽 30㎞에 위치한 시베리아철도역 바바린스크 두곳도 철도가 도시의 흥망을 갈라놓은 좋은 예다. 1722년 카인스크란 이름으로 건설된 쿠이비셰프는 한동안 버터·육류·섬유·가죽·모피·어업의 중심교역지로서 번창했었다.그러나 남쪽으로 떨어진 지점으로 철도가 통과하면서 지리적 중요성을 상실,이후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대신 남쪽의 시베리아철도역 바바린스크시는 쿠이비셰프로 연결되는 지선과 대시베리아철도의 교차점으로서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됐다.
  •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출발” 모스크바(시베리아 대탐방:16)

    ◎총길이 9,288㎞… 러시아의 대동맥/시경계 벗어나면 별장 「다차촌」이 눈앞에/출발 1시간만에 차창밖은 침엽수림으로/철길따라 늘어선 「베료자」 숲은 “러시아인의 정서” 서울신문 창간50주년기념 특별기획연재물 「시베리아 대탐방」은 지난 주 15회로 1부를 끝내고 이번 주 16회부터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시작한다.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과 사진부 송기석 특파원이 20여일동안 이 열차를 탑승,철도주변의 모습과 자원,자연환경 등을 컬러사진과 함께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시베리아 대탐방 제2부는 주2회 수요일과 목요일에 연재한다. 하오 2시 정각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기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을 출발했다.출발한지 불과 35분만에 북부시경계를 벗어나 모스크바주(오블라스치)로 들어서자 곧바로 확트인 대지가 차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그리고 대지와 숲 사이로 러시아인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재산목록 1호 「다차」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다차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별장」이지만 호사스런 별장이 아니라 그곳에서 남새도 키우고 신선한 공기속에 이웃들과 보드카도 실컷 마시는 주말농장같은 곳이다. 다차의 어원은 러시아어 「다바치(받다)」에서 유래된 것.제정 러시아시절 황제 차르가 총애하는 귀족들에게 땅떼기를 선사한데서 나온 말이지만 소비에트시절 일반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보급돼 지금은 모스크바시민 70∼80%가 다차의 주인이다.5월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9월까지 매주 금요일 하오만 되면 다차로 향하는 시민들로 모스크바시의 외곽도로는 지독한 교통체증을 빚을 정도다.물론 주말이면 모스크바 시내는 완전히 빈도시가 되다시피 한다. 다차 마당에 나와 감자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러시아인들은 봄 5월15일을 기준으로 감자씨를 뿌리기 시작한다.특별한 이름이 붙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날이 지나면 혹독한 추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차촌이 시작되며 러시아인들의 정서적인 심벌,「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난다.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시베리아끝까지 줄곧 길동무가 될 나무들이다.우리의 백양목과 비슷한데 우랄에서 동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겨울이 물러가면서 연푸른 잎을 달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베리아 횡단길에 계절의 경계를 알려주는 「잎의 화신」역할을 하게된다.우리에게는 베료스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베료자에 예쁘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 「카」가 덧붙은 말이다. 다차촌은 모스크바 시경계를 중심으로 반경 2백50㎞까지 계속된다.그리고는 황량한 대지와 베료자숲이 계속되다가 다음 도시의 다차촌이 또 나타난다.대도시 주위에는 반드시 다차촌이 형성돼있다. 출발 한시간이 지나자 푸슈킨의 이름을 딴 푸슈키노역이 지나고 역한편에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인 사일로같이 생긴 물탱크가 지나간다.높이 20여m에 붉은벽돌과 나무로 만들어 지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시베리아철도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을 제외 하고는 전구간이 전철화됐다.따라서 물태크는 이제 역할이 없어진 철도의 장식품에불과하다. 우리가 탄 차는 종착역이 블라디보스토크인 「러시아2호」특급열차.방 하나에 침대 2개가 마련돼 있어 객차 한칸에 승객수는 20명안팎에 불과한 최고급 이다.격일로 홀수날만 모스크바를 출발하는데 종착역까지 계속 갈 경우 6박7일이 걸리기 때문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게 보통 복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야로슬라블까지를 시베리아철도의 제1구간으로 부르는데 이는 건설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구간은 두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구간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기예프 파사드까지로 1862년에 건설됐다.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뻗는 최초의 철도인 것이다.이 선은 1870년에 2단계로 야로슬라블까지 연장됐다.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종교적인 수도였다.지난 91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볼셰비키의 이름을 딴 자고르스크로 불렸으며 모스크바에 들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승지다.그 다음 야로슬라블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모스크바에 있는 공장들을 볼가강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산업적인 고려 때문에 건설됐다.이구간이 개통됨으로써 모스크바에서 생산된 각종 공산품들은 당시 가장 가까운 볼가강 항구인 이 야로슬라블을 통해 카스트로마·니즈니노보고르드·체복사리·카잔등 볼가강변의 크고 작은 도시들로 공급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베리아행 열차의 종착역은 야로슬라블이었는데 이 때문에 모스크바의 시베리아철도 출발역 이름은 야로슬라블역이다.모스크바의 역 이름은 모두 행선지 이름을 따서 만든게 재미있다.예를들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은 레닌그라드역이다.키예프로 가는 열차는 키예프역,백러시아로 가는 열차는 백러시아역…하는 식이다. 출발 1시간이 지나면서 차창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침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침엽수·활엽수의 혼재상태가 이어진다.벌써 타이가(삼림지대)의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그리고 타이가에 가까워질 수록 침엽수의 몫이 더 많아진다. 계속되던 다차촌은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0년대 최대 출판단지(콤비나트)였던 프라우다신문이 종업원들을 위해 만든 다차촌 「프라브딘스키」역을 지나면서 다시 막막한 베료자숲이 대지를 수놓기 시작했다. ◎횡단철도란/수도 모스크바서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연결/1891년 첫삽,25년만에 완공… 6박7일 걸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길이 9천2백88㎞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철로이다.특급열차로 달릴 경우 꼬박 6박7일이 걸리는 거리다.지구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시간이 바뀌는 시간대만도 7개나 지난다.일명 「대시베리아철도」로도 불리는 이 철도는 제정러시아 때인 1891년5월19일 착공돼 25년만인 1916년 쿠즈네츠∼하바로프스크 구간을 끝으로 완공됐다.물론 많은 구간은 기존 노선을 보완해 연결했다.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최대 자원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개발의 계기를 맞았다.인구유입이 촉진돼 철로변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도시가 등장했고 대학·도서관·극장등이 들어서 문화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2차세계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 유럽쪽에 있던 많은 공장·문화기관들이 이 철도를 따라 대거 시베리아로 옮겨져 이 지역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지금은 최대 공업지대인 우랄지구·쿠즈네츠탄전·북부의 석유·가스산지를 유럽쪽으로 연결해 주는 러시아의 산업 대동맥 구실을 하고있다. 2차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노선의 전철화가 시작돼 75년 거의 마무리됐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구간을 제외한 전구간이 전철화됐다.현재 대시베리아철도는 연방철도부 산하에 반독립기구로 우랄철도부·옴스크철도부·사할린철도부 등 약 20개의 지방 철도부가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앞으로 전구간 복선화·전철화,그리고 바이칼∼아무르구간(BAM철도)완공과 함께 만성 적자를 탈피하기 위한 서비스 개선,경영합리화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유럽으로 가는 우리나라 화물의 일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값싸고 빠르게 운송되고 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원만히 풀리면 직접 육로로 유럽까지 연결해줄 철도가 바로 시베리아 철도라 이 철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 하다.
  • 인천상륙작전 전후(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0)

    ◎스탈린,소 군사고문단에 “작전 실책” 추궁/“병력 이동­탱크사용 전술 결정적 과오” 격노/김일성,연합군 「38선 진격」 당황… “소 개입” 요청 한국전쟁이 스탈린의 지시와 지원하에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50년 9월 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 정치국은 평양주재 슈티코프대사와 북한주재 소련군사고문단장 마트비예프장군 앞으로 보내는 지시문 채택을 승인했다.이 지시문은 스탈린이 직접 작성해 서명한 것이었다.여기에서 스탈린은 서울을 비롯,남동부전선에서 전세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대한 작전변경을 결심했다. ○병력철수 작전 못마땅 스탈린은 작전부진의 주 책임을 소련군사고문단의 실책으로 몰아붙였다.다음은 이날 당 정치국 회의록에 기록된 지시문의 내용.(19 50년 9월7일.당 정치국회의록 N78.조선전쟁문제회의록p.1) 『최근 수일간 전선상황이 심각해졌음(서울과 동남부전선 모두).이는 전선사령부와 군단사령부,병력지휘부 특히 전술분야의 병력구성분야에서의 중대한 실책으로 야기됐음. 소련군사고문단들은 이들 실책에 보다 큰 책임이 있다.우리 고문단들은 4개 사단을 주전선에서 서울외곽으로 철수시키는데 있어 총사령관의 명령을 제때 충실하게 이행치 못했다.결정적인 시기에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그 결과 7일을 허비해 미군이 서울 이남에서 큰 전술적 이득을 획득케 했다.만약 이들 사단의 철수가 제때 이루어졌더라면 서울 이남의 전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임』 스탈린은 이와함께 탱크사용 전술이 크게 잘못됐다는데 대해 격노했다. 『탱크를 투입할 때는 사전에 박격포공격을 통해 탱크가 진격할 길을 치워야 하는데 최근 이 원칙도 지키지 않고 탱크를 투입했다.이 때문에 우리 탱크들이 쉽게 적에게 파괴됐다』 스탈린은 또 미군의 인천상륙 가능성에 크게 우려하며 군사고문단들이 이에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슈티코프대사가 미군의 상륙작전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프라우다신문 기자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며 『이런 전략경험의 미숙,맹목성이 남부의 병력을 서울지역으로 이동시키는데 의문을 야기시켰다』고 질책했다.이와함께 스탈린은 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장군에게 인민군사령부가 병력을 동남부로부터 신속하고 질서있게 이동시켜 서울 동·남·북부에 새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그는 병력이동시 작전수칙 8개항을 직접 지시했다. ○「8개 수칙」 직접지시 『①주력군 철수는 강력한 후방지원하에 시행할 것.경험많은 전투사령관들이 후방지휘를 책임질 것.대전차포부대,탱크가 후방방어를 지원할 것.②후방방어는 지뢰등을 이용한 장애물을 설치,이중삼중의 방어선을 만들 것.주력군 철수에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후방방어는 적극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돼야함.③주력사단은 분리이동이 아니라 전체가 이동해야 함.주력군 선두는 포,탱크부대를 앞세워 전투태세를 갖춘상태에서 나아가야 함.④탱크는 반드시 지상군과 함께 투입하되 사전에 포공격을 한 다음 투입할 것.⑤선두부대는 주력군이 도착하기 전 교량,교차로,주요도로 등을 점령해야 함.⑥철수시 정보수집과 부대간 통신유지에 특별히 신경을쓸 것.⑦방어선 구축시기에는 병력의 전선배치를 피할 것.공격작전 개시 전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함.⑧인민군사령부와 병력간 통신시 무선암호를 사용할 것.…중략…이미 지시한 바대로 군사고문단은 단 한명도 포로로 잡히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할 것』 9월 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함께 전세는 북한측에 더욱더 어렵게 전개됐다.스탈린은 김일성과 북한주재 소련군사고문단의 긴급요청을 받고 마침내 소련공군 부대를 북한에 주둔시키기로 동의했다.즉각 관련부대에 대한 명령이 소련군지도부에 내려졌다. 50년 9월 21일바실리예프스키 원수가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 N11 72SS)『①평양방어 임무를 맡은 「야크­9」전투비행여단의 전속에 관해 보고함.이 여단의 전속배치를 위해 연해주 보로실료프시 인근에 주둔중인 147비행사단 전력에 의존할 것을 제의함.전투기의 이동배치시 안동­평양지구에서 공중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중략… ②북조선내 비행단 정비인력이 부족함으로 인해 위에 언급한 여단의항공기술대대 1개를 안동 경유 철도를 이용,평양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음.동시에 북조선이 탄약,연료가 부족하다면 이를 평양에 공급할 것임.③북조선이 공군관제기술과 공중경보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장비를 공급해 주어야 함.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공군기들이 활주로에서 적군기의 기습공격을 당할 우려가 높음.…』 이틀 뒤인9월 23일 바실리예프스키 원수는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을 위한 최종계획을 보고했다. 바실리예프스키 장군은 이 보고서에서 『아군 조종사들이 평양부근에서 1차 교전만 가지면 미군기들에 의해 즉각 정체가 탄로날 것임.왜냐하면 공중전에서 조종사들간 무선교신이 러시아말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임』이라며 이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써줄 것을 스탈린에게 요청했다. 소련공군기의 참전태세가 완료된 즈음,북한군의 전세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스탈린으로부터 전황파악 임무를 부여받고 전선으로 간 마트베프 장군은 9월27일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 N60 0262sh) 『서부전선(서울)과 동남전선(부산 방향)의 전황이 인민군에게 매우 불리함.미군은 인민군의 주력을 포위격멸하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음.제물포에 상륙작전을 폈고 이곳으로부터 북쪽과 대구 북서방향으로 진격중임. ○김,6개사단 창설 계획 미군은 강력한 공군력의 지원을 엎고 인민군의 후방과 전방지역에 가공할 공습을 가하고 있음.미군은 수원 동쪽과 동남쪽 25∼30㎞까지 진격했음. 9월 25일 19:00,김일성은 서울일원과 북부전선과 동남방향의 제2군에게 최선을 다해 적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음.9월 26일 소련군고문단들이 김일성을 만났음.이 면담에서 김일성은 전시 총사령관과,전쟁상 직을 자신이 모두 맡겠다고 밝혔음.김일성은 특히 남쪽으로부터 동원가능한 최대인력을 데려와 이들로 6개 보병사단을 창설하겠다고 말했음.중국철도가 조선으로 오는 군수품 때문에 크게 붐기기 때문에 이들 6개 사단창설에 필요한 무기,탄약 수송에 최우선권을 부여하는게 바람직하다고 했음.이 면담에서 우리는 김일성과 다음 사항에 합의했음.①효율적인 병력통제체제 확립.②물자,기술공급,수송,도로이용을 원활하게 할 것.③방어선 구축.북조선군은 운전병이 부족함.김일성이 중국측에 운전요원 1천5백명 보내달라고 요청할 것임.9월 29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슈티코프대사를 만나 전선상황을 브리핑했음. 슈티코프대사가 전한 바에 따르면 김은 다음과 같이 말했음. 마트베프 장군은 9월 30일자전문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를 계속했다.『슈티코프는 김일성의 이같은 요청에 대해 자기는 현재 인민군의 정확한 위치,사정을 알지 못해 충고할 수는 없으나 38도선으로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지는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함. 김일성은 본인에게 적이 38도선을 넘어 진격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것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38도선의 방어선 구축은 서둘러야 한다고 답했음.김일성은 다시 한번 자력으로 통일을 이룩하고 싶다고 말하며 15개 사단을 창설해 전투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음.김일성은 그러나 만약 적이 38도선 넘어 진격해올 경우 새로운 사단창설은 물론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가 없다고 말했음. ○모에도 공군지원 요청 김일성은 이와 관련,스탈린동지께 서한을 보내 충고를 듣고 싶다고 말했음.본인은 이와 관련,들려줄 충고는 없을 것이라고 답했음.김일성은 이 서한에 공군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음.최근 모택동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같은 부탁이 포함돼 있었음.본인 판단에 김일성과 박헌영은 매우 초조해 있음.당황하고 비관적이었음. 상황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음.서울이 함락됐음.38도선을 향해 신속히 진격하는 적을 상대로 효과적인 저항을 펼수있는 병력이 없음.정치상황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음』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김일성은 마침내 강경한 어조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새로 밝혀진 사실/스탈린,9월초 “인천상륙작전 대비” 지시/「소 공군 투입계획」 중 공군 참전에 확정 9월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직접 지시문을 채택하였다는 점은 소련이 한국전쟁을 지도부 전체 수준에서 논의하였음을 보여준다.즉 그것은 이미 미국과 소련의 세계전쟁이 되어있었던 것이다.이날의 지시문에서는 작전 부재의 책임을 소련군사고문단에게 직접 묻고있다.서울부근에서 지체한 것도 소련고문단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심지어 사령부와 예하부대와의 협조 및 통신 연락미비 탱크사용전술에 있어서의 오류 등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점까지 직접 지시하고 있다.다른 한가지 새로운 점은 스탈린이 이미 9월초에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는 서울부근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라고까지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거대한 전쟁을 여러 번 치렀던 스탈린으로서는,특히 2차세계대전을 미국과 함께 치렀던 그로서는 이미 미국의 고전적인 상륙전술을 깊이 인지하고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공산진영은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을 사전에 거의 알고도 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세번째로 소련공군의 참전방침이 이미 중국군의 참전 이전인 9월에 결정되었다는 점이다.이 역시 아주 새로운 사실로서 지금까지 소련공군참전결정은 10월에 중국군의 참전교섭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통설의 부정인 것이다.또한 흥미있게도 조종사들에 의한 러시아어무선교신의 위험성을 이미 지적하고있다는 사실이다.이는 실제로 소련공군이 참전한 후 위장을 위해 중국어나 한국어를 사용하였던 점에 비추어 그러한 위장의 계획이 일찍부터 세워졌음을 알게해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 본격적인 전쟁준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8)

    ◎새로 밝혀진 사실들/김,방중전에 “6월말 공격개시” 확정/조작논란 「3단계 작전」 6월 15일 수립 한국전쟁 발발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8회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특히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정부에 넘겨준 문서에는 19 50년6월 상황을 담고 있는 문서가 거의 빠져있는 사실을 감안할때 긴박한 순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한 새로운 사실들중의 하나는 김일성이 50년5월중순 모택동을 만나기위해 중국을 방문하기전부터 공격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이는 남침에 임박해서야 전쟁개시일을 7월에서 6월로 앞당겼다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주장과 해석을 뒤엎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하나의 사실은 6월15일에 확정된 3단계작전이다.그동안 오랫동안 조작논쟁을 불러일으켰던 3단계작전이 진실임이 밝혀졌다.일부에서는 전쟁후 한국과 미국에 의해 공개되어 남침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3단계작전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3단계작전은 지금 워싱턴에 보관중인 러시아어로 된 인민군 작전명령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이번 회의 내용으로 볼때 위싱턴에 있는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6·25는 남침임이 결정적으로 증명됐다. ◎작전개시직전 국지전서 전면전으로 전환/김일성,50년 5월12일 방중전 공격일 소 통고/북­소 49년 6월4일 무기지원 「특별협정」 체결 전쟁개시에 대한 3자간 합의가 마무리되자 막바지 전쟁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전쟁준비의 두 축은 소련과 북한이었다.하지만 김일성의 전쟁준비는 이미 1년전부터 본격화됐다.소련에 대한 무기지원요청이 이어졌고 소련역시 이를 충실히 도와주었다.김일성은 49년5월1일자로 추가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띄웠다.그는 49년5월까지 기계화부대 증설을 비롯,공군을 제외한 모든 군의 개편문제를 마무리짓고 9월까지는 공군개편을 끝내고 싶다며 추가무기지원을 요청했다. ○추가 무기지원 요청 슈티코프대사가 보낸 이 전문에 의하면 김일성 ⓛ2개 탱크연대를 거느린 탱크여단 ②독립 탱크연대③각 사단에 박격포부대 추가창설 ④공군사단 ⑤엔지니어링 대대 ⑥박격포 여단의 창설을 건의했다.이와 함께 장문의 필요한 무기목록을 덧붙였다.스탈린은 이 요청을 90%정도 집행해 주었다.이를 위해 북한·소련 양국은 49년6월4일 『소련은 북조선정부의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지원요청을 전부 만족시키는 데 동의한다』는 요지의 특별협정을 체결했다.이 특별협정에는 북한에 제공될 소련무기 목록이 첨부됐다.주요목록은 다음과같다. ▲공군장비:IL­10기(30대) WIL­10기(4대) YAK­9기(30대) PO­2기(4대) YAK­18기(27대) YAK­11기(6대) ▲기갑장비:탱크 T­34(87대)장갑차 BA­64(57대)장갑차 SU-76(1백2대)모터사이클 M­72(1백22대) 이외에도 소련은 각종 포탄·대구경총·자동화기·저격용 소총·전함·상륙정·지뢰·도하장비·무전기·전화선·어뢰정·대잠함을 비롯,북한이 요청한 탄약 일체를 인도키로 약속했다.이들 무기원조에 대해 북한은 쌀을 비롯한 곡물과 광물로 갚기로 동의했다. 김일성은 49년12월말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50년도분 추가무기지원 1억1천2백만루블어치를 소련정부에 요청했다.상환방법은 보석류 및 비철금속으로 갚는다고 했다.슈티코프 대사가 50년1월1일자로 본국에 보낸 전문에 나타난 추가요청내역은 다음과 같다.1개 모터사이클연대 창설,기존 1개 보병여단을 사단에 편입시키고 무기보강,최근 창설한 해군보강을 위한 전함 2척. 50년3월14일 김일성은 51년분 차관을 50년도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모스크바에 요청했다.전용목적은 무기·탄약 및 군사기술장비 구입이었고 필요한 무기목록을 전문 뒤에 별첨으로 보냈다.육해공군의 각종장비,탄약을 망라,수백종에 이르는 물품이었다.김일성은 전문에다 별도로 『북조선인민공화국정부는 소련정부가 신생국 조선공화국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요청한 물품을 조속한 시일내에 보내줄 것을 기대합니다』라는 서신을 첨부시켰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50년4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은 남조선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던 김달삼이란 사람이 평양으로 넘어왔다는 전문보고를 본부에 보냈다.이 전문은 『남조선언론들이 정부군의 토벌작전중에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그는 지금 평양에 와있으며 방문목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남침개시를 앞두고 남한내부 혼란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북경방문 출발 하루 전인 5월12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러 전쟁개시일을 6월로 잡겠다는 최초의 언질을 주었다.『본인은 이미 남조선에 대한 공격준비 명령을 총참모장에게 내렸음.전쟁계획은 이미 짜여졌음.준비가 예정대로 마쳐질지 모르지만 공격개시일은 6월로 잡겠음』.슈티코프대사는 즉각 이 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북경방문을 마치고 온 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예정대로 진행시켜나갔다.5월29일 슈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전쟁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6월8일 병력이동 『김일성은 공격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음.모스크바회담에서 지원키로 합의한 무기 대부분이 도착했다고 함.김일성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시찰한뒤 6월말 공격개시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함.김일성의 명령을 따라 인민군총참모장이 공격작전을 수립했음.인민군 총참모장과 소련고문단장 바실리예프 장군이 이 작전계획을 김일성에게 보고,승인을 받았다고 함.군편성은 6월1일까지 완료예정.6월 전투개시에 아무런 차질이 없다고 함.김일성은 작전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있다고 함.더 늦출 경우 첫째 작전계획이 남조선측에 유출될 우려가 있고 둘째 7월이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음.김일성은 6월8∼10일 사이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음』. 같은날 슈티코프 대사는 소련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포스트니코프 장군과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두 장군은 처음에 김일성의 6월말 공격개시에 반대했다.작전준비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7월이라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이 두사람도 결국은 장마 때문에 6월말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슈티코프 자신도 장마철 공격개시는 너무 위험하다며 김일성의 생각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렇게 해서 공격개시일은 6월말로 확정됐다. 마침내 운명의 6월이 왔다. 북한은 3단계작전중첫번째인 평화공세를 시작했다.6월10일 북한은 남측에 대해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키 위해 전조선민주연합전선 중앙위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슈티코프는 이튿날 6월11일 남한의 반응이 나오자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남조선이 이 제의를 거부했음.공격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켜 나가야겠음.병력을 38도선부근으로 이동시키고 추가 평화통일제의를 하겠음』. 6월12일 슈티코프는 13일부터 38도선 10∼15㎞지역으로 인민군의 병력이동이 시작된다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총참모장 주재로 사단장을 비롯한 각급 지휘관 회의가 열려 구체적인 임무가 하달됐다.6월15일 3단계로 나누어진 최종작전계획이 확정됐다.슈티코프는 6월15일 이 작전계획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작전개시는 6월25일 이른새벽에 시작됨.1단계작전은 옹진반도에서 국지전형태로 시작한 뒤 주공격선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감.2단계 작전은 서울과 한강을 장악함.동시에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은 춘천과 강릉을 해방.이에 따라 남조선군 주력은 서울일원에서 포위당해 궤멸됨.마지막 3단계작전에서는 여타지역 해방.적의 잔여세력을 소탕하고 주요 인구밀집지역과 항구를 점령함』. 여기서 알수있듯이 김일성이 세운 당초 작전계획은 전전선에 걸친 전면공격이 아니라 옹진반도를 시작으로하는 단계적 공격이었다.이것이 그뒤 작전계시직전에 전면남침으로 바뀐 것이다. ○소련병력 승선거부 이렇게 최종작전계획을 수립해놓은 뒤에도 북한은 평화선전공세를 계획했다.6월16일 북조선인민최고회의가 남한국회앞으로 평화통일 제의를 내놓았다.이 평화제의의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슈티코프의 전문보고를 인용해본다. (19 50년6월16일.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조선동지들은 이 평화제의와 이에 대해 남조선이 보일 부정적인 반응(반대할 것이 쉽게 예상됨)이 갖는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음』. 6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상륙작전에 쓸 전함의 추가지원을 소련측에 요청했다.동서해안에서 동시에 상륙작전을 감행,적을 포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김은 전함을 보내면서 『인민군내에 전함운용 요원이 없기 때문에 상륙선을 운행할 소련해군 요원을 함께 보내줄 것』도 요청했다.스탈린은 21일 답전을 통해 전함추가지원은 받아들이되 적에게 개입명분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소련병력 승선은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21일 김일성은 슈티코프대사를 통해 중대한 메시지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작전변경에 관한 건의였다. 『김일성은 남조선 방송청취 및 정보보고에 의거,남측이 인민군의 작전계획내용을 입수한 것같다고 말했음.이에 따라 남측이 전투력 강화,방어선 강화,옹진반도 방향에 병력추가배치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함.이같은 상황변화로 인해 원래의 작전계획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함.김일성은 전면공세 전 옹진반도를 기점으로한 국지전 시작 대신 6월25일 전전선에서 전면공격을 감행하자고 제의했음』. 스탈린은 이 작전변경 건의를 이의없이 승인했다.6월25일 새벽 전전선에서 공격개시로 최종확정된 것이다.
  • 튜멘시/오일·가스대/(시베리아 대탐방:12)

    ◎석유관련 세계 유일의 종합대학/5개 학부 49개 학과… 재학생 9천여명/지역회사들이 재단구성,재정 등 지원/외국기업선 인재확보 하려 학비보조 오일·가스가 풍부한 튜멘주에는 「독특한」대학이 하나 있다.「튜멘 오일·가스종합대학」이다.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대학이름이지만 오일과 가스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한 종합대학이다. 이 대학이 종합대학으로 된 것은 올해부터다.이전까지는 여느 공업단과대학에 불과했다.지난해 주정부는 이 대학을 「오일·가스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러시아 대학들간에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요즈음 각기 살아남기 위한 이른바「차별화전략」이다. 이 대학이 탄생한 것은 튜멘주의 각급 오일·가스회사들이 그 필요성을 건의한데 따른 것이다.이 대학의 올레그 다닐로프 부총장은 『지역 회사들이 튜멘주가 러시아 최대의 오일·가스생산지역이라는 점,오일·가스개발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능한 오일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워 「재단」을 구성,대학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수 1명에 학생 6명 이 대학은 모두 5개학부에 49개학과로 이뤄져 있다.오일·가스학부,탐사학부,개발학부,운송학부,화학처리학부 등이 그것이다.모두 「오일·가스종합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학부들이다.교수는 모두 1천5백명,학생수는 9천명이다.학생 6명에 교수 한명꼴인 셈이다.올해 처음으로 종합대학 신입생을 뽑은 이 대학의 입학경쟁률은 평균 4.5대1.경쟁률로 보면 튜멘주 12개 대학 가운데 제일 높았고 명문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 됐다. 입학시험은 러시아어와 수학을 필수과목으로 하고 물리·화학·지학 가운데 한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다닐로프 부총장은 학생들의 수준과 관련,『외국 유수의 석유관련기업들이 학생들에게 학비보조금을 대주는 등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을 정도』라고 자랑했다.그는 『중국 몽골등에서 유학온 학생들도 더러 있다』면서『특수종합대학인 만큼 외국의 전문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학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특히 튜멘주 전지역을 대상으로한 「TV강의」를 실시,튜멘주 오일·가스전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원래 TV강의는 정규과정(5년)외에 이 대학이 설치해 놓은 통신대학 과정학부생을 위한 것이다.하지만 이 강의는 튜멘주 대부분 지역이 오일개발과 관련돼 있어 학생들 뿐 아니라 탐사관계자들까지 애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탈리 표드로비치 물리학교수는 『「오일·가스종합대학」은 튜멘주내 30여곳의「오일」연구소와도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산학협동시스템이 어느 지역보다 잘되고 있다고도 했다.뿐만아니라 최근에는 교수·학생들이 서방의 경제·경영학에도 큰 관심을 보여 경제관련학과의 인기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잘 다듬어진 「이론」의 덕택으로 튜멘주는 곧「튜멘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물론 종합대책의 대부분은 유전·가스개발과 관련된 것들이다.우선 튜멘주는 주전체 발전이 오일·가스개발에 달렸다고 보고 기간자본을 정비,보다 많은 오일과 가스를생산해 낸다는 방침이다.이 사업은 독일정부와 손잡고 추진중이다. ○독일과 공동개발 추진 이와 관련,튜멘주는 최근 독일정부와 송유관 교체와 탐사·개발장비 지원에 대한 개별협정을 맺었다.이 협정은 독일정부가 20억마르크에 해당되는 장비를 튜멘주에 제공하는 대신 같은 액수만큼 튜멘주에서 나온 오일·가스를 가져간다는 협정이다.튜멘주가 진행중인 또하나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튜멘주 북부 야말반도의 오일·가스개발 사업이다.여기서는 노르웨이의 유전회사와 손잡고 야말반도 주변의 천연자원을 개발한다는 것이다.특히 야말반도 주변은 바다밑 10∼15m정도에서 가스나 오일이 나오는 지역으로 알려져 튜멘주로서는 상당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개발비가 적게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싼 가격에 원유를 퍼 올릴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하지만 개발가능성에 비한다면 외국투자의 손길은 아직 본격적으로 미치지 않고 있다.레오니드 이바노프 주공보장관은 외국의 투자가 적은 이유로 두가지 이유를 든다.러시아의 정정불안 때문에 외국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가 급속히 자본주의경제로 편입하면서 생긴「혼돈」때문이라는 것이다.이바노프장관은『예를 들어 튜멘주에서 체첸공화국까지 1만㎞나 떨어져 있는데도 외국기업들은「러시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어 불안하다」며 결정적인 단계에서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체첸사태에 대해 연방정부가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군중데모가 잇따르고 있다.튜멘주의 경우 주청사 앞 레닌광장에서는 연일 주민들의 「체첸사태개입반대」데모가 벌어지고 있다.주민들은 『우리 아들을 데려오라』『체첸전쟁확대반대』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도 벌였다.이같은 반전데모는 취재팀이 시베리아 어느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었다.주민들이 데모를 하는 것은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이유 뿐만은 아니다.체첸사태에 징발돼 나간 전투에서 주민들의 많은「아들」들이 희생돼고 있기 때문이다. ○영·일어 수강생 급증 그럼에도 불구,튜멘주 경제학자들은 튜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학자들은『낙후된 기간시설이 본격적으로 교체돼 석유와 가스수출량이 본궤도에 오르면 1년뒤쯤이면 인플레이션이 2∼3%에 머물 것』이라면서『경제구조가 안정되면 다른 주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징후는 대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튜멘 오일·가스종합대학 학생사이에서는 영어·일어배우기가 최근 한창이다.대학게시판에는 영어나 일본어 스터디그룹들간의 모임을 알리는 벽보로 가득차 있다.외국기업이 몰려와 외국어 구사 학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다른 부류의 학생들은 경제·법률공부에 열을 올린다.모두 은행처럼 돈을「만지는」회사로 들어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칼라로바 마을(시베리아 대탐방:11)

    ◎외국인 관광지로 변한 “노동자 휴양지”/물가고에 발길 뜸해지자 “외화벌이”나서/「주문형」관광개발… 고객 원하는 레포츠 제공/한때 브레즈네프·고위 당간부 별장지로 유명 시베리아 중부 톰스크시내에서 북쪽으로 60㎞쯤 가면 시베리아 공장노동자의 휴양장소인 「시니우체스」라는 곳이 나온다.우리식으로 말하면 콘도미니엄 같은 곳이다.이곳이 특히 외부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옛소련의 변화를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봄·가을엔 사냥놀이 20년전인 70년대 초반.시니우체스는 브레즈네프 전공산당 서기장의 별장이었다.자작나무 숲을 뒤로하고 강을 낀 언덕위에 위치한 이곳에서 그는 각종 스포츠와 레저를 즐겼다.공산당 간부들도 그와 함께 했다.여름에는 낚시와 수영을,봄 가을로는 사냥을 즐겼다.톰강의 지류가 별장 양쪽으로 흐르면서 한껏 정취를 자아내는 곳이다. 브레즈네프가 죽자 이곳은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다시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 전개되면서는 톰스크의 최대 화학공장「세베르스크」 노동자들의 휴양소로바뀌었다.노동자의 휴양소가 최근에는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경제적인 이유에서 이다. 서기장 별장이 공산당 간부휴양지로,공산당 간부휴양지가 노동자휴양소로 변한 것은 전적으로 개방화·자유화 바람의 덕택이었다.하지만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자유화 때문만은 아니었다.그것은 「빵」,즉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화학공장「세베르스크」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회사측은 종업원의 월급을 걱정했는데 바로 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회사측이 생각해낸 것이 「관광객의 유치」였던 것이다. 말은 「휴양지」지만 시설은 서방의 콘도미님엄 못지 않다.1,2층에는 식당과 디스코장이 갖춰져 있고 각종 운동시설로 가득찬 헬스방도 인기가 높다.1층 디스코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방문객의 귀를 때린다.호텔 뒷마당으로 나가면 확 트인 톰강줄기를 배경으로 낚시꾼들의 여유있는 모습도 보인다. ○원시적 분위기 즐겨 관리인격인 나제스타 코롤요바씨(29)는 『인플레가 심해 노동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면서『이전에는 방문때마다 10일정도씩 묶고 갔지만 현재는 한번 오면 2∼3일 정도 휴식을 취하다 돌아간다』고 말했다.화학공장 종업원 대부분이 이전보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코롤요바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사뭇 대조적이다.사냥개와 사냥총을 들고 호텔문을 나서는 외국인의 모습이 눈에 띈다.이들의 사냥대상은 다양했다.곰과 순록·멧돼지·사슴·오리등이 그것이다.톰스크시내에는 최근 외국관광객의 사냥을 알선해주는 관광회사도 생겨났다.관광객들이 그만큼 늘고 있기 때문이다.코롤요바씨는 『휴양지를 찾은 손님이 색다른 관광을 원하면 시내의 관광회사와 연결시켜주기도 한다』면서 『노동자들의 휴양지가 이제는 외국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주문형 관광」이란 톰스크만의 독특한 「관광형태」도 생겨났다.주문형 관광이란 손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레저의 종류·일정등을 관광회사에 알려주면 거기에 맞춰 일체의 관광장비와 인원,부대서비스등이 제공되는 여행형태이다. 예를 들면 『곰사냥을 하고 싶다』며 손님들의 수를 알려주면 자세한 시간계획을 마련,거기에 맞춰 가격을 산정한 뒤 차량과 안내자(전문사냥꾼)등을 보내준다.스코틀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론 줄씨(44)는『한 친구의 소개로 이곳 옛 공산당 간부휴게소를 찾았다』면서『각종 스포츠·레저를 원시적인 분위기에서 즐기는 맛이 환상적』이라고 거들었다. 아직 서방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관광객들은 매번 오는 사람들만 온다는 것이 관리자들의 얘기였다.영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일본인들이 최대 고객이고 이들은 한번 올때마다 2백∼3백명까지 함께 온다는 것이다.그러나 아직은 러시아어교사라든지 학자라든지 하는 세미나를 겸한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옛것」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은 이곳 뿐만 아니다.시니우체스 이웃 「칼라로바」마을도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하지만 집주인이 거의 바뀌는 등 변화의 바람이 한창 이다.옛 공산당 간부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사유재산이 인정되면서 이제 돈 많은 사람들의 거처로 변해가고 있다.물론기득권을 가진 옛공산당 간부층이 집주인의 상당수다.이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이곳에 별장 같은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얘기다.하지만 뇌물이 판을 치던 관공서가 이제는 시민을 위한 서비스행정에도 서서히 관심을 기울여 가고 있다.변하고 있는 것이다.70년 이상 교회가 인정되지 않던 이 마을에 여기저기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퍼진다.아직은 신도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층들이다.예배당의 신축붐이 일어나는 것도 페레스트로이카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예배당 신축붐 일어 톰스크시내에서 이곳 공산당 간부마을인 「칼라로바」까지 오는 동안 안내자를 따라 「기도소」라는 곳을 찾았다.1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예배공간이었다.대형 교회건물을 짓는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예산이 마련될때까지 임시로 기도만 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공간」이라는 것이다.내부벽에는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공간 가운데에는 촛불로 신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작은 공간」한쪽에는 성화 십자가목걸이 엽서등을 팔며 예배당 건축을 위한 성금도 모으고 있었다. 변화의 바람도 바람이지만 개혁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시니우체스에서 국영 바를 관리하는 에두아르 레베제프씨(29)는 지난 91년이후 직업을 세번 바꾼사람.의류생산업체를 소유했던 레베제프씨는 세금때문에 사업체가 망했다고 했다.그는 『현재의 조세제도는 1백루블어치를 판매하면 1백10루블의 세금을 내도록 돼 있다』면서『공무원들은 법적·제도적 틀을 바꾸지는 않고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바를 관리하면서 아르바이트로 관광안내자로 일하는 두 직업을 가진 사나이다.시베리아 지역에는 둘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레베제프씨말고도 많다.
  • T­80U전차·유대용 첨단모델 다수/현물상환 러제무기 내용

    ◎북한도 보유안한 첨단모델 다수 대러시아 경협차관 원리금 대신에 현물상환되는 러시아제 무기들은 북한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첨단무기들이다.이들 무기는 올 하반기부터 오는 98년까지 단계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이번에 우리측에 인도되는 러시아무기는 T­80U 전차,BMP3 보병전투차량,휴대용 대전차미사일인 METIS­M,휴대용 대공(대공)미사일인 IGLA,각종 탄약과 수리부속 등이다. 가장 비중이 큰 무기는 옛소련이 지난 88년 개발에 착수,90년대초에 실전배치한 최신형 T­80U 전차.러시아는 북한에도 이 전차를 주지 않고 있으며 T­80보다 한등급 떨어지는 T­72도 북한에 줬는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다만 구형 T­62는 현재 북한이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T­80전차는 미국의 최신형전차 M1A1전차와 성능이 맞먹으며 M1A1전차는 최근 미국이 주한미군전력증강을 위해 한반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T­80전차의 제원이나 성능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한·러회담에서도 비밀유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전차는 주포가 1백25㎜이며 수심 4∼5m까지 잠수가 가능하고 특히 주포를 통해 레이저빔 유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 대헬기방어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MP3 보병전투차량은 미군이나 우리의 장갑차와는 달리 1백㎜ 주포를 부착,T­80전차와 마찬가지로 레이저빔유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경전차다.BMP3 역시 북한에는 없으며 북한은 BMP3의 구형모델로 주포가 30㎜이고 전자장비성능등이 뒤떨어진 BMP2만을 갖고 있다. METIS­M은 발사후 목표물을 자동추적할 수 있어 한국군 보유 토우미사일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러시아어로 바늘이란 뜻의 IGLA(SA­16)는 주한미군의 스팅거미사일과 같은 성능으로 저고도 비행물체를 공격할 수 있다.
  • 한국인의 열등감과 우월감(임춘웅 칼럼)

    얼마 전 「뉴스피플」이란 시사주간지를 보다 재미있는 생활에세이 한편을 읽은 기억이 있다.서울의 모대학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러시아유학생의 수필이었는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관점이 예리했고 우리말로 쓴 글솜씨마저 인상적이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는 한국사람과 얘기를 하다보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는 칭찬이라고 한다.그런데 다음 이어지는 질문은 으레 『한국에 언제 왔느냐』는 것이라고 했다.온 지 2년쯤 됐다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2년동안에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고 한다.그래서 한국말을 여기서 배운 게 아니고 모스크바대학의 한국학과에서 배웠다고 대답하면 또다음 질문은 『아니 모스크바대학에 한국학과가 다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이 학생의 의문은 서울의 대학에 러시아어학과가 엄연히 있는데 모스크바대학에 한국학과가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사람의 사고방식이다.그러다 얘기가 좀 길어지면 『한국학은배워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느냐』며 안타까운 눈초리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이것이 한국사람의 열등의식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사람이 왜 이런 콤플렉스를 갖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쓰고 있다. 한 조사를 보면 한국사람은 자기것에 대해 외국사람보다 5배정도 더 비판적으로 보는 것으로 돼 있다.예를 들어 교통질서 하나만 해도 한국사람은 우리와 비슷한 나라의 사람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5배나 더 심각하게 우리 실정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조사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남다른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다.「사대사상」이니 「엽전의식」이니 하는 말들이 다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연초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미얀마 근로자들이 작업장에서 한국인의 「학대」에 항의,명동성당에 나와 집단시위를 벌인 일이 생기면서 한국인의 우월감 내지 외국인차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자기반성의 소리가 높았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란 것까지 나오고야 겨우 조용해졌다.그렇다고 문제가 된 한국인의 우월감이라고 할까,자만의 문제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시쳇말로 헷갈리게 하는 이런 한국인의 이중성의 뿌리는 결국 하나인 것이다.자기보다 나은 사람 앞에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반대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 우월감을 갖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뿌리는 같을지라도 우월감은 열등감보다 훨씬 더 유해하다.열등감은 자기를 발전시키는 유인이 될 수도 있지만 우월감은 자기를 퇴보시킬 뿐이다.그러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우월감은 공격적이기 쉬워 남을 해치게 되는 결과다.
  • 문학성·번역·출판의 삼위일체 급선무(한국문화 세계화의 길:7)

    ◎한국어 능통한 외국 전문번역가 양성/작품 널리 보급할 유명 출판사 확보를/국제교류재단의 「코리아나」지 우수작품 세계화에 큰 기여 지난 93년 한국을 방문했던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귀국길에 비행기 안에서 읽겠다며 이문열 소설을 찾았다.마침 문화수행원으로 함께 내한했던 위베르 니센 악트쉬드출판사 사장에 의해 이문열의 불어판 소설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시인」이 미테랑대통령에게 전해졌다.이처럼 외국대통령이 한국작가의 이름을 친숙하게 언급하고 작품을 구해 읽은 사실은 우리소설의 세계성을 확인시켜 준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미테랑 특별한 관심 90년대 들어 프랑스에서는 한국문학 붐이 일었으며 프랑스 문화부는 올해를 「한국문학의 해」로 정하기에 이르렀다.「한국문학의 해」는 1년동안 프랑스 전국을 순회하며 우리 문학과 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행사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문학이 이처럼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이문열·이청준 등의 소설의 성공적인 소개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랑스의 악트쉬드출판사는 지난 89년이래 이문열 이청준 이균영 최윤 등 한국작가의 작품을 20권 가까이 번역출간했다.또다른 출판사인 필립피키에는 91년부터 오정희 김성동 김원일 윤흥길 등의 소설을 냈으며 벨퐁도 지난해 박경리의 「토지」를 출간했다.번역소개된 작품 대부분은 상업적 성공과 함께 현지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문열 작품에 찬사 『이청준의 「이어도」는 모호한 욕망이고 이국적인 신비이며,매혹적인 꿈이다.그 꿈은 너무 매력적이서 한국의 단편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 정도이다』(「렉스프레스」) 『연애소설? 역사소설? 가족사? 서사시? 어둠에의 찬사? 박경리의 「토지」는 그 모든 것이다』(이날코대학 한국어과 앙드레 파브르교수) 특히 이문열에 대한 호의적인 평과 찬사는 대단했다.『이문열의 작품은 소설의 구조와 극적 전개에 있어 전범이 될 만하다』(「레볼루티옹」)『이문열의 소설은 짧은 이야기로도 문학의 높은 질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리듬과 톤을갖고 있다』(「라 리베르테 드 레」) 한국소설의 성공적인 프랑스 소개는 우리문화상품의 세계화와 관련해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이는 우리의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질높은 문학작품,좋은 번역자,영향력 있는 현지출판사 등이 삼위일체가 되어 가능했던 것으로 우리문학작품도 세계적 수준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또한 번역과 상품성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시보다는 소설의 세계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아울러 진행되고 있는 번역소개사업들에 어렴풋하게나마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현재 문예진흥원을 비롯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대산재단 등에서는 우리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문예진흥원은 지난 80년부터 94년까지 모두 92권의 해외번역출간을 지원했으며 초기 영·불·독어권에서 스페인·이탈리아·중국·러시아어권 등으로 진출국도 점차 다양화하고 있다.올해는 20권의 해외출간을 지원한다. 지난 64년부터 국내에선 처음으로 체계적인 해외번역출간을 지원했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지난해까지 16권을 외국어로 번역출간했으며 올해 최윤소설 「회색눈사람」불어판,천상병시선 「귀천」영어판 등 4권을 출간할 계획이다.또한 93년부터 한국문학 해외번역출간을 지원해왔던 대한교육보험 출연의 대산재단도 지금까지 13권의 해외번역출판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도 번역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한편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우리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끈다.국제교류재단은 세계 1백52개국에 2만부 이상 배포되는 한국문화예술 소개잡지 「코리아나」 93년 여름호부터 서정주 황순원 등 7명의 시인·작가의 시와 단편소설을 외국어로 번역,게재해온데 이어 올해도 서기원 강신재 하근찬 이문열의 소설을 차례로 게재할 예정이다.특히 올 봄호부터는 중편소설도 실을 수 있게 면수를 늘렸으며 기존의 영·중·일·스페인어판에 추가해 불어판도 발간키로 했다. 네이티브 스피커로 구성된 전문 번역진들이 1년여의 시간을 갖고 번역한 작품을 싣는 이 사업은 노벨상을 겨냥한 기초작업으로 한국문학 원전에 많은 사람들이 접할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같이 활발한 한국문학번역작업들은 우리문학의 세계화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소설이 문화상품으로서 세계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개선할 점이 적지 않다.먼저 현지인 번역가에 의한 훌륭한 번역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이를 위해서는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번역가가 우리작품 번역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일본 고전 「원씨물어」를 번역한 영국인 아서 웨일리,「설국」을 번역한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일본문학의 세계화와 노벨상 수상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들은 평생 일본문학 번역을 직업으로 삼을수 있었다. ○일 노벨상 번역의 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 번역가들의 우리문학에 대한 열정과 자발적 참여이다. 이는 문학작품의 질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장편소설의 경우 형식적인 완결성과 구성상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외국출판관계자의 우리문학에 대한 지적이다.고려대 김화영교수는 『우리에게외국인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할만한 장편소설 다섯권을 쓴 작가가 과연 누가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우리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은 좋지만 번역이 안돼서 외국에서 안 알아준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작품을 공들여쓰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번역대상작품의 선정,현지출판사 섭외 등 행정처리 개선문제도 우리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번역대상작품의 선정과 관련,소설가 이문열씨는 『성급하고 서투른 접근은 오히려 한국문학은 싸고 부실하다는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심의를 갖는 내부정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대산재단의 곽효환씨는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한 작품보다는 인간의 구원과 권력문제 등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프랑스 출판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는 『출간된 작품을 널리 보급할 수 있는 유명 출판사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즉 우리소설을 국제 출판시장의 상업주의 구조속에 위치시켜 자생력을 갖게 해야만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한국문단의 염원인 노벨상 수상은 이런 모든 조건이 해결돼 한국소설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학 번역의 권위/영 오룩 교수/“체계적 해외소개 노력 미흡”/“외교차원으로 접근해선 곤란/전문번역기관 설립 시급해요” 『한국소설의 해외번역소개는 가장 값진 보배를 세계인들과 나눈다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한국문학 영어번역 부문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케빈 오룩 교수(경희대 영문과)는 『한국문학의 해외소개가 외국으로부터 한국을 인정받는다는 외교차원에서 부차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지난 64년 천주교신부로서 처음 한국에 온 오룩교수는 최인훈의 「광장」,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의 소설과 한국시작품 1천여편을 영어로 번역,10여권의 책으로 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어서 방학 때 밖에는 번역할 시간이 없어 안타깝습니다.번역기술을 전수하고 보조자와 함께 번역에 몰두할 수 있는 전문번역기관의 설립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오룩 교수는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한국문학을 외국에서 잘 알아주지 않는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을 뿐 한국문학 소개를 위한 체계적인 노력은 부족한 편』이라면서 『외국인과 교포들에게 번역된 작품을 손수 사서 보내주는 등 한국인들의 사소한 노력으로부터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비롯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펴내는 「코리아나」잡지에 실릴 서기원씨의 소설「마록열전」의 영어번역을 마친 그는 『한국문학하면 흔히 현대문학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고전과 현대문학을 동시에 번역·소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러 불법어로 대대적 단속/하반기까지 정부기관 합동으로

    ◎「푸티나 95」개시/북태 연안일대 집중 감시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정부는 최근 오호츠크해와 베링해·태평양북서지역 등 연안일대의 불법어로활동을 단속하기 위한 대규모 합동단속작전인 「푸티나­95(어기)」에 돌입했다. 모스크바의 외교소식통은 14일 러시아 국경수비대와 관세청·어업위원회·국방부·외무부·내무부 등 정부내 각종 기관이 합동으로 벌이는 「푸티나­95」 1단계작전이 지난 10일 시작됐으며 주단속대상지역은 북태평양연안일대라고 전했다. 푸티나작전은 러시아어민을 보호하고 불법어로행위로 인한 어족자원고갈을 막는다는 목표에 따라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올해 불법어로단속활동은 우선 1단계로 3월10일부터 31일까지 실시된 뒤 오는 6∼7월쯤 2단계작전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3단계작전은 올 하반기에 실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 “「오진우사망」북군부 대변화 신호탄”/「김정일버팀목」붕괴이후 분석

    ◎「차기 총참모장 성향」 북향방 좌우할것/러 유학 신세대장교 개혁주도 가능성/최평길 연세대교수 함북 북청의 물장수아들,국민학교 중퇴의 북한혁명 1세대 군최고지도자인 78세의 오진우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사라져 갔다. 김일성이 모택동군 휘하 동북항일연군 게릴라부대를 이끌 때부터 참가한 오진우는 1937년 일본 관동군의 토벌에 밀려 50명 안팎의 김일성 게릴라 부대가 러시아땅 하바로프스크에 밀려갈 때도 충실한 김의 전사로 행동을 같이한다. 장차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 전위무력부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하여 당시 소련극동군사령부는 아무르강 언덕에 88독립저격여단을 만들어 중국게릴라 지도자 주보중을 정점으로 한인 김일성을 1대대장으로 한 정보정탐 훈련팀을 키우고 있었다. 1대대장 김일성 대위밑에는 3개 중대와 1개 경비소대가 있고,1중대에는 3개소대가 있었는데 1중대장은 후일 인민군 3군단장과 부총리를 역임한 최용진,1중대 1소대장은 6·25당시 탱크사단장을 지내고 전사한 유경수,부소대장이 바로 오진우였다. 북한인민무력부는 행정부의 국방부같이 정상적 정부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북한최고 정부지도 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직속 별동대로 존재하고 있다. 1백52개 여단과 사단으로 구성된 지상군 65%가 휴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다.해·공군사령관,전차·기계화군단사령부,평양방위사령부,해·공군사령부를 직접 관장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휘하는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성이 죽은 권력공백기간에 가장 위협적이며 권력승계자인 김정일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는 개혁파·우파,또는 반김정일파 등 어느 정파도 인민군을 끼지 않고는 북한정권을 장악할 수가 없다.북한군은 어떤 의미에서 김일성 이후 시대의 「사회안정자」또는 북한정권 정파에 대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정치의 키를 쥐고 주변 국가에 위협적으로 등장하는 북한이 내놓을수 있는 유일한 세계화의 상품인 군사력의 실질 관리자가 사라진 이 시점에 차기 인민무력부장,인민군총참모장,그에 따른 군수뇌부 이동과 권력승계,정치향방,핵무기 개발 여부등은남북관계 변화에 매우 큰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같은 혁명1세대인 현 총참모장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되고,총참모장으로는 같은 혁명1세대인 이을설·김봉율 아니면 2세대에 해당하는 김광진이 기용될 수도 있다.이 경우는 현재 인민군 지휘체계의 골간을 크게 바꾸지 않고 김정일의 정권장악을 위해 김일성이 미리 마련해놓은 군지휘부가 유지되는 것이며 현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하나의 가능성은 설사 최광·김광진 등이 인민무력부장이 되더라도 인민군 총참모장이 혁명 2∼3세대에서 나오는 경우,그리고 그들 성향이 개혁지향일 경우 북한 정국의 향방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진우의 사망은 김일성 시대의 사병화된 김일성군의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전문직업군,변화의 촉진제가 될 효율화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잡아 1만5천명 정도의 북한장교는 러시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고,3백명의 젊은 대위·소령급장교(나이는 28∼30살)들이김일성에의 맹목적 충성심과 탁월한 부대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엄선되어 모스크바 고급군관학교에 5년장기 유학훈련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 보내진 장기유학장교단은 1년은 러시아어를 배운후 4년간 소속병과훈련을 받았다.그런데 이 시기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또 옐친이 직선제 러시아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동구의 김일성인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체코의 무명 지하극작가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때였다.공산체제 붕괴와 자유시장체제로의 전환을 현장에서 경험하고,한국무역진흥공사의 전시장과 한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을 직접 체험한 이들은 훈련이 끝날 무렵인 1991년경에는 크나큰 심경의 동요를 겪었다. 그들은 주석직은 직선제로,조선노동당이 유일합법당이라면 국민투표로 인민들의 신임에 맡기자는 논의를 한 끝에 훈련종료 직전에 모두 평양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지금 북한군을 실병지휘하는 대대장·연대장으로 있으며 만만찮은 개혁세력으로 잠재해 있다.이들 유학장교단은 혁명1세대가 계속 자리를 차지하든,2∼3세대가 계승하든군의 중요 간부로 활약하게 마련이이여서 김정일 권력승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앞으로 이들은 식량난 가중으로 주민봉기가 일어날 경우 정보사찰안전조직의 장악,개혁파 지도계층과의 연계 등으로 개혁의 핵심역할을 할 것이며 그들의 운신폭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오진우의 죽음은 이같은 북한 인민군의 군사·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 품질=질량 팩스=모사 교대=대거리/남북한 산업·경제용어 크게 달라

    ◎교역 관계자 의사소통 혼란 잦아 분단 반세기에 걸쳐 남북한 주민들의 언어생활의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즉,북한에서 도시락을 「곽밥」으로,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지칭하는 것등은 이미 구문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는 일상 생활용어 뿐만 아니라 경제·산업 용어의 차이도 두드러지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북교역과 대북 투자타당성 조사등 남북경협 과정에서 남북 양측 관계자들이 의사소통에 혼란을 경험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남북간의 경제용어의 차이를 몇가지 유형별로 소개한다. 우선 남한말이 전통적인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고 있는 반면 북한은 평양말을 이른바 문화어로 삼는데 기인하는 산업용어의 격차다.이를테면 남한에서 쓰는 품질,선적,서류,(작업)교대등을 북한에선 질량,적선,문건,대거리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우리측의 냉장고,잔돈,서명(하다) 따위를 북측에서는 냉동고,부스럭돈,수표(하다)로 통용되고 있다. 둘째,우리측이 영어로된상품명이나 경제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 반면 북한측은 우리에겐 다소 생경한 「북한식」 순 우리말 산업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우리측이 봉제라인,바이어,체크무늬로 부르는 것을 북한에선 흐름선,주문자,격자무늬 등으로 통칭하고 있다.남한에서 보편적인 주스,싱크대,도넛,원피스등이 북쪽에선 과일단물,가시대,가락지빵,나리옷 등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과일주,필터담배,볼펜,팩스등도 북한에선 우림술,려과담배,원주필,모사 등으로 바꿔불러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셋째,구소련과의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에서 러시아어나 그 영향을 받은 경제·산업용어가 많다는 점도 이질감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북한에선 컨테이너가 그룹이 그루빠로,꼰떼나로,트랙터가 뜨락또르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남북간에 경제용어의 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계약서 작성시 경우에 따라서 별도의 용어 정의 조항을 마련해 법률용어는 물론 일반 경제용어의 차이로 인한 투자리스크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 미­러 우주선 20년만에 랑데부

    ◎13분간 11m거리유지… 9명 우주인 교신/신이 부여한 가장 위대한 임무 수행 흥분/디스커버리­미르호 도킹준비 【케이프 커내버럴(플로리다주) AP 로이터 연합 특약】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는 오는 6월 미우주왕복선 어틀랜티스와 미르 러시아 우주정거장과의 역사적인 도킹을 준비하기 위해 7일 상오 4시20분(한국시간) 지구 상공 3백92㎞의 궤도상에서 미르와 랑데부,이 우주정거장에서 불과 11m 떨어진 거리까지 근접비행했다. ○6월 역사적 도킹 시속 2만8천㎞로 비행중인 우주왕복선과 우주정거장의 랑데부는 약 13분간 지속됐으며 미국과 러시아 우주선이 랑데부를 하기는 지난 75년 아폴로와 소유즈의 도킹 이래 20년만에 처음이다. ○…미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와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미르가 태평양 상공에서 랑데부하는 순간 미우주왕복선 선장 제임스 웨더비는 『믿을 수가 없어』,미르의 선장 알렉산더 빅토렌코는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요정 얘기 같애』라고 거의 동시에 일성을 터뜨렸다.빅토렌코는『우주 상공에 있는 우리 아홉명의 우주인들은 신이 부여한 가장 위대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며 흥분하기도. ○…디스커버리에 탑승하고 있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티토프는 우주왕복선 창문에 서서 지난 87∼88년에 걸쳐 자신이 1년간 체류했던 우주정거장 미르의 우주비행사들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애정을 표시.디스커버리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미르 승무원간의 교신을 처리하기 위해 탑승한 티토프는 3명의 미르 우주정거장 승무원들에게 디스커버리의 동작을 상세히 알려주기 위해 서로 1백66㎞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우주정거장과 무전접촉을 개시 ○…미항공우주국(NASA)은 오는 6월부터 97년까지 어틀랜티스 우주왕복선과 미르 우주정거장간에 7차례의 도킹을 실시할 예정.그후에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당국은 국제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계획.NASA의 행정관 대니얼 골딘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우리(미국과 러시아)는 대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미사일을 겨누고 있었는데 러시아 우주인이 디스커버리 조종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니 세상이 엄청나게 변한 게 틀림없다』며양국관계의 변화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감탄.
  • 옐친 충복들 잇단망발/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코너)

    ◎정적을 “두꺼비” “건달” “손볼X” 호칭 옐친 대통령에게 체첸공화국을 무력 침공하도록 부추긴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알렉산더 코르자코프 대통령경호실장과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이 이번에는 정적들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라초프 장관은 지난주말 국영 「오스탄키노」텔레비전에 방영된 기자회견석상에서 세르게이 코발료프 의회인권의원장을 『국가의 적』『사악한 두꺼비 새끼』로 몰아부쳤다.코발료프의원은 러시아 공군기들의 체첸 무차별 공습 때 현지에 머물며 그곳 참상을 낱낱이 언론들에 공개해 「제2의 사하로프」로 국민들의 신망을 한몸에 모으는 인물이다. 그라초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체첸 침공을 반대한 세르게이 유센코프 의회국방위원장도 『국가를 파괴하는 건달들이나 싸고 도는 미친 놈』이라고 불렀다. 이같은 그라초프의 발언이 알려지자 언론,의회 등이 일제히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공산당은 그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고 여성당은 25일 국방장관 불신임안을 의회에 상정했다.불똥은 국외에까지 뛰었다.폴커 루에 독일국방장관이 『도처히 용납할 수 없는 망발』이라며 오는 2월 뮌헨에서 개최 예정인 유럽안보포럼에 그를 초청치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독일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코르자코프 경호실장의 망발은 이보다 더 용렬하다.그는 지난주 발간된 주간 「아구멘트 이 팍티(논거와 사실)」와의 인터뷰에서 개혁파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모스트은행총재를 『반드시 손보겠다』고 말했다.정확히 옮기면 『내 원래 취미가 거위 사냥이다.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고 했다. 「구신스키」는 러시아어로 「거위」라는 뜻인 「구신」에서 유래된 이름.구신스키 총재는 모스트은행 외에 「NTV」텔레비전,「세보드냐」 신문 등 개혁지지언론의 실소유자로서 반옐친 개혁세력을 후원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눈엣가시」취급을 받는 인물. 코르자코프는 지난 연말에도 대통령경호실 직원 수십명을 모스트은행에 보내 그곳 경호원들을 집단폭행한 바 있다.거위 사냥 운운하는 협박이 있자 구신스키 총재는 곧바로 런던으로피신,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라초프 장관은 한술 더떠 진짜 애국심은 이런 것이라며 『어린 병사들이 체첸 땅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기꺼이 죽어갔다』고 말해 전사자 가족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이 두사람의 언동은 여론의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져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이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옐친의 충복들이다.그런데 정작 옐친 대통령은 이들의 언동에 대해 아직 일언반구의 제동이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러시아국민들을 진짜 어리둥절케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인 것같다.
  • 러­체코 「핵」 비밀계약/러서 핵폐기물 재처리후 반출

    ◎그린피스,협정사본 공개 【프라하 로이터 연합】 체코와 러시아 양국정부는 국제조약을 위반하고 체코가 러시아로부터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반입토록 하는 핵재처리에 관한 비밀계약을 맺었다고 국제환경감시기구인 그린피스가 16일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체코의 이반 코카르닉 재무장관과 러시아 대표단이 지난 4일 서명한 계약이라고 주장한 협정사본을 공개했다. 이 협정 사본에 따르면 체코가 러시아에 핵폐기물을 보내 러시아에서 재처리토록 한다는 것과 플루토늄,방사능 폐기물 등 재처리과정에서 생기는 핵물질을 다시 체코로 반입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린피스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어로 된 이 협정사본이 그린피스 모스크바 사무실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양국간 계약은 지난 70년 핵무기확산을 막기 위해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비롯한 국제협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그린피스는 말했다.
  • 손님접대/박정호(굄돌)

    일본에서 지방출장을 갈 때마다 나의 관심은 대개 두가지로 집약된다.도쿄와 지방도시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어떠한가.지방에서 개최되는 이벤트를 어떤식으로 소화해내는가. 최근 비교적 오지에 속하는 후쿠이(복정)지방에 출장갈 기회가 있었다.결론부터 말한다면 지방의 균형발전이 예상한만큼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웬만한 문화이벤트를 소화할만큼 국제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후쿠이시는 인구 25만의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객석 2천의 훌륭한 공연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영어·러시아어·중국어·한국어 등의 통역이 준비되어 각종 행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함으로써 국제화수준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일본인들의 손님접대는 얄미울정도로 정평이 나 있지만 후쿠이출장에서도 손님들에 대한 「기쿠바리」(여러가지 마음을 씀)는 인상에 남았다.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노력은 일본지역 어디서나 흔히 발견되는 일이지만 한국과 가까운 규슈지방에서는 지역별로 한글판 관광안내 책자를 제작,한국 관광객들에게 배포함으로써 더욱 친근감을 주고 있다. 한때 우리는 가격 경쟁력에서 여러나라를 압도,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적이 있었다.80년대 중반 도쿄에서 첫 근무 당시 친숙한 사이였던 미국 언론인중 몇명은 한국 출장후면 언제나 호텔비가 싸서 출장비가 남았다면서 내게 점심을 사 주곤 했다.그런 점심대접이 88올림픽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다.호텔값이 비싸져서 출장비가 적자라는 엄살과 함께. 일본의 어느 호텔이나 골프장에서도 손님이 지하철을 타고 오든,시외버스를 타고 오든,벤츠를 타고 오든 손님대접은 언제나 똑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호텔을 출입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차 크기에 따라 입구에서 맞이하는 대접의 감촉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편 서비스정신까지 소홀하다면 우리가 남들보다 앞서갈수 있는 메리트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한국을 찾는 3백50만의 관광객중 70%를 차지하는 한자권 관광객을 위해 길안내판에 한자를 병행하는 것도 「손님접대」의 차원에서 검토해 볼시기가 되지 않았는지.
  • 서울대 인문대/2개외국어 졸업시험

    ◎내년 신입생부터/영·독어 등 10여개중 선택/4학년때 2차례 응시기회/국제화시대 포석… 다른대학 뒤따를듯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가운데 서울대가 국내 대학중 처음으로 외국어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 서울대 인문대는 8일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95학년도 입학생부터 15개 전학과의 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2과목의 외국어 졸업시험을 실시,이를 통과한 학생들만 졸업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대학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의 외국어 독해 및 활용능력이 국제수준에 턱없이 뒤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 다른 대학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대 인문대가 마련한 「외국어교육 강화방안」에 따르면 인문대 모든 학과의 모든 학생들은 영어·독일어·불어·중국어·러시아어·에스파니아어·그리스어 등 10개 안팎의 외국어 가운데 2과목을 선택,졸업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은 4학년 1·2학기에 걸쳐 2차례의 기회가 주어지며 탈락한 학생은 다음 학기에 재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시험문제는 외국어서적의 자연스런 독해가 가능해야만 풀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되며 합격자의 성적을 A·B·C 3등급으로 분류하고 이 성적은 사회에서도 인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인문대는 지난달 27일 학과장회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외국어교육 강화기본방안을 마련,이달말 전체교수회의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키로 했다. 이를 위해 이미 학장을 비롯,교수 7명으로 시험관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방안이 확정되면 졸업이수규정에 관한 학칙 개정을 대학본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서울대는 앞으로 최종 교수회의를 열어 ▲시험과목을 제1외국어와 제2외국어로 나누는 문제 ▲비 외국어학과 학생들에게는 과목수를 축소하는 문제 등 세부적인 내용을 검토·결정할 계획이며 또 인문대는 학생들의 외국어 이수학점이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을 감안,외국어 이수학점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이상옥인문대학장은 이와관련『학생들이 국제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어학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같은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며 『외국어 졸업시험이 특정 외국어에 치중하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주체사상은 새빨간 거짓말”/박일 전김일성대학 총장(인터뷰)

    ◎46∼48년 김에 마르크스·레닌사상 가르쳐/빨치산으로 활약했다던 지점 못찾아내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주체사상」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난 46년9월부터 48년3월까지 만 1년6개월동안 김일성대학 총장을 지낸 박일씨(83·알마아타 거주)는 2일 『주체사상은 북한에 주둔한 소련공산당과 김일성측근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했다. 46년10월 하순부터 48년1월초순까지 김일성의 개인교수로도 일한 박씨가 김일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조선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데다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때 부모들이 이주한 연해주에서 태어난 박씨는 37년 레닌그라드 국립교육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졸업 뒤 키르기스공화국내 한 교육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 강사로 일하다 소련이 2차세계전쟁에 참전하면서 러시아교수들이 여기에 동원되는 바람에 철학교원이 없던 알마아타국립대 철학교수로 임명돼 44년부터 87년까지 일했다. 박씨는 해방과 함께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정책수행을 위해 동원한 지식인 가운데 유일하게 러시아어와 조선어를유창하게 구사,김일성대학 총장에 임명됐다. 박씨는 『대학총장 취임 3개월 뒤인 46년12월 어느날 북한주둔 소련군 참모부 민정장관이던 로마넨코 대장으로부터 김일성과 김일성대학 명예총장으로 있던 조선공산당 인민위원회위원장 김두봉에게 마르크스·레닌사상을 가르치라는 지시를 받고 김일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35세였다는 박씨는 『동갑이던 김일성에게 스탈린이 지은 「소련공산당약사」라는 책자를 교재로 46년10월 하순부터 묘향산밑 김일성숙소에서 매일 아침 7시55분부터 1시간씩 강의를 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부분을 비롯,책내용을 가장 알기 쉽게 설명했으나 이해를 잘 못해 결국 사회·인민·공산주의·사회주의·철학등 기본개념을 무려 2개월간이나 가르쳐야 했다』고 회상한다. 박씨는 47년5월까지는 하루에 한번씩 개인교습을 하다 이후로는 1주일에 3번씩 가르쳤으나 흥미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일성 지도를 맡은 소련군의 레베제프 대장으로부터 『「김일성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라는 내용을 담은 김일성혁명투쟁사를 김일성과의 좌담을 통해 책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1년4개월동안 1주일에 2∼3번 김일성의 휴식시간인 하오6시부터 7시까지 좌담을 해 큰 노트 4권분량의 자료를 러시아어로 만들었으나 그 내용이 가짜인데다 허점투성이여서 결국 책을 출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김일성은 빨치산으로 활약했다는 지점을 지도에서 지적하지 못하는가 하면 「유라(김정일의 러시아어 이름)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라는 질문에도 「알아서 뭐하겠느냐」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학총장으로 있을 때 평양 및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마르크스·레닌강연을 하면서 「김일성만세」를 청중과 함께 외치지 않은데다 허가 없이 대학에 조선학과를 개설하고 소련군 장군들을 상대로 태극기에 대한 설명을 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쫓겨났다. 6·25전쟁에 대해 『소련공산당 식민지정책의 부산물』이라고 잘라 말한 박씨는 『한국의 청년들은 안중근의사가 지닌 민족정신을 갖고 북한의 청년들이 「눈을 뜨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선 무식해선 안된다며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되는 날까지 살아 동포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싶다』는 박씨는 지난달 하순 서울에서 열린 북한민주화회의에 참석차 내한했다 3일 알마아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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