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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상/개혁·개방에 과거와 현재·동­서양 공존(몽골이 변한다)

    ◎전통가옥 「겔」·판잣집 뒤로 아파트촌 우뚝/영·일어 열풍속 팝송 등 서방문화 급속 확산 몽골에는 13세기와 20세기가 공존하고 있다.대초원에는 13세기 칭기즈 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할 때와 같은 구조의 전통가옥 겔이 유목민의 유일한 주거공간으로 존재하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20세기 첨단기술의 최신형 벤츠 승용차가 달리고 있다. 겔에 살고 있는 많은 유목민은 과거속에 살고 있는 듯 했다.둥근 천막모양의 겔은 가축과 함께 자주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에게는 매우 편리한 주거수단이지만 문명사회의 주거형태와는 거리가 있다.겔중에는 물론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것도 있다.하지만 많은 겔은 아직도 침대 2개와 조그만 옷넣는 장과 난로,식기류정도만 있을뿐 문화시설이 별로 없는 「원시적 모습」을 하고 있다.바닥이 그대로 초원인 겔도 있다.유목민이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이동을 자주 해야 하는 그들의 생활의 지혜일지 모르겠다. ○오토바이·자동차 대초원 질주 한 지방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겔에 사는 유목민중 4분의 1만이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전체 유목민중 4분의 1은 라디오조차 갖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이 러시아제인 라디오를 갖고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라디오가 고장났거나 배터리가 없어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도입후에는 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TV를 갖춘 겔이 늘어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소유하는 유목민도 증가하고 있다.말과 함께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초원을 달리고 있다.몽골의 대초원에도 현대 물질문명이 침투하며 유목민의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많은 몽골사람이 좋아하는 겔은 수도 울란바토르 등 도시에도 있다.울란바토르에는 겔과 한국의 옛날 판잣집 모양의 허름한 집,그리고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다.그러나 아파트가 가장 많다.1920년대 몽골이 공산주의국가가 된 이후 옛소련의 지원으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됐다.아파트가 많은 울란바토르는 마치 동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슷한 유럽풍의 모습을 하고 있다.『몽골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지만 도시 문화는 유럽문화』라고간후야그 사회연구원 원장은 말한다.그는 『몽골에는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어는 필수·러시아어는 선택 몽골은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산주의국가가 된 이후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왔었다.지금도 많은 몽골인은 몽골TV보다 러시아TV를 더 즐긴다.몽골은 지난 70여년동안 자유세계와는 단절되어 우리에게는 먼나라였지만 동유럽과는 상당한 교류를 해왔다.『80년대 동유럽에서 펑크족이 유행했을 때 울란바토르에도 펑크족이 등장했었다』고 전기화학연구소 연구원인 냠다와(30)씨는 말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몰락이후 몽골에는 러시아와 동유럽의 영양력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미국 등 서방국가가 차지하고 있다.몽골의 젊은이들은 영어·일본어·한국어 등 자본주의 국가의 언어를 배우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몽골 국립민족대학 국제경제학과 2학년인 나른자르갈양은 『몽골대학생들은 러시아어보다는 영어와 일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몽골에서 2년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크래그 올리브씨도 『몽골학생들이 영어공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중·고등학교의 외국어 교과과정도 영어가 필수가 되고 러시아어가 선택으로 바뀌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대학입시에서도 영어등 서방 외국어학과 경쟁률이 가장 높으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서방세계로 유학가는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 몽골국립대학을 올해 졸업한 어트건자르갈양은 『울란바토르의 젊은이들이 가장 즐기는 TV도 미국팝송을 많이 방송하는 M­TV』라고 말한다.서양의 보컬그룹과 비슷한 「카멜톤」,「닉키톤」등 젊은이들로 구성된 보컬그룹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울란바토르에는 10개 이상의 케이블 TV채널이 있으며 미국의 CNN과 홍콩의 스타TV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국 NBA농구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은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울란바토르 거리에서는 조던의 등번호인 23번이 새겨진 T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는 또 서울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옷과 배꼽T셔츠를 입고 이어폰을 낀채 흥얼거리는 젊은이들도 볼 수 있다.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디스코장은 매일밤 젊음의 열기로 뜨겁다.미국의 대중문화가 빠르게 밀려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간후야그 원장은 『몽골의 젊은이들이 서방세계 문화를 너무 좋아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최고급 호텔앞 소·말 등 가축 방사 그러나 울란바토르에는 또다른 모습이 있다.울란바토르의 거리에서는 지금도 소·말·양 등 가축을 흔히 볼 수 있다.최고급 호텔중의 하나인 바양골 호텔 바로앞에도 소와 말·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달구지는 사라졌지만 자동차는 대부분 낡았다.울란바토르의 아파트는 가까이 가보면 대부분은 지저분하다.통로에는 밤에도 전깃불이 없는 곳이 많아 처음 아파트를 찾는 사람을 어리둥절케 한다.울란바토르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직도 낡고 어두운 빛깔이다.그러나 사회주의시절과 비교하면 조금씩 밝고 화려해지고 있다고 어너르벌저르양은 말한다.
  • 전력증강 도움·무기개발 자극제/러 방산물자 도입 의미와 종류

    ◎수입선 다변화 새전기 될듯/T80U탱크­전차·헬기 파괴능력 뛰어난 최신형/이글라미사일­저고도 침투 적기요격 휴대미사일 한국이 올해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방산물자는 노태우 대통령 당시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제공한 경제협력차관 14억7천만달러의 상환분 일부이다. 러시아는 당초 93년 현물상환으로 방산물자를 제공할 예정이었으나 무기 인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3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최신식 전차인 T­80U 등을 건네주기로 확정했다. 러시아제 무기가 대량으로 들어오게 됨에 따라 국방부는 이 무기를 러시아제 무기중심의 북한군 전술을 이해하는 「교육용」으로 쓰려했던 당초 계획을 바꿔 상당수를 실전배치하기로 했다.올해 도입되는 T­80U 전차나 보병전투차량인 BMP­3는 1개 대대급 전력인 30여대씩인데다 휴대용 미사일 등도 수백발에 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제 무기의 대량도입은 육군 전력증강에 큰 보탬이 될 뿐 아니라 국내의 무기개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미제 일변도의 무기체계를 갖고 있는 우리 군으로서는 무기수입선의 다변화로 대미의존도를 줄여 나갈 수 있게 됐으며 제3의 나라로부터 값싸고 다양한 무기를 들여올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오는 러시아 최신무기의 성능 및 제원은 다음과 같다. ▷T­80U 전차◁ 북한에는 없는 최신 탱크로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도입하기는 한국이 처음.90년초부터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러시아의 주력전차다.자동사격통제방식으로 승무원 3명이 탑승하며 주포 구경이 1백25㎜로 적 전차 파괴능력이 탁월하다.주포에서 유효 사거리 5㎞의 유도미사일을 발사,헬기를 요격할 수 있는 등 대전차 및 헬기전을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북한은 T­62전차를 개량한 주포 1백15㎜의 「천마」호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BMP­3◁ 보병전투차량으로 주포가 1백㎜여서 경전차급으로 분류된다.레이저유도미사일 발사능력을 갖고 있고 수륙양용으로 승무원을 포함,10명이 탑승할 수 있다.북한이 갖고 있는 BMP­2는 주포 구경이 30㎜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글라◁ 러시아어로 바늘이란 뜻을 갖고 있다.유효사거리 5㎞로저고도로 침투해오는 적 비행기에 대한 요격용으로 사용된다.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활용,당시 선보인 어떤 휴대용 미사일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서 관심을 끌었다.METIS­M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은 사거리가 1·5㎞이다.
  • 공관장 9명 이동/폴란드대사 안현원씨/콜롬비아대사 이정수씨

    ◎스리랑카대사 김명배씨/브루나이대사 사부성씨/캄보디아대사 박경태씨/밴쿠버총영사 강웅식씨/칭다오총영사 한화길씨/라스팔마스총영사 홍종후씨/나고야총영사 채주동씨 정부는 1일 주 폴란드 대사에 안현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을,주 콜롬비아 대사에 이정수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을,주 스리랑카 대사에 김명배 외무부아중동국장을 임명하는 등 공관장 9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주 브루나이 대사에는 사부성 지방자치단체지원 심의관이,주 캄보디아대표부 초대대표(대사)에는 박경태 주 아가냐 총영사가 임명됐다. 정부는 또 주밴쿠버 총영사에는 강웅식 재외국민영사국장을,주 칭다오 총영사에는 한화길 주 시애틀 영사를,주 라스팔마스 총영사에는 홍종후 주 파키스탄공사 참사관을,주 나고야 총영사에는 채수동 국제연구교류단지 관리사무소장을 각각 임명했다. ◇안현원 대사 ▲서울 60세 ▲서울대 법대 ▲통상 1과장 ▲조약심의관 ▲영사교민국장 ▲주 우크라이나 대사 ◇이정수 대사 ▲서울 60세 ▲연세대 정외과 ▲서부아프리카과장 ▲주 중앙아시아 대사 ▲주 코스타리카 대사 ◇김명배 대사 ▲서울 55세 ▲서울대 법대 ▲정보 1과장 ▲외교정책기획실 심의관 ▲주 러시아 공사 ◇사부성 대사 ▲전북 군산 53세 ▲서울대 행정학과 ▲외교사료과장 ▲주 베를린 부총영사 ◇박경태 대표 ▲충북 청주 55세 ▲고려대 정외과 ▲미주 총괄과장 ▲동구과장 ▲주 인도공사 ◇강웅식 총영사 ▲충남 대덕 53세 ▲연세대 정외과 ▲중미 과장 ▲미주 국심의관 ▲주 과테말라 대사 ◇한화길 총영사 ▲전남 신안 53세 ▲단국대 영문학과 ▲경협 2과장 ▲주 시애틀 영사 ◇홍종후 총영사 ▲전남 함평 56세 ▲성균관대 영문학과 ▲영사과장 ▲주 나하 영사 ◇채수동 총영사 ▲서울 53세 ▲외국어대 러시아어과 ▲재외국민과장 ▲주 러시아 참사관.
  • 러,「4자회담 배제」 불만“약화”/한·러 외무 무슨 얘기 나눴나

    ◎옐친 재선뒤 협력 지속 다짐/러­북 관계 한반도 안정 고려/러 요청으로 성사… 분위기 우호적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공로명 외무부장관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러시아외무장관간의 회담은 지난 3일 옐친대통령 재선이후의 양국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러시아는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을 통해 사회전반에 걸친 민족적이고 보수적인 흐름을 보여,일부에서는 러시아의 급격한 대 한반도 정책변화를 우려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런 우려를 불식하듯,공장관과 프리마코프장관은 이날 회담을 통해 양국간의 우호관계에는 변화가 없으며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을 재다짐했다. 관심을 모았던 4자회담과 관련,프리마코프장관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관련국간 협상과정에 러시아가 참여할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프리마코프장관은 지난 5월6일 공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남북한·미국·중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에 대한 양해와 지지를 요청했을 당시에는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가 회담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이에 비하면 러시아의 4자회담 소외에 대한 불만은 다소 수그러든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4자회담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며 러시아의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간 회담」제의도 유효한 것이라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날 회담에서 러시아는 소련해체 이후 소원해진 북한과의 관계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진다.이에 대해 우리측은 이해를 표시했으나 변화의 방향이 한반도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화를 가져와서는 곤란하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마코프장관은 지난 5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공장관에게 4자회담 때문에 다소격한 대접을 한데 대해 부채감을 느끼는 듯 이날 회담에서는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 당국자가 전했다.이날 회담자체도 러시아측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지난 5월 회담이 러시아어로 진행됐던 것과 달리 이날은 영어가 사용됐다.두 장관은 두달반만에 다시 만난 자체가 양국관계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하고 고위당국자간 교류를 계속 확대해나가기로 했다.〈이도운 기자〉
  • 「성공한 개혁,실패한 개혁」 책 낸 활빈교회 김진홍 목사

    ◎“개혁만이 난국 수습·통일의 초석”/중단·실패땐 온겨레가 구렁텅이 빠질수도/구약성경속 선지자 입장서 「방법론」 제시 경기도 화성군 서해안의 공동체마을인 두레마을의 대표겸 활빈교회 담임 김진홍 목사가 「성공한 개혁,실패한 개혁­21세기 통일한국을 향한 대안」이라는 책을 출판사 두레시대에서 펴냈다.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목사는 이 책에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만일 개혁하지 않거나 또는 실패한다면 민족전체가 구렁텅이에 빠질 처지에 놓일 수 도 있다』며 『누가 주도하느냐,어느 정당이 이끌어가느냐 이전에 이번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개혁의 정신과 원리,방법론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의 개혁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추진세력의 지도력·돌파력과 함께 불굴의 개혁의지·솔선수범이 필요하며 권위주의적 관행에 의지하는 개혁이나 물리적 힘이나 정치적책략에 따라 추진되는 개혁은 반발과 함께 일시적 성공으로 끝나게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목사는 『개혁만이 어려운 난국에서 살길이며 통일의 초석이 된다』며 『개혁과 함께 우리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비도덕성·타락에 대해서도 자세를 고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책은 ▲왜 개혁이 필요한가 ▲개혁은 어떻게 하는가 ▲누가 개혁을 이끌어가는가 ▲인간과 세계는 어떻게 경영되나로 나누어 현재 우리나라의 개혁상황을 성경의 예화로 풀이했다. 1941년 경북 청송 태생의 김목사는 계명대철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행동하는 예수의 뒤를 잇기 위해 청계천 빈민촌에 들어가 활빈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다 청계천 판자촌이 철거되자 철거민과 함께 남양만 갯벌로 내려가 두레마을공동체를 세우고 빈민운동을 해왔다.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정금같이 나오리라」 등 20여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이중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1백쇄를 앞두고 있으며 영어·일어·러시아어등 3개국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김원홍 기자〉
  • 자유경제지대 나홋카(시베리아 대탐방:73)

    ◎“한­러 공단이 진정한 자유지대”/「러」 교역량의 40% 취급… 새 경제중심지로/총 1백만평규모 「한국공단」 개발 합의도 나홋카는 러시아어로 「뜻밖에 얻은 것」이란 뜻이다.1859년 표류중이던 선원들이 지도에 없는 땅을 발견한 데서 유래됐다. 그 나홋카가 뜻밖에도 자유경제지대로서 극동의 새로운 경제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나홋카의 항구들은 러시아 전체 교역량의 40%,극동지역 화물의 3분의 2를 취급한다.연간 3천만t 이상의 화물이 이곳의 4개 부동항을 거쳐간다.러시아 최대 컨테이너항구인 보스토치니항에서만도 연간 컨테이너 12만개를 다룬다.한국 일본 중국 등과 가까운 극동의 요지이자 태평양으로 향하는 관문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러시아연방최고회의는 지난 90년 10월 나홋카시 3백11㎢와 인근 농공지역 파르티잔스크군 등 총 4천5백79㎢에 나홋카 자유경제지대 설치를 허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발트해 연안 칼리닌그라드와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공항 등도 함께 지정됐다.그해 11월 외국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각종 우대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연방 각료회의의 승인을 받았다. ○1단계 공사 연말 착공 연방정부는 나홋카 자유경제지역 행정위원회에 전기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을 위해 3천만달러를 지원했다.전화와 상수도 공급은 이미 완료됐다.그러나 자금이 모자라 절반정도는 외국기업 투자나 은행 차입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94년 5월 의회가 관세법을 개정,특정지역의 특혜를 폐지함에 따라 우대조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연방 정부가 자유경제지대법 입법을 통해 경제개발 지원을 강력히 추진하려 해도 외국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우려하는 의회가 제동을 걸어 빚어지는 갈등으로 입법 전망이 밝지 않은 실정이다. 급한대로 작년 10월 연해주 의회에서 지방세를 5년간 면제하고 그후 5년간은 5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물론 연방세는 해결이 안된 상태다. 이곳에 등록된 외국인투자기업수는 4백69개다.중국 일본 미국 홍콩 한국 등의 순이다.2백24개는 1백% 외국인 투자기업이다.총투자는 8천6백만달러.외국인 등록업체수는 많지만 절반만 실제로 투자해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그나마 사업규모도 작은 편이다.정치 불안정 때문에 나머지 기업들은 등록만 해둔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나홋카 자유경제지대내 파르티잔스크 일원 총1백만평 규모에 한러공단 개발이 추진돼 마무리 성사단계에 이르렀다.단계적으로 나눠 1단계로 우선 2백10억원을 투입,30만평을 개발한다.법률에 우선하는 양국간 협정 체결을 통해 우대조치를 확보할 예정이다. 나홋카 자유경제지역 행정위원회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두드닉 위원장은 『예전에는 4천5백79㎢ 전체를 자유경제지대로 봤지만 이제는 한러공단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경제지대』라고 강조하면서 『세계적 경험으로 볼 때 작은 지역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한러공단을 시작으로 미러공단 등 협정에 의한 공단을 몇개 더 세워 확대해나가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한러공단은 30년대말 스탈린에 의해 연해지방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한인들이 연해지방으로의 집단이주를 92년 2월 요청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그해 4월 관계기관합동 현지투자환경조사 실시를 시작으로 그해 11월 한러정상회담에서 공단조성 추진에 합의했고 95년 3월 한러공단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지난해 7월 한러공단 우대조치를 위한 양국간 협정 초안에 합의했고 올하반기에 협정이 정식체결될 예정이다.측량·토질조사를 마치고 마케팅 전략 연구용역을 준 상태이며 6월에 설계용역을 발주하고 9월에 토지 본계약을 체결한다.연말쯤 한러공단 입주희망 국내업체를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열 계획이다.평당 분양가는 10만원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연말에 착공,99년 상반기에 완공된다.98년부터 입주가 가능하다. 한러공단에 대한 우대조치는 소득세 법인세 등을 일정기간 면제하고 행정서비스와 노동문제 등에 있어서 혜택을 주는 등의 파격적인 내용이다.기타지역은 지방세만 감면되나 한러공단은 연방세도 감면받는다. ○한인도 2만∼3만명 거주 공단에 들어오는 물품에 대해 수출입관세를 전액 면제하고 기업소득세 부가가치세 재산세를 5년간 전액면제하며 그후 5년간 50% 감세하고 공단내 외화사용·관리는 자유롭게 하며 외국인력도 기업이 임의로 활용하는 내용으로 잠정합의됐다. 한러공단의 토지 임차기간은 50∼70년이다.입지조건도 좋다.공단에 인접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통과하고 철도종착역이 3㎞거리에 있다.공단 남측 5㎞지점에 러시아 최대 컨테이너 부두인 보스토치니 국제무역항이 있고 확장할 예정이다.보스토치니항내 전용부두사용권을 공단 입주기업에 제공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서쪽 1백50㎞지점에는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이 있다.북측 15㎞ 지점에 있는 졸로타야 돌리나 공항은 현재 소형 국내 수송기만 이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국제공항으로 확장돼 연간 화물 30만t과 승객 10만명을 취급할 예정이다.나홋카­보스토치니항간 4차선 도로가 공단부근을 통과한다.전력도 남측 1㎞에 송전선로가 지난다.북측 10㎞ 지점에 에카데리노브카 취·정수장이 있어 용수에도 문제가 없다.2백50㎽ 용량의 발전소도 건설돼 한러공단용으로만 82㎽의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위성통신이 구축돼 있어 국제통신도 수월하다. 파르티잔스크시에 5천여명등 인근지역에 한인 2만∼3만명이 거주하고 있다.최근 중앙아시아로부터 1천5백세대 6천여명의 한인이 공단예정지 부근에 이주,정착했다. 한러공단에는 목재가공 수산물가공 섬유 봉제 전자 및 기계 등 업종 위주로 1백∼1백50개 기업이 입주,연간 10억달러 규모의 상품을 생산할 전망이다.그중 7억달러가 수출된다.〈나홋카=김주혁·유재림 특파원〉
  • 국경 무역도시 블라고베시첸스크(시베리아 대탐방:69)

    ◎호텔마다 중국인… 하루 평균 수천명 왕래/중국인 시장에 보따리장사 5백여명 몰려 북적/의류 등 종류 다양… 싼값에 러시아인 즐겨 찾아/지류 200여개·길이 4480㎞ 아무르강은 동북아서 “최장” 하바로프스크에서 아무르주의 수도 블라고비셴스크행 비행기에 올라타니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온통 산악지대뿐이었다.마을은 가뭄에 콩나듯 나타났다.그러다가 아무르주로 접어들면서 대평원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아무르주가 러시아 전체 콩생산의 80%를 차지하는 농업지대라는 사실이 실감났다.극동지역 최대 곡창인 것이다.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긴 아무르강의 모습도 굽이굽이 보였다. 블라고비셴스크는 중·러간 최대 국경무역도시다.그에 걸맞게 시내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는 중국인들 모습뿐이고 중국말 소리가 떠들썩하다.로비 한쪽 벽에는 「금연」이라고 한자로 써있다.여기가 혹시 중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극동 최대의 곡창지대 시외곽에 있는 중·러국경 세관도 물론 중국인들로 가득했다.세관주변에서는 불과수백m 폭의 아무르강 건너편 중국쪽으로 농촌촌락과 대형건물이 보인다.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웃마을처럼 느껴진다.한 세관직원은 『하루평균 여름에는 수천명,겨울에는 1천명정도씩이 각각 국경을 넘어 오고간다』고 말한다.강이 얼기 전에는 60인승 배편으로 다니지만 일단 얼어붙으면 얼음위를 버스편이나 도보로 다닌다.보통 11월말부터 강이 얼지만 얼음이 1m이상 두꺼워지는 12월말 정도부터 차를 이용한다. 아무르강은 상류가 11월 상순,하류는 11월 중순에 얼어붙어 평균 결빙기간이 11월11일부터 다음해 4월28일까지 1백64일동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요즘은 지구온난화 탓으로 점차 결빙시기가 늦어진다고 한다.연중 절반남짓 전구역 항행이 가능한 셈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연결하는 다리를 블라고비셴스크의 카니 쿠르간이란 마을에 건설할 계획이다.아직 착공은 물론 구체적인 일정도 안잡혔지만 다리가 건설되면 차편으로 연중 교류가 가능해진다.농사와 고기잡이에 의존해 생활하는 이 마을 주민들이 다리건설에 거는 기대는 크다.빅토르 지코프씨(51)는 『다리가 빨리 세워져 우리 마을이 발전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블라고비셴스크 시장.단층인 이 시장건물 안쪽의 러시아상점은 매우 한가롭기만 하다.그와는 대조적으로 바깥마당 한쪽 편에 있는 중국인시장은 하루종일 북적거린다.약 5백평 면적에 중국인 상인 5백∼6백명정도가 좌판을 깔고 앉아 있고 러시아인 고객들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쇼핑을 즐긴다.손뼉을 쳐가며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모습이 흡사 서울의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한다.가전제품,의류,주방용기,장난감 등 없는게 없다.중국상인들 대부분이 아는 러시아말은 숫자 등 장사에 필요한 간단한 수준에 불과하다.그래도 의사소통이 안돼서 러시아인들에게 물건을 못파는 일은 없다.필요하면 손짓 발짓을 쓰더라도 결국은 다 통하게 마련이다. 중국상인들은 8∼30일짜리 입국비자를 받아 러시아에 들어온다.93년부터 입국조건이 강화돼 보름짜리 비자를 얻는데만 1백만루블(약17만원)이나 든다.당연히 불법 장기체류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수시로 돈을 뜯길 수밖에 없다. ○중국연결 다리 건설추진 치전틴양(28)은 흑룡강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뒤 회사를 다니다가 월급이 적어 그만두고 4년전부터 직접 장사에 뛰어들어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초기에는 짭짤하게 재미를 봤지만 요즘은 관세,기숙사비,시장자리세가 모두 비싸져 별로 남는게 없다고 한다. 연길에서 왔다는 한 40대 조선족 여상인은 의류를 가져와 파는데 『여관에서 한달에 양백(2백)달러(약 15만5천원)를 달라고 하고,자리세 하루 2만5천루블,월 관리비 30만루블씩 내다보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남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라고 말한다.2천루블(약 3백50원)짜리 여성용 팬티같은 것들을 팔아가지고는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물건을 사러 원정온 스베틀라나 스베드룩양(23·여)은 『이 곳에는 값싼 물건들이 많아서 대량 구입해간다』고 말한다. 아무르강은 하이라르강의 원류에서 시작돼 중·러국경을 따라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하바로프스크 오른 쪽에서 우수리강을 합쳐 북동쪽으로 흐르면서 수없이 휘어진 다음 동해와 오호츠크해를 연결하는 태평양의 타타르해협으로 흘러나가는 강으로 중국에서는 흑용강이라 부른다.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해 삼강구까지 전장 1천7백㎞를 흐르는 송화강을 비롯,시르카 제야 브레야 우수리 아르군강 등 지류가 200개나 되고 전체길이는 4천4백80㎞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길며 러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두번째로 길다.본류만 2천2백40㎞,유역면적 1백85만5천㎢,연평균 유량은 1백93억2천만㎥다. 아무르강에는 연어 송어 잉어 붕어 등 상업적 가치가 있는 25종을 포함,러시아강중 최대인 99종이 서식할 정도로 어류가 풍부하다. 아무르강의 포장수력은 4억ㄹ㎾h.지류인 제야강에서 발전시설을 건설중이다.수력발전잠재력은 높지만 홍수범람방지책도 수립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은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러시아는 1689년 중국과 체결한 네르친스크조약에서 아무르강유역으로부터 철수하기로 동의했다.그후 1858년 아이훈조약에 의해 아무르강 북쪽이 추가로 러시아령에 포함됐고,1860년 북경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지역의 영유권도 확보했다.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된다.1924년 중·소협정으로 국경재협상을 시작키로 했으나 재협상이 늦어지고 있다. ○불법 장기체류자 늘어 양국의 이념분쟁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67년부터는 양국간 변경무역이 전면 중단됐고 국경분쟁으로 군사긴장도 고조됐다.69년 아무르강 다만스키섬에서 양국국경수비대가 교전,다수의 사망자를 내는 등 한동안 적대관계가 지속됐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관계개선과 함께 교역이 증가했다.87년에는 개인기업을 포함,모든 기업이 외국기업과 직교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93년 2월에는 변경무역제한조치를 전면 취소했다.양국간의 교역량은 80년대말까지 꾸준히 증가했고 93년에는 80억달러를 기록,최고조에 달했다가 94년에는 50억달러로 감소했다.양국은 구상무역에서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쌍무교역증대에 힘을 모으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웃한 대국 러시아와 중국.한없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 40년/극동방송 40돌… 다양한 축하행사

    ◎중·러·일·영 등 5개 국어로 방송/세미나·신앙수기 공모·합창제 개최 라디오로 공산권에 기독교 선교방송을 하고 있는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이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56년 12월23일 인천시 동구 학익동에서 「한국복음주의 방송국」으로 첫방송을 시작한 극동방송은 61년 「국제복음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67년부터 오늘의 「극동방송」국으로 다시 변경,서울 마포구 상수동으로 사옥을 옮겨 공산권 선교방송을 하고 있다. 극동방송은 그동안 종교가 엄격히 통제된 공산권에 선교사와 목사의 파송은 물론 성경과 찬송가도 보낼 수 없었던 60년대와 70년대 중국어·러시아어·일어·영어·한국어등 5개국어로 설교와 찬양등을 방송함으로써 다민족 복음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극동방송은 공산권 선교로 중국에 7천만 기독교 신자들을 결신시키고 중국의 개방화와 한·중 수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중국에서는 1년에 2만통에 가까운 청취자들의 편지가 오고있으며 많은 북한 탈북자들이 극동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밝힐만큼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극동방송은 국내 복음화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지난 89년 12월 대전극동방송국을 개국한 이후 오는 3월16일에는 영남지방의 선교를 위해 창원극동방송국을 개국,국내에 2개 지방 방송국을 운영함으로써 본격적인 전파 설교시대를 연다. 극동방송은 올해 창사 4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KBS 창원홀에서 전야제를 갖는데 이어 목회자 초청 교회성장 세미나(4월22일),복음성사 경연대회(7월20일),방송가족 신앙수기공모(9월),성가 대합창제와 교회음악 세미나(10월)등 축하 행사를 한다.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목사는 『극동방송의 40년 역사는 한국 교회의 성장사와 선교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회고하고 『극동방송이 순수복음방송으로 자존심을 지켜온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헌금과 기도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어업기지 캄차카(시베리아 대탐방:66)

    ◎산업 70%가 어업… 연어알 최대생산지/외국합작기업 50개… 미·가서 대규모 투자/작년 연어 1천만마리 부화시켜 강에 방류/1m50㎝ 넘는 초대형 게는 특산물로 각광 캄차카주에서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전체 산업중 70% 이상이나 된다.연어알 생산은 러시아 최대를 자랑한다. 특히 캄차카 게는 유명하다.다리까지 합하면 1m50㎝ 이상 되는 초대형이다.다리에서 나오는 게살이 게몸통살보다 더 굵을 정도다.캄차카 사람들이 한국의 영덕대게를 보고 『웬 새끼게냐』고 말하는 것도 허풍은 아니다.대부분 게잡이 배에서 직접 가공해 실어온다. 세르게이 티모셴코 캄차카주 어업장관은 『여타산업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아직까지 어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그는 캄차카주에 있는 어업관련 외국합작기업이 50개로 그중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대규모 투자인 반면 한국측은 소규모이면서 주로 물고기를 사가려고만 한다면서 한국기업의 대규모 합작투자를 촉구했다. ○게다리살 몸통보다 굵어 캄차카 최대규모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어물가공공장.19 32년에 설립돼 12ha의 넓은 면적에 60t을 가공하고 40t을 통조림으로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직원은 4백명.주로 밤에 고기가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부터 가공한다. 95년초 취임한 세르게이 스몰랸코 사장은 『현재는 고기가 적어 통조림 40t만 제조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직원수를 1천명으로 늘려 1백t이상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한다.고기를 잡은 뒤 2시간내에 가공을 시작하기 때문에 외제보다 맛이 좋고,포장이 약한게 흠이지만 외국에서 포장기계를 사오면 좋아질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통조림에 양념·마늘 등을 넣기를 원한다면 주문대로 생산할 수 있고,앞으로 게가공도 할 생각이란다. 스몰랸코 사장은 『얼마전 가공한 가자미 통조림을 한국에 수출해 한국기업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서 『외국으로 수출하려면 기계와 기술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포장기계와 보일러를 한국에서 사오려고 한다』고 말한다. 5백t짜리 냉장고가 5대 있다.물고기가 소량이면 그대로 가공하지만 많으면 냉동후 찬물에 녹여 가공한다.생선을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뒤 벨트로 올려보내면 톱니날개가 잘라주고 이어 직원들이 내장과 뼈를 빼낸다.그후에는 자동적으로 캔에 담기고 가자미에는 후추와 기름,연어에는 소금이 뿌려진다.완성된 통조림은 큰 통에 넣고 가자미는 1백12도,연어는 1백20도로 70분씩 끓인다.온도가 안맞으면 맛이 달라진다.내수용은 국가규정대로 연어 2백45g당 소금 2.5∼3g을 넣지만 수출용은 외국의 주문대로 한다.갈리나 브류즈기나 어가공부장은 캔 뚜껑을 닫는 기계를 일본에서 사왔는데 고장이 잦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새로 개발한 가자미 튀김 통조림은 캔에 담는 일도 수작업으로 한다.튀긴 것이라 기계로 하면 부서지기 때문이다. 연어알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통조림은 끓이지 않는다.보통은 검은 색의 철갑상어알만을 캐비어(러시아어로는 이크라)라고 부른다.카스피해의 검은 이크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6세기 모스크바대공국이 카스피해를 지배할 당시 캐비어가 러시아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19세기에는 유럽 귀족계급에까지 널리 보급됐다.그러나 연어알 등도 캐비어라고 흔히 부른다. ○한국에도 통조림 수출 캄차카 필렌가 고도.러시아와 일본이 연어를 너무 많이 잡기 때문에 줄어든 연어수를 늘리기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캄차카주 및 어업회사와 일본연어협회가 공동으로 투자,러시아측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91년 설립돼 92년 처음으로 연어를 방류했다.오제르키에 등 양식장 두곳이 완성됐고 또 한 곳을 설립중이다.양식장 내부시설은 일본서 들여오고 벽체와 건물 등은 핀란드에서 사왔다.그러나 너무 멀고 비싸서 한국의 K사와 구입계약을 맺었으나 납기가 늦어지고 규격도 안맞고 숫자도 모자라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발레리 이시첸코사장은 불만을 터뜨린다. 95년에는 연어 1천만마리를 부화시켜 내보냈다.4년후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투자하는 것이다.캄차카에 있는 연어양식장 4곳중 2곳을 이 회사가 운영한다.물론 일본의 2백개,사할린의 20개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캄차카주는 2천년까지 연어양식장을 9개로 늘려갈 계획이다. 겨울에도 얼지않는 젤레노프스키강변에 위치한 게키노 양식장.8월11일 알을 넣어서 섭씨 4도 상태로 4개월을 유지한다.햇빛이 알에 좋지않기 때문에 필터로 덮어놓는다.붉고 거무스레한 알중에 드문드문 낀 흰색알은 죽은 것이다.4개월만에 부화하는 연어 새끼는 길이 3㎝,무게 0.2g 정도다.5개월정도 다시 키워 길이 4.5㎝,체중 1g이 되면 이듬해 5월쯤 강으로 내보낸다.새끼를 키우는 수조통이 20여개 널려 있다.통당 40여만 마리를 키운단다.이곳서 나간 고기들은 2∼4년 뒤 7∼9월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98%가 돌아오려고 시도한다.그러나 큰 고기에 잡혀먹히고,중간에 어선에 잡히고 하다 보면 실제로 강까지 돌아오는 회수율은 자연상태에서 0.14%정도.일본 양식장은 2% 이상으로 회수율을 높였고 이 회사도 그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부화된지 3년후면 평균 3㎏정도 된다.큰 것은 6∼7㎏까지 나간다.『95년에는 10㎞ 떨어진 다른 강에서 알을 가져와 키웠지만 앞으로는 이 강으로 들어오는 고기에서 알을 빼낼 계획』이라고 유리 바소프 과학담당 사장은 말한다.연어 한마리당 알 2천개정도가 나온다.양식부화장 직원 유리 니콜라예비치는 『국가규정상 연어알 사망허용치가 8%이지만 이곳에서는 평균 3%이내를 유지한다』고 자랑한다. ○연어 수 점차 줄어들어 캄차카 최대 규모인 레닌 어업 콜호즈.1928년 설립된 이 콜호즈에는 직원 3천명이 근무하고 대소형 선박 30대를 보유하고 있다.북베링해로 나가 주로 대구를 잡는다.한번에 3∼4개월씩 두차례 정도 고기잡으러 나가고 나머지는 쉰다.10년된 배인 1천3백50%급 세묜 벨로우소트호를 5년째 타고 있는 안드레 시프코프(27)는 지난번 출어나가서 대구 2백70t을 잡았을 때 월평균 3백20만루블(약 55만원)을 받았지만 배가 서있을 때는 월 70만루블밖에 못받아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다.어로선박들이 촘촘한 그물을 이용,바다밑을 훑기 때문에 고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같단다. 선박 10여대가 정비를 기다리고 있다.고철로 팔아버릴 정도로 낡은 배도 3∼4척 보인다.
  • 공무원 사회봉사 의무화/총무처 지침/교육·훈련과정에 일정시간 배정

    ◎러·중 포함 외국어교육 다변화 사회봉사활동이 전 공무원에게 의무화된다. 총무처는 각 행정기관에서 한달에 한번씩 실시하는 직장교육때 실·국 단위로 사회질서 캠페인이나 쓰레기 줍기,양로원과 고아원 방문 봉사등 사회활동을 하도록 공무원교육 훈련 지침을 통보했다. 지침은 중앙공무원교육원등 28개 공무원교육 훈련기관에서 운영하는 2주 이상의 모든 교육과정에도 일정비율의 사회봉사 활동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지침은 공무원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국기,국가,국화,국새(나라 도장)등 국가 상징에 대한 교육과 독도에 대한 영토권등 주권 교육도 강화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환경,쓰레기,공정거래업무등 공공특수분야에 대한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외국어 교육도 영어와 일어 중심에서 중국어,러시아어 등으로 다변화하도록 했다.
  • 마가단의 교육현실(시베리아 대탐방:62)

    ◎“배고픈 지식층 싫다”… 대학인기 시들/중학 11학년제… 9학년부터 취업·진학 선택/시장경제 전환뒤 교단이탈 교사 줄이어/유치원 국고보조금 줄어 학부모 부담 가중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학제는 중학교가 11학년제다.우리의 초·중·고교를 합쳐놓은 셈이다.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11학년까지 마친 뒤 5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하든지,아니면 9학년까지만 다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직업학교에 간다.만7살까지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마가단 제2중학교 역사실.정규대학 진학을 앞둔 졸업반인 11학년 1반학생 18명이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장래 희망직업을 물었다.변호사나 판·검사등 법률가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원 4명,사업 3명,경찰1명,통역1명이다.과학자나 우주인 군인 엔지니어 노동자 등 예전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수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법률가·은행원 가장 인기 9학년2반 교실.학생 23명에게 학교를 계속 다닐지 여부를 물었다.11명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 9학년까지만 다닌다는 대답이다.일부는 직업학교에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남학생 유라 아브라모프는 『공부도 잘못하지만 비싼 돈내고 대학에 다녀봤자 별볼일 없기 때문에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학급 담임 아냐 스처니코바(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학자나 교사 등 지식층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아져서 학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 나가 장사하거나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장사를 하거나 처우가 좋은 은행원이 되려고 하지 애써 열심히 공부해 배고픈 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루드밀라 베르진스카야 교장(여)은 『학부모들도 예전에 무료였던 대학학비가 이제는 유료로 비싸진 데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 터여서 공부를 시켜야 할지 시장에 내보내 장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설명한다.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덩달아 변화를 겪고 있는 학교교육 현장의 고민이다.마가단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학년별 4학급씩 44개반 학생 1천명이 다닌다.수업은 주5일.1학년 24시간에서부터 11학년 32시간까지다. ○교과서 공급 제대로 안돼 교사는 80명으로 대부분 여자다.작년에만 6명이 그만 뒀다.교사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초임이 25만루블(약4만원),10여년 경력자가 60만∼70만루블,20년이상이 1백만루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옐친 대통령이 지난 8월1일부터 교사월급 인상을 지시했으나 한달이상 오르기는 커녕 제때 지급마저 안돼 지난 9월26일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쟁취한 월급이 그 정도다.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이직자가 속출한다.사범대학 졸업생들마저 학교로 오지 않고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나이들어 오갈데 없어 연금받기를 기다리거나,아니면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들만이 교단을 지키는 형편이다.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져간다.1주일에 18시간 수업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20∼27시간이 보통이다.게다가 영어·독어 등 외국어 시간이 늘어나고 컴퓨터 등 새로운 과목이 많아서 인근 연구소나 도서관 등에서 특별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어렵사리 모셔오면 실력있는 특별강사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기존교사들이 일하기란 더욱 어렵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 교과서도 많이 개정되고 학생들도 잡지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역사 교과서는 트로츠키나 부하린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과 벌였던 권력투쟁 등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문학교과서도 예전에는 공산주의 작가의 작품위주로 실었으나 이제는 사상적인 작품분석은 사라지고 솔제니친 같이 예전에 공산주의에 맞지않아 발간되지 않고 잊혀졌던 작품들도 교과서에 나오고 시중에서 출간된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 5∼6년사이에 한꺼번에 교과서가 너무 여러가지 나와 어떤 책을 택해야 할지 교사들도 곤혹스럽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는교과서 공급마저 제때 안돼 교사들이 모스크바로 출장갈 때 한권씩 사와 복사해서 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생 52명에 직원 31명 25년 경력의 역사교사 마리아 스파크는 『러시아 역사의 좋고 나쁜 점이 모두 교과서나 시중서적에 다양하게 나오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책이나 잡지,신문 등을 읽고 재량껏 가르친다』고 말한다. 1학년의 경우 유치원에서 간단한 읽기 쓰기는 배워오는데 요즘에는 학비 때문에 유치원을 안다닌 학생들이 늘어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인근에 위치한 36년 역사의 마가단 제2유치원을 찾았다.만2세부터 7세까지 나이에 따라 4개학급으로 나뉘어 52명이 다닌다.아침 7시30분쯤 부모들이 출근하면서 데리고 와 저녁7시30분쯤 퇴근길에 찾아간다.러시아어 읽고 쓰기,산수·미술·체육·음악 등을 가르치고 하루 세끼를 제공한다.교실외에도 장난감실·체육실·마사지실·치료실·음악실 등을 갖추고 있다.취침실도 마련돼 있어 점심식사후에는 2시간 정도씩 재운다. 교사 11명,보조교사 6명과 요리사·마사지사·세탁부·운전기사 등을 모두 합하면 직원수는 31명이다.지난 9월부터 54% 인상된 월급이 30만∼42만루블(6만원 내외)이다.나탈리야 젤렌스카야 원장은 『봉급이 적어도 천직으로 알고 일한다』고 말한다. 학비는 하루 4천1백루블씩으로 월 평균 8만∼9만루블(1만5천원)씩이다.실제비용은 한아이당 한달에 50만루블이 소요돼 80%를 국가에서 보조받아야 하지만 국고보조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지만 여의치 않다.올들어 식비가 10% 올랐다.유치원 학비부담이 몇년전까지만 해도 월평균급여의 2%였지만 요즘은 10%로 높아졌다.앞으로 학비는 더욱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유치원생 1.7명당 직원 1명씩을 두고 부족할 것없는 시설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절의 유산이다.교육분야에서도 일정부분 시장원리에 따른 수익자 부담 원칙을 수용해야 하고 가치관마저 변화하는 현실은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개혁 지지부진”국민들 반감/파 대선 바웬사 대통령 패배의 의미

    ◎급진 시장경제 시도… 고실업률·인플레 야기/“점진 개혁 선택” 동구 공산계 재기 추세 반영 폴란드 대통령선거에서 바웬사 대통령이 패배한 것은 한마디로 지지부진한 개혁정책,사분오열된 민주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낳은 결과로 풀이된다.바웬사는 유권자들의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무기로 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해묵은 「증오심」에 다시 불을 붙여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새 대통령에 당선된 크바스니예프스키는 공산당 각료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바웬사정권이 개혁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후유증인 실업,인플레,빈부격차,정파간 불화들을 치유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해 지지를 얻어냈다.해묵은 이데올로기 논쟁보다 피부에 와닿는 청사진으로 도전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미래를 선택하자」는 그의 선거슬로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웬사의 패배는 그의 재임기간중 계속 악화돼온 국내사정으로 볼때 어느정도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그는 누가 뭐래도 반석같던 공산정권과 싸워 이겨낸 불굴의 투사였다.하지만 지난 89년 공산정권 몰락이후 그의 인기는 하락을 거듭,선거직전 10%까지 떨어졌다.15%에 육박하는 실업률,특히 독단적인 통치스타일이 가져온 개혁진영의 내분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결과는 국외적인 추세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러시아를 비롯한 엣소련지역 국가들과 불가리아,루마니아등 옛동구권지역 곳곳에서 공산당 이름을 내건 좌파세력이 권력전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공산당 몰락직후 한때 이들 나라에서는 너나없이 서구식 자본주의를 모델로 한 쇼크요법식 시장경제개혁에 착수했다.그러나 이 방식은 대부분 높은 인플레,실업률,빈부간 격차만 넓혀놓은 채 국민들의 불만만 가중시켜 놓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폴란드대선은 냉전종식이후 이들 동구권이 1단계인 급진개혁시대를 마감하고 좌파 민주주주의라는 새로운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물론 이 실험의 기본방향은 전체주의로의 복귀가 아니라 경제정책면에서 보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개혁을 도입하고 사회보장 측면을 보강하겠다는 것이다.바웬사는 이 시대적 변화를 간과하고 너무 이념적 이분법에 집착하다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셈이다. ◎폴란드 차기 대통령 크바스니에프스키/“미래 선택” 구호 지방서 큰 인기/현실 적응력 뛰어난 서구형 사회주의자 19일의 결선투표에서 바웬사를 물리치고 차기 폴란드 대통령 당선된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41)는 현실적응 능력이 뛰어난 서구형 사회주의자로 통한다. 이같은 성향은 그가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집단인 민주좌익동맹(SLD)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폴란드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은 정치가답게 이번 대선에서 버스로 전국 80여개 도시를 돌면서 유권자를 직접 상대하는 선진국형 유세방법을 도입했다.크바스니에프스키의 한 선거참모는 이를 위해 지난해 여름 미국에 가서 선거운동 기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과거 공산정권에서 체육장관을 지낸 경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선택하자」는 구호를 외쳐 시장개혁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낀 지방 도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했다.이러한 점 때문에 그에게는 「냉소적 기회주의자」라는 달갑잖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54년 폴란드 북부 도시 비알로가르드에서 출생,그다니스크대학에서 무역학을 공부하다 23살때 공산당원이 됐고 30살이던 84년 폴란드 사상 최연소 장관(체육장관)에 올랐다. 영어와 독일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수영 스키 테니스 등을 즐긴다. 현재 바르샤바 교외의 부촌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부인 졸란타,14살 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다.
  • 서울신문사에 “온정 호소” 서신/한 세르게이­김 텔미르

    ◎“우리 조선인은 러시아에서 또 천대받고 있습니다”/구소 붕괴후 조선족 탄압… 연해주로 눈물겨운 이주/학교 등 문화시설 부족… 1백만달러 재원 필요 1937년 구 소련정부가 연해주 일대에 살고 있던 조선인 22만여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은 이미 전 세계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강제 추방에 반대하는 조선인 출신의 정치인·군인·농업지도자 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소련정부가 감옥과 수용소에 보내 학살한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불행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91년 12월 구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이 생긴뒤 다시 찾아왔습니다.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러시아 연방의 각 공화국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나타내면서 힘없고 불쌍한 조선족까지 탄압하기 시작해 이번에는 연해주로 또다시 쫓겨가고 있는 실정을 고국의 동포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55년전 연해주에서 빈 손으로 추방당한뒤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억척같이 일하며 겨우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조선인들은 지금 생명의 위협에 떨며 집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연해주로 이주하는 눈물겨운 상황입니다. 세계의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러시아 연방최고회의는 1993년 4월1일 「조선인들의 명예회복에 대한 결의」를 채택하고 조선인들의 민족문화 중흥을 위해 같은 해 9월1일까지 특별지원금을 마련토록 러시아 중앙정부에 촉구했습니다.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러시아 정부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의 경우와는 달리 러시아 정부는 1994년 구 소련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러시아로 이주시키기 위해 3백91억 루불을 지원했고 발카르민족·할므크민족 등 다른 소수민족도 지원책을 수립하고 있는 중입니다.고국의 보살핌이 없는 우리 조선족은 이번에도 냉대와 멸시·천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1993∼94년 말까지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에서 조선족 1만여명이 연해주로 이주했으며 지금도 곳곳에서 남부여대하고 고난의 이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축출당하기 전인 19 36년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는 조선사범대학·조선극장·조선방송 등이 있었고 우스리스크에는 농업·교직원학교와 문화기관 등이 있었습니다.또 연해주 일대의 조선학교는 3백80개,조선도서관은 2백21개나 됐습니다. 「연해주 고려인재건기금회」는 조선인들이 결코 와해되지 않도록 조선민족의 문화정신을 되찾고 조선인들이 이곳에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각종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연해주 조선인들은 지금 『물질적 기반 없이는 민족적 부흥을 이룰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모금한 돈과 그동안 한국에서 보내주신 융자금으로 94년 12월1일 우스리스크 칼라니나 35번지에 2층건물을 구입했습니다.이곳에는 연회당·원동신문사·TV방송국·민족박물관·도서관·여관·한글학교·민속학교 등을 운영할 계획입니다.그러나 융자금을 갚고 시설을 운영하려면 1백만 달러 정도의 재원이 필요합니다. 저희들은 고국의 사회·종교·상업단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 최주활씨는 누구/해외근무 경험 풍부한 통역 출신

    ◎부친은 6·25때 전사… 부인과 2남1녀/82년 체코서 군사기밀 수집하다 추방 이번에 귀순한 최주활씨(46)는 상좌계급의 북한 현역군인으로 우리나라의 중령과 대령사이에 해당하는 고위 군간부다.지금까지 귀순한 북한 현역군인 28명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49년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에서 태어난 최씨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에서 10년간 공부한뒤 19세때인 68년 7월 인민군에 입대,정찰국 소속 항공육전여단에 배치돼 하사로 복무했다.70년부터 2년동안 정찰국 산하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75년까지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으로 근무했다.그뒤 3년동안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에 편입해 공부한뒤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으로 일하다 79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부임,해외파견업무를 담당했다. 최씨는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활동하던중 신형방독면과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 비밀자료를 수집한 혐의로 82년 북한으로 추방돼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에 임명됐으며 91년상좌 계급으로 진급했다. 특히 최씨는 80년이후 대외사업국에 근무하면서 북한 군사대표단 통역원으로 러시아·헝가리 등지를 10여 차례 방문하는 등 비교적 많은 해외 나들이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의 군수기지사령부에 해당하는 병참·보급담당부서인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에 임명된 최씨는 중국 연변등지에서 무역실무 대표단으로 활동하다 지난 6월19일 대표단에서 이탈,동남아 제3국을 거쳐 지난달 말 귀순했다. 가족으로는 모친 이순음씨(67)와 평양시 평천구역 의약품 관리소 판매원인 부인 조현실씨(42),딸 애화양(17),아들 철준(12)·철민군(10)이 북에 남아 있고 부친 최석보씨는 6·25당시 전사했다. 형 금활씨(51)는 사회안전부 병기국 「11·24관리소」 소장으로 최씨와 같은 상좌계급이다. ◇약력 △49년 4월19일 함북 청진시 신암구역 명성동 출생(46세) △59년9월∼68년3월 평양 외국어 유자녀학원(11년제)10년재학중 군입대 △68년3월∼70년11월 정찰국소속 항공육전여단(하사) △70년11월∼72년10월 정찰국 외국어강습소(현 압록강대학)노어과 졸 △72년10월∼75년8월 인민무력부 외사부 양성(수습)통역원 △75년8월∼78년9월 평양외국어대학 노어과 3년편입(상위) △78년9월∼79년5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 △79년5월∼82년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 △82년7월∼94년12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91년 상좌 진급) △95년1월∼95년6월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 △북한내 주소 평양시 동대원구역 문신1동 70반 아파트 12층2호 회
  • 17일간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 대탐방:40·끝)

    ◎극동 최대 군항 개방화로 산업도시화/경제력 앞세운 일기업 대거 상륙… “작은 일본”/엔화는 「제2화폐」… 한국 기업도 15개업체 진출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은 주로 러시아제국이 동폴란드를 합병한 뒤 대거 이주해왔다.기록으로는 1897년 리투아니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 등 유럽쪽 러시아영토에 4백여만명의 유태인이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러시아인들 사이에 전통적으로 반유태 사상이 워낙 강해 이들은 모스크바등 대도시로는 거의 진출할 기회가 봉쇄돼 있었다. 이후 볼셰비키혁명에 유태인들이 적극 가담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호전됐다.트로츠키,스베르들로프,지노비예프,카메네프 등 쟁쟁한 유태인이 볼셰비키의 지도급 인사로 참여했다.그러던중 스탈린 시절인 1931년 도처에 흩어져살던 유태인을 위해 자치공화국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하바로프스크주 남쪽 현재의 예브로이자치주에 비로비잔시를 건설했다.그리고 자치공화국이 선포됐지만 이 시베리아 오지로 이주를 원하는 유태인이 없었다.초기주민은 3만명 미만이었다.그나마 스탈린이 죽자 대부분 떠났고 이후 이스라엘,미국으로 이민이 허용된 뒤 이곳에 남은 유태인은 2천∼3천명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 ○유태인 비율 8% 불과 현재 전체주민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7∼8%에 불과하고 주민 대다수는 러시아인이다.그런데도 공식이름은 여전히 「예브레이(유태인)자치주」이니 유태인 없는 유태인자치주가 된 것이다. 예브레이자치주로 들어서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7시간으로 벌어졌다.BAM으로 연결되는 지선이 지나는 이즈베스트코브이역을 지나자 곧바로 주도인 비로비잔에 도착했다.역이름을 러시아어와 유대어로 나란히 써붙여놓은 게 이채롭다.비로비잔은 비로강을 낀 항구도시로 18 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철도가 건설되자 시베리아화물을 이 철도로 연결하며 크게 성장했다.이후 1915년 아무르철도가 완공되고부터는 철도역 기능만 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시로 접근하며 아무르철교를 지난다.짙은 황토색의 강물은 폭이 한강의 10배는 족히 됨직한 규모이다.이렇게 강폭이 넓은 탓에 철교는 하나 있지만차가 다니는 교량은 아직 없어 페리로 실어날라야 한다.낮1시55분 하바로프스크역에 도착했다.역광장에는 하바로프스크를 세운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여행중 처음으로 역사 전광판에 네온사인 광고가 등장했다.일본합작은행인 듯한 「하코뱅크(은행)」광고판이었다.드디어 일본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상점에는 한국의 음료수,초콜릿 등도 즐비하다. ○철로변엔 활엽수 장식 20분 정차한 뒤 남진을 계속하자 산천경계는 완전히 시베리아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베료자,침엽수림은 사라지고 오직 활엽수만이 철로변을 장식한다.인구 60만명의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수십년간 경쟁관계를 유지해왔다.혁명직후 볼셰비키들은 오랜전통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는 하바로프스크를 더 좋아했다.그래서 이곳을 극동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만들려고 했다.1·2차 세계대전 중간시기에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으로 발전됐고 반면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의 행정수도로 발전됐다.2차대전 뒤 블라디보스토크가 군사도시로 외부와 고립되자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제1도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그러다 지난 92년 1월1일을 기해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면서 양자관계는 재역전됐다.하바로프스크에 있던 외국 상사,공관들 대부분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자리를 옮겨갔다.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17일만에 마침내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역사에 쓰인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9천2백88㎞를 가리키고 있다.역사는 출발역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과 똑 같은 양식으로 지어져있다.「의사 러시아식」으로 불리는 독특한 중세러시아 목조건축양식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정복자 모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을 딴 작은 반도 남단에 세워졌다.그곳의 작은 만을 끼고 양언덕에 도시가 건설됐다.수심이 깊고 파도가 직접 들이치지 않는 이 만 때문에 군항이 됐다. 지난 92년 1월1일 도시가 개방되던 날 취재왔을 때와 비교하니 불과 3년여만에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나 눈을 의심할 정도다.한마디로 「작은 일본」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의 영향안에 들어 활기에넘친 개방도시가 됐다.이곳은 1919년부터 22년까지 일본이 미·영과 함께 점령했던 곳이다.일본은 이후 70여년만에 경제력을 앞세워 다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거리를 다니는 차량은 모두 일제 중고차들이다.백화점의 물건도 일제 투성이고 엔화는 루블에 이은 제2의 화폐로 통용된다. ○한국산 식품류 등 많아 이 틈을 비집고 아이스크림,주스,양말,신발 등 한국산 식품류,생필품들이 진출해 있다.92년 한국총영사관이 문을 열었고 같은해 대한무역진흥공사도 이곳에 무역관을 열었다.현대·대우·고합 등을 비롯해 15개 업체가 현지사무소를 열고 있다.하바로프스크,나홋카 등 나머지 극동지역에 현지 지사나 사무실을 연 한국업체는 모두 30개사가 넘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꼬박 1주일이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불과 9시간이면 간다.하지만 긴 기차여행을 통해서 듣고보는 이점도 적지는 않다.기차가 가면서 주변의 모든 게 변했다.날씨,토양,사람,심지어 베료자나무의 굴곡까지 달라졌다.철도와 함께 러시아의 역사가 흘렀고 도시의 흥망이 달라졌다. 여행을 마치며 러시아와 관련된 정책을 짜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러시아를 상대로 일을 하노라면 짜증스런 일들이 많을 것이다.이곳 사람들이 합리적인 원칙을 갖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사회주의 시절의 일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이들로 인해 좌절감,실망감에 부딪칠 때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번 타보라.다소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러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조금은 실감케 될 것이다.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기가 블라디보스토크 상공을 날아오르자 다시 북으로 끝 없이 이어진 검푸른 타이가 삼림이 눈아래 펼쳐진다.
  • 자바이칼 지방(시베리아 대탐방:36)

    ◎손꼽히는 밀 주산지… 목축 성행/몽고계 울란우데역은 마치 한국의 시골역/주변 사람들 손짓·표정이 한민족과 똑같아 이르쿠츠크역을 출발한 기차는 곧장 일직선으로 남하한 뒤 바이칼호수 남단을 싸고 돌며 다시 북동진한다.출발 30분만에 유명한 알루미늄공장이 있는 샬리호프역을 지났다.이어서 기차는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이름을 만들어준 이르쿠츠크강 뒤편의 산을 감싸고 돈다.이곳은 지진대라서 험한 단층 바윗돌로 이루어진 산들을 많이 지난다.리스트비양카에서 「바이칼 순환선」이 연결됐던 남쪽 슬루지양카도 「단층돌」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슬루다」에서 따온 이름이다.슬루지양카는 1904∼1905년 바이칼 순환선이 건설되며 역으로 출발된 뒤 계속 발전,1936년 정식으로 도시가 됐다. ○두개의 철로 합쳐져 1시간이 지나자 왼편 차창 아래편으로 바이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숨바꼭질을 시작한다.가랑비가 흩뿌려 시야가 좋지 않은 게 흠이다.산 정상에 있는 파스역을 지나며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보름여만에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바이칼호수의 주항구도시인 쿨툭에서 두번째 터널을 지난 뒤 얼마 안있어 슬루지양카역에 도착한다.이곳에서 바이칼순환선과 대시베리아철도는 만나 하나로 합쳐진다.산을 넘는 동안 열차 앞뒤로 각각 2대씩 전동차가 붙어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재미있다. 1949년 이르쿠츠크∼슬루지양카간 단축노선이 완공되며 바이칼순환선 시대는 막을 내렸다.이 단축노선을 건설한 이유는 여러가지 경제적인 이점도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그 직전에 이르쿠츠크∼리스트비양카를 연결하는 노선이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 건설로 모두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슬루지양카에서 조금 더 달리면 바로 바이칼호수의 오염주범으로 지목받는 셀룰로오스 콤비나트(공장)가 있는 바이칼스크역이 나온다.1961년 이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이주해와 1966년 정식 도시가 된 곳이다.모스크바 시간으로 낮 12시30분 바이칼스크역으로 진입하면서 셀룰로오스 콤비나트의 거대한 굴뚝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게 보인다. ○호수엔 낚시꾼 몰려 드디어 본격적인 바이칼 순환관광이 시작됐다.북동진을 시작하며 왼편차창으로 수평선이 마치 동해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졌다.열차는 때로 호수쪽으로 7∼8m씩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기막힌 경관을 눈앞에 펼쳐준다.호수는 때로 10여m 높이의 파도가 치기도 한다.그래서 철길을 보호하기 위해 호수가에 방파제를 쌓은 것이 곳곳에 보인다.북동진하는 5여시간 동안 줄곧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로 변해 있다.곳곳에서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호수에 드리우고 있다. 수네지나야강을 지나며 기차는 이르쿠츠크와 부랴트공화국 경계를 넘는다.호수 동안을 따라 올라가던 열차는 마침내 오바르트역을 지나며 바이칼과 작별을 고하고 본격 동진을 시작한다.「오바르트」는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후 셀렝긴스크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지역은 셀렝가강이 호수로 흘러들면서 형성된 거대한 삼각주다. 옆칸의 젊은 여자승객이 복도바닥에 있는 네모난 뚜껑을 좀 열어달라고 부탁한다.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하면서 손잡이를 잡아당겨 열었더니 놀랍게도 그 밑에 작은 칸막이 방이 만들어져있고 우유·소시지 등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승객들을 위한 음식물 보관소였는데 겨울철에는 자연냉장고가 되는 곳이었다.척박한 자연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귀중한 지혜인 것이다. 열차안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자바이칼 코사크 병사 한명과 어렵게 몇마디 말을 나누었다.얼마나 무뚝뚝한지 말을 붙이기까지 여간 힘든 사람이 아니었다.「자바이칼」이란 말은 바이칼 뒤쪽이란 뜻.행정단위는 아니지만 예부터 지리·역사적 단위로 불려온 이름이다.현재 부랴트공화국과 치타공화국이 이 자바이칼에 해당된다.자바이칼은 일명 「다우리아」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바이칼 지방의 특유한 스텝을 일컫는 말.좋은 스텝 덕분에 이 지역은 러시아전역에서 손꼽히는 밀 주산지가 됐다. 기차칸에서 만난 이 코사크병사로부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코사크는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군복바지옆에 단 줄의 색깔로 소속을 구분한다.예를 들어 자바이칼 코사크는 노란색 줄,이르쿠츠크 코사크는 붉은색,돈 코사크는 청색줄,카자흐스탄·우랄의 코사크는 녹색 띠를 달고 다닌다. ○유목전통 아직 남아 이들은 현재 연방의 행정·군대조직과 완전 별개인데 그러면서도 철저한 자체규율·조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각 지역에는 아타만이라고 부르는 사령관이 있고 그 밑에 각급 지역별로 지휘관이 세분돼 있다.지금은 국경수비 등 옛날의 임무가 없어졌기 때문에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래서 철도 보안요원이나 관공서 경비업무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우리 일행이 탄 울란우데행 기차의 종착지인 블라고비센스크는 바로 아무르 코사크의 수도로 과거 자바이칼 코사크의 총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1920년부터 1922년 사이에 잠시 존재했던 극동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 4시20분 드디어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마치 영천이나 진주역 같은 우리나라 시골역에 온 기분이다.우리와 똑같이 생긴 시골사람들이 플랫폼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너무 낯익은 정경들이다.말이야 다르지만 이야기 도중 하는 손짓·표정·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자태들이 영락없는 우리 민족의 동류들이다.부랴트는 몽골족의 일파이니 「동족」임이 분명하다. 부랴트인들은 이 부랴트공화국 외에도 바이칼 서쪽의 이르쿠츠크주 안에 자치구가 있고 동쪽으로 치타주 안에도 자치구가 있다.바이칼을 기준으로 동서로 갈라진 부랴트인들 사이의 생활·풍습은 서로 확연히 다르다.바이칼 서쪽 부랴트는 거의 러시아화된데 반해 이 동쪽 부랴트는 아직 자기들의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있다.서쪽 사람들은 러시아의 영향이 컸고 동쪽 사람들은 몽골의 영향권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쪽 부랴트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지방으로 가면 아직도 평원에서 말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활쏘기 경연대회도 벌어진다.몽골의 유목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일본에선/한국어 교육(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3)

    ◎한글강좌 126개 대학 개설… “7대 외국어”로/NHK 월간교재 1회 7만부 나가/「서울 연수」 한해 1천명… 꾸준히 증가/남북한 문법달라 혼란… 교재·강사 태부족 「한국어」냐 「조선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안녕하십니까 한글」로 이름이 낙착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한글강좌가 올해로 11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24일 강좌에서는 재일동포 작가 김달수씨가 어려서 살던 마산을 방문,아스라히 멀어져간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 한국어와 일본어 자막으로 소개돼 단순 어학강좌를 넘어 한국과 재일동포의 삶을 조명하고 이해하는 수준에 올라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NHK 한글방송은 한국어 학원이 많은 도쿄 오사카 이외의 지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많은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자체 평가되고 있다.개설당시에는 교재가 15만부 이상 팔렸다.올림픽 뒤 다소 열기가 식었지만 7만부 가량이 팔리고 있다고 NHK측은 밝히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전 일본에서의 한국어는 60만 재일동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재일동포들도 일본에서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모국어로부터 멀어져 갔다.조선적을 가진 조총련계 동포들이 비교적 모국어를 강하게 지켰을 뿐이다. ○한때 15만부 판매 그러나 86 아시안게임,88 올림픽을 앞두고 상황은 일변했다.한국에 대한 소개가 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어갔다.NHK에 한글강좌가 개설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일본 대학내 한국어 교육 실태를 보면 80년대초까지 학과를 두고 있는 곳은 도쿄외국어대학,오사카외국어대학,도야마대학,덴리대학 등 4곳이었다.학과 명칭은 전부 조선어학과,조선어·조선문학과,조선학과 등이었다.제2외국어로서 강좌가 설치된 곳은 77년 30개교,83년 47개교였다. 간다외국어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된 것은 86년이었다.강좌가 개설된 학교수는 88년 68개교로 늘어났다.92년에는 84개교로,가장 최근 조사가 실시된 94년에는 1백26개교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강좌개설 대학수는 독일어(5백14개교),프랑스어(4백60),중국어(3백67),이탈리아어,러시아어,스페인어에 이어 7번째를 차지했다.이와관련,일본 문부성 고등교육국 대학과는 『7개 언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사되고 있고 그 이하는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강습소 1백50곳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86년 고등학교에서 한글이 교육된 곳은 일본 전국에서 7개교,88년에는 14개교,91년에는 24개교였다.91년 당시 전체 5천5백3개교인 고등학교의 0.4%에서만 한글이 교육된 것이었다. 지난 92년에는 42개교로 늘었다.이는 고등학교에서 교육되는 제2외국어가운데 중국어(1백54개교),프랑스어(1백28),독일어(73)의 다음으로 스페인어(39)보다 많다. 또 일본에서 외국어 강좌가 개설된 문화센터,학원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한글강좌가 개설돼 있기도 하다.주일대사관 교육관실은 일본 전국에 대략 1백50여곳의 강습소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독특한 예는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지난 89년 학부 개설 당시부터 제1외국어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한글 등 6개국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첫해 1천54명중 한글을 선택한 학생은 불과 4명.91년 비디오 상영과 불고기파티로 「손님 유치」에 노력한 결과 수강신청 2일째 정원 20명을 겨우 채웠다.92년에는 첫날 정원을 넘었다.지난해에는 70명이 신청해 듣고 있다. ○정부차원 지원을 게이오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려는 학생은 아시아언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아시아언어별로는 중국어는 메이저 지향의 학생이,말레이·인도네시아어는 희소성을 중시하는 학생이,한글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개의치 않는 성취지향형 학생」이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한글선택 학생 가운데 여학생 비율은 30%를 밑돌아 6개 언어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는 일본 안에서만 교육되는 것이 아니다.한국에 유학해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도 많다.지난 59년 창립된 연세어학원 한국어학당을 비롯,서울대·외국어대 등의 한국어코스에는 늘 1천명정도의 일본인 학생이 재학중이다.한국어 코스를 거친 일본인들이 2만여명은 되리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능력있는 교사가 부족하다.지도방법도 확립돼 있지 못하다.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어의 경우 교재가 다양하고 충실한 반면 한국어의 경우 학원 등에서 주먹구구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고 난이도도 조절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문체부에서 제작해 해외로 보내는 「한국어」의 경우 일본실정에 맞지 않아 일본내 18군데 설치돼 있는 한국교육원 등에서는 재편집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북한식 한국어와 남한식 한국어의 통일도 시급한 과제.지난 93년 조총련 인사들이 지원해 창설된 「한글능력검정」은 북한문법과 남한문법을 모두 맞는 것으로 하고 있지만 예문 등에는 북한식 표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이에 맞서 한국은 내년부터 「한국어능력검정」을 실시할 예정이다.여하튼 일본인들에게 정확한 통일된 한국어를 보급하는 데는 남북한 언어의 통일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어는 교류의 다리다.앞으로 교재의 개발,교원 양성,남북한 언어의 통일 등 과제가 개선돼 나간다면 한국어 보급,더 나아가 한일간 교류에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외국인·교포 2,3세에 우리말 널리 전하자”

    ◎한국어 「표준교재」 개발 한창/국제교류재단­하와이 KLEAR센터 공동추진/영어권­국내 33개 대학 교수 47명 참가/초급∼최상급 4단계 총14권 발간 예정 전 세계 영어권 대학에서의 한국어교육을 위한 한국어 표준교재 공동개발사업이 한창이다. 6개년 계획으로 추진중인 이 사업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국제 한국어 교육·연구센터」에서 이루어지고있다. 이 센터는 지난 해 7월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설립됐다.하와이 주법에 따른 법인체로서 하와이대 동아시아 어문학과장인 손호민(62)교수가 소장을 맡고있다.국제교류재단은 이 센터와 1백만달러 규모의 교재 개발사업 계약을 맺었다. 이 사업에는 미국,캐나다,호주등 영어권 나라와 한국의 33개 대학에서 47명의 한국어 전공교수들이 참여하고있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전격 지원아래 전 세계의 영어권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모두 모여 교재를 공동개발하는 획기적 사업인 것이다. 80년대이후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향상되면서 영어권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강생들이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교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2∼3개의 교재가 1∼2학년 수준에서 사용되고있으나 이는 주로 한국내에서의 외국인 교육을 위한 것이고 외국에서의 실정에는 맞지않는다는 것이 대부분 현지 교수들의 불만이었다. 한국내에서는 한국인들과 함께 생활하기때문에 외국인들이 이 정도 교재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한국어 숙달이 가능하지만 외국에서는 교실만 나서면 그만이라고한다.한 학기를 가르쳐봐야 문장 몇 개 외우게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교재들도 초급수준에 머물고 3∼4학년 대상의 고급 교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한국어 교재의 필요성은 한국어 과정이 개설된 모든 대학에서의 공통된 것이었다. 현재 영어권 나라에서 한국어과정이 개설된 대학은 줄잡아 80여개에 이른다.미국에서만도 한 학기에 한국어를 수강하는 대학생수가 5천여명을 넘어서고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한국어를 잘 모르는 교포 2·3세들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국어 과정 수강생들은 급격히 늘어났다. 한국어 표준교재는 초급,중급,고급,최상급 4단계로 나누어 총 14권이 발간되며 초급과정의 3권자리 본 교재는 1권은 올해안에 나올 예정이다. 교재개발을 위한 지침서 6권이 벌써 완성되어 이를 바탕으로 현재 말하기·듣기·쓰기등 각 분야별로 나누어 교재 집필이 진행되고있다. 국제 교류재단은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불어,독일어등 각 언어권에서의 한국어 교재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인터뷰/국제 한국어교육 학술대회 참가차 내한/손호민 하와이대 교수/“우리것 알리기엔 한국어 가르치는게 최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학을 진흥시키는 데는 한국어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제6차 국제 한국어 교육학술대회(15∼17일)에 참석차 서울에 온 「국제한국어 교육·연구센터」(KLEAR)의 손호민(62)소장은 한국어 교육 표준교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71년 제가 하와이대에서 처음 한국어 교육강좌를 맡을 때만해도 한 강좌에 학생 1∼2명이 고작이었는 데 이제는 10∼15명으로 늘었고 한학기 전체 수강생은 1백50여명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교재가 없다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라는 것이다.늘어나는 수강생들에게 교재가 없어 신문을 복사해 나누어주면서 얼굴이 뜨거웠던 적이 많았다고한다. 일본어의 경우는 이미 20여전부터 표준교재가 사용되고있기 때문이다. 아직 초기단계인 교재개발사업은 숙달도 위주의 외국어 교수법에 따라 단계별로 16개의 교재개발원칙을 적용해 진행하고 있다. 초·중·고급·최고급을 각각 3단계로 나눠 교재를 개발한 뒤 말하기·듣기·읽기·쓰기의 숙달정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수시로 참여교수들과 의견을 교환하기는 하지만 문법보다는 실용성위주의 교재를 만든다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손 소장은 『각국의 대학에서 자리잡고있는 참여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않은 현실에 비추어 센터내에서 상근할 전담교수가 필요하지만 구하기가 쉽지않다』며 안타까워했다. 『국가적 대사업이고 한번 개발하면 오랫동안 사용해야할 교재이기 때문에 서두르지않고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손 소장의 목표이다.
  •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30)

    ◎절경의 스탈브이 자연공원… 기암 40개/일군 포로가 지은 스탈린식 건물 곳곳에/19세기 화가 「수리코프」는 이 고장의 자랑/예니세이강 유역에 목재 콤비나트 줄이어 목재산지 예니세이강의 도심 선착장 대합실은 49년 당시 소련에 억류돼있던 일본군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는 전형적인 스탈린식 건물이다.시베리아 전역에서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은 건물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치타·연해주 등 동시베리아쪽에서는 일본군 포로들이 동원됐고 서부지역에서는 독일군 포로들이 동원됐다. 일제때 학병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도 소련군포로가 돼 러시아땅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김영삼대통령의 단골 러시아어 통역인 유학구씨도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크에서 무려 4년여 강제노역을 했던 사람이다.그는 그곳에서 좌익활동을 해 전후 일본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소련시민이 됐다.이후 그는 소련의 연구소에서 한반도관계 일을 맡다가 한소수교 뒤 다시 한국국적을 취득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다. ○유학구씨도강제 노역 그와는 달리 학술원회원인 동완 선생은 하바로프스크에서 유학구씨와 함께 포로생활을 했으나 일본으로 되돌아간 경우다.그는 어릴 때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성장하며 배운 유창한 러시아어 때문에 관동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오랫동안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이 두 사람의 인생유전도 우리 근대사의 한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동쪽의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종착지였다.그래서 유형자들의 수도라고 불린다.따라서 그 직전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유형자들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그리고 많은 유형자들은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마감하기도 했다.「파크로프스크(첫눈)」라는 이름의 18세기 사원을 지나면 시립 공동묘지가 있는데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을 비롯,유형자들의 묘지가 대거 눈에 띈다.「파크로프스크」라는 이름은 첫눈 내리는 10월1일에 착공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보통 10월1일 첫눈이 내리면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1월 평균기온이 지금도 영하18∼20도로 내려간다.지난 겨울에는 예전같은 혹한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폭설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가장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자연공원 「스탈브이」봉이다.수력발전소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약 40개의 기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자연공원이다.우리의 설악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산이 귀한 시베리아인들은 이 스탈브이를 한번 가보는 게 평생 꿈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다.산세도 산세지만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원은 역시 사람의 발길이 뜸해 오염되지 않은 게 제일 장점인 것같다.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공원입구 매표소 여직원은 엽서·안내책자 등을 종류대로 다 사고 싶다는 말에 신이 나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서랍을 이리저리 뒤졌다.이곳의 안내책자들은 사진기술은 괜찮은데 하나같이 종이질과 컬러 인쇄술이 조잡한 게 흠이다.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니 쌓인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다. ○유형자들 중간 기착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히 「클레시」라고 부르는 해충을 조심해야한다.작은 벌 모양으로 생겼는데 한번 물리면 뇌·신경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가한다고 한다.공원 입구는 물론,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 곳곳에 클레시를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나붙어 있다.스탈브이를 내려오면 예니세이강을 끼고 시내 초입까지 내내 목재 콤비나트가 줄줄이 들어 서 있다.뗏목으로 이동해온 목재들을 이곳에서 가공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해 각 도시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자랑거리로는 19세기에 활동했던 이곳 출신 화가 수리코프를 빼놓을 수 없다.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형적인 동시베리아 목재집을 박물관으로 꾸며 그가 쓰던 가구와 그림들을 전시해 놓았다.시베리아의 자연풍경과 여인·가족,특히 자연속의 사람을 즐겨 그린 수리코프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중 하나는 지난 88년9월 고르바초프가 이곳에서「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이라는 새 아시아 군사외교노선을 천명한 때문이기도 하다.아시아에 탈냉전의 바람을 불어놓는 선언이라며당시 우리 언론들도 대서특필 했었다.고르비가 당시 이 선언을 발표했던 주당위원회 건물은 지금 주정부·주의회가 입주해 있고 정작 거리의 시민들은 이 선언에 관해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하기야 고르비마저도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됐으니. ○고르비 “탈냉전” 천명한 곳 시베리아에서 5월말은 졸업시즌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의 중심가인 칼 마르크스거리의 불러바르(도보)에는 졸업을 앞둔 여중생들이 들뜬 기분에 10여명씩 무리를 지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11학년제이니까 15∼16살쯤 되는 나이들이어서 화장도 짙게 하고 모두 숙성한 모습들이다.우리를 보더니 『우리는 졸업한다』『사진을 찍어달라』는 등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러시아는 지금 학제도 큰 변혁기에 있다.지금까지는 국민학교 5년에 중학교는 6년,합쳐서 11년제였다.우리와 달리 국민학교·중학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같은 학교에 있으며 제도만 분리돼 있을 뿐이다.국민학교는 담임교사가 학급을 책임지고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데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 교사가 따로 있다.가장 큰 차이는 국민학교에는 시험이라는 게 전혀 없다가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로 시험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이 공립학교 대신 김나지움이나 리세라는 엘리트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일명 「뉴(new)러시안」이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시설도 좋고 교육의 질이 매우 좋지만 월학비가 5백∼1천달러에 이르니 일반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이들 학교학생들과 일반 공립학생간의 위화감이 사회문제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대학으로 진학한다.요즈음은 너도나도 취직하는 게 유행이다.대학은 우리같이 학부 4년,대학원 2년이 기본이다.그러나 의대의 경우는 예과 2년,인턴 2년을 합쳐 모두 7년제이고 공대 6년,법대 5년등 다양하다.이를 모두 미국·유럽학제로 일원화하는 문제가 요즘 큰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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