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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0) 중앙아시아 最古 종교도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이슬람 문명과 도시] (20) 중앙아시아 最古 종교도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11세기 초 카라한 왕조와 17세기 초 부하라 칸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부하라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중앙아시아 이슬람 최대의 성지로 꼽히고 있다. 한때 이슬람 성직자를 양성하면서 과학·문화·종교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던 부하라는 지금도 서부지역 문화 중심지로 가장 밀도 있는 종교적·민족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부하라에 가면 언제나 이브라힘과 파티마의 집에서 지낸다. 그들은 부하라 시내 중심가 유적 근처에서 호텔 ‘이브라힘 파티마’를 운영한다. 처음 갔을 때인, 그러니까 7년 전에는 방을 개조한 객실 6개로 시작한 아담하고 작은 호텔이었는데 어느덧 객실 20개의 제법 번듯한 호텔로 자리잡았다. 이브라힘은 파티마의 아들이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도와 시작한 호텔운영이 파티마 오빠(우리말의 오빠가 아니라 여자에 대한 존칭어미)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로 인해 날로 번창하고 있다.18살 때부터 부모를 도와 호텔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이브라힘은 만날 때마다 의젓하고 듬직한 것이 대견하다. 부하라에는 우즈베크 민족보다 이브라힘과 파티마 모자처럼 타직 민족들이 더 많이 산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들끼리는 타직어를 사용하고, 공공장소에서는 우즈베크어나 러시아어를 쓴다. 부하라가 우즈베크의 도시임에는 분명하나 오늘날 부하라 시민은 타직 민족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타직 민족의 왕조였던 사마니드왕조와 관련이 있어서다. 타직 민족은 파미르계 타직과 서부지역의 타직으로 나뉘는데, 서부 지역의 타직 민족은 비교적 온순하고 문화적 기질이 강하다. 상도의나 윤리도 잘 알고 있다. 이브라힘과 파티마 모자에게서 볼 수 있듯, 변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빛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부하라를 정겨운 마음으로 둘러본다. 붉은 모래 사막인 키질쿰을 끼고 있는 부하라는 인구가 약 25만명으로 자랍샨 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오아시스 도시다. 동부 타지키스탄에서 발원한 자랍샨 강은 나보이주를 지나면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지역적·문화적으로 연결시켜 준다. 기원 전에 이미 이 강을 따라 농경문화가 꽃피기도 했다. 지금도 부하라 곳곳에 있는 미나레트(첨탑)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모래사막에 지친 대상들에게 등대와 같은 이정표이자 편안한 안식처다. 11세기 초 카라한 왕조와 17세기 초 부하라 칸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부하라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중앙아시아 이슬람 최대의 성지로 꼽히고 있다. 한때 이슬람 성직자를 양성하면서 과학·문화·종교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던 부하라는 지금도 서부지역 문화 중심지로 가장 밀도 있는 종교적·민족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부하라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뷔하라(수도원)’에서 나왔다. 부하라가 종교도시임을 알려주는 단서다.8세기 아랍의 침입으로 종교와 언어 모두 이슬람화하면서 부하라에는 중앙아시아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 세워졌다. 그 후 칭기즈칸의 침입에도 종교적 정체성은 변함없었다. 구소련 시절에도 우즈베크 전역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신학교가 존재했던 곳이 바로 부하라이다. 부하라는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다. 부하라와 호레즘(히바) 지역은 도시문명이 일찍부터 발달해 약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흔히 4대 세계문명발상지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를 7개로 늘린다면 부하라와 호레즘, 즉 소위 ‘트랜스 옥시아나(아랍어로는 ‘마베레나흐르’라고 함)’라 불리는 이 지역도 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부하라는 지금처럼 이슬람의 냄새를 피우기 전에도 융성한 도시문화를 가꾸며 발전했다. 이슬람뿐 아니라 조로아스터교, 불교 등으로 통해 중앙아시아 특유의 오아시스 도시문화를 꽃피워 왔다. 한때, 부하라에는 메드레세(이슬람신학교)가 200개 이상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방치됐지만, 그나마 양호하게 보존된 메드레세는 40개 정도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 퍼져 있는 이슬람 유적은 과거 부하라의 종교적 번영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기원후 1세기쯤 지어졌다는 마고키 아타리 이슬람성원은 부하라의 종교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타직어로 ‘동굴 안쪽’이라는 뜻의 ‘마고키’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봐서 후대에 새롭게 이름지어진 이슬람성원일 가능성이 크다.1936년 러시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된 마고키 아타리 성원은 원래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사원으로 만들어졌지만 훗날 이슬람에 의해 개조돼 이슬람 성원으로 활용됐다. 칼랸 미나레트는 부하라의 상징물이다. 어디에서 어떤 각도로 부하라 시내의 이슬람 유적을 찍어도 반드시 카메라에 잡히는 건축물이다. 칼랸은 타직어로 ‘크다, 웅장하다’란 뜻으로 예배를 알리는 본래의 역할 외에도 길잡이 등대의 역할도 했다. 칼랸 미나레트는 47m 높이에다 계단이 100개나 된다. 초석은 직경만 9m이고, 기층 부분에서 다시 10m 지하로 들어가 있다. 미나레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원주형으로 작은 벽돌을 14개의 층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게 쌓아올린 전축형 탑이다. 대부분 벽돌을 쌓아 올린 중앙아시아 특유의 건축법이다. 칼랸 미나레트 옆이 칼랸 성원이고, 광장을 낀 맞은편에 미르 아랍 메드레세가 있다. 부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르 아랍 메드레세는 두 개의 푸른 아치형 돔을 갖고 있다. 청색과 흰색 타일을 적절히 조화시킨 모자이크 문양은 티무르 제국 말기의 문양으로 평가된다. 정면에 있는 칼랸 성원과 달리, 미르 아랍 메드레세는 이층구조다. 이곳의 교육연한은 7년이다. 지금도 학교로 쓰인다. 중정을 둘러싼 회랑의 1층에는 회의실·도서관·식당 등이 있고,2층은 신학생들의 기숙사다. 구소련 시절에도 학교의 역할을 계속 했다. 시험을 통해 뽑힌 학생들은 아랍어·쿠란·이슬람법·물리·화학 등의 과목을 배운다. 이곳 출신들은 종교 지도자, 예배 인도자로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2004년 5월 2차 세계대전 승전 59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사망한 체첸의 4대 민선 대통령 아흐마드 카디로프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정면의 다양한 타일장식을 하나하나 구경한 뒤 작은 쪽문을 열고 들어가서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구경하고 혹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볍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다시 나무 쪽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발견한, 눈망울이 큰 타직 소년은 이내 아는 체를 한다. 우즈베크 이슬람 중앙회에서 운영하고,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미르 아랍 메드레세는 이슬람에 관심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입학하려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종교인으로서의 몸가짐과 교양을 배운다. 크고 탁 트인 우렁찬 목청으로 기도시간을 알리고, 어떻게 예배를 인도할 것인지 배운다.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10∼18살의 어린 학생들은 묵묵히 이슬람 성직자의 길을 밟아나간다. 이들의 마음과 행동거지 속에서 나는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밝은 미래를 읽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불현듯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언어가 없는 인간세상을 말이다. 우선 ‘사랑한다’고 못하겠지. 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엉뚱한 싸움판도 벌어지겠지. 이래저래 오해와 진실이 마구 뒤엉켜 결국은 멸망?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자들에 따르면 6000여개는 족히 넘는다. 또 2주에 걸쳐 하나씩 소멸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생태계 또는 작은 부족의 멸종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의 상처와 영혼을 켜켜이 담으며 살아온 우리 언어. 남북 분단 60여년, 겨레의 언어 역시 그 세월만큼 간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쪽에서 사용하는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으로,‘도넛’을 ‘가락지빵’으로,‘반딧불이’를 ‘에디벌레’로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또 계산기 하면 남쪽에서는 전자계산기를 연상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국수’ 등으로 사용하며, 전문·학술용어의 경우 그 차이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만약 남북 의사가 같이 수술대에 있다면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함경도의 방언까지 몽땅 비교한다면?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1970년대초였다.7·4 공동 성명과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6·25이후 남북 당국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남측 요원이 회담장에서 서비스를 하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접대부로 불러주세요.”라고 당황케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언어차이를 처음으로 실감케 한 사례였다. ●겨레말은 남한 표준어·북한 문화어·방언 합친 말 1989년 3월이었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언어의 이질감을 얘기하면서 ‘통일대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했다. 이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4년 12월 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만나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 지난해 2월 편찬위 1차정기회의(금강산)를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가졌고 오는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 즉 ‘겨레말큰사전’을 펴내기로 했다.‘겨레말’은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남북의 방언을 합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측과 북측은 각각 방언조사 등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73) 시인을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편찬사업회 사무실. 지난달 말 제7차 편찬위 평양회의에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그는 “현재 ‘ㄱ’과 ‘ㄴ’ 부분을 끝냈다면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ㄱ’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말이 6만 9000여개에 달했단다. 남쪽은 10여군데에 대한 방언조사를 끝냈고 북측도 다섯군데를 조사해 서로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우리말은 세계 10위권 유지하는 민족어 남과 북에서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50만 9000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 어휘)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10만개를 새로 추가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된 호복이(전북지방, 흠씬 익도록 삶거나 끓이는 모양), 큰아베(경북, 할아버지), 쪼시락허다(전남, 하찮다) 등이 될 수 있다. “언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멸 또는 변질되지요. 우리 근대사 이후 겨레 언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연해주, 중앙아시아, 만주 일대는 물론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가지고 간 언어도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얼마전 사할린 징용자 위령제에 다녀왔다.”면서 30년대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약 15만명이 이주했는데 현재는 3만명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순수 언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과 북 각 지역의 방언과 향토어 속에 우리 말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된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우리 겨레말을 집대성하는 일이며, 우리 후손들이 만나야 할 ‘대사전’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때문에 2012년 이후에도 계속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은 학자나 교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에서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문자입니다.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프랑스어보다 많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갑니다. 러시아어도 푸슈킨 이후 주목을 받았고 독일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우리말도 근대문학 이후 표현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의 양반들은 주로 한문 중심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에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활발한 신문학 운동은 모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대국어들이 횡행하는 오늘날에 우리말이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된 것도 대단한 민족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이런 우리글이 다음 세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인터넷상에 계속 퍼지는 언어와 영어 등의 영향으로 우리 언어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 큰사전을 통해 방향타를 잡고 또 자국어 보존을 위한 정책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말이란 한 시대가 지나면 사라진다.6·25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고대시와 지금이 다르듯이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이 나중에 고어로 남게 되고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소멸된다고 했다. ●남북, 문화행위로써 우선 동질성 회복해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당시 세종대왕은 몽골과 여진 지역에도 학자를 파견했다. 또 티베트어 연구는 물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하는 승려도 참여시키는 등 세계적 언어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 가면 당시 사신이 다녀갔다는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는 얘기를 몽골학자한테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세종은 여진과 말갈족들을 끌어들이는 등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함경도 지방에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단다. “아마 당시 한글창제 작업은 중국 몰래 했겠지요. 한자(漢字)와 다른 문자를 따로 만든다는 것은 천자(天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표도 조심스럽게, 즉 보다 쉽게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는 식으로 중국을 달랬지요. 또 비로소 한자 지배의 구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민중문자와 민족언어를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겨레말 편찬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고 이사장. 세상에 놀러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남북은 정치·군사적 문제만이 아닌 먼저 문화행위로써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며들다 보면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겨레말에 의탁하여 살아온 지난 역정을 바쳐 ‘이젠 죽을 수 있다. 이제 죽어도 된다.’라는 몇년 뒤의 궁극적 감회를 예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km@seoul.co.kr ■ 고은이 걸어온 길 ▲1933년 군산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고 중퇴 ▲52년 입산,10년간 승려생활(법명 일초) ▲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 발표로 등단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 ▲62년 환속, 재야 운동가로 활동 ▲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출간. 제1회 한국문학상 ▲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 연재 ▲89년 제3회 만해문학상 ▲90년 민족문학작가회장 ▲99년 미 하버드대 연구교수. 버클리대 초빙교수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05년∼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 [Local] 제주, 모스크바대 어학원 들어서

    제주도가 분교 유치를 추진중인 모스크바국립대가 국제교육원 예비학부 어학원을 다음달 10일 제주에 연다. 예비학부 어학부는 외국인 학생을 위한 10개월 기간의 필수 입학예비과정. 제주 어학원에서 5개월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은 나머지 5개월을 모스크바대 예비학부에서 교육받은 뒤 러시아어 시험을 통과하면 모스크바대 학부에 입학할 수 있다.
  • ‘한국인 1호 우주인’ 2일 1차 테스트

    ‘한국인 1호 우주인’ 2일 1차 테스트

    전남 순천에서 폐수처리 기계운전을 하는 김세원(29)씨. 그에게 다가올 2일은 어릴 적 소중한 꿈이 현실로 바뀌기 시작하는 날이다. 그는 이날 오후 광주 과학기술원 앞에서 400여명의 사람들과 3.5㎞ 달리기 경쟁에 나선다.‘한국 최초 우주인’ 선발의 1차 관문인 체력 테스트에 도전하는 것이다. 김씨는 테스트 통과를 위해 몇 주일 전부터 철야 근무가 끝난 아침 6시30분이면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는 “어릴 적 우주인의 꿈을 뒤늦게 다시 키울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1차 합격자 300명 선발 경주대학교 관광학부 김영우(39) 교수도 어릴 적 꿈을 현실로 바꿔가고 있다. 김 교수도 같은 날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실시되는 달리기 테스트에 참가한다. 한 달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4∼5㎞를 달리며 체력을 키워 왔다. 쑥스러워 아직 주변에 참가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최종 단계까지 올라가면 학교와 학생들에게 이를 알릴 계획이다. 지금도 짬나는 대로 천문대 등에 가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한다는 김 교수는 “우주 공간을 날며 지구와 별을 바라보면 무척 아름다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곧 우주 관광이 활성화된다는데, 몸소 체험하고 나면 학문 활동이나 강의를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67세로 최고령 지원자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도 우주인 선발 첫 관문에 도전장을 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정 회장은 “우주인이라는 또 다른 꿈에 도전한다.”는 포부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지원자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19살 백장미(한양대 화학과)양도 평소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인에 도전한다는 당찬 각오를 밝혔다. 성별과 나이는 물론 직업도 천차만별인 1만 58명이 2일 오후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강릉, 제주 등 6개 지역에 모여 꿈을 찾아서 달린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한 가지다.‘한국 첫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지원자들은 1차 관문인 3.5㎞ 달리기 테스트에서 남자는 23분, 여자는 28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여기에 필기전형과 종합평가 성적을 합산해 300명가량의 1차 합격자가 선발된다. 이후 임무수행능력평가, 무중력 적응 검사, 우주적성검사 등 2·3차 관문을 통해 10명으로 좁혀지고 마지막 우주적성검사 등 4차 관문을 통해 최종 우주인 후보 2명이 뽑힌다. 이 가운데 1명은 2008년 4월 외국 우주인 2명과 함께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향할 예정이다. ●우주실험 내용 이달말 확정 그러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은 어떤 우주실험을 하게 될까. 무엇보다 우주공간에서 김치 유산균을 이용, 항암제나 줄기세포 성장 촉진제 등을 개발하는 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 고유의 연구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열린 ‘한국우주인 임무개발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인 우주인이 수행하길 기대하는 여러 과학실험을 제안했다. 소형 망원경으로 고층 대기를 분석하자는 의견,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제2의 지구’를 찾아 보자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우주실험은 교육용 실험·순수과학 실험·산업관련 실험 등 3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9월말쯤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저귀 팬티 우주복 입고 생활 10여일간의 우주 생활을 하게 되는 한국인 우주인은 우주선을 타고 내릴 때 무게가 10㎏쯤 되는 러시아제 ‘소콜(러시아어로 매라는 의미)KV2’라는 선내 우주복을 입을 예정이다. 섭씨 120도의 고온과 영하 120도의 극저온에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고 몸 속의 체액이 끓지 않도록 압력을 유지시키는 기능이 있다. 우주정거장에서 활동할 때는 1기압에 실내온도가 섭씨 15∼20도로 유지되므로 간편한 차림의 활동복을 입게 된다. 그러나 한국인 우주인은 우주복의 대명사로 황금빛으로 코팅된 헬멧에 등에 산소탱크 등이 붙어있는 선외 우주복은 입지 못할 전망이다. 기계 수리 등 우주정거장 밖에서의 임무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주복을 입고 있는데 소변이 마려우면 어떻게 할까. 우주복 속에 흡수내의(MAG)라는 남녀 공용의 성인용 기저귀나 호스가 달린 팬티를 착용한다.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에 소변을 즉시 흡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성 우주인은 우주선 안으로 화장품을 갖고 탑승하지 못한다. 여성용 화장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화장품 가루와 액체가 공중에 떠다녀 동료 우주인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오렌지혁명 패자의 복귀 ‘적과의 동침’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의 패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가 키에프의 정부청사에 화려하게 재입성했다. 그것도 ‘숙적’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의 총리 임명장을 받아들고서. 유시첸코 대통령은 야누코비치 전 총리와 11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그를 새 총리에 임명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AP 등이 3일 보도했다. 이로써 오렌지혁명 이후 급격한 서구화 길을 걷던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대통령’과 ‘친러시아 총리’가 국정을 분담하는 ‘동거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유시첸코 대통령이 이끄는 우리 우크라이나당은 야누코비치의 지역당과 한때 동지였던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의 티모셴코 블록에 밀려 3당으로 전락했다. 4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지난달 18일 친러 성향인 지역당과 공산·사회당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유시첸코 대통령은 승인을 미룬 채 의회해산을 통한 조기총선 가능성을 흘렸고, 지역·공산·사회당 연합은 대통령 탄핵 카드로 맞서면서 정치위기가 고조돼 왔다. 야누코비치의 총리 임명은 결과적으로 친러파의 탄핵압력에 유시첸코 대통령이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이를 의식한 듯 유시첸코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와의 회견에서 “정책 결정 원칙은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당분간 친서방 외교노선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야누코비치의 총리 임명에 대해 “오렌지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는 티모셴코 진영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유시첸코 대통령이 그동안 공언해온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본격화한다면 러시아어 사용인구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있는 야누코비치 내각으로선 ‘중대 결심’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동포 귀국지원’ 생색용?

    지난 3일 우즈베키스탄 폴리타젤 출신 고려인 동포 강왈렌친(35)씨는 5개월간 지냈던 한국을 떠나 고향으로 강제출국당했다.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와 일하다가 좀 더 보수가 좋은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터를 옮겼지만 불법체류 단속반에 적발됐다. 강씨는 정부의 귀국지원제도란 게 있다는 것을 단속요원에 걸리고 나서야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중국동포 451명 강제출국 당해 정부가 지난달 24일부터 중국동포(조선족)와 구소련동포(고려인) 불법체류자가 자발적으로 귀국할 경우 재입국과 취업을 보장하는 ‘동포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하지만 대상자들에게 홍보가 제대로 안돼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이 제도를 모른 채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 당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8월31일까지 시행되는 이 제도를 이용하면 출국 1년 뒤 재입국이 가능하고 취업을 원하는 동포는 교육을 받아 3년간 국내에서 일할 수 있다. 반면 불법체류자로 단속에 적발되면 국내에 5년간 입국하지 못하고 법무부가 검토 중인 ‘해외방문 취업비자’ 취득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지원프로그램이 시작된 4월24일 이후 지금까지 조선족 1234명, 고려인 22명 등 1256명이 자진출국을 했지만 같은 기간 조선족 451명이 불법체류자로 적발됐다. 강씨는 “강제출국 때 탔던 비행기 안에 비슷한 처지의 동포 2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귀국지원 프로그램 시행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전 동포들을 지원하는 교회와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등에서 정책설명회를 가졌지만 동포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은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英·中·러시아로도 공고해야 조선족은 우리말에 비교적 익숙하고 인터넷을 잘 활용하며 교회 등 지원기관과 잘 연계돼 있지만 불법체류자들은 귀국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 특히 고려인들은 우리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특히 40대 이하들은 한국어 공문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여서 러시아말이나 입소문 등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한글로만 공고돼 있다. 노동부의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도 친절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러시아어와 영어·중국어로 된 공고문 제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고려인을 채용하고 있는 공장들도 귀국지원 프로그램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사)고려인 돕기 운동본부 박정열 사무국장은 “제도 홍보는 소홀히하면서 가혹한 단속만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기왕에 동포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다면 정보부족 때문에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선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동포들을 진정으로 배려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의 ‘무용퀸’ 등극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의 ‘무용퀸’ 등극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

    청순가련이다. 요염하고 야심만만하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 구름없는 나라, 별 많은 밤과도 같아라!’. 누구를 얘기하는 것일까. 혹시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의 ‘오데트’는 아닐까. 가늘고 긴 목덜미에서 넓은 어깨를 지나 팔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감성표현미가 일품이다. 이른바 ‘지젤 라인’이다.166cm의 키에 몸무게 45kg. 작은 체구지만 구름 위를 걷는 모습이 황홀지경이다. 세상의 온갖 꽃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해 넋을 놓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잠시 등을 돌려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한순간 슬픔에 빠지게 한다. 그렇게 타고난 천상의 춤으로 서른도 안된 나이에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당찬 여인이다. 다들 부러워하는 본 고장에서 일궈낸 값진 것이기에 한국 발레의 보물로 여겨진다.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28·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최근 세계무대에서 보란 듯이 ‘무용퀸’으로 등극했다. 지난달 말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열린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춤의 영예)’에서 당당히 최고의 무용수상을 차지한 것. 이 상은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발레리나 최고의 영예를 상징한다. 수상 직후 귀국한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지방으로 후다닥 내려가 곧바로 다음 연습에 들어가는 열정을 과시했다. 지난 주말 경북 구미에서 서울행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잠깐 짬을 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초등 5학년때 입문… 고2때 러 볼쇼이로 6년 유학길 간편한 치마차림에 앳된 소녀처럼 보였다. 문득 가냘픈 체구로 어떻게 세계 무대를 평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피곤했을 법도 한데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닭가슴살과 초콜릿, 케이크 등이라며 웃는다. 수상 소감에 대해 “최종 후보(5명)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인데 수상까지 했으니 무척 기뻐요.”라고 피력한다. 그러면서 사실 이번 무대에 오를 때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작년 10월부터 5∼6개월 동안 부상 상태에서 연습을 하느라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발가락을 살짝 보여준다. 스물여덟 처녀의 발가락치고는 못생기게 휘어졌지만 험난한 길을 걸어왔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1년 내내 붕대를 감는다고 했다. 하기야 지금까지 3000켤레가 넘는 토슈즈를 사용할 정도로 ‘지독한 발레리나’로 알려져 있으니…. 또 공연만 하더라도 1년에 100회가 넘는다고 하니 발가락이 성할 리가 만무했다. 김씨는 연습 때는 고통을 느끼지만 무대에 서면 워낙 몰입을 잘해 고통을 잊는다. 공연이 끝난 직후에는 재활치료를 받아가며 다음을 대비한다. 이번 러시아 무대에서도 마찬가지. 몰입의 과정을 끝내고 나서 객석을 향해 인사를 했는데 박수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누구한테 “너무 아름다워 박수를 잊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리셉션에서 평소 존경하는 발레계 톱스타 도미니크 칼리프를 만났는데 그한테 “오늘만큼은 당신이 나의 드림(dream)이다.”라는 찬사를 들어 뛸 듯이 기뻤다. “보다시피 작고 얇은 편이잖아요. 아마 그런 느낌으로 섬세한 어떤 역할을 표현하는 모습이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나봐요. 발레는 서양 춤이지만 동양인들의 표현력과 작은 신체구조에서 오는 느낌을 높이 평가한 것 같아요. 한국 발레의 장래성에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이번 수상이)자신 하나만이 아닌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무용수들에게 자부심을 안겨다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보였다. 그는 인터뷰 도중 “발레란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또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혼자서 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리나는 인생이 길지 않아 기껏해야 나이 45세까지가 한계라고 했다. 하루라도 쉬면 그만큼 짧아진다. 그래서 매일 아침 9시까지 국립발레단 사무실로 출근해 체중이 2㎏이상 빠질 정도로 연습을 반복한다. 한달 소비되는 토슈즈는 15켤레 정도(한 켤레당 10만원). 무서운 연습량으로 파트너 남자가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다. ●한달에 토슈즈 15켤레 소비하는 ‘연습벌레´ 김씨는 1남3녀 중 셋째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발레를 시작한 것은 부산 배정초등학교 5학년때. 둘째 고모의 권유로 시작했다. 발레를 배운 지 3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발레협회 주최 콩쿠르에서 동상을 탔다. 천부적인 끼는 영락없는 ‘지젤소녀’였다. 이듬해에는 김지영(현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소속)과 공동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선화예중 2학년 시절. 때마침 내한했던 러시아 안무가에게 발탁돼 러시아로 유학을 하게 된다. 망설이던 어머니가 “그래, 이왕이면 발레 본고장에 가야지.”하는 격려 섞인 허락을 해줘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러시아는 너무 춥고 외로웠다. 음식도 그랬고 언어적응도 힘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의 기숙사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발레와 예술사, 연기론 등의 어려운 공부는 특유의 오기로 버텨냈다. 하루는 새벽에 화장실에서 기절했다. 이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또 러시아어를 잘 몰라 무조건 러시아문학 다섯 쪽을 달달 외워 선생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스스로 “발레 중독증에 걸리자.”며 다른 생각을 안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러시아에 있으면서 어디 놀러가거나 그러질 못했어요. 대부분 발레학교 주변에서 지냈지요.” 6년간의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난 98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게 된다. 귀국 당시 국내 대학의 유혹도 뿌리치고 18살 나이에 프로로 입단했다. 곧 ‘발레계의 서태지’라는 별명도 붙는다. 이때만 해도 한국 발레는 ‘테크닉은 좋지만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가 나타나면서 이를 불식시켰다.“팔에도 감정과 표정이 살아 있다.”는 찬사를 들었다. ●“팔에도 감정 살아있다” 찬사 한몸에 김씨 역시 “몸으로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면 춤추기가 힘들다.”고 얘기한다. 아울러 발레는 ‘몸의 클래식’이어서 자신한테는 더욱 매력적이라며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아니요.”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이어 가끔 시간 나면 영화도 보고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 배역과 영화 속의 주인공을 연결해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최근에는 ‘오만과 편견’을 읽고 영화감상까지 했다. 무대 위의 자신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든 발레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순간순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외국 발레단에서 영입제의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지체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국립발레단에서 춤추면서 꾸준히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자신을 만들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관객이기에 많은 보답을 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이달만 해도 지난 주말 구미공연에 이어 ‘돈키호테’(예술의 전당,12∼17일), 갈라공연(17일)이 예정돼 있다.24일부터 베이징(北京)과 선양(瀋陽) 등 순회공연이 있어 김씨의 ‘무용퀸’ 솜씨는 중국에서도 실력발휘할 예정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78년 부산 출생 ▲92년 러시아 유학 ▲97년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 졸업 ▲98년 국립발레단 입단,‘해적’으로 주역 데뷔 ▲99년 지젤, 신데렐라. 돈키호테 주역 ▲2000년 로미오와 줄리엣, 호두까기 인형 주역 ▲이외 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고집쟁이 딸 등 수십편 주역으로 출연. ■ 상훈 한국발레협회상(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발레 콩쿠르 여자 동상(01년), 문화부장관상(02년), 한국발레협회상 프리마 발레리나상(02년), 제36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04년),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06년).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3선 성공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

    벨로루시 대선에서 3선 연임에 성공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51) 대통령은 서방 세계에선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통한다. 그러나 옛 소련의 잔영에서 허덕이는 다른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와 달리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 속에 경제 안정을 이루면서 철권통치가 ‘먹히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0일 최종 개표 결과 82.6%의 압도적 득표를 기록,2001년 재선 때 75.6%를 훨씬 웃돌았다. 제1야당 후보인 알렉산드르 밀린케비치(58) 전 민스크 시장은 6%를 얻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오렌지 혁명)와 그루지야(장미 혁명) 등 이웃 나라의 시민혁명 피로감이 더해가면서 예견된 결과였다. 야당을 조직적으로 탄압한 것도 주효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또다른 야당 후보인 알렉산드르 코줄린 사민당 대표와 운동원들을 체포했다.1999∼2000년 4명의 반체제 인사가 ‘사라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루카셴코는 이날 민스크 10월광장에 모인 1만명의 민주화 시위대를 겨냥,“오리 목을 꺾듯이 시위자의 목을 부러뜨릴 것”이라고 험악한 말까지 늘어놨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지구상 제1의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 지난주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벨로루시가 폭정체제로 포함된 데 따른 반발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1994년 첫 민선 대통령에 오른 루카셴코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쳐 국민투표에서 통과시켰다. 초대 대통령의 임기를 7년으로 늘려 이미 12년을 집권해 온 터였다. 슈클로프의 홀어머니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집단농장 관리인을 맡아 농업 경영에 수완을 발휘했다.1993년 부패척결위원장으로 강력한 활동을 펼쳐 국민 뇌리에 각인됐다. 1996년엔 러시아와의 경제통합, 러시아어 지위 격상, 연금 및 사회안전망 확충을 단행했다. 벨로루시는 지금도 신문 제호에 ‘소비에트´란 단어가 들어가며 국가정보기관은 ‘KGB´로 불린다. 벨로루시 경제는 러시아의 저가 천연가스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소련 동맹국에 제공하는 1000㎥당 55달러의 가스값은 친서구로 돌아선 우크라이나나 그루지야에 공급되는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2차대전 때 인구의 3분의 1을 잃은 벨로루시 국민은 내전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BBC는 분석했다. 안정희구세력이 루카셴코의 두터운 지지층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학위과정 수업 1년에 열흘

    가짜 석·박사들은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1년에 한 차례씩 꼭 ‘러시아 V대 동문 연주회’를 열었다.R음악원이 고용한 비음대 전공 통역자들이 쓴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학위등록은 손수 했다.●러시아어 모르는 러시아 박사 러시아 H대,V대의 가짜 석·박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가짜 학위인 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수강생 중 일부는 허술한 학사관리에 의심을 품고 과정을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수강생마저 의심을 품게 된 것은 학사관리가 지나치게 허술했고 수학과정이 사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다.1년에 10일 정도의 수업은 R음악원에서 했고, 그나마 국내 음악연주회 안내책자를 내면 레슨을 면제 받았다. 불과 10∼20쪽의 논문 발표, 학위수여식 모두 국내에서 가능했다.10여일 동안의 러시아 방문도 ‘관광’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대학측은 영어 학위증에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쓴 것과 달리 러시아어 학위증에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적시했다.하지만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를 등록할 때에도 이런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논문심사·학위수여 모두 국내에서 논문대필도 이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가짜 석·박사들은 통역을 두고 논문을 발표했다. 일부는 음악원에 고용된 비음악 전공 통역인에게 학위논문을 쓰게 했다. 일부 논문심사에서는 해당 전공이 아닌 교수들이 논문을 심사했다. 러시아 V대 Z총장은 입국할 때 학위증서 용지를 갖고와 R음악원에서 서명한 뒤 국내 호텔 식당에서 학위수여식을 열었다. 일부 가짜 석·박사들은 졸속으로 학위를 받아놓고도 “학위수여식을 졸속으로 하면 안 된다.”며 항의해 러시아 현지로 가서 다시 학위를 받기도 했다. 가짜 학위취득을 알선한 R음악원 대표 도모씨는 전국 음대 교수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과 교향악단 명단, 화려한 안내 책자로 음악인들을 유혹했다.가짜 석·박사 일부는 다른 음악인을 소개하고 도씨로부터 소개비, 강사료 등을 받기도 했다. 끌어들인 사람 중에는 가짜 석·박사들의 학교 제자가 포함됐다. 이렇게 만든 ‘학맥’으로 이들은 이른바 한국러시아음악협회를 결성하고, 정기모임을 가지며 불만을 표시하는 다른 음악인들을 따돌리기도 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감이 익으면 떨어지듯 나갈 뿐”

    정상명 검찰총장보다 사시 선배인 현역 최고참 검사가 30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난다. 서울고검 이만희(59·사시 16회) 검사는 최근 법무부와 대검에 사의를 전달하고 조만간 퇴직한다. 후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옷을 벗는 것을 관행으로 여기는 검찰에서 이 검사는 정 총장보다 사시 1년 선배라는 점 때문에 후배 검사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 검사는 30년 넘게 몸담은 조직을 떠나는 데 대해 “감이 익으면 스스로 떨어지듯 자리를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소감을 말했다.이 검사는 ‘범죄인 인도조약’ 관련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따 검찰 조직 내에서 ‘박사 검사’로 통한다. 대만과 미국에서 유학한 특이한 경력도 있다. 이 검사는 1994년 펴낸 미·일 범죄인 인도조약에 관한 논문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과 일본의 범죄인인도조약의 실체를 심층 분석해 우리나라가 두 나라와 범죄인인도조약을 맺는 데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검사의 사무실 서가에는 영어와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어학교재 수십 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평소 제2외국어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공부해 4개국 언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이 검사는 이런 어학 능력을 무기 삼아 법률시장이 수년 안에 개방되면 한국의 법률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닦는 게 꿈이다. 중동고와 고려대 법대, 같은 대학 정책과학대학원을 마친 이 검사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장과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대구·광주고검 검사 직을 거쳤다.연합뉴스
  • 모스크바대도 제주 분교 추진

    미국의 조지워싱턴대가 제주 캠퍼스 조성을 추진 중인 가운데 최근 모스크바국립대학이 제주 분교 설치 가능성을 제주도에 타진해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으로 제주도에 외국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용이해지자 외국의 유명 대학들이 잇따라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최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학 관계자와 주한러시아대사관 영사가 제주도를 찾아와 분교 설립 의향을 밝히고 국내 법절차 등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스크바대는 제주도 분교에 국내 및 동남아 대학생을 받아 러시아 문학과 러시아어 등을 가르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안과 중심의 의과대학 설립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 후속 조치로 제주지역 대학과 외국대학이 학사 과정을 공동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의 대학 운영 특례에 관한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이 조례는 외국 대학이 교육 과정을 제주지역 대학에 설치해 재학생이 이 과정을 이수할 경우 외국대학 졸업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일부대 양극화 해소 사례

    각 대학에서는 비인기 전공학과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 학교와 교수들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건국대는 학과가 없어지는 것을 감수한 교수들의 노력이 빛을 본 사례로 통한다. 건국대는 지난해 학부제 도입 이후 지원학생이 적어 폐강사태가 속출했던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히브리어과를 없애고 각 학과의 기능을 조금씩 살린 ‘문화정보학부’를 신설했다. 올해 처음 전공지원을 받은 결과 문과대학을 원한 244명 중 37명(15.2%)이 문화정보학부에 지원했다. 전공별로 EU문화정보학 17명, 커뮤니케이션 전공 13명, 히브리·중동학 전공 7명 등이다.2004년에는 불문과와 독문과 지원자가 각각 2명,3명에 불과했고 2003년에는 각각 4명,2명이었다. 반대로 2년 연속으로 60명 이상이 몰렸던 국어국문과는 올해 48명,2003년 무려 118명이 지원했던 영어영문과는 88명으로 줄었다. 전공 선택의 쏠림 현상이 일부 해소되는 기미가 보인 것이다. 문과대 조오현 학장은 “같은 단과대라도 학과간 이기주의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다 보면 구성원들의 반발이 많기 마련”이라면서 “하지만 폐지되는 학과의 교수들이 전공변경과 재배치 등을 감수해 기초학문이 골고루 발전하는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국대의 경우 광역화된 모집단위를 세분화시켜 전공 지원 양극화 해소를 모색하고 있다. 단국대는 그동안 한국어문학·역사학·영어·독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 등 9개 전공 등으로 구성된 어문학부를 3개 학부와 1개 학과로 세분화시켰다. 중국어와 일본어 전공을 묶어 동양어학부, 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 전공을 묶어 서양어학부로 바꿨으며 영어 전공은 따로 영어과로 모집했다. 이를 통해 영어·중국어·일본어 전공 집중 현상을 완화할 수 있었다. 유지혜 김기용기자 wisepen@seoul.co.kr
  • 퇴출 위기 비인기과 교수들 “제자 구함” “새 전공” 기로

    퇴출 위기 비인기과 교수들 “제자 구함” “새 전공” 기로

    단국대 서양어학부 고혜선(스페인어 전공) 교수는 스페인어가 머잖아 학교에서 퇴출될 것 같아 걱정이다. 전공 선택 과정에서 학생들이 스페인어를 외면하는 현상이 몇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 희망자가 고작 10여명 수준에 그친다. 지난해 단국대에서는 독어·불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 이른바 ‘비인기 전공’에서 수강생 4명 이하인 과목이 7개나 됐다. 한 지방 국립대의 경상계열 학과는 지난해 말 큰 홍역을 치렀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여보려고 인기 없는 과목을 없애고 기업체에서 원하는 교과목을 신설하려고 했다가 교수들이 격렬하게 반대해 논의를 중단했다. 인문사회학 분야 ‘비인기학과’ 교수들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 진출에 유리한 전공으로 학생들이 쏠리는 현상 때문이다. 고작 학생 두세 명을 데리고 강의하는 교수, 아예 학생이 없어 교양수업에 나서는 전공교수도 있다. 교수가 정년퇴직 등으로 자연감소해도 더 이상 충원되지 않고 있으며 시간강사들의 강의 자리 또한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는 올해 인문대 2학년생 전공 배정에서 학생의 80%가 영문·중문·국문학에 몰렸다. 전체 139명 중 51명이 영문과를 원했고 중문과가 33명이었다. 독문과 5명, 불문·언어학과에는 3명씩 지원했지만 노문과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세대의 경우 인문계열 10개 학과 중 정원을 채운 곳은 영문·중문·심리·사학 등 4개뿐이고 국문·독문·불문·노문·철학·문헌정보학 등 6개 전공은 18∼24명까지 정원에 못미쳤다. 독문학은 배정인원이 17명에 불과해 41명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고려대에서도 일부 학과에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 불문학과 유석호 교수는 “어문계열 교수들 사이에서는 전통적 교과목인 고대문학, 중세문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지역학과 연계시킨 쓸모있는 새로운 전공을 개발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방캠퍼스를 둔 대학의 비인기 학과 교수들의 위기감은 더욱 크다. 몇해 전부터 서울과 지방캠퍼스 동일 전공에 대한 통합이나 구조조정 얘기가 총장 선거의 단골 공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 보직교수는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에 공감하면서도 기득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도 비인기 전공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국대 고 교수는 “학부제를 없애고 과거처럼 학과제로 돌아가기 전에는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 유지혜기자 kiyong@seoul.co.kr
  • [스포츠 Tips]

    ●삼보란 삼보는 ‘무기없는 호신술’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SAMozashchita Bez Oruzhiya’의 줄임말이다. 구 소련의 각 지역에 내려오던 토룬타, 루차카나리아 등 고대레슬링 기술과 몽골씨름 바흐가 뼈대를 이루며 유도도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1938년 전 소련 체육스포츠위원회에 의해 체계화된 뒤 러시아의 ‘국기’로 발전했으며, 현재 세계연맹은 전세계 47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삼보마니아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스포츠삼보와 컴뱃삼보의 두 종류로 나뉜다. 스포츠삼보는 아마추어 레슬링의 경기방식으로 공식 인정받았으며, 컴뱃삼보는 KGB나 공수부대 정예요원들의 실전격투기로 발전했다. 펀치나 킥을 금지하는 스포츠삼보와 달리 컴뱃삼보는 척추 및 낭심 공격 등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 부시 “외국인 유학비자 발급 완화”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를 막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해 아랍어와 중국어 등 각종 외국어에 대한 조기교육을 실시하고 외국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겠다고 밝혔다.부시 대통령은 5일 국무부에서 전국 대학 총장들과 만나 “외국어 능력 향상은 미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적 목표 중의 하나”라고 전제하고 “외국의 유학생들을 획기적으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어린이들에게는 조기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부시는 “전 세계에 확산되는 테러를 막고 일부 테러국들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여기에 모인 대학총장 여러분들이 외국의 유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워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부시 정부는 주요 교육대상 언어로 아랍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힌두어, 페르시아어(이란어)를 꼽았다.부시 대통령은 또 “많은 대학 지도자들이 9·11 사태 이후 외국 유학생들에게 비자발급을 제한한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유학생들의 비자 발급조건을 완화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배리 로웬크론 국무부 차관보는 “외국어능력 증진을 위해 외교관과 군 정보기관의 외국어 능력을 강화하고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외국어를 조기에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dawn@seoul.co.kr
  • “31㎏ ‘필승감량’ 성공하니 임관이네요”

    3일 임관한 제 115기 공군사관후보생 가운데 장교가 되기 위해 몸무게를 무려 31㎏을 필사적으로 감량하는 등 이색 졸업자가 적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공군에 따르면 이병훈(24) 소위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키 187㎝에 몸무게 126㎏이었다. 현역이 되기 위한 몸무게 상한선인 113㎏을 맞추기 위해 꾸준한 식사조절과 헬스로 지난해 9월에는 110㎏으로 무려 16㎏ 감량에 성공했다. 이 소위는 “훈련기간에 규칙적인 훈련과 체계적인 체력단련으로 지금은 몸무게가 15㎏ 더 줄여 95㎏”이라고 가볍게 웃었다. 김정훈(23)·박장진(26)·김현(26) 소위는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어 군복무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군장교로 자진 입대한 케이스다. 김정훈 소위는 미국에서 태어난 데다 습관성 어깨 탈골이 있는데도 자원입대했고, 김현 소위도 1989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영주권을 갖고 있다. 박장진 소위는 1995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미국 하버드대 안보정책 석사를 마치고 입대했다.이들은 “공군 장교로서 나라를 지킬 기회가 주어져 기쁘고 앞으로 군 복무에 최선의 각오를 다해서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운 공군인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행정고시 16명, 기술고시 4명, 외무고시 1명 등 고시에 합격해 정부 부처에 근무하다 공군 장교가 된 이가 모두 21명이었다. 하버드대, 베이징대 등 외국의 명문대 출신자는 16명이었고, 러시아어·아랍어 등에 능통한 어학특기자는 25명이었다. 이날 경남 진주의 공군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김성일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15기 공군사관후보생 임관식이 열려 228명의 신임 장교가 배출됐다.공군사관후보생은 대학 출신으로서 3년간 군복무를 대신하는 것으로, 이른바 ‘학사장교’라고 볼 수 있다.대부분 지상 근무 요원이며, 그중 별도 시험을 거친 일부만 조종사 훈련을 받게 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20년 맞는 성악가 조수미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20년 맞는 성악가 조수미씨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표현을 썼다. 주빈 메타는 “한 세기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 극찬했다. 프랑스 유력지 르 몽드는 “요정들도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라고 했다. 에구, 이 정도면 더 이상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성악가 조수미(43). 분명 음악적으로 이 시대 세계 최고의 벨칸토 소프라노로 인정받는다. 우리들에겐 언제나 큰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국보급 스타로 자랑스럽기만 하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영혼을 더욱 뒤흔들며 한 차원 높은 경지를 창조해내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더불어 바빠지는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신들린 듯 세계무대를 사뿐사뿐 넘나든다. 이런 조씨가 요즘 국내에서 송년 콘서트를 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13일 일시 귀국해 이튿날 수원 경기도 문화의 전당을 시작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17일), 김해 문화의 전당(22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24일), 대구 경북대 대강당(27일)에서 공연을 했다. 이어 제주 국제컨벤션센터(29일), 일산 킨텍스(31일) 등 모두 7개 도시를 순회한 뒤 한국을 떠난다. 무엇보다 올해의 마무리를 고국에서, 모처럼 지방 시민들과 가까이했다는 여운을 남긴 채…. 하지만 조씨에게 있어 내년 한 해는 더욱 각별한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데뷔한 지 꼭 20년이 되기 때문.1986년 이탈리아 트리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무대를 가졌다. 내년에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조씨와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장소는 서울 강남의 모 호텔 스카이라운지. 화면을 통해 무대의상만 쭉 접해서 그런지 평상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고 하자 “괜찮겠어요?(사진이)컬러로 나온다면 갈아입을까요.”라고 하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올 한 해를 뒤돌아 본다면 어떤 의미로 정리되느냐는 질문에 “러시아 공연과 라스베이거스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등 굵직굵직한 해외공연이 많았어요. 또 개인적으로 바로크앨범을 출반했고 예전보다 고국에서의 행사가 많았어요.”라고 했다. 예를 들어 광복 60주년 기념공연과 청계천 복원공사 기념공연, 또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개최 공연 등이 그렇다. 이어 “문화가 서울에 집중돼 있어 그동안 좋은 공연에 목말라하는 지방팬들과 자주 만나려 했지요. 무대시설이 비록 미약했지만 지방 시민들이 너무 좋아해 많은 긍지와 보람을 느꼈어요.”라고 의미부여를 했다.(자신의)예술활동으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게 해줘 마음이 뿌듯하단다. 그러면서 “내년이면 데뷔 20년이 되거든요.”라고 말을 꺼낸 뒤,“우선 미국과 유럽투어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내공연의 경우 내년 9월 한달 동안만 10개도시를 순회하는 예술가곡 투어가 예정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공연에 앞서 수도권내의 중등학교 음악선생을 무료로 초청, 특별한 음악 콘서트를 연다고 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가르치는 음악선생을 대상으로 음악적 영감을 생생하게 심어주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냈다. 앞으로는 고국에 대한 애정을 더욱 쏟겠다는 다짐도 곁들여진다. 조씨는 해외 공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올 한 해만 하더라도 비행기 타는 시간이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진다.“비행기를 가장 무서워해요. 하지만 제겐 가장 큰 교통수단이거든요. 올해 집에 있던 시간이 아마 60일도 안돼요.”라고 했다. 하지만 고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 상공에 이르면 옛날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무척 가슴이 설레고 기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느냐고 하자 “작고 큰 것(공연) 안 따져요. 중요성은 다 똑같지요. 공연 하나하나가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오르거든요.”라는 즉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힘든 공연이 있다면 고국무대라고 했다. 오랜만에 고국팬들과 만나면 무척 떨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는 것. 앞으로는 고국팬들에게 성악 레퍼토리가 아닌 뮤지컬이나 영화음악, 러시아 음악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라는 계획도 밝힌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어 실력을 슬쩍 물었다. 그러자 최근에 러시아어를 배운 것까지 합하면 영어를 비롯해 적어도 유럽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울러 언어란 하나하나 성취하고 그러다 보니 만족도 또한 크고 재미 역시 쏠쏠하단다. 화제를 바꿔 어릴 적 깡패였느냐고 하자 “맞아요. 불의를 보면 못 참았어요. 또 워낙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예요. 와일드하진 않지만 불같은 성격이지요. 정의의 사도처럼 말입니다.”라며 웃는다. 원래부터 정신력이나 체력이 타고났다는 것. 오늘날 세계적 성악가가 된 것도 이같은 원초적 힘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렇담, 좋아하는 운동이 무얼까. 고국에 머무를 땐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이탈리아 자택에 있을 땐 킥복싱으로 몸을 단련한다고 했다. 아니, 킥복싱? 의외였다.“킥복싱을 수련한 지 3년정도 됐어요. 스트레스 풀기에도 그만이고요.”라며 또 한번 웃는다. 이탈리아 현지 사범이 감탄할 정도라고 살짝 귀띔까지 한다. 웬만한 남자들도 한방 맞으면 KO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사범이 샌드백을 세게 치려면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만큼 인생을 살면서 미워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뭐든지 온몸이 튼튼하고 근육이 있어야 노래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팬들을 위해 이탈리아에 있는 자택의 분위기를 전해달라고 주문했다. 로마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근교에 있으며 밤이면 로마시내의 야경이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노래를 마음껏 불러도 주위에서 시비를 걸지 않을 만큼 안전거리까지 확보했단다. 동거하는 식구는 24년 동안 쭉 뒷바라지 해준 아주머니와 신디 밀디 토미 등 애완견 3마리가 졸졸 따른다. 이 가운데 신디(요크셔테리아)는 조씨의 해외공연때 동반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부쩍 멍멍 하며 노래를 곧잘 부른다. 조씨는 또 집에 있을 때 시장을 직접 보기도 하며 와인 컬렉션을 취미로 하고 있다. 해외공연에서 돌아올 때 와인은 꼭 1∼2병씩을 사온다. 식사때마다 이태리산 와인 한잔씩을 반주로 곁들인다. 자택 주위에는 배추를 심을 정도로 텃밭이 있는 전원적인 분위기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불쑥, 팬들이 결혼여부에 궁금해 한다고 하자 “결혼은 안했고요. 한 남자의 여자로 지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라고 반문하면서 세계 곳곳에 많은 친구들이 있고 또 만인의 애인이 아니냐고 했다. 아울러 “어머니께서는 항상 대한민국의 딸임을 명심하라고 하셨지요.”라고 했다.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연말연시를 맞아 팬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제가 어느새 40대 중반 나이가 됐네요.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분들에 대한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좋은 선물이지요. 또 요즘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서로 존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극복되지 않을까요.”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3년 서울 출생 ▲81년 선화 예술고 졸업 ▲83년 서울대 음대 2년 수료 ▲86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졸업 ▲86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 ▲87년 프랑스의 파리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89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리골레토’ 공연 ▲91년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 극장에서 ‘호프만이야기’의 올림피아역으로 공연 ▲93년 ‘그림자 없는 여인’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 한국 가곡집 ‘새야 새야’ 출반 ▲95년 런던 필하모니와 한국에서 협연. 광복 50돌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 공연 ▲96년 일본 후쿠오카·도쿄·고베에서 독창회, 수원성 건립 200주년 기념 음악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 ▲이후 매년 수십차례 국내외 공연 및 연주회 ■ 저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상훈 2002년 올해의 여성상(월드컵 해외홍보) 등 20여회 수상
  • 8개국어로 꿈꾸는 소녀

    8개국어로 꿈꾸는 소녀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귀고 취미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를 대하면 누구나 쉽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 러시아어 등 8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뉴질랜드 이민 여고생 임지현(15)양이 자기 학습법을 책으로 옮겼다. 임양은 15일 롯데호텔에서 ‘외국어 8전무패’(도서출판 이미지박스) 출간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 나라 사람처럼 느끼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배우는 것이 외국어를 잘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임양의 외국어 학습 동기는 남다르다. 옆집 일본인 아주머니 집에 놀러가 맛있는 일본 과자를 먹으며 노는 게 즐거워 일본어를 배웠고, 좋아하는 스페인계 남자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 중국어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중국인 할머니와 친해지기 위해, 프랑스어는 패션잡지를 보기 위해, 러시아어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원서로 읽고 싶어 시작했다. 외국어는 공부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교제하고 취미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앞으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 역시 4세 때 이민을 가 영어 때문에 고통받은 적도 있었다.“내성적 성격에 영어까지 서툴러 한때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어요. 하지만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생활 자체가 바뀌는 즐거운 경험을 했죠.” 임양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무조건 많이 말하는 것’을 첫번째 비결로 꼽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문법에 자신이 없다고 흔들리기 시작하면 결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것. 그는 “공부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 100점을 맞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는 “하루 24시간을 50시간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시간관리를 해가며 공부하다 보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꿈을 꾸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양의 어머니 진양경(48)씨는“지현이는 천재도 아니고 따로 영재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평범한 소녀”라고 말했다. 임양은 최근 오클랜드 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한 2005 프랑스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중국어 말하기대회, 스페인어 말하기대회 등에서 우승했다.“국제 인권전문가가 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과 정치를 전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서울 한복판의 ‘모스크바’

    서울 한복판의 ‘모스크바’

    ‘동토(凍土)의 나라’ 러시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먼 존재가 아니다. ‘시베리아·보드카·붉은 별’ 등으로 인식되던 곳이 이제는 테니스의 요정 샤라포바로 대변되고 있다. 또 심수봉의 인기곡인 ‘백만송이 장미’가 러시아의 노래를 개사한 것일 정도로 러시아는 우리 삶에 근접해 있다. 서울 마포구에는 이같은 러시아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올해 4월 서교동에 문을 연 ‘러시아 문화의 집’이 바로 그곳이다. 마포구 서교동 홍대앞 5층 건물에 문을 연 ‘러시아 문화의 집’(원장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은 한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나라들간 문화·예술 교류의 중심적인 장(場)으로 설립됐다. 이곳은 민간인이 세운 첫 외국 문화센터이기도 하다. 김창진 원장은 “러시아 사람들은 배를 곯아도 발레 티켓은 사려고 줄을 설 정도로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면서 “그 모습을 한국에도 알리고 싶었다.”고 ‘러시아 문화의 집’을 만든 배경을 설명하고있다. ‘러시아 문화의 집’에는 강의실·자료실·출판부 등을 갖춘 문화센터와 ‘루슬란’이라 이름 붙여진 2층 레스토랑,‘아르바뜨’란 이름의 3층 카페가 있다.4층은 강연과 러시아 영화가 상영되는 세미나실로 이용되고 있다. ‘루슬란’은 푸슈킨의 소설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주인공 이름이며,‘아르바뜨’는 모스크바 젊은이들이 모이는 젊음의 거리다.‘루슬란’과 ‘아르바뜨’는 국내 유일의 러시아 정통 음식점이자 휴식공간이다. 러시아식 및 중앙아시아식 요리는 물론 현지에서 직접 가져온 보드카·맥주·포도주 등을 흥겨우면서도 우수에 찬 러시아 음악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인 요리사가 직접 요리를 담당한다. ‘러시아 문화의 집’ 정길연 홍보전문위원은 “원래 5층은 자료실 등으로 이용됐지만,3층 카페 ‘아르바뜨’를 북카페 형식으로 바꾸기 위해 러시아 관련 서적과 자료 등을 카페로 옮기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문화의 집’에서는 또 각종 문화강좌·공연·전시·출판·세미나·어학연수·테마여행 등을 개최하고 있다.‘러시아 문화의 집’에서는 내년 초 7박8일 코스의 러시아 문화예술 기행을 5차례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이 기행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준비돼 있다. 특히 매회 시인·소설가·평론가가 동행해 문화예술여행의 길라잡이로 삼을 계획이다. 문의(02)3142-8808,8803. 내년 1월6∼13일 떠나는 제1차 기행에는 시인 안도현씨가 동행할 예정이며,2∼5차까지는 각각 소설가 박범신 이순원·미술평론가 이주헌·음악평론가 장일범씨와 함께 떠난다. 이들은 매회 톨스토이 생가·체호프 문학박물관·도스토예프스키 기념관·푸슈킨 문학카페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러시아 문화의 집’은 이번 첫 ‘러시아 문화예술기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러시아와의 다양하고 본격적인 문화 교류에 나설 방침이다. 각종 문화강좌 외에도 초·중·고급으로 나눠 진행되는 러시아어 강좌, 국내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위한 무료 한국어 강좌 등도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다 상세한 정보는 러시아 문화의 집 인터넷 홈페이지(www.rccs.c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실전 논술] 사회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

    ●다음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 발취한 글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인국의 행적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 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유의사항 1)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로 쓸 것. 2)이인국이 친일 행동을 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지 말 것. 3)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것. 4)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의 윤리 덕목을 제시할 것. (가)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가출옥되었다는 중환자가 업혀서 왔다. 휑뎅그런 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 그는 간호원의 부축으로 겨우 진찰을 받았다. 청진기의 상아 꼭지를 환자의 가슴에서 등으로 옮겨 두 줄기의 고무줄에서 감득되는 숨소리를 감별하면서도, 이인국 박사의 머릿속은 최후 판정의 분기점을 방황하고 있었다. 입원시킬 것인가, 거절한 것인가……. 환자의 몰골이나 업고 온 사람의 옷매무새로 보아 경제 정도는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일본인 간부급들이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이 병원에 이런 사상범을 입원시킨다는 것은 관선 시의원이라는 체면에서도 떳떳지 못할뿐더러,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는 이런 경우의 가부 결정에 일도양단하는 자기 식으로 찰나적인 단안을 내렸다. 그는 응급 치료만 해 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가장 떳떳하고도 정당한 구실로 애걸하는 환자를 돌려보냈다. 환자의 집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건너편 골목 안에 있다는 것은 후에 간호원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그쯤은 예사로운 일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시민 대회 끝에 있는 해방 경축 시가 행진을 자기도 흥분에 차 구경하느라고 혜숙이와 함께 대문 앞에 나갔다가, 자위대 완장을 두르고 대열에 끼인 젊은이와 눈에 마주쳤다. 이쪽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은 살기를 느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어리벙벙하던 이인국 박사는, 그것이 언젠가 입원을 거절당한 사상범 환자 춘석이라는 것을 혜숙이에게서 듣고야 슬금슬금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이거 들어왔다. 그 후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거리로 나가는 것을 피하였지마는 공교롭게도 어제 저녁에 그 벽보 앞에서 마주쳤었다. (나)나는 코 허리에 내려온 안경을 올리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각은 활자 속을 헤치고 머릿속에는 아들의 환상이 뒤엉켜 들어차 왔다.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시킨 것은 거지의 억지에서였던 것만 같았다. 출신 계급, 성분, 어디 하나 부합될 조건이 있었단 말인가. 고급 중학을 졸업하고 이과 대학에 입학한 바로 그 해이다. 이인국 박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의 처세 방법에 대하여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다. “얘, 너 그 노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 “왜요?” 이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를 느끼면서 반문했다. “야 원식아, 별 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 말 꾸준히 해라.”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새삼스럽게 자극을 받은 것 같진 않았다. “내 나이로도 인제 이만큼 뜨내기 화화쯤은 할 수 있는데, 새파란 너의 낫세로야 그걸 못하겠니?” “염려 마세요, 아버지…….” 아들이 대답이 그에게는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이인국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 코 큰 놈이라구 별것이겠니, 말 잘 해서 징정이 통하기만 하면 그것들두 다 그렇지…….” 이인국 박사는 끝내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아들의 소련 유학을 결정짓고야 말았다.(중략) “가만 있어요, 호랑이두 굴에 가야 잡는 법이오. 무슨 세상이 되든 할 대로 해 봅시다.” “그래도 저 어린 것을 어떻게 노서아까지 보낸단 말이오.” “아니 중학교 아이들도 가지 못해 골들을 싸매는데, 대학생이 못 가 견딜라구.” “그래도 어디 앞일을 알겠소…….” “괜한 소리, 쟤가 소련 바람을 쏘이구 와야 내게 허튼소리 하는 놈들도 찍소리를 못 할 거요. 어디 보란 듯이 다시 한 번 살아 봅시다.” 아들의 출발을 앞두고, 걱정하는 마누라를 우격다짐으로 무마시키고 그는 아들의 유학을 관철하였다. ‘흥, 혁명 유가족도 가기 힘든 구멍을 친일파 이인국의 아들이 뚫었으니 어디 두고 보자…….’ 그는 만장의 기염을 토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희망에 찬 미소를 풍겼다. 그 다음 해에 사변이 터졌다. 잘 있노라는 서신이 계속하여 왔지만 동란 후 후퇴할 때까지 소식은 두절된 채로였다. 마누라의 죽음은 외아들을 사지로 보낸 것 같은 수심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신문 다찌끼리 속에 채워진 글자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훑어 내려 갔다. 그러나 아들의 이름에 연관되는 사연은 한마디도 없었다.‘이 자식은 무얼 꾸물꾸물하느라고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한담……. 사태를 판별하고 임기 응변의 선수를 쓸 줄 알아야지, 맹추같이…….’ ● 지문의 분석 이 소설은 정신적 지조 없이 시류(時流)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일만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우리나라 지도층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지문으로 제시한 부분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과 소련군 장교를 배경 삼아 아들의 모스크바 유학을 결정짓는 장면이다. 왜정 때는 일본말을, 이제는 노어를 해야 버젓이 살 수 있으며,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말에서 이인국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통치, 해방,6·25전쟁, 산업화 등등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 때 의과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회중시계를 상품으로 받는다. 그는 의술이 뛰어났지만 권력층만 상대하면서 그의 자녀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시의원에다가,‘국어(國語) 상용(常用)의 가’라는 칭호를 받는 등 철저한 친일파로 살아간다.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해 오고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앞날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감방에 돌던 전염병을 퇴치하고 러시아어를 힘써 배운다. 그러던 중 소련군 장군 스텐코프의 혹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 주고 그의 신임을 얻어 석방된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 장군의 후원에 힘입어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다.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월남하여 병원을 개업하는데, 병원은 종합 병원을 방불케 할 만큼 성공한다. 그는 이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분을 쌓아 그의 추천으로 미국무부 초청을 받아 미국 길에 오른다. 결국 이 작품은 시류에 타협하면서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인간형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제의도 이 문제는 현대와 같은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대하여 어떤 책무를 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이것은 장차 사회 속의 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소양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감이 무너지고 개별화, 분자화되어 가는 시대적 병폐를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 생각하기 먼저 이 지문에 나타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인국이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의시기를 지내 오면서 사회 속에서 어떤 처세를 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거절하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잇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특징과 개인 윤리의 개념을 생각해 본다. 현대 사회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확정해야 거기에 적합한 개인 윤리를 탐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특징과 관련지어 개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덕목이 무엇인지 확정한다. 희생, 봉사, 친절 등 실로 다양한 개인의 윤리적 덕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왜 그런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를 현대 사회의 특징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주어진 내용과 연관지어 주제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문제를 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이라는 정도로 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제문의 방향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개방적 제도와 건전한 판단력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방향에서 잡을 수 있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논제에서 주어진 것과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행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의 과제를 제시하면 훨씬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본론 부분에서는 먼저 주인공 이인국의 성격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반사회적 행위로 지탄받는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현대 사회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원화와 개방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언급하면 된다. 그런 다음, 현대인에게 필요한 개인 윤리가 무엇인지 중점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생활 태도와 건전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스스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 성찰을 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는 앞서서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의 노력이 필요함을 제시하면 된다. 이 논제와 관련하여 ‘이인국이 시대에 따라 변신하게 된 이유를 서술하고, 현대 사회에서 건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 조치가 어떤 것인지 논술하시오. 사회 환경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와 같은 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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