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소설집 산을 내려가는 법
소설가 김남일(51)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 흩어지는 사북(강원도 정선군) 하늘이 투명했다. 탄재 날아 온통 새카맣던 탄광도시 사북에 더 이상 잿빛은 없었다. 사북은 카지노 강원랜드로 환했다. 러브호텔과 전당포, 안마시술소로 휘황했다.‘사북장 여관’ 낡은 간판은 러브호텔 네온사인 숲에 묻혔다. 사북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을 때, 김남일은 절망의 끝에 서 있었다.19일 사북에서 만난 김남일은 잠시 어지러운 듯했다.“사북 같지가 않네요.”
2004년 10월 동원탄좌가 폐광됐다. 한국 최대 민영탄광이, 사북항쟁의 현장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3년이 흘렀다. 갑방(오전 8시∼오후 4시) 근무시간에도, 을방(오후 4시∼밤 12시)·병방(밤 12시∼오전 8시) 근무시간에도, 광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입갱과 퇴갱을 알리던 타종 소리가 그쳤고, 인차 광차는 레일마저 걷혔다. 선탄장은 철거됐고, 화절령 운탄(運炭)길은 산악 레포츠 트레킹코스가 됐다.‘육오공’(해발 650고지) ‘수갱탑’(막장으로 내려가는 수직갱도)만 홀로 남아 외로웠고,‘칠이공’(720고지) 강원랜드는 밤마다 ‘형광등 괴물’처럼 발광(發光)했다.
사북 아이들이 물 색깔을 까맣게 칠했던 지장천이 맑아졌고, 광부의 ‘밥’이고 ‘삶의 끈’이던 ‘오염물질’ 탄재가 없어졌다. 쾌적해진 사북의 ‘안경다리’(사북항쟁 당시 경찰과 광부들의 대치선이던 쌍굴다리)를 오르내리는 건 ‘한 판 벌이러 온’ 외지인들의 고급 승용차뿐이다. 압축 자본주의의 영광을 떠받친 이면의 속살, 사북의 탄재 걷힌 맑은 하늘 햇빛 줄기가 칼날같이 아프다.
●르포형 ‘사북장 시리즈’
김남일이 사북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사북항쟁을 거친 1980년대 중반이었다. 청탁 받은 르포 원고를 쓰기 위해서였다. 최근 10년 만에 낸 소설집(‘산을 내려가는 법’, 실천문학사)에 실린 단편 ‘사북장 여관’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나이 들어 진폐가 드러난 갱부는 막장 안보다 나을 게 없는 판잣집 한쪽 골방에서 하루종일 밭은 기침을 토해냈고, 아직 병들지 않은 젊은 갱부는 밤마다 막소주에 삼겹살로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냈다.(…) 그때도 사북에는 오직 생의 남루만이 있었다. 타지에서 들어온 활동가들은 그 생의 남루를 벗겨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결과는 늘 허망했다.”
사북의 남루함을 인식할 때마다 자신의 남루함까지 확인해야 했던 소설가.2003년 다시 밟은 사북에서 그의 마음은 이미 폐허였다. 동원탄좌 폐광을 목전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사북처럼, 김남일도 헉헉대며 죽음 같은 글을 썼다. 그 자신 ‘사북장 시리즈’라 표현하는 ‘사북장 여관’,‘산을 내려가는 법’,‘노을을 위하여’ 세 편의 단편이다.
●사랑과 희망을 잃고 쓰다
그 무렵, 김남일은 사랑과 희망을 한꺼번에 잃었다. 마흔 넘어 찾아온 목숨 같은 사랑을 잃었고,80년대 이후 자신을 지탱해온 희망을 잃었다. 사랑의 고통이 너무 커 지리산에 틀어박혀 ‘산짐승’처럼 살았고,‘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자 과거 노동·민중문학의 기수는 시대의 무기였던 문학을 내려놓고 절망했다.“늘 자살을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 그때야말로 내 삶의 바닥을 본 것 같다.”고 김남일은 회고했다.‘사북장 시리즈’는 그의 이전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절망, 환멸, 자기비판이 총체화된 작품이다.“나 자신을 ‘단기적 낙관주의자’이자 ‘장기적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해왔는데, 희망을 갖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죽을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 속엔 작가 자신의 개인사가 꾸며지지 않은 채 섞여 들었다. 그는 “나는 작가와 작품이 너무 밀접한 사람”이라 했고,“그건 소설가로서 치명타”라고 자평했다.“네 소설은 너무 착하다.”는 선배 문인의 이야기가 치욕스러웠지만, 그는 가장 아팠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며 울었고 스스로를 치유했다. 그래서다.‘사북장 여관’은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단편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난 한 번도 즐겁게 글을 쓴 적이 없었어요. 시대와 대결하는 의무감으로 문학을 했으니까요. 반면 ‘사북장 여관’은 철저하게 나 자신에게 몰입한 글입니다. 내 문학의 일대 전환점이 됐습니다. 나 자신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절망 속에서 읽는 역설적 희망
처절하게 절망하며 쓴 ‘사북장 시리즈’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읽게 되는 것도 그가 가장 밑바닥의 고통, 더 떨어질 곳 없어 위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신축단지 곁 도로를 따라가던 내 눈길은 마침내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까만 터널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게 길이었다. 유일한.”(‘사북장 여관’ 마지막 문장)
희망이나 희망인지 알 수 없을 만큼의 희망, 희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없기에 희망이라고 믿고 싶은, 그런 희망이다.
“앞이 안 보이고 깜깜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그게 최소한의 희망 아닐까요?”
표제작 ‘산을 내려가는 법’이 말하는 바도 동일하다. 희망을 찾으려 안간힘 쓰며 오른 산꼭대기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절망 같은 일상 속으로 내려가는 법을 소설은 상징한다.“힘들어도 잘 내려가자, 현실이 환멸스러워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김남일은 설명했다. 연대가 사라진 시대, 팔레스타인 작가들과의 작은 연대를 그린 소설 ‘노을을 위하여’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북에서도 노을은 아름답다.‘산업전사’란 칭송이 사탕발림임을 알았을 때 가슴에 남은 유일한 훈장이 숨구멍 조이는 진폐증뿐이었던 ‘과거 광부들’.‘탄광도시 사북’의 주인이었으나 ‘카지노도시 사북’에선 강원랜드 진입로 청소를 하며 밥을 벌어야 하는 광부들.2억 년은 지나야 만들어지는 석탄을 캐다 불과 수 년의 카지노 불빛에 밀려난 광부들…. 오늘도 그들은 타박타박 노을 속을 걸어간다. 노을이 질 무렵 사북에서, 김남일은 말했다.“기억이 때론 징그러워요. 나이가 든 지금도 젊었을 때 본 사북을 잊지 못해요. 변해가는 나 자신과 변해가는 사북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만은 없어요.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요.”
정선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