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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큼 다가온 금강산­北 안내원 김연실양

    ◎“남조선 사람과 다를 게 있겠어요”/“동포로 느낌 똑같다”/8년동안 길라잡이 “저를 끔찍이 아껴주는 사람과 결혼할 거라요” 금강산 구룡폭포에 이르는 길목인 앙지대(仰止臺)에서 만난 북한의 여성관리원 김연실양(24).지난 47년과 73년 이곳을 찾은 金日成의 기념비를 돌본다.8년동안 길라잡이를 하며 금강산을 무려 1,660회나 오르내린 베테랑이다. 자주색 코트와 목도리를 두른 그녀는 갈색 눈동자가 퍽이나 고혹적이다.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수줍은 듯하면서도 관광객의 물음에 답하는 자태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녀는 한국 관광객을 처음 만난 소감을 묻자 “북조선 사람들과 다를 게 뭐 있겠느냐”며 “동포로서의 느낌은 똑같다”고 말했다. 김양은 금강산은 4계절이 주는 감흥이 색달라 가능하면 두루 둘러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개골산의 설경도 절경이지만 뭐니뭐니해도 금강산은 봄산이 최고”라고 자랑한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말에는 “사진을 주지 않을 바에야 안 찍는다”고 발뺌하다가 어느정도 정담이 오가자 “오늘 야단났네”라며 못이기는 척 응해준다.결혼했느냐고 묻자 “처녀인데 결혼이라니요”라며 펄쩍 뛰며 수줍음을 드러내던 그녀는 “내년 봄에 다시 오시라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 “자기 노래 자신감 가져라”/나훈아 음치탈출 클리닉 비디오 제작

    ◎가사·박자보다 분위기 몰입 중요/선글라스 끼고 부르면 긴장 완화 지난 10일 하오 8시 서울 사당동 현대방송 A스튜디오는 때아닌 ‘아줌마 부대’의 물결로 북적거렸다.소동이 벌어진 것은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의 비디오 제작 때문.2,500여곡 취입과 35년 무대경험을 살려 ‘음치 탈출’을 주제로 비디오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전국민의 10%가 스스로 음치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를 보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음치란 없습니다.음악이란 건 늘 우리 생활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첫 멘트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인다. 나훈아는 음치클리닉을 3단계로 풀어나갔다.먼저 ‘난 노래 싫어,죽어도 노래를 못해!’라는 유형.이런 사람에겐 창법이나 멜로디 설명보다는 부담없이 제작될 테이프를 한번 볼 것을 권한다.노래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여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노래하는 건 좋은데 마이크만 잡으면 노래가 안될까 고민하는’ 타입.나훈아가 무대를 향해 “어디 계십니까”라고 외치자 사전에 연락이 닿았다는 아주머니가무대로 나가 실습을 받았다.처음엔 커튼을 완전 가리고 노래해 보고 차츰 커튼을 젖혀가면서 자신감을 키워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훈아 클리닉에 참가한 다른 등장인물인 헤어 디자이너 박준.‘노래엔 자신 있는데 가수처럼 멋있게 부르고 싶은’ 셋째번 부류에 속한다.이 경우 몸을 약간 비스듬히 하고 마이크를 잡지 않은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선글라스 등의 소품을 준비하라고 권했다. ‘영영’‘갈무리’‘사랑’등 히트곡을 교재 삼아 박자 음정 등 딱딱해지기 쉬운 주제를 특유의 익살과 순발력으로 버무리면서 쉽게 설명했다.즉흥 질문 코너에서 “가사 외우기가 힘들다”“박자 맞추기가 어렵다”라는 말들이 나오자 “박자 음정 다 때려치아 뿌리고 마음대로 들어 가이소”라 소리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66세 할머니가 즉석에서 뛰어올라 춤을 추며 노래 부를 정도로 흥겨운 클리닉이었다.이밖에 나훈아는 신곡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를 담을 뮤직비디오의 일부장면도 공개했다. 제작사인 디지털미디어가 1년동안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5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비디오는 클리닉장면과 신곡을 섞어 120분 분량으로 편집,이달 말 출시한다.김현숙 전무는 “이번 작업으로 비디오 사업은 전환기를 맞을 것”이라며 “베스트가 아니면 안될 기획이어서 나훈아가 소속한 아라기획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508­0020
  • 고독한 사령관 경찰서장:7·끝(공직 탐험)

    ◎치안수요 늘어도 직원수는 제자리/서울경찰서 1곳 평균 665명/직원 얼굴 모르는 서장 많아/署 통상운영비 턱없이 부족/직원 애경사 챙기기도 벅차 “직원들 얼굴요.잘 몰라요” 700명의 직원에다 전·의경 200명을 관리하는 서울의 한 경찰서장이 털어놓은 말이다.도시서장은 대개 비슷한 형편이다. 경찰서장이 지역치안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주민수와 사건·직원수는 어느 정도일까.모범 답안은 없다.관할 면적과 범죄 발생률,주민의식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유흥업소,호텔 등이 밀집한 지역은 같은 면적이더라도 베드타운과는 치안수요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서울시내 일선 서장들은 관할 면적이나 주민 규모가 현재의 절반 정도로 줄어야 제대로 된 치안행정을 펼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경찰서 직원을 크게 늘리거나 경찰서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전국 225개 경찰서의 평균 직원수는 357명.서울은 665명으로 2배나 된다.서울 강남서를 예로 들면 하루 접수되는 형사사건은 30∼50건에 이른다.고소 고발 진정사건도 80∼90건씩이나 된다. 비대한 조직을 관리하다보니 직원 통솔도 문제다.경무관 모씨의 일선 서장시절 회고담.“112로 형사사건이 접수돼도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지 않는 거예요.알아보니 형사과장은 집에서 자고 있고 형사계장은 술집에 있더라구요” 이런 형편이다 보니 경찰서 운영비 조달도 큰 문제다.정부예산으론 턱없이 모자라는 비용을 관내 업체나 유지 등을 통해 조달하는 게 관례다.운영비 조달은 부하들에겐 서장의 능력으로 비치기도 한다. ‘좋은 시절’ 서울의 중부,서초,강남서 등 이른바 노른자위 경찰서는 별어려움이 없었다.관내 업체나 유지 등으로부터 수시로 십시일반으로 협조를 구하다 보니 한해에 1억원 정도는 도움을 받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외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물품뿐이다.협력단체나 관내 대기업 등지에서 지원받는다.양말이나 라면 등 주로 전·의경을 위로하기 위한 물품 등이다.명절이나 데모진압 등 특별한 경우에 들어온다. “직원 상(喪)이라도 당하면 조화라도 보내야죠.여기에다 한달에 최소한 4∼5건씩 청첩장이 날아 오는데 5만원씩은 내야죠.외박간다고 전·의경이 신고하러 오면 김밥 값이라도 2만∼3만원 줘야죠…,한마디로 죽을 지경입니다”.서울시내 모서장의 말이다. 한달 판공비가 189만원이라는 또 다른 서장은 “업무중 부상을 당해 입원한 직원 격려금에다 결혼 축의금 등으로 판공비가 18일만에 다 떨어졌다”고 털어놓는다. 지방 서장시절 판공비가 80만원이었다는 모 서장은 “지역유지들과 개인적으로 가까이 어울려야할 기회가 많지만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망설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24년만에 모교 강단에 선 임헌영씨

    ◎“비제도권문학 적극 수용/기성문학 보수화 막아야” “비제도권문학을 제도화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절실한 문학적 과제입니다.재야문학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용,‘기성문학’ 자체가 보수화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24년만에 복권된 문학평론가 임헌영씨(57)는 요즘 모교인 중앙대의 겸임교수로 새로운 문학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임씨는 74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소설가 이호철씨 등과 함께 구속됐다. 그 뒤 집행유예로 잠시 풀려났던 그는 79년 남민전 사건에 또다시 연루,5년형을 받고 83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이후 줄곧 미복권 상태로 있다가 이번에 복권돼 중앙대 대학원과 학부에서 ‘문학연구 방법론 실습’‘현대 문제작 탐구’ 등의 강좌를 각각 맡게 된 것이다. 임씨는 67년 ‘현대문학’에 ‘니힐과 반항’등이 추천돼 평론가로 등단한 이래 평론집 ‘창조와 변혁’‘분단시대의 문학’등 20여권의 저서를 냈다. 그가 걸어온 문학의 길은 참여문학­민족문학­사실주의문학­민중문학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통일문학입니다.남북문화의 이질화는 위험수위를 넘고 있어요.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 차원의 대책이 시급한 때입니다” 대학의 문학교수로서 임씨는 새삼 아카데미즘에 빠져 무력증을 앓고 있는 우리 비평계를 안타까워한다.“창작의 홍수 속에 비평의 둑이 무너졌다고 할까요.적절한 비평적 통제가 없다면 우리문학은 무정부상태로 나아갈지도 몰라요.2,000년대를 향한 새로운 미학적 제방을 쌓는 일이 필요합니다” 비평전문계간지 ‘한국문학평론’ 주간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근·현대 소설 사회사’‘문학운동사’(가제) 등의 책을 준비중이다.
  • “우리집은 어떻게 됐는지”/파주시 재해본부의 하루

    ◎수재복구 독려 이틀 철야/장비·인력 태부족… 공복 정신으로 버텨/주민피해 최소화에 전직원 전력 투구 “우리집이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가 보지를 못했으니…”. 7일 낮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파주시청 별관 2층의 재해대책본부.수해복구작업에 쓰일 마대를 추가로 구입하기 위해 기안서를 작성하던 한 공무원은 “이번 비에 피해를 입은 직원은 없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다른 직원은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묻는 기자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여기요”하며 자신이 앉아있는 사무용 의자를 툭툭쳤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한가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주시는 이번 폭우로 20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됐다. 또 4,641가구 1만 3,041명의 이재민을 냈다. 주요 도로와 철도가 모두 유실되고 전체 농경지의 55%인 5,484㏊가 침수되는 유례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틀째 꼬박 밤을 새운 파주시청 공무원들은 그러나 피곤함 속에서도 망연자실하기 보다는 분주히 피해복구를 독려하는 등 활기에 차 있었다. 수해복구의 주무계인 방재계 尹利榮씨(27)는 5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비상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96년 문산읍이 완전히 잠기는 수재를 겪었던 고참 계장들이 창문밖 빗줄기를 보더니 “심상치 않다”면서 전직원 비상소집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대책본부에는 현재 군(軍)과 소방서 전기안전공사 한국전력 한국통신 등 수해복구와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도 나와 있지만 가장 바쁜 사람들은 역시 파주시청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지원을 요청하는 주민들의 전화를 받아 해당부서에 연결해주고,다시 조치결과를 통보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대민지원반의 郭箕鎔 재난관리계장은 “무엇이 가장 어려우냐”는 질문에 “인력이나 장비가 충분치 않은만큼 합리적으로 운용하려고 하지만 피해를 당한 주민들은 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우선은 내려앉은 다리나 흙으로 가로 막힌 도로에 인력을 집중 투입할 수 밖에 없는데도 주민들은 “당장 안방에 물을 퍼내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주어야지 다리를 먼저 고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다. 또 두사람이 사흘 동안 작업하면 원상회복이 되겠다고 판단하여 복구반원을 보내면,“열사람을 보내면 반나절이면 끝날 텐데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라며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 민주열사 열전:1­2/張俊河 선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체제 맞서 ‘불굴의 투쟁’/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 항일운동/해방후 ‘사상계’ 창간 반독재투쟁 선도/朴正熙정권 끝내 부정… 의문의 추락사 “오늘의 헌법(유신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이에 우리 국민은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1973년 12월23일 상오 10시 서울 YMCA회관 회의실.통일당 張俊河 최고위원이 준비된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는 순간 수십명의 보도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咸錫憲·白樂濬·金壽煥·白基玩·桂勳梯·兪鎭午씨 등 각계 지도급 인사 3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이 일로 張俊河 선생은 白基玩씨와 더불어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다. 일제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張俊河 선생.그는 정부수립 이후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골짜기에서 불귀의 객이 될때까지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 있었다.5·16쿠데타 때까지는 월간잡지 ‘사상계’를 무기로,그 이후에는 직접 몸을 던져 독재와 싸웠다.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78)은 張俊河 선생을 ‘애국자·혁명가·인격자이며 권모술수와 배금주의를 배척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죽음을 서러워했다. ‘사상계’를 빼놓고는 그의 반독재투쟁사를 말하기 어렵다.그의 손아래 동서로 사상계에서 편집부장을 지낸 劉庚煥씨(61·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는 “張俊河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던 사상계에 신앙에 가까운 애착을 보였다”고 했다.사상계는 자유당 독재가 강화되자 오히려 반독재 정론지로써의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59년 2월호에는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란 제목으로 언론사상 초유의 ‘백지 권두언’을 냈다.58년 12월 자유당 정권이 야당의원들을 끌어내고 국가보안법을 개악시켜 통과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쿠데타 이후에도 張俊河 선생은 61년 7월호에 실린 咸錫憲 선생의 ‘5·16을 어떻게 볼까’란 제목의 글로 중앙정보부장 앞에 불려가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빨리 민정이양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또 각종 집회연설을 통해 朴正熙 대통령에게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밀수왕초’,‘매혈자’등으로 몰아부치고 국가원수모독죄 등으로 구속된다.이러한 투쟁은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과 반유신 개헌 백만인 청원운동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의 반독재투쟁에 대해 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장(65)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분단체제로 몰아가려는 반통일세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했다.劉庚煥씨는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면서 반공주의자였다.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에 총부리를 들이댔던 朴正熙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쿠데타는 후세에 좋지 않다는 신념으로 朴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회고했다. 張俊河 선생의 일생을 지배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가 광복군 대위 시절 쓴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영혼 저 노을처럼 번지리/겨레의 가슴마다 피빛으로/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조국의 역사 속에 피빛으로.◎張俊河와 朴正熙/광복군대위­일본군중위 출신부터 달라/남로당관련 등 박정희 약점 과감히 들춰 5·16 쿠데타 이후 張俊河 선생이 숨질 때까지 ‘張俊河는 朴正熙의 천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그만큼 앞뒤 안가리고 朴대통령에게 모멸감을 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1966년 삼성계열의 한국비료가 대량의 사카린을 밀수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벌밀수규탄대회에 초청된 그는 朴대통령에게 ‘밀수왕초’란 이름을 선물했고,3개월간 옥고를 겪는다.67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해 4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朴대통령에게 ‘매혈자’란 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한 말이었다.이로 인해 국가원수모독죄로 3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나 오히려 6월 총선에서 옥중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또 “朴正熙는 과거 남로당 조직책으로 조직원 동료를 팔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로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인물” 등 朴대통령의 최대 약점들을 과감하게 들추어냈다. 張俊河 선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평전 ‘재야의 빛 장준하’를 썼던 朴敬洙씨(68)는 “張俊河 선생의 朴正熙관은 애초부터 멸시와 경멸이었던 것 같다. 상대가 일본군 중위일때 그는 우국충정의 광복군 대위였다는 자부심을 항상 갖고 있었고,朴正熙의 갖은 폭력을 겪으면서도 분노에 앞서 그 인격 자체를 대단치 않게 본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헌을 위한 백만인 청원운동으로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던 張俊河 선생은 출감하자 75년 1월 朴대통령에게 ‘박정희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격적으로 공표하고 민주헌정의 회복을 촉구한다. ◎유족들의 생활/결벽중에 가까운 청빈으로 가족들 큰 고통/문상객도 자기먹을 쌀 가져올 정도로 궁핍 “월급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17살때 시집왔다는 張俊河 선생의 미망인 金熙淑 여사(71)의 말이다.사상계 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張俊河 선생이 생을 마감했을 때 남은 것은 20만원짜리 월세방과 쌀 한 됫박뿐이었다고 전해진다.한 문상객이 미망인의 손을 붙들고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거냐”며울자 망연자실해 있던 金여사는 “언제 저 양반이 생활비 가져온 적 있나요”라고 남의 얘기 하듯 했다고 한다. 白基玩씨는 “문상올 사람들에게 자기 먹을 쌀을 가져오라고 연락을 했었다”며 “당시 부의금에 약간의 돈을 보태 전셋집을 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이렇게 지나칠 만큼의 청빈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 밖에 없었다.사상계에 대한 탄압으로 항상 빚에 쪼들렸던 것도 이유가 됐다. 3남2녀중 장·차남인 호권·호성씨는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세 아들중 호준씨는 아버지의 모교인 한신대를 나와 목사로 있다.딸들은 이대를 졸업했으며 미국과 제주도에 각각 살고 있다. ◎비극의 수수께끼/추락사한 유해 겨드랑이 피멍자국/17m 벼랑에서 떨어진 안경은 말짱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張俊河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張俊河 선생이 숨져 누워있던약사봉 골짜기의 이 표석문의 ‘멋 훗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당시 검찰의 ‘추락사’발표는 실로 의혹투성이였다.그때 徐燉洋 의정부지청 당직검사는,張俊河 선생은 벼랑에서 떨어져 귀밑 부분이 함몰돼 뇌진탕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그는 등산 도중 일행과 떨어져 金龍煥씨(중학강사)와 같이 하산하는 도중 경사가 급해 소나무를 잡고 발을 딛는 순간 나무가 휘어지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는 것이다. 徐검사는 사고 다음날 새벽 1시경 현장에 도착,캄캄한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마쳤다.그리고 그날 낮 金龍煥씨를 검찰로 불러 조사기록을 작성했을 뿐이었다.이때문에 당시 ‘재야대통령’이라고 불리던 張선생의 사인을 서둘러 추락사로 발표한 의혹을 샀다. “집에 도착한 고인의 유해를 보니 겨드랑이 밑 양쪽 팔에 피멍이 있었어요. 엉덩이와 팔 두군데 주사기로 찔린 듯한 자국도 있었고요.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사체가 너무 깨끗했습니다.순간 양쪽 팔을 붙들린 채 끌려갔다고 직감했지요” 서울 상봉동 셋집에서 장례 대소사를 떠맡았던 劉庚煥씨의 증언이다.또 金龍煥씨가 말한 하산코스가 등산장비 없이는 도저히 내려오기 어려운 벼랑이어서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코스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張俊河 선생이 갖고 있던 커피보온병과 끼고 있던 안경이 17m 높이의 벼랑에서 돌밭으로 떨어져 말짱했다는 불가사의한 의혹 등도 나왔다. 劉庚煥씨는 또“소나무가 휘어진 자국이라며 金龍煥이 말한 부분에 동그랗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칼로 벗겨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張俊河 선생 연보 ▲1918 평북 의주에서 아버지 張錫仁 목사와 어머니 金京文 여사의 4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2년 평양 숭실중 입학 ▲1940년 일본신학교 입학 ▲1944년 1월 金熙淑 여사와 결혼,20일 후 학도병으로 입대 ▲1944년 7월 일본군 탈출,중국군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의 광복군에 편입 ▲1945년 11월 金九 선생과 함께 입국,비서로 활동 ▲1948년 한신대 졸업 ▲1953년 월간 ‘사상계’ 발행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문학부문 상 수상 ▲1971년 일본군 탈출과 광복군 시절을 담은 저서 ‘돌베개’ 출간 ▲1972년 7·4 공동성명 지지 ▲1973년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수많은 의혹을 남긴채 숨짐
  • “집안일인데 우리가 어떻게…”

    ◎가정폭력특례법 경찰의 미지근한 적용에 불만/신고해도 “그런거 잘 몰라요”/적극적 개입의사 전혀 없어/정부차원 대대적 홍보 절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지 한달이 다 돼 가지만 경찰의 미온적 대응,‘가정문제는 각 집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봉건적 관념때문에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가정폭력특례법 시행과 함께 개설된 한국여성의전화 연합 가정폭력사건처리 불만신고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접수된 수십여건의 사례가 거의 경찰이 사건을 형식적으로 다루고 적극적 개입의지가 없다는 점에 불만을 터뜨렸다. 대구 한 상담자는 남편이 구타하며 폭언을 퍼부었는데도 경찰이 가정문제로 시끄럽게 하느냐며 남편을 그냥 돌려보냈다고 신고해왔다. 신고센터 측이 파출소에 따지자 파출소 담당자는 “우리가 어떻게 남편을 격리하고 보호하느냐”며 오히려 항의했다. 서울 상담자의 경우 남편이 술먹고 칼을 들이댔고 자녀들도 망치로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한번만 더 그러면 정신병원에 넣는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고 호소했다. 사람을 무시한다고 깡패 출신 형을 동원해 폭행한 남편을 신고한 상담자는 “집안일이니 상관말라”는 형의 말에 돌아서 가버린 경찰을 신고해왔다. “가정폭력법이 뭐냐,잘 모른다. 상담자 없다. 다음에 전화하라”며 끊어버린 경찰도 있었다. 가정폭력특례법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폭력행위를 즉각 저지하고 수사에 나서며 피해자는 보호시설 또는 의료기관에 호송하도록 돼 있다. 가정폭력 현행범은 현장에서 연행할 수 있고 보호처분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찰이 미적거리는 것은 법조항을 꼼꼼하게 알고 있지 못한 ‘무지’거나 엄연한 ‘직무유기’라는 주장.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도를 넘는 가정폭력 희생자,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살해한 경우 등 피해사례가 속출하는데도 가정폭력특례법이 여성만을 위한 법이라거나 피해자의 본심은 신고를 원치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편견”이라고 못박았다. 지난 7일 신고센터가 명동에서 가정폭력특례법 홍보캠페인을 펼치며 행인 3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반드시 필요했던 법이 이제야 나왔다’ 75.8%,‘가정이나 이웃에 가정 폭력이 있을때 신고하겠다’ 95.5%,‘가정폭력 현행범 현장서 연행 찬성’ 72.3% 등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여성의전화 인권사회위원회 조유경 부장은 “전국민의 인식변화,경찰·검찰 등 법집행 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소값파동 왜 일어났나(무너지는 축산농가:上­3)

    ◎IMF이후 ‘농가 애물단지’로 전락/소비 대폭 줄고 사료값은 천정부지/UR협상따라 수입고기 매년 증가/정부 시가수매제도도 폭락 부채질/축산농가 의욕상실… 뿌리째 흔들려 추락하는 소값,날개는 없나. 산지 소값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폭락세다. 하락세를 막아볼 요량으로 지난해 1월부터 정부가 수매에 나섰지만 내림세는 여전하다. 급기야 큰 소에서 중(中)수소,가임암소,젖소 송아지까지 수매하고 자가소비용 도축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가격이 그렇지만 소값 하락 역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빚어진 것이다. 수요를 보자. IMF체제 이후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쇠고기 소비도 줄었다. 올 상반기 쇠고기 소비량은 14만9,000t. 지난해 상반기보다 12.1% 감소한 수치다. 93년부터 매년 평균 11.6%씩 소비가 늘어 온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론 24% 가량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 1인당 소비기준으로는 97년 7.9㎏에서 올 상반기 6.5㎏으로 떨어졌다. 이 추세라면 올 수요는 지난해보다 12.4% 정도 감소한 31만7,000t에 그칠 전망이다.공급측면에서 보면,IMF사태로 사료 값이 폭등하자 축산농가들의 소 출하가 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잉사육두수로 정부가 소 수매를 해오던 터에 IMF라는 복병을 맞아 사태가 악화된 것이다. 지난해 말 242만6,000원 하던 큰 수소(500㎏ 기준)가 올 6월에 200만원선으로,최근엔 167만원선으로 떨어졌다. 우유소비도 줄면서 젖소 값도 폭락,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4만∼27만원 하던 젖소 송아지(초유떼기) 값이 개 값수준(6만원)으로 떨어졌다. 97년 1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정부가 수매한 양만 18만4,000두(5,236억원)나 된다. 수입쿼터 증가도 공급과잉 요인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따라 올해 우리나라가 수입해야 하는 쇠고기양만 18만7,000t. 지난해보다 2만t 늘어난 양이다. 때문에 재고 물량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O­157 병원균 파동까지 겹쳐 재고도 4만6,000t이나 쌓여있다. 96년 재고량의 10배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할 때 올해 쇠고기 공급량은 수요보다 9만6,000t이 많은 41만3,000t이나 돼 공급 과잉이 불가피하다. 단기적인 수급문제 외에 생후 1년 안팎의 중(中)수소가 많은 점도 앞으로의 소값 회복을 막는 걸림돌이다. 지난달 국내 사육두수는 275만 마리. 역대 최고를 기록한 지난해 6월보다 17만여마리 정도 적다. 그러나 이 중 중수소가 58만8,000마리로 오히려 9만4,000여마리나 많다. 정부가 중수소 수매를 통해 공급량 감축에 나섰지만 출하량은 계속 늘 수 밖에 없다. 소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수매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6월 소 수매방식을 정가수매에서 시가수매로 바꾸었다. 재원이 바닥난 데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수매방식이 바뀌자 일반 수매상들이 정부 수매가보다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 들었고,사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농가들이 정부 수매가보다 싼 값에 소를 팔면서 시세가 폭락했다. 사료값 상승과 장래에 대한 축산농민들의 불안감 역시 공급 과잉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환율상승으로 사료 값이 크게 올라 타산이 맞지 않는데다 2001년 쇠고기 시장개방으로 타격받게 될 것을 우려,영세 축산농가들이 서둘러 우사(牛舍)를 비우고 있다.농촌경제연구원 許德 부연구위원은 “당장의 수요 공급 불균형보다 축산농가들의 불안심리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金仁植 전무도 “축산시장 개방과 채산성 악화로 축산농가들이 의욕을 상실,축산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농림부는 220만∼230만두에 마리당 가격은 큰 수소 기준 200만원을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래야 쇠고기 시장이 완전 개방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보다 마리수는 50만마리 더 줄여야 하고,가격은 30만원 정도 끌어올려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지난 18일 수매대상을 큰 수소에서 350㎏ 정도의 중간크기 수소로 바꿨다. 큰 수소의 방출을 억제하고,1년 뒤 성우(成牛)가 될 중수소의 수를 줄이자는 계산에서다. 이렇게 하면 대략 연말 쯤 235만두 선으로 사육두수가 줄어 소값이 안정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UR협정상 규정된 정부의 수매보조 한도액(총 생산액의 10%)이 9월 초면 모두 소진된다. 따라서 정부가 소값 안정을 위해 동원했던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인 수매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생각대로 소값이 잡히기 어렵다는 얘기다. ◎인터뷰/축협중앙회 原光植 부회장/“축산농가 자구노력 시급”/직거래로 값내리고 소비 늘리는데 중점 소값 때문에 축산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인건비는 커녕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방법은 없는가. 축산농가를 대표하는 축협중앙회 元光植 부회장을 만나봤다. ­10여년전과 같은 소값 파동의 조짐이 보이는데 원인이 뭡니까. ▲아직은 파동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일시적인 현상은 분명히 아니지만 ‘한우 생산위기’ 정도로는 얘기할 수 있습니다. 최근 10년동안 생산능력을 줄곧 키워온데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 원인입니다. ­소값 안정을 위한 묘책은 없습니까. ▲솔직이 말해 당장에는 없습니다.(정부가)자가도축을 허용하고 중수소를 수매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안이 없습니까.▲축산농가의 자구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가임 암소를 더욱 줄이고 임신 주기도 되도록 늘려야 합니다. 금융기관과 기업을 퇴출시키듯 정부수매가 아니더라도 중수소를 적극적으로 팔아야 합니다. ­축산농가의 불안정은 언제쯤 해소될 것으로 보십니까. ▲구조조정을 전제로 할 때 앞으로 1년은 걸릴 것으로 봐요. 이 기간에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친환경적 농가를 육성하고 사업을 규모화해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생산자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축협이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따가운 지적입니다. 솔직이 지금까지 정부에서 뭘 해주기를 바라는 속성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직거래사업을 더욱 확대해 시장가격 인하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윤은 아예 바라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많이 팔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정부에 바라고 싶은 말은. ▲2001년 농산물이 완전 개방될 때까지 우리 농가가 7조∼9조원의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중 5조∼6조원이 축산농가에게 돌아갑니다. 재원마련이 어렵겠지만 축산농가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려야 합니다. ◎사료비의 경제학/풀 먹여야 IMF한파 이긴다/먹이 粗6­배합사료4 비율이 가장 좋아 소 값 폭락 속에서도 버티는 농가들이 있다. 풀이나 볏짚 등 조(粗)사료로 소를 키우는 농가들이다. “소는 위가 4개인 반추동물입니다. 되새김질을 해야 제대로 자라요. 그런데 위가 하나인 동물취급을 받다보니(배합사료 사육을 뜻함) 젖소만 해도 젖이 나오는 기간이 미국이나 호주 젖소의 절반 밖에 안됩니다. 애들 잘키우겠다고 햄버거 스테이크만 먹이다가 비만해져 성인병에 걸리듯 소들이 사람취급을 받아 이상체질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외국서 들여오는 곡물로 만든 배합사료를 주로 먹였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사료값이 오르면서 결정타를 맞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풀을 먹여야 합니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金成勳 농림부 장관이 소값 문제만 나오면 목소리높여 하는 얘기다. 91년 10㎏당 1만1,044원하던 사료비가 IMF사태를 맞아 지난해 말에는 무려 1만5,965원으로 44.6%나 뛰었다. 쇠고기 제조원가가 그만큼 오른 것이다. 소는 조사료와 배합사료를 60대 40 비율로 섞어 먹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33대 77로 뒤바뀌어 있다. 미국이 66대 34로 이상형에 가깝다. 뉴질랜드는 95대 5로 조사료 비중이 절대적이고,영국이 70대 30,일본만해도 48대 52다. 그래서 미국과 호주의 쇠고기 생산비는 각각 우리의 66%,56% 수준 밖에 안된다. 배합사료를 쓰면 소 키우기는 쉽다. 풀베기 등의 품이 적게 들어 10마리 미만을 기르는 산농가들마저 배합사료에 의존해왔다. 물론 국내 산지 등의 값이 비싸고 양축농가가 갖고 있는 경지면적이 좁은 문제가 있긴 하다. 金玉經 농림부 축산국장은 “배합사료 비중을 줄이지 않고는 축산업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조사료 재배면적을 현재 19만5,000㏊에서 2004년 에는 36만㏊로 늘리고 2004년에는 조사료 대 곡물사료의 비율을 60대 40으로 높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램버트 댄스 컴퍼니 수석 무용수 브레트

    ◎“고전­현대 어우러진 영국 춤 선사”/단원들의 다양한 문화배경이 창조성 뿌리 “우리는 칠순 먹은 영국단체지만 정신만은 역동적이고 늘 열려 있습니다.댄서들마다 경험 다양하고 문화배경도 다 다른데 이게 오히려 창조성의 싹이지요” 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램버트 댄스 컴퍼니(이하 램버트)의 리허설 디렉터(조감독격) 겸 수석 무용수 스티븐 브레트(33).그는 바쁘게 순회공연 다니며 늘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게 램버트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램버트는 로열 발레단과 함께 영국 양대 무용단으로 꼽히는 곳.로열 발레단이 정통·고전 적자라면 ‘발레 클럽’에서 개칭한 램버트는 60년대 이후 형식과 춤의 파격을 포섭하며 영국 현대무용 기수가 됐다. “준비해온 춤은 ‘에어즈’‘스트림’‘루스터’ 세가지지요.안무가도 달라요.고전과 현대가 융합하는 영국춤의 다양한 양상을 보시게 될겁니다” ‘에어즈’는 헨델 음악에 밀고 당기는 몸짓들을 얹어 신선한 공기 흐름을 표현한 것.‘스트림’은 안무에 맞게 대중음악가가 곡을 새로 붙여줬고 ‘루스터’는 롤링스톤즈 록큰롤에다 털갈이하는 ‘수탉’처럼 어색한 10대 남성들의 모습을 안무한 재미 있는 작품.“앞으로 한국과도 더 많은 문화적 접촉의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문의 58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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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물정보·선택방법 자세히 소개 인터넷에서 중고차 정보를 얻으세요­ (주)윈앤윈 테크놀러지는 인터넷(www.automart.co.kr)을 통해 전국의 중고자동차 매매상이 갖고 있는 중고차 매물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고차를 자동차회사,차량종류,가격,지역,회원업체별 등 다양한 기준으로 검색할 수 있는 것이 특징. 가격,연식,주행거리 등 기본적인 정보에서부터 차량의 실물사진까지 볼 수 있어 이용자가 손쉽게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고를수 있다. 특히 이용자가 차를 팔고 싶을 때는 자기 차량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가격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또 회원으로 가입한 중고자동차 매매회사의 위치를 약도로 보여 주며,거기에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중고차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들어 있다.아직은 수도권 지역에 있는 중고차매매상에 대한 정보만 서비스하고 있다. 또 PC통신 사용자를 위해 인터넷상의 정보를 PC통신에도 올리고,차량매물의 영문 데이타베이스도 함께 구축,중고자동차 수출창구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밖에 여기서는 중고차고르는 법,중고차량 유지법,자동차보험 관련 정보도 얻을 수 있다.
  • 새 출발 신랑·신부 ‘행복하세요’/3년째 무료 결혼축가 최명일씨

    ◎직접 작사·작곡 ‘행복하세요’ 어린이와 함께 불러 “행복하세요.때론 힘든 일이 아프게 할 지 몰라요.그럴 때는 항상 기억해요.우리의 노래와 지금 이 시간을” 교육방송(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서 작곡을 담당하는 최병일씨(32). 그는 주말마다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어린이 소년소녀들과 함께 무료로 결혼식 축가를 부르러 다닌다. 아무런 대가없이 새 출발을 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 이들이 3년째 부르는 축가는 최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행복하세요’라는 노래다. 최씨가 결혼 축가를 부른 것은 지난 96년 봄 서울 변두리 비닐하우스에서 시작됐다.우연히 40대 남자로부터 “암으로 투병중인 부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결혼식을 준비했는데 노래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터다. 그는 변변한 장식물과 하객도 없이 조촐하게 이 비닐하우스에서 치뤄진 결혼식에서 축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 부부의 모습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이후 최씨는 매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있다. 지금까지 최씨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멤버는 그가 작곡을 맡은 ‘딩동댕 유치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와 소년소녀들.고예진(13·포이초등 6년)·박나연(15·선화예중 2년)·염정민(9·대치초등 2년)·염호정양(8·대치초등 1년)과 김상혁군(14·난곡중1년) 등 5명이다. 최씨는 간혹 축가의 대가로 신혼부부가 막무가내로 쥐어주는 사례비에 대해서는 신랑신부의 이름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사회복지단체에 성금으로 기탁하고 있다.(02)525­8649.
  • 예술종합학교 13세 첼리스트 고봉인군(세계 최고에 도전한다:9)

    ◎97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 1위/입문 3개월만에 미 인디애나음대서 독주회/96년 서울시향과 협연­이화 경향콩쿠르 1위/“첼리스트겸 하버드대 인류학 박사 요요마 같은사람 되고 싶어요” “무대에 서서요?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여기 온 사람들에게 나눠줘야지 하고 생각하지요.1등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너무 기대하고 잘하려 하면 오히려 잘 안될 때가 많잖아요” 커다란 안경을 쓰고 짐짓 어른스럽게 말하는 고봉인군.고작 열세살 먹은 어린 첼리스트다.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초롱초롱한 눈매의 봉인이가 지난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했을때 기뻐한 것은 봉인이네만이 아니었다.일찌감치 봉인이를 ‘될성부른 떡잎’으로 점찍었던 선생님들,음악계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첼로 배우는 친구들이 더욱 반기고 부러워했다.악기하다 조금만 재능이 보이면 유학 보따리 싸기 바쁜 터에 봉인이는 3년간 국내서만 공부해 여건 좋다는 외국아이들을 다 제쳤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소개 봉인이라고처음부터 국내에 ‘눌러앉기’가 그리 쉬웠던 건 아니다.지난 95년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 시험 초등부 첼로부문에서 유일하게 뽑혀 첫 학기를 다닐 때만 해도 갈등이 많았다. 레슨 한번 받겠다고 대전 집에서 서울 학교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기차타고 왔다갔다하는 봉인이를 지켜보며 엄마 백승희씨는 애처로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아빠 근무지를 따라 미국서 살때 월반할 정도로 공부도 잘하던 아이였는데….음악을 계속 시킨다 해도 본고장 미국으로 도로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닐까.갈등하던 백씨를 붙든 이는 첼리스트 정명화씨였다. 예술종합학교 시험때 봉인이를 ‘발견’한 정씨는 조바심내는 백씨를 “공부는 기초가 잘돼 있으니 나중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하지만 이런 음악적 재능을 개발도 안해보고 썩힌다면 너무 아깝잖느냐”고 달랬다. 그리고 예술종합학교 장형원 교수를 소개해 줬다.그에게서 체계적 레슨을 받으면서 봉인의 숨은 음악성도 단비맞은 풀포기처럼 차츰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봉인이는 음악성도 뛰어나지만성취욕과 집중력이 대단하다.이미 자기표현,자기 음악세계를 갖추고 있는 조숙한 아이인데다 머리도 명석하다.예민하고 섬세한 데가 있으면서도 워낙 침착해 자기와의 싸움을 잘해낼 거라 믿는다”(장형원 교수). 봉인에겐 첼로를 쥐어주며 연습하라고 채근한 사람은 없었다.봉인이 내면의 선천적 음악성이 스스로 첼로에게 다가가게 했다.첼로를 처음 들은 건 맨하탄서 살던 6세때.피아노를 전공한 엄마가 사다준 카잘스 연주의 ‘베토벤소나타’ 음반을 통해서였다.그리곤 어느날부턴가 “첼로를 배우게 해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첼로가 뭔지도 모른 채 들었어요.굵직한 저음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더라구요.몸집 큰 악기라 더 좋았지요” 그러나 엄마는 난처했다.누나가 바이올린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난 때였다.원래 누나한테 음악을 시키고 싶었던 터라 봉인이 뒷바라지까지는 힘에 부쳤던 것.엄마는 탁 털어놓고 말했다.“지금 돈이 없단다.아빠 직장따라 인디애나로 이사 가면 시켜줄게” 결국 봉인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 8세때 처음 첼로 활을 쥐게 됐다.미식축구며 보이스카웃 활동 등에 몰려다니는 틈틈이 동네학원에서 말 그대로 취미수준의 레슨을 받았다. 활달하고 과학에 소질있고 유달리 꼼꼼한 편이지만 또래처럼 개구장이 소년이던 봉인이가 첼로의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선 건 이듬해인 94년.누나를 인디애나 음대 여름음악캠프에 등록시킨 엄마가 맡길 데 마땅찮은 봉인이를 함께 끌고 들어간 게 계기가 됐다. 전문레슨과 곳곳에 널린 음악적 자극 속에서 봉인이는 정작 누나를 제치고 두각을 나타냈다. ‘늦깎이’ 입문에다 공부도 짧았는데 껑충껑충 발전하는 속도에 선생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여기서 3개월 배워 10월 인디애나 음대에서 독주회를 열 정도였다. ○러 전문가 “선천적 음악성” 그해 12월 4년반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95년 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봉인이는 96년 4월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 오디션 합격,5월 이화 경향 콩쿠르 첼로부문 1등 등 잠재력을 잇달아 폭발시켰다.배운 기간도 짧은데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에 참가하기로 한 건 이런 괄목상대할 성장을 눈여겨본 선생님들의 채근 때문이었다.그해 3회째를 맞은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는 역사는 짧았지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청소년부문이라는 명성때문에 만만찮았다.봉인이는 경험이나 쌓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다. 1차예선에서 봉인이는 41명중 40번째 순서를 뽑았다.한명이 몇곡씩을 릴레이로 연주하는 터라 봉인이가 무대에 나설 때쯤 객석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 지루함을 뚫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41명중 봉인이만 유일하게 박수를 받았다.연주장을 나서니 사인해 달라며 수첩을 내미는 어른들이 있었다.국내에서 따라갔던 관계자들이 이때 이미 “네가 일등이다”고 입을 모았다.“길지도 않은 경력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선천적 음악성을 타고났다”는 게 현지의 평이었다. 그런 칭찬들에 묻혀 막상 봉인이는 지극히 어른스럽다. “그런데 연주자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을 못하는가 봐요.연주 끝나면 모자란 점,아쉬운 점만 떠올라요.저는 늦게 시작해서 고치기 힘든 습관이 많은 편이예요.콩쿠르 가서 다른 연주자들을 들어보면 제가 부족한 걸 잘할 때 부럽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른 아이들 같으면 백지위에 한창 미래를 그렸다 지웠다 할 나이.봉인이의 꿈은 이미 세계적 첼리스트로 결정돼 버린걸까. “꿈이요.레슨 때문에 많이 빠지는 학교를 친구들처럼 맨날 다니고 싶어요.그리고 저는 요요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젊을 때부터 실력있는 첼리스트였지만 하버드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를 따기도 했거든요.첼로도 좋지만 과학실습도 좋아하고 아버지처럼 의학을 연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그중 뭘 선택할지 이 모든 걸 다하게 될지 그건 아직 모르죠” ◎‘예술의 산실’ 한국예술종합학교/입학자격 음악적 재능만 기준 ‘절대평가’/93년 개교… 정원 따로 없고 실기위주 지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 음악원 예비학교에는 정원이 따로 없다.한두명일 때도 있고 해에 따라 아예 안 뽑고 넘어갈 수도 있다.오로지 음악적 재능만 기준삼는 ‘절대평가’를 고수해 왔기 때문.일단 뽑히면딴 데 신경쓸 필요없는 고밀도 음악공부가 보장된다. 93년 7월 예비학교가 개설됐을 때 주위에서 반신반의한 것은 실기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예종 방침에 대한 반발의 연장선상이었다.공부는 집어치우고 예능만 배운다니 그래서 사람이 되겠는가.이같은 한국적 우려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5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예비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바뀌었다.각종 콩쿠르 상위입상자 명단에 예비학교 꼬리표가 줄줄이 따라붙으면서부터였다.국제 기악,무용 콩쿠르 입상자 가운데도 학교 아이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육자,공연관계자 등은 물론 음악을 지망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까지 신선한 자극이 됐다.남의 땅에 건너가 김치와 된장찌개 향수에 시달릴 필요없이 한국에서도 국제적 음악가가 될수 있다는 것.그야말로 꿈같은 이상이었다.그런데 예비학교 학생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을 눌렀다는 소식이 전해오면서 이것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지금은 콩쿠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토종 국내 경력으로만 된 연주회 팸플릿을 뿌리며 세계무대를 누비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예종 이강숙교장은 “적어도 타성에 젖은 한국 예술교육을 반성하게 하고 몇몇 기관이 안일하게 독점하던 예술교육에 경쟁을 불러들였다는 점만은 예종 교육의 분명한 성과”라고 말했다. 예종 음악원이 대학과정이라면 예비학교는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다.학교공부는 알아서 해결하고 일주일 하루 레슨을 포함,음악공부만 철저히 시킨다. 예비학교 주임 김대진 예종 교수는 음악 인재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환경을 강점으로 꼽았다.“이론수업을 실기에 연계시키는 교육,경험을 쌓게 하는 공개발표회가 학교의 특성입니다.스스로 생각하고 자라날 수 있게 음악적 상상력 키우기에 역점을 두죠” 이교장은 “아이들이 음악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음악을 모국어처럼 체화하도록 돕는 게 예비학교의 임무”라고 말했다.
  • 김대중시대­정부조직 개편(이제 힘모아 위기극복을:5)

    ◎“부분손질보다 제로베이스 출발”/지방조직 간소화·민주화 진척 2원칙/투자기관·연구소 과감한 정리 불가피 “정부조직개편요?.요즘 나오고 있는 얘기처럼 총리실에 이것저것 같다 붙이는 식으로 총리실의 권한을 강화해 행정개혁을 하면 총리실이 또다시 재경원의 재판이 될지 몰라요” 총리실 권한 강화와 집중을 우려하는 박충훈 전 국무총리서리의 말이다. “총리실에 예산실을 두는 것보다는 선진국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둬야 합니다.여지껏 정부 각 부처에서 재경원을 상대로 예산을 따내느라 로비를 했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옵니까?.모두 부처 예산에서 나오는 돈들입니다.총리실에 두면 또다시 예산로비가 성행할 수 있읍니다.”4년동안 정부 각 부처를 상대로 감사를 총지휘해오다 지난 16일 퇴임한 이시윤 전 감사원장은 예산실을 대통령직속으로 해야 한다는 현실 논리를 폈다. 원로들은 국가 장래를 위해 정부조직 개편 및 행정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자칫 오늘날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금융위기를 몰고온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재경원같은 조직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오히려 행정개혁은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지적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시대착오적인 정부를 개혁해야할 시기가 한참 지났다”고 조속한 행정개혁을 촉구했다.개발연대의 행정속성으로는 아무 것도할 수 없다는 만시지탄이 섞인 얘기다.박충훈 전 국무총리서리도 “정부조직,특히 재경원은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비만증에 빠져 있다”며 행정조직 및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년대 말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작은 정부를 외쳐왔지만 정부 조직은 ‘파킨슨의 법칙’처럼 좀체 줄어들줄 몰랐다.이제 정부조직은 부처를 칼질하는 식이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원로들은 입을 모았다.행정개혁은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이뤄져야 하고,민주화를 진척시키는 두가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박동서 행정쇄신위원회 위원장은 중앙부처는 비용절감보다는 기능조정을 하도록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오히려 비용절감은 중앙정부의 산하단체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재경원은 세입·국고·금융정책기능만 수행하고 통화량 정책은 한국은행에서 맡는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예산기능은 총리실에서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시윤 전 감사원장도 비슷한 의견이다.정부투자기관·공단·연구소 등의 각종 기구들은 채산성없이 기능면에서 제값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 대한 과감한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사회가 지방조직을 통합·축소하는 추세인데도 우리는 광역시를 늘리는 식으로 시대역행적인 행정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자치단체의 확대는 인력과 비용면에서 엄청난 소모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지방의 공립병원 같은 기관들은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는 만큼 민영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지적했다. 강영훈 전 총리는 교통문제를 예로 들어 정부의 기능조정 필요성을 역설했다.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교통은 건설교통부만의 소관이 아니라 여러부처에 나눠져 있어 종합적으로 총괄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장기적인 계획을 짜야 한다고 강전총리는 지적했다.
  • 인천·경기/IMF한파로 표심 ‘꽁꽁’(권역별 판세점검:6)

    ◎이회창­평촌·분당 등 신도시서 지지세 확산중/김대중­“35% 이상 확보”… 건강 이슈화 걱정/이인제­TV토론·박찬종 입당 거쳐 “급상승세” “나라가 안정된 상황이면 정권교체도 좋고 세대교체도 해볼만 하겠죠.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쟎습니까.엎친데 겹친 꼴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양지마을에 사는 정재문씨(35·사업)는 “이웃 사람들도 대부분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이회창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 생각이 다 달라요.호남출신인 남편(52)은 원래부터 김대중 후보를 찍어왔고,제대한 뒤 집안일을 돕고 있는 큰 아들(28)은 이인제 후보가 돼야 세상이 바뀐다고 합니다”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춘희네거리에서 10년째 공구상을 하고 있는 남옥자씨(51)는 ”딸(25)은 선거에 큰 관심은 없는 것 같고,저는 도대체 누가 돼야 경제위기를 해결할 지 모르겠네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선거일을 불과 6일 남겨둔 상황에서도 인천과 경기지역의 대선 기상도는 매우 불안정하다.각축전을 벌이는 한나라당 이회창·국민회의 김대중·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전장의 상공에는 부동층이라는 구름이 높게 떠있다. 각 당의 경기도지부와 인천시지부가 제시하는 비공식 여론조사 결과는 공통적으로 김대중 후보가 약간 앞선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회창·이인제 후보도 김후보와 오차의 범위내에서 선두경쟁을 하고 있다.전국에서 3자 정립의 구도가 가장 확실한 지역이 인천과 경기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경기도지부의 이건철 사무부처장은 “이회창·김대중 후보가 지지율 30%선에서 선두다툼을 하고 있다”면서 20%로 추산되는 부동표의 향배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부처장은 “김대중 후보의 강세지역이었던 안양과 부천,성남 지역에 각각 평촌·중동·분당 신도시가 들어서 이후보 지지 분위기가 확산중”이라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인천시지부의 정영철 조직국장은 “김대중 후보가 35%이상을 확보하고 있고 이회창 후보가 30%,이인제 후보가 28% 선”이라고 주장하고 “하루하루 이슈에 따라 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말했다.정국장은“최근에는 다른당에서 김후보의 건강문제에 대해 음해를 하고 다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신당 경기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 후보 33%,이인제 후보 31%,이회창 후보 28%라는 자체 지지율조사 결과를 제시하면서 “한때 22.5%까지 떨어졌던 이인제 후보의 인기가 TV토론과 박찬종씨의 입당을 거치며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부재자 투표가 끝나고 나면 군 장병들이 누굴 찍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대세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선거전문가들은 한반도 남쪽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선거 바람이 서울을 거친 뒤에야 인천과 경기도에 도착한다고 평가한다.따라서 인천과 경기도의 판세는 여전히 안개 지역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선거 전날까지 하루하루의 이슈에 따라 20% 정도로 추산되는 부동표의 이동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특히 여권성향의 부동표가 어느 쪽으로 몰리는가에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승부가 결정날 전망이다. ◎쟁점­경제살리기/난국 수습능력이 부동표 좌우/3후보간 병역문제 공방도자주 거론/분도·인천항 개발 등 결정적 이슈안돼 “경제요” “경제 살리기 아닙니까” “나라 꼴이 이런데 경제 말고 뭐가 있습니까” 15대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만난 유권자와 한나라당·국민회의·국민신당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경제살리기’를 꼽았다.기본적으로 인천과 경기에서는 그 지역의 특수한 현안이나 정서가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유권자수 5백70만인 경기도에는 토착주민과 호남·충청·영남·이북출신 이주민들이 10~20%의 비율로 뒤섞여 있는데다,북부의 접경지역,남쪽의 공단지역,동남부의 농업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각각 다르다. 인천도 1백64만의 유권자 가운데 토착민이 30%에 호남·충청 출신이 20%,영남 출신 10%정도의 비율이고 인천 구시가지와 부평등 신시가지의 여론흐름이 일치하지는 않다. 따라서 대통령선거의 경우 인천과 경기도의 선거 쟁점은 전국적인 선거 쟁점과 거의 일치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도 경제 파탄과회생을 둘러싼3당후보의 대결이 이 지역 부동표의 마지막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한나라당은 경제전문가 조순총재의 역할론을,국민회의는 ‘능력있는 대통령론’을,국민신당은 젊은 지도자·젊은 경제론을 중점 홍보하고 있다. 3당 시·도지부의 조직담당자들은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과 김대중 후보의 병역의무 불이행,이인제 후보의 징병기피 등 각 후보측의 병역문제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한다.또 경기도의 분도나 인천항 종합개발과 같은 지역개발 공약도 이따금씩 거론되고 있지만,투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요인은 되지 않는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강원/태백산맥 골따라 표심 제각각(권역별 판세 점검:2)

    ◎“지역정도 몰라요” 경제대통령 선호 여론/이회창,영동권 바닥민심 잡아 ‘순풍의 돛’/춘천선 이회창·이인제,원주선 김대중 등 3후보 각축 “누가되든 무슨 상관이래요.경제부터 살려야지”.다섯에 셋이 엇비슷한 말을 했다.후보이름을 담은 현수막들이 쑥스러워 보였다.대선을 코 앞에 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강원의 표심은 태백산맥의 골 사이사이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강원도의 유권자는 1백8만명.전체 3천2백32만명의 3.3%에 불과하다.대세를 좌우하는 의미는 없다.그러나 과거 지역대결구도의 중립지대라는 점에서 그향배는 흥미를 끌 수 밖에 없다. 강원은 속초에서 삼척을 잇는 영동권과 영서북쪽의 춘천권,그리고 남쪽의 원주권으로 나뉜다.권역에 따라 지지성향도 다르다.한파가 찾아온 춘천을 찾았다. “이회창씨도 훌륭하지만 경제에 관한한 빌린 지식 같습니다.이인제씨는 경선을 불복한 사람 아닙니까”.도청앞에서 안경점을 하는 임성용씨(39)는 ‘김대중 지지’를 선언했다.의외였다.휴전선과 가까워 보수색이 짙은 곳으로 평가돼온 터다.중앙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연귀순씨(75·여)는 “관심없다”며 한참 뜸을 들이다 “이회창씨를 많이들 얘기한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밝혔다.시장을 나오다 만난 이정숙씨(57·여).인삼 몇뿌리를 놓고 팔던 그는 “점심값 3천원도 못벌었다”고 한숨지으며 “장사좀 잘되게 박정희처럼 밀어부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젊은 사람’을 얘기했다.이인제 후보를 말한다. 이어 찾은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의 도지부는 앞다퉈 자신들의 우세를 주장했다.다만 국민신당측도 한가지는 인정했다.한나라당 조순 총재의 ‘순풍’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주권은 다른 지방 출신이 많아 표심이 복잡한 곳으로 꼽힌다. 영동권과 춘천권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곳이기도 하다.그러나 이곳에서도 ‘순풍’이 감지됐다.택시기사 최종욱씨(35)가 이를 전했다.최씨는 “조순씨가 한나라당 총재가 된 뒤로 이회창씨 지지도가 크게 올라갔어요.아들 병역문제는 시들해졌어요.젊은 사람들도 그의 얘기를 많이 해요.아줌마들은 이인제씨 지지가 많고요”라고 했다.학성동의 김희철씨(55·전자제품대리점 경영)도 “이회창씨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상지대생 위종성군(25·한의대본과 1년)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들어 김대중씨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대관령을 넘어 찾아간 조총재의 고향강릉은 ‘순풍’의 진원지.이회창씨 아들의 병역문제를 순풍이 몰아낸듯한 분위기다.이회창씨로 지지후보를 바꿨다는 김조연씨(29·고교 교사)는 “이제 병역문제는 무감각해졌다”고 했다.각 당의 선거대책위에서도 이회창씨 강세를 인정하고 있다. 도내 여론조사등을 종합할 때 강원의 형세는 영동권 이회창후보 우세,춘천권 이회창-이인제 후보 2파전,원주권 이회창-김대중-이인제 후보의 3파전으로 분류되는 모습이다.초반 이인제 후보가 강세를 보였으나 조순씨와 연대에 성공한 이회창 후보가 병역시비를 극복하며 추월,우위를 점한 형국이다.최각규 도지사와 기초단체장 5명의 한나라당 입당도 이에 한몫했다. ◎쟁점­안보·경제/휴전선 접경 안보가 최대변수/이회창­조 총재 고향 바람 업고 병역시비재우기/김대중­“경제난은 여당 탓” 서민층에 집중 홍보/이인제­이회창 후보 병역불씨·경제 살리기 전략 강원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대선변수는 ‘강릉출신’의 조순 한나라당 총재의 평가정도와 북한과 맞대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에 따른 안보문제를 우선 들 수 있다.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민들은 조심조심 ‘조심(조순 총재에 대한 지지의사)’을 얘기한다.이·조연대의 시너지효과는 다른 시·도보다 훨씬 크다.‘강원도 무대접론’으로 표현되는 정치적 소외감이 이같은 반동을 일으킨 요인으로 풀이된다.15% 안팎의 고정표를 갖고 있는 김대중후보와 달리 이인제후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조심’의 반대편에 선 변수는 안보문제다.이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시비와 연결된다.두달전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도 안보문제에 민감한 강원지역의 특성을 말해준다.이인제 후보측은 이회창 후보 병역시비의 불씨를 되살려 실지를 회복한다는 전략이다.이회창 후보측도 병역시비를 잠재웠다고 보면서도 안심은 못하는 형편이다. 경제난도 남은 변수다.김대중 후보나 이인제 후보는 각각 ‘준비된 대통령’‘일꾼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현 경제난에 대한 집권여당의 책임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두 후보 모두 영세상인 등 저소득층 유권자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경제난이 심화될수록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부동층의 향배는 바로 경제난의 체감정도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 컴퓨터게임 프로그래머 임지현씨

    ◎“안정된 무역회사 사표 컴퓨터학원 뒤늦게 등록/게임 만드는 재미 폭 빠져” 게임 개발업체 ‘샘슨 인터렉티브’의 컴퓨터게임 프로그래머 임지현씨(26)는 요즘 직장다니는 늦재미에 빠져있다.첫 직장에 다닐땐 못느껴본 즐거움이다. “밥보다 더 좋아한 컴퓨터게임을 직접 만드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임씨가 게임 프로그래머로 들어선 건 누가 뭐래도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확신 때문.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교수 추천을 받아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없이 1년을 다녔다.둘러보니 친구들은 선생님으로,아기 엄마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더 늦기전에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지 않을까.어느날 신문을 보니 컴퓨터게임 프로그래머 양성 전산학원 광고가 눈에 띄었다.임씨는 기다렸다는듯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학원에 등록했다. “대학입학하면서 컴퓨터를 산뒤 게임에 빠졌어요.지금까지 1백종 넘게 해본 것 같아요.단순한 것 같지만 게임 잘 하는데도 논리적 사고와 모험심이 필요하지요.그 게임 만드는 일을 제가 할 수 있다는게 매력적이었어요” 1년 과정을 마쳤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였다.하지만 지금 직장 면접때 열의하나만은 누구못지 않다는걸 보였고 그게 채용되는데 크게 작용했단다. “보수요? 지금은 변변찮아요.하지만 남녀차별이 없고 경력을 쌓으면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벌 수 있는게 장점이지요” 지금 개발중인 프로그램은 ‘주센사요’.가상의 주센대륙 주인공이전세계를 돌며 고난과 싸워 자기정체성을 확인해가는 멀티 시나리오 RPG(롤플레이 게임)다. “프로그래밍은 기획·그래픽 담당과의 협업이라 팀웍이 중요하지요.경력을 더 쌓은뒤 게임 시나리오를 만드는 기획자로 활약하고 싶어요”
  • 국경도시 흑하의 애환(흑룡강 7천리:13)

    ◎69년 소련군 침공… 주민들 공포의 한달/지금도 흑룡강 국경엔 러 순시선 왔다갔다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흑룡강성 애휘진은 오늘날 작은 촌락에 불과했다.1천여 가구가 사는 애휘진은 100여년전 흑룡강장군이 주둔했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국경지대의 중요 거점이기는 했으나 지금은 1개중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7련소속인 이들 병력은 중소긴장이 해소된 탓에 평화스러워 보였다. ○예휘진 1개중대 병력 주둔 그래서 지역봉사와 영농활동에 나서는 병사들이 많았다.애휘역사진열관을 방문했을때 진열관 뜰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전사들을 만났다.오정양 관장은 이들이 윤번으로 매주 한 차례씩 와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렇다고 군에 사기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부대에서 실시하는 정신교육과 더불어 주민을 돕는 봉사활동을 통해 오히려 병사들은 인민의 전사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최근 들어서는 러시아 원동군의 방문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지난 1992년 초겨울에는 골바프중장이 이끈 러시아 원동군 대표단이 애휘진에 와서 7련 산하 여러 부대를 시찰했다.그렇듯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관계는 호전되었지만,국경은 여전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흑룡강성에 걸친 중러국경은 3천45㎞.국경선 18개 현·시·구(구·현급 행정구역)를 지나갔다. 국경경비는 5련이 최북단 낙고하 초소를,7련과 8련은 애휘초사와 흑하초소를 각각 맡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출신 연장은 5련을 지휘하는 최광일 대위(31)밖에 없다.흑룡강성 밀산시에서 자란 그는 목단강 조선족중학교를 거쳐 대련군관학교를 나왔다.그 말고도 5련에는 조선족 한 사람이 더 복무한 적이 있으나 지난해 대퇴(제대)했다.최태건이라는 계동현 사람인데,그는 군에서 나와 지금은 막하향우전국에 근무하고 있다.최광일 대위는 스스로 복받은 세대의 군인이라고 했다.지난 세대의 군복무에 비하면 요순시대를 사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자신이 실제 체험한 것은 아니나 국경부대에 두고두고 전해오는 80년대이전의 병영생활을 실감나게 이야기했다.그의 말을 들으면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꼽씹었다.“흑룡강 군인들은 시대별로 전혀 다른 병영생활을 체험했디요.60년대는 옛 소련군과 총뿌리를 겨누어야 했던 전시를 살았다 말입네다.기리고 70년대는 길을 닦고 철도를 깔아야 했디요.말이 군인이었디 실은 노동자였슨다.순라가 주임무였던 80년대도 고달프기는 매한가지였다고 기래요.흑룡강이 얼면 강 한복판 얼음위에다 널빤지 하나를 달랑 깔고 보초를 섰답네다.오죽 추웠겠습네까.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연속 8시간씩 보초를 선다고 생각해 보시라요” 흑하시 강변의 왕숙공원을 산책하노라면 순라병들과 함께 달리는 군견을 만날수 있다.주둥이가 몽툭하고 허리가 잘쑥한 잘 생긴 개들이다.그 군견을 모는 순간 중소국경분쟁이 일어났던 시절에 보도되었던 기사 하나가 얼핏 떠올랐다. 기사는 70년대 어느 겨울 얼음이 언 흑룡강 빙판위를 중소 순라병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그런데 중국군 군견은 수놈이고,옛 소련군 군견은 암놈이었다는 것이다.우수리강 진보도 국경분쟁에 따른 전투를 겪고난 터라 여차하면 서로 총을 갈겨댈 그런 때였다.순라병들 끼리는 서로 스치고 나면 행여 뒤에서 총질을 하지 않을까 싶어 모골이 송연했는데,양쪽 군견은 뒤를 돌아 보면서 사랑의 눈길을 주었다. 그런 어느날 소련군 군견이 중국군 초소 군견우리에 불쑥 나타났다.중국쪽 초소는 발칵 뒤집혔다.적의 군견이 나타났으니 필경 소련군이 강을 건너왔을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이는 곧 심양군구에 보고되었다.그리고 동북군은 일급 전쟁태세를 갖추었다.그럴 즈음에 소련군쪽에서 군견을 찾아달라는 통보를 해왔다.긴장국면은 바로 풀렸지만 사랑을 찾아 강을 건너온 군견으로 해서 전쟁이 일어날뻔 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앗아가는 전쟁의 참화는 1969년 겨울 진보도국경분쟁으로 일어난 중소전쟁에서도 나타났다.문화대혁명 당시 반동분자로 몰렸다가 간신히 풀려나왔던 흑하시 한정순씨(64)는 그 전쟁현장을 목격한 조선족이다. ○조선족 지휘관 최광일 대위 “모두가 피란을 가노라 법석을 대다 흑하시가 텅 비었디요.집 사람도 애들을 데리고 떠나자고 졸라댔지만,나는 거절을 했수다.조선전쟁(한국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 민간인들을 어찌 하겠냐는 생각으로 버텼디요.도망질은 문화혁명에 앞장을 섰던 극렬분자들이 먼저 칩데다.전쟁은 근 한 달만에 끝나고 사람들도 돌아왔으나 얻은 것은 하도 없었디요.맨 잃은 것 뿐이었다 말입네다” ○70년대 군견으로 전쟁위기 전쟁은 사람들 정신까지도 빼앗아갔다.중국 군인들은 소련군 탱크 앞에 빨간 비닐 표지를 씌운 ‘모택동 어록’만을 흔들었다.‘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귀절을 외웠던 중국군들은 총을 겨누기 커녕 어록만을 흔들어 댔던 것이다.그렇다고 중국군은 소련의 탱크 T62를 때려잡을 무기를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중국군은 탱크 격파용 포는 물론 철갑탄도 만들지 못했던 시절이다. 중국군 수뇌부는 다급했다.그래서 엽검영원수는 역사논쟁에서 밀려 노동개조를 받고 있는 신세로 전락한 무기전문가 유광지 박사를 부랴부랴 불러들였다.결국 탱크 격파용 포와 철갑탄을 개발했으나,소련은 인공위성을 통해 이를 감지했다고 한다.어떻든 중소관계는 1979년 중국이 월남을 침공한 잠깐 동안의 전쟁을 마무리한 이후 지금까지 호전되는 기미를 보여왔다.이번 여행에서 흑룡강 강심을 가른 유람선을 타보았다.마침 러시아 순라선이 군기를 펄럭이며 지나갔다.관광객들이 손을 흔들자 순라정 이물에 섰던 러시아 수병이 부동자세를 취했다.그리고 거수경례를 부쳤다.흑룡강에 정녕 평화는 오는 것일까….
  • 힙합/10대에 선풍적 인기… 전문점 잇단 개설

    ◎거지패션 이라구요? 어른들은 몰라요 10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힙합 패션 전문점이 생겼다. (주)데코는 지난 2일 서울 압구정동에 힙합스타일 멀티숍 「싸일로」를 개장한데 이어 9일 대구 동성로에 매장을 연다.이곳에서는 미국 뉴욕 스트리트(거리)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VERSO,DLO 등 16개의 힙합브랜드를 직수입,판매한다.「싸일로」를 성공시키기 위한 데코측의 전략은 크게 3가지.우선 뉴욕에서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를 소개함으로써 상품의 차별화를 꾀하고 뉴욕 뒷골목의 창고같은 느낌을 주는 내부장식으로 매장의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 댄스교실과 DJ쇼,댄싱 페스티벌 등의 이벤트를 주간 또는 월별로 개최해 올바른 힙합문화를 선도하는 프로모션의 차별화를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데코측은 또 미국 현지에 설립된 데코아메리카를 통해 98봄·여름 시즌을 겨냥한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고 있다.
  • 중,대외정책 기본틀 큰변화 없을듯/등소평 사망­전문가 좌담

    ◎강택민 국가주석 중심 후계체제 원만한 정립/경제발전 지속적 추진위해 한반도 안정 희구/복수정당제·선거제 도입 등 의회민주주의 요구세력 발언권 강화 움직임 예상 인구 12억의 중국대륙을 19년간 사실상 통치해온 최고실력자 등소평이 사망함으로써 등이후 중국의 항로에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개방론자인 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의 계속 추진여부,복잡한 권력내부의 재편문제는 물론 대외정책,특히 한반도정책에 어떤 모양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서울신문은 초대 주 중국대사를 지낸 노재원 외교안보연구원명예교수와 중국전문가인 김하용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빙,「등소평 사후 한·중 관계변화 및 한반도주변정세 분석 및 전망」이라는 주제로 긴급좌담을 마련했다.〈편집자주〉 ▲김하용 교수=먼저 등소평 사후 중국의 전반적인 대외관계의 변화가능성,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부터 전망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결론부터 말한다면 등 사망이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등소평은 오래전부터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87년 당권을 내놓았고 92년에는 군권까지 내놓음으로써 완전히 뒤로 물러났습니다.그뒤로는 숨은 영향력을 행사해왔죠.등의 인물들에 의해 그의 의지대로 개방정책이 진행돼왔던 것입니다.그동안 등 건강악화설이 꾸준이 나돌았고 중국 집권층도 사망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전반적인 대외관계,특히 대미관계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와 긴밀한 협력 유지 ▲노재원 교수=전적으로 동감합니다.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보면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중국의 최우선 국가시책은 경제발전입니다.경제발전을 이루려면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거나 자유진영의 외자를 끌어 들이는 두가지 길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변정세가 평화스러워야 합니다.따라서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중국은 평화를 지향하는 외교에 변화를 주지 않을 거에요.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후계체제도 원만히 정립되가고 있는 점도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거라고 전망하는 이유중 하나이지요.미국과의 관계를 봅시다.중국은 미국과 대만문제 등으로 마찰이 있는 반면 걸프전이나 보스니아사태,국제마약문제 등에서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협력과 마찰이 공존하는 미·중 관계에도 중국의 외교정책 유지라는 관점에서 볼때 역시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김교수=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출범했고 외교총책임자인 국무장관도 올브라이트로 바뀌었습니다.신임장관은 특히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중국내 민주화 세력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노교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미국의 대중 외교정책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사안에 따라 철저하게 국익에 입각해 문제제기를 하는 등 협조와 마찰의 조화를 이뤄나갈 것입니다. ○반대파 공작시간 부족 ▲노교수=중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등소평 사망은 중국에 충격을 주긴 하겠지만 북한에서의 김일성 사망처럼 체제전반을 뒤흔들거나 사태를 급격히 변하게 만드는충격이 아닌 정신적인 충격 정도는 있을 거에요.등소평 사망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일단 중국 내부의 정치정세를 단기적으로 보자면 올 10월 공산당 15기 당대회가 예정돼 있는데 그때까지는 강택민 집단지도체제에 변화가 없을 겁니다.당대회까지 현 진용에 어떤 변화를 도모하기에는 반대파들이 정치적 공작을 할 시간이 너무 모자랍니다.등소평이 지난해쯤 사망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수 있을테지만.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자면 등소평,강택민 반대파나 보수파,정치적 야욕을 가진 새로운 인물이 나올수 있을 거에요.양상곤이나 조자양 등이 득세할 수 있고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도 나올수 있을 거에요.지난해 8월 열린 중국지도자 회담에서 15기 당대회때 강택민을 당 주석으로 승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요.강택민이 당 주석이 되면 총리를 2번이나 지낸 이붕을 예우해 당 부주석으로 영입하고 강택민의 추종자인 교석을 역시 부주석으로 두어 이붕과 균형을 맞추도록 할 가능성이 높아요.장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양상곤,조자양은 이같은장내 문제 때문에 크게 부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아뭏든 등을 지지하는 강력한 세력이 반드시 강택민파가 아니므로 이들을 어떻게 끌어들이고 군부도 어떻게 다스릴지가 주목됩니다. ○개혁 속도논쟁 붙을듯 ▲김교수=등 집권이후 중국의 성장 속도는 놀라왔습니다.중국은 대내적으로 보수파와 개혁파간에 이해관계가 대립해오고 있습니다.그러나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권력을 쥐고 있는 개혁파에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봅니다.그러나 등의 사망으로 개혁과 보수간의 노선상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보수파들은 중국 집권층의 부패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입니다.경제개방으로 인해 중국이 사회주의로부부터 너무 이반돼왔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정풍운동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경제상황 역시 노선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예를 들어 물가는 안정돼있지만 계층간·지역간 소득격차와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노교수=등소평 집권 초기 개혁파와 보수파와 갈등이 있었어요.이때의 갈등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천하려는 개혁파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보수파간의 싸움이었으나 현재는 갈등이 양상이 달라요.개방을 한다는 원칙에는 양측 다 동감한다는 전제에서 개혁의 속도를 빨리 하는냐,천천히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있는 것 같아요.개혁의 속도를 늦추자는 보수파의 목소리가 그동안 억눌려 왔지만 등소평의 사망으로 커질수 있으며 속도 논쟁이 붙을수 있다고 봅니다. ▲김교수=정치적으로 복수정당제도와 선거제도의 도입과 의회민주주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생겨날 것으로 봅니다.강택민의 위치가 굳혀져가는 과정에서 이들이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물론 천안문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고 위축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등이후 중국 최고위층의 힘겨루기 내지는 향후 내분 가능성,세력판도는 89년 천안문 사태에 대한 평가작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교수=중국의 대 한반도정책은 중요사항중 하나에요.중국입장에서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미국,일본,대만,홍콩에 이어 무역 5위의 나라입니다.대만과 홍콩과의 교역을 중국사람끼리의 실질적인 내부거래라 본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3번째의 교역국입니다.이런 점이 중국의 대 한국정책에 전적인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서는 무시할 수 부분이에요.이런 점에서 경제발전과 주변정세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으로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돼요.강택민 등 새 지도자는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더 희구할 겁니다.등소평같은 위대한 지도가가 없으니 더욱 경제를 잘 추스려야 하는 집권층으로선 한반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봅니다. ▲김교수=홍콩의 경우만 보더라도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후에도 50년 가까이 홍콩을 그래도 놔둔 것처럼 중국은 사안을 매우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따라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방향이 급전한다고는 볼 수 었습니다.중국은 한반도 정책과 관련,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입니다. ▲노교수=북한과의 관계를 살펴보지요.중국입장에서 북한은 교역상대로서의 가치는 없어요.하지만 완충지대로서 북한이라는 국가는 여전히 중요합니다.하지만 정권 차원에서 김정일이 비평화적 행위 등을 한다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입니다.이런 관점에서 북한과 맺은 우호협정은 상징적인 것입니다.「북한이 북침을 당하면 중국이 개입하지만 남침했을때는 불개입한다」는 원칙은 중국이 북한의 보호자임을 여실히 나타내주는 것입니다.중극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편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에요.한반도에서 평화유지 또는 현상유지를 한다는 전제에서 한국에는 경제적으로,북한에서는 완충지대로서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등 사후 한반도에서 평화를 바라는 기존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같은 맥락에서 가능한 것이에요. ○대북 기득권 포기안해 ▲김교수=그렇습니다.중국은 북한에 대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할 것입니다.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시에 북한의 급속한 대미·대일 접근도 경계할 것입니다.중국은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손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중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안정·평화가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따라서 이같은 기본 입장에 입각한 대 한반도정책을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등소평의 사망이 중국과 남·북한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된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망명사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노교수=등의 사망은 중국정부가 황장엽 망명사건을 조속히 마무리짓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사견이지만 중국은 이미 북한에 황장엽의 한국행을 수용하라고 통보했고 북한도 이를 받아들인 상태라 봅니다.〈정리=황성기·김균미 기자〉
  • 이 니트전문업체 「미소니」(G7으로 가는 길:53)

    ◎“비싸지만 남다른 옷” 최고급 이미지 구축/독특한 디자인·최고가 정책·물량조절로 승부/판매전략 지역별 다각화… 문화·역사 배경 고려 이탈리아 바레세 시 수미라조 마을의 해발480m 산 정상 바로밑에 자리잡은 니트웨어 전문업체 미소니.안개없는 휴양지로 유명한 이 곳에서는 남미의 원주민들의 옷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무늬의 니트웨어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멋쟁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니트웨어 「미소니」를 생산·판매하는 이 회사는 1953년 설립 당시 평범한 스포츠웨어업체로 출발 했다.설립자인 오타비오 미소니(75)가 400m 장애물경기 선수로 48년 베를린 올림픽 때 참가한 경력이 있는 만큼 은퇴후의 생활대책으로 운동복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회사가 니트웨어에 진출한 것은 60년대 중반이었다.그러나 첫 제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다.울긋불긋한 컬러,강렬한 인상등 부유한 사람들이 입기에는 「뭔가 튀는」 옷이었다.그러나 바로 그와같은 독특한 특성때문에 미소니를 찾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됐다.파격적인 모습의 니트웨어가 남다른 옷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되면서 미소니는 날이 갈수록 성장을 거듭했다. ○한벌에 80만∼200만원 미소니의 고가정책이 주효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미소니가 요즘 만들어내는 옷의 가격은 한벌에 80만∼200만원.「미소니=고급 니트웨어」라는 이미지를 심은 것이다.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기 위해 항상 모자란 듯이 공급한 작전도 적중했다.미소니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다른 니트웨어와 구별되는 특이한 컬러의 디자인과 고가정책,그리고 물량조절이 역어낸 합작품이다. 미소니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미소니 가족들이다.특히 설립자인 오타비오는 미소니 고유의 컬러를 만들어내는 직물디자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오타비오는 오스트레일리아,중국,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고급원사를 생산하는 나라들로부터 양모·비단·캐시미어·모헤어 등의 원사를 구입해 빨강·노랑·파랑등 미소니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미한다. 그는 이렇게 염색된 원사로 특이한 디자인의원단을 만들어낸다.전세계적으로 미소니만이 갖고 있는 천이 탄생하는 것이다.오타비오가 원단을 만들어 낼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람」이다.그는 컴퓨터의 자판조차 두드려 본 적이 없는 컴맹이다.원단의 디자인에는 복잡한 수학공식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다.타고난 재능과 오랫동안 연마한 기술 즉,감각과 경험으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그가 색연필을 잡고서 손으로 그려내는 무늬와 색채의 조합이 미소니의 디자인이다.이듬 해 유행시킬 디자인도 자신이 쌓아온 연륜에 바탕을 두고 결정한다. ○남미 민속의상서 착안 오타비오는 원단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남미의 민속의상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남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수십년간 공부해와 그는 전문가 뺨치는 수준급의 실력자이다.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그의 왕성한 활동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칠줄 모른다.대가들이 펴낸 그림집도 부지런히 보고 중요한 전시회는 빠짐없이 관람한다.여행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전세계로 여행을 다니며 직물점에 들러 천의 무늬와 색채등을 꼼꼼히 살핀다. 또한 미소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오타비아의 아내 로지타(66)와 딸 안젤라(38)이다.이들은 오타비아가 만들어낸 니트 원단을 재료로 의상을 디자인 한다.두 사람 역시 오타비아와 마찬가지로 도면없이 눈썰미로 옷을 디자인 한다.수십년간 쌓인 감각과 경험으로 디자인을 해낸다.그들을 도와 일하는 20년이상 경력의 디자인 기술자들도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뒷받침해준다.이곳에서 13살 때부터 43년간 일해온 수석재봉사 실비아는 『우리들은 두 사람의 눈빛만 보아도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고가품 5개만 제작 이들은 새 디자인의 모델을 만들어낸뒤 판매에 들어가기 6개월 전에 미소니의 견본품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는 컬렉션을 개최한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는 디자인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1년간 만들어내는 모델의 종류는 250∼300종쯤 된다.보통 일반적인 모델은 1천개 정도 만들어지고 고급모델은 50∼100개쯤 제작된다.그러나 특별히 신경을 써서 디자인한 모델은 5개만을 제작할 때도 있다. 미소니는 이탈리아 국내 판매보다 국외로의 수출이 훨씬 더 많다.전체 판매액중 국내 판매는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가 다른 유럽지역과 아시아,아메리카 등에서 팔린다.따라서 미소니의 판매전략도 지역별로 다르다.유럽시장에서는 유럽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중시,각 나라별로 그에 어울리는 의상들을 출시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동양인들의 체구가 서구인들 보다 작은 점을 고려,제품의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니트웨어의 사이즈를 약간 줄였다.또한 부담이 있는 직영매장 보다는 백화점등에서 현지인이 판매와 경영을 담당하는 「체인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시장에도 뉴욕 등 대도시에는 직영매장이 있으나 다른 도시에서는 체인점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부사장 비토리오 미소니/“전세계로 시장 분산… 불황 몰라요”/종업원 250명… 작년 매출 532억원 상당 니트웨어 전문업체 미소니의 비토리오 미소니 부사장(43)은 『제품을 전세계에 고루 판매함으로써 위험부담을 줄이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매출액을 늘리는 것이 미소니의 판매전략』이라고 말했다.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소니는 니트 전문업체라고 들었는데 시장에서는 청바지나 아동복,스포츠의류등의 상표도 눈에 띄고 있다.어떻게 된건가. ▲간단하다.미소니는 니트웨어만을 생산·판매한다.나머지 제품들 즉 침구류·아동복·액세서리·스포츠의류 등은 미소니의 상표를 이용하고자 하는 회사들에게 로열티를 받고 생산·판매케 하고 있다.따라서 미소니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상품은 누가 뭐라해도 니트웨어이다. ­지난해의 매출액은 얼마였나. ▲니트웨어의 매출액은 총 9백50억리라(한화 5백32억원)였다.이 가운데 순이익은 4분의 1인 2백40억리라 정도이다. ­매장은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직영매장과 체인점으로 나눠 운영한다.미소니 판매량이 많은 대도시에는 모두 직영매장을 갖추고 있다.이탈리아내에 200개의 직영매장이 있고 런던과 파리에는 대형직영매장을 각각 한곳씩 갖추고 있다.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소도시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직영매장을 여러 곳에 두고있다.아시아와 미국에서는 백화점내의 한 코너를 임대,현지인이 판매를 대행하는 체인점 형태의 매장이 대부분이며 앞으로도 이를 확대·발전시킬 계획이다. ­누가 미소니를 입는가. ▲그거야 중상류층 이상이 아니겠는가.니트제품이어서 기후가 중요한 요소이다.지역적으로는 추운 곳에서 잘 팔린다.유럽과 아시아 대륙중에서도 북쪽 지방에서 많이 팔린다.중동과 남미는 더운 곳이어서 판매가 되지 않는다. ­회사운영상 어려운 점이 있다면. ▲거짓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미소니는 창업이래 단 한번도 불황이나 위기를 맞은 적이 없다.매년 예외없이 10∼15%씩 성장해왔다.최근들어 한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바느질 잘 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니트웨어의 단추구멍은 바느질로서만 만들 수 있다. ­노사관계는. ▲미소니의 종업원은 모두 250명이다.월급도 이탈리아에서는 높은 편이라 종업원들이 대체로 만족하며 일하고 있다.업종특성상 90% 이상의 종업원이 여성들이다.노동조합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와 같이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즉 미래도 「지금처럼」 꾸려나간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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