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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 외계어 30대 75% “무슨 뜻이야”

    10대 외계어 30대 75% “무슨 뜻이야”

    오나전, 솔대, 엑박, 안습, 다굴…. 당신은 이 중 몇개나 뜻을 알고 있는가. 친구들 사이에 ‘인터넷 외계어의 도사’로 통하는 생기발랄 20대인데도 모르겠다고? 속상해할 것 없다. 이건 ‘10대 나라’의 언어니까. 언어의 연령대별 격차가 커지고 세분화하면서 30대는 물론,20대도 모르는 10대만의 외계어가 확산되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봤다. 서울 잠실의 한 보습학원에서 3년째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향숙(30·여)씨는 가끔 10대들이 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최근 학원에서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한 학생을 두고 “너 자꾸 그러면 다굴해 버릴 거야.”라며 놀리는 말을 듣고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다굴하는 것’의 뜻을 물으니 아이들은 “에이∼선생님은 그것도 몰라요. 여러 명이 한명을 따돌리는 걸 말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게임용어에서 왔단다. 김씨는 “아이들만의 언어를 들으면 왠지 소외감도 느끼고 세대차이도 명확하게 인식하게 돼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0대들만의 ‘외계어’… 세대언어 격차 심화 회사원 이모(27)씨도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 ‘안습하네요.’라는 희한한 문장을 봤다. 뜻을 이해하지 못해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안구에 습기가 차다.’는 문장의 줄임말로 10대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돼 스스로 신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씨에게 자기가 10대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씨는 “10대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사를 쏟아낼 정도지만 사실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땐 ‘내가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었나.’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대,10대들 외계어 60% 이해 못해 서울신문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0대들이 자주 쓰는 ‘외계어’ 12개를 선정, 포털사이트 다음과 조사기관 ㈜시노베이트코리아에 의뢰해 20∼30대 750명을 설문조사했다.10대들의 언어를 얼마나 알고 쓰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그 결과 20대들은 10대들이 쓰는 외계어의 60%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0대 초반은 75%였다. 설문은 12개 단어 및 문장과 뜻을 적어두고 각각 (1)전혀 모른다 (2)의미를 몰라 사용하지 않는다 (3)의미는 모르지만 대충 사용한다 (4)의미는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5)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고 사용한다 등 다섯 단계로 나눠 물었다.750명 가운데 20대 초반(20∼25세)과 후반(26∼30세),30대 초반(31∼35세) 참가자가 각각 200명이었고 35세 이상 참가자는 150명이었다. 20대 초반은 12개 단어에 대해 중복해서 답한 결과 1391명(58.0%)이 (1)∼(3)번을 선택해 뜻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20대 후반은 1475명(61.5%)이 모른다고 답했다.30대 초반은 1802명(75.1%)이,35세 이상은 1493명(82.9%)이 대체로 모르는 편에 속했다. 컴퓨터 타자 실수에서 파생된 단어로 10대들에게 ‘완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오나전’이란 단어에 대해 20대 초반 139명(69.5%)이 (1)∼(3)번을 선택해 뜻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뜻을 알고 있다는 의미인 (4)번과 (5)번을 선택한 사람은 61명(30.5%)에 불과했다.20대 후반은 156명(78%),30대 초반은 171명(85.5%)이 뜻을 몰랐다. ‘솔직히 말해 대박나다.’의 줄임말로 쓰이는 ‘솔대’ 역시 2030 10명 중 8명 이상이 모른다고 답했다.20대 초반의 86.5%,20대 후반의 82.0%가 이 단어 뜻을 몰랐다.30대 초반은 85.0%,35세 이상은 86.0%가 모른다고 답했다. ‘엑스박스’의 줄임말로 인터넷 상에 이미지가 안 나오거나 그림이나 동영상의 링크가 잘못 걸렸을 때 ‘X’표시와 함께 뜨는 작은 상자를 뜻하는 말인 ‘엑박’도 2030들에겐 남의 나라 말이었다.20대 초반은 45.0%가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20대 후반은 59.5%,30대 초반은 83.0%가 모른다고 답했다.35세 이상 가운데 모르는 사람은 84.7%였다.‘안습하다.’란 단어 역시 20대 초반의 74.5%,20대 후반의 74.0%가 뜻을 몰랐다. ●20대보다 30대가 10대 외계어에 더 부정적 10대 언어에 대한 반응은 20대와 30대가 다르게 나타났다. ‘앞으로 10대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계속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대 초반은 30.0%(60명),20대 후반은 39.0%(78명)가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반면 30대 초반은 56.0%(112명),35세 이상은 62.0%(93명)가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해 30대가 20대보다 10대들의 외계어에 상대적으로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그들만의 언어’ 외계어 변천사 가상공간을 오가는 ‘외계어’변천사는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한글을 파괴한 ‘주범’은 1990년대 초중반 보편화된 무선호출기(삐삐)다. 당시 숫자만 전송할 수 있었던 호출기를 통해 ‘486(사랑해)’‘7942(친구사이)’‘8255(빨리오오)’‘1004(천사)’ 등 메시지가 10대부터 30,40대까지 폭넓게 쓰였다. 비슷한 때 하이텔과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대표되는 PC통신이 대중에 확산되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더 늘어났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화선으로 연결된 통신비용을 아끼기 위해 줄임말을 많이 쓰게 된 것. ‘안녕하세요’의 줄임말인 ‘안냐세요’와 ‘반갑습니다.’를 뜻하는 ‘방가’를 비롯해 ‘ㄱㅅ(감사)’‘ㅊㅋ(축하)’‘냉무(내용없음)’‘강추(강력추천)’‘드뎌(드디어)’‘글구(그리고)’‘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등이 대표적이다. 반가움을 뜻하는 ‘하이루’와 대화방에 다시 들어온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리하이’ 등 신조어도 생겼다. 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제2세대로 진화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네티즌’, 타인의 글에 붙이는 자신의 의견인 ‘덧글’과 ‘답글’, 악의적으로 덧글을 다는 사람을 일컫는 ‘악플러’ 등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함께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도 가상공간 언어가 진보하는 데 한몫했다. 무언가를 살필 때 ‘옵서버(정찰용 캐릭터)로 본다.’, 다쳐서 치료할 때는 ‘메딕(치료 캐릭터) 불러라.’ 등의 게임 문장이 일상 생활에서 버젓이 사용됐다.‘포트리스’라는 게임에서 여러 캐릭터가 한 캐릭터에게 공격을 가한다는 의미인 ‘다굴하다.’란 단어가 가상공간 사전에 포함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 공동구매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정보 공유 사이트로 성격이 바뀐 ‘디시인사이드’가 인기를 끌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더 이해하기 힘든 세계로 빠져들었다. 기분이 좋거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할 때 느끼는 감정을 대신해 ‘아’, 돈을 함부로 쓰는 행위를 두고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등 표현이 사용됐다. 드라마나 만화, 영화 등 하나의 콘텐츠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 ‘폐인’,‘위협하다.’는 의미를 가진 ‘방법하다.’,‘당신이 최고’라는 의미인 ‘원츄’ 등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하삼체’가 유행이다.‘하삼체’는 말끝마다 ‘삼’자를 붙이는 것으로 ‘밥먹었어?’를 ‘밥먹었삼?’ 등으로 쓰는 말투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의자에 파묻혀 대본(臺本)을 읽다가 그걸 무릎위에 놓은 채 잠이 들었던 모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나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만진다.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 사무실 안. 연극 대본을 읽다가 잠이 든 한 여배우의 잠과 잠 뒤의 화장은 보는 사람의 마을을 「센티멘털」하게 만들려고 하는 구석이 있다. 극본은 오태석(吳泰錫)작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김혜자(金惠子·28)는 이 연극에서 「히로인」 변이순역을 맡게된다. 극단 실험극장의 제20회 무대인 이 작품은 6월20일부터 24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김혜자는 최지숙(崔芝淑)과 더불어 이 땅 연극계에 있어서의 청춘의 「심벌」이자 가장 사랑받는 25대여배우중의 하나(老役을 많이 맡는 여운계(呂運計)의 연기력을 포함해서). 백성희(白星姬) 나옥주(羅玉珠)의 계보로 이어지는 1급의 배우의 「바통」계승을 착실히 닦고 있다.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안한다기 보다도 천성으로 할 줄을 모르고 성실한 여자라는 것이 연극계의 일반적인 평인데 예컨데 누가 남의 욕을 하면서 『같이 욕하자』는 표정으로 金양을 쳐다보면 『전 몰라요』라는 말 밖에는 못한단다. 그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역시 천성. 金양이 처음 무대에 선 것은 23세 되던 62년 민중극장(民衆劇場) 창립공연으로 올린 『달걀』(페르시앙·마르소作). 경기여고 선배인 권영주(權寧珠)씨의 권유로 무대에 섰다. 『해보라고 해서 그냥 했는데 해보니까 참 좋아서 그냥 계속했어요』 그러니까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굉장, 단단한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또는 절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담담하기 짝이 없다 못해 시들해 보이기 까지 하는 어투. 「민중」에서 『국물 있사옵니다』 『토끼와 포수』 『도적들의 무도회』등에 출연했고 자유극장(自由劇場)으로 옮겨 『따라지의 향연』 『피크닉 작전』 『神의 대리인』 『해녀 뭍에 오르다』등에 출연. 실험극장에 오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등에 출연하면서 그 재능을 평가 받았다. 그 동안 주역을 맡은 연극이 『피크닉 작전』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제일 애착이 가는 역은 『국물…』에서의 창부(현소희) 역인데 『왜 좋은지 모르지만』 역시 그냥 좋다. 『사할린스크…』의 「도시꼬」역도. 이번의 『유다여 닭이 울기전에』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서로 팔아 먹는 배신의 「드라마」이자 심층심리의 어떤 진실을 그린 것. 지금까지의 인습적인 연기「테크닉」과는 달리 가령「실망」같은 걸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목의 관절이 딱 꺾인다거나 또는 뒤로 나가자빠지는 장면 등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낼지 걱정이라는 이야기. 어떻든 어색·딱딱이라는 때는 거의 완전히 벗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맑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는 사람을 삼키기 시작한 김혜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톤」을 보여주는 타고난 배우라는 느낌. 한편 KBS-TV 1기생으로 들어갔다가 TV출연을 4년간 쉬었고 다시 시작한 것이 재작년. 『무죄』 『탑』 『여고 동창생』 『2백50조』 『역류(逆流)』 『나는 참새올시다』 『잡았네요』 『아홉명이 찾는 여인』등에 출연. 현재는 『그림자』에 출연중이다. 김혜자는 부군 임종찬(林鍾璨·40)씨와의 사이에 1男을 둔 어머니. 『아빠는 밀어주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아요. 안하는 걸 속으로 바라고 있겠지만, 말해봤자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가만히 있겠죠 뭐. 집에서도 대본을 읽고 있으면 아이가 같이 놀자고 칭얼대요』 제2회 한국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수상. 주량은 남들 말로는 맥주 1병이고 자신이 말한다면 1「컵」정도.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구청장 현장인터뷰] 유영 강서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유영 강서구청장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를 찾았는데 강서구 자원봉사센터를 적극 추천했어요.” 양천구 목동에 사는 이계향(45)씨는 거주지가 아닌데도 강서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일한다. 이처럼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자원봉사자 관리와 운영에서 강서구가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강서구는 서울시 자원봉사인센티브 평가에서 5개구에 주는 우수상을 3년 연속 받았다. 현재 강서구민 1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자원봉사원으로 등록,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강서구 자원봉사센터는 1995년 유영 현 강서구청장이 민선 1기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졌다. 유 구청장은 “미국에서 자주 드나들었던 도서관에 직원이 200∼300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 2∼3명만 도서관 정식 직원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면서 “미국인의 절반이상이 자원봉사자로 활동, 사회에 기여하면서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미국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고 자원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어 “유학생 때 알게 됐던 선진국의 자원봉사를 우리나라에서도 이뤄보고 싶어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강서구는 서울에서 저소득계층이 두 번째로 많은 자치구여서 시범실시를 하기에도 적합했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바쁜 일정에도 구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자원봉사센터를 자주 들른다. 지난 3일에도 유 구청장은 자원봉사센터를 찾았다. 단위봉사대인 실타래와 염창동 자원봉사부녀회의 간담회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 간담회는 자원봉사를 통해 느낀 소감 등을 함께 나누는 시간. 이들은 주로 영등포역 주변에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거나 미인가시설에서 노인을 돕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다소 예상밖이었다. 봉사활동과 가정의 화목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생인 재훈이가 봉사활동을 한 뒤 남편과 내 말을 잘 따라요.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을 만나면 부모님의 고마움을 느낀대요.”“남편도 봉사활동하겠답니다. 엄마랑 애들이 봉사활동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니까 끼지 못 해 속상하답니다.” 실제 처음엔 자원봉사자 가운데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봉사활동점수를 얻기 위해 자녀와 함께 참여한 학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점수가 아닌 가족간의 공통 관심사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유 구청장은 “요즘 학생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고 고생이 많다.”면서 “그러나 학생들의 인성교육에는 자원봉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거들었다. 11년 전 자원봉사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센터에 가입한 10개 종합복지관에 속한 봉사원 수는 모두 800여명. 현재는 5만 5000여명이 활동중이다. 강서구민이 55만 20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10명중 1명은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유 구청장은 자원봉사자 수가 급증한 배경에 대해 자원봉사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구민간의 입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센터에는 늘 자원봉사의 손을 필요로 하는 복지관과 시설, 종교단체 등 모두 46곳과 자원봉사를 원하지만 찾아갈 곳을 잘 모르는 중산층의 가족 등 봉사자들이 등록돼 있다.”면서 “월 한차례 발행되는 구정소식지 까치뉴스와 입소문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센터는 자원봉사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유 구청장은 “전국 30여개 자치단체가 이 네트워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부 예산만으로는 영세민을 돕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내 고장은 내 손으로 일군다.’는 자원봉사자의 활동이 잘 이뤄질 때 주민들의 내 고장 사랑이 생겨 선진국처럼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이뤄진다.”며 행정 철학의 일단을 내비쳤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48년 전남 여수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외교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국제정치경제학 박사 ▲약력 서울대 총학생회장, 펜실베이니아대 외교연구원,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연구조정실장, 재무부 관세심의위원, 경제기획원 경제개발계획 자문위원, 민선1기 강서구청장, 펜실베이니아대 동아시아학과 초빙교수, 민선3기 강서구청장 ▲가족 황남채씨와 1남 1녀 ▲취미 등산 ▲기호음식 김치찌개 ▲주량 소주 한 병 ▲애창곡 애모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동숙의 노래’로 가수 데뷔 40년 문주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동숙의 노래’로 가수 데뷔 40년 문주란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노래가 없는 인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온갖 시름을 어찌 달래고 오는 백발과 가는 세월을 무엇으로 잠시 잡아본단 말인가. 에구, 속절없음이리라. 그러기에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노래는 늘 우리 곁에서 추억과 인생을 이야기하겠지…. 지난 14일 저녁 8시.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북한강가에 위치한 한 라이브 카페.100여평 넓이의 홀 안에는 남녀노소들로 꽉 차 있었다. 잠시후 살갗색깔 바탕에 작은 구슬방울 반짝이가 박혀 있는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어깨선이 확연히 드러난데다 조명빛을 받아서인지 얼핏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가냘픈 모습이었다.‘쁘바빠∼앙’ 하는 색소폰 반주가 나오자 요란한 박수소리와 함께 여인이 노래한다. 익숙한 목소리,‘동숙의 노래’였다. 특유의 저음인 알토인가 싶더니 어느새 소프라노까지 사뿐사뿐 넘나든다. 이어 추억의 ‘카사비앙카’를 부른다. 얼마전 인기 드라마 ‘황금사과’의 주제곡으로 젊은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곡. 박수가 끊이질 않는다. 여인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로 대신한다. 노래 몇 자락을 쫙 깔아 흥을 돋운 여인은 “날씨도 추운데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이 했지예. 대신 마 신청곡을 많이 주시면 열심히 불러드리겠심니더.”라고 인사한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쪽지가 쇄도한다. 여인은 이를 받아들더니 “어디보자,‘낙조’‘백치아다다’‘공항의 이별’‘돌지 않는 풍차’‘과거를 묻지 마세요’‘가슴아프게’…. 우와 이렇게 많이라요? 오늘 죽었심니더.”라며 무대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연출한다. 한바탕 웃음이 쏟아진다. “반갑습니다.6년 전 이곳에 왔어예. 호미로 풀 베고, 반은 속세를 떠나 있지예. 하지만 매주 토요일은 팬들과 이렇게 만나는 날로 정했지예.” 이때 손님 중 한 사람이 불쑥 나이를 묻는다.“아따 보소, 연예인 나이는 거꾸로 먹는기라예. 오십하나믄 오십, 마흔아홉, 마흔여덟으로 말이지예. 노래나 듣지 나이는 왜 묻는교.”라고 받아넘긴다. 이렇게 1시간30분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게 노래와 웃음이 가득가득 이어진다. 가수 문주란씨. 데뷔곡 ‘동숙의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올해로 발표된 지 꼭 40년째를 맞는다.40대 이상의 팬들에겐 여전히 애창되는 곡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로 젊은이들 사이에도 많이 불려져 폭넓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문씨는 6년 전 지금의 청평 집(2층)을 마련하고 아래층에 라이브 카페 ‘문주란 뮤즈클럽’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매주 토요일 ‘만남의 무대’를 결심했던 것. 문씨는 또 워낙 불심이 깊어 2층에 부처를 모시고 살면서 되도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더해왔다. 이런 문씨가 오는 5월 신곡을 낼 예정이다. 신곡의 주제는 인생을 관조하면서 음미해보는 내용으로 1997년 ‘굿바이 홍콩’ 이후 10년만에 신곡을 발표하는 셈이다. 청평에서 문씨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동숙의 노래’에 대한 감회 얘기가 먼저 나왔다.“중학생 때 안 불렀습니껴. 나이가 너무 어려 방송을 내보내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도 많았지예.”라고 회고한다. 노래 속의 동숙은? “원래 영화 ‘최후전선 180리’의 주제가였지예. 여자 주인공인 바로 동숙이라예.”라고 대답한다. 중1 때부터 ‘데니보이’ 같은 노래를 곧잘 불렀단다. 부산 MBC노래자랑에서 연속해서 몇주 동안 우승하자 ‘덕수궁 돌담길’과 ‘바보처럼 울었다’로 잘 알려진 진송남씨가 “12살 아이가 목소리 굵고 노래를 썩 잘 부른다.”고 호평을 했다. 이에 한 흥행업자가 부산으로 내려와 문주란을 무작정 서울로 데리고 온다. 어린 나이에 낯선 서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무렵 특유의 저음 목소리에 탄복한 작곡가 백영호씨가 맞춤형 노래를 작곡, 선물한 것이 바로 ‘동숙의 노래’였다. 당시를 잠시 회상하던 문씨에게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어린 나이에 데뷔해 지금은 이렇게 변하지 않았는교. 돌아보건데 가수라는 명찰을 달고, 가슴깊이 삶을 얘기하듯이 노래해 왔지예. 신세대 노래와 비교해보면 유치할지 몰라도 말입니더.”라고 했다. 이어 “요즘에는 다 비주얼 위주가 아닝교. 화려한 치장에 춤 위주로 노래를 부르고…,(이런 노래들이)세월이 흘러도 과연 우리 가슴에 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해본다. 또한 “솔로보다는 그룹으로 많이 나오지예. 그러다 보면 개성을 잘 몰라예. 가수 이름인지, 노래 제목인지도 헷갈리고. 세대가 변해도 인간이 가는 인생길은 똑같은 거 아닝교.”라고 했다.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배가수로서 후배에 대한 충고와 아쉬움이 동시에 담겨져 있으리라. 청평에서의 삶이 궁금했다. 스님처럼 산다는 즉답이 나온다. 조용한 곳이라 고독에 몸부림칠 때도 있지만 부처 앞에서 반야심경과 천수경을 외우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가끔 친언니가 드나들면서 말벗을 해주지만 애견 네마리(꼬돌이 뽀순이 루비 등)가 자식처럼 항상 곁에 있어 위안을 삼는다.“비가 부슬부슬 올 때 허전하고 고독에 빠지죠. 그럴 때 가끔 서울로 나가 쇼핑도 하지예.”라고 했다. 혹 술친구는? “박일남씨가 ‘주란아 한잔 하자.’고 전화를 주지예. 남진씨도 그렇고요.”라고 귀띔했다. 왜 결혼을 안 했느냐는 질문에 “첫단추를 잘못 끼웠지예. 성격이 쾌활한 편이지만 만가지 복을 주지는 않았어예. 남자들한테 환멸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인간 문주란이 아닌 가수 문주란으로 다들 접근했심니더. 진실이 없는기라예. 오히려 혼자 있는게 편하다는 생각을 했지예.”라고 거침없이 나온다. 아울러 “기쁨과 슬픔은 마음 먹기에 달렸지예.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장 차이 아닝교. 상대방을 이해하고 노력하면 만사 그만이라예.”라고 나름대로 불심의 경지를 피력한다. 밤무대 출연 여부를 묻자 “절대 안 나가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아요.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멋있게 가느냐가 중요하지예.”라고 목소리를 약간 높인다. 자존심인지 모르겠지만 늙어가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기가 싫어 방송출연도 안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젊었을 적 이미지로 남고 싶은 욕망도 자신을 붙들어멨단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올해는 꼭 신곡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수 데뷔 40년을 맞기에 팬들을 위해 최소한의 보답을 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했다. 현재 작곡가 김희갑씨 등 여러 곡을 받아 검토 중이며 기왕지사 문주란이 살아 있다는, 존재의 이유를 다시 한번 드러내보이겠다는 각오다. 몸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 않으냐고 했더니 “소식(小食)이라예. 집에서 스트레칭을 자주하지예. 요즘에는 담배를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어예.”라며 웃는다. 문씨는 부산 서면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삼촌이 한일합섬 창설멤버였다. 아버지는 한량소리를 들을 정도로 노래와 춤솜씨가 좋았다. 자식들 중 문씨가 끼를 유일하게 이어받았다. 어릴 적 서울에 올라와 고생하면서 22살에 해선 안될 사랑에 빠졌다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기도 했다. 자신이 부른 곡 중 가장 아끼는 노래는 ‘백치 아다다’‘초우’‘동숙의 노래’‘파란 이별의 글씨’ 등 대부분 쓸쓸한 노래를 꼽는다. 한때 배호씨와도 절친해 노래를 자주 바꿔부르기도 했다며 잠시 회상에 젖어본다. 지난해 병마와 싸우는 작곡가 박춘석씨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문주란 뮤즈클럽을 찾았다. 둘은 벽에 걸린 왕년의 사진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다. 문씨는 이때 “선생님, 사람은 가지만 명곡은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남아예.”라고 위로했다. 문씨는 요즘 한 템포 느리게 사는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허락되면 네팔 참선여행을 꼭 다녀올 생각이다. “기대하세요. 올해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좋아하는 팬들과 함께 춤과 노래의 향연을 멋있게 펼칠 생각입니더.”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부산 서면 출생 ▲중학 1학년 때 부산 MBC 노래자랑 우승 ▲1966년 2월 ‘동숙의 노래’로 가수데뷔 ■ 대표곡 ▲타인들(66년) ▲돌지 않는 풍차(67년) ▲낙조(67년) ▲카사비앙카(68년) ▲별빛속의 연가(69년) ▲주란꽃(69년) ▲백치아다다(70년대) ▲초우(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 부르스(71년) ▲공항의 이별(72년)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92년) ▲굿바이 홍콩(97년) ▲이밖에 공항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나하나의 사랑, 과거를 묻지 마세요, 꼭 필요합니다 등 수십곡
  •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420대1 경쟁 뚫은 日모녀 한류스타 동경해 어학연수

    한국을 배우려고 한류스타의 나라에 유학 온 일본인 모녀가 있다. 구보타 가즈코(51)·아야노(17) 모녀. 히로시마에서 온 이들은 지난 9일부터 3개월 과정으로 고려대 한국어문화센터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최고령, 딸은 최연소 학생 이들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끈 것은 지난해 일본내 한류전문 출판사가 주최한 한국어 모녀 어학연수 희망자 공모. 한쌍의 모녀에게 3개월간 학비와 체류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 한국 생활을 날마다 일기로 적어 사진과 함께 무선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조건이었다. 평소 무선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해 온 ‘한류 마니아’ 아야노양이 공모에 참가하자고 엄마를 졸랐다.3차례 심사를 거쳐 420여쌍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의 영예를 안았다. 딸은 지난해 2월부터 틈틈이 한국말을 공부해 왔고 엄마는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반이 서로 다르다.“우리 딸이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죠.‘이런 건 제때 제때 외웠어야지.’‘이건 활용법이 틀렸잖아.’라면서 어찌나 무섭게 혼내는지.” 아야노양은 가장 어린데다 성격이 활달해 반에서 인기가 좋다.“일본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들으러 가도 아줌마나 아저씨들뿐이었어요. 이번에 한국에서 나이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돌아가고 싶어요.” 가즈코씨는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워낙 한국어에 대한 기초가 없어 처음에는 “몰라요.”만 연발하며 당황해 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게 마냥 뿌듯하다.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간판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신기해 한다. ●딸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선생님 이들이 한국에 빠진 것은 2004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부터였다. 드라마 ‘풀하우스’와 ‘아름다운 날들’에서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류스타 중에 엄마는 강동원을, 딸은 류시원을 가장 좋아한다.‘욘사마’(배용준)는 자기들 취향이 아니란다. 이번 한국행에 앞서 가즈코씨는 가슴앓이가 컸다.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기 위해 오랫동안 해온 간호사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한국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과 한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일은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딸에게는 이번 연수가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50대 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고요. 결국 남편도 1주일 만에 화를 풀더군요.” 가즈코씨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어려워져 걱정”이라면서 “우리 모녀를 보고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야노양은 “대학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공부를 해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모녀는 20일 아침 일찍 강릉에 현장 학습을 떠났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줄기세포 다시 공방] “줄기세포 굶길수 없어 밤낮 바뀐 지킴이 생활”

    [줄기세포 다시 공방] “줄기세포 굶길수 없어 밤낮 바뀐 지킴이 생활”

    황우석 교수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발표를 하루 앞둔 9일 밤 10시. 서울 역삼동 차병원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는 여전히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어느 연구실이든 월화수목금금금” 각 연구동에는 10명 이상이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현미경을 들여다 보며 세포와 씨름을 하는 사람에서 배양 중인 세포를 시간 단위로 확인하는 사람까지 연구실은 조용하면서도 분주했다. 자리가 부족해 복도에 놓여진 70여대의 기계들도 연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지만 당연한 일상이라는 표정이다. 연구실은 사람이 아닌 ‘세포의 리듬’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연구원들은 “주말이라고 세포를 굶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세포를 실험하는 곳은 어느 곳이나 월화수목금금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병원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는 2000년 3월 문을 열었다. 정형민 소장을 비롯해 20명의 교수진과 122명의 연구원이 있다. 곧 통합 줄기세포연구센터로 이름이 바뀌는 이곳의 연구 분야는 크게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태아줄기세포로 나뉜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겁니다. 기계가 좋아져 사람이 직접 할 일이 많이 줄었죠. 누군가 24시간 지켜 봐야 했던 몇 년 전을 생각하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요.” 황우석 교수 사태에 대해 묻자 박규형(31·박사과정) 연구원은 “연구자라면 할 줄 아는 것과 해 본 것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당분간 한국 과학자들이 고생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자정능력을 보여준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정으로 예정된 연구회의를 위해 자기 방을 지키고 있던 정 소장은 “앞으로는 배아줄기세포든 성체줄기세포든 균형있게 국가에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시간과 지원이 있다면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새벽부터 도축장으로 출근 국내 줄기세포 연구기관들은 황우석 교수 파문에 아랑곳없이 세포·현미경과 씨름하며 ‘인류 난치병 극복’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또 다른 국내 대표적 줄기세포 연구기관인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들의 하루는 남다르다. 매주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새벽 이른 시간 서울 가락동 소 도축장으로 출근한다. 실험에 사람의 난자 대신, 이와 가장 흡사한 소의 난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박세필 소장을 비롯해 16명. 다른 연구소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신경세포 쪽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라 문제는 없다. 물론 동물복제, 불임연구, 배아냉동기술 등 다른 연구도 병행한다. 10일 오전 서울대 조사위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연구원들은 실험에만 집중했다. 박 소장은 “과장된 결과를 내놓기보다는 실제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 묵묵히 연구에만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구가 우선” “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10일 오후 늦게 찾은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기능성세포치료센터. 몇몇 연구원들이 실험 때문에 미처 챙기지 못한 점심 끼니를 컵라면과 김밥으로 때우고 있었다. 서울대 발표를 봤느냐고 묻자 이들은 “그게 오늘이었나. 우리는 밖에 비가 내리든 눈이 내리든 그저 연구만 할 뿐”이라고 답했다. 이곳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2004년 문을 열어 현재 성체줄기세포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배양용기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값만 수백만원이나 돼 실험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최대한 수면시간과 개인시간을 보장해 주고 있지만 세포에 생활 리듬을 맞추는 것은 여느 연구실과 다를 바가 없다. 오일환 소장은 “과학에서는 어느 분야든 성공이 보장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실용화될 수 있다는 것을 100여명의 교수와 연구원 모두 믿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기능대 “우린 취업난 몰라요”

    대졸자의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기능대학은 졸업 예정자의 84%가 취업에 성공, 타대학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기능대학(이사장 박용웅)은 5일 올해 졸업 예정자 6241명 중 3461명이 취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군입대, 진학 등 비취업자를 제외한 취업대상자 4127명의 84%에 해당된다. 취업된 곳은 11인 이상 5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37%로 가장 많았고,51인 이상 중소기업 31%,300인 이상 대기업도 10.1%인 354명이 입사했다. 특히 청주기능대학 정보통신시스템과의 경우 27명 전원이 취업한 데다 35%인 9명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처럼 기능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높은 것은 오전에는 이론, 오후에는 실습 위주로 수업이 이뤄져 산업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인력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측이 적극적으로 취업지원에 나서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도교수를 비롯, 산업체 인사, 선배, 졸업생이 후견인 또는 지도교사가 돼 재학생을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총력지원하고 있다. 박용웅 기능대학 이사장은 “취업난 속에 기능대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며 “오는 3월에는 학교명칭을 한국폴리텍으로 바꾸고 바이오기능대학, 항공기능대학 등 특성화된 학교도 개교된다.”고 밝혔다. 한편 기능대학은 산업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2년제 국책특수대학으로 전국 24개교에서 166개 학과가 개설, 운영되고 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오늘의 눈] 아이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는 나라/ 나길회 사회부 기자

    혼란스러웠다. 외동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애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는 평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형제의 소중함을 알고 ‘애들은 부모 아닌 본인하기 나름’이라고 믿는 기자를 엄마들은 순진하다 했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요. 꼭 조기교육 효과를 믿어서가 아니에요. 남들은 미리 다 배우고 학교 가는데 우리 애만 바보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저 남들만큼’이라는 내 나름의 잣대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애 둘이 아니라 하나도 버거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여기에 이들은 맞벌이하며 애 키우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유치원도 다니지 못해 외톨이가 된 박솔이양을 보면서 잠시나마 ‘돈 무서워’ 아이를 못 낳겠다고 생각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밤새 줄까지 서가면서 고급 유치원에 등록하는 엄마와 솔이양 부모의 고민을 어떻게 비교할까. 기자를 포함해 많은 부모들이 경쟁적으로 위만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현재 정부나 각 지자체가 실시하고 있는 출산장려 정책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동안 지원 금액이 현실성 없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솔이양 경우처럼 아이 하나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입장인 부모들로서는 셋째 출산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 아닌가. 서울신문 1월 4일자에 ‘금둥이, 굶둥이´ 기사가 나간 뒤 네티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내가 내 돈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지적에서부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 등 다양했다. 그럼에도 공통된 목소리는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교육의 기회만큼은 공평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사교육 없이도 솔이양 같은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아이 여럿 낳아 키우고 싶죠.”하나만 낳아 잘 기르는 게 최고라고 목소리 높였던 엄마들이 털어놓은 속내다. 형제·자매와 부대끼며 살아온 그들이 왜 그 소중함을 모르겠는가. 상위 2%든 하위 2%든 적어도 아이 하나는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교육과 출산장려정책의 출발점임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길회 사회부 기자 kkirina@seoul.co.kr
  •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빠의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최지운

    내일은 아빠와 제가 함께 시험을 보아요. 옆집에 사는 언니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워드프로세서 시험이 있거든요. 그런데 창피하게도 아빠는 저보다 급수가 낮은 3급을 본답니다. 저는 2급을 보는데 말이에요. “알트(Alt)키와 엔(N)키를 함께 누르면?” “새 문서가 펼쳐지지.” “인쇄할 때 누르는 단축키?” “아빠를 무시하니? 알트키 더하기 P키잖아.” “이건 모를 걸. 컨트롤(Ctrl)키와 브이(V)키를 동시에 누르면?” “어, 뭐더라. 오려두기인가?” “붙이기잖아, 아빠.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 솔직히 저는 아빠가 틀리길 바랐어요. 그래야 우리 선생님처럼 아빠에게 혼낼 수 있거든요. 아빠는 제가 수학 시험에서 20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혼날 때처럼 잔뜩 움츠린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계셨어요. 그걸 보곤 겉으론 화가 난 척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엄마는 제 2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받아도 언제든 웃으시며, “다음엔 잘 하거라.” 라고 자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도 감히 어머니 흉내를 내어 보았어요. “내일 시험은 잘 보세요, 아빠.” 아빠는 웃으시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 ‘던킨 도너츠’ 매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한 개씩 틀릴 때마다 도너츠 한 개씩 사주기로 했거든요. 그 날 전 도너츠 5개를 먹고도 4개나 더 남겼답니다. 아빠는 컴퓨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세요. 저는 컴퓨터로 밤마다 친구들과 만나 ‘카트라이더’도 하고 컴퓨터로 일기도 쓰고, 컴퓨터로 재미난 만화도 보는데 말이에요. 이메일도 없으세요. 언제는 아빠 회사 부장님께 급하게 보내야 하는 서류라며 저보고 타이핑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마침 ‘카트라이더’가 잘 되고 있어서 루찌를 한참 벌어들이고 있는 참이었는데 말이에요. “어떻게 나보다 컴퓨터를 더 몰라?” 이렇게 화를 내고 말았어요. 그런데 정작 아빠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계시는데 오히려 엄마가 절 크게 나무라셨답니다. “좋아, 나도 세미 따라 이번에 시험 보겠어.” 아빠가 워드프로세서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신 건 한 달 전쯤이에요. 제가 컴퓨터반 친구들과 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어요. “여보, 부장님께 또 소리 들으셨어요?” “자꾸 나보고 컴맹이라고 놀리잖아. 반드시 따서 부장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야.” 그래서 그 날부터 아빠는 저의 학생이 되었어요.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덕분에 도너츠는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아빠는 저보다 한 시간 일찍 시험을 보세요. 그래서 저와 헤어져 먼저 시험장에 들어가셨어요. 아빠는 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앉아 제 앞에서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두 손가락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시겠지요? 그래도 시간 안에 다 치고 나오셔야 할 텐데. 그런데 시험장을 나오시는 아빠의 표정이 밝아요. 시험을 잘 보신 모양이에요. 안타까워요. 도너츠를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아빠가 부장아저씨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쁘답니다. 아빠는 자격증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세요. 그리고 수시로 열어보면서 흐뭇해하신답니다. 이젠 귀찮게 메일 보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아요. 제 컴퓨터에서 문서를 친 다음 아빠의 이메일로 보내신답니다. 며칠 전부터는 저한테 ‘카트라이더’도 배우셔서 PC방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해요. 친구들은 그런 저를 부러워한답니다. 친구 아빠들은 게임한다고 화부터 내신대요. 비록 아빠랑 같이 하면 질 때가 더 많지만요. 전 아빠랑 게임할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늦은 밤,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아빠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말이에요. 엄마도 놀라서 물어보셨어요. “왜 이리 많이 마신 거예요? 무슨 괴로운 일 있으세요?” “나만 살아남았어, 나만. 다 잘렸어.” 그리곤 엉엉 우셨어요. 한 번도 저한테 우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는 아빠였거든요. 엄마가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인사 때 아빠의 부하직원들이 다 잘리셨대요. 아빠만 유일하게 빠지셨구요.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직원들과 못 마시는 술을 실컷 마셨대요. 한동안 아빠의 표정엔 먹구름이 가득했어요. 저랑 PC방에 같이 가지도 않으셨어요. 예전엔 혼자 ‘카트라이더’를 해도 재밌었는데 아빠랑 같이 한 뒤론 혼자하면 무지 재미가 없어요. 그러다 아빠가 문방구에서 엽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엽서를 사서 갖다드리자 하루 종일 거실에서 엽서를 쓰시고 계셨어요. “아빠, 밥 먹어.” 아빠가 식사하시는 틈을 타 전 몰래 식탁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향했어요. 아빠가 엽서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쓰시는지 궁금했거든요. 무척 낡아 보이는 만년필 옆으론 제가 사온 엽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어요. 맨 위에 있는 것을 펴보았어요. ‘진대리, 그동안 수고 많았네. 어딜 가든 대진물산과 동료들을 잊지 말고 하는 일마다 번창하길 빌겠네. 그동안 고마웠고 또한 미안하네.’ 다른 엽서들도 내용이 다 비슷했어요.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달랐구요. 그래서 고생하시는 아빠를 도와드리려고, “아빠, 내가 컴퓨터로 대신 쳐줄까?” 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아빠는, “아니, 나도 이젠 칠 수 있는 걸.”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맞아요, 아빠도 당당히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제가 그만 깜빡했어요. 그래서 대신 아빠가 쓴 엽서를 학교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갖다드리기로 했어요. “어머나, 글씨가 참 예쁘네. 정말 너희 아빠가 쓰신 거니?” 엄마가 주신 용돈을 저금할 때 자주 찾아가는 우체국 언니가 아빠의 엽서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글씨를 잘 쓰신 건가? 잘 모르겠지만 아빠를 칭찬하는 말이라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아빠가 이러니 너도 글씨가 참 예쁘겠다. 니 얼굴처럼.”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제 노트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어요. “엄마, 나도 아빠처럼 글씨 예쁜 거야?”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좀 더 정성껏 써야 되겠구나.” 속상했어요. 우체국 언니가 아빠 글씨 칭찬해 준 것처럼 엄마도 내 글씨를 칭찬해주기를 바랐거든요. “엄마, 나도 어떻게 하면 아빠처럼 글씨 예쁘게 쓸 수 있어?” “너도 아빠처럼 연필로 글을 써보렴.” “그러면 나도 잘 쓸 수 있어?” “그럼.” 그날 전 아빠한테 일기장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아빠는 마시마로가 귀엽게 웃고 있는 스프링노트를 사 주셨어요. 전 거기에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왜 컴퓨터에다 안 쓰니?” “나도 아빠처럼 예쁜 글씨를 쓸 거야. 아빠도 옛날처럼 다시 펜으로 써.” “그럼 부장아저씨한테 혼나.” “부장아저씨 되게 못 됐다.” 아빠는 말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밝게 웃으셨답니다. 최지운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어떻게 지내세요] 이북5도청 평안북도 지사실서 만난 ‘영원한 아나운서’ 차인태 씨

    [어떻게 지내세요] 이북5도청 평안북도 지사실서 만난 ‘영원한 아나운서’ 차인태 씨

    “올해는 아시다시피 광복 60주년이자 분단 60주년입니다. 또 실향과 망향의 60년이기도 하지요.” ‘영원한 아나운서’로 친숙한 차인태(61)씨.1973∼90년까지 18년 동안 인기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진행했다. 또 권투와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생생하게 중계, 여전히 추억의 목소리로 남는다. 지난 98년 제주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직을 끝으로 30여년 몸담아온 방송계를 떠났다. 지난 주 인터뷰를 요청하자 “변변치 못한 사람인데 뭘 하느냐.”며 거절한다.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한 듯 수락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이북5도청의 평북지사 집무실. 차씨는 연말을 맞아 연하장 발송을 준비 중이었다.“남한에 거주하는 평북도민들에게 보낼 것”이라면서 우선 시장(1명)과 군수(19명), 그리고 174명의 읍·면장 등을 포함 700명쯤 된다고 했다. 이어 “2년전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로 있을 때 지사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면서 자신이 다섯살때인 48년, 의사였던 아버지 손을 잡고 월남했다고 회고했다. 차 지사의 고향은 평북 압록강변에 위치한 벽동(碧潼)으로 중국과 마주하고 있다. 자신의 집무실에 중국쪽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이 사진을 보면서 가끔 고행생각을 해보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고향에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만약 살아계시다면 100세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현재 남한에는 2세까지 포함해 평북출신이 모두 118만명에 이른다.”면서 1세대인 경우 이북5도청을 자주 방문해 남북회담과 주변 4개국 정세 등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통일회관에서는 소년소녀 가장들과 자매결연을 갖는 일, 또 한달에 한번씩 통일학교를 열어 탈북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직전 80세 넘은 한 실향민과 만난 일을 잠시 들려준다. 실향민 지사님, 방송국에 오래 계셨지요. 차 지사 예. 실향민 그렇다면 이 얘기 꼭 좀 전해주시라요. 방송국 사람들은 왜 추석이나 음력설만 되면 한결같이 귀성전쟁이라는 표현을 씁네까. 주차장화된 고속도로,2000만명 대이동, 부산까지 12시간, 매표소에 중계차를 띄우고 그것도 모자라 헬기까지 동원합네다. 갈 곳 없는 우리는 그걸 볼 때마다 응어리와 앙금만 더해갑네다. 제발 자제 좀 해달라고 말입네다. 차 지사는 방송국 재직때 TV와 라디오를 포함,100여개의 프로를 진행했다. 그중 ‘장학퀴즈’ ‘뉴스데스크’ ‘아침살롱’ ‘모닝쇼’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요즘 후배들이 사명감을 갖고 진행했으면 좋겠는데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한 뒤,“보지 않는 TV가 없고 듣지 않는 라디오가 없다. 또 안 읽는 신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비유했다. 최근 MBC PD수첩 사태와 관련,“너무 아타깝다. 한 직장에 30년 넘게 일해온 선배로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차 지사는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첫째는 서울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둘째는 미국에서 해양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압구정동 자택에서 경원대 교수인 부인과 오붓하게 지낸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부드러운 동작·명상’심신의 건강’ 찾는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부드러운 동작·명상’심신의 건강’ 찾는다

    |파리 함혜리특파원|“눈을 감으세요. 지금까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든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세요. 호흡을 가다듬고 신체의 불편한 부분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잔잔한 바다, 저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상상하세요. 머릿속을 비우고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을 떠올려 보세요….” 파리에 있는 스포츠센터 포레스틸의 소프롤로지 시간. 강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주문’에 걸린 듯 강사의 말을 따라 조용히 명상의 세계로 빠져 든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추구 올해 38세인 로랑스. 엔지니어링 전문회사의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혼한 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직장생활, 육아 및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까지 겹쳐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심리상담도 해 보았고, 에어로빅으로 활력을 찾아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지친 몸과 마음은 자꾸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로랑스는 지난 여름 친구 권유로 에렌프리드 요법을 접하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동양의 기공체조 일종인 타이치(태극권)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부드러운 동작과 명상, 호흡은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 사이에 요즘 웰빙 체조가 색다른 건강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요가, 타이치, 기공 등 동양에서 기원된 기(氣) 체조부터 스트레칭, 보디 밸런스, 필라테스 등 서양식 체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소프롤로지, 펠덴크라이스, 에렌프리드 등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과학적 효능을 인정받고 있는 치료요법들도 웰빙 붐을 타고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서점에는 ‘치유의 심리·생리학’‘신체와 정신’‘신체를 깨우는 움직임들’‘중국 마사지의 비밀’‘명상’ 등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선(zen)에 입문하기, 웰빙과 대체의학, 다르게 살기 등 다양한 웰빙 페어들이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웰빙 체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발맞춰 포레스틸, 클럽메드 등 헬스클럽에서는 정기 강좌를 개설하고 일요일을 이용해 특별강좌를 마련하기도 한다. 체조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포레스틸 체육클럽의 필라테스 강사인 카리나는 “바쁜 도시생활에 지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심신의 안정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면서 “근육과 심폐기관에 자극을 주는 격렬한 운동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유연성을 기르고 균형감각을 찾게 해주는 체조가 인기”라고 말했다. ●신체와 정신은 ‘하나’ 전통적인 체조와 구분하기 위해 ‘정적인 체조’라고도 불리는 웰빙 체조는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방식이 약간씩 다를 뿐 기본 원리는 같다. 부드러운 동작과 호흡, 그리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찾는다는 것이다. 웰빙개념을 도입한 체조들이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동양식 명상과 서양식 치료요법을 접목해 꾸준히 할 경우 균형성, 내구력, 유연성을 키워주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무심(無心)의 상태가 되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명상은 몸 안의 ‘탁한 기운’을 없애는 물리적 효과도 가져다 준다. 탁한 기운은 주로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데 몸에 쌓일 경우 질병을 유발하고 잡념 때문에 마음의 병을 만든다. 명상으로 이런 탁한 기운을 빼냄으로써 몸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열량소비 커 다이어트 효과 여기에 해부학과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 서양의 과학적 학문이 추가됐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웰빙체조는 또 동작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신체조건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운동선수 출신인 프랑수아는 “펠덴크라이스 요법을 시작한 뒤 내 신체에 대해 다르게 인식하게 됐다. 관절이 훨씬 유연해지고, 특히 마음이 평온하고 긴장감이 완화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웰빙 체조는 동작이 단순해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정확한 동작을 할 경우 근력과 관절이 강화되고 균형감각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며 “열량 소비가 크기 때문에 꾸준히 실시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일에는 필라테스를 하고 일요일에는 소프롤로지 강의에 참가한다는 클로딘(26·교사)은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운동을 시작했지만 꾸준히 참석하면서 몸의 균형이 잡히고 마음이 조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월요일을 맞는 것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일의 능률도 훨씬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상쾌한 몸·마음 스트레스 몰라요” |파리 함혜리특파원|웰빙 체조를 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정신세계에 집중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파리 7대학 동양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마누엘(20)도 그 중의 한 명. 두달째 파리에 있는 명상센터 마음수련원에 다니고 있는 그는 “아직 초보단계여서 명상의 세계를 깊이 체험하지 못했지만 전에 비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 것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수련원의 전체 8과정 가운데 1과정을 마친 상태다.2과정까지가 마음을 비우고 나와 우주가 하나임을 인식하는 단계에 속한다. 마누엘은 고등학교 때 쿵푸를 배우면서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어를 하는 프랑스인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어를 전공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명상을 시작한 동기는 학업에 따른 과중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보고서도 내야 하고, 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졸업논문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명상을 시작하고 전에 갖고 있던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면서 “아마도 내 자신이 변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가부좌를 하고 두시간 이상 버티는 것도 힘들지만 매일매일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조용히 미소지었다. lotus@ seoul.co.kr ■ 새롭게 각광받는 웰빙체조 4選 21세기의 새로운 건강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웰빙 체조로는 에렌프리드 체조, 펠덴크라이스 요법, 소프롤로지, 필라테스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에렌프리드(Ehrenfried) 체조 모든 신체의 움직임은 다른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원리에 따라 아주 느리면서도 단순한 동작을 리듬에 맞춰 반복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찾아 자연치유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운동요법. 독일 태생의 의사인 릴리 에렌프리드(1896∼1994) 박사가 1933년 파리로 이주한 뒤 스승인 엘자 긴들러(1885∼1961) 박사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운동치료사들인 제자들과 함께 발전시켰다. 우리 신체를 초기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찾게 함으로써 잘못된 습관과 동작, 스트레스 등으로 얽매어 있던 자신의 잠재력을 해방시키고 심신의 평정을 찾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펠덴크라이스(Feldenkreis) 요법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물리학자인 모쉬 펠덴크라이스(1903∼1984) 박사가 무릎 부상으로 심하게 손상된 자신의 다리를 직접 고치기 위해 물리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해부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치료법이자 보조 운동법. 인체구조에 가장 적합한 부드러운 자세와 동작들을 통해 뇌의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신체의 근육활동을 개선하고 정신적 안정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 눕거나 앉아서 양팔, 혹은 양다리의 길이를 비교해 보는 식의 아주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이 요법은 신체에 균형을 찾아주고 의식의 세계를 넓혀 주기 때문에 머리와 목, 어깨의 만성적 통증을 완화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소프롤로지(Sophrologie) 콜롬비아 태생의 정신분석학자인 알퐁소 카이세도 교수가 최면치료법에 인도의 요가, 티베트 불교의 명상, 일본의 선 등 동양의 정신수양법을 접목시켜 만든 종합적인 의식의 과학.1960년 바르셀로나에 소프롤로지 클리닉을 개설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프롤로지는 눈을 감은 채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의식을 집중하며 근육을 이완하는 것으로 시작해 증오, 고통, 긴장,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린 뒤 이를 몰아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특히 분만을 앞둔 산모, 큰 수술을 앞둔 환자, 스포츠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 시험을 앞둔 수험생, 면접을 앞둔 입사지원자 등에게 심리안정의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에는 소프롤로지 분만법이 소개돼 있다. ●필라테스(Pilates) 1900년대 초 독일의 조제프 필라테스에 의해 처음 개발된 정신 수련법이자 호흡법으로 근육 운동을 뜻한다. 서양의 스트레칭과 중국의 기예, 인도의 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동기법을 적용해 근육강화, 통증완화 등 신체적인 효과뿐 아니라 정신 수양, 명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원래 재활치료를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되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특정한 호흡과 동작으로 신체의 중심을 안정화시키는 운동이다.
  • 화상상봉의 딜레마

    인천의 아버지 “너희들 가르치지 못하고 나만 여기 와 미안하다.” 평양의 아들 “아버지, 울지 말라요. 울지 말라요.” 인천의 아버지 “내 너희들 꼭 한번 만나보고 죽을란다.” 24일 진행된 제2차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에서 남측의 김근철(88)씨는 북녘의 아들을 화면으로 보며 “너희들 꼭 한번 만나보고…”라는 말을 한이 서린 듯 내뱉었다. 만남이면서도 만남이 아닌 ‘반쪽짜리 상봉’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최대한 많은 이산가족 상봉 취지 퇴색 대면상봉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화상상봉은, 최대한 많은 이산가족들에게 생전에 상봉의 기쁨을 안겨주려는 취지에서 지난 8월 처음 실시됐다. 하지만 이 마저도 제도화되지 못하고 극히 일부 가족이 제한된 시간내에 갖는 ‘이벤트’처럼 되면서 전체 이산가족의 애절함만 더하는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날 부산 상봉장에 나온 김병수(91) 할아버지가 노환 탓에 화면에 나온 북측 아들 김옥경씨를 알아보지 못하고 하염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죄의식마저 느끼게 할 정도였다.●北측 화상상봉 선호… `대면´ 폐지 우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날 “내년부터는 분기별(연 4차례)로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화상상봉 제도화’ 발언은 석달전 1차 화상상봉 때도 했던 말이다. 한 총재는 특히 “북측도 대면상봉보다는 화상상봉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혹시 북측이 화상상봉을 대면상봉의 대체개념으로 의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북측으로서는 이산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화면을 통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화상상봉을 더 선호할 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북측 상봉장에 나온 이산가족의 다수는 ‘김정일 찬양’ 등 정치적 발언을 1차 상봉때보다 훨씬 더 많이 해 어색한 장면이 수시로 연출됐다. 예컨대 북녘의 동생 이영렬(73)씨가 “6·15정상회담 정신 아래 통일해야 돼.”라고 하자 남측 형 이수렬(76)씨는 “형님 고모 한 분이 있어. 알지?”라며 말을 돌렸다. 동생이 ‘통일’‘장군님’을 거듭하자 형은 물을 따라 마시고 함께 나온 아들 용일(46)씨와 딸 선주(40)씨도 시선을 돌리는 등 ‘딴청’을 피웠다.공동취재단·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여자에 미쳤나 낚시에 미쳤지

    여자에 미쳤나 낚시에 미쳤지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1주일에 두 번 이상 낚시질을 다닌다. 그러니까 결혼한지 만 18년이라지만 실상 남편과 산 것은 12년 남짓. 나머지 6년은 붕어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살아온 한 낚시 미망인이 있다. 이름은 이죽순(李竹順)(43). 낚시에 미쳐 사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대폿집을 차렸다. 옥호는『태공(太公)집』 - 강태공을 닮은 남편을 둔 때문이란다. 선볼 때 남편의 첫마디가 “난 낚시에 미친 사람이오”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茶洞) 17 큰 길가에 자리잡은「태공집」문턱을 넘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한쪽 벽 가득히 들어찬 어탁(魚拓)(실물 크기의 붕어·잉어 모양을 뜬 것)과 한시(漢詩)들. 그 어탁과 한시들엔 모두 조태원(趙泰元)(54)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바로 이 사람이「태공집」마나님의 남편이자 조력(釣歷:낚시경력) 30년의 명조사(名釣士)다. 천안서 태어나 20세 때부터 낚시에 맛을 들이기 시작, 온양서 5, 6년간 낚시점을 경영하다 13년 전에 상경, 종로4가에서 수도(首都)낚시회를 차렸다. 그러나 반도·조선「아케이드」가 생기자 장소를 옮겨「아케이드」낚시회로 이름을 바꿨다. 조씨가 낚시점을 그만둔 건 3년 전 일. 『「플라스틱」낚시대가 나오는 바람에 집어치웠읍죠. 거 뭐 찌나 깻묵이나 팔아선 입에 풀칠도 못하겠더군요』그래서 전재산을 처분, 마나님에게「태공집」을 차려주고 자신은 아예 조태공으로 나앉았다. 낚시 안가는 날은 바둑으로 소일하는 게 낙. 『가게에 붙어있어 보았자 무용지물인 걸요 뭐. 괜히 장사하는데 걸리적 거리기만 하죠』하는 게 태공집 마나님의 말씀. 그런 남편을 둔 게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천만에요. 낚시에 미친 게 얼마나 좋아요? 괜히 딴 남자들처럼 여자에 미치는 것보다 골백번 낫죠』하는 게 이 마음씨 너그러운 마나님의 말씀이시다. 이죽순씨가 조태원씨와 결혼한 건 이씨 나이 25세 때. 꼭 얼굴 두 번 보고 결혼식을 올렸단다. 선볼 때 조씨의 첫 마디가『난 낚시에 미친 사람입니다』 결혼 이튿날 눈치 수상해 낚시밥 만들어 주었더니 그러더니 결혼한지 사흘 만에 일요일이 왔다. 그 전날 밤부터「우물쭈물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서」모른 체 부엌에 나가 떡밥(낚시미끼)을 만들어 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낚시질 떠나고 없더란다. 이때부터 이씨의 낚시미망인 생활은 시작되었다.『여자가 귀찮아 한다고 집어치울 정도가 아니어서 18년 동안 군소리 한 번 없이』낚시질 뒷바라지를 해왔다. 낚시점을 차렸을 땐「김치 아줌마」로 낚시꾼들 세계에선 소문이 났다. 낚시대회가 있을 때마다 이씨는 큰 항아리 2개에 김치를 듬뿍 담아 보내곤 했는데 이 김치맛이 또한 신선맛. 그래서 낚시터 태공들은 이씨를 가리켜「김치 아줌마」로 불렀다고. 살다보니 떡밥이며 깻묵의 제조법 등 낚시에 필요한 지식은 모조리 갖추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밤은 꼬박 새우다시피 남편의 다음날 낚시준비를 해야 했고. 덕택에 월척(越尺)짜리 붕어나 2척이 넘는 잉어맛은 많이 보았단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먹어서 물려 버렸다고. 오히려 많이 잡아오는 게 귀찮을 지경. 태공집을 차린 건 꼭 3년 전. 옥호는 물론 딴 내부 장식 대신 어탁과 남편이 쓴 한시로 벽 하나를 채웠다. 그리곤 남편이 잡아온 붕어들을 조려 손님들에게「서비스」술안주로 내놓았다.『붕어조릴 땐 뼈가 녹아버리게 해야 해요. 그러자면 먼저 맹물에 1시간쯤 끓인 뒤 다시 간을 맞추어 조려야지요. 보통은 식초를 쓰는데 그러면 신맛이 나서 못써요』하는 게「태공집」마나님의 붕어 조리비법. 자연히「태공집」엔 낚시를 즐기는 손님들이 단골손님이다. 어떤 이는 낚시회 가입 절차를 물어오는가 하면 심지어 어느 저수지는 어디가 제일 고기 잘 물리는 곳인지 가르쳐 달라고 물어오기도. 이럴 땐「태공집」마나님은「들은 풍월로」아는 대로 정성껏 대답해 준단다. 모르는 것은 남편에게 물어 다음날 알려주기도. 대폿집 벽엔 남편의 어탁과 한시 붙어 제일 우스운 게 낚시 간다고 몇 천원씩 들여 떠났던 손님들이 겨우 송사리 몇 마리 잡아가지고 와선 집에 들어가기 미안하니 붕어 몇 마리 팔라는 것. 이런 손님들이 대개 초심자라는 것쯤은 아는 이 마나님은 남편이 두둑히 잡아 온 붕어들을 무보수로 분양해 준단다. 집에 돌아가 한껏 체면을 세운 그 낚시꾼이 다음날부터「태공집」단골손님이 되어버리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남편을 따라 몇 번 낚시질도 갔지요. 제일 처음 예당(禮塘)저수지에 갔을 땐 하루종일 겨우 잡은 게 새끼손가락 만한 붕어 두 마리였어요』 「태공집」벽에 붙인 어탁은 모두 7점. 두 자가 넘는 잉어가 셋, 월척 붕어가 네 점이다. 잉어 중 제일 큰 놈은 66년 8월 춘천「댐」에서 잡은 2척(尺) 6촌(寸) 8분(分)짜리. 붕어는 예당서 잡은 1척 3촌짜리가 최고다. 옆에 써붙인 한시들은 모두가 조씨의 자작으로 주제는 낚시. 그 중 2수(首)만 소개하면 - 愛竿一廻投湖時(애간일회투호시) 긴 낚시 한번 휘둘러 호수에 던지니 千憂萬難寸刻消(천우만난촌각소) 온갖 근심이 촌각에 사라지더라 山水絶是迹處江(산수절시적처강) 산수경치 좋은 강가 낚시터에 앉으니 釣樂情攘勝仙境(조락정양승선경) 낚시 즐거움이 仙境(선경)보다 낫구나 낚싯대 메고 온 손님 보면 남편 보는 것 같아 반가와 조씨가 밝히는 바로는『서풍이 살살 불고 기압이 조금 높은 날』이 태공들에겐 가장 바람직한 날씨라고. 그러나 날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리. 그래서 터를 잡는 눈이 곧 조정(釣丁)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조씨는 아예 예당저수지의 소위 명당 자리에 조대(釣臺) 10여 개를 만들어 두었단다. 호심(湖心)에 나가기 위해 자그마한 배도 한 척 마련해 두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낚아 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낚시도(道)라는 걸 몰라요. 아무 데나 가서 첨벙거리는 건 옆의 사람에겐 실례가 되거든요』하는 게 명조사 조씨의 말. 『낚싯대 메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마치 남편을 보는 것 같아 반가와요. 그래 친절히 하다 보면 손님들은 그 친절한 맛에 또 찾아오고요』이건「태공집」마나님의 말씀이다. 이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 -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남편과 인종지덕(忍從之德)의 아내 사이엔 건강히 자라난 2남 1녀가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4/13 특대호 제2권 15호 통권 제29호 ]
  •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김래원 “惡추억도 추억이다”

    배우 김래원이 연예 활동 중 ‘가출(?) 경험’을 처음 공개했다. 김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97년 연예계 데뷔 이후 작품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가 촬영을 코앞에 두고 부당하게 ‘퇴짜’를 받은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면서 “당시 충격과 좌절감으로 연락을 끊고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던 기억은 데뷔 초기인 19살때. 당시 그는 모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됐고, 한달 반 동안이나 배역을 연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시작 전날 감독으로부터 ‘배역이 바뀌었다.’는 황당한 연락을 듣고 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 그는 “전 배역을 통틀어 내가 오디션 점수 1등이었는데, 말 할 수 없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내 존재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모든 연락을 끊고 무작정 고속터미널로 향했단다.“바다로 가서 원양어선 타고 돈 벌어 올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없던 시절이었어요. 다행히도 터미널로 저를 잡으러 온 매니저에게 출발 직전 붙잡혔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지도 몰라요.(웃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래원 [미스터 소크라테스] 김래원은 표정이나 몸짓보다 말투로 더 잘 이해되는 배우다. 그는 느릿느릿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낯가림도 심하고, 말하기에 앞서 뭔가 생각하며 뜸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뜬금없는 대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은 말수이지만, 신중하고 조리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음성은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의 말투에 변화가 느껴졌다. 인터뷰 중간중간 목소리 톤을 높이기도 하고, 가끔은 질문하기도 전에 자신의 얘기부터 쏟아낸다. 무엇이 그의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걸까.10일 개봉하는 ‘미스터 소크라테스’(감독 최진원, 제작 커리지필름·오존필름)에서 180도 이미지 변신을 통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는 그를 만났다. #순수남에서 양아치로 김래원은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늘 따라다니던 순진무구한 미소의 꽃미남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구동혁. 지하철 노약자석에 떡하니 누워있다가 훈계하는 할아버지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고,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 용돈도 뜯어낸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쯤되면 패륜을 넘어 인간말종이라고 해야 할까. “의도한 변신이냐?”고 묻자 그가 씩 웃는다.“저도 이제는 다른 모습을 찾고 싶었어요. 귀엽고 장난기 있는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변화 하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나를 버린 첫 작품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나를 버릴 줄 아는 방법을 배웠다.”며 미소지었다. 이전까지는 촬영 전날 머릿속으로 연기 패턴을 다 그러놓고 현장에서는 감독의 요구와 충돌하며 고집을 앞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연기에 임했고, 그랬더니 더 큰 것을 얻었단다. “감독과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이번엔 감독이 요구하는 연기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죠. 제 머릿속으만 연기하면 ‘못해도 50점, 잘하면 70점’ 수준이지만, 감독님 믿고 하니 ‘잘하면 100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나를 버리는 연기 방식을 택할 거예요.”감독이 요구하는 ‘날것’ 그 이상 충분히 만족스런 연기를 했다며 미소 짓는다. #늘 성에 안 차는 연기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김래원의, 김래원에 의한, 김래원을 위한’ 영화다. 단독 주연이다 보니 부담감은 있겠지만, 만족감이 더 클 법하다.“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는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예전보다 더 눈에 띄더라.”라고 말하며 특유의 입꼬리를 올린다. 구동혁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강력반 형사로 키워지는 조금 ‘밋밋한’초반부 장면이 보다 강하게 그려졌으면 한다는 것. 시사회가 끝난 뒤 감독과 여러차례 통화도 했고, 과도한 편집보다는 ‘음악’을 통해 보강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제 연기에 아쉬움이 많죠.”라면서 “완전히 감을 잡지 못한 초반부에 연기적인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상대역인 강신일씨의 연기 속도보다 더 빠르게 템포를 조절해 속도감을 느끼게 했어야 했죠.”라며 자신의 연기를 돌이켰다. #신(新)한류 스타 김래원은 현재 일본과 대만에서 한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며칠전에는 일본 주니치 신문, 나고야 방송이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신(新)한류 스타’로 평가,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단독 인터뷰해가기도 했다. 김래원 소속사인 블루 드래곤은 “주니치 신문을 후원하는 국내 모 항공사의 한·일 노선 취항에 맞춰 주니치 신문 등이 기획한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1명 인터뷰’에 김래원이 뽑혔다.”면서 “배용준·이병헌·권상우·장동건 등 한류 4대 천황의 뒤를 이을 ‘신(新)한류 4대천황’으로 김래원을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12월에는 김래원의 출연작 ‘…ing’가 일본 현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말 현역 입대할 예정이라는 그는 내년엔 영화·드라마 합쳐서 3개이상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무리한 욕심 아니냐고요?원없이 팬들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난 뒤 군대에 가려고요.(웃음)”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I love Korea” 한국 찾은 두 사람

    ■ 야스쿠니 다룬 다큐 ‘안녕, 사요나라’ 공동연출 가토 구미코 감독 “고이즈미 총리, 일본 대표로서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한국 감독 김태일(42)씨와 함께 연출한 작품 ‘안녕, 사요나라’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제5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가토 구미코(30).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일본법원의 위헌판결에도 불구하고 최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를 향해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전쟁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함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겠지요. 진정 일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번 작품도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웃나라가 화내는 이유조차 몰라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을 위한 도구였다는 것, 또 거기에 숨겨진 진실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합니다.” ‘안녕,’는 일제에 징용됐다가 야스쿠니에 합사된 부친의 유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벌이는 한국여성 이희자(63)씨와, 그를 돕는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43)의 이야기. 두 사람의 발길을 쫓으며 매듭되지 않은 양국의 과거, 그리고 같이 풀어나가야 할 미래를 조명한다. 이미 오사카, 도쿄에서 일본 관객을 상대로 시사회를 가져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야스쿠니 문제를 새롭게 돌이켜볼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원폭 피해자였다. 역사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적인 일. 대학에서 개발경제를 공부했으나, 우연히 필리핀에 갔다가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전환점을 맞았다.“국가간에는 이해가 걸린 문제가 많지만, 사람 사이에는 국경이 없어요. 서로 마주한다면 갈등은 사라질 겁니다. 다큐를 통해 여러 나라에 걸쳐진 ‘벽’을 허물고 싶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그는 조만간 재일 한국인의 애환을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 2·3세인 친구들이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기 때문이다. 홍지민 윤설영기자 icarus@seoul.co.kr ■ 시카고大 스마트미술관 리처드 본 수석 큐레이터 “한국 전통미술에 푹 빠졌어요.”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리처드 본(56)의 명함 뒷면에는 용이 새겨진 조선시대 분원백자 사진이 실려있다. 한국 전통미술에 심취한 나머지 명함에도 한국 도자기 모양을 새긴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권인혁)이 한국문화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 박물관·미술관의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를 대상으로 매년 개최, 올해로 7회째를 맞은 ‘해외 큐레이터 워크숍’에 참가한 그를 만났다. 본 큐레이터는 1972년 시카고에서 열린 한국미술 전시회 관람을 계기로 한국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의 고미술, 회화, 도자기, 불교미술, 공예, 고분유물 등 매년 달라지는 워크숍 주제에 흥미를 느껴 2000년부터 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온 열성파다.“평소 시카고대학내 동양문화 프로그램이 많아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한국미술품을 접하면서 빠져들게 됐습니다.”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물관내 상당수의 중국·일본 미술품과 한국 미술품 3점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코너’를 확대,1980년대 초 드디어 ‘한국컬렉션’ 전시를 시작했다.1910년대부터 대학이 소장해온 17세기 분청 등 고려·조선시대 도자기와 회화 등 20여점으로 조촐하게 출발했지만 구입 및 기증을 통해 소장품이 60점 정도로 늘어났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컬렉션은 삼국시대·통일신라 유물과 서예·불교회화, 현대작가의 작품까지 갖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게 됐다.“국제교류재단 워크숍에서 배운 지식으로 전시물의 수준을 높이고 시대별 대표유물을 갖추게 됐지요. 후배 큐레이터와 관람객에게 한국미술에 대한 지식을 나눠줄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요즘은 조선말기∼근대기 한국미술을 공부하고 있으며, 은퇴한 뒤엔 한국관을 별도로 하나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8일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서는 “신설된 동아시아관이 인상적”이라면서 “주변국가들의 문화가 한자리에 모인 만큼 중앙박물관이 아시아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조현석 기자의 맘대路 멋대路] 묘향산 단풍교향곡

    [조현석 기자의 맘대路 멋대路] 묘향산 단풍교향곡

    가을 여인의 자태가 이보다 더 매혹적일까. 묘향산이 내뿜는 화사하고 해맑은 정취가 새삼 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곱게 갈아 입은 묘향산은 마치 단아한 한복을 차려입은 조선의 여인네 형상이다.‘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平生所欲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라던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래처럼 가을 묘향산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평양과 묘향산에서의 짧았던 3박 4일. 은행 나뭇잎이 길가를 노랗게 수놓은 평양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묘향산의 화사한 가을이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좀더 머물며 그곳의 아름다운 가을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자유롭게 그 곳에 갈 수 없다는 게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평양 시민과 자유롭게 인사 나누며 묘향산에서 단풍 나들이를 즐길 그날은 언제 올까. 하늘이 유달리 높고 푸르렀던 평양과 묘향산의 가을 속으로 안내한다. 글 사진 평양·묘향산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1 서울에서 평양까지 묘향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지도상 거리로도 서울∼대구 정도쯤. 서울에서 평양까지 비행기로 55분,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버스로 2시간 정도로 바삐 움직이면 서울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22일 오전 9시35분.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평양에 제공된 페인트 등 외장재 활용 등을 점검하기 위해 꾸려진 ‘평양·묘향산 방문단’ 130여명을 태운 대한항공 9815편이 인천공항을 떠나 평양으로 출발했다. 서해 직항로를 따라 북으로 기수를 돌린 지 55분.“북한 진남포 지역에 상륙했습니다. 조금 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기장의 짤막한 안내 방송에 이어 비행기는 평양 순안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땅 평양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짧은 비행끝에 도착했다. 공항은 한적하고 깔끔했다. 활주로에는 구소련 제 투볼레프 기종의 고려항공 여객기 10여대가 눈에 띄었다. 트랩카의 계단을 내려 공항 버스로 갈아탄 뒤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걸린 대합실에 들어섰다. 짐을 찾은 뒤 간단한 수속을 밟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수속은 통일부에서 내준 ‘방문증명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쉽게 끝났다. #2 노랗게 물든 평양 거리 평양 시내로 들어 가는 길은 그리 낯설지 않다. 추수를 막 끝낸 한가한 농촌의 풍경이다. 논밭 사이로 볏짚을 나르는 농부와 논 위에 듬성듬성 쌓여 있는 볏가리는 어린시절 외갓집 가는 길을 연상케 한다. 길가에 하얀 억새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갔다. 멀리 농촌 문화주택지라고 불리는 3∼4층짜리 건물들이 보인다. 버스에 동승한 북측 안내원은 차량 이동중 사진촬영을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모르는 것은 정확하게 알도록 안내원에게 물어봐 주십시오. 그리고 떠날 때는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가시라요.”라며 인사한다. 얼마전 다녀온 개성의 안내원보다는 사뭇 세련(?)돼 보였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22㎞, 버스로는 20∼30분 걸린다.1998년에 건설된 9·9절 거리를 지나 평양시내 입구인 금성거리에 들어섰다. 멀리 항일투쟁열사들의 묘역이 있는 대성산을 지나자 사람들을 가득 실은 궤도 전차와 무궤도 전차가 분주하게 오갔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뿐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분홍빛으로 칠한 아파트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거리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인상적이다. 중심가인 승리거리에는 인민대학습당(도서관),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목재를 안쓰면서 조선시대 건축미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는 안내원의 자랑이 이어진다. 낮 12시.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에 도착했다. 양각도 호텔은 대동강 가운데 있는 양각도 섬에 지어진 호텔.48층짜리 호텔은 특등에서 3등실까지 1001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2등실 1박이 150유로다. 호텔앞에는 9홀짜리 골프장을 갖추고 있다. 방에서는 대동강변의 전경과 멀리 둥근 텐트모양의 능라도의 ‘5월 1일 경기장’,170m 높이의 주체탑, 유경호텔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평양 관광은 김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82년 건립된 개선문, 주체탑 등 대부분 김일성 주석의 항일 운동, 혁명 사업 등과 관련돼 있어 남측 사람들은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밤이 깊어오자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리랑’ 공연이 시작됐다.10만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연이다. 공연을 본 한 남측 관람객은 “일부 이념적인 내용을 빼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공연”이라고 촌평했다. #3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23일 오전 8시 버스는 서둘러 묘향산으로 향했다. 일요일이어서 거리는 한적했고, 평양역 등 역들은 등산복 차림의 시민들로 가득했다. 묘향산과 구월산, 원산 성도현, 함경북도 칠보산으로 단풍 구경을 가는 사람들이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는 160㎞. 버스로 순안공항과 숙전, 안주를 거치는데 왕복 4차선이 깔려 있어 2시간 만에 도착했다. 묘향산의 지명은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묘향천과 청천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숙박시설은 14층 규모의 피라미드식 특급호텔인 향산호텔이 있다. 향산호텔에 짐을 푼 뒤 1.5㎞떨어진 탐밀봉 기슭의 국제친선전람관을 돌아봤다.78년 개관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물 박물관’이다. 청기와 지붕의 박물관은 김 주석 부자가 북한을 방문한 178개국 국빈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 21만 9370여점(2004년말 현재)이 전시돼 있다.“선물을 하나 보는데 1분씩만 잡아도 모두 보려면 1년 6개월이 걸린다.”는 게 안내원 설명이다. 모두 150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선물 중에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지난 98년 방문때 선물한 금 황소와 62년 역도산으로 알려진 김신락이 선물한 ‘벤츠’ 승용차, 펠레가 선물한 축구공 등이 눈에 띈다. 전람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며, 입장시 덧신을 신어야 한다. #4 가을향기 그윽한 묘향산 묘향산 등반길을 따라 난 향산천의 물빛이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바닥에 깔린 조약돌이 파란 하늘 빛을 받아 쪽빛으로 빛난다. 등산로는 5개의 등산로 가운데 만개의 폭포가 있다는 만폭동(萬瀑洞). 입구에서 무릉폭포, 비선폭포,9층폭포까지 4㎞다. 신향산 지구에 있는 이 등산로 사이로 곧게 뻗은 소나무와 그 사이로 빨갛게 물든 단풍 나무가 반긴다. 길가에서는 등산객, 소풍 나온 아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입구에는 ‘명승지 입장료금 적용에 대하여’라는 간판과 함께 어른 40원, 어린이 20원, 외국인 25달러라는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허봉순(24) 안내원이 등반길에 함께하며 휴대용 마이크로 설명을 늘어놨다. 묘향산이라는 이름은 이 곳에 많이 자생하는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그윽하고 묘한 향기를 내뿜는다 해서 유래됐다고 한다. 최고봉인 1909m의 비로봉을 비롯해 화강암으로 된 웅장한 봉우리와 기암괴석, 맑은 계곡과 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서곡폭포. 만폭동의 일만폭포가 시작되는 ‘교향곡’의 서곡이라는 뜻이다.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물줄기가 약했지만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난다. 이어 하무릉폭포를 지나 나무꾼 총각들이 경치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무릉폭포를 만났다. 폭포 위 무릉소에는 청정어종인 버들치가 산다고 한다. 등산로는 생각보다 가팔랐다. 바위를 파내어 계단처럼 길을 냈다. 40분쯤 산길을 오르자 ‘만폭동 8선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은선폭포가 나오고 여기에 아담한 정자 은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묘향산은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김 주석의 글이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지난 91년 이 곳을 다녀간 김 주석의 지시로 92년 새긴 글귀다. ‘쉬었다 가자.’며 푸념하는 일행을 안내원이 남측에도 많이 알려진 ‘휘파람’을 부르며 달래준다. 감칠맛나는 노랫가락에 다시 힘이 솟아난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유선폭포와 그 사이를 잇는 유선다리, 은정폭포를 지나 장수바위에 이르자 북측 안내원이 다음 일정때문에 여기까지만 오른다며 하산할 것을 종용한다. 유선폭포는 길이가 60m에 이르는데 팔담우에서 비탈진 수직벼랑에서 폭포수가 쏟아진다. 만폭동 절경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아쉽지만 2시간의 짧은 등반을 마친 뒤 보현사를 보기 위해 올라간 길을 거슬러 내려왔다. 산 아래있는 보현사는 ‘부처의 도덕’을 맡아본다는 보현보살의 이름으로 명명된 사찰.1042년 정종 8년에 굉확(宏廓)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가 다시 복원한 건물이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려면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 등 3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첫 관문인 조계문은 불교의 조계파에 속하는 절간문이라는 뜻이며, 두번째 문인 해탈문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다. 보현사 팔만대장경 보존고에는 팔만대장경으로 처음 찍은 판본 6793책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경이 있다. 묘향산에서 내려오는 길 만폭동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한 시인의 글귀가 귓가를 스쳤다.‘만폭동 오름길은 십리도 못되는데 한낮이 기울도록 못다올랐네, 오르자니 무릉폭포 걸음 붙들고, 머물자니 유선폭포 어서 오라 부르네, 저 해를 멈춰세워 백날 보면 다 볼가, 하루해가 짧은 줄 예 와서 알겠구나.’ #5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 관광길에 만난 북측 사람들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평양 학생소년문화궁전에서 자수를 배우는 최향미(8)양은 수줍음이 많지만 예의가 무척 바른 소학교 2년생. 질문을 던지면 한땀한땀 집중해 만들던 호랑이 자수를 그 자리에 놓고 벌떡 일어나 또박또박 대답한다.“방과후에만 두달반째 만들고 있습니다.” 가야금을 배우는 여중생 김향순(13)양은 사진촬영을 하는 기자가 신기한듯 보며 애써 웃음을 참는 모습이 예쁘다. 평양 민족식당의 종업원 정은심씨는 20대 초반의 처녀. 불고기를 불판에 구워주면서 틈나는 대로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불러준다. 그녀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부르는 ‘휘파람’에 손님들이 잠시 젓가락질을 멈춘다.“고등중학교때 학생궁전에서 배웠다.”는 노래 솜씨는 가수 뺨칠 정도로 수준급이다. 묘향산 향산호텔의 종업원 이은실씨는 저녁식사를 하는 손님들과 함께 노래를 하며 흥을 돋워준다. 끝날무렵에는 어깨동무를 하며 ‘다시만나요’라는 북한 가요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힌다. 역사박물관 안내를 맡은 김옥순씨는 해박한 역사지식과 함께 유머도 풍부하다. 조선시대 유물관을 지날 즈음 “조선시대 유물은 다 남쪽에 있는데 통일되면 그때 유물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게요.”라며 재치있게 넘긴다. ●여행메모 북측의 공식 외국환은 유로화지만 상점 등에서는 달러가 통용된다.1유로가 북한돈 170원. 양강도 국제호텔 객실의 TV에는 BBC방송과 일본, 중국 방송 등 여러개의 채널이 나온다. 전화는 남측만 빼놓고 전세계 모든 국가의 통화가 가능하다. 숙박료는 2등실 1박이 150유로다. 향산호텔은 사우나와 안마, 노래방, 당구장 시설 등을 갖췄다. 사우나는 2유로, 안마는 50분에 15유로. 숙박료는 1박에 100∼200유로. 먹을거리는 평양에서는 옥류관의 평양냉면, 평양단고기집의 단고기 등이 유명하고, 묘향산은 향산호텔의 팔색 송어 요리가 유명하다.
  • 배추 ‘錢爭’

    “산지 배추값이 매일 올라요. 요즘은 8월보다 두배 넘게 올랐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뛸지 모르겠습니다.” 23일 롯데마트 야채 바이어 조정욱(33)씨는 전북 고창군의 한 배추밭을 둘러본 뒤 “지난 8월엔 평당 4000∼5000원만 주어도 널려 있던 배추가 1만원을 준대도 사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산 ‘납김치’와 ‘기생충 김치’ 파동으로 배추값이 치솟고 있다. 시중에서 파는 김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까닭에 김치를 직접 담가 먹으려는 가정이 늘어난 까닭이다. 조씨는 지난 8월부터 몇 차례 전남 영암·나주와 전북 고창에서 배추밭 15만평을 확보했다.100만포기로 지난해 롯데마트가 확보한 물량보다 무려 8배 많다. 무는 50만개가량을 확보했다. 전북 고창군 성재리의 배추농부 송영복(63)씨는 “배추를 밭떼기로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올해 배추 작황도 좋은데 이런 호황은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한몫을 노리는 산지 수집상이 대부분”이라며 “농가들은 보통 3만평에서 5만평 정도의 배추 농사를 짓는다.”고 덧붙였다. 유통업체의 배추 확보전도 치열하다.E마트는 처음 90만 포기 배추를 확보했다가 최근 급히 10만 포기를 더 늘렸다. 그랜드마트는 지난해보다 20%가 증가한 6만 5000포기를 확보했다가 급히 7000포기를 추가했다. 홈플러스는 역시 지난해보다 40%가 많은 70만통의 배추를 확보한 데 이어 5만∼10만통의 배추를 추가로 확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지 배추 가격이 치솟고, 야채 수집상이 밭떼기로 사는 바람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할인점 업계는 다음달 초부터 배추를 시세보다 싼 80∼90%의 가격에 내놓을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다음달 17일부터 열흘간 무·배추·쪽파·대파 등을 시중가보다 30% 싸게 팔기로 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10·26 재보선 현장을 가다] 부천 원미갑

    [10·26 재보선 현장을 가다] 부천 원미갑

    “반응들이 없어요, 선거를 하는지 알기는 하는 건지….” 한 선거캠프의 사무국장이 늘어놓는 푸념이다. 부천역에서 후보들의 선거캠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들었던 얘기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이 뭐라 하더냐고 물었다.“글쎄요, 그러고 보니 손님들이 선거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네….” 지난 주말 선거구 일부를 걸어서 돌아 보니, 늦은 오후임에도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따금 눈에 띄는 선관위의 홍보 깃발 정도가 이 곳이 재선거 지역임을 깨닫게 한다. 상가에 들러 선거 의사를 물어도 썰렁한 반응은 매한가지다. ●같은 건물, 같은 층 6명이 나선 가운데 열린우리당 이상수, 한나라당 임해규 후보가 선두 각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두 후보가 같은 건물 2층에 나란히 선거사무실을 냈다. 양쪽의 반응은 같다.“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큰 현수막을 내걸 마땅한 곳이 없어요.” 혹 생길 수도 있는 충돌을 대비하려는지, 건물 입구에 화살표를 두 길로 내놓아 들어가는 길을 나누었다. 결국 2층에 올라가면 문을 이웃하고 있지만…. ●인물론 VS 심판론 ‘힘센 일꾼 이상수, 부천을 확 바꿉시다.’‘정치인이 깨끗해야 정치가 깨끗합니다.’ 두 사무실에 각각 걸려 있는 구호들은 양 캠프의 전략을 가늠케 한다. 이 후보는 여권 실세임을 강조한 듯하다. 임 후보측은 이 후보가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경력을 부각시키려는 것 같았다. “현 선거구도가 고착될 겁니다. 강정구 교수 파문 등 중앙무대에서의 정치 상황이 이 후보에게 지속적으로 감점 요인이 되고 있지요. 여권의 자체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거죠.”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고 있다는 임 후보쪽의 주장이다. “모든 선거공약이 같습니다. 뉴타운 건설, 지하철 연장, 학교 유치, 화장장 건설 반대까지…. 결국 중앙무대에서 공약을 실현할 후보에게 표심이 몰릴 겁니다.” 한 차례도 상승세를 잃지 않고 선두에 근접해 있다는 이 후보쪽의 반박이다. ●화장장 건립, 표심 가르나 이번 재선거에서 부천 원미갑이 다른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뚜렷한 ‘지역 현안’이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출신 홍건표 부천시장이 화장장 건립을 강력 추진 중인 가운데 이 후보는 반대에 가장 적극적이다.“화장장 건립을 저지할 후보는 이상수뿐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지요. 민감한 이슈인 만큼 화장장을 반대하는 표가 결집할 겁니다.”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이며 부천시장 출신인 원혜영 의원도 이 문제를 집중 부각할 뜻을 분명히했다. “부천 시민이 모두 화장장에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동네별로 달라요. 역곡지역만 반대하지 나머진 오히려 찬성하는 편이에요.” 주민 김모(53)씨 등 지역 인사 몇몇도 같은 분석이다. ●민주당 강세지역 이곳은 지난 20년간 현 민주당 계열 정당이 거의 석권을 했던 곳이다. 기호 6번인 무소속 안동선 후보는 이곳에서 4선(選)을 했다. 이번에는 조용익 후보가 민주당 공천을 받았고 민노당은 이근선 후보를 공천했다. 또 다른 무소속으로 정인수 후보가 뛰고 있다.20년 전통이 유지될지, 새 기록이 나올지 주목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휘성, 그 사랑愛 물들다

    휘성, 그 사랑愛 물들다

    이 男子. 가을에 만나기엔 제격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진하고 촉촉한 그의 음색은 아침 저녁 피부에 와닿는 가을 공기만큼이나 알싸하다. 아직 스물 세살의 청춘. 불과 데뷔 3년의 짧은 이력. 그렇건만 정규 앨범을 3장이나 냈고, 모두 최고 수준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녹록지 않은 경력으로 남자 R&B 가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가수 휘성(23)이 가을 바람과 함께 돌아왔다. 손에 4집 새 앨범을 들고.1년만이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26일 오후 광화문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노래를 부르려 애썼어요. 과거 아팠던 사랑 경험에 대한 제 자신의 의문과 여러가지 느낌들을 고스란히 노래에 녹였죠.” 그래서일까. 이번 4집 앨범은 문패부터 심상치 않다.‘Love… Love…? Love…!’. 그가 직접 붙인 제목이다. “사랑을 알아가는 단계를 표현한거죠.‘Love’는 어릴적 사랑에 대한 막연한 느낌의 단계,‘Love…?’는 성장하면서 첫사랑과 이별 등을 통해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단계,‘Love…!’는 그 경험이 쌓여 사랑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린 상태를 의미해요.”자신은 느낌표의 단계에 있으며, 그가 정의하는 사랑은 ‘지키는 것’이란다. 자신과 상대의 감정, 주변 상황 등 사랑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을 때 이별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랑 철학. 1집 ‘안되나요’,2집과 3집 ‘위드 미’와 ‘불치병’ 등 사랑 노래라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이지만, 이번 앨범에 수록된 17곡은 모두 제목처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껏 15번의 사랑과 아픈 이별을 겪었죠. 그 경험과 느낌들을 노래에 담으려 했어요.” 타이틀곡은 휘성의 감성이 잘 살아있는 ‘굿바이 러브’(Good Bye Luv)’. 하지만 그는 “17곡 모두가 타이틀곡이나 마찬가지”라며 미소 짓는다. 앨범 전체가 한편의 사랑 소설처럼 일관된 흐름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단다. 이별 뒤의 아픔을 노래한 ‘일년이면’과 슬픈 발라드곡 ‘울보’, 현악 연주가 애절함을 더하는 ‘하늘을 걸어서’ 등도 휘성 특유의 촉촉함이 잘 묻어난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러브샤인’(Luv Shine).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선율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그는 여전히 ‘미완성 단계’다. 더 진화해나갈 잠재적 여력을 지닌 ‘∼ing’ 상태라고 할까. 이 말에 본인도 머리를 끄덕인다. “누구 처럼 ‘완성된 가수’로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제 안에 있는 장점을 취해서 굳혀 나가고, 아직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골라서 도전하고 싶죠. 결과가 어떨지, 완성될지는 모르는 고난의 연속이겠지만, 점점 발전해 나가고 싶답니다.” 그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진화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감정 표현’.“솔직히 1집때는 그저 멋들어지게 소리만 내는데 급급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요. 음색도 멋있고, 감정 표현 테크닉도 많이 키웠다고 자부해요.”여태껏 발표한 앨범 가운데 이번 4집만큼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며 활짝 웃는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음악적 천재성을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가수다.“무언가 부족했을 때 서서히 늘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빈자리’가 있을 때 넓힐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특히 ‘집착’이 강하거든요. 제가 한것은 무조건 잘돼야 직성이 풀려요. 이번 4집이 잘 안되면 ‘무서운 일’(?)을 저지를지 제 자신도 몰라요.(웃음)”하긴 성대에 물혹이 4개나 생겼음에도 녹음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지독한 연습벌레가 그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스포츠서울 박진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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