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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입 심층인터뷰] ‘수시’에 올인 말고 ‘정시’ 집중… 벼락치기도 효과적

    [대입 심층인터뷰] ‘수시’에 올인 말고 ‘정시’ 집중… 벼락치기도 효과적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손사탐(사회탐구영역)’으로 기억한다. 메가스터디 손주은(47) 대표. 유학경비를 벌기 위해 과외에 뛰어들었던 서울대생은 학원강사를 거쳐 20여년 뒤 국내 최고의 학원재벌이 됐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는 사교육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국내 최고의 입시전문가는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킬까. 오는 8일부터 대입 2학기 수시 원서접수가 시작되는데 수시에 올인하다가 자칫 정시를 그르치는 게 아닐까. 고3 수험생 딸을 둔 노주석 논설위원이 서울 서초동 메가스터디 신사옥에서 손 대표를 만나 이런 궁금증을 물어봤다. ▶손 대표는 자녀들 공부를 어떻게 시키시나요. -큰딸애가 중3인데 올여름부터 강남 메가스터디 고등부(예비 고1반)에 다녀요. 제 자식인데 다른 데 보낼 수는 없고…. 그 전엔 아내가 고른 동네학원을 다녔는데, 잘 놀았죠. 우리 학원에 와서는 안 하던 공부하느라 좀 힘든가봐요. ▶아빠를 닮아 공부는 잘하나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해요. 동의하지만 대학은 일단 가라고 했죠.(뮤지컬은)대학 동아리 같은 데서 배울 수도 있으니까. 대학은 E여대면 만족할 것 같아요. ●쓸데없는 정책 써 사교육 광풍 더 기승 ▶학원 말고 따로 과외도 하나요. -현재 우리 학원의 예비 고1프로그램이 최적화라는 확신이 없으면 남한테 팔지도 못하죠. 학원비가 40만∼50만원 하는데 충분하다고 봐요. 내가 다른 것을 찾는다면 우리 학원을 찾는 고객들한테 기망행위겠지요. ▶둘째 아이는 어때요. 국제중학교나 특목고에 보낼 생각은 있으신가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인데, 요즘 누나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니까 따라하는 것 같더군요. 저는 사실 외고 가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과잉경쟁이거든요. 인생에 기회는 여러 차례인데, 너무 어렸을 때 실패를 맛보는 것도 좋지 않고요. 큰아이도 외고 생각이 있었으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요. 둘째는 날 닮아서 게임을 좋아하는데, 친구들 대신 게임을 해주고 5시간에 2900원을 벌어요. 그 시간만큼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죠. 내가 대신 “아빠하고 1시간 공부하면 5만원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대답을 안 해요. 부자간에 계약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버릇은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막상 대학입시가 닥치면 과외를 시키지 않을까요. -솔직히 과외를 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강남에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커리큘럼이나 강사진의 수준이 중요하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그래도 제가 직접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국제중 설립문제로 시끄러운데. -제 정신이 아닌 정책이라고 봐요.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로 몰겠다는 거죠. 평준화가 건전하게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자리를 잡아간다고 봐요. 이럴 바에야 아예 고입을 경쟁으로 한다고 솔직히 선언하든지…. ●공부하는 양보다 가르치는 사람의 수준이 중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나요. -저희 학원이 운영하는 기숙학원에서는 해마다 인생을 바꾼 애가 몇명씩 나와요. 이번에도 2명이 그렇던데, 한명은 입학할 때 4등급 수준이었는데, 지난번 모의고사 때 12점밖에 안 틀린 488점을 맞았더군요. 이런 애들은 수업에 들어가보면 눈빛이 달라요. 이런 학생은 영어를 예로 들면 혼자서 똑같은 책을 3∼4번씩 보니까 어느 순간 보이더라고 얘기해요. ▶사교육 광풍이 부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가만히 놔두면 줄어들 텐데 쓸데없이 정책을 쓰니까 더 기승을 부리는 거예요. 신문보니까 기숙형공립고 한다고 나왔던데, 이번에 지정된 호남의 한 고교 교사가 우리 회사에 찾아와서 커리큘럼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등을 벌써 묻고 갔어요. 기숙형공립고가 되면 그 지역 다른 학교는 어떻게 될까요?왜 다른 건 다 시장기능에 맡기면서 교육만 정부가 간섭하는지 모르겠어요. ▶갈수록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는데 막을 방도는 없나요. -한 10년쯤 지나면 사교육열풍은 식을 거라고 봐요. 지금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은 경험적으로 사교육이 사회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요. 실제로 일부 대기업에서는 강남에 살고, 특목고를 졸업한 명문대생은 뽑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툭하면 ‘직장 다니기 싫다.’는 얘기나 하고…. 얘들이 학부모가 되면 ‘아 이게 아니구나.’라는 판단을 할 거예요. ▶메가스터디도 사교육 덕분에 성장하지 않았나요. -사교육은 30%는 사(私)교육이지만 나머지 70%는 사(邪)교육인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 회사도 한국사회의 특수한 입시상황 때문에 생긴 기업이죠. 태생적으로 좋은 기업은 아니에요. 하지만 있는 집 애들만 하던 과외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순기능도 했죠. ▶요즘도 강의를 하시나요. -1년에 절반 정도는 주말에 강의를 해요. 이젠 ‘손사탐’이라고 안 부르고 ‘사장님’이라고 하는 게 서운하죠. 그래도 강의하는 게 제일 에너지가 충전되는데, 강사들이 싫어해요.“선동열이 감독을 해야지 마운드에 올라오면 어떡합니까?”라고 하더군요. ●‘붙고보자´식 지원은 반수·재수로 빠질 확률 높아 ▶오는 8일부터 수시원서접수가 시작됩니다. 저희 딸은 수시에 넣지 않겠다고 우기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시모집은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어요. 지역균형, 기초수급자 선발 등은 사회안전망 강화차원에서 바람직하죠. 반면 특기자 전형은 사교육과 지나치게 유착돼 있어요. 예를 들어 외고특별전형 같은 경우, 외국에 갔다온 아이에게 몇십점 주고 들어가는 게 사실이니까요. 때문에 다양한 전형방식이 옳으냐는 의구심도 생기죠. ▶수시 모집을 코앞에 둔 고3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정시를 회피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에요. 수시는 경쟁률이 상당히 높아요. 붙을 확률이 낮다는 얘기죠. 그렇다고 낮춰서 지원하면 합격해도 마음에 안 들고. 결국 반수나 재수에 들어가는 악순환고리가 생기죠. 무리한 수시지원은 자제하고, 지금부터라도 정시에 대비해 준비하세요. 시간은 충분해요. 몰라서 그렇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벼락치기’도 상당히 효과적이에요. 정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여성 & 남성] 내 남편·내 아내 결혼후 이렇게 달라졌다

    [여성 & 남성] 내 남편·내 아내 결혼후 이렇게 달라졌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영화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꾼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는 아내, 먼저 일어나 토스트를 굽는 자상한 남편은 영화속 주인공들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본격적인 결혼생활이 시작되면 이런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도대체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상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결혼 전 유머가 넘쳐 흘렀던 남편은 점점 무뚝뚝해지고, 단정한 치마만 입었던 아내는 체육복에 슬리퍼를 끌고 문밖을 나선다. 결혼 후 새롭게 드러난 배우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버릇과 태도 때문에 고민하는 신혼부부들의 좌충우돌 결혼이야기를 들어봤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무서운 술버릇 결혼 전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술을 마셔도 정신력으로 버텨냈던 시절은 결혼 후 다시 오지 않는다. 대학시절 5년 연애 끝에 2006년 결혼한 김모(29)씨는 최근 아내의 특이한 술버릇을 알게 됐다. 아내가 회사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술을 한 잔 하고 들어오면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다. 그것도 라면을 끓이면서 계란을 넣는 게 아니라 라면을 다 끓이고 나서 날계란을 풀어 넣는다. 처음에는 속이 좋지 않아 그러려니 했던 김씨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계란을 넣지 않고는 라면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계란이 없는 날에는 200m 떨어진 편의점까지 가서 사와야 했다.“귀찮다.”며 ‘농성’이라도 할라치면 아내는 “계란없는 라면은 먹을 수 없다.”며 김씨에게 라면을 억지로 떠넘겼다.“결혼 전 기독교 집안이라면서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여자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새벽에 인사불성으로 들어와 얌전히 자는 것도 아니고 라면을 끓여대고,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계란을 사오라고 하다니요.” 올봄 노총각 딱지를 뗀 직장인 김모(36)씨는 9살 어린 27살의 여성과 결혼했다. 주위의 질투는 대단했다. 하지만 김씨는 남모르는 고민에 빠져 있다. 결혼 전에는 귀엽고 발랄했던 그녀가 ‘철없는 부인’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연애 시절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밤 11시 전에 집에 가야 하는 조신한 아가씨였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일주일에 두세번은 술을 먹고 자정이 넘어서 들어온다. 게다가 술값을 본인이 계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무서운 주사’까지 있었다. 김씨는 “한달이면 술값만 50만원은 족히 나간다.”면서 “도둑장가를 들었으니 해장국을 끓여 달라고 당당하게 주문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머니 생신 때 소주 몇잔만 드시는 부모님에게 와인을 억지로 권하고는 “맛있는 술을 안 드신다.”며 아내 혼자 다 마신 것. 아버지는 “요즘은 여자도 술을 잘 마셔야 한다.”며 애써 웃어 넘겼지만 철없는 부인은 “맞아요. 한 병 더 딸까요?”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집들이에는 대학 남자동창들을 초대해 실컷 술먹고 즐기고는 “야∼치우지 마. 우리 남편이 상치우는 거 전문이야.”라고 말해 부부싸움을 벌였다. 결혼 5년차 최모(33·여)씨는 남편의 불결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별거를 고려 중이다. 연애시절 데이트를 할 때면 상큼하고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던 그 사람은 결혼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양말도 벗지 않고 쓰러지는 것은 예사롭지도 않다. 연애할 때는 먹지도 않던 마늘과 삼겹살을 잔뜩 먹고 들어와 키스 공세를 펼 때는 당장이라도 가정법원에 뛰어가고 싶어진다. 아침에 일어나 ‘속 쓰리다.’며 콩나물국을 끓여 달라는 모습은 얄미움을 넘어 혐오스럽다. 잠자리를 함께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큰하게 취해 집에 오면 샤워는커녕 양치질도 하지 않고 덤벼든다. 처음에는 한두번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최씨는 요즘 남편의 눈빛이 조금이라도 야릇해지면 방문을 걸어 잠근다.“세상살이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연애 시절 어두운 뒷골목에서 입맞춤이라도 하려면 구강청정제를 꺼내들곤 했던, 그런 남편의 세심한 배려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무참히 깨져 버린 멋진 왕자님, 예쁜 공주님 환상 영화 속 주인공과 결혼한 것 같은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결혼 3년차에 접어든 윤모(33)씨는 왠지 아내에게 사기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씨는 사내연애로 아내를 만났다. 결혼 전 청순가련형의 외모에 다소곳한 성격으로 사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녀. 청순가련형 배우 우희진이 이상형이었고, 드라마 속 우희진과 같은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꿈꿔 왔던 윤씨는 신혼 초 아내의 ‘깨는’ 행동에 미칠 것만 같았다. 남편이 옆에 있든 상관없이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화장실에 앉아 문을 열어 놓고 TV를 보는가 하면 윤씨도 처음 듣는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얼마나 배신감이 큰지 몰라요. 결혼 전엔 그렇게 다소곳하고 예쁘더니 결혼 후 완전 소탈해졌죠. 가끔은 처녀 시절의 아내가 그립기도 합니다.” 결혼 6개월차인 천모(30)씨는 선을 본 지 3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주위에서는 “잘 모르는 여성과 너무 일찍 결혼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결혼 전에는 아내가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며 숟가락을 놓곤 해서 천씨가 ‘잔반처리’를 도맡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음식을 남기기는커녕 도리어 천씨의 음식을 뺏어 먹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게다가 결혼 전에는 명품 한 두개씩은 몸에 걸치기를 좋아하던 그녀가 결혼 후 갑자기 ‘짠순이’가 됐다. 결혼 1년차인 정모(29·여)씨는 남편이 자신보다 피부가 더 좋아 항상 신기하게 생각했다. 연애할 때 정씨는 “자기 피부 너무 좋다∼. 나랑 바꾸자.”라며 은근히 애교도 부렸다. 정씨가 “자기 피부관리숍에 다니는거 아냐?비결이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남편은 “따로 관리하는 거 없어.”라고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결혼 이후 그 비밀이 벗겨졌다. 남편의 좋은 피부는 바로 시어머니의 정성 때문이었다. 시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영양크림을 발라 주는 등 꾸준히 피부관리를 해줬던 것. 어느날 시어머니는 정씨에게 “아들 피부가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얼굴에 팩을 발라줄 것을 명령했다.“요즘 시어머니 등쌀에 못 이겨 남편 피부관리까지 해주고 있는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는 건지. 남편 피부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졌죠.” ●연애시절과 180도 다른 모습에 우울증까지 연애시절의 배려심은 온데간데 없는 배우자의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주부 윤모(28)씨는 재정적으로 대범했던 남편이 결혼 1년 만에 ‘짠돌이’로 변해 고통을 받고 있다. 남편은 100만원 상당의 목걸이를 사주면서 청혼했다. 밥을 먹을 때도 윤씨를 위해 좋은 레스토랑만 찾아 다녔다. 하지만 결혼 후 외식은커녕 오히려 살림을 헤프게 한다고 지적하기 일쑤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씀씀이를 지적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 있기라도 하면 온갖 잔소리를 해댄다. 생활비도 남편에게 타서 쓴다. 윤씨가 “사람이 변했다.”고 항의하면 “이처럼 아껴서 네 선물도 사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 4월 생일에는 선물도 받지 못했다. 서운했던 윤씨는 “생일인데 예전에 자주 갔던 레스토랑에서 외식이라도 하자.”고 전화했지만 남편은 “너무 비싸니 삼겹살이나 구워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시무룩해져 삼겹살을 먹지 않는 윤씨에게 남편은 “어차피 같은 고기인데 대충 먹어라.”고 말했다.“일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아내가 가고 싶은 음식점에 갈 수 없는 건가요.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 하긴 시어머니 말씀이 어릴 때부터 돌멩이도 안 버린 사람이래요.” 2005년초 대학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난 직장인 이모(32·여)씨는 3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남편의 진면목(?)을 본 이후로는 탄식과 후회의 나날만 거듭되기 때문이다. 처음 남편의 이미지는 좋은 학벌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 외에는 별 볼일 없었다. 외모도 추남급에 속했고, 언변도 좋지 않았다. 반면 이씨는 늘씬한 몸매에 우아한 기품까지 갖춰 어딜 가도 인기가 높았다. 그날 만남이 끝이라 생각하고 귀가했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그 남자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회사로 꽃 배달을 해오고, 건강식도 챙겨 보냈다.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기다렸다. 어머니는 “사람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며 진지하게 만나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연애는 시작됐고, 그의 애정 공세에 점차 마음의 문이 열려 이듬해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그가 달라졌다. 연일 야근이라며 귀가가 늦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연애시절 자신에게 쏟았던 관심과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울한 나날이 이어질 뿐이었다.“신혼이라는 게 없었어요. 홀로 텅 빈 집을 지키면서 결혼한 걸 정말 많이 후회했어요. 주위 시선이 아니라면 진작에 갈라섰을 거예요.” 2002년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난 직장인 박모(34)씨는 결혼 후 180도 달라진 아내의 모습이 끔찍하다. 처음에는 6살 연하여서 무엇을 하든 귀엽기만 했다. 나이에 비해 이해심과 포용력도 깊었다. 박씨의 부모에게도 잘했다. 매년 생신 때면 선물도 보내고, 보약 같은 건강식품도 꼬박꼬박 챙겼다. 애교도 많아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렇듯 깜찍하던 그녀가 결혼 후 돌변했다. 연애시절 꾹꾹 눌러뒀던 성격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툭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언성을 높였다. 박씨가 술자리에서 밤 10시를 넘기면 주위에 누가 있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술 먹지 마라. 다른 여자 만나지 마라. 혼자선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마라.” 등 온통 “∼하지 마라.” 투성이였다.“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싫습니다. 요즘은 모든 여자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버릇까지 생겼어요.” 김정은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웃는얼굴] 지금 웃지 않는 자, 유죄

    [웃는얼굴] 지금 웃지 않는 자, 유죄

    화창한 일요일 오후 여섯 시, 잠실 석촌호수 수변무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잠시 후 그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슬며시 짓는 미소도, 웃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실없이 배어나오는 실소도 아니다. 폭발하듯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 그야말로 폭소다.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다양한 연령대와 생김새만큼 소리도 제각각이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저렇게 박장대소, 가가대소하는 거지? 행인들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걸음을 멈춘다. 아예 그들 주변에 자리 잡고 앉은 구경꾼도 있다. 그래도 이 사람들, 배짱 한 번 좋다. 누가 쳐다보든 말든 훈수를 두든 말든 호수가 떠나가도록 웃기만 한다. 여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웃음클럽, ‘잠실 웃음클럽’이다. 웃음, 비밀을 푸는 열쇠 웃음클럽에 가입한 지 2년이 되었다는 신진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다. 동료 교사의 권유로 이곳 회원이 된 그녀가 웃음클럽에 나온 최초의 동기는 소박했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 신진숙 씨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그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선생님, 지루하지 않게 수업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학급 홈페이지에 우스운 퀴즈를 올리고 아이들이 수업하느라 힘겨워할 때 유머 한 토막 들려주고, 그러면서 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신진숙 씨가 말하는 웃음의 체험담은 그것만이 아니다. “저는 몸이 많이 약한 편이었어요. 20대에 폐렴에 걸려 한쪽 폐를 잘라냈는데 그 후 늘 힘들었죠. 그런데 웃음클럽에 나온 다음부터 몸이 가뿐해지고 피로도 가시는 걸 느껴요. 그래서 웃음이 운동이고 명약인 거죠.” 심신이 건강한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웃음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었다는 그녀는 “웃음이 기적을 만들었어요”라고 말을 맺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한편 잠실웃음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배광수 씨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웃음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배광수 회장만이 아니다. 우리는 웃음이 사람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하는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신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풍문 같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웃음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심장병과 돌연사 예방에 효과가 있다, 인터페론 감마의 분비를 증가시켜 면역력을 키워준다, 웃음의 운동량은 에어로빅 5분의 효과가 있다, 등등.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웃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배 회장에게 웃음클럽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실천하는 첫걸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팍팍해지고 마음은 쉬 황폐해집니다. 웃음은 그것을 치유하지요.” 그러고 보니 그를 비롯한 웃음클럽 회원들의 얼굴이 참 밝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책 《시크릿(Secret)》의 주제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긍정적 사고와 간절한 바람이 만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시크릿》이 전하는 놀라운 비밀이다. 그렇다면 웃음은 시크릿의 핵심 키워드가 아닐까. 자주, 또 크게 웃는 사람에게 불만스러운 일이 많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침몰당할 리 없다. 윈스턴 처질은 말했다. 웃음이라는 명약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은행에 백만 달러를 저금해 두고 꺼내 쓰지 않는 자와 같다고. “웃음과 행복은 한 집에 삽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함께 웃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 감사합니다.” 웃음을 실천하면서 사업도 인간관계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는 배광수 회장. 그의 말처럼 우리는 알지만 행하지 못해 수많은 우울과 불운을 형벌처럼 받고 있는지 모른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고 나니까 웃긴 것 최규상 유머전략연구소 소장이 잠실웃음클럽을 시작한 건 5년 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웃음클럽의 시작 뒤엔 최 소장 자신의 역경이 있었다. 2002년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후배의 보증을 섰던 일이 잘못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극심한 스트레스의 나날을 회상하며, 그는 웃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웃음밖에 방도가 없었던 지난한 삶 속에서 그는 웃음의 진가를 발견했다. 웃음만이 근심을 이길 수 있다, 가난의 이면에 부유의 상징인 웃음이 있다. 그가 발견한 평범하지만 놀라운 이 깨달음은 웃음클럽 회원들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유머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유머코치, 웃음치료사, 웃음전략연구소 소장……. 그를 수식하는 몇 가지 직함만으로도, 유머가 가진 다양한 영역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기업체 강연을 나가는데요, 조직에 유머가 들어가면 얼마나 막강해지는지 몰라요. 매출이요? 물론 올려줄 수 있죠.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단순히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물건을 좋은 사람에게 사고 싶어 하거든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웃음 띤 사람, 고객을 웃게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유머는 조직을 단합시키기도 하지만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머마케팅이라는 분야도 있고요.” 유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의 말처럼 누구나 좋은 사람과 대화하기 원하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좋은 사람은 웃는 사람, 웃게 하는 사람이다. 웃음을 장착해야 하는 이유는 이토록 명백하다. 왜 모르겠는가, 웃음이 좋다는 것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웃고 싶어도 세상사는 힘겹고 고단하다. 웃을 일이 없는 것이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고 나면 웃을 일이 생긴다니까요.” 최규상 소장과 유머클럽 회원들의 역발상 속에는 먼저 웃는 사람이 이긴다는 철학이 있다. 인생은 고통을 지배하느냐 고통에 지배당하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고통의 우위에 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웃어버림으로써 웃을 일을 만드는 것이다. 웃음을 통해 승자가 된 그들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웃어’서 ‘버리’세요.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유머는 휴머니즘이다 몇 년 전 김제동이라는 남자가 텔레비전에 등장했을 때, 대중이 그에게 매혹당한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연예인답지 않은 소탈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는 눈이 작습니다. 눈이 작아서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일단 아폴로눈병에 걸려본 적도 없고요….” 그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비하도 미화도, 연민도 과시도 없다. 오직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도구로 가지고 노는 내공이 있을 뿐이다. 그가 대중의 호감을 산 건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바로 그 힘 덕분이 아니었을까. 최규상 소장에게도 같은 힘이 느껴진다. “저는 혀가 짧습니다. 혀가 짧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남들처럼 혀를 깨물어본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저는 혀가 짧기 때문에 겸손합니다. 제 혀를 가지고 발바닥처럼, 남을 밟아본 적이 없어요. 제 혀는 오히려 손바닥을 닮았습니다. 키워주고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는 데에 사용합니다.” 누구나 콤플렉스는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콤플렉스 때문에 슬퍼하고 절망한다. 유머가 가진 강력한 힘은 여기에서 발휘된다. 관점을 변화시켜 열등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내 키가 작은 게 아니라 남의 키가 큰 것이다. 내가 못생긴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생긴 것이다. 스스로의 결점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즐거움은 유머감각을 소유한 자의 몫이다. 그래서 최규상 소장은 유머러스한 사람은 유머리스트(Humorist)가 되고 유머리스트는 휴머니스트(Humanist)가 된다고 말한다. “유머라고 하면 단순히 남을 웃기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일차적인 단계예요. 유머의 가장 큰 힘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일찍이 수많은 현자와 철학자들이 웃음에 대해 역설했다. 웃는 사람은 웃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 웃음은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참을 만한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웃음은 마음의 치료제이자 몸의 미용제이다……. 그러나 웃음의 효과에 관해 아무리 많은 상식과 아포리즘을 알고 있어도 소용없다. 이 순간 웃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노희경 식으로 이렇게 말하자. ‘지금 웃지 않는 자, 유죄’라고. 잠실 웃음클럽·다음 카페 “유머발전소”
  • 페니, 타블로와의 우정 그리고 힙합이야기

    페니, 타블로와의 우정 그리고 힙합이야기

    “타블로와 저는 집에서 쫓겨나 동거를 시작했죠. 마냥 음악이 좋았거든요.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음악을 했어요. 불쌍한 기억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고마운 시간들이에요. 평생 ‘친구’와 평생 ‘내 음악’ 힙합을 얻었으니까요.” ‘힙합을 제대로 배우자’며 타블로와 언더그라운드와 클럽 공연에 뛰어든지 근 8년. 두 남자의 고된 동거기는 헛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정상급 가수가 됐고 한 사람은 타 가수들의 앨범 제작자로 나서며 손에 꼽히는 힙합 프로듀서로 자리를 굳혔다. 국내 힙합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힙합 프로듀서 페니(27·Pe2ny). 에픽하이의 모든 앨범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힙합 곡들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곡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페니의 첫 번째 정규 앨범 ‘Alive Soul Cuts vol. 1’은 오랜 인고의 세월이 낳은 산물이다. 국내 힙합계를 대표하는 실력파 래퍼들이 페니의 주도 아래 하나로 뭉쳐 사라져가던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Hiphop Compilation, 편집된 모음 음반)부활에 뜻을 모았다. ◆ 끼니 떼우기도 힘들던 시절 “할머니, 외상 값 갚으러 왔어요” 스무살 시절, 페니는 힙합 문화가 활성화 된 홍대 클럽에서 에픽하이와 더블 케이 등 동료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가족의 반대에 무릅쓰고 열정만으로 음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동갑내기 타블로와는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고학력의 타블로가 음악에 빠졌으니 가족의 반대가 심한건 당연했죠. 2000년대만 해도 힙합 음악은 반항적인 문화로 비춰졌거든요. 저는 미술 전공이지만 흑인 음악 동호회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힙합을 시작했어요. 무난히 잘 성장한 누나 셋과 달리 막내가 음악을 하겠다며 나서니 부모님께선 불안하셨을 거예요.” 경제적 뒷받침 없이 집을 나선 페니와 타블로는 언더 그라운드에 들어가 ‘막내’를 자청하며 최대한 많은 음악을 접하고 흡수하는데 주력했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배우자는 일념으로 뛰어들었어요. 아무런 개성 없이 음악을 씹어 삼켰죠. 잔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으며 배웠어요. 지금도 타블로와 옛 이야기를 할 때면 ‘그때가 있었으니까 지금이 있지’라 하면서도 불쌍했던 모습이 떠오르면 웃음부터 나요.(웃음)” 페니는 당시 밥값이 부족해 외상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일화를 꺼냈다. “홍대 근처에 한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옛집이라는 밥집이 있어요. 타블로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는 ‘나중에 내라’며 외상으로 밥을 주셨어요. 훗날 외상 값을 계산하러 갔는데 이미 계산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에픽하이의 미쓰라 진이었죠.” ◆ 힙합 뮤지션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유일 프로듀서, 페니 에픽하이의 타블로, 미쓰라 진을 비롯해 더블케이, 낯선, 넋업샨, 얀키 등 국내 힙합의 큰줄기를 잇고 있는 뮤지션들이 페니의 첫 앨범 소식에 모여 들었다. 이는 지금껏 페니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던 가수들이 그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도의 축적이기도 있다. “돕고 돕는 거죠. 일종의 ‘품앗이’ 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네요. 그간 여러 힙합 뮤지션들의 프로듀싱을 도와 왔어요. 제가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을 준비하자 모두들 자기 일처럼 달려들었어요. 다양한 뮤지션들의 참여로 수록된 20곡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고요.” 이번 앨범은 ’2001 대한민국’ 이후 맥락이 끊겼던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음악사 상에도 큰 의의를 갖는다. 특히 다수의 힙합 뮤지션들이 단 한명의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모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앨범 최종 작업 날까지 여러 동료들이 끝까지 확인하고 도와줬어요. 특히 타블로는 완성본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늘 추구하고 싶었지만 ‘에픽하이’라는 이름 아래는 담을 수 없는 음악였다면서요.” ’힙합’ 앨범이라면 굳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아도 열정을 쏟아내온 프로듀서 페니. 지난해 12월 타블로와 작업한 프로젝트 앨범 ‘이터널 모닝(Eternal Morning)’은 국내 연주곡 앨범으로는 드물게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30일 오후 5시 홍대 앞 클럽 ‘CATCH LIGHT’ (캐치라이트)에서는 힙합 프로듀서 페니(PE2NY)의 첫 정규 앨범 ‘ALIVE SOUL CUTS Vol 1’ 의 쇼케이스가 페니의 앨범에 참여한 13팀의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 MYK, 림샷, 라임어택, 넋업샨, 마이노스, 키비, 팔로알토, 더콰이엇, 원선, 본킴, 아키라, 티비엔와이)의 참여로 이뤄질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연주 “미코 출신 연기력 논란 벗겠다”

    김연주 “미코 출신 연기력 논란 벗겠다”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들에게는 꾸준하게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대한민국 대표미인이라는 타이틀로 연기자로 데뷔했으나 준비되지 않은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원성을 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연기력 논란을 겪기도 했던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들이 점차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며 하나 둘 연기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권상우, 김희선 주연의 ‘슬픈연가’에 출연한 미스코리아 연기자 김연주도 마찬가지. 1999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인 김연주가 3년 만에 SBS 아침드라마 ‘며느리와 며느님’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하며 재도약에 나섰다. # 3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 “쉬는 동안 연기에 대한 욕심 생겨” “‘슬픈연가’를 할 때만 해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어요. 그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냐에만 신경 썼죠. 그런데 이젠 달라요. 촬영을 하는 데 있어 작은 씬 하나도 감독님과 상의하고 밤새 대본 연습을 할 만큼 열의가 생겼죠.”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로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김연주가 확실히 변했다.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예쁘게만 보이겠다는 생각도 변했고,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의 기본 자세도 변했다. 김연주는 아침드라마 ‘며느리와 며느님’에서 화장이 지워질 만큼 펑펑 우는가 하면 아예 노메이크업으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 때문에 함부로 망가질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미스코리아에 묶여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3년 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왔으니 연기에 있어 변신도 해야 했고 이제는 연기 잘한는 배우라는 소리도 듣고 싶거든요.” 2000년 황수정, 고수 등이 출연한 MBC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에서 고수의 여자친구로 등장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김연주는 이후 드라마 ‘슬픈연가’에서 주인공 권상우의 상대역인 김희선을 괴롭히는 ‘화정’으로 출연해 국내는 물론 아시아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연주는 돌연 브라운관에서 그 모습을 감췄고 3년 만에 SBS 아침드라마 ‘며느리와 며느님’으로 찾아왔다. “당시 악역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청자들의 질타에 시달렸어요.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죠. 그래서 그때 다시는 악역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이후 들어오는 역할마다 악역이 대부분이었어요. ‘며느리와 며느님’ 대본을 받았을 때 문정희의 역할인 ‘순정’에 끌렸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미팅을 하고 나서 생각이 바꼈어요.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악역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주리 역할이 너무 좋아요. 지금처럼 제가 맡은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또한 김연주는 ‘슬픈연가’에서 인연을 맺었던 송승헌과 연정훈이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통해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소식에 더욱 욕심이 생겼다. “사실 송승헌 때문에 복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부분도 있어요. 3년 전 송승헌이 군입대 문제로 하차하고 연정훈이 ’슬픈연가’에 출연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분들이 제대를 하고 복귀를 하는 걸 보니 제가 너무 오래 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3년여의 공백기를 걸쳐 김연주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며느리와 며느님’이다. 김연주는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와 부잣집 마나님으로 평생 살아온 엄마 덕에 뭐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29살의 디자이너 실장 주리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떨리기도 하고 부담도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촬영장 가는 날이 즐거울 정도로 연기하는 것이 편해졌어요. 제가 편해진만큼 안정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많은 분들이 발전해 나가는 제 모습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3년만에 연기자로 다시 돌아온 김연주. 그는 연기자로서의 재도약을 위해 다시 한 번 출발선상에 섰다. 대학에 입학하자 마자 미스코리아가 됐고 이후 누군가의 힘에 이끌려 앞만 보고 달려오다 ‘슬픈연가’를 기점으로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는 3년이란 공백기 동안 연기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됐음은 물론 연기자로 인정 받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김연주가 미스코리아 출신 연기자들의 연기력 자질 논란을 벗는 데 일조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서울신문 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미스·크라운 제과」 박욱희(朴旭希)양-5분데이트(158)

    「미스·크라운 제과」 박욱희(朴旭希)양-5분데이트(158)

    「셔터」를 누르려고만하면 해가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여간 애타지않은 야외표지촬영에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않은 아가씨. 「크라운」제과 선전실에서 상업도안을 맡아보고있는 이번주 표지아가씨 박욱희양(22)의 교양있는 태도는 옆사람들의 호감을 한결 불러일으킨다. 마산여고를 나와 수도여사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울산공업고등학교 교장 박용형씨의 3남2녀중 맏딸, 위로 오빠가 둘이 있다. 『과자포장지도안을 하게되니까 어린이 심리파악에 퍽 신경을 써야해요. 빨갛고 귀여운 도안을 많이 했죠』 친척집에 있다가 올 6월「크라운」제과에 첫 취직을 하면서 태릉사무실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전공을 살리는 일이니까 권태같은건 몰라요. 학교나와서 그냥 집에서 보내는 건 질색이니까요』 다 큰 딸이 객지에서 지낸다고 어머니의 걱정이 대단하단다. 맏오빠가 의사인 때문인지 청년 의사들에게서 혼담이 많이 들어온다. 『황혼때의 태양빛깔이 제일 좋아요. 노랑과 주황의 중간 빛깔…』 「그리스」신화를 무척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원(媛)> [선데이서울 71년 11월 14일호 제4권 45호 통권 제 162호]
  • “자꾸자꾸 그리워해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엄마”

    최근 암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시인 이해인(63) 수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시집 ‘엄마’(샘터)를 펴냈다. 지난해 어머니 김순옥씨가 별세한 뒤 써내려간 사모곡 60여편과 이에 앞서 어머니를 소재로 썼던 20여편의 동시, 유품 사진 등을 함께 묶었다. ●“아플 때 제일 먼저 불러보는 엄마” 올해로 수도생활 40년, 시인생활 30년을 맞은 그는 지금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항암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절제된 시어로 드러낸다.“몸이 아프고/마음이 아플 때/제일 먼저 불러 보는 엄마/엄마를 부르면/일단 살 것 같다/엄마는/병을 고치는 의사/어디서나/미움도 사랑으로/바꾸어 놓는 요술천사/자꾸자꾸 그리워해도/그리움이 남아 있는/나의/우리의 영원한 애인/엄마.”(‘엄마’ 중에서) 시인 자신의 간절한 사모곡이지만, 세상 모든 자식들의 마음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그만큼 그의 시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껏 멋을 낸 어머니에게 수수하게 차려 입으라며 잔소리를 해대는 둘째딸,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카레라이스를 너무 좋아한 딸…. 시인은 ‘귀염둥이 딸’로 생전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언니 같고 친구 같던’ 자애로운 어머니를 추억한다.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나이 든 어른도/모두 어린이가 됩니다/밝게 웃다가도/섧게 울고/좋다고 했다가도/싫다고 투정이고/변덕을 부려도 용서가 되니/반갑고 고맙고/기쁘대요.”(‘엄마를 부르는 동안’ 중에서) 세상을 등진 수도자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딸일 뿐이다. 시인은 어머니의 삶의 지혜를 새삼 되새기기도 한다.“엄마가 모아 두신/수백 개의 단추들을/제가 수도원으로 가져간다니/매우 기뻐하셨지요/“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단추는 얼마나 쓸모가 많은지 몰라”/하시던 엄마가/블라우스에 장식도 만들고/치마의 앞뒤를 분별하는/표지판도 된다며/단추 자랑을 하시던 엄마.”(‘단추 예술’ 중에서) 시인은 ‘엄마’의 주인공처럼 지혜로운 ‘원더우먼’이 되고 싶은 소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도장집·꽃골무 등 사진 실어 시집에는 시인과 어머니가 주고 받은 편지와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준 도장집과 꽃골무, 괴불 주머니 등의 사진도 실려 있다. 시인은 출판사 관계자를 통해 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심경을 들려 줬다.“지금 아픈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 몰라요. 투병의 고통을 통해 더 넓고 깊게,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베이징의 승전보와 건국절

    [신경림 누항 나들이] 베이징의 승전보와 건국절

    지난 한 주 계속되는 찜통더위를 베이징에서 날아오는 승전보가 식혀주었다. 오나가나 올림픽 얘기로, 그 끝에 꼭 한마디,“역시 우리나라는 대단해”가 따라붙었다.60년 전 정부가 서던 해 런던에서 열렸던 올림픽을 떠올려 보면 정말 우리는 대단하다. 하나밖에 없는 라디오 앞에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 역도와 복싱에서 각각 동메달 하나씩을 땄다는 소식에 환호작약하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콘크리트를 엉성하게 막대에 달아맨 역기를 들고, 새끼를 뭉쳐 만든 공을 차던 시절이다.60년 뒤 우리가 금메달만도 10여개를 따리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역시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은 특히 그때를 살아본 사람들에게는 공통되는 정서일 터이다. 대단한 나라라는 감탄에는 일단 수긍했다가도 그것이 ‘성공한’의 이미지를 갖게 되면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통일된 나라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이다. 또 인권, 복지, 평등 등의 문제에 있어 선진국의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가 사회 불안요소로 잠복해 있는 점도 ‘대단한’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게 한다. 비록 빈부 격차가 심하지만 삶의 수준이 수백배 향상된 것만은 사실이다.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있어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인 것도 부인못한다. 적어도 우리는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고 그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한다. 가기 싫은 자리는 가지 않고 살기 싫으면 옮겨 살 수도 있다. 이것이 베이징에서 날아오는 승전보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는 논리에서 북쪽의 현실을 연상한다. 그쪽에 올바른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나온다. 굳이 탈북문제를 다룬 영화 ‘크로싱’(박태균 감독)이나 소설 ‘찔레꽃’(정도상)을 끌어다대지 않더라도, 북쪽의 현실은 뻔하다.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이 200만명에 육박하는 데다 평양과 개성을 드나든 사람도 수천명에 달하니까 말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가 균형감각을 가지면서 우리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막는 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10년의 대북 포용정책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퍼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정부와 여당에서 끊임없이 비판하는 햇볕정책이 역설적으로 체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통일과 평화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한다. 얼마 전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살해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북측으로부터 당연히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방지를 약속받아야 하겠지만, 그로 해서 이산가족 상봉이며 남북 교류가 완전히 막혀 버린다면 그것은 역사의 후퇴다. 수정되어서라도 포용정책이 이어지고 6·15선언,10·4선언이 지켜질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성공한 나라,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꾼다는 따위 정부와 여당 일부의 경박하고 생뚱맞은 발상도 한몫을 한다.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정통성 확립에 그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광복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음모가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이전 우리나라가 없었다는 생각에 정서적으로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야말로 우리나라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요 부끄러운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베이징에서 날아오는 승전보를 들으면서,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요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을 정부 여당은 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시인 신경림
  • 원더걸스·소녀시대?… “이제는 카라 시대”

    원더걸스·소녀시대?… “이제는 카라 시대”

    최근 가창력 논란으로 마음앓이를 단단히 했던 여성 그룹 카라(박규리, 한승연, 정니콜, 구하라, 강지영)는 아픈만큼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10월 1집 활동 이후 한 멤버의 갑작스런 탈퇴 소식으로 팬들의 아쉬움을 샀던 카라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멤버 구하라와 강지영을 투입하고 4인조에서 5인조로 거듭나 팬들 앞에 섰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이어 소녀 그룹 열풍을 예고하며 나선 카라는 지난 달 24일 M.net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컴백 무대에 올랐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카라 멤버들은 10개월 간 마음 졸이며 준비했던 컴백 무대에임에도 불구 , 지나친 긴장감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깜찍 발랄한 무대 구성으로 호평을 이끌어 냈지만 ‘첫 무대’라는 부담감에 불안한 음색을 숨기지 못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던 다섯 소녀들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던 무대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라의 리더 규리는 “감격과 설렘, 긴장이 뒤범벅 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당시의 심정을 묻자 멤버들은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승연은 “우여곡절 끝 가진 컴백 무대였어요. 단순히 무대를 못했다는 속상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죠.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오직 이 무대를 위해 기울였던 수많은 노력들이 떠올랐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 컴백 후 일주일간 인터넷 하지 않았어요. 카라는 “첫 무대 후 약 일주일간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가창력 논란’ 기사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긴장한 탓이 있다고 해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하고 있기에 모두들 담담히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주저앉으면 안된다고 느꼈어요.”(규리) # 연습 또 연습, 눈물 어린 우격다짐 카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숱한 연예 기사들이 카라의 부족함을 꼬집는데 급급했지만 다섯 소녀들은 ‘한걸음 더 멀리 내다보자’며 눈물 어린 우격다짐을 했다. “이제 막 다시 첫 발을 내딛었잖아요.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멀기 때문에 멈춰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멤버였던 규리·승연 언니와 저에게는 소중한 컴백 활동이지만 새 멤버 하라, 지영에게는 가수로서 첫 걸음이니까요.”(니콜) “첫 무대 후 지금까지 4번의 음악 프로그램에 더 출연했는데 ‘갈수록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다수의 평이었어요. 너무 기쁘고 고마웠죠.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이제 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승연) # 새멤버 적응 완료, “원걸·소시 게 섰거라, 카라 돌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카라의 새 멤버가 된 하라(18)와 지영(15)은 카라의 가장 큰 승부수 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방송 활동 2주차에 들어섰지만 이들은 “매회 무대의 감회가 다르다.”며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첫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꿈꿔왔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았어요. 지금은 무대와 방송 모두 감 잡았어요.(웃음) 이제부터 진짜 카라가 나갑니다!” (하라) 새 멤버 지영(15)도 막내답지 않은 각오를 전했다. “데뷔를 앞둔 연습 기간에는 그저 이끌어 주시는 대로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무대 위의 주인공이 돼야죠.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비해 저희의 강점은 ‘옆집 여자친구’ 같은 친근감이라고 생각해요. ‘제2의 핑클’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카라의 당당한 행보 보여드릴게요!” (지영)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교통부 비상계획관실」백경선(白敬仙)양-5분데이트(154)

    「교통부 비상계획관실」백경선(白敬仙)양-5분데이트(154)

    『황금색 한복을 입은 정희경대표가 자리에 앉아 별안간 오붓한 분위기가 되면서 그렇게 가족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어요』 남북가족찾기 제1차 남북 적십자사 예비회담의 안내를 맡아보았던 이번주 표지「모델」백경선(白敬仙)양. 여자의 옷차림새가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드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스레 깨달았다한다. 49년 12월24일생. 5남매중 장녀고 생일이「크리스머스·이브」여서 언제나 풍성한 생일맞이를 할 수 있는 특혜를 갖는다. 교통부비상계획관실 비서로 쌓은 근무경력은 1년반. 『시골계신 아버지가 어떻게나 완고하신지 몰라요』 충남 논산에서 상업을 하시는 아버지 백남수(白南秀)씨가 어찌나 취직하는 것을 반대했는지 논산여고를 마치고 서울 올라올때도 서울계시던 삼촌이 경선양을 실수없이 잘 거두겠다는 서약을 몇 번이나 한끝에야 데려올 수 있었다한다. 『하찮은 일을 한 것 뿐이지만 국가대표를 보좌했다는 기쁨이 참 크죠. 보리 차를 북한적십자대표 찻잔에 따랐더니 웃더군요』 토요일 하오 고향친구들과 어울려 시장이나 백화점으로「아이·쇼핑」다니는 것이 아직까지는 제일 즐거운 시간. 감명깊게 본 영화는『개인 교수』. 「나탈리·드롱」의 연기도 좋았지만 순수한 사랑의「테마」가 정말 마음에 들었단다.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만 나서면 결혼할 마음의 준비는 다 돼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용기. 『위엄있고 존경받는 일을 하는 분이었으면 해요』 [선데이서울 71년 10월 17일호 제4권 41호 통권 제 158호]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이것이 촛불정신”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이것이 촛불정신”

    “촛불시위에서 발현된 저항정신을 동력으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장에서의 권위주의와 싸워 이겼으면 한다(조희연).” 진보는 이론 이전에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재구성된다.11일 오후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과학부 2학년 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김이민경, 소현, 정훈씨는 시위에 꾸준히 참석해온 ‘열성 촛불들’이다. 네 사람은 각자가 촛불을 통해 경험한 강렬한 기억들을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풀어낼 것인지를 유쾌한 언어로 토론했다. 조 교수는 “우리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강의실에서 권위주위를 퇴출시킬 방법부터 의논해 보자.”며 운을 뗐다. ●“호칭만 바꿔도 많은 게 변해요” “촛불의 정신은 부당한 권위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어. 평소 교수와 학생이 강의실에서 평등해질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 왔는데, 위계관계가 반영되지 않는 별칭을 정해 부르면 좋을 것 같아. 교수-학생간 권력관계는 호칭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니까. 난 아버지가 조씨, 친어머니는 은씨, 새어머니가 서씨니까 ‘조은서’ 혹은 ‘조은’이라고 불러줘(조희연).” “조희연 교수님이라 부를 때와 조은이라 부를 땐 엄청 다른 느낌(정훈)!” “그럼 난 ‘땡땡이’(김이민경).” “난 ‘총총’(소현).” “꼭 별칭을 만들어 불러야 한다는 것도 억압이야. 난 그냥 ‘정훈’(정훈).”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모든 권력이 희화화되잖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권력을 희화화했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삶 속에서는 권력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 학교 선후배 관계만 해도 그래요. 후배들은 선배들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도 찌르면 안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소현).” “권력을 희화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권력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넘어 약자로서 강자의 권력에 대해 여유를 보여 주는 것과 같아요(정훈).” “예비역 남자 선배들과 평등하게 말을 놓자고 합의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싫어해요. 선배들은 그냥 오빠로서 말을 놓자는 뜻이었던 거죠. 호칭이 뭐냐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까지 결정돼 버리잖아요.‘선생님 어떻게 생각해요?’와 ‘조은 어떻게 생각해요?’는 매우 달라요. 호칭만 바꿔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어요(김이민경).” “모든 권위에 의문을 표하는 비판적 사회과학의 방법론과 호칭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지(조희연).” ●“촛불도 탈권위적이지만은 않아” “촛불시위 현장이 꼭 탈권위적이지만은 않아요. 한번은 초등학생이 자기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초딩은 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중·고등학생들은 아예 학교에서 시위 참석을 막고요. 다 어른들의 시각이잖아요. 저는 촛불시위에서만큼은 모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김이민경).” “10대는 스스로 정치적 주체임을 선언했는데, 기존의 규율권력은 여전히 10대를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묶어두려고 하는 거지(조희연).”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전경과 대치할 땐 남자가 앞으로 나가고 여자는 뒤로 빼주거든요. 물론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배제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힘이 충돌하는 현장에서는 장애인들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김이민경).” “규율과 보호는 동전의 양면이야. 예비군이 앞장서는 것도 차이에 따른 분업이 아니라, 기존의 규율체계에 따른 분업이라 할 수 있지. 여성은 보호받고 남성은 보호하는 분업체계가 촛불시위에서도 형성되는 거야(조희연).”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어요” “촛불 이후가 기대되는 게, 촛불을 통해 말하지 않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잖아요. 중·고등학생이 말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들이 말하기 시작했어요. 촛불 이후에도 그들이 예전처럼 그냥 학교와 가정에만 있을까 싶어요. 한번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냥 말문을 닫고 있지는 않을 거라 믿어요(김이민경).” “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건 아주 중요한 지적이야.1980년대는 반독재라는 시대적 과제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를 드러내지 못한 게 사실이거든. 지금은 그런 집단주의 시대는 아니지. 촛불을 통해 개인의 차이를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조희연).” “촛불 이후에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광장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촛불이 꺼지고 나면 광장까지 사라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요(정훈).” “촛불 이후에 저도 계속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촛불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전·의경들도 많이 괴로울 거 같아요. 그들도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거든요. 질서유지란 이름으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전·의경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으면 좋겠어요(김이민경).” “촛불에서 찾아낸 정치적 주체성을 토대로 우리 삶 속 권위주의를 어떻게 해체할 거냐를 이야기했는데,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촛불을 들고 가야 할 궁극적인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결국 우리의 삶 속이란 생각이 드네(조희연).” 글·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주말탐방] 외국인 무용수 몰도바 출신 세르게이·마야 커플

    [주말탐방] 외국인 무용수 몰도바 출신 세르게이·마야 커플

    “이렇게 큰 스케일의 무대가 또 있을까요? 테마파크 전체가 나의 무대지요. 다양한 배역과 거리 공연 등을 소화하며 연기력을 키우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나의 꿈인 뮤지컬 배우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가는 외국인 커플이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카르티라 세르게이(23)와 율리나 마야(23)가 주인공이다. 돈과 경력, 두 마리 토끼를 좇아 동유럽의 몰도바에서 한국까지 찾아 온 그들의 하루를 뒤따라가 봤다. # 한국은 동경의 대상 세르게이와 마야는 약혼한 사이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2005년 10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년7개월가량 체류하고 있는 셈이다.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고국에 돌아가 살 집을 마련한 다음, 결혼도 하고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 생활도 시작하겠다는 야무진 커플이다. 이들이 한달에 받는 월급은 시간 외 수당을 포함해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고국에서라면 다섯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연기자이다 보니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화장품값만 20만원. 나머지 비용을 아끼고 아껴 둘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는 저축을 한다. 거기에 한국에서 일한 경력은 보너스다. 고국에서 후하게 인정받기 때문이다. 국내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무용수들의 인권문제가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중앙아시아나 동유럽 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한국이 동경의 대상인 이유다. # 꿈이 있어 어려움 극복 ■오전 9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9시 정각에 일어났다. 토요일은 평일에 비해 출연 프로그램이 하나 더 늘 뿐인데도,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날이라 심적인 부담이 적지 않다. 집에서 롯데월드까지는 10분 거리. 회사 뒤편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동료 두 명과 숙식을 함께 한다. ■오전 10시 출근카드에 도장을 찍고 분장실 게시판에서 오늘의 일정을 확인했다. 세르게이는 이집트 병사, 마야는 무희(舞姬) 역할도 있었다. 스케줄 확인 후 곧바로 연습실로 올라가 몸을 풀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 늘 그렇듯 연기자용 서양식 메뉴다. 분장을 해야 하는 등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먹어야 한다. ■오후 12시30분 오늘의 첫번째 공연인 스테이지쇼 시간이다. 이집트 파라오와 왕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세르게이는 “연인과 함께 공연할 수 있어 행복하다. 다른 연기자들은 가끔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토로하지만, 나는 마야와 함께 있어 일도, 생활도 모두 데이트가 된다.”며 씽긋 웃었다. ■오후 1시 공연을 마친 세르게이와 마야 커플이 분장실에 들어왔다. 시장통처럼 떠들썩하다. 노트북 컴퓨터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할 듯하다. ■오후 2시 퍼레이드 시간이다. 스테이지쇼는 정해진 레퍼토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퍼레이드를 벌일 때는 나름대로 생각해둔 춤동작을 간간이 펼쳐 보일 수 있다. 퍼레이드 도중 어린이를 안아 준다거나, 악수를 나누는 등 쇼맨십을 보여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후 2시30분 퍼레이드를 마치고 분장실로 들어온 무용수들이 머리와 등에 이고 진 장식들을 벗어 놓았다.5㎏ 정도 되는 꽃장식을 들어 보니 등쪽의 지지대에 땀이 흥건하다. ■오후 3시 오후 5시까지는 휴식 겸 개인 연습시간이다. 오늘은 특별히 브라질에서 온 삼바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예술감독이나 연기자나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서로간에 힘이 배로 들 듯하다. 고된 일정 속에 일탈의 유혹은 생기지 않을까. 마야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 하나로 한국에 온다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겠죠. 그들과는 입국할 때 비자 타입 자체가 달라요. 전 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수로 이루고픈 꿈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오후 5시30분 스테이지쇼 시간. 한 번 펼친 공연이지만, 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서야 한다. ■오후 6시 저녁식사. 역시 양식으로 준비됐다. 일찍 먹고 쉬는 게 낫겠다 싶어 20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오후 7시30분 오늘의 마지막 퍼레이드를 벌일 시간이다. 이번엔 어떤 춤동작을 선보일까 고민하며 분장실을 나섰다. ■오후 8시30분 평일엔 8시쯤 퇴근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스테이지쇼를 하나 더 소화해야 한다. 몸은 피곤해도 웃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신들을 보러 온 관람객들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프로임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9시 동료가 소주 ‘딱’ 한 잔만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마야에게 물었다. 일이 고되지 않냐고. 그는 “10시간 넘게 강행군했지만, 꿈이 있어 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 휴일엔 늦잠 잔 후 쇼핑 놀이공원의 특성상 쉬는 날은 다들 제각각이다. 세르게이와 마야 커플은 회사의 배려로 목요일에 함께 쉰다. 마야는 “휴일엔 오후 2시까지 늦잠을 자는 등 한껏 게으름을 떤다.”며 “느지막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휴일에 꼭 해야 할 일은 장보기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걱정없지만, 아침에 먹을 음식 등 생필품들은 일주일치를 미리 사놔야 하기 때문이다. 집 근처 대형할인마트가 이들이 주로 찾는 곳. 간혹 명동이나 동대문 등으로 쇼핑을 나가기도 한다. 특히 동대문은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상품들을 만날 수 있어 자주 찾는 편이다. 고국의 음식을 맛보며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 고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한국인들 간혹 자신들을 이방인으로만 대할 때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세르게이는 “오래 한국에 있다 보니 한국말, 특히 좋지 않은 표현은 잘 알아 듣는다.”며 “한국말을 모른다고 생각해 막말을 서슴없이 할 때 많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동료인 우크라이나 출신 다축 안드레이는 서울 지리에 꽤 밝은 편이다. 그런데 택시를 타면 아직도 여기저기 빙빙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이다. 그러면서 “잠실에서 이태원까지 1만원이면 충분한데 이리저리 돌다가 1만 5000원이나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보이팀과 공연을 벌일 때 많은 사람들이 ‘왜 우크라이나 사람이 끼어 있느냐.’고 묻곤 한다.”며 “밥을 먹을 때도,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일 때도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털어 놨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서운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르게이는 “한국은 이루고 싶은 꿈에 다가갈 기회를 마련해 준 곳”이라며 “한국에서의 경력은 훗날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또한 “지난해 3개월 동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함께 연습할 기회를 주었던 비보이팀원들의 애정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며 말을 보탰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세계최고 비보이 될 터” 다섯번째 방한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기술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비보이들은 단연 한국의 비보이들입니다. 한국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세계 최고의 비보이로 성장하고 싶어 한국에 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다축 안드레이는 한국 생활에 무척이나 만족해 한다. 비보이로 하루하루를 지내며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섯번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체류한 기간만도 3년 가까이 된다. 이젠 거의 매일 삼겹살 안주에 ‘소주 폭탄’을 마실 만큼 한국 사람이 다 됐다. “한국은 나에게 더 큰 꿈과 목표를 선물한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요. 비보이팀 ‘NUFUNK’ 팀원들과 합숙훈련을 할 때도, 롯데월드에서 활동할 때도 한국 친구들은 늘 내게 고마운 동행자가 됐습니다.” 그가 보는 한국의 비보이들은 세계 최고다. 유럽이나 일본 등 공연 문화가 성숙한 나라들 대신 우리나라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에게 ‘세계 최고의 한국 비보이, 현실은 반지하 월세방’이란 서울신문 6월24일자 1면 기사를 보여 주자 머리를 외로 꼰다. 이런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터. 연습실에서 동료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매가 사냥감을 앞에 둔 맹금류의 그것과 닮았다. 이제 갓 24세. 외동아들로 애지중지 성장한 그이지만, 오랜 객지 생활은 그를 강한 힘이 느껴지는 프로로 바꾸어 놓았다. “여건이 되는 날까지 한국에서 비보이로 지낼 겁니다. 훗날 이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국에 있는 후배들을 양성하고, 또 그들에게 한국에서 더 큰 비보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제 꿈이자 목표지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외국무용수 어떻게 뽑나 서류심사와 오디션 두번 현지서 고용해 한국 파견 대형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연기자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로루시 등의 국가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영진(43) 롯데월드 무대감독은 “임금이나 공연 환경 등에서 우리보다 나은 북유럽 국가들을 선호하는 것이 현지의 대체적인 분위기”라면서도 “그들에 못지않은 조건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여전히 동경의 대상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연기자들은 대부분 최장 11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한 E6 비자를 받아 들어온다. 신분은 한국 회사가 현지에서 외국인을 고용한 후 한국으로 파견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놀이공원 관계자들은 유능한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이상 이들 국가로 출장을 간다. 유 감독은 “서류 접수에만 400∼500명씩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3배수 정도로 줄인 다음, 두 번의 오디션을 거쳐 60명 정도를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또 “연세 지긋한 분들도 찾아와 합격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몰도바의 경우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모이 미에르’(Moy Meer)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인광고나 업체 간 비교 등의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이제는 로컬리티시대]지역공동체 운동 현장을 찾아서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이제는 로컬리티시대]지역공동체 운동 현장을 찾아서

    광우병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와 유전자조작(GM)농산물의 대량수입 등 먹거리 안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역공동체 운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재배와 공동 육아, 품앗이 등 일상을 함께 꾸리는 지역 공동체의 생활 방식이 그것이다. 서울 성미산공동체와 대전 한밭레츠, 전북 부안 등용마을 등의 한국형 지역 공동체의 성공 사례와 해외 사례를 통해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확산된 지역공동체 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 본다. ■대전 화폐공동체 ‘한밭레츠’ 품팔고 가상화폐 ‘두루’ 모아 생활비 아껴요~ 대전에 사는 변수미(36·주부)씨는 지난달 생활비 일부를 일반 화폐 대신 ‘두루´라는 가상화폐로 계산했다. 치과 진료비로 6000두루, 자녀 논술학원비로 2만 두루, 친환경 농산물 구입에 2000두루 등을 썼다. 두루는 자원봉사 활동과 직접 만든 빵을 팔아 벌었다. 변씨는 대전지역 품앗이 공동체인 ‘한밭레츠´ 회원이다. 한밭레츠(www.tjlets.or.kr)는 10년 전 대전서 시작한 지역화폐 공동체다.1983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된 ‘레츠(Local Exchange Trade System) 제도´를 본떠 만든 현대판 품앗이다. 이 같은 지역공동체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확산돼 한때 30여곳에 달했으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3∼4곳만 남아 있다. ●거래건수 9년새 26배 증가 지난달 26일 오전11시 대전시 대덕구 법1동 한밭레츠 사무실. 육아모임을 끝내고 사무실 입구에 마련된 물품 판매대에서 비누와 옷가지 등을 고르는 회원들로 붐비었다. 물품은 두루로 구입하는데 책 대여는 권당 500두루, 머그컵 구입은 2000원+1500두루 등이다. 두루는 ‘널리, 두루두루 쓰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1000두루는 1000원에 교환된다. 두루는 공부방이나 복지관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거나 재활용품 판매 등을 통해 벌 수 있다. 회원인 민들레 의료생협의 진료비, 자동차 수리 업체 정비비, 그리고 농산물이나 재활용품 등 구입에도 사용한다. 지난해 두루거래는 농산물 거래가 21.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의료 서비스 19.4%, 미장원·카센터·약국 등 가맹점 이용 14.2%, 재활용품 거래 8% 등이다. 개인별 ‘가상 통장´으로 관리되며 계좌는 공동체 사무실에서 통합 관리한다. 초기엔 거래가 287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7557건으로 26배나 늘었을 정도로 거래는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거래액도 486만 두루에서 7373만 두루로 15배 증가했다. ●자원봉사로 돈 벌어 농산물 구입 회원은 580명. 다달이 5000원(3000원+2000두루)의 회비를 낸다. 이들은 서로가 정한 별칭으로 부른다. 두루를 가장 많이 모은 회원은 의료 생협에서 일하며 월급의 일부를 두루로 받은 ‘바나나´로 680만 두루를 모았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돌보미 자원봉사를 하는 ‘황장군´은 285만 두루, 문화 소외계층 어린이를 위한 이동영화관 자원봉사를 하는 ‘조각구름´은 372만 두루, 회원들의 소식지인 ‘좋은 이웃´을 인쇄하는 ‘왜가리´는 159만 두루를 모았다. 두루지기(시스템 관리자) 이수정(37)씨는 “지역 화폐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함께 화폐의 활용 영역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부안 등용마을 ‘햇빛발전소’ 풍부한 친환경에너지 “부자마을이 따로없네” 초여름 보슬비에 싱그러운 풀냄새가 뚝뚝 묻어난다. 도로 옆 끝없이 펼쳐진 논은 온통 연두색 천지다. 전북 부안 버스터미널에서 이 길을 차로 10분쯤 달리면 한 마을이 나온다.30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등용마을이다. ●5호기 설치중… 마을 가정용 전기의 60% 생산 1일 오후 2시, 커다란 기중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165㎡(50평)남짓한 건물 지붕 위에 번쩍이는 철판을 까는 중이다.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이 “30짜리 햇빛발전소 5호기를 만드는 중”이라고 귀띔해준다. 이 마을은 환경친화적 에너지 자립공동체로 거듭나는 중이다. 부안시민발전소는 2005년 부안 주민과 환경연합 등이 주축이 돼 만든 단체다.2003년 핵폐기장 반대 운동 당시 “당신들은 전기도 안 쓰냐. 꼭 필요한 시설을 왜 반대하느냐.”란 찬성측의 논리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다 나온 대안이다. 정부의 비효율·반생태적 에너지정책에 반해 친환경적 재생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등용마을 생태학교 시선, 원불교 부안교당, 부안성당, 변산공동체에 각각 3짜리 태양열발전소인 ‘햇빛발전소´를 만들었다. 짓고 있는 5호기가 완성되면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의 60%를 생산하는 셈이 된다. ●유채 재배하며 바이오디젤연료 사용도 뿐만 아니다. 이웃마을인 주산면에서는 2004년부터 유채를 재배해 바이오디젤연료로 사용 중이다.1㎏의 유채를 짜면 기름이 300㎖ 정도 나온다. 이것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 쓰고, 폐식용유는 경운기나 트럭의 연료로 사용한다. 4년의 노력끝에 부안군에는 728㏊의 유채밭이 생겼다. 유채밭으로 유명한 제주도보다 규모가 크다. 부안 유채밭은 농림부에서 ‘바이오디젤용 유채사업 시범단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강화된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 시행규칙´이 시행되면서 바이오 디젤의 사용범위가 크게 줄어 타격을 입게 됐다. 친환경적 에너지 사용에 대한 이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갈수록 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태양열 온수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김겸준(78) 천주교 등용공소 회장은 “자연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든다니 얼마나 좋은가.”라면서 “처음엔 관심은 있지만 방법을 몰랐는데, 젊은 분들이 도와주니 지금은 적극 동참 중”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 자립 공동체로서 이 마을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이현민 소장은 “2015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30% 줄이고, 전체 사용 에너지의 절반을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으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안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서울 마포 ‘성미산 공동체’ 아이들 먹거리·볼거리 걱정 뚝! 카페 ‘작은나무´의 문이 열린다.“아저씨 딸기 아이스크림 주세요!”유기농 천연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건네준 점장 김상훈(28)씨는 돈을 받는 대신 네임카드를 뒤적인다.“네 이름이 뭐였더라?”아이는 살짝 눈을 흘긴다.“제 이름도 몰라요? 영민이잖아요.” 머쓱해진 김씨는 카드를 찾아 영민이 어머니가 미리 계산해놓은 돈에서 1700원을 뺀다. 아이들이 먹거리 걱정없이 무럭무럭 자라는 이 동네의 이름은 ‘성미산 공동체´다. ●2001년 ‘성미산 지키기´ 운동으로 마을공동체 활짝 성미산 공동체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망원동, 서교동 일대 1000여가구가 모여 사는 우리나라 공동체운동의 ‘선두주자´다.1994년 젊은 부모 30여쌍이 60평대 단독주택을 구입해 공동육아를 위한 어린이집을 열면서 싹텄다. 이 공동체는 2001년 마을 뒷산인 성미산에 배수지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며 활짝 꽃을 피웠다. 마을의 숨통인 성미산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주민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해 두레생협, 2002년 주민문화센터 꿈터를 시작으로 2004년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풀뿌리 생활정치 시민단체인 마포연대 등이 생겨났다. 지난해엔 지역 라디오방송국인 마포FM도 개국했다. 공동육아 시절부터 공동체에 참여한 마포연대 상임이사 이경란씨는 “공동체는 현대 도시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먹거리 문제, 아이들 교육과 안전,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등의 문제를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육아를 하러 마을에 왔다가 성미산학교 교사가 된 정현영(45)씨는 “카센터인 성미산 차병원, 반찬가게인 동네부엌이 생기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이익이 남으면 공동체에 환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시 ‘개발 먹구름´에 존폐 위기 최근 성미산공동체에 위기가 닥쳤다. 홍익대학교에서 부속 초중고를 성미산 자락으로 옮기려해서다. 마포구청이 최소한의 녹지 확보를 전제로 조건부 찬성 의견을 서울시에 올렸고,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성미산대책위 문치웅 전략팀장은 “성미산이 사라지면 애써 일궈온 공동체도 사라지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5시에 찾아간 성미산어린이집 한쪽에선 보리(4)와 채원(4)이가 어디선가 튀어나온 달팽이 한 마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었다. 보리와 채원이 같은 공동체 아이들에게 녹색 감수성을 일깨워준 성미산공동체는 또다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한비야 씨(51세)를 생각하면 ‘우주소년 짱가’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나니 말이다. 미얀마에 싸이클론이 강타해 10만 명이 죽고 250만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도 한비야 팀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직 한국에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처음 꺼낸 말도 “제가 원래는 미얀마에 있어야 하잖아요”였다. 내가 뻔뻔해지는 이유 긴급구호는 초기 2주일이 관건이다. 구호요원은 재난 발생 48시간 내에 구호현장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가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그는 미얀마행 가방을 싸놓은 지 한 달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썩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 아직 물 위에 떠다니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 물에 떠내려 온 돼지, 닭들을 잡아서 먹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인한 2차 피해가 더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월드비전 미얀마 지부가 있다는 거예요. 전문 구호요원이 갈 수는 없지만, 돈을 보내면 현지 직원들이 물건을 사서 이재민들에게 줄 수 있어요.” 그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깨끗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250만 명 중 절반을 살릴 수 있어요. 물 10리터 정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만지 아세요? 10원이에요, 10원.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사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이 하루에 20리터래요. 20리터면 20원.” 정수약 천 원어치면 50명, 만 원어치면 500명의 하루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ARS로 천 원, 2천 원 보내는 게 뭐 그리 큰돈일까 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게 바로 목숨과 이어져요. 긴급구호 현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도 몰랐을 거예요.” 남에게 웬만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한 적 없는 그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 달라는 얘기를 뻔뻔하게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TV에서 국제 곡물 값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비야 팀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생계의 위협을 넘어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식량위기는 전 세계 1억 명 이상을 굶주림으로 내모는 ‘소리 없는 쓰나미’라 불리고 있다. 작년 한 해 월드비전에서 식량배분 사업을 한 사람이 650만 명.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같은 기금을 모은다 해도 150만 명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 아이가 그것조차 못 먹게 되는 상황을 보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얼마나 급하고 중한 일이에요.” 한층 높아지고 빨라진 그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곡물 값 상승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케냐로 떠났다.) 담장 밖 세상으로 눈을 돌려요 최근 빈곤의 세계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의 불균등 분배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며 그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한비야 팀장은 희망의 싹을 ‘세계시민의식’에서 찾고 있었다. 그에게 세계시민의식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미얀마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아이들이 우리의 아들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뿐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까지 머릿속에 넣고 이들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 것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출간 이후 만났던 수많은 청소년들이다. “중고등학생들이 길을 가다 저를 만나면 급한 데 쓰라고 돈을 쥐어줘요. 세계시민의식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겐 이미 세계를 무대로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공익광고 출연료로 받은 1억 원을 몽땅 털어 세계시민학교 ‘지도밖행군단’을 세웠다. 작년 1, 2기 출범에 이어 오는 7월 3기 출범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아이들이 담장 위로 올라가 담장 밖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거예요. 꼭 담장 밖 세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선택은 그 친구들이 하는 거죠. 다만 담장 밖 세상이 어떤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비야 팀장을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렇게 마음이 여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아픔을 감당하는 걸까.” 그는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천막 뒤에서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단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씩씩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성서에서는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 그게 벽이 아니라 문이면 열릴 것이라고. 안 되는 일이라고 포기하기 전에 과연 끝까지 두드렸는지 생각해보라고.” 후원 전화 02-784-2004 2008년 7월
  • ‘박정금 아들’ 백종민 “저 신인 아니에요”

    ‘박정금 아들’ 백종민 “저 신인 아니에요”

    “한 번도 제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한 적 없어요.”라며 웃어 보이는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강원도에서 무작정 상경한 배우 백종민이다. 그의 이름 석자가 낯설게 들리겠지만 MBC의 효자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극본 하청옥ㆍ연출 이형선)의 ‘박정금(배종옥 분)의 아들 오지훈’이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창 물오른 연기로 호평을 얻고 있는 배우 백종민을 만나봤다. 한 때는 잘나가는 CF스타, 지금은 주목 받는 신인 배우 백종민을 신인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는 벌써 데뷔 5년 차를 맞은 배우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포털사이트의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이후 꾸준하게 필모그라피를 쌓았다. “고등학교 때는 잘 나가는 광고모델이었어요(웃음). 당시 교복입고 등장하는 CF의 70%는 제가 모델이었을 걸요. 한 달에 4편씩 1년에 20편정도 찍었으니 당시 또래 모델들에게 질투도 많이 받았었죠.” 광고모델로 종횡무진 활약 했던 백종민이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고아라, 김기범이 출연한 KBS 2TV ‘반올림2’를 통해서다. 그리고 그가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MBC 아침드라마 ‘내 곁에 있어’(극본 박지현ㆍ연출 이형선)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극 중에서 백종민은 어릴 적 엄마의 가출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인기 가수로 성장하는 ‘서은호’를 연기해 호평을 얻은 바 있다. 그리고 백종민은 당시 연출을 맡았던 이형선 감독과의 인연으로 ‘천하일색 박정금’에 연이어 출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때랑 지금의 캐릭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두 캐릭터는 분명히 달라요. ‘내 곁에 있어’의 ‘서은호’가 본인 스스로의 비뚤어진 성격에 방황을 했다면 ‘천하일색 방정금’의 ‘오지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조폭 생활에 빠져들게 되죠. 그만큼 감정을 표현에는 차이가 있었어요.” 그는 신인에도 불구하고 최명길, 배종옥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중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제 나이에 맞는 청춘 연기를 할 기회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선생님들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연기하는 데는 편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래의 배우들과 시트콤, 멜로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앞으로 평생 연기를 하게 될 텐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 해보겠어요.” 백종민은 유난히 어둡고 강한 캐릭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다. 현재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서도 연예인을 짝사랑하는 비운의 매니저 역할을 맡아 촬영에 한창이다. “저는 나름대로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들어오는 역할 대부분이 삶의 굴곡이 많고 강한 캐릭터에요. 제가 강하게 생긴 이미지였는지 예전에는 미쳐 몰랐어요(웃음).” 한편 백종민은 윤계상, 고아라 주연의 MBC ‘누구세요’에서 고아라의 남자친구로 잠깐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당시 카메오 촬영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다음에 멜로 연기를 하게 된다면 고아라와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요.” 이병헌, 김래원 등의 배우들처럼 눈빛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앞으로 농익은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배우 백종민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신문 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 / 사진 =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청소년 10명중 6명 “6·25 몰라요”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르고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미국을 꼽았다.또 청소년의 80% 이상은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전쟁 등 국가위기시 극복하려는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행정안전부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3일부터 4일간 전국 중·고교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 의식’ 조사결과 23일 밝혀졌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전쟁이 발발한 연도인 1950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은 전체 응답자의 43.2%에 불과했다.10명 중 4명꼴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청소년도 48.7%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2%는 ‘남한’이라고 답했다. 핵개발 등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55.8%가 위협을 느끼면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선 64.2%가 ‘낮다.’고 답했다. 향후 10년 내 남북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63.1%가 낮게 전망했다. 특히 응답자의 3분의1은 남북 통일에 반대했다. 사회혼란을 일으킨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우리나라 안보에 위협을 주는 나라로는 ‘미국’을 지목했다. 이어 일본(27.7%)과 북한(24.5%)의 순이었다.그러나 안보를 튼실히 하기 위해 손잡아야 하는 협력 국가로도 ‘미국’을 1위(34.6%)로 손꼽아 눈길을 끌었다. 이어 북한과 중국이 각 22.3%,17.7%로 전통 우방인 일본(14.8%)을 제쳤다.반면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위기극복 참여의지’는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냐는 질문에 80.7%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전쟁·대규모 테러 등 국가위기가 발생했을 때 ‘동참하겠다.’는 응답도 85.4%에 달했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대한민국에서 ‘오해’와 ‘진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직업 하나를 꼽아보자. 힌트. 누가 뭐래도 그들은 ‘미술관의 꽃’이다. 어지간히 눈치없는 사람도 이쯤하면 무릎을 치겠다. 그들의 이름인 즉 큐레이터(curator)이다. 큐레이터가 전시장의 마스코트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까만 정장 차림으로 우아하게 눈인사를 보내오는 그들의 자태는 오가는 관람객들에겐 더러 ‘로망’으로 꽂힌다. 덮어놓고 환상부터 불러일으키는 주체란 대목에서 많은 이들에게 ‘미술’과 ‘큐레이터’는 동의어로 다가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해가 많다. 무엇보다 그들 세계의 실상은 화려한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 여차하면 (미술관)벽에 못질까지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밥먹듯 밤샘… 기획력 못지않게 체력도 갖춰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씨. 지난 17일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전을 개막하기까지 근 열흘동안 그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살았다. 전시가 개막되고서도 며칠동안은 연일 야근을 했으니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먹는 건 사치. 이번 전시를 오픈하기까지는 첫 기획에서부터 꼬박 1년이 걸렸다. 전시에 참여한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4인을 섭외하고 그들의 어떤 작품을 들여와야 하는지 선정하는 등의 업무가 모두 그의 책임 아래 진행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전시가 임박하면 밥먹듯 밤샘작업을 해야 하고, 급할 땐 벽에 못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빈소리가 아니다.”는 그는 “큐레이터가 기획력 못지 않게 갖춰야 할 덕목이 체력”이라고 말했다. 소소하게 오프닝 손님맞이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까지 그의 몫일 때가 많다. 작품의 위치를 일일이 정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과 온도, 습도까지도 신경써야 한다. 말 그대로 1인 10역.“백조 가면을 쓴 ‘노가다’”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큐레이터란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는 물론,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인력을 일컫는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들은 ‘학예사’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바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반적인 오류. 작품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업화랑에는 큐레이터가 없다.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작품 및 전시를 관리하는 이들은 엄밀히 ‘갤러리스트’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맞다.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업무는 딱히 선을 긋기가 어려울 만큼 잡다하다. 전시의 전체 얼개를 잡는 기획업무는 기본. 도록 만들기, 작가 섭외, 작품 선정,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거는지 전시장 세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떠맡아야 한다. ●미술관에는 큐레이터만 산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이 갖고 있는 ‘중대한’ 편견. 미술관에 큐레이터 말고 또 다른 명함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미술이 소수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보통사람들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최근 몇년새 미술관 사람들의 업무영역도 발빠르게 다양화,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시장을 움직이는 손은 알고보면 여럿이다. 우선, 에듀케이터. 전시의 교육적 기능을 전담하는, 미술관의 빼놓을 수 없는 전문인력이다. 전시의 전체 컨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일이 큐레이터 몫이라면,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몫은 에듀케이터에게 있다. 미술관을 움직이는 손은 또 있다. 관람객 편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살뜰히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주는 현장가이드.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동행하며 작품정보를 자세히 들려주는 주인공은 큐레이터가 아닌, 이름하여 ‘미술품 전문해설사’다. 이들이 국내 미술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박선민 사무장은 “기존의 ‘도슨트’가 무보수 자원봉사 개념이어서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립미술관들이 이들을 채용키로 했다.”면서 “일반 관람객들이 거부감없이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칭 미술팬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자리이기도 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사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으므로 은퇴 교사나 예술학을 전공한 미술애호가라면 미술관 채용정보를 꼬박꼬박 챙겨볼 필요가 있다. ●왜 ‘그녀’들만? 까만 정장이 유니폼? 그래도 물음표가 찍히는 몇가지. 미술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째서 열에 아홉은 여자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홍익대 예술학과,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대구 가톨릭대 예술학과 등 큐레이터의 주요 산실들에 남자 예술학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큐레이터 하면 떠오르는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가 또 까만 정장이다. 정장, 그것도 검은 색을 챙겨입어야 하는 규칙은 물론 없다.“전시를 ‘문화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려면 근무자의 복장이 튀지 않아야 하는 데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세상을 통째로 미술에 감염시켜라” ‘갤러리 앤 더 시티’ 도시를 통째로 ‘미술관 블랙홀’ 속으로 풍덩 빠뜨리는 게 일상의 목표인 사람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는 세상을 미술에 감염(?)시키는 즐거움으로 사는 여자 넷이 날마다 뭉친다.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인 황정인 수석 큐레이터와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품 전문해설사 조영은씨. 그리고 한살아래인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다. “전시 시작하기 보름 전쯤이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요. 전시 인쇄물을 만들고, 편집 디자인도 최종 점검하고, 또 디스플레이할 작품도 들여와야 하거든요.” 황 큐레이터가 홍익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들어온 건 2003년.‘큐레이터 밥’을 먹은 지는 햇수로 5년째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양강의를 나갈 정도로 야무진 그는 “조금씩 변화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 잠재력 큰 무명작가들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최고 매력”이라며 웃는다. 미술관의 자체 전시를 기획하는 그와 호흡을 맞추는 건 동갑내기인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우씨는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공동전시 기획을 맡는다. 이처럼 사비나미술관은 국·공립 못지 않게 체계적 인력을 구성하고 있는 곳으로 몇손가락 안에 든다. 지난해 11월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해설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문해설사 1호가 된 조영은씨. 영국 버밍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디자인 역사를 더 공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로 몇달 일하면서 일반 관람객들의 미술 궁금증을 현장에서 풀어주는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있었다.”는 그는 자원봉사 개념의 도슨트가 꾸준히 재교육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 내심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문제를 보완한 전문해설사를 뽑는다는 공고에 반색하며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현장의 그녀들 눈에 미술관으로 걸음한 관객들은 다 고울까. 솔직히 꼴불견도 있다. 국사 선생님이 되려 박물관 강좌를 듣다 미술관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내기 위해 영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시장을 그저 영어학원쯤으로 인식하는 젊은 엄마들은 보기 딱하다.”고 털어놓는다. 예술의 향취를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을 아이의 체험학습장 삼는 부모들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입을 모은다. 업무 영역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희망사항은 신기하게도 닮은꼴이다. 예산부족으로 지금의 미술관들이 엄두도 못내는 작업들을 10년쯤 뒤에는 꼭 해보는 거다.“지금으로선 큐레이터들에겐 전시 목록 말고는 남는 게 없어요. 땀흘려 기획한 전시를 국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해외 교류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국내 작가들과 작품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연구소도 운영했으면 좋겠고….” 황 큐레이터의 욕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활 “지난 23년과는 다른 음악 들려줄 것”

    부활 “지난 23년과는 다른 음악 들려줄 것”

    ‘전설의 록그룹’ 부활이 올 가을 새 싱글로 돌아온다. 1986년 1집 ‘희야’로 데뷔해 23년 동안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온 부활이 어려운 가요계 현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활의 음악을 만나게 될 것 부활의 리더 김태원을 만난 건 12일 오후 1시 서울 명동의 신세계 백화점 공연장. 2시 공연을 앞두고 “1년 만에 서는 무대라 더욱 긴장된다.”는 김태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했다. 데뷔 후 쉴 틈 없이 달려왔던 부활이 2년이란 공백기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 부활은 매년 새로운 곡을 발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대한민국 대표적인 장수 그룹이다. “데뷔 후 지금까지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어요. 매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앨범을 발표해야 했기 때문에 늘 쫓겨 작업을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정성을 들였죠.” 부활은 11집을 마지막으로 기획사와 결별해 처음으로 2년간의 공백을 가졌다. 한동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부활이 올 가을 싱글로 컴백을 알린다. “부활만의 음악을 고수하기 위해 타 가수의 음악을 듣지 않는 습관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가수의 곡들을 많이 들었죠. 시대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이번 싱글은 부활 본연의 색깔과 새로운 시도를 더해 작업했어요.” 음악을 하는 이로써 관객 앞에 설 때가 가장 설렌다는 김태원은 “더 쉽고, 더 감동적인 음으로 곧 대중 앞에 서겠다.”고 새 싱글 발매를 앞둔 소감을 전했다. # 23년을 록그룹의 멤버로 산다는 것 “물론 23년이란 시간 동안 음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음악에 미치면 가능한 일이죠. 만약 대중들이 외면한다 해도 스스로가 음악에 미쳐있다면 계속 음악을 할 수 밖에 없죠.” 과거 부활과 함께 록그룹의 전성기를 누렸던 그룹들은 어느새 조용하게 발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룹 부활은 9번의 보컬 교체를 거치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요즘 음악은 10대들만 듣는 것이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인데 말이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으로 오랜 시간 대중과 함께하고 싶어요.” 김태원은 부활의 리더로 23년 동안 변함 없는 모습으로 팀을 지켜왔다. 그는 이것이 절대 자신만의 힘으로는 부족했다고 말한다. “20%가 제 힘이었다면, 40%가 대중의 힘이었고, 나머지 40%는 멤버들이 의리였죠. 현재 후배들도 우리처럼 오랜 시간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팀을 지키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생각하면 그 어려움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룹의 수명이 비교적 짧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부활이 오랜 기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그 어느 이들보다 강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룹 부활을 우울하게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편견일 뿐이다. 단지 부활은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있을 뿐,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서울신문 NTN 서미연 기자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재일교포 여대생 강정자(姜靖子)양 -5분데이트(147)

    『한국인 의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마디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강정자양. 이화여대서 열린 재일교포 하기학교에 참가한 교포 여대생 가운데서 「픽·업」된 표지아가씨-. 『어쩌면 일본에서 듣던것과 그렇게 달라요』 8월16일 수료식을 끝내고 서울과 부산을 둘러본 강양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그쪽 언어 풍속이 몸에 배었으니…』조금 불안스러운 눈치. 1952년 5월22일생. 일본서 낳아서 그곳에서 자랐다. 「오사까」시에 있는 「하고로모」초급대학 가정과 졸업반이데 고국에 온것은 처음이다. 「오사까」시 교외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 회사고문을 맡고있는 아버지 강봉수(姜鳳秀)씨의 2남2녀중 셋째. 아버지는 일본 「게이오」대학과 청산학원을 마친 「인텔리」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감옥 출입도 한 열렬한 애국자란다. 이번 귀국한 길에 삼촌 김영호(金榮皓)교수(이화여대)와 고모부 윤인호교수(서울대)를 비롯, 친척 어른들을 전부 찾아 뵙고 떠날 계획.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6·10항쟁 세대 박철민씨·‘촛불소녀’ 김남미양 대담

    6·10항쟁 세대 박철민씨·‘촛불소녀’ 김남미양 대담

    21년. 6·10 민주화항쟁이 있었던 1987년과 촛불소녀들이 들고일어난 2008년의 세월차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서울신문은 6·10 항쟁 21주년을 맞아 21년 전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거리 시위를 주도했던 배우 박철민(41)씨와 촛불집회 첫날부터 촛불을 든 고등학교 3학년 촛불소녀 김남미(17)양의 대담을 통해 21년의 세월을 되돌아봤다. ●1987년 6월과 2008년 6월 박철민 전 학생운동 주변머리에 있던 ‘날라리 운동권’이었죠. 당시 전두환 정권이 음모적으로 체육관 선거를 통해 탄생했어요. 민주적이지 않았고 힘의 논리가 만연했었지요. 사회구조 극복을 위해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서울시청 앞에 100만명이 모였어요. 결국 노태우씨가 항복했죠. 이명박 정부는 어쨌든 투표를 통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책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는 거죠. 지난 5월31일에 촛불집회에 갔는데, 자유발언을 하려다가 시민들이 행진을 원해 결국 발언을 못했어요. 시민들이 “이명박 물러가라.”고 하던데, 잠시 세대차이를 느꼈어요. 쇠고기 재협상과 대운하 반대는 가능하지만 정당성있는 정부에 대한 반대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나이든건가 싶더군요. 김남미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과 광우병 쇠고기 얘기를 하다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생필품에도 성분이 들어갈 거라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겁을 먹게 됐어요.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다 지난달 2일 우리 반에서 18명이 함께 집회에 나가게 됐죠. 화가 났거든요. 물론 “안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하지만 반대 의견은 반대 의견이고, 우리는 우리잖아요. 박 6·10땐 엄숙하고 비장하고 살떨렸죠. 잡히면 2∼3일씩 구류 살아야하고 구속도 되니까. 결국 단일한 지도부에 의해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사분란했고 조직적이었죠. 그런데 이번 집회는 정말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더군요. 결국 세상이 21년 동안 자연스레 진보해온 거 같아요. 하루 아침에 그렇게 바뀌진 않거든요. 김 하지만 경찰은 안 바뀐 거 같아요. 저도 경찰이 물대포 쏜 날 현장에 있었는데, 사람을 향해 마구 물대포를 쏘고 스크럼 짠 시민들에게 소화기를 뿌려대고 하더군요. 주위에서 어른들이 “이게 2000년대 맞냐.”라고 하시더라구요. 박 위에서 내려오는 강경진압 지시 때문이겠죠. 상부에선 여전히 80∼90년대 생각을 갖고 진압만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압박을 가하니 결국 전·의경들은 그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결국 안타까운 젊은이들 간의 비극이 되는 거죠. 그러니 시민들의 빛나는 생각을 퇴색시키지 않는 방법은 ‘비폭력 무저항’이라고 생각해요. 김 지금도 충분히 비폭력적이지 않나요. 시민들은 전·의경들에게 악감정을 내뱉기보다 비폭력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 앞에 선 전·의경들에게 김밥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어요. 박 그래요. 우리 때도 쇠파이프 들고 전·의경 헬멧을 때리다가 이성을 찾으면 동시대 살아가는 아픈 젊은이들이니까, 적이 아니니까 꽃도 달아주고 손도 잡고 했죠. ●소통의 도구는 어떻게 변했나 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메신저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포털 커뮤니티나 카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만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생각을 나누죠. 박 우리는 경찰이나 안기부로부터 행동지침 등을 보호하면서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택(거리시위 장소)’을 은밀하고 음모적으로 전달했죠. 결국 조직적이고 단일한 생각을 줄 지도부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김 요즘은 지도부가 있으면 싫어해요.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는데, 왜 나에게 뭐라고 시키느냐는 거죠. 학교 분위기에서 이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친구들은 선생님도 상당히 편하게 대해요. 담임 선생님 별명을 정해놓고 자기 맘대로 별명으로 선생님을 부르기도 해요. 선생님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죠. 지난 7일 밤에도 집회에 민주노동당에서 방송차를 끌고 나와 노래 틀고 구호외치라고 ‘강요’하는데 꼴도 보기 싫었어요. 사람들이 “가라.”고 소리쳤어요. 박 권위가 사라져가고 있네요. 우리는 교련 수업 등을 통해서 군대 문화를 배워서 그런지 간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몸에 뱄어요. 지도부가 있는 게 싫고 지도부에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게 아름답고 신선하네요. 어떻게 보면 배후세력이 없으니 이렇게 큰 힘이 만들어진 거 같아요. 사실 우리 배우들은 그런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바탕으로 ‘딴따라’를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참 매력적인 거 같아요. ●10대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김 집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색깔은 그들이 느끼는 절실함에 따라 다양한 것 같아요. 등록금, 학교 자율화,0교시 폐지, 고시철회, 이명박 퇴진 등등. 우리 10대들은 억눌려 있었잖아요.10대들의 정치참여를 사람들이 이색적이라고 보는데, 그게 아니라 실은 당연한 거잖아요. 자기 목소리내는 건 나이와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박 그럼.4·19도 10대가 주축이었는데. 김 그때도 그랬어요? 박 나도 잘 몰라요. 보기보다 나이가 그렇게 안 들었어.(웃음)그때도 힘은 10대 중반이었죠. 들불 일어나듯 막을 수 없는 큰 힘이 일어난거고. 희생자도 많았죠. 기성 세대들은 4·19 출신이라는 걸 당당하게 얘기하면서, 지금은 10대들이 나서는 걸 비판하니…. 김 그러니까요. 팬클럽이라서 나왔다니…. 극히 일부예요. 반면 10대를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냥 개인과 개인이에요.‘웹 2.0세대’라고도 하던데,10대만 인터넷하나요. 박 큰 딸이 중3인데, 최근에 촛불집회 나간다면서 “청소년은 10시30분까지 들어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이 아이들도 나름대로 정수기의 여과기가 있구나.’ 싶었어요. 김 전 좀 생각이 달라요. 아이들이 너무 미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일찍 들어가라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 나오는 교감 선생님들이나 일부 카페 운영자들이 청소년은 일찍 들어가라고 말하는 건 자신들이 비난받을 소지를 없애려는 거죠. 박 선거 연령을 낮추는 데는 동의하는데, 내 딸이 막상 나가 있으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딸이 밤새 시위하면서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여관가서 잘 수도 없고…. ●‘불법’으로 규정된 촛불집회는 김 집회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들었어요. 상위법이 하위법을 앞선다고도 배웠고요.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집회를 규정하는 하위법 자체가 집회를 못하게 만들어 놓은 데 있다고 생각해요. 주요 도로도 못 쓰고, 야간 집회도 막고, 아예 하지 말라는 거죠. 불법 운운하는 건 하지 말라는 말의 포장이라고 생각해요. 박 그 말을 들으니까 또 그렇네.(웃음)하지만 국회에서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법이고 그런 게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고, 법 자체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일 거 같아요.1000명이 모일 거라 생각하고 서울광장에 모였는데, 시민들 요구가 높아 100만명이 모이면 자연스레 도로 점거가 되는 거죠. 그럴 때 최소한으로 도로를 점거해서 교통 방해도 최소화하는 식의 유연성이 필요한 거 같아요. 현장 경찰도 변하고 있잖아요. 지도부에서 강경진압 강압적 지시 내린 분들이 아름다운 경찰의 진보를 거꾸로 돌리지 않게 해야 해요. ●6·10민주화항쟁이 주는 의미는 박 그때는 희생한다고 생각했죠.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너무나 옳은 거라 생각해서 가장자리라도 제가 섰죠. 지금은 축제더군요. 난장이기도 하고요. 딸에게 희생이나 의무가 아닌, 세상이 뭔가 잘못됐을 때 자연스레 저항하는 모습이 생긴 걸 보니 20년 동안 세상이 달라졌음을 느껴요. 김 저도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집회 안나가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오는 거죠. 우리 힘으로 안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학교 자율화도 내 일이고, 수돗물 값 오르는 것도 내 일이죠. 박 이렇게 발랄하고 예쁘고 깜찍한 모습들이 조직되지 않은 예술을 창조하는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 자랑스럽네요. 김 몸이 좀 안 좋아서 오기 전에 긴장했는데,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리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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