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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하나, 남다른 각선미 자랑하는 근황 ‘최강 동안’

    정하나, 남다른 각선미 자랑하는 근황 ‘최강 동안’

    아크로바틱 배우 정하나(34)의 근황이 공개돼 화제다.지난 27일 정하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BS 좋은아침 12월 28일 아침 9시10분 방송나가요^ㅁ^♥ 많은 시청 바라요. 1시간 분량 찍는데 해외 일정도 있어서 일주일 넘게 열심히 찍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정하나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짧은 의상을 입은 정하나는 남다른 각선미를 자랑했다. 한편, 배우 이세창(47)은 지난 5일 아크로바틱 배우 정하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오전 SBS ‘좋은아침’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됐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한끼줍쇼’ 준호 “강식당 때문에 ‘그냥 사랑하는 사이’ 시청률 하락”

    ‘한끼줍쇼’ 준호 “강식당 때문에 ‘그냥 사랑하는 사이’ 시청률 하락”

    ‘한끼줍쇼’ 이경규와 준호가 길바닥에서 큰절을 올렸다.27일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 수서동 편에는 밥 동무 배우 안내상, 준호와 함께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궁 마을을 찾는다. 수서동은 과거 ‘전주 이씨’ 집성촌으로 알려진 궁 마을과 함께 광활한 규모의 광평대군파 묘역이 자리 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전주 이씨’로 통하는 이경규와 준호에겐 더욱 의미가 깊은 동네이다. 최근 진행된 ‘한끼줍쇼’ 녹화에서 이경규와 준호는 “오늘 조상님 동네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성을 갈아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한 끼 도전에 나선 준호는 “가수 겸 배우 준호입니다”라며 자신을 설명했지만 “몰라요” “그런데요?”등 냉담한 반응에 좌절해야만 했다. 준호는 부담감에 인지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벨 누를 차례가 아님에도 안내상의 옆에 붙어 자신을 아는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봤고, 자신을 알아보면 감격에 겨워 ‘10점 만점에 10점’을 열창했다. 안내상은 이경규-준호팀의 낮은 승률에 “아까 묘역에서 절을 안 해서 그렇다”며 불길한 예언을 했고, 이경규와 준호는 결국 길바닥에서 큰절을 올려 웃음을 자아냈다. 뿐만아니라 준호는 최근 시청률 고공행진으로 주목 받고 있는 ‘강식당’의 주인 강호동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준호는 “‘강식당’ 때문에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시청률이 떨어진 것 같다”며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혈통으로 똘똘 뭉친 이경규와 준호의 한 끼 성공 여부는 27일 수요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 수서동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지붕 아홉가족’… 지역과 더불어 살어리랏다

    ‘한지붕 아홉가족’… 지역과 더불어 살어리랏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 77. 오밀조밀한 주택들 사이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특별한 집이 있다. 통유리 창을 통해 골목이 한눈에 들어오는 1층은 흡사 북카페 같다. 지하로 내려가니 거울로 한쪽 벽면을 채우고 조명까지 어엿하게 달린 연습실도 있다. 얼핏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 공간인가 싶지만 이곳은 엄연한 주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입주민들. 주거 공간인 2~4층에 연극인 아홉 가족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이곳은 주거난을 겪는 연극인들을 위해 서울시와 서울연극협회, SH공사가 손잡고 마련한 ‘연극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연극인 전용 공공주택이 생긴 건 처음이다. 연출가, 극작가, 배우, 평론가 등 연극인 가족 14명은 지난여름부터 차례차례 입주해 한 식구가 됐다. 최근 이곳을 찾아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는 김경익(49) 연출가, 김기태(37) 극작가, 정대진(41) 배우, 김진이(34) 배우를 만났다.“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가 ‘더불어 살자’입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해지려고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쟁시스템이 아니라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문화적 향기가 이 동네에 퍼지기를 바라요.” 연극인 주택의 주민협의회 부회장을 맡은 김기태 극작가의 말이다.그의 바람대로 지난 7일 이웃 주민까지 초청해 특별한 ‘집들이’를 했다. 정식 개관식이었던 이날 연극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기를 한껏 발휘했다. 실로폰, 타악기 등을 사용한 연주회, 짤막한 인형극, 낭독극, 합창 등으로 “자유분방한 예술인들로 동네가 소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던 동네 주민의 마음을 녹였다. “문화라는 것이 꼭 극장에 직접 가서 뭘 봐야 하는 게 아니라 삶의 형태가 바뀔 수 있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야말로 문화거든요. 프랑스 파리 하면 센강과 샹송, 와인, 낭만을 떠올리듯이 서울에서도 이 동네만이 지닌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이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작은 변화를 통해 이 지역만의 색다른 색깔이 묻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김경익) 입주민들은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한다. 자체적으로 주민협의회 대표와 부대표, 총무 등을 선출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머리를 맞댄 덕에 ‘오프 대학로’로 불릴 정도로 거주 연극인이 즐비한 삼선동에서 이곳은 연극인과 지역주민 간 교류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지하 연습실과 1층 커뮤니티룸은 연극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창작공간이자 지역주민에겐 문화센터나 다름없다. 특히 내년 봄부터 1층 커뮤니티룸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수업, 희곡읽기 모임, 낭독공연 발표, 연기 훈련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습실은 향후 일반인들에게도 특정 시간대에 한해 개방할 예정이다. “저나 남편이나 모두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보니 사진 찍히거나 찍는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일반인들에게 소소하지만 저희의 노하우를 알려 주면서 소통하고 싶어요. 또 내년이면 아이가 태어나는데 이곳을 동네 아이들이 함께 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김진이) “사실 평생 살면서 연극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잖아요. 요즘 저는 연극인들끼리만 연극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공연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사회와 만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곳이 주민들에게 극장을 벗어난 공간에서의 또 다른 극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정대진) 다만 아쉬운 점은 짧은 임대 기한(2년)이다. 소득 및 자산 등의 무주택 요건을 유지하면 재계약을 통해 최장 6년간 거주할 수 있지만 집세 비싼 대학로 인근 동네에서 이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김 작가는 “이 사업의 취지가 연극인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좀더 나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문화 활동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2년 뒤를 걱정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연극인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기간을 제한하기보다 공공주택을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K리그 주니어 득점왕 추민열 “부천FC품으로”

    K리그 주니어 득점왕 추민열 “부천FC품으로”

    경기 부천FC1995가 2017 K리그 주니어 후기리그 득점왕인 팀 유스 선수 추민열과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추민열은 신용산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인천유나이티드 유스, 스페인 라요바예카노 유스를 거쳐 2016년 부천FC1995 U-18팀에 입단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워드로 나서며 2017년 K리그 주니어 전?후기 리그 19경기에서 23골을 넣으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특히 후기리그에서는 3번의 해트트릭을 비롯해 15골로 득점왕에 오른 바 있다. 부천FC1995 정갑석 감독은 “추민열은 상대 수비와 거친 몸싸움보다는 수비 라인의 빈 공간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슈팅까지 연결하는 영리한 스타일로 앞으로 성장이 가장 기대되는 선수”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추민열은 “유소년 시절 동경했던 프로 형들과 함께하게 돼 매우 설렌다”며 “꿈꾸던 무대에 오게 돼 부천FC1995 유스팀 출신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이사람 e향기] 얼룩진 고미술계, 쇄신으로 밝은 미래 이끌다

    [이사람 e향기] 얼룩진 고미술계, 쇄신으로 밝은 미래 이끌다

    어릴 적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온 한 청년은 고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21살에 그 분야에 뛰어들었다. 40년간 갤러리를 운영하며 고미술 분야의 리더가 된 그는 이제 가난이 아닌 또 다른 것과 싸우고 있다. 가짜와 위조문서 등 ‘어둠의 거래’가 많았던 고미술 분야의 정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한국고미술협회 김종춘 회장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김 회장은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문화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이전 정부에는 내가 블랙리스트에 속해 있던 것으로 안다. 정부가 바뀐 만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 회장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고미술 문화재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셨습니까. -법원에서 나온 경매물을 취급하다가 유물을 보고 느낌이 왔습니다. 그때부터 옛 작품들에 관심을 갖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됐지요. 사실 제가 이제껏 직업을 네 번 바꿨습니다. 만약 이걸 안 하고 건설업이나 부동산업을 했다면 돈은 더 벌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 문화재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매달려 왔습니다. →여러 구설에 많이 오르내렸습니다. 그만큼 어려움도 컸을 것 같습니다. -모함과 음해가 많았습니다. 아마 어지간한 사람이면 진즉 무너졌을 겁니다. 저는 우리 문화재가 바로 서야 우리 문화가 살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어떻게든 우리 업계가 스스로 개혁을 해서 정도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보니 이제까지 안 좋은 방법으로 해온 사람들이 지탄을 하고 많은 음해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가짜가 많이 있습니까. -위조 감정으로 만들어진 감정서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 고미술의 이미지를 오히려 나쁘게 만들고 있지요. →협회 산하기관으로 시작된 고미술품 감정 아카데미에는 그런 ‘가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군요. -현재는 저희 협회에서 독립해서 사단법인 한국문화유산아카데미 고미술문화대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물론 감정 전문가의 필요성도 있었지만, 문화대학을 만든 것은 학자와 상인들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새로운 물건이 발견되면 학자들에게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고, 또 우리 고미술협회 회원들은 부족한 부분을 학자들에게 배우면서 주고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지금은 사단법인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내년쯤에 교육부에 등록해서 2년 후에는 정식 2년제 대학으로 출범시킬 계획입니다.→고미술문화재 가치를 높이는 데에 필요한 정책적인 지원은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로서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문화재보호법 개정이라고 봅니다. 문화재보호법이 일제시대에서 이어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제일 직접적인 부분이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는 내용인데, 국보나 보물급이 아닌 것도 여기에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미술품이 외국에 나가면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나라 문화재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만 유독 국제적인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요. 외국인이 우리나라 여행 와서 접시 하나 사서 간들, 우리 문화가 남의 문화로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길을 오히려 법으로 막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문화재 유출은 민감한 사안 아닙니까. -일본의 경우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본 방식을 많이 따라가면서 이 부분은 너무 뒤떨어져 있어요. 물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중요 문화재들은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처럼 그 외의 고미술품의 이동은 자유롭게 풀어달라는 것이죠. 몇 년 사이 중국 유물은 수십 배로 값어치가 뛰었어요. 반면 우리 문화재들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요. 과거에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팔기 바빠서 무분별하게 유출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지 않습니까. 과감하게 개방할 건 개방해야지요.→문화재보호법 외에 정책적인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정책적으로 이러한 고미술 문화재에 대한 뒷받침이 전혀 없다시피 한 상태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물건 구입비 같은 경우에 전에는 7000만~8000만 원이었던 걸 제가 이런저런 노력으로 30억 원 수준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40~50억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립 박물관이면 구입비가 500억은 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십억 가지고 무슨 가치 있는 문화재를 구입합니까. 그만큼 우리나라가 문화재에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지원도 거의 없지요. 다보성갤러리 같은 경우도 40년 동안 운영해 왔고, 어지간한 박물관보다도 규모가 커요. 그런데도 지원은커녕 은행 거래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다보성갤러리를 약 40년 운영해 오셨습니다. 대표적인 소장 작품을 소개해 주신다면. -다양한 연대의 많은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금속활자가 있습니다. (다보성갤러리는 2010년 9월 ‘직지 활자보다 130년 앞서는 금속활자’라며 ‘증도가자’를 공개했다.) 우리가 금속활자의 종주국으로서 전 세계 교과서에 나올 문화유산을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렇게 두고 있어요. 고미술계의 음해와 모함으로 이런 중요한 문화재가 빛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현재 북한 개성 만월대에서 활자 4점이 발굴됐습니다. 그걸 북한이 유네스코에 등재해버리면 우리 것은 붕 떠버리잖아요. 우리가 그간 가져온 금속활자 종주국의 자긍심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계속해서 모함과 음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인터넷에 이름 검색만 해봐도 제가 사건이 참 많았다 싶습니다. 법원도 많이 다녔어요. 막연한 의심이 아니라 완전히 음해고 모함인 것으로 밝혀졌어요. 제 사건에 증언을 했던 한 사람이 K와 L, 또 다른 K, 그리고 J 등의 실명을 밝혀가며 그들로부터 사주를 받고 거짓 증언을 했다는 사실확인서까지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감정업무와 협회를 장악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거짓으로 제보하고 증언하고 그러는데 어차피 그런 거짓말은 머지않아 다 밝혀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이런 걸 겪다 보면 내가 왜 협회에서 이런 걸 맡아서 이런 고통을 받는 건지 후회될 때가 솔직히 있습니다. →협회를 오래 이끌어 오신 입장에서 후회와 보람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제가 97년에 회장이 처음 돼서 이제까지 21년째 7번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욕을 먹기도 많이 먹고 법적으로도 많이 시달렸지요. 그래도 분명히 보람이 있어요. 그 어두웠던 환경이 그나마 정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고미술협회라고 하면 인정을 받잖아요. 과거에는 고미술이라고 하면 많이 안 좋게 봤지만 이제 많이 개선됐잖아요.지금도 여전히 힘이 들고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꽤 성공적이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합니다. 먼 훗날에는 ‘그래도 그 사람 때문에 고미술이 이만큼 바로 섰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봉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겁니다. 봉사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껴요. 이 협회도 무슨 권력이 있고 금전적인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냥 봉사하는 거예요. 어느 단체나 봉사한다는 희생정신을 가지고 해야 그 단체가 바로 서고 정도(正道)를 가는 거지, 제가 하는 일, 해온 일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봉사하는 거니까.이제는 그냥 내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내 나이가 70이에요.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제 마무리를 생각할 때죠. 남에게 지탄 안 받고,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 안 듣는 게 성공한 삶 같아요.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청춘·문화 그리고 새로움… 다시, 신촌의 살롱 꿈꾸다

    청춘·문화 그리고 새로움… 다시, 신촌의 살롱 꿈꾸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에서 신촌역 방향으로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돌면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의아한 간판 하나가 사람들을 반긴다. 신촌극장. ‘이런 데 극장이 있다고?’ 의문을 품은 채 건물의 계단을 올라 4층 옥탑에 다다라 검정색 미닫이문을 열면 66㎡(약 20평)가 채 안 되는 아담한 공간이 나온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블랙박스 형태의 이 극장은 지난 6월 문을 열었다.극단 아어의 공동 대표인 전진모 연출가와 신촌과 상암동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원부연 대표가 공동 대표를 맡았고, 영화제작자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 앱 개발 회사에 재직 중인 김선민씨가 운영진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연세대 연극 동아리 ‘토굴’ 선후배 사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원 대표를 제외한 신촌극장 운영진 3명을 최근 신촌에서 만났다. 극장의 시작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전 연출가는 “지난해 잠시 연출 일을 쉬면서 원 대표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일을 돕고 있었는데 이때 젊은 희곡 작가 7명의 작품을 낭독하는 ‘희곡 좋아해?’라는 공연을 기획했었다”면서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동아리 선배들과 ‘이렇게 된 거 아예 극장 하나 만들까’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농담처럼 해 왔던 말이지만 사실은 이들 가슴 속에 뭉근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불씨가 타오르는 순간이었다.마치 언젠가는 벌어질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이야기가 오고 간 지 한 달 만인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온라인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았다. 4000여만원의 후원금에 지인들과 대학 선후배들의 십시일반 지원을 바탕으로 올 5월 공사를 마친 극장은 6월 문을 열었다. 이후 작가와 아티스트들을 섭외하는 기간을 거쳐 지난 9월부터 정식으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황정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에 실린 단편 2편을 각색해 무대화한 이연주 연극연출가의 ‘아무도 아닌’을 시작으로 사운드디자이너 목소와 공연예술 관련 독립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는 허영균의 정원에 대한 연구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 ‘정원연구:응시’, 안무가 최은진의 ‘신체하는 안무 솔로’ 등 연극, 전시, 무용, 시각 미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가들의 실험적인 공연 6편을 선보였다.생각보다 바쁘게 달려온 ‘신참내기 극장’의 초기 정착기를 듣고 있자니 왜 하필이면 공연 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가 아닌 신촌에다 극장을 지어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에게 신촌은 대학가, 문화, 청춘, 소극장 이런 의미들로 연결돼요. 가수 신촌블루스나 김광석 이런 사람들이 신촌에서 늘 공연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종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유흥가가 돼버렸죠. ‘뉴 빌리지’라는 ‘신촌’(新村)의 뜻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부터 전혀 새로움과는 상관없는 곳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신촌극장이라는 무척 작고 별것 아닌 공간이 신촌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 출발점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성우) 공연 형식에 따라 25명에서 최대 4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정말 작은 ‘소’극장이지만 극장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살뜰히 갖췄다. 층고가 높은 특성을 이용해 음향과 조명을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은 복층 별도 공간에 마련했다. 후원자들의 이름을 뒤쪽에 새긴 접이식 의자는 공연 특성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게 배치한다. 신촌극장이 자랑하는 작은 야외 테라스에 서면 탁 트인 신촌 전경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극장 바로 앞 기찻길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때때로 공연의 음향 효과로도 사용된다. 극장이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정체성 덕분에 흥미로운 순간도 자주 마주하게 된다고. “얼마 전에 천둥번개가 엄청 많이 치던 날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극장에서 공연이 진행 중이었죠. 지하 극장이라면 몰랐을 텐데 옥탑에서 공연하니까 천둥번개 소리도 그럴싸한 배경음이 되더라고요.(웃음)”(전진모) “어떤 아티스트는 기찻길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공연의 한 장면으로 새로 만들어 넣더라고요. 극장 주변의 지형지물을 공연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김선민) 오랫동안 품어왔던 극장에 대한 열망이 신촌을 움직이는 작은 파동이 되길 바란다는 이들. 이들이 바라는 신촌극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촌에 소극장이 8개나 있었다고 해요. 그만큼 신촌은 청년들의 문화를 대표하던 곳이었죠.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신나서 하는 게 예술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이 극장에 들러 재미있게 한바탕 놀다 가면 그보다 좋은 건 없겠죠. 매번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칵테일파티’라는 이름으로 관객과 아티스트들이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사람들끼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살롱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어요.”(김선민) “최근 ‘극장이라는 공간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 그 자체의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촌극장은 규모는 작지만 깊이 있는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길 바라요. 예술가와 관객, 예술가와 예술가가 서로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요.”(전진모) 글 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테이, 소속사 대표 사망 심경 “더 아프게 하지 마세요”

    테이, 소속사 대표 사망 심경 “더 아프게 하지 마세요”

    가수 테이가 소속사 대표를 떠나보낸 심경을 고백했다.테이는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난 주말, 잘 보내드렸다. 많이 놀라셨을텐데도, 저를 더 걱정해주시고 격려와 응원해주셔서 마음 한 켠으론 죄송하고 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는 “지난 주에 떠난 형은 회사 대표님보다는 제겐 그냥 형, 제가 가족처럼 생각하고 친구와 수년을 동고동락했던 고마운 형이었고 명석하고 긍정적이고 또 잔정이 많은 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너무 놀라고 슬펐던 지난 주말, 형을 잘 보내고 해야할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왜?라는 놓을 수 없는 질문으로 형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나 무언가를 떠나 보내야 하는 법은 몇 번을 겪어도 좀처럼 덤덤해지지 않는다. 저를 걱정해주는 모든 분들. 저는 잘 보내고 잘 다스리려고 온 힘 다 할테니까 큰 걱정 마시라고 감사함 더해 전해드린다”고 덧붙였다. 전날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테이 소속사 대표 A씨는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평소 금전 문제로 소송에 휘말리는 등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경제적으로 어렵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하 테이가 SNS에 남긴 심경 고백 전문. 감사합니다. 지난 주말, 잘 보내드렸습니다. 많이 놀라셨을텐데도, 저를 더 걱정해주시고 격려와 응원해주셔서 마음 한 켠으론 죄송하고 또 진심으로 감사한 모두에게 더 큰 걱정과 오해들이 없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글을 올립니다. 마음 써주신 여러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함 전합니다. 감사해요. 지난주에 떠난 형은 회사 대표님 보다는 제겐 그냥 형이었습니다. 제가 가족처럼 생각하고 친구와 수년을 동고동락했던 고마운 형이었고. 명석하고 긍정적이고 또 잔정이 많은 형. 몇년을 그렇게 알고지낸 형과 함께 일하자고,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했던 것은 불과 몇개월 전이었습니다. 좋은 상황일때에 더 좋은 사람들과 안좋은 상황일 때에 더 끌어안을 사람들과 함께하자고 마음 먹고, 기분 좋게 시작한 약속이었는데. 그런 형을. 더 끌어안지 못했던 현실이 너무 속상합니다. 너무 놀라고 슬펐던 지난 주말. 형을 잘 보내고. 해야할 일들을 묵묵히 하면서 왜?라는 놓을 수 없는 질문으로 형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놀라고 상처받은 형의 지인들도 조심스레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속상함과 이해의 반복으로 천천히 형을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많이들 놀라셨을 거에요. 소식만으로도 가슴 철렁하는 글이지요. 이런 소식이 오보나 오해성 기사로 접하여 혹여나 다른 걱정에 다다를까 걱정이 됩니다. 형은 저의 소속사 대표의 명함보다 몇년간 함께 일하고 소속되어있는 다른 많은 분들의 대표로서 충실히 살아오셨고, 저의 음반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미래의 파트너였으며, 함께 있으면 즐거운 형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다 풀지못한, 가족들도 지인들도 정확히 모르는 형의 결심의 속상하고 아픈 원인을 너무 단정짓지 말아주세요. 인간관계나 여러 속내 등을 그런 아픈 소식에 확인없이 올리셔서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혹은 그 가족과 지인을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수번 더 아프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아마 형은 바로 좋은 곳으로 가기 힘들거에요. 너무 못되고 아픈 결심을 했어요. 하지만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슬퍼하는, 형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마음과 기도를 받고 진심으로 좋은 곳에서 더이상 아픔없이 있기를 바라요. 기도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나 무언가를 떠나 보내야하는 법은 몇 번을 겪어도 좀처럼 덤덤해지기가 않네요. 저를 걱정해주는 모든 분들. 저는 잘 보내고 잘 다스리려고 온 힘 다 할테니까 큰 걱정 마시라고 감사함 더해 전해드립니다. 따스히 꼬옥 부등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르네 파페 “무대에선 소프라노, 테너의 사랑이 조명받지만, 무대 밖에선···“

    르네 파페 “무대에선 소프라노, 테너의 사랑이 조명받지만, 무대 밖에선···“

    “베이스는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죠.” 독일 성악가 르네 파페(53)는 솔리스트로는 고음을 뽐내는 소프라노, 테너에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독보적인 중저음의 베이스 가수다. 그가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갖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흔히 소프라노와 테너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가 대다수라 베이스로서 그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듣는 이의 가슴을 묵직하게 노크하는 중저음과 품위 있는 연기로 유명하다. 흔히 ‘베이스의 제왕’, ‘에이스 오브 베이스’로 통한다. 그 힘들다는 바그너 오페라의 역대 최고 보탄(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으로 꼽힌다.르네 파페에게 소프라노, 테너와 차별되는 베이스 만의 매력을 물었다. “무엇보다 베이스는 따듯해요. 가슴을 울리는 소리죠. 매우 웅대함을 품고 있기도 하죠. 오페라 무대에서는 신, 왕, 아버지 등 그런 역할을 하죠. 베이스가 부르는 아리아도 좋은 멜로디가 많아요. 그럼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은 과거에 레코딩 작업이 많지 않았던 탓이 커요. 옛날에 음반사들이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LP, CD에 담으려고 할 때 소프라노, 테너들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베이스가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르네 파페는 클래식계에서 돌아다니는 농담이라며 한마디 보태고는 껄껄 웃었다. “오페라 무대에서 서로 사랑하는 역할은 소프라노와 테너가 맡지요. 하지만 그 사랑은 절대 이뤄지지 않고 비극적으로 끝나곤 해요. 작품에서 베이스는 그런 역할과는 거리가 멀죠.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달라요. 베이스와 소프라노가 맺어지는 일이 많답니다. 하하하.” 통일 독일 이전 동독 드레스덴 출신인 그는 1991년 거장 게오르그 솔티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마술 피리’ 자라스트로 역으로 초청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솔티는 그의 목소리가 진귀하다며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유수 오페라하우스를 종횡무진하는 그의 스케줄은 늘 2년가량 빼곡한 상태다. 수많은 작업 중에 중저음 보컬이 돋보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메탈 밴드의 노래 ‘마인 헤르츠 브렌트’를 클래식적으로 풀어내거나 존 덴버의 히트곡을 플라시도 도밍고 등 기라성 같은 전 세계 성악가들이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점이 이채로웠다. “클래식 대중화를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 음악 자체가 좋았어요. 존 덴버 프로젝트의 경우 미국 회사에서 곡들을 추려 보내줬는데 ‘팔로우 미’의 노랫말이 제 인생 이야기와 똑 같더라고요.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람슈타인의 경우는 한 다리 건너 친구들인데 분위기는 어둡지만 가사가 너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 멜로디 한 토막을 가지고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만들었죠.” 좋아하는 것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오리 인형을 수집하는 독특한 취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보통 성악가들은 스카프나 버튼 등 격식 있는 기념품을 굿즈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 데 그는 자신의 얼굴을 딴 오리 인형 ‘파페덕’으로 갈음하고 있는 점에서 딱딱하고 엄격한 독일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무너져 내린다.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공연이 추진됐으나 이제서야 성사된 까닭은 높은 개런티보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후문이다. 이번 공연을 주최하는 WCN이 제안서를 전달하고도 1년 이상 꾸준히 신뢰 관계를 쌓은 뒤에야 비로소 확정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공연만 하고 후다닥 떠나는 일정은 아니다. 공연에 닷새 앞서 입국했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그가 처음 만난 한국의 인상이 궁금했다. “당연히 예술적, 음악적으로는 한국을 잘 알아요.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연광철과 절친이다) 하지만 한국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이번에 와서 보니 상당히 미국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거기에 친절과 배려 등 아시아적인 분위기가 더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미국 동부와 서부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까요.” 아직 베이스의 매력에 젖어들지 못한 음악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잠시 고민을 했다. “너무 많아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에 나오는 필립 왕의 아리아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나오는 바질리오의 아리아 정도는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르네 파페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 프로그램으로 필립 왕의 아리아를 포함해 자신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베르디와 바그너를 택했다. 1부에서는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맥베스’, ‘운명의 힘’, 2부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로엔그린’, ‘발퀴레’의 아리아를 선보인다. 요나스 알버가 지휘하는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매운 인생을 담았다. 고추장의 재발견 - 순창 장류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매운 인생을 담았다. 고추장의 재발견 - 순창 장류박물관

    “서울은요, 인심이 야박해서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도 몰라요...시멘트 벽이 가로막아서 이웃 간에 정이 없어요”(만화 식객, 2화 고추장 굴비 편) ‘식객(食客)’을 그린 만화가 허영만(許英萬·69)은 식객 51화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고추장 굴비’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고추장이야말로 한국인의 입맛을 드러내는 원형이기 때문이다. 하긴 고추장은 된장이나 간장 등속과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고추장은 그 자체로도 양념 소스가 되기도 하고, 음식이 되기도 한다. 외국에 나갈 요량이면 그래도 한두 개 정도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아쉬운 대로 챙겨 가는 것은 여지없이 고추장이다. 스테이크든, 식빵이든 온갖 기름기 잘잘 흐르는 입 물리는 외국 관광지 음식에도 고추장을 바르는 순간 고향 내음이 난다. 마성의 맛이다. 미더운 맛이다. 고추장의 마을, 순창 장류박물관이다. 조선왕조의 국왕들 중에서 영조(英祖)는 83세로 가장 장수한 왕이자, 통치기간도 52년에 이를 정도의 건강한 왕이었다. 1768년(영조 44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영조는 ‘고초장(苦椒醬)’이 없으면 입맛이 돌지 않는다 할 정도로 고추장 애호가였다. 또한 다산 정약용 역시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추장은 이미 조선의 사대부 입맛도 사로 잡았다. 이렇듯 조선시대부터 사랑받아온 고추장은 ‘전통식품 표준규격’에 의한 정의를 빌리자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성형 제조한 메주를 발효원으로 하고, 숙성 전에 고춧가루, 전분, 메줏가루, 소금 등을 혼합하여 담근 것'을 말한다. 한국 음식으로는 드물게 고추장은 된장과는 달리 2009년 7월 국제식품표준규격(CODEX)에 이미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타바스코나 스리랏차, 칠리 페퍼소스와 같은 위상으로 '고추장(Gochujang)'으로 표기마저 통일된 저력있는 세계적인 맛이기도 하다. 2014년 통계를 기준으로 장류에서 고추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1.6%로 간장 보다는 비중이 낮고, 된장 보다는 높다. 또한 국내 생산규모는 총 생산량 13만7천톤, 총 생산액 2,154억 원이며, 국내 출하규모는 총 출하량 11만4천 톤, 총 출하액 2,869억 원에 이르며 매년 15% 정도의 성장성이 높은 장류 식품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고추장 산업에서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지리적으로 내륙에 위치하여 섬진강을 안고 있다 보니 메주를 말리기에 아주 적합한 기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맛 또한 일품이어서 순창의 고추장은 다른 지역의 고추장보다는 빛깔이 곱고 장맛이 깊은 편으로 이름 나있다. 그러하기에 순창에서는 고추장을 특화한 박물관이 있다. ‘순창 장류 박물관’은 2007년도에 개관된 국내 최초, 전국 최초로 장류를 테마로 조성한 박물관으로 전통장류의 본 고장인 순창을 홍보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이 곳에는 고추장 관련 자료 외에도 사라져 가는 향토 민속자료 및 장류관련 유물 906점을 전시하여 전통장류의 맥을 이어 가고 있으며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하여 전통문화 보존 및 계승에 핵심 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장류의 역사, 장 담그는 법, 모형을 통한 순창고추장 소개, 대형 고추 속 어린이 애니메이션 상영, 순창 초가, 장류관련 민속유품 등을 만날 수 있어 우리 역사 속 고추장의 의미를 다시금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순창 장류박물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순창을 들린다면, 시간이 그럼에도 좀 남는다면, 크나큰 기대없이. 2. 누구와 함께? - 어린 자녀와 함께. 3. 가는 방법은? -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3 / 650-1627(063) 4. 감탄하는 점은? - 이런 테마 박물관도 있다는 점.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크게 알려져 있지도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뜸한 편. 6. 꼭 봐야할 장소는? - 고추장의 역사에 대한 찬찬한 이해.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순창전통순대집’(653-3976), 매운탕 ‘농가맛집 장구목’(653-3917), 한정식 ‘옥천골’(653-1008), 비빔국수 ‘강천풍경식당’(652-2620) /지역번호 063 8. 홈페이지 주소는? - tour.sunchang.g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녹두장군 전봉준관, 전라북도 산림박물관, 가인 김병로선생 생가터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순창이라는 고추장 브랜드에 맞춘 테마형 전시관. 그리 큰 기대없이 둘러본다면 나름 의미있는 박물관. 박물관 뒤편에 도자기 제작 체험도 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스포츠&스토리] “나는 무조건 이긴다”… 헝그리 챔피언의 무한도전

    [스포츠&스토리] “나는 무조건 이긴다”… 헝그리 챔피언의 무한도전

    요즘 10·20대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을 건네면 ‘꼰대’라고 되받아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남들은 어렵다고 지레 포기한 그 길을 17년째 묵묵하게 걷는 ‘가냘픈(?) 청춘’에게 해 줄 수 있는 덕담이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대한민국 최연소이자 최장수, 유일한 현존 세계챔피언이다. 도전자에 대한 전력 분석보다 스폰서 찾기에 걱정이 더한 ‘헝그리 챔피언’이기도 하다. 소주 1병 반 주량에 폭탄주를 더 좋아한다. 결혼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잠시 접어 뒀다. 전자오락실 펀치 머신에서 이성 친구들과 붙어도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무패 복서인 새터민 최현미(27) 선수 얘기다. 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5차 방어전에 성공한 그를 만났다.“이제 3년도 채 남지 않았네요.” 2020년 도쿄올림픽 이야기를 하자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열의가 느껴졌다. “복싱에서 이룰 것은 다 이뤘습니다. 세계권투협회(WBA) 페더급과 슈퍼페더급 2체급을 석권했고 세계 랭킹 1~10위 선수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습니다. 세계권투평의회(WBC)와의 통합 타이틀전도 기대하고 있지만 주변 여건이 맞아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는 2008 베이징올림픽 출전을 강하게 바랐다. 하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여자복싱 대신 여자레슬링이 채택되자 돈을 벌기 위해 프로로 전향했다. 그런데 여자복싱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고, 프로 선수에게도 출전의 문이 확대되자 봉인된 금메달리스트의 꿈이 다시 솟아났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챔피언들이 출전했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얘기하자 “그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몰랐지만 전 달라요. 아마추어 국가대표 생활을 경험한 데다 (올림픽에서) 체급도 조정하지 않습니다. 상대 출전 선수들을 잘 분석한다면 100% 금메달 딸 자신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전적은 17전 16승1패. 16승이 모두 KO승이다. 최현미는 선수로서 마지막 꿈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박수받으며 링에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금메달을 따든, 따지 않든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는 것이냐’고 다시 묻는 기자에게,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이 심하시네요”라고 힐난했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고 은퇴할 겁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링에 오를 때 한 가지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이긴다.’ 욕심이 많은 것도 숨기지 않았다. 힘든 운동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원에서 내년까지 석사 논문을 마무리 짓고 스포츠마케팅을 박사 과정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해요. ‘챔피언 스펙’이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모르지만 교수로 강단에도 서고 싶고, 여자복싱 대표팀 감독이나 코치로서 훌륭한 후배도 키워 보고 싶어요. 아직 여성복싱 해설위원이 없는데 제가 첫 테이프를 끊어 보고 싶습니다.” 개척자 정신이 오늘의 그를 만든 듯했다. 열한 살 때 복싱에 입문한 이후 한눈팔지 않고 철저한 자기 절제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아울러 경기 때마다 스폰서를 구하느라고 진이 빠진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윤승호 성균관대 교수는 ‘키다리 아저씨’다. 돈이 없어 페더급 1차 방어전을 치르지 못해 챔피언 벨트를 반납할 위기에 놓였을 무렵 윤 교수가 후원자로 나섰다. 최현미는 “최현미를 대한민국에 알리는 데 가장 애쓴 고마운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윤 교수 외에도 십시일반의 도움을 받아 페더급과 슈퍼페더급의 열두 차례 방어전을 치렀다. 지난달 5차 방어전에선 최성규 성산청소년효재단 이사장이 후원했다. “대기업 후원을 받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하는 것을 (저라고) 왜 꿈꾸지 않았겠어요. 비인기 종목에 챔피언 최현미가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는 만났던 도전자 가운데 일본 선수들이 가장 까다로웠다고 털어놨다. “(나도) 운동하면서 독한X이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일본 선수들도 진짜 독하다”고 했다. “(제가) 때리다가 지쳐요. 링에서 죽겠다는 눈빛으로 올라오는데 10라운드까지 한결같아요. 저도 일본 선수랑 붙을 땐 10라운드까지 뛸 생각을 하고 준비합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전문] 이국종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문] 이국종 교수와의 일문일답

    다음은 이국종 교수(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인터뷰 전문이다.-이국종 센터장님,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저는 귀순병사가 일반실로 가고 나서 조금은 여유가 생기셨는가 보다 했는데 여전히 많이 바쁘세요. →다른 환자분들도 많으시니까요. -사실은 전화통화 잠깐 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지금 바쁘신 거죠?→괜찮습니다. -의식을 회복한 지 사흘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진 귀순병사. 지금은 어느 정도나 회복이 됐습니까? →자기 의사표현도 잘하고 식사를 시작했으니까.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장이 워낙 파열됐었으니까요. 일반병실로 올라오시고 나서는 그다음부터는 이제 미음을 섭취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죽까지 먹는 단계가. -죽까지 먹을 수 있는 단계. 그러니까 이거는 저희는 잘 모르지만 의학적으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단계까지 갔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환자 스트레스를 낮춰주기 위해서 교수님이 직접 이야기도 좀 나누시고 영화도 보여주시고 음악도 들려주시고 이런다는 이야기를 제가 전해 들었는데 요즘은 어떤 얘기 나누세요? →아무래도 환자가 낯선 곳에 갑자기 노출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건강 상태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끼칠 수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너무 골치 아픈 얘기 같은 건 하지 않고. 환자분이 TV 보고 이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드라마라든가 아니면 방송 프로그램. 그런 얘기들 주로 합니다. 연예계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연예계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렇습니다.-복잡한 뉴스 이런 얘기는 안 하고? →제일 복잡한 얘기했던 게 전임 대통령 정도까지만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새 대통령이 정부가 꾸려진 것 그런 것도 모르고 있고 그래서. -몰라요?→그런 걸 얘기를 해 주면 선거제도가 그렇게 정말 있냐.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젊은 청년이다 보니까 호기심도 많고 그래서 남한에서 비교적 우리의 자유로운 그냥 일반적인 생활상을 많이 얘기해 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걸 모르고 박근혜 전 대통령 때까지만 아는군요?→네, 그렇습니다. -그것도 참 흥미로운 면이네요.→그렇습니다. -사실 국민들은 처음 그 환자 상태를 들었을 때 이렇게까지 회복이 될 거라, 이렇게 빨리 회복이 될 거라고 기대 못했거든요. 교수님은 어떠셨어요? 처음 환자 대했을 때 의료진으로서. →처음에 일단 혈압도 전혀 안 잡혔고 워낙 다발성으로 총상을 입었고 폐하고 그리고 배 있는 내장기관, 주요 골격부위가 워낙 심하게 손상됐었기 때문에 저희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제가 혈액형을 파악할 시간이 없어서 일단 O형 혈액을 먼저 빨리 수혈을 해 줬거든요. -혈액형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그때?→그럴 상황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가 혈액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O형 혈액을 줄 정도면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몸에다가 칼을 대서 칼로 몸을 가르고 들어갈 때는 CT촬영을 하고 수술에 들어가야지 수술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이라도 하면서 수술방에 저희가 진입을 할 수가 있는데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CT도 못 찍고 엑스레이 한 장 달랑 들고 들어갔거든요. -엑스레이 한 장 달랑 들고.→그렇습니다. 또 환자분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저질환이 많지 않습니까? 간염이라든가 여러 가지 기생충 감염이라든가 그런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애를 많이 먹었고. 지금도 사실 식사는 시작하고 있지만 그런 기저질환 가지고 있던 것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애를 많이 먹고 있습니다. 완전히 치료가 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요. 북한 귀순병사 일단은 죽을 먹을 만큼 회복했습니다마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네.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도 만만치 않은 단계. 이국종 교수 여러분 만나고 계십니다. 중증외상센터. 이게 사실은 뭔지도 잘 몰랐다가 이국종 교수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그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하는 분들도 제 주변에 참 많으세요. 초기에 이 교수님께서 여기 뛰어드셨을 때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그래도 좀 나아졌습니까, 어떻습니까?→굉장히 어려웠어요. 처음에 저는 2002년도에 발령을 받았었는데 사실 그때 다른 병원에 한두 분 제가 알고 있던 분들도 금방금방 한 1년 만에 그만두시면 됐었고요. -1, 2년을 못 버티실 정도의 열악한 상황이었군요, 그 당시만 해도.→버틸 수 있는 근거가 없죠. 왜냐하면 민간기관에서는 저희가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이렇게 많이 힘들어졌죠. 하여튼 분명한 생각은 이 일이, 저희가 얼마나 이걸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저희가 했던 걸 글로벌 스탠다드에 그대로 맞춰서 해서. 최악의 경우에는 저희가 사멸하고 나더라도 저희가 했던 진료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강하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족한 것들을 내가 꼼꼼히 기록해서 후세에도, 후학에게 남겨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으신 거군요?→화석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 사람들이 우리 한국에 있었구나. 그리고 이런 게 한국에서도 하면 되기는 됐었구나. 조금이라도 이렇게 본받을 만한 뭐가 있었다는 게 후세에 남아야지 그냥 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단순히 오늘, 오늘 때워넘기려고 현실적으로 타협을 해 버리면 사실 뭣 하러 그걸 하겠습니까? 저도 나이가 있고 그런데. 더 이상은 이걸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화석을 새기는 기분으로. 그러니까 후세에 뭔가 보물을 남기는 기분으로 그런 사명감으로 일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집에는 가세요, 이국종 교수님? →사람이 많이 부족합니다.-병원에 도울 사람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최대 중증외상센터 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그 정도 느낄 정도라면 뭐가 더 필요한 건가요? 지난번 석해균 선장 때를 계기로 해서 정치권에서 지원 많이 해 주겠다 약속도 쏟아지고 그러지 않았습니까?→하드웨어적인 것도 그렇고요. 저희 같은 경우도 지금 병상이 부족해서.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특히 중환자실 병동 간호사들은 (외상센터 환자들이) 굉장히 중환자이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간호사분들 손이 월등히 많이 가는 겁니다. 물론 중환자실 환자분들이 다 손이 많이 가지만 한국에 있는 병원들이 간호사, 의사, 의료기사를 고용하는 수준이 선진국의 3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그 인력 가지고 유지를 하니까. 그래서 간호사분들이 자꾸 그만두는 건데. 그러면 정치권에 얘기를 드리고 싶은 건 정치인들이 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고 국민행복권을 우선시한다고 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죠.→그런데 병원에 오면 병원에서 들여다보시는 게, 병원 겉에 있는 대리석 스테인드 글라스. 요새 병원들 외형이 얼마나 좋습니까? 번들번들한 대리석으로 까는 바닥. 그 바닥 매일 닦습니다, 병원에서. 그러니까 이 문제를 어디까지 파고들어가야 될지 가늠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얘기는 그렇게 하시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병원의 노동자들. 의사들, 의료진들도 저녁이 있는 삶 필요하다.→환자분들도 왜 중증외상환자들이, 노동자, 농민 그런 분들이 왜 중증외상으로 그렇게 많이 죽어가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생각하는지. 한국 사회는 그게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좋은 부분 지금 지적해 주신 것 같아요. 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 얘기하던데 정말 이곳 병원의 노동자들. 의사들 포함해서 모든 노동자들이 정말 저녁이 있는 건가 한번 진정성 있게 봐달라 그 말씀 호소하셨습니다. 아니, 저희 청취자들한테도 이 교수님 개인적인 궁금증이 상당히 많이 문자로 접수가 됐습니다. 우선 제일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게 건강 괜찮으세요? 이 교수님 건강은 괜찮으세요?→그냥 지냅니다. 그냥 잘 지냅니다. 괜찮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시력이 안 좋으시다고. 거의 상실한 상태라고.→사실 제 나이쯤 되면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한두 군데씩 아픈 것 참고 지내는 것 아닌가요? -그냥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참고.→제가 좀 더 남들보다 상태가 안 좋을 수는 있지만. 막 썼으니까요, 몸을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 쓴 거에 비해서는 훨씬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 쓴 것에 비해서는. 아까 전에 제가 ‘집에는 들어가세요?’ 그 질문드렸는데 사실 저 같은 경우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면 특히 추운 겨울에는 내가 이거 찬바람 쐬면서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러나 이런 생각 가끔 들거든요. 선생님은 그런 감정 느끼실 때 없으세요? 힘들 때 없으세요, 감정적으로? →사실 직장에 출근하기 굉장히 싫은 건 직장인들이면 아마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누구도 저한테 강요해서, 누가 저한테 총을 겨누고 이 일을 안 하면 쏘겠다든가 이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저희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300명 직원 모두들 다 인사발령을 받아서 온 게 아니라 자기가 자원해서 여기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물론 자원해서 왔더라도 정말 하루도 못 견디고 그만두시는 분들도 있고 간호사분들의 사직률이 극도로 심해서 35%가 넘어가고 그렇지만 하는 데까지 가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는 거고 그걸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이번 북한 병사 포함해서 석해균 선장 이런 분들 포함해서 정말 수많은 환자를 보셨을 텐데 지금도 잊지 못할 환자가 따로 있을까요?→저는 사실은 돌아가신 분들 생각이 많이 나고 있기 때문에 따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전체 사망률이 10% 정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건 전 세계 외상센터 의사들의 숙명입니다. 사망률 10%에서 15% 정도는 안고 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그걸 겁을 내면 가망이 없는 환자는 받지 말아야 하거든요. 사실은 제 정신 가지고 의사도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한테 몸에 칼을 대서 해체해 가면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그렇죠.→거기다 제가 해체하는 순간 피가 뿜어져올라오거든요. 다 그 피를 뒤집어쓰면서 수술해야 되는데. 그런데 분명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저희가 그런 안 될 가능성을 보는 게 아니라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무조건 열고 들어가야 되는 게 이 외상외과의사들의 숙명 그리고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모든 의료진의 숙명 같은 거기 때문에 저희가 거기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지 끝까지 정말 있는 힘을 다해야 되는데 그러다 보면 당연히 높은 사망률은 저희가 안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된 환자분들 중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밤새 수술하고 그리고 한두 달, 석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버텨가지고 거의 다 좋아졌다. 이제 일반병실 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해서 약간 마음을 놓고 있는 환자가 있는데 그런 환자들이 갑자기 엉뚱한 합병증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피가 뿜어져나오면서 돌아가시거나 생명을 잃어갈 때. 그때는 정말 미칠 것 같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그럴 때는. 그런 환자분 한 분, 한 분이 다 남습니다, 머리에. -잊혀지지 않아요, 그런 분들일수록?→그렇습니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살린다는 그 표현이 어떤 심정일지 와닿는데요. 이번에도 그러셨죠. 이번에 귀순병사를 살리는 과정도 참 죽을 힘을 다해서 살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데. 특히 이번에 더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은 게 마음고생도 좀 하셨어요. 논란도 좀 겪으셨어요. 그 폭풍이 이제 좀 지나가고 잠잠해지고 돌아볼 때, 소회랄까요, 어떠세요?→제가 사실 병원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의원분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했다라고 하시고 이국종 교수도 말씀할 것도 없이 당연히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의견이 어긋났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한번 만나서 두 분 허심탄회하게 말씀이라도 나눠볼 생각 있으십니까? →저는 의원님께서 평소에 글도 굉장히 잘 쓰시고 정론직필을 하시는 굉장한 아주 식견을 갖추신 전문가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 의원이 되신 줄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의원님이 소속된 정당은 블루 컬러 계층의 분들이 지지하는 그런 정당이고 그런 분들의 지지를 지금 안고 유지되고 있는 정당이고 저는 바로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를 막아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네요.→그러니까 저는 특별한 다른 느낌이 있는 게 아니라. 좀 안타깝습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두 분이 좀 만나서 이 오해들을 풀고 가면 어떨까. 김종대 의원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셨거든요. 어떠세요?→저도 해군에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군 관계에 있는 저 같은 사람들에겐 사실 그분은 굉장히 큰 오피니언 리더 중의 한 분입니다. 그냥 많은 의원님들 중 한 분이 아니고. 그런데 좀 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집중하셔서 괜히 저 같은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시간 뺏기지 마시고 본인의 업무나 그런 것도 굉장히 하실 일이 많을 텐데. 그리고 국회의원이 굉장히 중요한 자리지 않습니까? 한 분, 한 분이 입법기관이신데 저도 잘은 모르지만 국회의원분들이 그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면서 사시는 바쁜 분들이거든요. -그럼요.→본연의 업무 잘하셨으면 좋겠고 저한테 시간 너무 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어차피 여기서 막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저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분은 그분대로 사시면 되고요. -각자 맡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자. 지금 그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오늘 우리 의료시스템의 문제점, 권역외상센터의 힘든 점들 여러 가지를 토로하셨는데 이런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 발전시키기 위해서 혹시 정치권에서 좀 들어와서 일해 달라 이런 러브콜은 안 받아보셨습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저는 정책을 만들지 않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의료시스템 말단에서 실제 그걸 수행하는 말단조직에 있는 사람이지 저는 정책을 만들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굉장히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그저 도와드릴 뿐이지 제가 주제넘게 감히 나서서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래요. 아마 제일 중요한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인간 이국종의 꿈? 어떤 꿈꾸세요?→사실은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외상센터를 맡고 있는 한 글로벌 스탠다드 기준 지침에 맞춰서 정말 벗어나지 않게 운영될 수 있도록 아예 안 하면 안 했지 거기서 벗어나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가지는 않으려고 노력을 할 거고요. -타협하지 않겠다.→개인적으로는 제 손끝에서 이렇게 치료되는 환자분들이 잘못되지 않고 큰 의료사고 없이 잘 마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거든요, 저는. -왜 이렇게 시간이 자꾸 안 남았다 그러세요. 아직 젊으신데.→외과의사들은 그렇게 의사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의사로서의 나의 수명이.→노동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거나 아니면 하드웨어가 고장이 나게 되면 저희는 금방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체력 잘 챙기시고요. 이국종 교수님. 그런데 안 웃으세요? 원래 전혀 안 웃으세요?→웃을 일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청취자 질문도 들어옵니다마는 웃으시는 모습 한 번도 못 봤다, 이러세요.→사실 저는 계속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주름살도 많이 져 있고 그렇습니다. -저는 이국종 교수 꿈꾸시는 것들이 다 잘 이루어져서 언젠가 활짝 웃는 웃음소리 시원하게 한번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방송에서.→네,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저뿐만 아니고요. 많은 국민들이 응원 보내고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생명의 최전선에 있는 그 환자들. 지금 그 사명감으로 좀 부담스러우시더라도 끝까지 살려주시는 그 일 열심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정말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 설인아 “강하늘에 익명의 동영상 보낸 적 있어”

    설인아 “강하늘에 익명의 동영상 보낸 적 있어”

    배우 설인아가 과거 강하늘에게 익명의 동영상을 보낸 사실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지난 28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는 배우 설인아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설인아는 과거 강하늘에게 익명으로 동영상을 보낸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KBS 드라마 ‘학교 2017’을 촬영할 당시 구구단 세정과 공통점을 찾게 됐다. 바로 강하늘 선배님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설인아는 이어 “세정이와 강하늘 선배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오더니 강하늘 선배님 번호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번호를 달라고는 못 하겠고. 고민하다가 얼굴을 가리는 어플을 찾아서 동영상을 보냈다. ‘선배님 정말 영광이에요, 사랑해요. 군 입대 하시면 꼭 면회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며 익명으로 보낸 동영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설인아는 강하늘이 출연한 영화 ‘청년경찰’ 시사회 인터뷰를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당시 강하늘 선배님께 혹시 그 동영상을 기억하시냐고 여쭤봤다. 감사하게도 그 동영상을 저장하셨다고 하시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MC들은 설인아에게 강하늘에게 영상편지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설인아는 “선배님 안녕하세요. 얼핏 스쳐 지나가면서 세번정도 만난 것 같은데. 저만 알고 싶은 강하늘 선배님이셨는데 언제 그렇게 정상까지 올라가셨는지 몰라요. 제가 얼른 따라잡을 테니까 기다려 주세요. 날씨도 추운데 군생활 잘 하세요 허락만 해주시면 면회도 갈게요”라며 애정을 담아 영상편지를 전했다. 사진=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화산재 확산에 발리 국제공항 29일까지 운영 중단 연장

    화산재 확산에 발리 국제공항 29일까지 운영 중단 연장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최고봉인 아궁 화산 분화에 따른 화산재 확산 여파로 발리 섬 남부 응우라라이 국제공항 운영 중단 기간이 28일(현지시간)에서 29일까지 하루 연장됐다.이날 현지 언론 트리뷴 발리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교통부와 공항 측은 새벽 1시 40분쯤 회의를 열어 공항 운영 재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 제1공항공사의 응우라라이 국제공항 담당자인 야누스 수프라요기는 “운영 중단 조치를 다음날 아침, 즉 수요일 아침까지 연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궁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발리 섬과 인접한 인근 바뉴왕이와 즘베르 지역까지 확산한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6시간에 한 번씩 공항 운영 재개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전날 오전 7시를 기해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의 운영을 24시간 동안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을 이·착륙하는 항공편 445편이 취소됐다. 공항 관계자는 한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약 5만 9000명의 승객들이 공항에 발이 묶이게 됐다고 전했다. 현지 관광업계 등에 따르면 이 시기 발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월평균 1만 6000명 내외로 하루 500여명이 한국행 항공편을 이용한다. 이들 대다수는 신혼부부와 배낭여행객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은 오전 6시를 기해 아궁 화산의 경보단계를 전체 4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위험’으로 한 단계 높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분화구 6.0∼7.5㎞였던 대피구역을 반경 8∼10㎞로 확대하고, 해당 지역내 주민에게 전원 대피를 지시했다. 해발 3142m의 대형 화산인 아궁 화산은 지난 25일 오후부터 26일 오전 사이 네 차례나 분화했으며, 현재도 분화구 위 2500∼3000m까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아직 용암이 흘러넘치지는 않았지만 분화구 주변에선 끓어오른 용암이 튀어오르는 모습이 간헐적으로 관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광화문 심야 택시 대화/김상연 사회 2부장

    [데스크 시각] 광화문 심야 택시 대화/김상연 사회 2부장

    어두운 새벽 도심을 달리는 모든 택시 안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는 신만이 알리라.개별적 인간은 개별적 택시 안의 풍경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회사를 나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엔 회사 앞에 빈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래서 중국 황제가 시혜를 베풀 듯 골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택시가 안 보인다. 혹시 광화문 네거리 쪽에선 택시가 잡힐까 싶어 찬 바람을 맞으며 100여미터를 걸어 내려왔다. 한참을 기다리다 서대문 쪽에서 빈 택시가 달려오길래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고, 고맙게도 택시가 급정거했다. 안도감도 잠시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왜 이렇게 택시가 없어요, 기사님?” “손님이 없으니까요. 지금 목동에서 여기까지 한 명도 못 태우고 왔어요.” “손님이 왜 없죠? 주말인데.” “몰라요. 그 무슨 법인가 생긴 뒤부터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김영란법(청탁금지법)요? 아, 술자리가 줄어드니까.” 종각역을 지나는데 취객 서너 명이 차도 안까지 들어와 택시를 향해 위태롭게 손을 흔든다. 그들의 딱한 운명을 뒤로한 채 택시 안 대화는 계속된다. “요즘 택시회사 가 보면 경로당이에요.” “경로당요?” “돈이 안 벌리니 젊은 사람들이 택시(운전) 하려고 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젊은 택시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집에 일찍일찍 들어가는 문화가 되나 보네요.” “그 전엔 한 달에 270만원은 벌었는데 작년 말엔 200 벌었어요. 지금은 170 정도 벌어요.” “그래도 여론조사 보면 대부분이 그 법 찬성한다는데. 사회가 깨끗해지니까.” “…택시하는 사람, 식당하는 사람은 다 죽겠다고 해요. 그 법 만든 사람이 서민들은 상관없다고 했던데 나는 서민 아닙니까. 어려운 거 안 겪어 보고 편하게 산 사람이니 그런 말 하지.”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 데시벨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래도 강남역이나 홍대 같은 데는 손님이 많지 않나요?” “거긴 기분 나빠서 못 가겠어요.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뭘 어떻게 한다고 사진을 찍고 어쩌고, 내 참 기분이 나빠서.” 많아야 육십 살로 보이는 기사의 두툼한 목덜미가 씰룩거렸다. “아, 기사님이 무슨 범죄를 저지를까 봐서요?” “대놓고 범죄자 취급을 하니 그런 덴 가고 싶지도 않아요.” 담배 냄새가 찌든 택시 안 대화가 잠시 끊겼다. “그나저나 새벽에 일하느라 피곤하시겠어요.” “작년엔 이 시간이면 22만원은 벌었는데 오늘은 17만원밖에 못 벌었어요.” 집 근처에 오자 승객을 내려주고 도심으로 향하는 빈 택시들의 서글픈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입구에 세워 주세요.” 차에서 내려 걷는데 피곤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득 돌아보니 택시는 가고 없었다. 누군가 신념을 갖고 한 일이 모든 인간의 개별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인간인 나로서는, 그저 내가 악다구니의 하루를 견뎌 내고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처럼 그 역시 사납금을 다 채우고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carlos@seoul.co.kr
  • 이시영, 임신 9개월차 예비맘의 D라인 “몸이 너무 무거워요”

    이시영, 임신 9개월차 예비맘의 D라인 “몸이 너무 무거워요”

    배우 이시영이 아름다운 D라인을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20일 이시영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이시영이 D라인을 뽐내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시영은 “이제 무려 9개월. 시간이 너무 빨라요. 저는 요즘 몸이 무거워져서 뛰는 거는 자극이 많이 돼서 좀 조심하고 있고 대신 웨이트와 등산을...”이라며 근황을 전했다. 이시영은 이어 “가까운 거리는 항상 걸어 다니고 안전하게 운동하고, 먹는 거는 정말 잘 먹고 있어요. 막달에 가까울수록 군것질과 야식은 조금씩 피하고 있어요”라며 걱정하는 팬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처음에 53kg이었는데 지금 59kg. +6kg이에요. 곧 60kg 돌파하겠지만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화이팅. 33주 화이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9월 30일 9살 연상 외식사업가 조승현 씨와 결혼한 이시영은 오는 2018년 초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다스 전 경리팀장 “MB가 모두 의사결정…연말엔 따로 경영보고”

    다스 전 경리팀장 “MB가 모두 의사결정…연말엔 따로 경영보고”

    2008년 정호영 특별검사팀 수사 당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다스(DAS)의 비자금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근 새롭게 제기됐다. 특검팀은 이 전 대통령의 당선 직후 그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제기된 ‘BBK 의혹’과 ‘다스 주식 차명소유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2008년 1월 15일에 출범해 수사에 착수했다.이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처리 개입 의혹을 폭로한 인물은 당시 다스의 경리팀장을 맡았던 채동영씨다. 채씨는 이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다스의 경영 상황을 보고했고, 다스의 진짜 주인은 이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특검팀 조사에서는 그런 생각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실명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채씨는 이 전 대통령과 먼 친척 관계라고 밝혔다. 17일 JTBC ‘뉴스룸’에 따르면 채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정호영 특검팀이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의 회사인지’를 물었을 때 “그 당시 대세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그런 거였으니까. ‘몰라요, 저는. 다스가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없잖아요. 다 아시면서 물어봐요’라는 식으로 특검팀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씨는 “모든 의사 결정이 이명박이었으니까. (대표이사는) 김성우였지만 뭐 김 사장 회사도 아니고…. 지금도 다스 직원들한테 가서 물어봐요. ‘다스 실소유주 누구냐’고. 그러면 이명박이라고 그러지”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특검팀 수사 당시 다스의 실제 주인은 이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지만 ‘새 대통령 당선’이라는 분위기에 눌려 차마 그 생각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채씨의 설명이다. 채씨는 연말엔 이 전 대통령에게 따로 다스 경영 보고서가 제출됐다고도 털어놨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 했어요. 저것도 보고하러 가는구나, 했었으니까. (어디에?) 서울에. 그냥 MB라 그랬어요. 서울 간다고 하면 MB 만나는 거다.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채씨는 또 “재고 조정을 통해서 적게는 매년 10억원에서 40억원, 50억원까지 손익 조정을 했죠. 다스가”라면서 손익을 짜맞춰 해마다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수십억원의 돈이 사라졌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경리팀장이었던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경북 경주의 자동차 시트 제조사인 다스를 둘러싼 의혹은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의혹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주인을 가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씨와 맏형 이씨가 1985년 15억여원으로 도곡동 땅 1000여평을 현대건설 등으로부터 샀다가 1995년 포스코에 263억원을 받고 팔았다. 두 사람은 1987년 다스도 함께 설립했다. 당시 현대차가 부품 국산화의 일환으로 임직원들에게 부품회사 설립을 권했고, 포스코에 땅을 판 대금 중 일부가 다스로 흘러간 것이 드러나면서 도곡동 땅이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앞서 검찰과 특별검사팀은 “근거 없음”,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가위눌림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무서운 꿈’ 예고편

    가위눌림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무서운 꿈’ 예고편

    미스터리 공포 실화 ‘무서운 꿈’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 ‘무서운 꿈’은 가위눌림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미션 임파서블3’, ‘다이 하드 4.0’ 등 할리우드 액션 여전사로 사랑받고 있는 매기 큐가 주연은 물론 제작에 참여했다. 공개된 예고편은 ‘가위눌림’으로 인해 극한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방이 점점 어두워졌어요. 그게 온다는 신호죠”, “매일 밤마다 반복돼요”, “언제 또 나타날지 몰라요” 등의 대사가 긴장감을 조성한다. 밤낮없이 찾아오는 가위눌림으로 인해 고통받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시작으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듯 움직이는 가족의 눈빛이 공포의 실체를 궁금케 한다. 또 어린 소년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의 형상이 눈길을 끈다. ‘무서운 꿈’은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선 공개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으로 올여름 깜짝 흥행을 일으킨 영화 ‘47미터’ 제작진이 참여했다. 백여 개가 넘는 글로벌 브랜드 광고로 천재적인 감각을 인정받은 조나단 홉킨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배급사 측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가위눌림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실화 기반 영화다. 미스터리하면서도 현실적인 전개로 체감지수 높은 공포감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무서운 꿈’은 12월 국내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85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스케이트보드로 차에 스크래치, 잔디 깎아 모은 40달러 보냅니다”

    “스케이트보드로 차에 스크래치, 잔디 깎아 모은 40달러 보냅니다”

    “제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친구가 떠미는 바람에 차와 부딪혀 스크래치를 냈어요. 잔디 깎아 모은 용돈을 보험금으로 우선 보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 몰린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존 젤니오(57)는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회사 사무실로 배달된 편지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보내는 이의 이름도 주소도 없는 편지에는 Z컴퓨터로 인쇄된 글과 함께 40달러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이어 “아빠에게 얘기한 뒤 함께 돌아가보니 차는 이미 주차됐던 곳을 떠났더군요. 아빠가 다른 트럭에서 여기 회사 이름을 찾아냈어요. 아빤 그 정도 손상을 입혔다면 몇백 달러는 보상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번 주말 더 많은 잔디를 깎으면 다음주 에 더 많은 돈을 보내드릴 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젤니오는 여러 번 차 주위를 돌아보고 아무리 살펴봐도 차에 별다른 손상이 없었다면서 감동 먹었다고 털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그는 “어린 친구의 얘기에 감명 받았다. 그래서 난 돈을 돌려주기 위해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이 사연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젤니오는 “소년인지 소녀인지도 몰라요. 불행히도 부정적인 얘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때 마음 따듯한 얘기가 있을 수 있다니 놀라워요. 누군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가슴 따듯한 얘기를 알게 된 건 대단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그 착한 이를 찾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주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가 아주 자랑스럽다. 그리고 널 이렇게 훌륭하게 키운 부모가 자랑스럽다. 그런 좋은 삶의 태도를 계속 간직하렴. 그리고 여기 네 돈 돌려줄게’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만난 엄지원 “저희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만난 엄지원 “저희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 엄지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소감을 밝혔다.16일 엄지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감사합니다, 저희 영화를 봐주셔서♥ 부국제가 되살아나길 저도 바라요. 좋은 국민이 될게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지난 15일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을 찾아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담겼다. 마이크를 잡은 문재인 대통령이 배우 엄지원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올라 영화를 본 소감을 밝힌 대통령의 모습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영화 ‘미씽’은 남편과 이혼 후 딸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워킹맘 지선(엄지원 분)이 조선족 보모 한매(공효진 분)가 다은을 데리고 사라지자 한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담아낸 영화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조진웅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했다”

    조진웅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했다”

    영화는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 이듬해인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한 조선 청년이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인을 격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당히 자신이 사는 곳과 이름을 밝히고 떠난 청년은 결국 체포되어 법정에 선다. 당당하게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며 강변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는 백범 김구가 그다.●“몇 번 고사했는데 시나리오가 돌아오더라” 19일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조진웅(41)은 “야구로 치면 직구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오로지 흥행만을 염두에 두고 부리는 잔재주 없이 담백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요즘 범죄 액션물 ‘독전’을 찍느라 체중을 많이 줄인 탓에 핼쑥해진 얼굴에서 유독 눈빛이 반짝거렸다. 지난겨울을 몽땅 바친 ‘대장 김창수’에서 그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흔히 역사적 위인을 연기할 때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절제된 감정처리(사형 집행을 앞두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은 압권이다)로 영화의 호소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부터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던 것은 아니다. 부담감에 몇 번이나 고사한 끝에 받아들이게 됐다. “제 성정으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위인이라 그분의 발자취를 백 분의 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지, 겉치레로 연기하고 물러날 수는 없었기에 고민이 많았죠. 거듭 시나리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결국은 내 차례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암살’ 이후 다시는 독립운동가 역할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영화에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데 그게 딱 맞는 말”이라며 웃었다. ●“위인 연기, 그 사이즈에 몸 맞춰 넣어야” 물론 그가 실존 인물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은 아니다. ‘퍼펙트게임’에서는 야구선수 김용철을, ‘명량’에서는 왜장 와키자카를 연기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위인 중의 위인 백범 김구를 연기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다가왔다. “실존 인물, 특히 지금 우리 세대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는 역사적 위인을 연기한다는 건 아무래도 달라요. 보통 캐릭터라면 입기가 불편할 때 포기하거나 바꾸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데 위인은 그게 안 돼요. 오로지 그 규격화된 사이즈에 맞춰서 몸을 집어넣어야 하거든요. 자칫 하면 왜곡 논란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위인을 연기하는 게 힘든 것 같아요.”●미리 알려 주고 던진 직구 같은 영화 김창수는 동학 운동에 투신, 전투에 참여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있는 인물이었으나 처음부터 위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진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김창수는 다른 조선인 죄수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강변해요. 자신은 국모를 시해한 짐승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렇게 거리를 뒀던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고 그들의 평범하지만 하나하나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해가죠. 그래서 영화는 어찌 보면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평범하고 미숙한 청년이었던 김창수가 홀로 김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주변에 조선인 죄수들이 있었기에 김구가 될 수 있었죠.”‘대장 김창수’는 상당히 건전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영화라기보다는 재연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다. 바꿔 말하면 흥행 요소들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화 베테랑들이 모였는데 왜 여러 가지 작전을 구사해 보고 싶지 않았겠어요. 영화적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디 하나 (상업적 성공을 위해) 바꿀 수는 없었어요. 야구로 치면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직구를 던진 셈이에요. 변화구를 던지거나 타자를 한 번 거를 타이밍도 없는 작품이죠. 당연히 두들겨 맞아 실점이 나겠죠. 하지만 마음먹었던 부분을 모두 짚으며 완주했으니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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