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뚝심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서동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역 수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무릎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최윤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83
  • 서울대생이 개발한 영어단어 암기법! 파장 엄청나…

    서울대생이 개발한 영어단어 암기법! 파장 엄청나…

    ◈’뇌새김 워드’ 기존학습법과 차원이 다른 성적향상으로 입소문에 강남학원가 ‘발칵’ 영어교육 시장에서 관련 업체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재미’를 컨셉트로 영어 단어에 관련 이미지를 접목시켜 자연스레 단어를 암기할 수 있도록 개발된 ‘뇌새김 워드’(http://www.brain-study.co.kr)가 있다. 일명 ‘이인혜 영어단어 학습기’로 알려진 뇌새김 워드가 지칠 줄 모르는 인기몰이를 통해 누적 사용자 150만명을 돌파할 뿐만 아니라, 200억 매출로 영어업계의 불패신화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화제다. 뇌새김 워드는 서울대 출신의 교육 전문가들이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2년에 걸친 제품 준비 기간 동안 총 16만여개에 달하는 단어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한 단어당 30개의 이미지를 만들어 그 중 하나를 추려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 같은 산고 끝에 탄생한 뇌새김 워드 실험결과 97.5%라는 경이적인 영단어 암기율을 얻어내 영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뇌새김 워드(http://www.brain-study.co.kr)는 의 위력은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중학교 방과 후 교실 운영과정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평소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학생들이 뇌새김 워드를 이용해 3주만에 한 학기 분량의 단어를 전부 암기했던 것. ◈공교육 교재로 채택된 후 드러난 놀라운 성과!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전국 40여개 각급 학교에 납품됐고, 이후 뇌새김 워드(http://www.brain-study.co.kr)를 활용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1만9천7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평균 44%의 성적 상승효과 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영어1등급에 해당하는 96점 이상의 점수를 얻은 학생들도 다수 늘어나,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뇌새김 워드(http://www.brain-study.co.kr)는 이미 국내 특허를 획득한 상태로 현재는 미국 특허를 출원중이다. 이 같은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16만여개에 달하는 단어와 단어 암기에 최적화 된 이미지를 조합해내는 방대한 작업을 이끈 위버스마인드 정성은(36) 대표의 뚝심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 집적시스템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후 유명 게임회사에서 사업본부장까지 지내다 지난 2009년 전격적으로 어학기시장에 뛰어들어 위버스마인드 설립 3년만에 매출 200억원 달성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낸 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며 올해는 이미 매출 300억원을 돌파한 상태다. 이 같은 초고속 성장은 교육업계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그래픽과 학습요소가 적절히 섞이지 못하면 재미와 학습능률 모두 만족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디지털기기에 콘텐츠를 집어 넣는다고 모두 스마트 러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며 이 같은 생각이 ‘뇌새김 워드(http://www.brain-study.co.kr)’ 탄생 아이디어의 시발점이 됐다. 2015년을 기업성장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대표는 연내 뇌새김 워드교실을 정규 수업에 활용하는 학교의 수를 100개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며 신규 출시된 ‘뇌새김 워드’를 통해 개인고객 매출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위버스마인드는 영어 학습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특허받은 뇌새김 학습법의 탁월한 학습효과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7일간 무료로 ‘뇌새김 워드’를 이용해 볼 수 있는 ‘무료체험 이벤트’를 진행중이며, 이와 관련한 무료상담전화 (1566-7182)를 운영하고 있다. 무료체험 바로가기
  • 영어 3천개 외운다더니, 서울대생과 300억 “꿀꺽”

    영어 3천개 외운다더니, 서울대생과 300억 “꿀꺽”

    한 설문조사 결과 2015년 계획으로 영어공부가 1순위로 뽑혔다. 해마다 세우는 똑같은 계획,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도전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평범한 직장인 A양(28세)이 3개월 만에 유창한 영어실력 얻은 사연이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화제다. 어떻게 3개월 만에 유창한 영어실력이 가능했는지 그녀의 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이제 막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A양의 새해 계획은 몇 년째 영어회화였다. 초, 중, 고까지 정규 영어교육도 착실히 받고 학원도 여러 번 다녀 봤지만 실제 영어를 써야 할 상황이 닥치면 말문이 턱턱 막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려 했지만 출퇴근만 하기에도 벅찼다. “에이~ 피곤한데 영어공부 할 시간이 어디 있어. 다 남들 이야기인 거지” 그러나 A양은 2014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뇌새김 영어’ (http://www.brain-study.co.kr)를 사용했고, 늘 숙원사업으로 남아있던 영어공부에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뇌새김 워드프리미엄’ 97.5% 암기법으로 단어 암기의 신세계 개막! 어휘의 힘은 영어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둥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지를 받아 들었을 때, 아는 어휘가 대부분일 때와, 모르는 어휘만 많을 때의 자신감 차이는 점수로 이어진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 갈수록 더욱 증가하는 필수 암기 단어뿐 아니라 졸업 후에 필요한 토익, 토플 등 2,485개의 수많은 단어까지 외워야 한다. 이처럼 단어암기가 얼마나 지루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인지 잘 알기에, 이러한 고민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영단어 암기시간을 대폭 덜어주고자 뇌새김 워드프리미엄(http://www.brain-study.co.kr)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워드프리미엄은 '재미'를 컨셉트로 영어단어에 관련 이미지를 접목시켜 자연스럽게 단어를 암기할 수 있는 모국어 학습법으로, 좌뇌와 우뇌를 자극해 영어 연상력을 높이고 한번 외운 단어는 장기적으로 기억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1시간에 150단어를 순간 암기 할 수 있으며, 실험결과 97.5%라는 경이적인 암기율을 얻어내었다. 또한 이미 국내 특허를 획득, 현재는 미국 특허를 출원 중에 있다.   ◈공교육 교재로 채택된 후 드러난 놀라운 성과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전국 40여개 각급 학교에 납품됐고, 이후 뇌새김 워드프리미엄(http://www.brain-study.co.kr)을 활용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1만9천7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평균 44%의 성적 상승효과 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영어1등급에 해당하는 96점 이상의 점수를 얻은 학생들도 다수 늘어나,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뇌새김 워드프리미엄(http://www.brain-study.co.kr)은 이미 국내 특허를 획득한 상태로 현재는 미국 특허를 출원중이다. 이 같은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16만여개에 달하는 단어와 단어 암기에 최적화 된 이미지를 조합해내는 방대한 작업을 이끈 위버스마인드 정성은(36) 대표의 뚝심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서울대 집적시스템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 후 유명 게임회사에서 사업본부장까지 지내다 지난 2009년 전격적으로 어학기시장에 뛰어들어 위버스마인드 설립 3년만에 매출 200억원 달성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낸 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며 올해는 이미 매출 300억원을 돌파한 상태다. 이 같은 초고속 성장은 교육업계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그래픽과 학습요소가 적절히 섞이지 못하면 재미와 학습능률 모두 만족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디지털기기에 콘텐츠를 집어 넣는다고 모두 스마트 러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며 이 같은 생각이 '뇌새김 워드프리미엄(http://www.brain-study.co.kr)' 탄생 아이디어의 시발점이 됐다.2015년을 기업성장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정대표는 연내 뇌새김 워드교실을 정규 수업에 활용하는 학교의 수를 100개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며 신규 출시된 ‘뇌새김 워드프리미엄’을 통해 개인고객 매출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위버스마인드는 영어 학습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특허받은 뇌새김 학습법의 탁월한 학습효과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7일간 무료로 '뇌새김 워드프리미엄'을 이용해 볼 수 있는 '무료체험 이벤트'를 진행중이며, 이와 관련한 무료상담전화 (1566-7182)를 운영하고 있다. 무료체험 바로가기 나우뉴스부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G그룹] 위기에 빛난 ‘뚝심 리더십’… 2차전지·LTE 서비스 선두주자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G그룹] 위기에 빛난 ‘뚝심 리더십’… 2차전지·LTE 서비스 선두주자로

    ‘뚝심과 끈기.’ 이 두 단어는 구본무(70) LG 회장의 경영 신념으로 알려져 있다. 구 회장은 경영진에게 일단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그 과정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 목표를 달성하라는 얘기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는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2차전지를 접하게 된다. 2차전지는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 여러번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전지다. 구 회장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럭키금속의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1997년 LG화학 연구진이 처음 생산한 소형 전지 파일럿은 대량 양산하기에는 품질이 따라주지 않았다. 일본 선발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을 따라잡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계속되는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하라. 꼭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2005년 2차전지 사업은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실제로 2013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가 발표한 세계 전기차 배터리 기업 평가 등에서 LG화학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특허 출원 건수에서도 앞섰다. ‘통신업계’의 약자였던 LG유플러스가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통해 시장 추격자에서 LTE 시대의 선도자로 탈바꿈한 것도 구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LG유플러스는 네트워크에서도 경쟁사에 밀리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주파수를 사용해 고객의 선호도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구 회장은 “단기 경영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할 것”을 독려했다. LG유플러스는 LTE 구축에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약 2조원을 투자해 3년 계획이었던 LTE 전국망 구축을 단 9개월 만에 끝내고 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결과 LG유플러스는 2011년까지 17%대를 맴돌았던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올렸다. 구 회장은 인재들과의 소통 경영에도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최고경영진과 인사담당 임원들을 직접 찾아 우수 인재 확보를 독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우수한 연구·개발(R&D)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LG 계열사들이 석·박사급 R&D 인재들을 대상으로 열고 있는 ‘LG 테크노 콘퍼런스’에도 3년째 참석하고 있다. 현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개최되는 ‘LG 테크노 콘퍼런스’도 직접 찾는다. 구 회장은 건강을 위해 평일에는 주로 러닝머신 등의 운동기구를 활용해 걷기와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기초 체력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회장의 부인 김영식(63)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다가 구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미국에서 도자기를 공부하던 중 민화에 반해 귀국 후 본격적으로 민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막내딸 연수(19)양과 모녀전을 열기도 했다. 구본준(64) LG전자 부회장은 LG전자, LG화학, LG반도체,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LG 주력 계열사에서 임원과 대표를 두루 거치며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았다. 오랜 기간 전자산업 분야에 몸담아 오면서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 및 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 글로벌 감각, 시장 선도에 대한 열정이 탁월한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구 부회장의 외아들인 형모(28)씨는 지난해 LG전자 대리로 입사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경영전략 업무를 하고 있다. 미 코넬대 경제학과 출신인 구 대리는 LG전자 입사 전에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황정민 정우, 영화 ‘히말라야’ 촬영돌입… 엄홍길 산악실화 담는다

    황정민 정우, 영화 ‘히말라야’ 촬영돌입… 엄홍길 산악실화 담는다

    충무로 대표배우 황정민과 대세배우 정우가 영화 ‘히말라야’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히말라야’는 황정민 정우 두 배우의 출연 뿐만 아니라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댄싱퀸’을 통해 충무로 대표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석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15년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영화 ‘히말라야’는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해발 8750미터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생을 마감한 후배 대원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휴먼원정대’와 함께 떠난 목숨 건 여정을 그린 감동 실화다. 현재 황정민 정우를 비롯해 모든 캐스팅을 확정 짓고 지난 11월 22일 크랭크인해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정민은 히말라야의 산증인이자 원정대 등반대장 엄홍길 역을 맡았고, 정우는 엄홍길 대장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후배 박무택 대원을 연기한다. 두 사람은 영화를 통해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진하고 끈끈한 동지애를 과시할 예정이다. 또 원정대 최고참 이동규 원정대장 역으로는 배우 조성하, 누구보다 뚝심 있는 홍일점 대원 조명애 역에는 배우 라미란, 박무택의 대학동기이자 의리의 아이콘 박정복 역으로는 배우 김인권이 낙점됐다. 이외에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배우 김원해, 이해영, 정유미, 유선 등이 출연, ‘명품연기’에 대한 영화팬들의 갈증을 해소시킬 예정이다. 이석훈 감독은 “바다에 이어 산으로 온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히말라야’가 향후 십 년 이상 한국의 대표 산악영화로 남을 수 있도록 높은 수준으로 완성하게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정민은 “실존인물이자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대표 산악가 엄홍길 대장을 연기하는 데 있어 기대감과 부담감이 공존했다. 사람냄새 나는 새로운 산악영화 한 편이 탄생할 것 같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첫 촬영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정우 역시 “황정민을 비롯한 선배 배우들, 그리고 이석훈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게 되어서 기쁘고 영광이다. 히말라야라는 작품의 성격답게 강도 높은 촬영과정의 연속이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엄홍길 대장의 목숨 건 여정을 그린 산악영화 ‘히말라야’는 2015년 하반기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김민지 인턴기자 mingk@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20여년간 제구용품 만든 ‘명품 목수’ 신현두 명인의 뚝심

    [명인·명물을 찾아서] 20여년간 제구용품 만든 ‘명품 목수’ 신현두 명인의 뚝심

    제사(祭祀)에 없어서는 안 될 제구(祭具)를 전통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넘어말의 양지바른 구릉지에서 여든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전통을 지키고 있는 신현두(80)옹이다. 제구는 예전보다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많지 않고 간소화됨에 따라 수요가 급감했다. 기계를 이용해 만드는 곳이 더러 있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잣나무, 밤나무만을 엄선해 5년 동안 그늘에서 말린 뒤 손으로 켜고 깎아 제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금곡리가 고향인 신옹은 본래 목수였다. 1962년 27세 때 서울로 상경해 재당숙(아버지의 육촌 형제)을 찾아갔다. 재당숙은 “너는 손재주가 좋으니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있다”며 목수를 소개해 줬다. 그와 한조가 돼 미군부대 막사 짓는 일을 열흘간 했다. 목수는 일이 끝날 무렵 일당 400원을 손에 쥐여 주며 “목수냐”고 물었다. “아니다”라고 답하자 목수는 그날로 마포형무소 자리에 들어선 대영목공소에 일자리를 만들어 줬다. 기계로 의자, 책상을 만드는 곳이었다. 공장장이 “일 잘하네” 하며 밤낮으로 일을 줬다. 6개월이 지나자 더 이상 배울 게 없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매부가 신옹을 잡아끌었다. 매부는 “목수 일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1년쯤 배우니 고급 문 짜는 일에서는 서대문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모든 현장에 뽑혀 다니면서 문 만드는 일은 독점하다시피 했다. 아쉬워하는 매부를 뒤로하고 서대문구 천현동에 자신만의 목공소를 냈다. 상경 3년 만에 독립해 건재상을 함께 운영하며 제법 먹고살 만해졌다. 당시 서대문 일대에는 한옥과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목조주택이 많아 목수들의 전성기였다. 서울에 작지만 집도 장만했다. 서울적십자병원을 비롯해 경기대, 서대문경찰서, 동명여중·고 일도 도맡다시피 했다. 세월이 흘러 가는 정 오는 정 쌓였던 거래처 지인들이 하나둘 은퇴하자 그도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1997년 6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35년 만에 귀향했다. 논밭을 일구고 한봉(토종꿀)을 치던 중 평소 생각하던 제구용품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제상과 신주 등을 꼼꼼히 살피며 똑같이 만들어 보기를 거듭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불태우기 일쑤였다. 제사에 관한 문헌을 찾아 읽으며 연구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제향에도 가급적 빠짐없이 참석했다. 10여년이 지나자 제법 흡족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종중의 사당 등에서 사용할 제구 주문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산 김씨 종중 사당을 비롯해 언양 김씨 종중, 진주 유씨 종중 등에서 일을 맡겼다. 2007년에는 파주 통일동산 내 고려통일대전 사업 주체자인 고려역사선양회로부터 초대형 수주를 했다. 고려역사선양회는 대전에 모실 고려왕을 비롯해 공신, 충신들의 위패와 제상에 대한 제작 참여를 공모했다. 경쟁은 치열했다. 신옹의 기술력이 압도적이었다. 4개월여 동안 고려 왕 34위와 고려 충신, 공신 342위의 신주와 제상 11개를 정성껏 제작해 납품했다. 돈벌이는 되지 않았지만 정성껏 제구를 제작했더니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그를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 대전에서의 각종 문중 제례 관련 일을 맡겼다. 올해로 8년째 하고 있으나 힘에 부친다. 신옹이 주로 만드는 제구는 제상과 신주다. 제상은 잣나무를 쓰며 신주는 반드시 단단한 밤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개소리,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의 밤나무를 베어 나침반을 놓고 동서남북을 가렸다. 신주는 곧 신상(神像)이니 남쪽은 몸의 앞이고 북은 몸의 뒤가 된다. 밤나무는 그늘에서 5년을 말려야 한다. 신주를 담는 외독에는 잣나무를 사용한다. 경기 가평 제재소 건조장에서 나온 것을 다시 말려서 사용한다. 제상은 보관과 관리가 편리하도록 조립식으로 고안해 사용할 때 쉽게 조립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제상과 신주를 보관하는 주독은 옻칠해 마무리한다. 신옹은 제기, 제구 제작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후계자가 없다. “열 손가락 가운데 멀쩡한 것은 오른손 약지뿐입니다. 35년간 목공 일을 하면서 손톱 하나 안 빠졌는데, 지난 18년 동안 제구를 만들면서 아홉 손가락을 잃었습니다. 겨우 용돈벌이밖에 안 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겠어요?”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 어느 문중에 납품한 42개 신주를 만드는 데 제작에만 꼬박 3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받은 비용은 겨우 600만원. 경북 안동 어느 문중 시조의 대형 위패와 교의 6조도 2013년 가을 주문받아 오는 3월 납품 예정인데, 한 달 인건비도 안 된다. 신옹은 “이것 한 가지 업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다. 더욱이 제구는 한번 장만하면 평생을 사용하는 데다 점차 제례가 간소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미래 비전도 절망적”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신옹은 “나는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 기름값과 용돈 정도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고향에서 평생을 손에 익혀 온 목수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신옹에게는 큰 행복이다. 이윤희(49)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은 “신옹처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과 기술, 기능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많이 계신다”면서 “지역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가 전승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열린세상] 기업가 정신/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기업가 정신/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안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은 우리말로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가 기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이윤 추구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와 정신을 말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개발, 기술혁신으로 ‘창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것을 기업가 정신이라 했고,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히 도전해 기회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기업가 정신으로 봤다. 창조경제라는 맛있는 요리를 완성하려면 각 경제주체의 기업가 정신이 필수 양념으로 첨가돼야 한다. 2015년 새해 들머리에 다시금 기업가 정신을 되새겨 보는 이유다. 그렇다면 기업가 정신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소양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실패를 경험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다. 시행착오와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을 내버리지 않고 껴안을 때 성공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벤처의 천국이면서도 벤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실패 콘퍼런스’를 열어 실패담을 공유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독일 BMW 역시 1990년대 초반 ‘이달의 창의적 실패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의욕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직원들의 경험담을 함께 공유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는 낭비가 아닌 기업의 자산으로 수용됐다. 두 번째 소양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끈기와 재도전의 자세다. 남들에게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꿈이라도 뚝심과 끈기를 갖고 재도전하다 보면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한 번 실패하더라도 끈질기게 도전하는 개인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재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실패로 인한 비용 부담이나 부정적 편견은 줄어들 것이다. 꾸준한 도전이 혁신을 낳는다는 진리는 ‘굳지 않는 떡’ 제조 기술개발 스토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전통식품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한귀정 연구관은 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쌀의 수분 상태나 가공온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실험을 무려 1000여회 넘게 시도했다고 한다. 모든 변수를 검증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도전을 거듭한 결과 그는 개발한 기술을 300여개 업체에 이전하고 떡 제품의 해외 수출길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소양은 발상의 전환, 역발상의 자세다. 경기가 어려울 때 투자를 늘려 승부수를 띄우고, 비용 절감을 위해 대부분 해외로 공장을 옮길 때 오히려 아웃소싱을 자체 생산으로 돌려 품질을 확보하며, 상대가 강할수록 약점을 집중 공략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원동력은 이 같은 뒤집어 보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이베이가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할 때 시장과 사람, 콘텐츠에 집중해 이베이를 물리쳤고, 알리바바를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업체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 역시 역발상의 기업가 정신 성공 사례다. 전통 제조업의 쇠퇴를 걱정하는 요즘이다. 기존 틀을 벗어나 이종 산업과 결합해 스마트 제조업으로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때야말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기회를 포착하고 변화를 주도하려는 기업가 정신이 더욱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한국산업기술진흥원도 올해는 튼튼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중소·중견 기업들을 많이 발굴해 우리 경제의 떠오르는 별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다. 창조경제를 이끌 만한 선도 기업인 가칭 ‘리딩 코리아 컴퍼니’들을 선별해 혁신선도형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 수요에 대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할 예정이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기업인들은 늘 어려움 속에서, 얼음 송곳 위에서 걸어가듯 많은 역경을 헤쳐 왔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자세로 임한다면 누구에게나 9회말 2아웃 역전 만루 홈런의 기회는 열려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 올해에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희망의 배(ship), 끈기 있는 재도전의 배(ship) ‘안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에 올라타 보자.
  • [영화 多樂房] 이별까지 7일

    [영화 多樂房] 이별까지 7일

    그저 건망증이 심한 줄로만 알았던 중년 부인 ‘레이코’는 갑작스레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단 7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남편과 맏아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충격에 빠져 있는 와중에도 무의식중에 어린아이처럼 속마음을 뱉어내는 레이코의 대사는 이 가정의 아픔과 상처를 하나씩 끄집어내며 죄책감과 슬픔을 더한다. ‘이별까지 7일’은 먼저, 레이코의 증세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모습을 담아내며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먹먹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그대로 전달한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가족의 죽음을 앞두고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상당 부분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사신(死神·Thanatos)을 언제 어떻게 마주하게 될지 그리고 그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과 공포는 모든 철학과 신학의 근간이 되어 왔으며 안전과 건강에 대한 인간의,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본능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또한 죽음을 둘러싼 무지(無知)는 공상과학 영화와 공포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스크린을 채워 왔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소재를 보다 현실적으로 다룬 영화들은 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의 두 가지 성격을 건드린다. 즉,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과 죽은 자는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이별까지 7일’ 역시 영원한 작별, 그것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두 번째 특성을 앞세워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 영화의 도입부일 뿐이다. 첫 장면에서 레이코를 클로즈업한 카메라는 그녀가 입원하자 가족들에게로 시선을 옮겨간다. 여기서부터 남편과 아들들이 레이코의 죽음에 대처하는 과정이 섬세하고 치밀하게 펼쳐진다. 영화의 공감대는 여느 가족의 구성원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캐릭터들의 핍진성에서 극대화된다. 무능력한 아버지, 내성적이고 책임감 강한 맏아들, 까칠하고 이기적인 며느리, 철은 없어도 심성은 착한 막내아들 등은 각각 개성을 분명히 드러내며 차례로 영화에 색깔을 덧입힌다. 남편과 두 아들은 정신적 충격과 경제적 부담으로 극심한 좌절과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곧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레이코의 병을 겪으며 비로소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그 역할을 해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죽음의 그림자까지도 희미하게 만드는 묘약이자 희망 그 자체다. 그렇게 세 남성의 성장과 함께 무채색의 영화를 컬러로 복원하는 과정이 끝나면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맏아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한 개인의 성숙은 물론이요, 고락(苦) 속에 피어난 가족애가 다음 세대로 이행될 것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엔딩이다. 연출 자체는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가족이라는 소재를 나름의 시선으로 풀어간 뚝심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우리 행장님 별명은요

    우리 행장님 별명은요

    ‘K9, 조이 투게더(Joy Together), 닥터 피시….’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언뜻 보면 연결 고리가 찾아지지 않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의 ‘별명’이다. 어떤 이는 ‘불경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CEO 별명은 조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의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은 30일 취임을 앞둔 이광구 우리은행장 내정자를 ‘K9’(케이 나인)으로 부른다. 이름자 ‘광’의 영문 이니셜(K)과 ‘구’의 영어(나인)를 합성한 것이다. 기아차의 K9이 ‘최고급 사양’이라는 것도 ‘조직 넘버원’의 위상과 맞아떨어진다. 공교롭게도 이 내정자가 부행장 시절 타고 다녔던 관용차도 K9이다. 우리은행은 회장과 행장을 영어 이니셜로 부르는 것이 전통이다. 이팔성 전 회장은 ‘PS’, 이순우 행장은 ‘SW’로 통한다. 경영 전략 차원에서 스스로 별명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CEO도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대표적이다. 김 회장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직후인 2012년 3월 취임했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원활한 통합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김 회장 스스로 이름 이니셜(JT)에 ‘Joy Together’(함께 즐기자)라는 ‘해몽’을 달았다.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도 마찬가지다. 이 전 행장의 이름 이니셜은 CH다. 그는 2008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름에도 상업(C), 한일(H)이 들어가 있는 만큼 조직 화합의 적임자”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져 탄생한 은행이다. 언어유희를 활용한 별명도 있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의 별칭은 ‘닥터 피시’(어 박사)다. 고려대 총장 출신인 어 전 회장은 실제 경영학 박사다. 어 전 회장 시절 호흡을 맞췄던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은 ‘어바타’(어윤대+아바타)로 불렸다. 어 전 회장이 은행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했던 것을 풍자한 별명이다. 김주하 농협은행장의 별명도 재미있다. 직원들과 저녁 술자리를 즐기는 김 행장은 스스로 ‘주당’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주’는 이름자 주(周)이기도 하고 술 주(酒)이기도 하다. 반면 직원들은 김 행장이 “천수답 경영에서 수리답(水利畓) 경영으로 전환하자”고 강조한 뒤부터 ‘술이 답’(발음은 수리답과 같다)이라는 별칭을 즐겨 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업무를 ‘깨알처럼’ 꼼꼼히 챙긴다고 해서 ‘서 대리’로 불린다. 요즘에는 자나깨나 “뚝심 있게, 배짱 있게, 기운차게”를 외쳐 ‘뚝배기’가 더 애용된다는 게 신한 측의 주장이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기억력이 비상해 ‘걸어다니는 컴퓨터’로 통한다. 인사부장 시절 직원 4000명의 학력과 이력을 줄줄이 꿴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기억력만큼 큰 머리 사이즈 덕분에 ‘대두(大頭) 장군’이라 불리기도 한다. 15년 넘게 CEO로 군림한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두뇌 회전도 빨라 ‘왕 회장’ ‘사막의 여우’(로멜)로 불렸다. 그런가 하면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은 이렇다 할 별칭이 없다. 임직원들은 사석에서조차 두 CEO에 대한 언급을 기피했다고 한다. 특정 라인으로 분류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였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9일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는 CEO에게 별명을 붙이기 어렵다”며 “조직 특성이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함축한 별명은 그냥 웃고 넘어가기엔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현장 행정] 살림 어려워도 아이디어로 복지 이끈다

    [현장 행정] 살림 어려워도 아이디어로 복지 이끈다

    ‘살림살이가 어렵더라도 주민 복지의 후퇴는 없다.’ 내년 구 전체 예산 중 복지비 비중이 60%가 넘지만 보육과 복지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것이 노현송 강서구청장의 철학이다. 따라서 지역 기업 및 주민의 나눔과 기부를 활용한 다양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노 구청장은 23일 민관 합동으로 만든 신원구립어린이집을 돌아보면서 “직원과 주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저비용 고효율의 정책을 펴고 있다”며 “최소한의 예산 투입으로 주민 복지와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을 집중 발굴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구는 재정적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민관 연대라는 새로운 시도로 서울 자치구 중 최상위권의 국공립어린이집을 갖췄다. 종교시설과 아파트 상가 등을 활용한 민관 연대 방식으로 국공립어린이집 6곳을 새로 만든 것이다. 건설했다면 부지 매입부터 2년 이상의 시간과 130억원의 재원이 필요했겠지만 민관 연대사업으로 45억원에 해결했다. 85억원의 예산 절감은 물론 건립 기간도 크게 단축했다. 이들 어린이집 개원으로 356명의 신규 원아가 추가로 국공립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또 친환경 자재,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우수한 시설로 최고의 보육 환경을 갖추게 됐다. 구는 또 도심 거리를 푸르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자체적인 수목 조달 체계를 갖췄다. 이는 녹화사업에 투입되는 수목을 지역 주민들로부터 기증받거나 직접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올해 초부터 수목기증창구에서 기부받고 서남환경공원(가양동 202번지) 자투리땅에 500㎡ 규모로 마련된 양묘장에서 기른 다양한 꽃과 나무를 자투리땅, 골목길 등에 채워 넣었다. 공원 시설물도 자체 확보하고 있다. 구는 태풍 피해목과 가로수 고사목을 재활용해 자연 친화적 공원시설물로 제작하는 ‘희망나무 목공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목공소는 정자와 목교, 담장 등 올 한 해만 공원, 둘레길에 필요한 10종 590개의 시설물을 직접 만들어 설치했다. 이를 통해 3억원의 예산을 아꼈다. 복지는 돈 없으면 못하는 것이라는 공식을 깨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재정 부담을 덜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 방치된 폐자전거 100여대를 말끔히 수리해 저소득 가정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또 가을철 악취의 대명사인 은행 열매 170㎏을 수거해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했다. 노 구청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면서 “지역 기업과 주민이 나눔과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백화점그룹] 현대 계열사 지원 회사서 출발…‘명품 백화점’ 공식 만들다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백화점그룹] 현대 계열사 지원 회사서 출발…‘명품 백화점’ 공식 만들다

    40여년 전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가(家) 주요 계열사의 뒷바라지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남의 노른자땅에 그룹 최초의 백화점을 지으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다른 유통기업이 대중화된 백화점을 세워 쉴 틈 없이 확장에 나섰다면 현대백화점의 전략은 달랐다. 강남 제일 비싼 땅인 압구정동에 그룹의 시작인 본점을 세운 만큼 차별화된 고급화 전략으로 강남 사모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대백화점 하면 ‘명품 백화점’이라는 공식을 만든 이는 정몽근(72)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9남매(8남 1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작고한 고 정몽필 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회장을 제외하고 현대가에서 두 번째로 큰 형님이다. 하지만 그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등 3형제가 MK, MH, MJ 등 영문 이니셜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친 것과 달리 눈에 띄는 행보를 자제했다.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는 1971년 설립돼 당시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는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을 운영할 뿐이었다. 현대건설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가 성장을 하기 위한 물꼬를 트게 된 것은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지으면서부터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현대아파트의 건설 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만 있고 황량했던 그 땅에 무모하게 백화점을 진출할 기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때 나선 것이 정 명예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백화점을 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주변에서는 현대가 백화점 사업을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뚝심으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을 성공적으로 개점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다른 백화점과 달리 명품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성공을 거뒀다. 본점의 성공에 따른 이윤으로 1988년 무역센터점을 짓게 되면서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 확장이 이뤄졌다. 현대백화점의 성공 비결은 다른 백화점과 차별되는 고급화 전략에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유통업계도 타격을 입게 됐다. 유통업체들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신규 출점을 자제하고 저가 정책으로 고객 확보에 나섰다. 이럴 때 현대백화점은 정반대의 전략을 펼쳤다. 1998년 부도 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현대백화점 신촌점으로 바꿨고 울산 주리원 백화점 두 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재탄생시켰다. 서울 천호점을 연 데 이어 서울 미아점(2001년), 목동점(2002년), 부천 중동점(2003년) 등 매년 1개 점포의 문을 열면서 남들이 쉴 때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나갔다. 2003년 정 명예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경영 일선에 나선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점포 확장을 이어갔다. 2009년 현대백화점 신촌유플렉스를, 2010년 8월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을 개점했다. 이어 2011년 대구점, 2012년 청주점의 문을 열었다. 내년에는 판교점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을 개점할 예정이다. 백화점의 성공을 바탕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의 뼈대인 백화점사업과 관련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2001년 홈쇼핑 시장에 이어 2002년 지역케이블 방송사업(HCN)에 진출했다. 2009년 종합식품 전문기업인 현대그린푸드를 출범시켰다. 2012년과 2013년 의류·패션기업인 한섬과 가구회사 리바트를 잇따라 인수해 유통뿐만 아니라 생활 전 영역에 현대백화점그룹이 진출하게 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총수이자 3세 경영인인 정 회장은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 미국 하버드대 스페셜스튜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정 회장은 고교 동창의 소개로 황서림(42)씨를 만나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황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를 졸업해 서울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정 회장의 남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겸 현대홈쇼핑 사장은 형과 마찬가지로 경복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무역학과를 전공했다. 정 부회장은 2004년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가운데 장녀인 허승원(39)씨와 결혼했다. 허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재학했다. 둘 사이에는 3남이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백화점 경영관리팀장을 시작으로 그룹 경영의 중심이 되는 기획조정본부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2009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 밖에도 현대홈쇼핑 사장을 맡아 현대홈쇼핑의 중국 상하이 진출 등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지난해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형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다. 형제 사이는 매우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자 다른 승용차를 이용해 사업소를 방문하다가도 떠날 때면 정 부회장이 형의 승용차에 같이 타면서 함께 경영 이야기를 나눈다고도 한다. 이처럼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범현대가에서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정 명예회장은 2006년 정 회장 형제에게 현대백화점 등 계열사 지분을 증여하며 오래전부터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현재 정 명예회장은 현대백화점 2.6%, 현대그린푸드 2.0%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 17.1%, 현대그린푸드 12.7%를 가지고 있고 정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15.3%, 현대홈쇼핑 9.5%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예산안 막바지 심사] ‘예산안 합의’ 이끈 3인의 정치 기상도

    [예산안 막바지 심사] ‘예산안 합의’ 이끈 3인의 정치 기상도

    여야가 2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의 예산안 자동 부의제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2002년 이후 12년 만에 법정 시한 준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국면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예산부수법안 지정 강행이라는 ‘돌직구’를 던지며 원내 정치의 강력한 중재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세월호 3법 합의를 이끌어 낸 데 이어 연말까지 예산안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원내 사령탑 역할을 과시했다. 여의도 원내 정치를 이끌어 온 3인의 최종 성적표는 향후 ‘입법 전쟁’이 예고된 남은 의사 일정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고비마다 ‘결기’… 뚝심정치 통했다 ‘강력한 중재자’ 정의화 국회의장 “제가 수술만 3000명 이상을 했습니다. 칼잡이인데 성질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9월 정기국회가 개회 직후부터 여야 이견으로 공전하며 ‘반쪽국회’ 우려가 제기되자 한 포럼 특강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의 5선 의원인 자기 경력에 빗대 단호한 결단력을 강조하며 여야에 ‘경고장’을 던진 것이다. 정 의장의 이러한 ‘결기’는 지난 세월호 정국에 이어 이번 예산 정국에서도 통했다. 꽉 막힌 정국마다 강력한 중재자로 등장해 국회의장이 가진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는 ‘뚝심 정치’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 것이다. 여당 비주류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정 의장은 ‘비주류 돌풍’을 일으키며 지난 5월 의장에 취임한 이래 꾸준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보를 계속해 왔다. 정 의장의 존재감이 여야에 확실히 각인된 건 지난 9월 26일 본회의 때였다. 의사일정을 거부하던 야당을 의회로 불러와 90개 계류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중재에 나섰던 정 의장은 여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회의를 열고도 법안 처리는 강행하지 않은 채 회의 연기를 선언했다. 친정인 새누리당에서는 당장 이완구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했고 정 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이 사태를 계기로 야당도 더 이상 의사일정을 거부하지 못하고 국회로 들어왔고 세월호 3법도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이번 예산안 처리에서도 정 의장은 논란이 됐던 담뱃세 인상 관련 법안을 14개 예산부수법안에 ‘예외적으로’ 포함시켰다. 그간 정 의장을 지지해 왔던 야당에서 당장 ‘날치기 의장’ ‘거수기 의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결국은 이 때문에 여야의 담뱃세 인상 및 법인세 복구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지난 28일 담뱃세 인상, 법인세 비과세 축소 등을 포함한 여야 원내대표 합의 사항이 도출됐다. 이로써 정 의장은 임기 첫해 정기국회에서 ‘12년 만에 법정 시한 내 예산안 처리를 이끈 국회의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취임 직후부터 정기국회 초반까지 법률안 처리 ‘제로’(0)를 기록했던 것에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국회선진화법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입 첫해에 선례를 남겼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여야 충돌 때마다 등장하는 정 의장의 결기에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일각에서는 대권을 의식한 ‘존재감 키우기’가 여야 원내지도부의 합의 정신과 재량권을 축소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여야 합의를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이 가진 권한을 독단에 가까운 형태로 활용해 여야 모두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정기국회 기간인 지난 10월에는 여야 대립이 한창인데도 우루과이와 멕시코 등으로 출국해 여야 양측의 집중 비난을 받았다. 올 연말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사자방’ 국정조사 공방 등으로 다시 한번 격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연말 정국에 정 의장이 또 어떤 방식으로 결기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궂은일도 거부 않고 직접 총대… 공무원연금 개혁 등 넘을 산 많아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딱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대체로 이렇다. 궂은일도 거부하지 않고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서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이 원내대표는 올해 정국 최대 화두였던 세월호특별법 타결을 이끌어 냈다는 점만으로도 원내대표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거기다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도 눈앞에 두고 있다. 충남·북 경찰청장과 충남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갖춘 ‘리더십’이 협상력으로 이어진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원내대표의 정국 기상도는 ‘맑음’이다. 현재 여권 내 최고 우량주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사실 지난 5월 이 원내대표가 단독 후보로 출마해 원내에 ‘무혈입성’했을 때만 해도 이 원내대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선거를 치르지 않고 원내대표가 돼 놓고선 마치 ‘점령군’ 행세를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와의 소통 문제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원내대표는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을 줄이고 판사 출신의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검사 출신인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를 각각 정책적, 정무적으로 잘 활용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지난 10월 31일 세월호법 협상 타결 직후 정치권에는 ‘이완구 국무총리설’이 나돌았다. 이 원내대표가 연말 개각에서 총리로 지명되고, 이에 따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도 조기에 치러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예상도 나왔다. 아직은 설에 불과하지만 2일 예산안이 별 탈 없이 처리될 경우 이 원내대표 총리설은 한층 더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원내대표도 총리 지명을 내심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아직 고비는 남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 원내대표가 임기 중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들의 저항을 가라앉히는 것이 핵심이다. 여권에서는 세월호법 협상에서 유가족들을 설득해 낸 이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고 있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의 호된 질책을 면전에서 맞아 가며 소통을 시도해 타결점을 찾았고, 세월호 사고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줄 수 없다는 원칙도 지켜냈다. 공기업·규제개혁 법안을 비롯해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들도 이 원내대표가 풀어내야 할 과제다. 박 대통령이 처리를 당부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과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 경제활성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도록 하는 것이 최대 목표다. 이 ‘박근혜표’ 법안들의 연내 처리 여부에 따라 이 원내대표의 향후 정치적 운명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강경파 반발에도 끈기의 리더십… 野 한계 딛고 ‘사자방’ 국조 초석 우윤근 새정치연 원내대표 자칭 타칭 의회주의자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는 일 자체는 여당에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우 원내대표가 세운 마지노선을 넘는 합의를 유도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당에 있어 우 원내대표는 협상을 함께 시작하기 수월하되 협상 마무리를 이끌어 내기는 껄끄러운 대상이란 뜻이다. 지난 28일 누리과정 순증액(5233억원) 대체사업 예산 확보, 법인세 감면액 중 5000억원 규모 철회, 소방안전교부세 신설과 함께 담뱃값 2000원 인상 등의 2015년도 예산안 쟁점 사안 여야 합의를 마친 뒤 우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도 이 같은 일면이 드러났다. 우 원내대표는 합의 직후 “국회 파행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면서도 “야당으로서 한계가 있었고 주장이 많이 반영되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직전 여야 합의에 의한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를 자축하며 “야당의 공”이라고 덕담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머쓱해졌다. “야당의 한계”라고 했지만 ‘정기국회 종료 직후 사자방(사대강, 자원외교, 방산 비리) 국정조사 협의를 시작한다’는 조항이 여야 합의문에 삽입된 것은 우 원내대표의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식 은근과 끈기’가 발현된 결과로 평가된다. 지난 29일 정책의원총회에서 사자방이라는 말을 소개한 뒤 우 원내대표의 공개 발언 기회는 23차례 있었다. 사자방을 언급하지 않은 적은 3차례 뿐인데, 3차례 모두 사자방 발언이 미리 나와 우 원내대표가 언급을 자제한 경우다. 여당의 ‘무반응’에도 불구하고 우 원내대표의 언급이 이어지며 이제 사자방 국정조사 성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협상을 중시하되 시한이 되면 양보하는 우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야당 내에서 전폭적인 환영을 받는 분위기는 아니다. 당내에서는 예산안과 사자방 국정조사를 연계하지 않았거나 누리과정 순증액의 액수를 합의문에 명기하지 않은 것을 놓고 “너무 많은 카드를 양보했다”는 불만 기류도 있다. 여야 합의 내용을 설명하던 28일 의총에서도 “담뱃값 2000원은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됐고, 반발 수위가 높아질 기미가 보이자 박수로 여야 협상안을 추인하며 급하게 의총을 마무리 짓기도 했다. 담뱃세 인상 실무 합의를 담당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 의원 4명이 법안심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우 원내대표 측은 30일 “안행위 소위 입장도 이해한다”면서도 “예산부수법안이기 때문에 담뱃세는 예산안과 함께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공직 파워 열전] 행자부 지방재정세제실

    [공직 파워 열전] 행자부 지방재정세제실

    지난해 초 재난안전관리 총괄 부처라는 명목으로 조직이 커진 안전행정부가 2년도 안 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자치부로 회귀했다. 하지만 안행부 출범 당시 지방재정세제국에서 확대된 지방재정세제실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됐다. 지방세와 지방재정 관련 정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특히 국고보조사업 확대에 따른 중앙과 지방 간 재정갈등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악화에 대응하는 핵심 정책 부서라는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방재정세제실은 1998년 행자부 출범 이후 지방재정세제국으로 있다가 지난해 안행부 출범과 함께 지방재정세제실로 확대됐다. 핵심 업무만 해도 지방재정정책을 총괄, 조정하고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등 국가와 지자체 간 재원배분과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등 폭이 넓다. 지방세와 지자체 세외수입 정책도 총괄한다. 도로명 주소 사업도 소관 업무 중 하나다. 하나같이 지자체 운영과 직결되는 핵심 사업들이다. 지방세법과 지방재정법, 지방계약법 등 담당 업무와 직결되는 곳만 해도 243개 지자체와 500개에 가까운 지방공기업, 540개나 되는 지방 출자·출연기관 등 1000곳이 훨씬 넘는다. 한마디로 ‘바람 잘 날 없는’ 부서인 셈이다. 담당하는 업무를 생각하면 ‘2관 9과 132명 정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업무량 자체가 많은 데다 요즘같이 국회 예산안 심사 기간에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지경이라고 한다. 지난해 4월부터 재임 중인 이주석 실장은 재정정책과장과 지방재정세제국장 등을 거친 지방재정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지난해부터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지방세 발전 방안을 준비해 왔고 최근 지방세법 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자체의 재정 규율을 강화하는 정책 역시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준비 과정에서 “욕 먹을 일은 내 임기 동안에 하겠다”는 말을 자주 하며 직원들을 독려하는 뚝심을 과시했다. 역대 지방재정세제실장 중에는 이처럼 뚝심과 ‘전투력’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지자체는 물론 기획재정부와의 업무 조율 과정에서 정책경쟁과 논쟁이 잦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초대 지방재정세제국장이었던 이삼걸 전 국장은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 도입을 두고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기재부와 격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원세훈 장관이 “이 국장, 좀 살살하세요”라고 말렸을 정도다. 정재근 행자부 차관은 지방재정세제국장과 기획조정실장, 지방행정실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방재정세제국장을 마친 뒤 충남부지사로 거론됐고 자녀들을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까지 시켰지만 당시 맹형규 장관이 강력하게 요청해 기조실장이 됐을 정도로 조직 내 신망이 두텁다. 현재 충북도 부지사로 일하고 있는 정정순 전 지방재정세제국장은 1993년 정태수 내무부 지방재정국장 이후 20년 만에 나온 고졸, 비고시 출신 국장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노병찬 전 국장은 성실함과 깍듯한 태도로 동료들에게 신망을 얻은 대표적인 ‘믿을 맨’이다. 재정 분야를 처음 맡고는 종이 수십장에 깨알같이 지방재정 관련 사항들을 메모해 갖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읽고 업무를 파악했다는 얘기는 지금도 행자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솔그룹] ‘현장형’ 선우영석 2인자… ‘소통형’ 이상훈 뚝심 돋보여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솔그룹] ‘현장형’ 선우영석 2인자… ‘소통형’ 이상훈 뚝심 돋보여

    한솔그룹의 2인자는 그룹 경영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경영인 선우영석(70) 부회장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1993년 한솔그룹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해외부문, 기획 등을 거친 삼성맨 출신이다. 선우 부회장은 삼성물산 시절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뉴욕지사 등에 근무하며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다. 그는 한솔그룹 설립 초창기 대외업무의 틀을 마련하고 시스템 구축을 주도했다. 그 결과 한솔제지는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지 4년이 되지 않은 1995년 국내 제지업체 최초로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5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선우 부회장은 전형적인 현장형 CEO로 꼽힌다. 조정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선우 부회장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솔제지가 외국계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출범시킨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 대표이사를 맡았다. 당시 각기 다른 입장과 문화를 가진 한솔, 노스케스코그, 아비티비 등 3개사 사이에서 탁월한 조정능력을 보였다. 한솔의 핵심사업을 맡고 있는 이상훈(62) 한솔제지 대표이사는 화학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LG케미컬, 한국바스프 화학·무역사업부문 사장, 태광산업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조동길 회장이 제지업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이 대표를 발탁한 것은 화학업계에서 그가 보인 탁월한 경영 능력과 꾸준한 뚝심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솔제지가 진행하고 있는 ‘행복나눔 115운동’의 아이디어를 직접 내기도 했다. 한 주에 한 번 착한 일을 나누고, 한 달에 한 권씩 좋은 책을 공유하고, 하루에 다섯 번 주위에 감사를 나누자는 운동이다. 한솔홈데코 고명호(62) 대표이사는 단국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인사부장을 맡았다. 한솔개발 영업·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을 거쳐 2009년부터 한솔홈데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고 대표는 특히 재계, 언론계 등 사회 전분야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방대한 인맥을 자랑한다. 한솔홈데코에 부임한 이후에는 3년간 적자였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한양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한솔케미칼 박원환(60) 대표이사는 정통 한솔맨이다. 평소 직원 복지 향상과 업무 환경 개선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안광일(56) 한솔개발 대표이사는 한솔의 리조트 사업 분야의 역사로 불린다. 한솔개발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솔개발에만 몸담아 왔다. 특히 ‘오크밸리의 작은 나무 한 그루까지도 그릴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로 리조트 사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민병규(59) 한솔로지스틱스 대표이사는 삼성그룹과 제일제당, CJ 등을 두루 거쳤다. 재계의 대표적인 물류통으로 알려진 민 대표는 대표를 맡은 직후 사명을 한솔CSN에서 한솔로지스틱스로 변경하는 등 회사 전반에 걸친 혁신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한솔그룹 경영기획실 이재희(51·부사장) 실장은 IMF 사태 이후 격동의 시절을 보낸 한솔그룹에서 조동길 회장을 꾸준히 보좌해 온 그룹의 실세로 평가된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식상한 듯 식상하지 않은 전쟁 영화

    식상한 듯 식상하지 않은 전쟁 영화

    전쟁 영화 소재의 대부분은 익히 우리가 아는 내용들이다. 전쟁의 참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 혹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 또는 가족애 등…. 하지만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퓨리’ 역시 기존 전쟁 영화의 코드를 지니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작품이다. ‘퓨리’는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더 가깝다. 통상 전쟁 영화는 실화 등 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화려한 전투신과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퓨리’는 2차 세계대전 전장을 일상의 공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쟁을 수단으로 썼을 따름이다. 오랜 시간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온 전장의 리더 워 대디(브래드 피트)에게는 한 대의 탱크 퓨리와 지칠 대로 지친 부대원 4명만 남아 있다. 하지만 그에게 또다시 최전선에서의 전투명령이 떨어진다. 영화는 최악의 조건에서 운명 공동체가 된 전차부대원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들에게 탱크 안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전쟁 같은 삶의 상징이다. 목숨처럼 여기는 탱크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들은 승산 없는 마지막 전쟁터로 향한다. 그 속에서 영화는 전쟁터에서 마주하는 불안감과 공포를 그린다. 한없이 순수했던 신병 노먼(로건 레먼)이 비정한 전쟁을 겪으며 점차 변해 가는 과정, 전쟁터에서도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심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 보려는 포수 바이블(샤이아 러버프) 등 부대원들의 고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전반부에는 이야기 전개가 더디고 다소 지루한 감도 있다. 하지만 실제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사용됐던 76㎜ 총포를 가진 셔먼탱크가 등장해 리얼리티를 살린 후반부 전투 장면은 상당히 짜임새 있게 전개돼 몰입도를 높인다. 15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한·중 FTA 타결] 윤 산자 실무진 같은 현장지휘… 우태희 실장 中 압박 ‘뚝심 견제’

    [한·중 FTA 타결] 윤 산자 실무진 같은 현장지휘… 우태희 실장 中 압박 ‘뚝심 견제’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과 왕셔우원 상무부 부장조리(차관급), 김영무 동아시아 FTA 추진기획단장과 쑨위앤 상무부 국제사 부사장(국장급),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과 가오후청 상무부장(장관급), 김재준 동아시아 FTA 협상담당관 등은 10년 2개월간 끌어오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종지부를 찍은 주역들이다. 우(52) 실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의 협상 대표단을 이끈 인물로 우리 측 수석대표로 빠짐없이 협상에 참여했다. 행정고시 27회로 상공자원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산업부 내에서도 ‘포커페이스’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과 탁월한 협상력으로 최고의 협상가라고 불린다. 배문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우 실장은 뉴욕총영사, 주미국 공사참사관, 통상협력정책관을 지내며 국제 감각을 익히고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2006년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 선임행정관을 지내며 한·미 FTA에도 관여했다. 원칙적이고 치밀한 성격으로 이번 협상에서도 중국의 거친 농산물 개방 압박에 양보하지 않고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는 뚝심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50) 단장은 외무고시(22회)를 패스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경기고와 연세대 정치학과를 졸업해 외교부 동북아 통상과장, FTA정책국장, FTA교섭국장을 거쳐 현재 산업부 FTA교섭관으로 ‘통상’이 주특기다. FTA를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김 단장은 김 담당관과 함께 물밑에서 협상을 우리 안대로 끌어오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윤(58) 장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오(63) 상무부장과 수시로 만나 FTA 협상을 유도하고 실무진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협상 실무를 직접 챙기며 막판 장관급 회담에서 상품 분야 일괄타결을 위해 정상회담 직전까지 정무적인 결단력을 보여줬다. 행시 25회로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FTA 공식 회의가 있을 때마다 우 실장과 김 단장에게 긴밀하게 지침을 주고받으며 손발을 맞췄다는 후문이다. 가오 부장은 베이징 제2외국어학원 서유럽어과를 나와 대외무역 경제협력부 부장조리, 상무부 부부장 겸 국제무역협상 대표, 국제무역협상대표를 거쳐 상무부장(제18기 공산당 중앙위원)에 오를 만큼 통상 분야에 잔뼈가 굵다. 윤 장관과는 30개월간 치열한 협상 속에 상대 속을 훤히 들여다볼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전언이다. 왕 부장조리는 지난해 11월부터 협상 대표단을 이끌며 FTA 협상을 주도해왔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리더는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 이겨내야”

    “리더는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 이겨내야”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한화 이글스 신임 감독이 7일 청와대 특강에서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을 이겨야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어떤 지도자가 조직을 강하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청와대 직원 25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섰다. 김 감독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하는 것 자체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며 내가 욕을 먹더라도 내 뒤의 사람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어 “비난에 대해 해명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이며 자기 길을 가야 한다”면서 “위에 선 사람이 ‘이 일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안 되고, 뚝심 있게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협 없는 지도 철학으로 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지장’(智將)으로 유명한 김 감독은 가혹해 보일 정도로 혹독한 선수 조련 과정을 설명하며 “비정함 자체가 애정에서 나오는 감정인데, 지금 사회에서는 비정함이 부족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센 사람”이라면서 “어려운 시기에 이 자리(청와대)에 계신데 파이팅해 주시기 바란다”고 덕담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아내바라기 강 회장… 큰 사위는 차관보, 아들 절친은 정의선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넥센] 아내바라기 강 회장… 큰 사위는 차관보, 아들 절친은 정의선

    넥센은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가 됐지만 넥센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 강병중(75) 넥센타이어 회장의 가족만큼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강 회장은 1966년 9월 동아대를 졸업한 뒤 김양자(72)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경남 진주 이반성면 길성리에 살았던 집안 어르신들이 사돈 맺기를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부부는 동아대 동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동아대 법학과(17기), 아내는 동아대 화학과를 나왔다. 부인 김씨의 부친이 4형제 중 둘째였는데 형제들이 모두 일본에 건너가 성공을 거뒀었다. 장인은 귀국해 정미소도 하고 논밭도 사들여 부자가 됐다. 부인 김씨는 삼촌 두 분이 고향에 세운 이반성중학교에서 학교를 관리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처가 덕을 톡톡히 보며 사업의 시작과 밑천을 마련했던 강 회장은 아내 없이는 못 사는 공처가다. 측근들에 따르면 강 회장은 애정 표현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6년 전 유방암에 걸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강 회장은 매주 비행기로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르내리며 간병했다. 온천이 피로 회복에 좋다고 해서 부산 동래구에 있는 이름난 H온천장에 회원권을 끊어 거의 매일 아내와 함께 목욕을 하며 지극 정성으로 기분을 풀어줬다는 전언이다. 강 회장의 노력 덕분인지 김 전 감사는 지금 병이 완치된 상태다. 강 회장은 아내를 위해 핑크리본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골프장도 같이 다닌다. 주로 가는 곳은 경남 김해 가야 컨트리클럽 골프장이다. 강 회장 내외의 골프 실력은 95타 정도. 부부 실력이 비슷해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자주 같이 친다고 한다. 두 부부는 불심이 깊기도 하다. 강 회장 부부는 아들 호찬(43)과 신영(49), 소영(46) 등 두 딸을 뒀다. 큰딸 신영씨의 배우자는 행정고시(28회) 출신인 정은보(53) 기획재정부 차관보다. 대일고-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정 차관보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재직 때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새 정부 금융정책의 밑그림 구상에 참여했다. 2011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으로 있을 때 관치 논란이 일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소신파로 유명하다. 신영씨와 정 차관보는 지난해 34억 6389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19억여원 상당의 건물과 예금 자산만 14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재원(23)양이 있다. 넥센타이어를 이끌고 가는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은 홍콩에서 활동했던 국제변호사 출신 아내와 2008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다. 강 회장은 8년간 경영수업을 시켰던 외아들을 2009년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사장에 임명하면서 후계 구도 작업을 본격화했다. 2012년 말에는 넥센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아들에게 최대주주 자리를 내주며 재산 승계도 이뤄졌다. 당시 강 사장이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12%였던 넥센 지분율을 50% 이상 끌어올리자 세금을 회피한 꼼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재 넥센타이어와 넥센테크의 최대주주인 넥센은 강 사장이 50.51%, 강 회장 7.4%, 김 전 감사는 2.38%로 오너 일가가 60.27%를 차지하고 있다. 넥센타이어는 65.33%, 넥센테크는 73.61%, KNN은 60.29%가 오너 일가의 주식이다. 부산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강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강 사장이 2007년 해체된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껴안은 넥센 히어로즈의 후원자라서 더욱 친해졌다고도 한다. 실제 넥센타이어는 완성차업체인 현대차에 타이어를 대량 납품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다. 강 회장의 차녀 소영씨는 2005년 의사와 결혼했지만 5년 뒤 이혼했다. 강 회장의 친척으로는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 강호동씨가 있다. 강호동은 강 회장의 사촌인 강태중씨의 아들로 5촌 관계다. 강 회장은 “아버지가 4형제였는데 그중 막내 삼촌이 호동이 할아버지며 호동이하고 저는 5촌 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호동은 명절 때마다 강 회장과 만나 함께 성묘하러 가는 사이다. 강 회장의 최측근은 9촌 조카인 강호기 KNN(부산·경남 방송) 문화재단 이사다. 강 이사는 KNN 방송 회장인 강 회장의 곁을 항상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다. 강 회장이 넥센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데는 전문 경영인 3명의 도움이 컸다. 1999년부터 5년간 넥센타이어를 끌어온 이규상(66) 전 부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국내 기업들이 외면했던 넥센타이어의 전신, 우성타이어 인수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의 이 전 부회장은 우성타이어의 법정관리를 조기 종결해 경영정상화 기틀을 닦았다. 2000년 넥센타이어로 사명을 바꾸고 초고성능(UHP) 타이어사업을 추진해 현재 고수익 사업구조의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바통을 넘겨받은 홍종만(71) 전 부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삼성자동차와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이사 출신이다. 중국 칭다오에 첫 해외 공장을 건설하면서 세계시장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듬해 영업이익 16.3%를 기록하는 등 뚝심 있는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야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후원을 시작한 2010년 부임한 이현봉(65) 현 부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삼성전자 스페인법인장 및 생활가전 총괄사장을 맡은 경력으로 회사의 해외 판로 개척에 큰 공을 세웠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서울반도체] LED 특허만 1만여건 ‘독보적’… 글로벌 시장 점유율 5.3%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특허수 1만여건. 서울반도체를 정의하는 건 압도적인 LED 관련 특허수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는 초기부터 “자체 기술로 넘기 힘든 특허 장벽을 구축하자”고 거듭 강조해 왔다. 기술 개발 시작 단계부터 원천기술 확보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서울반도체는 1987년 3월 미국계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세운 회사다. 1992년 이 대표가 서울반도체를 인수했고 2002년 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초기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동작표시등을 주로 생산해 왔던 서울반도체는 디스플레이 광원용 LED에 손을 대더니 2006년 컨버터(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부품) 없이도 교류에서 구동 가능한 LED ‘아크리치’ 양산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였다. 1991년 10억원이던 매출액은 15년 만인 2006년 1838억원을 돌파했다. 2007년 말에는 매출이 2500억원을 넘었고, 지난해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LED 국내 기업 중에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기록했다. 서울반도체는 직원수 980명, 서울바이오시스, 광명반도체유한공사 등 계열사 13개를 거느린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LED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3%에 달한다. 독일 오스람, 네덜란드 필립스와 특허 공유 계약을 맺은 유일한 국내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마다 발휘됐던 건 이 대표의 뚝심이었다. 2006년 서울반도체는 일본 니치아화학공업과의 소송전에 휘말리는데, 이 대표는 세계 LED 1위 기업 니치아화학공업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당시 니치아는 서울반도체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고객사들은 소송 결과를 보고 주문하겠다며 돌아섰다. 모두가 만류했다. 라이선스비를 주고 출혈을 피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동안 쌓아왔던 특허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3년간의 공방 끝에, 결과는 ‘상호 특허 사용’.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사실상 다윗이었던 이 대표가 승리한 셈이다. 2011년 LED TV 공급 과잉으로 LED 시장에 정체기가 왔을 때도 이 대표는 주력 제품을 디스플레이 소재에서 조명으로 전환해 멈출 줄 모르는 성장세를 이룩했다. 다만 올해 2분기 원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실적이 주춤했다. 1분기 229억원의 영업이익은 13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이 대표의 지분가치도 지난 3월 2일 기준 4480억원에서 2252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업계는 1만여건의 특허가 있는 서울반도체의 경쟁력이 LED 조명 시장에서 또 다른 반전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8)서울반도체] 특허소송때 담배 끊고 1년여 머리도 안자른 ‘집념의 승부사’

    [재계 인맥 대해부 신흥기업 (8)서울반도체] 특허소송때 담배 끊고 1년여 머리도 안자른 ‘집념의 승부사’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이정훈(61) 서울반도체 대표가 대학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던 말이다. 이 대표의 부모는 그가 학업에 소홀하다 싶으면 “공부를 그렇게 허투루하다가 사회에 나오면 세상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로지 등산 동아리에만 심취해 했던 이 대표가 발광다이오드(LED) 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데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자세한 가정사 등을 일절 공개한 바 없는 이 대표의 가맥과 인맥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1953년 경기 광명에서 나고 자란 그는 광명에서 알아주는 만석꾼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어머니 고 박순여씨는 그를 끔찍이 아꼈는데, 서울반도체 인수 당시 “조그마한 구멍가게 인수해서 뭐하러 고생하느냐”고 말했다는 일화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2001년 5월 암으로 작고했다. 이 대표는 고려대 물리학과 71학번이다. 1975년부터 2년간 ROTC로 복무한 뒤 1979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다. 1981년 제일정밀공업 과장으로 입사해 회사 경험을 쌓다 1983년 오클라호마대 MBA 대학원에 진학했다. 1985년에는 둘째 형인 이정인(65)씨가 운영했던 삼신전기 임원으로 합류한다. 당시 삼신전기는 자동차부품업체를 생산했던 중소기업으로 액정식 계기판과 히터컨트롤박스 오염방지 장치 등을 생산했다. 이 대표는 삼신전기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영업부터 기술 연구 부문까지 전 영역에서 경영 감각을 키웠다. 정인씨는 1987년 회사 경영권을 현 삼신이노텍 김석기씨에게 넘겼고, 1991년까지 부사장으로 있던 이 대표는 1992년 눈여겨보던 서울반도체를 인수했다. 3남 2녀 가운데 막내인 이 대표의 첫째 누나 이정자(76)씨는 노창희(76) 전경련 고문과 결혼했다. 노 고문은 전 유엔대사를 지낸 인물로 이 인연은 농심가까지 연결된다. 노 고문은 노홍희 신명전기 전 사장의 아들로 신격호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도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신춘호 회장의 3남 동익씨(농심유통계열사 메가마트 부회장)가 바로 노재경씨와 결혼했는데 재경씨는 노 고문의 조카다. 정자씨와 노 고문 사이에는 노재령(51·여) 국립현대미술관후원회 상임이사, 노재호(48)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가 있다. 첫째 형인 이정환(67)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국내 대표적인 농업경제학계의 학자가 됐다. 1946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홋카이도대학원에서 농업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농촌 경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했다. 2005년 연구원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정환씨는 민간 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농업 통상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미FTA 자원위원회 위원, 농업농촌 특별 대책 위원회 통상협의회 의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둘째 누나인 고 이정신은 수필 문학가로, 전 감리교 전국여선교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3월 작고한 정신씨의 남편 천광남씨는 고층 비상탈출 장치로 1984년 제네바 국제 발명 신기술 전시회에 참가할 정도로 주목받았던 엔지니어다. 컨베텍 기술 고문을 지냈다. 경기 안성에서 중앙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천승희씨가 장남, ‘언플러그드 보이’ 등 독특한 화법으로 신선한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만화가 천계영(45·여)씨가 정신씨의 차녀다. 이 대표는 카리스마 넘치는 화법과 치밀한 경영 스타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지금도 영업 전방에서 왕성하게 뛰고 있다. 호방한 성격으로 전형적인 리더라는 평이 많지만 실제로는 조용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기술개발과 경영을 두루 섭렵한 그는 한번 마음먹은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성격이다. 기업설명회(IR) 등에서 다양한 국가의 LED 산업에 관한 질문에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시한다. 일벌레로도 유명한데 명절에도 회사에 나와 근무를 하는 등 일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세계 5개 법인, 40개 대리점을 챙기느라 분주한 그는 직원과 소통하는 데도 열심이다. 분기별로 임직원과의 토크쇼를 열고, 패밀리 데이 등 직원들의 가족까지 살뜰히 챙기는 따뜻한 리더다. 한번은 임직원 수십 명에게 자비로 주식을 사서 나눠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대표의 영업성공률은 80~90%로 비즈니스 영업의 귀재”라면서 “비즈니스 정도와 예절에 능숙하다. 매우 세련됐다”고 평했다. 또 “일에서만큼은 엄격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데도 탁월하다”면서 “한번 본 사람은 이 대표의 열정과 씀씀이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에서도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임원들이 부진하다 싶으면 특단의 조치도 내린다. 아예 회의를 시작부터 끝까지 서서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집도 세다. 실적이 부진했던 2007년에는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 이 대표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이발소를 찾지 않았다. 이때가 바로 세계 1위 LED 기업인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으로부터 특허 관련 소송을 당했을 때다. 애연가였던 이 대표가 담배를 끊었던 때도 이쯤이다. 건강해야 잘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대표는 결국 골리앗이었던 니치아화학공업을 이겼다. 호시탐탐 LED 연구인력을 빼가려는 대기업과 맞선 것도 이 대표의 뚝심이 컸다. 연매출 1000억원 때부터 그는 대기업들과 ‘부정경쟁방지법’을 근거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 “인맥은 거의 없지 않나”라고 말하지만 그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이채욱 CJ그룹 부회장 등 거물급 인사와 친분이 남다르다. 이 중 한 전 총리는 서울반도체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데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서도 각각 장관 자리에 올라 정·관계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이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한 전 총리를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국무총리 시절 녹색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고효율 친환경 LED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반도체와 통한다. 이채욱 부회장은 GE코리아 사장과 GE아태지역 헬스케어사업을 총괄하는 GE아시아성장시장 총괄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 부회장도 과거 서울반도체 사외이사를 지냈다. 제일기획 대표이사, 삼성물산 사장 등을 거쳐 야후 코리아 경영고문을 지낸 신세길 서울반도체 회장도 이 대표가 어려울 때마다 조언을 얻는 최측근이다. 신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2002년 서울반도체 회장으로 부임했다. 이 대표는 알아주는 등산광이다. 부인 김재진(60)씨도 대학교 등산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났다. 슬하에는 아들 민호(34)씨와 딸 민규(27)씨가 있다. 그는 엄격한 자식 교육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인생은 드로잉’이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가르친다고 한다. ‘인생은 다시 지우고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려간다’는 말로 신중하게 첫 단추를 잘 끼우고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구본무 뚝심… LG에 ‘융복합 DNA’ 심다

    구본무 뚝심… LG에 ‘융복합 DNA’ 심다

    LG그룹이 23일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의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갔다. 2020년 완공 때까지 사업비 4조원이 투입되는 이 연구단지는 앞으로 LG전자·화학·생명과학·유플러스 등 10개 계열사 공동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연면적 111만여㎡) 부지에 건설되며 연구시설 18개 동이 들어선다. 연면적 기준으로 LG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존 연구소인 LG전자 서초 R&D 캠퍼스의 약 9배, 그룹 본사 사옥인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2배 크기이다. 2017년 1단계 공사 준공 이후 계열사 입주가 시작될 예정으로 2020년 완공되면 전자·화학·통신과 에너지·바이오 분야의 연구인력 2만 5000여명이 일하게 된다. 또 융·복합 연구 기반의 제품·서비스 개발과 시장 발굴로 연간 고용창출 약 9만명, 생산유발 약 24조원의 경제효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LG그룹은 전망했다. 기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또 구본무 LG 회장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 LG 최고경영진도 자리를 함께했다. LG그룹이 연구단지에 파격적인 투자를 한 배경에는 하나의 기술·산업만으로는 격변하는 시장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구 회장이 기공식에서 “시장을 선도하려면 핵심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을 융·복합해 차별적인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런 고민을 반영한다. 구 회장은 지난해 9월 임원세미나에서도 “융·복합 정보기술(IT) 역량에 틀을 깨는 창의력으로 시장의 판을 흔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2020년 완공되는 LG사이언스파크는 계열사 공통의 5~10년 단위 중장기 연구과제를 맡아 LG그룹의 차세대 캐시카우(주 수익원)의 바탕이 될 원천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지금 계열사 소속 30여곳의 연구기관들은 단기 연구과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LG사이언스파크는 전자부터 화학, 통신, 에너지, 바이오까지 아우르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융·복합 연구단지다. 삼성그룹이 1986년 종합기술원을 만들어 삼성전자·SDI·제일모직·정밀화학 등 계열사의 소재 연구를 하도록 했지만 대상 분야가 이번 LG사이언스파크에는 못 미친다. 해외의 기업 간 융·복합 연구단지로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첨단 연구단지 등을 꼽을 수 있지만 한 그룹 내 계열사들이 이런 규모의 융·복합 연구를 하는 사례는 없다. 융·복합 연구란 예를 들어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영역의 기술이 만나 새로운 기술을 만들거나 하나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는 ‘A+B=C나 A+B=A+’ 형태의 연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 분야 바이러스 유전자 조작기술이 화학 분야 금속코팅기술을 만나 충전 효율을 높이는 ‘2차전지 양극 소재 기술’이 될 수 있다. LG그룹은 LG사이언스파크가 서울에 있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 국내외 우수 인력 확보에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정부의 혁신도시 계획에 따라 지난해부터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고 아직 다른 대기업들도 서울에 이렇다 할 연구기관을 세우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서초구 우면동에 1만명 규모의 연구개발(R&D)센터(내년 5월 완공)를 짓는 것도 우수 연구인력 확보 차원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