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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이는 아련했던 첫사랑을 다시 찾을 것이고, 어린시절 꿈을 이루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1주일 전으로 돌아가 로또를 산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할 수도 있겠다.  2010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21~25일) 국제디지털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세운상가 블루스’(지정환 그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는 가정을 기초로 한, 스크롤만화다. 스크롤만화는 인터넷 환경에 맞춰 ‘페이지 스크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감상하게 만든 작품을 뜻한다.  ‘세운상가 블루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서울 종로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청춘을 바친 늙은 기술자. 한때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 곳에서 주인공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은 기술과 추억이 녹아있는 가게를 정리하면서 옛날에 발명하다가 그만둔 타임머신을 다시 찾아낸다. ‘뚝딱뚝딱’ 타임머신의 개발은 쉽게 이뤄진다. 과학적 원리나 복잡한 이론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발명한 뒤 주인공이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시험운행을 마친 주인공이 두번째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교통사고로 일찍 사별한 부인이다.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게 평생 한이 됐던 터였다.  “그동안 미안했어. 고마웠고 조만간 다시보세.”  다시 만나고도 그저 무심한 듯, 부인이 가장 좋아했던 귤과 함께 애처롭게 건넨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 하지만 가슴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역사를 바꿀 수 없는 방관자로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돌아오면 결국 후회만 더 늘어가는구나.”  결국 주인공은 인생을 다시 살기로 결정하고 태어난 날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을 가동시킨다. 과연 늙은 기술자는 시간터널을 거슬러 원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발명한 기술자와 치매 걸린 노인, 그 기술자의 타임머신과 현실에 남아있는 평범한 고무 대야, 애지중지 모아놨던 타임머신의 부품들과 낡은 고철덩어리, 귤은 건네 받은 그의 부인과 며느리. 작가는 이런 단서들을 교차시키면서 만화의 종국에 물음을 던진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마지막 착각도 부질없는 것일까.”라는.  묘한 여운과 함께 또다른 화두를 던져볼 수도 있겠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입니까.”라고….  글·사진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세운상가 블루스’ 보러가기
  •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승희는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장승을 보면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쑤였습니다.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장승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알게 되고, 탈춤도 배우고, 우리 문화재에 대해 배우면서 장승에 대해서도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는 속리산이 가까운 외딴 산골에서 장승을 만들고 있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장승과 더불어 살아온 장승장이입니다. 외할아버지는 그곳에 장승을 100개도 넘게 만들어 장승공원을 꾸며 놓았습니다. 장승공원에 가면 갖가지 장승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도깨비처럼 험상궂게 생긴 장승도 있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도 많습니다. 우락부락한 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장승이 있는가 하면 시골 할아버지처럼 순하고 어눌해 보이는 장승도 있습니다. 이름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진서대장군, 북장군, 당장군 등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승희에게는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에게는 장승이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산길을 가다 폭풍우에 쓰러진 나무나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나무들을 보면 할아버지의 눈에 생기가 돕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는 게야. 내가 그것을 증명해주지.” 할아버지는 죽은 나무들을 알맞게 잘라 보물처럼 조심조심 옮겨옵니다. 그러고는 톱과 대패, 망치와 끌을 들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합니다. 쓱싹쓱싹 대패질 소리가 나고,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리고, 쩌억쩌억 끌 소리가 들리면 죽은 고목나무는 살아 있는 장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승희를 데리고 국립 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마당에는 꼴도 보기 싫은 장승 부부가 우두커니 서서 헤벌쭉 웃고 있었습니다. “승희야, 저 장승할아버지 앞에 가서 서 봐. 사진 한 장 찍어 줄게.” “싫어. 내가 사진 찍기 싫어하는 것 엄마도 알잖아요.” 승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엄마는 승희에게 사진기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라도 한 장 찍어주렴!” 엄마의 두 눈에는 늦가을 바람결 같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승희는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장승과 함께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주었습니다. 엄마가 승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승희야, 지금도 외할아버지가 싫니?” 승희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승희가 입을 열었습니다. “난 그냥 외할아버지는 좋은데, 장승 만드는 외할아버지는 싫었어. 외할아버지는 산신령이야. 긴 머리채를 묶은 채 한복을 입고 장승을 만드는 할아버지는 더욱 싫어.” 승희의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 놓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화를 낼 줄 알았던 엄마의 얼굴에 가을 햇살 같은 웃음이 흘렀습니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런 외할아버지가 무척 싫었단다. 망나니처럼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나무망치와 끌로 장승 깎는 일에만 골몰하는 할아버지가 왜 그리 싫었는지 몰라. 외할아버지는 장승을 만들 때면 늘 목욕을 한 후 한복을 차려입고 일을 했지. 머리라도 짧게 깎았더라면 땀도 덜 흘렸을 텐데…. 비오듯 흘려대던 그 땀 냄새도 무척이나 싫었어.”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그리운지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승희는 엄마와 함께 광화문 광장을 찾았습니다. 새로 꾸민 광장을 구경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장이 뭔가 좀 허전하지 않니? 그곳에 장승을 세워 놓으면 어떨까?” 엄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말했습니다. “엄만, 누가 외할아버지 딸 아니랄까봐 장승 타령이에요?” 승희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습니다. 동작역을 지나 이수역에서 다시 7호선 열차로 갈아탔습니다.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열차 노선안내도를 보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승희야, 오랜만에 엄마가 살던 골목에 한 번 가볼까?” “엄마 마음대로 해.” 승희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 정차할 역은 장승배기, 장승배기역입니다.” “승희야, 이번 역에서 내리자.”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자 엄마는 승희의 손을 잡고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 살던 곳이 장승배기였어?” “그래, 엄마 어렸을 땐 동네에 커다란 장승이 우뚝 서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습니다. 개찰구를 빠져 나온 엄마는 어느 쪽으로 나갈까 망설이다가 역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나가면 장승을 볼 수 있을까요?” 역무원은 승희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오른 쪽 6번 출구로 나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부신 하늘이 반겨주었습니다. 승희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승희도 뚤레뚤레 주변을 둘러보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장승이 어디 있어? 그 아저씨가 잘 못 알려줬나?” 엄마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때 승희의 눈에 장승 한 쌍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엄마 저기 있어. 도서관 입구에 서 있잖아.” 먼 발치 도서관 입구에 농구 선수만큼 큰 장승 부부가 헤벌쭉 있었습니다. “애걔, 너무 작다. 기왕에 세워 놓으려면 좀 더 큰 장승을 세워놓지 않고….” 승희는 엄마의 얼굴에서 승희가 전교부회장 선거에서 두 표차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였던 섭섭한 표정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가까이에 가서 한번 보고가요, 엄마.” 승희가 먼저 엄마의 손을 끌었습니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승희가 장승에 쓰여 있는 한문 글씨를 읽었습니다. “우리 승희 한문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장승배기 이름에 걸맞은 좀더 우람한 장승을 세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다시 한 번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승희는 장승 앞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장승배기는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면서 쉬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은 인가도 없고 행인마저 적었는데 정조가 장승을 만들어 세우라고 지시한 이후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덩치 큰 장승들이 제법 많이 서 있었는데, 이젠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구나.” 엄마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없어진 거야?” “도로를 넓힌다, 지하철 공사를 한다, 재개발한다 하면서 마구 없애버린 거지.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뽑아버린 경우도 있고….” “엄마, 진짜 장승을 보려면 외할아버지를 찾아가면 되잖아요.” “그래,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엄마의 눈빛이 능소화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엄마, 그럼 이번 토요휴업일에 꼭 다녀와요.” “장승이라면 무섭다고 까무라치던 네가 웬일이니?” “엄마, 장승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이고 서민적인 민속문화재래요,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웠어요.” 승희의 목소리에서 외할아버지의 팔뚝 같은 힘이 묻어났습니다. 승희는 토요휴업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속리산 부근에 있는 장승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승희 외할아버지가 30여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가꿔 놓은 곳입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벌개미취,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초가을 들꽃들이 승희네를 반겨 주었습니다. 수크령과 억새꽃도 어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공원에는 수많은 장승들이 다양한 몸짓과 재미있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엄마가 저녁밥을 준비할 동안 승희는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장승들에게 승희의 눈길이 오래오래 머뭅니다. 턱이 유난히 긴 ‘주걱턱장승’, 이가 다 빠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장승’, 전통혼례를 올리는 ‘신랑 각시장승’, 하나의 나무에 각기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한몸장승’, 얼굴이 꼭 닮은 ‘쌍둥이장승’, 수줍은 듯 기둥 뒤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처녀장승’ 등 앙증맞은 장승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장승 외에도 높다란 장대 위에 나무새를 앉힌 솟대도 서 있고, 나무로 지은 정자도 여러 채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복을 차려입은 외할아버지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여러 장승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어서 정다운 느낌이 들어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구절초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우리 승희가 이제 다 컸구나. 어렸을 때엔 장승을 보고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리던 애가 정다운 느낌이 든다니….” “제가 언제 울었어요?” 승희는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시치미를 떼었습니다. 조금 머쓱해진 승희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우리 조상들은 왜 장승을 세웠나요?” “장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서서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던 사람들의 친구였단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꿋꿋이 견디며 경계표나 이정표로,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했지. 사람들은 때로 장승을 찾아와 개인의 소원을 빌기도 했단다. 장승은 이렇게 정다운 친구로, 때로는 수호신이나 믿음의 대상으로 우리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고마운 존재란다.” “할아버지, 어떤 장승은 아주 험상궂게 생겨 무섭기도 해요.”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의 장승은 수호신의 역할을 한단다. 잡귀와 재앙을 막아 내려면 무서운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나 지금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정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장승을 만들지.” “그래서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이 많군요.” “그래, 장승은 못 생기면 못생길수록 정감이 가고 재미있단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맞아요. 할아버지. 제가 장승을 좋아하게 된 것도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장승들을 보고나서부터거든요.” “이제 우리 승희와 대화가 통하니 이 할애비는 참 기쁘구나.” “할아버지 이제부터 제가 장승홍보대사가 될 거예요. 친구들이 제 별명을 ”장승“이라고 부르면 활짝 웃을 거구요.” “승희야, 고맙다. 역시 넌 내 손녀야.” 할아버지는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승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승희는 할아버지 얼굴이 가을 언덕배기에 줄지어 핀 해바라기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가의 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이다. 한때 우상숭배라는 미명 아래 장승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후손에 물려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 약력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꿈꾸는 대나무)▲새벗문학상 장편동화 당선(원숭이 마카카)▲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동화집:개미가 된 아이, 원숭이 마카카 등 50여권▲현재, 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 ‘뚝딱뚝딱’ 국회는 通法府?

    ‘뚝딱뚝딱’ 국회는 通法府?

    18대 국회가 잇단 파행 운영과 예산안 및 법안의 졸속 처리로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한나라당은 114개 중점 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야당과의 협상 시한인 25일 이후에는 휴일을 포함하더라도 연말까지 남은 시간이 엿새에 불과하다.법안의 졸속 심사·처리가 불을 보듯 뻔하다.앞서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헌법이 정한 시한을 넘겨 단 7일만에 부실 심사해 비판을 샀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상임위,법사위,본회의의 3단계 법률안 심사과정을 거치게 된다.상임위에 법안이 회부되면 일부 개정법은 15일,전부 개정법과 제정법은 20일이 지나야 의사일정으로 상정할 수 있다. 상임위에서 법안 심사가 끝나면 법제사법위의 체계·자구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한나라당의 계획대로 연내 법안을 처리하려면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은 고사하고,물리적으로 제대로 된 심사 절차조차 밟기 어렵다. 24일 현재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은 법안도 수두룩하다.정무위의 은행법(산업자본의 시중은행 보유가능 지분 4%→10%)·금융지주회사법(금산분리 완화)·산업은행법(산업은행 민영화),행정안전위의 집회및시위법(시위시 마스크 착용 금지),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신문방송법(신문·방송겸업허용)·정보통신망법(사이버 모욕죄 신설),법사위의 통신비밀보호법(휴대전화 제한적 감청 허용),정보위의 국가정보원법(국정원 업무범위 확대) 등 여야간 이견이 첨예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국회법은 의원이 법률안을 검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하고 나아가 졸속 입법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사유로 상임위의 의결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각각 상임위(15~20일)와 법사위(5일)에서 상정·제안 기간을 거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상정 이전에 전문위원들이 검토하기 때문에 부실 심사가 아니라고 여야가 종종 변명하는데,이는 예산과 법안 심사라는 의원 본연의 기능을 부정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의원들이 1인 보스에 종속되어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정치 문화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현재의 국회 상황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등 입법부가 행정부의 시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면서 “당·정분리,상임위 위주의 국회활동 등 여러 대안이 나오지만 입법부가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월드이슈] 워싱턴 ‘솔라 데카슬론’ 현장을 가다

    [월드이슈] 워싱턴 ‘솔라 데카슬론’ 현장을 가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의회 의사당과 워싱턴기념비 사이의 넓은 잔디광장인 ‘내셔널 몰’에 이달 초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뚝딱뚝딱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하는 태양광, 태양열 주택들의 경연 행사인 ‘솔라 데카슬론(Solar Decathlon·태양 10종 경기)’이 시작된 것이다. 2002년과 2005년에 이어 세번째 열린 올해 솔라 데카슬론에 참가한 대학은 수많은 신청 대학 가운데 선정된 20개 대학.1차 및 2차 대회 우승팀인 콜로라도대를 비롯한 매사추세츠공대(MIT), 코넬대, 텍사스대, 카네기멜런대, 조지아공대 등 미국의 대학이 16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태양 에너지 연구 및 실용화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나라로 꼽히는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담스타트공대와 마드리드대가 각각 참가했다. 또 캐나다의 몬트리올대, 푸에르토리코의 푸에르토리코대도 함께 경연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참가한 대학이 없었다. 12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독일의 담스타트공대가 차지했다. ●태양전지로 한밤중에도 밝은 조명 담스타트공대의 태양광 주택은 10개의 경쟁 분야 가운데 건축과 조명, 엔지니어링 세 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담스타트공대의 태양광 주택은 겉에서 보기에는 태양광 주택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참나무와 유리로만 건축된 외관 안에 솔라 패널(태양전지판) 등 관련 시설이 모두 숨어 있는 것이다. 또 이 주택의 조명은 한밤중에 가장 밝은 빛을 발휘했다고 심사팀은 밝혔다. 이와 함께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이 팀의 주택이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주택과 결합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고 심사팀은 평가했다. 이같은 엔지니어링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솔라 패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디자인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심사팀은 이 주택이 “모든 면에서 태양광 주택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담스타트공대 팀의 리더인 한스 유르겐 프레멜은 “21세기에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싶었다.”고 참가 이유를 설명하면서 “태양 에너지 분야는 독일이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독일 담스타트공대 우승 2위는 중간평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가 막판에 담스타트공대에 밀린 메릴랜드대학이 차지했다. 메릴랜드대 팀은 자신들이 만든 태양광 주택에 ‘LEAF House’라는 브랜드까지 붙여가지고 나왔다.LEAF는 풀잎을 뜻하기도 하지만 Lead Everyone to Abundant Future(모든 이에게 풍요한 미래를)라는 뜻도 담고 있다. 브랜드 이름에 걸맞게 리프 하우스의 벽은 풀잎으로 장식돼 있다. 주택이나 건물 옥상에 풀을 심어 정원으로 가꾸는 것은 이미 상용화되어 있지만 주택의 벽에 풀을 심는 것은 실험적인 시도였다. 메릴랜드 대학 팀의 브리트니 윌리엄스(건축학과 대학원)는 “지붕에 내린 빗물을 모아 벽으로 흘러내리는 장치를 부착, 풀에 물을 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벽에 풀이 있으면, 여름에 햇볕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풀이 죽기 때문에 태양열이 그대로 벽으로 흡수된다.”고 말했다. 리프 하우스는 에어컨 시스템에서도 획기적인 혁신을 이뤄냈다. 냉매 대신 칼슘 클로라이드라는 물질을 사용해 전기를 절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내의 습기까지 제거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메릴랜드 대학 팀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주최측은 태양광 주택 등 신재생에너지를 확산시키는 데는 일반 국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릴랜드 대학 팀은 참가팀들 가운데 최고의 웹사이트를 구축했으며, 리프 하우스 방문자들에게 주택의 구조와 기술적 장치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리프 하우스는 일반 관람객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4위를 기록한 마드리드대학은 워싱턴의 태양에 가장 적합한 솔라 패널을 제작, 스페인에서 공수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산 큰 기여 열흘 남짓 계속된 이번 행사에는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태양광 주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18일 아들과 함께 행사장에 온 버지니아 주의 캐리 쿠어링은 “아들에게 환경 보호와 재생에너지 활용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방문했다.”고 말했다. 경쟁에 나섰던 태양광 주택들은 분해된 뒤 대학으로 돌아가거나 연구소에 기증되며 일부는 기업에 팔리기도 했다고 대회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대회에 출품된 태양 주택의 건축 가격은 20만∼50만달러 정도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솔라 데카슬론이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솔라 데카슬론은 태양 에너지로만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건축하는 대학간의 국제 대회이다. 올림픽 10종 경기처럼 태양 에너지와 관련한 10개 분야에서 경쟁한다고 해서 솔라 데카슬론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2002년 시작된 솔라 데카슬론은 태양 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과 관련한 최첨단 테크놀러지의 종합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회에 출품되는 ‘태양 주택’의 기획과 설계·건축은 물론 이를 위한 모금, 대외 섭외 및 홍보 활동도 모두 학생들이 전담한다. 따라서 각 대학 팀은 건축학과, 전기공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전자공학과 등 공대 학생은 물론 경영대학원(MBA)과 저널리즘,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학생 20∼60명으로 구성돼 있다. 출품된 주택들은 태양 에너지만 사용해 매일 2명이 샤워와 빨래, 요리,TV 시청, 컴퓨터 사용, 조명 등 일상생활을 모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Net-Zero-Energy Home(외부의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집)’의 개념이다. 네번째 대회는 2009년 워싱턴에서 개최된다. daw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집을 지으려면 아귀가 맞아야 하잖아요. 위원장, 아귀가 잘 맞게 협조해 주세요.”(정수용 빙그레 사장) “사장님, 못질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힘을 빼고 리듬을 타세요.”(허성수 노조 위원장) 지난 2004년 8월 초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펼쳐진 몽골 수흐바트르지역. 흰색 안전모와 장갑을 낀 정 사장과 허 위원장이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망치질을 했다. 뼈대만 있던 집이 이들의 못질, 톱질을 거치면서 벽면이 완성되고 지붕이 덮였다. 노사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노조 협력 유도 ‘스킨십 경영´ 효과 바나나맛 우유, 요플레, 투게더, 더위사냥…. 빙그레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들이다. 이런 대박 상품들은 노사 화합에서 나왔다. 정 사장은 “노조의 헌신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히트 상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며 공(功)을 모두 노조에 돌렸다.1987년 이후 19년째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빙그레를 찾았다. 한여름 뙤약볕 열기가 후끈한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도농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달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더위사냥’과 ‘투게더’ 등의 원료가 섞인 냄새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허 노조 위원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머리가 밤송이처럼 자라 있었다. 굳센 ‘투사’의 이미지였다. 지난 1일 타결된 올해 임금협상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임금 협상은 지난 6월 초 시작됐다. 몇 차례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노사는 평행선이었다. 허 위원장이 삭발을 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험악했다.‘살벌한’ 교섭이 몇 차례 더 진행됐다. 하지만 ‘파국만은 막자.’는 것이 노사간의 속내였다.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큰 어려움 없이 5.8% 임금 인상에 합의 도장을 찍었다. 허 위원장은 “아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수년 동안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전했다. ●86년 파업때 영업망 완전붕괴 교훈 19년 무분규 역사를 쓰고 있는 빙그레의 노조는 약하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976년 노조 설립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파업이 86년에 있었다. 강동원 노조 부위원장은 “당시 3일간의 파업으로 전국의 영업망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붕괴된 영업망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는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노조는 당시 파업 피해를 실감했다.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때 형성됐다. 그래도 2000년 이전에는 교섭기간이 5∼6개월이나 걸렸다. 회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1992년 한화그룹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부채비율은 무려 4183%에 달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나 싶더니 98년 IMF가 덮쳤다.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부채 비율이 350%에 달했을 때 노조가 앞장서 상여금을 반납했다. 이에 회사도 월급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맞췄다.2003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던 라면 사업을 철수했다. 다행히 2004년 말 부채가 53.7%로 떨어졌다.92년 3000여명에 이르던 인력도 1700여명으로 줄였다. 드디어 지난해에는 5424억원의 매출에 387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독립경영 10여년 만에 식품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다. 환골탈태에는 노조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노조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회사는 ‘열린 경영’과 ‘스킨십 경영’을 들고 나왔다. 빙그레는 도농(남양주)·김해·광주(경기도)·논산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지만 단일 노조를 갖고 있다. 본사 노조는 도농공장에 있다. 사업장별로 특성이 달라 쟁점도 다르다. 협의회 의결사항은 게시판과 전자메일로 전직원들에게 알려준다. 또 회사는 노조에게 생산, 영업 및 수금 등의 경영정보를 경영진과 똑같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라면 사업을 철수할 때도 노사가 수개월간 머리를 맞댔다.‘구조조정=노사갈등’이란 싸움의 등식이 깨진 이유다. ●92년 한화서 분리 10여년만에 제자리 또 노사는 사업장마다 두달에 한번씩 산행을 한다. 윤정용 도농공장장은 “몸으로 부딪치는 스킨십이 있어야 노사가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사가 함께 마라톤도 한다. 허 위원장은 “자주 부딪치다 보니 사무직과 영업직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2001년 김호연 회장이 시작했던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도 노사가 해마다 함께 참여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사회 봉사활동을 하니 뿌듯하고 회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빙그레라는 ‘큰 집’을 짓는 노사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남양주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주말탐구] 컴퓨터 그래픽

    [주말탐구] 컴퓨터 그래픽

    요즘 한국 영화의 영상은 매우 뛰어나다. 연출과 촬영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컴퓨터 그래픽(CG)의 공도 크다. 카메라 워킹만으로 불가능한 세상을 실제처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10여년이라는 은 기간에 영화의 모든 분야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해 왔다는 CG기술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어디에 CG가 숨었을까 영화에서 CG의 용도는 사실상 무한대다. 지금 막 개봉하기 시작한 한국 영화를 볼 때 저런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혹 CG가 아닐까 하고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람 포인트다. 지금 잇따라 개봉하고 있는 한국영화 가운데 대작은 없다. 대작이 없다 해서 CG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작이 아닐수록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 외려 더 지능적으로 쓰인다. 조승우·강혜정 주연의 ‘도마뱀’에서 도마뱀은 계속 도망가는 강혜정을 상징하는 동물. 귀엽고 앙증맞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3D작업으로 도마뱀을 만들어 냈다. 신현준의 변신이 화제인 ‘맨발의 기봉이’에서 어릴 적 기봉이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기 전 맨발로 달리던 신작로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눈사람, 고드름도 모두 CG다. 작은 액션 영화에서도 위험한 신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CG가 쓰인다. 이문식이 주연을 맡은 ‘공필두’는 금괴를 둘러싼 해프닝을 다룬 만큼, 금괴나 이를 실은 자동차를 극한상황에 밀어 넣는데 이 장면들이 모두 CG다. 액션감독 류승완, 무술감독 정두홍이 직접 액션 연기를 펼쳐 보여 관심을 끌고 있는 ‘짝패’에서도 자동차 충돌신과 같은 위험한 장면 대부분은 CG라고 보면 된다. 예전 영화를 돌이켜 봐도 그렇다. 최배달을 그린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배달과 소의 1대1 다툼도 모형 소를 쓴 뒤 CG를 입혔다.‘홀리데이’에서 거꾸로 매단 이성재의 머리를 최민수가 골프채로 때리는 장면에서 골프채 역시 CG다.‘역도산’에서도 역동적인 링 위의 장면이나 일제시대 풍경 등은 모두 CG다. ●한국CG의 승부처는 기술력보다 연출력 CG의 기술력은 뭐라 해도 미국이 제일 앞서 있다.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적용하는데, 이 소프트웨어 내용은 물론 비밀.4∼5년 정도 지나야 공개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영화 CG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기본적으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투입 대비 결과’로 보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굳이 자본과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할리우드 방식을 한국에 적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있다. 영화 시장 규모가 다른 상황에서 무리하게 따라하다가는 가랑이만 찢어진다는 얘기다. 문필용 모비딕 대표는 “회사 규모를 키운다고, 최첨단 장비를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CG가 들어가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표는 영화 ‘킹콩’에서 재현된 1930년대 뉴욕 시가지 같은 장면에 도전해 보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한 스케일의 영화가 먹혀들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용가리’와 ‘D-WAR’ 등으로 디지털제작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심형래 감독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중요한 건 영화적 완성도지 CG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콘텐츠 제작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수십억원의 디지털 장비들을 사들이는데 대한 우려도 많다. 한 CG제작사 관계자는 “그런 고가의 장비 대부분이 사장되고 있다.”면서 “그런 장비를 사주는 것보다 차라리 이제까지 쓰여졌던 기술과 영화를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아카이브(정보창고)를 구축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골룸’을 뛰어 넘겠다 그러나 기술력이 어느 수준에 올랐기에 새로운 시도도 선보이고 있다. 올 연말 개봉 예정으로 후반작업이 한창인 정우성·김태희 주연의 ‘중천’은 ‘디지털 배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원래 디지털 배우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처음 시도됐다. 침몰하는 배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인물들을 CG로 그려 넣었던 것. 우리 영화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대규모 군중신에서 쓰였다. 그러나 ‘중천’은 군중신에 쓰는 게 아니라 정우성의 얼굴과 피부를 따와, 정우성이라는 인물 자체를 디지털화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시도된 적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처음이다.‘중천’의 CG을 맡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인호 팀장은 “기술력과 자본의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디지털 배우가 본격화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중천을 통해 ‘반지의 제왕’의 ‘골룸’에 맞먹는 수준의 디지털배우를 선보이겠다.”고 장담했다. 또 하나 CG로 관심을 끄는 영화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 한강변에 매점을 운영하는 한 가족이 어디선가 나타난 괴물을 만나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이 괴물은 천상 CG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해리포터와 불의 잔’,‘슈퍼맨 리턴즈’에 참가한 미국의 오퍼니지팀을 중심으로 ‘반지의 제왕’,‘킹콩’ 등을 만든 뉴질랜드의 웨타워크숍팀까지 합류해 있다. 아직 ‘괴물’의 정체는 비밀에 가려져 있지만,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CF·게임에 CG적용할땐 매출 10배 올릴 수 있어 “분명한 건 영화CG를 하려면 CG보다 영화를 더 이해해야 합니다.” 모팩 스튜디오 장성호 대표는 CG의 효능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10년 이상 영화CG계에서 일해왔고 지금도 톱클래스로 꼽히는 CG업체 사장임에도 CG가 뭐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CG 100개보다 영화에 녹아든 CG 1개가 낫다는 설명이다. 다른 예를 들었다.“영화 ‘하나비’에 야쿠자가 상대방 눈을 젓가락으로 찌르는, 제일 잔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편집으로 해결해요.‘젓가락-휘두르는 팔-쓰러지는 남자-그릇에 떨어지는 피’를 보여줘서 눈을 찔렀구나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장면을 어설프게 CG로 찍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만큼 영화는 편집의 예술인 거예요.” 그래서 영화CG를 하고 싶다면 기술적인 부분보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이는 장 대표의 경험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장 대표가 CG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94년.“처음에는 나이도 어린데다, 들어보지도 못한 CG라는 것을 하겠다고 얼쩡거리니까 촬영현장에서 누구 하나 같이 밥 먹자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악물고 더 영화 공부를 했다. 그 때 뒤져본 영화 이론서가 수백권은 넘어간다.“한 신을 두고 연출·촬영·조명 이런 모든 요소들을 놓고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완성도 높은 장면이 나올 수 없어요.” 그래서 그는 아직도 ‘화산고’(2001년) 같은 영화에 다시 도전하는 꿈을 꾼다.2000여컷 분량의 영화에서 1800여컷이 CG였다. 처음엔 무모한 시도라고 생각해 제작사는 물론, 장 대표도 반대했단다.“김태균 감독님에게 ‘세상 모든 사람이 안된다 해도, 너는 할 수 있다 해야 하지 않으냐.’고 야단맞고 나서 미친 듯이 작업한 거예요.” 모든 신에 CG가 들어가다보니 연출·촬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감독과 의논하고 토론한 끝에 만들어낸 영화다.“그런데 흥행은 잘 안돼서 한동안 패닉상태였어요. 지금은 웃지만.” 사실 CG는 게임쪽이 더 활발하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게임 CG는 일본에 하청을 줄 정도다. 돈도 인력도 그쪽으로 쏠리는 게 사실이다. 장 대표 역시 “사실 영화가 아니라 CF나 게임쪽으로 작업하면 지금 매출의 10배는 올릴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영화광이었던 그에게 영화작업은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이었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구미호’에 첫 등장… ‘유령’ 기술 한단계 Up 한국 영화에 CG가 등장한 것은 ‘구미호’(94년)에서부터다.‘어비스’(89년)에서부터 시작해 ‘터미네이터2’(91년),‘쥬라기공원’(93년) 등 할리우드가 뛰어난 CG 영화를 선보인데 자극받은 것이다. 처음에는 역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인력·장비·기술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나무침대’(96년)가 히트치면서 CG는 기사회생, 잇따라 작품을 냈다. 그럼에도 영화와 CG가 따로 논다는 지적은 계속됐다. 기술적으로 한 단계 올라선 작품으로는 ‘유령’(99년)이 꼽힌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서 마치 심해 잠수함인 것처럼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 그 뒤 모험적인 시도들이 줄이었다.‘화산고’(2001년)는 영화 전체를 CG로 채웠고,‘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년)·‘내추럴시티’(2003년) 등 CG는 물론, 디지털 캐릭터까지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흥행이 기술적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영화는 아무래도 생생한 사실감이 중요한데 CG를 지나치게 쓰다 보면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 그래서 지금은 CG 자체보다는 스토리 구조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다. 작품이 돼야 CG도 산다는 것. 그래서 ‘은근슬쩍’ CG를 쓴다. 작품당 몇억 정도는 기본이고,CG와는 영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멜로물에도 5000∼6000만원 정도는 CG비용으로 예산이 짜일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레저+α] 뚝딱뚝딱,아빠 엄마와 함께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16회 서울국제판촉물 및 생활용품전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가구 DIY 체험전시관이 마련된다. 연필꽂이부터 책장이나 의자까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톱과 망치 등 도구를 이용해서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는 행사로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전 세계 20여개국 450개사의 판촉물과 생활용품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행사장에서는 갖가지 독특한 아이디어의 제품을 볼 수도 있다.
  • 日영화 좋아하는 10대 모여라

    日영화 좋아하는 10대 모여라

    한국 어린이 관객들을 찾아 일본영화 8편이 멀리 바다를 건너 ‘묶음배송’돼 왔다. 새달 1일부터 4일까지 나흘동안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한·일 청소년영화제’에서 일본산 청소년 영화 8편이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 문화청과 동숭아트센터가 함께 마련한 영화제의 부제는 ‘소년소녀를 만나다’. 청소년 영화가 한해 20∼30편이 제작되는 일본인 만큼 이번에 선별된 작품들은 감상포인트들이 뚜렷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개막작 ‘히노키오’(감독 아키야마 다카히코). 아이들 대신 학교에 가주는 로봇이 상용화된 디스토피아적 미래풍경이 전개되지만, 시대분위기에 걸맞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청소년 세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화제작이다. 이밖에 ‘선생님, 내일 갤까요?’(나카야마 세쓰오),‘일오동맹’(가시마 쓰토모),‘열다섯살 학교 Ⅳ ’(야마다 요지),‘미안해’(도카시 신),‘강아지 단 이야기’(사와이 신이치로),‘반딧불의 별’(스가와라 히로시),‘뚝딱뚝딱 공작시간’(노나카 마리코)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감독과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도 아이들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히노키오’에 등장하는 로봇, 여주인공 다베 미카코와 아키야마 다카히코 감독이 와서 관객들을 만난다.‘선생님, 내일 갤까요?’의 나카야마 세쓰오 감독도 방한한다.‘뚝딱뚝딱 공작시간’의 노나카 마리코 감독은 영화 속 공작물들의 전시회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영화제가 마련된 것은, 가와이 하야오 일본 문화청 장관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일본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 의기투합한 결과였다.“상영작 8편 모두 가와이 장관이 직접 선정했다.”는 게 하이퍼텍 나다 측의 설명이다. 새달 2일 오후 3시30분에는 양국의 학생 6명이 영화를 함께 관람한 뒤 ‘이제부터 함께 걷는 길’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계획.3일은 가와이 장관과 배우 장미희가 ‘한·일 문화교류와 청소년의 미래’에 대해 대담하는 자리도 갖는다.(02)766-339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유명산에서 가족캠핑

    유명산에서 가족캠핑

    여행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 여행의 참다운 재미는 캠핑이다. 아파트나 다름없는 콘도, 펜션에서는 여행의 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친구삼아 지저귀는 새들과 풀벌레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캠핑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어떤 것이고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하늘을 지붕 삼아 지내는 여행, 그것이 바로 캠핑의 맛이다. 텐트 하나 짊어지고 대자연을 찾아 가자. 가족과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여행 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다. 콘도나 펜션을 이용하는 여행에서 텐트를 이용한 캠핑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캠핑의 장점은 예약이 필요 없고 자연과 한껏 함께 할 수 있으며 가족간의 정을 돈독하게 해준다는 것.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규원(37·경기디지털아트센터 팀장)씨도 큰마음을 먹고 캠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불편해서 싫어요? 가족 여행을 콘도를 이용하지 않고 캠핑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아내인 민영옥(37·주부)씨. 화장실, 샤워, 주방 등 모든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콘도나 펜션을 이용하면 편할 텐데 하필 여행가서 고생 하느냐?”는 아내를 이틀동안 설득했단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창준이에게 때묻지 않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겨우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캠핑정보를 찾던 이씨는 깜짝 놀랐다. 전국에 캠핑장이 수백개나 되고 캠핑인구도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장비는 이렇게 일단 필요한 장비를 생각해 보았다. 사야 할 것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차로 이동하니까 최소한의 것만을 준비하기로 했다. 제일 중요한 텐트.100만원을 호가하는 것부터 몇만원짜리까지 다양했다. 어차피 텐트는 한번 사면 평생을 쓴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것을 사기로 했다. 코오롱에서 나온 스카이 뷰 텐트로 결정했다. 텐트 전면부터 천장까지 메시(모기장)가 있어 텐트안에서 별이나 밤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일단 끌렸다.3∼4인용으로 세식구가 사용하기에도 적당했다. 원래 80만원인데 할인을 받아 30만원에 구입했다. 어차피 펜션에서 이틀을 자도 30만원은 넘게 들어야 한다는 셈을 하고 보니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조리도구(코펠)는 빌려갈까 하다가 크고 작은 냄비와 밥그릇 등이 포함된 3∼4인용짜리를 9만 8000원에 샀다. 캠핑을 가면 그릇이 많이 필요하다는 고수들의 말에 여유있는 사이즈를 구입했다. 버너는 집에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대신했다. 날씨가 춥지 않으니 침낭은 다음 기회에 사기로 하고 집에 있는 담요를 쓰기로 했다. 캠핑전문 쇼핑몰인 호상사(www.hocorp.co.kr)에서 스노피크 레저용 테이블(25만원)과 1인용 의자 콜맨 제품을 4만원에 2개 샀다. 아내와 구입한 물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테이블때문에 다퉜다. 한번 살 때 좋은 것을 사야한다는 명품족인 규원씨, 또 버는 돈은 생각 안하고 카드를 쓴다며 당장 환불을 받으라는 영옥씨. 결국에는 호상사에 부탁해서 한번 써보고 결정을 하겠다며 중고 테이블을 빌려갔다. 동네 대형 할인점에서 텐트에 깔 매트리스 2만원, 건전지 넣는 램프를 5500원에 마련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어디로 갈까 전국에 휴양림만 112개. 그중에서 야영이 가능한 곳이 60 여개. 국립공원과 각 지방마다 마련된 캠핑장까지 합치면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종합한 결과 캠핑시설이 갖추어진 자연휴양림내에 캠핑장이 초보 캠퍼에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목적지를 서울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유명산 자연휴양림내 캠핑장으로 정했다. ●떠나자, 자연 속으로 유명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아이 600원.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캠핑장만 사용하면 하루에 4000원을 내야 한다.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는 오토캠핑장은 하루에 8000원.1만원에 휴양림도 구경하고 캠핑시설까지 이용하다니 정말 싸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쳐보는 텐트.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옆에 쳐놓은 텐트를 참고로 삼았다.‘뚝딱뚝딱’ 아내와 아들까지 힘을 합해 30분만에 하루 묵을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거 봐. 그러니까 콘도로 가자고 했잖아.”불평을 시작하는 아내와 달리 “아빠 텐트로 들어와 보세요. 너무나 근사해요.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죠.”라는 아들은 들떴다. 텐트로 들어가 보니 쭉쭉 뻗은 나무, 신선한 공기, 풀벌레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린다.“그래도 밖에서 볼 때보다 들어오니 분위기 있네.”아내까지 좋아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 역시 산이 깊으니 물이 좋다. 휴양림 산책로를 걷고 저녁을 일찍 먹고는 의자에 앉아 책을 보았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래간만에 오붓한 가족끼리의 시간을 즐겼다.‘탁탁탁’ 나뭇가지가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풀벌레가 합창을 하는 산속의 밤은 깊어만 갔다. 텐트의 문을 걷고 모기장을 쳤다.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특별취재팀|도쿄 남단에 자리한 오타구 공단은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울의 구로공단쯤에 해당된다는 이 중소공단 지역을 찾은 때는 지난달 18일 오후였다.5000개가 넘는 공장들의 육중한 몸매는 높다란 담에 가려져 있었고, 행인과 차량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거리 풍경만으로 경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란 욕심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급한 김에 택시기사에게 ‘청진기’를 들이댔다. “요즘 이곳 경기가 좋아졌다는데….” “5∼6년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거리를 오가는 트럭이 전보다 늘었다.”스야마 아키히로(順山明彦)라는 이름의 이 기사는 다만 “큰 공장만 좀 살아나는 것 같고 작은 공장은 아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현황이 간단치는 않은 것 같았다. 택시가 회색빛의 무표정한 공장 숲을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목적지인 오타구 산업진흥협회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최첨단 건물이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30대가 나왔다. 명함에는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담당 코디네이터’라고 돼 있었다. 마치 첨단 벤처기업에 온 기분이 들었다. ●업종, 규모따라 회복 체감도 차이 데자와는 “1990년대 후반 이곳 공장들이 1년에 100개씩 도산했다고 치면, 지금은 절반 수준인 50개 정도로 떨어졌다.”면서 제조업 경기가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완전히 부활했다고 하기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했다가 비용 문제가 안 맞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공장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대기업 얘기일 뿐 중소 공장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케이스”라고 말해 얼핏 택시기사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중소공장은 여전히 규모와 비용 경쟁에서 대기업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대기업 사정을 직접 듣기 위해 일본전기(NEC) 본사를 찾아갔다.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인 이 회사의 홍보부장 아라이 도시노리(荒井俊則)는 “중국에 진출했던 대기업 공장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맞느냐.”란 질문에 “신문에서만 봤다.”면서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대세는 역시 일본에 모(母)공장을 두고 해외에 설치한 자(子)공장과 연계하는 시스템일 것”이라고 했다.NEC의 경우 일본내 공장은 핵심 노하우 개발과 첨단부품 생산에 치중하고, 중국과 동남아 등의 해외공장은 저임금을 토대로 한 대량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분담 체계가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밑바닥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대형 카메라 전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에 진열된 카메라의 가격은 공장의 소재지에 따라 천양지차였다.‘메이드 인 재팬’이 부착된 소니 카메라는 7만 5800엔에 달하는 반면,‘메이드 인 필리핀’의 펜탁스 카메라는 2만 7300엔 하는 식이다. 이 상점의 점원은 “손님들이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산의 값싼 제품만 찾는다.”고 귀띔했다. 아라이 NEC 홍보부장은 “일본의 공장들이 생산혁신을 통해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1980년대식의 부흥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학계나 정부쪽 시각은 좀 더 긍정적이다. 일본종합연구소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년전만 해도 이러다가 일본이 다 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제조업이 부활하면서 일본경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면서 “중국의 싼 제품에 밀려 고전하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소니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서서히 체력을 회복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쓰오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은 “영업비밀이 새나갈 우려가 있는 중국보다는 인건비가 비싸더라도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일본 안에서 공장을 운영토록 정부가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NEC 공정 단축… 2년간 8조원 절감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겉으로 드러난 몸집이 아니라, 유니폼 속에 숨겨진 기초체력이다.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풍상을 겪으면서 공장들의 체질은 엄청나게 강인해졌다. 이 스모 선수의 회복 징후는 대증적인 영양주사에 의한 게 아니라, 운동과 식이요법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NEC만 하더라도 5년 전에 비해 체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2000년부터 시작한 ‘생산혁신활동’이 수훈갑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공정을 잘라내 전체 생산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부품 재고율을 낮추는 개혁방안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2003년 3월 ‘43일’이던 부품 회전일수가 지난해 3월엔 ‘40일’로 줄었다.NEC는 이 제도를 국내외 공장에 두루 적용한 덕택에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무려 8000억엔(8조원) 가량의 생산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아라이 부장은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은, 일본은 더 이상 싼 노동력으로 대항할 수 없으며 구조혁신을 이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데자와 코디네이터도 “중요한 것은 90년대의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저력과 노하우가 강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산·학연계나 기술특화, 디지털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면서 “오타구 공단내 공장의 70% 이상이 1개 업종만 특화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carlos@seoul.co.kr ■ 견학 명소 기타지마 제작소 |특별취재팀|오타구 공단 안에 있는 (주)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은 일단 ‘실망’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공장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첫 인상은 그저 시골의 허름한 대장간 같다고나 할까.2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이 작은 공장 안에서 뚝딱뚝딱 쇳덩어리 비슷한 것을 두드리거나 간단한 기계를 작동하는 광경은 영락없는 ‘아날로그식’이다. 겉모양은 이래도 1947년 세워진 이 곳은 주로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장이다. 항공기나 로켓 부품에서부터 화분이나 파라솔 부품까지 만들어 팔아 한달 평균 4000만엔(4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올해 67세인 기타지마 가즈토시(北嶋一甫) 사장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실망은 ‘경탄’으로 변한다.“왜 자동화시설이 안돼 있느냐.”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으로 하는 게 기계보다 더 정확도가 높다.”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기타지마 사장이 알루미늄 재료로 직접 화분을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회전틀에 재료를 끼워 형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도자기를 굽는 장면과 기막히게 흡사하다. 단단한 알루미늄 재료가 틀에 끼워져 돌아가기 시작하면 진흙처럼 이렇게 저렇게 형체가 변하면서 어느새 도자기처럼 말쑥한 완제품으로 탈바꿈한다. 기타지마 사장은 “우리는 남들이 어렵다는 90년대에 오히려 경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은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는 기타지마 사장의 말 속에 있다.“고객이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을 해도 절대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피해가지 않았고 그래서 기술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이곳엔 영업부가 따로 없고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는다.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타지마 사장의 권유에 못 이겨 기자는 알루미늄 화분 제작에 도전했다. 재료를 틀에 끼운 뒤 쇠막대로 형체를 빚어내는 작업은 보기보다 훨씬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대충 사진만 찍고 그만두려는데, 사장은 “제대로 만들 때까지.”를 외치면서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3전4기 끝에 그럴듯한 작품을 만든 뒤에야 땀이 흥건해진 작업복을 벗을 수 있었다. carlos@seoul.co.kr ■ 도움을 주신 분들 <2>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 코디네이터 ▲히키다 와타루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박사과정(우주물리학 전공) ▲사카이 마사요시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정보정책과 과장보좌 ▲이소 가오루 도쿄전력 노무인사부 노무그룹 매니저 ▲시게미 사토시 혼다자동차 아시모 수석 엔지니어 ▲후쿠오카 다카오 2005 아이치박람회 도요타관 부관장 ▲히라쓰카 다이스케 아시아경제연구소 지역통합연구그룹장 ▲후쿠다 노리오(福田紀夫) 인사원 기획법제과장 ▲와카바야시 시게요시(若林成嘉) 내각관방 우정민영화준비실 기획관 ▲니타 유키오(新田行男) 일본우정공사 우편국 부국장 ▲나카지마 히사하루(中島久治) 일본우정공사 IR담당 부장 ▲다니가키 구니오(谷坦邦夫) 일본우정공사 경영기획부 전략담당부장 ▲가와타 다카시(川田隆) 도쿄전력 노동조합 중앙서기장 ▲마스다 기사부로(增田喜三郞) 일본우정공사 노동조합 국제부장 ▲신도 무네유키(新藤宗幸) 지바대학 법경제부 교수 ▲히구치 도루(口徹) 문부과학성 고등교육국 국립대학법인지원과 사무관 ▲야시로 나오히로(八代尙宏)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요시타케 히로미치(吉武博通) 국립대학법인 쓰쿠바대학 학장특별보좌(교수 겸임) ▲사쿠와 도루(佐桑徹) 재단법인 경제홍보센터 국내홍보부장 ▲고토 이스케(厚東偉介)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교수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일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즈키 마사토(鈴木聖人) 신일본제철 홍보과장 ▲스티븐 윌하이트 닛산자동차 수석부사장 ▲아키야마 스스무(秋山進) 인디펜던트 컨트랙터 협회 이사장 ▲나카하라 에이노스케(中原英之助) 혼다자동차 책임 연구위원 ▲이시즈나 데쓰하루(石綱哲治) 미즈호은행 국제금융법인부 아시아담당 조사역 ▲시오자키 야스히사(崎恭久) 중의원 의원(자민당) ▲고바야시 유타카(小林溫) 참의원 의원(자민당) ▲마쓰이 고지(松井孝治) 참의원 의원(민주당) ▲스즈키 다카히로(鈴木崇弘) 자민당 당개혁실행본부 싱크탱크 준비실장 ▲오타 가즈히코(太田和彦) 도호쿠 예술공과대학 교수 ▲하라다 다케오(原田武夫) 하라다 다케오 국제전략정보연구소 대표 ▲쇼지 마사히코(庄司昌彦) 고쿠사이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센터 연구원 ▲호소다 야스베(細田安兵衛) 주식회사 에타로소혼포 사장 ▲벳푸 마코토(別府允) 주식회사 지쿠요테 사장 ▲나카무라 오사오(中村治夫) 주식회사 야마모토노리텐 참여 ▲야마모토 가즈오(山本一雄) 주식회사 사루야 사장 ▲구로카와 미쓰히로(黑川光博) 주식회사 도라야 사장 ▲다케다 야스히로(武田安弘) 도쿄신문 정치부장 ▲미즈노 마사토(水野正人) 경제산업성 환경정책과 과장보좌 ▲이마제키 아쓰노리(今關重義)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소장 ▲고바야시 다카시(小林崇志)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부소장 ▲와쿠다 하지메(和久田肇)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문화정보관련산업과 과장보좌 ▲나쓰노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보좌 ▲야마다 신(山田伸) 지바현 상공노동부 산업진흥과 부과장 ▲이와타 요이치(岩田庸一)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장 ▲나미코시 노리코(浪越德子)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 기획조사부 국제실 과장대리 ▲고노 히로키(河野博樹) NEC 공보과장 ▲하마모토 요시코(浜本佳子)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매니저 ▲가시마 나호(鹿島奈帆)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사카쿠라 다카히토(坂倉隆仁) 카오 컴퍼니 홍보부 과장 ▲이노우치 미야비(井內雅妃)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 직업가정양립과 육아 개호휴업추진실 취업원조계장 ▲다나카 아쓰히토(田中敦仁)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부실장 ▲오카모토 아유미(岡本步室)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과장대리 ▲데시가와라 아이(勅使河原愛) 2005 아이치박람회 일본관 홍보담당 ▲나카노 히데아키(中野秀秋) 2005 아이치박람회 아이치현관 부관장 ▲야마시타 요시노리(山下義順)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관 관장대리 ▲혼다 도루(本田徹)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과 홍보부 과장 나종일 주일 한국대사 ▲신태철 KOTRA 도쿄무역관 차장 ▲윤민호(尹敏鎬) 국제금융정보센터 아시아제1부 특별연구원 ▲장병효(張炳孝) 포스코재팬 사장 ▲유성(柳誠) 포스코재팬 경영기획부장 ▲장화경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조영수 KOTRA 아이치엑스포 한국관 부관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최병하(崔秉夏) 현대차 도쿄지사장/
  • [마니아] 나만의 인형 ‘테디베어’

    [마니아] 나만의 인형 ‘테디베어’

    ■ 혼담긴 ‘테디베어’ 만드는 동호회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감도는 폭신폭신한 털, 반짝이는 눈동자와 움직이는 팔다리.’ “꼬박 하루 걸려 만든 자식같은 저놈이 나를 꼼꼼이 들여다보고 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빨간 고깔을 머리에 씌워놓으니 이제 ‘산타클로스 테디베어’가 다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그이에게 선물하면 놀라겠지….”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테디베어 공방인 테디클럽.20평 남짓한 공간에 모여앉은 테디베어 마니아들이 꿈과 사랑을 담아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강진옥(37)씨는 “테디베어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면서 “숙련된 전문가도 작업시간이 6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래도 이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에서 따온 ‘테디베어’가 우리나라에 본격 소개된 것은 1990년대 말. 공방주인인 고경원(43)씨가 그 주인공이다. “테디베어가 국내에 유행하기 전인 90년대 초 외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앤티크숍에 갔더니 테디베어들이 저를 보고 웃고 있더군요. 표정들이 제각각인 게 신기하기만 했어요. 우리나라 봉제완구 곰인형과는 달랐습니다.” 완구회사 디자이너였던 고씨는 그 뒤 공장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얻어 테디베어를 만들어봤다. 그러다가 테디베어에 푹 빠져 홍익대학교 앞에 공방을 만들었다. 테디베어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아 차마시고 수다떨려는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1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사단이 됐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은 김정우(33)씨. 몇 안되는 ‘청일점’이다. 덩치 큰 사내가 바느질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선물용 테디베어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선수다.5년전 고씨가 펴낸 테디베어 안내책자를 구입한게 발단이 됐다. 테디베어 재료가 부록으로 딸려있어 재미삼아 만들어봤다. “책보며 듬성듬성 바느질해 인형 몸통은 겨우 완성했지만,‘눈’만큼은 통 붙질 않는거예요. 고민하다가 저자를 찾아가 눈을 붙여달라고 했죠.‘화룡점정’을 한 뒤 완성된 인형을 보니 만들 때의 고생스러움은 없어지고 사랑스러움만 남았습니다.” 김씨처럼 ‘선수’들은 테디베어를 남에게 선물하거나 판매할 때 반드시 ‘입양’이라는 말을 쓴다. 혼(魂)을 담아 만든 만큼 인형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테디베어를 입양시킬 때는 시원섭섭하지만 신주단지 다루듯 테디베어를 모셔가는 또다른 마니아를 볼 때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테디베어를 분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인형에 고급 재료를 써도 아깝지 않다. 고씨가 보여준 한 테디베어는 인조 아크릴 원단이 아닌 알파카(남미 안데스산맥에서 서식하는 동물)털로 만들어졌다. 또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연출하기 위해 플라스틱 눈 대신 유리 눈을 달았고, 코는 실로 수놓은 게 아니라 나무를 깎아 만든 뒤 사포로 문질렀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에는 자그마치 ‘38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고씨의 테디베어에 대한 정성은 끝이 없다.“테디베어를 아는 사람은 이런 스타일의 인형을 보면 제 작품인 줄 알아요. 나무로 만든 코 등은 저만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테디베어 만드는 게 어려운 것은 바느질 같은 게 아니라 나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한국테디베어연합회는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프로젝트명-‘스포츠 속의 테디베어들’. 골프, 농구, 폴로 등의 운동을 하는 테디베어들이 전시됐다. 테디베어의 어원대로 사랑과 돌봄(Love&Care)의 정신을 내리받아 전시회 수익금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증한다. 테디베어에 대한 경매(www.teddymall.co.kr)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테디베어란? 테디베어의 ‘테디’(Teddy)는 미국의 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애칭에서 따왔다. 1902년 곰 사냥을 나갔던 루스벨트가 해가 지도록 곰 한마리 잡지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수행원이 사냥하기 쉽도록 생포한 곰을 가져왔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곰을 풀어주도록 해 죽음을 기다리던 곰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이러한 일화가 알려지자 많은 미국 국민들이 감동했다. 뉴욕의 한 상점에는 ‘테디의 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형이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테디베어는 이듬해 독일에서 열린 박람회에 소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 상품이 됐다. 디즈니 인기 만화 캐릭터인 푸우곰 역시 테디베어의 일종으로 만들어져 상업화에 성공했고, 외국에는 테디베어 전문 수집가가 있을 정도다. 루이뷔통이 특별제작한 테디 베어 가운데 무려 2억 3000만원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테디베어 만들기 “나도 테디베어를 만들 수 있을까?” ‘테디베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방식는 공그르기와 박음질 두가지다. 바느질만 알면 테디베어를 만드는 방식을 절반 이상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 재료로 칼과 바느질 도구 정도가 필요하며 세부품목이 담긴 8000원∼3만 5000원선의 ‘DIY(혼자서 만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재료)키트’는 서울 동대문 종합상가지 등에서 구입 할 수 있다. 혼자 만들기 어렵다면 테디클럽(www.teddyclub.co.kr)에서 ‘재료와 도구→바느질 방법→옷본 이해하기→옷본작업과 재단하기→머리 만들기→몸체만들기→나사 등으로 관절 연결하기→솜채워넣기→표정연출하기’ 등 9단계 제작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시연)을 참조하면 된다. 또는 500개 안팎의 인터넷 동호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테디베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오리역에 위치한 유아전문 테마쇼핑몰인 ‘베어캐슬’(www.bearcastle)에서는 동화속 테디베어,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테디베어를 만날 수 있다. 걸리버, 피터팬은 물론 심청전 홍길동 등 국내 동화의 주요 장면을 볼 수 있다. 또 제주도 중문관광 단지에 위치한 테디베어 박물관(www.teddybearmuseum.com)에서는 1200평 규모로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테디베어와 테디베어의 역사, 테디베어와 함께하는 모험 등을 접할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마당] 개혁보다 먼저 할 일

    아이들이 집안 청소를 하겠다고 나섰다.참으로 기특하고 갸륵한 일이다.부모가 안심하고 외출했다.그런데 진흙탕에서 뒹굴며 놀던 아이들이 신발을 벗거나 손을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 청소를 한답시고 집에 들어가 설쳐대기 시작했다.게다가 아이들은 진공청소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몰랐다.청소? 맙소사! 그런 아이들에게 집안청소를 맡긴 부모야말로 제 정신이 아니다.아이들은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면서 장난 쳤다.아이들에게는 깨가 쏟아질 듯이 재미있는 놀이지만 부모가 땀 흘려가며 일해서 하나씩 장만했던 귀중한 살림살이가 성할 리가 없다.고물장수가 지나갈 때 아이들은 냉장고·세탁기·에어컨에 심지어는 자동차까지 팔아서 군것질을 했다.집문서와 인감도장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집도 팔아 먹었을 것이다.청소를 하려면 먼저 자기 몸부터 깨끗이 해야 한다.그리고 청소기를 다룰 줄도 알고,어디서부터 어떻게 청소해야 되는지도 잘 알아야 한다.그렇지 않다면,청소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의 인격 수양과 자기 집안을 잘 다스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케케묵은 헛소리가 결코 아니다.자기 눈에 대들보가 박혀 있는 사람은 남의 눈에서 티끌을 꺼내 주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눈에서 대들보부터 제거하라는 예수의 말도 결국은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한 뒤에 치국(治國)하라는 공자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백성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역시 ‘개혁’이다.개혁이라고 하면 거창한 사업처럼 들리고 어딘가 멋진 뉘앙스를 풍긴다.그러나 쉽게 말하면 ‘청소’ 또는 ‘집수리’에 불과하다.해방 이후만 해도 50여 년이 지나도록 청소를 하고 뚝딱뚝딱 집을 수리해 왔다.그런데도 아직 청소할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고 수리할 곳도 많다는 말이다.쓰레기란 날마다 쌓이게 마련이다.집도 오래 되면 손볼 데가 많아지게 마련이다.그러니까 청소를 날마다 부지런히 해야만 한다.그렇지 않으면 쓰레기 더미에 사람들이 묻혀서 질식하고 만다.수리할 데가 있으면 빨리 수리해야 집이 오래 보존된다.청소도 좋고 수리도 좋다. 그런데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진흙탕에 뒹굴다가 청소를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처럼 자기 몸 하나도 깨끗이 하지 못한다면 개혁을 하기는커녕 문제만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만다.명색이 개혁의 주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아무하고나 만나고 아무하고나 술을 마시며 아무 데서나 잔다면,바로 그들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아닌가!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즈음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저명인사들일수록 구설수에 더욱 자주 오른다.물론 예전에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그러나 요즈음은 걱정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그것이 문제인 것이다.그런데도 그런 걱정이 모두 언론의 과장 보도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하다.누구 말처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좋다.언론이 과장 보도만 일삼는다고 치자.그러면 자기들은 똑똑해서 그걸 아는 반면에 백성들이란 하나같이 멍청한 바보라서 까맣게 모른 채 속고 있단 말인가? 개혁은 언제나 필요하다.그러나 똥 묻은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이라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먼저 자기 몸부터 살펴보고 자기 주위부터 청소하라.개혁은 그 다음 순서이다. 이 동 진 시인 전 외교부 대사
  • 읊조리듯 저음 트로트 누구 들어본적 있소? / 한영애 트로트 리메이크음반 출반

    ‘노래 잘하는 가수’ 한영애(44)가 트로트 리메이크 음반을 냈다.빨간 바탕에 복잡하게 얽힌 검은 전선줄이 강렬한 색대비를 이루는 재킷은 도무지 트로트 앨범 같지가 않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작업이었어요.‘옛날 노래나 한번 리메이크해볼까’하고 반쯤 농담삼아 얘기했더니,‘그거 좋겠다’고 주위에서 극성스럽게 채근한 거예요.” ●‘애수의 소야곡’‘황성옛터’등 담아 그는 새 앨범 ‘Behind Time’을 “자신이 없어 몇달동안 망설인 끝에 낸 음반”이라고 소개한다.흘러간 가요에 늘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소화해낼 자신이 없어서였다.넉달여동안 고민하다 새 앨범 준비에 들어간 건 지난 3월부터.한국가요사를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겠다고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내친김에 선곡도 직접 했다.“특정 이데올로기를 담지 않은,2003년에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기준으로 선곡했다. 그렇게 해서 간추린 노래는 1920∼1950년대 가요 13곡.‘애수의 소야곡’‘선창’‘굳세어라 금순아’‘황성옛터’ 등 설명이 필요없는 애창가요를 비롯해 동요 ‘따오기’,‘오동나무’‘부용산’‘꽃을 잡고’ 같은 신민요까지 두루 담았다.노래들은 읊조리듯 저음을 구사하는 한영애 특유의 음감이 두드러진 곡으로 변주됐다.‘선창’은 쿵짝쿵짝 경쾌한 스카리듬으로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하고,‘애수의 소야곡’은 멜로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딴 노래가 된 듯하다.그런가 하면 ‘목포의 눈물’과 ‘타향살이’는 멋부리지 않고 원곡 그대로 불러 오히려 귀가 쏠린다. ●‘꽃을잡고’ 복각음반 통해 재발굴 “미국음악이 쏟아져 들어온 1955년 이후로는 신민요나 전통 트로트의 본질이 급속히 흐려졌음을 알게됐다.”는 그녀는 “50년대까지의 노래를 고른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녹음과정에서 문득문득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다.‘꽃을 잡고’는 복각음반을 통해 재발굴한 노래이며,‘부용산’이 2절까지 녹음된 음반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가 새 앨범을 선보인 건 1999년의 5집 ‘난.다’ 이후 4년만이다.1∼2년에 한번씩 뚝딱뚝딱 신보를 들이미는 일반적인 속도로 따지자면 ‘태작’이랄 수도 있다.그러나 그런 지긋함이 오히려 그녀의 음악에 더 큰 믿음을 심어주는지 모른다.“기다리는 팬들에게야 미안하지만 그게 한영애 스타일의 음악템포”라며 소탈하게 웃더니 “하지만 이번 음반홍보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면 곧바로 6집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인다. 담박한 기타연주에 20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신통하게 변주된 ‘뽕짝’을 듣고 싶다면 주말을 기다려볼 일이다.11일과 12일 이틀동안 성균관대 새천년홀에서 음반발매 기념 콘서트 ‘Full Moon’이 마련된다.(02)3141-2706. 황수정기자 sjh@
  • 이 주일의 어린이책/너도 보이니?

    월터 윅 글·사진 이현정 옮김 / 달리 펴냄 단풍잎 같은 어린 손이 알록달록한 그림 위를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는 풍경.‘너도 보이니?’(월터 윅 글·사진,이현정 옮김,달리 펴냄)는 그런 흐뭇한 ‘그림’을 만들어줄 숨은 그림찾기 책이다.월터 윅은 ‘물 한방울’ ‘나는 찾아요’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사진동화 작가.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데서 책의 의미는 더 커진다.“너도 보이니?”라고 한마디 던진 뒤 사진 속에 숨겨진 사물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읽어주면 유아들도 쉽게 동참할 수 있을 듯. 책에는 모두 12장의 대형사진이 들어있다.노끈 사이사이에 장난감들이 빽빽하게 널려 있거나,나무상자 안에 레고 장난감들이 수북하거나,젤리 같은 투명 장난감들이 흰 종이 위에 가득하거나….‘구불구불 노끈’‘뒤죽박죽 상자 안’‘알쏭달쏭 카드놀이’‘뚝딱뚝딱 목공소’ 등 짧고 재미있는 소제목 아래 노랫말처럼 운율감 넘치는 단어들이 줄을 선다.‘은빛 해님 하나,얼룩덜룩 바둑강아지 한마리,용수철옆에 있는 꼬마 낙타 한마리…’ 흔한 장난감 사진들이지만 숨은 그림을 찾아내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어떤 건 어른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을 만큼 꽁꽁 숨겨져 있다.호기심 달래기에서 끝내지 않고 생각의 폭을 키우는 데도 신경썼다.‘조심조심 조립실’ 코너에서는 로봇을 완성할 부품들을 몽땅 다 찾아내야 한다.5세 이상.9000원. 황수정기자
  •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민속 ‘어린이박물관’ 문연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손님은 누구일까? 정답은 “어린이”다.그러나 어린이들은 가장 홀대받는 손님이기도 하다.교사나 부모는 “좀 제대로 둘러보라.”고 채근하지만,막상 어른들도 흥미를 갖기가 쉽지 않은 곳이 박물관이다.이해하기 어려운 전시내용을,잡담도 하지않으며 둘러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단순히 박물관이 ‘의무적으로 한번은 가야하는 곳’으로 인상지워진 결과는? 당연히 “박물관은 지겨운 곳”이라는 의식이 뿌리박히게 된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박물관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오는 17일 ‘어린이박물관’을 여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인식의 결과이다.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저 둘러보는 박물관’이 아닌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것. 이 박물관의 특징은 두 가지.하나는 체험학습을 중요시하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학교 사회교과를 반영한 ‘맞춤형 박물관’이라는 것.박물관과 학교 교육을 연계하여 어린이와 교사,학부모의 학습을 보조해주는 수업 도우미로서 기능한다.어린이들은 ‘뚝딱뚝딱 집을 지어요’‘소품으로 만져보는 옛날 어린이의 생활’ 등의 코너에서 진열장 밖으로 나온 민속자료를 실제로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다. 어린이박물관은 또 주 5일 근무제 실시를 대비하여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여가를 활용하는 문화공간이다.가족 단위의 어린이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어린이박물관은 1층 도입부가 30평,2층 전시실이 104평 등 모두 134평이다.도입부의 ‘우리들의 솜씨’코너에는 앞으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자료를 전시할 예정이다. 2층 전시공간은 ‘우리의 맛’ ‘우리의 집’ ‘우리의 멋’이라는 주제로 한국인의 의·식·주를 체계적으로 다룬다.전시내용은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 등의 자문회의를 거쳐 선정했다. ‘풍속화에서 찾아지는 농기구들’ ‘간장·된장·고추장 담가볼까요’ ‘김치를 만들어 볼까요’ 등은 영상을 이용한 간접 민속체험 코너다.전시공간의 핵심은 ‘한장 한장 집을 이어요’ ‘꽃담탁본뜨기’ 같은,만질 수 있고 만들어 볼 수 있는 민속체험코너다.‘우리 옷나라,우리의 멋을 아바타로 꾸며보세요’ 코너는 컴퓨터 세대가 민속을 가까이 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다. 어린이박물관은 학기중 평일 오전은 ‘박물관에서 배우는 사회교과’와 ‘우리문화한아름’ 등의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하고,오후는 인터넷 예약에 의한 어린이박물관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방학 동안에는 ‘어린이민속교실’ 등 프로그램과 예약에 의한 가족 단위 어린이박물관 체험으로 운영된다. 이종철 민속박물관장은 “어린이박물관을 ‘거만한 박물관’에서 ‘친절한 박물관’으로 가는 첫걸음으로 보아달라.”면서 “앞으로도 국민에게 다가가는 박물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한편 17일 개관식을 전후하여 ‘떡살찍어 떡 만들기’와 ‘풍물굿’ 등의 기념행사도 열린다.(02)734-1341. 서동철기자 dcsuh@
  • 4인조 포크 팝그룹 ‘메리 고 라운드’

    편안한 노래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우리는 이즈음 적지 않게 주고받고있다.정서의 주파수를 맞추기에 우리 시대는 너무 복잡다단해졌는가. 이런 가운데 노래가 지닌 서사성의 힘과 감수성을 올곧이 지켜내는밴드를 만난 것은 축복이라 할만하다. 지난 7월 데뷔앨범을 낸 4인조 포크 팝그룹 ‘메리 고 라운드’를 뒤늦게 만나보았다.음악전문지 ‘서브’에서 일하다 이젠 음반사 팝기획자와 밴드연주자로 ‘주경야독’을 하고 있는 김민규(기타 보컬·델리의 김민규와 동명이인이자 친구)와 여러 밴드의 세션으로 활약했던 도은호(베이스),미대를 나와 방송작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 사려깊고 시적인 가사와 풋풋한 목소리를 생산해낸 산비(본명 이영우)동갑내기 29살 세명에 씩씩한 막내 드러머 신승광의 합류. 이들을 만난 날은 태풍 ‘프라피룬’이 극성스럽게 거리를 뒤집던 날이었는데 4명의 멤버는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카바레’ 사무실에앉아있었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직장 친구들끼리 연주나 하는 거겠지’ 했단다.도은호가 가장 오랜 음악경력을 갖고 있고나머지 멤버들은 거의 ‘생짜’에 가까웠다.드럼과 베이스가 녹음하면 기타와 보컬은 주말에 ‘입히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모든 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일이고,느낌이 살아있는 연주를 하고 싶었어요.”(김민규)“완결된 상태에서 녹음을 한 것이 아니라 녹음하면서 만들어가는 편이었죠.”(산비)앨범의 중심잡기에 애를 먹었지만 프로듀서 이성문이 오다가다 ”괜찮아.그냥 그 느낌대로 가보자구”한 게 힘이 됐다.많은 음을 사용하기 보다는 단순하고 솔직한 소리를 내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고그런 점에서 앨범은 성공한 듯 보인다. 소속사 카바레는 이들의 음악에 ‘청춘군상을 위한 동요’라는 별칭을 얹었다.CD가 시작되면 우리들은 회전목마에 올라앉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느릿느릿 돌아가는 세상은 그 자체로 풍경화다.그 색채는선명함이 아니라 아스라한 정경 속에 정체를 감추고 있는 낯익은 기억들. 키보드와 어쿠스틱 기타가 앞장선 이들의 음악은 분명 21세기를 향해돌진하는 이들의 그것과는 반대로‘퇴행적’이다.‘아름다운 퇴행’이라고나 할까. 김민규는 “유럽의 민요같은 것을 좋아했어요.처음부터 다른 음악을하자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만의 음악을 하자는 건 분명했지요”라고 말한다. ‘로치’에선 징그러운 바퀴벌레도 너무나 예쁜 가사와 선율로 묘사되고 ‘달빛’에서 들려주는 산비의 말간 목소리와 김민규의 ‘힘’을 뺀 보컬의 교차도 귀에 박힌다.김민규는 “침대에 들 때 귀는 가장 솔직해진다”며 “취향을 배반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도했다. 사이키델릭한 포크 사운드와 팝적인 감수성의 결합은 분명 영국의 포크그룹‘벨 앤 세바스찬’과 미국의 천재 닉 드레이크에 잇닿아있다. 멤버들은 “즐겨 듣기는 하지만 부러 카피한 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메리고’는 오는 9일 오후8시 홍익대앞 쌈지스페이스에서 공연,다시 연주활동에 들어간다. 그들과 헤어지니 폭풍우가 더 거세졌다.하지만 마음 속에 돌아가던회전목마는 더 느릿느릿해지고 거리의 풍경은 더 살갑게 다가왔다. 임병선기자 bsnim@. *소속사 카바레, 독특한 노선 걷는 가수들 발굴. 메리고라운드의 독특한 사운드는 카바레라는 든든한 버팀목없이는 나오기 힘든 것이었다.산비는 “우리 앨범을 프로듀스한 이성문 사장에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96년 문을 열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로-파이 개념의 음반 ‘이성문의 불만’,볼빨간의 ‘지루박 리믹스쇼’를 발매해 주목받았다.로-파이란 정밀한 음질을 재현하려는 하이파이와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재현하려는 노력. 모든 걸 혼자서 ‘뚝딱뚝딱’ 수공업적으로 제작한 곤충스님 윤키의새 힙합선언 ‘관광수월래’를 냈고 은희의노을의 ‘칵테일’ 앨범등이 10월 나올 계획. 이 사장은 “많이 팔리는 음반이나 유행을 선도하는 음반이 아니라누가 들어도 새롭고 즐겁고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했다. 카바레가 계속하고 있는 지하철(월 1회)과 거리공연도 같은 맥락.오는 24일 오후4시 경복궁 지하철역에서 레이블 소속 밴드들이 대중들과 직접 어울리는 무대를 연출한다.문의 (02)325-5211,www.cavare.co.kr
  • 올 여름 흥행질주 ‘신바람 이박사’

    70년대식 장발과 반짝이 의상,그리고 ‘뽕짝’이라는 낡은 음악적 형식.어느것 하나 촌스러움과 거리가 멀지 않은데 오늘 이땅의 젊은이들은 테크노바에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뛰며 ‘뽕짝’이라는 숨은 대륙을 찾은 기쁨에몸을 떨고 있다. “안녕하세요.저는 대한민국의 호리호리한 신바람 이박사입니다.한번 만나볼까요.조오치.만납시다.띠리띠리리 띠리띠리리 짜라짜자잔 짜라짜자잔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강원도아리랑’이나 ‘신고산 타령’ 같은 민요부터 20년전 크게 유행했던빌리지피플의 ‘YMCA’를 개사한 ‘영맨’ 등 팝송, 거기에 트롯트 노래, 심지어 ‘한오백년’ 같은 구성진 가락도 한데 묶여져 빠르고 경쾌한 춤곡으로변신한다. 간주나 연주로 노래가 잦아들라치면 여지없이 ‘우리리리히’‘얼씨구’‘좋아좋아’‘미쳐미쳐’‘오예’‘이히’‘앗싸’같은 추임새가 휘몰아친다.영락없는 관광버스 음악.바닥이 뚫어져라 날고 뛰는 ‘아짐마’‘아자씨’들이눈에 떠오른다. 신바람 이박사(본명 이용석·46).그가 이 여름 인기가도를질주하고 있다.벌써 “사랑해요 이박사”를 외치는 팬페이지만 10개를 넘어섰고 첨단을 달린다는 압구정동이나 홍익대 앞 클럽에서 그를 잡기 위해 안달이다.신생 증권사의 CF에 등장했고 방송 인터뷰나 취재도 줄을 잇고 있다. 국내에서의 늦바람을 감지한 한국 소니사가 재빨리 전속계약을 맺고 일본에서의 히트곡들을 모아 지난달 국내 첫 라이선스 음반 ‘李博士-Space Fantasy’를 냈다. 그러나 국내 첫 앨범은 아니다.지금까지 낸 관광버스용 뽕짝 메들리 테이프만 19종.하지만 유통경로가 철저히 도로중심이어서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장년층에게만 그의 명성은 국한돼 있었다. 그런데 96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테크노적 가치를 감지한일본 소니의 판단이 적중,그의 인기가 치솟자 뒤늦게 국내에서도 그의 테크노적 유용성이 부각됐다.그가 일본에서 96년 발표한 ‘이박사의 뽕짝 디스코파트 1&2’와 ‘이박사 뽕짝 대백과’ 등을 젊은 팬들이 인터넷사이트에 MP3로 올려놓으면서 그의 이름이 급속도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뽕짝 문화에 낯설어하던 10∼20대들은 그의 음악을 “우리 테크노”“진짜 트랜스”라며 열광하며 환호한다.아니 넘어간다 또는 자지러진다. 트랜스는 테크노 음악의 하위장르.무의식 상태로의 전이를 뜻한다.키보드 하나 연주에 이박사의 목소리를 동원,다양한 애드립을 구사하는 데 그 독창성과 아이덴티티가 가히 세계 유일이다.어디에도 없는 음악.반복해서 들어보면트랜스란 말도 과장이나 허풍이 아님을 절감한다. 지난 달 21일 압구정동 클럽 셰도에서 열린 이박사 공연.70년대 장발에 빨간티셔츠,반짝이구두,반바지를 입은 이박사가 탬버린을 든 채 무대에 선다. 컬러링족들이 그의 추임새와 탬버린 소리에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세월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올해 초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영화 ‘거짓말’에서 테크노 사운드와 함께반복되던 남자의 목소리 ‘나는 육체의 환타지’도 사실은 그의 노래 ‘나는우주의 환타지’를 패러디해 만든 언더그라운드 가수 볼빨간의 곡을 테크노DJ 달파란이 샘플링한 것. ‘딸랑딸랑 방울뱀이 다가옵니다.짜라짜잔.먹이를 보고서 다가옵니다.당신을만나서 반갑게 강아지처럼 ‘왕왕’ 물어버렸네’(몽키 매직)‘귀여운 그대는 무얼 입었을까 삼각빤스 아니면 껌정 티’(하이스쿨 로큰롤)‘앞산의 딱따구리는 통나무 구녕도 잘 뚫는데 우리집의 구멍텅구리는 뚫어진 구녕도 못찾나’(신고산타령) 등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경쾌한 가사도 요즘 젊은이들의감성에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반짝이,머릿수건,7부바지로 대표되는 70년대 패션,여러 문화적 코드를 ‘촌스럽게’ 재조합하는 키치문화가 확산되면서 첨단을 달린다는 테크노바에서그의 촌스러운 패션이 음악과는 별도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편에선 이같은 그의 인기가,스타가 들려주는 감상용 음악에서 기능성 위주로 음악적 지형이 변모됐음을 함축하는 증거로 보고 있다. 한편 그의 팬클럽들은 12일밤,무박2일 일정으로 경기도 의정부의 한 농장에모여 이박사와 신나는 캠프잔치를 벌인다. 임병선기자 bsnim@. *이박사가 얘기하는 ‘이박사’.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지무지 궁금해한다.키는 160cm고 몸무게는 45kg밖에안나가.날아갈듯 가볍지.그래도 마이크만 줘봐.1∼2시간은 뽕짝만으로 노래부를 수 있다구.나 사실은 박사 아니야.박사학위는 커녕 중학교 졸업장도 없어.그런데 왜 박사냐.관광버스에서 노래부를 때 아줌마 아저씨들이 어떤 노래든 시키면 해낸다고 해서 붙여줬지. 회갑때 나를 낳으신 아버님은 국악을 하셨던 분이니 끼는 이어받았다고 봐야지. 아버님이 객사하시는 바람에 중학교도 못마치고 공부를 땡쳤다.요즘 애들은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아이스께끼’도 팔고 요정,양복점,다방 주방 등 10년동안 14개의 직업을 전전했다.양복점을 직접 운영해 여유가 생기자 삶이뜨악해졌다. 누가 관광버스 안내원하면 노래도 실컷 부르고 돈도 벌 수 있다고 그러대.그래 탄 게 11년이야.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관광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노래부르려니 힘도 들었지. 아는 형님이 너 판 한번 내봐라 하면 100만원도 받고 500만원도 받고,돈 상관없이 테이프를 냈지.음반낼 때는 두 시간도 좋고 한나절도 좋고 그냥 뚝딱뚝딱 만들어. 테이프는 많이 팔렸지만 손에 돈쥔게 있어야지.그래 회갑잔치나 캬바레를돌며 근근이 생활했지. 근데 내 노래를 일본 소니사가 눈여겨 보았던 모양이야.전속계약을 맺자고하대.난 지금도 테크노가 뭔지 몰라.하지만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반짝’ 떴지.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무도관 무대에 1만명을 모아놓고 노래도 불러봤고. 98년 돌아와 또다시 어르신들 모시고 회갑잔치에서 신나게 놀지.유행의 첨단을 달린다는 압구정동이나 홍익대 앞 클럽들에서 날 모시려고 해. 난 테크노니 키치니 그딴 어려운 거 몰라.그냥 노래부르고 사람들 박수받고그러면 기분좋아.좋아좋아.미쳐 미쳐.
  • 서울 캐릭터쇼 개막

    지난해 5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던 서울 캐릭터쇼가 지난 30일부터 오는 6일까지 8일동안의 일정으로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부근에 있는 서울무역전시장에서 개막됐다.(02)542-2053 www.charactershow.co.kr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한일합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가이스터즈’와한창 제작 중인 ‘힙합’,국내 최초의 한미합작 ‘스퀴시’ 등 애니메이션. 또 이날 함께 첫 공개된 가수 이정현의 3D뮤직비디오와 캐릭터도 관람객들의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핑크아루,단군할아버지와 12동동이,뚝딱뚝딱,도깨비 캐릭터 등 21세기를이끌어갈 국내업체 11곳의 캐릭터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딕 부루너 코리아등 외국 캐릭터업체들의 어깨겨룸도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 입장권은 (02)538-3200이나 www.interpark.com에서 할인예매 중이며 단체권은 행사 홈페이지에서 신청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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