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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게릴라 공연’ 강동구청 풍물패

    토요일인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여주휴게소에서는 난데없는 작은 소란이 빚어졌다. 뙤약볕 아래 징,꽹과리,장구 등 풍물놀이에 열을 올리며 여행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주인공들은 서울 강동구청 풍물패 ‘해마지’ 회원 19명.동아리 이름은 1996년 출범 때 우리 음악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며 나라의 희망을 키우자는 뜻에서 ‘해맞이’를 소리 나는 대로 붙인 것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강동구 성내동 행정타운에서 충북 충주호까지 왕복 약 500리에 이르는 투어 공연을 떠났다.상경 때까지 한 번에 40분,길게는 한 시간씩 휴게소 5곳 등 7차례의 공연을 펼쳤다.청바지,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판굿을 벌여 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첫 공연장소인 여주휴게소에서는 스모키의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Living Next Door To Alice)가 손님을 맞았다.풍물패가 나타나자,울진군에서 온 초로의 남성은 비디오카메라에 공연장면을 담으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얼마나 멋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문막휴게소에 이어 오후 4시50분쯤 도착한 치악휴게소에서는 강동구청 풍물패 공연이 열린다는 안내방송까지 흘러나왔다.“미리 알려주면 보다 많은 사람이 구경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막휴게소 직원의 조언을 따랐기 때문이다.풍물패 출현이 예고되자 각처에서 온 여행객은 물론 휴게소 식당,관리소 직원 등도 고개를 길게 빼고 시끌벅적한 놀이마당을 신기한 듯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오후 7시35분에는 목적지인 충주호 단양지구의 한 콘도미니엄 앞에서 한 시간 남짓한 공연으로 이렇다 할 즐길거리가 없는 행락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충주호 수변에 이어 치악·이천휴게소에서 판굿을 선보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산 오르記]대구 비슬산

    산중에도 벌써 무더위가 찾아와 있었다.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와 계곡에는 때 이른 한 무리의 피서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봄인가 싶더니만 어느새 여름이다. 비슬산(琵瑟山·해발 1083.56m)은 대구의 분지를 형성하는 대구 남쪽의 산이다.비슬산이란 이름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비슬이란 말이 인도 범어의 발음 그대로를 표기한 것이라고도 한다. 비슬산 산행 기점은 달성군 유가면의 유가사와 소재사가 있는 자연휴양림이다.유가사-정상-대견사터-휴양림 코스나 이의 역 코스가 일반적이다.유가사쪽에서 오르면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휴양림쪽에서 오르면 덜 가파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탓에 역코스를 택했다.휴양림이 있는 소재사 계곡은 아직 지난해 태풍 매미의 복구 공사로 포클레인 소리가 등산객을 먼저 맞았다. 비슬산에 들어서면 우선 등산화부터 챙기고 볼 일이다.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불쑥불쑥 튀어나온 등산로 암석에 발을 상하기가 십상이다. 소재사 계곡의 6월은 흡사 태풍전야의 모습과 같다.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부터 이곳은 더위를 피해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다.한번쯤은 자보고 싶은 통나무집의 올 여름 예약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평소에 미리미리 계획하고 부지런을 떨어야 피서도 좋은 곳으로 가는 법이다. 소재사 계곡은 여름이면 피서지로 인기가 높지만 겨울에도 얼음동산으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로 비슬산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자 계곡에 물을 뿌려 갖가지 모양의 얼음빙벽을 조성,사계절 명소로 만들었다는 게 공무원들의 자화자찬이다. 아마도 겨울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게 비슬산의 팔자인가 보다. 쏟아지는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계곡과 통나무집 사이로 난 포장길을 따라 30여분간 올라가면 낯선 모습의 암괴류(岩塊流)를 만난다. 암괴류란 큰 자갈 혹은 바위 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암석 덩어리가 산 경사면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 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한다. 비슬산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구성,장관을 연출할 뿐 아니라 발달규모가 대단히 커서 길이 2㎞,최대폭 80m,두께 5m에 달한다.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암괴류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면 제법 가파른 바위 등산길이 나온다. 40여분 울퉁불퉁한 암석들이 뒤엉킨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삼층석탑 하나가 하늘끝에 매달려 있는 대견사(大見寺)터에 다다른다. 산사의 절집치고 빼어난 조망이 자랑거리가 아닌 곳이 없다지만 대견사터의 조망도 수준급이다. 멀리 서쪽으로 낙동강이 햇살에 반사돼 반짝반짝거리고 거칠것 없는 넓은 현풍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견사터 주변에는 스님바위,형제바위,코끼리 바위 등이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널려 있다. 벼랑끝에 세워둔 삼층석탑은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고 혹시나 넘어질까봐 괜히 근심스럽다.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대견사의 존재는 지난해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 ‘대견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돼 실체가 확인됐다. 스님바위 앞에서 등산객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킥킥거린다.삿갓을 한 스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스님바위라고 이름 붙여 놓았지만 도발적인 남근(南根)을 쏙 빼 닮았다.정숙한 사람에겐 스님 모습으로 음탕한 사람에겐 남근으로 보인다 했던가.대견사터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대견사터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큰 바위덩어리 사이로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눈앞에 비슬산의 정상인 대견봉이 우뚝 솟아있고 참꽃 군락지가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봄에는 비슬산을 붉게 물들이고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인 30여만평의 참꽃군락지는 지금은 온통 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초록바다를 연상케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등산객들은 너도나도 그자리에 주저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바다에 넋을 놓는다.해마다 참꽃이 피는 4월말이면 이곳은 밀려드는 인파로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능선과 능선을 넘나들며 파도치는 참꽃구경은 못하지만 산행의 호젓함을 즐기기엔 오히려 지금이 적기인 듯 싶다. 시원한 산바람이 한줄기 지나가고 등산객들은 발길을 떼지 못하고 다시 깊은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여기서부터 정상인 대견봉까지는 4㎞,1시간 정도 걸린다.정상으로 가지 않고 조화봉(1034m)을 거쳐 유가사 쪽으로 바로 하산하면 3㎞,1시간40분이 소요된다. 하산하는 길.휴양림 입구에서는 임도를 따라 승용차를 산 중턱까지 몰고가려는 등산객과 이를 막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도로위에 있어야 할 자동차들이 산속 깊숙이 진출하게 된 것은 마구잡이로 이곳저곳에 산길을 낸 인간들의 업보가 아닌가. ●볼거리·먹거리 비슬산에는 유가사,용연사,소재사 등 고찰들이 수두룩하다.용연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조계단(보물 539호)이 있고 유가사는 절 뒤로 각양각색의 봉우리들이 돌병풍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소재사 계곡에 들어선 자연휴양림(053-614-5481∼2)의 통나무집에서 묵거나 야영도 할수 있다.현풍읍 상리에는 1730년에 만들어진 현풍석빙고(보물 673호)는 아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현풍읍내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대구방향으로 약 5분거리에 있는 약산온천(053-616-1100)은 칼슘과 중탄산 성분을 함유,수질이 부드럽고 혈액순환과 신경통 등에 효험이 높아 등산후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자연휴양림 입구의 보리밥 잘하는 집 목산촌가든(053-614-1435)은 단체로 찾는 이가 많다.현풍읍내에 위치한 50년 전통의 현풍 박소선 할매집곰탕(053-615-1122)의 국물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가는길 구마고속도로 현풍 나들목을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잘 정비된 비슬산휴양림 가는 길이 나온다.휴양림까지는 6㎞ 정도.휴양림 입구에는 대형 무료주차장이 있다.토·일요일에 한해 대구서부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601번 시내버스(1일 10회)가 휴양림까지 운행한다.유가사쪽에서 등산을 하려면 현풍 버스정류장에서 유가사행 시내버스(1일 8회)를 이용하면 된다.용연사쪽으로 가려면 대구서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836번(1일 8회)을 타면 된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참여와 선택/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곡우절 맑은 날/ 노오란 싹은/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 솥에서 데쳐내어 밀실에서 말리네/ 모나거나 둥근차 찍어내고/ 죽순 껍질로 안을 말아서 싸네/ 단단히 봉하여 바깥바람 막으니/ 찻잔에 향기 가득하다네” 곡우가 바로 코앞이다.텃밭을 손질하다 겨울을 이겨낸 배추가 노란 꽃줄기를 피워올리는 걸 보았다.때 이른 나비 한마리가 하늘하늘 춤을 추며 봄날개를 말리고 있다.일지암 차밭의 찻잎들이 물이 오른 듯 연둣빛 윤기가 흐른다.첫 물차를 딸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늘 이맘때만 되면 봄 처녀의 가슴처럼 설렌다.우주의 먼 시원으로부터 가슴으로 젖어드는 차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봄 햇살이 지나간 저녁무렵 차 한잔을 마시며 물오른 산야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함께 차농사를 일구는 ‘남천다회’ 식구들로부터 전화가 왔다.“스님 올해는 제때 비도 와불고 적당히 추웠응께 차 맛이 기가 막힐 것 같네요,잉.언제 첫 물차를 딸라요.” 해남 농민회 사람들로 5년째 함께 차밭을 유기농으로 재배해온 결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척박한 산비탈에 뙤약볕을 맞으며 어린차에 물을 뿌리고 햇볕을 가려주곤 했던 ‘어미같은 정성’이 깃들어 있는 차밭에 올해는 본격적인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수확할지,얼마나 경제성이 있을지는 우리에게 두 번째 문제였다.봄 여름 가을 겨울 너무 덮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비가 많이 오거나 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차밭에 몰려들곤 했다.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켜보다 달빛을 맞으며 막걸리 한사발에 맘을 놓던 그 정성으로 차나무들은 쑥쑥 커 나갔다. 다른 차밭들과 달리 철저한 유기농과 깊은 정성 덕인지 유난히 잘 자라 3년만에 시험용 차를 제다했다.첫 차를 만들던 날 남천다회 식구들과의 첫 시음회는 감동적이었다.차솥에 차를 덖어 움막의 황토방에 말린 후 벚꽃이 난분분하던 밤 지인들을 불러 놓고 시음회는 시작됐다. 찻주전자에 차물을 끓인 후 작은 찻종지에 푸르디푸른 찻물을 쏟아내던 순간 10평 남짓한 방안에 세상을 진동시킬 차향이 퍼져 나갔다.눈물 한 방울이 차향과 섞여내릴 때 3년간의 맘 고생은 어디론지 날아가고 없었다.차를 시음하고 딱 한줌씩 곱게 종이에 싸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들의 어깨 위로 별 소나기가 한없이 내렸던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땅은 우리에게 정직한 삶이 무엇인가를 늘 일깨운다.투자한 만큼 거두고 정성을 쏟은 만큼 그 소득은 돌아온다. 우리의 일상을 규정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참여와 선택은 국민들이 몫이다.그 몫은 무한의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다.혼란스럽다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명을 버릴 수 없듯이 참여와 선택을 통해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것이다.외면하고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선택할 때만 자신에게 희망은 찾아오는 것이다.새벽예불을 드린 후 하늘엔 언제나 새벽별이 반짝이고 있다.그 별은 시대의 가난을 헤쳐나온 우리민 족의 깊디깊은 희망의 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우리 민족에게 들씌워진 ‘정치적 가난’을 벗고 밝아올 통일의 신새벽을 열기 위해서는 우리 깊숙이 감춰진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참여와 선택을 통해서…. 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최근 중견 연기자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펴냈다.이 책은 지난 10여년 동안 소말리아 등 전쟁터에서 고통받고 굶주린 아이들을 보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공 때리는 기계로 전락한 주니어 골퍼에게 눈을 돌려보자. 국내의 주니어 골퍼는 3000∼4000명으로 추산된다.협회나 산하 연맹에 등록한 선수는 2000명 선이지만 골프를 막 시작한 선수를 포함하면 어림잡아도 두 배는 넘을 것이다. 전국 규모로 치러지는 골프대회의 상위 입상자에게 상급 학교 진학의 특전이 주어지는 것이 주니어 골퍼가 늘어나는 첫 번째의 이유겠지만 엄청난 돈과 명예를 거머쥔 타이거 우즈와 박세리의 등장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 결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선수는 얼마나 될까.학업을 전폐한 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닭장 같은 연습장의 한 귀퉁이에서 매일 500개가 넘는 공을 때리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심지어 굳은살이 박인 고사리 손을 보면 목이 메인다.도대체 골프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를 쓰고 매달리는 것일까.여름 방학에 몰려 있는 대회에 출전해 뙤약볕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때론 주위의 시선은 물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적이 좋지 않다고 아이를 때리는 아버지들을 보면 당혹스럽다. 늘어나는 주니어 골퍼를 둘러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레슨비 챙기기에 급급한 일부 몰지각한 프로,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티칭 프로를 쉽게 바꾸는 조급한 부모,이 과정에서 골이 깊어진 불신,학업 전폐를 방기하는 교사,이를 외면하는 교육제도 등등.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4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한 기본 방향은 골프를 포함한 체육 분야의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도달해 있음을 방증한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그러나 관행에 비춰볼 때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진행하기 위해 초등학생의 정상 수업,중·고생의 오전 수업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지도·감독하라는 지침이 실제로 지켜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지금 제주도에선 어린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제주도지사배 골프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설사 성적이 예상 밖으로 부진하다고 해도 절대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아이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그때 그 시절/우편 집배원 달리기대회

    믿을 것은 오직 튼튼한 두 다리뿐이다.1968년 여름 뙤약볕 아래 당시 체신부 소속 집배원들이 우편가방을 맨 채 달리기 대회를 하고 있다.‘대통령 하사 우승기 쟁탈 전국 통신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는 말이 통신경기대회이지 사실은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빨리 전달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행사다.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인생행로 바꾼 2인의 성공스토리

    올해 국내경기는 바닥을 모를 만큼 침체일로를 치달았다.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이라는 ‘오륙도’와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은 이미 옛날 얘기로 치부됐다.직장인이 38세면 명퇴 대상이라는 ‘삼팔선’이 신조어로 떠올랐고,이십대의 태반이 실직자라는 ‘이태백’도 나왔다.그러나 역경을 도전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많았다.연말을 맞아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 두고 난 다음,험난한 사회 적응기를 거쳤던 30·40대 이웃 2명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본다. ■제과점 운영 김유중씨 김유중(42)씨는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벌써 5년째다.겨울 새벽 바람을 가르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김씨가 도착한 곳은 서울 도봉구 창동의 제과점 ‘브레드 이쉬(Bread Yysh)’.언제 봐도 든든한 이름이다.네가족 이름의 영문 앞글자만을 따서 지은 간판을 보면 피로도 잊고 흐뭇해진다.제과점을 오픈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지난해 9월에는 상계역 앞에 2호점까지 냈다.직원만 8명,신선한 빵으로 인근에서는 이미 소문이자자하다. 그는 원래 빵과는 인연이 없었다.1988년 LG반도체에 입사,생산기술팀장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안정된 직장이었다.그러나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당시 현대반도체와 합병이 이뤄지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김씨는 한 가족처럼 지내온 자신의 팀원을 내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는 가슴앓이를 하다 결국 사표를 냈다.부인은 충격으로 앓아누웠지만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할 일이 없었다.전문성을 살릴 만한 재취업의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이런 그에게 둘째 형이 ‘힘들지만 해볼만한 일’이라며 제빵업을 권했다.팔순 노모는 학원비에 보태라며 쌈짓돈을 모은 100만원을 쥐어줬다.3개월 만에 제빵기술자격증을 땄지만 경험 부족으로 개업은 무리였다.그는 제과점을 전전하며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으로 경험을 쌓아나갔다.월급 60만원에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해 밤 8∼9시까지 일해야 하는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청소에서 설거지,빵판 닦기,재료 나르기 등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러나 60만원으로는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연봉 4000만원 이상 받았던 생활에 비하면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다.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위해 몰래 집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울음을 삼켰다.그 때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년 후 그는 개업을 결심했다.그러나 유명 브랜드 체인점을 열기에는 자본금이 턱없이 모자랐다.그는 대신 발로 뛰었다.사람이 많이 모이는 ‘목 좋은’ 곳을 찾아 여름 뙤약볕 아래 3개월을 헤맸다.결국 권리금도 없고 전세금도 비교적 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7월 창동에 1호점을 연 뒤 최근에는 2호점까지 냈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직접 땀흘려가며 배우면 못할 것이 없다.”면서 “내가 만든 빵만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있는 빵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포부를 다졌다. ■공인회계사 한신석씨 한신석(37)씨는 요즘 새로운 계획에 한껏 부풀어 있다.조만간 동료 회계사들과 함께 회계법인을 출범할 예정이다. 그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것은 지난 7월.‘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했지만 결국 이뤄내고야 말았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삼성그룹에 입사,신라호텔에서 직원 교육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불만이 쌓이다보니 업무에도 충실하기 어려웠다. 그는 결국 지난 97년 MBA유학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다.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곧바로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유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세번째 유산을 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던 그는 선배를 통해 보습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힘든 생활이었지만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99년 9월 태어난 첫 아이를 볼 때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0년 초 그는 공인회계사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로 책과 멀어진그에게 시험 준비는 만만찮았다.국사학과라는 대학 전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네 도서관과 독서실을 전전했지만 늦깎이 수험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학교를 가고,도서관을 가도 항상 외톨이였다.스터디 모임에 끼고 싶었지만 사전 지식이 부족해 같이 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가족이었다.아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다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첫 시험에 낙방한 뒤 2002년 1차에 합격한 데 이어 올해 7월 2차시험까지 통과했다.3년 만에 일군 성과였다. 그는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면서 “쉽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불만을 털어놓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8) 신경림-새로운 국가 독점과 민중의 위상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세상에는 높아서 높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낮아서 높은 사람도 있다.아니 이렇게 낮아서 높은 사람이 정말로 높은 사람이다.키도 작고 얼굴에는 굵은 주름,잔주름 골이 패어 뙤약볕 쐬며 이 장 저 장 돌아다니는 나이든 장꾼처럼 보이는 신경림 시인.그러나 그는 스스로 높이지 않는데도 가장 높은 시인의 한 사람이다.이런 일도 세상의 묘한 이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신경림 선생은 정릉의 한 아파트에 홀로 산다.혼자 지내시기 적적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워낙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하신다. 손자가 가끔 놀러 온다는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여간 귀여워하지 않으시는가 보다. 한 마디를 해도 속에 있는 마음이 다 보이는 것처럼 투명하게 하시기 때문에 사실은 그 안에 더 많은 것이 있는 줄 잠시 잊을때가 많다. “선생님 여름이 다 지나갔네요.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금년이 덜 더웠던 것 같아요.비가 많이 오고.그래도 여름이라고 섬에도 한번 갔다 오고 시골도 며칠 걸려서 갔다 왔어요.” “어디로……?” “전라도로 해서 경상도,강원도,충청도로 돌아왔지.버스 타고 다니는 재미로 한바퀴 빙 돌았어요.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다녔어요.” ●겉으론 소탈…속으론 깔끔 나는 선생의 서재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책이 많은데 참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선생은 이사온 지 1년 반쯤 되었다며 다른 사람 많이 주고 꼭 필요한 것만 들고 왔는데 그래도 찾기 힘들다고 하신다.역시 겉으로 소탈하고 속으로 깔끔한 분이다. “얼마 전에 내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가 MBC의 ‘느낌표’ 도서로 선정되면서 사람들이 무척 관심을 가졌던 모양인데요.시는 많이 쓰시는지요?” “가능하면 시 이외의 글은 안 쓰고 시만 쓰고 싶어요.시를 쓸 시간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시집은 언제쯤?” “당장은 못 내지만 내년에 전집을 낼 계획을 세우고있어요.”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선생께서 펴내신 책도 많더라고 했는데,선생께서는 인터넷 정보가 엉터리가 많더라고 하신다.당신이 직접 내신 책은 스무 권 정도라나.그러나 나는 선생의 취향이 겉보기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지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터다.예를 들어 요즘 인구에 회자하는 작가 황석영씨의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은 우리나라에 번역된 삼국지 판본들을 비교하면서 내심 다 평가를 하고 있지만 표현은 안 하시려는 태도다. 나는 선생께 드릴 짓궂은 질문을 준비해온 참이다.나는 웃으면서 말씀을 드렸다. “대통령 선거가 되면 후보들에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런 거 물어보잖아요? 시내버스 요금은 얼마고,전철은 얼마고,물어보지 않습니까? 저도 선생님께…” “시내버스는 700원이고 전철도 700원이지? 나이 먹으면 공짜로 타는데 나는 돈 내고 타요.카드 사가지고서.나까지 그럴 거 없지 않으냐는 생각 때문에.이번에 돌아다녀보니까 참 문제가 많아요.지방(시골)에 가보니까 한 70%가 결손가정이에요.부모 중에 하나가 없거나 부모가 둘 다 없어서 할머니 밑에서 크거나.굉장한 사회문제였어요.돈벌이가 없으니까 서울에 나가는데 서울에서 돈벌이 하다 보면 안 돌아와요.그러다 보면 아녀자들도 남편 따라서 도시로 나가는 거죠.아이들만 남아서 할머니 밑에서 크고.가난이 아직도 문제라는 거지.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해서,과장된 표현을 하면 이러다가 우리도 남미나 필리핀처럼 사회의 깊은 갈등으로 굳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IMF사태 이후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없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게 문학 “선생님 책이 많이 팔리는데요.그런 선생님께 서민들이나 민중의 삶에 관해서 여쭤보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생각해요.잘 살고 돈 많은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게 문학이 아니라.문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피해자일 수도 있고,소외 계층일 수도 있고,그런 사람들과 생각을 함께 할 때 문학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생각해요.또 어떤 면에서는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그런 게 위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상벽이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잠깐 숙연해졌다.짓궂은 질문으로 대화를 주제와 다르게 즐겁게 끌어나가려고 생각했건만 선생의 한 마디,문학은 없이 사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그만 다 잊어버린 듯했던,지나간 시대가 생각났던 것이다.요즘은 문학하는 마당에서 이런 말씀 듣기가 얼마나 어렵던가.‘삼국지’도 좋지만 문학이 문학하는 사람들만의 놀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할 만한 때인 것이다. “지금도 서민이라든지 민중이라는 개념이 유효하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옛날 같은 개념으로 똑같이 취급해서 서민이나 민중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요.그러나 오늘날에도 틀림없이 소외된 사람들이 많고 어떻게 보면 점점 더 이 빈부격차가 굳어지면서 옛날 같은 신분 상승은 더 힘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이 체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이라고 봅니다.” ●전지구화는 ‘빈익빈 부익부’ 조장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이 세계가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 구획이 되어서 계층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만나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히려 그런 기제가 더 정교하게 발달해 가고 있다는.” “지금 전지구화라고 하지만 전지구화라는 것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고 돈 많은 사람은 더 돈 많게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은 더 힘 있게 만드는 거죠.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거대해지고 약한 나라들은 더 조그맣게 되고.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간접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만.그래도 뭔가 삶의 태도 같은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우리나라의 경우 사람들이 뭘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빨리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요.천천히 하려는 생각을 잘 안 해요.전지구화가 되어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죠.그런 엄청난 경쟁사회 속에서 느리게 사는 것,천천히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될 것 같아요.그런 것이 적어도 아름답게 사는 것이라는 인식 같은 걸 환기할 필요가 있어요.천천히 살고,낮게 보면서 살고,마주보면서 살고,그래야 되죠.요즘 다들 목소리 높여 사는 것도 너무 급하게 살기 때문에 그래요.이거 아니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죠.” “신문이나 방송에서 워낙 큰 돈이 문제가 되다 보니 가치관의 혼란도 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라,이렇게 말하면 너 바보 돼라 하는 소리로 알아듣는다고 해요.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언젠가는 가장 잘 사는 것으로 통해야 하는데 뭔가 잘못된 거지요.그러나 세상이 불합리한 것은 그것대로 고쳐나가면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잘 될 거라는 인식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합니다.부패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돈 많이 못 벌어도 늙어서까지 편하게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모든 전직 대통령이 다 발을 못 뻗고 자지 않아요? 긍정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을 과도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로 가야지요.” “뭔가 다르게 사는 사람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남들이 생각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농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내 주변에도 상당히 높은 공직에 있다가 나와서 사업을 했는데 그 재산을 다 나눠주는 사람이 있어요.그런 사람들 보면 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잘못됐다 하는 생각은 안 하게 되죠.아직 사람들이 이웃을 생각하고 하는 걸 많이 봐요.” ●시민운동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일 주장해야 선생은 날카롭게 보시면서도 중용적인 데가 있다.말씀을 이어 요즘의 상황에 대해서도 옛날처럼 노동자는 선,기업가는 악이라는 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면서,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기 목소리만 높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밝히신다. 또한 시민운동도 큰 목소리만 낼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주장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러나 선생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이다.젊은 날에 못 가본해외여행을 요즘에 다녀보면 우리나라만큼 사는 나라도 드물고 이렇게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단다.그런 선생께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시(詩)가 살아갈 수 있다고 보시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진다. “시를 읽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시는 우리의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지요.또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등이 심하니까 시의 역할이 아직도 있다고 봐야겠어요.” 말씀을 마치시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여쭈어 보니,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에 읽어봤던 감동적인 책들,읽고 싶었는데 다 못 읽은 책들을 읽으려고 하신단다.나는 잔주름 맺힌 선생의 두 눈이 오래 저렇게 맑게 빛나기를 속으로 빌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시인 신경림 ●가장 낮춰서 가장 높은… 내가 재직하는 곳이 정릉동에 있는데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신경림 선생이 바로 정릉동에 사신다는 것이었다.친근하고도 단단한 말씀으로 집으로 오라신다.선생은 그렇게 소박하실 수가 없는데 정작 집을 찾아 들어가니 웬걸,선생 서재에 책이 너무나 정갈하게 꽂혀 있어 놀랐다.그런데도 선생의 연륜을 보여줄 만한 오래된 책은 정작 많지 않아서 궁금해 했더니,옛날에 군사정권 때 세 번씩이나 가택 수색을 당하고 좋은 책을 다 뺏기고 나서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새로 모으질 않으셨단다.그러고도 생겨나는 좋은 책들이나 서화들은 취미가 없어서 남들 다 주어버렸다고 하시는데,선생께서 무욕(無慾)하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또 새삼스럽다. 작년인가 선생께서 내게 당신이 쓰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보내주시면서 “방 선생,꼭 읽어 보시오.”라고 쓴 것이 우스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져 안 읽을 수 없었는데,늘 선생은 가장 낮아서 가장 높은 어른이다.인터뷰 마치고 선생께서 젊은 사람들 왔으니 고기라도 사주겠다고,어디 맛있는 고깃집 보아둔 데가 있으시다고,어딘가로 끌고 가서는 우리를 자꾸 먹이신다.덕분에 취재에 동행했던 시골 태생의 자취생인 작가 김신우씨가 배가 불렀다. ●사색으로 다스린 곡절 많은 삶 신경림은 길의 시인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몇 사람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1936년 충청북도 중원 출생,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초등학교 교사,출판사 직원 등 젊은 시절은 세상을 널리 익히기 위한 나날이었다.그가 나루터에서,장터에서,산 위에서 한 말들은 다 시가 되었다.시집 ‘농무’(1973)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세상을 낮게 살아오면서 많은 주옥 같은 시집과 산문집을 냈고 ‘민요기행’(1985),‘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998) 등 사람들에게 공감과 배울 것을 주는 책들을 엮어냈다.시집으로 ‘새재’(1979),‘달넘세’(1985),‘길’(1990) 등이 있고 199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시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그를 가난과 농민의 애환을 그린 시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바탕에는 꾸준한 독서와 곡절 많은 삶을 다스리는 사색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 휠레포츠 즐기는 ‘프리보드’ 동호회/바퀴 달린건 다 탄다

    네모난 침대,네모난 창문,네모난 문,네모난 조간신문,네모난 버스,네모난 건물,네모난 오디오,네모난 컴퓨터 TV….노래 ‘네모의 꿈’에 나오는 네모난 것들이다.가사에는 세상이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이지만 사람들은 동글동글한 바퀴에 빠져들고 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나 바퀴달린 신발 힐리스를 타는 모습이나,공원에서 컵처럼 생긴 ‘콘’을 놓고 이리저리 피하며 기술을 자랑하는 인라인 슬라럼을 즐기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때로는 묘기용 자전거 BMX로 온갖 기교를 부리거나,각종 바퀴달린 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또는 삼발이처럼 생긴 트라이크를 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모두가 바퀴,일명 ‘휠 (Wheel)레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울 올림픽공원을 찾아 ‘휠맨’을 즐기는 이종희(27·자영업)씨는 “처음에는 어떻게 타야할 지 몰라 많이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지만 익힐수록 매력에 빠져들어 헤어나질 못한다.”고 말한다.양 발을 바퀴 안에 넣고 스노보드를 타듯상체를 이동하며 타는 휠맨은 1개월정도면 회전이나 앞바퀴 들기 등 트릭을 구사할 수 있어 색다른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회사원 윤주호(29)씨는 차안에 스케이트보드,인라인 스케이트,힐리스 등 온갖 바퀴용품을 늘 싣고 다니며 언제,어디서나 여건만 되면 ‘출정’할 채비를 갖췄다.최근에는 알루미늄 막대 3개로 만들어져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전진하는 ‘트라이크’를 구입했다. “다른 바퀴용품이 스노보드의 느낌이라면 트라이크는 스키 느낌을 주는 레포츠”라며 “바퀴달린 것만 나오면 꼭 타보는 것이 취미 아닌 취미”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는 휠 레포츠 종목은 프리보드.언뜻보면 스케이트보드와 비슷하지만 바퀴 안쪽에 두개의 작은 바퀴를 덧달았다. 타는 방식이나 느낌이 스노보드와 거의 완벽하게 같다는 것이 마니아들의 의견이다.지난 4월초 국내에 처음 수입된 뒤 스노보드 동호회를 중심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카페 ‘프리보드 동호회(cafe.daum.net/freebord)’의 경우 개설 6개월 만에 회원수가 4200명을 넘어섰다. 플로랩,라이노 등 각종 바퀴제품을 접했다는 시삽 조래상(30·웹디자이너)씨는 프리보드가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재빠르게 구입한 나름대로 ‘최장 경력의 소유자’.“겨울이 아니라도 스노보드를 즐기고 싶어 각종 바퀴달린 것에 전전하다 프리보드에 정착했죠.타는 느낌이 스노보드와 가장 비슷하거든요.” 이들이 바퀴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머리칼이 휘날리는 스피드라든가,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언덕길을 내려오는 스릴 등.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경사로를 내려오는 기분이 짜릿하다.”는 애니메이터 최민경(25)씨는 “프리보드를 탄 뒤 온몸이 성할 날이 없지만 멋지게 턴을 하며 타는 즐거움에 자꾸 끌린다.”며 활짝 웃는다. 물론 보호대,안전모 등을 착용해 안전에 신경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최명찬(27·회사원)씨는 “프리보드는 경사로에서 즐기는 레포츠라 주로 남산 산책로나 월드컵공원에서 탄다.따라서 타는 중 가속도가 붙어 눈 깜짝할 새에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보호대를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내려쬐는 뙤약볕에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든가,몸이라도 다칠까 전전긍긍하는 약한 모습은 휠 마니아들에게는 남 얘기다.그래서 휠 레포츠의 진화도 계속되고 있다. 글 최여경기자 kid@ 사진 안주영기자 jya@ ●프리보드 스노보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기구로 스노보드 연습용으로 각광받고 있다.데크·바인딩·회전을 위한 센터휠·엣지를 위한 사이드휠 등으로 구성돼 있다.바인딩의 부착은 선택.가격은 길이에 따라 30만∼35만원.공식판매처는 ‘핸디인포’(www.free-bord.com·02-421-3888). ●휠맨 호주에서 발명된 익스트림 스포츠 전문용품.바퀴 가운데 있는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탄다.평균 시속은 15∼20㎞/h 정도로,바디에 연결된 공기 압축식 액셀러레이터로 속도를 조절한다.압축하면 속도가 올라가고 풀면 내려가는 식이다.스피드용이라기보다는 트릭용.연료는 무연휘발유와 엔진오일을 혼합해 사용한다.가격은 158만∼178만원. ●라이노 6년 전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1.7마력의 강력한 소형엔진이 장착돼 있다.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장착된 유선 리모컨으로 가속과 제동을 한다.웬만한 온·오프로드에서 즐길 수 있다.오르막길에서는 엔진을 이용해 올라가고,내리막길에서는 엔진없이 스노보드처럼 활강이 가능하다.70만∼80만원선. ●스네이크보드 스케이트보드를 두 개로 쪼개 축으로 연결한 모양이다.뱀이 기어가듯 지그재그 형태로 움직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보드에 발을 고정시킬 수 있는 바인딩을 부착하면 점프가 가능하며 경사진 언덕에서의 다운힐로 스릴이 넘친다.가격은 7만∼25만원,바인딩은 5만∼6만원. ●트라이크 밀거나 패달을 밟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흔들면서 전진하는 기구.세개의 바퀴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뒤에 달린 두개의 바퀴 중 하나의 바퀴가 힘을 추진하면 다른 쪽이 앞으로 나가는 물리적인 힘을 이용했다.스키의 활강과 스노보드의 트릭(기술이나 묘기)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어린이·성인·전문가용 3종으로 24만∼30만원.홈페이지 www.trikke.co.kr. ●플로랩 판자(데크)밑에 작은 바퀴가 7개씩 앞뒤 양쪽에 U자 형태로 달려 있다.94년 미국에서 개발돼 지난해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타는 방식은 스노보드와 비슷하다.크게 기울어지는 각도를 이용한 카빙턴도 즐길 수 있다.가격은 35만원선. 최여경기자
  • [길섶에서] 가을 꿈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이 있다.음력 칠월과 팔월이 ‘어정어정’ 하며 ‘건들건들’ 하는 사이에 후딱 지나가 버린다는 뜻이다.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나는 이맘때가 되면 농촌에서는 밭매기와 논매기가 거의 끝난다.한여름 뙤약볕 아래 산으로 들로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농부들도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즐긴다.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농촌에는 ‘호미씻이’라는 것이 있었다.여름 농사가 끝나갈 무렵 밭이나 논을 매는 호미가 필요없게 되어 하루 날을 잡아 씻어 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이 날은 집집마다 술과 음식을 장만해 산이나 계곡을 찾아 먹고 마시며 여름내 쌓인 피로를 달랬다.힘든 여름 농사를 탈 없이 마친 것을 자축하면서 비오듯 쏟은 땀이 알차고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했다.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여름이 또 쏜살같이 지나간다.서울 도심 한가운데 사무실에 쭈그리고 앉아 궁상맞게도 농부의 풍성한 가을 꿈을 훔쳐본다. 염주영 논설위원
  • 휴가 끝난 차량 관리요령/바닷가 장시간 운행뒤 도장·하체 점검 필수

    자동차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면 이제는 꼼꼼하게 차량을 돌볼 때다.뙤약볕 아래 장거리를 달렸거나 바닷가 모래나 염분에 노출되는 등 평소보다 무리한 차량은 점검이 필요하다.쌍용자동차 정비교육팀의 도움말로 무더위에 지친 차량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관리 요령을 알아본다. ●바닷가 운행하면 세차는 필수 험한 도로나 침수된 도로를 주행했을 때는 외부 충격과 잦은 부하변동으로 인해 오일 흐름의 변화가 클 수 있다.엔진오일 게이지를 뽑아 오일 수위가 L과 H사이에 있는지 보고 오일의 색도 살핀다.엷은 갈색이면 정상이다.시커멓게 변했다면 갈아야 한다.손으로 오일을 비볐을 때 찌꺼기가 없는지도 확인한다. 오일 팬과 라디에이터 부위 손상 유무를 체크하고 엔진 오일량 및 냉각수를 점검하는 것이 엔진 계통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이다.에어클리너도 확인해서 이물질과 수분이 있을 때는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름철에는 헤드라이트와 라디오 등 전기장치를 많이 쓰므로 배터리에도 무리가 가기 쉽다.점검창이 있는 무보수 배터리의경우 점검창이 녹색이나 파란색을 띠면 정상이다.투명한 하얀색을 띠거나 배터리를 2년 넘게 썼다면 상태를 측정하고 교환한다. 배터리와 함께 제너레이터를 돌리는 벨트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손으로 누를 때 탄성이 적당하면 정상이고 고무 찢어지는 소리가 나거나 표면이 상했다면 교환해야 한다. 바닷가에서 장시간 운행한 뒤엔 반드시 세차를 해야 도장의 변형과 차체 밑부분의 부식을 예방할 수 있다.실내 전장 부품과 전기장치가 많은 차량일수록 습기에 의한 부품의 오작동과 접촉불량에 의한 미작동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건조 유지가 중요하다.트렁크까지 점검,습기가 배어 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예방 정비 차원에서 전문가 진단 받아야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면 서스펜션 등 차체 하부가 상처를 입기 쉽다.밑받침 위치의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침수된 길을 운행했다면 조향 및 전·후 프로펠러 축 등의 이상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윤활유 주입에 신경을 써야 한다.자동차 하체를 세차한 뒤에는 차를 리프트에 올려 수리하거나 교체할 부분은없는지 살피는 게 좋다. 산이나 비포장도로 등 험한 길을 달리게 되면 외부 충격 및 차량 진동에 의해 휠 얼라인먼트가 바뀔 수 있다.주행 중 쏠림이나 이상 진동이 발생하면 타이어 공기압과 휠 얼라인먼트 등을 점검해 준다. 타이어의 마모 상태나 변형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위치를 변경하고 교환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정직하게 정비해주는 동네 단골카센터나 메이커에서 운영하는 정비공장 등을 예방정비 차원에서 찾아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윤창수기자
  • 청계고가 철거 한달 / 교통대란 없이 순조로운 진행 ‘이명박 도박’ 일단 성공

    “지난 한달간은 사실상 ‘전쟁’이었다.” 청계고가 철거로 서울 도심 간선도로 12차로(車路·고가 4차로는 일반도로 8차로에 해당)를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사상 초유의 ‘실험’이 당초 우려와 달리 별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청계천 주변 노점상과 영세상인들의 반발이나 친환경적 복원보다는 토목공사에 가깝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공사를 밀어붙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뚝심’이 일단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이다.철도파업 등으로 인해 ‘교통대란’이 우려되니 복원 공사를 늦춰달라는 정부의 요청이나 각계의 우려는 과연 기우였을까. ●도심 통행속도 큰 변화 없어 복원 공사 한달을 앞둔 30일 청계고가는 상판 제거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고,교통 소통도 큰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다.지난 한달간 서울시내 출근시간대 평균 통행속도는 시속 20.1∼24.4㎞로 청계고가 통제 전보다 오히려 빨라졌다.도심 속도도 18.8∼21.5㎞로 고가 통제전과 큰 차이가 없다.청계천 복원의 가장 큰 걸림돌로 봤던 교통대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불법 주·정차 단속에 매일 5400명씩 연인원 16만명을 동원하는 등 총력전을 펼친 결과다.고학력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던 ‘행정서포터스’ 3300명 가운데 2000여명을 주차단속원으로 돌리기도 했다. 시 본청과 각 구청의 교통담당 직원뿐만 아니라 예산,공보,감사,환경,건설,문화 등 모든 분야의 직원들이 7월의 뙤약볕 아래서 실·국별 책임구역의 불법 주·정차를 막은 게 효과를 나타냈다.20일 남짓 동안 31만 6000건이란 어마어마한 단속실적을 올린 덕분에 도심의 통행속도가 시속 2㎞ 이상 빨라진 것. 서울시 관계자는 “교통난을 완화시키자는 소극적인 정책이 아니라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서울시민들의 교통 문화를 바꾼다는 목표 아래 불법 주·정차 단속 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문화 개선으로 목표를 높인 것이다.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도 실효 그동안 수 차례 거듭됐지만 흐지부지됐던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도 모처럼 실효를 거두고 있다.7월 지하철 이용승객은 일일 평균 948만여명으로 지난 6월 953만명에 비해 조금 줄었다.하지만 통상 휴가와방학이 낀 7월 승객이 6월보다 5%정도 줄었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42만명 정도 승객이 는 것으로 추산된다.도심권 18개역 승객의 경우 7월이 157만여명으로 6월 152만여명에 비해 5만명이나 늘었다. 택시 2만대를 동원해 시내 4000여 구간의 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청계천로,왕십리길 등 18개 도로에 직접 측정 인력이 나가 승용차,트럭,버스 등 차종별로 실측을 하는 등 속도와 교통량 측정에도 공을 들였다.거미줄처럼 촘촘히 교통흐름을 감시하다 보니 문제점을 일찍 발견,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동대문지역의 지하철 동묘역 공사장 부근의 직진·좌회전 차로에 양방향 차량이 몰리면서 왕산로의 정체가 심해지자 당일 밤 10시 현장에 좌회전 차로를 신설했다.고가 철거를 위해 가림막이 설치되면서 청계천로가 편도 3차로에서 2차로로 줄어든 와중에 주변 상인들이 인도주변 차로에 조업차량을 무단 정차시키자 청계천로가 대혼잡을 빚었다.시는 상인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대신 곧바로 고가 교각사이로 1차로를 추가로 확보하는 ‘발빠른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방학·휴가 끝나는 8월 말이 고비 일방통행제,중앙버스전용차로제 확대,도로정비와 두무개길 등 우회로 확보,주정차 단속 등으로 큰 고비는 넘겼지만 휴가와 방학이 끝나고 늦장마가 시작되는 다음달 말부터 제2차 교통대란이 우려된다.청계천복원은 지난 82년부터 4년에 걸친 한강종합개발사업과 90년대 후반의 2기 지하철(5∼8호선) 100㎞ 동시건설 등 대역사(大役事)의 경험과 시민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한 고비를 넘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길섶에서] 미망

    꼭 25년전 여름 고교 동창들과 설악산에 갔다.강렬한 뙤약볕 속에 배낭을 메고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를 출발해 백담사·봉정암을 거쳐 최정상 대청봉에 올랐다.다른 이들의 등반일정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우리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당시 소청산장 관리인이 던진 찬사 때문이다.“10년 넘게 산장을 지켰지만 하체 장애인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2박3일의 강행군 끝에 오른 대청봉의 일기는 청명했다.멀리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북으론 금강산 비로봉과 해금강,원산항까지 손에 잡힐 듯했다.다리가 불편한 친구는 말했다.“산은 늘 올려다 보는 대상이었다.서울의 북한산도 못 올랐는데 설악산 정상을 밟다니….” 그는 지금도 비행기를 타면 가능한 한 창가에 앉아 밖을 내려다 보면서 사력을 다해 걷고 기고,그리고 친구들의 등에 업혀서 대청봉에 올랐던 감격을 되새긴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서 힘없이 덧붙였다.“설악산 정상에 올랐듯 온몸을 던져 구하면 찾으리라 믿었던 민주와 정의가 현실 세계에선 이룰 수 없는 미망인 듯해 안타깝다.”고 말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 신들린 ‘8자 스윙’ 퓨릭 US오픈 포옹

    |올림피아필즈(미 일리노이주) 곽영완특파원|하늘엔 구름 한점 없었다.코스엔 하루 종일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다.대회 개막 이후 처음으로 맑고 더운 날씨 속에 치러진 올시즌 미프로골프(PGA) 투어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US오픈(총상금 600만달러) 마지막 4라운드. 대회 코스인 일리노이주 올림피아필즈(파70·7190야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을 마친 타이거 우즈가 1번홀(파5)에 오르자 수많은 갤러리가 따라 붙었다.선두와 11타차인 공동 24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우즈가 첫홀에 오르기 전 코스내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엔 ‘역대 US오픈 최다차 역전 우승 스코어는 7타차이며,현재 우즈는 선두에 11타 뒤진 가운데 마지막 라운드를 맞는다.’는 설명이 나타났다. 우즈 역시 공격적인 플레이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첫홀 버디 이후 파 세이브에 급급했다.고개를 흔들며 아쉬워하는 우즈의 표정에서 역전은 어려울 것이란 웅성거림이 일었다. 예상대로 이날의 주인공은 우즈가 아닌 짐 퓨릭이었다.전날까지 합계 10언더파로 3타차 선두를 달린 퓨릭은 우즈가 11번홀까지 버디 2개,더블보기 1개,보기 2개로 무너지는 사이 2위 스티븐 리니(호주)와 함께 챔피언 조로 첫홀에 올랐다. 3타차의 여유 때문인지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5번홀까지 침착하게 파를 세이브한 퓨릭은 6번홀(파5)에서 첫 버디를 낚은 뒤 10번·12번홀(이상 파4)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14번홀(파4) 버디 추가로 여전히 10언더파의 선두를 유지해나갔다. 그 사이 추격자들은 제풀에 물러났다.동반자 리니가 버디 4개,보기 5개 등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쳐 4타차로 떨어졌고 합계 5언더파 공동 3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닉 프라이스(짐바브웨)와 비제이 싱(피지)은 전반에만 각각 4타와 5타를 더 치며 추락했다. 마지막홀(파4)에 올랐을 때 퓨릭은 17번홀에서 나란히 보기를 범한 리니에 4타차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3퍼팅으로 보기를 범해 2오버파 72타로 합계 8언더파 272타.역대 US오픈 최저타와 동타로 신기록을 수립하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날’인 이날 유일한 스승인 아버지 마이크에게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선사한 뒤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는 퓨릭의 눈가엔 이슬이 서렸다. 리니는 합계 5언더파 275타로 2위에 만족했고,마이크 위어와 케니 페리가 합계 1언더파 279타를 쳐 공동 3위를 차지했다.또 대회 2연패와 3승을 노린 우즈는 합계 3오버파 283타로 이날만 8오버파를 친 싱과 함께 공동 20위에 그쳤다. kwyoung@ ■퓨릭은 누구 |올림피아필즈(미 일리노이주) 곽영완특파원|제103회 US오픈골프대회 정상에 올라 생애 첫 메이저대회 왕관을 쓴 짐 퓨릭(33·미국)은 괴상한 스윙폼과 짧은 드라이브샷 때문에 실력이 저평가됐던 선수.퓨릭은 테이크백을 할 때 팔이 앞뒤로 흔들려 마치 ‘8’자를 그리는 것 같아 ‘8자 스윙’으로 불린다. 퓨릭은 장타자가 득세하는 현대 골프에서 단타자도 정교한 아이언샷과 섬세한 퍼팅만 받쳐주면 얼마든지 특급 선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퓨릭은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277.6야드로 PGA투어 전체 선수 가운데 140위에 불과하다.그러나 드라이브샷 정확도는 76.4%(5위),아이언샷 그린 적중률은 70.3%(13위)에 달하고 홀당 1.73개의 퍼팅 실력도 26위다.게다가 올 평균타수도 69.28타에 불과해 우즈(68.44타),마이크 위어(69.08타)에 이어 PGA투어 3위. 클럽 프로였던 아버지 마이크는 아들 퓨릭이 골프 선수가 되는 것을 꺼려 12살 때까지 골프채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때문에 풋볼과 농구를 즐겼던 퓨릭이지만 이미 7살 때부터 크로스핸드 퍼팅 그립을 쥘 만큼 골프 감각이 뛰어났다.애리조나대학 때 두차례나 ‘올스타’에 뽑혔던 그는 93년 PGA 2부투어에서 1승을 거뒀고 곧바로 PGA투어에 입성했다.95년 라스베이거스인비테이셔널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뒀고 이후 97년 한해만 빼고 해마다 1승씩을 따내는 꾸준한 성적으로 통산 7승을 기록했다.부인(태비사)과의 사이에 11개월된 딸을 두고 있으며 머리가 많이 벗겨져 좀체 모자를 벗지 않는 습관이 있다.
  • [씨줄날줄] ‘잡초론’

    노무현 대통령이 어버이날을 맞아 500만명에게 보낸 전자우편 공개편지에서 ‘잡초론’을 제기해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노 대통령은 편지에서 ‘대통령과 의원의 어버이는 국민’이라는 대전제 아래 개혁의 발목을 잡거나,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들거나,혹은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잡초로 지목했다.국민들에게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농부의 마음을 가져달라고 주문함으로써 잡초 정치인들의 정치권 퇴출을 겨냥했다. 흔히 잡초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이외의 풀을 통칭하는 말로,식물계의 천덕꾸러기이다.농작물이 자랄 공간을 차지하고,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작물의 생장을 방해한다.한여름 뙤약볕에서 농부가 잡초와 씨름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러나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종자의 수명 또한 길다.그래서 곧잘 끈질긴 생명력에 비유되기도 한다.우리가 하찮고 보잘 것 없지만,질기고 강한 생활력을 자랑하는 민초(民草)들의 삶을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속성에서 연유한다. 노 대통령이 잡초론을 피력하면서 의원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의원이 잡초과에 속하는지 알 길은 없다.그러나 정치권이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야단법석인 걸 보면 뭔가 켕기는 의원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도둑이 제 발 저리는 이치와 매한가지다.하기야 철새·구태 의원들의 지난 3년동안 의정활동을 꼼꼼히 짚어보면 잡초론이 뜬구름 잡는 얘기만도 아닌 듯싶다. 사실이 이럴진대,총선을 11개월 앞둔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클 법도 하다.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의원들 말고는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으리라.그렇더라도 하필 이 시기에 정치권과 쓸데없는 긴장을 야기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전쟁터에서 장수가 앞으로 나아가거나 물러서더라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하물며 한나라 국정 최고책임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또한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회존중 정신과 당·정분리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 같다. 잡초는 뛰어난 적응력이 밑천이다.자의적인 잡초론이 퇴출대상자들에게 역이용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정치는 때를 교묘히 활용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지않던가.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골프장은 각성하라

    골퍼로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규칙들을 클럽하우스 현관에 붙여 놓은 골프장들이 있다. 정장으로 입장할 것이며,플레이 중에는 깃이 달린 웃옷을 입어야 하고,모자와 허리띠를 착용하라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적어서 붙여 놓은 곳이 많다.더러는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은 목욕탕 출입을 금지한다는 무시무시한 협박문을 게시한 곳도 있다.또 페어웨이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1개월 입장 정지의 징계를 내린다,도박성 내기를 금한다,전반 9홀에서 55타 이상을 기록한 초보골퍼는 연습장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문구가 위용을 자랑하며 걸려 있는 곳도 있다. 나는 골프장에 항의하고 싶다. 옛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는 외국대사를 보고,“저렇게 힘든 일을 하인에게나 시키지.”라고 혀를 찬 임금님도 계시다는데,내가 4시간 넘게 뙤약볕 아래에서 곡괭이질을 한 품삯은 누구에게서 받으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비지땀을 쏟아가며 일한 일당도 못 받게 하는 악덕업자를 타도하자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고 싶지만,데모 품삯은 또 누구에게 청구해야 할지를 모르겠기에,나는 주위의 눈을 피해서 일당을 버는 방법을 쓴다. 내기를 할 때는 바둑알을 카지노의 칩처럼 쓴다.라운드를 마친 후에,바둑알 하나가 천원이냐,만원이냐를 따지느라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친구의 의리를 끊는 사건이 발발하기도 하지만,우리의 도박은 쥐도,새도,도깨비 팬티를 입은 캐디도 모른다. 또 있다.왜 문신을 한 사람은 목욕탕에 못 들어가게 하느냐는 말이다.제 몸에 제가 그림 좀 그리고,구멍 뚫어 고리를 걸고,실리콘이나 구슬 박아 넣는데,골프장측에서 무슨 도움을 주었는지 묻고 싶다.골프장은 반성하고,각성하라. 거의 모든 건물에서 실내금연을 실시한다.그러나 실내에서도 구멍에 넣었다 뺀 다음에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끽연을 한다.실내골프장이라면 이해를 해주겠다.하지만 골프코스는 산좋고 물좋은 야외에 있다.그런 곳에서 구멍에 넣었다 뺀 다음에는 무엇을 하란 말인가.‘쿵쿵따리 쿵쿵’이나 하란 말인가. 나도 아들녀석을 불러놓고는 근엄하게 타이른다.“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귀를 뚫거나 이상한 곳에 이상한 것을 넣을 요량이거든 이 엄마와 상의해야 하느니라.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니 섣불리 접근하지도 말 것이며,담배는 건강을 해치고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인이 박이면….”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선택2002/노무현, 그는 누구인가...소탈한 인간미… 소신 꺾지않는 승부사

    ‘원칙’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盧武鉉)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었다.가난한 어린시절,힘겨웠던 청춘은 그가 원칙을 만들어가는 꾸준한 여정이었다.고비마다 그를 지켜준 것도 원칙이었고,때때로 그를 눈물짓게 한 것도 원칙이었다. ◆‘당돌한 돌콩’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은 ‘돌콩’이었다.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아 얻은 별명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그의 작은 키만큼이나 ‘튀었다’. 경남 진영에서 10리쯤 떨어진 작은 농가.1946년 볼을 간질이는 가을 햇살이 한여름 뙤약볕을 대신할 무렵 작은 농사꾼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작고 누런 것이 형제 가운데 가장 볼품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힐 줄 아는 아이였다. 1960년 진영중 1학년.3·15부정선거가 한창일 때였다.수업시간에 ‘우리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그는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당시 중학생들만 해도 ‘이승만 독재’라는 말에 모두 익숙했던 터였다. 돌콩 노무현은 “야,이거 선거운동이다.전부 쓰지 말자.”며 친구들을 설득,모두 백지를 냈다.이른바 ‘백지동맹’이었다.결국 그는 이 일로 교무실에서 벌을 받으며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어린 시절,가난에 대한 그의 열등감은 매우 컸다.환갑이 넘도록 고구마순과 딸기를 이고 30∼40리 길인 마산까지 내다 파셨던 어머니.그는 지금도 “우리 동네는 까마귀가 와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간다.”는 어머니의 말을 되뇌며 당시를 회고하곤 한다. 이런 그에게 자신감을 키워준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다.가난한데다 키까지 작아 항상 위축돼 있던 ‘꼬마 노무현’을 선생님은 아끼고 다독거렸다. 그는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전교회장 선거에 출마했다.“작은 고추가 더 맵심더.”라며 호소한 것이 통했을까.그는 무난히 회장에 당선됐고,이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공사판의 고시준비생 가난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 전액을 지급해주는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졸업하면 곧바로 취직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교 시절 공부에재미를 붙이지는 못했지만 주산2급,부기2급 자격증도 땄다. 그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6년 ‘삼해공업’이라는 어망회사에서였다. 당시 한 달 일해서 받은 월급은 하숙비도 채 안되는 2700원.그는 사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달 반치 월급을 모아 헌 법률책 몇 권과 기타를 사들고 고향 진영으로 돌아왔다.“고시를 해보겠다.”는 각오였다.“첫 직장에서 얄팍한 월급 봉투를 보면서 고시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신분상승이라는 욕구도 있었죠.” 그러나 역시 그를 따라다닌 것은 가난이었다.사시 예비(자격)시험은 다가오는데 책 살 돈이 없었다.결국 그는 다시 일터로 향했다.이번에는 울산의 공사판이었다.일당 180원짜리였지만 그마저도 공치는 날이 많아 밥값도 모자랄 지경이었다.공사판 ‘함바’에서 가마니를 깔고 자며 주경야독하는 생활이이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발이 큰 못에 찔려 공사일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그는 결국 밀린 밥값 2000원을 놔두고 몰래고향으로 야반도주했다.그는 “그 때는 나중에 꼭 갚는다고 했는데 지금도 못 갚았어요.”라며 지금까지 아쉬워한다. 예비시험을 치자마자 그는 다시 공사판으로 달려갔다.야간작업까지 하면 일당 280원을 받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목재에 얼굴을 맞아 이 3개가 부러지는 불의의 사고를당해 그만둬야 했다.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는 ‘박박 긴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군번 51053545.1968년 3월 스물셋의 나이로 입대했다.강원도 원통 을지부대 GP에서 철야 정보상황병과 대대장 당번병으로 복무하면서 ‘박박 기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가난보다는 나았다.그는 34개월만에 만기제대했지만 월남에 파병된 동료들이 무더기로 병장이 되는 바람에 진급 티오(TO)가 없어 상병으로 제대했다. ◆인권변호사 ‘노변’ 그가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에 전념하게 된 것은 군을 제대한 후인 1971년부터다.고향 농사일을 도우며 공부한지 4년째,1975년 17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예비 법조인으로서의 그의 꿈은 전문변호사였다. 그러나1981년 10월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이었다.부림사건은 부산지역 학생과 재야운동권 인사 20여명이 독서클럽을결성,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다가 계엄포고령으로 구속된 시국사건이었다. 당시 부산 지역 최고의 인권변호사였던 김광일 변호사를 대신해 시작한 변호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변호인 자격으로 교도소에서 만난 한 학생은 ‘변호사 노무현’을 ‘인간노무현’으로 ‘변신’시켰다.“57일간 구금돼 구타·고문을 받았다며 보여준 온 몸은 시퍼랬습니다.겁에 질린 눈은 초점이 없었습니다.우리 아들도 머지 않아 대학에 가는데 이런 사회는 안된다는 생각이 번뜩 스쳐갔습니다.” 이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바르게 살아야겠다.비겁하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대학생들과 취미로 즐기던 요트도 그만뒀다.잘 나가던 조세전문가의 길도 접었다.그는 인권변호사 ‘노변’(노무현 변호사)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구속된 변호사 인권변호사로서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평소 맡아왔던 조세·회계 분야 변론 등 돈이 될 만한 변론도 뚝 끊겼다.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옳은길을 간다고 스스로 굳게 믿었다. ‘노변’으로서의 그의 활동은 눈부셨다.그의 활동무대는 이미 변호사 사무실과 재판정을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 87년 6월 시민항쟁 부산거리에서,대우조선 파업 현장에서,88년 현대중공업파업 현장에서,98년 현대자동차 파업 현장에서,그가 서있는 곳은 항상 약자의 편이었다. 87년 9월 대우조선 이석규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그는 임금협상과 보상 등의 문제로 노동자측에서 상담을 해준것이 문제가 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걸린 것이었다.다행히 23일만에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변호사를그만둬야 했다. 당시 그는 ‘잘못했다고 하면 불구속시킬 수 있다.’는 검사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억압”이라며 따르지 않았다.‘노변’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2002길섶에서]빈 들녘

    경남 삼랑진 야산에 평화의 집을 마련해 오갈 데 없는 정신질환자,행려환자들을 돌보는 오수영 신부는 초겨울 텅 빈 들녘과 앙상한 가지를 볼 때마다절로 겸손해진다고 했다.한여름 뙤약볕을 견디며 힘들여 가꾼 과실을 모두아낌없이 나눠줬다는 자연의 넉넉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오 신부는 이 때문에 유난히 ‘더하기(+)’와 ‘나누기(÷)’를 좋아한다.나눌수록 기쁨은 더한다는 뜻이리라. 대선 후보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안간힘이다.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밑 빠진 독에 끊임없이 탐욕의 물을 쏟아붓는다.남의 것을 가로채 쓸어담기도 한다. 하지만 오 신부는 수많은 병자성사(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마지막 성사)를 해 봤지만 미처 채우지 못한 권력이나 부,탐욕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한결같이 나눔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때늦은 후회를 쏟아냈다는것이다. 지금이라도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텅 빈 들녘을 바라보자. 우득정 논설위원
  • 北응원단 막내둥이 “열여섯살 맞아요”평양 음악무용대학 2년 채봉이양

    부산 체류 9일째를 맞으며 아시안게임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북측 응원단의 막내둥이 채봉이(16·평양 음악무용대 2년)양의 하루는 아침 6시30분 만경봉-92호 세면장에서의 ‘위생사업’으로 시작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채양은 북에서는 보기드문 외동딸이다.부리부리한 눈과 오똑한 콧날에 엷게 화장까지 한터라 20대 초반으로까지 보이지만 “열 여섯살 맞아요.”라며 몇번이나 강조했다. 위생사업을 마치면 정성스레 옷을 차려입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앞에 두고 예의를 갖춘(정성사업) 뒤 선상 식당에서 국,나물,잡채,불고기,김치 등의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든다. 오전 9시쯤 ‘딱딱이’,부채 등 응원도구를 챙겨 하선,아시안게임 조직위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한다.아침부터 북측 응원단을 보기 위해 다대포항에 나온 부산 시민들의 관심도 이제 낯설지 않다. 낮에는 경기장과 버스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안전과 시간상의 문제로 식당에 가는 것은 무리. 경기장에서 채양은 인공기와 부채를 흔들며 ‘잘한다.잘한다.우리 선수 잘한다.’,‘용기를 내어라.’,‘오늘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등 북에서 준비한 응원구호를 힘차게 외친다.여유가 생기면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는 관중석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북측응원단에 “정말 곱습니다.”,“통일합시다.”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잠긴 목으로 때로는 차 멀미에 시달리며 녹초가 되어 만경봉-92호로 돌아오면 어느덧 밤 10시.연일 계속되는 강행군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거나 뙤약볕 응원으로 탈진 직전인 동료들이 자꾸 늘어간다. 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욕실에서 차례를 기다려 목욕을 한 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채양은 조원들이 모인 가운데 하루를 정리하는 이른바 ‘총화사업’으로 공식일정을 마무리한다.처음에는 공식일정 뒤에도 노래와 춤을 즐기거나 북에서 가져온 비디오 테이프를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대포의 파도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자리에 든다. 부산 이두걸기자 douzirl@
  • 문학지 추천 시인들 ‘시작시인선’ -아웃사이더들 ‘흥겨운 반란’

    반란은 흥겹다.더구나 주류가 아닌,아웃사이더의 모반은 더욱 그렇다.가령 우리 현실인 자본주의의 거대한 집체에 맞서는 개인 혹은 소수집단의 결의는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그것이 어금니 앙다문 주먹다짐이든,애무같은 음모이든,무언가 크고 강한 것에 맞서는 일은 유쾌한 일이다. 이 저항은 단선적이지 않다.1980년대의 노사 혹은 계층간 갈등을 넘어선 저항,이를 테면 구조적으로 자본과 체제에 종속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원하는 시적(詩的)전위성이거나 현실로부터의 일탈혹은 각성의 매질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출판사 ‘천년의 시작사’가 젊은 시인들의 ‘뼈있는 작품’들을 모아 펴낸 ‘시작시인선’이 시선을 끈다.기존의 낱권 출판 관행을 깨고 한꺼번에 7권을 펴냈다는 점도 재미있고,목적시는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시’라고 제시한 기준도 청량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이번 1차 출간에 단행본으로 시집을 낸 김형술 주종환 한혜영 조항록 정병근 이영수 등 6명이 모두 신춘문예 대신 문학전문지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라는 점이다. 합동시집으로 엮은 1권에도 추천시인인 맹문재 문혜원 허혜정 등이 포함돼있다. 이들의 시를 읽자.‘어떤 예고도 없었다/내가 지나가는 밤의 전기가 나갔다/꿈의 코드가 빠졌다’(김왕노의 ‘정전되는 얼굴’중)거나 ‘뱀이,돌에 옆구리가 짓이겨진 뱀이/풀밭 위를 어지럽게 내달리고 있다/뱀의 숨가쁜 숨결에 풀들이 허겁지겁 질린다’(김충규의 ‘헉-,혀를 떨면서’중)는 확실히 현실 부정적이다.지속되어서는 안될 정전 상황과 교활한 강자의 이미지를 가진 뱀의 도주가 인과의 뿌리를 맞대고 있다. ‘세상 변두리 후미진 그늘에 숨은/두텁고 드높은 담장 속의 집/불현듯 눈앞에 들이미는 눈보라/하염없이 쏟아지는 겨울 아침/비로소’(김형술의 ‘눈오는 날,마산교도소’중)와 ‘선탠으로 그을린 여인의 초현대적인 피부빛과/뙤약볕에서의 노동으로 타버린 시골 농부와/막일꾼의 그 전근대적인 피부는/각각 성적 매력을 이용한 신분상승과/죽을 고생의 류머티스 신경통으로 이원화된다’(주종환의 ‘갱제 둘’중)에는 갇힘과 해방,상층과 하층의 대치와긴장이 팽팽하게 살아 있다. ‘십수 년 전에 죽은 김득구가 쓸쓸하게 웃음을/보입니다 으으 죽어서도 버티는 김득구/만신창으로 깨진 몸뚱이 다 보여주어도/끝내 화석처럼 붙박인발바닥만큼은/보여주지 않습니다 참으로 지독한 복서입니다’(한혜영의 ‘지독한 복서’중)에서 읽히는 절망감은 ‘지독한’희망이기도 하다.‘지금쯤은 남쪽 바다에 계실지도 모를 할아버지는 물이 땅의 탯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한 사람이 죽으면 실개울이 되고 백 사람이 죽으면 강이 되어 바다는 더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힘.그래서 큰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한동안 쑥대도 우람하게 자란다고 하셨습니다.’(조항록의 ‘유언’중)는 확실히희망이다. 정직한 힘은 현실의 전복이라는 믿음도 있다.‘황소는 자전거 속에 뿔을 숨기고 있다/바람처럼 달려 보면 한번씩 그 뿔을/언뜻 보여준다/불켠 눈으로 비탈길을 내달리는/황소’(이영수의 ‘황소는 고집이 세다’중)나 ‘내가 죽인 하찮은 목숨들이/거기 황금 궁전을 지어놓고/나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 보아라 네 죄가 없느냐’(정병근의 ‘노을’중). “진지하게 시를 쓰고 있지만 학연·지연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인해 소외받는 시인들을 찾아내어 한국 시단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맹문재 시인의 ‘뿔’은 이런 점에서 하나의 선언이다.‘사람들은 식당이나 대합실에서나 열차에서나/심지어 목욕탕이나 교회에서도/뿔을 갈아대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뿔로 정치인의 배를 쿡쿡 찌르고/나무를 죽이는 결재서류를 내팽개치고/돈을 움켜쥔 판사들의 손을 멍들게 하고/포주들의 얼굴을 절구질하듯 찧는 것이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소리축제와 ‘행복한 고민’

    어디로 갈거나? 안숙선의 ‘득음의 경지’를 엿보기 위해 전통문화센터로 갈거나,필리핀 최고 합창단의 환상적인 화음에 취하기 위해 전동성당으로 갈거나? 가야금 명인의 연주를 보고 싶다는 딸아이를 따라 갈거나,체코의 비발디 체임버를 고집하는 아내를 따라 갈거나? 기승 부리는 늦더위에도 불구하고 한참 이런 ‘행복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새롭게 단장한 전주세계소리축제 덕분이다.잡다한 프로그램을 잡화상 식으로 늘어놓은 작년의 시행착오,그 엄청난 예산낭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소리축제이니 만큼 판소리를 중심에 세운 것이나,이를 근거로 세계의 ‘목소리 음악’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구성이 우선 듬직하다.판소리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는 집중기획과 ‘세계의 합창’기획도 축제의 당위성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거기에 ‘미지의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의 민속음악을 소개한 것과 명상음악이라는,축제거리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메뉴로 일정한 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려 한 것에서는 예지를 겸한배려의 정성마저 엿볼수 있다.이러한 정신은 어린이나 청소년,그리고 장애우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에서도 확인된다. 더욱 반가운 것은 소리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과,전통문화의 중심지로 새롭게 떠오르는 ‘전통문화특구’가 축제의 두 축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번잡함이 한결 줄었다는 점이다. 하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우선 무더위와 태풍이 도사린 8월 말을 축제시기로 택한 점이다.그 많은 야외공연을 준비하면서 뙤약볕이나 우천을 감안하지 않다니….게다가 이 시기는 개강과 맞물려 있어 대학생들이 축제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다.우리문화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젊은이들은 도외시하겠다는 것인가? 또 하나 ‘업혀가기’프로그램의 비중이 너무 높은 것도 섭섭하다.이번 축제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 그 명분을 크게 손상하는 일이다. ‘우리의 소리’가 빠져버린 전야제를 비롯한 대규모 야외공연의 연출이 치밀하지 못한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2002명의 대규모 합창단에 붉은 옷을입힘으로써 본의 아니게 나머지 관객들을 소외시킨 점,공연시간이 너무 늘어져 많은 관객이 빠져나간 후에야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진행된 점 등도 좀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제행사를 표방하면서 통역을 위한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조직위부분 단위들의 협조가 유기적이지 못한 점 등도 하루 속히 극복해야할 과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첫술에 배부르기를 바랄 것인가? 방향과 정체성을 바로 잡았다면 이러한 점들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점차 해결해 나갈 수 있다.두살배기 어린이에게 달리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비판에 앞서 애정 어린 관심과 참여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행복한 고민’에 빠질 내년 가을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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