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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뙤약볕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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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값 치솟아도 ‘가난한 금광국’

    금값이 26년 만에 온스당 700달러선을 넘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금을 캐는 중남미의 국민들은 박봉과 환경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11일 지구상에서 접근 가능한 금광으로 가장 많은 매장량을 보유한 온두라스의 산 마르틴 금광이 다국적 광업회사 글래미스 골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온두라스는 서반구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국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벌판에서 하루종일 일해도 2달러밖에 받지 못한다.1998년 허리케인 미치의 여파와 해외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새 광업 규칙의 도움으로 글래미스 골드는 산 마르틴 금광을 임대했다. 금광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루이스 아르티가(95)와 같은 지역 주민들의 항의를 잠재우기 위해 금광 옆에 있던 마을을 통째로 옮겨버렸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당 3∼4.5달러를 주는 일자리 200여개만을 줬을 뿐이다. 6년 전 알도 산토스 검사는 10개월의 수사 끝에 글래미스 골드를 삼림 벌채, 수질 오염, 수로 및 도로의 불법 진로 변경 등의 환경문제로 고발했다. 회사 간부 3명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다국적 광업회사는 전직 장관과 언론 등을 끌어들여 온두라스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금광은 세계 최악의 오염산업으로 불린다. 금 1온스를 생산하려면 30t의 유독성 폐기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금을 추출하려고 채석광에 희석된 청산칼리를 쏟아붓는 퇴적침출법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주민들은 청산칼리로 인해 피부병과 탈모에 시달리고 있다. 네바다에 본사를 둔 글래미스 골드는 올 1·4분기 이익이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668%나 늘어났다. 금값이 오른데다 과테말라의 새 금광 덕분이다. 과테말라의 금광은 세계은행으로부터 4500만달러(약 450억원)를 빌려 개발됐다. 과테말라 국민들에게는 단지 160개의 새로운 일자리만 창출됐을 뿐이다. 캐나다의 환경단체 라이츠 액션은 “다국적 회사가 개발도상국의 자원을 착취하는 개발 모델이 문제”라면서 “중남미에서 운영되는 광산은 자국민들에게 혜택은 없고, 환경문제 등의 해악과 인권 착취만 있다.”고 주장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쟁기자국 농지에 軍천막·굴착기

    9일 하늘에서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는 거대한 군사작전 지역의 면모가 역력했다.논둑길 군데군데 주저앉아 있는 헬기와 트럭, 굴착기 등은 이곳이 ‘처녀 군용지’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부지의 북서쪽을 휘감고 도는 안성천변에는 군 장비를 실어나르는 ‘뗏목형 선박’ 2대가 정박해 있는 모습도 들어왔다. 하지만 바둑판 모양의 전답 자체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채 농지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지이전에 반대하는일부 농민이 쫓겨나기 직전까지 갈아놓았던 쟁기자국이 여전히 가지런했으며, 드문드문 미리 파종작업을 해놓았던 보리밭이 푸른빛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박종달(중장) 수도군단장은 “시위대와의 충돌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취재진을 실은 군용 헬기가 둑길에 착륙했을 때 가장 먼저 마중나온 것은 ‘뙤약볕’이었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농경지 평야에서 장병들은 한여름에 버금가는 폭양에 고스란히 살을 태우고 있었다. 둑길에 흙더미를 덮어놓은 듯한 낮고 작은 천막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장병들이 잠자는 텐트였다.3∼4명이 겨우 기어들어가 새우잠을 잘 만한 크기였다. 아직 급수가 제대로 안돼 3000여명의 장병들은 맘껏 씻을 수 없다. 인근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에서 지원받는 ‘물탱크 차’가 오면 거기에 달린 수도꼭지로 세수를 하는 정도다. 전기도 아직 없는데, 곧 캠프 험프리에서 끌어올 예정이다.식사는 각 부대별로 직접 지어 먹는다. 이동용 화장실 90개가 설치돼 있으며, 군의관 14명과 간호장교 3명도 지원병력으로 상주하고 있다. 민가와 인접해 있는 곳에는 철조망이 두겹 세겹 둘러쳐져 있고 그 중간에 해자(垓子) 역할을 노린 참호가 파여 있다. 철조망 안으로는 보호장구를 착용한 군인들이, 그 바깥에는 전경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시야에 없는 시위대보다는 연신 내려 꽂히는 뙤약볕이 더 힘에 겨운 듯 장병들의 표정은 기진해 있었다.평택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월드이슈] 이민법 시위로 본 히스패닉 파워

    [월드이슈] 이민법 시위로 본 히스패닉 파워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던 미국이 거센 ‘히스패닉 파워’로 들끓고 있다.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라틴계 이민자 주축의 반이민법 시위가 의회의 갈지자 걸음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2의 민권운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없으면 미국 경제의 미래도 없다는 호언도 나온다. 정부와 기업도 이래저래 눈치보기에 바쁘게 된 히스패닉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히스패닉 파워의 원천은 무엇보다 폭발적인 인구 신장에 힘입고 있다.2004년 전체 인구 2억 1200만명 중 4130만명으로 14.1%를 차지,12.2%에 머무른 흑인을 제치고 제2 인종으로 부상했다. 같은 해 7월을 기준으로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백인이 0.8% 늘어난 반면, 히스패닉은 4배가 넘는 3.6%의 폭발적 신장세를 기록했다. 영어는 ‘진공청소(vacuum)’ 한마디나 고작 내뱉던 이들이 어느 날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자던 거인 깨우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반이민법 시위를 계기로 거대한 히스패닉 이민 사회가 완전히 눈을 떴다는 분석 기사를 냈다. 그동안 인구가 적은 아시아계 이민자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작았던 이들이 이민법 논란을 거치면서 ‘제2의 민권운동’으로 키워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걸출한 지도자는 아직 없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흑인 노예와 같다.”고 절규하는 히스패닉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이민법 개정 요구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상원 법사위에서 친이민법 통과를 추진했던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도 10일 워싱턴 집회에서 “반세기 전 흑인 민권운동을 떠올리게 한다.”고 감격해했다. 정·관가 진출도 이미 어느 정도 진전돼 있다. 앨버토 곤살레스 법무장관, 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헥터 바레토 중소기업청장 등 현직 장관급만 3명이다. 특히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반이민법 시위에 강력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상원에서의 부결 사태는 이민 노동자들을 들끓게 했다.5년째 플로리다주의 뙤약볕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는 멕시코계 리고베르토 모랄레스(25)는 “우리는 일하러 왔을 뿐”이라며 “범죄자가 아니다.”고 흥분했다. 그는 의회가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애써 분노를 삭였다. ●11월 중간선거 심판론 대두 분노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히스패닉의 투표율이 크게 올라갈 전망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이민자권리 단체의 앤젤리카 샐러스는 “앞으로 거리의 함성을 어떻게 투표로 전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히스패닉의 40%만이 투표권을 갖고 있다.20% 정도는 불법체류자여서 투표할 수 없고,33%는 아직 어려서 투표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선거에서 이들이 투표한 경우는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이들의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승리한 뉴멕시코주의 경우, 인구의 43%가 히스패닉이지만 투표권자는 16%에 불과했다. 만약 시민권을 획득하는 자가 늘어난다면 부시 대통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따라서 불법체류자들이 점진적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허용한 친이민법을 공화당 일부가 저지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공화당 아성인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도 히스패닉이 20∼30%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투표권자는 9.6%와 6.2%에 머물러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밖에 네바다, 콜로라도, 플로리다, 유타주 등에서 부시가 승리했지만 히스패닉 유권자가 10%를 넘는다고 전했다. 또 민주당과 공화당의 박빙 지역들은 아주 적은 히스패닉 주민도 표를 결집시킬 경우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불법이민 자녀 18세만 되면… 이민자 운동을 이끄는 단체들은 6월 밀워키에서 전미 콘퍼런스를 계획하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대규모 보이콧도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도, 일터에도 안 나가 ‘이민자 없는 하루’로 본때를 보여줄 심산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분산돼 있다. 킹 목사도, 지난날 서부 농장 노동자를 조직한 멕시코계 케사르 차베스 같은 인물도 없다.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 대학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구심점이었다. 이번 워싱턴 집회만 해도 60개 이상 단체가 제각각 참여했다. 지역 커뮤니티, 노조, 사회단체, 스페인어 방송 등이 총망라돼 한마디로 풀뿌리 네트워크에 의존한 시위였다. 시민권 획득이라는 ‘장기전’에 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서부 투표자 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안토니오 곤살레스는 “우리의 ‘화력’은 젊은이들”이라며 “미국에서 태어난 수백만명의 라티노가 18세가 되는 날을 고대하라.”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부모는 투표권이 없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헌법에 보장된 속지주의 때문에 시민권자로 이 나이가 되면 투표권이 주어진다. 공화당 일부에서 속지주의를 희생해서라도 불법이민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높은 구매력·값싼 노동력 기업들 “히스패닉 모셔라”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의류업체 ‘갭’은 히스패닉계 경영학석사(MBA) 출신과 재학생 모임인 ‘NSAMBA’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히스패닉 고객들의 취향을 꿰뚫어보는 인재 확보도 확보지만, 미래의 히스패닉 재목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장기적인 매출 증대도 꾀하는 것이다. 화장품 회사 셰브론이 히스패닉계 구직 네트워크로 유명한 ‘소모스(somos)’의 스폰서를 맡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 기업들이 이렇듯 히스패닉에 구애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구매력, 특히 급격히 늘어나는 청소년 소비자의 팽창을 염두에 둔 결과다. 미국 내 히스패닉 주민의 절반이 27세 이하라는 통계가 있다. 지금 10대가 결혼해 아이를 낳는 2050년쯤 백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는 경고도 나와 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히스패닉을 결코 홀대할 수 없는 셈이다. 이들의 구매력은 2003년 8000억달러(약 8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의 19%가 컴퓨터를,30%가 개인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구매력도 백인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1990년대 초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영향으로 이 시장은 중남미 진출을 타진하는 기업들의 생존력을 시험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히스패닉만을 위한 유선방송은 히스패닉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고취하는 수준에서 한발 나아가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 드라마를 제작, 역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을 미국 기업들이 놓칠 리도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물론 주정부 차원에서도 스페인어를 권장하는 곳이 늘고 있다. 제2 언어 대접을 받고 있으며 ‘스팽글시’란 ‘교통어(Lingua Franca)´가 등장한 것도 오래 전 일이다. 뉴멕시코주와 마이애미시는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퓨히스패닉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워싱턴 주변 310만명의 노동자 가운데 30만명이 불법체류자다. 통계는 없지만 히스패닉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이 일순간 이 일자리를 포기한다면 건물의 51%가 쓰레기 더미에 파묻힐 것이며, 건설 현장의 31%가 작업을 못하게 될 것이고, 식품점과 식당의 22%는 문을 닫게 된다. 급증하는 히스패닉 인구는 허드렛일자리에서 저숙련 백인 노동자를 쫓아낸 데 이어 숙련 노동자로 옮아가는 추세라고 일간 USA투데이가 11일(현지시간) 지적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외국에서 변호사와 의사·회계사 등을 수입할 경우, 미국으로선 한해 2700억달러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비키니 하객들 몰린 결혼식

    비키니 하객들 몰린 결혼식

    새하얀「드레스」의 신부 얼굴은 이미 새까맣게 분장되어 있었다. 좀 허탈스러워 보이는 신랑 역시 구리빛으로 그을은 얼굴로 신부곁에서 바싹 「폼」을 곤두세웠다. 주례는 엄숙하게도 「팬츠」차림- 「비키니」의 賀客(하객)들이 뙤약볕아래 열심히 모여들었다.『그럼 지금으로부터…』역시 반라의 사회자는 쓰윽 한번 이마의 땀을 쓸어냈다. 8월6일「바캉스」가 뒹굴던 萬里浦(만리포) 해수욕장에서는 한국 최초의 臨海(임해)결혼식이 해조음의 장엄한「웨딩•마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성대히 베풀어졌다. 극단「架橋(가교)」의 집단 바캉스 예식 하루전에 사발 통문 신랑 李昇珪(이승규•30)군. 신부 金素野(김소야•25)양. 공식 초청객은 극단「架橋(가교)」의 전「멤버」와 극작가 李根三(이근삼)씨 내외. 이밖에 40, 50명의 벌거숭이들이 말하자면 不請(불청) VIP가 되어, 이 매력적인 해변의「웨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랑 李昇珪군은 극단「가교」의 대표이자 연출자. 신부 金素野양 역시「가교」의 홍1점「히로인」.「가교」는「뮤지컬」『미련한 팔자 대감』의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이곳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1주일째의 야영「릴랙스」를 즐기고 있는 참이었다. 결혼식 하루 전인 5일 저녁 이들에겐 난데없이 한장의 사발통문이 띄워졌다. 李昇珪군과 金素野양이 내일아침 바닷가 모처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것. 다음 공연작품의「리허설」이 아니냐고 처음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것이 연극이 아니라 實演(실연)이란 것이 밝혀 졌을 때 야영「몽고•텐트」속에서는 함성이 터졌다.『브라보』! 「가교」의 중견 金東昱(김동욱)이 달려들어 가위로 신랑의 머리를 깎았다. 金相烈(김상열), 車寬 (차관), 朴瓊賢(박경현) 등「멤버」는 만리포 해변과 숲속에 아무렇게나 핀 꽃들을 한아름 꺾어와 신부용「부케」를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진홍의 해당화와 샛노란 들국화, 산나리꽃 도라지꽃의 곱고 요염한 몸매가 한아름의 꽃다발이 되었다. 박인환(朴仁煥) 김정필(金正筆) 尹文植(윤문식) 탁명식(卓明植) 尹元一(윤원일)등은 예식장「헌팅」을 위해 나갔고 일부는 야전용 A「텐트」(2인용)로「무디」한 新房(신방)을 꾸몄다. 피로연용으로 한말의 막걸리와 10병의 맥주, 10병의「콜라」가 주문되었다. 현지 조달한 主禮(주례)님도 팬츠에 남방 차림 주례 역시 한국 최초의 현지 의뢰. 마침 서울 草洞(초동)교회 趙香祿(조향록)목사가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 야영을 하고 있었다. 聖劇(성극)을 과거에 많이 공연한「가교」로서는 趙목사와도 옛 인연이 있어 쾌락을 받았다. 모든 준비 완료. 『도시의, 도무지 그 케케한 숨막힘에서부터 벗어 나고 싶었던 겁니다. 자연이 주는 축복을 우리의 결혼식에서 만이라도 숨쉬고 싶었어요. 무슨 가정의례준칙이라든가 어서픈「쇼•맨십」같은, 소영웅주의를 좇자는건 절대로 아니었어요. 시끄러움이 싫어 예까지 왔는데 기자 양반한테 들키다니 이거 억울합니다』 신랑은 차라리 웃어 버렸다. 8월6일 아침, 간밤의 소나기가 농담처럼 떠나버린 만리포 옆 속칭 천리포 해수욕장 일각에서 이들의 결혼식은 올려졌다. 좀더 자세히 이날의 결혼식 실황을 지상중계해보자. <10시25분>하얀「드레스」의 신부가 입장했다. 신부 대기실은 사방 1m남짓의 바윗덩이 세개가 포개진 해변모래사장끝. <10시26분> 신랑 신부 인사. 이때부터 주위에서 수영을 즐기던「비키니」들이 모여들기 시작. <10시28분>약력소개. 사회자는『산과 바다와 여러분이 두사람의 맺음의 증인』이라고 말했다. <10시30분>예물교환. 신부에겐 자수정반지가, 신랑에겐 만년필이 주어졌다. <10시31분>趙香祿(조향록)목사의 주례사. 趙목사는「팬츠」와 남방으로「드레스•업」(?) 한채『좀 더 좋은 연극을 해 달라』고 간곡한 주례사 一席(일석). <10시37분>신랑신부에게 꽃다발 증정.「가교」의 정신적후원자인 李根三씨 영애 유리, 유원양이 신랑 신부에게 각각 하나씩. <10시38분>「가교」의 團歌(단가)제창.『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 이 세상엔 희망이 있네! 희망이 있네』.「狂人(광인)들의 祝祭(축제)」에 나온「인서트•뮤직」을 그대로 단가로 채택 한 것. <10시41분>李根三씨 축사.『성실한 가정을 꾸미라』는 당부. <10시45분>『만복의 근원이신 하느님…』趙목사의 축도. 신랑 신부와「가교」「멤버」들은 물론 구경하러 모인 남녀노소의「비키니」들이 모두 눈을 감고 기도에 참여하는 異變(이변)이 일어났다.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축복「두드」. 신부목에는 소라 목걸이 조각배로 드라이브 하고 만리포에 「바캉스」를 즐기러 왔다는 李杜鉉(이두현)교수 (민속학)가 이번 해변 결혼식 유일의 축의금을 보내왔다. 역시 휴가를 왔다는 TV「탤러트」尹啓榮(윤계영)군은 신부의 목에 한아름의 소라 목걸이를 걸어줬고. 피로연이 현장의「비치•파라솔」밑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졌다. 모두가 총각인「가교」의「멤버」들은 퇴장하는 신랑 신부를 향해 5색「테이프」대신 5색 물보라를 튕겼다. 「가교」동료들의 축하의 사연도 갖가지. 『바다는「세트」, 해변이 무대, 등장인물 여자1 남자1, 연출 극단「가교」, 공연시간 20분, 가장 아름다운 이 공연을 축하함』(金相烈) 『출렁이는 파도는 아름다운 축가, 신랑 신부의 배역이 좋다. 얼마나 행복한 결혼 공연인지-』(車寬) 『신방은「텐트」속, 어떻게「텐트」를 뚫고 들여다보지?』(金東昱) 드라이브를 해야겠는데 우선 「하이웨이」가 그 천년의 모래사장엔 없었다. 자동차도, 운전사도, 북악「스카이웨이」도 없는데, 마침 나룻배가 저쪽 쥐섬을 뒤로하고 달려 오는게 아닌가.「가교」의「올•멤버」가 승선하고 신랑 신부가 직접 노를 잡았다. 「가교」는 65년 5월『데모스테스의재판』을 창립 공연으로 창단한극단. 창단이래 『퇴비탑의 기적』『요나의 표적』, 『몽땅털어 놉시다』, 『노부인의 방문』, 『광인들의 축제』,『미련한 팔자 대감』등의 중요공연을 가졌고 특히『몽땅 털어놉시다』는 68년도 최고 관객동원을 기록하는등 저력과 열의로 모여진 극단. 이번 만리포에서의 집단 야영도 실은 9월 중순께 공연 예정인「살롱•드라마」『旅人宿(여인숙)의 一夜(일야)』(로드•덴세니 作)와 역시 10월 중순께 공연하려고 한『불만의 도시』(劉賢鍾(유현종) 작)등 두 작품의 공연준비가 그 목적이었다. 2, 3년동안「로맨스」 를 꽃피워온 李昇珪•金素野「커플」의 이번 결혼식은『자연속에서 우리들만의 의식을 갖고 싶다』던 오랜 그들의 소망이 시기적으로 합일되어진 것뿐. 「바캉스」異變이랄까. 이날의 진기한 해변 결혼식은 신방인2인용 A「텐트」속의 촛불이 조용히 꺼짐으로써 그따갑던 막이내렸다. [ 선데이서울 69년 8/17 제2권 33호 통권 제47호 ]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떼거리 골프 투어 “이제 그만”

    주변을 둘러보면 얼굴이 까만 구릿빛으로 변한 사람이 부쩍 늘었다. 가을 시즌 종료 이후 일정을 맞춰온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골프투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신문 지상에는 ‘파라다이스’로 떠날 것을 유혹하는 광고와 기사가 넘쳐난다. 이달 말 설을 전후해 해외 골프투어가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지만 벌써부터 인천 공항 출국장엔 골프백을 싸짊어지고 탑승을 기다리는 골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개인적인 선호도나 동행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투어 목적지가 결정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비용이다. 괌이나 사이판·일본 등 가족 위주의 여행을 즐기는 휴양지보다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고 또 추가 경비를 조금만 더 부담한다면 36홀 이상의 무제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동남아, 그중에서도 밤문화의 짜릿함까지 만끽할 수 있는 태국을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해외 투어의 ‘떼거리 문화’를 척결해야 한다는 따가운 지적도 늘고 있다. 예전에 견줘 외국 여행이 한결 쉽고 간편해졌지만 소풍가는 어린 학생들처럼 설렘 그 자체의 마음가짐으로 해방감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면세점에 들려 양주를 꿰차는 것은 기본이고 어디에서건 거친 소리가 난무한다. 돈으로 안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큰소리치기 일쑤다. 평소 착실하고 모범적이던 가장들도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해외 골프투어에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머나먼 타국의 클럽하우스에서는 물론 코스 곳곳에서도 한국말이 큰 소리로 메아리친다. 저녁 무렵이 되면 뙤약볕 아래서 하루종일 샷에 시달린 골퍼들의 피곤한 몸엔 오히려 활기가 더 넘쳐난다. 싱싱한 해산물이 곁들여진 푸짐한 만찬과 안주가 2차·3차를 유혹하는 것. 이때쯤이면 골프 투어를 떠나기 전 비용을 놓고 갑론을박하던 사람들마저 지갑을 활짝 열어젖히고 흥청망청 돈을 뿌려댄다. 이른바 ‘19홀’, 주지육림과 환락의 시간이다. 매년 이맘때 국내 가정에 불화가 쌓이고 일부 특정(?)병원과 의원들이 특수를 누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사연들의 시발점이다. 일부 몰지각한 골퍼들의 선동에 의해 자행되는 떼거리문화. 올 겨울엔 반드시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잔재다.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스포츠 라운지] 한솔테니스 이진수 감독

    [스포츠 라운지] 한솔테니스 이진수 감독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세계1위·러시아)와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미국)의 슈퍼매치를 나흘 앞둔 15일 서울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초가을 뙤약볕 밑에서 부지런히 네트를 매만지고 있는 이진수(41·한솔테니스) 감독의 얼굴은 더욱 검게 그을려 있었다. 세기의 대결이 열릴 곳은 바로 옆 체조경기장 실내 특설 코트지만 16일 이들이 서울에 도착한 뒤 몸을 풀 장소는 샤라포바가 1년전 한국 팬을 열광시켰던 바로 이 곳이다. 지난해 윔블던대회를 통해 일약 세계 테니스팬들의 연인으로 떠오른 샤라포바로 하여금 한국땅을 밟게 한 주인공은 바로 그였다. 사실 그만큼 샤라포바를 잘 아는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지난해 윔블던 이전부터 한솔여자오픈을 준비하면서 미완의 대기였던 샤라포바를 초청선수로 낙점,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고, 올해도 윌리엄스와의 대결을 성사시켰다. 중학 시절 뒤늦게 선수로 테니스에 입문, 일본 대학팀에서 코치와 감독을 거친 뒤 걸출한 국제 감각으로 굵직한 대회들을 엮어낸 그는 ‘이벤트 제조기’로 불린다. 더욱이 한솔여자팀에 이어 지난달 남자팀까지 창단, 삼성증권(감독 주원홍)과 함께 한국 프로테니스의 양대산맥을 이뤄냈다. ●황금기 멤버, 지금은 ‘이벤트 제조기’ 이진수 감독은 한국 남자테니스의 전성시대였던 지난 1990년대 유진선 김봉수 송동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황금기 멤버’였다. 경남 영산중학교 1년때 뒤늦게 테니스에 입문했다. 노갑택 현 남자대표팀 감독과 함께 마산고에 입학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3년때 노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오픈대회인 전한국대회에서 대학팀들을 거푸 쓰러뜨리며 복식 8강에 오르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1989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이 감독은 92년 일본 서키트대회에서 만난 긴키대학 테니스부장의 러브콜을 받고 코치로 부임, 한국 남자테니스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코트의 사령탑을 맡았다.40명의 선수들과 매일 1대1 시합을 하는 등 스파르타 훈련을 거듭한 끝에 간사이지방 꼴찌였던 팀을 2년 만에 정상에 올려 놓은 건 지금까지 대학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내년 세번째 한국무대 초대 추진 그가 샤라포바를 한국팬 앞에 세운 ‘거사’를 이뤄낸 건 각종 국제대회를 돌며 틈틈이 익힌 국제 감각 덕분이다. 지난해 윔블던대회와 한솔여자오픈으로 세계 톱랭커의 발판을 닦은 샤라포바는 또 한번 그의 손을 통해 내년에 세번째로 한국무대에 서게 될지 모른다. 현재까지 여자프로테니스(WTA) 규정에는 최상위 랭킹인 ‘골드멤버’ 20명 가운데에서도 핵심멤버인 6위까지는 1∼2급대회와 겹쳐질 경우 3∼4급대회(한솔여자오픈 포함)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묶여 있지만 각국 대회 디렉터들과 공조, 이를 완화시키도록 하겠다는 계획.‘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그의 야심이 내년에도 발휘될지 세기의 대결을 코앞에 둔 지금 벌써부터 테니스팬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진수 감독은 ▲생년월일 1964년 12월11일 경남 마산생 ▲가족 부인 김미경씨와 1남2녀 ▲체격 178㎝ 78㎏ ▲출신학교 경남 영산초-영산중-마산고-성균관대 ▲경력1989∼90 테니스 국가대표, 1993 김봉수에 이어 한국 남자선수로는 두번째로 테니스메이저대회 (호주오픈) 출전, 1992∼96 일본 긴키대학 테니스팀 코치·감독, 현 대한테니스협회 홍보·마케팅이사, 한국 여자테니스대표팀 감독, 한솔남녀테니스팀 감독, 서울주니어테니스아카데미 대표, 한솔여자오픈 토너먼트 디렉터(TD), 샤라포바-비너스 슈퍼매치 TD
  • 디지털 전쟁에 ‘아날로그 승부수’

    “내 신문, 누가 태웠어?!” “노트북 타야 돼, 참여기간이 언제까지야?, 신문 갖고 와봐!”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요즘 무척 뜨겁다. 가을 뙤약볕이 무색할 정도다.KT와 하나로텔레콤의 양강 구도에 파워콤이 이달 초 시장에 진출, 도전장을 내던진 까닭이다. 파워콤·하나로텔레콤·KT는 100Mbps급을 제공한다는 서비스 경쟁에 이어 홍보전을 치열하게 펴고 있다. 장외에서 펼치는 2라운드다. 이런 장외전은 최근 KT가 신문 광고에 추춤한 가운데 속도를 강조하는 파워콤, 속도에 서비스까지 역설하는 하나로텔레콤이 바짝 달구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1위에 오른 데는 빠른 서비스도 있지만 지속적인 광고를 ‘1등 공신’으로 꼽을 수 있다. 계속된 광고로 초고속인터넷의 시장 형성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라운드 장외 광고전에서의 승자가 새로운 시장 선도자로 부상하리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인쇄 광고 압권은 파워콤. 파워콤 로그 형태의 둥그런 불길이 국내 인터넷 시장 상황과 기대감을 담은 기사 한 가운데를 확 통과하는 형식이다. 구멍 가장자리에는 불길이 여전히 이글거린다. 지면에 진짜로 구멍이 뚫린 게 아닌가 하며 눈을 의심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사이즈가 큰 광고는 아니었지만 주위의 다른 기사들에 파묻혀 전면 광고 이상의 효과를 낸 것이다.광고대행사 Lee&DDB 관계자는 “요란한 비주얼과 카피보다 인쇄매체 그 자체를 이용해 광고를 만들어 시선을 끌었다.”고 말했다. 하나포스의 신문 광고도 눈여겨볼 만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김선아가 소박한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모습으로 섰다. 카피는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이 하나되어 두배로 쏜다!”. 두루넷을 인수한 하나로텔레콤의 자신감과 양사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표현했다. 그러곤 이달말까지 하나포스 및 두루넷 신규가입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나눠줄 노트북, 휴대전화,PDP 등이 쫙 깔렸다. 광고를 눈여겨본 이들이 신문을 별도로 찾는 이유다. 하나포스의 방송 광고도 재미있다.‘인간 복제’라는 핫 이슈를 소재로 12명의 김선아가 동시에 등장하는 특수기법 MCC가 동원됐다.MCC기법으로 촬영된 영화는 ‘매트릭스’와 최근 개봉작인 ‘아일랜드’등이 대표적이다. 광고제작팀은 이를 위해 호주에서 ‘반지의 제왕’ 촬영팀을 초청했다. 김선아 역시 12명으로 변신하기 위해 헤어스타일, 화장, 드레스를 12번이나 갈아입었고, 각기 다른 포즈를 촬영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한편 최근 CEO가 바뀐 KT는 새로운 광고안에 대해 ‘준비중’이라며 일체 함구하고 있다.‘원던경영’을 내세운 남중수 사장의 첫 광고에 대해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MBC 드라마 60부작 ‘신돈’ 중국 촬영현장 르포

    MBC 드라마 60부작 ‘신돈’ 중국 촬영현장 르포

    |베이징 김미경특파원| “저는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얼굴이 까맣게 탔는데 공민왕(정보석 분)은 점잖게 말 타고 다녀서 덜 탔죠.” 중국 베이징 북서쪽으로 80여㎞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강시초원의 티엔모(天漠) 세트장.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반경 2㎞ 정도만 사막으로 이뤄진 관광명소다. 벌써 몇시간째 사막을 걸으며 촬영 중인 MBC 새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신돈’(정하연 극본·김진민 연출)의 제작팀 사이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게 그을린 손창민의 얼굴이 보인다. 고려시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승려 신돈 역을 맡은 그의 중국 촬영신은 동료 승려들과 함께 티베트 고행길을 떠나는 것. 지난달 25일부터 2일까지 이뤄지는 중국 로케이션은 오는 29일 첫 방송되는 드라마 60회 가운데 4∼10회에 등장한다. 중국 촬영에는 신돈의 고행을 비롯, 드라마의 다른 주인공인 공민왕과 노국공주(서지혜 분)의 만남 등이 카메라에 담긴다. ●극한 더위 속 리얼리티 긴 승려복에 머리에 두건을 둘러 겨우 눈만 내놓은 손창민은 “중국에서의 촬영 자체가 고행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만리장성에서의 촬영에 이어 그늘도 없는 뙤약볕 사막 고행길까지 30㎞ 이상 걸었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길이기 때문에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 지난달 2일 고창 선운사에서의 첫 촬영 이후 출연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더위와 싸워 왔다. 공민왕 역의 정보석도 두꺼운 옷에다 가발을 써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그는 “말타는 장면이 많아 안장에 닿는 부위의 피부가 다 벗겨졌다.”면서 “중국 말은 야생마 수준이라서 길들여지지 않아 촬영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공민왕과 결혼해 고려를 이끄는 원나라 노국공주 역의 신인 서지혜도 공주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치렁치렁한 가발과 여러겹의 옷으로 몸을 감쌌다. SBS 드라마 ‘불량주부’의 후속작품으로 사극을 선택한 손창민은 오랜 연기 경력에도 본격적인 사극 출연은 처음이란다. 그는 “지금까지 사극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40대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돈화(化)’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조계사에서 승려 교육을 비롯,108배를 하며 자신을 수련했다. 하늘을 나는 장면 등을 위해 무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반면 그동안 사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정보석은 4년전부터 정하연 작가로부터 제의받은 공민왕 역을 맡아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공민왕은 국부를 꾀하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역동적인 왕으로, 오래전부터 선망해 오던 인물”이라면서 “기회가 되면 개성의 공민왕릉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재해석되는 신돈과 공민왕 신돈이 국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낱 천민 출신의 ‘요승’으로 알려진 신돈이 공민왕을 도와 개혁에 성공하지만 결국 공민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시대적 한계를 보여 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신돈과 공민왕, 노국공주가 펼치는 성공과 실패, 우정, 사랑, 배신 등을 통해 당시 역사를 배우고 우리 시대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것. 기획을 맡은 정운현 CP는 “큰 작품 스케일에 못지 않게 신돈과 공민왕, 노국공주의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3∼4개월 전 신돈 역 제의를 받은 손창민은 “신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타락한 요승이라기보다는 공민왕을 도와 개혁을 일으킨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권력을 초월한 시대적 인물이 펼치는 정치·제도개혁에 초점을 맞춰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민 PD는 “정형화된 사극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해석되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재미있게 그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chaplin7@seoul.co.kr
  • 롯데·신세계백화점 CEO 자존심 건 ‘명동혈투’

    ‘유통명가’를 두고 롯데와 신세계백화점 CEO가 자존심을 건 결투가 시작됐다. 승부에서 이겨야 ‘대한민국 대표 백화점’이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롯데백화점의 그늘에 가린 신세계가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 신세계백화점 석강 대표는 지난 1일 본관 입주식에서 “신축 본점 개점을 계기로 경쟁사를 누르고 1등으로 커 갈 기폭제로 삼겠다.”며 롯데를 겨냥, 노골적으로 포문을 열었다. 석 대표는 또 “경쟁사와의 자존심을 내건 한판 승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며 직원들을 담금질했다. 이에 대해 롯데백화점 이인원 사장은 최근 “호텔 수준의 1대1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부동의 1위 수성 의지를 다졌다. 또 이 사장은 “지난 2년여간의 매장 리뉴얼로 고객이 겪었던 불편을 상품과 서비스로 보답하겠다.”며 고객 유출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 두 백화점 대표의 혈투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신세계가 오는 10일 매장 면적이 1만 7000여평인 새 본점과 클래식관을 문 열 예정이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과는 무빙벨트로 접근성을 확보했다. 본관 확장과 완공은 신세계의 30년 숙원 사업이 이뤄진 것이다. 롯데는 최근 서울 소공동에 백화점 본관·명품관인 에비뉴엘·젊은층을 겨냥한 영플라자를 연결하는 종합 쇼핑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여기에 레스토랑, 시네마 등을 끼고 있다. 매장면적은 본관 1만 4000평을 비롯해 2만 5000평으로 롯데가 7000평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반면 신세계백화점은 ‘깜짝 카드’를 준비하면서 정보 누출을 막기 위해 입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석 대표는 “신세계는 ‘꿈의 백화점’,‘신쇼핑문화의 대창조’등의 모토를 내걸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매 호소력이 있는 40∼50대 고객을 위한 명품 전략을 짜고 있음을 암시했다. 롯데 이 사장은 그러나 “상품력에서는 밀릴 일이 없다.”고 되받아쳤다. 그러면서도 “젊은층이 좋아하는 개성있는 매장을 계속 개발하겠다.”며 고삐를 조일 뜻을 내비쳤다. 한여름 뙤약볕처럼 뜨거운 두 백화점의 한판 승부, 진정한 승자는 고객이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뙤약볕 청소도 너끈

    경찰관에게 ‘방탄 조끼’가 있다면 환경미화원들에겐 ‘얼음 조끼’가 있다. 가마솥 더위가 한창인 요즈음 서울 서초구(구청장 조남호)는 뙤약볕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여름나기를 돕기 위해 냉동 얼음팩을 넣은 조끼를 지급, 눈길을 끌고 있다. 얼음 조끼에는 15㎝×12㎝ 정도의 냉동 얼음팩이 앞주머니에 2개, 등쪽 주머니에 4개가 들어간다.1㎏이 채 안되고 6시간이나 쓸 수 있어 작업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서초구는 미화원들에게 하루 1인당 12개의 얼음팩을 지급해 교환해가며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로 환경미화원 107명을 비롯해 재활용업무 환경미화원 등 모두 122명에게 얼음 조끼를 제공했다. 서초구는 작업 중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수통도 함께 나눠줘 미화원들의 사기진작과 작업능률 향상을 꾀하고 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휴가철 건강관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휴가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관리와 안전이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더라도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면 아니감만 못하다. 여름철 야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대처 방법과 건강 관리법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6명의 전문의들로부터 들어봤다. 정리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귓병(조양선 이비인후과 교수) 귀의 염증은 귀에 물이 들어가서라기보다는 물을 빼내기 위해 귀를 후비다가 상처난 부위에 세균이 감염돼 발생하는 외이도염이 대부분이다. 물이 들어갔을 때는 그쪽 귀를 아래로 하고 따뜻한 곳에 누우면 물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그래도 물이 안 나오면 손가락 등으로 후비지 말고 자연히 마르도록 기다려 보는 것이 좋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들어간 쪽을 숙이고 손으로 쳐대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람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휴가지 응급의약품(손기호 약제부장) 피서지 구급약으로는 해열진통제와 소화제, 제산제, 소염제, 항생제가 포함된 피부연고, 소독약 등이며, 의료비품으로 체온계와 붕대, 반창고, 의료용 가위, 핀셋 등을 준비하면 좋다. 약국에 가정용 응급의약품 키트가 판매되고 있는 만큼 준비해 가면 편리하다. 특히 위생상태가 좋지않은 외국 으로 출국하는 경우 말라리아 등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출국전 병원을 찾아 예방약 메플로킨을 받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부관리(이주흥 피부과 교수) 자외선이 강한 여름날 야외에 나섰을 때는 피부가 햇볕에 화상을 입기 쉽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의 자외선이 가장 강하다. 이렇게 강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면 기미나 주근깨 등 색소성 피부병이 올 수 있으며, 피부가 빨리 노화된다. 그러므로 뙤약볕에서는 긴 상하의와 차양이 큰 모자가 필수다. 피부노출에 앞서 차단지수(SPF)가 20∼30정도의 자외선 차단제를 3∼4시간 단위로 발라야 한다.SPF 지수가 높은 제품은 그만큼 피부자극 정도가 높은 성분이 많이 첨가된 것이므로 지수가 높은 제품일수록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일광화상이 생기면 우선 화끈거리는 부위를 찬물이나 얼음으로 찜질을 해준다. 찬 우유나 오이팩을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물집이 잡힐 정도면 화상을 입은 것이므로 전문의를 찾아야 하는데 가능한 물집이 터지지 않도록 하고, 터짐 경우에는 멸균 소독해 주는 것이 좋다. ▶눈병(정의상 안과교수) 유행성 각결막염은 아데노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결막염으로 흔히 눈병이라 부른다. 여름철에 유행하고 전염력이 강하다. 아직까지 원인 바이러스를 소멸시킬 수 있는 치료약이 개발돼 있지 않아 감염이 되면 아무리 치료를 열심히 해도 오랜 경과를 거쳐야 하므로 예방이 중요하다. 손을 자주 깨끗이 씻고 환자가 쓰는 세숫대야와 비누, 수건을 따로 쓰도록 한다. 치료는 3일에 한번 안과를 방문해 각막염 등의 합병증 발생여부에 대해 진찰을 받는 것이 안전하며, 전문의 지시없이 안약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장염(이정권 가정의학과 교수) 여름철에는 설사증세가 흔한 철이다. 흔히 식중독이라 일컫는 것은 포도상구균 식중독으로서 세균에 오염된 음식을 먹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 것이다. 잠복기가 짧아 오염된 음식을 먹고 나서 6시간 내에 발병하여 하루 이틀 지나면 회복되기 시작한다. 장염 예방은 청결한 음식물 보관과 손씻기다.설사는 멈추는 것이 최고라하여 약을 함부로 먹거나 물조차 먹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증세만 오래가게 만든다. 수분과 전해질을 충분히 공급해 주는 것이 좋다. 전해질 용액은 물 1ℓ에 소금 반 작은술, 소다 반 작은술, 설탕 2큰술 정도 섞어 만든다. ▶휴가 후유증 휴가 후유증은 수면시간 부족과 변경에 의한 생체리듬 파괴에서 비롯된다. 흔히 휴가는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느라 평상시보다 늦은 잠을 자게 된다. 이럴 경우 아침에는 기상시간을 지켜 깨는 것이 좋으며, 졸릴 경우 토막잠을 자는 것이 낫다. 특히 휴가 마지막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충분한 수면만이 휴가 피로 해소의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또 출근길 아침에 가벼운 맨손체조를 하고 직장에 가서도 2∼3시간마다 스트레칭을 하여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점심식사후 가볍게 산책하는 것도 피로회복에 좋다. ▶야외활동 응급조치(송형곤 응급의학과 교수) 뱀에 물린 경우에는 먼저 독사인지 확인해야 한다. 독사가 아니면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고 소독약으로 소독하면 된다. 그러나 머리가 삼각형이고 목이 가늘며 송곳니 자국이 2개이면 독사로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안정을 시킨 뒤 물로 씻고 소독한 다음 상처보다 심장에 가까운 곳을 가볍게 묶어 둔다. 구조자는 환자의 상처 부위에 직접 입을 대고 독소를 빨아낸다. 강하게 빨아내고 재빨리 뱉어 버린다. 이런 처치를 몇번 되풀이하고 독소를 빨아낸 사람은 깨끗이 양치질한다. 처치가 끝나면 들것 같은 것에 태워 서둘러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여름철 불청객 모기는 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행중에는 긴 상하의가 모기를 막는 일차적인 방책이다. 그외로 초음파 모기퇴치기, 바르는 모기약, 손목에 걸고 다니는 모기 퇴치 용품 등을 이용하고, 밝은색 옷이나 헤어스프레이, 향수 등 곤충을 유인할 수 있는 것을 피한다. 특히 7∼8월에는 일본뇌염을 옮기는 모기를 조심해야 하는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고령자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벌에 쏘인 경우에는 깨끗한 손으로 벌침을 빼주고 쏘인 피부는 절대로 문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때 얼음물에 적신 물수건으로 냉찜질을 해주면 통증이 가신다. 상처 부위에 암모니아수를 바르고 대용으로 우유를 바르는 것도 좋다. 전신적인 쇼크나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때는 병원에 입원,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주변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119구급대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현장 등에서 무리하게 환자를 빨리만 옮기려 하다 보면 손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응급처치를 할 경우 생명유지에는 호흡과 심장운동이 중요하다. 숨을 제대로 쉬고 맥박이 잘 만져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도유지, 인공호흡 등 다른 처치가 우선돼야 한다. 인공호흡은 환자를 똑바로 눕힌 채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턱을 들어올려 입을 벌리고 두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막고 입술을 밀착시켜 천천히 바람을 불어 넣는다. 분당 호흡횟수는 10∼12회로 한다.
  • 잿빛서울 벽화단장 때깔낸다

    잿빛서울 벽화단장 때깔낸다

    ‘벽화로 다시 태어나는 서울’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25개 자치구에서 낡은 담장에 수준 높은 벽화를 그려넣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있다. 낡은 콘크리트가 잿빛 헌옷을 벗고 ‘벽화’라는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곳은 건축현장,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학교, 공공시설물 등 다양하다. 재건축 공사현장의 펜스서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서민들의 주거지에는 격조높은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곳저곳을 물들였던 벽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공미술로서의 벽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여느 시민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재정난은 만성화된 지 오래다. 화실만을 고집하는 미술계의 관행, 대중과 살아 숨쉬는 미술의 인식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공공미술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관련 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시민들도 미술 작업에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민들의 손에 의해 지역 사회가 무지갯빛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재건축이 한창인 지난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2단지재건축 동쪽 현장. 공사장 펜스에 화가 한 명이 뙤약볕을 받으며 회화에 열중하고 있다. 스케치에 붓이 닿자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건축단지 펜스에 주민 그려져 잠실 재건축단지 펜스에 벽화가 등장한 것은 2년 전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격’이 달라졌다. 송파구민들이 높이 4.5m 길이 5.2㎞의 2·시영단지 펜스 벽화의 주인공이 됐다. 모두 3억 7000여만원이 들었다. 벽화의 주제는 ‘송파의 어제와 오늘, 내일’.▲황포돛배, 배틀, 송파장터 등 과거의 모습을 담은 북쪽은 어제 ▲주민들이 등장하는 동쪽은 오늘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서쪽은 내일을 뜻한다. 잠실대로와 붙은 남쪽은 현정화 등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모습과 올림픽공원에서 인라인·자전거 등을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벽화의 정수는 동쪽이다. 어머니와 아이들, 자매, 친구들 등 60여명의 송파구민들이 등장했다. 지난달 26·27일 석촌호수에서 신청받은 주인공들이다. 재건축이 끝나는 2007년까지 벽화 속에서 ‘제2의 삶’을 살아간다. 이번 벽화 작업을 기획·감리하는 홈디자인 최기필(36) 대표는 “건설사의 홍보판으로 전락한 펜스에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를 그려 지역과 미술이 만나는 공공성을 드러내려했다.”면서 “주민들이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에 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2단지 옆 5단지 주민 서미경(29·여)씨도 “삭막하고 으슥한 재건축 단지 펜스에 주민의 얼굴이 그려져 분위기가 따뜻하게 바뀌었다.”고 흐뭇해했다. 잠실 시영단지 남쪽에도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벽화가 등장한다.200여명의 주민들이 삼국시대 백제 사람으로 분장해 한성백제문화제 행렬도를 재현한 모습이다. 송파구 외에 다른 자치구들도 벽화를 통해 분위기를 내고 있다. 용산구는 서계동 청파어린이공원 담장에 동물과 나무를 담은 벽화를 그렸다. 숙명여대 회화과 학생들이 자원 봉사했다. 광진구는 중곡빗물펌프장을, 마포구는 동교동 윗잔다리 공원을 벽화로 꾸몄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와 미술이 만난 공공미술로서의 벽화도 등장하고 있다. 작가와 주민의 구분이 없다. 기획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벽화 작업의 모든 단계에 참여한다. 대상지는 강남 등 부촌(富村)이 아닌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주변 환경이 열악한 탓에 평소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던 주민들에게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주민이 작가로 참여하는 벽화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단체는 임옥상미술연구소와 공공미술프리즘이다. 대표적인 민중화가인 임옥상씨가 만든 임옥상미술연구소는 지난 2003년부터 삭막한 학교를 벽화로 다시 꾸미는 ‘꿈꾸는 별이 뜨는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가리봉2동 영일초교, 인천 석남3동 천마초교 등의 안쪽 담장과 식당 벽, 건물 벽에 다양한 모습의 벽화를 그렸다. 올해는 인천 남구 남인천중·고, 문학초교, 선화여상, 인천기공 등의 학교를 벽화로 꾸미기로 했다. 공공미술프리즘은 지난 2003년 11월에 만들어진 단체다. 상근자 4명에 자원활동가 30여명 정도로 규모와 역사는 짧지만 여느 단체 못지 않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벽화는 두 번 제작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역 벽면에 ‘나의 그림이 있는 벽화 그리기’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지역 학생들과 함께 시멘트의 일종인 피그먼트 바탕에 타일조각 등을 이용해 꽃, 나무 등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그해 9월에는 가리봉2동 영일초교 바깥 벽면에 나뭇잎·새 등 초교 학생들의 작품을 벽화로 담은 ‘걷고싶은 문화마을 가꾸기’ 프로젝트를 열었다. 한달 가까이 주민·학생들과 작업한 결실이다. 올해에는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족구장 바닥을 벽화로 꾸미는 ‘동네와 일터에 우리가 만든 족구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일산가구공단에 이어 탄현동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족구장에 화사한 꽃 모양 등의 벽화를 그려넣었다. 군포시 한세대 족구단 전용구장 등에도 벽화를 그릴 예정이다. 공공예술프리즘 김상필(36) 기획실장은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스포츠와 미술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라면서 “앞으로도 미술과 대중과의 다리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유다희 공공미술프리즘 대표 “대중들은 프린트된 작품들만 접합니다. 삶의 영역에서의 벽화, 더 나아가 도시계획 단계에서 미술적인 관점이 적용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공미술프리즘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공공미술로써의 벽화에 매진하고 있는 단체다. 유다희(29·여) 대표는 다른 상근자들과 함께 2003년 11월 공공미술프리즘의 산파가 됐다. 유 대표가 공공미술을 접한 것은 지난 2003년. 전북대 미술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교육과에 입학했을 때였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그림만 그리던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대중과 동떨어지고 학벌 위주로만 굴러가는 미술계를 피부로 접하게 됐다. 이런 구조가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그림만 그리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거나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데 아무 힘도 없었다.”면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다가 공공미술을 시작하게 됐다.”고 떠올렸다. 공공미술프리즘은 대중과 작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은행원, 보험설계사, 입시준비생 등 비전문가가 많다. 이들의 고민은 단순히 대중에게 미술을 보여주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평소에 붓 한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활 환경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벽화 작업보다도 시민들과 어떻게 미술 현장에서 함께 할 것인가 등을 푸는 게 더 어렵다. 모든 사람들이 미술적인 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미술 작가들이 골방에서 나와 사회로의 ‘침윤’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유 대표는 “현재의 입시 체제에서 행정가나 건축가가 되면 미술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삭막한 도시를 만들게 된다.”면서 “건축과 미술 등이 함께 도시계획에 개입해야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미술프리즘은 올해부터 활동을 체계화했다. 시민들과 함께 마을을 가꾸는 ‘우리가 만드는 우리 마을’, 안산 사할린마을, 나눔의 집 등 소외된 이들의 공간을 꾸미는 ‘더 넓게 세상 보기’, 공공미술 교육 프로그램인 ‘오늘은 미술로 놀아요’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유 대표는 “긴 호흡의 자세로 대중이 미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공공미술로서의 벽화는? 사실 공공미술과 벽화는 직접적인 공통분모가 없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대중의 참여에 의한 미술이라는 공공미술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미술 장르가 벽화이다. 공공미술을 지향하는 단체들이 벽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공공미술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미국 연방정부는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에게 벽화나 조각 등을 의뢰했다. 이때까지의 공공미술은 ‘공공에 있는 미술’이라는 창작자 중심의 개념이었다. 정작 ‘공공미술(Public Art)’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지난 1967년에 와서다. 영국 학자 존 월렛의 ‘도시 속의 미술’이라는 책에서 등장했다. 세계를 휩쓴 ‘68혁명’ 발발 전해였다. 월렛의 공공미술의 개념은 기존 관공서가 발주하는 미술품이 화상, 평론가 등 소수 전문가들의 기준에 의해 선택되고, 이를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고 있었다. 공공미술은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창작이 아닌 수용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개념은 ‘개입’이다. 미술작품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닌 사회적 비판과 미술적인 비전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들이 작가들과 함께 만드는 벽화 작업은 참여민주주의가 미술에 적용된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다. 장승·성황당의 돌탑 등 주민이 작가였던 우리 전통미술이 창작자 중심인 서구 미술보다 공공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국에 공공미술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84년부터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세우는 건축주에게 건축비의 0.7%에 해당하는 비용의 미술작품을 설치하게 하는 건축물 미술장식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만든 5600여점의 미술품 가운데 조각이 4000여점이나 된다. 거기다 대중과의 소통은 커녕 담합과 부실이 횡행하면서 ‘공공공해’라는 비난까지 일었다. 이에 문화관광부는 건축비 일부를 공공미술기금으로 내거나 지자체장에게 설치 대행을 의뢰하고, 문화부 산하에 공공미술 정책과 작품의 기획·심사를 담당하는 공공미술진흥위원회를 두는 내용의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한 상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별이 쏟아질때 해변으로”

    이달중순 본격 오픈하는 강원도 동해안 해수욕장들이 과거 같은날 개장의 관행을 깨고 나름대로의 색깔있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시작과 함께 토·일요일 연휴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다. 강릉시는 매년 7월10일로 고착화됐던 경포해수욕장의 개장식을 올해는 9일 토요일 야간시간을 활용해 실시키로 했다. 처음 실시되는 야간 개장식에는 강릉농악 관노가면극 등 문화 공연과 함께 초청 가수 공연, 불꽃놀이 등 다채로운 볼거리, 즐길거리가 더해져 홍보·파급효과를 높이게 된다. 매년 7월10일 오전 10시에 뙤약볕 백사장에서 간단한 공연, 개장식을 열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속초시는 속초와 외옹치 해수욕장의 개장을 아예 휴일 전날인 금요일(8일)로 앞당겼다. 또 양양군은 낙산 설악 하조대 해수욕장을 휴일인 9일에 개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내 해수욕장의 폐장일도 과거 8월20일에서 올해는 8월21일 일요일에 맞췄다. 주5일 근무 휴일에 개장식과 더불어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일요일에 폐장을 해 휴일의 끝점까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동해안 일선 시·군 관계자들은 “서해의 경우 이미 6월말 주말로 해수욕장 개장시기를 탄력 운영하고 있는 데다 주5일 근무제로 전통적 휴가 개념마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꼭 7월10일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현대무술의 향수] (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

    [현대무술의 향수] (4)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다 간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는 사후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생전에는 유화 한 점만이 팔렸지만, 그의 작품은 현재 경매시장에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서 독특한 그의 화풍은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등 현대 미술사에 새생명을 불어 넣었다. 우리는 그의 찬란한 작품뿐만 아니라 그 작품 뒤에 숨어 있는 비극적인 삶에 다가가면 다가 갈수록 영혼의 위안을 얻게 된다.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가을 벌판을 온통 뒤덮은 노란색 물결. 그 밑밭에서 낫질을 하는 한 사나이. 반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 2층 전시장에 걸린 ‘수확하는 사람’(1889년 9월초). 화가의 초상이 담겨 있는 그 작품에 사로잡힌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림 뒤에 숨어 있는 진실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는 슬픔이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그는 생산을 의미하는 ‘수확’을 화폭에 담으며 아이러니하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가 죽기 9개월 전에 그려졌다. 자신의 가슴에 권총 한발을 날리며 자살을 기도한 곳도 바로 밀밭이었다. 프랑스 프로방스 생레미에 있는 어두컴컴한 요양원 병실 철창을 통해 망연히 바라본 밀밭 풍경은 반 고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이글거리는 노란색과 역동성을 길어올렸다. “화가는 그림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반 고흐의 이 말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반 고흐는 밀밭 그림 속에 삶과 죽음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치열한 예술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영웅 매년 전세계에서 130만명의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루 3560여명이 찾는 셈이다. 마치 순례자들의 성지 순례 코스처럼 미술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들의 단골 코스다. 1973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현대적 양식에 맞춰 설계한 건축가 이름을 따 ‘리트벨트’라고도 불린다. 본관에선 반 고흐 작품의 상설전시가 열리며,1999년 만들어진 신관에선 작가를 바꿔가며 전시를 한다. 이곳에선 마침 ‘에곤 실레’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천장이 뚫려 있는 본관 2층은 반 고흐의 작품들을 연대별로 정리해 짧은 생애지만 불꽃처럼 화려한 그의 작품 변화를 한눈에 보여 준다. 반 고흐 유화 200점, 드로잉 500점, 고흐가 모은 회화 등 세계 최대의 반 고흐 컬렉션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 있는,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700통은 그의 삶과 작품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술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의 자랑이자 긍지”라고 입을 모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질랜드에서 왔다는 엔 마이어스(62)는 “이번이 4번째 방문”이라며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사람 10명 중 하나이자 영웅”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누에넨 등에서 살며 그린 초창기 작품 중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단연 눈에 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네덜란드 농부들의 모습은 비록 비천한 신분이지만 삶의 엄숙함과 성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초기 작품 ‘새둥지’ 등은 당시 활동한 다른 화가들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톤의 작품들이다. 이후 10년, 반 고흐는 놀라운 변신을 한다. 동생 테오가 화상 점원으로 있던 프랑스 파리로 옮겨 그림 공부를 하던 시절, 그의 작품 ‘자화상’‘구두’ 등에서 서서히 놀라운 재능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48)는 “반 고흐의 초창기 그림을 보면 별로 좋은 그림이 아니다.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2년간 그림을 배운 뒤 큰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27세부터 10년간 주요 작품 남겨 파리를 떠나 여러 화가들이 같이 생활하고 작품활동을 하는 공동체를 꿈꾸던 아를 시절,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던 반 고흐는 미치광이로 오인돼 주민의 고발로 병원에 감금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시기에 그린 200여점 가운데는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침실’‘노란집’이 포함되어 있다. 만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전해주는 기괴한 행동을 벌인 뒤 그린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은 미국과 영국에 각각 소장돼 있어 아쉽게도 미술관에서는 감상할 수 없었다. 아쉬움도 잠시, 더 큰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병원에서 나와 자발적으로 요양원에 들어갔던 생레미 시절에 그린 ‘수확하는 사람들’‘붓꽃’, 그리고 마지막 삶의 터전 오베르 쉬즈 오아즈 시절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오베르 풍경’ 등은 마지막 불꽃 같은 열정이 담겨 있다. 반 고흐 작품에 푹 빠져 눈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를 시절 이후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예술정신이 우리를 더욱 열광시키는지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왈칵 난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남프랑스에 와서 나의 모든 것을 그림에 던졌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온통 그림에 바쳤음을 토로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그의 작품세계가 중단되지 않은 것은 경이였다. 반 고흐가 예술의 절정에 오른 것은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지방 아를과 생레미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색감은 기존 화가들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비상했고, 거칠 것 없는 붓놀림은 화폭 위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겼다. 그는 빨간색과 초록색 같은 보색이 어우러진 작품을 통해 사랑과 운명의 대비와 엇갈림을 표현했다.‘해바라기’‘고갱의 의자’를 보면 그가 보색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작업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빌 데니히(52) 부부는 “반 고흐가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랐다.”며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정작 작품에는 화려한 색깔을 자유분방하게 사용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3층에서는 인터넷과 책자를 통해서 반 고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 세분이 한가롭게 반 고흐의 도록과 관련 책들에 빠져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의 할머니들과 37세에 요절한 영원한 청년 반 고흐. 시간과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이들은 ‘예술’을 화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반 고흐 미술관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 “반 고흐의 작품은 현대 미술에 끼친 지대한 영향, 천재성, 드라마틱한 삶 등 3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반 고흐 미술관 큐레이터 루이 반 틸보르흐(48). 카키색 양복 안에 받쳐 입은 진한 녹색 와이셔츠가 잘 어울린다. 어떻게 반 고흐 작품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나. -파리에서 네덜란드로 건너온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부인 요한나가 죽자 그의 아들 윌렘(엔지니어로 알려짐)이 재단을 만들어 작품들을 관리하다 이 미술관에 영구 임대해주고 있다. 요한나에 의해 반 고흐 형제들의 편지가 일찍 번역되는 바람에 그의 삶과 그림세계의 조화가 잘 이뤄졌다. 반 고흐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다. 색깔, 밝기, 하모니(색깔의 조화) 등 세 가지에 영향을 줬고 특히 독일의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 고흐는 죽기 직전부터 조금씩 화단에서 알려지기 시작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15년만 더 살았다면 그는 부자로 살았을 것이다. 네덜란드 미술에 미친 영향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예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반 고흐의 그림도 처음에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다가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천재성에 대해. -프랑스에서 2년 공부하면서 스타일이 바뀌고 대담한 색채를 썼다. 두꺼운 붓터치 스타일을 즐겼던 그는 느낌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굉장히 빨리 그렸다. 모티프, 즉 주제를 찾는 데 재능이 뛰어났다. 그래서 ‘반 고흐는 어디에 갔다놔도 주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자연을 보는 눈도 순수하고, 그의 그림은 추상적이지 않아서 이해하기 쉽다.
  • [지금 대전청사에선] 네티즌 또 ‘맹폭’ 문화재청 홈피 몸살

    ●창경궁 만찬사태 이어 북한노래 파문 문화재청 홈페이지가 또다시 네티즌들의 ‘맹폭’에 몸살. 6·15 통일대축전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식 행사장에서 북한영화 주제곡 ‘이름없는 영웅들’을 부른 사실이 알려진 지난 15일부터 분노와 항의 글이 쇄도. 지난 1일 세계신문협회의 창경궁 명정전 만찬사태와 관련, 부적절한 대응을 질타받은 지 10여일 만에 재연. 이번 파문은 유 청장이 지난 17일 사과문을 발표했음에도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의 글이 연일 도배되자 문화재청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흡연자들 “비라도 피할 수 있었으면…” 대전청사에 흡연 공무원들이 남모를 설움(?)을 호소. 대전청사에는 지하 1층과 건물 밖, 그리고 일부 짝수층에 흡연실이 있으나 10층 이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4층 옥외공간을 끽연장소로 애용. 그러나 흡연 공무원들은 날이 뜨거워지고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태산. 뙤약볕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늘이 전무한데다 재떨이마저 구석에 처박혀 있기 때문.A사무관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처지가 처량하고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죄인도 아닌데 약간의 배려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관세청, 대박의 꿈 35년 만에 첫 내부 청장을 배출한 관세청이 여세를 몰아 내심 대전청사 최초로 차장까지 내부 임명을 기대하는 분위기. 재경부의 인사적체 등 주변 여건상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김용덕 청장의 건교부 차관 발탁에 이은 성윤갑 차장의 승진으로 열기와 분위기 조성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 또한 차장 임명 후 이뤄질 인사 구도에도 직원들의 관심이 집중. 내부적으로는 행시 17회인 성 청장보다 고시 기수가 앞서는 국장들의 용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분노의 30년…위령비 찾는 한국인 이젠 친구”

    ■ 가족잃은 피해자들의 용서 “36년 전 총질을 해대던 그들에게 난 이미 죽었어. 하지만 정말로 눈 감기 전에 당신들이 날 찾아와 줬구먼. 우리 손자가 살아 있다면 딱 당신들 또래일 텐데….” 김현아(38·여)씨는 베트남 할머니 응웬티니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2003년 8월 어느날, 베트남 쾅남성의 시골마을 투이보촌. 마을 어귀에서 위태롭게 지팡이를 짚고 서 있던 응웬티니 할머니는 그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반밖에 남지 않은 턱을 힘겹게 움직여 짓는 희미한 미소. 한국군에게 가족을 모두 잃고 증오와 절망의 세월을 지내온 할머니는 그렇게 원수의 나라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85세로 세상을 떴다. 김씨를 비롯한 시민단체 ‘나와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우연히 베트남의 항구 도시 다낭에 갔다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전해듣고 현장을 찾았다. 응웬티니 할머니를 통해 들은 67년 12월21일의 이야기는 참혹했다. 한국군 1개 소대가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며 마을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땅굴로 숨은 주민들을 밖으로 끌어내 무차별로 총질을 했다.145명이 죽었다. 응웬티니 할머니는 아들과 딸, 사위를 잃었고 3살배기 손자는 품안에서 두개골이 산산조각났다. 자신도 왼쪽 턱과 혀 반쪽이 날아갔다. 쾅아이성 푹빈촌에서 만난 응웬리(75) 할아버지는 “66년 9월 한국군을 피해 사탕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와 형제, 조카 등 9명이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면서 내내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으며 울부짖었다. 같은 마을 레티티엣(64) 할머니는 “갓난 아들을 보여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아들은 뇌손상을 입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끔찍한 기억을 가진 베트남 사람들과 그 말을 믿기 어려웠던 한국인의 첫 만남은 서로에게 당혹스러웠다. 마을 어귀부터 서럽게 울면서 따라다니는 할머니도 있었고, 간간이 노려보거나 원망을 토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매월 할머니·할아버지 10명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피해 지역 묘지 조성과 위령비 건립, 베트남 평화 기행, 한-베트남 평화 캠프 등을 통해 ‘속죄’를 구하면서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66년 10월 112명이 죽은 쾅아이성 지엔니엔촌 사건의 생존자 팜티메오(85) 할머니도 그랬다. 가족 11명이 죽었고 자신도 가슴에 커다란 총상이 남아 있다. 나직이 말을 이어가다 울음을 터뜨린 할머니는 “내가 우니까 부담스럽지 않으냐.”며 오히려 마주앉은 한국 사람들을 걱정했다. “한국인인 제가 밉지 않으세요.” “그때의 한국 군인들은 증오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그때 겨우 태어난 사람들인걸. 그동안 아무도 묻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고마워.” 69년 10월 쾅남 빈영사 사건에서 일가족 8명을 잃은 판반카(72) 할아버지는 “30년간 한국 사람들에게 치를 떨었지만 2002년부터 꾸준히 찾아와 위령탑에 진심으로 참배하는 한국인들을 이제는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벌인 전쟁에 군대를 보내야 했던 한국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그래선지 한 할머니는 2003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소식에 또다시 같은 일을 한다며 걱정해 주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가 먼저 화해니 용서니 하는 것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해지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삶에 작으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전쟁 피해자인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도 동참하고 있다. 평화 박물관 사업은 2000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당시 83세)·김옥주(당시 77세)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 같은 전쟁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낸 성금 7000만원을 종자돈으로 해서 추진됐다.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이옥선(79) 할머니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나와 우리’ 김정우 사무국장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한국군의 행위를 무조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그래야만 우리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과거사 감추기에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아직도 베트남전을 반공성전이나 국위선양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인접국 ‘진출’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베트남전을 진실되게 조명하는 노력이 진정한 한·베트남 관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포용의 戰前세대’ 딩반득 교수 “이제는 과거를 닫고 더 나은 미래를 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 2월부터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딩반득(62) 교수. 그는 “죽는 순간까지 베트남 전쟁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한국이나 미국에 대해 크게 나쁜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 복구위해 평화 택한것 “한국인이 미안하다고 얘기할 때면 저는 늘 괜찮다고 말합니다. 물론 전쟁 직후에는 한국이 싫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평화를 원했고 썩은 시체와 말라버린 초목만 남은 나라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싶었기에 베트남은 증오를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다고 딩 교수는 전했다. 그는 전쟁 당시 하노이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4년간 학생들과 산에서 숨어 지냈지만 도시에 떨어지는 폭탄, 곳곳에서 들려오는 총성 등 전쟁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 썩어가는 시체들조차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잠을 설치게 만드는 전쟁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그에게는 커다란 괴로움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는 “사과는 감정적인 문제”라면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과거에 대한 사과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한국의 베트남 투자, 영화, 한류(韓流)로 대표되는 문화적 교류로 양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엽제 피해 대물림… 꼭 해결돼야 그는 양국의 우정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딩 교수는 “고엽제로 인한 고통은 전후 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면서 “우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베트남의 동반자로 인정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냉정한 戰後세대’ 원지통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의료·교육 등 어떤 식으로든 베트남에 한국은 보상을해야 합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베트남 학생 원지통(26)은 한국에 대해 전쟁 세대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얘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그는 한국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전쟁에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했죠. 한국·베트남 우호 관계를 말할 때 흔히 투자를 얘기하지만 그건 한국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베트남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요.” ●“한국 투자가 우리를 위한 선행인가” 원지통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좋아하고 눈물나게 매운 불닭을 즐기며 세련된 차림의 한국사람들에 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과거 문제는 별개다. 그는 “윗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린다.”면서 “증오심을 꺼내 보이면 과거 악몽이 떠올라 자신이 더 괴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우리는 동반자’라는 미명 아래 모든 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법원이 고엽제 소송을 기각한 데 대해 “고엽제 문제는 누가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가의 차원이 아니다.”라면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가족이 고통받고 있는 만큼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나쁜감정은 없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잔혹한 이미지까지 바꿀 수는 없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베트남 사람들이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독도 분쟁과 비슷한 문제로 중국에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백중무렵/ 김영산

    조계사 백송을 그가 보여주었다 한낮 한복판 뙤약볕 껍질이 희다 단청 처마 아래 걸린 만 개 백등이 또 희었다 먹중같이 남루하게 늙은 그, 마부(馬夫)의 아버지 천도를 맡길 것을 했다
  • 7일 개봉 영화 ‘엄마’ 주연 고두심씨

    7일 개봉 영화 ‘엄마’ 주연 고두심씨

    “나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지난해 KBS와 MBC 양 방송사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고두심(54)의 수상 소감은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4년 전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를 ‘종교’라고 표현하는 그녀.33년 연기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 어머니’의 표상으로 살아온 고씨가 ‘인어공주’에 이어 영화 ‘엄마’(감독 구성주·7일 개봉)로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에까지 강한 모성애을 전파하고 있다. ●어지럼증 때문에 차 못타는 68세 촌로役 “영화를 찍는 동안 우리 일곱 남매를 키우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어요. 어렸을 때 머리맡에서 ‘자식들 밥이나 제대로 먹여 키울 수 있을까’걱정하시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더군요.” 영화속 ‘엄마’는 마흔 넘어 늦둥이 막내딸을 낳다가 어지럼증이 생겨 차를 타지 못하는 68세 촌로. 그러나 금쪽같은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굳은 결심으로 전남 해남에서 목포까지 3박4일간의 도보여행을 감행한다. 차로 가면 1시간 남짓인 거리. 그러나 자식들과 함께 한발한발 내딛는 여정에는 어머니의 다사다난한 삶을 대변하듯 신작로, 황톳길, 산길 등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작년 6월부터 두달 남짓 촬영했는데 뙤약볕 내리쬐는 길에서만 찍다보니 얼굴이며 목이 새까맣게 타서 말이 아니었어요. 그땐 그런 걸 몰랐지요. 나중에야 ‘아이구, 미쳤군’싶더군요. 여배우 얼굴이 이게 뭔가 해서요. 뒤늦게 오이 마사지며 팩한다고 고생 좀 했지요.” 배역에 몰입하면 앞뒤 안 재는 습관은 오래 전부터 몸에 배었다.1990년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에서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역을 할 때는 ‘앞으로 배우 못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육신을 내던졌다. “처녀적부터 이상하게 어머니나 할머니역만 들어왔어요. 처음엔 그저 배우가 된다는 생각에 싫은 줄도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좀 섭섭하기도 해요. 그 나이때에 할 수 있는 예쁜 역할들을 못해 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래도 크게 후회는 안 해요.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들에게 좋은기억 주는 엄마 되고파 세월이 흐를수록 ‘내리사랑’이란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영화에서 막내딸 주려고 품에 꼭 싸안고 가는 부적은 그런 ‘내리사랑’의 징표이다.“돈도 아니고 뭐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타박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죠. 시집가는 막내딸이 측은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두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그 심정을 뼛속까지 알겠더군요.” 고씨는 문득문득 부모가 된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것만큼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다.“아이들은 저보고 ‘좋은 엄마’라고 얘기하지만 다 믿지는 않아요. 그저 어머니가 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좋은 기억만 남겨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고씨의 생활 태도도 ‘열심히 살아라’‘눈높이를 낮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6~7월쯤 ‘친정엄마’로 연극무대 설 계획 드라마 ‘한강수타령’도 종방됐고, 영화도 곧 개봉하고 나면 당분간 쉬면서 숨을 고를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6월이나 7월쯤 연극무대에 설 계획이다. 제목은 ‘친정엄마’.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무대에서 고씨가 보여줄 어머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파리아의 미소/비람마·조시안 라신 등 지음

    인도 사회를 특징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불가촉천민이다. 파리아(pariah, 최하층민)라고도 하는 불가촉천민을 간디는 ‘신의 아이들’이란 뜻에서 하리잔이라 불렀다. 그러나 사회운동가들은 불가촉천민의 신분·경제적 차별을 철폐한다는 의미에서 ‘억압받는 자들’이란 뜻의 달리트라는 말을 즐겨 쓴다. 불가촉천민은 카스트체계에 속하는 사람들과는 마주칠 수도, 음식을 함께 먹을 수도, 한 우물을 쓸 수도 없다. 심지어는 불가촉천민의 그림자와 닿는 것조차도 꺼려한다. 비록 법적으로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공공연히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파리아의 미소’(비람마·조시안 라신 등 지음, 박정석 옮김, 달팽이 펴냄)는 바로 이같은 불가촉천민의 슬픈 운명을 다룬 책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비람마라는 여성은 초경을 시작하기도 전에 결혼해 열두 명의 아이를 낳으며, 뙤약볕 아래서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일한다. 그러나 그는 전생의 업 때문에 비천한 존재로 태어났으며 이런 업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신분에 순종하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이같은 힌두교적 윤회관은 대다수 불가촉천민이 갖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다. 불가촉천민이 정치적으로 점차 의식화되기 시작한 것은 간디 이후 현대사에 들어서부터다.97년에는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 출신인 나라야난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카스트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도 인도에는 3억명에 이르는 불가촉천민이 인간 이하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불가촉천민 문제를 다룬 이 책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갈채없어도 꿈은…” 장애인올림픽의 전사들

    “갈채없어도 꿈은…” 장애인올림픽의 전사들

    “아테네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발상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갈채와 환호는 벌써 조금씩 식어가고 있지만,“아직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하여 오는 11일 장도에 오르는 82명의 태극전사는 오늘도 땀과 눈물로 운동복을 적시고 있다.145개국 4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장애인올림픽은 17일부터 28일까지 12일 동안 열린다. ●‘포레스트 검프’의 질주 “올림픽이 모두 끝난 것처럼 얘기하니 솔직히 섭섭합니다.”늦더위에 뙤약볕이 내리쬐던 5일 오후 경기 성남 제2운동장 트랙.400m,800m,1500m에 출전하는 최용진(37)씨의 운동복은 소금기로 허옇게 변해 있었다.육상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트랙부문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뇌성마비인 최씨는 트랙 바닥에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써가는 필담(筆談)으로 인터뷰에 응했다.8살 때 뇌염으로 오른쪽 근육이 마비되고 언어장애를 앓으면서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트랙을 밟은것은 25세 때인 지난 1992년. 고 손기정 옹의 일대기를 그린 TV특집물을 보고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 그는 신문배달을 시작하는 오전 4시부터 공사장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오후 8시까지 어떤 교통수단도 이용하지 않는다.대신 하루도 쉬지 않고 30㎞씩을 뛰고 있다.주위에선 그를 장애인의 인간승리를 다룬 미국 영화를 본따 ‘포레스트 검프’라고 부른다. 박용천 코치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무리한 운동은 금하고 있지만 해질녘엔 혼자 몰래 나와 트랙을 돌 정도로 집념이 강하고 성실하다.”고 혀를 내둘렀다.최씨는 “병으로 누운 어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어드리는 것이 소원”이라며 선전을 다짐했다. ●동갑내기 부부의 편견 들어올리기 “여섯살 난 찬영이에게 자랑스러운 부모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메달이요?최선을 다한 다음의 문제죠.” 서울 태릉국제사격장 뒤편 40평 남짓한 조립식 가건물에서는 9명의 역도 선수단이 굵은 땀을 쏟으며 바벨과 씨름하고 있었다.소아마비를 앓는 조수남(36)·신경해(36)씨 부부도 한데 뒤섞여 연신 비지땀을 흘렸다.조씨 부부는 각각 남녀 40㎏급에 출전한다.두 사람 모두 세계 10위권의 기록을 갖고 있다.조씨는 130㎏,신씨는 70㎏을 거뜬히 들어 올린다. 조씨는 “출산 후 병치레가 잦은 아내에게 역도를 추천했는데 국가대표까지 될 줄 몰랐다.”면서 “세계 순위도 저보다 앞선다.”고 활짝 웃었다.올림픽을 앞두고 합숙훈련을 하느라 부부는 택시 운전과 자동차 정비공장 경리일을 잠시 쉬고 있다.다행히 회사측에서도 “힘껏 해보라.”며 양해를 해줬다.중학교 2학년 때 한 장애인 캠프에서 만난 두 사람은 18년 남짓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오랜 친구이며,부부이지만,함께 운동을 하다 보면 새록새록 할말도 많다.“그래서 바벨을 놓지 못하는가 보다.”며 두 사람은 얼굴을 붉혔다.“세상을 향해 편견을 번쩍 들어 올리겠다.”고 두손을 맞잡았다. ●최연소 선수의 백핸드 스매싱 벌써 4000개째다.휠체어에 앉은 김용건(20)씨는 반사적으로 탁구공을 받아넘기고 있다.약점인 ‘포핸드 드라이브’를 가다듬는 것이 아테네로 떠나기 전 김씨에게 떨어진 과제다.간혹 숨이 가쁜 표정이지만,눈길은 계속 녹색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 재활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있는 김씨는 우리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중학교 1학년 때 급성척수염으로 대수술을 받았지만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김씨는 “사춘기 때는 쉽게 상처받고 고민도 많았지만 이젠 적응이 됐다.”면서 “생각해 보면 그리 불편한 것도 없다.”고 선한 미소를 지었다.탁구를 시작한 것은 17세 때.재활운동을 위해 라켓을 쥐었지만,나날이 실력이 늘어가자 국가대표 코치의 눈에 들었다.체계적인 훈련이 이어졌고,국내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김씨는 수비 중심인 장애인선수의 스타일과는 달리 공격적인 탁구를 구사한다. 동료와 코치들은 “날카로운 백핸드스매싱은 일반 선수도 받기 힘들 정도”라면서 “팔이 길고 기본기가 튼튼한 유럽선수만 조심하면 금메달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그는 “졸업하면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목표이지만,우선 당장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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