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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화벌이에 내몰리는 북노동자(시베리아 북한벌목장:6)

    ◎벌목은 뒷전… 밀렵·공사장부업 몰두/일감 크게 줄자 웅담·사향 채취 혈안/8백명 아파트공사… 탄광 품팔이도/불법취업 사회문제화… 러시아,한국기업 진출 바라 노동자들의 대거 탈출등으로 벌목사업이 갈수록 쇠락해지자 북한측은 러시아에서 또 다른 외화벌이에 몰두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사냥과 건설,그리고 탄광에서의 채탄작업이다. 가장 오래된 벌목노동자의 부업은 사향노루와 곰의 사냥이다.벌목장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에는 「노루주의」라는 표지판이 따로 설치될 정도로 극동 러시아의 벌판에는 사향노루가 많다.바로 그 사향노루와 겨울잠을 자는 곰을 마구 잡아 사향과 웅담을 채취해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다.일부는 러시아 사냥꾼들로부터 비교적 싼값으로 사향과 웅담을 사들이기도 한다. 북한벌목장이 있는 튀르마시에서 30년동안 곰사냥을 해왔다는 크리오보르스키 예르게니 블라디미로이슈씨(59)는 『북한노동자들이 불법사냥을 자행,곰과 사향노루의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고 밝히고 『튀르마에는 러시아인 직업사냥꾼이 많아 북한노동자들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월급 제대로 안줘 북한노동자들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벌목협정 시한이 연말로 끝나는데도 벌목장의 인권문제가 떠오르면서 재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지난해 8월쯤부터 사실상 일손을 놓은 상태이다.무료해진 벌목노동자들은 소일거리로 이웃 공사장이나 농가에서 품을 팔기 시작했다.공사장에서는 주로 러시아주민의 집을 짓는 일을 했으며 농가에서는 채소재배를 도왔다. 일부는 이웃 군부대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어주기도 했다.이런데서 제법 수입이 생기자 북한노동자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부업에 매달렸다. 당시 북한벌목장의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지경에서 돈을 벌 길이 보이자 노동자들에게 통행증을 발급,벌목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나가 한국에서 온 종교인이나 기업인,고려인등으로부터 금품을 마련해 벌목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일부 돈을 마련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등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더욱이 돈을 벌러 내보낸 노동자 가운데서도 탈출자가 나타나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윤모목사는 『6개월전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갑자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몰려온 적이 있었다』면서 『이들은 돈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탈출자와 마찬가지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망명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측도 그당시 망명허용 여부를 문의하는 북한인의 전화가 잇따랐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상점 털기도 급기야 지난 2월말부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한국공관에 무더기로 망명을 요청했다는 모스크바발 보도가 터져나왔다. 이로써 북한노동자들의 이른바 「앵벌이」는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또한 북한노동자들에 대한 외출통제가 한층 강화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측은 최근들어 좀더 합법적인 외화벌이의 방편으로 건설공사에 나서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의 테로마이스키구역에 짓고 있는 25층짜리 아파트가 대표적인 공사현장이다.북한측은 러시아와 무역거래에서 발생한 차액을 루블화로 갚는 대신 아파트공사를 해주고 있다.이곳을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8백명가량의 북한 건설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관계기관은 밝혔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통제는 매우 삼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한 간부는 『식당에서 우연히 북한 건설노동자를 알게돼 한국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주었는데 그가 그 노래를 듣다가 본국으로 소환됐다』고 말했다.기자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다가가 『몇 층짜리 건물이냐』고 말을 걸자 『당신 누구냐』『그런 걸 왜 묻느냐』는등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다. 이들과는 달리 중부시베리아의 공업지대 구스바스에서는 수백명의 북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는데 한창이다.구스바스탄광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업이 자본을 대고 있으나 노동조건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2의 외화벌이」에 나서는데 대해 러시아인들은 매우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하바로프스크주에서 발행되는 「지호오겐스크스카야 즈베즈다(태평양의 별)」지는 최근 북한의 불법취업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제했다.『조선노동자들이 개인집에서 밭을 갈거나 기업소에서 건설을 하고 군대의 나무 베는 일을 돕고 있다』면서 『이는 그들의 봉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기사는 이어 『이들을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불법취업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러시아정부는 조선측이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월급을 주도록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매우 아이로니컬한 것은 러시아가 벌목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북한의 자리를 한국이 메워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물론 한국측에 바라는 것은 북한에게처럼 노동력이 아니다.우리의 자본과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벌써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무더기로 망명 요청 러시아의 대표적인 북한벌목장이 있는 체그도민을 방문했을 때 페트로 티티코프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다.한국에서 기자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많은 기업인들이 체그도민을 다녀갔다는 것이었다.티티코프시장이 자랑삼아 보여준 명함철에는 현대 고려합섬 한라 대우 한국중공업 한전등 국내 대기업의 사장으로부터 대리에 이르는 기업인들의 명함이 9장이나 꽂혀 있었다.물론 일본회사의 명함도 많았다.티티코프시장은 『한국기업인 가운데 두명은 북한측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일러줬다. 이 지역 주민들은 한국과 서울에 관심이 많아 서울에서 기자가 왔다고 하자 「노동자의 말」이라는 지방신문의 편집장이 인터뷰를 요청했다.그는 한국이 체그도민에 관심을 갖는 이유와 함께 서울신문이 다루는 기사의 주요테마및 발행부수,기자수,근무시간등을 물었다. 벌목장의 러시아측 업무를 맡고 있는 우르갈레스의 발레리 수크노발렌코 총지배인은 『지난해말 북한과의 벌목재협정을 앞두고 주민들이 재계약을 하지 말도록 정부에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그는 『이미 한국의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서울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밝히고 『러시아법만 준수하면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우르갈레스의 아나톨리 체 부지배인은 『최근 북한측에합작생산을 제안하고 있으나 북한측이 거부하고 있다』면서 『아마도 합작생산을 하면 합작기업소가 설립돼야 하고 거기서 이익을 나눠야하니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러시아인의 벌목기술에 발전이 없고 노동자수도 절대부족해 당분간 북한노동자의 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계약 추진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러시아측 벌목회사인 달리레스프럼의 필리펜코 바실리비츠 부사장은 『러시아에는 나무를 벨 수 있는 벌목장이 12구역이나 된다』면서 『북한벌목장은 그 가운데 1개 구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달리레스프럼의 대외관계업무를 맡은 사람은 윤 예르게니 세르게이츠(37)라는 한국인2세였다.그는 『현재 서울의 중소규모 기업 3군데와 벌목 계약을 추진중』이라면서 『한국사람들이 일처리를 빨리빨리 하기 때문에 일본사람들보다 한국사람들과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북한노동자들이 철수해버린 비르비잔벌목장의 콜리에프 비크토르 그리고리비츠지배인의 사정은 더 다급한 것 같았다.그는 기자가 『서울에서왔다』고 인사를 하자마자 『목재를 합작생산할만 한 회사가 없겠느냐』고 묻더니 『서울로 돌아가면 꼭 회사를 소개해달라』면서 명함을 내밀었다.그가 내민 명함의 뒤쪽에는 「아라사 피라비첨목재가공창 창장 고소설부」라고 적혀 있었다.중국이나 한국,일본등과의 합작을 생각하고 한자로 명함을 새겼다는 것이었다.
  • 장터:중/칠패·배오개장터 남·동대문시장으로(서울 6백년 만상:8)

    ◎곡류·야채 취급… 서민들의 사랑받아/일제땐 일인손에 6·25땐 잿더미로/“도깨비시장” 오명씻고 이젠 하루매상 수백억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우리민족의 애환과 이 땅의 상거래 변천등 그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수도 서울의 양대 장터이다. 두 시장의 과거와 지금의 모습은 신기할 만큼 닮아있다.시장이 형성되기까지의 배경과 수세기에 걸친 부침의 세월,그리고 현재 당면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아주 흡사하다.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 철폐로 도약기를 맞은 남대문의 칠배와 동대문의 배오개장터는 뜨내기 난전형태를 벗고 급속히 성장,종로의 육의전,마포의 나루장터와 함께 서울의 상권을 분할하면서 오늘날의 남대문·동대문시장의 기틀을 다졌다. 종로가 유기와 옷감,마포가 어물과 땔감·소금을 많이 취급한데 비해 남대문과 동대문 두 시장은 당시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장터답게 곡류와 야채를 많이 거래했다. 성장기에 들어선 두 장터는 19세기말에 또 한번의 도약기를 맞았다.개항으로 외국문물이 대거 밀려들어오고 1894년 갑오경장으로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붕괴되면서 상업활동이 자유화됨을 틈타 쇠락일로에 있던 육의전을 간단히 제치고 서울의 상권을 완전히 거머쥐었다. 그러나 두 장터는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을 계기로 흥망을 거듭하는 시련속에 빠져들었다.화폐개혁과 자본을 앞세운 일제의 핍박으로 이 땅의 민족자본은 거의 도산했다.이런 가운데 동대문권의 광장주식회사,남대문권의 조선농업주식회사가 각각 발족돼 두 장터는 근대시장으로 변모하는 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일인들의 상권장악을 위한 공략은 갈수록 거세져 마침내 지난 36년 남대문시장이 일인회사인 중앙물산으로 넘어가고 아울러 일제말기의 가혹한 공출로 물건이 고갈,시장기능이 다시 마비되는 곡절을 겪었다. 광복후 두 장터의 상인들은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나 이 역시 곧 전쟁으로 잿더미로 변했다.그리고 휴전뒤 폐허위에 시장을 다시 재건하지만 이번에는 엄복만과 이정재등 자유당시대의 소위 깡패들에게 곤욕을 치렀다. 두 시장은 이처럼 수시로 닥쳐온 시련들을 때로는애착으로,때로는 의지와 저항으로 차례로 극복하며 명맥을 유지,오늘날 우리나라 시장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남대문시장은 지난 64,65,68,75년등 몇차례 대화재를 입었지만 한편으로는 새 건물이 들어섬으로써 시장이 현대화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의 이같은 고된 발자취들에는 수천년을 끈기로 버텨온 우리 민족의 뜨거운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즉 이들의 성장과 시련은 바로 우리 민족의,우리 경제의 성장과 시련이라 할 수 있다. 두 시장의 이같은 역사의 이면에는 물론 그늘진 구석도 있다.남대문시장은 한때 미제상품과 밀수외제품이 범람,「양키시장」「자유시장」등으로 불렸다.「도깨비시장」의 달갑잖은 별명도 얻었다.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릴 때처럼 없는게 없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단속반을 피해 상인들이 도깨비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난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이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다.동대문시장 역시 전쟁뒤 외국의 원조품으로 들어온 구호물자가 빠져나와 유통되는 본거지라 해서 「구호물자시장」으로 불리고 또 단속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아예 진열대에는 상품을 비치하지 않은채 감춰놓고 판다고 해서 「깡통시장」으로도 불리는등 여러가지 오명들을 갖고있다. 최근에 들어와서도 두 시장은 고급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밀려 한때 크게 고전하기도 하지만 특유의 끈기로 위기를 극복,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는 장터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서울의 관광명소로서 새로운 위치를 굳혔다. 어쨌든 곡절도 많고 사연도 많은 우리나라 전통 재래시장의 양대줄기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오늘도 하루 수백억원의 매상고를 올리면서 각기 수십만명의 장꾼을 불러들이고 있다. 닮은꼴의 공동운명체 두 시장은 그러나 과거에도 늘상 그래왔듯이 지금 또다른 시대환경에의 적응을 요구받고 있다.
  • 벽난로/겨울철 따스함·자연의 멋 조화

    ◎모양에 따라 매립과 노출형 2종 구분/비용 170만원∼300만원선… 비싼게 흠 추운겨울,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포근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난방기구로는 벽난로가 으뜸이다.「타닥 타닥」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아름다운 불꽃색이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연의 멋과 정취를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난방효과와 함께 멋스러움을 느낄 수있는 벽난로는 그러나 설치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다.마감재와 화구의 크기등 공사여건에 따라 다르긴 하나 벽돌및 자연석으로 마감할 경우 최소 1백70만원 이상,대리석같은 경우엔 3백만원이상이 든다. 그러나 전문시공업체에 맡길경우 영구적이고 또 이사때에는 해체해서 재설치할수도 있어 요즘에는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멋을 즐기려는 실속파들이 많이 찾는 추세라고「삼진벽난로」 정현진과장은 설명한다. 다양한 재질,디자인으로 실내장식효과를 살리는데도 한몫하는 벽난로는 형태에 따라 크게 벽의 내부에 난로를 넣는 매립형과 주물로 만든 원추형의 난로를 실내공간에 따로 설치하는 노출형으로 구분된다.땔감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장작용외에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살린 LNG·LPG가스용,전기용,장작·가스겸용등 4가지로 나뉜다. 단독주택이나 빌라·연립주택은 장작및 가스벽난로의 설치가 가능하나 공동주택관리법의 규정을 받는 아파트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히터를 장착,겉모양만 흉내낸 전기용.아파트에 사는 알뜰주부들은 60만∼1백만원하는 전기벽난로 본체만 사서 직접 벽돌로 구조물을 쌓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고. 연료비는 장작의 경우 한겨울을 나는데 1t트럭 1대분(25만원선)이 필요하며 시공회사에 주문하면 배달도 해준다.가스는 한달에 2만원선. 벽난로 전문 시공업체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축자재상가 일대에 몰려있어 설치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쓰레기 하루 3만t…농어촌“중병”/오염실태·문제점 점검(심층취재)

    ◎농약빈병·폐비닐 들녘 곳곳에 방치/1회용품 사용 늘어 산야오염 심각/처리장·인력·장비 태부족… 수거 제대로 못해 우리의 농어촌이 생활쓰레기로 중병을 앓고 있다.농어촌마을의 동구밖이나 개천·들녘은 생활쓰레기와 축사폐수등으로 인해 시궁창으로 변해 미꾸라지와 피라미를 잡던 옛시절의 낭만은 볼 수 없게 됐고 농토마저 농사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위험수위에 까지 이르는 지경이 됐다.「쓰레기 천국」이 된 국토를 되살리기 위해 전국민이 참가하는 「국토 대청결운동」을 계기로 전국 농촌지역의 쓰레기오염실태와 문제점을 긴급 점검해 본다. ▲농어촌 생활쓰레기 발생량. 농촌의 쓰레기는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비교해 종류와 발생량에서 큰 차이가 없다. 92년말 현재 전국에 걸쳐 하루 쓰레기 발생량은 7만5천여t.이 가운데 농어촌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3만t남짓으로 도시지역의 4만5천여t에 비해 다소 적지만 15t짜리 덤프트럭에 실어 일렬로 세우면 18㎞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1인당 쓰레기 배출량도 도시의 1.79㎏과 거의 맞먹는 1.62㎏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들 쓰레기는 음식찌꺼기류가 전체의 28.5%로 가장 많고 연탄재 28.4%,종이류 14.8%의 순이다. 전남도의 경우 지난해말 하루평균 쓰레기 총발생량이 3천9백45t으로 6개 도시지역에서 1천4백31t,21개 농촌지역에서 2천5백14t이 각각 배출됐다. ○도시쓰레기 맞먹어 쓰레기 종류도 가연성쓰레기가 도시지역이 7백79t,농촌지역 9백99t으로 별 차이가 나지않는다.또 불연성 쓰레기는 도시지역 5백34t,농촌지역 1천3백56t이고 재활용성 쓰레기는 도시 1백18t,농촌지역 1백59t으로 집계됐다.이처럼 농촌지역의 쓰레기 발생량이 도시지역에 못지않게 많이 배출되고 있는 것은 농촌생활의 도시화에 가장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쓰레기 오염실태. 한마디로 농어촌지역에는 생활쓰레기가 지천에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쓰레기가 곳곳을 덮고 있다. 특히 쓰레기 수거체계의 미비로 농촌 들녘에는 농약빈병이나 폐비닐 연탄재 1회용포장지 등 각종 쓰레기가 「대책없이」 방치돼 있다. 농약빈병의 경우 지난해 7천3백94만개가 공급되었으나 회수량은 66.2%인 4천8백92만3천개에 불과해 45%정도가 전국의 들녘과 농토에 버려진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농약빈병은 농토를 오염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돼 왔으나 「쓰면 그만」이라는 의식때문에 쉽사리 근절되지 않고 있다. 폐비닐 역시 논밭이나 수로등에 수거되지 않고 있어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정부는 지난 87년이후 한국자원재생공사를 통해 이·동 단위로 수집에 나서고 있으나 현재 30%정도는 들녘에 방치 돼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생활수준 향상으로 전체 쓰레기 발생량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가 농어촌의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경북도의 경우 1일 전체쓰레기 발생량 3천7백55t 가운데 음식물쓰레기가 전체의 28%에 해당하는 1천54t을 차지했다. ○관광지 오물더미에 농어촌 마을 부근 산과 하천·연안 등도 오염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유명관광지가 많은 강원도 양양·고성·명주등지의 마을 하천등에는 행락객들이 버린 먹다남은 음식물쓰레기와 1회용 포장지 깡통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어 인근 마을의 소하천으로 유입,토양과 강물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문제점. 농촌쓰레기 발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내가 버린 쓰레기가 결국 내게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주민들에게 체험적으로 와 닿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4∼5년전부터 1회용품 사용이 급증하면서 농어촌지역에도 1회용 컵라면·도시락·기저귀 등과 음식찌꺼기등이 마구 뒤섞여 도시쓰레기의 양상을 띄어가고 있다.생산업체들은 상품의 과대포장과 함께 나무 젓가락 종이컵 캔등 1회용 물품을 마구잡이로 생산,쓰레기의 양산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특히 1회용품은 다른 쓰레기들과는 달리 잘 썩지 않아 농어촌의 산야를 급속히 오염시키는 주범이 돼 버렸다. 장흥군 폐기물관리과 직원 유용수씨(35)는 『오랫동안 농경문화생활에 젖어 있는 국민들이 먹고 쓰다 남은 것은 퇴비나 연료등으로 쓸 수 있다는 의식이 배어있어 쓰레기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쓰레기의 재활용방안이 부족한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우선 재생가능한 쓰레기와 그렇지 않은 쓰레기를 분리하는 쓰레기통 설치해 한달에 한번씩이나 1주일에 한번씩 공동수거해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활용해야 하나 주민들의 인식부족과 환경미화원의 부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재활용 인식부족도 농어촌의 특성상 쓰레기를 처리 할 인력및 장비도 거의 전무하다.정부는 지난 91년 50가구이상의 마을을 청소구역으로 지정했으나 청소차량이 없는 읍·면이 대부분이며 설사 차량이 있다 하더라도 구역이 넓고 미화원의 부족으로 효율적인 이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도에서는 차량과 미화원 등 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인원과 장비는 20∼30%정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천군은 관내 3백10개 부락 가운데 신둔면 등 1백12개 부락 2만6천여가구와 광주군 초월면등 4개면 1천5백가구에는 아예 청소차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와 함께 몇해전만해도 마을을 돌며 폐가구·버린 가전제품 등을 수거해가던 고물상마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발길이 끊은지 오래다.이 때문에 농어촌 주민들은 연탄재·폐비닐·맥주병·포장재 등 각종 생활용품들을 공터나 하천등에 버려 농지훼손은 물론 주위환경을 해치는 등 쓰레기 수거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쓰레기의 폐기및 매립문제는 최근 지역이기주의등으로 핫이슈가 되고 있어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각 지방자치단체는 쓰레기 매립장건설에 따른 반대시위 등 「님비」성 민원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전남도의 경우 쓰레기 발생량을 10% 감량한다는 계획아래 10억5천만원을 들여 21개 농촌지역에 쓰레기 간이소각장을 설치할 계획이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겨우 1곳에서만 공사발주를 했다.도내 1백3곳의 쓰레기 매립장가운데 99곳이 3만평미만의 소규모 쓰레기장인 경북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그러나 소규모 매립장의 경우 완벽한 침출수 방지시설을 갖추어야 하나 대부분의 쓰레기매립장이 그대로 쓰레기를 묻고 있는 실정이다. ◎“소각장 설치·분리 수거교육 병행해야”/연탄재등 산적… 매립장 연차 건설/이범신 광주환경청 폐기물관리과장(당국자 의견) 『쓰레기 양을 줄이기 위한 주민계도와 함께 각 마을별 쓰레기 처리장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광주지방환경청 폐기물관리과 이범신과장은 지금 우리 농어촌에서 겪고 있는 쓰레기 몸살의 해결방안을 이같이 제시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양과 종류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처리방법에서 어려운 문제가 뒤따르는 것이 지금 농어촌이 직면하고 있는 쓰레기문제의 어려운 점이라고 이과장은 지적했다. 『농어촌의 쓰레기는 도시와는 다르게 논과 밭을 포함한 드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수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힌 이과장은 『특히 최근에는 영농이 현대화되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폐비닐 등 처리가 곤란한 산업쓰레기가 들녘마다 방치된채 옥토를 위협하고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과장은 『대도시의 경우 환경에 대한 인식변화로 분리수거 등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반해 농어촌지역은 아직도 처리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 마을밖 웅덩이나 야산,또는바다에 그대로 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과장은 『쓰레기처리장 확보문제는 정부의 예산지원이 뒷바침돼야 하는 만큼 대단위 매립장조성보다는 각 마을별로 소규모 소각처리장의 설치를 장려하고 가연성·불연성쓰레기를 분리 처리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부지역에서 「한뎃솥걸기운동」등이 추진돼 쓰레기를 소각처리하고 있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유독성 물질을 함부로 태우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과장은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각장처리시설과 함께 주민교육이 병행돼야하며 여기서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는 각 읍·면지역이나 몇개의 군을 하나로 묶어 대단위 종합매립장을 확보해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다만 이같은 시설계획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지만 문제는 「냄비현상」에 따른 각 지역 주민들의 반대라고 이과장은 지적했다. 전남도의 경우만해도 무려 5개지역이 매립장확보를 놓고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과장은 농어촌 쓰레기 문제의 해결은 우선 재활용을 통해 발생량을 줄이는 일이고 당국의 지속적인 계도와 과감한 시설투자,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는 슬기가 어느때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성 「한뎃솥걸기 운동」 큰 성과/전체 “쓰레기의 25% 땔감으로 처리/주민 78% 참여… 에너지비 10% 절약/쓰레기줄이기 성공사례 전남 보성군은 생활쓰레기 줄이는 방안으로 지난해 6월부터 「한뎃솥걸기 운동」벌여 전체 생활쓰레기의 25%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데」란 집바깥이라는 의미로 현대적인 주방이외의 마당 한쪽이나 외벽 또는 빈터등에 전통적인 한뎃솥을 걸어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 가연성 쓰레기를 땔감으로 활용하는 운동이다. 보성군에서는 생활쓰레기 줄이기운동에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한뎃솥을 만드는 농가에 씨멘트·빈 드럼통 등을 지원해주며 이른바 시험농가를 지정,주민참여를 유도했다. 보성읍과 벌교읍등 2개읍 10개면 마을별로 시범농가를 운용한 결과,쓰레기를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에너지 절약효과를 거두게 됐다.지난해 6월 3백77가구에 불과했던 이 운동의 시범농가가 지난해 연말에는 1천3백80가구로,그리고 올해에는 1만8천1백11가구까지 늘었다.이는 전체 2만3천3백20가구의 78%로 보성읍과 벌교읍 아파트단지와 한뎃솥을 걸수 없는 가정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주민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보성군 전역에서 하루 나오는 생활쓰레기는 1백25t.그 가운데는 40%에 해당하는 40t이 막대기·부대종이등 가연성 쓰레기이고 40t의 가연성 쓰레기 가운데 전체 생활쓰레기의 25%에 해당하는 32t이 한뎃솥걸기운동으로 땔감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성군 사회진흥과 강운용과장(51)은 『이 운동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가정 에너지비용을 10% 절약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한뎃솥을 이용하는 가구의 경우 20㎏들이 프로판가스 1통을 종전에는 70일정도 사용했으나 이 운동을 벌인후 가스 사용기간이 평균 15일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성읍 쾌상리 백봉자씨(50)는 『읍사무소에서 한뎃솥 걸기를 권장할때는 탐탁치 않게 생각했으나 실제로 한뎃솥을이용해보니 쓰레기발생 양도 줄이고 남는 재는 텃밭의 퇴비로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이 운동의 확산을 주장했다.
  • 김부자 위상 흔드는 북 식량난/WP지,「방문객 증언」 보도

    ◎“하루 두끼” 구호 등장… 충성도 급락/주민,군보급창 습격… 폭동설 나돌아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는 19일 「북한내의 봉기와 식량폭동에 관한 여행객들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식량폭동및 반체제소요 움직임,그리고 김일성부자에 대한 지지도 급락현상 등을 크게 보도했다.다음은 그 요지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증언은 북한주민들의 굶주림과 절망현상이 더욱 커짐에 따라 식량폭동과 반체제소요가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같은 소요가 이른바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의 전체주의 정권을 위협하는 정도인지는 말하기 어렵다.그러나 서방 정보분석가들은 국민으로부터 체제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군대이동의 징후들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방문객들의 증언은 만경봉호와 관련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니가타에서 청진까지 재일교포를 수송하기 위해 건조된 만경봉 92호는 보통 2백18명의 승객을 태운채 매 10일마다 왕복운행을 했다.그러나 니가타항만 관리들에 따르면 두달전부터 북한측은 만경봉 92호의 정규 승객운송을 중단했다. 올해 북한을 방문한 여러 재일교포들은 특히 금년봄에 식량폭동과 여타 봉기들이 있었다는 소식을 친척으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이들 여행객들은 수도,전기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땔감조차 부족한 북한내에서 가난하고 배고픈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김일성찬양 선전이 넘치는 북한에는 「하루 두끼만 먹자」는 새로운 구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산근처의 친척을 방문했던 80세의 할머니는 『우리 아들은 집주변에 콩을 심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다행한 편이었다.그들은 1년에 한번 특식으로 쌀밥을 먹으며 내가 도착했을때 1년이상 고기를 먹지 못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김일성에 대한 전통적인 존경심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으며 김정일에 대한 지지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여행객들은 전했다. 김일성부자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못하자 공포 통치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평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재일교포 이영화씨는 김일성을 비판할 경우 내려지는 처벌은 종신형이며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배우자와 어린이에게까지 해당된다고 말했다. 북한을 다녀온 재일교포 정명수씨는 『중국국경의 운봉이라는 마을에서 주민들이 막대기와 망치를 들고 군대식량창고를 습격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일정보기관들은 폭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금년봄 북한군이 휴전선 일대에서 평양외곽으로 이동되는 이례적 군대이동현상을 보고한바 있다.지난 4월과 5월 평양공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채 폐쇄됐었다. 북한에 폭동이 있다면 이는 오랜 김일성 1인통치의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리스카시 전주한미군사령관은 얼마전 의회증언에서 『우리는 북한이 내부에서 파열하거나 폭발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증언한바 있다.
  • 연탄금석(외언내언)

    5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을 나는데 세가지 중요한게 있었다.양식과 반양식인 김장과 장작더미였다.마당에 장작평이나 쌓아놓은 집이면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그 장작이 60년대 들면서는 연탄으로 갈음된다.땔감의 혁명이었다.생각컨대 산림녹화도 이 연탄의 보급으로써 가능했다고 할일이다.산의 나무를 땔감으로서는 필요없게 만들었던 것이니 말이다.산림녹화의 공로는 새까만 연탄한테 돌려야 한다. 세상사에서 일방적으로 이익만 주는일이란 없다.이익되는일의 그늘에는 그에 못지않은 불이익이 도사린다.연탄도 그렇다.겨울을 따뜻이 날수있게 하는것은 좋았지만 장작과는 달리 검은 사신을 더불고 다녔기때문이다.대충 한해에 연탄가스 중독사고자는 약1백만명에 이르고 그중 약4천명 정도씩이 죽어갔다.그뿐이 아니다.요행히 죽지않고 회복이 된다해도 5명 가운데 2명꼴로 언어장애등의 후유증에 시달린다.대단한 인재라 하지않을수 없다.그동안 중독사고의 원흉인 일산화탄소를 제거해보려 했으나 별효과를 보여준바는 없다. 그래도 겨울로 다가서면 이 연탄을 들여놔야 마음이 놓이는것은 장작때와 다를게 없었다.동네에는 연탄소매상이 있고 거기 배달원도 딸린다.그들은 직업상 옷하며 얼굴이 까말수밖에 없다.『우람한 몸집에/시꺼먼 구레나룻이 너무나 인상적인/우리마을 16통3반 반장 송만호씨/그는 한때 월남전을 누빈 용사였지만/지금은 조그만 연탄가게 주인이다…』.조동화시인의 「연탄배달부를 노래함」은 이렇게 시작된다.그의 시심은 연탄배달부가 쌓아두고간 연탄을 「꽃봉오리」로 표현한다.『아궁이마다 귤빛 환한 꽃으로 피어나/우리들의 시린 등을 녹여준다』고 덧붙인다. 이제 그 연탄의 시대도 가고있다.서울의 경우 86년까지만 해도 연탄사용가구는 85.4%였는데 계속 줄어드는 추세속에서 올해는 30%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그자리를 LNG,LPG가 메워나간다.연탄은 우리들 성장시대의 땔감이었는가.
  • 국토 요새화·무리한 개간에 산림황폐(오늘의 북한)

    ◎공해 방지시설 미비… 대도시 주변강 수질오염도/땔감으로 나무 벌목­강마다 토사 쌓여 수해우려/금강산 등 기암엔 구호·김 부자 찬양글귀로 “얼룩” 북한도 최근 뒤늦게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북한은 최근 환경전담기구인 「국가환경보호위원회」를 신설하고 세계 환경의 날(6월5일)에 즈음해 평양에서 북한주재 유엔개발계획대표부 직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지는등 그동안 거의 신경을 쓰지않아 왔던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환경문제가 후기 산업사회의 주된 특징이긴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선진개방 사회의 공해문제와는 상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다시 말해 남한을 포함한 서방 산업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및 수질오염 문제보다 인위적 자연훼손으로 인한 자연파괴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실 고도의 대중소비단계에 접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골머리을 앓고 있는 생활쓰레기 문제는 아직 북한에선 그다지 문제가 되지않고 있다.소비재공업이 낙후되어 생필품이 질·량 양면에서 극히 빈약한데다 쓰레기 재활용도도 비교적 높기때문이다.실제로 북한에선 외화부족으로 철·고무·비닐·폐지등을 인민반별로 철저히 수거하기때문에 연탄재와 음식찌꺼기정도 이외에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이 별로 없는 형편이다. 이처럼 생활쓰레기가 적기때문에 북한에는 쓰레기통이 도시의 경우 3백 가구당 1개씩,농촌은 반경 1㎞정도 마다 한개씩 있다고 한다.매립장은 따로 없고 도시 주변의 저지대를 선정해 1∼2ⓜ 두께로 메운 다음 흙을 덮어 공장부지등으로 사용된다고 귀순자들은 전한다. 물론 북한에서도 공장시설의 낙후와 공해방지시설의 미비로 평양·원산·청진·남포등 대도시 주변의 강이 수질오염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공해문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귀순자들의 증언도 있다.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식량난 타개를 위한 무리한 경지확장등 북한당국의 근시안적 정책에 따른 산림의 황폐화를 비롯한 자연파괴다. 남북고위급회담이나 IPU대회에 참석한 우리측 대표단 일행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산에는 우리나라의 50년대처럼 나무가 거의 없다고한다.개성에서 평양간이나 평양에서 원산까지 도로 주변의 야산이나 마을 어귀에 이르기까지 나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웬만한 야산들은 식량증산을 위해 다락밭으로 만들어지거나 나무들이 땔감으로 베어져 황폐해지고,강에는 장마철에 토사가 쌓여 큰 문제를 낳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환경파괴를 몰고온 주요정책으로는 ▲60년대 이후 추진해온 「4대군사노선」에 의한 전국토의 요새화 ▲70년대 중반부터 실시한 「자연개조 5대방침」에 따른 다락밭 건설 ▲「80년대 10대전망목표」로 추진된 새 땅찾기 사업등을 꼽을 수 있다. 백두산·금강산 등 명승지마다 새겨진 김일성부자의 친필글귀나 각종 구호들도 북한의 자연을 좀먹는 흉물들이다.김부자의 우상화와 관련된 조각사업을 북한에서는 「어휘새김전투」로 부르며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전국의 유명한 산마다 바윗돌에 김부자의 대형 글씨를 음각으로 크게 새겨 붉은 페인트를 칠한다.북한은 이 「전투」를 통해 금강산에만도 58개소에 4천3백여자의 글자를 새겼으며,지금까지 북한전역에 4만여자의 글자를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추상화가 유경채씨(이세기의 인물탐구:25)

    ◎현상의 내면 꿰뚫는 “심미안 화가”/사물의 정감·생명의 리듬을 독특하게 표출/기하학적 선·색채속 단아한 온기·향내 가득/1회 국전특선작 「폐림지근방」은 “미술입문 교과서” 평가 그의 작품에는 향기와 온기가 얼핏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화면에 반영된 서정적 시상은 극도의 세련미가 일관되어 마치 그의 초기작품인 새로운 「독백」시리즈 앞에 선 느낌이다. 유경채씨의 자연에 대한 애착심과 감흥은 하나의 대상에서 받은 자극과 충동을 작가의 내부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이를 다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언젠가 그가 말했듯이 『미란 불가사의한 것이며 짧은 인생속에서 미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수는 없지만 최소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만 미가 발견되고 성립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맛으로도 귀로도 냄새로 모든 오감으로 미를 바라본다는 투철한 작가 정신속에서 피상의 세계아닌 모든 감각을 동원한 현상의 실상을 꿰뚫어 그 본질에 파고드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방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신동 자택2층에 위치한 화실은 언제나 1백호이상 3백호 4백호의 대작과 대결하기 때문에 남보다 배나 크고 채광이 눈부신 편에 속한다.그러나 드넓은 화실에 들어서면 우선 실내가 너무 잘 정돈된 것에 놀란다.그리고 붓이나 팔레트,이젤과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함부로 흐트러져 있지 않은데서 벌써 이 작가의 단아한 단심(단심)을 알게 된다. ○거울과 향 화실 비치 또 화실에는 거울과 향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거울은 그가 들여다보면서 왜 사는지를 자주 자문하고 거울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가자신의 마음을 비쳐보는 것이며 향을 피워놓는것은 그가 타놓은 색깔에서 향내같은 것이 났으면 하는 바람과 바로 그런 마음을 모아 온통 붓에다 실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너는 세상과 타협하여 자신도 모르는새 세파에 시달리고 오염되지 않았는가.또는 이정도 이뤘다는 자만으로 자칫 오만에 빠져 나태하지 않은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 작품속에서 향기를 느끼고 싶은 화가.그래서 그의 화면은 극단적으로 추구해온 창조적 의지가 기하학적인 선과 색채로 엄연하게 도사려있으면서도 긴 명상과 사삭,끝내 온기와 화기,향기를 뿜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누가보아도 어딘지 화가의 인상을 풍기는 화가는 아니다.베레모를 눌러쓰고 파이프를 물고 머풀러를 휘날리는 40년대식 50년대식의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자신의 어느 한구석 머리카락 한올에서 넥타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티를 풍기게 될것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폐쇄하려 든다. 물론 상대방을 들뜨게하는 웅변이나 제스처도 없다.전형적인 대학교수나 고급관리 같은 차림에 다리를 학처럼 꼬고앉아 나직나직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그를 바라 보노라면 이대나 서울대등 그가 몸담았던 대학의 학생들이 「참으로 드라이한,냉철한 화가」라고 한 말이 단박 실감난다.그러나 예술을 추구하는 정신과 집념,번뜩이는 이성과 실천의지는 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스승이며 이 시대에 얼마나 소중한 화가인가도 일순간에 깨우쳐 준다.그의 주변에 수많은 제자·동료화가들이 범람해 있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류경채씨 처럼 화려한 이력을 지닌 화가도 드물 것이다. 일찍이 1940년 약관 20세의 나이에 선전에 「선」이 입선,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 수상,관전제1호 최고상 작가라는 것도 특기할만 하지만 81년 제30회로 국전이 폐지되기까지 국전추천·초대작가·운영위원장으로 단 한번도 출품을 거르지않아 그의 그림으로 우리현대미술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20세에 「선전」 입선 특히 대통령수상작인 「폐림지 근방」은 현대미술을 말할 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미술입문 교과서같은 작품의 하나다. 명륜동에서 성북동·인의동에서 필동등을 전전하던 셋방살이 시절,한양대 부근의 한 폐림지를 그린 이 작품은 자연의 구체적이고 외양적인 사실에 앞서 이미 주어진 상황을 「신비의 실존」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방후 나라전체가 혹독하게 가난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닥치는대로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고 있었고 폐허가 된 산(산)들은 마치 일제식민지하에서 박해받던 민족처럼 황폐하고 피폐했으나 그는 폐허가 된 폐림지에도 영롱한 봄빛이 감돌아 부러진 나뭇가지에 새싹이 트는 듯한 희망을 그려냈고 이 특이한 소재와 발상이 「신선미」와 「최고미」로 받아들여져 화단의 찬사를 한몸에 모았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을 간결하고 제약된 색채,형상의 선적 요소를 교차된 리듬으로 고양시키면서 자연의 피상성을 박탈하여 항구적인 요소만을 표상하고 있다』는게 당시의 평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된 그의 화풍은 60년대를 앞둔 시점에서 또 한번 커다란 변환을 맞게된다. 서울의 어느 한구석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서울전체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도심지」를 그릴 무렵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그는 수없는 좌절감을 체험했고 그날도 캔버스앞에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다가 갑자기 그림을 뭉개고 지우기 시작했다.발작적인 행동이었다.한데 그때 화면속에서 명멸하는 여백과 제3의 공간감을 발견,문득 몸속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주어지고 결정지어진 사물의 현상에 얽매였던 구속과 틀에서 벗어나자 눈앞에서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이 순식간에 펼쳐진 것이다. 이것이 그가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그러니까 추상세계로 변환하게된 동기이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할 것인가를 알게된 순간이기도 했다. 형상에 눈뜨고 색채에 눈뜬 그를 향해 평자들은 서슴지않고 「심미안의 화가」란 호칭을 부여했고 그도 혹한의 겨울밤, 앙상한 마른나무 가지에 벌써 봄이 움트고 봄의 화음이 교향락처럼 여울지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예견할수 있게 되었다. 『샘이 깊을수록 더욱 청명한 청수를 길러낼 수 있듯이 진짜 가치있는 것은 좀더 깊은 곳에,마음속에 있었다.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남이 한것을 모방하려들 뿐,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닌이상 그것은 영원히 생명이 있을수 없다』고 그때의 심정을 그는 후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끊임없는 변모 추구 다시 형과 색채를 소멸시키고 또다시 기하작적인 면과 선을 구성하는가하면 질서의 무한한 지속성을 뛰어 넘어 추상 서정적인 양상을 추구하는등 부단한 시도로 눈부신 변모를 추적해나갔다. 따라서 국전의 아카데미즘 일변도에 안주하지 않고 57년 모던아트의 기치를 내걸고 창작미협을 발족,아세아국제미술전 예술원회원전등 국내외 미술전에 다양한 신작들을 출품,한번 시작한 것은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집념으로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작품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다하는 개인전을 지난 90년 고희에나 처음 갖게 된것은 화단의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물론 전람회를 열지 않은 것은 그의 고집때문이다.작가는 일생동안 한번정도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작품은 제품이나 공산품은 아니며 작품은 작가의 일생에서 늘 한작품이 이뤄질때마다 단한번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람회는 한번 여는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얘기다.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고희기념전이자 첫개인전에서 이를 기획한 현대화랑대표 박명자씨에게 그는 「이작품에서 저 작품까지는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그림을 팔아선 안된다」 「절대로 비싸게 팔아서도 안된다」는 까다로운 주문을수없이 다짐하여 그때 박명자씨는 『그럼 저보고 어쩌시라는 겁니까』하고 어이없이 웃어버린 예도 있다.그처럼 자신의 작품을 철두철미하게 아끼고 부등켜 안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가 훌륭한 화실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그림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이는 50년초부터 그가 펴낸 초·중등 각학년 미술교과서 (교학사간)의 인세로 이루어 졌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화단에서 월전 장우성·오승우화백과 더불어 수준급의 애주가.그러나 그림을 그릴때는 우유한잔도 외면할만큼 식음전폐로 파고든다. 류경채씨는 모름지기 생명의 리듬과 사물의 정감을 서정적 추상회화로 끈질기게 추적해온 우리 화단의 선두주자의 한사람이다.그리고 그의 만년의 작품은 한층 밝고 환한 색면구성으로 「완성」을 향해 무르익어가고 있다.『미술은 자연 모방이 아니라 자연 정화를 의미하는 것이며,스스로를 위한 독자적 세계의 창출』이라는 현대 독일 예술사학자 하인리히 루츨러의 말은 바로 이 노화가의 오늘의 그림세계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연보 ▲1920년 9월5일(음)황해도 해주 출생 ▲1933년 관리였던 부친 유찬영씨의 전임지를 따라 전주이주 ▲1939년 전주사범 졸업 ▲1943년 일본 동경 녹음사 화학교 졸업 ▲1946∼49년 경기사범(현 서울교대)교사 ▲1951년 초중등 각학년용 미술교과서 출간 ▲1951∼52년 대구사범­진해여고교사 ▲1952∼61년 이대 미대 교수 ▲1961∼86년 서울대미대 교수(86년 정년퇴임) ▲1938년 선만학생미전 입선(전주사범2년) ▲1939년 〃 특선 ▲1940년 제19회 선전 입선 ▲1947년 조선종합미술전 입선 ▲1949년 제1회 국전「폐림지근방」특선(대통령수상)(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소장) ▲1949∼81년 제30회 국전(최종전까지)출품(국전추천·초대작가·국전운영위원장) ▲1953년 창작미술협회창립(창단멤버 이봉상 최영재 황유엽 박창돈)현재까지 해마다 회원전개최 ▲1957년 미 뉴욕 월드하우스화랑 초대전·미 샌프란시스코 미술박물관 현대미술전 ▲1962년 문공부주최 34인 초대전 ▲1972∼84년 한·일미술교류전 ▲1973년 한국현대작가100인전 ▲1975년 역대국전대통령상 수상작가 작품전 ▲1978년 정부수립 30주년기념 초대연합전 ▲1979년 현대회화100호전 출품(신세계 미술관 주최) ▲1983년 춘추화랑초대전(원로작가 회고전) ▲1985년∼현재 서울시 미술초대전 ▲1985년∼현재 아세아 국제미술전 ▲1990년 현대화랑초대(첫 개인전)2회 도쿄비엔날레국제전,극동현대미술전,예술원회원전등 전시다수 ▲예술원부회장 회장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행사행진협의회위원역임 예술원회원 창작미협회장 아세아국제미술전람회 한국위원회회장 한국 미협고문 서울시 문화상,국민훈장동백장서훈,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한민국예술원상,3·1문화상 출간
  • 북송 이인모씨 주민사상교양 활용(북한 이모저모)

    ◎대대적인 봄철 나무심기운동 전개 ○“전형적인 혁명가의 표본” ○…북한은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씨(76)의 송환(3월19일)이후 연일 이를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김정일의 지시로 이씨를 전형적인 혁명가의 표본으로 내세워 주민사상교양에 이용하고 있다. 이와관련,북한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은 지난달 23일 「이인모동지의 모범을 따라 배워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직한 불굴의 혁명전사가 되자」제하의 사설을 통해 이씨의 인생역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혁명적 신념과 의지를 지닌데 있다는 점을 확증해주고 있다』면서 이씨의 사상적·정신적 풍모가 전 주민들이 배워야할 훌륭한 모범이라고 강조했다. ○산림녹화 조기달성 강조 ○…북한은 지난달 25일 봄철 나무심기를 「전군중적 운동」으로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국토의 80%이상이 산지인 조건에서 산림녹화와 종이원료 땔감 영농자재 공급을 위해서도 식수철 나무심기계획을 철저히 수립,성과를 거둬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묘목공급 확충 ▲전군중적 식수운동 전개 ▲관련종사자들의 책임성과 역할제고를 강조했다. ○이노인 주인공 극영화/「민족과 운명」 제작완료 ○…북한은 최근 이인모노인의 북송에 때맞춰 이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 제11·12부를 제작,개봉했다고 북한방송이 지난달 24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23일 총리 강성산,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군총참모장 최광,당중앙위 비서 계응태·전병호·한성용·최태복·김용순·김국태·김중린·윤기복·서관희·황장엽·박남기 등 당정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 영화시사회를 가졌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5)

    ◎지상의 생지옥:다/어린이도 통나무 운반 등 땔감사역/너무 힘에 부쳐 몇차례 쓰러지기도/일 서투르면 소달구지끌기 등 형벌 정치범 수용소내에서 하는 작업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험한 일은 모두 망라돼 있다. 수용소 설치목적 자체가 죽어도 무방한 사람을 가두어 놓기 위해 만든 곳이니 어떤 험한 작업이 자행되는지는 충분히 짐잘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어른들은 물론 인민학교 아이들까지도 갖가지 노역에 가혹하게 동원되었다. 처음 이곳에서 내가 한 일은 학교에서 시키는 땔나무 작업이다. 땔나무 작업이라고 하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곳에서의 나무하기란 어린 나이에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한으로 치면 국민학교 2학년 또래인 내가 첩첩산중에 들어가 아름드리 통나무를 잘라 끌어내리는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보위부원인 선생이 주는 톱과 도끼 등을 들고 학교에서 3㎞ 떨어진 병풍골과 돈사골까지 걸어 이동한뒤 그곳에서 다시 산중턱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 나이든 아이는 톱과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우리 또래는 여럿이서 자른 나무를 나르도록 돼있었다. 어린애들이 커다란 통나무를 자르기도 힘들거니와 그것을 나르기란 정말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는 「죽을 일」이었다. 처음 내가 동원된 날 애들이 내게 통나무 한덩이를 메어주고 나르라고 했다.통나무를 어깨에 맨 것까지는 했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몇발자국 옮기지도 못한채 나는 나무를 어깨에 멘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때 넘어진 나를 보며 애들은 『새로온 새끼』라고 놀렸다. 학교에서 한 또 한가지 작업은 농사돕기였다.말이 좋아 「돕기」이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강냉이를 키워내는 일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끝에 봄기운이 돌면 수업은 아예 집어치우고 강냉이농사 사역에 동원되었다. 하루에 어른은 1백50평,우리는 50평크기의 묘판에 강냉이를 뿌리는 것이다.그냥 강냉이만 뿌리는 것이 아니고 부식토를 날라와 뿌린뒤 흙을 덮고 곡괭이로 22㎝씩을 파고 강냉이 씨를 심고 나면 그 위에 물과 비료를 주는 작업이다. 가뜩이나 먹을 것 없는 이른 봄에 힘든 일을 하다보면 하늘이 노랗게보이면서 현기증으로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이 절반은 넘었다. 또 중학 1학년 때부터 5학년 졸업때까지는 토끼먹이주기·개밥먹이기 등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위부원들의 눈밖에 나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가혹한 형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드리나 되는 돌을 양쪽에 쌓아놓고 벌줄 사람을 양쪽에 정열시킨 뒤 자기들 앞에 있는 돌들을 마주보는 쪽으로 날라다 놓는 일을 하루종일 반복해 시키는 것이다. 이런 벌을 받다보면 돌덩이에 발등을 찧는 어린이부터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사람,손톱이 빠지는 사람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보다는 덜 힘드는 사역으로는 소달구지끌기·똥푸기 등이 있다. 소달구지끌기란 소나 말 대신에 사람이 멍에를 메고 잔뜩 짐을 실은 달구지를 끌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똥푸기는 수용소내 인분을 퍼다 버리거나 농토에 뿌리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요령을 부리면 자루가 길게 달린 똥바가지를 빼앗고 자루없는 깡통으로 퍼 나르게 했다. 오물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은 물론 얼굴과 손에 냄새가 배어들어 집안식구들이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겨울철의 경우는 고약한 냄새를 지우려고 얼음을 깨고 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만 했다.그러나 비누는 물론 세제가 전혀 없는 수용소에서는 악취가 저절로 없어질 때까지 참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기자)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기자)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석탄산업정책 전환할때/박수훈(소리)

    최근들어 전기·가스등 일상생활에 편리한 고급에너지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있어 범국민적인 에너지절약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석탄·연탄과 같은 에너지의 자원은 그 수요가 급격히 줄고있어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석탄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자원이며 민생연료의 기본 에너지원으로 국민생활에 크게 기여해왔다.또 외화대체효과등 국내경제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러나 80년대중반부터 석탄산업은 유가인하와 국민소득의 향상으로 인한 에너지소비구조등의 여건변화와 인건비의 대폭인상등으로 경제성을 상실하게 됐다. 또 다른 산업과의 경쟁력 약화등 열악한 상황에다 계속적인 원가상승으로 더욱 침체국면을 맞고있다. 이런 침체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89년부터 비경제성 탄광의 폐광을 유도하고 경제성탄광의 육성·잘전을 위해 탄광기계화,발전용 무연탄수요 확대,생산성향상 우수장비 우대지원등 제반지원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석탄가격도 석탄생산의 심부화와 채탄여건의 악화,계속적인 임금및 물가상승이 불가피하지만 서민연료보호및 물가안정과 타 에너지와의 가격경쟁을 고려한 국내석탄산업의 보호차원에서 89년부터 국내석탄및 연탄가격을 동결시켜 오고있다. 앞으로는 국내외 에너지환경과 국민생활수준의 변화를 반영하여 국내유일의 부존자원인 석탄을 합리적으로 개발·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서독이나 영국등 선진국처럼 에너지를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1천만t수준을 적정생산규모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해나가며 공해방지기술 개발등으로 무연탄 수요를 유지시켜 나갈 방침이다. 나무를 취사용및 연료용 땔감으로 사용하던 해방이후부터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구멍이 숭숭 뚫린 연탄이 그토록 좋은 연료일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검은 황금연료로 각광을 받아왔고 또 현재의 울창한 산림도 석탄을 개발하고 활용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연탄이 국민들의 따뜻한 눈길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 북한,외국인에 1천불씩 관광료/스페인 신문 단동∼평양 취재기

    ◎열차난방 영점… 화장실도 얼어붙어/중국 핸드볼팀까지 자유행동 제한 스페인의 최고 권위지인 일간 엘 파이스지는 16일 최근 평양을 방문한 후안 헤수스 아스나레스 특파원이 중국 여자핸드볼선수단에 끼어 중국과의 접경도시 단동에서 평양에 도착할때까지 보고 느낀 것들을 「북한,창살없는 감옥」이라는 제목아래 평양발로 전했다.요지를 간추려본다. 중국 여자핸드볼선수들은 북경역에서 음식물이 가득찬 가방을 휴대하고 평양행 열차에 올랐다.북한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이들 여자선수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받는 나라에서 경기를 갖는 것이 처음으로 여행자들이 전해준 북한의 궁핍과 불행이 사실인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한 여자선수는 『우리는 평양에서 경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나 다른 방도가 없다』고 털어 놓았다.선수단과 함께 비교적 편안한 1등칸을 타고 가던 러시아인 감독은 창문 밖으로 자주 보이는 꽃다발 든 화동들을 보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저주하고 공산주의를 버린 옐친이 「훌륭한 지도자」라고 찬양했다. 북경 주재 북한 대사관은 취재비자를 내주지 않았다.구세주인 척 하는 한 통치자가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들어버린 인구 2천만의 북한을 2주일 동안 돌아보기 위해서는 관광비자를 얻어 중국 여자핸드볼선수단의 일행이 되어야만 했다. 북경에서 하오에 출발,남만주의 얼어붙은 논과 강을 지나 국경에서 열차를 갈아 탄 일행은 24시간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국경도시 단동에서 김일성배지를 단 북한세관원들이 올라와 찌푸린 표정으로 여권제시를 요구했다. 한 세관원은 러시아인 감독 이외에 유일하게 타고 있던 서양인인 우리 기자 2명과 우호적인 대화를 주고 받았다.『한국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읍니까?』 『당신 회사는 어떤 일을 합니까?』등을 물었으나 강압적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어느때보다도 고립되어 있는 이 나라는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수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 관광객들로부터 받는 1인당 1천달러의 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또한 「침입자」일 수도 있는 두명의 기자도언론의 취재가 극히 제한되어 있고 안내원의 감시가 심해 활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에 쫓아낼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자연의 힘 까지도 그 능력을 부러워한다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그의 아들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은 반세기 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가장 심한 타격을 받고있다.구소련이 사라진 후 러시아는 북한과의 교역을 달러화로 결제키로 했으며 자본주의화한 공산 중국도 이제는 경화결제를 요구하고 있다. 열차가 한국전 당시 중공군과 미군이 교전했던 압록강을 건널 때 열차내 화장실이 추위로 얼어 붙었고 출입문도 열리지 않았다.또 열차가 정지해도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는데 싱가포르 관광객들중 일부는 자유가 없는 여행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무장한 순찰병이 수없이 많다. 그보다는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교량과 도로는 더 많이 눈에 띈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의 도움을 받아 야포를 밀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한 무리의 농부들이 버들가지로 만든 지게에 땔감을 지고가는 농촌 풍경은 이나라의 원시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차는 평양역에 도착했다.중국 핸드볼 선수단 일행은 자유스런 행동을 할 수없는 상태에서 음식물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렸다.깨끗하고 조용하며 한쪽에는 남자,다른 쪽에는 여자들이 줄을 선 출구에서 혼잡은 찾아 볼 수 없다.또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항의는 약50년 전에 잊혀진 행위이다.
  • 청소년탐험대 백두산서 통일기원

    ◎초중고생 10명,지난달 25일 국토사랑·극기정신 체험/연초 마라도서 천지까지 국토종단 성공/영하 30도속 썩은 감자로 허기 달래기도/백록담 물과 흙 백두산에 흩뿌리며 통일노래 불러 어른들조차 오르기 힘든 겨울 백두산을 우리 어린이들이 등정하고 최근 귀국했다.통일대행진에 나선 한국소년탐험대(대장 강원규)가 국토사랑과 극기정신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낸것이다. 『백두산 오르는 길이 너무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천지를 보고 힘든것도 다 잊어버렸어요』 한국소년탐험대 대원으로 이번 백두산 등정에 참여한 안지원군(서울 은평구 신사국교 6년)의 감개어린 소감이다. 통일대행진은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우리의 국토를 걸어서 체험하며 국토사랑과 극기정신을 기르는 프로그램으로 이번 백두산 등정에는 초·중·고등학생 10명과 2명의 어린이지도자가 참가했다.올해 1월1일 국토 최남단 마라도를 출발하여 예정(본지 92년12월24일자 참조)대로 1월18일 임진각까지의 국토종단을 무사히 마쳤던 통일대행진팀은 20일 비행기편으로 중국 북경을 거쳐서구정인 23일 백두산 초입에 다달았다. 겨울 백두산 등정은 중국정부의 통제와 2∼3m의 눈이 쌓여있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탐험대는 중국인 안내운전사를 따돌리고 얼어붙은 눈위을 디디며 24일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다.눈으로 유실된 길을 찾아 3분의 1쯤 올랐을때 탐험대는 첫 어려움에 봉착했다.식량이 담긴 배낭을 빼놓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것. 『산행을 지휘하는 강서구대장과 함께 등정포기를 결정했으나 아이들의 성화로 등정을 강행할수 밖에 없었다』고 통일대행진을 주관한 강원규대장은 밝혔다.영하 30도이하로 내려가는 기온으로 오줌을 누면 바로 얼 정도이고 뱉은 침이 얼어서 구르는 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끔 눈구덩에 빠지기도 하면서 정상을 향해 꿋꿋이 나아갔다.그러나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해가 지는 바람에 탐험대는 사람이 철수한 중국기상대 건물에 간신히 다달아 둥지를 틀었다.땔감을 구해 3시간만에 불을 피우고 썩은 감자더미를 찾아내 허기를 달랬으며 눈덩이로 물을 대신했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탐험대는 다음날 아침인 1월25일 상오7시 드디어 백두산 정상에 올라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며 한라산 백록담에서 가져간 물과 흙 돌 등을 백두산에 흩뿌려 합치는 조촐한 통일기원의식을 거행했다.『애국가와 통일노래를 부르면서 모두들 통일돼서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걸어갈수 있길 기원했다』고 안군은 밝혔다. 하산한 탐험대는 중국에서 화제가 되어 연변TV방송에 출연하고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압록강국경의 집안과 두만강국경인 훈춘을 방문하기도 했다.또 연변 조선족어린이의 집을 방문하고 훈춘제5소학교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맺는등 어린이문화교류에도 힘썼다.탐험대는 올 5월 연변 조선족어린이들을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다. 강대장은 『통일대행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참아내어 대견스럽다』면서 『어린이들이 이같은 나라사랑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예절교육/최갑석 재향군인회 중앙이사(굄돌)

    요즈음 국민학교 어린이들은 영양상태가 좋아서 선진국 어린이들에 비해 체격이나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어린이들도 없거니와 우리가 자랄때처럼 땔감을 구하러 산에 다니거나 소나 닭을 먹이는 가사를 돌보는 어린이도 없어 다행한 일이다.옷도 잘 입고 다니며 표정이 밝은 것은 좋으나 예의교육만은 예전보다 못한 것 같다.어른들에게 말하기,인사하기 또는 가정과 식당에서의 식사예절,버스나 철도에서는 승차예절,운동경기장이나 공원에서 질서의식등이 부족하다. 우리가 자랄때는 집에서는 부모님,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권위가 대단해서 순종했으나 요즈음에는 세태가 달라져서인지 버릇없는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듯 해서 걱정이다.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어린이들 수가 적어 귀하게 자라나며 학교에서는 그 반대로 한 학급에 40∼50명씩이나 되어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도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이나 독일·영국·이스라엘등 전통이 있는 나라일수록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철저해서 모범시민을 양성하는 기본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란 복잡한 이론을 들먹일 필요없이 좋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사회건설이 목표이며 좋은 시민이란 좋은 아들·딸,좋은 부모,좋은 이웃에서 출발된다고 본다.선진국의 어린이교육은 말하기·숨쉬기·걸음걸이까지 가르치는데 비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무얼 배우는지 알수가 없다. 신흥 아파트촌에서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반말을 하며 지내는 집이 있으며 6학년짜리 외아들의 목욕을 아직도 어머니가 시켜주는 어린이도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자식을 사랑하기는 하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올바른 예절교육을 시켜야 그 자식도 사회에 유용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의 과보호는 결국 자식도 부모도 망치는 결과를 낳게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영국의 신사와 독일의 장교,중국의 상인,유태인 학자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과 학교 교육이 성공해서 된 결과이다.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이 총명하고 건강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예절까지 갖춘다면 부러울 것이 없겠다.
  • 추위·폭설(외언내언)

    전국이 꽁꽁 얼어붙고 눈도 전국적으로 내렸다.특히 영동쪽의 폭설은 대단하다.미시령의 2m23.5㎝는 말할 것 없고 진부령·한계령등이 다 1m80㎝를 넘었으니 서있는 장정도 묻고 남을만한 높이 아닌가.그쪽 주민들은 천지개벽이라도 하나 싶었을 것이다. 역시 대한을 앞둔 추위이며 폭설이다.보통은 대한보다 소한이 춥다고 했는데 지난 5일의 소한 추위는 대단한 게 아니었다.소한 추위가 시원찮으면 대한이 제몫을 한다는 것이 통설.「대·소」의 형제는 그래도 명불하전의 위세를 어느 쪽에서고 한번 부려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일까.우리의 겨울은 1월16일 전후가 통계적으로 가장 추웠다는 조사 결과도 있긴 하다. 교통이 두절된 폭설의 산간마을 주민들 걱정이 앞선다.양식이나 땔감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 것인지.또 하나 걱정되는 것이 야생조수들.눈이 그렇게 쌓이면 사람도 어려운 판에 짐승들의 먹이 챙기기는 오죽하겠는가.이럴 때 노루·고라니 따위 들짐승이나 꿩 같은 날짐승이 민가를 찾아든다.평소에는 잡아먹는 짐승이지만 이렇게 어려워서 제발로찾아들 때 잡아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뭔가 먹여 보내든지 가지않으려 할 때는 얼마동안 있을 곳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이것 저것 피해가 적잖아 시름이 쌓인 가운데서도 기상청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듯하다.「춥고 눈많은 겨울」이라 했던 예보가 빗나가는가 했는데 어쨌든 맞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이번 추위는 대한을 넘기고도 설날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보되고 있는터.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모처럼 겨울다운 겨울을 대하고 있다.그렇긴 해도 서울의 경우 올해도 한강의 결빙은 못보고 보낼 것 같다. 눈내리는 추위는 차와는 상극.고속도로를 구르는 차뿐 아니라 도심을 달리는 차도 주눅이 든다.그래서 17일의 4∼5㎝ 눈에 서울의 차는 밤늦도록 맥을 못추고 접촉사고도 많이 냈다.하지만 겨울은 아무래도 눈이 와야 제격 아니던가.이제 올겨울 터널도 거의 다 빠져나온 듯하다.
  • 동자부 에너지정책 심의관 남궁견씨(인터뷰)

    ◎“겨울철 땔감 충분… 수송에도 만전”/유류 15일소비량,연탄 2억여장 비축/면·동까지 취약지 비상배달장비 확보 본격적인 겨울철을 맞아 땔감걱정 없이 이번 겨울을 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수년전만 해도 월동기의 에너지 수급대책이 상당한 관심을 끌었지만 요즘은 에너지도 돈만 있으면 언제나 살 수 있는 일반 상품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지역과 시점에,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수급대책을 맡은 동자부 남궁견심의관을 만났다. ­물량은 넉넉한 편이라지요. ▲그렇습니다.기름이나 석탄 모두가 수요에 비해 공급물량이 충분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차량증가나 폭설 때문에 길이 막혀 필요한 물량이 일시적으로 수송되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가능성은 있습니다. ­미리 소비지에 적정한 물량을 비축해 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축과 소비지까지의 수송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지난 겨울까지 7천5백만배럴이었던 정유사의 저장시설이 최근 약 8천만배럴까지 늘어나 등유·경유·액화석유가스(LPG)등 일반 가정에서 쓰는 유종 중심으로 하루 소비량의 15일분까지 비축하고 있습니다.지난 겨울 수송문제로 한때 파동을 겪었던 등유의 경우 작년 12월의 재고는 2백만배럴이 조금 못 되는 수준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를 약 4백90만배럴로 2배반까지 늘렸습니다. ­수송대책은 어떻습니까. ▲정유사와 판매업체가 수송수단을 최대한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유조선은 지난해 93척에서 올해에는 1백3척으로,유조화차는 1천6백50량에서 1천7백20량으로,유조차는 6천2백33대에서 7천22대로 각각 늘어났습니다.또 이달 중순이면 경인송유관이 완공돼 교통체증과 관계없이 하루 7만2천배럴의 기름을 저유소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까지 수송하게 됩니다.기름을 많이 쓰는 아파트나 산업체에 대해서는 가급적 차량이 덜 붐비는 밤이나 공휴일에 기름을 채워넣도록 협조요청을 하고 있습니다.12월과 1월의 성수기에는 유조차에 대한 도심지 운행제한을 일부 완화해 줄 것도 경찰청에 요청해 놓았습니다. ­서민연료인 연탄은 어떤가요. ▲산탄지마다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어 탄광마다 판매에 비상이 걸린 실정입니다.농협을 통해 농어촌 및 도서지역의 소비자가정에 이미 2억3천1백만장의 연탄을 비축해 놓았습니다.또 모든 시·도들이 비상시에 대비해서 고지대와 벽지에 연탄을 항상 비축하고 있고 비상시의 수송장비도 확보하고 있습니다.또 읍·면·동 단위별로 배달 취약지역을 선정해서 자체적인 비축계획이 다 마련돼 있습니다. ­연탄배달료를 놓고도 가끔 시비가 생기는데요. ▲전반적으로 인건비가 비싸졌기 때문에 전보다는 올랐겠지요.배달료는 각 시·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데 서울의 경우 각 동 단위로 주민들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가 결정합니다.층수가 높은 아파트라든가,고지대에는 아무래도 좀 더 받겠지요. ­연탄공장의 석탄확보량은 충분한가요. ▲총 3백만t의 석탄을 쌓아놓고 있습니다.비상시에는 정부의 비축탄 2백90만t을 집중방출할 계획이라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석탄 1t으로 2백77장의 연탄을 찍어내니까 그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 죽어가는 사람들(요덕 15호 북한 정치범수용소:2)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폐렴걸린 「수라」 약없어 “허무한 죽음”/담요로 시신말아 언땅 파고 매장/딸잃은 어머니 눈밭 뒹굴며 통곡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부장) 양승현(정치부)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방안에 켜놓은 관솔불의 마지막 불꽃이 막 사위려했다.흙으로 덕지덕지한 판자벽 틈새로 밤사이 내려 쌓인 눈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늘도 부토작업이 있는데…또 죽었구나』 강냉이 주먹밥 하나를 먹고 하루종일 눈속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매일 이 모양이지만 눈오는 날은 더욱 힘들다. 아침 식당에서 강냉이밥 한그릇을 먹고 곧장 평풍골 계곡으로 이동하면 하루 종일 허기와 추위속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눈밑에 쌓인 부엽토를 지게에 담아 3㎞가 넘는 눈덮인 계곡길을 어두워질 때까지 오르내리는 일은 정말 힘들다. 점심때가 되면 이미 꽁꽁 얼어붙어버린 강냉이 주먹밥을 겨드랑이 밑에 넣어 녹여 먹는다.일하는 틈틈이 감시보위원의 눈을 피해 도토리와 마른 머루를 주워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새벽녘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여인의 울부짖는 소리는 이내 통곡소리로 바뀌었다.수라네 집쪽이었다.불길한 예감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수라네 집으로 뛰쳐 올라갔다. 수라는 달포전부터 감기를 앓아왔다.못먹고 쉬질 못해서인지 최근 폐렴으로 악화됐다.작업장에서 보면 핼쓱한 얼굴에 각혈까지 하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했다. 이곳엔 약이 없다.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그뿐이다.죽을 죄를 지었는데 살려둔 것만도 당의 은총이며 배려인 것이다. 수라의 어머니가 자는듯이 누워있는 수라를 붙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수라야,니가 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누가 우리 불쌍한 수라 좀 살려주소』 밤새 죽어가는 딸을 껴안고 몸부림 친듯 수라의 어머니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잠겨가는 목소리로 이름만을 부를 뿐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싸늘한 냉기뿐인 방 한 구석엔 4명의 남동생이 웅크리고 앉아 누이의 주검과 어머니의 몸부림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수용소에는 장례식은 물론 관이나 수의가 없다.먼동이 트자마자 보위원으로부터 매장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매장조로 편성됐다.한나절은 부엽토작업을 않게 된 것이다. 헌 담요조각으로 시신을 둘둘 말아 묻는게 예사였으나 왠지 수라만은 그렇게 묻을 수가 없었다.여기 저기서 판자쪽을 주워모아 관을 만들었다.관에 내 몫으로 배급받은 강냉이밥알을 한주먹 싸서 넣었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수라를 묻은뒤 도저히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 였다. 관을 메고 나오는데 수라의 어머니가 몸부림치며 다시 매달렸다.『불쌍한 수라야,수라야』미친 사람처럼 산발한채 맨발로 우리 뒤를 따라왔다.넘어지면 일어서고 딸이름을,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고… 다시 눈밭을 뒹굴고… 마치 자신도 죽으려는 사람처럼. 병풍산을 향해 관을 메고 가면서 모두 울고 있었다. 겨울내내 얼어붙은 땅은 여간 단단하지 않았다.괭이로 한나절을 팠는데도 겨우 40㎝ 정도였다.가까스로 묻고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수라는 14살 때인 76년 이 곳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0년만에 죽었다.수라아버지는 북송교포였고 어머니는 북한 처녀였다.수라아버지는 자신때문에 가족들이 이 지경이 되었다며 늘 괴로워 했다.그래서일까.얼마전 정신착란을 일으켜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산속의 외딴 정신병자격리 「요양소」로 끌려가 버렸다.남자없는 수용소안의 가족세대는 더욱 비참하다.땔감이나 배급강냉이와 섞어먹을 풀들을 구하기가 힘들다.죽기직전까지 수라가 그 일을 다했다. 아프기전 풀을 뜯다 들판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수라를 먼 발치에서 여러번 봤다.우리들은 작업도중 땅을 팔때 동면중인 개구리나 뱀을 발견하면 잡아다 수라에게 먹였다.전혀 약을 구할 수 없는 수용소에서는 스스로 영양보충을 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착하고 아름답던 24살의 처녀수라의 죽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산과 나/노영희 시인(굄돌)

    큰 산자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산을 찾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울화가 치밀 때나 적적할 때나 마음속이 복잡할 때나 뭔가가 그리울 때는 언제나 산을 오른다.산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간단한 옷차림으로 북한산을 찾아 나선다.일요일마다 이 코스 저 코스로 바꿔가며 산중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다닐 때도 많고 일행과 같이 다니기도 한다.이번 산행은 승가사쪽 코스를 선택했다.더운철이라 홀가분하게 혼자 나섰다.산중에 드니 산 냄새가 났다.푸근했다.배낭을 내려놓고 폭포밑 바위에 앉아 발을 찬 물에 담그고 1시간 이상을 가만히 있었다.온갖 세상사가 다 떠오르고 지나갔다. 인간의 마음이 맑은 물과 같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장애물은 돌아가고 날카로운 것은 안아주고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고 부드럽고 모양이 없고 깨끗하기만 한 물의 성질을 닮을 수만 있다면 한이 없겠다. 산에는 또 이쁜 잔 꽃들이 이름도 없이 널려 있었다.자랑도 하지 않고 시샘도 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고무심하게 향기와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더 사랑받으려고 더 얻으려고 더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냥 존재했다.그냥 숲속의 꽃으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다.헛되게 권력과 이름과 재산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잔 꽃에서 배우라」는 속엣말이 저절로 나올려고 했다. 산은 나를 쉴새없이 가르친다.또 나무들은 어떤가.나무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따스한 햇살과 물과 기름진 흙을 똑같이 나눠 먹는다.서로 기댄다.온갖 저항을 다 이겨낸다.그리고 푸르름과 그늘과 바람과 음악과 땔감을 인간들에게 선사한다. 산은 나의 어머니며 종교이며 연인이다.그 너그러움,그 함묵,그 깊이,그 아름다움에 앞으로도 계속 기댈 참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날 밤에 「너」라는 제목으로 나는 짧은 시 한 편을 썼다.『산 넘어 산/그리움 넘어 그리움/바람 넘어 바람』
  • 8천만의 삶의 조건(사설)

    유엔인구기금(UNFPA)의 세계인구 현황보고서는 한국의 인구를 2025년에 8천4백70만명으로 예측했다.남한의 인구는 90년기준 4천2백80만명에서 9백만명이 더 늘고 북한의 인구는 2천1백80만명에 1천1백30만명이 추가되는 급증가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남한의 여성 1인당 출산율은 현재 1·7명,북한의 출산율은 2·4명인데 이 수준이 계속 될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구문제는 아직도 사람이 늘면 살기가 좀 힘들어지겠지 하는 정도의 문제로 느껴지고 있다.이런 관점은 실은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에서도 같은 것이다.만약 한 국가의 경제가 매년 5%씩 성장하고 인구증가가 3%씩이라면 그 국가의 생활수준은 계속 2%씩 향상할수 있을 것이다라고 보는것이 경제의 시각이다.경제적 변수만을 고려한다면 이 전망은 그다지 틀린것도 아니다. 그러나 환경오염현상에 부딪히면서 생태학자나 생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인구증가의 또다른 관점은 오늘날 점점 더 넓은 동의를 얻고 있다.인구증가는 자연자원의 바탕을 무너뜨리는 단계에 오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근본적 우려이다. 이 관점은 실은 오래된 것이다.맬서스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논문을 쓴것이 2백여년전이다.자연의 순환과정이 오늘에처럼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맬서스가 인구증가속도보다 빠르게 식량생산을 증가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한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재로서도 지구에서는 수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다.부분적으로는 불공평한 식량보급이 원인이지만 전반적으로는 1인당 식량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아자수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제3세계국가에서 계속되는 인구증가는 또다른 결과를 만들고 있다.연료의 부족이 급격한 환경파괴와 연결된다.아프리카 지역에서 지금 땔감을 얻기위해 하루종일 단위로 옮겨다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는것은 이제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환경문제에 가장 권위있는 「월드워치연감」지난해 보고에는 이 현상의 항목별 추정이 나와 있다.90년대에 있어 매년 1인당 이용가능토지면적은 1·7%씩 줄어들고,곡물재배지 면적은90년대동안 6분의1로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관개지 총면적도 10분의1이 준다.삼림면적도 5분의1이 줄고 목초지 면적은 또 5분의1이 사막화 현상까지 만들게 된다. 때문에 인구문제를 이제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보고있다.한 국가의 정치적 영향력은 군사력보다는 환경적 경제적 지도력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것이 오늘에 분명해진 시각이다. 남북한 8천4백만의 삶의 환경과 조건은 어떻게 될것인가,그리고 2050년에 1백억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돼 있는 세계의 조건에서 한국의 입지는 어떤것이 될것인가,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것은 현재로선 막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대단히 시급한 현안인 것이다.우리 인구증가만이라도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보는 작업팀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 “잡목” 아카시아 경제수종 된다/첨단 유전공학 이용해 종자개량

    ◎산림청 추진/건축자재·가구재·선박용재 활용/전국 30만㏊에 16억그루… 땔감으로만 이용 연료용 나무로만 사용돼 왔던 아카시아가 유전공학을 이용한 종자개량으로 건축자재·가구재·선박용재료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수종으로 개발육성된다. 23일 하오 임업연구원회의실에서 「아카시아의 수종개량과 목재생산및 이용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조재명산림청임업연구원장은 『아카시아나무는 재질 강도가 높고 무늬도 아름다워 첨단공학을 이용해 종자개량을 하면 고급가구 철도침목 통나무집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수종』이라고 지적,산림청 임업연구원을 중심으로 수종개량과 이용에 집중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아카시아는 일제시대이후 황폐지복구사업과 연료림 조성용으로 심어져 현재 전국에 걸쳐 30만㏊에 16억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그동안 수종개량이 안돼 비경제림으로 인식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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