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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조선 국적/황성기 논설위원

    조선 국적 재일동포 지인이 얼마 전 서울에 왔다.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까다로운 절차 없이 척척 진행되더란다. 재일동포 출신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는 그는 한글을 어릴 때부터 배워서인지 거리가 낯설지 않다고 했다. 조선 국적 재일동포 입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허가나 금지를 왔다갔다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뒤 대응이 바뀌었다. 신청을 하면 거의 여행증명서가 발급되고 있다. 조선 국적이라고 하면 마치 북한 사람이나 조선총련계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일본은 1947년 재일 조선인들에게 조선적을 부여한 뒤 남북 국적을 선택하도록 했는데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동포들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인원이 3만명이다. 지인은 입국할 때 살짝 불편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여행증명서를 처음 본 듯한 입국심사대 직원이 방으로 부르더란다. 차별을 없애자는 조치를 취했으면 입국할 때 동포들이 불쾌한 일이 없도록 배려를 했으면 좋겠다. marry04@seoul.co.kr
  • 겨울 동안… 호주야구 재기 매치

    겨울 동안… 호주야구 재기 매치

    장진용·최준석 등 방출된 선수에게 기회 첫 시즌 적응 덜 된 탓에 초반 4연패 고전‘야구 미생’들에게 올겨울 호주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2018~2019 시즌부터 호주야구리그(ABL)에 합류한 질롱코리아에서 KBO리그를 누비던 선수들이 ‘제2의 야구 인생’에 도전하면서 이들의 ‘겨울 야구’가 주목받고 있다. ABL은 지난 15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약 3개월간 모두 120경기(팀당 40경기)를 치르는 정규리그 대장정에 돌입했다. 질롱코리아는 100% 한국 선수들로만 구성됐다. 총 8개 구단으로 이뤄진 ABL에 7번째 구단으로 합류한 질롱코리아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야구계에서 실패한 선수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해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을 연고로 지난 5월 창단됐다. 지난 9월 국내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지원자가 응모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각각 LG, KIA에서 방출된 투수 장진용, 김진우를 비롯해 김병근(전 한화), 롯데·KT에서 뛰었던 이재곤, ‘거포’ 최준석(전 NC) 등이 합류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감독은 ‘레전드 투수’ 구대성이다. ABL은 유망주 육성을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후원으로 꾸려지는 리그다. 특히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겨울 실전감각을 찾기 위해 즐겨찾기 때문에 수준이 낮지 않다. 메이저리그 탬파베이에서 뛰고 있는 최지만이나 올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도 과거 ABL에서 뛰었다. 질롱코리아 관계자는 “개막 후 4경기를 치렀는데, 팀 내 타자들이 상대한 투수들 수준이 국내 2군 리그보다는 높다고 하더라”면서 “메이저리그도 겨울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최근 ABL에 선수들을 많이 보내 부쩍 수준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질롱코리아는 초반 고전 중이다. 지난 15일 시드니 블루삭스와의 개막전부터 4연패 수렁에 빠졌다. 만만치 않은 ABL의 수준 탓도 있지만 팀이 이제 막 창단됐고, 첫 시즌이기 때문에 호주 야구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호주에서 유소년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구 감독이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있고, 선수들도 목표의식이 뚜렷해 조만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질롱코리아는 22일 퍼스 히트를 상대로 첫 승에 도전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철야 몰린 15세 여공… 가슴 후비는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철야 몰린 15세 여공… 가슴 후비는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9회 가리봉동(구로공단의 신화)편이 지난 17일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집결한 투어단은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금천 순이의 집)~가리봉시장~디지털단지 오거리~마리오 아울렛~수출의 다리 순으로 다녔다. 이번 특별답사기는 김동률 서강대 교수가 맡았다.식권이 한 장 나오는 날은 잔업, 두 장 나오는 날은 철야하는 날이다. 철야하는 밤, 공장 입구에는 ‘타이밍’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386세대들이 공부하면서 한번쯤 삼켜 봤을, 잠을 쫓는 바로 그 각성제다. 불량품이 나올까 봐 공단의 십대 소녀들에게 반강제로 먹인 것이다.고된 철야를 끝내고 돌아가 쉬는 곳은 벌집이다. 두세 평 남짓한 벌집엔 벌이 살지 않는다. 사람이 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공들이 살았다. 벌집의 필수품은 취사도구와 비키니 옷장, 가족사진이다. 벽지는 신문지. 공동구입한 카세트가 사과박스로 만든 간이책상 위에 놓여 있다. 너무 늦게 찾아와 송구스런 마음이 앞선다. 구로공단 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은 구로공단 노동자 거주지가 모델이다. 두 평 남짓한 방, 지금은 사라진 ‘후지카 석유곤로’가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방구석 앉은뱅이 책상이 남루하다.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했을까. 책상에 놓인 ‘철학에세이’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을 보니 갑자기 먹먹해진다. 신문지로 도배한 벽에는 잘생긴 할리우드 미남배우와 팝송가수 사진 열댓 장을 다닥다닥 끼워 넣은 액자가 있다. 그리고 파리똥이 얼룩진 누런 벽에 붙어 있는 낡은 액자가 인상적이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아득한 시절, 이발소 그림에 곧잘 등장하던 푸시킨의 시 ‘삶’이다.여공들은 돈을 아끼려고 좁은 방에서 3~4명이 살았다. 이런 방이 6개 잇대어 있는데 화장실은 달랑 하나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생활관 측에 따르면 과거 이 일대에서 일했던 중년여성들이 혼자 오거나 옛 동료들과 찾는다고 한다. 자신의 곤고했던 시절을 피붙이에게도 알리기 싫었을까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쪽방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체험관을 둘러보지 못하고 흐느끼며 떠난다고 전했다. 작가 신경숙도 한때 ‘벌집’에 살며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1970년대 후반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 여공으로 산 신경숙은 소설 ‘외딴방’에서 ‘서른일곱 개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이라고 묘사했다. 구로공단은 진한 땀 냄새와 애환이 배어 있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발점이다. 70년대 중반 전성기 때 이 일대에서 일하던 십만 노동자의 대부분은 십대 소녀였다. 공순이라 불리며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땅의 수많은 누나, 언니, 여동생들이다. 그들이 흘린 회한과 서러움의 눈물에 대해 우리는 오늘 말을 아껴야 한다. 적어도 이 공간을 찾는 순간만큼은 누구든 옷깃을 여미며 한없는 연민과 함께 예의를 차려야겠다. 그들은 대개 가부장적인 전통사회에서 오빠, 남동생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희생한 이 땅의 ‘효순이’들이다. 그리고 이 공간과 절묘하게 묘사한 딱 떨어지는 노래가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찾사의 ‘사계’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훌쩍 커버린 딸아이가 아주 어렸던 시절, 노래를 듣던 딸아이가 말했다. “넘 슬퍼.”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랬다. 가리봉동은 한국사회의 슬픈 역사와 함께한다. 오래전 그날 나는 오랜만에 ‘노찾사’의 ‘사계’를 틀었고, 옆에 있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초딩’ 딸아이가 그냥 슬퍼했다. 가리봉동은 이 땅에서 가장 슬프고 서러운 낮은 동네였다.또 다른 역사도 있다. 험악했던 그 시절, 그러나 가리봉동에는 목숨을 내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구석구석에 위장취업한 또 다른 젊음들이다. 7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엘리트 대학생들의 노동현장 투신은 한국 사회의 특이현상으로 시대정신(Zeitgeist)의 상징이었다. ‘학출’(학생운동 출신), ‘학삐리’로 불리던 그들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던지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들을 ‘위장취업자’로, 노동현장에서는 ‘먹물’로, 정권에서는 ‘불순세력’, ‘좌경용공세력’으로 불렀다. 개발연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실제로 그 시절, 기업에선 아래와 같은 위장취업자 색출 지침까지 배포되고 학습됐다. ‘이력서의 필체가 기재된 학력에 비해 좋거나, 안경을 쓰거나 대학생들이 잘 입는 복장을 한 근로자, 대학가의 속어를 무의식적으로 쓰거나 노동법에 밝은 자, 이유없이 동료에게 친절한 자….’그들은 앞서 시골에서 올라온 소녀들과는 달리 스스로 공장을 택한 자발적 ‘공돌이’, ‘공순이’였다.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 ‘우골탑’ 대학에 보낸 촉망받던 아들딸들이 고시공부 안 하고 제 발로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가난한 부모의 기대와 눈물을 모질게 외면한 채 노동현장으로 뛰어든 청춘들.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젊은 학출들은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론 갈등했다. 대학생, 그것도 일류 대학생과 공돌이, 공순이라는 태생적 차이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울대 재학 중 공장에 뛰어든 심상정 국회의원은 노동자들과 정서적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청춘을 바쳐 민주화를 부르짖던 그들도 이제 꽃다운 꿈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시나브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금천 순이의 집은 주로 공간적, 건축적인 면에 치중한 다른 문화유산과는 달리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 있는 사회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개발연대, 힘들었던 그 시절을 한번쯤 돌아보고 싶은 자는 당장 가리봉 오거리로 달려가야 한다. 그래서 철거된 가리봉동 133-52 벌집 문짝들을 이용해 재현해 놓은 순이의 집을 보며 침묵에 잠겨야 한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오늘이 고달파도 보람찬 내일이 있다/오! 젊은 날의 꿈이여, 낭만이여 영원히’ 그 시절을 재현한 여공의 방, 낡은 액자에 끼워져 있던 바이런의 시 ‘희망’이다. 그렇다. 좋은 것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리(The best is yet to be). 우리는 그렇게 믿고 살아냈다. 글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 향토사·다문화박물관 세우는 용산, 역사문화박물관 특구로

    향토사·다문화박물관 세우는 용산, 역사문화박물관 특구로

    ‘한국 속 작은 지구촌’으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가 역사문화 박물관 특구로 거듭난다. 용산구는 내년 ‘역사문화 박물관 특구’ 지정과 용산 향토사·다문화박물관 건립을 함께 추진한다. 이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 흔적을 곳곳에 품은 용산의 역사를 후대에 고스란히 전하면서 용산 속 다채로운 세계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0일 오후 2시 한강로3가 옛 용산철도병원 본관 앞에서 만난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고운 단풍을 뽐내는 담쟁이로 감싸인 붉은 벽돌 건물을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옛 철도병원만큼 용산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건축물이 있을까요. 용산은 일제 강점기 철도를 중심으로 병원과 학교 등 도시 기반을 다진 곳입니다. 때문에 용산의 근현대사, 주민 삶을 담은 향토사박물관, 그리고 용산에서 퍼져 나간 다양한 해외 문화를 보여주는 다문화박물관으로 삼는 데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는 없겠죠.”5년에 걸쳐 향토사·다문화박물관 건립을 구상해 온 성 구청장은 최근 2008년 등록문화재 428호로 지정된 옛 철도병원 본관을 박물관 자리로 확정했다.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철도공사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1907년 처음 지어져 병참기지로 쓰였던 철도병원은 1929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인 현재의 붉은 벽돌 건물로 신축됐다. 1984년부터 2011년까지는 중앙대 용산병원 연구동으로 쓰였다. 초기 병원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축적 가치와 철도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용산의 과거를 담고 있다는 역사적 의미를 함께 지녔다. 성 구청장은 왜 지금 용산에 향토사·다문화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이태원관광특구를 중심으로 외국 관광객이 매년 300만명 찾아오고 번성하는 지역이지만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 100여년 새 대한민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 온 땅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역사가 용산구만의 독창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죠. 앞으로도 용산은 곳곳에서 펼쳐지는 재개발과 미군기지 이전, 용산공원 조성 등으로 거대한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때문에 소실될 수 있는 용산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고 후대에 남기는 작업, 용산의 삶과 문화, 다른 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재조명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업을 지금 해놔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깊이 있는 통찰을 얻고 새로운 미래도 그려 나갈 수 있는 것이죠.”지난달 용산 향토사·다문화박물관에 대한 용역 연구를 끝낸 구는 내년 7월쯤 문화체육관광부 심사를 받아 2021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1층에 꾸며질 향토사박물관은 용산 근현대사, 문화, 생활, 교통, 산업 등 주제를 모두 아우르며 다양한 전시기법으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체험,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2층에 들어설 다문화박물관과 관련, 용산에만 106개 대사관·관저가 몰려 있고 2만여명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자산을 충실히 활용해 콘텐츠와 아이디어를 모을 생각이다. 이를 위해 성 구청장은 지난 5월부터 지역에 둥지를 튼 57개국 주한 외국 대사들과 릴레이 면담을 이어 가며 자료 제공과 기획전 참여 등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벌써부터 다문화박물관 기획전에 참여하고 싶다거나 행여 기획전에서 빠질까 봐 걱정하는 나라가 있을 만큼 관심이 뜨겁다. 박물관을 다채로운 문화와 역사 교류의 장으로 만들겠다”며 웃었다. 내년 7월 중소기업벤처부에 신청할 ‘역사문화 박물관특구’ 지정도 이와 맞닿은 장기 구상이다. 현재 용산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전쟁기념관, 백범김구기념관 등 박물관 7곳과 삼성미술관 리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미술관 4곳이 자리해 있다. 구는 새로 지을 향토사·다문화박물관, 11곳에 이르는 기존 박물관과 미술관뿐 아니라 용산공예관, 효창공원, 내후년 상반기 문을 열 이봉창기념관, 용산공원 등 지역 내 주요 문화시설을 모두 연계해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 ‘박물관 투어 버스’도 꾸리기로 했다. “우리 용산은 한 걸음만 걸어도, 한 치의 땅만 봐도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고 유물 전시장입니다. 용산4구역에서도 재개발이 끝나면 서울시에서 2000평 규모의 부지에 서울시도시건축박물관을 2020년 목표로 세우겠답니다. 이처럼 풍성한 역사문화 콘텐츠와 시설들은 용산의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입니다. 해외 관광객 2000만 시대에 역사문화 박물관특구로 지정돼 더 많은 이들에게 공동체와 역사, 타 문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고 지역 경제도 살리도록 애쓰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니코틴으로 아내 살해한 20대 항소심서 심신미약 감정 신청

    일본 신혼여행 중 니코틴 원액으로 아내를 살해한 20대 남편이 항소심 재판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권혁중 부장)가 21일 연 항소심 공판에서 A(22)씨는 “평소 자살과 자해를 시도하고 정신과 처방 약을 남용했다. 범행 당시 정신이 정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A씨의 변호인도 “수사과정에서 A씨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조사를 받고 어린 시절 가정환경 등으로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했다. 망상과 조현병 증상도 보였다”며 정신감정을 요청했다. 변호인은 이어 “1심처럼 심신미약 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이 진행되면 평생 A씨의 자유가 박탈된다”며 “정상적인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니 꼭 정신감정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살인 혐의를 인정한 뒤 심신미약 상태의 범행이라며 정신감정을 요청하는데 피고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신청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피고가 인격장애나 조현병 등 병력이 있다는 자료도 첨부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피고의 병력과 범죄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25일 신혼여행 중 일본 오사카 숙소에서 사망보험금 1억 5000만원을 타낼 목적으로 미리 준비한 니코틴 원액을 아내(19)에게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치밀하게 준비해 낯선 이국 땅에서 어린 아내를 살해한 반사회적 범죄”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다음 재판은 다음달 12일 오전 10시 15분 316호 법정에서 열린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유승준 컴백, ‘수익금 전액 기부’에도 싸늘한 대중 반응

    유승준 컴백, ‘수익금 전액 기부’에도 싸늘한 대중 반응

    유승준의 컴백 소식이 전해졌다. 21일 유승준은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오는 22일 컴백한다는 소식과 함께 새 앨범 재킷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유승준이 오픈카에 기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2007년 발매한 ‘Rebirth of YSJ’ 앨범 이후 약 11년만에 컴백하는 유승준은 앨범의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승준은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사랑을 받았던 가수다. 지난 2002년 군입대 시기가 다가오자 미국 시민권을 선택하면서 병역 면제 의혹에 휩싸였다. 이후 출입국 관리법 11조에 의거, 유승준은 법무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받았다. 지난 2015년 유승준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무릎을 꿇고 “한국에 와서 연예활동을 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를 회복하고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돼 한국 땅을 밟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유승준은 중국 성룡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중국, 미국 등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진정한 상남자’…달려오는 차로부터 여친 구한 남성 (영상)

    ‘진정한 상남자’…달려오는 차로부터 여친 구한 남성 (영상)

    한 남성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여자 친구의 생명을 구했다. 그는 중심을 잃고 질주하는 차의 진로 밖으로 여자 친구를 밀어내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 데일리뉴스는 하마터면 과속 차량에 치일 뻔했던 한 연인의 아찔한 사고 순간을 공개했다. 지난 10일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 길을 걸어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성과 검은 조끼, 샌들 차림의 여성은 이야기를 하며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회색 차량이 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차를 발견한 남성은 반사적으로 여자 친구에게 몸을 돌려 차가 덮칠 1차적 위험을 차단했고, 여자 친구를 부여잡은 뒤 차가오는 길 밖으로 밀어내며 함께 땅에 몸을 던졌다. 회색 차는 그들 바로 옆에 담을 들이받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질주를 멈췄다.선명하지 않은 CCTV속에는 바닥에 주저앉은 연인이 일어서서 먼지를 터는 동안에도 떨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재빨리 피한 덕분에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량 운전자 외에 다른 탑승객이 있었는지, 그들도 무사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해당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다니, 진정한 상남자다”, “그가 먼저 차를 보지 않았다면 그들은 정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거나 “차가 총알보다 더 빨랐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그는 여자 친구를 걱정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서 남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유튜브 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흰개미, 우주서도 보이는 피라미드급 ‘왕국’ 건설하다

    [핵잼 사이언스] 흰개미, 우주서도 보이는 피라미드급 ‘왕국’ 건설하다

    우주에서도 볼 수 있을만큼 거대한 구조물의 제작은 인류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해외 주요언론은 브라질 북부에 건설된 그들만의 '왕국'인 흰개미언덕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다소 낯선 용어인 흰개미언덕은 흰개미들이 스스로 흙과 나뭇잎들로 흙더미를 쌓아올린 것을 말한다. 각각의 높이는 2.5m, 지름은 9m 정도로 흰개미들은 이번에 연구지역이 된 브라질 북부 뿐 아니라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 이같은 왕국을 건설했다. 인공위성으로도 관측이 가능한 흰개미언덕은 단순한 둥지는 아니다.흰개미들은 땅 속에 자신의 집을 마련하는데 밖으로 돌출된 이 언덕은 땅 속 굴의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곧 뜨거운 공기와 과한 습기는 언덕의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 집의 공기 조절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속으로 이어진 터널을 통해 흰개미는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갖는다. 이번에 영국 샐퍼드대학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브라질 북부에 건설된 흰개미언덕에 대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내놨다. 먼저 이 지역에 흰개미언덕은 무려 2억 개가 만들어져 있으며 그 범위는 영국 땅 만하게 펼쳐져있다. 또 흰개미언덕을 건설하기 위해 쓰인 흙을 모으면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약 4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특히 흰개미언덕에 쌓인 흙을 분석한 결과 최소 690년~최대 3820년 전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에 참여한 브라질 페이라지산타나 대학 로이 펀치 박사는 "흰개미언덕은 분명 단일 곤충종에 의해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생명공학의 업적"이라면서 "아마 가장 오래된 흰개미언덕은 인류가 피라미드를 만들던 시기와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자인 샐퍼드대학 스티븐 마틴 박사는 "브라질 북부 지역의 흰개미언덕은 효율적인 식량 공급 시스템의 결과물로 보인다"면서 "이 지역 흰개미는 1년에 1~2차례 넓은 지역에 떨어지는 낙엽을 먹고산다"고 밝혔다. 이어 "흰개미들이 떼지어 몰려가 식량을 구하기위해 이 터널은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학술지 셀 바이올로지(Cell Bi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남자친구’ 송혜교♥박보검, 심장 멎을 것 같은 ‘눈맞춤’

    ‘남자친구’ 송혜교♥박보검, 심장 멎을 것 같은 ‘눈맞춤’

    tvN 새 수목드라마 ‘남자친구’ 송혜교-박보검의 그림 같은 눈맞춤이 공개돼 이목이 집중된다. 오는 28일 밤 9시 30분 첫 방송 예정인 tvN 새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극본 유영아/연출 박신우/제작 본팩토리)는 한번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수현(송혜교 분)과 자유롭고 맑은 영혼 진혁(박보검 분)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설레는 감성멜로 드라마. 이 가운데 21일, 송혜교-박보검의 투샷 스틸이 첫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개된 스틸 속에는 눈을 맞추고 있는 송혜교-박보검의 모습이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더불어 송혜교-박보검의 뒤로 펼쳐진 노을 진 쿠바 전경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설렘을 더하며, 두 사람의 따뜻한 감성멜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남자친구’ 제작진은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지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꿈을 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극중 송혜교-박보검이 낯선 땅 쿠바에서 우연히 만나 보여지는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들 예정이다. 오는 28일 시작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N 새 수목드라마 ‘남자친구’는 배우 송혜교-박보검과 영화 ‘7번 방의 선물’, ‘국가대표2’의 각색, 드라마 ‘딴따라’의 극본을 맡았던 실력파 유영아 작가와 드라마 ‘질투의 화신’, ‘엔젤아이즈’로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박신우 감독, 참신하고 색다른 드라마를 선보여온 tvN이 의기투합한 작품. 오는 28일 밤 9시 30분에 첫 방송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부동산 정책으론 못 잡는 집값

    [최만진의 도시탐구] 부동산 정책으론 못 잡는 집값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9·13 대책이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그 효과를 조금씩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 아파트 값이 소폭 하락했다는 소식은 참 오랜만에 듣는다. 당분간 하락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기는 하나 이미 올라버린 집값이 조금 내린다고 해서 서민들에게 무슨 위안이 될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머지않아 정책의 약발이 떨어져 또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그간 백약이 무효였던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봐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할 때마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좀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를 위해서는 아파트의 정체를 파악해 보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은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고안했다. 산업혁명 이후 초과밀화된 도시 정주환경의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낮고 조밀하게 방치된 건물들을 모두 철거한 후 초고층 건축물로 대체하였다. 그는 건물이 차지하는 총면적을 5%로 제한하고 나머지 땅은 공지와 녹지로 조성하였다. 이를 통해 도심에는 빛나는 햇빛과 신선한 바람이 유입되었다. 또한 코르뷔지에는 기계와 산업문명에 매료되어 고속도로, 지하철, 철도, 전차 등의 다층구조와 기계 형태를 가진 교통중심의 도시를 개발하였다. 심지어는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중심광장에 비행장까지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 단지는 도시적 전원을 형성할 수 있는 장점은 도외시하고 개발이익만을 우선시하여 과밀하게 지었다. 이는 경제발전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투기 조장과 빈부격차를 초래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심지어 농지나 임야였던 강남 땅을 저렴하게 수용하여 주택용지로 분양함으로써 생긴 거대한 차익이 당시 독재 세력의 비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우리 땅에서는 코르뷔지에의 주거기계가 하루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금빛기계로 변질된 것이다. 독일에서는 코르뷔지에의 생각과 다른 개념이 싹트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20년대에 지어진 ‘말발굽형 공동주택단지’이다. 여기에는 부유층과 중산층을 겨냥한 코르뷔지에의 아파트와는 달리 서민들이 입주했다. 또 다른 특징은 단지 중앙에 주민 교류와 공동체를 위한 큰 중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인간을 축출해버린 코르뷔지에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단지 전면에는 주민 집회 공간까지 있어 도심에 비행장을 설치한 것과는 큰 대조를 보여준다. 이처럼 아파트 투기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놓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주거 철학과 인식의 근본적 변환이다. 아파트 단지는 선진 웰빙 시대에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주는 주거기계인 동시에 있는 자와 없는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약자와 강자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공간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이는 우리사회가 간절하게 꿈꾸는 지속가능한 포용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길이기도 하다.
  • 제물이 된 남자…파격이 된 몸짓

    제물이 된 남자…파격이 된 몸짓

    #장면 1.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동(N스튜디오) 현대무용스튜디오. 바순이 서주를 연주하자 9명의 무용수가 일제히 손을 하늘로 높이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강한 리듬에 최면이 걸린 듯 이들의 몸짓은 더욱 격정적으로 변해갔다. 무대는 점점 원시의 ‘날것’을 드러내듯 고조됐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성 무용수들의 숨소리는 갈수록 거칠어졌다. #장면 2. “등을 이렇게 굽혀주세요. 그래야 호기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다시 한 번 합시다. 각 동작을 스타카토로 끊어주세요.” 같은 건물 스튜디오1의 또 다른 연습현장. 정영두 안무가가 스트라빈스키 ‘심포니 인 C’ 1악장에 맞춰 직접 춤을 보여주며 무용수들을 독려했다. 안무와 악보를 오가는 그의 시선은 매서웠고, 평소 나직하면서도 진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톤도 조금씩 올라갔다.늦가을 추위를 녹일 듯한 몸짓의 열기로 가득한 이곳은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 ‘쓰리 스트라빈스키’ 연습현장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쓰리 볼레로’에 이어 두 번째 ‘쓰리 시리즈’로 선택한 아이템은 ‘춤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다. 3명의 안무가가 같은 주제로 3편의 안무를 선보이는 기획으로, 안성수 예술감독 부임 후 처음 선보인 ‘쓰리 볼레로’가 말 그대로 ‘대박’을 치자 단번에 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됐다. 이번 공연에는 안 예술감독이 직접 안무한 ‘봄의 제전’과 정 안무가의 ‘심포니 인 C’, 김재덕 안무가의 ‘아곤’ 등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세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처녀 대신 남성 희생시키는 설정… 뻔하지 않은 ‘봄의 제전’ 탄생 ‘봄의 제전’ 초연이 있었던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이 관객들의 거친 항의로 난장판이 돼 경찰까지 출동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연습현장에서 만난 안 예술감독은 “‘봄의 제전’ 이전까지 ‘발레는 뻔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흥행을 위해 무릎을 안으로 굽히는 등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안무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모험적 안무로 인해 결국 ‘봄의 제전’은 세계음악사를 바꾼 주요 초연의 하나로 평가받게 됐다. 안 예술감독은 기존 ‘봄의 제전’에 또 한 번의 전복을 시도한다. 땅의 풍요를 기원하는 원시부족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기존 내용에서 희생자를 남성으로 바꾼 것. 안 예술감독은 “여(女) 대제사장이 땅의 풍요를 위해 신의 계시를 받아 남성을 희생시키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 담은 ‘심포니 인 C’ ‘봄의 제전’이 음악 자체의 서사가 있다면 ‘심포니 인 C’와 ‘아곤’은 서사가 없다. 정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 참여하기에 앞서 미국 서부와 동부를 잇는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연습현장에서 말한 ‘호기심’은 바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느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의미했다. 정 안무가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창문 밖 풍경은 앞을 보면 시간이 다가오고, 뒤를 보면 시간이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비행기나 자동차를 탈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며 “상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무용수들과 공유하며 각자의 느낌을 안무에 담기로 했다. ●“현대무용에 대한 진입장벽 낮추고 다양성 즐기는 기회 될 것” 볼레로에서 스트라빈스키로 이어지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 시리즈’가 이번에도 순항할 것이란 게 무용계 안팎의 평가다. ‘쓰리 시리즈’를 현대무용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기획이라고 설명한 안 예술감독은 “저희 작품을 본 관객들은 현대무용의 다양성을 즐기기 위해 또다시 공연장을 찾을 것”이라며 “다음 ‘쓰리 시리즈’는 비발디 등의 작품을 모은 바로크 시대로 갈 수도 있고, 모차르트 등 고전파 시대로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5개월 만에… ‘홍카콜라’ 재등판

    5개월 만에… ‘홍카콜라’ 재등판

    내년 2월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 “흥행 도움” “정치 도의 안 맞아” 평 갈려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현실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6윌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약 5개월 만이다. 홍 전 대표는 20일 페이스북에 “지방선거 패배 직후 야당 대표에서 물러나며 ‘홍준표가 옳았다’는 국민 믿음이 바로 설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며 “최근 국민 절반 이상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 홍준표 말이 옳았다는 지적을 해 준 데 힘입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내 나라가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홍 전 대표는 “12월 중순 국민과의 직접 소통수단인 ‘홍카콜라’(1인 유튜브 채널)를 통해 그동안 못 다했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펼치고 ‘프리덤코리아’(보수 정책포럼)를 통해 이 땅의 지성과 네이션 리빌딩 운동을 펼칠 것”이라며 “이것만이 좌파 광풍 시대를 끝내고 내 나라를 살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했다. 홍 전 대표가 재등판하며 당권 경쟁 구도도 출렁일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를 위해 홍 전 대표가 계산된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당 내부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홍 전 대표가 복귀하면 특유의 독설로 또다시 당 이미지를 훼손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또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당의 패배를 막지 못한 그가 당대표 선거에 두 번 연속으로 출마하는 건 정치적 도의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전당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는 홍 전 대표를 포함한 보수 잠룡이 모두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익환 바른미래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홍 전 대표 복귀에 기뻐할 정부·여당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고 주장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가파른 해방촌 108계단… 승강기로 1분 만에 올라요

    가파른 해방촌 108계단… 승강기로 1분 만에 올라요

    노약자 등 보행권 확대… 이색 볼거리로‘남산 아래 첫 마을’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시내 주택가에선 처음으로 경사형 승강기가 들어섰다. 용산구는 지난 19일 용산2가동 신흥로 108계단에서 준공식을 가졌다고 20일 밝혔다. 108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던 주민들은 계단 아래부터 정상까지 1분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1층에서 4층까지 타고 내릴 수 있는 승강장도 설치돼 편의를 한결 더했다. 지난해 11월 공사에 나선 구는 폭 6m, 길이 53m에 이르는 계단 중앙(너비 2m)에 땅을 파 15인승 경사형 승강기를 조성하고 주위엔 안전을 위해 방호난간을 둘렀다. 사업비는 28억원이다. 승강기가 놓이며 노약자들과 장애인들의 보행권은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이색적인 풍경에 해방촌을 찾는 관광객도 늘 것으로 보인다. 해방촌에 108계단이 생겨난 건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3년이었다. 당시 일제는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승전 분위기를 억지로 띄우려고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며 참배 길로 계단을 만들었다. 이후 75년이 흐르는 동안 신사는 자취를 감췄지만 계단은 용산2가동, 후암동 주민들의 삶의 통로가 돼 왔다. 구는 해방촌 테마 가로 1단계 조성 공사도 조만간 끝내며 내후년까지 ‘남산 가는 골목길’, ‘역사 문화 탐방로’ 등 해방촌의 역사와 마을 흔적을 탐색하는 테마 길을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108계단 승강기가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편의성과 재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새롭게 생긴 카페, 식당들도 벌써 눈에 띄는 만큼 골목 상권도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홍준표 “내 나라 무너지고 망가져…현실정치 복귀하겠다” 선언

    홍준표 “내 나라 무너지고 망가져…현실정치 복귀하겠다” 선언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현실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나라가 이렇게 무너지고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최근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의 홍준표의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계를 떠난 일이 없기에 정계 복귀가 아니라 현실 정치로의 복귀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준표 전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고 있고, 경제가 통째로 망쳐지고 있다”면서 “지난 지방선거 패배 직후 야당 대표를 물러나면서 나는 홍준표가 옳았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바로 설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고 했다. 현실정치 복귀 방식에 대해서는 일단 “12월 중순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 수단인 ‘TV 홍카콜라’를 통하여 그 동안 못 다했던 나라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펼치고, ‘프리덤 코리아’를 통해 이 땅의 지성들과 ‘네이션 리빌딩’(nation rebuilding)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만이 좌파 광풍 시대를 끝내고 내 나라를 살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모두 함께 갑시다”라고 글을 맺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현실정치 복귀 선언으로 홍준표 전 대표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재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전망이 힘을 받게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왼팔 잘린 채 오른팔로 든 태극기…‘남도의 유관순’ 초인적 항일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과 잔인한 고문에도 독립운동가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초인적인 저항 정신을 보여 준 독립운동가가 있다. 육신의 일부가 절단돼 선혈이 쏟아지는 중에도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만세를 더 크게 외친 윤형숙(1900~1950) 열사. 열사를 흔히 ‘남도(南道)의 유관순’이라 부른다. 전남 여천역에서 내려 윤 열사의 조카 윤치홍(78)씨를 만나 여수 이순신공원의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을 둘러보았다. 2014년 건립된 기념탑 옆에는 팔이 잘린 열사의 모습이 담긴 부조물이 있다.윤씨는 “끝까지 일제에 굴하지 않고 평생 나라를 위해 몸바친 인물”이라고 열사를 소개했다. 윤씨의 할아버지 윤자환(1896~1950·대통령 표창) 선생도 3·1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윤씨는 10여년 동안 기록 발굴에 매달린 끝에 알려지지 않은 열사의 공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열사는 닥쳐올 운명을 암시하듯 혈녀(血女)라는 이명(異名)으로도 불렸다. 학적부와 판결문에는 ‘윤혈녀’로 적혀 있다. 윤씨는 윤혈녀와 호적상의 윤형숙이 동일인임을 어렵사리 확인했다.●윤 열사 조카, 10여년간 관련 공적 찾아 내 타오르는 들불처럼 만세운동이 번졌던 1919년 3월 광주에서도 민중과 학생들이 떨쳐 일어났다. 윤 열사는 당시 광주 수피아여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학교에는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박애순(1896~1969·건국훈장 애족장) 교사가 재직하고 있었다. 박 선생은 고종 황제의 승하 소식과 일제에 빼앗긴 나라 안팎의 사정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광주 만세운동은 3·1운동 전부터 움트고 있었다. 일본 도쿄 유학생 정광호가 귀국해 2·8 독립선언을 청년들에게 알렸다. 서울 유학생인 최정두와 고종 황제의 국장에 참례하고 서울 시위에 참가한 김철도 귀향해 남궁혁의 집에 모여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태극기, 격문 등을 밤새 만들어 장날인 8일 서울과 똑같은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아 다시 작은 장날인 3월 10일로 거사일을 바꾸고 학생들과 읍민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이에 박 선생도 김복현,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통을 받고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당연히 참가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학생들은 수피아홀에 숨어 밤새 치마를 뜯어 태극기를 만들었다. 드디어 10일 오후 3시 30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 수피아여학교·숭일학교·농업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기독교인, 주민 등 1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들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받아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대한독립만세!”, “왜놈들은 물러가라.” 윤형숙은 시위 행렬의 맨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는 시장 안을 돌아 서문통을 거쳐 우편국 앞으로 행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헌병과 경찰은 군중의 기세에 눌려 감히 시위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본정통을 돌아 경찰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헌병들은 실탄 사격을 하고 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본 헌병이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던 윤 열사의 왼팔 상단부를 군도(軍刀)로 내리쳤다. 잘려나간 팔이 붉은 피를 뿌리며 땅에 떨어졌다. 남은 팔에서도 피가 쏟아졌고 윤 열사는 정신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열사의 몸 일부였던 팔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은 태극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유혈이 낭자한 몸으로 열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오른팔로 땅에 떨어진 태극기를 주워 들고 높이 흔들었다. 그러면서 더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은 비분강개하여 더욱 격렬하게 항거했다. 군중은 광주경찰서 앞으로 몰려들었다. 일제는 총검을 휘둘렀고 경찰서 앞마당은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그 자리에서 100여명이 구금되었다. 한쪽 팔을 잘리고도 만세를 외친 윤 열사의 행동에 일본 군경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육군성에 다음날 보고됐다. 열사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한 채 심문을 당했다. 일경은 굽히지 않는 열사를 가혹하게 고문해 오른쪽 눈을 멀게 했다. 팔이 잘린 열사는 재판정에도 나가지 못했고 결석재판으로 4개월 형에다 4년 연금형을 더한 판결을 받았다.●팔 잘려 재판 못 나가… 결석재판 징역 4개월 이후 열사는 함남 원산 마르다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고문 후유증이 심해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열사는 요양차 전북 전주로 내려가 전주기전야학교 사감으로 일하고 고창군의 한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1939년 고향 여수로 내려갔다. 왼쪽 눈의 시력마저 거의 잃었지만 열사는 봉산학원 교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야학을 열어 글을 모르는 마을 청년들을 가르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외팔이 선생’으로 불리며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던 열사에게 더 큰 비극이 닥쳤다. 열사는 평소 반공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북한군이 여수까지 점령했다. 지인의 집으로 피신했던 열사는 뒤를 캔 내무서원에게 붙잡혔다.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북으로 퇴각하기 직전 북한군은 여수 둔덕동 과수원에서 열사를 총살했다. 파란만장한 20세기의 전반을 헤쳐 온 열사의 나이 50세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한 ‘사랑의 원자탄’ 주인공 손양원 목사도 함께 총살당했다. ●잘린 팔 무등산에 묻혔다 전하지만 못찾아 열사는 1900년 9월 13일 전남 여수 화양면 창무리에서 태어났다. 윤치홍씨와 택시를 함께 타고 30여분쯤 가니 확장 공사 중인 도로 옆 비탈에 열사의 묘소가 있었다. 바로 옆에 작은 공장이 있고 잡초가 드문드문 자란 쓸쓸한 모습이었다. 도로 너머로 추수를 마친 창무리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창무리는 조선시대에 말을 방목해 기르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 순교자윤형숙전도사지묘’(故殉敎者尹亨淑傳道師之墓)라고만 씌어 있다. 윤씨는 이 비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열사가 총살당했다는 비보를 전해들은 고향 친지들은 20리 길을 걸어 학살 현장을 찾아갔다. 어둠 속에서 한쪽 팔이 없는 시신을 수습해 그날 밤 고향 뒷산에 가매장했다. 이듬해 4월 교회 사람들이 묘비를 만들어 고향 마을로 가져왔으나 마을 사람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항일 운동에 몸바친 열사에게 단순히 ‘순교한 전도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석은 방치돼 소고삐를 매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가까운 친지들과 마을 유지들이 모여 묘를 이장하고 조촐한 묘비 제막식을 열어 열사의 영혼을 달래 주었다. 열사의 팔은 누군가 광주 무등산 자락에 따로 묻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죽으면 팔을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는데 팔무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추모비엔 이렇게 썼다. “당신의 충령(忠靈)을 천추(千秋)에 길이 전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거룩하신 충절을 값없이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부, 2004년에야 건국포장 추서 열사에게도 한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젊음은 일제에, 생의 마지막은 북한군에게 희생된 열사의 일생은 민족 비극의 축소판이었다. 2004년 정부는 열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새로 만든 묘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박미경의 사진 산문] ‘유진 스미스’는 살아 있다

    [박미경의 사진 산문] ‘유진 스미스’는 살아 있다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면 누구라도 했을 만한 일을 했다. 사진을 찍어서 사진을 본 사람들을 증인으로 삼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겪어서는 안 될 재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이탈리아의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안토니오 기보타가 자신이 찍은 사진 ‘베오그라드의 추위에 갇히다’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한 버려진 기차역에서 처절하게 인간적인 삶의 조건으로부터 팽개쳐진 사람들을 만났다. ‘하얀 도시’라는 이름만큼이나 차갑고 맹렬한 추위가 이어지던 2017년 겨울이었다. ‘불법난민캠프’로 불리는 그곳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지에서 헝가리로 가기 위해 국경 근처로 온 난민 1000여명이 갇혀 있었다. 황폐한 땅 위 무너진 건물 속에, 쓰레기와 악취, 검은 연기 속에 갇혀 있었다. 감옥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현실에 갇힌 것이다.기보타는 그곳에서 ‘증인들을 위한 증거자료’를 찍었다. 영하의 날씨에 한 바가지의 물로 몸을 씻는 청년, 그의 벗은 몸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은 폐허에 쌓여 있는 잔설보다 희다. 모포로도 다 가리지 못한 형형하고 두려운 눈빛, 어디에도 신이 임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맨땅바닥에 담요 하나로 성전을 만들고 올리는 기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플라스틱과 고무 쓰레기들을 태워 피운 불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는다. 굵은 눈송이가 흩날리는 속에서 그 화톳불에 의지해 모여 있는 구부정한 형상들, 두고 온 가족과 한때 꾸었던 꿈,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둥그런 원은 비극적이면서 아름답기조차 하다. 기보타가 찍은 이 강렬한 시각언어는 그의 바람대로 사진을 본 사람들을 증인으로 만들었으며, ‘어떤 단어나 소리도 없이 침묵처럼 깊고 검은 흑백사진들이 비명을 지른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2018년 올해 미국 유진스미스재단이 수여하는 ‘유진스미스상 후보작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소감에서 “몇 장의 사진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사진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내가 그런 ‘사진’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유진스미스재단은 미국의 사진가 유진 스미스를 기리며 다큐멘터리 분야 사진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워진 재단이다. 시상식에서 기보타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그곳에서 살아 있는 유진 스미스를 만나게 된다. 사진가 유진 스미스는 1978년 예순의 나이에 죽었다. 그러나 올해 서른아홉 돌을 맞으며 뉴욕 맨해튼의 한 중심에서 살았을 때보다 더 확장된 생을 이어 가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해마다 후배 사진가들에게 상이 주어지고, 기보타처럼 열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그 이름 아래 모이기 때문이다. 올 한 해에만 53개 나라에서 저마다 다른 500여개의 사진 작업들이 재단으로 보내졌다. 40여년 동안 이어진 이 재단의 지원이 개개인의 기부에 의해 이루어져 온 점 또한 놀랍다. 우리에게도 비록 작고했지만 잊지 못할 사진가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을 이어 가는 사진가는 없다. 감동과 상념에 젖어 시상식장을 나오는데, 앞서 걷는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 저기 유진 스미스가 걸어간다.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국가 권위 회복하려던 ‘조선의 주자’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국가 권위 회복하려던 ‘조선의 주자’

    “우리나라는 작고 힘이 약하여 비록 큰일을 할 수는 없으나 항상 ‘억울함과 애통함을 품은 채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심정’을 그대들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천지가 만물을 낸 것이나 성인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오직 ‘올곧음(直)’일 뿐이었고, 공자와 맹자 이래로 전해온 것도 오직 올곧음뿐이었다. 주자가 임종시에 문인들에게 고했던 말씀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제군들은 기억하도록 하라.” -윤봉구가 지은 송시열 묘지(墓誌)송시열이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훈계한 내용이다.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주자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 그 가르침은 바로 타협하지 않는 ‘올곧음’이라는 것이다. 송시열의 일생의 좌우명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위기의 시대에 어젠다를 제시하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1607~1689년)은 효종, 현종, 숙종 3대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이자 학자이다. 병자호란 때 나라의 치욕을 목도한 이후 송시열은 벼슬할 생각을 접고 산림에 은거해 학문에 몰두했다가 효종 때에 올린 ‘기축봉사’와 ‘정유봉사’를 통해 이후 나라가 지향해야 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우암은 여기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학문적 성과를 드러낸다. 그 내용은 세제를 바로잡고 세금을 공평하게 부과할 것, 궁궐과 신하들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 궁중의 사치를 금하고 검약을 실천할 것, 내수사를 혁파할 것, 왕이 학문에 힘쓸 것, 속오군이나 대동법 등 정책을 일관성 있게 시행할 것, 공자-주자로 이어지는 학통을 확립할 것, 북벌을 위해 내정을 개혁할 것 등이다. 구체적인 정책뿐 아니라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다시 세우고자 북벌을 제시하고 주자학을 이념화해 사상을 단속함으로써 기존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자 한 것이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 때보다 지배층에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전 국토가 유린당한 사태는 왜란 때보다 덜했다. 그러나 왕이 직접 항복했다는 치욕과 정신적 지주인 명나라의 멸망으로 사대부 층에서는 기존의 가치와 권위가 흔들리는 혼돈을 겪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엇을 제안해야 할 것인가. 주자를 깊이 연구해왔던 송시열은 오랑캐의 위협 하에 있는 당시 조선의 상황이 주자가 처했던 남송시대와 유사하다고 봤다. 그리하여 대외적인 문제뿐 아니라 국내 정치, 학문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주자의 권위와 의리를 내세워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적을 물리치려면 내치부터 닦아야 ‘송시열’ 하면 ‘북벌론’을 떠올린다. 그는 병자호란으로 땅에 떨어진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중화를 존숭하고 이적을 물리쳐야 한다(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명분을 시대의 사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송시열의 북벌론에 관해서는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 한편으로 ‘효종은 진심이었으나 송시열은 명분만 동조했을 뿐 실제 결행 의지는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송자대전’을 보면 송시열의 처지에서 북벌은 언제나 내치의 수행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정사를 잘 수행하여 이적을 물리친다는 것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공자가 ‘춘추’를 지어 ‘대일통(大一統)’의 의리를 천하 후세에 밝히셨으니, 혈기를 지닌 자라면 중국을 존숭해야 하고 이적을 추악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중략)…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 오랑캐는 군부의 큰 원수이니 맹세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라고 마음을 굳게 정하여 원한을 잊지 말고 원통함을 품고서 공손한 언사 속에 분노를 더욱 깊이 감추고 예물을 바치는 중에 와신상담하는 마음을 더욱 절실히 가지십시오.” -‘기축봉사’ 효종: 내가 밤낮으로 애써 생각하는 것은 오직 병력을 기르는 일이오, 경이 전에 말하기를 ‘병력을 기르는 일과 백성을 기르는 길은 반드시 서로 방해가 된다’ 하였는데, 어떻게 하면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겠소? 송시열: 그것은 신의 말이 아니라 바로 주자의 말씀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재력에 관계되는 것을 일절 함부로 쓰지 말고 모두 군수(軍需)로 돌리면 군수가 점차 넉넉해질 것입니다. 효종: 주자의 말씀은 과연 하나하나 모두 행할 수 있는 것이오? 송시열: 옛 성인의 말씀에는 간혹 시대와 형편이 달라 시행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주자의 말씀은 시대와 형편이 지금과 매우 가깝고 또 주자가 만났던 시대상도 오늘날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신은 그 말씀을 하나하나 모두 행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악대설화’ 명나라를 존숭한다는 것은 단지 사대의 의리나 임진왜란 때 구원해준 의리 때문만이 아니다. 명나라는 중화라는 문명의 상징, 정주학이라는 도학의 근원지로 사대부층에는 정신적으로도 부모의 나라였다. 따라서 북벌론은 당시의 급격한 상실감을 메우고 자존심을 부지해주기 위한 하나의 치유책으로 일정한 역할이 있었다고 보인다. 즉 송시열에게 북벌은 실행 가능성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흩어진 민심을 단속하고 내치를 다지며 국가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동력이었다. #주자를 믿고 이단을 물리치라 송시열: 윤휴의 죄 중에는 무슨 일이 가장 큰가? 권상하: 역모죄가 가장 큽니다. 송시열: 그대의 궁리공부(窮理工夫)가 깊지 못하구나. 권상하: 그렇다면 주자를 모욕한 것이 가장 큰 죄입니까? 송시열: 그렇다. 사람치고 성현을 모욕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느냐? -권상하가 기록한 어록 송시열은 주자의 사상이 조선을 이끌어줄 대안이라 여겼다. 그 자신도 주자학에 조예가 깊어 수십 권의 관련 저서를 남겼다. 이러한 주자학에 대한 신념과 타협을 모르는 강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주자와 대치되는 학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과 배척을 가했다. 청나라의 현실적 패권을 인정하고자 했던 허적은 역모로 숙청됐다. 경전에 대해 주자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하고 우암의 예설에 반론을 제기했던 윤휴에게는 ‘사문난적’의 이름이 더해졌다. 역모보다 주자를 모욕하는 것이 더 큰 죄라고 여겼기 때문에 역적의 누명은 후에 신원되더라도 사문난적이란 오명은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역적을 편드는 무리가 역적보다 더 나쁘다는 논리로 윤선거나 윤증과 불화하여 서인 내에 노론과 소론이 갈라지는 계기가 됐다. 송시열은 숙종 15년(1689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에 대한 평가도 당파에 따라 극명하게 다르다. 노론이 편찬한 ‘숙종실록’의 송시열 졸기에서는 “송시열이 윤휴와 윤증을 배척할 때에 비록 송시열을 존중하는 자라도 혹 너무 지나치다고 하였으나 그 끝에 가서는 마침내 모두 송시열의 말과 같았으므로 세상에서 모두 그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라고 했다. 그러나 소론이 편찬한 ‘숙종보궐실록’의 송시열 졸기에서는 “한마디 말이 회덕(懷德·송시열)에서 나오면 사람들이 감히 어기지 못하였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과 거슬리는 바가 있으면 비록 평생을 복종해 섬긴 자라도 곧 불화하였으니, 의논하는 자가 깊이 이를 근심하였다”라며 그 실상을 보여준다. 숙종 때 당파 간 교체가 있었지만, 영조 이후로 노론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면서 송시열은 동방의 주자라는 칭송을 받고 ‘대로(大老)’라 불린다. 그리고 그의 노선은 이후 200여년간 노론의 의리가 되었다. 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송자대전’은 왕명으로 편찬·간행… 성에 ‘子’ 붙인 제명 전무후무 문집은 숙종 43년(1717년)과 정조 11년(1787년), 1927년 모두 세 차례 간행됐다. 숙종 때는 활자본으로, 정조 때는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두 번 모두 국가의 지원 하에 왕명으로 편찬하고 간행했다. 특히 정조 때 236권 102책이란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간행한 ‘송자대전(宋子大全)’은 성에 ‘자(子)’를 붙인 제명부터 유례없는 전무후무한 것이다. 문집의 제목은 대개 저자의 호나 시호, 관직명을 붙여 ‘00문집’, ‘00유고’ 등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컨대 숙종 때 발간한 ‘우암선생문집’이 그렇다. ‘우암선생’과 ‘송자’라는 명칭은 우암의 공식적인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후 우암의 저서와 행적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작업은 끊임없이 이루어져 습유, 속습유, 부록 등을 모두 합치면 261권 113책이란 거질이 된다. 원문은 현재 한국고전종합DB에서 서비스한다. 또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1980년대 ‘송자대전’ 주요 작품을 뽑아 번역해 ‘국역송자대전’을 출간했는데, 현재 완역 중이다.
  • 강진에서 시작된 ‘제1회 아기탄생참가정축복 희망전진대회’

    강진에서 시작된 ‘제1회 아기탄생참가정축복 희망전진대회’

    “강진군이 생명 운동의 뿌리이자 씨앗이 되길 기원합니다.” 지난 17일 전남 강진군민체육관에서 제1회 아기탄생참가정축복 희망전진대회가 열렸다. 이승옥 강진군수와 황주홍 국회의원, 위성식 강진군의장, 임종혁 신한국가정연합 신전라국(4지구) 지구장과 송정섭 전남교구장 등 주민 36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강진다문화가정연합회는 “국가재난과 같은 심각한 저출산 사태를 맞이해 다산정신의 산실인 강진에서 아기탄생을 축복하는 생명운동을 시작했다”며 “이 같은 저출산은 가족관계를 구조적으로 제한하고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공동체를 약화시킨다”고 우려했다. 연합회는 “이같은 상황이 심화되면 아들과 딸이 없어서 엄마 아빠 라고 말을 할 수도 없고, 형과 누나, 여동생과 남동생이라는 명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진다문화가정연합회는 “제2회, 3회 대회에서는 이번 첫 대회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저출산과 가정문제를 해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이 될수 있도록 활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군수는 축사를 통해 “인구 감소는 농촌사회의 공동체 기반이 무너지고, 지역 소멸 위기를 가져온다”며 ”이같은 현실 앞에 아기탄생을 기원하고 생명의 땅을 만드는 의미 있는 희망전진대회가 강진에서 시작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군민 10%인 3600여명이나 참석해 놀랐다”면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강진을 살리는 출발점이자 희망이 될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임 지구장은 “강진군에서부터 타오르는 ‘새생명 탄생’ 이라는 봉화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힘찬 발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의정 포커스] “구민의 생명과 안전 지키는 의회 앞장”

    [의정 포커스] “구민의 생명과 안전 지키는 의회 앞장”

    “지난 8월 말 서울 금천구에서는 가산동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해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등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민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제8대 금천구의회 전반기를 이끌어 갈 류명기(더불어민주당) 의장은 지난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의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앞서 금천구의회는 지난 8월 외부에서 하기로 한 의원세미나를 취소했다. 제19호 태풍 ‘솔릭’ 영향으로 큰 피해가 예상돼 태풍 피해 예방과 복구에 대비한 의정 활동에 전념키로 한 것이다. 류 의장은 “당시에는 태풍의 피해로부터 구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었다”며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전체 의원이 10명(민주당 6명·자유한국당 3명·바른미래당 1명)인 금천구의회는 작지만 강한 자치구의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재선 이상 의원이 7명으로 지역 현안에 대한 이해와 의정 활동 경험이 풍부한 의원들이 많다. 또 초선의원 3명도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류 의장은 인터뷰 내내 ‘신뢰회복과 봉사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을 선거기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며 “구민의 대변자로서 구의회가 주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장에 취임한 이후 의회에서 임차해 운행해 온 전용 의전차량을 반납해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류 의장은 “의장부터 먼저 권위의식을 내려놓으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의회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의회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집행부와의 관계에 대해 류 의장은 “구의 발전과 구민의 복리증진이라는 공통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겠다”며 “다만 수많은 업무를 추진하는 만큼 구민 뜻과 동떨어진 행정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견제와 비판이라는 의회 본연의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류 의장은 제7대 금천구의회 의원에 이어 재선에 성공한 구의원이다. 류 의장은 “의회가 의원들의 협의체인 만큼 의원 간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화합하는 의회가 될 수 있도록 의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제천 참사 스포츠센터 “시세 24억” 내년 1월에 법원 경매물로 나온다

    제천 참사 스포츠센터 “시세 24억” 내년 1월에 법원 경매물로 나온다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건물과 땅이 법원 경매물건으로 나온다.18일 제천시에 따르면 시가 구상권을 근거로 낸 경매신청이 청주지법 제천지원에서 수용돼 현재 감정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시는 참사 이후 유족 위로금과 장례지원금 등으로 11억 6000만원을 집행했다. 또 일대 상권이 침체된다는 지적에 따라 외벽 보수 등에 4억 500만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를 근거로 시는 스포츠센터 주인 이모(53)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건물을 가압류한 상태다.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은행권과 전세보증금이 묶여 있는 건물 세입자 등 채권자들의 배당요구 신청 기간과 감정평가 등을 고려할 때 경매는 이르면 내년 1월 시작될 것으로 시는 보고 있다. 김재호 안전총괄과장은 “1차 경매에 참가해 낙찰받는 게 시의 목표”라며 “건물 소유권이 시로 넘어오면 철거해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을 만든 뒤 나중에 문화센터 등을 지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투자자들의 경매 참여를 차단할 방법이 없어 시의 낙찰을 장담할 수는 없다. 시는 건물의 현재 시세를 24억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씨가 경매에 나온 건물을 지난해 10월 27억원에 샀지만 이번 화재로 곳곳이 훼손되면서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씨가 가입한 화재보험사도 참사 이후 건물의 가치를 24억원 정도로 봤다. 한편 이상천 시장은 지난 13일 김부겸 장관을 만나 건물 철거 등을 위한 특별교부세 지원을 요청했다. 철거비만 많게는 10억원까지 예상되는 등 시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김 장관은 “해당 건물과 토지 소유권이 시로 이전되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글 사진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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