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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존 원주민 족장 “보우소나루 대통령, 틀렸다”

    2020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아마존 카야포 부족의 라오니 메투크티레 족장(89)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을 향해 일갈했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따르면 라오니 족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백인과 원주민, 흑인을 갈라놓으려 했다”며 “보우소나루가 틀렸다. 그는 모두를 욕했고 지금은 혼자다. 모두가 그에 반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원주민 보호구역 외에는 브라질에서 대규모 숲을 보기 어렵게 됐다”며 아마존 숲과 원주민들이 사상 유례없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라오니 족장은 “우리는 숲과 자연을 통해 숨을 쉰다. 벌목과 파괴를 지속한다면 백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무분별한 화전과 벌목,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과 관계없이 원주민 인권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는 라오니 족장은 아마존 열대우림과 원주민 인권 보호에 평생을 바쳐 헌신해 인물이다. 1989년 영국 출신의 세계적 가수 스팅과 함께 17개국을 돌며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 초 취임한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아마존 개발 정책과 아마존 산불로 아마존 열대우림이 위기에 처하자 또다시 아마존 보호를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최자 인스타그램 악플에 핫펠트가 댓글 단 이유 [SSEN이슈]

    최자 인스타그램 악플에 핫펠트가 댓글 단 이유 [SSEN이슈]

    다이나믹 듀오 최자가 악플 테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동료 가수 핫펠트(예은)가 분노했다. 최자를 비난하는 네티즌에게 장문의 댓글을 남기며 일침을 가했다. 지난 14일 가수 겸 연기자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네티즌은 과거 설리와 오래 교제했던 최자의 SNS를 찾아가 악플테러를 쏟아부었다. 이 가운데 한 네티즌은 최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당신이 그녀와 사귀는 것을 자랑할 때 그녀는 악플에 시달리고 있었다. 본인이 책임감 없는 사랑을 했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힙합 하는 이들이 더 이상 여성을 자신의 성공의 액세서리로 보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맹비난했다. 해당 악플에 최자가 아닌 핫펠트가 장문의 댓글을 남기며 대신 반박했다. 그는 “당신이 현명한 척 달고 있는 댓글이 얼마나 한심한 얘기인지 알고있느냐”고 반문하며 “설리 양은 이끌어 줘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며 어엿한 성인이었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고 싶은 솔직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핫펠트는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에 색안경을 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질투와 집착을 보인 악플러들이지 서로를 사랑한 진심이 아니다”라고 대신 해명했다. 그는 힙합계에서 여성을 성공의 액세서리로 보는 문화의 원인 개인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적 시선’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핫펠트는 “표현의 자유, 참 좋은 말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시라. 수박 겉핥기처럼 가벼운 이야기는 일기장이나 카톡 대화창에나 쓰시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금 뿌리지 마시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받아쳤다.다음은 핫펠트 댓글 전문 당신이 현명한 척 달고 있는 댓글이 얼마나 한심한 얘기인지 알고 있나요? 설리양은 이끌어 줘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며 어엿한 성인이었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고 싶은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에 색안경을 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질투와 집착을 보인 악플러들이지 서로를 사랑한 진심이 아닙니다. 힙합하는 이들이 여성을 자신의 성공의 액세서리로 보는 문화, 왜 생겼을까요? 사회가 여성을 남성의 액세서리로 보는 시선 때문이겠죠. 여성을 독립된 개체로 바라봐주지 않고 누구의 여자,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로 규정시키며 자유를 억압하고 입을 틀어막죠. 남성에겐 어떤가요, 남자가 도와줬어야지, 남자가 이끌었어야지, 남자가 말렸어야지- 한 여자의 선택이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야 합니까? 님이 보는 남녀관계는 과연 무엇입니까?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입니까? 표현의 자유, 참 좋은 말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세요. 수박 겉핥기처럼 가벼운 님의 이야기들 일기장이나 카톡 대화창에나 쓰세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소금 뿌리지 마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요.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강하늘,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강하늘,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강하늘 커플의 사랑 방식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의 동백(공효진)과 황용식(강하늘)의 사랑법엔 앞뒤 재는 밀당의 묘미가 없다. 이들에게 ‘썸’이란 요즘 사람들의 애매한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화르르 불태우지 않고 은근히 따뜻하게 오래도록 유지되는 사이를 의미한다. 누군가에겐 세련되지 못하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들의 사랑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동백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없어 ‘병균덩어리’ 취급을 받고, 커서는 남편 없이 혼자 애를 키우며 술집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갖은 오해와 냉대를 버텨내야 했다. 그런 동백의 세상을 처음으로 나무라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용식이다. 첫 만남에 “사람 마음이라는 게 3초 안에 업어치기가 가능한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후엔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꺾이지 않는 역대급 직진을 보여줬다. 세상 사람들이 동백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도, 본인만은 동백의 ‘작정하고 편파적인 편’이 될 거란다. 이 고백에도 끄떡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용식의 투포환급 고백에 동백의 마음도 살랑였다. 하지만 동백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설렘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게 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박복하다 말하는 삶인데, 자신을 버렸던 엄마(이정은)가 치매까지 걸려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백은 이런 자신의 “무시무시한 팔자”에 끼워주기엔 용식이 너무 귀엽다며 그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용식에겐 포기란 없었다. 그에게는 동백이 어떤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전혀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그녀의 엄마에게 필요한 기저귀와 이불 등을 한가득 사들고 “동백씨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요”라며 자신은 여전히 동백을 좋아하고 있다 당당히 말했다. 용식이 동백에게 준건 무조건적인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편견 속 웅크려있는 동백을 볼 때면 용식의 마음속엔 “화 같기도, 미안함 같기도 한”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우레와 같은 응원과 칭찬을 꾸준히 얘기해줬다.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훌륭하다고, 혼자서도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촌놈’ 용식의 직진 순애보는 세상에 웅크려있던 동백을 “폼 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랑 있으면 내가 막 뭐라도 된 것 같아”라는 생각에 땅만 보고 걷고 다니던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든 것이다. 동백이 원하는 스타일로 맞추겠다는 남자, 동백에게만은 쉬운 놈 하겠다는 남자, 자신의 것을 다 걸고 동백을 사랑하겠다는 남자, 동백이 있는 곳이 지뢰밭이면 더더욱 혼자 안 내버려둔다는 남자.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그 남자 용식은 동백의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 그녀를 환히 빛내주고 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연애학 개론이 있다면, 이들 커플을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딘 동백이 연쇄살인마 까불이 때문에 또다시 웅크려들고 있다. 용식은 그녀의 어깨를 다시 펴게 만들 수 있을까. ‘동백꽃 필 무렵’ 17-18화는 오늘(16일) 수요일 밤 10시 KBS 2TV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진들] “놀란 표정이 귀엽다고요 그게 다가 아닌데” 2019 WPY 수상작

    [사진들] “놀란 표정이 귀엽다고요 그게 다가 아닌데” 2019 WPY 수상작

    길 가다 여우와 맞닥뜨려 깜짝 놀라는 마멋의 표정과 몸짓이 귀엽기만 하다고요? 중국 사진작가 바오용칭이 치렌(祁連) 산맥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WPY) 대상을 차지했는데 조금 섬뜩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영국 BBC가 15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포유류 행동 부문 상을 함께 받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우는 마멋을 잡아 먹기 때문이다. 어미가 뒤늦게 달려와 구하려 했지만 하릴 없었다. 바오용칭이 촬영한 다른 사진을 보면 여우가 입으로 마멋의 머리부터 통째로 삼키는 모습도 담겨 있다. 바오용칭은 “이게 자연”이라며 칭하이-티베트 평원의 고산 늪지에서 몇 시간째 웅크린 채 숨죽여 기다리다 작품들을 촬영했다고 털어놓았다. 여우도 요동도 안한 채 누워 있다가 마르모트가 세상 모른 채 다가오자 펄쩍 뛰어올라 장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냉정하게 먹어 치웠다고 했다. 로즈 키드먼 콕스 심사위원장은 “지금까지 WPY에 출품된 사진들과 비교했을 때 역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주니어 부문 대상은 11~14세 부문의 크루즈 에르드만이 대상을 차지했는데 인도네시아 북부 술라웨시 근처 렘베 해협에서 촬영한 무늬 오징어(bigfin reef squid)를 밤에 촬영한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다이빙해 수중에서 오랜 시간 견뎌 이 작품을 카메라에 담은 점이 놀랍기만 하다. WPY라고 약자로만 불리기도 하는 이 상은 런던 자연사박물관이 주관해 시상하며 비슷한 상들 가운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런던의 사우스켄싱턴 연구소에서 18일부터 일반에 전시 공개된다. 내년 출품작은 21일부터 접수를 받는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다음은 다른 부문 수상작들이다. 독수리의 착륙-오던 리카르드센(노르웨이)조류 행동 부문 수장작인데 황금독수리 둥지에 카메라와 플래시를 설치하고 3년을 기다려 이 한 장을 얻었다고 했다. 허들-스테판 크리스트만(독일)포트폴리오 수상작. 남극 동쪽 에크스트룀 빙붕 앞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몸을 비벼대는 황제펭권 5000여 마리를 렌즈에 담았다. 바다로 간 암컷들을 대신해 수컷들이 발 아래 알들의 온도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쥐 반상회-찰리 해밀턴 제임스(영국)도시의 야생동물 수상작. 찰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속 작가로 전 세계 쥐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는데 이 작품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근처에서 촬영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리모컨으로 셔터를 누르길 사흘 동안 기다렸더니 쥐들이 낯을 가리지 않고 다가와 이 순간을 선사했다. 건축가 부대-대니얼 크로나우어(미국)무척추동물 행동 부문 수상작. 코스타리카의 병정개미들을 담았는데 중세 왕관처럼 생긴 이 건축물을 매일같이 세웠다 해체했다 반복을 했다고 대니얼은 털어놓았다. 개미들은 150m쯤 떨어진 곳에 비박 야영지를 세우기도 했다고 했다.  눈에서의 노출-막스 와우(미국) 흑백 부문 수상작. 늘상 화이트아웃(설맹) 사진이 WPY에 출품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아메리칸들소인데 땅에 묻힌 풀들을 뜯어 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머리를 쳐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득달같이 셔터를 눌렀다.  설원의 유목민들-판샹젠(중국) 환경 속의 동물 부문 수상작. 수컷 치루(티베트의 영양과 염소 교배종) 떼가 중국 알툰샨 자연보호지구 안 쿠무쿨리 사막의 눈덮인 설원을 지나치고 있다. 작가는 1㎞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에 담았다. 해발 고도 5500m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곳인데 그나마 날씨가 풀려 모래둥지가 드러났다. 똑같은 장소와 각도에서 두 마리의 곰이 이동하는 장면도 촬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태진아 3000평 땅 약속, 강남 땅 부자로 시작

    태진아 3000평 땅 약속, 강남 땅 부자로 시작

    태진아 3000평 땅을 약속했다. 가수 태진아가 지난 15일 오후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 강남이 결혼하면 3000평짜리 땅을 주기로 했다는 약속에 대해 언급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강남-이상화 커플의 결혼식이 공개됐다. 두 사람은 지난 12일 워커힐 서울에서 결혼했다. 강남은 결혼을 앞두고 취재진 앞에 서 “상화랑 열심히 살겠다. 살짝 떨리고 있다”고 결혼 소감을 밝혔다. 이어 만세 삼창을 외친 강남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상화를 보고 “요정이다. 하얀 요정”이라며 감탄했다. 하객으로 참석한 태진아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냐”는 질문에 “농담 삼아 한 건데 진짜 결혼했다. 줘야 하지 않겠냐”고 웃으면서 시원하게 답했다. 앞서 지난 5월 강남은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태진아의 후배 사랑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태진아 소속사에 속해 있던 강남은 수익 배분에 대한 질문에 “(태진아가) 10이면 10을 다 저한테 주시고, 가져가시는 게 없다. 아빠처럼 해주신다”며 “나중에 많이 벌면 주고 싶은 만큼 주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강남은 “(태진아) 선생님이 ‘결혼하면 3000평짜리 땅을 주겠다’고 하셨다”고 전해 놀라움을 안겼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기고] 세계재생에너지총회에 거는 기대/김성우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겸임교수

    [기고] 세계재생에너지총회에 거는 기대/김성우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겸임교수

    지난달 14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원유시설 2곳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는 하루 원유 생산량의 절반이 감소했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던 유가가 피폭 후 72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예상보다 빠른 복구 소식에 다시 65달러로 내려갔다. 월가는 불확실성에 술렁였다. 정유사 수입 원유 중 약 30%가 사우디산인 우리나라가 직면한 리스크의 속살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95%)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외생변수에 의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날씨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에 대해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각차가 존재한다. 결국 핵심은 경제성인데 최근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은 물론이고 대만 해상풍력 및 중국 태양광까지도 보조금 없는 시장경쟁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프랑스 에너지그룹인 엔지도 보조금이 필요 없는 기술에 10억 유로를 투자한다고 한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경제성 측면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시장의 시그널이다. 우리나라 경북 및 제주 등은 바람이 세고 전남은 햇빛이 강하며 바다나 염해농지 등 활용할 땅도 작지 않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5%에서 2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수립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수요 감축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 상점, 가정, 개인 모두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공급이 똑똑해도 수요관리가 안 되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국토에서도 1960~1980년대 글로벌 흐름을 미리 읽고 석유화학에 선투자해서 주력 산업으로 키워 낸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유가 변동은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였지만 우리는 이를 산업 육성의 기회로 삼았다.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처럼 통제하지 못하는 외생변수 영향이 무기력하게 궁금한 현 시점이 다시 한번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계기다. 마침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재생에너지총회에서는 세계 주요 재생에너지 기업, 국제기구, 학계 대표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를 계기로 국내 에너지 전환의 도약을 기대해 본다.
  •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1959년 낯선 땅을 밟은 이방인은 1964년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작은 산골을 보고 양이나 젖소를 키워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5년 산양 두 마리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다음해는 임실산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효소는 막걸리 누룩, 발효통은 약탕기로 대신해 치즈 생산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와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1968년에는 정과 망치만으로 우리나라 최초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1972년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해 조선호텔에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임실치즈는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임실치즈 생산과정이 담긴 기록물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4월 “임실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했다.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실상 무관중에 깜깜이 남북대결 경기마저 0-0

    사실상 무관중에 깜깜이 남북대결 경기마저 0-0

    29년 만의 남북 축구대표팀 대결이 무관중 경기로 치러져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은 15일 오후 5시 30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킥오프하는 북한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에 손흥민(토트넘)과 황의조(보르도)를 투톱으로 내세운 4-4-2 전술을 가동했지만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남북 모두 승점 1을 더해 승점 7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한국이 골 득실 10으로 북한(3)에 앞서 여전히 조 선두를 지킨다. 전반 30분 북한 리용직이, 후반 10분 깅영권(감바 오사카)가 옐로 카드를 받는 등 다소 거친 경기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좌우 날개는 이재성(홀슈타인 킬)과 나상호(FC도쿄)가 맡고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황인범(밴쿠버),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정우영(알사드)이 출전했다. 벤투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나상호 대신 황희찬을 투입해 공격력을 강화했다. 또 후반 20분 황인범 대신 권창훈을 투입했다. 34분에는 황의조 대신 김신욱이 투입됐다. 왼쪽 풀백은 김진수(전북), 오른쪽 풀백은 무릎 통증으로 전열에서 빠진 이용(전북) 대신 김문환(부산)이 출전했다. 중앙 수비는 김민재(베이징 궈안)와 김영권이, 골키퍼 장갑은 김승규(울산)가 출전했다. 윤정수 북한 대표팀 감독은 후반 36분에야 심효진 대신 김금철을 그라운드에 내보냈다. 쟁중계도 안되고 원정 응원단과 국내외 취재진, 평양 시민이나 외국인 관광객 모두 입장하지 않아 사실상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일부 외교관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등만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경기장 안의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감독관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AFC 본부에 중계해 교체 여부나 경고 및 퇴장 상황, 득점 시간과 선수만 알려져 깜깜이 경기로 치러졌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경기 영상 DVD를 우리 대표단(의 평양) 출발 전에 주겠다는 약속을 (북한으로부터) 확보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15일 경기를 마친 뒤 16일 오후 5시 20분쯤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한 뒤 17일 새벽 0시 45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대표단이 갖고 들어올 DVD 영상도 이때쯤 남한 땅에 도착하게 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영상이) 곧바로 방송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기술 점검이 필요하다”며 “(시간은) 제법 지나지만 국민들이 영상을 직접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 전체 영상이 제공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아울러 국내 취재진에게 현장 소식을 알리는 과정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김일성경기장의 인터넷 연결이 열악해 현지에 파견된 축구협회 직원이 이메일로 기본적인 현장 정보를 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축구협회는 현장의 AFC 경기감독관을 통해 경기장 상황을 어렵게 듣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감독관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간접 통신이 가능하다. 이 감독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FC 본부에 현지 상황을 알리고, AFC 본부에서 현장 상황을 취합해 이를 축구협회에 다시 알리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1990년대에나 있을 법한 팩스 중계는 모면했지만 이렇게 구차하게 현장 상황을 전해 듣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의문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겨울왕국2’ 엘사와 안나, 새로운 모험 담긴 ‘메인 예고편 공개’

    ‘겨울왕국2’ 엘사와 안나, 새로운 모험 담긴 ‘메인 예고편 공개’

    11월 개봉을 앞둔 ‘겨울왕국 2’가 ‘엘사’와 ‘안나’의 새로운 모험이 담긴 메인 예고편을 공개해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겨울왕국 2’는 숨겨진 과거의 비밀과 새로운 운명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공개된 예고편은 평화로운 아렌델 왕국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엘사’, ‘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 그리고 ‘스벤’의 모습으로 시작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곧이어 ‘엘사’는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에 강하게 이끌리고, 이와 동시에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아렌델 왕국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에 트롤 ‘파비’는 ‘엘사’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이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마법의 땅을 지나 숨겨진 세상을 찾아가세요” 라는 조언을 건넨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은 채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엘사’와 ‘안나’ 앞에 거대한 안개에 휩싸였던 마법의 땅이 모습을 드러내고, “어딜 가든 정령이 나타날 거예요”라는 ‘파비’의 마지막 말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이들의 앞날에 대한 호기심을 고조시킨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함께 펼쳐지는 아름다운 마법의 땅은 더욱 거대해진 스케일과 황홀함을 선사하는 가운데, 전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물과 ‘엘사’와 ‘안나’ 일행 앞에 나타난 물, 불, 바람, 흙의 정령들의 등장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터클한 스토리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여기에 “아렌델을 구할 수 있는 건 언니뿐이야”라는 ‘안나’의 말과 함께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한껏 펼쳐내는 ‘엘사’의 모습은 자신의 힘을 두려워했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아렌델 왕국을 지키기 위해 나선 여왕 ‘엘사’의 강인한 모습으로 전율을 선사한다. 또한 “두려움을 깨고 새로운 운명을 만나다”라는 카피가 더해져 숨겨진 과거의 비밀과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 ‘엘사’와 ‘안나’의 경이로운 모험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끝으로 여전히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올라프’의 모습은 올겨울, 감동과 웃음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전 세계를 황홀한 마법의 세계로 이끌 ‘겨울왕국 2’를 더욱 기대케 한다. 메인 예고편을 공개하며 ‘엘사’와 ‘안나’의 새로운 모험에 대한 궁금증을 고조시키는 영화 ‘겨울왕국 2’는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토끼의 특별한 능력?…땅 속에 묻힌 폭탄 잇따라 발견

    토끼의 특별한 능력?…땅 속에 묻힌 폭탄 잇따라 발견

    이러다간 폭발물 찾는 데는 토끼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칠레의 한 가정집 정원에서 최근 토끼가 지하에 파묻혀 있던 폭탄을 찾아내 화제다. 칠레에서 토끼가 땅속에 묻힌 폭탄을 찾아낸 건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폭탄이 발견된 곳은 칠레 라스콘데스의 평범한 가정집이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토끼가 정원 밑에 파묻혀 있던 폭탄을 발견했다. 집주인은 "토끼가 땅을 판 곳에 무언가가 묻혀 있어 자세히 보니 꼭 미사일의 끝처럼 뾰족했다"며 "불안한 마음에 바로 경찰을 불렀다"고 말했다. 출동한 경찰이 살펴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폭발물처리반이 달려가 폭탄을 꺼내 처리했다. 발견된 폭탄은 지름 10cm, 길이 30cm로 5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폭발물처리반 관계자는 "반세기가 넘은 것이지만 발견된 당시 폭탄이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폭탄이 발견된 가정집은 1960년대 지어진 건물이다. 집주인은 "폭탄이 어떻게 주택의 정원 밑에 묻히게 됐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들도 이에 대해선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폭탄이 정원 밑에 있었다니 생각만 헤도 아찔하다"며 "폭탄을 찾아낸 토끼에게 상으로 상추를 마음껏 먹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라스콘데스에서 토끼가 땅속에 있는 폭탄을 찾아낸 건 올해 들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 4월 라스콘데스의 또 다른 단독주택에서 토끼가 정원 밑에 파묻혀 있는 대공미사일을 발견했다. 토끼의 주인은 "당시 토끼가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해 무심코 지켜보고 있었다"며 "15분쯤 열심히 땅을 파더니 폭탄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발견된 미사일은 길이 60cm로 표면엔 2군데 흠집이 있었다. 집주인은 "발견된 미사일을 8살 아들이 땅에서 꺼냈다"며 "처음엔 무언지 모르고 지켜보고만 있다가 폭탄인 걸 알고 폭발할까 기겁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2건의 사건에서 모두 출동한 폭발물처리대원 호아킨 라빈은 "토끼들이 폭탄을 찾아낸 걸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토끼들에게 폭탄을 찾아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비오비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여기는 인도] 깊이 90㎝ 땅속에 파묻히고도 목숨 부지한 신생아 사연

    [여기는 인도] 깊이 90㎝ 땅속에 파묻히고도 목숨 부지한 신생아 사연

    깊이 90㎝의 땅에 파묻히고도 목숨을 부지한 인도의 신생아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에 사는 부부는 배 속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 사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부부는 화장시킨 딸의 유해를 품에 안은 채 무덤을 파던 중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땅을 파던 인부의 삽과 땅에 파묻힌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깊이 90㎝ 지점의 땅에서 꺼내어 살펴보니 정체는 담요에 감싼 점토 화분이었다. 의아한 틈도 잠시, 현장에 있던 인부와 부부는 점토 화분 안에서 아기의 희미한 울음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화분 안을 들여다봤고 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화분 안에는 신생아가 옷에 칭칭 감싸인 채 울고 있었다. 부부는 곧장 아기를 병원으로 옮겼고 의료진의 응급처치가 시작됐다. 의료진에 따르면 조산아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몸무게는 고작 1.13㎏에 불과했으며, 산소 부족으로 폐 기능에 이상이 생긴 상황이었다. 신생아의 치료를 맡은 전문의는 “이 아기는 땅에 파묻혔을 때, 흙으로 만든 화분의 미세한 구멍 사이로 들어온 산소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라면서 “발견 당시 저체온 증상을 보였으며, 현재는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기의 혈소판 수치가 낮고 폐가 세균에 감염된 상태라 분유 등을 섭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신생아의 탯줄 상태 등으로 봤을 때 생후 3일 정도 됐을 때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기를 처음 발견한 부부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딸을 묻기 위해 무덤을 파던 중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고, 처음에는 딸이 되살아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면서 “땅에서 파 올린 화분에서 신생아를 보자마자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우리 부부는 이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하는대로 입양해 키울 예정이다. 세상을 떠난 우리 딸이 돌아온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경찰은 해당 사건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BBC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더비” 北 경기 뒤 영상 제공해 녹화 볼 듯

    BBC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더비” 北 경기 뒤 영상 제공해 녹화 볼 듯

    ‘세상에서 가장 낯선 축구 더비에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영국 BBC가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보낼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다. 15일 오후 5시 30분 평양의 김일성경기장 그라운드에서 킥오프하는 남북대결 예고 기사다. 휴전 중인 두 나라의 축구 대결인 데다 생중계도, 원정 응원단도, 남쪽과 외국 취재진도, 심지어 평양에 머무르는 외국인 팬도 입장하지 못한다. 방송은 “경기는 초저녁에 시작하지만, 이를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에 머무르는 외국 관광객들도 이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경기 영상 DVD를 우리 측 대표단 출발 전에 주겠다는 약속을 (북한으로부터) 확보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15일 경기를 마친 뒤 16일 오후 5시 20분쯤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을 경유한 뒤 17일 새벽 0시 45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대표단이 갖고 들어올 DVD 영상도 이때쯤 남한 땅에 도착하게 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영상이) 곧바로 방송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기술 점검이 필요하다”며 “(시간은) 제법 지나지만 국민들이 영상을 직접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경기 전체 영상이 제공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아울러 김일성경기장 내 기자센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경기장에서 남쪽으로 연락할 수단을 확보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 직원 2명이 등록인증(AD) 카드를 받아 경기장 기자센터에서 경기 소식을 남쪽에 전달할 예정이다. 1990년대에나 있을 법한 팩스 중계는 모면해 세계의 비웃음을 살 일은 모면한 셈인데 이를 잘 됐다고 웃어야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BBC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을 조명하며 경기를 둘러싼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전했다. 희망을 찾으려 애쓰기도 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함으로써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난 여름부터 남쪽이 제의하는 것들을 일절 거부함으로써 북한은 강력한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아브라미안 퍼시픽 포럼 선임 연구위원은 “긴장된 정치적 관계를 누그러뜨릴 교두보로 이번 대결을 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평양은 일년 내내 서울을 향해 차가운 등을 돌리지 않고 있으며 북미 대화가 돌파구를 찾지 않는 한 이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에서 북한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방적으로 남쪽 이 이겨왔다는 역사를 훑은 BBC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한국은 37위, 북한은 113위로 차이가 크다”며 “이번에도 한국이 유리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은 원정 팬이 한 명도 없는 홈 경기장에서 게임을 치러 홈 어드밴티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이 전날 저녁 7시 55분부터 같은 경기장에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 발언 내용도 축구협회 직원들이 경기장에서 국내로 연락할 방법이 없어 숙소인 고려호텔로 이동해 내용을 전송하느라 이날 오전에야 전달됐다. 벤투 감독은 “우리 스타일대로 승점 3을 획득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경기 전망에 대해 “북한은 투지가 돋보이는 팀이다. 과감하고 저돌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비를 하다가 역습할 때 과감하고 좋은 모습이 보였다. 두 팀 모두 승점 6으로 치열한 모습(골 득실 한국 10, 북한 3)이지만 우리는 우리 스타일대로 승점 3을 획득하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장 이용(전북)은 북한 대표팀에서 주의할 선수에 대해 “개인을 논하기보다 팀 자체가 투지가 좋고 파워풀한 선수가 많다고 생각한다. 준비를 잘하도록 하겠다”며 “특정 선수보다 모든 선수가 전체적으로 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대표팀 사령탑과 선수들의 발언은 우리 대표팀이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인 오후 4시 30분에 진행돼 공개되지 않았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현지에서 PC를 통한 카카오톡을 비롯해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이 연결되지 않아 이메일로 연락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전원주택/문소영 논설실장

    주말 도시농부로 16년쯤 지낸 선배가 ‘퇴직 후 내 땅에 농사를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4년 전쯤. 그 후로 2년 뒤쯤 선배가 땅을 샀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들었는데, 지난해 말에 집을 다 짓고 1월에 인테리어에 들어갔다고 했다. 도시농부들은 쬐깐한 땅 쪼가리를 땅 주인에게 빌려 10만~20만원대의 도조를 내고 1년 농사를 짓는데, 그 선배는 지난 3년간 2차례 땅 주인의 변덕에 연작을 못 하고 쫓겨났다. 그래서 5년 전에 심어 놓았던 더덕은 수확도 못 했다고 했다. 그 선배와 같은 해에 파종했던 내 더덕은 올 늦가을에 수확할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유기농법에 적합하게 만든 땅에서 자주 쫓겨나면, 농부는 빚을 내서라도 땅을 마련하겠다고 각오를 하게 되는데, 그게 그 선배였다. 경기도 서쪽의 집에서 지난 주말 2시간 40분이 걸려 경기도 동쪽의 전원주택 집들이에 갔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정남향으로 햇볕이 쏟아지고 전망이 훤한 데다, ‘폭풍의 언덕’ 같은 바람이 흐느끼듯이 쏟아지다가도 그 집 앞에서는 잦아들었다. 소위 명당인 거다. 경기도 서부의 아파트를 팔고 내 옆으로 이사 오라는 선배의 감언이설을 뒤로하며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병아리셈’을 하느라고 머리가 복잡했다.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생명공동체 만드는 열쇠로 남북 평화의 문 열어야”

    “생명공동체 만드는 열쇠로 남북 평화의 문 열어야”

    인상 쓰고 상대 미워하는 운동 오래 못가 내부 의견 불일치 땐 상대와 교섭 힘들어 트럼프·아베에게도 리더 역할 권고해야 “서초동 집회나 광화문 집회나 할 얘기 다 했으니 그만 하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얘기했다. ‘우리가 더 많이 모였네’ 다투는 건 애들 짓이나 다름없다.” 정성헌(75)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지난 10일 강원도 인제 서화리 민간인통제선 근처 평화생명동산을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 이사장은 11년째 평화 통일 교육과 생명 운동을 일구고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등이 후원하는 청소년 영상축제 진행 과정에서 만나 평화와 생명, 남북관계 등 다양한 화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정 이사장은 1977년부터 1995년까지 가톨릭농민회를 이끈 ‘진보 농사꾼’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장을 지냈고 협동조합 운동의 원조 격이다. 20년 가까이 남북강원도 교류협력위원회에서 일했고 2010~1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해 2월부터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좌우 모두와 대화가 통하는어른이란 평가가 있는데. “기분 좋게 운동하자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인상 쓰고 상대를 미워하는 운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평화생명동산이라 이름 지은 이유는. “다섯 살에 6·25를 경험해 전쟁은 싫다, 평화가 좋다는 것이 논리 이전에 의식 심층에 있다. 형제 이름을 ‘평’(平)과 ‘화’(和)로 지었다. 가톨릭농민회 때부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고민했다.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자’는 것이다. 남북 평화도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 -지금의 남북 및 북미 대화는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갑갑함을 많이 느낄 것 같다. “모순의 뿌리가 복잡해 착착 풀리지 않는다. 늘 길게 생각해야 하고 내부 평화에도 주력해야 한다. 내부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상대와 교섭할 때 힘이 따르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이들은 통합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배제의 정치를 하게 되니 더 심해진다. 2040년대 중반이 되면 화석연료가 바닥난다. 북한은 시간도 많지 않고, 산에 나무도 없지 않으냐고 얘기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근본을 얘기하는 게 좋다. 비무장지대(DMZ) 안의 경계초소(GP)를 없애면 기분은 좋지만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근본을 얘기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당신 임무는 지구를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며 그게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성심껏 만들 때 일본과 중국의 괜찮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된다. 아베의 허튼 생각도 말발이 덜 먹히게 된다. 과거사를 갖고 따지면,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어 싸움밖에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못 사는 동네에 원자폭탄이 있으면 뭐하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었는데 기후 이탈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김정은과 아베에게 얘기해야 한다.” -밥을 먹는 입이나 말하는 입이나 한 가지란 발언은 절묘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이 하나란 것이다. 조국 근대화를 얘기하면 ‘촌놈’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 사진 인제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피해자 집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 담장 못 넘자 경찰 각본대로 시늉만”

    “피해자 집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 담장 못 넘자 경찰 각본대로 시늉만”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분류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거듭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윤씨는 14일 충북 청주에서 서울신문 등을 만나 “고문 없이 5시간 만에 자백했다는 당시 수사 경찰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너 하나쯤 죽이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니고, 범행을 부인하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겁을 줘 허위 자백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30년 전 악몽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윤씨는 “1989년 7월 집에서 가족,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데 형사 5~6명이 찾아왔다”며 “잠깐 조사할 게 있다며 나를 데려간 뒤 3일 동안 재우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이어 “검거되기 전 최모 형사가 찾아와 체모를 뽑아 줬는데, 체모를 잃어버렸다고 해 5번 정도 더 뽑아 줬다”며 “이후 체모가 현장에서 나왔다며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현장은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현장검증은 경찰이 써 준 대로 했던 것 같다”며 “소아마비로 불편한 내 다리를 이끌고 1m 70㎝ 정도의 담을 훌쩍 넘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씨는 현장검증 때 경찰이 땅에 쌓아 준 벽돌을 밟고 담을 넘어가는 시늉만 했다고 한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읽어 보지도 못하고 지장을 찍었다. 윤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국선변호사가 붙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변호사 얼굴 본 게 1, 2심 모두 선고공판 법정이 유일했다. 윤씨는 “교도관 등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뒤집을 증거가 없어 재심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종교의 힘으로 버텼다”며 “언론과 국민들이 도와줘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윤씨는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과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무죄로 이끈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잠자던 박모(당시 13세)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7월 검거됐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 복역하다 감형을 받아 2009년 8월 가석방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2@seoul.co.kr
  •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3] 좌파 농사꾼 정성헌 “두 아들 이름이 평과 화”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3] 좌파 농사꾼 정성헌 “두 아들 이름이 평과 화”

    “싸움은 조금 말린다. 서초동 집회나 광화문 집회나 할 얘기 다 했으니 그만 하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얘기했다. ‘우리가 더 많이 모였네’ 다투는 건 애들 짓이다.” 정성헌(75)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지난 10일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 근처 서화리의 평화생명동산을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 이사장은 11년째 평화통일 교육과 생명 운동을 일구고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등이 후원하는 청소년 영상축제가 진행됐는데 미리 만나 하 수상한 시절 얘기를 나눴다. 정 회장은 1964년 강원 춘천고를 나와 196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부터 1995년까지 카톨릭농민회를 이끈 ‘좌파 농사꾼’이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장도 지냈고 협동조합 운동의 원조 격이다. 20년 가까이 남북강원도교류협력위원회에서 일했고 2010~1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해 2월부터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이끌고 있다. 그와 함께 동산을 돌아보는데 금강산 방향으로 두 대의 탱크 ‘평화’와 ‘통일’의 포신이 뻗어 있는데 들꽃들이 꽂혀 있었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에 유익한 식물들을 심은 정원도 눈길을 끌었다. 용기가 참 대단하다고 말했더니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재미있게 해내면 된다”는 소신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1964년 6·3시위 때부터 한결같이 운동에 매진했고 지금도 좌우 어느 쪽으로든 대화가 되는 몇 안되는 어른이란 평가를 듣는데. → 기분 좋게 운동하자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인상 쓰고 상대를 미워하는 운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 -평화생명동산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다섯 살에 6·25를 경험해 전쟁은 싫다, 평화가 좋다는 것이 논리 이전에 의식의 심층에 있다. 형제 이름을 외자로 ‘평’과 ‘화’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카톨릭 농민회 회원인데 카농 활동은 유신이나 전두환 정권을 상대로 민주화 투쟁과도 연결됐지만 그보다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느냐를 더 고민했다. 자연과의 공존이 최고의 평화다. 평화와 생명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절실한 것을 앞에 놓자는 뜻에서 한국전쟁 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을 ‘평화생명동산’이라고 이름지었다. 하지만 기조는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자’는 것이다. 남북 평화도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 군사적 얘기로 시작하면 군사적 얘기로 끝난다. 인간과 뭇생명이 어울려 사는 터전을 만들 수 있느냐로 대화의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보면 갑갑함을 많이 느낄 것 같다. → 모순의 뿌리가 복잡해 착착 풀리지 않는다. 늘 길게 생각하고 내부 평화에도 주력해야 한다. 내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교섭할 때 힘이 따르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이들은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배제의 정치를 하게 되니 더 심해진다. 그런 점이 아쉬울 뿐이다. 외국과는 이익을 놓고 얘기하면 되고 타협할 수밖에 없고, 군사적 얘기만 하면 사정하게 된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화석연료가 바닥나면 생명이 깃들 수가 없다. 너희 북한은 시간도 많지 않고, 산에 나무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해야 한다. 대개 군사적 힘의 관계나 논리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국제적 관계나 논리를 뛰어넘지 못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걸려도 근본을 얘기해야 한다. 바탕을 얘기하지 않고 DMZ 안의 GP를 없애면 기분은 좋지만 나중에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얘기해야 한다. -말씀대로라면 대화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겠다. → 그러면서도 패권 질서의 향방을 잘 봐야 한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당신의 임무는 이 지구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게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에게 그런 말이 먹히겠느냐고 회의하지 말고 그래도 해야 한다. 트럼프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 더 망가뜨리는 것이다. 한반도 생명공동체를 성심성의껏 추구할 때 일본과 중국의 괜찮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된다. 아베의 턱도 없는 소리가 말발이 덜 먹히게 된다. 과거사를 갖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어 싸움밖에 안 벌어진다. 아무도 못 사는 동네에 원자폭탄이 있으면 뭐하고, 개헌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었는데 기후 이탈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 김정은과 아베에게 얘기해야 한다. 2040년 중반에 한창 때가 되는 청소년들이 이산화탄소를 줄이자고 학교 파업을 하고 있다. 2030년대로 예상되는 기후이탈을 늦추거나 완화시키려면 지금이라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제정신 가진 이들은 10여년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감수성 민감한 유럽 아이들이 학교 파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 태어난 이들이 스무살이 됐을 때 좋은 환경에서 숨쉬게 하는 게 민족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밥을 먹는 입이나 말하는 입이나 한 가지란 지론은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이 매한가지란 것이다. 누구나 들어가는 밥은 신경 쓰는데 나가는 것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가는 것도 신경써야 한다. 둘 다 중요하다. 조국 근대화를 얘기하면 ‘촌놈’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온전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다 달라고 한다. 그게 진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나. 주인은 잘못된 것은 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계속 달라고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줄 때도 있어야 하고 작은 잘못은 덮어줄 수 있다. 그런게 주인이다. 가치나 생활습관, 제도가 민주주의인데 온전하지 않다. 부부 간에도 자기 주장만 하면서 살 수 없다. 남북 문제를 놓고도 투명성을 앞세워 다 밝히자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그런다. 밝히지 말아야 할 일도 있는 법이라고,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 지난해 2월 28일 22%가 거부하는 가운데 취임했다. 110일 동안 3000여명과 얘기를 했고, 들어도 봤다.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70% 정도 됐다. 날 따르라고 한 건 아니다. 현장 조직을 돌아보며 의견을 나눴더니 합의도가 80%로 올라갔다. 오래된 조직이어서 관성과 타성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는데 스스로 바꾸는게 가장 확실하다. 힘에 의해 바뀌면 안된다. 용어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껍데기를 바꾸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더 안되는 이유는 난 옳고 넌 틀리다고 마음먹고 말로만 그래서다. 치유나 개량을 할 수도 있다. 개혁이란 단어에 다 집어넣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과 압축 민주주의를 했으니 건강한 몸으로 바꾸자, 함께 하자는 뜻에서 치유라고 하는 게 옳다. 개량도 많이 해서 개혁보다 나은 성과가 축적되면 그만이지 않은가. 땅을 구해서 ‘나눔의 과수원’ 광고를 한다. 5000원 이상 내면 묘목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구나 따서 드세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 다섯 개 더 따가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와 나의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마을운동회에서도 올해 몇십 군데 만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평화운동이라고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고 아름다운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 진짜 운동이다. 인제 글·사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바일스 세계선수권 통산 25개 메달(19개 金), 셰르보 넘어서다

    바일스 세계선수권 통산 25개 메달(19개 金), 셰르보 넘어서다

    체조 일인자 시몬 바일스(22·미국)가 13일(현지시간)에만 금메달 둘을 더해 세계선수권 사상 가장 많은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됐다. 바일스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이어진 국제체조연맹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 평균대 결선에서 15.066이란 압도적인 점수를 얻어내 이번 대회 네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어 개인 통산 대회 24번째 메달이자 18번째 금메달을 땄다. 이로써 옛 소련과 1990년대 독립국가연합(CIS)과 벨라루스 남자 대표로 활약했던 비탈리 셰르보를 제치고 역대 대회 최다 메달 기록을 경신했다. 리우팅팅과 리시지아(이상 중국)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 개인종합, 도마 우승을 휩쓴 바일스는 이어 마루 결선에서는 역시 15.133이란 놀랄 만한 점수를 따내 14.133에 그친 미국의 떠오르는 샛별 수니사 리(16)를 은메달로, 안젤리나 멜니코바(러시아)를 동메달로 밀어내고 결국 대회 5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이번 대회 이단평행봉 한 종목에서만 데르와엘 니나(벨기에)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5위에 그쳤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 넷과 동메달 하나를 땄던 바일스는 이로써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메달을 합쳐 30개를 채웠다. 이제 이 기록에서는 스체르보에 3개만 모자란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바일스는 주 종목인 평균대와 마루운동 신기술로 이번 대회 예선의 막을 화려하게 올렸다. 그가 마치 농구 용어 같은 더블-더블(평균대), 트리플-더블(마루운동) 기술을 새로 선보이자 체조 팬들은 경탄했다. 더블-더블은 높이 125㎝, 길이 5m, 폭 10㎝의 평균대 위에서 여러 기술 과제를 수행한 뒤 마지막 바닥에 착지할 때 두 번 뒤로 돌아 두 번 몸을 비튼 뒤 내리는 동작이다. 웬만한 탄력과 근력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바일스만의 기술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 ‘바일스’로 명명된 이 기술의 난도는 ‘H’로 바일스의 기대에 못 미쳤다. A부터 시작하는 난도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0.1점씩 높아진다. 현존 최고 난도는 I로 바일스와 미국체조협회는 이를 넘어서는 J난도 공인을 바랐지만, FIG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FIG는 바일스만이 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에서 다른 선수들을 보호하고자 난도를 일부러 낮췄다. 트리플-더블은 마루운동에서 뒤로 땅 짚고 두 번 돈 뒤 세 번 몸을 비틀어 내리는 동작이다. 북한의 체조 영웅 리정성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시연했으며 남자 선수들도 이 기술을 할 줄 아는 선수가 거의 없다. 키 142㎝, 몸무게 47㎏의 바일스는 로랑 랜디 코치의 지도로 이 기술을 부단히 연습해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성공한 여자 선수가 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여자 마루운동에서 뒤로 땅 짚고 두 번 도는 기술은 1970년대 초에 등장했고, 1978년 구소련의 엘레나 무키나가 두 번 돈 뒤 한 번 몸을 비트는 기술을 추가했다. 공중에서 두 번 몸을 비트는 기술은 1988년 루마니아의 다니엘라 실리바스가 완성했다. 이 기술은 여전히 여자 선수들에게 가장 고난도 동작이다. 바일스는 이마저 넘었다. 두 신기술을 결선 마지막 동작으로 끝내고 바일스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마루운동 2개, 도마와 평균대 1개씩 등 모두 4개의 독자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이면서 예술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In&Out]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김철홍 교수노조 국공립대 위원장

    [In&Out] 위험의 외주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김철홍 교수노조 국공립대 위원장

    성장주의와 양극화에 가려져 일 년에 2000명 이상, 하루 평균 6~7명이 일하다가 사망. 매년 10만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일 때문에 산업재해의 고통을 당하는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의 아픈 자화상이다. 2017년 기준 산재 사망자의 81.8%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일용직·비정규직의 산재 발생률이 정규직의 1.5~6.4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에서 보듯 대부분의 산재 사망자가 외주·하청·비정규직 등 이른바 소외 노동자다. 삶의 차별을 넘어 죽음조차 차별받는 이 땅의 실상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라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 행위가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무차별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타협과 계약,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노동시장 기본원리가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은 물론 살인적 노동강도의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은 대부분 하청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신분이 불안정하고, 임금도 적으니 위험하고 힘든 일은 너희들이 하라는 카스트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 세계 10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산재 사망자가 발생해도 불과 몇 백만원의 과태료만 부과되는 등 기업에는 더없이 관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산재 예방에는 제도적, 기술적, 교육적인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산재 발생에 따른 손실과 처벌보다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가 더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 명확하도록 엄격한 법의 개정과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돈을 좇는 기업은 투자와 처벌, 어느 쪽이 더 이익인지 기막히게 판단할 것이다. 산재 사망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인식은 선진 산업국가의 보편적인 상식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 노동자와 안전보건 전문가가 노동자 생명 보장을 위해 머리를 맞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경영계의 우려와 고충 해소라는 명분으로 누더기가 됐다. 이로도 모자라 정부는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추가 개악을 추진 중이다. 산업현장은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산재 예방에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예방 주체인 노동자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는 산안법 전면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살인기업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화학물질 취급 노동자와 공장 주변 주민 등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산재 예방 감시를 위해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대통령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정권에서조차 노동자 삶의 보장은 물론 생명의 보장이 외면받는다면 절망감은 분노로 바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자본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다.
  • 중학생부터 새터민 여대생까지…“하나된 미래 꿈꿔요”

    중학생부터 새터민 여대생까지…“하나된 미래 꿈꿔요”

    11개 대학 19명 캠프 그리브스 등 견학 토론·기사 작성 등 다양한 강의 이어져 “북한·통일을 직접 느껴 본 유익한 시간”대학 매체 기자들을 비롯한 대학생들이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곳을 찾아 하나되는 미래를 꿈꿨다. 통일교육협의회(상임의장 송광석)가 지난 11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진행한 ‘제1회 전국 대학생 기자단 평화현장 취재 및 통일 기사 경진대회’에서다. 통일부 통일교육원과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후원했다. 11개 대학 19명의 대학생 등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는 특히 새터민 여대생은 물론 참여를 간청했던 중학생까지 합류해 열기를 뜨겁게 했다. 첫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아 북한 땅을 직접 조망한 대학생들은 지난해 임진각에 문을 연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들러 분단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이어 통일대교를 넘어 민간인 통제선 안에 위치한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에서 1박을 했다. 학생들은 황성기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소장의 특강 ‘통일을 위한 언론과 우리의 역할’과 이윤기 한림성심대 겸임교수의 심리학 강의를 들은 뒤 6~7명씩 조를 나눠 평화연구소 소속 현직 기자들로부터 기사 작성 교육을 받고,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12일에는 2시간에 걸쳐 캠프 그리브스 탄약고와 막사 등에 설치된 작가들의 작품과 정전협정 협상 과정을 감독하는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참여했던 폴란드와 체코 막사 등을 둘러봤다. 특히 폴란드군이 쓰던 막사에서는 북녘의 전쟁고아 1500명이 1951년부터 1959년까지 폴란드에서 지내다가 상황이 안정된 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던 역사의 뒷얘기를 담은 사진들을 관람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새터민 이보람(가명 22·숙명여대 1학년)씨는 “오두산과 임진각은 여러 차례 와 봤는데 캠프 그리브스는 처음이다. 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현직 기자들로부터 기사를 어떻게 작성하고 읽어야 하는지 강의를 듣고 생각하게 된 것이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예린(16·인천 관교여중 3학년)양은 “지난해 우연히 통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통일에 관심이 생겼다. 북한과 통일을 더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며 “장래희망을 기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행사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기사로 작성해 오는 27일까지 통일교육협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평화연구소가 심사, 다음달 13일 서울신문사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 글 사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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