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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해변의 파도가 지난 흔적을 지운다…허무한 삶, 살 만하다

    여기, 해변의 파도가 지난 흔적을 지운다…허무한 삶, 살 만하다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루 리마에서 북으로 10㎞ 떨어져 있는 해안. 자크 레니에는 해안에서 먼 바다의 섬에서 살다가 이 해안으로 찾아와 죽는 새들을 보고 있던 중 죽어 가는 새들 사이에서 한 여인을 발견한다. 그 여인은 파도가 높은데도 계속 암초 쪽으로 걸어간다. 아마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듯하다. 자크는 해안으로 달려가 파도에 휩쓸리려는 그녀를 구해내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로 데리고 온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레니에는 잠깐이나마 그녀와 교감을 나누는데 곧 그녀의 남편과 비서가 카페를 찾아와 그녀를 데리고 떠난다. 줄거리로는 이야기가 잘 가늠되지 않는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1964년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동명 영화를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진 세버그를 주인공으로 해 1968년 개봉했다.?이 작품은 젊은 시절 레지스탕스와 혁명을 비롯한 거대한 이상을 위해 복무하던 한 남자가 4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페루 리마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자크는 이렇게 말한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 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마흔일곱.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 버린 나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 리마의 바다는 아니 세상의 모든 바다는 여행자들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수평선 너머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의 말대로 인생은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이 사라지듯 곧 지워지는 허무한 것이고, 그래서 허무한 인생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무대가 된 해변은 미라플로레스 해변이다. 로맹 가리의 팬들이 죽은 새들을 ‘기대’하고 해변으로 가지만 죽은 새들은 없다. 대신 서퍼들이 많다. 세계에서 서핑하기 좋은 3대 해변 중 한 곳으로 일년 내내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길 수 있다. 로맹 가리는 독특한 소설가다. 1914년 러시아에서 유대계로 태어나, 14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니스에 정착한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군인, 외교관, 대변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는데, 2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명성을 얻었고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공쿠르상 수상에 대해 프랑스 문단과 정계는 그를 혹독하게 평가했고 이후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대아첨꾼’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당시 프랑스 문단은 이 새로운 작가에 열광했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한 그는 한 사람이 한 번만 수상할 있다는 공쿠르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게 된다. 원래 공쿠르상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것을 규정으로 하고 있는데,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그가 남긴 유서에 의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평단에 일대 파문이 일기도 했다.●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 리마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 허무한 인생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닐까. 페루 리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여행지다. 매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리스트에는 페루의 레스토랑들이 단골로 오른다. ‘센트럴’,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 ‘마이도’ 등은 미식가들이 한 번은 가보기를 원하는 곳이다. 페루 요리가 이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풍부한 원자재를 꼽을 수 있다. 페루는 서쪽으로 자리한 태평양과 북쪽을 따라 흐르는 아마존, 지역마다 위치한 거대한 호수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다. 아마존강을 따라 형성된 거대한 열대우림에서 나오는 진귀한 과일과 아열대 식재료, 안데스산맥의 다양한 기후대에서 생산되는 농수축산물은 페루 음식을 한층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여러 문화의 융합이 더해졌다. 페루 고유의 역사에 스페인, 이탈리아, 아프리카가 더해졌고 중국과 일본의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식문화 또한 가미됐다. 페루 음식은 풍부한 식재료와 문화의 교류가 만들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미라 플로레스에 자리한 ‘센트럴’은 페루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곳이다. 페루 전통요리를 재해석해 세계 여러 나라의 요리 스타일을 가미한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인다.리마 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수르키요 시장은 리마의 모든 식자재들이 모이는 곳. 시장 골목 구석구석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온갖 종류의 과일과 채소, 향신료와 생선 등은 이곳이 왜 ‘리마의 부엌’으로도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시장 사이를 돌아다니다 한쪽에 자리한 허름한 식당에서 우리 돈으로 3500원짜리 세비체를 맛보았다. 신선한 생선회에 레몬과 라임즙을 잔뜩 뿌려 내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페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페루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세비체의 DNA가 박혔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세상 끝에서 시작된 신들의 세상●남미 여행의 정점, 공중도시 ‘마추픽추’ 페루까지 가서 마추픽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페루, 아니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이자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꼭대기에 세워진 공중도시. 여행자들은 이 불가사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입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기를 10분. 마침내 우리가 잡지나 신문에서 익숙하게 보아 왔던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은 똑같았지만 직접 마주하는 그 감흥은 비할 바가 아니다. 몸에 전율이 일고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수한 화강암 석축들과 건축물,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공중도시 앞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마추픽추는 페루 남부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유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돼 있다. 안데스산맥의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의 고대 도시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대륙을 지배했던 잉카족들이 살았다. 잉카제국 멸망 후 400년 동안 숨어 있다가 1911년 미국 고고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였던 하이럼 빙엄이 발견하면서 존재를 드러냈다.당시 산꼭대기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는 말을 주민에게 들은 빙엄은 11살 꼬마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가 이 신비로운 고대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빙엄이 발견했을 때 도시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마추픽추는 오랜 세월 동안 복원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70% 여전히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발견 당시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돌벽 사이 창문이 해시계로 ‘태양의 신전’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태양의 신전이다. 반원형 건물인데 신전 돌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 정확하게 남쪽과 북쪽을 향해 나 있는데, 동지와 하지 때면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위엔 거대한 돌을 길쭉하게 깎아 만든 석조물이 보이는데, ‘태양을 잇는 기둥’이란 뜻의 인티파타나다. 해시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추픽추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였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없는 까닭에 마추픽추에 대한 모든 설명은 ‘추정’할 뿐이다. 가아드마다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험한 곳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을까.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인정받고 있는 설은 잉카 제국의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가 세운 여름 별장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왕으로 전쟁을 통해 잉카 왕국의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13세기 초에 시작한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1533년까지 안데스를 중심으로 융성한 문명을 펼쳤는데, 그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바로 파차쿠티다. 북쪽 해안의 치무와 서쪽의 창카, 정글의 강자 안티 등을 거푸 정복한 파차쿠티는 마침내 1438년 잉카 제국을 건설하는데, 수많은 노예를 전리품으로 거둔 그는 이들을 데려다 마추픽추를 짓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1450년부터 1540년까지, 90년 동안 도시를 만들었다. 여름 별장을 마추픽추로 정한 건 ‘땅과 하늘의 정기를 함께 받을 수 있는 곳’인 데다 쿠스코의 추운 6~7월 날씨에 견줘 한결 따뜻하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잉카와 스페인이 어우러진 도시, 쿠스코마추픽추에 닿기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는데, 출발점이 되는 도시가 쿠스코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잉카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곳이다. 원주민들이 쓰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중심)’이란 뜻이다. 당시 잉카 제국은 페루를 비롯해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를 차지했던 대제국이었다. 쿠스코 인구만 100만명이었다. 현재 인구가 1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와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쿠스코가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한 후 도시는 잉카 문명에 스페인풍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한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는 그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채색돼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넓게 베란다를 내고 스페인 특유의 주황색 지붕을 얹은 원색의 이층집 사이를 전통 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이 걸어다니는 풍경은 쿠스코 아니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성당과 교회, 수도원 등도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을 파괴해 그 위에 그들의 건물을 지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산토도밍고 성당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태양의 신전)를 약탈한 뒤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 때문에 성당 안에 신전 건물 일부가 남아 있다. 1650년과 1950년 쿠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산토도밍고 성당이 붕괴됐는데, 그때 코리칸차가 존재를 드러냈다. 무너진 스페인식 건물 아래 잉카의 거대한 돌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대지진에도 뒤틀림 하나 없었던 ‘12각돌’마추픽추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다. 돌들을 면도날로 잘라 내듯 정교하게 다듬어 각을 맞추고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다. 이 신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12각돌’이다. 쿠스코 광장 뒤편 골목에 자리한 ‘12각돌’은 고대 석조 기술의 절정을 보여 준다. 크기도 모양도 일정치 않은 돌들이 주변의 돌과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벽을 이룬 광경은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1950년 발생한 쿠스코 대지진에도 이 벽은 약간의 뒤틀림조차 없었다고 한다. 반면 스페인 침략 후 지어진 건물 대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소설가 김인숙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대한 독후감을 이렇게 남겼다. “날갯짓을 멈춘 새는 세상의 끝이고, 그 끝에서도 버리지 못한 희망이고, 그 희망의 끝에서 뱉어지는 모욕과 경멸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끝의, 생의 비리고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라니. 로맹 가리를 쫓아가다 보면 나는 늘 페루에 있다. 새들이 그곳에 와서 죽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이유와 같다. 차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러나 바로 그것인, 내 삶의 단 한 가지의 이유.” 안개 가득한 리마의 해변과 옛 제국의 번성이 사라진 도시 마추픽추와 쿠스코 앞에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쇠퇴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사랑과 여행일 것이라고. ■ 여행수첩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다. 미국 댈러스나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데,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리마까지 갈 수 있다. 리마에서 마추픽추까지는 비행기로 쿠스코까지 간 후 미니밴, 기차, 버스를 차례로 이용해야 한다. 쿠스코 주변 여행지로는 모라이 유적지가 있다. 해발 3600m에 자리한 거대한 계단식 농작지로 이곳은 옛 잉카인의 농업연구소였다. 층에 따라 15도의 기온 차이가 나는데, 이 온도차를 이용해 작물 재배 실험을 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는 옥수수 등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는 농작물을 재배했고, 가장 높은 곳에서는 추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 등을 재배했다.?932년 미국 탐험가 로버트 시피와 조지 존슨이 항공 촬영 중 발견했다. 인근에는 해발 3400m 계곡에 만들어진 마라스 염전이 자리한다. 암염 성분이 섞인 샘물을 계단식 염전에 받아 소금을 만들고 있다. 1500년 전부터 염전으로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도 옛 방식 그대로 월평균(4~10월) 300t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다랑논처럼 계곡에 펼쳐진 염전이 장관을 이룬다.
  • [길섶에서] 출근길, 늘 파리가 그립다/이지운 논설위원

    파리의 지하철, 열차도 이동통로도 좁고 답답해도 아기자기한 맛이 특별하다. 백미는 열차 내 멘트다. 내릴 역 이름만 딱 두 번 불러주는 노선도 있다. 그 끝을 한 번은 살짝 올리고 한 번은 내리는 식이다. 그 외 다른 안내는 없다. 땅 밑도 예술이다. 1호선 지하철 남영역~서울역 구간. 열차 문이 닫히고 10초쯤 지나면 시작된다. “다음 역은 서울역, 서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당연한 안내가 끝나자마자 “띵동, 서울교통공사를 이용해 주신 고객여러분께 감사드리며~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잠시 후 전력공급 방식 변경으로~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에 20여초가 지난다. 10여초 뒤 흥겨운 음악소리. “이번 역은~ 내리실 문은~” 한 번 더 반복되고 “당고개, 사당, 오이도 방면~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공항철도를 이용하실~ 내리시기 바랍니다”가 나온다. 이어지는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 뒤이어 “이 역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와 영어 한 번 더. 출근길 상습 정체 구간, “열차간격 조정으로~” 멘트까지 나오면, 3분은 숨차다. “친절한 방송은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에게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견뎌내곤 한다. 그럴수록, 몇 번 타 보지도 않은 파리의 그 노선이 더욱 그립다. 출근길마다. jj@seoul.co.kr
  • “농사 안 짓고도 청년이 살 수 있는 농촌 만들 겁니다”

    “농사 안 짓고도 청년이 살 수 있는 농촌 만들 겁니다”

    서울서 영어강사·기자 관두고 홍성 귀촌 농가 주택서 출판·기획·콘텐츠 제작 창업 “농촌의 성장 돕는 선순환 시도 많았으면” “서울에선 꽤 잘나가는 영어강사였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 내 삶에 쉼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죠. 서울 생활을 정리한 뒤 2015년 9월에 백팩 하나 메고 홍성으로 내려왔어요.”(서혜림·39) “‘농사지으면서 기자 하실 분 구합니다.’ 귀농 운동본부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보고선 귀촌을 결심했어요. 서울에서도 기자를 했는데, 홍성에서 좀더 사람 사는 냄새 나는 글을 써 보고 싶었죠. 마침 배우자도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해 2010년 홍성에 터를 잡았습니다.”(정명진·38) 7일 충남 홍성에서 만난 두 사람은 농촌 청년 미디어기업 ‘로컬스토리’의 공동 창업자다. 서울 생활을 접고 홍성으로 귀촌해 농가 주택에 살며 행사 기획, 출판, 마을 콘텐츠 제작 등 미디어와 관련한 모든 일을 한다. 농촌 지역에 청년이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이 기업의 창업 가치이자 두 사람의 꿈이다. 명진씨는 귀촌한 뒤 한동안 홍성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혜림씨를 만났다. 그는 “지역에도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아무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며 “혜림씨와 길자라는 친구를 만나 미디어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도시도 아닌 농촌에서 갓 창업한 청년들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한 달에 20만원을 받는 달도, 80만원을 받아 가는 달도 있었다고 혜림씨는 말했다. 혜림씨는 “처음 200만원짜리 일을 받고선 감동해 다 같이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셋이서 마을의 빈집을 빌려 시작한 회사는 귀촌한 청년들과 귀촌 1.5세대(부모가 귀촌) 청년 9명이 운영하는 어엿한 회사가 됐다. 명진씨는 “청년들은 귀촌하려고 해도 먹고살 방법이 없다”며 “로컬스토리가 처음 만든 영상도 농사는 짓지 않지만 농촌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귀촌 초기 두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혜림씨는 로컬스토리를 시작하기 전 홍성에서 처음으로 농장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는 청년 농민의 꿈을 접었다. 일이 익숙지 않은 탓에 자주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간 날도 있었다. 혜림씨는 귀촌을 결심하기 전에 먼저 일자리를 찾길 권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내려오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했다. 로컬스토리 직원 중에는 ‘귀촌하고 싶은데 로컬스토리에 취업할 수 있느냐’고 묻고 홍성으로 내려온 이도 있다고 한다. 명진씨는 “청년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농사를 잘하기도 어렵다”면서 “그런 청년들도 농촌에서 살아남고, 성장한 청년이 다시 지역을 돕는 생태계 선순환이 되도록 많은 시도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성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 유전학으로 밝혀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전학으로 밝혀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Omnes viae Romam ducunt.”(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기원전 8세기 무렵 라틴인이 세운 도시국가인 로마는 급속하게 영토를 확대해 5현제 중 하나인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했던 117년 무렵에는 지중해를 에워싸는 대제국을 완성했다. 제국을 세우는데 큰 기여를 한 로마군대는 중장보병이 중심을 이뤘기 때문에 점령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때문에 공병대를 중심으로 로마의 토목기술이 급속히 발전했다.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는 대명제 하에 공병대는 1~2m 정도 땅을 판 뒤 위에 모래를 깔고 다진 뒤 30㎝ 정도 자갈을 깔고 그 위에 돌, 다시 자갈을 깐 뒤 시멘트와 같은 것으로 덮었다. 그 위에 다시 자갈과 모래를 깔고 제일 위쪽에는 크고 평평한 돌을 까는 것으로 도로를 완성했다. 이 도로는 3세기 말 기준으로 총 길이 8만 5000㎞였는데 포로로마노 같은 곳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이런 도로를 통해 지중해 주변과 멀리 브리타니아(영국), 게르마니아(독일), 사하라사막,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제국 전체로 물자와 사람이 오갔다. 그런데 고고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단순히 길 뿐만 아니라 지중해와 유럽 전체의 유전자도 로마로 들고난 것으로 확인됐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모든 길과 DNA가 로마로 통했던 셈이다. 미국 스탠포드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이탈리아 문화재·활동부, 로마 사피엔자대, 토리노대, 피사대, 사사리 누오로주(州) 고고학·미술·조경부, 로마시 문화유산부, 로마 제3대학, 포지아대, 아일랜드 더블린칼리지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포르투갈 코임브라대, 프랑스 엑스마르세이유대, 바티칸시국 그리스로마 유물부 등 7개국 28개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고대 많은 유럽의 유전적 혈통들이 당시 로마 제국과 연결돼 있었으며 현재 유럽과 지중해 일대 인구의 유전적 변화 패턴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8일 밝혔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8일자에 실렸다.1세기를 전후해 고대 로마는 지중해 전역과 현재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영토를 갖고 있는 인구 7000만명의 제국 수도였다. ‘팍스 로마나’ 시대에는 로마에만 100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정도의 도시 인구는 1500년 이후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유럽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당시 로마인들의 유전학적 구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연구팀은 로마 제국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로마는 유럽과 지중해 사이의 중요한 문화적, 상업적 교차로였다는 점에 착안해 로마를 중심으로 주변 29개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 1만 2000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127개의 인간 게놈을 추출해 분석했다.그 결과 선사시대에 크게 두 번의 로마인의 유전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선 약 1만 2000년~6000년 전까지 로마인들의 유전자는 서유럽의 수렵채집인들과 유사성을 가졌다. 그런데 6000~35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농업중심 경제가 만들어지면서 소(小)아시아라고 불렸던 현재 터키반도 일대에 살았던 아나톨리아인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에 살았던 이란인 농부들이 유입됐으며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지중해 전역에서 온 사람들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유전적 교합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기원전 753년 로마가 건국됐을 당시에는 이처럼 근동지역과 서유럽 혈통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후 제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근동,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역에 사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섞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나단 프리차드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유전학·진화생물학)는 “이번 연구는 지난 1만 2000년 동안 로마와 이탈리아 중부의 유전학적 역사를 개괄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며 “중부 이탈리아의 유전적 다양성은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고 있으며 유럽과 지중해의 유전적 교두보,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모든 유전자는 로마로 통한다’라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마라도나 “죽기 전 모든 재산, 자식들 아닌 사회에 기부할 것”

    마라도나 “죽기 전 모든 재산, 자식들 아닌 사회에 기부할 것”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59)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다. 6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라도나는 최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영상에서 "딸 지아닌나를 상속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라도나는 "죽기 전에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아닌나는 마라도나와 지금은 헤어진 첫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다. 지아닌나는 최근 아버지 마라도나와 불화를 빚었다. 큰딸 달마는 이미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지 오래다. 마라도나는 달마에게도 상속권을 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딸이 졸지에 상속권을 잃으면서 관심은 마라도나의 재산에 쏠리고 있다. '돈 찍어내는 기계'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마라도나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만 주택만 4채를 갖고 있다. 멕시코에서 지도자 생활을 접고 아르헨티나로 귀국하면서 노르델타에 구입한 주택,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2채, 베야 비스타에 보유한 주택 등이 그가 보유한 부동산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그가 보유한 자동차도 4대다. 하지만 그가 아르헨티나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푼돈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불과 몇 시간 땅을 밟은 벨라루스에도 투자를 했다"면서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긴 힘들지만 전 세계 곳곳에 그의 재산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보도했다. 한때 두바이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마라도나는 러시아월드컵 전 두바이를 떠나면서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BMW i8 등 고급 승용차 2대를 그대로 두고 왔다. 현지 언론은 "자동차 2대 가격만 50만 유로(약 6억4000만원)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원한 측근은 "두바이에 마라도나가 상당한 투자를 했다"면서 "아마도 두바이 재산만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도 엄청난 것으로 추정된다. 마라도나는 감독으로 취임한 클럽 힘나시아 라플라타에서 급여를 받고 있다. 코나미, 중국의 '마라도나 축구스쿨' 등과도 계약을 맺고 소득을 올리고 있다. 쿠바에는 호텔을 운영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모 기업가와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축구선수로서는 은퇴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가족 간에 그의 재산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여기는 베트남] 英 ‘트럭참사’ 베트남 청년들, 고가 ‘VIP 패키지’였는데…

    [여기는 베트남] 英 ‘트럭참사’ 베트남 청년들, 고가 ‘VIP 패키지’였는데…

    “아들을 편안한 4인용 승용차에 태워 영국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하지만 아들은 안락한 승용차가 아닌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1일 냉동 화물트럭에서 발견된 39구의 시신이 전원 베트남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이들의 밀입국 경로에 이목이 집중됐다. 조사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거액의 ‘VIP 패키지’에 속아 밀입국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 현지 언론 브앤익스프레스는 최고 5만 달러(한화 5800만원)에 달하는 ‘VIP 패키지’는 신속, 편안, 안전을 보장하는 밀입국 옵션으로 이는 일반 육로를 이용한 1만5000달러보다 월등히 비싼 가격이라고 전했다. 18살에 불과한 띠엡, 그의 가족은 1만3000달러(한화 1510만원)만 내면 아들을 안전하게 영국까지 보내준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다. 4인용 승용차를 타고 프랑스를 경유해 영국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들은 프랑스에서 1년을 머물렀고, 마지막으로 영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아들은 영영 소식이 끊겼다. 안락한 4인용 승용차 대신 냉동 트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가족들은 “트럭으로 이동하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소중한 아들을 잃고, 큰 빚만 남은 상태다. ‘VIP 패키지’에 속아 프랑스나 독일까지 오게 된 베트남 청년들은 영국 땅을 밟기 위해 컨테이너에 숨는 제안을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더구나 사전에 브로커들의 말을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믿고 따르는 수밖에. 게다가 돈이 없어 ‘VIP 패키지’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들은 트럭 아니면 맨발로 숲을 뚫고, 산을 넘어야 한다. 베트남 밀입국자들은 이런 저렴한 루트를 ‘잔디(Grass) 패키지'라고 부르는데, 주로 러시아나 중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 중 다음 여정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 농장, 식당 등에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성매매에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삶’은 거부하기 어려운 욕망이다. 거금을 내고, 고생을 해서라도 끝에 가면 충분한 ‘대가’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틴다. 응웬 반 흥도 꿈을 향해 영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베트남을 떠났다. 일단1만7000달러를 내고 러시아로 향했고, 가족들이 진 은행 빚으로 프랑스로 넘어갔다. 몇 주 전 그는 영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용을 엄마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그 후 아들은 영영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내일 ‘입동’ 추위 찾아온다…다음주 수능날 ‘입시 추위’ 전망

    내일 ‘입동’ 추위 찾아온다…다음주 수능날 ‘입시 추위’ 전망

    “얼어붙은 붓 갓 지은 시 써내려 감이 더디고(凍筆新詩懶寫)/찬 화롯불 좋은 술에 시절이 따사롭다(寒爐美酒時溫)/술 취한 눈으로 내다보니 하늘은 검고 달빛 밝아(醉看墨花月白)/마치 흰 눈 내린 듯 마을 앞 가득하다(恍疑雪滿前村)” 중국 당나라 때 살았던 시선 이태백이 지은 ‘입동’(立冬)이라는 시이다. 8일은 24절기 중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입동을 전후해 겨울잠 자는 동물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고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는데 입동 전후해 5일 내외에 담금 김장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김장철이 입동으로부터 한 달 가까이 늦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또 옛 조상들은 ‘입동보기’라고 해서 날씨점을 치는 풍속이 있었는데 “입동날이 따뜻하면 그해 겨울도 따뜻하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올해 입동은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4도~영상 9도 분포를 보이며 추워져 ‘입동보기’를 근거로 한다면 올 겨울도 추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8일과 9일은 중국 산둥반도 부근에 위치한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강원 영동과 경상 동해안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 맑은 날씨를 보이겠지만 한반도 북서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면서 입동인 8일 아침은 전날 아침보다 5~8도 가량 떨어져 추울 것”이라고 7일 예보했다. 실제로 7일 전국의 아침 기온은 2~12도 분포로 평년(0~12도)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토요일인 9일 전국의 아침기온도 영하 2도~영상 8도 분포를 보이겠다. 9일까지는 밤에도 구름 없는 맑은 하늘을 보이면서 밤 사이에 복사냉각으로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낮에는 일사로 인해 기온이 오르면서 내륙을 중심으로 낮과 밤의 기온차가 10도 이상이 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8일 지역별 아침 기온은 서울 1도, 춘천 영하 1도, 대전 0도, 대구, 광주 4도, 부산 9도, 제주 11도 등이다. 또 강원 영동과 경북동해안은 동풍의 영향으로 7일 오후부터 가끔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경북 동해안은 8일 아침까지 비가 이어지겠으며 강원 동해안에는 9일 낮에 가끔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예상 강수량은 5~20㎜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9일까지는 새벽과 아침 사이에 내륙을 중심으로 서리가 내리는 곳이 있겠고 중부 내륙과 일부 경상 내륙에는 얼음이 어는 곳이 있겠으며 일교차가 크겠으니 농작물과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말했다.한편 기상청 중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입동 추위는 일요일인 10일에 풀리겠지만 월요일인 11일과 수요일인 13일 오후에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도, 충청도 지역에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13일 수요일 오후에 비가 내린 뒤에는 기온이 급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의 경우 13일 수요일 아침 기온은 7도로 예상됐지만 수능 당일인 14일 목요일에는 1도로 떨어지고 낮 기온도 9도에 머무는 등 하루 종일 추운 ‘수능 추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추위는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나치 피해 달아난 가족 ‘금빛 눈동자의 토끼’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기증

    나치 피해 달아난 가족 ‘금빛 눈동자의 토끼’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기증

    나치 독일의 손아귀를 벗어나 영국으로 이주했던 오스트리아 에프러시(Ephrussi) 가문의 한과 슬픔을 담은 콜렉션이 빈의 유대인 박물관에 기증됐다. 에드문트 드발이 2011년 쓴 베스트셀러 ‘금빛 눈동자의 토끼(The Hare with Amber Eyes)’는 일본 네쓰케(根付, netsuke) 264점에 얽힌 가문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네쓰케는 일본 남자들이 인로(印籠, 길잡이 물건)나 담뱃대, 담배 쌈지를 허리띠에 매달기 위해 사용했던 장식품으로 상아 등을 조각해서 만들며 도쿠가와(德川) 시대에는 훌륭한 소형 예술품이었을 뿐 아니라 옷을 입을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취급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빅터 드발이 1939년 난민으로 영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이 열살 때였다. 빅터의 조부 빅토르 폰에프러시는 거의 팔십이었다. 나치가 1938년 점령할 때까지 에프러시 가문은 빈에 살고 있었다. 나치가 재산을 넘보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탈출했다. 이제 나이 구십이 다 된 빅터 드발은 아들 에드문트와 함께 빈을 찾아 오스트리아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오스트리아가 법을 고쳐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국적을 회복하겠다고 주장하면 복수 국적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국적을 회복한다. 에드문트는 “특별한 순간”이라며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진짜 존경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빅토르 폰에프러시는 1945년 국적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작가이며 도예가인 에드문트는 그의 국적이 사후에라도 복원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우리 가문은 1939년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가족 중 일부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잉글랜드에 당도할 수 있었다. (빅토르는) 갖고 있던 모든 것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조국뿐만 아니라 국적도 빼앗겼다. 우리는 이제 우리 것을 되돌려받는다. 우리는 빈에서 새로 시작한다.” 원래 네쓰케 콜렉션은 나치 시절 에프러시 가문의 하인이었던 사람이 맡아 간직하고 있다가 전후 빅터 드발의 어머니에게 돌려줬다. 에드문트는 264점 가운데 79점을 지난해 경매에 내놓아 난민을 돕는 기금을 모았다. 나머지는 박물관에 장기 임대하고 나중에는 에프러시 가문 아카이브에 기증했다. 빈의 유대인 박물관은 다수의 네쓰케를 중심으로 특별 전시회를 여는데 개막식에는 빅터 드발 등 40여명의 후손이 참석했다. 알렉산더 판데르 벨렝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개막식에서 “유럽에 우익 극단주의 세력이 발호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빈은 가장 밝고도 어두웠던 역사의 한 쪽을 드디어 되찾았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에드문트 역시 “지금 오스트리아가 그렇다. 지금 영국이 그렇다고 말하는 게 두렵다. 지금 폴란드, 지금 부다페스트,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그렇다”고 같은 뜻을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황성기 칼럼] 우리의 플랜B는 무엇인가

    [황성기 칼럼] 우리의 플랜B는 무엇인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냉정히 정리하면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은 진전을 보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했다’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팩트다. 서서히 닫히고 있는 협상의 문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제자리에 돌려놓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이 대미 외교의 달인 김계관 외무성 고문, 대미 교섭을 맡았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총출동시켜 미국에 전달하고자 했던 말은 ‘연말 시한까지 새로운 셈법을 들고 만나자’다. 하지만 그들의 언설에 숨은 메시지는 협상에 소극적인 미국에 대한 원망,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알리바이에 더해 ‘시한 뒤’ 행동에 대한 경고에 더 무게가 실려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북한은 2019년 말 이후 액션 플랜을 다 짜 놓았을 것이다. 북한식의 ‘새로운 길’이고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플랜B다. 김계관, 김영철, 최룡해 다음으로 우리가 목도할 인물은 조선중앙TV에 직접 등장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아무리 늦어도 2020년 1월 1일의 신년사에서는 우리와 미국, 국제사회가 경악할 북한의 화성15 개량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예고 등 플랜B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내년 11월 재선 가도가 불투명해질수록 플랜B의 강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연말까지는 한 달하고도 23일 남았다. 그 안에 극적으로 북미가 실무협상을 갖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3차 정상회담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0.1%의 가능성이 있어도 도전해 보는 게 외교이자 협상이 아닌가. 포기하기는 이르지만,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의 확률이 높아진 지금은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비해 우리도 플랜B를 모색해야 한다.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지난해와 달리 올 한 해 남북 관계는 정확히 역주행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대남 태도는 급변했다. 그들이 3월부터 최근까지 대남 비난의 소재로 삼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과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이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원색적으로 조롱해 말폭탄의 절정을 이루더니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의 철거 및 북한식 개발 선언과 5월 이후 12차례 미사일·방사포 발사로 말에 행동도 따른다는 점을 8개월간 역력히 보여 줬다. 선미후남(先美後南),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수준을 넘어선 북한의 대남 자세를 되돌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녘의 돼지가 전멸되는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프리카돼지열병 공동방역 제안을 북한이 거부한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금강산에 이어 개성공단 내 남측 시설의 철거 선언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이뿐만 아니다. 9·19 군사 분야 합의도 한미훈련과 F35A 도입 등을 구실로 파기할 공산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남한 특사에게 북미 대화를 제안하면서 내건 조건인 ‘미국과 대화할 동안 핵·미사일 발사의 동결’ 또한 효력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2018년 1월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보수 논객 사이에서는 한미일 핵 공유에 의한 핵무장과 한미동맹 강화를 우리가 취할 플랜B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는다. 보수의 단골 메뉴인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가 전쟁으로 치닫던 2017년 문 대통령의 측근인 박선원 현 국정원장 특보도 제안한 바 있다. 그럴듯하지만 북핵을 견제하기 위해 남한 땅에서 없앴던 미국 핵을 들여오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비용도 싸게 먹힌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곁들이는데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명제와는 거꾸로 가는 발상이다. 돌아가더라도 정도를 가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했던 것처럼 평양에 특사를 보내고, 문재인·김정은 핫라인을 다시 열어야 한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고 내년 11월 새로운 미국 대통령 탄생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을 향후 1년 남북 대화를 복원해 우리 주도로 한반도 리스크를 관리하는 길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내년에 닥칠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평창동계올림픽 같은 남북, 북미를 잇는 징검다리가 없다고 위축될 일도 아니다. 값진 합의를 담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이 있고, 싱가포르 공동성명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물이 있지 않은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2017년의 결기가 다시 필요한 때가 됐다.
  • 전쟁의 비극·고단한 삶…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恨 많은 고개’

    전쟁의 비극·고단한 삶…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恨 많은 고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8차 서울의 대중가요3(단장의 미아리고개)’ 편이 지난 2일 강북구 미아동과 성북구 길음동·돈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솔샘역 1번 출구에 집결했다. ‘미아리’라는 지명을 낳은 신라의 고찰 미아사~송천동성당~옛 미아리공동묘지~옛 미아리 유해업소를 거쳐 미아리고개예술극장에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의 1950년대 명곡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를 만났다. 최근 송가인이라는 트로트 가수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른 구성진 노랫가락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미아리 점성촌이 마지막 코스였다.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미아리고개에는 절절한 슬픔이 뱄다. 너무 가팔라서 넘나들기 고달팠고, 병자호란과 한국전쟁의 서울 침공로였으며, 공동묘지가 있던 시절엔 상여길, 조문길이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끌려가던 가족을 향해 울부짖던 비극의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 그 ‘창자를 끊는’ 미아리고개에는 미아리하늘고개다리와 노래비 그리고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이 무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이날 해설을 맡은 강영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늘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미아리의 애사를 두 발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안내했다.서울 동북부의 관문 미아리의 역사는 2002년 서울시 시범 뉴타운 지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개발의 속도와 규모는 전광석화 같았다. 10여년 만에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미아리의 잔상은 오간 데 없고 거대한 아파트 숲이 하늘을 가린 채 즐비하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미아리의 행정구역은 한성부 동부 숭신방 동소문외계 미아리였다. 동소문 밖 성저십리(성 밖 십리)에 속했다.‘조선성시도’와 ‘한양도’ 등 옛 지도에는 오랑캐 적(狄), 넘을 유(踰), 고개 현(峴)자를 써서 적유현이라고 적었다. 한양에서 강원도나 함경도를 오가는 길손은 동소문(혜화문)~적유현~수유현~양주 길을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이를 쉽게 병자호란 때 되놈(청나라군)이 넘어온 되너미고개라고 말하고, 이를 한자로 돈암현이라고 옮겼다. 또 길음동이라는 지명은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미아리고개 북쪽 정릉천 골짜기의 물소리가 맑고 고와서 길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비가 오면 땅이 질퍽해 ‘질음골’이라고도 불렸다. 1792년 광릉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미아리고개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잠시 머문 뒤 ‘야차제만장봉’이라는 시를 남겼다. 이때 이곳의 지명이 미아리(美阿里)라고 적혀 있어서 현재의 미아리(彌阿里)와는 한자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길음1동의 옛 돌산(신안아파트)은 건축용 석재를 채취하던 채석장으로, 나머지 지역은 왕실의 매장 터로 쓰였다. 1911년 경성부 지도에 미선리, 미하리라고 표기됐으나 1930년대에 인쇄된 경성부 관내도에 비로소 미아리(彌阿里)라는 표기가 정착됐다. 청량사에서 청량리가 유래했듯 원효대사가 세운 불당골(미아7동)에 있던 미아사가 미아리라는 지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차 종점이 있던 돈암동은 시내, 고개 너머 미아리는 시골로 인식했다. 이후 경기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1914년)에서 성북구 미아리(1949년)로 변경되면서 미아1·2·3동과 길음동, 인수동, 송천동, 삼양동 등 우리 귀에 낯익은 이름이 생겼다. 인수동은 삼각산(북한산) 인수봉, 삼양동은 삼각산 아래 양지바른 동네라는 뜻이다. 송천동은 샘이 솟는 소나무 숲 마을이었다. 1973년 도봉구에 속했다가 1975년 다시 성북구로 회복됐다. 1995년 강북구가 분구되면서 길음동은 성북구, 미아동은 강북구로 갈라졌다.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미아리의 정체성은 일제강점기 1930년에 완공된 공동묘지 조성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아리 공동묘지는 1912년에 만들어진 19개 공동묘지 중 한국인 전용 공동묘지였다. 1937년에 모두 1만 6000기의 무덤이 있었다. 주택난과 매장지 부족으로 1933년 망우리, 1958년 파주 용미리, 벽제로 각각 이전했다. 이상, 이육사, 유관순, 한용운, 최학송, 나석주, 이중섭 등이 묻혔다가 망우리 등으로 이장됐다. 또 도시빈민들의 이주로 정릉천변과 공동묘지 주변에 토막촌과 무허가주택촌이 형성됐다. 미아리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의 격전지였다. 전쟁이 끝난 뒤 북으로 끌려가던 북송인사 때문에 ‘한 많은 미아리고개’ 별칭이 붙었다. 1958년 미아리공동묘지가 벽제와 망우리로 이장하면서 이재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길음동의 대표적 공영주택 백호주택은 1962년 입주 신청을 받았는데 당시 분양가구가 100호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호당 50평 안팎의 대지에 12평짜리 벽돌기와집을 지었다. 당첨자는 땅값을 내고 건축비 14만 2500원은 25년 분할 상환했다. 미아리는 인수로, 삼양로, 미아로 등 세 가닥 큰 길이 주축을 이룬다. 정릉천 물길인 인수로는 정릉천에서 길음동 돌산에 이르는 도로명이다. 인수로 좌우에는 거대한 무허가 간이주택이 천변동네를 형성했다. 본래 좌우제방을 도로로 이용하다 세 번에 걸쳐 복개돼 도로가 됐다. 뉴타운개발 후 길음시장과 역세권을 제외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1960년대 후반 청계천 복개와 종로3가의 집창촌 ‘종삼’이 철거되면서 하월곡동 88 정릉천변 일대로 이주, ‘미아리 텍사스’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2000년대 길음 재개발로 대부분 헐려 나갔다. 삼양로는 길음역4거리에서 수유동 쪽 길이다. 1962년 미아초등학교 앞쪽에 백호주택이 들어선 뒤 위쪽을 잇는 도로가 생겼다. 수유동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가는 미아사거리는 본래 미아삼거리였다. 장위동으로 나가는 길이 확장되고 입체교차로가 들어서면서 사거리가 됐다. 백화점과 할인마트, 극장 등이 들어와 길음동과 미아동, 삼양동 일대 상권의 중심지가 됐다. 1997년 미아리 텍사스가 정비되고, 1999년 내부순환도로 완공, 2002년 길음뉴타운 지정으로 이 일대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벽했다. 미아로, 미아리고개, 미아리하늘다리, 미아사거리 등 미아리가 붙은 지명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지명을 바꾸려던 한때의 시도가 무색하다.가슴 저미는 노랫말로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우리나라 대중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작사자 반야월은 가요 사상 가장 많은 작사, 가장 많은 히트곡, 가장 많은 노래비를 남긴 인물이다. 작사가 반야월은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로 꼽혔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반야월은 미아리고개 너머에 살았다. 혼자 피란을 떠난 부인이 5살짜리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미아리고개를 넘다 숨진 딸을 길섶에 묻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노랫말로 만들었다. 미아리는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였다. 미아리 사람들의 생활사가 서민의 삶을 대변했다. 소설가 김소진의 대표작 ‘장석조네 사람들’에서 “한 지붕 아래 아홉 개의 방이 한 일자로 늘어서 있어 사람들이 기차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장석조네 집터는 옆의 행길보다 석 자 정도는 높게 다져져 있었다”라는 대목은 1970년대 돌산 아래 ‘열차주택’을 묘사한 장면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3’에서도 미아리 무허가 판자촌과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나온다. 신경림의 시 ‘길음시장’과 박완서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미아리의 불법 매장 풍경이 그려졌다. 1986~1994년 방영된 인기 TV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도 열차주택 풍경이 등장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29차 효창공원 ■집결 장소: 11월 9일(토) 오전 10시 효창공원역 1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순천시, ‘조상 땅 찾기’ 올해 733명, 3755필지 찾아

    순천시, ‘조상 땅 찾기’ 올해 733명, 3755필지 찾아

    “조상 땅 찾기 서비스 신청하세요.” 전남 순천시가 조상들의 땅 찾아주기에 적극 나서 결실을 맺고 있다. 시가 운영하는 ‘조상 땅 찾기’ 조회 서비스에 올 한해 1661명이 신청했다. 이중 733명이 모르고 있던 땅 3755필지를 찾았다. ‘조상 땅 찾기’ 서비스는 본인이나 사망한 조상 명의의 토지소유 내역을 조회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후손들이 조상의 토지소유현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속인에게 토지소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재산권행사에 도움을 주고자 도입한 제도다. 신청방법은 토지소유자 본인일 경우 신분증, 사망자의 상속자인 경우 제적등본,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상속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시청 토지정보과에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나용준 시 토지정보과장은 “본인이나 상속자가 모르고 있는 토지소유 현황을 신속 정확하게 조회해 재산권 행사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노는 게 곧 배움… 학교, 아이들 ‘놀 권리’에 주목하다

    노는 게 곧 배움… 학교, 아이들 ‘놀 권리’에 주목하다

    학생·교사·학부모 머리 맞대 놀이터 구상 학교 공터 활용 숲길·텃밭·놀이기구 설치 ‘건강한 위험’ 통해 도전 정신·체력도 길러 2022년까지 공립초 25% 이상 늘리기로 하루 30분 이상 노는 ‘더 놀자 학교’ 운영 “창의적 놀이와 학교 교육 연계 방안 모색”“여기 밟고, 꽉 잡아.” 한 아이가 샌드백에 올라탄 뒤 밧줄을 타고 올라가 3m 높이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아이들은 비스듬히 세워진 암벽을 타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난간 위에 옹기종기 모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철봉 하나에 의지한 채 쪼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이 아찔해 보였다. “무섭긴 한데 재밌죠.”(김현성군) “심하게 장난치지만 않으면 괜찮아요.”(최준용군) 서울 용산구 삼광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이런 놀이가 일상이 된 듯했다. “동네 놀이터에 가면 그네나 시소, 미끄럼틀 같은 것밖에 없는데 지루해요. 우리 학교 놀이터는 색다르고 멋져요.” 김규민(10)군의 설명처럼 삼광초의 ‘꿈을 담은 놀이터’에서는 흔한 놀이기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달 1일 정식 개장을 앞두고 지난달 24일 미리 찾은 삼광초 ‘꿈담 놀이터’에는 땅이 움푹 패어 있던 곳에 물을 채워 생겨난 작은 개울이 있었다. 학생들은 줄지어 개울을 폴짝 뛰어 건너거나 물을 퍼 모래장으로 옮겨 부었다. 담장 옆 덩그러니 빈 벽돌 바닥은 ‘분필 칠판’으로 변신했다. 바닥에 색색으로 낙서를 하느라 학생들의 손은 분필 범벅이 됐다.‘꿈을 담은 놀이터’는 서울시교육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학교의 공간혁신 사업 중 하나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놀이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조언과 설계, 비용 등을 서울교육청이 지원하는 사업이다. 놀이기구들이 ‘위험’하다며 사라지고, 미세먼지와 비좁은 운동장 등으로 놀 공간과 놀 권리마저 잃어버린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돌려주자는 취지다. 삼광초가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건 2017년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놀 공간은 먼지 날리는 운동장과 학교 뒤편 구석에 놓인 미끄럼틀뿐이었다. 학교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정책에 따라 학교 곳곳이 학생이 아닌 주민들 몫이었다. 운동장 양옆 공간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운동기구들로 가득했다. 10년 이상 방치돼 녹이 슬면서 학생 안전을 위협했다. 학교 뒤편은 주민들의 주차장이었다. 학교 밖에는 주택가에 흔한 아파트 놀이터나 어린이공원도 없었다. 마음껏 뛰어놀 공간이 없으니 학생들은 ‘노는 방법’도 몰랐다. 서울교육청에서 학교 일과 중 쉬는 시간을 합쳐 30분 동안 놀 수 있도록 한 ‘중간놀이시간’을 권장했지만 학생들은 교실 안에 머물기 일쑤였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학생들에게 어떤 놀이터가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전파하는 ‘놀이 운동가’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돕자, 놀이터를 함께 가꾸자”고 힘주어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각각 워크숍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다른 학교의 놀이터를 방문해 살펴보기도 했다. “놀이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학교 전체, 곳곳이 놀이터입니다.” 박은미 교장의 설명처럼 삼광초 놀이터에서는 학교 구석구석을 알뜰하게 학생들에게 돌려주려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채 방치됐던 곳은 통나무 테이블과 징검다리를 설치해 학생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나무들 사이사이에 낸 좁은 길은 ‘에코숲길’이 됐다.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쓰였던 학교 뒤편 공터에서는 학생들이 사방치기, 오징어놀이 같은 전통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있었다. 공터 바로 옆 텃밭도 학교의 자랑거리다. 고구마와 수박, 참외 등 먹음직스러운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박 교장이 “무가 얼마나 자랐나 볼까”라고 이야기를 꺼내자 학생 대여섯명이 목장갑을 끼고 텃밭에서 다 자란 무를 쑥 집어 들었다. 텃밭에서 자란 무로 김치를 담가 나눠 먹고, 방울토마토는 한두개씩 따서 집으로 가져간단다. 박 교장은 특히 “건강한 위험”을 강조했다. 3m 높이의 구조물을 오르내리는 ‘조합 놀이대’와 흔들리는 그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딛고 가는 ‘그물놀이’ 같은 기구들이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올라가고 매달리고 그물을 통과하면서 도전 정신과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치지 않고 노는 법을 터득하고, 서로 도우며 협동심도 키울 수 있죠.” 자나 깨나 자녀 걱정뿐인 학부모들에게 건강한 위험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박 교장은 “바깥 놀이 시간에 교장이 직접 학생들을 지도한다”며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교사들도 땡볕 아래서 학생들과 한데 어울리며 놀았다. 반신반의했던 학부모들도 지금은 놀이터를 보며 만족한다고 박 교장은 전했다. 학교 근처에 이렇다 할 놀이 공간도, 학원도 없는 환경에서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놀이터답게 놀이터에서 지켜야 할 규칙도 학생들 스스로 정했다. 자치활동 시간에 학생들은 각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놀이터 규칙을 적어 냈다. “낙서 공간에 욕설 쓰지 않기”, “그물 위에 누워 있지 않기”, “모래장에서 놀고 일어날 때는 놀고 있는 친구에게 모래 털지 않기” 등 사소해 보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에서는 제법 중요한 규칙들이었다. “저학년 학생들까지도 나름의 규칙을 적어 내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집단지성이라고 할까요…. 서로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게 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박 교장) 서울에서는 2017년 2개교를 시작으로 지난해 4개교, 올해 31개교 등 모두 37개 초등학교에 꿈담 놀이터가 들어섰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들어 놀이터 관련 자문위원과 디자인 디렉터를 위촉하는 등 인력풀을 구축하고 놀이터 매뉴얼과 사례 등을 담은 사업안내서도 각 학교에 보급했다. 서울교육청은 2022년까지 관내 공립초등학교 네 곳 중 한 곳 이상에 꿈담 놀이터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사교육과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서울교육청은 어린이들의 놀 권리에 주목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믿음에서다. 서울교육청은 올해부터 하루 30분 이상의 중간놀이시간을 두는 ‘더 놀자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공립초등학교 11곳을 선정해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을 마련하고,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구현하면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놀이 문화도 연구한다. 서울교육청은 더 놀자 학교와 꿈담 놀이터 등을 확산시켜 초등학교 단계에서 놀이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창의적인 놀이를 학교교육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종교계 6㎞ 오체투지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하라”

    종교계 6㎞ 오체투지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하라”

    기독교, 천주교, 불교 3대 종교인들이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오체투지에 나섰다. 한국도로공사와 수납 노동자들의 갈등이 몇 달째 봉합되지 않자 보다 못한 시민사회와 종교단체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등 종교 단체는 5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열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주장했다. 오체투지는 머리와 두 팔다리 등 신체의 다섯 부위가 땅에 완전히 닿도록 길게 엎드리며 하는 절을 말한다. 이날 행진에서는 해고된 수납 노동자와 종교인 20여명이 열 걸음에 한 번씩 절을 하며 선두에 섰고, 수납 노동자 80여명이 ‘집단해고 도로공사 규탄한다’, ‘직접고용 쟁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뒤따랐다. 이들은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출발해 명동성당, 조계사를 거쳐 청와대까지 약 6㎞ 거리를 행진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함께했다. 조계종 사노위 양한웅 집행위원장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대법원으로부터 직접고용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50여 일째 본사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정부와 도로공사가 말하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는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그동안 부당한 대우로 차별받아 온 노동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단체들은 과거에도 각종 노동 문제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오체투지에 나섰다. 파인텍 노동자, 쌍용차 해고자,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건,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촉구 등이 대표적이다. 천주교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오체투지는 체력 소모가 아주 커 사태가 위중할 때만 한다. 그만큼 톨게이트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라면서 “과거 쌍용차 사태로 30명 넘게 자살하고, KTX 승무원은 10년간 싸워왔다.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그런 비극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옆에서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성남 공사현장서 6·25때 추정 포탄 발견…“폭발 위험 없어”

    성남 공사현장서 6·25때 추정 포탄 발견…“폭발 위험 없어”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한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6·25전쟁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 1점이 발견돼 경찰과 군 당국이 수거했다. 5일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20분께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근린생활시설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땅에 묻혀있던 155㎜ 구경의 포탄 1점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포탄은 흙으로 덮여 녹이 슬어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공사장 주변 출입을 통제한 뒤 군 폭발물 처리반(EOD)을 통해 포탄을 회수해 군에 인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된 포탄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사용한 불발탄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땅속에 오래 파묻혀 있어 폭발 가능성은 거의 없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포토] ‘한국어 능숙’ 일본 성인배우 오구라 유나, 한국서 팬미팅

    [포토] ‘한국어 능숙’ 일본 성인배우 오구라 유나, 한국서 팬미팅

    친한파 성인 배우의 대표주자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구라 유나(20,小倉由菜)가 한국을 찾는다. 쇼핑몰 바나나몰은 지난 10월 23일,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 홈페이지에서 오구라 유나의 한국 팬미팅이 오는 12월 7일, 홍대 포스트극장에서 열린다고 발표했다. 오구라 유나는 2017년 데뷔한 성인 배우다. 이후 2018년과 2019년, 일본 영상 제작 그룹 ‘소프트 온 디멘드’가 주최하는 ‘SOD 어워드’에서 신인상과 전속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2019년 상반기 VR 작품 부문 인기 투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유명하다. 지난 2019년 4월부터 한국 유튜브 채널 ‘오구라유나 TV’를 운영하고 있다. 개설 후 지금까지 한국인 구독자만 25만 명에 육박한다. 능숙한 한국어로 한국 팬들과 소통한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한국어 공부를 놓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 전부터 한국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한국 사랑을 밝혀왔다. 네티즌에겐 ‘오유나’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팬들의 열렬한 지지는 이번 팬미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바나나몰 연말 팬미팅의 주인공을 결정하는 선거 ‘친한파 성인 여배우 총선’에서 후카다 에이미, 다카스기 마리 등 인기 배우를 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바나나몰 마케팅 및 기획을 책임지고 있는 송용섭 팀장은 “아오이 츠카사부터 시작해 츠보미까지 총 8회의 바나나몰 감사제가 열렸다. 이번 주인공은 오구라 유나다. 젊은 세대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배우인 만큼 팬들과 함께 소통하는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첫 한국 팬미팅을 앞둔 오구라는 바나나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에서 팬미팅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긴장이 된다. 한국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스포츠서울
  • 트럼프, 모친상 문대통령에 위로서한 “이산가족 재회 위해 노력”

    트럼프, 모친상 문대통령에 위로서한 “이산가족 재회 위해 노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을 위로하기 위해 위로서한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향민이었던 문 대통령의 모친 고 강한옥 여사가 ‘흥남철수’ 때 피난한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다며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한미 양국이 변함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태국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했으며,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모친상을 위로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필서명 서한을 전달받았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위로서한 내용을 공개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멜라니아와 저는 대통령님의 모친상 소식을 전해 듣고 슬펐다”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대통령께서 들려주셨던 1950년 12월 역사적인 흥남철수 당시 부모님께서 피난 오셨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님께서 북한에 있는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들었다. 어머님께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대통령님의 노력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고 알고 있다”고 위로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님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한미 양국은 비무장지대 이남과 이북에 있는 가족들이 재회하는 그날을 위해 변함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슬픔을 겪고 계신 대통령님과 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거듭 언급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안도현의 꽃차례] 멧돼지 생존 입장문

    [안도현의 꽃차례] 멧돼지 생존 입장문

    10월 6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멧돼지가 DMZ 남측 철책을 넘어오는 게 발견되면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10월 15일부터 군은 GOP 철책과 민간인출입통제선 사이에 사는 멧돼지를 사살하기 위해 민관군 통합 저격 요원을 운용한다고 밝혔습니다. 10월 17일 국방부는 이틀간 126마리의 멧돼지를 사살해 매몰 조치했고, 10월 25일 2차 민관군 합동 포획작전으로 132마리가 사살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합동포획팀 800명이 투입됐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군사작전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부는 물론 야생 동식물을 관리하는 환경부까지 협조해 매우 긴박하고 치밀하게 진행됐습니다. 나쁜 바이러스 확산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하겠지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국가가 예방 차원에서 조치를 취한 거라고. 국가란 무엇입니까? 국가란 일정한 영토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이 조직한 공동체가 아닙니까? 우리도 인간이 행복하게 복지 혜택을 누리고 사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숲에서 자식새끼들을 낳고 기르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멧돼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열매와 나무뿌리를 먹어야 하는지, 어디에 가면 맑은 물이 솟는 연못이 있는지 우리도 아이들에게 훈육을 합니다. 숲이 우리의 국가이고 우리의 교실입니다. 인간들은 왜 우리의 공동체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입니까? 사육되는 돼지와 우리 멧돼지는 같은 종이기는 합니다만 왜 모든 걸 돼지의 탓으로만 돌립니까?한국인들은 너무 많이 먹습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50년 전에 비해 한국인들의 동물성 식품 섭취 비율이 7배나 올랐다고 합니다.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의 헬스장은 성업 중이고 살을 빼기 위해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다이어트라는 말은 이제 초등학생들의 입에서도 일상어가 돼 버린 지 오래입니다. 멧돼지들도 가끔 먹이를 찾기 위해 도시를 방문한 것뿐입니다. 쓰레기장을 뒤지기도 하고 열린 식당 문으로 들어가 식당 안을 휘젓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트럭에 부딪치고 강을 건너다가 사살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해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총이라는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짧고 단단한 다리와 날카로운 엄니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경찰을 동원해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입니까? 풀잎에게는 풀잎의 입장이 있고, 멧돼지에게는 멧돼지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인간들은 알지 못합니다. 1854년 미국 대통령이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라고 요청하자 인디언 추장 시애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짐승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은 참으로 서글픈 수사 같습니다. 멧돼지에 대한 대량 학살을 ‘성과’라고 자화자찬하는 나라에서 생물 개체의 다양성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한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멧돼지로서 나는 요구합니다. 당장 돼지의 공장식 대량 사육 체계를 해체하기 바랍니다. 전국의 모든 삽겹살집에 폐업 조치를 내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서식지를 까뭉개는 골프장을 폐쇄하고, 우리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도로 공사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국회는 국민에게 육류 섭취를 중단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법률을 제정하십시오(이러면 난리가 나겠지요). 이제 우리는 어떡해야 합니까. 숲이 늘어나서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났으니 숲을 없애 달라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한국의 숲에 우리의 천적인 호랑이가 없으니 동물원의 호랑이를 풀어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멧돼지의 ‘멧’은 ‘산’(山)의 고유어인 ‘뫼’가 변형된 말입니다. 산과 숲이 우리의 국가라는 말입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니 걱정입니다. 산에 눈이 내리면 어미 멧돼지들은 끼니를 구하기 위해 하산할지도 모릅니다.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쇠똥구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쇠똥구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중국의 남부 지역에 있는 광시좡족자치구에는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 민족인 좡족(壯族)이 거주한다. 그들에게는 꽃에서 탄생한 거인 창세 여신 무류자가 천상의 꽃밭에 붉은색과 하얀색의 꽃을 심어 그 꽃을 인간 세상에 가져다주면 아기들이 탄생한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그런데 무류자 여신이 나타나기 전 하늘과 땅이 아직 갈라지지 않았던 시절에 우주에는 큰 기운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기운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빙빙 돌다가 점점 빨라지면서 마침내 알 모양이 됐다. 그 알은 달걀처럼 생겼는데, 안에 노른자가 세 개 들어 있는 것 같은 형태였다. 그때 쇠똥구리가 알을 굴렸고, 유충들이 구멍을 뚫고 나오자 알이 갈라지면서 세 조각이 됐다. 한 조각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됐고, 나머지 두 조각은 각각 땅과 물이 됐다. 그렇게 생겨난 대지에 한 송이 커다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에서 창세 여신 무류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 신화에서 알을 굴려 세상을 만들어 낸 쇠똥구리에게 특히 더 눈길이 간다.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신은 언제나 최고의 신격을 갖춘 위대한 신이다. 그런데 자그마한 쇠똥구리가 세상을 만들었다니, 매우 창의적이고 독특한 발상이다.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 신화 중에서도 쇠똥구리가 창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화는 아마도 좡족 신화가 유일할 것이다. 왜 그들은 세상을 만드는 존재를 쇠똥구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사실 이집트 신화에도 쇠똥구리가 등장한다.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쯤 푸른색 ‘풍뎅이’ 모양의 기념품(케프리)을 사오는데, 그것은 사실 풍뎅이가 아니고 쇠똥구리다. 쇠똥구리가 소똥을 둥그렇게 굴리는 모양이 흡사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했기에 쇠똥구리를 태양신 ‘라’의 다른 형태로 여긴다. 사라지지 않고 아침이면 언제나 다시 떠오르기에 해 모양의 소똥을 굴리는 쇠똥구리는 재생과 생명의 상징이 됐다. 물론 쇠똥구리를 통해 구현되는 자연계 순환의 이치도 반영돼 있을 것이다. 쇠똥구리는 자기 몸무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소똥을 굴린다. 굴리고 가는 길이 평탄하지는 않지만,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커다란 소똥을 집으로 갖고 가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유충들은 소똥을 먹고 자란다. 좡족 신화가 바로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좡족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열대에 속해서 벼농사가 삼모작까지 가능하다. 벼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소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우왕절’(牛王節)이라는 날을 정해 농번기가 지나면 소를 쉬게 해 준다. 소의 뿔에 꽃을 달아 주고 맛있는 찰밥도 지어 주면서 소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소와 관련성이 깊은 민족이기에 쇠똥구리도 자주 볼 수 있는 곤충이었으리라. 소의 똥을 잽싸게 치워 주는 쇠똥구리 덕분에 해충도 사라지고 땅에도 좋은 성분들이 많아지니, 그들에게 쇠똥구리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우주의 비밀을 아는 곤충이기도 하다. 소똥을 굴리면서 집으로 갈 때 해와 달, 은하수의 빛을 통해 방향을 감지한다고 하니, 신비로운 일 아닌가. 이 땅에서 1971년에 공식적으로 절멸한 쇠똥구리는 1억 5000만년 전부터 존재했던 곤충이다. 공룡이 멸종할 때에도 쇠똥구리는 살아남았다. 그것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몽골에서 200여 마리의 쇠똥구리를 들여와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억 5000만년 전부터 살아온 쇠똥구리가 소멸해 버리는 것은 종(種)의 다양성이 언어나 문화의 다양성과 동일시된다는 점에서 볼 때 아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쇠똥구리가 별빛을 길잡이 삼아 소똥을 굴리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자못 기대된다.
  • 플라스틱 쓰레기 몸살에… 알루미늄 캔 찾는 식음료 업체들

    플라스틱 쓰레기 몸살에… 알루미늄 캔 찾는 식음료 업체들

    이산화탄소·온실가스 배출 플라스틱의 4~5배 알루미늄 캔 68%가 재활용… 22배 자원순환 佛 다논, 2025년까지 생수병 절반 캔으로 활용 코카콜라·펩시 캔 공급 업체도 제조라인 증설플라스틱이 지구촌을 급습한 지 오래다. 태평양에 프랑스 3배 크기의 플라스틱 섬이 생겨났다거나 인도양이나 카리브해 등에서 이런 섬들이 떠다닌다는 외신 보도도 종종 나온다. 청정의 대명사 같은 북극에 내린 눈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다량 검출됐다. 지난해 4월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해변에 떠밀려 온 향고래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29㎏이나 나왔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 홍역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알루미늄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PET) 물병을 많이 사용하는 생수업계가 재활용 가능성이 높은 알루미늄 캔을 눈여겨보고 있다. 4일 영국의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추적하는 엘런맥아더재단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는 14%만 재활용을 위해 수거된다. 플라스틱 물병은 55%가량 수거되지만 이 가운데 80%는 카페트 등으로 재활용된 뒤 매립된다. 과연 알루미늄은 플라스틱 물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로이터통신은 ‘에비앙’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 식음료 기업 다논이 영국과 폴란드, 덴마크에 공급되는 플라스틱 물병을 알루미늄 캔으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논은 매년 40만t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데, 2025년까지 생수병의 50%를 재활용한 캔을 재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에비앙은 100% 재활용 재료로 병을 생산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런 변화는 코카콜라와 펩시, 네슬레가 플라스틱 생수병 남용에 따른 대중의 분노를 달래고자 생수 제품을 캔 형태로 공급하기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루미늄 캔이 바다를 떠다니지는 않을지 몰라도 ‘환경 비용’은 만만치 않다. 캔 하나를 생산할 때 플라스틱 물병 2배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배출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비영리 컨설팅 재단인 ‘카본 트러스트’의 탄소 이력(상품이 생산될 때까지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킨 온실가스 총량) 담당 이사 마틴 배로는 “알루미늄 산업계는 그 생산물이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마케팅 등에) 활용할 것”이라면서도 “알루미늄은 엄청난 양의 전기를 사용하고 온실가스와 같은 물질도 많이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330㎖짜리 알루미늄 캔은 제조 과정에서 약 130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자동차를 7~8㎞ 운행할 때 나오는 배출가스와 엇비슷하다. 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병은 330g에 불과하다. 알루미늄을 녹이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 단계에서 탄소 배출량이 훨씬 많다. EPA 조사에 따르면 알루미늄 캔은 t당 이산화탄소 11.09t을 배출하는 반면 플라스틱 물병은 t당 2.2t의 온실가스가 나온다.●EU, 2021년까지 빨대 등 10개 품목 금지 그럼에도 알루미늄 캔의 재활용률이 플라스틱 물병보다 훨씬 높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알루미늄 캔은 68%가 재활용되지만 플라스틱 물병은 3%에 그친다. 유명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3억 8000만t에 이른다. 약 55%가 폐기됐고 25%는 소각 처리됐다. 20%만 재활용됐다. 이는 생산된 플라스틱이 우리 눈에 안 보인다면 땅에 매립되거나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83억t의 플라스틱 가운데 재활용된 비율은 6%가 채 안 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물병은 1분에 약 100만개가 팔려 나간다. 버려져 보기 흉한 플라스틱 덩어리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EU)은 2021년까지 빨대와 포크, 나이프 등 10개 품목에 대한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했다. 203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를 불법화할 것으로 예고했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체재 찾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190억 달러(약 22조 1000억원)의 시장 규모를 가진 생수업계가 알루미늄 캔으로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루미늄, 플라스틱보다 25~30% 비싸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알루미늄은 플라스틱보다 훨씬 비싸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우드 매킨지’의 애널리스트 유데이 파텔은 “알루미늄 캔의 원료 가격은 같은 분량이라면 플라스틱보다 25~30% 더 비싸다”고 말했다. 제조 공정을 알루미늄 캔으로 모두 바꾸면 음료 회사의 부담이 커진다. 비용 일부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면서 플라스틱 제품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펩시의 플라스틱 추방 담당 이사 시몬 로덴은 “알루미늄 도입의 가장 어려운 점은 제조 공정을 위한 기반 시설을 전부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편리성도 떨어진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캔은 한 번 개봉되면 열린 채로 둬야 한다. 하지만 플라스틱 병은 다시 닫아 둘 수 있다. 플라스틱 생수는 다양한 크기로 팔 수 있지만 캔은 상대적으로 제한이 많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생수 대기업들은 캔 사용을 주저한다. 코카콜라의 환경과 지속가능성 담당 이사인 브루스 카라스는 “캔 생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생수 브랜드 다사니는 올 하반기 일반 알루미늄 캔 생수와 뚜껑을 잠가 둘 수 있는 알루미늄 병 생수를 출시할 계획이다. 다른 대기업들은 생분해되거나 더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새 물질을 찾고 있다. 생수업계가 플라스틱 병 사용을 줄이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맥주와 와인도 있다. 최근 맥주와 와인 회사들이 용기를 유리 병에서 캔으로 바꾸면서 캔 공급 부족 현상이 가속화되는 탓이다. 세계 최대 캔 제조회사인 볼은 수요에 맞추기 위한 생산 능력 확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볼의 음료 포장사업부 캐슬린 피트르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성장 현상이다. 우리는 새로운 캔 제조라인을 서둘러 증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볼은 코카콜라와 펩시에 캔을 공급한다. 볼은 “2021년 중반까지 4억~5억개의 캔의 추가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생수 부문의 잠재적 성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음료의 1%만 캔으로 바꾸거나 맥주와 플라스틱·유리 병입 생수를 알루미늄 캔으로 변경해도 240억개의 캔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 회사는 밝혔다. 우드 매킨지의 파텔에 따르면 단 1%의 변경으로도 알루미늄 수요가 약 31만t 증가한다. 파텔은 “플라스틱 물병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알루미늄 캔 시장이 커질 수 있지만 이것이 진짜 트렌드가 되려면 3~4년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알루미늄 캔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펩시의 로덴 이사는 “운송과 포장, 창고에 머무는 시간 등이 모두 고려 대상”이라고 했다. 알루미늄 캔은 가볍고 공간 효율이 좋으며 유리보다 운송하기 쉽다. 열대지방에서 내용물을 차게 만들 때도 다른 포장재질의 음료에 비해 에너지가 덜 들어간다. 그는 “모든 단계를 광범위하게 고려하면 알루미늄이 실제로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플라스틱 줄이기 역할 다 해야” 지구가 플라스틱에 오염되는 것은 물병 제조사의 책임을 넘어서는 문제다. 유로모니터너 인터내셔널의 포장재 연구 수석인 로즈마리 다우니는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사려 깊은 소비가 지구촌 모두의 의무가 됐다”면서 “소비자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 ‘제로’(0)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도 쓰레기 관리와 재활용을 위한 기반시설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中, 공무원 대대적 숙청설… 홍콩엔 ‘채찍’

    中, 공무원 대대적 숙청설… 홍콩엔 ‘채찍’

    캐리 람 행정장관 문책성 본토 소환 이어 인민일보 “테러 지지 공무원 미래 잃을 것”홍콩 당국의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추진으로 촉발된 민주화 요구 시위가 5일로 150일을 맞는다. 그동안 경찰 대응은 연일 강경해졌으며, 이에 시위대도 폭력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 시위가 시작된 이후 체포된 시위 참가자는 지난달 31일 3007명을 기록했다. 지난 9월 16일까지 100일 동안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 수는 하루 평균 15명꼴이었지만 9월 17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45일 동안은 하루 평균 35명씩 체포됐다. 시위 100일을 기점으로 대응의 강도를 대폭 높인 셈이다. 이에 맞서 시위대도 중국계 은행과 중국 본토 기업이 소유한 점포 등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일이 일상처럼 됐다. 중국 중앙정부는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특별행정구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완비할 것”이라며 홍콩 시위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문책성 ‘본토 소환’ 발표가 나온 가운데 중국 인민일보는 “‘블랙테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거나 공모해서 지지를 보내는 홍콩 공무원들에게는 오직 직업과 미래를 잃는 길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밝혀 홍콩 공무원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홍콩 타이쿠 지역의 쇼핑몰 ‘시티 플라자’ 앞에서 지난 3일 한 남성이 “홍콩은 중국 땅”이라고 외치면서 일가족 4명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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