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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삽질 대신 클릭에 진심인 건설회사들… 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제한살’ 직원들

    삽질 대신 클릭에 진심인 건설회사들… 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제한살’ 직원들

    ●메타버스에 업무 공간 마련하는 기업들건설회사가 업무 공간을 마련하고자 삽질 대신 마우스를 누른다. 땅을 파는 대신 사이버에 건물을 올린다. 한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는 직원들이 모여 일하는 사무실을 없앴다. 전통적 의미의 부동산(property)에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과 같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technology)을 접목해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프롭테크(PropTech)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있다. ‘변하다’, ‘뛰어넘다’ 또는 ‘초월하다’는 의미의 접두어 메타(meta)에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결합한 합성어다. 1992년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이 쓴 SF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암울한 미래를 묘사하면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지난달 말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한 시간 남짓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메타버스 회사로 변신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저커버그는 이 자리에서 메타버스라는 말을 20여차례 반복했다고 CNN이 전했다. 이런 메타버스가 가장 전통적인 산업인 건설·부동산에도 들어오고 있다. ●직방 직원들, 본사 건물 대신 ‘메타폴리스’서 근무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직원들이 출근해 모여 일하는 본사 건물을 아예 없애버렸다. 지난 6월말 서울 강남에 있던 본사의 임대 계약이 종료되자 건물주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직원들은 아바타로 30층 건물의 가상공간 오피스인 메타폴리스(Metapolis)에 출근해 일한다. 직방 사무실은 이 공간의 4층에 위치한다. 직원 개개인의 아바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직방이 위치한 사무실로 올라간 후 책상에 앉아 일하거나 미팅룸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서로 얼굴만 쳐보다는 줌 화상회의와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고 가까이 가야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도 들린다. 메타버스 아바타가 보는 각도는 대개 1인칭 시점이고, 평면이 아닌 입체적(3D)로 보인다. 아바타가 서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캐릭터가 고정된 가상세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직방 관계자는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이랑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메타폴리스는 현실적인 공감각을 적용해 동료에게 다가가야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 사무실처럼 같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동료들과는 아바타로 티타임도 가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메타버스 아바타는 상호 반응… 완성도는 숙제최근 직방에 입사한 한 직원은 “100% 원격근무라고 해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사실상 오프라인 오피스를 그대로 가상 공간에 옮겨놓은 식이라 적응에 문제가 없었다”며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고, 동료와 커뮤니케이션할 때 드는 시간·에너지 등 유·무형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니까 업무 효율성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바타의 눈이 마주치면 화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더 많은 기술이 접목돼야 메타버스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완성도가 높은 메타버스는 수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직방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메타폴리스 4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다른 기업이 체험할 수 있도록 ‘분양’할 계획이다. 현재 분양가는 책정되지 않았고, 유료화 계획은 당분간 없다. 가상 공간이라고 한 층에 무한대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대 300명이 들어갈 수 있다. 500~600명 규모의 기업이 메타폴리스를 쓰게 되면 2개 층을 써야 한다. 실제 오프라인의 물성(物性)을 메타버스에 그대로 구현해 몰입감을 높였다. 이런 메타폴리스에 롯데건설이 지난달 16일 ‘입주’하겠다며 직방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메타폴리스에 롯데건설 공간을 만들고 고객과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고객은 아바타로 가상 견본주택을 방문하고 분양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 건설업체가 메타버스를 활용한 프롭테크 활성화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는 “이번 협약을 통해 롯데건설이 건설업계에서 메타버스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게 됐다”며 “직방이 보유한 3D와 가상현실(VR) 등 프롭테크 기술을 활용해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반영해 지속 가능한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롯데건설은 또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인 SK JUMP를 활용해 홍보 서포터즈 발대식을 가졌다. 지난달엔 주니어보드 역시 ‘게더타운(Gather Town)’이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정기회의를 진행했다. ●메타버스에 진심인 롯데건설·SK에코플랜트SK에코플랜트(구 SK건설)가 이달 분양 예정인 ‘달서 SK뷰(달서 SK VIEW)’ 아파트에서 직방과 함께 가상현실(VR)을 통한 모바일 모델하우스를 준비하고 있다. SK 에코플랜트 관계자는 “그래픽을 통해 모바일에서도 좀 더 구체적인 각도와 시점에서 모델하우스 관람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SK 에코플랜트는 네이버제트(Z)가 운영하는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인 제페토 등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해 SK 에코플랜트 맵을 구축하는 작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방 관계자는 “메타버스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제주도나 해외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다”며 “실제로 최근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면서 근무하거나 고향에 내려가는 직원 사례도 생겼다”고 전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건설 부동산 기업들의 첨단화가 어디까지 갈지 주목된다.
  • 홍성룡 서울시의회 반민특위 위원장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환영”

    홍성룡 서울시의회 반민특위 위원장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환영”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의 영웅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가 올해 광복절을 맞아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청산리 대첩 승리에도 기여한 홍 장군은, 1921년부터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해주에 정착했다. 하지만 옛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탓에 1937년,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한번 거처를 옮겨야 했다. 홍 장군은 고려인 극장의 수위로 여생을 보내다가 조국의 독립을 불과 2년 앞둔 1943년, 낯선 땅에서 유족도 없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장군 유해 봉환 소식에 대해 서울시의회 친일반민족행위청산 특별위원회 홍성룡(더불어민주당․송파3) 위원장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으로 독립운동과 3·1운동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계기 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어 홍 위원장은 “홍 장군은 대한독립군을 편성하고 지휘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영웅적인 인물”이라면서, “민족정기 선양, 국민 애국심 고취, 고려인의 민족정체성 함양,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적을 새로이 인정받아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 훈장을 받게 돼 이번 유해 봉환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한, 홍 원장은 광복 76주년을 맞아 “전국광역의회 중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한 서울시의회의 반민특위 활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돼 일제잔재 청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 세대가 친일반민족행위·일제잔재를 완벽하게 청산하지 못하면 광복직후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또다시 다음 세대에게 불행한 역사를 넘겨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위원장은 “올해를 일제잔재·친일반민족행위 청산의 원년으로 만들어 극일을 완성함으로써 진정한 국민통합과 웅대한 역사발전을 이룩하자”고 강조했다.
  •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아버지 폭력 피해 도망다니다 성폭행 난무하는 ‘지옥원’으로...40년간 말 못한 한[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달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폭력·눈칫밥 도망 연속의 유년시절...종착지는 형제복지원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해, 작은집 눈칫밥을 피해, 보육원 선배들의 기합을 피해···. 박배용(59·가명)씨의 유년시절은 도망의 연속이었다. 친아버지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작은어머니댁으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박씨는 불청객이었다. 10살짜리 꼬마도 자신이 먹고 있는 게 눈칫밥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박씨는 그 집을 나와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다 결국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불과 13살이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도 박씨는 축구부 선배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결국 한밤 중 보육원 지붕을 가로질러 극적으로 탈출했고, 무작정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부산역에서 마주친 경찰은 다짜고짜 박씨를 탑차에 태워 형제복지원에 넘겼다. 어린 나이 폭력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1976년 박씨가 도달한 곳은 가장 끔찍한 ‘지옥원’이었다. 이른바 ‘칼각도’로 경례를 하지 못하면 죽도록 맞았다. 식사는 ‘쓰레기 된장국’이라고 할 정도로 형편없이 나왔고, 이마저도 시간제한이 있어 제대로 씹지 못하고 삼켰다. 가장 견디기 괴로운 것은 당시 소대장이 일삼은 성폭행이었다. 소리를 내면 죽여버리겠다는 소대장의 협박에 박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살아남을 길은 탈출뿐이었다. 형제복지원에 잡혀간 지 3년쯤 지난 1979년, 박씨는 다른 4명의 원생과 화장실 옆 흙벽에 몰래 물을 묻혀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내 탈출구를 만들었다. 탈출구를 빠져나온 박씨는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뛰어 기차에 탑승했다. 그렇기 지옥원을 탈출했다. 그 후 4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박씨는 자신이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혼자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기억은 박씨가 평생을 피해 다녔던 폭행의 굴레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 가족에게 손찌검을 했고, 결국 아내와 헤어졌다. 박씨는 현재 술과 정신과 약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을 탈출하고서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다는 박씨는 진술서를 쓰기위해 과거의 아픔을 다시 들여봤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 지금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가.“ 박씨는 국가에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 등은 다듬어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배용 진술내용: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작은 집에서 생활하던 중 어린 맘에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을 먹는 것이 싫어 국민학교 3학년 때 가출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하다 남대문 근처에서 서울 소년의집에 잡혀 들어갔을 때가 13-14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의집에서 5학년으로 편입되어 축구부에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소년의집 축구부에서 선배의 기합과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밤에 지붕 위로 올라가 탈출했을 때가 14~15살이었을 겁니다. 다시 잡혀가면 또 맞을 것 같아서 친구와 멀리 떠나자고 간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얼마간 생활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부산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부산역에서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경찰이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기에 서울 소년의집으로 보내질까봐 “서울 ○○동 작은집에 살았고 ○○국민학교를 3학년까지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 이름과 작은아버지 연락처를 분명히 말하고 “작은집에 살다가 작은어머니의 눈칫밥이 싫어 잠시 가출했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파출소 순경이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기 서울 가는 기차를 태워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탑차 같은 것이 오더니 건장한 어른 2~3명이 저를 차에 태웠습니다. 큰 철문을 지나 끌려간 곳에 이미 다른 곳에서 끌려온 수많은 사람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연병장에서 줄을 서있다가 그곳이 형제복지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가 1976-1977년일 겁니다. (소년의집에 제 기록이 1975-1976년도의 도망자 명단에 있습니다.) 형제원 입소하자마자 몽둥이질···성폭행도 난무한 ‘지옥원’ 형제복지원에 들어가자마자 “앉아 일어서”를 시키더니, 바로 몽둥이로 때리고 군대식으로 기합을 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날 하루는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옷을 벗기고 소지품을 모두 압수한 뒤 머리도 박박 밀습니다. 10소대인지 11소대인지 부정확하지만 아동소대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동소대에 배치되었는데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더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 소대장은 어느날 밤 제게와 “자그마한 키에 서울 말씨를 쓰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면서 옆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겁을 잔뜩 먹어서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반항하거나 조용히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구강성교와 성폭행은 계속됐습니다. 이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침묵하고 버티며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말이 복지원이지 내가 겪은 최악의 지옥원이였습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도 많았는데 한 명이 잘못하면 단체 기합을 받았습니다. 일명 ‘나룻배’, ‘오토바이’, ‘한강철교’, ‘풍차돌리기’ 등의 기합을 받았는데 ‘원산폭격’(바닥에 머리 박고 열중쉬어 자세)이 코 골며 잠잘 수 있는 제일 편한 기합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하는데, 처음에는 칼경례를 못해 죽도록 맞았습니다. 밥은 쓰레기 된장국에 생선(쥐고기)을 넣고 끓인 형편없는 음식이 나왔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죽지 않으려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나마 많이만 주면 고맙다고 먹어야 했습니다. 밥도 시간 내로 먹어야 하기에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입에 넣고 삼켜야만 했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60살이지만 사회에서도 밥을 씹지 않고 그냥 오물오물 삼킵니다. 이것도 트라우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도 하고 갑상선암과 림프절암에도 걸려서 매일 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탈출 성공했지만 폭력이 폭력을 낳아... 아내와 이혼, 극단적 생각도형제복지원을 탈출한 뒤 배운 것이 없으니 공장과 중국집 배달을 하다 한식 주방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이 서른 살에 가정을 이뤄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에서 ’빨리빨리‘만 배워서인 분노조절장애가 생겨 시시때때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났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 아내와 10년만에 합의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전아내에게 갔고, 딸은 한부모 가족 수급자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나이를 먹고 직장 근처로 나갔습니다. 혼자 생활하며 매일 술에 찌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 병원에 갔는데 현재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며 원장님이 약을 지어주셨습니다. 이 약에 수면유도제가 들었는지 약을 먹으면 사람이 착 가라앉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시 형제복지원 얘기로 돌아가자면 당시 소대장이 친구와 형, 동생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호랑이, 드라큘라, 뺑코, 미사일, 깜상, 이노키, 찐따1, 찐따2, 땅콩, 서울내기···. 전 서울 출신이라 ’서울내기 다마내기‘로 불렸던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면서 살길은 오직 탈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당시 원생 4명이 1979년쯤 화장실 옆 흙 벽돌에 몰래 물을 적셔서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낸 뒤 날을 잡아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뒷산은 험하고 풀숲이 깊어서 사람이 들어가면 보이지 않고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잡혀가면 맞아 죽는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부산역까지 갔습니다. 역 앞에 파출소가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고발해야 했겠지만, 경찰이 우리를 잡아서 형제복지원에 보냈기 때문에 역 뒤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임승차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자식에게도 말 못한 아픈 기억···원통한 한 누가 풀어주나 그리고 나서는 한 20년 동안 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네요. 지은 죄가 아무 것도 없는데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것을 저 자신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에 편견이 심해서 육십 평생을 지인들과 자식들에게도 말 못할 아픈 사연으로 여기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과연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설사 중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도 나올 날이 정해져 있는데, 형제복지원은 죽어서 뒷산에 묻히거나 운 좋게 집에 연락이 닿아 귀가하는 게 아니면 탈출만이 살길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무부 훈령 410호인지 뭔지 국민을 위한 법도 아닌 법을 만들어 무고한 시민을 불법 감금시키고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무임금에 폭력을 행사하는 법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부랑인도 인권이 있습니다. 집과 부모님, 친척이 있는 사람조차 옷을 허름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에 폭행, 중노동, 기합, 성폭행 등 수없이 많은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를 당했습니다. 신고도 못 하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희망도 없이 살아야 했던 원생 중에는 맞아서 사망한 사람도 513명(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만)이나 있지요. 대한민국 법조인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역지사지라고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내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형제복지원 같은 곳에서 인권 유린에 성폭행에, 매일 맞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곳에서 기약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끔찍하지 않을까요? 보통 다녔던 학교에 연락만 해도 다들 고향에 갈 수 있었을텐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돈으로 보였을 것이며 노예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1987년에 사건화되었을 때, 박인근 원장을 붙잡아 놓고도 검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당시 부산시장, 검찰총장 등에게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공개 사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형제복지원에서 맞아 죽은 513명 원생들의 원통한 한을 어느 누가 풀어줄 건가요? 그 당시 정부에 협조해 부랑인이라고 형제복지원에 신고한 부산 시민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죄 없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붙잡아 가서, 폭행과 기합, 성폭행, 심지어 공식 집계로만 513명의 죽음, 그 이상으로 많은 불법 감금과 노동 착취가 일어났습니다. 수백억, 수천억을 번 박인근 원장은 그 돈으로 호주에 골프장을 2개나 운영합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는 국가가 어떻게든 환수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있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보상을 해야만 합니다. 매일 맞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바위틈에 초콜렛과 같은 흙을 파먹고 살아남았습니다. 자유를 찾아 끝없이 노력해 탈출에 성공하는 영화 ‘빠삐용’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식으로 탈출했는데’ 싶어 제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한때는 있었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힘들었네요. 이런 고통을 그 당시 정치인, 검찰총장, 경찰공무원 및 부산시청 공무원들은 알기나 할까요?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지요. 요즘 들어 옛일을 생각하며 글로 표현하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죽고 싶은데 더욱 가슴이 아프고 죽고 싶네요. 유년 시절의 아픔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는 외국 트라우마 치유 학자의 말이 있습니다. 어느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건가요? 민주주의가 뭔가요? 공산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대한민국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홍범도 유해 봉환’ 특사단 14일 출발...공군 ‘시그너스’ 투입

    ‘홍범도 유해 봉환’ 특사단 14일 출발...공군 ‘시그너스’ 투입

    황기철 보훈처장 특사 임명영화배우 조진웅씨도 동행14일 추모식 후 15일 귀국국가보훈처는 100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대통령 특별사절단이 14일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고 13일 밝혔다. 특사에는 황기철 보훈처장이 임명됐다.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영화배우 조진웅씨는 대표단 자격으로 동행한다. 투입되는 공군 특별수송기는 다목적 공군급유수송기인 KC330(시그너스)로 전해졌다. 공군은 전투기 급유는 물론 국외 재해·재난 때 국민 수송, 해외 파병부대 화물·병력 수송, 국제 평화유지 활동 지원 등의 임무 수행을 위해 2019년 1호기를 도입했다. 현재 4대를 운용 중이다. 전폭 60.3m, 전장 58.8m, 전고 17.4m로, 연료탱크와 후미의 급유 장치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여객기와 동일해 최대 300여 명의 인원과 47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최대 속도는 마하 0.86, 최대 순항고도는 약 1만 2600m이며, 최대 항속 거리는 약 1만 5320㎞다. 지난해 6월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던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임무를 수행한 바 있다. 최근 대규모 집단감염으로 조기 귀환한 청해부대 34진의 귀국 임무에도 투입됐다. 한편 특사단은 14일 오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도착한 후,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진행되는 추모식에 참석한다. 홍범도 장군 유해는 특사단과 함께 광복절인 15일 한국에 도착하며, 16~17일 이틀간 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홍범도 장군, 100년 만에 고국 품에

    늦어서 죄송합니다… 홍범도 장군, 100년 만에 고국 품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의 가장 빛나는 장면인 봉오동 전투를 이끈 홍범도(1868~1943) 장군이 100여년 만에 고국 땅에 돌아온다고 청와대가 12일 밝혔다. 유해는 15일 도착하며 16~17일 이틀간 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유해 봉환은 16∼17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에 맞춰 성사됐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최진동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19사단 추격대대를 궤멸(전사자 157명)시키는 등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 승리를 거뒀다. 1921년 연해주로 옮겨 간 그는 ‘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소련군의 일원이 됐다. 해방 후 반공을 국시로 한 남측에서 배척당한 계기가 됐다. 그는 평양 출신임에도 오랜 세월 북측에서도 김일성의 항일행적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소외당했다. 1923년 군복을 벗고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던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밀려나 크즐오르다에 안장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4월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카자흐스탄 정부가 협조를 약속해 실무협의를 진행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맞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 와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 대통령은 17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실질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 박경미 대변인은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 대상국으로, 신북방정책 추진의 핵심 협력국”이라며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 김현미 ‘연천 땅 의혹’ 경찰 조사 받는다

    김현미 ‘연천 땅 의혹’ 경찰 조사 받는다

    ‘연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시민단체인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지난 6월 국민신문고에 김 전 장관을 농지법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한 사건과 관련, “사실관계 확인이 끝나는 대로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김 전 장관과 배우자, 남동생, 여동생 등 모두 4명이다. 경찰은 지난 6월 15일 고발인 조사 후 문제의 연천 농지를 답사하고 매입 과정과 농업 경영 여부, 가족들에게 매도한 과정 및 대금 지급 여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명의자로 돼 있는 사건 관련자들을 우선 소환조사할 예정이고 이후 김 전 장관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지난 6월 10일 국민신문고에 김 전 장관·배우자·남동생·여동생을 농지법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김 전 장관은 2012년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2483㎡ 규모의 농지를 매입했지만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는 등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이 땅에 지은 주택에 대해서는 ‘명의신탁’ 의혹도 불거졌다. 해당 주택은 2015년 김 전 장관 남편의 소유였다가 3년여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 1가구 1주택’ 방침에 따라 2018년 매각했으나 매입자가 김 전 장관의 남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20년에 다시 매매했으나 이번에는 여동생이 매입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실제 농사를 지었다고 해명했다. 현재 김 전 장관의 배우자가 전세로 살고있다.
  • 초라함만 남은 손기정 옛집, 재개발 임박… 사라질 위기

    초라함만 남은 손기정 옛집, 재개발 임박… 사라질 위기

    손 선수, 전통 지키려 지은 용산 한옥쓰레기 무단 투기… 담벼락엔 낙서만재개발 땐 안암동 집터처럼 헐릴 수도“최대한 보존하고 日 역사왜곡 맞서야”시세 35억 추정… “서울시 매입 검토”“손기정 선수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민족을 사랑했던 그의 흔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서울 용산구 원효로 83길에 있는 전통 한옥. 현대식 주택과 상가들 사이에서 홀로 옛 기풍을 지키고 있는 이곳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고개 숙인 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 선수가 살았던 집이다. 용산구는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 집을 ‘근현대 역사문화명소 100곳’으로 지정하고 손 선수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벤치를 설치했다. 하지만 방문객이 많다는 민원 때문에 구는 올해 6월 설치물을 철거했다. 12일 찾아간 손 선수의 집에선 한국 마라톤 전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담벼락의 지저분한 낙서와 쓰레기 무단 투기 경고문이 초라함을 더했다. 이마저도 민간 재개발이 추진되면 집 자체가 헐릴 가능성이 크다. 원효로1가 재개발 추진 준비위원회는 이날 기준 70.5%의 주민 동의를 얻어 다음달 서울시에 도시정비형 재개발(옛 역세권시프트) 지구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손 선수의 옛집을 포함한 일대 약 10만㎡의 땅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준비위 관계자는 “손 선수의 집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아니어서 재개발 지구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손 선수가 지도자의 길에 나선 1940년대에 살았던 성북구 안암동 집터도 1980년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면서 헐렸다. 손 선수는 이 집에서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창설하고 제자들을 지도하며 한국 마라톤의 기틀을 닦았다. 손 선수는 이후 중구 장충동을 거쳐 용산구에 한옥을 지었다. 유족에 따르면 손 선수는 직접 대목수들에게 의뢰해 집의 설계부터 꼼꼼히 챙겼다. 양옥 대신 한옥을 고집한 것도 우리 것을 소중히 여겼던 그의 뜻이었다고 한다. 손 선수는 1950년대 이 집에서 4년을 살면서 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이자 사위인 이창훈을 지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손 선수의 후손들은 한옥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되길 바란다. 지난 8일 폐막한 2020 도쿄올림픽 개막 전 일본이 올림픽 박물관에 손 선수를 자국 선수로 표현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려면 손 선수의 흔적을 최대한 지키고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외손자인 이 사무총장은 “재개발 때 서울시에 기부채납되는 부지 중 공원으로 조성될 곳에 손기정의 집을 옮겨 손기정전시실로 활용하면 역사성을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재개발 허가 조건에 이 같은 방안을 명시해 보존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나 용산구가 손 선수의 집을 매입해 문화재로 보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용산구는 2018년 한옥 매입을 위해 소유자와 접촉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무산됐다고 전했다. 집의 토지 면적은 약 165㎡로 현재 3.3㎡당 7000만원의 시세가 형성돼 최소 35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성배 서울시의원은 “역사성이 있는 한옥은 서울시에서 문화유산으로 가꿔 시민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와 논의해 매입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의료법 위반’ 윤석열 장모, 서울구치소로 이감

    ‘의료법 위반’ 윤석열 장모, 서울구치소로 이감

    의정부구치소에 구속수감 중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74)씨가 최근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지난달 2일 선고 직후 법정 구속된 최씨는 의정부교도소 내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지난 9일 서울구치소로 옮겨졌으며 이감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씨는 의료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2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의료인이 아닌데도 동업자 3명과 의료재단을 설립한 뒤 2013년 2월 경기 파주시에 요양병원을 개설·운영한 혐의다. 2013년 5월∼2015년 5월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도 적용됐다. 최씨는 이 사건과 별도로 통장잔고증명서 위조 등의 혐의로 의정부지법에서 재판받고 있으며 이날 4차 공판에 출석하고자 서울교정본부 소속 호송차를 타고 왔다. 한편,이날 재판에는 최씨의 전 동업자 안모(58)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안씨는 검찰과 최씨 변호인의 질문에 기존 주장대로 “최씨가 먼저 접근했고 범행을 주도했다”는 취지로 답변했으며 상당 부분 기억하지 못했다. 반면 최씨는 통장잔고증명서 위조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정보를 취득하는 데 쓰겠다고 해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최씨와 공범 관계로 함께 기소됐으며 다른 재판부가 심리 중이다.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다가 취소하는 과정에서 합의부로 이송됐다. 최씨와 안씨는 2013년 4∼10월 경기 성남시 도촌동 땅 매입 과정에서 안씨와 공모해 은행에 347억원을 예치한 것처럼 통장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도촌동 땅을 사들이면서 안씨의 사위 등 명의로 계약하고 등기한 혐의(부동산실명법 위반)도 받고 있다. 다음 재판은 9월 30일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 [단독] ‘마라톤 영웅’ 손기정 한옥 사라질 위기…“보존 방안 찾아야”

    [단독] ‘마라톤 영웅’ 손기정 한옥 사라질 위기…“보존 방안 찾아야”

    “손기정 선수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민족을 사랑했던 그의 흔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서울 용산구 원효로 83길에 있는 전통 한옥. 현대식 주택과 상가들 사이에서 홀로 옛 기풍을 지키고 있는 이곳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고개 숙인 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 선수가 살았던 집이다. 용산구는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 집을 ‘근현대 역사문화명소 100곳’으로 지정하고 손 선수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벤치를 설치했다. 하지만 방문객이 많다는 민원 때문에 구는 올해 6월 설치물을 철거했다. 12일 찾아간 손 선수의 집에선 한국 마라톤 전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담벼락의 지저분한 낙서와 쓰레기 무단 투기 경고문이 초라함을 더했다. 이마저도 민간 재개발이 추진되면 집 자체가 헐릴 가능성이 크다. 원효로1가 재개발 추진 준비위원회는 이날 기준 70.5%의 주민 동의를 얻어 다음달 서울시에 도시정비형 재개발(옛 역세권시프트) 지구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손 선수의 옛집을 포함한 일대 약 10만㎡의 땅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준비위 관계자는 “손 선수의 집은 문화재 보존지역이 아니어서 재개발 지구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손 선수가 지도자의 길에 나선 1940년대에 살았던 성북구 안암동 집터도 1980년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면서 헐렸다. 손 선수는 이 집에서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창설하고 제자들을 지도하며 한국 마라톤의 기틀을 닦았다.손 선수는 이후 중구 장충동을 거쳐 용산구에 한옥을 지었다. 유족에 따르면 손 선수는 직접 대목수들에게 의뢰해 집의 설계부터 꼼꼼히 챙겼다. 양옥 대신 한옥을 고집한 것도 우리 것을 소중히 여겼던 그의 뜻이었다고 한다. 손 선수는 1950년대 이 집에서 4년을 살면서 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이자 사위인 이창훈을 지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손 선수의 후손들은 한옥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되길 바란다. 지난 8일 폐막한 2020 도쿄올림픽 개막 전 일본이 올림픽 박물관에 손 선수를 자국 선수로 표현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려면 손 선수의 흔적을 최대한 지키고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외손자인 이 사무총장은 “재개발 때 서울시에 기부채납되는 부지 중 공원으로 조성될 곳에 손기정의 집을 옮겨 손기정전시실로 활용하면 역사성을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재개발 허가 조건에 이 같은 방안을 명시해 보존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나 용산구가 손기정의 집을 매입해 문화재로 보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용산구는 2018년 한옥 매입을 위해 소유자와 접촉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무산됐다고 전했다. 집의 토지 면적은 약 165㎡로 현재 3.3㎡당 7000만원의 시세가 형성돼 최소 35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성배 서울시의원은 “역사성이 있는 한옥은 서울시에서 문화유산으로 가꿔 시민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와 논의해 매입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아프리카 외교 속도내는 한국, 외교차관 3개국 방문

    아프리카 외교 속도내는 한국, 외교차관 3개국 방문

    14일 모로코·세네갈·나이지리아 방문코로나 이후 외교차관 첫 아프리카행거대 단일시장 부상..“기대 부응해야”‘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를 놓고 주요국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아프리카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교부 고위급 인사들이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외교부 1차관이 북·서아프리카 핵심 국가들을 찾는다. 12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종건 1차관은 14일부터 21일까지 모로코, 세네갈, 나이지리아 등 3개국을 방문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차관급이 아프리카를 찾는 것은 처음이다. 우선 첫 방문지인 모로코는 유럽·아프리카 연결 통로이자 삼각 개발협력의 토대로 주목받는 국가다. 아프리카 최초 상주 대사관 개설국으로 내년에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정치 체제가 안정돼 있고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우수해 역내 제조업의 선두 국가로 꼽힌다. 자동차, 항공 등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이자 차기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이기도 하다. 최 차관은 세네갈 방문 시 오는 12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한·아프리카포럼에 외교장관 참석을 요청할 계획이다. 나이지리아는 사하나 이남 최대 경제대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기업의 건설 수주액이 150억 달러에 달한다. 외교차관으로선 첫 방문이다. 기니만 해양안보 협력 등 협의도 예정돼 있다. 과거 아프리카는 남북 대결의 장으로 이용돼 오다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대결 의미가 약화되면서 아프리카 외교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출범 등 거대 단일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도 아프리카 국가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프리카는 평균 연령이 20세를 조금 넘을 정도로 가장 젊은 대륙이기도 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대가 커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무궁화·애기땅빈대 활용한 기능성 제품 개발

    무궁화·애기땅빈대 활용한 기능성 제품 개발

    나라꽃 무궁화의 추출물이 뼈 건강에 유용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전통지식에 근거해 ‘애기땅빈대’를 활용한 기능성 화장품이 이달 출시되는 등 식물의 자원화가 성과를 내고 있다.12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꽃잎 색이 붉은 무궁화 품종인 ‘난파’의 가지 추출물에서 골다공증이나 류머티즘 관절염 등 뼈 질환 예방·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생쥐에서 추출한 대식세포에 처리해 파골세포로의 분화 억제력을 분석한 결과 난파 가지 추출물(10㎍/㎖)이 42%를 감소시켰다. 고농도(100㎍/㎖)에서는 감소율이 94%에 달했다. 가지치기로 버려지던 부산물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득원으로 주목된다.한편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자생식물인 ‘애기땅빈대’ 추출물을 활용한 기능성 화장품을 이달 출시한다. 애기땅빈대는 선조들이 무좀 등에 사용한 식물로 땅 위에 붙어 퍼진 잎 모양이 빈대처럼 보여 이름이 붙여졌다. 전통지식에 착안한 유용성 연구를 통해 자외선과 미세먼지로 손상된 피부 세포장벽을 복원하고 두드러기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확인했다. 생물자원관은 애기땅빈대의 소재 표준화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대량 재배 조건 등을 마련한 뒤 지능형 농장(스마트팜) 시설을 활용한 재배를 지원할 계획이다.
  • 김현미 전 장관 경찰에 불려 나가나…경찰, ‘연천 부동산 의혹’ 곧 조사 예정

    김현미 전 장관 경찰에 불려 나가나…경찰, ‘연천 부동산 의혹’ 곧 조사 예정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연천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곧 경찰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시민단체인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지난 6월 국민신문고에 김 전 장관을 농지법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한 사건과 관련, “사실관계 확인이 끝나는 대로 관련자들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김 전 장관과 배우자, 남동생, 여동생 등 모두 4명이다. 경찰은 지난 6월 15일 고발인 조사 후 문제의 연천 농지를 답사하고 매입 과정, 농업경영 여부, 가족들에게 매도한 과정 및 대금 지급 여부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구체적인 내용은 수사 중이라 알려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지난 6월 10일 국민신문고에 김 전 장관·배우자·남동생·여동생을 농지법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기북부경찰청은 해당 사건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배당해 수사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2012년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2483㎡ 규모의 농지를 매입했지만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는 등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또 이 땅에 지은 주택에 대해서는 ‘명의신탁’ 의혹도 불거졌다. 해당 주택은 2015년 김 전 장관 남편의 소유였다가 3년여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 1가구 1주택’ 방침에 따라 2018년 매각했으나, 매입자가 김 전 장관의 남동생으로 알려졌으며, 2020년 다시 매매 했으나 이번에는 여동생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김 전 장관의 남편이 여전히 전세로 이 집을 사용 중이다. 이와 관련 김 전 장관은 그동안 “농사를 실제 지어 왔으며 다른 사람에게 매매가 잘 안돼 동생에게 매각하는 등 부동산 계약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해왔다.
  • 깊이만 5m… 대구 1호선 안심역 인근 거대 싱크홀

    깊이만 5m… 대구 1호선 안심역 인근 거대 싱크홀

    대구 동구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 인근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4~6m, 깊이 5m 규모의 대형 땅 꺼짐(싱크홀)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관계 당국은 도로를 통제하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12일 동구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50분 동구 안심로 102길 11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안심비축기지 인근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 싱크홀로 아스팔트 도로가 내려앉고 수도배관이 노출됐다. 경찰은 현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보행자와 운전자 통행을 차단한 후 임시복구작업을 펼치고 있다. 페이스북 ‘대구 실시간’ 계정에 올라온 현장 사진에는 인도와 횡단보도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인도에 세워져 있던 가로등이 구덩이에 파묻힌 모습이 보인다. 대구시는 관계기관과 함께 싱크홀 발생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 중이다.
  • 영화 ‘기생충’ 속 가구들과 만남

    영화 ‘기생충’ 속 가구들과 만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1 밀라노 한국공예전을 다음달 5~10일 밀라노디자인위크 기간에 이탈리아 밀라노 복합문화공간 팔라초 리타와 온라인으로 연다. 전시 주제는 ‘사물을 대하는 태도’다. 공예가 인간·사물·자연에 상호 매개되고 결합된 광범위한 관계의 총체라는 개념을 담았다. 158㎡(48평) 공간에 금속, 도자, 섬유, 유리, 목, 옻칠 등 모두 21명 작가의 작품 126점을 세 개의 공간에 나눠 전시한다. 주 전시공간인 ‘대지의 사물들’은 하늘과 땅,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입체 공예 작품들로 선보인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 박 사장 집에 등장했던 박종선 작가의 테이블과 조명, 스피커가 나온다. 두 번째 공간 ‘반려기물들’은 인간, 사물, 자연의 수평적 관계와 어울림을 표현한 장신구 작품들로 구성했다.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섬세한 붓 터치와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장신구로 표현하는 정호연 작가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좌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간인 ‘생활의 자세들’은 흑유 도자기로 유명한 김시영 작가 작품 등이 관객을 맞는다. 올해로 9회째인 밀라노 한국공예전은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으로만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술감독을 맡은 강재영 맹그로브아트웍스 대표는 “사물을 대하는 한국 공예의 윤리적·사회적 실천 해법을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 헌신·희생으로 이뤄낸 광복…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땅과 이름

    헌신·희생으로 이뤄낸 광복…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땅과 이름

    제76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항일 운동가들의 삶을 통해 독립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방송들이 시청자를 찾아간다.KBS 1TV는 15일 오후 7시 55분 특집 다큐멘터리 ‘옥바라지, 그녀들의 독립운동’에서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있던 옥바라지 골목을 조명한다. 지금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 사라졌지만, 이 골목은 일제강점기 감옥 안과 밖을 필사적으로 이어 준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던 곳이다. 일제 탄압의 상징으로 독립투사 9만여명이 갇힌 서대문형무소는 수감자들의 식사량을 형량과 노역 강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눴다. 독립운동으로 수감된 사상범은 5등급 이하로 한 끼에 270g 이하의 음식만 제공됐다. 성인 일일 권장 칼로리의 3분의1 수준의 소량이다. 미결수는 식사와 의복을 제공받지 못해 옥바라지가 필수였다.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끊으면 독립에 몸을 바친 이들의 목숨줄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감옥밥 파는 집’, ‘형무소 피고인 차입소’ 등 간판이 즐비한 옥바라지 골목이 생겨난 배경이다. 15일 방송하는 비대면 콘서트 ‘해양영토 더 큰 대한민국’은 선조들이 지켜 온 해양영토의 소중함을 공연을 통해 상기하는 특별 기획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실내 무대 외에도 영토 동쪽 끝 독도, 남쪽 끝 마라도, 서쪽 끝 격렬비열도 등 해양영토 세 곳을 연결한 야외무대도 펼친다. 송창식, 함춘호, 전인권 밴드, 옥주현, 윤하, 포레스텔라, 레떼아모르, 고영열, 김준수, 아스트로, 이날치 등 뮤지션들이 합류했고 뮤지컬 배우 정성화와 그룹 위아이의 김요한이 해양영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을 소개하는 프레젠터로 활약한다.EBS는 ‘지식채널e-광복절 특집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방송한다.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생애를 다룬 1부에 이어 19일 0시 10분 2부에서는 ‘조선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치’를 마련했다. 일본인 소다가 조선을 위해 헌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그는 1905년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고 석방 운동을 벌였다. 일본인들의 비난과 조선인들의 의심 속에도 조선의 고아 1000여명을 자식처럼 돌보며 헌신했다. BBS 불교방송은 14일 나라를 지키려 투신한 불교계 인사들을 연이어 조명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일생을 독립운동과 민주화에 헌신한 불교계 대표 독립운동가 김성숙 선생,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이자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킨 용성 스님,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활약한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방송한다.
  • 그냥 지나쳤던 독립성지 이번 여름엔 꼭!

    그냥 지나쳤던 독립성지 이번 여름엔 꼭!

    서울 외곽에도 덜 알려진 독립운동의 성지들이 있다. 등산이나 피서, 하다못해 업무 때문에라도 한번쯤 지나쳤을 곳에 선열들의 공간이 숨겨져 있다.봉황각부터 찾는다. 3·1만세운동을 이끈 의암 손병희(1862∼1922) 선생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지은 교육·수련시설이다. 1912년 세워졌으니 내년이면 꼬박 110년이 되는 건물이다. 현재는 천도교 의창수도원 건물 중 하나다. 박충남 수도원장에 따르면 당시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은 3만평에 이르는 땅을 800원을 주고 매입했다고 한다. 당시 ‘경성’(일제강점기 서울을 부르던 이름)의 규모로 볼 때 의암이 사들인 북한산 일대는 인가가 거의 없는 심산유곡이었을 것이다. 봉황각과 이웃한 도선사도 당시엔 도선암이란 산중 암자였다고 한다. 의암이 이처럼 외딴곳에 수련시설을 지은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가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3·1운동을 이끈 33명의 지도자 가운데 15명이 봉황각에서 수학했고, 봉황각 출신 독립투사 483명이 나라 곳곳에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천도교 쪽에선 한발 더 나가 ‘3·1운동의 발상지’로 추앙하는 분위기다. 봉황각 조성 당시엔 의친왕 이강(1877~1955)이 자주 의암을 찾았다고 한다. 박 원장은 “두 분이 함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항일 투쟁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벌였을 것”이라며 “봉황각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벌어진 건청궁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것도 의친왕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원장 등 천도교 측의 주장이긴 하나, 역사학계에서 한번쯤 짚어 볼 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의친왕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친왕은 고종과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5남이다. 일본에서 교육받은 스무 살 아래 동생 영친왕에게 황태자 지위를 내주고, 말년에 영양실조 상태에서 죽음을 맞은 비운의 왕족으로 알려져 있다. 의친왕은 한때 주색에 빠진 파락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데 이는 자신에게 쏠리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조조의 장막 아래 비굴한 겁쟁이로 지냈던 삼국지 유비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광복 이후에도 쉬 바뀌지 않았던지, 그가 영양실조 등으로 죽음을 맞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의친왕이 1919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긴 글이 인상적이다. “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에 몸바치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비록 중국 안동역(현 단둥역)에서 체포되며 망명 시도는 물거품이 됐지만, 이후에도 그는 일제의 일본행 제안이나 단발령을 거부하는 등 일제와 대립각을 세우며 지냈다. 봉황각은 110년 된 건물치고는 상당히 말끔한 편이다. 그동안 한국전쟁 등 변고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자주 썼던 ‘봉황’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현판은 당대의 명필 위창 오세창이 썼다고 한다. 봉황각 외형은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건청궁 내 곤녕합의 구조와 흡사하다. 봉황각 조성 때 의친왕의 의견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천도교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건물 내부엔 의암 초상화와 3·1운동을 숙의하는 벽화 등이 있다. 봉황각 옆의 기와집은 의암이 실제 기거했던 공간이다. 박 원장에 따르면 의암은 이 사저에서 7년 정도 생활했다고 한다. 봉황각 바로 앞에 있는 적벽돌 건물도 무척 고풍스럽다. 1922년 지어진 천도교 중앙종리원 건물(중앙총부 본관)이다. 원래 종로에 있다가 1970년쯤 수운회관이 들어서면서 현 위치로 고스란히 옮겨 왔다. 옛 중앙총부 건물은 세계어린이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 건물이 종로에 있을 당시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이 머물며 어린이 잡지를 내는 등 어린이운동을 펼쳤다. 이제 망우리 공원으로 넘어간다.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공동묘지’였던 곳. 한데 잠든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묘지’나 ‘공원’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될, 성지 같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 등 독립지사는 물론 시인 박인환, ‘코리안 엘비스’라 불렸던 가수 차중락, 화가 이중섭, 작가 김말봉 등의 묘가 너른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도산 안창호의 묘터와 태허 유상규의 묘다. 둘의 사연은 몇 번을 곱씹어도 애틋한 감동을 안겨 준다. 태허는 도산의 비서다.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 출신의 의사였던 태허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도산의 비서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다. 그러다 인재가 필요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도산의 권고로 1924년 귀국한 그는 의사와 독립운동가의 길을 병행하다 세균에 감염돼 1936년 39세로 요절하고 만다. 둘의 사연은 2년 뒤 도산이 세상을 뜨기 전 남긴 말이 회자되며 세인의 가슴을 적셨다. “나 죽거든 내 시체를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달리 선산 가튼 데도 쓸 생각을 말고, 서울에다 무더 주오. 공동묘지에다가. 유상규군이 눕어잇는 그겻 공동묘지에다가 무더 주오.”(당시 표기법을 따름) 도산에게 태허는 죽음 이후의 세계마저 공유하고 싶은 정신적 아들이자 동지였던 거다. 유관순(1902~1920) 열사의 무덤도 있다. 다만 단독 봉분은 아니고 합장묘 형태다. 일제가 1936년 2만 8000여기에 달하는 이태원 공동묘지의 무연고 분묘를 망우리로 이전할 때 유 열사의 유해도 함께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이태원 합장묘는 공원 초입에 있어서 찾기 쉽다. 태허의 묘와 도산의 묘비는 산자락 중턱에 있어서 20분 남짓 걸어 올라야 한다. 공원 측이 조성한 ‘사잇길’이 지름길이긴 하지만 거의 등산에 가까운 수준이다. 다소 돌더라도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둘레길로 가길 권한다. 망우리 공원 주차장은 공사 중이다. 주변 주차장에 차를 두거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 인천공항 송유관 기름 유출 석 달 만에 ‘뒷북 조사’

    인천국제공항 송유관에서 항공유가 유출돼 토양오염 정밀조사가 진행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1일 인천시에 따르면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4월 26일 공항 내 급유시설 관로부분에서 유류가 새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할 중구청에 토양오염 사실을 신고 했다. 이어 새어 나온 유류가 얼마나 넓고 깊게 토양을 오염시켰는지 정밀조사를 진행중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송유관 중간중간 설치한 맨홀에서 기름냄새가 심하게 나 지난 4월~7월 초 누출지점을 찾았다”면서 “얼마나 넓고 깊게 땅이 오염됐는지는 정밀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출지점을 찾기 위한 조사대상 면적이 워낙 넓어 토양정밀조사 명령을 내리기 까지 시일이 많이 소요됐다”고 덧붙였다. 시료 채취결과 유출 지점 토양의 오염도(TPH,총석유계탄화수소)는 ㎏당 2941㎎으로 기준치(2000㎎)를 크게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천시는 인천공항 유류 유출과 지난 6월 덕적도 도우항 송유관 유류 유출 사고를 계기로 오는 16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인천전역에 있는 송유관 및 유류저장시설에 대한 전면적 관리실태 조사에 들어간다. 조사 대상 송유관은 15개소(저유시설 유류이송), 유류저장시설 613개소 등이다. 이중 도서지역에 설치된 유류저장시설은 51곳으로, 옹진군에 46곳, 강화에 5곳이 있다.
  •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 재산 7개월 만에 7억 늘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 재산 7개월 만에 7억 늘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의 재산으로 7개월 전보다 약 7억원 늘어난 약 57억원을 신고했다. 보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1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고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고 후보자의 이날 현재 재산은 모두 56억 9258만 2000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신고액 50억 2536만 9000원보다 6억 7000만원가량이 늘었다. 배우자와 공동으로 보유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182.95㎡)의 가격(공시가격)이 지난해 말 기준 28억 9500만원에서 올해 34억 600만원으로 5억원 넘게 올랐다. 그 밖의 재산 현황은 지난해 말과 거의 유사했다. 배우자가 보유한 서울 을지로6가 굿모닝시티쇼핑몰 상가 지분의 가액은 약 200만원 상승한 4505만 8000원이다. 토지는 전북 군산시 옥구읍·서수면, 충남 홍성군 홍북면 등에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임야 279㎡를 포함해 대지, 임야, 밭 등 모두 7건으로, 가액은 기존 신고액보다 200만원 적은 1억 7267만 3000원이다. 예금은 본인과 배우자가 지난해 말보다 4000만원 증가한 19억 747만원이다. 이 밖에도 2017년식 그랜저(1731만원), 2012년식 카니발(789만원)도 본인 명의로 소유했다. 후보자의 아버지인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과 어머니는 독립생계를 이유로 재산신고사항 고지를 거부했다. 이날 함께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의 재산은 32억 907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 명의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한 채(27억 5100만원)를 신고했고, 배우자를 합쳐 예금과 증권은 각각 2억 9311만원, 1억 5074만원이었다. 송 후보자는 충청북도와 경기도 남양주 등지에 땅(5582만원)과 골프회원권·리조트회원권(7500만원어치)도 소유했다. 배우자 재산으로는 전남 고흥군 땅(4344만원)과 2006년식 그랜저(331만원)가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요청안에 고 후보자에 대해 “금융·경제정책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강한 추진력과 부드럽고 온화한 리더십을 보유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송 후보자에 대해서는 “40년에 걸친 법조인 생활 동안 인권보장에 관한 확고한 신념으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힘써왔다”고 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인사청문요청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
  • “봉이 김선달이나 가능한 말”… 이재명 ‘기본시리즈’ 전방위 난타

    “봉이 김선달이나 가능한 말”… 이재명 ‘기본시리즈’ 전방위 난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11일 본경선 세 번째 TV토론회에서 난타전을 벌였다. 특히 지지율 선두인 이재명 경기 도지사의 기본시리즈(소득·주택·대출)는 다른 후보들의 주요 타깃이 됐다. 이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을 반대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추궁을 받기도 했다. 기본시리즈 3대 공약을 발표한 이 지사는 토론회에서 집중 견제를 받았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 지사의 기본주택 100만호 공약과 관련, 입지와 재원이 불투명하다며 “봉이 김선달이나 가능한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용진 의원은 “기본주택 100만호 지을 땅도 없고, 기본대출은 신용대란 대책도 없다”며 “대책도 없고 양심도 없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 전 대표는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며 이 지사에게 “비가 오면 물이 들어오는 반지하에 사는 송강호, 비를 감상하는 이선균에게 똑같이 8만원을 주는 게 정의로운가”라고 기본소득을 저격했다. 그러자 이 지사가 “송강호에게만 지원하겠다고 한다면 이선균이 세금을 안 낼 것”이라고 반박했고, 이 전 대표는 “그것은 부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재반박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으로 이 전 대표를 압박했다. 추 전 장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징역 4년 2심 판결을 거론하며 “이 지사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40명, 이 전 대표가 37명, 정 전 총리가 20명”이라며 “이분들 다 합치면 100여명이다. 이 전 대표가 내일이라도 검찰개혁 법안을 대표발의하라”고 했다. 이 부회장 가석방을 두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추 전 장관은 이 전 대표가 “이 부회장이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 바란다”는 취지로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재벌에게 또 다른 기여를 하라고 덕담했다”고 지적했다. ‘특혜도 불이익도 안 된다’는 입장을 낸 이 지사도 집중 비판을 받았다. 박 의원은 “재벌 특혜에 말 바꾸거나 침묵하는 게 이재명식 재벌개혁이고 공정인가”라고 따졌다. 지난 8일 이 지사의 네거티브 중단 선언에 대해선 정 전 총리가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벌금을 저보고 내라는 것 같아서 억울하다”며 “이재명·이낙연 후보가 네거티브 중단을 정말로 실천하겠다면 최소한 조폭 연루설 관계자들 책임을 확실히 물어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날 항소심에서 입시비리 혐의가 모두 인정된 정 교수 판결과 관련, 지도부나 당 차원의 공식논평은 없었다. 강성 당원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 4·7 재보선 참패 요인으로 꼽히는 ‘조국 논란’이 재부상하는 상황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대권주자들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지사 캠프는 논평에서 “안타깝다”며 “검찰개혁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항소심 결과는 형량을 먼저 정해 놓고 내용을 끼워 맞췄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고 했다. 정 전 총리도 “1심 형량을 유지한 것은 너무 가혹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수사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좌초시키려 한 대표사건”이라며 “매우 가슴 아픈 날”이라고 했다.
  • 남양주 이전 군부대에 3200가구 추가 공급

    경기 남양주 군부대 이전 부지에 주택 3200가구가 새로 공급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는 태릉골프장(CC)과 정부과천청사 일대 신규택지 대체부지는 이달 중 공개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수도권 주택공급 촉진 차원에서 남양주 소재 군부대 이전부지를 활용한 3200가구 규모의 부지 공급 세부 방안을 논의한다”면서 “12일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사업위탁과 개발계획을 의결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언급한 남양주 부지는 퇴계원읍 일대로 과거 육군 제2군수지원사령부 예하 15보급대·7급양대가 주둔했다. 부대가 2018년 다른 곳으로 이전해 현재는 비어 있는데, 서울과 인접한 데다 경춘선 전철(퇴계원역)과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퇴계원 나들목(IC) 등과 인접해 교통 여건이 양호하다. 이 땅 왼쪽에는 별내신도시, 아래는 다산신도시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3기 신도시인 왕숙신도시가 조성된다. 올해 주택 사전청약 물량은 기존 3만 가구에서 3만 2000가구로 확대된다. 이날 인천 계양신도시와 남양주 진접2지구 등 1차 사전청약 4333가구 접수가 마무리된 가운데 오는 10월 1만 가구(남양주 왕숙2 등), 11월 4000가구(하남교산 등), 12월 1만 4000가구(남양주왕숙 등) 등을 순차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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