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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잼 사이언스] 공룡 시대에 핀 꽃…9900만년 전 호박서 발견

    [핵잼 사이언스] 공룡 시대에 핀 꽃…9900만년 전 호박서 발견

    지금으로부터 약 9900만 년 전 공룡의 발 밑에서 아름답게 만개해던 꽃이 완벽한 상태로 '봉인'된 채 발견됐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해외 주요언론은 과거 미얀마에서 발견된 호박 속에서 2종의 고대 꽃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꽃의 무덤이 된 호박은 우리에게 익숙한 먹는 호박은 아니다. 호박(琥珀)은 나무의 송진 등이 땅 속에 파묻혀서 수소, 탄소 등과 결합해 만들어진 광물을 말한다. 호박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영화 ‘쥬라기 공원’ 덕으로 오래 전 멸종한 고대 동물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꽃은 오늘날 아프리카에 주로 자생하는 필리카(phylica)와 같은 속으로 각각의 이름은 '에오필리카 프리스카텔라타'(eophylica priscatellata)와 '필리카 필로부르멘시스'(phylica piloburmensis)로 명명됐다. 이번 발견이 의미있는 것은 꽃의 경우 화석으로 남는 경우가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꽃은 열매를 맺거나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1억 년 가까이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꽃은 고대 꽃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호박 속에 영원히 봉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영국 개방대학 로버트 스파이서 교수는 "고대 꽃은 화석으로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꽃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소중하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꽃은 현대 친척과 거의 동일하며 차이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속씨식물의 진화와 확산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많은 생명체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서 "꽃이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정확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번에 발견된 꽃이 그 신비를 어느정도 풀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저널 '네이처 플랜츠'(Nature Plants) 최신호에 발표됐다. 
  • 동네 뒷산처럼 올랐더니… 북녘 땅 개성이 손에 잡힐 듯

    동네 뒷산처럼 올랐더니… 북녘 땅 개성이 손에 잡힐 듯

    높다고 늘 전망이 좋은 건 아니다. 낮아도 전망 좋은 산이 있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솟았냐다. 경기 파주 심학산은 그런 점에서 복 받은 산이다. 겨우 194m 높이면서도 사방으로 전개되는 풍경은 ‘국립공원급’이다. 키 작은 ‘풍경의 거인’이랄까. 먼저 심학산의 위치부터 살피자. 교하읍 너른 들녘의 끄트머리에 불끈 솟았다.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합수머리 언저리다. 주변엔 높이를 견줄 산이나 건물이 없다. 심학산이 전망에서만큼은 ‘우월적 지위’를 갖는 이유다. 심학산은 딱 파주출판도시 ‘뒷산’이다. 등산 코스 가운데 동패리 배수지 코스(2.9㎞)를 제외하면 대부분 800m 안팎으로 짧다. 가볍게 운동 삼아 오를 만하다. 물론 낮더라도 겨울 산을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정상을 앞두고 제법 된비알이 있다. 눈이라도 쌓인 날엔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산행이 짧아 아쉬운 이들은 심학산 둘레길을 따라 돌면 된다. 거리는 6.8㎞. 2시간가량 걸린다. 심학산 돌곶이마을에서 꽃축제가 열리는 봄, 단풍 물드는 가을에 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찾아 트레킹을 즐긴다. 심학산 줄기는 동서 방향으로 펼쳐졌다. 교하읍 동패리에서 출판도시 쪽으로 길게 뻗은 모양새다. 정상은 한강과 바짝 붙은 서쪽 끝자락에 있다. 등산 코스는 여럿이다. 서패리 꽃마을, 약천사, 배밭 등이 일반적이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길게 오르려는 이들은 교하배수지 코스를 선호한다. 나들이객이라면 관광을 겸한 약천사 코스가 보편적이다. 약천사 옆 주차장에서도 세 코스로 갈리는데, 가운데 가파른 지름길 구간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도는 오른쪽 코스로 돌아보길 권한다. 3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에 오르면 실로 눈부신 풍경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고, 동쪽으로는 상암동월드컵경기장, 북한산 등이 겹겹이 포개진다. 남쪽으로는 김포, 북쪽으로는 오두산통일전망대와 북한 개성 땅이 훤하다. 그야말로 작은 산, 큰 기쁨이다. 전방 지역의 최대 강점은 북녘 땅이 보인다는 것이다. 임진강 너머로 북한의 위장 가옥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맑은 날엔 개성 언저리의 산자락까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심학산 정상의 정자 바닥엔 주요 도시들까지의 거리를 적어 놓았다. 개성까지 거리는 불과 35㎞다. 믿겨지는가. 서울(40㎞), 인천(42㎞)보다 북쪽이 더 가깝다. 한파가 극심한 날엔 한강을 떠다니는 유빙들도 볼 수 있다. 꼭 북극 언저리에 온 느낌이다. ‘파베리아’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심학산은 가급적 오후에 찾길 권한다. 한강 너머에서 펼쳐지는 해넘이까지 챙긴다면 당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새겨질 것이다.약천사 쪽 등산로 입구에 물맛 좋은 샘이 있다. 약천사(藥泉寺)라는 절집 이름도 이 샘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절의 아이콘은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높이 13m나 되는 거대한 청동 좌불상이다. 2008년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제작했다고 한다. 중생의 질병을 고쳐 준다는 부처이신데 ‘남북통일’은 좀 뜬금없다. 겨레 모두가 앓고 있는 병이라는 의미였을까. 얼추 1m 가까이 돼 보이는 거대한 눈이 오가는 이들을 굽어보고 있다. 그 시선 아래 서면 신병이 치유되려는지, 두 손 모으고 절하는 이들의 모습이 간절해 뵌다.파주 여정에서 한 곳만 더 덧붙이자.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은 아이와 함께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여느 박물관과 달리 개방형 수장고를 지향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유물로 가득한 거대한 유리 타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열린 수장고’다. 해주항아리, 옹기 등 음식 저장고와 향로 등 생활용구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관객들이 직접 들어가 들여다볼 수 있다. 이처럼 박물관 2개 층 곳곳에 수장고가 있는데 보통 박물관처럼 설명문은 붙어 있지 않다. 수장고마다 마련해 둔 키오스크에서 각각의 번호를 찾아 들어가면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누리집(www.nfm.go.kr)을 통해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는다. 입장은 무료다. 헤이리에 있다.
  • “아내 쇠사슬 목줄 묶고 헛간 감금”… 올림픽에 가려진 中 인권

    “아내 쇠사슬 목줄 묶고 헛간 감금”… 올림픽에 가려진 中 인권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중국에서 쇠사슬로 된 목줄에 묶여 사는 여성의 동영상이 퍼져 논란이 되고 있다. ‘올림픽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 중국 당국은 뜻밖에 불거진 인권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2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중국 장쑤성 쉬저우의 작은 마을로 사회 고발 블로거들이 찾아갔다. 문도 없는 헛간에서 한 여성이 한겨울에 외투 하나 입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그는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살고 있었다. 한 블로거가 급하게 겉옷을 구해 여성에게 입힌 뒤 카메라를 보며 “이 여자가 이 추위에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이 땅에 연민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한탄했다. 이 동영상은 음력설인 춘제(春節) 기간 동안 더우인(틱톡)을 타고 대륙 전체로 퍼졌다. 당국의 확인 결과 해당 여성 양모씨는 1998년 결혼해 지금까지 8명의 자녀를 낳았다. 남편 둥모(56)씨가 지체장애인인 그를 목줄로 묶어 뒀다. 둥씨는 나머지 가족과 옆 건물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간 ‘둥씨가 가족을 학대한다’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고 많은 블로거들이 불시에 이 집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둥씨가 임기응변을 발휘해 상황을 모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극적으로 양씨가 노출됐다. 마을 전체가 이를 묵인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현재 웨이보에는 ‘정신질환을 앓던 그가 인신매매로 농촌 마을에 끌려온 뒤 ‘출산기계’로 살아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당국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안 그래도 서구세계의 인권탄압 문제 제기로 골머리를 앓던 베이징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영상이 올림픽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형국이 됐다. 웨이보는 이 주제 관련 해시태그(#) 일부를 차단하는 등 진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 때아닌 비닐하우스 붐… 파주 메디컬클러스터 땅에 무슨 일이

    때아닌 비닐하우스 붐… 파주 메디컬클러스터 땅에 무슨 일이

    경기 파주시와 민간개발업체들이 파주 교하 서패동에 추진중인 메디컬클러스터 예정지에 보상을 노린 비닐하우스(사진) 및 작물 재배가 잇따르고 있다. 2일 서울신문 취재결과 파주시는 2020년 2월 민간 시행사 제안을 받아 교하 및 운정신도시와 접한 서패동 일대 농림지역 45만㎡ 부지에 대형 아파트 단지·아주대학교병원·국립암센터 관련시설 등이 들어서는 ‘파주메디컬클러스터’(PMC)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파주시는 지난해 3월 2일 열린 주민설명회 이후 사업예정지 곳곳에 ‘행위제한 안내문’을 설치하고 건축물의 신증축,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의 벌채 및 식재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사업예정지를 확인한 결과 농업용 대형 비닐하우스와 비닐하우스 주택 등의 신설, 장뇌삼 등 보상을 노린 작물재배 행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방치됐던 기존 비닐하우스도 주민설명회 이후 리모델링되고 있고 농지에 새로 짓는 비닐하우스도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게 차단막을 설치한 비닐하우스 안에는 장뇌삼이 대량으로 심어져 있었다. 장뇌삼은 낱개로 셀 수 없어 눈대중으로 보상이 이뤄지며, 나무 등을 심는 것보다 영농이 간편하다.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비닐하우스 등 농업용 시설은 마땅히 제한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또 “현황을 파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 北영상 속 절뚝이는 김정은… ‘애민 리더십’ 부각

    北영상 속 절뚝이는 김정은… ‘애민 리더십’ 부각

    북한 선전 영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절뚝거리는 모습을 편집 없이 내보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고 존엄’의 건강 문제는 보안 사항임에도 일부러 공개한 것은 ‘애민 리더십’을 부각하는 한편 역설적으로 현재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선중앙TV가 지난 1일 공개한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이란 제목의 1시간 45분짜리 기록영화를 보면 김 위원장이 하얀 상의에 까만 바지를 입고 절뚝이며 걷는 모습이 나온다. 우산을 받쳐 든 채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임시로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올 때 불편해하는 모습이 담겼다. 지팡이를 사용하거나 부축은 없었지만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상에서 해설자는 김 위원장의 업적을 부각하며 “‘최악의 고난’으로 점철된 지난해를 헤쳐 오느라 자신의 한 몸 깡그리 녹이시며 인민의 모든 꿈 다 이루어 주시는 고생 많고 근심 많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집권 이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꾸준히 나왔다. 2017년 1월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에서도 김 위원장이 계단을 오를 때 왼쪽 다리를 땅에 제대로 딛지 못한 채 부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이 노출됐다. 정부 관계자는 “정말로 건강이 안 좋으면 내보낼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인민을 위해 현지시찰까지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민들의 측은지심을 유발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영상에는 백마를 탄 김 위원장이 한 손으로만 고삐를 쥐고 한 손은 놓은 채 숲길을 질주하는 등 활력 넘치는 모습들이 담겼다. 부인 리설주 여사와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현송월 당 부부장 등 ‘측근 3인방’과 함께 백마를 타고 달리는 장면도 포함됐다. 그가 말에 올라탄 정적인 모습이 공개된 것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질주하는 영상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한편 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가 2년여 만에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2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전날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경축공연 장면에는 김 전 비서가 김 위원장 부부와 함께 등장했다. 김 전 비서는 남편 장성택이 2013년 12월 ‘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당한 뒤 6년간 모습을 감췄다가 2020년 1월 26일 설 기념공연 때 얼굴을 드러낸 바 있다. 공연에는 리설주 여사도 동행했는데,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9월 9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이후 145일 만이다.
  • 국제앰네스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인종차별 정책 시행” 비난

    국제앰네스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인종차별 정책 시행” 비난

    팔레스타인은 “참혹한 현실 확인” 환영이스라엘 “현실 외면…반유대주의” 반발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300쪽 가까운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제앰네스티는 4년 동안 작성한 280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분리, 추방, 배제 정책은 명백하게 아파르트헤이트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냈다. 보고서는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영토와 재산 압류, 불법 학살, 비인간적인 강제 이송, 시민권·자유 등에 대한 부정을 포함한 비인간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제도화된 체제 속에서 조직적인 억압과 지배를 받았다”고 서술했다. 이어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 시민, 이스라엘 점령지 일대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열등한 비유대인종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종차별과 분리 정책을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차별은 안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의도적이거나 제도적인 인종차별이 아니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행됐던 아파르트헤이트와의 비교를 거부해왔다.하지만 앞서 이스라엘의 유력 인권단체인 비티셀렘(B‘Tselem)도 이스라엘 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했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지난해 4월 보고서를 통해 같은 주장을 폈다. 당시 HRW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동을 제한하고 1967년 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으로 점령한 영토에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의 땅을 빼앗은 것이 반인륜 범죄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팔레스타인 외무부는 성명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는 국제앰네스티와 다른 주요 인권단체들이 제시한 강력한 증거에 귀를 기울이고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한 범죄와 제재에 대해 이스라엘에 책임을 물을 의무가 있다”고 지지했다. 이스라엘과 가장 우방인 미국은 이 보고서를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이 보고서가 “혐오 단체들의 거짓말을 통합하고 재활용한다”며 “반유대주의의 불씨를 부채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국민MC로 날다...허참 별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국민MC로 날다...허참 별세

    허참을 만난 것은 2016년 11월 말 그의 남양주 농장에서였다. 농장을 자신만의 휴식, 휴양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외부 손님을 받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리뉴얼해 ‘참스팜스’라는 간판으로 새로 문 연 직후였다. 마당 한켠에서는 아직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자기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사들의 삶을 긴 호흡으로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MC계 거목인 그를 연예담당 기자를 통해 어렵사리 섭외할 수 있었다. 그는 농장 건물 내부를 1층부터 2층까지 안내하고 자신이 아끼는 뒷마당 텃밭도 구경시켜 주었다. 밭에서 채소들을 직접 길러 먹고 손님들에게도 내놓는다고 했다. 2층에는 MC, 가수, 배우로서 다양한 인생 궤적이 담긴 사진과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수많은 전시물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25년간 진행했던 KBS ‘가족오락관’의 네온사인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쉴새 없이 풀어내는 인생 이야기는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잠시 쉬어갈 때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자신의 건강지식을 풀어놓았다. 당시 그는 종편채널에서 ‘엄지의 제왕’이라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정 제품 홍보가 될 수 있어서 방송에서는 말하기 어렵지만, 김 기자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몇가지 ‘건강비책’을 일러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에는 “언제 가족들과 한번 놀러 오세요. 우리 농장에는 없는 게 없어요. 꼭 오세요 꼭.”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가 1일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73세. 그가 5년 전 풀어 놓았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약간의 가필을 거쳐 다시 싣는다. 기사의 지면 게재일은 2016년 12월 8일이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한데 모았다. 자신이 직접 그린 회화 작품들도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의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애초부터 내집 같은 것은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공짜 음료수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노래를 마친 그들이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나눠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당첨됐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말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그걸로 감지덕지였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한번 해 볼 생각 없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 그토록 높게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1949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부산지방 법원에 주사로 취직을 했다. 공무원 아버지를 둔 덕에 생활은 적당히 풍족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그 당시 법원 주사 정도면 마음 먹기에 따라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정한 청탁으로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자 신분증 집어던지고 며칠 동안 출근을 안해서 같은 부서 동료들이 와서 겨우 모시고 갔던 기억도 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대쪽처럼 살면 뭐하냐. 실속 좀 차리지”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를 보는 일은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과장되게 폼 잡으며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했다. 그때 사진을 지금 보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성대모사를 하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웅변도 좋아해서 영도섬 등대 앞에 가서 소리 높여 목이 쉴 정도로 연습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한번은 중학교 때 ‘북괴 공산주의’를 타도하자는 주제의 웅변대회에 나가 목청 높여 “이 어린 연사 소리높여 외칩니다”를 말하고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학교 바깥에서 철조망에 개를 매달아 놓고 사정없이 몽둥이질을 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때 개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 팔고 멍하니 서 있다가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할머니가 등대 쪽에서 꼼장어 장사를 하셨는데 매일 같이 달려가서 꼼장어 먹고, 딱딱한 알사탕 입에 넣고 책가방 던져 놓고 물놀이를 했다. 앙장구(성게), 해삼, 멍게 이런 게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중학교 입학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무렇지 않게 싸가지고 다녔던 소고기 구경을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할 수가 없었다. “크면 반드시 정육점을 할 거야. 그래서 소고기를 실컷 먹으리라.” 공부도 못했고 가세도 기울어서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유신헌법을 홍보하기 위한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란 내용을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그걸로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모두 전문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 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당대의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연달아 방송 요청이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아침에 ‘푸른 신호등’ 2시간 진행하고, 잠깐 쉬었다가 ‘싱글벙글쇼’ 2시간, 좀 있다가 ‘허참의 가요앙콜’ 2시간. 이런 식이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무교동 식당들에서 배달시킨 짬뽕, 짜장면에 소주를 마셔가면서 방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청취자들은 내 옆에 배달음식 빈 그릇과 소주병이 수북이 쌓여있는지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헛헛해져 또다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 뉴질랜드 정부, “탈레반이 더 낫겠다” 떼 쓴 여기자 재입국 허용

    뉴질랜드 정부, “탈레반이 더 낫겠다” 떼 쓴 여기자 재입국 허용

    뉴질랜드 정부가 임신한 몸으로 귀국을 거부 당한 뒤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아 논란을 불러 온 자국 출신 여기자의 재입국을 허용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기자로 일했던 샬럿 벨리스는 지난달 29일 일간 뉴질랜드 헤럴드 기고문을 통해 “탈레반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해 왔는데 이제는 내 나라 정부에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아이러니냐”고 되물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랜트 로버트슨 뉴질랜드 부총리는 1일 코로나19 일일 브리핑을 통해 “의무 격리 시설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녀가 차지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에 따라 5월 출산 예정인 벨리스는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미군 철수 과정을 취재하다 아기를 가진 벨기에 프리랜서 사진기자 짐 휴일브룩과 함께 뉴질랜드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로버트슨 부총리는 그녀가 언론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바람에 일종의 특혜를 주게 된 것이냐는 취재진의 지적에 “직원들이 매일 비상 신청한 것을 다루는 과정에서 채택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벨리스는 탈레반이 장악한 카불을 떠나 지난해 9월 알자지라 본사가 있는 카타르로 건너가 지내면서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에 사진을 싣는 휴일브룩과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선 사실을 알게 됐다. 휴일브룩은 여전히 카불에 남아 있었다. 벨리스는 같은 해 11월 알자지라를 퇴사한 뒤 휴일브룩의 고향인 벨기에로 향했다. 카타르에서는 미혼 여성이 임신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기에에서도 그 나라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길게 체류할 수 없었다. 출산을 위해 뉴질랜드에 긴급 귀국 신청을 했다. 벨리스는 기고문에 “59건의 서류를 구비해 신청했지만 거절 당했다”며 “우리 커플이 비자를 갖고 체류할 수 있는 곳은 아프간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뉴질랜드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방역 규정을 좇아 귀국하는 자국민에게도 열흘의 의무 시설 격리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이 시설은 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귀국을 원하면서 몇천명 이상 빈 자리를 구하지 못해 해외에서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미혼인데도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 만으로 다른 이들을 제쳐두고 벨리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초조해진 벨리스는 탈레반 고위 관계자에게 연락했는데 “아프간으로 돌아와도 좋고 당신은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라며 “상황이 나빠지면 우리에게 전화해라.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의사들이 의료시설이 열악한 아프간에서의 출산이 안전하지 않다고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벨리스는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다시 귀국 승인을 신청했지만 지난달 26일 냉랭한 거부 답변이 돌아왔고, 그녀는 언론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편에서는 그녀가 탈레반의 음흉한 선전술에 벨리스가 놀아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계 아프간 기자 엠란 페로조는 “아프간 기자와 비아프간인 기자가 너무 다른 대접을 받는 얘기가 계속되는 것”이라며 “아프간 기자들은 살해 위협, 구타에 고문을 예사로 당하는데 비아프간인 기자들은 대접 받으며 모든 면에서 환영받고 부드러운 예우를 받는다”고 개탄했다. 조금 더 신랄한 비판은 아프간의 여성 활동가 사하르 페트랏이 같은 달 30일 트위터에 올렸다. “탈레반들은 다섯 여성을 어디론가 끌고간 뒤 열이틀이 됐는데도 어떤 화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탈레반을 찬양하는 일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탈레반을 찬양하지 않고도 어느 정부에게 의문을 표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 이스라엘 대통령 처음 UAE 땅 밟아, 사우디 영공 지나며 “감동적인 순간”

    이스라엘 대통령 처음 UAE 땅 밟아, 사우디 영공 지나며 “감동적인 순간”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아부다비 왕세자와 회담했다. 지난달 최고 지도자인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UAE를 방문하긴 했지만 이스라엘 대통령의 UAE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UAE 국영 WAM 통신과 외신에 따르면 헤르조그 대통령은 이날 아부다비 왕궁을 찾아 실세인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만나 양국 관계 강화와 안보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헤르조그 대통령의 방문을 맞아 왕궁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울려 퍼졌고, 2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2시간가량 이어진 회담에서 헤르조그 대통령은 “우리는 중동지역 평화를 추구하고 완전한 안보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면서 “이스라엘은 UAE의 안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UAE를 향한 모든 형태의 테러를 비난한다”면서 최근 아부다비 주요 시설을 공격한 예멘 반군 후티(자칭 안사룰라)를 비판했다. 알나흐얀 왕세제는 “우리는 지역 무장 세력과 테러 단체로 인해 생기는 위협과 관련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스라엘 대통령의 UAE 방문은 예멘 반군의 공습으로 걸프 지역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은 지난 17일 아부다비 국제 공항과 석유 시설을 드론 등을 이용해 공격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성명을 내고 “이란과 연계한 후티의 추가 공격을 막기 위해 UAE에 대한 정보 및 안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알나흐얀 왕세제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이날 새벽 UAE 국빈 방문을 위해 출발하기에 앞서 “이스라엘과 평화 협약을 위해 노력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한 왕세제에게 감사한다”며 “나도 역내 모든 국가에 전하는 평화의 축복, 평화의 메시지를 갖고 간다”고 말했다. 헤르조그 대통령이 탄 항공기는 아랍권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을 통과했는데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헤르조그 대통령은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란 소감을 남겼다.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외교·국제협력부 장관은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나와 헤르조그 대통령 일행을 맞이했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UAE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과 면담하고, 2020 두바이 엑스포 행사장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UAE,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권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약’에 서명했다. 그 뒤 이스라엘 집권 연정의 이인자인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이 협약 상대국을 잇달아 방문해 공관을 개설하고 협력 협정 등에 서명했다. 특히 UAE와는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정성을 기울여 왔다.
  • “홀로 계신 모친에게 온 택배, 아버지의 유골이었다”

    “홀로 계신 모친에게 온 택배, 아버지의 유골이었다”

    “우리 땅에 모신 부친 묘 파헤쳐 유골 화장…택배로 보냈다” 부친의 묘가 강제로 파헤쳐져 유골이 화장됐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따르면 청원인 A씨는 ‘불법파묘 신청을 승인한 순천시청과 부친묘를 파헤친 B씨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땅 소유권을 두고 법정 다툼에서 패소한 자가 부친의 묘를 강제로 파헤쳐 유골을 화장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 구순이 된 노모를 살핀다고 입을 연 70대 가장 A씨는 “3년 전부터 서울에 산다는 B씨가 갑자기 나타나 시골 손바닥만 한 땅의 소유권 소송을 걸어왔다”고 밝혔다. A씨는 “1심, 2심 재판에서 모두 승소하자 B씨는 무단경작이라는 누명을 걸어 모친에게까지 분풀이 성으로 2차례 고소하기도 했다”며 “그러다 지난달 모친으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비보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법적 분쟁으로 패소하자 분한 마음에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은 부친의 묘를 파헤치고, 관을 부수고, 유골을 도굴해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홀로 계신 모친에게 화장된 유골이 택배로 보내졌다” A씨는 “그러고선 당당하게 유골을 화장해버리겠다고 전화했다”며 “이후 홀로 계신 모친에게 화장된 유골을 택배로 보냈다. 모친은 뜯어보지도 못하고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토지주는 우리다. 해마다 벌초했고, 파묘한 B씨는 등기부등본상 절대 묘를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다. 땅이 아니더라도 묘지는 가족, 친지가 아니면 개장이 안 된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A씨는 “B씨가 순천시청에서 허가 내준 개장지도 아닌 곳을 개장해서 파묘했다”며 “순천시청도 정확한 확인 절차 없이 허가를 내줬고, 담당 공무원 역시 잘못을 인정했다”고 했다. 끝으로 A씨는 “설날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부친 유골이 산천을 떠돌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다”며 “유가족 승인 없이 불법파묘를 허락한 순천시청과 사람의 탈을 쓰고도 패륜적이고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B씨를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덧붙였다.
  • 코로나19 속 경건하게 치러진 사제서품식… “예, 여기 있습니다”

    코로나19 속 경건하게 치러진 사제서품식… “예, 여기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28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사제서품식을 거행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실내 체육관 등 대규모 장소에서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치러졌지만 코로나19로 2년 연속 명동성당에서 진행됐다. 이전에 비하면 조촐했지만 명동성당을 가득 메운 이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모은 기도와 축복 안에 서울대교구 소속 부제 23명(천주교 서울국제선교회 3명, 유학생 2명 포함)이 정 대주교에게 성품성사를 받고 새 사제로 탄생했다. 이번 서품식으로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는 948명(추기경 1명, 대주교 1명, 몬시뇰 5명 포함)에서 966명(서울국제선교회, 유학생 미포함)이 됐다. 성품성사는 가톨릭 칠성사 중 하나로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들은 주교의 협조자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한다. 특히 미사를 거행할 의무를 부여받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2코린4,5)를 주제 성구로 이뤄진 서품식이 시작되며 수품 후보자들은 호명에 따라 큰소리로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자리했다.정 대주교는 “여러분은 스승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치는 거룩한 임무를 직접 수행하고 책임지게 될 것”이라면서 “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이에게 전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하느님의 법을 묵상하며 읽고, 읽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것을 실천할 것”이라면서 “여러분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양식이 되고 여러분의 성실한 삶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말과 모범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주교가 “주교의 성실한 협력자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주님 양들을 돌보는 사제 직무를 끊임없이 수행하겠습니까” 묻자 사제들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뽑힌 이의 서약’을 했다. 이어 예비 사제들은 부복(수품자들이 땅에 완전히 엎드려 기도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향했고 정 대주교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가톨릭 성인들을 부르며 바라는 바를 청하는 전구를 올렸다. 성인호칭기도를 마친 뒤에는 정 대주교와 주교단, 사제단이 무릎을 꿇은 수품자들에게 차례로 다가가 머리에 두 손을 얹는 안수 의식을 가졌다. 가장 먼저 안수를 마친 정 대주교는 제단 앞에서 오른손을 들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새 사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전날에는 명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 부제서품식이 열려 서울대교구 소속 24명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3명이 부제품을 받았다.
  • ‘제2의 전태일’·미군 기지촌…그 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제2의 전태일’·미군 기지촌…그 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집콕’하는 설 연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대세라지만 극장을 가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다. 스타들을 앞세운 화려한 대작들 대신 의미와 독특함을 지닌 영화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여성들의 증언과 발화의 힘을 보여주는 두 작품을 소개한다. 내가 ‘여성 전태일’이다, ‘미싱 타는 여자들’김정영·이혁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은 한국 노동 운동에서 드러나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을 조명한다. 1960~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하루 15시간을 일하던 노동자 중 80%는 가족의 생활비와 학비를 버는 10대 소녀들이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후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이후 노동 운동을 이어간 것도 이들이었다. 영화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다’로 평화시장에 들어온 이들이 노동 운동과 목말랐던 공부를 했던 시절을 인터뷰와 문서·사진 자료로 풀어놓는다. 특히 영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9·9투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7년 9월 9일 이소선 석방과 노동 교실 반환을 요구하며 노동 교실을 점거했던 일이다. 이제 장년이 된 소녀들은 당시 상황과 함께 재판에 넘겨져 옥살이를 한 이야기를 생생히 증언한다. 동료이자 친구였던 노동자들은 그 시절을 견디게 한 버팀목이었다. 작품은 2018년 서울시 봉제 역사관 디지털 영상 아카이빙 작업을 위해 김정영 감독이 진행한 봉제 노동자 32인 구술생애사 인터뷰에서 출발했다. 봉준호·박찬욱 감독과 여러 유명인들이 추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체관람가.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지난 27일 개봉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 기지촌 여성을 다룬 보기 드문 영화다. 기지촌에서 연구와 활동을 이어온 김동령·박경태 감독이 ‘거미의 땅’(2016)에 이어 6년 만에 선보이는 기지촌 연작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섞인 독특한 형식이다. 주인공은 이전에도 두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는 박인순씨. 한국전쟁때 고아가 된 그는 짜장면 세 그릇에 경기도 파주 기지촌으로 넘겨졌고, 군부대가 이전하며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뺏벌마을로 왔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지만 남편은 폭력을 일삼았고 그는 뺏벌로 귀환한다.  영화는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박인순씨의 일상이나 기지촌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은 다큐, 주인공 인순 역을 박인순씨 본인이 직접 연기하는 부분 등은 픽션을 오간다. 동시에 여성들의 삶을 단순하게 규정하거나 뻔한 서사로 만들려는 시선을 거부한다. 출연자가 보여주고 싶은 삶이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협업한 점도 특이하다. 영화 관계자는 “박인순씨가 현장에서 적극 의견을 내며 촬영했다”며 “해외 영화제 상영에서 관심이 높았다”고 전했다. 2019년부터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됐고 2020년 제34회 일본 이미지포럼페스티벌에서는 테라야마 슈지상을 받았다. 15세 관람가.
  • ‘검은 눈’ 내린 러시아 마을…“21세기 맞나” 주민 항의

    ‘검은 눈’ 내린 러시아 마을…“21세기 맞나” 주민 항의

    러시아 극동 마가단주 일부 지역에 ‘검은 눈’이 내렸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지역 매체 ‘마가단스카야 프라브다’는 옴숙찬과 세임찬 등 마가단주 일부 지역에 검은 눈이 내려 관련 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옴숙찬과 세임찬은 최근 며칠 사이 내린 검은 눈 때문에 온 마을이 뒤숭숭하다. 마을 전체가 마치 연탄재를 뒤짚어 쓴 것처럼 까맣게 변해 주민 불안이 커졌다. 영문을 알 리가 없는 아이들만 검은 눈 속에 마냥 신이 났다. 현지 상황을 동영상으로 전한 익명의 한 주민은 “옴숙찬 마을 전체가 까맣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주민은 “여기가 놀이터다. 우리 아이들이 검은 눈 속에서 놀고 있다. 21세기에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검은 눈은 인근 공장에서 나온 분진과 석탄재가 눈과 만나면서 생긴 것이다. 현지 당국자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스레드네칸스키 지역단장 옥사나 게라시모바는 “마을에 필수 전력과 온수를 공급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 분진과 석탄재가 검은 눈의 원인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장 보일러에 분진 제거기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최근 영하 50도 혹한으로 높아진 공장 가동률을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역단장은 “검은 눈 때문에 주민 불안이 높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된다. 집진기 설치를 확대하여 오염을 막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해마다 반복되는 ‘검은 눈’ 재해에 대해 수십년 전부터 불만을 토로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주민은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석탄 분진을 마시고 산다. 소련 붕괴 30년이 다 되도록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오호츠크해 연안 마가단주는 러시아에서 사람 발길이 닿는 곳 중 모스크바와 가장 먼 고립 도시다. 옛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대숙청 때 정치범 수백만 명이 마가단주로 이어지는 콜리마대로 건설에 투입됐다. 연 70만 명이 강제 노역에 동원됐으며, 이중 약 3만 명이 사망했다. 도로 공사 중 죽은 이들을 그 자리에서 땅에 묻은 탓에, 콜리마대로는 ‘뼈 위의 도로’라고도 불린다. 마가단주는 옛 소련 때부터 광업이 중심산업 중 하나였다. 2015년 현지 광산 업체 ‘세베르니예 프리이스키’(북부 광산)가 북한 함경남도 금광 개발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노후 시설에서 나오는 분진과 석탄재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탓에, 해마다 주민 불만이 터져나온다. 지난해 에너지 시스템 현대화를 천명한 마가단주 정부는 올해 안으로 문제가 된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건축할 테니 기다려 달라는 입장이다. 
  • [2022 신춘문예 당선작] 설이 온다/전성현

    [2022 신춘문예 당선작] 설이 온다/전성현

    몇 년 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영국의 한 지방 도시에서 3개월 체류한 적이 있다. 작가센터에 도착해 짐을 푼 당일부터 시내를 다니며 지리를 익혔고 남아 있는 성터를 보며 오래된 역사를 더듬었다. 지금은 골동품점이나 문화센터가 되어 버린 교회당 건물 안을 살펴보기도 했고, 시청 앞 노상에서 한국 식자재들을 발견하고는 반가워하기도 했다. 새롭고 이국적인 모습들에 정신없이 보내다 열흘이 넘어갈 즈음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살면서 지금까지 혼자서 타지에 머문 적도, 여행을 떠나 본 적도 없다는 걸 말이다. 혼자 있는 걸 퍽 좋아한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 못 한 불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공간의 낯섦이나 미숙한 언어 소통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타지에서의 경험이 못 견딜 만큼 힘들지 않았고 외국인과의 교류가 불편할 만큼 부담되지도 않았다. 자주 가족과 연락하고 개인적으로 진행 중이던 일정도 챙겼지만, 불안이 해결되지 않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자리에 누워도 일과가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 땅에서 발을 떼고 있는 듯한 기분에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지낸 시간보다 앞으로 지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체류 기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작가센터에 먼저 온 시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그분이 말했다. 타지에서 지내는 건 원래 힘든 일이라고.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내 말을 투정으로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귀 기울여 준 시인의 위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함이 여느 사람도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였는지, 그날 이후 조금씩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남은 일정을 챙기며 다시 현지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었다. 여러 지역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문학 프로그램을 찾아다녔고 여건이 되면 여행도 떠났다. 그러던 중 자녀를 한국으로 유학 보냈다는 한인 가이드를 만나게 됐다. 취업 후 결혼까지 한 딸과 가이드는 매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그리움이 다 채워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영상통화를 해도 항상 보고 싶단다. 그때 알았다. 내가 왜 한동안 힘들었는지를. 왜 일과를 끝내고도 마무리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고, 부유하는 느낌에 불안정해졌는지를 말이다. 일상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늘 가족과 나누던 언어, 함께하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끝맺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이고 있었던 거다. 그리움이라는 건 전화기 화면 너머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를 수고한 뒤 흘린 땀 냄새를 이해하고 식사를 함께하며 음식 맛을 공유하고, 서로의 안색을 살피면서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어야 충족되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만남이 불편한 시대를 살게 되었다. 지난 2년간 평범한 만남과 일상을 잃어버린 채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삶을 이어 가고 있었을까? 그런 가운데 또다시 새해가 되었고 설이 오고 있다. 명절이 올 때마다 부모님이나 자녀가 각자의 자리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한때 나를 품었던 고향의 내음과 바람,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에서 따뜻하고 말랑한 가래떡을 뽑던 방앗간과 전 부치던 냄새가 풍겨 오던 이웃집들, 새 옷을 입고 좋아하던 아이의 웃음소리와 올해는 말썽부리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며 1000원짜리 세뱃돈을 쥐여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손길과 눈길이 닿았던 모든 것이 그립다. 겨울이 가까워져 오면 나는 습관처럼 동지를 기다린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길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에 겨울을 나는 힘이 생긴다. 동지가 지났으니 다시 낮이 길어지겠지. 언제나처럼 계절이 바뀌겠지.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기에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지언정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잡고 뺨을 비비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 줄 날도 오겠지. 그날이 올 것이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감정의 언어와 온도로…. 우리에게 다시 설이 온다. ■전성현 동화작가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로 등단했다. ‘잃어버린 일기장’으로 제1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았으며, 지은 책으로 ‘사이렌’, ‘두 개의 달’, ‘어느 날, 사라진’, ‘일 년 전 로드뷰’ 등이 있다.
  • [조재원의 에코 사이언스] 시인에게 ‘환경주의’ 길을 묻다/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조재원의 에코 사이언스] 시인에게 ‘환경주의’ 길을 묻다/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18세기 산업혁명으로 황폐해진 영국을 안타까워하며 평생 28만㎞를 걸으며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하루 20㎞씩 걸으면 38년이 걸린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행보는 환경주의 운동의 시초였다. 산업혁명은 인류에 엄청난 혜택과 긍정적 변화를 주는 대신 가혹한 대가를 요구했다. 시인은 망가진 국토를 걷고 또 걸었다. 산업혁명 이전 녹색의 땅으로 돌아가길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대신 서정성 넘치는 시 속에서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의 색을 찾으려 했다. 산업혁명이 남긴 환경문제를 과학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독일의 국가중심 과학주의였다. 산림학과를 대학에 신설하면서 과학 연구와 정책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시인 워즈워스와 독일의 과학주의는 환경 파괴에 낙망하면서 주저앉지 않았다. 워즈워스의 시는 예전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대중에게 주었고, 독일은 과학으로 환경 회복의 길을 발견하려고 했다. 두 노력 모두 희망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선사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170여년이 지난 지금 환경문제 해결은 더이상 시적이지도 않으며 과학적 희망도 품기 어려워졌다. 워즈워스를 이은 환경활동가들은 정부를 향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국가는 과학의 이름을 빌린 정치와 규범적 정책으로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워즈워스의 환경주의와 국가가 앞장섰던 실용과 실천 과학은 이제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 정책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대중은 밀려났다. 환경주의의 서막을 알렸던 문학과 과학은 본래의 맥을 이어 진화되기는커녕 변질되었다. 기후위기의 예를 들어 보자. 기후위기, 환경문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일 것이다. 1988년 설립돼 데이터를 분석하고 모델을 만들어 미래기후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정부’ 간 협의체다. 지난해 발간된 보고서가 여섯 번째였다.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위기 논의는 IPCC 보고서를 근거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명암이 분명하다. 국제기구 중심으로 활동하기에 동력이 실리는 장점이 있지만 대중 참여는 사실상 어렵다. 현재 기후위기 체제에서 대중은 주체가 아니며 정부 간 협의체에서 정한 목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정책의 계몽 대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대중은 의미 있는 실천을 하고 싶어도 기회 자체가 차단된 현실의 벽을 만난다. 대중에게는 생태적 의지도, 실천적 과학도 허락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정책을 만든 이후에는 오로지 규범적 의무만 남을 뿐 환경주의 실천과 대중 중심 과학은 사라진다. 전문가 중심 체제를 넘어서 과학의 근본을 찾고, 시인의 마음을 읽어 대중이 중심이 되는 환경주의 길을 다시금 묻고 싶다.
  • 아파트·소음벽 넘어 볼 수 있을까, 태종·세종의 눈길 닿던 한강

    아파트·소음벽 넘어 볼 수 있을까, 태종·세종의 눈길 닿던 한강

    ■조선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머물렀던 이궁(離宮) ■서울 광진구 뚝섬로 58길 101 자양현대3차아파트 301동 앞 울타리의 펜스형 표석(복원한 낙천정은 인근 현대강변아파트 102동 옆)‘신선의 풍경, 사람의 소음’ 광나루는 강폭이 넓어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 곳이다. 광나루, 광진의 다른 이름이 양진(楊津)이었으니 물가에 버드나무가 낭창낭창 휘늘어져 있었을 테다. 팔당에서 들어오는 물은 잘 보이고 동호로 빠져나가는 물은 보이지 않으니 명당이랬다. 뚝섬은 예부터 장안에서 인심이 가장 좋은 동네로 일컬어졌다. 저녁 무렵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으면 너나없이 각추렴해 굶는 사람이 없었다.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고 사람의 풍경 또한 아름다웠던 그곳, 광나루와 뚝섬 사이에 낙천정이 있었다. 하지만 앵돌아 한강을 등진 ‘낙천정 터’ 표석 자리에서는 물결 한 자락 보이지 않는다. 가지치기한 겨울나무 아래 울타리에 걸린 표석이 휑뎅그렁하다.낙천정에 맑은 가을이 다시 오고 훌륭한 임금 머무르시는 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오르네 부슬비 속에 흰 갈매기는 마포 어귀를 날고 지는 노을 속으로 외로운 오리 한 마리 북한산 위로 날아가네 임금의 호탕하고 어진 덕에 바람 앞의 풀처럼 백성들이 감화되어 엎드리고, 성스러운 은혜와 덕택이 강물과 함께 흐르네 정무 바쁘신 와중에 짬을 내어 풍광을 감상하니 인간 세상에 이곳을 빼면 어디가 신선의 풍경이란 말인가? 변계량이 노래한 낙천정을 깜냥껏 풀어 보다가 문득 어줍은 꾀가 떠올랐다. 낙천정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지어진 301동 아파트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자유 출입이 가능한 현관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잡상인은 아니지만 외부인은 분명하니 지은 죄도 없이 뒤통수가 찌릿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갈매기와 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강 귀퉁이 한 조각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데 그조차 욕심인가? 집 안 베란다를 통해서만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라 23층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뒤편 쪽창을 통한 주차장뷰뿐이다. 잠긴 옥상 문 앞에서 맥없이 돌아 쪽창 너머 생뚱맞은 곳에 걸린 표석을 사진으로 담는다. 허탈하고 아쉽다. 일상적으로 완상할 수 있는 수려한 경치는 옛적에 권력이라면 지금은 금력으로 표상되는 힘의 전유물인가 보다. 그래서 다들 그토록 그 무서운 호랑이를 잡아타고 싶어 안달하는 걸까? 호랑이라는 이름이 통용된 것은 18세기 숙종 때쯤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 북쪽에서는 범, 남쪽에서는 호랑이라 불렀다. ‘문제적 인간’ 이방원은 달리는 호랑이를 잡아탔다. 포수들은 호랑이 사냥을 나갈 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호랑이 뼈와 고기로 끓인 국을 먹었단다. 이방원이 호랑이의 주인이 된 것은 호랑이를 갈아 마실 정도로 호랑이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 왕가를 통틀어 과거 급제자는 이성계의 5남 방원과 6남 방연뿐이다. 방연은 건국 전에 죽었으니 조선 왕실의 급제자는 이방원이 유일하다. 타고난 명석함에다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끝장내고 조선을 창업한 경험이 더해져 그는 한층 강해졌다. 곰의 앞발은 철퇴요 발톱을 세운 호랑이 앞발은 칼이랬다. 젊은 역사 마니아들이 붙인 이방원의 별명은 ‘킬(Kill)방원’. 정몽주와 정도전부터 이복형제 방석·방번까지, 이방원은 호랑이의 앞발로 거치적거리는 정적을 모두 베었다. 방원이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욕의 화신, 역사학자 임용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 9단 술수 9단’의 이미지로 후대에 기억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 태종은 정안군 이방원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18년 동안 호랑이를 타고 거침없이 달린 태종은,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눠 갖지 못하는 것이라는 공식을 깨고 아들 세종에게 호랑이를 양도한다. 스스로 “말과 사람을 보는 눈은 내가 옛사람에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태종은 호랑이를 제대로 다룰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보았고, 호랑이의 다음 주인에게 꽃길을 깔아 주기로 결심한다. 처가인 민씨가를 숙청했던 실력으로 세종의 처가, 즉 사돈인 심씨가를 단칼에 제거한다. 외척이라는 내부의 위험을 없앤 후에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왜구의 소굴이자 전진기지였던 대마도 정벌을 바로 이곳 낙천정에서 실행한다. 정벌을 마치고 보무당당히 돌아온 원정군이 승리의 술잔을 드는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태종은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흠뻑 취했을 것이다. 조선 창업 성공과 성군 세종 만들기 프로젝트,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2009년 정비 사업 전까지 ‘낙천정 터’ 표석은 엉뚱한 자리에 있었다. 102동 표시만 보고 가다가 뒤늦게 현대강변아파트가 반대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일은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낙천정’을 발견한 것이다. 숯불갈비를 파는 식당 낙천정. 최소한 식당 주인은 가게 이름을 지을 때 동네의 역사적 의미를 참고했을 테니 표석 자체보다 이 같은 기억의 작은 징표가 더 반가울 때가 있다.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편식쟁이 아들이 행여 건강을 해칠까 봐 자기가 죽은 뒤 상중일지라도 세종에게는 고기를 먹이라던 태종이 아니었던가? 그토록 애틋한 부자가 함께 거둥했던 낙천정을 기리는 데는 숯불갈비집이라도 무색지 않으리라!현대강변아파트 102동 옆구리에 있는 낙천정 아닌 낙천정은 1993년에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해제되었다. 몇몇 인터넷 자료에는 아직 이 정자가 낙천정 터 이미지에 올라 있다. 1991년 현대강변아파트를 건축할 때 땅을 기부채납 받아 건축한 듯한데, 후일 사료와 항공사진 등을 통해 원위치에서 200m 이상 차이가 나고 정자의 원형 또한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기념물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사료 발굴에 따라 역사도 변한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주먹구구로 기념물을 지정했던 시절을 지나 유물·유적에 접근하는 방식이 정교해져 간다는 사실은 의미 있다. 건축물의 경우 도면과 설계도가 없으면 경주 황룡사지처럼 폐허로 남겨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텅 빈 자리를 상상력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폐허라도 더없이 충만할 것이다.다만 복원물이 의미를 잃으니 고스란히 흉물이다. 주차된 차에 가로막히고 입구가 쇠사슬로 폐쇄된 낙천정 아닌 낙천정에서 보이는 것은 소음벽과 고가차도뿐이다. 방치된 정자를 대신해 조망대를 설치하면 어떨까? 그렇게라도 태종과 세종의 눈길이 닿았던 너르고 푸른 한강을 보면 좋지 않을까? 현재의 호랑이가 과연 허락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도 모르면서 잡아타겠다는 것은 욕심이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것은 탐욕이요, 호랑이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달리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높다란 소음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차량들의 소음이 내내 사위에 웅웅거린다. 호랑이에 오르는 것은 절경을 취하고 소음을 견디는 일일 테다. 한 블록만 물러나면 한강뷰는 없을지나 사방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오는 길에 지났던 자양전통시장에 들렀다 귀가하련다. 세상은 하 수상해도 호랑이 따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일상의 소음은 진진하다. 충청도식 무시루떡과 매운 닭강정이 인심 좋은 자양시장의 별미랬다.(끝)
  • 北, ‘풍성한 설명절’도 이젠 옛말… 대북제재·코로나19로 평양마저 ‘궁핍’

    北, ‘풍성한 설명절’도 이젠 옛말… 대북제재·코로나19로 평양마저 ‘궁핍’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 코로나19 대유행 까지 겹치면서 발생한 생활필수품 등 부족 현상으로 어느 때보다 혹독한 설명절을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새해, 설, 추석과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은 국가 및 민속 명절로, ‘술날’(酒日)이라고도 칭한다. 명절 땐 그간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는다. 평소 아끼고 참고 하던 것을 이날 만큼은 허리띠를 풀고 먹고 마신다. 명절 만큼은 주변인들과 음식을 나누며 지역과 가족이 가진 공동체 의식을 공유한다. 과거 춥고 배고프던 시절 남아있는 풍습이지만 북한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설은 예전과 다르다. 지난 16일 북중 화물열차 재개로 2년 간 막았던 북중국경을 일부 개방했지만, 생필품 품귀 현상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북한은 미원, 설탕, 기름 등 대부분의 조미료, 생필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썼지만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모든 재료가 고갈된 상태다. 원재료가 콩인 간장과 된장 마저도 귀해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 사태까지 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평양에서 조차 조미료, 비누, 치약, 기름 등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제대로 사서 먹고 쓰는 있는 가정이 드물다”라고 했다. 특히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던 시계 배터리가 다 떨어져 시계가 멈첬다고 한다. 여기에 라이터 가스조차 없고, 성냥도 부족해 한번 아궁이에 불을 붙힐 때마다 갖은 고민을 해야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풍성한 설명절은 고사하고 하루 한끼 걱정이 앞서는 것이 요즘 북한의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대북소식통은 “북중 국경이 가까운 청진, 신의주는 그래도 형편이 좀 괜찮은 편”이라며 “하지만 평양 등 내륙은 배급제가 무너진 이후 당국에서 갖은 단속으로 장사도 못하게 해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사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의 이같은 경제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2019년에 휩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후폭풍도 크다는 분석이다. 당시 중국을 통해 전파된 ASF로 인해 평안도의 모든 돼지는 죽었다고 한다. 인접한 평양도 역시 타격을 입었다. 북한에서 개인이 집에서 기르는 돼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곧 재산이자, 1년치 식량이다. 키운 돼지를 시장에 팔고 그 돈으로 식량 등 생필품을 사서 1년을 버티는 데 그 재산이 한 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당시 ASF의 확산으로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돼지가 죽어나가자 북한의 상당수 가정에선 당국을 원망하며 민심이 흉흉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에서 죽은 돼지를 모아 땅에 파묻자, 일부 주민들은 이를 캄캄한 밤에 몰래 파내 시장에 팔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ASF는 지역과 지역으로 넘어 퍼져나갔고, 그 피해는 고스란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당국 역시 초기 대응에 실패해 ‘중산층 붕괴’라는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이 같은 피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당국은 발빠르게 국경을 봉쇄했다. 하지만 외부 유입 없이 2년을 버티면서 이제는 내부에서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아사자가 나왔던 ‘고난의 행군’ 시기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도 지금의 난관을 반전시킬 능력이 없다보니, 50년도 더된 자력갱생이라는 구호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미국 탓, 코로나19 탓 아무리 해봐도 민심이 더 이상 돌아서지 않아 답답할 것”이라고 했다.
  • 접촉은 ‘제로’, 마음은 ‘가득’…코로나 청정국 통가에 내린 英 구호품

    접촉은 ‘제로’, 마음은 ‘가득’…코로나 청정국 통가에 내린 英 구호품

    영국 및 호주 구호선이 해저화산 폭발 피해를 본 통가를 지원하기 위해 ‘비접촉식’ 구호 물품 전달을 시도했다. AP통신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3만ℓ 분량의 생수 300개 이상과 의료용품, 위생용품 등을 실은 영국 구호선은 통가 인근 해안에 도착한 뒤 기중기를 이용해 보급품을 육지로 내렸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선원도 통가 땅을 밟지 않았다. 구호선을 타고 온 통가 외부 사람과 통가 내에 있는 사람의 밀접 접촉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영국 구호선의 이 같은 지원 방식은 코로나 청정국으로 불리는 통가에 코로나19가 전파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부 장관은 “오랜 파트너인 통가가 주택 및 지역사회를 재건하기 시작함에 따라 도움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호주 시간으로 25일, 통가로 향하던 호주 구호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20여 명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1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출발한 이 군함은 구호품과 의료물품 등을 대량으로 싣고 오는 26일 통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난 21일에는 통가로 가던 호주 군용기 1대에서 일부 승무원이 양성 판정을 받아 군용기가 회항하기도 했다.  피터 더튼 호주 국방장관은 “현재 통가 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그들(통가)은 분명 지원이 절실하지만, 코로나19 위험을 원하지는 않는다”면서 “구호선이 기존 임무를 계속해 코로나19에 안전한 방식으로 통가에 지원물자를 전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통가는 현재까지 코로나19 환자가 1명밖에 발생하지 않은 ‘코로나 청정국’으로, 코로나 전염을 막으려고 매우 엄격한 국경 검역을 벌이고 있다. 통가 현지 구호단체들은 지금 코로나19가 발발하면 타격이 극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호주 주재 통가 대사관 관계자 역시 “우리는 ‘다른 파도’, 즉 코로나19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모든 구호품은 검역을 거쳐야 하고 외국 인력은 항공기에서 내리는 게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구 10만여 명의 통가는 지난 15일 인근 해저화산 분출로 식수원인 빗물이 화산재로 오염돼 심각한 식수난을 겪고 있다. 해저화산 분출에 이어 덮친 쓰나미로 주택 약 1000채 및 기반시설도 파괴됐다. 통가 당국은 이번 재해로 현재까지 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 스카이72 손들어 준 경찰 … “단전·단수는 업무방해”

    스카이72 손들어 준 경찰 … “단전·단수는 업무방해”

    스카이72골프장에 공급하던 전기·수도를 차단했던 김경욱(56) 인천공항공사 사장 및 임직원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김 사장과 A미래사업본부장·B공항경제처장 등 인천공항공사 임직원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고 27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4월 1일과 18일 인천 중구 운서동 공항공사 소유지에 있는 스카이72골프장에 공급하던 전기와 중수도를 차단해 골프장 운영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 공사 측은 골프장 부지 임대계약이 2020년 12월 31일 끝났는데도 스카이72 측이 부지를 무단 점유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기와 중수도 공급을 차단했다. 이에 스카이72 측은 잔디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골프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김 사장 등을 고소했다. 경찰은 김 사장과 A씨 등 단전·단수 조치 관련 업무를 직접 보고하고 결재한 3명에게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나머지 팀장 1명은 가담 경위와 정도 등을 고려해 무혐의로 판단했다.한편 경찰은 인천공항공사가 공무상 비밀표시 무효 혐의로 김영재 스카이72 대표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 했다. 공사 측은 토지 반환과 소유권 이전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서 스카이72가 다른 업체와 골프장 시설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스카이72가 이미 기존에 맺고 있던 시설 임대 계약을 갱신했을 뿐, 점유권을 이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앞서 2005년부터 인천공항공사 땅을 빌려 골프장을 운영해온 스카이72앤리조트는 지난 2020년 12월 31일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지만, 골프장 시설물 소유권을 인정해달라며 공사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인구 위기, 대선, ‘소멸’의 미래/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인구 위기, 대선, ‘소멸’의 미래/한신대 교수

    대략 1년 전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2021년 1월 6일자)하기를 진정 한국을 위협하는 건 북한이 아니라 인구 감소와 급격한 고령화라고 한 적이 있다. 굳이 핵이니 선제타격이니 할 것도 없다. 가만히 있어도 한국은 망한다. 아니 ‘소멸’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7월 발표된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에 대한 감사원 보고서는 인구 위기의 긴급성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즉 지금의 초저출산율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2017년 대비 2047년에 7.1% 감소한 4771만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67년에는 28.2% 감소한 3689만명, 2117년에는 70.6% 감소한 1510만명으로 전망했다. 이런 추세라면 22세기 말쯤 이 땅에 500만~600만명 정도만 남을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 문제의 집단 자각을 위해선 대선만큼 좋은 이벤트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구 위기의 저 깊은 사회구조적 원인에는 신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활기찬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선 어디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외침은 들어 볼 길이 없다. 아니 그 반대다. 선거가 이제 집단정신병적 양상조차 보이면서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숨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하다고 해도 좋을 한국 사회의 초불평등체제는 오히려 초초불평등체제로 2차 전환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우리 모두의 소멸을 예고하고 있는 이 초저출산체제는 어찌 보면 이 불평등에 대한 수동적 항의이자 생물학적 사보타주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9개 중 100년 뒤 서울 강남, 부산 강서, 광주 광산, 대전 유성 대략 8개만 남고 나머지는 소멸이다. 이는 국토 공간에 대한 괴멸적 타격이다. 지방소멸이 초저출산체제의 직접적 결과 예상이라면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특히 2030세대의 수도권 인구 집중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세대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는 지방 대 수도권 간의 기회, 과정, 결과의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에 있다. 중장기적으로 인구는 감소하더라도 수도권 집중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도 바로 이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의 구조가 원인인 것이다. 2020년 기준 지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앞질러 52%대다. 나머지 48%는 52%를 위해 존재한다. 일종의 ‘두 개의 국민’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권은 다시 서울에, 서울은 강남에 ‘빨리는’, 공간의 계급 구조다. 프랑스의 사상가 앙리 르페브르가 말했다. “수도는 인구와 고급 두뇌, 부 등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수도는 결정을 내리는 곳이며 여론을 주도하는 중심이다. 파리 주변으로는 파리에 서열화된 공간들이 퍼져 나간다. 이 공간들은 파리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파리에 의해 착취당한다.” 이것도 1970년대 파리를 보고 한 말이라 그 수준에서 2022년 서울과 비교하기 어렵다. 공간은 정치적이다. 그리 보면 결국 강남좌우파가 만든 정치적 결과가 지방소멸이다. 자연 진화의 소산이 아니다. 100대, 10대, 4대, 2대 재벌로의 자본 집중과 집적은 돈의 중력장을 만들어 그 무한질량으로 강남이라는 블랙홀을 만들었다. 양대 기득권 정당이 자란 곳이다. 최근 20여년 그 질량이 늘다가 문재인 정부 4년에 폭증했다. 일단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돈의 장벽을 쌓아 4등 국민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장벽 안 3등, 2등 국민을 떨궈 낼 차례다. 지금 우리 문 앞에 어슬렁거리는 경제공황이 문으로 들어서면 3등 국민은 쫓겨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본격 20여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가장 빨리 선진국이 돼, 가장 빨리 초불평등사회로 진입해, 가장 빨리 늙어서 가장 빨리 소멸하는 민족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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