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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디 가가 “열아홉살 때 성폭행 후 임신, 완전 망가져”

    레이디 가가 “열아홉살 때 성폭행 후 임신, 완전 망가져”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35)가 열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함으로써 감정적으로 완전히 망가졌다고 털어놓았다. 본명이 스테파니 저마노타인 가가는 지난 2014년 히트곡 ‘스와인’과 ‘틸 잇 해픈스’ 가사를 통해 처음으로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 노래는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만연한 성폭행에 대한 다큐멘터리 ‘헌팅 그라운드’ 사운드트랙이었으며 2016년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다. 그 뒤 2019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다룬 영화 ‘스타 이즈 번’에서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임신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음악 프로듀서가 옷을 벗지 않으면 음악 경력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위협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성폭행 가해자는 “임신한 나를 입덧을 하거나 아파 한다는 이유로 코너로 몰아붙였다”고 돌아봤다. 몇년 뒤에도 그녀는 트라우마 때문에 “완벽한 조현증”과 “극단의 파라노이아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사실 조현증은 ‘스타 이즈 번’을 촬영할 때도 이어졌다고 했다. 가가는 20일(현지시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해리 영국 왕자가 만든 애플 TV+의 정신 건강 시리즈 ‘당신이 볼 수 없던 나(The Me You Can‘t See)’ 첫 회에 출연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햇병아리 시절에 덮친 성폭행을 돌아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난 열아홉 살이었다. 난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프로듀서가 ‘옷들 좀 벗지’라고 말하자 난 ‘안돼, 가겠다’고 하자 그들은 내게 음악 경력을 다 망가뜨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멈출 줄 몰랐다. 그들은 내게 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난 얼어붙어 아무 것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가해자 이름을 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난 이 #미투(MeToo) 운동을 이해한다. 난 몇몇이 이런 운동이 펼쳐지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않는다. 난 이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가가는 그 트라우마가 자신을 통째로 바꿔놓았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여러 차례 했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몸은 그 소름끼치는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2년 반의 시간이 흘러 회복됐다. 하지만 한 번 방아쇠가 당겨지면 신체적으로, 감정적 고통이 밀려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마무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몇년의 노력 끝에 “스스로를 이 모든 역경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법을 배웠다. 시작하면 느리게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가가 외에도 글렌 클로즈, 올림픽 복서 버지니아 푹스, 유명 셰프 라샤드 암스테드 등이 정신적으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고 이겨낸 비결 등을 나누게 된다.한편 해리 왕자는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을 잃은 충격이 계속되면서 28∼32세 때 악몽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구 술을 마시고 약물에 취했다. 감정을 덜 느끼게 해주는 것들을 기꺼이 시도했다”며 “주말 밤이면 일주일치 술을 마셔버리곤 했는데 좋아서가 아니라 뭔가를 가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공식 역할을 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맬 때마다 거울을 보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가자’고 말하곤 했다. 집을 나서기도 전에 나는 땀을 쏟고 있었고 전투나 비행 모드였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과 정의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를 쫓아 터널로 간 자들이 차 뒷자리에서 숨이 멎고 있는 어머니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운구 행렬을 따라 걸었던 일에 관해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말발굽 소리”라면서 “내가 몸 밖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의 10분의 1만 드러내면서 그냥 남들의 기대에 따라 걸었다”고 말했다. 오래 전 다이애나빈이 사진사들에게 쫓기면서 울고 있을 때 그 차 뒷자리에 앉아있던 기억에 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카메라 찰칵 소리와 불빛이 내 피를 끓게 한다”며 “어머니에게 벌어진 일과 내가 어릴 때 경험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했더니 이후 “정신적으로 엉망이 돼버렸다”고 고백했다. 해리 왕자는 부인 메건 마클이 소셜 미디어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정말 막막했고 가족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과 무시였다고 폭로했다. 마클은 엄마를 잃은 남편이 부인과 뱃속 아기까지 잃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껴서 극단적 생각을 접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어머니는 백인이 아닌 사람과 만나다가 쫓겨서 죽음에 이르렀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라”며 “그들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해리 왕자 “母 죽음에 술·마약…마클 극단선택 충동 때 공포”

    해리 왕자 “母 죽음에 술·마약…마클 극단선택 충동 때 공포”

    영국 해리 왕자가 어머니 다이애나비를 잃은 슬픔을 감추려 폭음을 하고 약물에 의존했다고 털어놨다. 21일(현지시간) 더타임스와 BBC 등 현지 매체는 해리 왕자가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제작한 정신 건강에 관한 애플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계속되면서 28∼32세 때는 악몽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마구 술을 마시고 약물에 취했다. 감정을 덜 느끼게 해주는 것들을 기꺼이 시도했다”라며 “주말 밤이면 1주일치 술을 마셔버리곤 했는데 좋아서가 아니라 뭔가를 가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식 역할을 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맬 때마다 거울을 보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가자’고 말하곤 했다. 집을 나서기도 전에 나는 땀을 쏟고 있었고 전투나 비행 모드였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과 정의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를 쫓아 터널로 간 자들이 차 뒷자리에서 숨이 멎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운구 행렬을 따라 걸었던 일에 관해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말발굽 소리”라면서 “내가 몸 밖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의 10분의 1만 드러내면서 그냥 남들의 기대에 따라 걸었다”고 말했다. 오래전 다이애나비가 사진사들에게 쫓기면서 울고 있을 때 그 차 뒷자리에 앉아있던 기억에 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카메라 찰칵 소리와 불빛이 내 피를 끓게 한다”며 “어머니에게 벌어진 일과 내가 어릴 때 경험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애나비 죽음에 관해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했더니 이후에 “정신적으로 엉망이 돼버렸다”고 고백했다. 해리 왕자는 아내 메건 마클이 왕실내 갈등으로 극단 선택 충동을 느낄 때 그의 어머니를 잃은 공포가 다시 증폭됐다고 밝혔다. 그는 마클이 소셜미디어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정말 막막했고 가족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과 무시였다고 털어놨다. 마클은 엄마를 잃은 남편이 부인과 뱃속 아기까지 잃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껴서 극단적 생각을 접었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면서 부인을 잃고 아들 아치를 홀로 키울 두려움이 영국을 떠난 큰 이유라고 밝혔다. 한편 전날 영국 방송 BBC가 1995년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위조된 문서를 사용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는 각각 성명을 내고 언론의 비윤리적 행위로 인해 부부 사이가 파국에 이르렀고 결국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설] 부실급식·불량 베레모, 군납비리 전수조사해야

    병사들에게 수년간 지급된 피복류 수십만 개가 ‘불량품’인 것으로 확인돼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이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곳의 업체가 제작해 군에 납품한 활동복과 베레모 등이 질 낮은 원단으로 제작돼 기준 규격에 미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활동복이 땀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병사들이 ‘사제 운동복’을 입는 경우도 있고, 베레모의 발수 기능이 약해 비가 오면 모자 안으로 빗물이 줄줄 스며들 정도라고 한다. 불량품이 버젓이 납품된 것은 완제품에 대한 검증 절차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군수품 피복류의 경우 납품업체가 방사청에 ‘제품이 기준에 부합한다’는 공인성적기관 성적서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일부 업체가 공인성적기관 의뢰 시에는 정상적인 제품을 제출하고 실제 납품 때는 불량 원단이 사용된 피복류를 납품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품질 관리를 이처럼 후진적으로 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 혈세로 피복류를 주문했으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꼼꼼히 점검해야지 서류 하나만 보고 납품을 허용했다니 말이 되나.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사도 이런 식으로 하겠나. 이러니 방사청이 사실상 불량품 보급을 방치했다는 비판과 함께 업체와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되는 것 아닌가. 코로나19 격리 장병에게 ‘부실 급식’이 제공됐다는 폭로가 잇따르는 것도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방부 직할부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 예하 부대 병사들에게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 등 부실 식단이 제공됐을 정도니 다른 작은 부대의 실태는 더 심각할 것이라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급식 예산은 더 올랐다는데 오히려 편의점 도시락만도 못한 급식을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의 병사들에게 먹이다니 군납 비리를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 드립니다’ 측은 계룡대에서 식자재 횡령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부실 급식 폭로에 대해 처음엔 부인하다가 사실로 확인되자 계룡대 지역 21개 부대를 대상으로 정밀진단 방침을 밝혔다. 방사청도 피복류 불량품 납품 8개 업체 중 1개 업체만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땜질식 처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정도 난맥상이 노출됐으면 전 군에 걸쳐 군수 비리가 만연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국방부는 전군의 군수품에 대해 전수조사에 적극 나서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 기관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사를 받는 굴욕을 겪을 수도 있다.
  • 軍, 나라 지키는 자식들에게 왜 그러세요

    병사들에게 수년간 지급된 베레모와 운동복 수십만벌이 불량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방위사업청은 품질보증제도 보완·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수년간 ‘부실 피복’을 방치하다 뒷북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실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해 군에 납품된 18개 업체의 피복류 6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8개 업체의 베레모와 육군 춘추운동복, 여름운동복 등 3개 품목이 기준 규격에 미달된 것을 확인했다. 업체 5곳은 지난 5년간 여름활동복 30만 8000여별, 2곳은 2년간 춘추운동복 19만 5000여별, 1곳은 1년간 베레모 30만 6000여벌 등 총 81만여벌, 182억원 규모를 납품했다. 한 업체가 납품한 여름운동복 하의의 수분 흡수 속도는 납품 기준인 2초 이하를 초과해 19초에 달했다. 베레모의 경우 방수 능력을 뜻하는 발수도가 규격에 미달했다. 다른 업체가 납품한 제품도 마찰·땀·세탁으로 인한 변색·변형 정도 평가에서 규격에 미달됐다. 불량품이 수년간 납품된 것은 피복류의 품질보증제도가 상대적으로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피복류는 완제품만 평가하는 단순품질보증형으로 분류돼 납품업체는 방사청에 공익성적기관의 성적서만 제출하면 된다. 이에 납품업체가 공인성적기관에는 정상 제품을 제출해 성적서를 받고, 실제로는 불량 제품을 납품한 것이다. 방사청은 8개 업체 중 계약이 완료된 1곳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나머지 7곳은 계약 기간이 남아 시정 조치를 내렸지만 국방기술품질원의 추가 검증을 거쳐 수사 의뢰 등의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아울러 납품업체에 대한 위험등급을 분류하고 고위험 업체에 대해서는 보다 강화된 품질보증활동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며, 불량납품업체를 즉각 퇴출시킬 수 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방사청은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코로나19 투병기

    [박철현의 이방사회] 코로나19 투병기

    지지난주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몸 상태가 이상했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고 식은땀에 근육통도 느껴졌다. 전형적인 감기몸살 증세였는데 중요한 견적서를 써야 해서 사무실에 나갔다. 서류 작업을 끝낸 후 근처 한국 식당에서 일부러 매운 육개장을 먹었다. 원래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감기나 몸살 증세가 있을 땐 일부러 먹는다. 땀을 확 빼서 나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일시적으로 몸이 괜찮아지는 듯했다.오후 서너 시쯤 되자 열이 확 올라온다. 체온을 재어 보니 38.3도. 어지럼증과 두통도 몰려왔다. 여전히 감기몸살 가능성이 더 컸지만 시절이 하수상한지라 사무실 소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시판용 갈근탕 가루약과 따뜻한 녹차를 몇 잔 마신 덕분인지 다음날 아침 몸이 한결 나아졌다. 집에 간다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아내가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반복적 고열’이 강조된 칼럼이다. 일시적으로 열이 내렸다가 재발열하는 코로나19 증상이 구체적으로 소개돼 있다. 즉 아내는 혹시 모르니 집에 당장 오지 말고 하루 더 상태를 보자는 거다. 내심 섭섭하긴 했지만 매우 적확한 판단이라 생각해 하루 더 사무실에서 머물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다시 38.5도의 고열이 찾아왔고, 이번엔 기침에 숨가쁨 현상까지 같이 왔다. 즉시 사무실 근처 빈 건물의 조그마한 방으로 갔다. 사무실 바로 옆에 호텔도 있지만 코로나용 격리 호텔이 아니다. 혹시라도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이웃 호텔에 묵는 것조차 민폐를 끼칠 수 있었다. 집에는 당연히 못 가고, 월요일부터 사람들이 출근하니 사무실에 계속 머물 수도 없었다. 보건소에 문의 전화를 할까 했지만 아직 코로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쿄 지역은 하루에 1000명씩 나오던 시기였다. 안 그래도 궤멸적 상황에 빠진 보건소 분들에게 코로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괜한 부담을 주기 싫었다. 그렇게 텅 빈 방에서 얇은 홑이불 두 개와 회사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놔두고 간 컵라면 몇 개, 과일, 갈근탕, 물 몇 병, 우유, 삼각김밥 등으로 일요일과 월요일을 버텼다. 그리고 ‘운명의 화요일 아침’ 미각과 후각이 완벽하게 사라진 불가사의한 세계와 조우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바로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보건소는 이것저것 구체적인 것을 물었다. 하지만 PCR 검사는 금요일에나 가능하다면서 지금 격리 중이라면 자체적으로 관리를 해 달라며 상황이 안 좋아지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다. 화요일 전화했으니 금요일이면 나흘 뒤였다. 증상 발현 후 일주일이었다. 일주일간 코로나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조차 모르면서 혼자 버텨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발열 외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설 병원이나 클리닉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검사 비용이 만만치 않고 나 같은 경우엔 이미 한 고비를 넘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미 자가격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밖으로 나돌아다녀서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오히려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아예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엿새째인 목요일부터 겨우 몸 상태가 호전됐다. 미각과 후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반복적 고열과 근육통, 어지럼증, 숨가쁨 증상은 깨끗히 사라졌다. 몸 상태가 나아지자 문득 이러한 ‘일본적’인 생각, 이를테면 PCR 검사 결과가 나와 봤자 치료제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외출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며, 실제로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검사받기도 힘드니 그냥 혼자서 버티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6일자 아사히신문은 오사카부에서 양성 확진자 중 1만명 이상이 자가격리한다고 했다. 도쿄에서도 병원이 포화상태라 양성 판정 후 홀로 자택 투병이 허다하다. 5월 전국 각지에서 기저질환이 없던 20대 청년들이 알아서 격리하던 중 갑자기 죽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온다. 나처럼 양성인지 음성인지 아직 모르지만 일단 격리부터 하는 사람은 당연한 말이지만 통계에도 안 잡힌다. 전국의 나 같은 사람이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나 역시 증상 발현 후 처음 5일간은 너무너무 아팠다) 사후 검사를 할까? 일본의 코로나 관련 수치들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 [허백윤의 아니리] 작은 공간, 큰 울림

    [허백윤의 아니리] 작은 공간, 큰 울림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연주자의 호흡과 땀을 그대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선율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화려함과 웅장함 대신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음악의 숨결을 온몸으로 담을 수 있는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들도 코로나19 시대에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음악을 이어 가고 있다.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는 매주 월요일 더하우스콘서트 정기공연이 열린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가 2002년 자택 거실에서 시작한 게 어느덧 800회를 넘겼다. 828회 공연은 17일 바이올리니스트 하유나, 피아니스트 오연택이 장식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도 일부 공연을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하면서 명맥을 이었다. 지난해 7월 31일 피아니스트 32명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릴레이로 연주한 장면을 관객 50여명이 13시간 동안 지켜봤고, 확산세가 급증했던 9월 7일 800회 콘서트는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문지영의 포핸즈 연주를 온라인 중계했다. 이어 12월 28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8살이나 어린 첼리스트 한재민과 호흡을 맞춘 듀오 공연도 잔뜩 얼어붙은 관객들의 마음을 녹였다. 김선욱은 10대부터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선 최다 출연자이기도 하다.무대와 객석이 서로 경계도 없이, 마룻바닥에 앉은 관객들과 음악을 나누는 것. 강선애 더하우스콘서트 수석매니저는 “연주자는 진지하게 발전해 나가는 마음과 도전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생들은 당장의 기량보다는 가능성에 더 초점을 둬 성장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관찰한다”고 설명했다. 연주를 보고 듣는 것을 넘어 모든 순간을 같이 느끼는 경험을 관객들도 멈추지 않아 첼리스트 송민제·피아니스트 김종윤(24일), 피아니스트 안종도(다음달 7일) 등 주요 공연들은 이미 예약이 마감됐다. 간혹 국악 무대가 또 다른 매력을 전하기도 한다. 경기 성남에 있는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도 피아니스트 임주희(7월)·임윤찬(10월) 리사이틀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가 꾸린 칼라치 트리오 콘서트(다음달 29일), 소프라노 홍혜란, 테너 최원희, 바이올리니스트 최이삭·고소현 등이 참여하는 티엘아이실내악축제(10월)까지 핫한 연주자들의 공연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객석 맨 뒷자리까지 불과 17m밖에 안 되는 200여석 규모 작은 무대에 피아니스트 이경숙·백혜선·손열음·선우예권·손민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신지아·임지영·김다미·김동현, 플루티스트 김유빈·최나경, 소프라노 임선혜,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노부스 콰르텟 등 클래식계 스타들도 대거 거쳐 갔다. 매년 실내악축제와 ‘젊은 음악가 시리즈’, ‘티엘아이 아티스트 시리즈’ 등 기획공연으로 무대를 꾸민 결과다. 박평준 티엘아이아트센터 대표는 “한국 음악계를 이끌 젊고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을 도우며 클래식 발전에 작은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도심 곳곳에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일상에 녹아 있다. 여의도 증권가 한복판에 자리한 신영체임버홀은 약 70석 규모 공연장에서 다채롭고 풍부한 실내악 향연이 이어진다. 용산구 한남동의 일신홀은 공연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근현대음악을 주제로 한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감각적인 앙상블을 꾸민다. 장엄한 파이프오르간의 떨림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엘림아트센터(인천 청라) 등 작은 공연장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내보이며 관객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코로나19 여파가 크다. 특히 기업이 운영하지 않는 공연장들은 원래도 적은 객석 규모를 절반 이상 축소했고 대관 수입도 확 줄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대를 붙들어야만 했던 것은 지금 하나둘씩 열리는 무대들이 곧바로 1~2년 뒤 작은 공연장의 앞날을 결정짓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객석이 있는 어디든 음악이 울리고, 울림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작은 공간들이 조용하지만 뜨겁고 절실하게 알리고 있다. baikyoon@seoul.co.kr
  • [나우뉴스] 장애아 입양한 미모의 20대 미혼여성, 5년 후 지금은

    [나우뉴스] 장애아 입양한 미모의 20대 미혼여성, 5년 후 지금은

    베트남 라오까이주 사빠 출신 팜 티 탄 땀(29)은 지난 2016년, 생후 14개월 뇌성마비아를 입양했다. 뜻깊은 행보였지만 사람들 반응은 차가웠다. 20대, 그것도 미혼 여성이 장애아를 입양한 데는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팜 티 탄 땀의 각오는 대단했다. “사람들은 새롭고 재밌는 것들로 젊음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내 젊음과 시간을 입양한 딸에게 주려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아름다운 외모로 꽤나 유명했던 팜 티 탄 땀은 2016년 6월 자선행사에서 뇌성마비아 타오 티 옌 니를 만났다. 한 눈에 보아도 아기의 건강은 나빠 보였다. 심각한 영양실조로 생후 14개월임에도 몸무게는 고작 3.5㎏, 신생아 수준에 불과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적절한 양육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한 터였다. 아기가 계속 눈에 밟혔던 팜 티 탄 땀은 결국 그날로 입양을 결심했다. 미모의 20대 미혼 여성이 입양을, 그것도 장애아를 입양한다는 소식에 언론 관심이 집중됐고,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장애아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 관심을 끌기 위해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였다는 원색적 비난이 이어졌다. 판 티 탄 땀의 SNS로 몰려가 비열한 발언과 공격도 퍼부었다. 팜 티 탄 땀은 굴하지 않았다. 평생 혼자 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기는 꼭 책임질 거라는 뜻을 밝혔다. 최고의 병원에서 아기를 치료했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관심과 사랑으로 정성껏 아기를 돌봤다. 꾸준한 그녀의 보살핌에 사람들도 하나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시작했다. 그녀의 헌신 속에 아기의 건강도 점차 회복됐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뜻밖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다름 아닌 팜 티 탄 땀의 결혼과 출산 소식이다. 현지언론은 2018년 결혼한 그녀가 아들을 출산했다고 전했다. 그럼 입양한 딸은 어떻게 됐을까. 베트남 현지매체 EVA는 팜 티 탄 땀이 입양한 딸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결혼했으며, 그녀의 남편도 물심양면으로 딸을 돌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팜 티 탄 땀은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속 깊고 배려심 많고 온화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딸을 잘 챙긴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기를 키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뇌성마비 아기를 돌보는 일은 화장실 문제부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 남편은 최고의 양육 파트너”라고 덧붙였다. 아들을 낳고도 남편이 변함없이 딸을 아껴준다며 고마워했다. 이를 증명하듯 6살이 된 타오 티 옌 니도 전에 없이 건강한 모습이다. 현재 다이어트 보조제 생산 회사를 운영하는 팜 티 탄 땀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가족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문 대통령 “스승의날, 코로나 속 헌신하는 선생님들께 감사”

    문 대통령 “스승의날, 코로나 속 헌신하는 선생님들께 감사”

    문재인 대통령이 ‘스승의 날’을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원격 수업을 진행가고 있는 선생님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스승의 날인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제 우리 앞에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이후 시대가 놓여있다”며 “교육이 먼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변화 속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모든 인연 가운데, 지혜를 주고받는 인연만큼 오래 남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며 “지난해 우리는 교실에서 배우고, 가르치며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스승의 날 의미를 전했다. 이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원격 수업부터 더욱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일까지 선생님들의 헌신 덕분에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얘기해준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특히 “교육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하는 고단한 여정이기도 하다”며 “코로나로 인한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선생님들, 아이들의 꿈 꿀 권리를 위해 헌신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잊지 않겠다. 선생님들이 긍지 속에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문 대통령은 약속했다.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월드피플+] 장애아 입양한 미모의 20대 미혼여성, 5년 후 지금은

    [월드피플+] 장애아 입양한 미모의 20대 미혼여성, 5년 후 지금은

    베트남 라오까이주 사빠 출신 팜 티 탄 땀(29)은 지난 2016년, 생후 14개월 뇌성마비아를 입양했다. 뜻깊은 행보였지만 사람들 반응은 차가웠다. 20대, 그것도 미혼 여성이 장애아를 입양한 데는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팜 티 탄 땀의 각오는 대단했다. “사람들은 새롭고 재밌는 것들로 젊음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내 젊음과 시간을 입양한 딸에게 주려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아름다운 외모로 꽤나 유명했던 팜 티 탄 땀은 2016년 6월 자선행사에서 뇌성마비아 타오 티 옌 니를 만났다. 한 눈에 보아도 아기의 건강은 나빠 보였다. 심각한 영양실조로 생후 14개월임에도 몸무게는 고작 3.5㎏, 신생아 수준에 불과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적절한 양육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한 터였다. 아기가 계속 눈에 밟혔던 팜 티 탄 땀은 결국 그날로 입양을 결심했다. 미모의 20대 미혼 여성이 입양을, 그것도 장애아를 입양한다는 소식에 언론 관심이 집중됐고,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장애아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 관심을 끌기 위해 책임지지도 못할 일을 벌였다는 원색적 비난이 이어졌다. 판 티 탄 땀의 SNS로 몰려가 비열한 발언과 공격도 퍼부었다.팜 티 탄 땀은 굴하지 않았다. 평생 혼자 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기는 꼭 책임질 거라는 뜻을 밝혔다. 최고의 병원에서 아기를 치료했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관심과 사랑으로 정성껏 아기를 돌봤다. 꾸준한 그녀의 보살핌에 사람들도 하나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시작했다. 그녀의 헌신 속에 아기의 건강도 점차 회복됐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뜻밖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다름 아닌 팜 티 탄 땀의 결혼과 출산 소식이다. 현지언론은 2018년 결혼한 그녀가 아들을 출산했다고 전했다. 그럼 입양한 딸은 어떻게 됐을까.베트남 현지매체 EVA는 팜 티 탄 땀이 입양한 딸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결혼했으며, 그녀의 남편도 물심양면으로 딸을 돌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팜 티 탄 땀은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속 깊고 배려심 많고 온화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 딸을 잘 챙긴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기를 키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뇌성마비 아기를 돌보는 일은 화장실 문제부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 남편은 최고의 양육 파트너”라고 덧붙였다. 아들을 낳고도 남편이 변함없이 딸을 아껴준다며 고마워했다. 이를 증명하듯 6살이 된 타오 티 옌 니도 전에 없이 건강한 모습이다. 현재 다이어트 보조제 생산 회사를 운영하는 팜 티 탄 땀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가족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서초구, ‘힐링텃밭’으로 위기가구 정서안정 도와

    서초구, ‘힐링텃밭’으로 위기가구 정서안정 도와

    그동안 남편의 사업실패와 장기간병 등으로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고 있던 최씨는 요즘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최씨는 “그동안 힘든 상황에 혼자 화가 많이 났었는데 텃밭에 다녀오면 속이 편안해 진다”라며 “암 치료 후 회복 중인 남편에게 무농약 채소로 상차림을 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어릴적부터 가정불화 및 부모님의 부재 속에 심한 조현병을 앓아온 쌍둥이 정씨 자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에 나와 바람도 쐬고 수확한 감자로 감자전도 만들면서 우울감이 많이 해소됐다”고 웃었다. 서울 서초구가 정신질환, 알코올의존 및 만성질환 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심리·정서적 지원에 나섰다. 구는 오는 11월까지 ‘2021년 건강한 가족키움 텃밭 가꾸기 사업’을 시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사업을 통해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11개 가구가 무공해 채소를 가꾸면서 자연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는 이번 사업을 통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외롭고 힘든 ‘집콕’ 생활을 해왔던 이들이 보다 넓은 공간에 나와 숨 쉬고 땀 흘리며, 수확하는 기쁨을 제공한다. 사업은 서초구 원지동에 위치한 주말 농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농장 대표가 텃밭을 가꾸는 과정을 일일이 전달하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밖에 구는 ‘청정케어사업 확대’, ‘원예치료 프로그램’, ‘걱정해결 사업’, ‘변호사와 함께하는 희망 멘토링 사업’ 등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일대일 맞춤형 사업을 시행한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앞으로도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도록 안전하고 다양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개발·확대해 구민의 복지체감도 향상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송현서의 각양각세(世)] 일본이 올림픽 포기 못 하는 진짜 이유

    [송현서의 각양각세(世)] 일본이 올림픽 포기 못 하는 진짜 이유

    2020 도쿄올림픽이 7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개최를 두고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안팎의 여론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개최 반대’를 향해 흐르고 있지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개최 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단순히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도쿄올림픽의 개최 경비는 2019년 말 기준 1조 3500억엔(약 14조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면서 대회장 유지 및 고용 기간 연장에 따른 직원 인건비 등에 들어간 2000억엔(약 2조 480억원)과 1만명이 넘는 출전 선수들의 코로나19 검사 및 의료진 확보와 경기장 소독, 직원과 자원봉사자 방역 등을 위한 코로나19 대책 비용 1000억엔(약 1조 240억원) 등 한화로 약 3조 720억원에 달하는 추가 경비가 발생했다. 당초 일본은 추가 경비의 일부를 도쿄올림픽 예상 수입으로 충당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무관중 개최가 결정되면서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여기에 대회조직위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올림픽 후원 계약이 어려워지고 올림픽 특수 효과에 따른 관광 수입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적자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IOC가 개최를 고집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돈에 있다. 지난 1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IOC 수입의 약 70%는 대회 방영권이 차지하고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 뒀지만, 대회가 취소될 경우 보험 보상금으로 방영권료 전액을 커버하기는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미 한화로 17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일본도 물러서기는 쉽지 않다. 중국과의 자존심 싸움 역시 올림픽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년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도쿄올림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 마이니치신문은 “도쿄올림픽이 취소되고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개최될 경우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떨어지고 정신적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정계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TBS 방송이 지난 7~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일본인의 65%가 도쿄올림픽을 취소하거나 재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밖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쏟아진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8일 올림픽이 전 세계의 ‘대형 감염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일 인터넷판 칼럼 기사를 통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대형 이벤트를 치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최근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나드는 일본에서는 스가 내각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올림픽 개최가 무산될 경우 경제적 손실까지 더해져 책임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을 지나고 있는 현재 일본 정부가 해야 할 고민은 적자를 줄이는 방법이 아니라 코로나 확산을 막는 동시에 올릭픽을 바라보며 4년이 넘도록 땀흘려 온 선수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아닐까.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탐욕에 휩싸인 인간… 어디까지 비인간적일 수 있나

    탐욕에 휩싸인 인간… 어디까지 비인간적일 수 있나

    1900년 등대지기 3명 실종 실화 기반고립된 공간 속 심리묘사·연출 돋보여어느 날 우연히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남의 재물을 손에 넣게 된다면 기쁨과 불안감 중 어떤 감정이 앞설까. 인간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어떤 희생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12일 개봉하는 영국 영화 ‘키퍼스’는 이런 인간의 양면성을 조명하며 순간의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하는지를 보여 주는 스릴러 드라마다. 크리스토퍼 니홀름 감독은 1900년 스코틀랜드 아이린모어섬의 등대지기 3명이 실종된 미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망망대해에 둘러싸인 아이린모어섬은 제임스(제라드 버틀러 분)와 토머스(피터 뮬란 분), 도널드(코너 스윈들스 분)가 지키고 있다. 이 세 등대지기는 어느 날 난파된 보트에서 쓰러진 남자와 금괴가 든 나무상자를 발견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금괴를 옮기는 도널드를 공격하고 도널드는 남자를 죽여 위기를 모면한다. 제임스와 도널드는 부자가 된다는 설렘에 기뻐하나 연륜이 넘치는 토머스는 이러한 횡재가 재앙을 부를 것임을 직감한다. 셋은 시신을 없애고 금괴를 나눠 갖기로 하지만, 죽은 남자와 같은 배를 탔던 선원들이 금괴를 찾아 섬에 나타나자 사건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금괴를 지키기 위한 사투가 계속되면서 굳건했던 세 명의 신뢰에 균열이 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미래’로만 생각했던 금괴가 의심과 살육을 부르는 ‘판도라의 상자’로 변하며 조용함은 소름 돋는 긴장감으로 전환된다. 첫 살인의 죄책감에 시달린 도널드는 제임스의 이상 행동과 광기가 두렵다. 관객은 누가 서로 먼저 배신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냉철한 토머스는 영화 후반부에 또 다른 반전을 선사한다. 자괴감으로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인간 군상을 통해 니홀름 감독은 물질이 행복의 척도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버틀러는 다정다감한 남자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광기에 휩싸이는 심리 묘사를 누구보다 강렬하게 표현해 냈다. 다만 영화 ‘300’(2007), ‘그린랜드’(2020) 등에서 보인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선원들에게 제압당했던 제임스의 반응이나, 외딴섬에 갑작스레 나타난 소년 등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장면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차가운 북해와 외딴섬의 영상미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을 개개인의 절망을 넘어 하나의 지옥으로 재탄생시킨 감독의 연출이 경이롭다. 15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밤마다 긁적긁적 만성 두드러기… 환자 70% ‘원인 아리송’

    밤마다 긁적긁적 만성 두드러기… 환자 70% ‘원인 아리송’

    40대 이모씨는 8년 전 만성 두드러기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다리에 가려움증이 생겼으나 이내 온몸으로 번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긁다 보면 피부가 금세 부풀어 오르고 통증도 심해졌다. 잠결에 긁는 바람에 상처가 난 적도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건조할 때는 증상이 더 악화된다. 그는 “피부과를 찾아가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면서 “하루 한 알씩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다.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항히스타민제를 챙긴다. 하지만 증상이 나아지질 않아 고민이다”고 호소했다.두드러기는 일상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피부 질환 가운데 하나다. 흔히 피부 아래쪽에 혈관에서 빠져나온 체액이 고여 발생하는 혈관부종과 대비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 인구의 20% 정도가 일생에 한 번 이상 두드러기를 경험한다. 피부과 외래환자의 6% 안팎이 두드러기 환자이며, 이 가운데 20~40대가 절반을 차지한다. 두드러기는 피부가 붉은색이나 흰색으로 부풀어 오르고 심한 가려움증이 생기는 게 특징이다. 모기에 물렸을 때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증상과 비슷하다. 피부가 두드러지는 기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인구 20% 일생에 한 번 이상 경험 급성 두드러기는 며칠부터 최대 6주 이내에 대부분 호전된다. 1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며 음식물이나 약물, 감염 등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음식물이 원인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몸 안에서 분해되거나 바깥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보다는 가렵고 붓는 증상이 생기는 동안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의 적절한 투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증상이 6주 이상 지속되면 만성으로 분류한다. 심하면 수년간 지속적으로 두드러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성 두드러기 환자 가운데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는 70%에 이른다. 감염이나 대사·내분비계 이상, 악성 종양, 정신적 요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30% 정도는 자가면역과 관련된 발병으로 분류된다. 만성 두드러기의 경우 부풀어 오른 부위가 급성보다는 작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고주연 한양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만성의 경우 증상이 매일 쉬지 않고 발생하는 지속형과 수일 또는 수주일 불규칙한 간격으로 발생하는 간헐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서 “만성 두드러기의 원인은 각종 검사를 해도 밝혀내기가 쉽지 않아 환자의 일상생활이나 환경, 섭취하는 음식물 등을 조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만성이라 하더라도 평생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속적으로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증세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30%는 자가면역과 관련된 발병 두드러기가 다소 약화됐다고 해서 무심코 넘겼다간 증상이 재발하고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증상이 없어진 뒤에도 계속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보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약물 사용으로 두드러기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됐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면서 “증상이 없어진 뒤에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드러기 발생의 주된 원인인 히스타민(외부 자극에 대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등의 작용을 차단해 증상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비로소 완치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 생활이나 환경, 섭취 음식물 등을 통해 두드러기가 재발할 여지는 없는지 의사와 환자가 함께 추적, 관찰하는 게 좋다. 질병청도 두드러기 증상이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시간이 경과하면 증상이 약해지지만 두드러기가 1년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원인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만성두드러기 환자의 50% 정도는 1년 안에 증상이 호전되며 5년 내에는 85%가 좋아진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5% 안팎이다. 다만 두드러기 증상이 심하거나 자가면역 체계에서 비롯된 두드러기는 꾸준한 진료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만성두드러기를 호소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혈액검사와 함께 간염과 갑상선질환에 대한 검사, 알레르기 원인검사와 피부 조직검사를 병행하기도 한다. 질병청은 “두드러기는 많은 경우 일시적이고 피부증상을 제외하고는 큰 증상이 없는 질환이지만, 만성적인 경우에는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피부과 의사의 진료와 상담을 권하고 있다. 만성두드러기에는 혈액 순환과 관련된 한랭두드러기와 땀 배출 기능 저하에 따른 콜린성 두드러기가 있다. 한랭두드러기는 차가운 공기나 찬물 등 추위에 노출됐다가 다시 따뜻해질 때 증세가 생긴다. 추위에 드러난 신체부위가 많을 때는 전신 두드러기와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 ●1년에 여러 번 반복되면 원인검사 받아야 김규석 경희의료원 한방피부센터 교수는 “피부 쪽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차가운 온도 자극에 혈관이 수축될 수 있다”면서 “한방에서는 피부까지의 혈액 순환을 늘리는 한약과 침, 뜸 등의 치료를 통해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칫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서성준 중앙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찬물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이 온몸이 노출되는 경우에는 피부로 과도한 수분이 유출돼 저혈압, 어지러움, 쇼크 등의 심한 증상이 나타나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콜린성 두드러기는 땀을 제대로 흘리지 못해 신체의 열 조절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발생한다. 콜린은 세포막의 삼투압과 혈압을 조절하고 신경전달 등 생리작용에 관여하는 액체 물질이다. 평소 열이 많은 사람이 갑자기 땀이 잘 나지 않으면서 발산되지 못한 열이 발진과 따끔거림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심한 운동이나 스트레스, 고온의 목욕 등으로 체온이 오를 때 생긴다. 좁쌀 크기의 두드러기가 나타나며 가려움보다 따가움을 느끼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심하면 두통이나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호흡 곤란 등이 나타나고 주로 20대 남성에게서 흔히 발생한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포토] 비키니여신 정한나, ‘이젠 골프 여신’

    [포토] 비키니여신 정한나, ‘이젠 골프 여신’

    ‘슈퍼모델에 이어 비키니여신까지... 이제는 골퍼로’ 다재다능함이 넘치는 비키니여신 정한나가 골퍼로 변신했다. 정한나는 10일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천안우정힐스에서 열리는 ‘대한아마추어골프협회 임원의 날’ 골프대회에 출전해 선수들과 기량을 겨뤘다. 슈퍼모델 출신인 정한나는 지난해 한국 최고의 피트니스 대회인 머슬마니아에 출전해 스포츠모델과 비키니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비키니여신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를 준비하며 세계적인 피트니스 모델로 거듭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정한나는 “어렸을 적부터 골프를 좋아했다. 틈틈이 골프를 해 대회에 출전하는 수준까지 올랐다”며 “골프에 대한 관심으로 대한아마추어골프협회 총괄이사직을 맡고 있다. 골프가 여성들의 건강에 좋은 운동이니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직책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매일 2,3시간씩 웨이트를 하고 있다. 11월 라스베이거스 세계대회에서 한국여성의 매력을 전세계에 자랑하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신 없는 이탈리아 간호사, 화이자 백신 6명 맞을 양을 한 여성에

    정신 없는 이탈리아 간호사, 화이자 백신 6명 맞을 양을 한 여성에

    이탈리아 간호사가 실수로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허용치의 6배까지 과다 주입했다. AGI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9일 오전(현지시간) 중부 토스카나주 마사에 있는 한 병원 간호사가 23세 여성 환자에게 화이자 백신 1바이알(약병)을 한번에 접종했다. 6도스(1회 접종분), 즉 6명이 맞을 수 있는 양이다. 원래는 약병에서 1도스만 뽑아 올려야 하는데 전부를 주사기에 담아 주입하고 만 것이다. 간호사는 접종을 마친 직후 새 주사기 5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한다. 간호사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병원 측은 해당 여성을 곧바로 입원시켜 부작용 발현 여부를 관찰했으며,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만 하루 만인 10일 일단 퇴원 조처했다. 일단 환자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는 간호사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를 듣고 나중에 적정량의 6배나 주입된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는데 간호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호흡을 못할 정도로 혼돈스러워했다고 환자의 어머니가 전했다. 병원 임상심리과 인턴인 이 여성은 최우선 의무 접종 대상인 의료 종사자로 분류돼 연령에 비해 일찍 백신 접종을 하게 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지난달 초 의료·보건 업종 종사자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 규정을 도입한 바 있다. 병원 측은 의료 사고를 낸 간호사를 상대로 자체 경위 조사에 착수했다. 일단은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퇴원한 여성의 면역 반응과 부작용 증상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일은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격인 이탈리아의약청(AIFA)에도 보고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있었던 일이다. 지난해 12월 8명의 독일 요양원 종사자들이 화이자 백신의 적정량을 5배나 주입 받았다. 4명은 독감 증세 같은 것을 경험해 입원했다. 이달 초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퀸 마가렛 대학에서 여러 명이 화이자 백신 적정량의 곱절을 주사로 맞았다. 일부는 어깨 통증과 독감 증세 같은 것을 호소했다. 더 심각한 일은 연초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일어났다. 91세 남성이 한 번 모더나 백신을 맞은 뒤 4시간 만에 또 맞았다. 이 남성은 졸도해 호흡 곤란과 호흡기 문제를 일으켰는데 12일 뒤 회복되긴 했지만 딸은 아버지가 예전같지 않다고 했다. “이 연령대 어르신은 한번 접종했으니 됐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오늘 방금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 못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딸은 억울해 했다. 호주,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나 한번에 6회분이 접종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화이자 측은 지난해 임상시험 과정에서 한 번에 최대 4회분까지 접종해 부작용 발현 여부를 관찰한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 이재용 사면 세 번째 호소문 보내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가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요청하는 세 번째 호소문을 발송했다. 오 군수는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방역 전쟁과 반도체 패권이라는 경제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며 “전시에서는 지도자 결단이 곧 형평성이고,선례이며,국민 공감대이기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에서 내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판단은 존중하지만 치르는 방식에 대해서 대통령이 사면이라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간곡히 호소 한다”고 말했다. 오군수는 “기장군은 147만8천772㎡ 부지에 군비 3천97억원을 투입해 원자력 비발전 분야를 선도할 방사선기술(RT) 산업의 집적화 단지인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며 “대기업들과 강소기업들이 기장군으로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기장군과 17만6천 군민이 피와 땀과 열정으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 군수는 “무너지고 피폐해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지방투자가 절실하고 또 절실하다”며 “대기업들이 무너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도록 살펴봐 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 군수는 지난 2월 1일과 4월 15일에도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발송했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옛 동지에 비수 꽂아라” 펄펄 난 오 vs 살아난 이

    “옛 동지에 비수 꽂아라” 펄펄 난 오 vs 살아난 이

    점점 강해지는 오세근(왼쪽·안양 KGC)과 마침내 부활한 이정현(오른쪽·이상 34·전주 KCC), 마지막에 누가 웃을까. KGC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우승컵을 두 차례 맞들었던 오세근과 이정현이 외나무 다리 대결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정현은 2010년, 오세근은 2011년 KGC에서 프로 데뷔해 2011~12시즌 구단 첫 플레이오프(PO) 우승과 2016~17시즌 첫 통합 우승을 함께 일궜다. 이후 이정현은 KCC로 떠났고 오세근은 KGC에 남았다. 이제 둘은 PO에서 처음 만나 격전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챔피언결정전에서다. 현재로선 2연승한 오세근이 세 번째 우승 반지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 건강하기만 하면 팀이 우승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는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번 6강 PO 3경기에서 평균 10점 4.5리바운드를 기록하더니 4강 PO 3경기에서는 14.6점 7리바운드로 활약했다. 챔프전 2경기에서는 18점 5리바운드로 맹위를 떨쳤다. ‘설교수’ 제러드 설린저 합류 뒤 페인트존에서 더욱 빛나는 모양새다. 설린저가 외곽으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면 오세근이 골밑을 휘젓는 식이다. 김승기 감독은 “완벽하다”고 치켜세웠다. 이번 PO 들어 집중 견제당하며 평범한 수준에 그쳤던 이정현은 지난 5일 PO 7경기 째인 챔프전 2차전에서 제대로 터졌다. 1쿼터 중반부터 2쿼터 중반까지 3점슛 5개를 집중시켰을 때만 해도 KCC 승리 분위기였다. 이정현은 경기가 뒤집힌 4쿼터에도 3점슛 2방을 보태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연출해 냈다. 7일 원정 3차전에서부터 반격을 시작해야 하는 KCC로서는 1차전에서 2점으로 묶였다가 “스스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던 전창진 감독의 말처럼 2차전서 3점슛 7개에 27점으로 부활한 이정현이 무척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역대 챔프전에서 1, 2차전 연승은 11번 있었는데 진 팀이 시리즈를 뒤집어 우승한 경우는 두 차례(18.2%) 뿐이었다. 1997~98시즌 KCC의 전신인 대전 현대와 2017~18시즌 서울 SK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랑하기 위해 사는 우리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랑하기 위해 사는 우리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는 월말만 되면 마음이 매우 분주해집니다. 매달 말일이면 직원들 월급이며 사무실 운영 비용 그리고 저희 가족 한 달 생활비 등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매출이 오른 달이면 마음이 분주해도 넉넉하게 분주하지만 일 년 중 그런 달은 몇 달 되지 않고 대부분은 그야말로 빠듯한 수입에 한숨짓는 월말을 맞이합니다. 빠듯하기만 하면 좋은데 적자가 나거나, 받아야 할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마음이 분주한 것을 떠나 몹시 조급해지기까지 하지요. 오랜 시간 반복되는 이런 월말 풍경에 지겹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지만 직원들 월급 밀린 적 없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한 달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무료함, 그리고 월말의 무한 반복되는 분주함과 한숨이 저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감출 수 없는 노릇이지요. 적자가 난 것도 모자라 의뢰인이나 직원까지 속을 썩이는 달이면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정말로 참 어렵고 고단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일상 속에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조금이라도 기쁘게 출근하려 발버둥치다 우연히 지인 모친의 장례 미사에 참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잠을 쉬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저의 임종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죽음에 임박해 내 인생의 가치 있는 시간은 언제였다고 회고하게 될까?’ 하는 질문에 이르니 뜻밖에도 주저 없이 바로 답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죽음에 임박해 돈을 많이 번 것도, 명예를 드높인 것도, 권력을 누린 것도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시간이 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회고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죽음에 슬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돼 눈물이 납니다. 또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행복한 순간들도 떠올라 미소 짓게 되면서 욕망의 부질없음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울다 웃다 보니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도 자동으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답이 나옵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이 명예를 드높여 더 많이 우쭐대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임박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미안한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릅니다.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 관계까지 떠올라 그때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임종 모습을 상상해 보니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어쩌면 사랑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돈을 벌려고 땀을 흘린다면 사람 사는 풍경이 퍽 강퍅하게만 보이겠지만 사랑하기 위해 그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사람 사는 풍경이 퍽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사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맛난 음식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명품을 걸치고 살았는지 하는 것은 기억조차도 안 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만큼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사람은 우울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부여할수록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돈을 버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돈을 번다고 의미를 부여해 보니 먹고사는 것의 고단함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도 듭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인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수단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수단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인생을 통틀어 수단이 삶의 전부인 듯 사는 시간이 너무 많은 미련한 인간이지만 말입니다.
  • 장애는 탁구대 네트, 딱 그만큼… 도쿄서도 우리는 환상의 라이벌

    장애는 탁구대 네트, 딱 그만큼… 도쿄서도 우리는 환상의 라이벌

    “패럴림픽이 벌써 다섯 번째라니 믿기지 않네요.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오른쪽·37·김영건) “몸이 불편하다고 혼자 처박혀 있으면 더 우울해져요. 그깟 장애가 대수인가요.”(왼쪽·35·김정길) 장애인탁구의 ‘간판스타’ 김영건(광주광역시청 장애인체육회)은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전남 광주 숭의중 1학년 때다. 수업 도중 목이 뻣뻣해지고 두통이 심해지더니 그만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허리 아래는 감각이 없었다. 급성척수염. 그는 “하반신마비 2년의 절망을 깨운 건 탁구였다”면서 “16세 때 재활을 위해 근처 복지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비장애인 문창주 선생님(청주장애인탁구팀 감독)이 쥐여준 라켓을 처음으로 잡았다. 희망을 봤다”고 했다. 중학교와 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광주보건대를 수료하고 편입한 호남대 사회체육학과에서 정규 4년제 대학 졸업장도 받았다. 2개월 뒤엔 ‘새 각시’도 맞이한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김정길은 김영건의 훈련 파트너이자 광주시청 장애인체육회 동료로 둘도 없는 동생뻘 라이벌이다. 그는 스포츠광이었다. 격한 운동이 특히 좋았다. 2004년 3월 경북 고령의 산에서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반대편 능선으로 점프한다는 게 그만 거리가 모자라 계곡으로 추락했다. 척추 골절로 6개월 만에 퇴원했지만 그 역시 하반신마비라는 호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천성이 긍정적인 김정길은 퇴원 직후 탁구를 시작했다. “‘장애인 탁구를 하려면 모름지기 광주로 가야 한다’는 주위의 말에 뒤도 안돌아보고 ‘광주 유학’에 올랐죠.” 지금까지 광주에서 16년째다. 지난 26일 광주광역시 치평동의 광주광역시청 장애인탁구팀 훈련장에서 만난 둘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이방인을 맞았다. “이제 곧 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으로 들어가는데 본격적인 정규 훈련 시작에 앞서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영건은 패럴림픽 ‘메달 부자’다.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 개인·단체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대회 개인 금메달·단체전 은메달, 2016년 리우대회 단체전 금메달 등 네 차례 출전한 패럴림픽에서 모두 5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김정길은 런던대회부터 패럴림픽에 출전해 김영건과 리우에서 단체전 금메달 1개를 합작했다. 그는 “두 번째 단체전 금메달은 물론이고 저도 개인전 금메달을 따야죠. 아마 8강쯤에서 영건이형과 진검승부를 펼치게 될 것 같습니다”라며 웃었다. 둘은 휴식 시간 탁구대 모서리를 가운데 두고 앉아 두 손을 맞잡으면서 말했다. “팔씨름을 하면서 저희는 ‘잠재적 장애인’이었던 비장애인 시절을 기억합니다. 사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는 탁구대 네트, 딱 그만큼의 두께밖에 안 됩니다.” 글 광주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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