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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매’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안이 결딴?

    “호미로 쉽게 막을 일을 미봉(彌縫)하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중국 대륙에 재혼해 금실 좋게 살아가던 부부가 자신들의 의붓 남매간의 성폭행 등 불미스런 일을 감추기 위해 혼인시켜려다 실패하는 바람에 화목하던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일이 발생,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남녀가 재혼해 각각 데려온 아들·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던 중 의붓 남매인 아들·딸을 억지로 결혼시키려다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상주일보(常州日報)가 16일 보도했다. ‘사건’의 장본인들은 재혼한 추궈칭(邱國慶·40)·뤼루(呂茹·37)씨 부부와 의붓 남매인 추하오(邱皓·20)·장윈(17)씨.지난 19991년 이혼의 아픔을 딛고 결혼한 추·뤼씨 부부는 추씨가 전처와의 아들 추군을,뤼씨가 전부(前夫)와의 딸인 장양을 각각 데려와 함께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이들이 재혼할 당시 추군은 14살,장양은 11살이었다. 재혼한 추·뤼씨 부부의 금실이 너무 좋은 덕분에 이들 가족 네식구는 웃음꽃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특히 추씨는 국영기업 중견 간부이고 뤼씨는 능력 있는 보험 설계사여서 집안의 셈평도 나날이 펴졌다. 하지만 이들 집안에 ‘불행의 싹’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2002년 9월부터 17살이 된 추군이 고교 2년,장양은 14살로 중학 2년생이 됐다.고교 2년생이 된 추군이 사춘기에 접어들자,아리잠직한 장양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충동’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심한 경우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고생을 했다.장양은 14살이지만 조숙한 탓에 몸매가 이미 성숙할대로 성숙한 까닭이다.그해 11월10일 일요일이었다.추·뤼씨 부부는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고 추군과 장양 단둘이만 남았다. 의붓 남매이지만 사이가 좋은 이들은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쳐 온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장양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에 난 땀을 식히기 위해 물을 끼얹고 있었다.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은채…. “쏴,쏴….”사워 소리를 들은 추군은 갑작스런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사워중인 장양을 끌어안고 성폭행을 자행했다.그녀가 끝까지 버티며 반항했으나 오빠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무너져버렸다.정조를 잃어버린 장양은 추·뤼씨 부부가 돌아왔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사태를 알아챈 뤼씨는 너무 화가난 나머지 경찰에 신고,의붓아들 추군을 감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추씨는 아내 뤼씨에게 백배 사죄한 뒤 아들 추군을 불러 어머니와 동생에게 용서를 빌라며 마구 때렸다.추군은 “어머니,용서해주세요.내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혼돈에 빠진 뤼씨는 추씨 부자의 사죄에 못이겨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뤼씨는 고통스럽지만 참기로 했다.이혼의 아픔을 딛고 재혼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추씨가 워낙 성품이 좋고 수입도 안정되고….이런 행복한 가정생활을 깨기 싫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갔다.1∼2년이 지나면서 이들 가정에 과거의 아픔을 떨쳐버리고 또다시 웃음소리가 넘치기 시작했다.특히 2004년 여름 추군은 공부를 열심히 한 덕택에 대학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유명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겹쳐 온다는 뜻)인가.그해 7월말 대학 합격을 한 추군이 무료하게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이때 샤워를 하고 타월로 몸을 감싼 뒤 머리를 털며 나오는 장양을 본 순간,또다시 흑심이 발동했다.더욱이 지난번 일도 용서받은 만큼 이번에도 조금 잘못했다고 빌기만 하면 쉽게 용서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사워한 뒤의 물기 묻은 섹시한 모습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추군은 이때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지난번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하다가 들켰지만,수면제를 먹인 뒤 일을 치르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착각도 하게 됐다. 이틀 뒤 추·뤼씨 부부가 출근한 이후 수면제를 사온 그는 장양이 마시는 물컵에다 몰래 집어넣었다.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 물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 위에서 통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추군은 또다시 동생을 범했다.잠에서 깬 뒤 자신의 하복부에 통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당한 사실을 눈치챘으나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머니 뤼씨는 여자의 직감으로 장양이 당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뤼씨가 장양에게 집중 추궁하자 눈물을 흘리며 “사실 몸이 너무 아프다.”며 사실을 털어놨다.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뤼씨는 모든 사실을 남편 추씨에게 털어놓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마음먹었다. 추씨는 집안의 스캔들이 밖으로 알려지면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제발 참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대신 혼인서약서를 쓰겠다고 했다.의붓 남매인 만큼 이들이 결혼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추·뤼씨 부부는 의붓 남매를 데려다 놓고 ▲추군은 장양을 성폭행했으나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형사책임도 묻지 않으며,▲추군은 법정 결혼연령이 되면 반드시 장양과 결혼한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의붓 남매간 불행한 사건은 이로써 묻혀지는 듯 했다. 이들 부부는 의붓 남매가 당연히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고 “추군과 장양이 결혼을 하면,우리들은 이미 가족인 데,너희 둘이 또 결혼하면 우리들 사이는 더 가까워지니 얼마나 좋으냐?”며 흐믓해 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2005년 들어 나이가 들면서 장양에 대한 추군의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그해 10월 중순 장양은 학교 기숙사에 있는 ‘장래 남편’인 그를 찾아갔다. 이때 추군의 친구들이 “저 아가씨가 아내냐?”라고 묻자,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니,나의 여동생이야.”이라고 말한 뒤 식당으로 데려가 점심을 사준 뒤 아무 말 없이 되돌아가버렸다.너무 황당하다고 느낀 장양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사실을 안 추씨도 몹시 화가 나 추군을 찾아가 “장양과 결혼할 것이냐,말 것이냐?”고 따지자,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추군은 그때 이미 한국 유학생 김(金)모씨와 사귀고 있었다. 지난해 4월 중순,추군은 뤼씨와 장양에게 “정말 죄송하게 됐다.하지만 장양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해버렸다.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우두망찰하던 뤼씨는 “우리 모두 각서를 썼다.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욱대겼다. 며칠 뒤 이들 뤼씨 모녀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추군의 대학교 기숙사에 있던 한국 유학생 김씨를 찾아 저간의 사정을 털어놨다.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도 깜짝 놀랐다.김양은 그를 찾아가 “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치사한 남자다.왜 나를 속였니?너를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 뒤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에 화가 난 추군은 이들 모녀가 김씨를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말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죽었으면 죽었지,너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잼처 강조했다. 이 말을 들은 모녀는 모든 생의 의욕을 잃어버렸다.여름방학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추군이 8월말 생활비를 타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추씨는 출근하고 없는 상황이었다. 추군을 보자 이성을 잃은 뤼씨는 “왜,장양과 결혼하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그는 “죽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거리했다.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뤼씨는 주방으로 들어가 식칼을 꺼내 들고 나와 추군을 마구 찔렀다. 이날 사고로 추군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충격이 너무 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물론 기억상실,실어증에 걸렸다.뤼씨 모녀는 현재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추씨는 입원중인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추씨는 곧 뤼씨와의 이혼 수속을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법따로 현실따로] (4) “학교폭력 추방 우리손으로”…제천 의림여중 사례

    [법따로 현실따로] (4) “학교폭력 추방 우리손으로”…제천 의림여중 사례

    ‘또래상담’이 있었다면 안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13일 충북 제천시 의림여중에서 만난 강유진(16·3학년)양은 안산 여중생폭행 사건소식을 안타까워했다.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학교폭력이 왜 일어나느냐고 묻자 여중생들은 “우리끼리는 사소한 일로 싸움이 시작돼요. 기자 아저씨는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면서 자신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 “또래끼리 고민 상담… 폭력 40% 줄었어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하루종일 지켜보지만 중학교에서 선생님은 자신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자신들 끼리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의림여중은 학생끼리 잘 통한다는 데 착안해 ‘또래상담’을 실시하는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9월 전국에서 최초로 자체개발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인 또래상담을 실시한 이후 폭력이 40% 가량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래상담은 30여명의 학급의 학생들을 10명씩 묶고,1명의 ‘또래 리더’를 뽑아 일주일에 한 차례씩 또래들과 학교폭력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는 것이다. 이재희(가명·16·3학년)양은 또래상담으로 폭력을 모면한 케이스. 재희는 같은 반 친구 선영(가명)이 등 10여명과 함께 잘 어울려 다녔는데, 선영이는 장난으로 친구들 앞에서 재희를 무시했다. 재희와 선영이는 감정싸움을 벌이다 욕설과 신체적인 충돌까지 생겼다. 선영의 친구 장민경양은 “사소한 오해에서 불거진 재희와 선영이의 갈등이 자칫 폭력으로 확대될 지경에 이르자 우리는 두 친구를 각각 달래면서 서로의 입장을 대신 전달해줬어요. 이젠 재희와 선영이는 다시 친해졌답니다.”고 설명했다. 학생회장이자 또래리더인 이지영(16·중학교 3학년)양은 “상담을 원하는 친구와는 수시로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아 약속을 잡는다.”고 말했다. 지영이는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성적과 이성문제, 외모, 부모님과의 관계 등 소재도 다양하다.”면서 “대화를 해보면 폭력 사건의 원인이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해지는 문제와 말투 같은 사소한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김성희(16·중학교 3학년·가명)양은 “학교폭력이 예전보다 40%는 준 것 같다.”고 밝혔다. 또래리더 하호정(16·중학교 3학년)양은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세세한 행동을 파악할 수 없지만 또래끼리는 친한 친구가 서로 갑자기 어울리지 않거나, 옆 친구가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인 이용식(30)씨는 “또래상담 프로그램으로 교사는 하루 동안 반에서 이뤄진 일을 파악할 수 있고, 미리 학교폭력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김석호 의림여중 연구부장은 “또래리더는 교우관계가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고, 입이 무거워 민감한 사항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학생을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또래들로부터 추천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학업 성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래리더는 상담 뒤 일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담임교사에게 전달한다. 교사는 학생끼리 해결하도록 가능한 모른 체하다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개입한다. 학생끼리 자율해결이 원칙이라는 얘기다. 학교폭력 예방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어른 중심의 문제해결 보단 또래 친구 활용이 더 효과적” “학생은 교사나 부모보다 함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주변 친구에게 고민을 잘 털어놓습니다.” 의림여중의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연구부장 김석호(45) 교사는 “학교폭력은 친구끼리는 다 아는 일”이라면서 “하지만 교사나 학부모와는 상대적으로 폭행당한 학생과 대화가 적어 눈치를 채지 못해 학교폭력이 은폐되기 쉽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나서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른이 아닌 학생이 중심이 돼 교내 폭력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에 교육부의 학교폭력예방교육 영상물에서 또래 리더의 상담을 착안했다. 김 교사는 “어린 학생들이 속으로만 끙끙 앓지 않고 속시원히 밝히게 하는 게 사건을 미리 방지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또래상담이 시행 초기여서 여전히 미진한 점이 많다.”면서 “또래리더들이 전문 교육기관에서 1박2일간 상담기술을 배웠지만 어려서 아직은 상담에 서투르고, 학생들을 재교육시킬 만큼 전문성을 갖춘 교사도 적다.”고 말했다. ■ “진단서 등 증거 확보… 전문가와 상의를” 학교폭력 피해학생은 기 죽지 말고 가해자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경기도 안산경찰서 강달원 여성청소년계장은 “학교폭력은 말다툼과 친구 사이 오해 등 작은 원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결국 폭력 사태로 번져 피해자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정희 상담사는 “피해자는 속으로만 앓지 말고 가해자에게 받은 고통과 부당함을 설명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적극적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주변 친구 혹은 어른과 상담하거나 청소년 상담실을 찾는 게 현명하다. 그래도 처리가 안 되거나 집단 폭행과 따돌림 등을 당하는 경우 부모님과 교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장맹배 사업국장은 “만일 학교폭력 피해를 다시 당할 위협을 느낀다면 부모님과 친구들과 반드시 동행하고 위협의 정도가 더 심해지면 전문경호업체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심한 피해가 우려되는 학생에게는 무료 경호 서비스를 해준다. 학부모는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사실을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봉혜경 사무국장은 “창피해 말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최대한 먼저 안정시켜라.”면서 “나중엔 기억을 못 할 수 있어 처음 들을 때 녹음이나 기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국민대책협의회 조성희 간사는 “외상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진단서나 의사소견서 등도 증거 확보 차원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 측과 만날 때 개인적으로 만나기보다는 ‘학교폭력 대책 자치위원회’등에서 공식적으로 만나라고 조언한다. 봉 국장은 “흥분된 상태에서 만나면 일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시행령이 법 못따라 첫 단추 잘못끼워져” 유명무실한 학교폭력예방법은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잉태됐다.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등의 정부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이 심각해지자 2002년 국가청소년위원회와 시민단체가 법률 초안을 마련했고,2004년 의원 발의 형식으로 법률이 만들어졌다. 교육부가 시행령을 만들었다. 당시 법률 초안 작업을 주도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교육부가 외부기관의 개입을 피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에서는 외부기관 개입이 가능하게 했지만 시행령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심리상담과 일시보호,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 교체, 전학 권고 등의 법 규정이 있지만 시행령에는 시행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교육현장에선 실천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위원장의 지적이다. 동국대 박병식 교수는 “2002년에 청소년위원회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청예단은 교육위원회에 각각 법률안을 제출했는데, 결국 교육위에서 일괄적으로 통합 처리키로 결정됐다.”면서 “교육부가 외부기관인 청보위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상임위 지정에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효성을 잃은 이유에 대해 지금도 네탓 공방이 계속된다. 시민단체 등은 “학교 문제를 독점하려는 교육부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교육부는 “교육 현장과 법을 잘 모르는 시민단체가 어설프게 법을 만들었다.”고 떠넘긴다. 교육부 관계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이 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으로 학교폭력 사건이 경찰서로 넘어가면 법은 무의미해졌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연구관을 지낸 김학일 경기도 평촌고 교감은 “학생의 성폭력 사건을 자치위원회서 다루면 사건이 학교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성폭력이 제외된 배경을 설명했다. 시민단체는 현장에서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허술하게 이뤄지는 이유가 시행령에서 필수 교육시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특별법 지위 부여해서 교내 모든폭력 대응을” 사문화되다시피한 학교폭력예방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폭력의 범위가 확대돼야 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보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학교폭력이 형법·성폭력범죄처벌법 등 다른 법률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학교폭력예방법 내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특별법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 당국과 시민단체·정치권 등은 현행 법을 이처럼 손질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학교폭력예방법과 시행령에서는 A학생이 폭행과 협박, 집단 따돌림, 모욕 등으로 B학생에게 신체와 정신, 재산에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학생과 일반인 사이에 발생한 폭행은 포함되지 않고, 최근 급속하게 늘고 있는 성폭력·사이버폭력도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학생인 경우로 규정한 법 내용을 학생을 상대로 한 폭행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처리한 조치에 피해학생 측이 만족하지 않고 경찰에 고소하면 자치위 결정사항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정치권과 교육부, 시민단체 모두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특별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학생의 보호’ 규정 강화도 검토대상이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가해학생 측에 치료비를 청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치료비를 우선 부담하고, 나중에 가해학생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장이 자동으로 교내 자치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규정도 개정대상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위원장은 “학교의 관리가 소홀해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과연 자치위원장(교장)이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냐.”면서 “위원들의 직선으로 위원장을 뽑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를 기피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평촌고 김학일 교감은 “교육부가 수당을 자체적으로 높일 수는 없기 때문에 승진 가산점을 주면 충분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박병식 교수는 “자치위원회가 내린 조치에 대해 가해 학생이 불응할 때에 대책이 없다.”면서 “이런 경우 자치위를 다시 열어 가중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거나 정학이나 퇴학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근거를 폭력예방법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폭력피해 체크리스트 1. 아프다거나 학교가기 싫어한다. 2.‘전학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3. 상처 혹은 멍자국이 생긴 이유를 물어보면 운동 등의 이유를 둘러대고 자세한 이야기는 피한다. 4. 소지품와 운동화, 옷 등이 자주 망가져 있거나, 잃어버렸다고 한다. 5. 노트 등에 욕설과 폭언, 협박,‘죽고 싶다.’는 낙서가 있다. 6. 용돈을 요구하는 횟수가 늘거나 몰래 돈을 가져간다. 7. 풀이 죽어 있거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다. 8. 친구나 선배한테 전화오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9. 잘 때 식은 땀을 흘리거나 잠꼬대를 한다. 10.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다. <출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기획탐사부 이창구 강혜승 유지혜 박지윤기자 tamsa@seoul.co.kr ●5회에서는 범죄피해자구조법·금융기관직원 생활안정지원 법률과 자전거 이용 관련법, 임의동행의 문제점과 실태 등을 다룹니다. ●기획탐사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02)2000-9261∼9263 또는 tamsa@seoul.co.kr
  • [주말탐방] 어느 주부의 좌충우돌 UCC 도전기

    [주말탐방] 어느 주부의 좌충우돌 UCC 도전기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용자생산콘텐츠(UCC)의 열풍 기세는 새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UCC가 일상 속에 더욱 파고들 전망이다.UCC는 평범한 사람을 한순간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던지는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UCC는 제도권 매체의 아웃사이더인 ‘당신(You)’이 주체가 돼 만들어 내는 ‘요술 주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UCC 동영상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정 주부의 좌충우돌 UCC 도전기를 따라가 봤다. “오늘은 우리 아이 머리 뽐내는 법을 알려드릴 게요.…….” 난생 처음 카메라 조명 앞에 선 이은애(27·여)씨는 멘트를 힘차게 시작했지만 다음 말문이 막혀버렸다.“다시 갑니다!” 촬영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지만 닫혀진 이씨의 말문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연방 이마의 땀만 닦을 뿐이다. ●“어휴∼! 생각처럼 쉽지 않네.” 지난 5일 오후 1시, 이씨는 모델이 될 여섯살배기 아들, 아들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 삼성동에 있는 이용자생산콘텐츠(UCC) 전용 스튜디오를 찾았다. 평소에 자신이 있는 ‘머리 땋는 기술’을 UCC로 알리고 싶은 요량에서 큰 용기를 냈다. 이곳은 UCC 생산 전문업체인 픽스카우가 운영하는, 촬영·편집 장비와 공간을 빌려주는 곳이다. 조명과 실내장식이 갖춰진 스튜디오가 있고, 소니FX-1,PD-150 등 100만화소가 넘는 촬영 장비,DV(Digital Video) 및 고화질(HD)급의 편집 장비가 준비돼 있다. 물론 공짜로 이용한다. 업체는 참여자간의 UCC 거래를 주선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많은 UCC 참여자는 아직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 캠코더 등을 이용해 집에서 촬영하는 편이다. 하지만 마땅한 촬영 장비가 없거나 조명, 화질, 편집 등에서 보다 나은 UCC를 추구하는 이용자가 늘면서 전용 스튜디오를 찾는 이는 늘고 있다. 이씨는 평소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땋는다고 자신했다. 이래서 그는 매체 ‘진입 장벽’이 없는 UCC를 이용해 이를 알리고 싶어 스튜디오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인터넷에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은 부실투성이였다. 몇 단계의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쳤다. 촬영에 앞서 촬영 감독 등과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는 촬영의 얼개를 짜는 사전 작업이다.‘가족 나들이용’ ‘생일 잔치용’ 둘을 놓고 30여분 논의한 끝에 ‘친구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은 아이를 위한 머리손질하기’를 주제로 정했다. 이어 촬영은 시작됐다. ●전용 스튜디오선 촬영·편집장비 무료로 빌려줘 막상 작업이 시작됐지만 물흐르듯 한 말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긴장감 때문이다. 이씨는 “중·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도 했는데 결혼하고 집안살림을 하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이씨가 조명 아래에서 허둥대자 촬영감독의 지적은 화살같이 날아왔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여기를 보세요. 자 이제 말씀하세요.” 촬영 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가리켰지만 이씨는 아이의 머리만 만지작거렸다. “아이의 머리를 손질하실 때는 옷차림 등과 전체적인 어울림을 고려해야 해요.” 촬영은 몇 번 중단됐지만 그럭저럭 진행 속도는 더해갔다. 이도 잠시, 촬영 감독의 불호령이 또다시 이어졌다.“다시!” 이번에는 아이들이 문제였다. 지루함을 참지 못한 아들 지훈(6)이가 스튜디오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모델 역할을 먼저 한 지훈이의 여자친구 경빈(7)이도 힘들어서인지 볼은 어느새 뾰루퉁해졌다. 촬영을 시작한 지 벌써 2시간이 지났다. 간단한 커트부터 파마까지 딸아이의 머리를 손질하는 이날 촬영은 좌충우돌 끝에 결국 4시간이 지난 오후 5시쯤에 끝났다. 이씨는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참 어렵다. 남들이 만든 UCC가 새삼 달리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된 작업은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아직 작업은 끝이 아니다. ●고진감래 ‘나의 UCC’ 기진맥진해진 이씨와 촬영진들은 자리를 옮겨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영상을 디지털화한 뒤 5분 이내의 분량으로 편집하기 위해서다. 동석한 관계자는 “UCC를 보려는 누리꾼들의 집중력은 길지 않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포인트가 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UCC의 분량이 길어지고 화면이 좋아질수록 용량이 늘어나 서버의 용량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UCC 등정’에 성공한 이씨는 “아이들 머리를 손질할 때는 처음에 분무기를 이용해 머릿결을 살짝 적신 뒤 실핀과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마무리하면 된다.”면서 “머리손질만큼은 자신이 ‘최고’인데 촬영 과정에 실수가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화면을 보고 있던 이씨는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왔어. 다이어트를 하고 찍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하지만 편집실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한 작품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이곳에는 이씨 같은 평범한 주부, 학생, 신발가게·음식점 주인 등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생활 속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려는 욕심과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혼재된 보통 사람들의 스튜디오인 셈이다. 이씨도 “내 재주를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고, 또 함께 찍은 내 아이와도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어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UCC스타가 말하는 UCC UCC를 통해 인생이 바뀐 주인공들은 UCC의 매력을 칭찬하면서도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SK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에서 ‘우리 아이 밥상차리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정주부 김은주(31)씨는 “필요가 UCC를 낳는다.”고 말한다. 출생후 백일때부터 아토피를 앓았던 딸아이를 위해 정보를 찾아 헤맸던 김씨는 자신처럼 정보에 목말라 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UCC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딸아이 아토피를 고치기 위해 직접 만들었던 요리들을 UCC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김씨는 “알아보는 분도 많고, 글로 남긴 분들도 있다. 쪽지나 그런 것으로 고민 같은 거 털어놓을 때 (자신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오늘도 김씨의 밥상을 기다리는 네티즌은 10만명이 넘는다. 손 하나만으로 경쾌하게 박자를 맞추는 ‘핸드드럼’으로 싸이월드의 스타가 된 박정재(30)씨는 “UCC는 UCC를 낳는다.”고 말한다. 타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느날 한 여학생이 펜으로 박자를 맞추는 UCC를 보게 됐다. 박씨는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UCC를 제작했다. 박씨는 “편집·가공에만 그치는 것은 진정한 UCC가 아니다.”면서 “자기만의 기술을 어떻게 보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UCC가 앞으로 건전한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하고 더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UCC 스타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네이버에서 일명 ‘김치 샐러드’로 통하는 윤명진(27)씨는 인터넷에서 좌절한 모습을 형상화한 ‘OTL 좌절맨 시리즈’로 유명세를 치렀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몸을 구부려 OTL 형상을 표현한 윤씨의 블로그는 280여만명이 다녀가고 있다. 윤씨는 “미술학도로서 관객들의 피드 백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프라인의 미술관에서는 미비하지만 UCC를 통해 활발한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UCC의 상호작용이 한때 윤씨를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다.“온라인에서 각광을 받지만 현실 세계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괴리감 때문에 우울증도 걸렸었다.”고 털어놓았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남쪽 바닷가’ 전지훈련 특수

    따뜻한 남쪽나라 바닷가가 겨울철 전지훈련지로 뜨면서 이들 지역의 경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10일 전남, 강원, 경남, 제주도에 따르면 온난한 기온과 잔디구장, 싱싱한 해산물, 맛있는 음식을 찾아 각 종목의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해안가 주변 시·군으로 몰리면서 식당과 숙박업소 등이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전남도에는 전국 초·중·고교 축구팀을 비롯해 육상, 태권도 등 52개 종목 334개 팀 8100여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겨울철 훈련이 끝나는 다음달 말까지 펜싱 등 58개 종목 889개팀 1만 9000여명으로 늘어난다. 이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선수 1인당 5만 5000원에 훈련기간 15∼20일을 곱해 150억원대로 추정된다. 광양시에는 축구와 태권도, 육상 등 118개팀 2754명이 찾아와 식당과 모텔 등이 동날 지경이다. 광양읍 읍내리 곰식당 주인 이희주씨는 “한끼에 4000원씩 100명이 식사를 해 하루종일 정신이 없다.”고 자랑했다. 객실이 26개인 광양읍 칠성리 블랑시모텔 주인 고재완씨는 “선수들 빨래까지 해주고 방 1개에 3만원을 받는데 지금 100여명이 묵고 있어 다른 손님은 아예 안 받는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광양시청 6급 직원 117명은 팀별로 자매결연했다. 또 해남군 46개팀 1469명, 고흥군 37개팀 860명, 장흥군 14개팀 400여명, 목포시에 16개팀 370여명이 훈련중이다. 이들로 인해 모텔과 여관, 식당 등이 시끌벅적하다. 장흥읍내 신녹원관 여주인은 “겨울철 불경기에는 축구선수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고 지금 32명이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강릉과 동해, 삼척, 속초 등 동해안도 전지훈련지로 급부상했다. 바닷물 흐름으로 겨울에도 따뜻하고 주변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훈련장으로 안성맞춤이다. 강릉에는 축구와 야구 등 초·중·고 4개 종목 20여개팀, 삼척에는 핸드볼 등 11개팀 700여명이 훈련중이다. 더욱이 삼척이 핸드볼 훈련의 메카로 알려지면서 은행과 대학, 중·고교 팀 등 500여명이 앞다퉈 찾고 있다. 동해시에도 유도 등 15개팀 150명이 찾았다. 강릉시 관계자는 “동해안 모텔과 식당 등이 겨울철 비수기인데도 운동선수들로 인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군에는 축구와 야구 등 3개 종목 26개팀이 찾아왔고 앞으로 60여개팀이 더 찾을 예정이다. 선수단 3000여명이 한적한 식당과 숙박업소 등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제주도는 육지에서 건너온 동계훈련팀으로 섬이 들썩거린다. 서울시체육회 소속 30여개 종목 300여명이 지난달 27일부터 훈련장을 설치하고 한달 일정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 또 이달 안으로 15개 종목 22개팀 1000여명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찾는다. 다음달에는 9개팀 300여명이 오기로 예약했다. 얼마 전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영국 철인 3종경기 대표단까지 가세했다. 제주도는 전지훈련팀에 항공료와 숙박요금 할인, 운동장·체육관 등 공공체육시설 공짜 이용 등 혜택을 주고 있다. 전국종합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겨울 이색 실내 레포츠

    겨울 이색 실내 레포츠

    겨울이면 꼼짝 않고 따뜻한 아랫목만 끼고 사는 사람들이 늘게 마련이다. 자연히 몸도 마음도 둔해지기 십상. 추위와 일조량의 감소가 누적되면 체내에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 쉽게 우울해지기도 한다. 바깥 출입을 활발히 하고 활동량을 늘리며, 겨울철 레포츠나 취미생활로 기분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추위를 특별히 많이 타거나, 별도로 시간을 내 야외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내 레포츠를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생활의 활력도 키우는 게 어떨까. 일본이나 영국 등의 경우처럼 초대형 실내 스노 리조트(snow resort)는 아니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과 레저를 겸할 수 있는 실내 레포츠 시설은 국내에도 얼마든지 있다. 김연아 선수의 세계 제패 이후 붐이 일고 있는 겨울 스포츠의 꽃 피겨스케이팅과 빙벽등반, 그리고 사격 등 실내 레포츠를 소개한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실내빙벽 등반은 2005년 11월 서울 우이동에 복합실내등반센터인 오투월드(www.o2o2.co.kr)가 국내 최초로 실내 인공 빙벽장을 열면서 시작됐다.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산소(O) 같은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뜻에서 이름도 오투월드로 지었다는 것. 이 실내등반센터의 인공빙벽은 높이 20m,7층건물과 맞먹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내빙벽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빙벽을 오르고 싶어하는 등반객들에게 시간과 거리의 제한을 없애준 것이 가장 큰 장점. # 24시간관리 자연빙벽보다 안전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마니아들이 찾아 실내빙벽을 오르내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업체 김규방(60) 사장은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 등 국내 자연 빙벽장은 12∼2월 사이에만 열려 시간상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또 많은 등반가들이 일시에 몰리면 무너질 위험도 있죠. 이에 반해 실내 인공 빙벽장은 빙벽을 24시간 관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자연 빙벽보다 안전합니다. 또 길이가 20m나 되기 때문에 자연 빙벽에 견줄 만하죠. 항상 영하 5℃가 유지돼 자연 빙벽을 오르는 스릴을 그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몸의 모든 부분을 이용하는 전신 운동이기 때문에 근력 발달에 더없이 좋은 효험을 안겨준다. 빠른 시간 안에 보다 높이 올라가는 레포츠이니만큼 순발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장점은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끈기를 길러 준다는 것이다. 방한복과 헬멧, 아이젠 등의 장비로 중무장한 채 자일을 타고 오르던 한 여성이 피켈로 빙벽을 내리찍자 이리저리 파편이 튄다. 결혼 이후 집안살림에만 매달렸던 주부 권경자(47·서울 영등포)씨. 여려 보이는 몸으로 힘차게 빙벽을 차고 올라간다. 권씨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이곳을 찾아 땀을 흘린다.“손과 발의 움직임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잡념이 모두 사라져요. 아이들 키우고 나서 할 일이 별로 없어져 우울증에 빠지는 중년 여성들이 얼마나 많아요.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추스르기에 딱 좋은 레포츠인 것 같아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힘들여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쾌감이 그가 뽑는 빙벽 등반의 매력.“온 몸이 땀에 흠뻑 젖지만, 추운 줄도 몰라요. 꼭대기에 올라 매달린 종을 울리고 나면, 색다른 세계에 온 듯한 희열을 느끼죠. 평상시에도 빙벽등반을 위해 기본적인 운동은 해야 돼요. 그러다 보면 체중은 안 줄었어도, 몸은 훨씬 가벼워지고 탄탄해졌다는 것을 느끼죠.” # 쉰 넘긴 나이에도 군더더기 없는 몸매 실내 빙장은 심약한 주부 클라이머를 1년여 만에 강자로 탈바꿈시켰다. 하루 10여 차례 20m 높이의 빙벽을 오르내린 결과, 이달 말 국내 최고 높이인 설악산 토왕성 폭포 정복에 도전하게 된 것. 강원도 강촌의 구곡폭포를 맨처음 정복한 전완근(55·서울 동작)씨는 빙벽등반 경력만 35년째인 베테랑 등반가다.‘어센트 알파인 클럽(www.ascentclub.co.kr)’을 이끌며, 국내외 유명 빙벽 대부분을 정복한 산사나이.“빙벽등반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과학적인 스포츠입니다.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멋을 찾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레포츠죠. 특히 내 뒤를 받쳐주는 동료를 믿고 빙벽을 오르다 보면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핵가족 시대에 또다른 가족이 생기는 셈이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70세가 넘어서도 계속 빙벽을 오를 겁니다.” 회사원 나한석(34)씨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목표로 삼은 4년 경력의 산악인.“육체적인 효과도 있지만,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신감을 얻는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빙벽등반에 도전할 제 아들을 위해 세살 때부터 턱걸이를 시켰어요. 지금은 자신감과 용기가 충만한 어린이가 되었지요.” 오투월드에서 만난 세 사람 모두 왜 힘들여 얼음 위를 오르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하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직접 체험해 보라는 뜻일 게다. # 실내빙벽을 오르려면 초보자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되는 4주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좋다.20만원. 주말반과 특별반도 운영하고 있다. 일일체험등반 요금은 5만원. 강습이 없는 시간대엔 자유이용도 가능하다.1만원. 빙장 내 온도가 영하 5℃로 유지되므로 방한복은 필수다. 빙벽화, 헬멧 등 빙벽등반에 필요한 장비 대여료는 1만 3000원. 사우나 등 부대시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문의 암빙벽팀 (02)908-892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권총사격 탕~ 산산이 부서지는 스트레스 베레타 권총을 든 채 표적지를 노려보는 박세나(25·경기 군포)씨의 눈매가 차가운 겨울날씨만큼이나 매섭다. 베레타는 일명 ‘주윤발 총’이라 불리는 10발들이 자동권총. 작고 가벼워 여성들에게 적합하다. 천천히 총구를 들어 지름 46㎝의 표적지를 겨냥한다. 밀린 신용카드 고지서나 직장 상사의 얼굴 위로 맥빠진 자신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탕∼ 총성과 함께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반동으로 인한 ‘치명적인 손맛’을 느낌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진 목표물이 스트레스마저 저 멀리 날려보낸다. 사격은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겨울 레포츠. 다소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 다른 레포츠보다 사고 비율이 훨씬 낮다. 스트레스 해소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총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영화에서나 보았던 베레타, 루가, 글락 등의 명품 권총을 직접 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스릴을 안겨준다. 강오석(32·서울) 사격코치는 “여성들이 사대에 서면 ‘긴장모드’가 시작되죠. 바들바들 떠는 것은 예사고, 한 발 쏘고 나서 놀라 뛰어 나오는 여성들도 있어요. 남자친구랑 왔는데도 놀라서 제 품에 안길 때는 난감하기도 해요.”라며 웃는다. 하지만 막상 사격을 끝내면 군대를 다녀온 남성보다 여성들의 점수가 더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섬세함과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 간혹 청바지를 표적지 삼아 쏜 다음, 구멍 뚫린 채 입고 다니는 여성들도 있단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실내 사격장을 찾는다는 박세나씨는 “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집중력 등 요구되는 것들이 많아요. 호흡조절과 고도의 정신집중도 필요하죠.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했을 때 느끼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에 더없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사격예찬론을 펼쳤다. 박씨의 남자친구인 박재우(30·경기 안산)씨도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훌륭한 스포츠가 됩니다. 자기발전에도 도움이 되죠.”라고 거들었다. 권총은 작동방식과 구경(총구 안지름)에 따라 22·38·45 구경과 9㎜ 피스톨 등으로 나뉜다. 구경의 크기와 이용요금은 비례한다. 구경이 클수록 반동도 세져 그만큼 ‘치명적인 손맛’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초보자나 여성은 작은 구경의 총을 고르는 게 좋다. 작지만 예상외로 큰 반동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팔이 저릴 만큼 반동이 크고 정확도가 높은 45구경은 주로 마니아들이 애용한다.1라운드(10발)에 2만∼2만 5000원선. ■ 실내 레포츠 유의 사항 겨울엔 마음 먹은 대로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 추운 날씨 속에 무리한 운동을 하다 자칫 뇌졸중이나 협심증, 관절염 같은 병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긴 겨울 내내 건강을 위한 운동을 마냥 접어둘 수는 없는 일. 하늘스포츠의학 조성연 원장과 함께 ‘잘하면 보약, 잘못하면 독약’이라는 겨울철 실내운동 요령을 알아본다. # 겨울에는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하는 것이 좋은가? -외부 온도가 10℃ 이하가 되면 신체의 열손실을 증가시키므로, 가능하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자전거타기, 러닝머신에서 걷기, 조깅, 수영, 배드민턴 등의 운동이 좋다. 중요한 것은 평소의 운동량보다 20∼30% 줄어야 한다는 것. 또, 추위는 피부를 통한 체온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혈압이 높거나 혈액 순환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겨울철 운동시 체온관리를 위해 모자와 장갑을 반드시 착용하여야 하며, 가능하면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 겨울 운동은 왜 위험한가? -추위는 우리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의 운동범위를 제한한다. 이는 관절을 구성하는 건, 인대, 근육 등이 수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관절 주변의 인대와 근육이 손상을 입기 쉽다. 또 추위는 혈관 수축을 증가시키므로, 고혈압 환자는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등이 발생하기 쉽다.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당뇨, 비만 환자도 이런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 운동의 효과와 좋은 점은? -겨울철에는 체온을 유지하는 데만도 10∼15%의 에너지가 더 소비돼,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 소모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체중 유지에 효과적이다. 신체의 움직임이 부족할수록 관절 주변의 기능은 감소하므로, 유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도 겨울운동이 필요하다. 또, 혈액순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철 운동이 필요하다. # 겨울 운동 전 주의점은? -겨울철 운동의 핵심은 체온관리. 두꺼운 옷보다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좋다. 땀을 많이 흘릴 때를 대비해 여벌의 옷을 준비한다. 모자와 장갑은 반드시 착용할 것.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는 것도 필수다. 그리고 따뜻한 음료를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도움말:조성연 하늘스포츠의학클리닉 원장 ■ 겨울 운동 상식 O,X ●겨울에도 다른 계절과 똑같이 운동을 해야 한다?-X.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 피로가 발생하기 쉽다. ●등산, 스키 중 술을 마시는 것은 도움이 된다?-X. 이뇨, 발한 작용으로 체온 감소를 증가시킨다. ●겨울철 운동 시 두꺼운 옷이나 땀복이 좋다?-X. 땀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체온감소가 증가한다. ●겨울철 야외운동은 심장병이나 고혈압에 노출되기 쉽다?-O. ●겨울철 운동은 에너지소비량이 적다?-X. ■ 달리다보니 어! 내몸매 S라인!-피겨 스케이팅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은반위를 내달리는 피겨 스케이팅. 운동효과는 물론, 예술적 감각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겨울 스포츠의 꽃이다.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초등학생부터 20대에 이르는 여성들. 피겨 스케이팅 강사 여승미(40)씨는 “김연아 선수의 세계제패 이후,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려는 초등학생들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수학능력 시험이 끝난 학생이나 시간여유가 있는 직장 여성들, 그리고 주부들의 문의전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씨는 또 “어린이의 경우, 기초체력 향상과 지구력 강화, 그리고 앞, 뒤로 움직이며 운동을 하기 때문에 좌·우뇌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내성적인 아이는 활발해지고, 산만한 아이들은 차분해지는 성격교정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몸도 마음도 균형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서울 거여초등학교에 다니는 임채은(10)양은 “넉달 동안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면서 굳어진 몸이 많이 유연해지는 걸 느꼈어요. 집중력도 많이 좋아졌고요. 김연아 언니의 경기장면을 녹화해서 틈틈이 보고 있어요. 언젠가 저도 꼭 금메달을 딸 거예요.”라며 또렷하게 말했다. 체력을 기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다리를 많이 쓰는 피겨 스케이팅은 하체 힘을 키우고 균형미를 갖추는 데 안성맞춤이다. 성인 여성의 경우 스케이팅 전후의 스트레칭으로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또 허리를 곧게 하는 등 자세 교정을 통해 아름답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꿀 수 있다. 여성 강습생들이 많이 몰리는 이유가 예술적인 분위기와 함께 이같은 운동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씨는 “초보자들도 한시간 정도 뒤뚱거리면 얼마든지 탈 수 있다.”며 “1개월 정도만 연습하면 초보수준의 스핀이나 점프 등 기술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은 재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1개월이 채 안 걸리는 경우도 많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어디서 탈 수 있나 ●목동 아이스링크 피겨 스케이팅과 함께 쇼트 트랙 등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 평일 오후 2∼6시, 휴일 정오∼오후 6시. 입장료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 스케이트 대여료 기본 2시간 3000원, 초과 1시간당 1000원.(02)2649-8454.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국제 규격을 갖춘 세계 8번째 400m 실내링크. 스케이트장에서 주변 맛집으로 이어지는 태릉의 드라이브 코스는 ‘아이스링크 데이트’를 확실하게 마무리해 준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주말엔 7시30분). 입장료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 스케이트 대여료 3000원.(02)970-0501. ●고려대학교 아이스링크 아이스하키 전용 구장. 평일 오후 2시(휴일엔 정오)∼6시까지는 일반인도 이용 가능하다. 입장료 어른 4000원, 청소년 3500원, 어린이 3000원. 스케이트 대여료 3000원.(02)3290-4243∼4,(02)927-4195.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 빙상 경기를 유치하지 않아 개장 시간이 넉넉하다.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어른 4000원, 청소년, 어린이 3500원. 대여료 어른 3000원, 어린이 2500원.(02)909-3114,(02)940-5491. ●광주 실내 빙상장 광주도시공사가 운영하는 호남 유일의 실내 아이스링크.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어른 3500원, 어린이 2500원. 대화료 2500원.(062)600-6780. ●타워 아이스링크 대구 우방타워 2층에 위치한 전천후 실내 아이스링크. 우방 타워랜드, 두류공원 등과 가까이 있다. 오전 10시∼오후 9시. 입장료 어른 4500원, 어린이 3500원, 대화료 3000원.(053)652-5114.
  • [20&30] 대선축제로, 그와 같이가자 젊음아!

    대통령 선거는 일종의 ‘정치 축제’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 ‘정치 축제’에서 20∼30대 젊은이들은 ‘주변인’에 불과했다. 젊은이들이 기성 정치인을 좋아하는 것은 이를테면 ‘젊음에 대한 배신’이었으며,‘터부’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현재 20∼30대의 모습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예비 대선주자의 팬클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호불호(好不好)를 숨기지 않는다. 또 젊은이답게 지역이나 학벌 따위에 신경쓰지 않고, 직접 예비 대선주자를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고건·김근태·박근혜·손학규·원희룡·이명박·정동영(가나다 순) 등 예비 대선주자 7인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는 20&30의 눈으로 예비 대선주자들을 살짝 엿봤다. 김기용 서재희기자 kiyong@seoul.co.kr ■김근태 팬 ‘김친’ 김비오씨 “우리 ‘대장’님은 너무 점잖아서 문제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공식팬클럽 ‘김근태친구들(이하 김친)’의 회장인 김비오(38)씨는 이렇게 운을 뗀다.2005∼2006년 전국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김근태 의장과는 한층 친밀해졌다.“대학교 때부터 대장님을 알고 있었죠.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려보면 우리 대장님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되더라고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 순한 사람이에요.” 김씨는 인간적인 김 의장의 모습에 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회원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대장님이 병원으로 직접 달려가 가족에게 위로를 전했어요.” 김씨는 이같은 김 의장을 대선주자라는 느낌보다 형님이나 아버지처럼 생각한다. 김씨는 “대장은 회원 2000명의 이름을 다 기억한다.”면서 “행사장에서 꼭 대장이 먼저 와서 아는 체하고는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박사모 정함철씨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에서 활동하는 정함철(34)씨는 2004년 3월30일 오후 10시를 잊지 못한다. 이날 당 정강 정책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박사모’ 회원으로까지 가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3년간 정씨는 ‘박사모’의 중앙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에는 박 전 대표를 따라 강원도 춘천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정씨는 북핵 사태를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예비군복에 전투모까지 갖추고 따라 다녔다. 정씨는 “박 전 대표가 공항에서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곤 흠칫 놀라더라.”면서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어요.’라고 내게 말해줘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정씨가 가장 행복하게 기억하는 박 전 대표와의 한순간이다. 정씨는 “수많은 ‘근혜님’ 지지자 가운데 하나인 나를 기억해 주는 자상함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고건 팬 대학생 김다미씨 “탄핵 발표가 나자마자 헌법 책부터 보셨대요. 총리가 대통령 임무를 대행한다는 얘기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본 뒤 차근차근 일에 우선순위를 매겨 안보부터 챙겼다고 하셨어요.” 희망연대 대학생 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단비(23·여)씨는 지난해 9월 고건 전 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생생한 경험담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행정학의 달인’이란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토록 침착하고 치밀하게 대응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행정학을 전공한 김씨는 “정치적 지지자보다는 같은 전공자로서 존경심이 앞섰어요.”라면서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4∼5차례 고 전 총리를 직접 만나봤다는 김씨는 그의 정치 색깔보다 행정력과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반했다고 말했다. “곧은 심지로 청렴하게 일하는 점은 제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이상향’에 가깝죠.” ■손학규 팬 ‘山♥’ 김진환씨 평소 사회·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아 하루에 신문 3∼4개씩을 꼬박꼬박 읽는다는 김진환(27)씨는 두 달 전부터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팬클럽인 ‘민심산악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문에 등장하는 모든 대선 주자의 장단점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이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손 전 지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얼마전 동티모르 봉사활동 과정에서 본 손 전 지사의 ‘땀에 젖은 바지’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평화 메신저’라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김씨는 당시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건설하는 작업을 손 전 지사 등과 함께 하게 됐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젊은 사람들도 그늘을 찾아 쉬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았다. 그런데 손 전 지사는 일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손 전 지사의 행동에는 ‘정치적 쇼’가 전혀 없다.”면서 “다만 직접 모범을 보이고 앞장서려는 리더십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팬클럽 정유진씨 “외모만으로 따지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사실 ‘비호감’이잖아요. 하지만 알면 알수록, 만나면 만날수록 ‘호감’의 비중을 커지게 만드는 것이 이 전 시장의 최대 장점이자 매력이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팬클럽 가운데 하나인 ‘명박이랑 대학생’에서 활동하는 정유진(24)씨는 처음엔 이 전 시장이 무서웠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유머와 배려가 넘쳐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많은 여대생들이 당시 이명박 시장과 함께 청계천을 탐방하고,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면서 “이 시장은 ‘햇볕에 여학생들 얼굴이 타면 안 된다.’면서 많은 학생들을 일일이 신경 써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이 전 시장은 분위기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맥주 500㏄를 ‘원샷’하라는 학생들의 짓궂은 요구에 흔쾌히 응하기도 한 것. 정씨는 당시 이 전 시장의 모습에서 패기와 열정을 느꼈다고 한다. ■정동영 ‘정통사’ 김다미씨 “‘정샘’의 매력요? 부드러운 카리스마죠.”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회원들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부르는 애칭 ‘정샘’이 서울 서부지역 대표 배선장(37·사단법인 자녀보호운동본부 사무총장)씨에게는 너무 자연스럽다. 그만큼 그를 친근하게 느껴서다. 지난 대선 때 그는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경선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을 보며 정 후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항상 양보하는 자세로 대화를 통해 다양한 가치와 사고를 한 방향으로 끌어 모으고 해결책을 찾는 점이 정샘의 큰 장점이죠. 북핵 문제도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달 지지 모임에서 주관한 워크숍에 정 후보가 함께한 점도 인상 깊게 남았다. 그는 “정치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워크숍 장소에 잠시 들렀다가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1박 2일 동안 자리를 내내 지켜 참석자들을 모두 감동케 했다.”고 말했다. ■원희룡 팬카페 김진경씨 “‘꿈이 사무치면 이루어진다.´이 말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원희룡 의원의 팬카페 ‘I Like Won´ 회장 김진경(26·충남대 언론정보 4학년)씨는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는 책을 읽은 뒤 원 의원의 지지자가 됐다. 팬카페를 만든 이유도 “누구나 원희룡을 알면 좋아하게 되기 때문에 널리 알리고 싶어서”라고 설명한다. 그의 팬카페가 다른 대선 주자와의 팬카페와 다른 것은 회원들이 젊다는 것. 회원들의 나이는 대부분 19세에서 39세다. 또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 원 의원에 대한 지지로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정치색도 다양한 편이라고 그는 자랑한다. 그가 꼽는 원 의원의 최대 장점은 ‘탈권위성´. 그는 “카페 모임에서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얘기하고,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직접 챙겨와 회원들에게 내보일 정도로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다.”면서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2007 이들을 주목하라] (6) 쇼트트랙 대표팀 막내 김병준

    [2007 이들을 주목하라] (6) 쇼트트랙 대표팀 막내 김병준

    “대표팀 막내지만 지켜보세요. 큰일 내고 말 겁니다.” 한파가 누그러들던 9일 서울 노원구 동천실내빙상장은 10여명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얼음을 타는 소리로 소란했다.3시간의 오전 훈련이 끝난 뒤 헬멧을 벗은 김병준(19·광문고)의 머리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고교 3학년이라고 하기엔 앳된 얼굴이다.“이만하면 잘 타는 거 아니에요.”라고 던지는 한마디가 당돌하기까지 하다. 그는 이달말 창춘아시안게임에 출전할 5명의 대표선수 가운데 막내이고, 유일한 고교생이다. 송경택(26·강릉시청)을 비롯, 안현수(22·한국체대) 이호석(21·경희대)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대열에 끼어든 건 지난해 9월.15명을 추리는 1차 선발전을 무난히 통과한 뒤 ‘베스트 5’를 꿰차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병준은 처음 나선 국제대회인 월드컵 1차대회 5000m 계주에서 우승, 역시 난생 처음으로 국제시상대에 올라섰다. 한양대부속초등학교 1년 때부터 김병준은 교과과목인 빙상을 시작했다. 제법 얼음을 잘 타는 그를 본 교사는 쇼트트랙을 권유했고,4학년 때 본격적으로 트랙을 탔다. 당시는 1992년 알베르빌에서 김기훈이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딴 이후 한국 쇼트트랙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였다. 이후 김병준은 종별대회와 회장기 등 각종 국내대회를 휩쓸었다. 쑥쑥 자라던 ‘떡잎’이 잠시 멈췄다. 수원 대평중에 입학하자마자 발목의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으로 2년 동안 스케이트를 벗은 것.“자유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살 것 같더라고요. 학교 성적도 5등 안에 들고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근질근질해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이제 다시 스케이트를 신으면 안 된다.”던 의사의 말을 뿌리치고 다시 트랙을 돌기 시작한 김병준은 이듬해 11월 전국대회 남고부 1000m에서 2위에 올라 재기에 성공했다. 그를 지도하고 있는 이는 김기훈과 함께 알베르빌에서 두번째 금메달(5000m 계주)을 따낸 송재근(33) 전 대표팀 감독.“병준이는 순발력이 뛰어난 데다 하체근육이 잘 발달해 쇼트트랙에 적합한 선수”라면서 “창춘동계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국제경험이 참 중요하더라고요. 일단 파울을 적용하는 기준도 국내와는 다르고요, 무엇보다 기싸움이 더 팽팽한 것 같더라고요.”김병준은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아는 선수다. 하루 8시간의 훈련 뒤에 곧장 헬스장으로 달려가 근육에 탄력을 붙이는 데 또 한 바가지의 땀을 흘린다.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현수형의 스타일을 닮고 싶은데 관건은 근력이거든요. 아직은 모자라요. 그것만 되면 창춘은 물론,2010년 밴쿠버를 거쳐 2014년까지 쭈∼욱 갈 겁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병준의 모든 것 출생 1988년 2월8일 서울생 체격 168㎝,62㎏ 가족 김종성·지주영씨의 2남중 장남 학력 서울 한양대부속초-수원 대평중-서울 광문고 취미 컴퓨터 음악감상 특기 바이올린 경력 2000년 회장배 남초부 1000m 1위, 전국꿈나무대회 1000m 1위, 2006년 회장배 남고부 3000m 계주 1위, 월드컵 1차대회 5000m계주 1위
  • [주말탐방]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

    [주말탐방]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

    한국 아이스하키 80년 역사에 여자는 9년. 中·日·北과 3경기서 61골을 먹기도 했다. 대학·실업팀도 없이 전국 70~80명 전부. 낮엔 직장·학교로 밤엔 男들과 운동한다. 5부리그서 3전 전승… 디비전 3으로 승격 신났다. 1월말 동계AG·3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그 자체에 우린 가슴 설렌다. 지난해 12월28일 태릉선수촌 실내 빙상장. 밤 8시가 넘은 늦은 시간. 땅거미는 이미 졌고, 밖에는 칼바람이 몰아친다. 하지만 얼음판은 외려 열기로 뜨겁다. 흘깃 쳐다봐도 무거워 뵈는 보호 장비를 착용한 선수들이 얼음을 맹렬히 지치고 있다. 시속 50㎞를 넘나드는 빠른 스케이팅에, 최고 150㎞를 웃도는 퍽 스피드. 스틱과 스틱, 몸과 몸이 충돌하는 아이스하키다.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 가운데 하나지만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는 가녀리다. 헬멧 뒤로 흘러내린 긴 머리채를 보고서야 느낌이 온다. 국내 아이스하키팀을 통틀어 유일한 여자팀,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이다. 지난 3일 연습 경기가 펼쳐졌다. 상대는 중학교 상위 클래스인 광운중이다. 퍽을 따라 열심히 움직이지만 뉴트럴존을 넘어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1시간 정도 경기였는데 골리(골키퍼) (신)소정이는 날아오는 퍽을 막기 위해 50∼60차례나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나이스 킵(keep)!” 공격이 드물다 보니 수비 응원 소리가 빙상장을 거푸 울린다. 아이스하키만큼 체력 소모가 큰 스포츠도 없다. 연이은 선수 교체 때마다 김익희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진다.“퍽을 보고 사람을 보란 말이야! 수비 위치가 잘못됐잖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선수들이 빙판으로 나서지만 남학생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달랑 슈팅 하나 날려보고 0-4로 졌다. 여자대표팀은 1월 말 중국 창춘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과 3월 세계선수권대회(디비전3)를 준비중이다. 국내 아이스하키의 역사는 80년이나 되지만 여자아이스하키는 9년가량 됐다. 막 걸음마 단계로 아시아에서도 막내다. 1999년 강원,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했었다.7전 7패였다. 아오모리 때 카자흐스탄전은 몰수패를 당했고, 중국 일본 북한과의 3경기에선 무려 61골을 먹었다. 몰수패 당한 경기도 0-19로 지던 상황이니까 80골을 먹은 셈이다. 물론 골도 넣었다. 단 1골. 망신을 당할 바엔 차라리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가 무력한 이유는 자명하다. 저변이 턱없이 부족하다. 초·중·고·대학, 실업, 동호회 등을 총망라한 아이스하키팀은 70여개.1300여명이 활동한다. 연령에 관계없이 여자는 모두 70여명. 대부분 클럽팀에서 남자들과 섞여 운동을 즐긴다. 이 가운데 테스트를 받아 대표팀에 뽑힌다. 대표팀에 발탁됐다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훈련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성인들은 직장, 학생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다. 김 감독은 “대학과 실업팀이 없는 탓에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라며 아쉬워한다. 여자대표팀은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 디비전4(5부리그)에서 우승했다. 비록 약체끼리 도토리 키재기식 승부였으나 사상 첫 승의 감격과 함께 3전 전승으로 디비전3으로 승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른 종목에선 메달 색깔을 따지며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목표는 단 1승이 아니다. 한 경기에서 10골 이상 내주지 않고 한 골은 넣는 것. 누가 강요도 하지 않고,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아이스하키지만 이제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고참 정은주(30)씨는 아오모리대회 때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못한다. 이후 인대도 다치고,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났다가 다시 스틱을 잡았다. 인라인 하키를 즐기다가 2002년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그는 직장에 가기 위해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스틱을 놓고 있으면 얼음판이 너무 그리워요. 땀을 흘리고 나서 무거워진 헬멧을 벗으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죠. 그렇게 얼음 위에 누우면 정말 행복해요. 이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여자대표팀은 이래서 즐겁다 # 쇼트트랙 여왕 전이경도 멤버 # 21명중 초·중·고교생이 13명 # 최고령은 32세·최연소는 13세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대표팀은 유난히 튀는 점이 많다. 우선 ‘쇼트트랙의 여왕’ 전이경(31)이 대표팀 멤버다. 한 종목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가 다른 종목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1999년 쇼트트랙에서 은퇴했다가 지난해 5월 스틱을 잡았다.1996년 하얼빈 대회 이후 무려 11년 만에 동계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게 됐다. 전이경은 부산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에게 스케이팅을 가르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 훈련을 함께 해왔다. 대표팀 엔트리는 모두 21명. 이 가운데 초·중·고생이 무려 13명이나 된다. 평균 나이가 20.8세. 선수층이 엷은 탓이 크다. 한국과 맞서는 다른 나라 대표팀 평균 연령은 25세 안팎이다.7명은 직장을 갖고 있다. 생계도 꾸려야 하는 처지다.2일 태릉선수촌 합숙에 돌입했지만 선수에 따라 낮에 출근했다가 밤에 훈련하고, 낮에 훈련을 하다가 저녁에 일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는 않지만 훈련이 끝나면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주장인 맏언니 이경선(32)과 막내 고혜인(13)은 무려 19살 차이다. 이경선은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에 나가는 한국선수단 126명 가운데 네 번째 연장자로, 다른 종목이면 코치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연배다. 반면 막내인 혜인이는 최연소 성인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사실 초등학생은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하지만 오는 3월 중학교 진학을 앞둬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소녀 태극전사들의 수다 “스피드가 넘쳐요. 정말 짜릿하죠. 힘들지만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요. 남자들만 하라는 법 있나요.” 지금도 어리지만 아이스하키를 일찍 시작했다. 경력이 벌써 3∼5년에 이른다. 신소정(17·혜화여고1)은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우연히 접한 아이스하키에 푹 빠졌다. 강현선(아래 사진 왼쪽·14·경희중1)은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틱을 잡았다. 남동생도 클럽팀에서 함께 얼음을 지친다. 어려서 여러 운동을 즐긴 고혜인(13·전주 중산초6)은 다른 운동은 1∼2년 하다가 그만뒀는데 아이스하키의 재미는 남다르단다. 버거운 면도 있다. 평소엔 대부분 클럽팀에서 남자 아이들과 함께 주말에만 운동을 한다. 여자팀이 없어서다. 선수촌 합숙에 들어갔지만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다. 훈련을 마친 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공부해야죠. 과외 받는 것도 있어요.”라고 까르르 웃는다. 운동 선수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태극마크까지 달았지만, 공부와 운동을 함께 이어가기가 여간 고달프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사실 이들은 오는 봄 아이스하키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소정이는 동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면 운동을 접을 생각이다. 고교 2학년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려면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할 처지다. 소정이는 “아이스하키를 해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소정이네 길 건너에 사는 현선이는 가족 모두 호주로 이민을 간다. 아이스하키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이 자자한 현선이는 “호주에 가서도 아이스하키는 계속할 것”이라면서 “사실 여건이 좋으면 한국에서 공부와 운동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 아쉬워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새해 소망을 물었다. 아이스하키가 좋아서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혜인이가 냉큼 “전주에 여자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옆에 있던 소정이와 현선이가 아우성이다.“야! 서울에도 없는데….”. 재잘재잘 수다 속에 언젠가는 다시 얼음 위에서 만나자는 눈빛이 강하게 오고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프로다운 프로’ 보고 싶다

    개그 프로그램 중에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하는 유행어가 있다. 신년을 맞아 이를 패러디해 보고 싶다. 다름아닌 ‘프로가 프로다워야 프로지.’ 라는 말이다. 우리 프로축구는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으니 어느덧 4반세기의 역사다. 그럼에도 K-리그가 ‘프로’축구를 구가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대기업 홍보와 지역별 안배라는 태생의 한계를 갖고 출범했지만, 제법 탄탄하게 성장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2002년 4강 신화까지 탄생시킨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축구는 ‘프로다운’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프로구단은 스스로 독립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춰야 한다. 한 해 열심히 공을 차고 마케팅을 해서 이듬해 경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가 2006년도 구단 운영을 결산해 보니, 수입이 116억원이었고 지출이 111억원이어서 창단 3년 만에 5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다.5억원의 흑자라는 내용도 반갑지만 프로구단 중에서 이처럼 자신들의 수지타산을 공개적으로 밝힌 구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구단운영이 모기업의 지원과 홍보 차원에서 이뤄진 탓에 우리 구단은 ‘프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다음으로 여러 선수들이 ‘프로다운’ 정신으로 경기를 뛰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1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한 선수들로서는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월드컵과 유럽 리그 때문에 한층 눈이 높아진 국내 팬들이 보기에 우리 프로축구는 느리고 거칠고 관중 반응은 신경쓰지 않는 축구로 인식돼 있다.‘재미없는 축구’라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 ‘프로’ 선수들의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축구의 적은 야구나 농구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이다. 주말의 황금 같은 시간대에 흥미진진한 영화나 감동적인 드라마 대신 축구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시간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선수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교감에 의해 스타가 탄생하고 선진 축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구단은 구단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2007년을 새로운 각오로 뛰지 않으면 안된다. 관중이 없으면 축구는 없다는 절박한 프로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드컵 프리미엄도 없고 대규모 국제대회도 적은 2007년이다. 오로지 프로축구의 아름다운 순간들로 팬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해서 생존해야 하는 해다. 그야말로 ‘프로가 프로다워야 프로’라는 말이 절실한 때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신출귀몰 도굴꾼…11년간 무덤 300기 도굴

    신출귀몰 도굴꾼…11년간 무덤 300기 도굴

    “전문적인 도굴꾼 행세를 하려면 적어도 국가 문화재의 명칭과 위치,등급,제작 연대 등은 줄줄이 꿰고 있어야죠.이를 바탕으로 ‘국가 고묘(古墓·고대 무덤)유적지 분포 현황’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참고하라고 건네줬습니다.” 중국 대륙에 10년 이상 고대 무덤 수백기를 흔적도 없이 도굴,신출귀몰한 솜씨를 보여주던 전문적인 유적 도굴단이 붙잡혀,그들의 무자비한 문화재 훼손 행위가 낱낱이 공개되는 바람에 충격 속에 휩싸였다.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등지에서 2500년 전인 춘추전국 시대부터 진(秦)·한(漢)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묘 수백기를 무차별 도굴한 혐의로 중국 최대 규모의 전문 도굴 조직이 공안당국에 체포됐다고 화상보(華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이들 전문 도굴단은 지난 11년 동안 산시성 옌안시·웨이난(渭南)시·인촨(銀川)시 등 3개시 8개구·현을 넘나들며 300기 이상의 고묘를 무자비하게 도굴해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특히 이들 도굴단은 고묘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담긴 ‘고묘 유적지 분포 현황’이라는 소책자를 자체 제작해 배포,도굴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경악케 했다. 전문 도굴단의 총책은 장무(張木)씨와 판광샹(范光祥)씨.이들은 휘하에 25명의 전문 도굴꾼들을 거느리고 무차별 고묘를 파헤쳐 턴 도굴단 보스들이다.고종사촌인 이들중 장씨는 옌안시에 번듯한 골동품 가게를 열어놓고 도굴품을 사들인 뒤 시장에 밀매해왔으며,판씨는 도굴 유적지를 지정한 뒤 휘하 도굴꾼들의 도굴을 총지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옌안시 공안분국에 따르면 이들 전문 도굴단은 지난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옌안시 황링(黃陵)현·웨이난시 바이수이(白水)현·인촨시 등 3개시 8개구·현에 있는 춘추전국시대∼진·한나라시대의 고묘 300기 이상을 도굴,국가급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밀매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로부터 국가 2급 문화재 3건,18건의 국가 3급 문화재 등 모두 71건의 국가급 문화재를 압수했다.이들은 고묘를 도굴한 뒤 동정(銅鼎)·동검(銅劍)·청동수(靑銅獸) 등 국가 보호 주요 문화재들만 전문적으로 도굴해왔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공안분국은 전했다. 더욱이 이들 도굴단은 ‘고묘 유적지 분포 현황’이라는 고묘 유적지 전문 책자를 만들어 돌려보며 도굴 대상을 선정했을 정도로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다.300쪽 분량의 이 책자는 일련번호 별로 명칭,상세한 위치,제작 연대 및 국가보호 문화재 등급 등 5∼6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으며 산시성내 270개 주요 고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완벽하게’ 실려 있다. 이들이 거둔 가장 ‘혁혁한 전공’은 지난 2004년말 도굴건이다.판씨는 휘하 3명을 데리고 고묘가 곳곳에 산재돼 있는 옌안시 황링현으로 찾아갔다.승용차 기름이 떨어져 산등성이 위에 있는 주유소에 들렀다.판씨는 주유소를 빠져나와 일망무제로 펼쳐진 주위를 둘러보며 심호흡을 하던중 문득 근처에 한나라시대의 유명한 고묘가 있다는 떠올리고는 ‘한탕’하기로 작정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린 이들 4명은 어슬렁어슬렁 고묘 쪽으로 다가갔다.이들은 쇠꼬챙이 등으로 고묘를 탐측한 결과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감을 잡았다.땀을 뻘뻘 흘리며 3∼4m쯤 고묘를 파내려간 이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에는 동정·동검 등 국가보호 문화재 들이 쏟아져 나왔다.이들이 몇 시간 동안 도굴,밀매한 문화재의 가격만도 5만 위안(약 600만원)이 넘었을 정도다.이때부터 이들은 “산 위에 재물이 있다.”는 조직 모토를 만들어 이에 충실하고자 하는 맹서까지 했다. 1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완벽하게 도굴해오던 이들이 꼬리를 잡힌 것은 실로 우연한 일이었다.옌안시 공안당국이 지난해 10월 공안당국 주요 인물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자,11월 초 한 라오바이성(老白姓·시민)이 장젠(張劍) 정치위원회 국장에게 제보해왔기 때문이다. 공안당국은 즉각 을 장 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TF팀을 구성,특별 수사에 나섰다.1개월여에 걸친 정밀 수사 끝에 이들 전문 도굴단의 실체를 포착,체포했다. 장 국장은 “이들 도굴단의 무자비한 도굴로 옌안시의 지하 고묘들중 훼손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옌안시의 문화재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며 “고묘가 있는 어떤 산은 도굴 구멍이 1000여개 이상이 나 있어 만신창이가 돼 있으며,어떤 고묘의 경우 600∼700m 깊이까지 파내려가 도굴하는 솜씨를 발휘,수사팀을 경악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도굴돼 훼손 된 산에는 도자기 등 고대 문화재 파편들이 나뒹굴고 있으며,2000년전의 시체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춘추 전국시대의 황량한 전쟁터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판씨는 “지금부터 11년전 동네 주민 한 사람이 도굴해 짭짤한 재미를 보길래 ‘다른 사람이 도굴하는데,나는 왜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도굴에 발을 들여놓아 결국 ‘도굴 인생’이 시작됐다.”며 “처음 도굴을 시작했을 때는 겁이 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간이 커져 무서운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많은 고묘를 도굴했는데,범법 행위가 되는 줄 몰랐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물론 범법행위인줄을 알았지만,너무 오랫동안 잡히지 않다보니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감정이 무뎌졌다.”고 덧붙였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책을 돌려주세요/조영희

    후드득 후드득. 아침부터 오던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 한낮인데도 온 세상이 캄캄해. 진서의 노란 비옷이 캄캄한 세상에 점처럼 박혀 있어. 할머니는 꼭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날씨라고 하셨지. 하지만 진서는 겁나지 않아. 옷자락을 꼭꼭 여미고 찢어진 깜장 우산을 받쳐 들었지. 진서는 도서관을 좋아해. 작은 언덕배기에 있는 도서관은 넓고 깨끗해. 그곳에 있으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 진서는 도서관 입구에서 우산을 접어 흔들었어. 비를 피해 들어온 떠돌이 개도 몸을 흔들었어. “안녕.” 어린이 자료실의 마음 좋게 생긴 선생님이 진서를 반갑게 맞아주었어. “그 책 들어 왔어요?” 도서관에서의 첫 말이 몇 달째 똑같아. “아니, 아직.” 선생님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진서는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어. “누가 빌려 갔어요? 왜 안 돌려준대요?” 또로롱 또로롱. 선생님이 자료실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어. 진서는 선생님의 책상에 매달려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어. 보고 싶었던 책이 몇 달째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오늘은 꼭 듣고 싶었어. 하지만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어. 진서는 슬슬 지겨워졌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졌어. 아침 똥을 거른 게 문제였나 봐. 화장실은 넓고 깨끗한 도서관에 어울리지 않게 좁고 어두웠어. 오늘은 비가 와서 더 칙칙해 보였지. 진서는 가운데 칸에 들어갔어. 그리고 힘을 끙! 주고 보니 화장지함에 화장지가 없는 거야. 주머니를 뒤져도 나오는 건 먼지뿐이었어. 휴지통도 살짝 봤지만 손이 가진 않았어. 얼굴이 빨개지고 손바닥엔 땀이 뱄어. 바스락 바스락. 그때, 바로 옆 칸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어. 사람이 있었나봐. 다행이지 뭐야. “휴지 있어요?” 진서가 칸막이벽을 두드렸어. 비닐봉지가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칸막이 밑으로 화장지 한 뭉치가 쑥 들어왔지. “고맙습니다.” 진서는 마음이 탁 놓였어. 진서는 볼 일을 마치고, 손도 깨끗이 씻었어. 그리고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 거야. 진서가 앉아 있던 칸의 옆 칸, 그러니까 가장 안쪽의 칸은 평소에 청소 도구들을 놓는 곳으로 쓰고 있었어. 이제 청소 도구들을 치우고 원래 목적으로 쓰고 있는 걸까? 진서는 그 칸의 문 앞으로 가보았지. 문이 살짝 열려 있었어. 진서가 모르는 사이에 나가 버린 걸까? 확인하기 위해서 진서는 문을 살짝 밀었어. 문은 스르르 열리다가 어느 순간에 딱 멈췄어. 안에 있던 사람이 열지 말라고 문을 밀었다면 다시 닫혔을 텐데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딱 멈췄어. 무언가 꽉 찬 느낌이었지. 진서는 문을 힘껏 밀어 보았어. 끄으윽. 냄비 바닥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청소 도구가 끌리는 소리인가? 확실히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어. 진서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었어. 그러자 ‘퐁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어. 그곳엔 빗자루와 대걸레, 쓰레받기가 잔뜩 쌓여 있었어. 두루마리 화장지도 한 봉지 있고 말이야. 역시 청소 도구를 놓는 곳이었던 거야. 진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변기 속을 들여다봤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변기 속에는 진서가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책이 떨어져 있었어. 진서는 책을 건져야겠단 생각에 변기 옆에 세워져 있던 싸리 빗자루를 집어 들었어. 흠뻑 젖었지만 잘 말리면 그럭저럭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 푸르풍풍. “앗! 차가워!” 변기 속에 빗자루를 넣는 순간, 빗자루는 사라지고 커다란 갈색 도깨비가 나타났어. 도깨비는 화장실 한 칸을 꽉 채울 정도로 컸어. 머리는 천장에 닿았고, 구부정한 자세로 팔을 앞으로 쭈욱 빼고 있었어. 유난히 빨간 얼굴,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부리부리한 눈은 진서의 짝꿍을 쏙 빼닮았어. 진서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지. “감히 날 변기 속에 넣다니.” 도깨비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어. 아하! 조금 전의 싸리 빗자루는 이 갈색 도깨비였던 모양이야. “이래 봬도 깔끔한 몸이시라고.” 도깨비는 몸을 부르르 떨었어. 그러는 사이, 진서도 정신을 차렸지. 몇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책이 변기 속에 있어. 그것도 커다란 갈색 도깨비와 함께 말이야. “이 책을 돌려주지 않은 게 너야?” 진서가 도깨비를 쏘아봤어. 도깨비는 흠칫했지. 자기를 보고 도망가지 않은 것만 해도 놀라운데 오히려 겁을 주고 있으니 말이야. “응? 네가 그런 거냐고.” 진서가 한 발 앞으로 왔어. 도깨비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지. 하지만 그 좁은 화장실 안에 갈 데가 어디 있겠어. 도깨비는 몸을 뒤로 빼다가 물 내리는 손잡이를 눌러 버렸어. 콰르르르르. 변기 속의 물이 소용돌이를 쳤지. 진서는 깜짝 놀라 도깨비를 화장실 밖으로 끌어냈어. 겨우 찾아낸 책이 군데군데 찢겨 변기 속을 떠다녔어. 이제는 건져서 말린다 해도 절대 절대 읽을 수 없을 거야. 진서의 눈에 불이 일었어. 도깨비의 눈보다 부리부리해졌지. “이제 어쩔 거야?” “미안.” “미안하다면 다야? 저 책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진서의 얼굴은 퉁퉁 붓고, 도깨비는 점점 더 오그라들었어. “어쩔 거냐고!” 점점 더 오그라들던 도깨비가 진서의 손을 잡아끌었어. 도깨비가 진서를 데리고 간 곳은 어린이 자료실이야. “책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 거나 읽으면 안 돼?” “안 돼!” 진서는 도깨비의 손을 뿌리쳤어. “골라줄까?” 도깨비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진서는 대답하지 않았어. “이거 어때? 한 번 읽어봐.” 도깨비는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진서의 눈앞에 대령했지. 진서는 웃음이 나는 걸 꾹 참았어.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면 안 될 것 같았지. 그보다 사서 선생님한테 도깨비가 한 짓을 모두 일러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선생님의 책상이 비어 있었어.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어. 도깨비를 혼내는 건 진서의 몫이 된 거야. “너 말이야.” 진서가 도깨비를 은근히 바라봤어. “그 책 말고도 돌려주지 않은 책 있지?” 도깨비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어. 달아나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진서가 재빠르게 붙잡는 바람에 둘 다 넘어졌어. 포쇼쇼. 도깨비는 어느새 싸리 빗자루가 되어 있었어. 진서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마구 내쳤지.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 몇 번을 내쳐도 싸리 빗자루는 여전히 싸리 빗자루였지. 진서는 싸리 빗자루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어. “변기에 넣어버릴 거야!” 푸르풍풍. “안 돼! 하지 마!” 변기에는 빠지고 싶지 않은가봐. “돌려주지 않은 책 있지?” 도깨비는 빨간 얼굴을 더욱 붉히며 고개를 끄덕했어. “어디야? 앞장서.” 진서는 도깨비의 누더기 옷자락을 꼭 붙잡았어. 도깨비는 말없이 화장실을 나갔어. 그리고 넓은 홀을 지나 도서관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 밖에는 아직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어. 진서는 가방에 꽂아 두었던 찢어진 깜장 우산을 활짝 펼치고 도깨비를 보았어. “같이 쓸래?” 하지만 진서의 우산은 도깨비한테는 얼굴 가리개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였어. 진서하고 도깨비는 키도 맞지 않았지. 우산을 얼굴에 대보는 도깨비를 보다가 진서는 웃음을 터뜨렸어.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지. 진서의 몸이 하늘로 들렸어. 그제야 진서는 깜짝 놀라 웃음을 멈췄어. 도깨비가 진서를 번쩍 들어 어깨에 올린 거였어. 그렇게 하고 우산을 쓰니 진서의 몸도 가려지고 도깨비의 얼굴도 가려졌어. 도깨비는 도서관 아래의 체육관을 지나고, 과수원도 지났어. 그리고 그 아래의 좁은 산책길로 올라갔지. 도깨비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비에 젖은 갈참나무 잎사귀들이 진서의 눈앞에 나타나면 진서는 팔을 휘저어 갈참나무 가지들을 밀어줘야 했고, 우산도 놓치면 안 되는 거였어. 도깨비는 작은 산을 넘어 진서가 처음 보는 동네로 내려갔지. 그러고도 도깨비는 한참을 굽이굽이 골목을 돌아갔어. “이상한 데로 데려가면 혼난다.” 진서의 말에 도깨비가 씩 하고 웃었어. 도깨비가 멈춘 곳은 허름한 책방 앞이었어. 유리창엔 ‘헌 책 사고 팝니다’라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지. 붓글씨 같았어. 도깨비가 책방의 나무문을 열자 꿉꿉한 책 냄새가 훅 풍겨 나왔어. 진서는 우산을 접고 도깨비를 따라 들어갔어. 오래된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모두 쓰러져 버릴 것 같았지. 그래서 진서는 조심조심 걸었어. 도깨비가 천장에 매달린 전구를 켰지만 그것만으론 책방 안을 환히 밝힐 수 없었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전구의 빛은 책방 구석까지 가지 못했어. 그 구석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진서는 겁나지 않았어. “우와! 이게 모두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이야?” 진서는 도서관에 있는 책보다 여기에 있는 책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야!” 도깨비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어. “사람들이 이사 가면서 내버린 책들이 훨씬 많아. 그런데 사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책이 이렇게 많이 쌓인 것에 대한 그럴듯한 까닭이었어. 도깨비가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을 고르는 동안, 진서는 발아래 있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어. 첫 장을 펼치니 누군가 써놓은 굵은 글씨가 보였어. 진서가 태어나기도 전의 날짜와 함께 책을 산 사람의 이름이었지. 진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 “난 낡은 책이 좋아. 도깨비는 원래 오래된 물건을 좋아해.” 도깨비가 슬며시 와서 말했어. “이거 읽어도 돼?” 도깨비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어. “여기서 읽을게. 읽어도 되지?” 진서가 책을 꼭 끌어안고 말했어. 그제야 도깨비는 진서와 함께 책 더미 옆에 나란히 앉았어. 진서가 펼친 책에는 도깨비 이야기도 있었지. 도깨비 그림이 나올 때마다 책방의 도깨비가 얼굴을 붉혔어. 도깨비가 처음 출연했던 책이라나 봐. 무척 부끄러워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는 책의 표지에는 도깨비 그림이 유난히 많았어. “네가 변기에 빠뜨린 책에도 도깨비가 나와?” “응, 우리나라 도깨비는 아니지만 조금.” 도깨비의 대답에 진서가 고개를 끄덕끄덕했어. “정말 읽고 싶었는데.” 그리고 가만히 중얼거렸지. “그 마음 알 것 같아. 몇 번을 읽어봐도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어.” 도깨비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어. “몇 번을 읽어봐도?” 진서가 도깨비에게 바짝 다가왔어. “몇 번을 읽었으면 혹시 나한테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진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 도깨비는 그 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작은 책방에 이야기 나라가 펼쳐졌어. “기관사 루카스 아저씨는 기쁨의 나라에 살고 있었단다. 그 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였어.” 이야기 나라는 저녁이 되면 문을 닫아. 하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열리지. 진서는 이 작고도 넓은 나라의 첫 번째 손님이 되었어.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가락동 새벽시장 강경훈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2) 가락동 새벽시장 강경훈씨

    “꿈꾸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일 때문에 해돋이를 보러 멀리 떠나지는 못했지만 시장 건물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1일 새벽 4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새해 첫 해가 떠오르기도 전부터 어둑한 시장 바닥에서는 두꺼운 점퍼에 목장갑을 낀 강경훈(28)씨가 쉴 틈 없이 몰려드는 트럭에 채소를 싣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아프리카의 어려운 환자를 돕고 싶어요” “지난해 5월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락시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하다 보니 일하는 동안에는 잡생각 없이 여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는 도매인과 소매인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하는 가락시장 중도매가게 3000여군데 중 하나인 ㈜주덕농산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1997년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뒤 군대 시절을 합쳐 10년 가까이 대학을 다니다 지난해 8월 뒤늦게 학사모를 썼다. 대학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못 느껴 진로를 고민하다 훌쩍 어학연수를 떠났던 호주에서 비로소 아픈 사람을 수발하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이 때문에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받은 월급 180만원을 꼬박 유학자금을 위해 저축한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호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인 ‘아이엘츠(IELTS)’를 공부하고 있다.1차 목표인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아프리카에서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 꿈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꺼낼 예정이다. “한국에선 남자가 간호사를 한다면 여전히 의아한 눈길을 보내지만 아픈 사람의 몸을 다루는 데 남자 여자를 따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12시간 땀흘려 한 달 수입 180만원 그의 하루는 남들이 일과를 접는 오후 10시에야 시작한다. 창고를 정리하고 경매에서 사들인 채소가 배달되면 순서대로 쌓는다. 자정이 되면 카트식 전동차에 채소를 5m 높이로 산더미같이 쌓은 뒤 가게로 주문을 넣은 소매상에서 온 트럭을 찾아 채소를 실어준다.16만 4000여평 부지에 하루에 드나드는 자동차만 4만 2000여대에 이르러 이 가운데 그의 가게에 주문한 트럭을 찾는 일도 고역이다. 오전 10시쯤 가게로 돌아와 청소 등 뒷정리를 하고 나면 고된 하루가 마무리된다. “몸은 힘들지만 가락시장에는 진짜 사람들의 삶이 있어요.‘식사하세요.’라는 말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끼니를 서로 챙겨주는 시장 사람들의 정이 재래시장을 이끌어가는 힘인 것 같아요.” 이날 힘겨웠던 일과가 끝나자 식사와 함께 간단한 술자리가 펼쳐졌다.22년 전부터 그가 일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일(53)씨가 “뿌리가 왕성한 나무가 크게 자라는 것처럼 새벽일로 하루를 여는 경훈이 같은 젊은 친구를 보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도 꿋꿋하게 견뎌낼 것 같다. 사회 밑바닥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항상 건강하고 집안에 우환도 없이 돈을 많이 버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며 그에게 잔을 건넨다. “몸으로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배우다 보면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제게도 희망 섞인 미래가 올 것 같아요.” 활짝 웃는 그의 뒤로 정해년 새해를 밝히는 검붉은 태양이 구름을 뚫고 힘차게 솟아 올랐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서민들의 희망 띄우기] 취업준비생 도희정씨

    졸업을 코 앞에 둔 도희정(22·여·성신여대4)씨는 10년 넘게 꿈꿔온 스튜어디스가 되기 위해 한 눈 팔 틈이 없다. 취업 준비는 2005년 말부터 시작했다. 스튜어디스 양성학원에서 매너수업과 영어면접, 메이크업 등을 익히고 있다. 꼭 필요한 서비스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1월 현대백화점에서 고객만족 서비스 과정도 수료했다. 하지만 같은해 6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서류전형을 통과했음에도 실무 면접에서 탈락해 첫 고배를 마셨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희정씨는 회식 도중 인터넷으로 결과를 확인한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하고 있다. 실무 면접에서 마이너스 요인이었던 수영과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땀을 흘린다. 여름방학 내내 수영장에서 살았다. 지금은 25m 풀을 25초에 주파하는 물개로 거듭났다. 디스커버리 채널 등을 보면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 영어면접이 두렵지 않다. “하늘을 날겠다는 소망을 올해는 꼭 이룰 거예요.”라며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서 꿈 꾸는 자의 특권을 느낀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제네바 이종수특파원|국제기구의 도시 스위스 제네바. 이곳에는 바다를 닮은 레만 호(湖)의 넓은 품처럼 국제공무원으로 지구촌을 누비는 한국인들이 있다. 정부 파견 형식이 아니라 유엔기구 국제공무원으로 일하는 한국인은 어림잡아 30명. 세계보건기구·국제노동기구·세계무역기구 등 근무 공간도 다양하다. 그 중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근무하는 우종길(36)씨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일하는 이수진(36)씨가 지난해 12월21일 만났다. “반갑습니다.”“이렇게 뵙네요.” 인권과 난민 현장이라면 지구촌 어디든지 날아가야 하는 두 사람인지라 2년째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이날 처음 대면했다. 인권담당관으로 8년, 난민 교육관 등으로 10년 동안 일한 두 사람은 그동안의 애환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먼저 국제무대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오지 원주민의 인권이 나아질 때입니다. 특히 2001년 필리핀 원주민 실태 조사 때 만난 50대 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한 회사의 개발로 부족의 전통 생활양식과 권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호소하기 위해 200여㎞를 걸어서 왔더군요.”(우종길씨) “난민 캠프의 참상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겹고통으로 신음합니다.2004년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 노힝가 난민 캠프에서 위생·교육 문제 등 그들의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땀흘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이수진씨) 얼핏보면 화려한 국제공무원. 그러나 고충도 적지 않다. 우씨는 소탈한 성격답게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아무래도 부모님과 가족들을 자주 못본다는 게 힘들죠. 특히 부모님 생신에 못가면 불효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설·추석 때는 외롭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자주 못먹어 힘들죠(웃음).” 그러자 이씨가 ‘행복한 고민’이란 듯 ‘고생 보따리’를 풀어놓았다.“2∼4년 간격으로 보직과 근무지가 바뀝니다. 유랑 생활이죠. 게다가 난민 캠프 특성상 치안 불안·의료시설 미비 등에 시달립니다. 동료 중에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선출로 한국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어땠을까? 두 사람이 국제무대에서 본 한국은 어디쯤일까?“강경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이 6일부터 OHCHR 부판무관으로 부임하는 것도 호재입니다. 그러나 이전엔 가끔 문젯거리로 등장했던 북한보다 (한국이)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기 분담금 11위에 걸맞게 많은 자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엔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면 ‘자발적 부담금’을 늘려야 합니다.”(우) “유엔 전문·산하기구에 내는 자발적 부담금의 위력이 큽니다. 미국·노르웨이·프랑스 등은 고위 직급 인사에도 관여합니다. 또 정부의 지속적 관심도 필요합니다.”(이) 국제공무원이 되는 과정은 크게 네 가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문’을 거쳤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우씨는 하버드대 법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유엔사무총장실에서 근무하는 것을 보고 ‘역동성’을 느꼈다. 졸업하자마자 96년 유엔 사무국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군 제대후 99년부터 인권담당관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와 정치외교학과(대학원)를 졸업한 뒤 외교통상부에서 선발하는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1기생으로 뽑혔다.2년 동안 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일한 뒤 정식 직원이 됐다. 삶의 길목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국제공무원이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이씨가 먼저 “환상을 깨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국제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시작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란 것. 특시 이씨처럼 난민 캠프를 찾아 ‘노마드(유목민) 생활’을 하는 국제공무원에게는 웬만큼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가 쉽지 않다. 우씨도 적극 공감했다.“영어·불어 등 유엔 공식언어 2개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엔정신에 걸맞은 개인의 신념과 전문 지식입니다.” vielee@seoul.co.kr ■ “메일 답장·보고서 작성… 인권문제면 어디든 가죠”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인권 문제라면 어디든 간다.’ 많은 국제공무원들이 성탄절 휴가를 떠난 지난해 12월20일 오후 6시. 어둠이 내린 제네바 파키스가(街) 52번지 파키스유엔고등판무관 건물 3층의 우종길씨 사무실을 찾았다. 퇴근 시간이 됐지만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창가로 보이는 레만호를 즐길 겨를도 없어 보였다. 최근 그의 관심은 ‘기업의 인권 책임’이다. “대기업의 해외진출이 늘어나면서 인권 비중이 커졌습니다. 삼성·포스코 등 한국 기업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해당 국가의 허가가 났다고 방심할 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대화·협력 등이 중요하지요. 세계적 기업은 이미 인권변호사를 고용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씨의 하루는 이메일 검색으로 열린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밤새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온 100통 안팎의 이메일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인권 피해를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개인의 진정서는 특별보호관에 맡기고 큰 이슈만 정리한 뒤 답장을 합니다.”. 평균 15∼20통의 답장을 쓰고나면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동료들과 한식이나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사무실에 와서는 국제사면위원회나 유엔라이트리서치 등 비정부기구 보고서도 검색해야 한다. 또 상급자가 출장을 가면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고등판무관이 해외사절단을 만날 경우 해당 국가의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또 1년에 20∼30권의 브리핑 노트 작성도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해외에 파견 나갈 경우 어젠다 설정, 관련 단체 접촉, 행정 업무 등 노동 강도가 곱절로 늘어난다. 퇴근 후에는 체력관리를 위해 수영장을 찾는다.“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각국에서 온 국제공무원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이기려면 체력이 강해야 하거든요.” 그의 꿈은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까지 진급하는 것이다.“많은 경험을 살려 민간부문으로 옮기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회의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어요”. vielee@seoul.co.kr ■ “난민캠프가 사무실… 유목민처럼 지구촌 누벼”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지구촌 난민 캠프가 사무실’ 이수진씨는 지난해 12월21일 오전 9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엄마를 찾아온 유치원생 아들의 재롱을 뒤로한 채였다. 출근하자마자 난민 훈련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짰다. 물품구입 방법에서부터 재정·서무·계약 체결 등 그의 업무는 전방위에 걸쳐 있다. 또 1주일 단위로 업무 관련 책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를 위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파견 업무 매뉴얼을 작성한다. 그나마 ‘비수기’여서 나은 편이다. 교육관이라는 업무 특성상 난민 캠프 파견이 잦다. 이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데요 그 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해에도 4개월 동안 두바이,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의 난민 캠프가 그의 직장이었다. 올해에는 아프리카 가나의 아카라, 케냐의 나이로비, 우간다 등이 그의 사무실로 변한다. 파견 업무는 준비과정부터 할 일이 많다. 현지 상황 파악, 관련 책자 준비, 교육 프로그램 작성 등을 하노라면 파김치가 되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다. 순환 근무라는 특수성으로 ‘유목민 생활’이 불가피하다.1999년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로 첫발을 오스트레일리아(2년)에서 내디딘 이후 태국(3년), 방글라데시(1년9개월) 등을 돌았다. 업무도 매번 바뀐다.‘필드 오피서’ 시절에는 우물 파기, 화장실 설치, 옷·비누 만들기 등 모든 일이 그의 몫이다. “가는 곳마다 문명과 동떨어진 곳입니다. 기온이 33도로 푹푹 찌는데도 선풍기 한 대 없어 땀을 흘리느라 잠을 설친 적도 있습니다.”. 사랑니 4개를 뽑은 지 이틀 만에 솔로몬 제도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당연히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난민고등판무관의 이런 고충 때문에 동료들 가운데 노처녀가 많고 이혼 사례도 많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년을 밝게 채색한다.“올해 10년 근속상을 받았습니다.100% 만족할 수야 없겠지만 현재까지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친정 엄마와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꿈을 물었더니 “한가족이 모여 사는 겁니다.”라며 웃었다. vielee@seoul.co.kr
  • [주말탐방] 서울우편집중국

    [주말탐방] 서울우편집중국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e세상’에서 우체국이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개개인들이 보내는 카드나 연하장, 편지 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들이 보내는 단체 우편물은 여전히 엄청나다. 연말을 맞아 하루 500만여 통에 이르는 각종 우편물을 처리하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서울우편집중국을 찾았다. 이곳은 마포·중앙·용산·여의도·관악·동작 등 6개 우체국의 우편물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우편물 쌓으면 63빌딩 95배 ‘슉∼, 슉∼, 슉∼’ 27일 오후 직원들은 몰려드는 우편물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었다. 밖은 한겨울 영하의 날씨로 떨어졌지만 집중국 안은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연말답게 이날도 평소보다 40% 이상 많은 500만여 통의 우편물이 쏟아졌다. 이 우편물이 소형이라고 가정할 때 모두 펼쳐 놓으면 약 2억 457만 5000㎡로 여의도 면적(840만㎡)의 24배나 된다. 우편물을 쌓아 놓으면 약 2만 5000m로 남산 서울타워(479.7m)의 52배,63빌딩(264m)의 95배나 된다. 우편물이 이렇게 많다보니 수작업은 어림도 없다. 우편물의 지역별 분류작업을 ‘오비스’(OVIS)와 ‘플랫’(PLAT)이라는 기계에 맡기고 있다. 오비스는 소형우편물을, 플랫은 중·대형 우편물을 담당한다. 그러나 기계는 기계일 뿐 규격봉투가 아니거나 우편번호가 정자(正字)로 정확히 기입되지 않으면 인식을 못한다. 우편번호를 기입하는 네모칸에서 숫자가 조금이라도 삐져나오거나 기울어져 있어도 안된다. 이 때문에 오비스와 플랫을 이용하기 전에 먼저 자동 분류에 적합하지 않은 우편물을 골라내는 일은 직원들의 몫이다. ●예쁘게 꾸민 카드가 직원들에겐 고역 우편물은 크기에 따라 중·대형은 2층, 소형은 3층행(行)이다. 통상적으로 소형은 250만∼300만통으로 중대형 100만통보다 2∼3배 많은 편이다. 2층과 3층으로 나뉜 우편물은 각각 자동 분류가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3층에서는 15명 정도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이같은 1차 분류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수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들 눈빛이 반짝거린다. 여기서 잘못되면 정해진 날짜에 우편물을 전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벽에 붙어 있는 ‘신속·정확·안전’이라는 큰 글씨 아래서 우편물을 분류하던 한 아르바이트생은 “멋진 카드를 보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카드를 하나하나 구분해 내려면 힘든 게 사실”이라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1차 분류에서 ‘합격’ 판정을 받고 오비스로 들어간 우편물은 시간당 최대 3만 2000통까지 지역별로 분류된다. 집중국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을 80개로 구분해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불합격’판정을 받은 우편물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분류하는 손길도 오비스 못지않다. 직원들은 우편번호만 보고도 어느 지역인지 한눈에 알아챈다.3층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분량은 보통 10%이지만 연말에는 대형 카드 등이 많아 15%까지 늘어난다. 중·대형 우편물이 모이는 2층에서는 플랫이 자동분류를 담당한다. 여기서는 소형우편물을 취급하는 3층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분류된 우편물을 통째로 나르는 육중한 ‘팔렛’(pallet)가 분주히 오간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곳 2층과 3층에서 분류된 우편물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1층 발착계로 모인다. 여기서 이미 지역별로 구분된 우편물을 트럭에 실어 보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울우편집중국의 일은 끝난다. 서울우편집중국에서는 이처럼 우편물을 지방으로 보내는 지방발송 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도착우편물 작업인 ‘수용국우편물 배분’도 함께 이뤄진다. 배분도 역시 발송처럼 6개 우체국이 관할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지방발송은 오후 3시에 시작돼 새벽 3시까지 계속된다. 수용국우편물 배분은 발송이 다 끝난 새벽 3시 이후 시작돼 오후 1시까지 진행된다. 집중국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63빌딩의 95배’ 그리움 쌓인다 ■ 사물놀이 동호회 ‘땅울림’ 전 회장 이춘식씨 “우체국은 사람과 사람 情 이어주는 곳” ‘오비스’나 ‘플랫’등 대형 기계들의 기계음만 넘쳐나는 서울우편집중국에도 매주 목요일은 징·장구·꽹과리·북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목요일은 집중국의 사물놀이 동호회 ‘땅울림’의 연습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땅울림은 지난달 30일 정보통신부·행정자치부·농림부·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팀·대전청사연합 등이 참가한 제6회 사물놀이 한마당에서 준우승을 일궈낼 정도로 실력있는 동호회다. 집중국 2층 중·대형통상계에 근무하는 ‘땅울림’전 회장 이춘식(49)씨는 “우체국이란 곳이 약간 고리타분하지만 우편물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을 소중히 이어주는 곳”이라면서 “사물놀이도 흥겨운 우리가락의 소중함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땅울림은 1995년 우리 가락에 관심이 많은 집중국 직원 10여명이 흥사단을 찾아가 사물놀이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전에는 전혀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이메일이 아닌 직접 보내는 카드나 편지가 갖는 매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배운 사물놀이를 직장 내 동료들에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씨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30∼40여명의 동료들이 동참했다.1기 회장을 맡은 이씨는 직접 꽹과리를 치면서 동료들과 옥상에 올라가서 연습하기도 했다. “우체국 업무가 많이 줄어 직원까지 덩달아 많이 줄었어요. 서울우편집중국이 예전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흥을 잃지 않도록 ‘땅울림’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공직 30년 경험 中企에 전수할 것”

    “공직 30년 경험 中企에 전수할 것”

    오강현(57) 아침기술경영연구원장. 그는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농림수산부에서 공무원의 첫발을 디뎠다. 그 후 청와대 경제비서관, 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장을 거쳐 물러날 때까지 30년간 경제관료를 했다. 공무원 옷을 벗고서도 한국철도차량 대표, 강원랜드 사장,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달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아침기술경영연구원을 열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분석, 인수합병 등 경영지원과 자문을 해주는 전문업체다. 오 원장은 “오랜 공직생활을 한 데다 공기업 경영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보고 느낀 점들이 많다.”면서 “대학에 강의를 다니면서 알게 된 교수, 전문 연구원들과 함께 그동안의 경험을 사회에 널리 알려 도움을 주자는 뜻에서 연구소를 차렸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돌파구는 대기업과 기술전문 중소기업들의 능력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 원장이 볼 때 경제회생의 지름길은 없다. 꾸준한 기술혁신만이 살 길이다. 그는 “일부 안정된 벤처들도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기술경영의 전체적인 로드맵 등을 간과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책은 다양성과 지원범위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깊이나 일관적인 기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땀과 노력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신화가 점차 사라지는 세태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견기업들이 규제 등이 부담스러워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가스공사 사장 시절 괜찮은 실적을 올려 관료출신 중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공기업 사장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해임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중에 골프를 쳤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실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돼 있다. 오 원장은 “책임을 진다는 생각에서 ‘시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결국 해고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관료출신으로서의 명예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10월 서울고법은 ‘오강현 전 사장의 해임은 부당하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임기는 끝났고 아직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중이어서 직장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명예를 회복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소감을 묻자 “개인이 정부와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법정공방을 벌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며 손사래를 쳤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대선주자 24시] (7) 천정배 열린우리당 前원내대표

    [대선주자 24시] (7) 천정배 열린우리당 前원내대표

    발가벗은 몸은 솔직하다. 맨몸으로 흘리는 땀은 더 솔직하다. 아무리 가식적인 사람이라도 흐르는 땀을 조절할 도리는 없을 테니까….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과 27일 아침 7시 국회 의원회관 지하 목욕탕 한증막에서 함께 땀을 흘렸다. 홀딱 벗고 마주 앉으면 좀더 솔직한 그의 나상(裸像)을 볼 수 있을 듯 싶었다. 천 의원은 ‘모범생 이미지’답지 않게 벗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다. 카메라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통을 벗어 던지려는 그를 비서진이 화들짝 말리면서 목욕가운을 입혔다. ▶헌정 사상 한증막에서 인터뷰한 최초의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런가?(웃음) ▶어차피 벗었으니 질문도 단도직입적으로 하겠다.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나.‘천정배’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경제적 안정은 물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는 ‘민생 정부’를 만들고 싶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내가 분명한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지지도나 인지도가 낮은데. -내년 대선은 과거에 비해 정책과 비전이 중시될 것으로 생각한다. 새롭고, 실현 가능하며, 효과가 확실한 정책을 제시해 평가받고 싶다. ▶언제쯤 출마를 선언할 것인가.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 문제가 정리되면 거취를 밝힐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만든)창당주역으로서 다시 통합신당을 주장하고 있는데,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도 결국 민주당과 다시 합치려는 것 아닌가. -창당할 때 민주당을 아우르면서 더 크게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됐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과 충분히 다시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 ▶당이 지금처럼 어려워진 이유가 뭐라고 보나. -지도부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원내대표를 지낸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립하고 있다. -자꾸 대통령과 싸움 붙이려고 그런 질문을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나는 노 대통령과 책임을 공유해 왔다. 그런 점에서 논평하는 게 적절치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향(목포)이 같은데. -그렇게 훌륭한 분과 비교하다니 과분하다. 그분의 비전, 포부, 역량을 계승하면서도 현재에 맞게 새롭게 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는 그 분을 넘어서고 싶다.‘발전적 극복’이라고 할까. 대화는 자리를 옮겨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계속됐다. 천 의원은 요즘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한 ‘사회투자국가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이론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추구한 ‘제3의 길’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 강화를 통해 ‘돈을 주는’ 복지가 아니라 ‘경쟁력을 길러 주는’ 복지 국가를 지향한다. 천 의원은 점심 때 자문교수그룹과 ‘사회투자국가론’을 토론했고, 오후에는 서울 아현동 달동네 ‘공부방’을 찾아 소외계층의 열악한 사교육 현장을 체감했다. 공부방을 나와 차에 오르면서 천 의원은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저녁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재래시장을 소재로 한 뮤지컬 ‘희망세일’을 관람했다. 하루 세 끼를 같이 먹고 밤 10시까지 ‘밀착 마크’하면서 천 의원으로부터 수시로 들은 말은 “민생과 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였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데이트’를 정리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그의 장점과 단점이야말로 양면적이라는 생각이다. 미디어선거가 판치는 시대에 정치인 평균치에 미달하는 분식(粉飾)과 스타성(끼)은 그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맨몸의 땀’인 듯 싶었다. 예컨대 그는 “대중에 ‘섹스어필’하기 위해 안경을 벗고 라식수술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가벼운 제안에 그렇게까지 가식적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려는 듯 순식간에 정색을 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전문가가 본 2006 가요계

    올 한해 대중가요계는 어느해보다 씁쓸하고도 잔인했다. ‘고사 직전’이라는 극한 표현을 차용할 만큼 참담했다. 음반 판매는 현저하게 급감했고, 온라인 음악시장은 더욱 성장했다지만, 가요제작자나 뮤지션들에게 돌아간 몫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 양질의 음악을 재생산하고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이 요원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우선 올해 최고의 가요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어느 곡을 꼽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상반기에 발표된 백지영의 ‘사랑 안해’를 제외하면 대중성과 작품성에 이견을 달지 않을 만한 곡들을 추천하기 어렵다. 발라드 일색의 가요계는 다양성을 실종했다. 창작논리보다 상품논리가 앞서 나간 가요계는 대중에게 음악적 진정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올해 걸출한 신인 뮤지션 탄생이 전무했다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음악시장의 위축은 10여곡을 수록한 정규음반 발매보다 2∼3곡을 모아 디지털 싱글 음반으로 온라인을 통해 발표하는 새로운 출구를 열었다. 표절 시비도 창작열에 불타는 작품자들과 음악을 아끼는 대중에게 동시에 찬물을 끼얹으며 가요계의 불신을 더했다. 이효리의 곡 ‘겟차’가 음악팬들에게 의혹의 도마위에 올랐고,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는 법원의 표절 판결을 받았다. 이밖에도 가수 이승철의 마약 배달 위협 사건, 아이들 스타 그룹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음료수 테러 사건, 가수 청안의 강도상해 자작극, 대학가요제 심사결과 논란 등이 가요계를 얼룩지게 했다. 그런 가운데 올초 미국의 맨해튼에서 대형공연을 벌인 가수 비의 희소식도 모방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따끔한 충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현재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월드투어 공연중인 비의 비약적 발전과 독창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세계 진출이라는 화려한 구호도 빛을 잃게 마련이다. 다행히 그의 월드스타를 예감하는 미국측 전문가들의 평이 있어 무척이나 다행이다. 한해를 돌아보니, 칭찬보다 질타받을 일이 더욱 많은 가요계다. 필자 역시 지난 10여년간 가요계 종사자로 땀을 흘렸다. 대중가요의 발전은 기획자와 작품자, 그리고 대중의 관심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하다. 올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로운 해에는 가요계의 풍년을 기대한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www.writerkang.com
  • [카메라 탐방] 사극 특수를 좇는 사람들

    [카메라 탐방] 사극 특수를 좇는 사람들

    올한 해 안방극장은 ‘사극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채널마다 사극 열풍이 식을 줄 몰랐다.‘대조영’,‘황진이’,‘주몽’,‘연개소문’이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주가를 올리면서 거의 매일 사극을 시청할 수 있을 정도다. 흔히 드라마를 ‘공간예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극의 역사적 공간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트를 설치해야 하고 분장에서 소품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제작 비용이 든다. 그 덕택에 사극 속에서 ‘노다지’를 캐며 짭짤히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극 특수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찾아간 곳은 경기도 용인의 MBC 드라마 세트장. 요즘 시청률 1위로 고구려가 시대 배경인 ‘주몽’의 녹화가 한창이었다. 안개가 채 걷히지도 않은 새벽 시간인데도 200명은 족히 넘을 듯한 출연자들과 스태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줄을 서서 얼굴에 수염 붙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극의 감초 ‘엑스트라’들이다.“오늘은 세 번 출연해야 합니다. 행인1, 장군2, 귀족3…” 경력 20년의 김경배(53)씨는 주문해온 인조수염도 배역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일러준다. 감독의 ‘큐’사인에 움직이는 엑스트라는 사람뿐만이 아니다. 전투신이 많은 사극에서 꼭 필요한 엑스트라가 바로 말들이다. 질주하는 병사들의 고함소리에 놀라서 흥분을 하지 않도록 말들은 평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소음적응 훈련’을 받는다. 말들의 출연료는 인간 엑스트라의 6배 정도. 방송용으로 길들여진 말 몇 십 마리를 갖고 있으면 사극 전성시대를 맞아 아주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극에서 대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의상과 분장이다. 의상은 단순한 소품의 의미를 넘어선다. 방송국마다 ‘의상고증자문회의’가 있어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제작할 수가 있다. 바느질 한땀한땀에도 전문가의 고증이 들어가야 한다. 사극 한편에 사용되는 의상과 장신구 제작의 주문 비용은 수천만원. 그 위력은 유행까지 바꿔놓을 정도다. 사극 속 공주의 가락지나 기녀의 노리개가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고 방송이 나간 후 주문이 밀려드는 통에 장신구업체들이 톡톡히 재미를 본단다. 세트장은 웬만한 아파트 공사현장을 방불케 한다. 공사가 끝나고 각종 살림살이까지 채워 넣으면 비로소 사극의 무대가 완성된다. 현재 방송국마다 지방에 대규모 사극 세트장이 있다.KBS는 문경새재·속초·부안·완도에,MBC는 용인과 나주에,SBS는 문경새재와 단양에 설치해 놓고 있다. 야외 세트장은 고용을 창출하고 관광 코스로도 활용된다는 면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톡톡히 한 몫을 한다. 사극이 좋아 사극의 특수를 좇아서 바쁜 사람들. 그들은 ‘Back to the future´를 외치며 사극의 전성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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