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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기경님의 발톱은…” 마지막 1년 지켜본 신부의 일기

    “추기경님의 발톱은…” 마지막 1년 지켜본 신부의 일기

    ‘추기경님 발톱 - 2008년 9월 12일  우리 추기경님은 발톱이 못 생기셨습니다.  무좀이 오래 되어서인지 삐뚤빼뚤 이상하게 변형되었습니다.  특히 오른쪽 발 가운데 발톱은 발톱 위에 카라멜 하나를 올려놓은 것 같이 기형으로 자랐습니다.늘 불편해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음먹고 신문지 깔고 주저앉아서 발톱 원형복구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땀이 비오듯 했습니다.드디어 30분 정도 걸려 갈고 닦아서 성공적으로 원형을 복구해드렸습니다.  수녀님과 간병인께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일을 해주었다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추기경님도 흡족하신 것 같았습니다.  추석 선물로 추기경님 달구경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그것은 못해드리고 발톱 깎는 선물을 해드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인 루가 고찬근 신부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홈페이지(cardinalkim.catholic.or.kr)에 지난 22일 올린 ‘추기경 투병기’가 또다른 감동을 전하고 있다.고찬근 신부는 김 추기경의 불꽃이 사위어가던 지난 1년여 ,한달에 한 두번 많게는 서너번 꼴로 추기경을 찾아뵜을 때 있었던 일과 느낌들을 일기 형식으로 꼼꼼히 기록했는데 많은 망설임 끝에 홈페이지 추모 게시판에 올린 것.홈페이지를 찾은 신도 등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 신부는 “죽음을 맞이 하시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신 그분의 고매한 인격을 전하고 싶고,추기경님을 열심히 간병한 많은 분들의 노고를 함께 기억하고자” 이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기에는 김 추기경이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종의 은혜를 구하며 - 2008년 1월 20일  추기경님 어머니는 무척 엄하셨답니다.  특히 막내인 추기경님께 엄하셨고 당신도 어머님께 무뚝뚝하게 대해드렸답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징병되어 나간 학병시절에 바다에 빠져 돌아가실 뻔하다 살아나셨는데 바다 위에 어머니의 모습이 비치고 그 순간 당신이 어머니의 품에 돌아가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추기경의 어머니는 추기경이 신부가 된 뒤 본당신부 시절에는 사제관에 모시고 살았으나 주교님 비서가 되고는 모실 수 없어서 셋방살이를 했다고 고찬근 신부는 설명했다.추기경은 어렵사리 어머니께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드려 형수와 조카들이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는 겨울이 끝나가던 사순절 어느 날,고해성사를 보고 집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급히 찾아간 아들 신부 무릎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 신부는 어머니 얘기 끝에 추기경이 “많은 사람이 당신(나) 때문에 고생하고 걱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씀하길래 “(추기경님은) 정말로 우리시대의 큰 산으로, 거목으로 우리를 위해 훌륭하게 잘 사셨기에 주위 사람들의 그런 돌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드렸다고 돌아봤다.그러자 추기경은 “아니야,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어. 많이 부족했어.”라고 답했다는 것.  2008년 10월 4일 고 신부의 일기에는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했던 추기경이 밤 11시 30분쯤 눈을 뜨고 “아야, 아야!”라고 신음하며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했다고 적혀 있다. 고 신부는 ‘추기경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 “아야, 아야”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라고 적었다.  같은 해 11월 13일 일기에는 변비 때문에 고생많은 추기경의 관장을 송구스럽게도 직접 지켜보고 발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주는 고 신부의 일상이 담겨 있다. 그는 ‘추기경님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꾸 “가라, 가라.” 하신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재미없다 하시며 “가라, 가라.” 하신다.그래도 좀 더 오래 있으면 좋아하신다.’고 회상했다.이밖에도 ‘개구쟁이 추기경님’ ‘달을 사랑한 소년’ 등 눈에 띄는 제목의 일기가 적지 않다.  고 신부는 추기경이 선종한 지난 16일 퇴근 시간에 차가 워낙 많이 밀려 강남성모병원에 이르지도 못하고 선종 소식을 전화로 들었던 사연을 18일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그는 이날 일기에 ‘날씨는 춥지만 추기경님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 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적을 맛본다.생전에 당신 고독의 든든한 벗은 되어드리지 못했지만 철없던 우리의 따뜻해진 마음을 보시고 고독의 기억은 지워버리세요.’라고 추기경께 마지막 감사를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
  • 우리 전통에 현대 옷 입히니 ‘예술작품’

    우리 전통에 현대 옷 입히니 ‘예술작품’

    서양 복식을 다루는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풀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일지 모른다. 글로벌 패션 무대를 주름잡는 일본, 중국의 디자이너들은 대개 고유의 색채를 서양의 틀에 맞춰 그럴싸하게 풀어내 찬사를 받은 이들이다. 맹목적인 모방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 디자이너의 경쟁력은 고유의 것, 자신만의 것을 익숙한 방식이지만 어떻게 낯선 매력을 창조해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이상봉의 ‘한글 패션’이 국내외에서 찬사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유의 전통을 서양 패션에 접목시켜 온 디자이너로 ‘이영주 컬렉션’의 이영주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부터 전통적 요소를 가미한 의상을 선보여 왔으니 서양 복식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것을 탐하는 그의 작업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새달 2일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리는 2009년 봄·여름 컬렉션 준비에 바쁜 그를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꽤 낯익은 미니 원피스가 내방객을 먼저 맞는다. ‘피겨 요정’ 김연아가 에어컨 광고에서 입은 의상이다. 연예인 마케팅을 하지 않아 옷 짓는 솜씨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이 대표는 “이 옷 때문에 (사람들로부터)요즘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웃었다. 겸손해하지만 그의 의상은 방송가와 예술계, 정계 인사들이 즐겨 입을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만든 드레스는 조수미, 장한나 등 클래식음악 스타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유명 수입 브랜드를 마다하고 그의 드레스를 찾는 이가 많은데 어떻게 전통에 눈을 돌리게 됐을까. “IMF가 계기가 됐죠. 당시 상황은 디자이너로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했어요.” 불황 때문에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물밀듯 들어오는 해외 고가 수입 브랜드 물결 속에서 독창성, 차별화에 대한 필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는 것.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부어 한국 시장을 잠식하는 수입 브랜드와 똑같이 해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2~3년간 가슴앓이를 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홀대하는 백화점의 영업 횡포, 일부 연예인의 무분별한 수입 브랜드 선호가 자신은 어떤 길을 가야할지에 대한 쓰디쓴 깨달음을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찾은 해답이 우리 고유의 것, 외국 디자이너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전통의 문양, 그림, 색깔이었다.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절박감은 고유의 문화를 좀더 세련되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자리잡았다. 연꽃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래 전통 조각보, 오방색, 민화 등을 활용한 ‘작품’ 같은 의상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아 왔다. “옷 팔아 번 돈을 1년에 두 차례 여는 컬렉션에 다 쏟아붓는다.”는 그는 서공임 선생의 민화가 그려진 의상 한 벌을 제작하는 데 무려 1500만원을 들이기도 했다. 이번 컬렉션의 전통 요소는 한지와 묵화다. 한지에서 뽑은 실로 짠 옷감에 자연 풍경을 그린 묵화를 넣었다. 지금까지는 95%를 수입 원단에 의존했으나 이번에는 한지 섬유를 주로 사용했다. 한지 섬유는 천연 소재로 땀 배출이 잘되고 피부 건강에 좋아 친환경, 웰빙 트렌드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모두 65벌. 은은한 색을 머금은 한지 섬유를 화폭 삼아 펼쳐진 부드러운 묵화가 의상 전체에 은근하고 우아한 멋을 깃들게 한다. “우리의 것은 촌스럽다는 그릇된 편견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욕심. 그는 한국적인 것을 천시하는 경향에 대해 쓴소리를 뱉었다. 특히 해외 영화제에 참석한 일부 한국 여배우가 외국 디자이너의 의상을 자랑인 양 걸치고 나오는 현실에 대해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중국 유명 피아니스트 랑랑을 예로 들었다. “그가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오는 의상을 보면 항상 가슴 한구석에 작은 용이 앙증맞게 수놓아져 있어요. 어떻게 해서든 민족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죠. 우리에게도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년은 브랜드 창립 15주년을 맞는 해다. 여러가지 의미 있는 일들을 구상중인데 모교인 미국 FIDM과 손잡고 미국에서 회고전을 여는 것이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발표했던 전통 요소가 가미된 의상들로 꾸며질 겁니다. 서양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가 디자이너로서 색깔을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요. 또한 한지 섬유처럼 우수한 소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바람도 있고요.”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핸드볼큰잔치] “결승가자”

    남자부의 코로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 여자부의 용인시청과 삼척시청이 플레이오프 티켓을 나란히 움켜쥐었다. 코로사는 24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핸드볼큰잔치 남자부 경기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인천도시개발공사를 31-30, 1점차로 이겼다. 이로써 두 팀은 나란히 3승2패로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에 진출, 결승행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이미 결승에 선착한 두산은 충남도청을 32-23으로 꺾고 5전 전승을 거뒀다. 두산 윤경신은 팀내 최다인 9골을 뽑아 대회 통산 최다골 기록을 547골로 늘렸다. 여자부 용인시청은 골키퍼 이민희를 앞세워 정읍시청을 29-25로 누르고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두 팀은 전반 7-7의 접전을 펼치다 이민희의 눈부신 선방으로 후반 점수차를 벌렸다. 이민희는 전반에만 7m 드로 3개 등 총 20개를 막아 44%의 놀라운 방어율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 삼척시청도 대구시청을 22-20으로 물리치고 5승1무1패를 기록,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삼척시청-용인시청의 승리팀은 결승서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벽산건설과 우승을 다툰다. 남녀 플레이오프는 27일, 결승전은 다음달 1일 성남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 벌어진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그림자 살인’ 황정민, 대한민국 최초 탐정 변신

    ‘그림자 살인’ 황정민, 대한민국 최초 탐정 변신

    배우 황정민이 영화 ‘그림자살인’을 통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탐정으로 변신했다. 그동안 영화 ‘너는 내 운명’, ‘사생결단’, ‘검은 집’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황정민은 이번 영화에서 탐정 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이 맡은 역할은 한때는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이제는 바람난 부인 뒤꽁무니나 쫓고, 떼인 돈을 대신 받아다 주며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사설 탐정 ‘홍진호’. 돈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지만 타고난 추리 감각과 귀신 같이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만시경, 은청기 등 당대 최신수사장비를 이용해 한 번 맡은 일은 집요하게 파헤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살인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광수(류덕환 분)로부터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살인사건을 의뢰 받고,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미궁의 살인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리가 펼쳐진다. 황정민은 탐정 특유의 번뜩이는 추리와 날카로운 눈빛 연기를 비롯해 격투, 협박, 위장, 추격, 잠복 등 다양한 수사방법을 통한 몸 사리지 않는 액션, 현대극에서 볼 수 없는 어법까지 다양한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한편 조선을 긴장시킨 미궁의 살인사건이 남긴 5개의 단서를 바탕으로 사설 탐정 홍진호(황정민 분)와 열혈의학도 광수(류덕환 분), 여류발명가 순덕(엄지원 분)이 사건의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본격 탐정추리극 ‘그림자 살인’은 오는 4월 2일 개봉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쾌한 돈키호테 vs 파격의 신데렐라

    유쾌한 돈키호테 vs 파격의 신데렐라

    지난 18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올해 개막작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다. 중국 출신의 유병헌 예술감독은 발을 굴러가며 집시춤을 추는 남성 무용수들에게 더 강한 동작을 강조한다.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던 문훈숙 단장도 벌떡 일어나 여성 무용수들의 손짓을 고쳐준다. 흥겨운 음악과 발레용어, 한국말, 중국말이 뒤섞인 가운데 여성 무용수는 화려한 스커트 끝자락을 펄럭이고, 남성 무용수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뛰어다닌다. 지금은 레오타드(아래위가 붙은 신축성 있는 옷), 고무줄 스커트, 면반바지, 튜튜 등을 입은 채 제각각인 모습이지만 오는 26일부터 이들은 유니버설아트센터 무대에서 화려한 스페인풍 의상을 입은 무희들로 변신할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올해 개막작은 ‘돈키호테’다. 세르반테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1869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돈키호테’는 유쾌하고 화려한 희극 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광장을 재현한 무대에서 화려하고 현란한 품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키트리와 바질이 선보이는 2인무와 32번의 회전동작 등 고난도의 기교가 볼거리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스타 강예나·황재원과 황혜민·이현준, 주역으로 처음 데뷔하는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등 출연진도 쟁쟁하다. “올해는 발레의 눈높이를 낮추고, 대중화에 집중하는 해”라고 말한 문 단장은 공연 30분 전에 돈키호테 감상법을 설명하고, 공연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한 상황 설명을 하는 자막을 제공해 이해를 도울 계획이다. 26일~3월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070-7124-1733. ●문훈숙 단장이 말하길 유니버설발레단의 군무는 세계 정상급이다. 바르셀로나 광장(1막), 집시야영장과 환상의 나라(2막)의 군무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작품은 무용수의 기교가 더욱 돋보인다. 특히 결혼식 장면에서 주역 무용수의 2인무는 발레콩쿠르의 인기 레퍼토리일 정도로 유명하다. 처음 파트너 호흡을 맞추는 황혜민·이현준, 샛별인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주목해 달라. 국립발레단은 고전을 파격적으로 재탄생시킨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천재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대표작 ‘신데렐라’를 선보인다. 고전적인 기교에 현대적인 의상과 내면연기를 녹여 작품을 신선하게 비튼 작품이다. 원작에는 없는 신데렐라의 어머니가 관능적이고 매력 넘치는 요정으로, 마냥 나쁘기만 했던 계모는 전처를 잊지 못하는 신데렐라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연있는’ 여인이다. 기본 발레복 튜튜와 토슈즈를 벗어던진 신데렐라는 얇은 실크 원피스에 맨발로 춤을 춘다. 여기에 움직이는 듯한 무대 전환, 감각적인 조명까지 곁들여져 작품에 신선한 세련미가 넘친다. 더 많은 관객이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입장권 가격을 5000원부터 책정했고, 4월부터는 지방 공연장을 찾아간다. 3월20~24일, 예술의전당. (02)587-6181. ●최태지 단장이 말하길 무대 장치, 의상 등도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시도는 확실한 볼거리이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내면연기를 관전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물론 네덜란드와 한국, 두 나라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기량을 뽐내는 김지영과 김주원을 비롯해 장운규, 윤혜진, 이충훈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거리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유니버설 발레단 ‘돈키호테’국립 발레단 ‘신데렐라’
  • “비, 국제적 센세이션” 디스커버리 채널서 극찬

    “비, 국제적 센세이션” 디스커버리 채널서 극찬

    “비는 한국 경제와 사회 변혁 성공의 상징이며, 한국 최고의 국제적 센세이션이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DISCOVERY)’에서 비(Rain, 본명 정지훈)를 위와 같이 극찬해 눈길을 끈다. 비의 소속사 제이튠엔터테인먼트는 23일 “오늘 디스커버리가 기획한 ‘힙 코리아’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의 일화가 소개되며, 한 시간 분량의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을 비롯한 전 아시아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고 밝혔다. 전 세계 170여 개국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채널은 한국의 발전적인 문화에 주목해 ‘힙 코리아(HIP KOREA)’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으며, 과거의 서울이 역동적으로 변화한 데에 비추어 비 또한 피와 땀과 눈물로 한국의 아이돌을 넘어 국제 무대의 슈퍼스타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힙 코리아’의 제작진은 비의 값진 성공 일화를 통해 대한민국 서울의 성공 신화를 알리고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 영상미를 극대화했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는 세계적인 여배우 수잔 서랜든과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 ‘콜베어 리포트’의 진행자인 스티븐 콜베어의 인터뷰까지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잔 서랜든은 비에 대해 “자기 일을 열심히 해 두번이나 납치해 디저트를 먹여야 할 정도”였다고 칭찬했다. 스티븐 콜베어는 비가 자신의 TV쇼에 출연해 댄스 대결을 펼쳤던 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예술에 완전히 몰두한 거장’을 만난 느낌이었다며 극찬했다. 비는 작년 초, 제작진을 통해 처음으로 제안을 받았으며, 약 반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한 이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이십대여, 승리합시다”라는 슬로건으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해 희망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술의 조건

    문화예술에 경영의 개념이 도입된 건 불과 반세기 남짓이다. 예술이 소수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엔 창조자(예술가)와 향유자(후원자)만 존재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대중이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역할자가 필요했다. 가까이 하기엔 서로 너무 멀었던 문화예술과 대중을 만나게 함으로써 ‘예술성’과 ‘대중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 그것이 문화예술 경영의 몫이다. ‘문화, 경영을 만나다’(김승현 지음, 김영사 펴냄)는 문화부 기자로 오랫동안 예술 창조의 현장을 밀착 취재해온 지은이가 대중을 흥미로운 문화의 세계로 초대하는 예술 입문서이다. 동시에 문화예술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경영 안내서이다. 문화예술 경영과 문화정책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도 소개돼있지만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지은이가 직접 겪은 사례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현장감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은이는 “경영의 측면을 무시한 채 예술적 가치만 고집할 경우 문화예술의 현실적 존립근거 자체가 위협받으며, 예술의 측면을 무시한 채 경영만 주장할 경우 예술을 위한 경영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상실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과 경영의 행복한 만남을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술의 조건으로 창조성과 도전 정신, 짜임새 있는 경영을 꼽는다. 뮤지컬 ‘명성황후’, ‘지하철 1호선’ , ‘난타’가 대표적인 예. 이젠 공연 때마다 관객이 저절로 몰리는 ‘국민 뮤지컬’로 자리잡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창작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명성황후’의 성공 뒤에는 국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공연의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 시장을 두드린 도전 정신이 있었다. 한국형 넌버벌 퍼포먼스의 지평을 연 ‘난타’는 창조성과 도전 정신의 바탕 위에 상설 전용극장 개관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탁월한 경영 수완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밖에 일본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 한국 공연, 넌버벌 퍼포먼스 ‘델라구아다’의 추락 등 실패 사례를 통해서 타산지석의 기회도 제공한다. 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김수환 추기경 추모] 3초 조문 위해 수시간… “그래도 행복”

    오전 10시46분. 김수환 추기경이 누워 있는 유리관이 멀리 바라보이는 대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명동성당에서 1㎞쯤 떨어진 남산1호 터널 입구에서부터 줄을 선 지 벌써 50분 가까이 지났다. 날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발도 시리고 목 뒤쪽이 추위로 뻣뻣해지는가 하면 콧물마저 흐른다. 성당 관계자들은 ‘목례만 하고 지나 가세요.’라고 적힌 푯말을 들어 보였다. ‘조문객들이 밖에서 1시간이 넘게 추위에 떨고 있으니 빨리 조문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연이어 귓전을 때렸다. 이제 막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재촉하는 목소리가 야박하다고 느껴졌다. 조문객들은 그러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성호를 긋고 짧게 묵상한 뒤 입구 맞은편 출구로 나갔다. 조문에는 불과 3초 정도가 걸렸다. 정면에선 김 추기경의 구두 밑창만 보였다. 출구 쪽으로 움직여 유리관을 바라보니, 그제야 옆 얼굴이 살짝 보인다. 일반 조문객과 유리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까이서 조문하고 있는 수녀님들이나 주요 인사들이 부러웠다. 출근길에 ‘오늘은 명동성당 조문객 행렬에 동참해 보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유리관 때문이었다. 유리관 공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첫 장면에 나오는 존경받은 한 신부님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어제는 남산까지 줄이 늘어섰다고 하더니, 오늘도 오전 10시30분을 넘어서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내 뒤의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은 부천에서 7시쯤 채비를 차려 나왔다고 했다. 일행 중 한 아주머니는 이미 어제 낮 12시에 조문줄을 선 뒤 연도(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와 위령미사를 마치고 오후 6시에 귀가했다고 했다. 서울 창동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입성도 허술했지만 “어제·오늘은 하느님도 감기에 걸리지 않게 봐주실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문객 줄 뒤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스쳐 지나갔다. 오전 11시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문이 예정돼 있었다. 짧은 조문이 끝난 뒤 1시간의 연도와 1시간의 추도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다시 줄을 섰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명동성당을 걸어 나오는데 “지금 조문하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쳐 안내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1970~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의 한 장이 닫히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명동성당 종마루에 앉은 채 뙤약볕 아래서 최루탄 가스와 땀 범벅으로 1980년대를 보냈던 격정의 20대들도 떠나가는 것 같다. 명동성당 앞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의 김 추기경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모자 쓰면 머리가 더 빠진다?!

    탈모에 관한 관심이 늘어날수록 잘못된 상식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정확한 정보 없이 잘못된 관리법을 쓰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머리를 자주 감으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그렇지 않다. 모발은 특정한 주기를 가지고 성장하고 퇴화돼 자연적으로 빠지게 된다.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모발은 2~3개월 전부터 빠질 준비를 하고 있던 것들이다. 오히려 자주 감지 않으면 먼지와 땀으로 범벅된 지저분한 노폐물이 모공을 막아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빗질을 자주하면 탈모가 심해진다는 것 역시 근거 없는 말이다. #빗으로 머리를 두드리면 머리카락이 난다? 아니다. 일반적으로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기 위해 딱딱한 빗으로 두피를 톡톡 두드리는 행위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브러시의 모서리가 두피나 모근에 상처를 입힐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염증을 일으켜 탈모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탈모가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정수리 부위를 빗으로 두드리며 자극하는 것보다 머리 양옆, 뒤쪽을 손가락, 손바닥을 이용해 정수리 방향으로 쓸어올리듯 마사지를 하는 것이 혈행을 촉진시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빗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나일론이나 플라스틱 재질보다는 끝이 뾰족하지 않은 나무 소재나 합성고무 소재가 좋다.#모발은 자르지 않으면 계속 자란다? 탈모가 예방된다? 사실과 관계 없다. 모발은 특정한 주기를 갖고 자라기 때문에 자르지 않더라도 수명이 다 된 모발은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모자를 쓰면 더 빠진다? 흔히 모자를 자주 써 머리에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더 빠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상식. 탈모를 예방하겠다고 모자를 안 쓰거나 가발을 피할 필요는 없다.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귀농도 경쟁시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에 정착하고 싶습니다. 빈집과 농지가격을 알려 주세요.” 전북 완주군 도시농업계에는 요즘 귀농에 관한 전화가 하루 대여섯 건씩 걸려 온다. 고창·진안 등 전북의 시·군에도 전화·인터넷을 통해 귀농 문의 사례가 급증했다. 전남, 경남북, 충남북도 마찬가지다. 귀농으로 이어진 사례가 늘면서 귀농대열 합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로 전북 고창군이 고창읍 월곡리에서 귀농자를 위한 뉴타운 100가구를 분양한 결과 550가구가 몰려 5.5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전북 진안군에만 올 들어 귀농을 신청한 사람도 40명을 웃돌았다. 지난해 도시에서 전남도로 보금자리를 옮긴 이들은 1129명이나 된다. 또 퇴직 이후 언제까지 귀농하겠다며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힌 사람은 3599명이었다. 지난 한 달 300여명이 이주 희망자로 접수됐다. 이같은 귀농 행렬은 경기 침체로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신(新)빈곤층’이 늘면서 농촌으로 돌아오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귀농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농촌에서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예전에는 농촌 ‘밥벌이’가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농촌에서도 땀흘린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자치단체들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며 귀농자지원 조례 등으로 혜택을 확대하고 있다. 영농정착금, 농지구입자금, 출산장려금 등은 전국 대부분의 농어촌 자치단체들이 기본적으로 지원한다. 전북 완주군은 지난해 6월 귀농자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55세 미만 2인 이상 가족이 귀농하면 빈집 매입, 수리 경비와 농지 임차료의 절반을 지원해 준다. 이사비와 교육훈련비도 대준다. 고창군은 귀농자를 위한 영농정착금으로 500만원을 지원하고, 농지구입자금 5000만원을 연리 2%로 융자해 준다. 시골에 땅을 사서 들어오면 일단 각종 정부혜택을 받을 수 있다. 농어촌진흥기금은 개인에게 1억원(연리 2%), 법인에게 2억원을 빌려 준다. 전남의 경우 이주자가 55세 이하이고 시골 빈집을 사면 도가 300만원, 시·군이 200만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농업인 자녀는 학자금을 면제받고, 도내 군 단위 고교에 진학할 경우 대학입시 때 농어촌특례입학과 기회균등선발, 지역균형선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전국종합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다툼·갈등의 세상 묵묵히 품어 내-김지길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그저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속의 친구처럼, 때로는 듬직한 동지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1923년생이고 김 추기경은 1922년생이니 나이도 비슷했고, 비록 교파는 달랐어도 신을 섬긴다는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게다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헤쳐온 연대 의식도 컸을 것이다. 참 말없고 묵묵한 분이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이도, 기대에 못미침을 불평하는 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모두 한 품에 넉넉히 안아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앉았다. 아마도 1986년 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을 펴나가던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으로서 김 추기경을 만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몇 차례씩 성명서를 내며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때였지만 각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결과 연대가 절실했다.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담아서 내보자는 취지로 명동성당을 찾은 것이고 김 추기경에게 이같이 제안한 것이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의 미소를 보내며 공동성명을 함께 내자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공동성명을 내지는 못했다. 비슷한 목소리로 각자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당시 추기경 비서실에서 공동 성명의 형식을 반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김 추기경에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고, 김 추기경의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이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들불처럼 번졌던 뜨거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도,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김 추기경은 없었다.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지로서 늘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TV를 통해 선종 소식을 들었다. ‘아, 먼저 갔구나.’하는 생각이 맨먼저 들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니 다행스럽다. 다툼과 갈등, 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가 새삼 다시 울려퍼질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스럽다. 참 존경스러운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돼 울적하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 KNCC 회장> ● 낮은 곳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유시춘 작가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과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가위눌려 지내던 이 척박한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 늘 계셨다. 부끄러운 ‘유신’왕정 시대에 민주공화국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아름다운 헌법의 가치가 한낱 휴지처럼 구겨박혔을 때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은 ‘진리와 양심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집권자의 죄악’을 직시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그때부터 명동은 민주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의 등대이자 구난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폭도’의 누명을 쓴 채 거처할 곳 없이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기댄 곳도 김 추기경이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압정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캠퍼스마다 성난 물결이 넘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그득했을 때, 우리는 명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민주화의 들불로 타오르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집회와 농성은 명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명동의 어르신인 당신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으므로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진지’라고 지레 믿었다. 1986년 찌는 듯한 어느 더운 날에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규탄연대집회’의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았다. 그때 동석한 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김 추기경께서는 ‘국민이 선출해 주었으면 국회에서 잘해야지.’하시며 마뜩잖아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조차도 암묵적 동의와 격려로 알고 집회를 강행했고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다. 하여,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그 ‘명동농성’이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명동은 김 추기경이 있어 어두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절절한 소망을 외치던 그 수많은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행진을 우리 역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견고한 벽을 뚫고 중생의 번뇌로 출렁이는 사바세계로 현현한 순간이었다. 그때 교회는 진실로 화려하고 장중한 교회건물로부터 그리고 성탄절마다 소리내는 자선냄비로부터 해방되어 이땅의 고난 속에서 스스로 거듭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이 땅의 모든 양심, 고해에 허덕이며 내일에의 꿈을 잃지 않은 고달픈 중생들에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영원한 ‘이데아’요, ‘역사’요, ‘대중의 의지를 대표하는 위인’이었다. 우리 시대는 아직 위인을 부르고 있다. 빈자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는데 권력은 자꾸 뒷걸음치려 한다. 바라건대 부디 생전처럼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고 ‘아무 곳에나 잘자라는 앉은뱅이 민들레로 돋아/ 타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보다/ 꽃 다하면 풀씨로 산천 떠돌며’ 이 땅을 굽어 살피시기를. <전 국가인권위원>
  • 일본 ‘열도’의 공포 ’블레임:인류멸망2011’

    일본 ‘열도’의 공포 ’블레임:인류멸망2011’

    자국의 멸망을 소재로 한 일본영화 ‘블레임:인류멸망2011’가 17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블레임’의 사전적 의미는 신의 저주, 벌이라는 뜻으로 이 영화에서는 치사율 99%에 이르는 신종 바이러스를 일컫는 말이다. 무시무시한 영화의 제목답게 시작부터 땀을 쥐게 하는 상황은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관객을 큰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블레임으로 인해 전세계로부터 고립 당하고 결국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잘 표현해냈다. #지형적 조건으로 인한 불안심리 대변 전세계를 공포에 빠뜨리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블레임은 도쿄의 한 병원에서 시작돼 1일만에 2500만명 추가 감염, 30일째 도시 기능 정지, 90일째 국가 폐쇄라는 무서운 결과를 불러온다. 신의 저주 블레임에 뒤덮인 일본의 모습은 가히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또한 ‘악마의 바이러스가 일본을 공격했다.’는 전세계의 속보와 함께 블레임은 일본을 넘어 전인류를 위협하게 되고 전세계는 일본으로의 접근을 통제한다. 무차별 공격 속에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지고 이 저주에서 벗어나는 일은 오직 블레임의 정체와 원인을 밝혀내는 것뿐. 하지만 이것도 목숨을 걸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영화를 관람한 한 영화관계자는 “너무나 실감나게 그려내 과거에 일어난 실화인줄 알았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영화는 대지진으로 인한 열도 소멸, 사실적 히키꼬모리 묘사, 바이러스 감염의 대재앙을 그린 영화들로 자국민들의 불안심리를 대변하고 있다.”며 “이번 영화는 그중에서도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오싹하다.”고 밝혔다. 상상에 불과하지만 일본이 스스로 멸망을 영화의 소재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아주 사실적으로 말이다. 이는 외부와 쉽게 고립될 수 있는 섬나라기 때문에 전쟁 시 대륙보다 불리한 입장이었고, 지진이 잦은 지형적 조건으로 인한 불안심리를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영화에서 마츠오카로 분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 최근 하정우와 함께 한일 합작영화 ‘보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첫 감염환자를 진찰한 응급센터 의사역을 맡아 블레임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열연을 펼쳐 영화를 더욱 빛냈다. 전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에 맞선 인간의 마지막 사투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패닉 블록버스터 ‘블레임:인류멸망2011’은 오는 26일 일반 관객을 찾아간다.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힘내라 대한민국’ 네티즌 재치랩 만발

    청와대가 올해 3·1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캠페인’의 일환으로 랩송을 제작해 인기 가수들에게 부르게 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이 재치있는 랩을 앞다퉈 만들어내고 있다.  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가칭)’ 등의 랩송을 만들어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디 cur***를 쓰는 한 블로거는 일단 빅뱅에게 ‘애도’를 표한 뒤 빅뱅의 노래 ‘붉은 노을’을 개사한 ‘푸른 운하’를 선보였다.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는 ‘난 네가 싫은데(u-hu I hate you sir) 뉴스엔 온통 너뿐(whole in the world) 귀를 틀어 막아도 라디오에선 네 목소리만 들려오네’로 바뀌었다.  ‘아름다웠던 그대 모습을 이젠 볼 순 없겠지만/ 후횐없어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붉게 타주오’ 부분 역시 ‘아름다웠던 747곡선 이젠 볼 순 없겠지만/ 상관없어 그저 환율만 어떻게 유지해주오’로 개사됐다.  팬들 역시 빅뱅이 나라사랑 랩송을 부르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았다. 네티즌 박모씨는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YG 수장이자 한 때 문화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내 성장기를 가로질러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그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라고 빅뱅을 키워 낸 양현석씨에게 당부했다.  다음은 ‘푸른 운하’ 가사의 전문이다.    Let‘s go yes girl we’re back again with 이명박  fresh collaboration 2009 it‘s bigbag    그댄 아시나요 있잖아요 예전이 너무 그리워요  삽을 놓고 땀을 훔쳐요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꼭 이렇게 내 취직자린 정해져야만 했는지  너만 생각하면 머리 아퍼 독하디 독한 술같어    술뿐이겠어 병이지 매일 앓아누워 몇번인지  내일이면 또 잠깐 잊었다가 또 모레 쯤이면 생각나겠지만  그래도 어떡해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매일 퇴임 카운터만 보는데 4년 후만 기다리는데    (*chorus)  난 네가 싫은데(u-hu I hate you sir)  뉴스에는 온통 너뿐(whole in the world)  귀를 틀어막아도 라디오에선 네 목소리만 들려오네    혹시 그대가 염치가 있다면 국민 얼굴 보기 두렵다면  sir 운하 생각 하덜덜덜 마 너만봄 열이 펄펄펄 나    양파 같은 그대 얼굴 저 많은 오핼 닮아 더 뻔뻔해지는 걸    Oh baby baby 다 지나간 시간 땀흘리며 한 삽질 잊지 않을게요  만약 4년이 지나 투푯날이 되면 투표장에 달려갈게요    (*repeat)    아름다웠던 747곡선 이젠 볼 순 없겠지만  상관없어 그저 환율만 어떻게 유지해주오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Let’s go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sing a together  Come on    물가 뜨고 월급 지네 내통장은 메말랐네  환율 뜨고 주가 지네 떡락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    물가 뜨고 월급 지네 내통장은 메말랐네  환율 뜨고 주가 지네 떡락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    (*repeatx2)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Let‘s go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Now Who ? The BIG - BAG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착한 초콜릿/함혜리 논설위원

    밸런타인데이에는 친구,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풍만하며 깊은 맛을 내는 그런 사랑을 기약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달콤한 초콜릿에 담긴 아동노동 착취의 불편한 진실을 안다면 그다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의 70%는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특히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카카오의 최대 생산지다. 이 나라에서는 약 30만명의 어린이들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가 9∼16세의 어린이들인데, 농장주들이 카카오의 원가를 낮추려고 임금이 낮은 어린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웃나라에서 인신매매로 팔려 온 어린이들도 상당수 있고 빚을 진 부모로 인해 노예로 전락한 아이들도 있다. 이 어린이들은 학교는 갈 생각도 못 하고 매일 카카오 농장에서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한다. 물론 노동의 대가는 형편없다. 어린이 노동자들의 땀이 밴 카카오 콩은 중간 상인을 거쳐 수출회사로 넘어간다. 수출회사는 구입한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값에 카카오 콩을 다국적 식품기업에 판매한다. 이 다국적 기업들은 카카오 콩을 1차 가공해 초콜릿의 원료로 만들어 세계 각국의 제과업체들에 되판다. 이렇게 들여온 원료에 설탕, 향료, 유화제 등을 배합하면 우리가 먹는 초콜릿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초콜릿 가격이 형성되지만 애초의 카카오 생산자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초콜릿 가격의 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보다 나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기업의 절대적 이윤을 추구하는 무역 형태가 아니라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합당한 이윤을 돌려주는 것이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착한 초콜릿’이 단연 화제다. 직수입한 공정무역 초콜릿도 불티나게 팔리고, 아동 노동 없이 콜롬비아 농가를 지원해 생산된 초콜릿도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년에 한 번뿐이지만 소비자들의 착한 선택이 세상을 조금은 밝게 만드는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티맥스, ‘김준 없이’ 첫방… “미안하고 고마워”

    티맥스, ‘김준 없이’ 첫방… “미안하고 고마워”

    3인조 ‘꽃미남 그룹’ 티맥스(T-max)가 오늘(13일) 멤버 김준 없이 공식적인 첫 컴백 방송을 치루게 됐다. 당초 티맥스(신민철, 박윤화, 김준)는 13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KBS 2TV ‘뮤직뱅크’를 통해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인기 OST곡인 ‘파라다이스’의 첫 선을 보일 예정이었으나, 멤버 김준의 동 드라마 출연 스케줄로 인해 두 멤버만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티맥스의 소속사 측은 전화 통화에서 “티맥스가 오늘 ‘뮤직뱅크’를 통해 지상파 첫 컴백무대를 치룬다.”며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김준의 의사에 따라 어제까지 최대한 스케줄을 조정했지만 아쉽게 불발됐다.”고 밝혔다. 김준 역시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함께 심혈을 기울여 온 티맥스 앨범이 한시적으로 미뤄졌던데 대한 미안한 마음과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준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김준, 최근까지 ‘티맥스’ 합류 위해 구슬땀 오늘 티맥스의 방송 재개 무대에서 티맥스의 랩퍼로 활약하고 있는 김준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김준은 최근까지 티맥스의 첫 방송에 함께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드라마 촬영 이후에도 틈틈이 연습실을 찾아 멤버들과 안무연습에 매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사 측은 “함께 하지 못한 김준의 아쉬움이 크다.”며 “김준이 ‘꽃보다 남자’에 합류하기 전부터 티맥스의 앨범에 매진해 왔던 애정도 크다. 첫 무대에 함께 설 수 없는 아쉬움에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 첫무대 합류 불발, “미안하지만 고마워” 김준은 최근 서울신문NTN과의 인터뷰에서도 ‘연기자 데뷔’로 인해 ‘티맥스’의 활동이 미뤄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티맥스에 대해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들”이라고 말문을 연 김준은 “사실 티맥스의 앨범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꽃남’에 캐스팅 돼 연기자로 데뷔하게 됐다. 같이 활동했어야 하는데… .”라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어 “드라마로 인해 티맥스의 앨범 계획이 다소 미뤄져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늘 드라마 모니터링을 해주고 따뜻한 메세지를 보내주는 가족 같은 멤버들이 있어 힘을 얻는다.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또한 “티맥스의 정식 앨범활동은 ‘꽃남’ 드라마가 종료된 후 4월 쯤을 바라보고 있지만 드라마 OST곡인 ‘파라다이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먼저 선보이게 됐다.”며 “티맥스는 약 1년 정도의 공백기 동안 쉼 없이 탄탄한 실력을 닦아왔다. 드라마 후에는 ‘티맥스’ 활동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라디오 위주로 ‘최대한 합류 노력’할 것 티맥스의 소속사 측은 “김준의 스케줄이 조정되는 데로 최대한 합류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사전 준비가 필요한 TV 방송은 어렵다 하여도, 라디오 등 바로 조정이 가능해 투입될 수 있는 스케줄에는 세 명의 멤버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7년 데뷔한 티 맥스(T-max)는 작사·작곡 및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는 리더 신민철과 데뷔초기 수려한 외모로 ‘민효린의 친오빠’라는 별칭을 얻었던 서브 보컬 박윤화, 랩퍼 김준으로 구성돼 있다. ’블루밍(Blooming)’, ‘라이온 하트(Lion Heart)’, ‘런 투 유(Run To You)’ 등 총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한 티맥스는 ‘꽃보다 남자’ 드라마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한편 티맥스의 신민철, 박윤화는 13일 6시 35분 부터 생방송 되는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라다이스’로 그 첫번째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김준의 파트는 다른 멤버가 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모래시계/강석진 논설위원

    대중 목욕탕 사우나실에 들어가니 모래시계가 눈에 띈다. 호리병처럼 생긴 유리병 안에 모래가 소복이 쌓여 있다. 다시 뒤집어지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나를 응시한다. 나도 바라본다. 저 모래는 어디서 왔을까. 잔물결 살랑대는 강변에서 왔을까. 파도소리 들으며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를 꿈꾸던 어느 바닷가에서 실려 왔을까. 작은 게의 간지럼에 숨을 구멍을 내주면서 부서진 조개껍질이랑도 사이좋게 지냈겠지. 그도 아니면 태양이 작열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그리하여 만물이 마침내 잘게 부서지고 마는 사막 출신일까. 드넓은 곳에서 영겁의 세월을 지켜보았을 모래가 유리병에 갇힌 뒤로는 손가락 길이나 겨우 되는 거리를 아래 위로 오고가며 인간의 땀빼는 시간을 재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도 모래는 대지와 바다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잊지 않았을 거야. 내가 유리병을 열어 쏟는다면 언젠가 그곳으로 달려가겠지. 하지만 두어번 뒤집는 동안에도 끝내 유리병을 열지 못했다. 내 물건이 아니므로.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프로배구] 대한항공, KEPCO45꺾고 4연승

    [프로배구] 대한항공, KEPCO45꺾고 4연승

    대한항공이 KEPCO45를 꺾고 4연승을 내달렸다. 대한항공은 10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5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쿠바 특급’ 칼라(15점)와 ‘주포’ 신영수(11점)의 ‘쌍포’를 앞세워 KEPCO45를 3-0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14승9패를 기록한 대한항공은 이날 경기가 없었던 LIG(12승10패)와의 승차를 1.5경기차로 벌리며 3위를 굳혔다. 반면 KEPCO45는 2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앞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는 GS칼텍스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풀세트 접전 끝에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현대건설에 3-2로 진땀승을 거뒀다. 13승5패가 된 GS칼텍스는 2위 흥국생명(11승6패)과의 승차를 1.5경기차로 벌리고 선두를 굳게 지켰다. 다 잡았던 경기를 아쉽게 놓친 현대건설(8승11패)은 4연승 도전에 실패하며 KT&G에 3위를 내주고 4위로 내려앉았다. 마지막 5세트는 최고의 명승부로 남을 만했다. 9-13으로 패색이 짙었던 GS칼텍스는 나혜원(7점), 배유나(8점)와 데라크루즈(양팀 통틀어 최다인 37점)가 연달아 공격을 성공시켜 13-13으로 따라잡은 뒤 세 차례의 듀스 끝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현대건설은 5세트 막판 14-14 듀스에서 세터 염혜선(3점)이 서브 포지션 실수를 범한 것이 뼈아팠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글ㆍ사진·동영상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 목욕탕 변천사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용산사망자 아들 “아버지가 테러범?” 공개된 정조의 ‘299통 편지’ 비밀은 9급 공채에 30대가 몰린다 현인택 ‘동문서답’ 청문회 화왕산 억새 태우다 4명 사망 고3 시기별 수능 전략 제주女교사,1~2일전 살아있었다
  • [엄마와 읽는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뜨개질하기/채인선

    [엄마와 읽는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뜨개질하기/채인선

    찬바람이 쌔앵쌔앵 몰아치는 겨울날이었어요. 손 큰 할머니네 집에는 숲 속의 작은 동물들이 놀러와 있었어요. 너구리와 여우와 다람쥐였어요. “할머니, 추워요. 이불 더 없어요?” “추운데 뭐 하러 왔어? 제 집에서 겨울잠이나 잘 것이지.” “만두 먹어야죠. 만두 때문에 겨울잠 못 자요.” 할머니는 쯧쯧 하며 혀를 차더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가만있거라. 다락에 이불이 더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다락은 어두컴컴했어요. 할머니는 손으로 더듬더듬 이불을 찾다가 커다란 바구니를 발견했습니다. “흠.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이불이나 들었으면 좋으련만.”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에게 할머니는 소리쳤어요. “바구니를 내릴 테니 밑에서 받쳐라. 바구니가 엄청나게 크다.” “예, 할머니!” 바구니를 받쳐 들면서 너구리와 여우가 속닥였어요. “이건 보물단지야. 틀림없이 보물이 들어 있을 거야.” “보물이라면 무거울 텐데, 그렇게 무겁지 않은걸?” 그때 다람쥐가 끼어들었어요. “어쩌면 굶어죽은 도깨비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우리를 다 잡아먹을 거야.” 다람쥐의 말에 너구리와 여우는 “이크!” 하며 손을 놓쳤어요. 그랬더니 데구루루 크고 작은 털실뭉치들이 방안 가득 쏟아졌어요. 예전에 할머니가 젊었을 적에 뜨다 만 것들이었죠. 할머니가 신기해하며 중얼거렸어요. “오호, 이것들이구나! 보물이긴 보물이네.” 너구리가 물었어요. “할머니, 이걸로 뭐할 거예요?” 할머니가 털실을 매만지며 대답했어요. “뜨개질해야지.” 다람쥐가 물었어요. “무엇을 짤 거예요? 제 목도리 짤 거예요?” “글쎄다, 알아맞혀 보렴.”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뜨개질 바늘을 찾아들었어요.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불어댔어요. 쌔앵쌔앵 덜컹덜컹. 바람소리가 무서워 동물들은 할머니 앞에 바싹 다가앉았어요. 손가락에 실을 감더니 할머니가 바늘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단단한 실뭉치 하나가 헤실바실 풀어집니다. 얼마 안 있어 실이 다 풀어지고 실 끄트머리가 보였어요. “얘들아, 어서 실을 이어라. 실이 끊어지면 안 돼.” 할머니가 소리치자 바늘 끝만 쳐다보고 있던 동물들이 물었어요. “왜요?” “계속 떠야 하니까.” “아, 그렇구나.” “서둘러라. 어서 실을 이어.” “예, 할머니.” 손이 빠른 여우가 얼른 실을 이었어요. “바로 또 실을 이어야 하니까 미리 준비해 둬. 실이 끊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예, 할머니.” 갑자기 할 일이 생긴 동물들은 저희들끼리 열띠게 의논을 했어요. “빨간색 다음에 노란색이 좋단 말이야. 노란색 다음에는 파랑색이 좋고…….” “아니야. 이 노란색 대신 밤색이 나아. 밤색 다음에 노란색을 잇자.” 그러다 말싸움을 했어요. “밤색은 똥색이야. 노란색을 먼저 해.” 눈 깜짝할 사이에 실 뭉치를 하나 없앤 할머니가 동물들에게 재촉했어요. “급해, 급해. 어서 다음 것을 이어!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했지!” “예, 할머니!” 동물들은 말싸움을 그만두고 실 뭉치들을 조르르 줄을 세웠어요. 뭉치가 작은 것들은 미리 끝을 이어두었어요. 점심때가 다가왔어요. 뜨개바늘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할머니가 말했어요. “배고프다. 냉장고에서 만두 꺼내 와서 삶아라.” “예, 할머니.” “내 입에다 하나씩 넣어줘.” “예, 할머니.” “물도 줘. 목 마르다.” “예, 할머니.” “아이, 등이 간지럽네. 등 좀 긁어라.” “예, 할머니.” 날이 저물었어요. 할머니가 말했어요. “어둡다. 불 좀 켜라.” “예, 할머니.” “바람 들어온다. 문 좀 잘 닫아라.” “예, 할머니.” “무릎 아프다. 무릎 좀 주물러라.” “예, 할머니.” “화롯불 좀 들쑤셔라. 고구마 다 익었는지 보고.” “예, 할머니.” “고구마 먹고 자라.” “예, 할머니.” 할머니는 뜨개질을 계속 했어요.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그 많던 실 뭉치들이 없어지는 대신 할머니의 뜨갯것이 차츰 넓어졌어요. 하지만 그것이 이불인지 목도리인지는 아무도 몰랐죠. 밤이 지나 다시 아침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을 멈추지 않았어요. 실을 남김없이 다 쓸 생각이었거든요. 그런 다음 푹 쉬려고 더욱 부지런히 바늘을 움직였던 건데 동물들은 그걸 몰랐어요. 동물들은 실이 자꾸 없어지는 걸 보고 초조했어요. 실을 어서 이으라고, 실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짜낸 것이 마을로 실을 구하러 가는 것이었어요. “할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천천히 뜨고 계세요.” “손 큰 할머니라면 엄청 큰 것을 떠야 하는데 실이 모자라면 안 되죠.” “걱정 마세요. 우리가 실을 많이 구해올게요.” 동물들은 이렇게 말하고 마을로 내려갔어요. 할머니는 뜨개질에 열중해서 동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실 구해요. 실. 다락이나 헛간 속에 못 쓰는 실이나 아직 안 쓴 실, 쓰다 만 실이나 나중에 쓰려고 아껴둔 실, 조금씩 보태 주시면 요긴하게 쓰렵니다. 실 구해요. 실. 한 집에 하나씩 주시면 잘 받겠습니다. 실이오, 실. 아무 실이나 다 받아요. 개나리 노란 실, 하늘 파랗다 파란 실, 고추 빨갛다 빨간 실, 깜깜 밤이다 까만 실. 모두모두 주세요. 온갖 실 다 주세요. 망태기를 짊어진 동물들이 마을을 한 바퀴 돌자 사람들이 기특하다며 실 뭉치를 하나씩 던져주었습니다. 순식간에 망태기가 실 뭉치로 가득 찼어요. 으쓱으쓱 신이 난 동물들은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어요.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뜨개질을 막 끝내고 막 쉬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동물들이 마을에 내려가서 실을 구해왔다니! 더구나 이렇게 많은 실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음……. 할 수 없이 더 짜야겠네.” 할머니는 밥을 한꺼번에 많이 지어먹고 뜨개바늘을 다시 집어 들었어요. 그러곤 계속 뜨개질을 했어요. 동물들이 할머니에게 모여들었어요. “할머니, 하품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뒷간에 대신 갔다 올까요?” “그래라.” “양치질은요? 대신 해드릴까요?” “그래라.” “할머니, 뭐를 좀 먹고 싶죠? 만두 삶아올까요?” “그래라.” 너구리가 만두를 삶아와 할머니 입에 넣어 주고는 물었어요. “목 마르죠? 물도 드실래요?” “그래라.”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그래라.” “이리 좀 돌아앉으세요. 등도 긁어드릴게요.” “그래라.” 한 밤이 지나가고 두 밤이 되었어요. 할머니는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동물들은 그 옆에서 쿨쿨 잠을 잤어요.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동물들은 드르렁 코고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어요. 그랬더니 주위에 뜨개질 거리가 말끔히 치워져 있고, 할머니가 팔다리를 쭉 뻗은 채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동물들은 서로 중얼거렸어요. “이제 할머니가 뜨개질을 다 한 건가?” “그렇다면 무엇을 짰지?” “글쎄 말이야. 무언가 다 짜놓았을 텐데.” 영문을 몰라 방안을 살피는데 몸이 슬슬 더워졌어요.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었어요. 동물들이 다시 말을 나누었어요. “왜 이렇게 덥지? 갑자기 한여름이라도 되었나?” “정말 더워 죽겠다. 밖으로 나가자.” “그래그래. 여기 있다가는 만두처럼 삶아지겠어.” 동물들은 할머니가 짜놓은 것을 찾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그러곤 바로 알게 되었죠. 할머니가 무엇을 완성했는지. 그건 바로 스웨터였어요. 왜 방안이 그렇게 더웠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스웨터를 산골집이 입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파랗고 빨갛고 노랗고 푸른 스웨터였어요. 탐스러운 방울도 달려 있고 크고 작은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스웨터였어요. 깨알 같은 꽃도 무더기로 붙어 있는데, 그건 실 한 오라기도 버리지 않고 다 쓰기 위해 만든 것이었어요. “집이 스웨터를 입고 있다니, 정말 웃긴다.” “스웨터가 정말 예쁘다. 개나리 진달래 다 피어 있잖아.” “그런데 정말 크다. 이렇게 큰 스웨터는 처음 보았어. 할머니는 역시 대단해.” 동물들은 손 큰 할머니의 멋진 작품을 앞에 놓고 짝짝짝 박수를 쳤어요. 이제 추워서 덜덜 떨 일은 없겠죠? ●작가의 말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춥고 긴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희망적인 일보다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 원고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설날이면 만두를 엄청 많이 해서 우리의 이웃, 동물과 나누어 먹는 손 큰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씩씩한 마음이 요즘에 더욱 그리워집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춥다고 덜덜 떠는 어린 동물들을 위해 아주아주 큰 스웨터를 만들었답니다. 마음이 추울 때 할머니의 스웨터 입은 초가집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어보면 좋겠습니다. ●약력 ▲1962년 강원도 함백 태생 ▲1985년 성균관대 불어불문과 졸업 ▲1997년 창비주관 제1회 좋은 어린이책 공모상 입상 ▲‘내 짝꿍 최영대’, ‘아름다운 가치 사전’, ‘토끼와 늑대와 호랑이와 담이와’, ‘시카고에 간 김파리’ 등 발표. ▲현재 경기도 용인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가족과 함께 생활.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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