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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가 포커스] 허용석 관세청장의 격식파괴 리더십

    관세청 직원들이 청장의 리더십에 빨려들고 있다. 허용석 관세청장은 근무 시간외 격의없이 직원들과 어울리며 취미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이른바 ‘소통’을 실천하고 있다. 평소 기관장을 대면하기 어려운 하위직 공무원들에겐 또 다른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져 그 느낌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허 청장은 10일 관세국경관리연수원에서 임용 100일 된 새내기 공무원(9급) 79명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신규 직원들에게 조직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는 130년의 관세업무 역사를 소개한 뒤 세계 일등세관 구현을 위한 노력과 자신감을 주문했다. 8일에는 대전청사에서 열린 배드민턴 동호회 월례경기에 선수로 참가했다. 이날 허 청장은 인천세관에서 전국 세관장회의를 주재한 뒤여서 취소할수도 있었지만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초보자임에도 허 청장은 직원들과 어울려 3경기나 소화했다. 지난 4일에는 강원권 세관 직원들과 설악산에 올랐다. 현장을 방문하면 지역 근무자들과 반드시 주변 산을 오른다. 등산은 정오쯤 마무리된다. 오후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하라는 취지다. 영화를 좋아하는 허 청장은 동호회원, 일반 직원들과 함께 영화관도 자주 찾는다. 관람 후 호프타임은 각자가 영화평론가가 된다. 허 청장은 되도록 말을 아끼며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배드민턴 동호회 심모(40·여)씨는 “기관장과 요즘처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적은 없었다.”면서 “땀을 흘리며 성심껏 호흡을 맞추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생겼다.”고 말했다. 정호창 관세청 공무원직장협의회장은 “1년여동안 한결같은 모습에 신뢰가 높아졌다.”면서 “순회·순시 등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울산 장애인 연극 ‘투란도트’

     장애인 출연진으로 구성된 푸치니의 오페라를 각색한 연극 ‘투란도트’가 전국 처음 울산 무대에 오른다.  울산시는 지역 장애인들을 연극 출연진으로 참여시켜 자긍심을 심어 주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17일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장창호 연출로 무대에 올린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연극은 2007년 장애인 연극 ‘미운오리’와 지난해 공연된 장애인 뮤지컬 ‘바위에 새긴 사랑’에 이어 세번째 작품이다.  투란도트는 그동안 장애인들을 초청해 100여편의 작품을 무료로 공연한 ‘동그라미극장’에서 제작을 맡아 지난 2월부터 대본, 스태프 구성 등 준비작업을 마쳤고, 16일 최종 리허설을 거쳐 17일 오후 4시와 7시30분 두 차례 공연된다. 출연진 27명은 시각, 청각, 지체, 지적 장애인 등으로 구성됐다.  출연 배우들은 동료배우들의 몸짓과 대사를 보거나 듣지 못함에 따라 피나는 연습과 특유의 감각을 통해 연극을 만들었다.  울산시 관계자는 “이번 작품은 장애인 배우들의 땀으로 만들어졌다.”면서 “예산이 부족해 울산에서만 공연하지만 장애인들이 매년 다른 장르의 새로운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문의는 울산시 사회복지과(052-229-3442)와 울산장애인총연합회(052-294-1966), 동그라미극장(052-258-1248)에 하면 된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이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무엇일까?” 그 답은 ‘보릿고개’입니다. 보릿고개가 어떤 고개일까요? 이 동화는 보릿고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 오고 꽃 피고 새 울어도 우리네 농군 박 서방은 웃을 줄 모르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저녁 연기 사라지고 찬물 켜고 문 닫아 걸고 초저녁잠만 자네 어히야, 어히야 태산보다 높은 이 보릿고개를 어히 넘어갈꺼나.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새봄이 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올해도 가뭄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한편으로는 양식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 바로 그 배고픔의 긴 고갯길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해, 은행골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그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로 그중 여러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린 농부가 되었습니다. 저마다 몸에 맞는 지게를 하나씩 맞췄습니다. 또래들은 농부가 되어 지게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쇠꼴쯤은 한 짐씩 해 나르던 일이라 스스로 멜빵을 알맞게 줄이고 등받이를 두껍게 받쳐 편안하게 손질까지 해 두었습니다. 어린 농부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겨우내 재워 둔 두엄을 져 나르고 가까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하러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여럿이 함께 갔습니다. 하지만 나무 한 짐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양식보다도 땔감이 먼저 떨어져 가까운 산에는 할 나무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어른들이 데려가 주지 않잖아.” “먼 산에 가면 좋은 솔가리가 무지하게 많다는데.” 또래들은 작은 나뭇짐을 받쳐 놓고 떠들고 있습니다. 먼 산! 그곳은 해마다 봄이 오면 어른 일꾼들이 나무를 하러 가는 산입니다. 가까운 산에는 아무리 뒤져도 솔가리 나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오리도 넘는 백마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나무꾼들은 새벽밥을 먹고 먼 산 나무를 떠납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꽁보리밥에 고추장 반찬을 싼 도시락을 지게뿔에 댕그라니 매달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길었습니다. 집집마다 솔가리 나무라도 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데려가 주지….” 마을 고갯길을 넘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저수지 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집집의 식구들은 저수지 둑까지 배웅을 나갔습니다. 나무꾼들이 가는 먼 백마산 봉우리는 그곳에서도 잘 보였습니다. 아침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백마산의 상상봉은 또래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들이 숨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나무하러 갔다 와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마산이 명산은 명산이지. 물 좋고 나무 흔하고, 오고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문제지 나무 한 짐 하는 건 순식간이지.” 나무꾼들은 매일같이 먼 산을 다녀오면서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떠난 나무꾼들은 석양 무렵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또래들은 저수지 둑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 나무꾼들 중 아버지 아니면 삼촌이나 형이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들은 떠날 때처럼 나란히 행렬을 지어 왔습니다. 닭쌈이나 씨름을 하던 또래들 중 누군가 먼저 본 동무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온다, 저기 온다!” 또래들은 마치 장에 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반기듯 뛰어갑니다. 나무꾼들은 숨이 차 씩씩거리며 둑으로 올라섭니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나무꾼들의 그을린 얼굴이 놀빛 속에서 더 붉게 보였습니다. “쉼세.” 맨 앞의 나무꾼이 소리치자 뒤따르던 나무꾼들이 한쪽 편을 향해 나뭇짐을 받쳤습니다. 노을진 둑에 나뭇짐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휙휙.” 나무꾼들은 휘파람을 불 듯 긴 숨을 토해 냈습니다. 또래들은 제각기 아버지, 삼촌, 형들의 나뭇짐을 찾기에 바쁩니다. “아부지!” 누군가 부르면, “오냐. 별일 없었지?” “야!” 하는 인사가 오고 갑니다. 또래들은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나뭇짐을 살핍니다. 멀고 먼 백마산에서 온 나뭇짐에는 선물이 한 아름 있었습니다. “옛다, 백마산에는 참꽃이 한창이다.” 참꽃으로 부르던 진달래 한아름. 커다란 꽃다발이 나뭇짐에 쿡 박혀 왔습니다. 또래들은 참꽃다발을 받는 순간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먼 산에서 따 온 참꽃은 향기도 달랐습니다. 한 잎 한 잎 따서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것이 맛이 좋았습니다. 저수지 뒤 숲에서 꿩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먼 산 나무도 마지막입니다. 농부들의 발길은 먼 산이 아닌 밭이나 논으로 가야 됩니다. 바로 마지막 먼 산 나무 길에 오르던 날, 은행골의 또래들은 큰 나무꾼들을 따라 백마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군이 되려면 백마산엘 다녀와야지.” 또래들은 새벽부터 법석을 떨었습니다. 낫과 갈퀴를 챙기고, 어머니에게 점심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날의 나무꾼 행렬은 더 길었습니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따라 나와 어린 나무꾼들의 먼 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낸 나뭇길을 앞서 걸으며 웃고 떠들고 신이 났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발걸음도 흥겹게 노랫가락을 뽑았습니다. 백마산이 어디메뇨 새벽 어둠 찬바람에 길 떠나는 나무꾼아 어히야, 어히야 이 다리 다 휜다. 어린 나무꾼들에게 백마산은 정말 벅찬 산이었습니다. 시오리 길이라고 하지만 구불구불 오르막에 가파른 길은 삼십 리도 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또래들은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갔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말로만 듣던 백마산. 어린 나무꾼들은 백마산에 다다르자 ‘아!’ 하는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몇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산 속은 대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컴컴했습니다. 듣던 대로 솔가리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운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모은 다음 단단하게 전을 쳤습니다. 한 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 새 알맞은 나뭇짐이 되었습니다. “자, 점심들 먹세.” 너른 양지쪽에 모여 앉아 점심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리밥에 고추장, 된장 반찬이지만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어른들은 여기저기 양지바위에 누웠습니다. “계절은 왜 이리 좋을꼬. 꽃 피고 새 울고….” 나무꾼들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잠을 청했습니다. 어디선가 꿈결인 듯 깊은 산울림이 울려오고, 새들은 제 세상인 듯 재잘재잘 지저귀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계곡은 온통 참꽃밭이었습니다. 마치 불을 싸지른 듯이 붉디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또래들은 어질어질 꽃향기에 취하도록 뒹굴며 놀았습니다. 이윽고 한숨씩 자고 난 나무꾼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지름길로 처음부터 가팔랐습니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눈과 입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나뭇짐 행렬은 점점 더뎌지고, 어린 나무꾼들의 나뭇짐에 찔러진 참꽃다발은 흐트러졌습니다. 쉬는 참이 몇 번이나 거듭되었습니다. 이제 지름길 중 가장 험한 고갯길을 넘으면 내리막길입니다. 좁은 길 한쪽은 깊은 낭떠러지였습니다. “힘들 내!” 중간 중간에서 어른 나무꾼들이 소리쳤습니다. “이 고개만 넘으면 힘든 길은 다 왔다.” 어린 나무꾼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먼 산 나무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눈은 쓰리고, 입안은 짜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깻죽지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읍내 장날입니다. 오늘 한 솔가리 나무는 모두들 내일 장에 나가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주 쉬면 나뭇짐이 흐트러져 모양이 나빠집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먼 산 나무를 다녀오는 것이 진짜 농사꾼이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른들은 근심 띤 얼굴에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닥쳐온 보릿고개 때문입니다. 어린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은 아버지, 어머니의 그 근심 어린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들은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모두 쉬었다 가세.” 길잡이가 쉴 곳을 정하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엇, 조심해!” 누군가 급하게 소리치는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어린 나무꾼이 벼랑 쪽에 나뭇짐을 받치다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어린 나무꾼은 나뭇짐과 함께 훌떡훌떡 재주를 넘듯 굴러 떨어졌습니다. “쟤 태수 아냐. 태수야, 태수야!” 나무꾼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치며 아래로 내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태수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무꾼 태수는 그 고갯길 양지쪽에 고이 묻혔습니다. 그 후, 봄이 되면 그곳을 지나는 나무꾼들은 어린 나무꾼의 일을 되새기며 참꽃 꽃다발을 놓아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태수의 조그만 묘지는 나무꾼들이 편히 쉬어 가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되면, 아버지는 그 시절의 어린 나무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보릿고개가 얼마나 높았는지 마음 속으로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 ‘보릿고개’는 지난날,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시골 농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4~5월)를 이르던 말이지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정말 가난하였습니다. 누구나 농가의 생산자가 되어 땀흘려 일하고 아꼈으며, 또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무엇이든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성경의 말씀처럼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라는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할아버지들의 옛 삶에서 살아가는 정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약력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화 ‘엄마 열목어’가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펴낸 책으로 ‘꽃이 꾸는 나비꿈’, ‘눈물꽃’, ‘북치는 소년’, ‘옛날에 울아부지가’, ‘아리랑’, ‘도깨비 아부지’, ‘별이 된 오쟁이’ 외 여러 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 “한국 우정 성공요인은 상생의 노사관계”

    “한국 우정 성공요인은 상생의 노사관계”

    “전국의 집배원들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정경원 우정사업본부장이 10일 퇴임식을 갖고 공직생활 27년을 마무리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우정(郵征)은 물이나 공기와 같은 존재”라면서 “평상시엔 고마움을 모르지만, 우정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면서 마지막 떠나는 날까지 끈끈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 본부장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우편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오히려 정보기술(IT)로 위기를 극복했다. 전통적인 우편업무에 첨단 IT를 접목해 위축된 우편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수익성도 개선했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우정’을 실현했다. 이는 국내 기업과 학계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실제로 한국 우편물류시스템을 카자흐스탄으로 수출해 다음달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는 “한 통의 편지와 한 꾸러미의 소포를 정성껏 배달하기 위해 노력한 집배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11년 연속 흑자 경영을 이룬 것은 직원 모두의 땀과 눈물 덕분”이라고 했다. 또 “외부에서 한국 우정의 성공 요인을 물을 땐 서슴지 않고 상생하는 노사관계라고 답했다.”면서 “조합원이면서 우체국 직원인 여러분이 한국 우정 발전의 주역”이라고 격려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프로야구] ‘쾅 쾅 쾅’ 페타지니 9회말 끝내기 만루포

    9회 말 점수는 5-4. 두산이 10일 잠실 LG전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앞서고 있는 상황. 1사 주자 만루에서 타석에 이날 연타석 대포를 쏘아 올린 LG 로베르토 페타지니(38)가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9회 마운드에 오른 이용찬. 페타지니는 이용찬의 네 번째 직구(146㎞)가 가운데 다소 높게 쏠리자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130m를 쭉쭉 뻗어 나가 우중간 상단에 떨어졌다. 올 시즌 첫 3연타석 홈런이자 프로야구 통산 세 번째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진기록이 작성되는 순간이었다.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은 1995년 삼성 이동수가 대구에서 한화 구대성을 상대로 첫 기록(7-6승)을 세웠고, 이후 2002년 롯데 김응국이 사직에서 삼성 김진웅을 상대로 두 번째 기록(6-5승)을 작성했다. 라이벌 간의 맞대결답게 손에 땀을 흘리게 하는 명승부였다. 포문은 두산이 먼저 열었다. 임재철이 무사 1루에서 상대 선발투수 정재복의 높은 직구를 받아쳐 왼쪽 펜스를 살짝 넘기는 2점포를 날렸다. 4회 손시헌의 희생타로 추가 득점한 두산은 6회 김현수와 최준석의 솔로포가 연달아 터지면서 손쉽게 승리를 낚는 듯했다. LG의 뒷심은 경기 후반 빛났다. 6회 말 선두 타자 페타지니가 상대 투수 정재훈의 실투를 가운데 펜스 너머로 날려보낸 데 이어 계속된 2사 1루에서 조인성이 바뀐 투수 이재우를 상대로 2점포를 폭발시켰다. 8회에는 페타지니가 연타석 솔로포로 1점차까지 추격했고, 4-5로 뒤진 9회 1사 만루에서 다시 타석을 맞은 페타지니는 대형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8-5,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페타지니는 3연타석 홈런으로 6타점 3득점을 쓸어 담았다. 이날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홈런(7개) 기록도 작성됐다. 대전에서는 류현진이 7과3분의1이닝 동안 삼진 8개를 곁들이며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롯데에 8-3으로 승리했다. 광주에서는 삼성이 KIA를 5-2로 꺾고 3연패 끝에 귀중한 1승을 올렸다. 목동에서는 SK 고효준이 11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위력투를 선보이며 히어로즈에 16-4로 낙승을 거뒀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평화 찾지 못한 줌머족 고통에 관심을…”

    “평화 찾지 못한 줌머족 고통에 관심을…”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수벌 모니 탄창갸는 아직도 어릴 적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족들이 땀흘려 일구던 텃밭이 화염에 휩싸였던 것, 이웃 아저씨가 방글라데시 군인들에게 맞아 피를 뿜고 죽어 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현실은 소년을 투사로 만들었다. 그러나 탄압은 더더욱 거세졌다. 탄창갸는 인도와 태국을 거쳐 26세 되던 해인 2007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과학자를 꿈꾸던 그의 인생이 풍비박산 난 건 순전히 그가 방글라데시 소수 민족인 줌머(Jumma)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12일 ‘보이사비 축제’ 준비 한창 탄창갸는 오는 12일 김포 양촌 다목적체육관 무대에 선다. 한국으로 치면 설날에 해당하는 ‘보이사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모여 사는 줌머인 50여명은 2002년부터 매년 4월12일이면 전통 춤과 노래를 부르며 타지에서 사는 설움을 달랜다.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재한 줌머인들을 9일 김포에서 만났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동남부에 위치한 치타공 산악지역에서 사는 소수민족이다. 인도의 지배를 받을 때는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1947년 파키스탄으로 지배권이 넘어가면서 경작지가 수력발전소 건설로 수몰되고 인구의 40%가 인도로 강제이주됐다. 1971년 방글라데시 치하에 놓였지만 자치권은 요원했다. 약탈과 강간이 난무하고 있다. 줌머인 가운데 처음으로 1994년 한국으로 망명한 산티지반 차크마(41)는 망명한 지 10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차크마는 운 좋게 난민이 된 재한 줌머인 18명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 아니라는 것 외에 다른 점은 없다. 김포의 작은 자동차 납품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2001년 만난 아내와 살고 있다. 차크마는 “망명 올 때 한국이 군부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독립운동의 경험 등 줌머인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 한국으로 오게 됐다.”면서 “한국에선 안전을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외국인 아닌가.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 어린이에 매년 200만원씩 보내 차크마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공장,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줌머인들은 마음속에서 고향을 놓지 못한다. 재한 줌머인들은 2년 전부터 매년 200만원씩 돈을 거둬 고향의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낸다. 지난해 겨울엔 이불과 옷가지도 보냈다. 로넬 차크마 나니 재한 줌머인연대 사무국장은 “아직도 평화를 찾지 못한 고향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국인들도 줌머족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글ㆍ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영하 50도·지상 100m 일터의 항만하역사

    많은 부분이 기계화·자동화됐지만 여전히 항만하역시스템에서는 하역사들의 땀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으면 국내의 물류 시스템이 마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번 주 EBS ‘극한직업’은 8일부터 이틀에 걸쳐 물류의 최전선인 항구에서 땀 흘리고 있는 항만하역사들의 작업현장을 찾아간다. 항만하역사들은 영하 50도의 추위는 물론이고, 지상 100m의 아찔한 높이의 작업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8일 오후 10시40분에 방송하는 1부에서는 냉동참치 하역을 위해 냉동창고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밀착취재했다. 영하 50도의 냉동창고에서 하역사들은 강추위를 견디며 1시간이 넘게 일을 한다. 문제는 추위뿐만이 아니다. 급랭된 참치들은 쇠보다도 단단하다. 작업장에는 크레인이 끌어올린 참치들이 종종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한다. 100㎏이 넘는 참치가 떨어지는 위험한 순간을 견뎌가며 하역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지칠 줄 모르고 일을 한다. 9일 방송하는 2부는 항만물류에 빼놓을 수 없는 큰 일꾼, 크레인 운전사와 도선사의 노동현장을 소개한다. 크레인 조종사들은 45m 허공에 앉아 수십, 수백t의 컨테이너들을 나른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아찔한 고공에서 이들은 누구보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손톱만하게 보이는 컨테이너들을 옮긴다. ‘항구의 파일럿’ 도선사들도 모습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항만을 출입하는 배는 안전한 수로로 배를 유도하는 도선사가 반드시 올라 타야만 항구로 들어올 수 있다. 이들의 일은 쉬운 듯 보여도 곳곳에 위험한 요소들이 잠복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한달음에 달리면 우이령 속살 놓쳐요”

    “한달음에 달리면 우이령 속살 놓쳐요”

    25일 강북구 우이동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4회 ‘4·19기념 삼각산우이령마라톤대회’의 참가신청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신문과 강북구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는 6일까지 모두 2338명이 참가신청을 마쳤다. 대회가 개최되는 우이령길은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인 1968년 1·21사태 직후 폐쇄돼 베일에 가려져 왔다. 2006년부터 이맘때 마라톤 대회 개최와 함께 잠깐씩 속살을 드러냈다. 우이령길은 올 7월, 41년 만에 전면 개방된다. 마라톤 대회 참가는 개방으로 인한 손때가 묻기 이전의 우이령 자연을 만끽하는 마지막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참가신청은 10일까지 대회 홈페이지(www.gangbukmarathon.com)에서 받는다. ●6㎞부터 오르막길 시작 우이령마라톤의 최장 코스인 하프코스는 21.0975㎞에 달한다. 덕성여대 운동장에서 출발해 우이령까지 돌아오는 코스로 12㎞ 인근 반환점 이후 같은 길이 반복된다. 우선 덕성여대 운동장에서 출발하면 초반 4㎞까지 완만한 평지가 이어진다. 가로사거리~삼각산 문화예술회관~4·19묘지를 도는 일종의 몸달구기 구간이다. 모든 달리기가 마찬가지이지만 우이령마라톤코스도 초반부터 힘들여 레이스를 펼치면 곧바로 균형을 잃을 수 있다. 본격적인 오르막은 6㎞ 지점. 교통광장 이후 펼쳐진다. 완만한 경사길을 2㎞ 가까이 뛰다 보면 급경사를 만난다. 이때는 경쾌하게 손을 앞뒤로 흔들어 줘야 한다. 보폭도 좁히고 조금 속력을 올리는 요령이 필요하다. 7.5㎞ 구간을 지나면 전투경찰대가 나오고 이때부터 우이령의 속살이 조금씩 드러난다. ●9㎞ 유격장 부근 비경이 백미 8㎞ 이후 마지막 오르막은 초보자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9㎞ 부근 우이령 정상 아래로는 시원스러운 내리막이다. 9.8㎞ 군사 유격장 근처에는 도봉산의 비경이 버티고 있다. 다섯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위용을 자랑하는 ‘오봉’. 멋들어진 모습 바로 옆 인공호수에선 쪽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우이령길 정상 너머는 산림이 울창하다. 대회 관계자들은 대회 보름 전부터 이틀에 한 번씩 하루 30여분간 가벼운 조깅을 할 것을 권한다. 대회 당일에도 운영자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강북구에 따르면 6일까지 참가신청자는 2338명에 이른다. 막판 신청자가 몰리는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의 2909명을 넘길 수도 있다. 참가 신청자 가운데 남자는 1702명, 여자는 636명이다. 단체 참가자가 138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지역별로는 서울시가 1929명, 경기 330명, 인천 27명, 전남 13명, 강원 9명, 충남 8명 등의 순이다. 경북, 충북, 전북 등 참가자들은 전국에 걸쳐 있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마라톤은 우리에게 땀흘리는 즐거움을 선물한다.”면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삼각산 우이령의 자연을 만끽하며 소중한 경험을 해 보라.”고 조언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베이비파우더서 석면 나오도록 뭘했나

    사랑스러운 아기의 목과 엉덩이가 땀에 짓무르지 않도록 엄마가 정성껏 발라주는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엄마와 아기가 석면먼지를 마시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끔찍한 일이다. 석면은 흡입하면 폐에 비늘처럼 박혀 빠져나가지 않는다. 석면폐, 중피종, 악성종양, 폐암 등을 유발한다. 잠복기가 최소 10년에서 최대 40년이다. 어떤 전문가는 “석면먼지를 마시게 되면 일단 암에 걸릴 가능성을 안게 된다.”고 말할 정도다.식품의약품안전청이 그제 시판 중인 베이비파우더와 그 원료인 탈크 등 30개 품목을 검사한 결과 12개 품목에서 석면이 무더기로 검출됐다. 수입제품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유럽은 2005년, 미국은 2006년에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탈크의 기준과 규격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식약청이 이 같은 해외동향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검출여부만 확인했을 뿐 함유량은 조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흡입량이 적어 유해성은 없을 것이라는 딱한 반응을 보였다.‘눈뜬장님’ 식약청이 부랴부랴 문제 제품의 판매중지와 회수명령을 내리고, 탈크의 규격기준을 만들어 시행키로 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멜라민 파동’의 재판이다. 무사안일과 늑장대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젠 무지하기까지 하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식약청의 존재 이유가 의심스럽다. 부실 관리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리고 ‘국민건강을 해치는’ 식약청 조직을 대수술하라. 이대로는 안 된다.
  • 5선발 찬호·5번 승엽 영웅의 봄이 다시 왔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 C)의 태극마크를 고사하며 소속팀 스프링캠프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던 박찬호, 이승엽 등 해외 스타들이 일제히 ‘부활의 노래’를 합창, 올시즌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WBC 한방 추신수 활약 기대 한물 간 것으로 여겨졌던 베테랑 박찬호(36)가 꿈에 그리던 선발 투수로 거듭났다. 1일 필라델피아의 루벤 아마로 주니어 단장은 박찬호가 경쟁자 JA 햅을 제치고 필라델피아 제5선발 자리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문한 이후 16년 동안 무려 7개 구단 유니폼을 갈아 입으며 부침을 거듭하다 빅리그 선발 투수로 다시 우뚝 선 것. 이로써 박찬호는 자신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을 시작할 전기를 맞게 됐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한 아시아인 통산 최다승(123승)을 깨는 것. 박찬호의 승수는 통산 117승(92패). 기록 경신까지는 7승을 남겨 뒀다. 예정대로 선발 로테이션에 들 경우 30경기 정도 등판할 수 있어 기록 경신 가능성은 높다. 박찬호는 오는 13일 콜로라도와의 원정경기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WBC에서 이름값을 해낸 추신수(27)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이상적인 3번 타자”로 평가받을 만큼 올 시즌 활약이 기대된다. 지난해 타율 .309, 14홈런, 66타점의 맹타를 휘둘러 일찌감치 올 시즌 주전 우익수 자리를 예약했다. WBC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에서 통렬한 3점포로 타격감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다. 한편 샌디에이고 3선발 백차승은 오른팔 부상 탓에 시즌 초반 등판이 어렵게 됐다. 샌디에이고에서 뛰던 류제국은 클리블랜드로 이적해 추신수와 한솥밥을 먹게 됐지만 당분간 2군 경기에 나선다. 메이저리그는 5일 개막한다. ●임창용 세이브왕 목표 “(지난해 2군) 그 시절을 기억하겠다.”며 이를 악물었던 이승엽(33·요미우리)도 최근 하라 다쓰노리 감독으로부터 3일 히로시마와 개막 3연전에서 5번타자 선발 출장을 낙점받았다. 지난해 최악의 부진으로 100여일간 2군에 머무르기도 했던 그는 올 시범경기에서 타율 .302, 8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시범경기 홈런 8개는 하라 감독이 현역시절 세운 시범경기 팀 최다홈런과 타이. 무엇보다 지난 시즌 부진의 원인이었던 왼손 엄지 통증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백스윙을 간결하게 줄인 새 타격자세에도 적응을 마쳤다. 고질적인 변화구 대처 능력이 한결 향상됐다는 평가다. 시범경기에서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2003년 아시아 홈런 기록(56개)을 세웠던 것에 버금가는 전성기를 구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33세이브(1승5패)로 화려하게 일본 무대에 데뷔한 임창용(32·야쿠르트)은 올 시즌 40세이브 이상과 세이브왕 등극이 목표다. ‘뱀직구’라고 불리는 150㎞ 안팎의 강속구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싱커가 위력을 더해 목표 달성이 무리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범경기에서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졌던 이병규(주니치)는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2군에서 시즌을 맞게 됐다. 두산에서 야쿠르트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이혜천도 오른쪽 늑골 연골 좌상으로 당분간 2군에서 재활해야 할 처지다. 이르면 이달 말쯤 1군에 합류할 전망. 일본 프로야구는 3일 개막한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윤수일, 하루 3시간씩 ‘미쳤어’ 안무연습

    윤수일, 하루 3시간씩 ‘미쳤어’ 안무연습

    가수 윤수일이 하루 3시간씩 손담비 노래 ‘미쳤어’안무를 연습하며 땀을 쏟고 있다. 데뷔 33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청춘일기’를 준비하고 있는 윤수일은 보다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윤수일을 콘서트에서 손담비 노래 ‘미쳤어’의 안무를 똑같이 선보이겠다는 계획으로 당시 ‘미쳤어’의 안무를 담당했던 댄스팀에게 직접 지도를 받고 있다. 윤수일은 “예전 ‘황홀한 고백’에서 선보였던 목꺾기 춤보다 ‘의자춤’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특히 긴 다리를 일자로 들어 올릴 때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애로사항을 전했다. 이어 “관객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전에 ‘의자춤’을 선보였던 신봉선 등 수많은 후배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윤수일은 이번 전국투어에서 ‘의자춤’외에도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윤수일의 히트곡 ‘아파트’부터 최근 발표한 ‘숲바다섬마을’, ‘터미널’ 등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윤수일 소속사 관계자는 “윤수일 밴드만의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와 춤까지 가미해 기존의 콘서트를 탈피한 흥미있고 볼거리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다양한 장르의 콘서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는 25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전국투어 콘서트 ‘청춘일기’의 막을 올릴 윤수일은 공연 수익금 일부를 다문화 가정과 소외된 혼혈 아동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다. (사진제공 = 라코리아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로농구] 전자랜드 놀라운 뒷심

    피, 땀으로 범벅된 백병전. 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3차전이 그랬다. ‘국보급센터’ 서장훈(전자랜드)과 ‘하킬’ 하승진(KCC)은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경기 시작 3분여 만에 서장훈은 바닥에 나뒹굴었고 하승진은 뒷목을 감쌌다. 서로 노려봤다. 일촉즉발. 심판은 두 선수에게 테크니컬파울을 지적했다. 3쿼터 초 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쿼터 시작 2분여 만에 KCC 임재현이 도널드 리틀의 팔에 맞고 쓰러진 것. 임재현의 오른 눈밑은 부어 올랐다.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자 KCC 김광 코치가 코트에 난입해 항의했다. 이미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던 김 코치는 퇴장. 신명호도 코뼈가 부러졌고 이중원도 코피를 쏟은 터. 주위의 만류로 가까스로 경기는 지속됐다. 달아오른 열기 만큼 두 거인도 분발했다. 3쿼터에만 서장훈이 11점, 하승진(22점 7리바운드)이 10점을 몰아쳤다. 정병국까지 10점을 보탠 덕에 전자랜드가 66-64로 역전시킨 채 쿼터를 끝냈다. 4쿼터는 시소게임. 하승진의 골밑슛 등으로 KCC가 연속 7득점, 경기종료 4분20초를 남기고 78-74로 달아났다. 그러나 전자랜드의 뒷심은 놀라웠다. 김성철(5점)의 3점포로 따라붙은 뒤 리카르도 포웰(23점)이 거푸 페너트레이션을 성공시켜 종료 40초를 남기고 83-80으로 뒤집었다. 하승진의 자유투로 1점을 따라붙은 KCC도 22초를 남기고 공격권을 쥐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브랜드가 던진 슛은 림을 외면했고, 김성철이 리바운드를 낚았다. 순간 서장훈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좀처럼 세리머니를 하지 않던 그였지만, 체육관을 찾아 목청껏 응원을 한 예비신부 오정연 아나운서를 의식한 듯 했다. 결국 전자랜드가 6강 PO 3차전에서 83-81,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토종트리오’ 서장훈(14점)-정병국(18점)-황성인(12점)이 44점을 합작해 승리를 이끌었다. 1패 뒤 2연승을 거둔 전자랜드는 1승만 보태면 5년 만에 PO 2회전(4강)에 오른다. 4차전은 3일 오후 7시 같은 곳에서 열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참 자랑스런 선수들 앞으로 더 좋아질 것”

    지옥에서 막 탈출한 듯했다. 1일 북한전에서 1-0, 승리를 챙긴 허정무 감독은 기자회견 내내 땀을 흘렸고 연신 물을 들이켰다. 허 감독의 얼굴에선 승리의 기쁨과 함께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허 감독은 “본선진출의 중요한 고비였는데 선수들이 잘 해줬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서둘지 않았던 게 승리의 요인이다. 선수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 선수들이 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반 수비에 막혀 어려웠는데. -북한 수비가 워낙 밀집해 잘 나오지 않아서 끈질기게 해서 골을 노리자고 했다. 공을 가지고 지체하는 시간이 길어 불만족스러웠지만 대체적으로 잘 풀어 갔다. →이근호 대신 김치우를 넣었는데, 공격수를 안 넣고 김치우를 넣은 까닭은. -김치우를 넣으며 박지성 앞으로 전진시켰다. 지난 4번의 경기에서 장신 선수를 넣어 효과를 못봤다. 세트피스나 밀집수비 속에서는 기술이 있는 선수가 유리하기 때문에 김치우를 택했다. →북한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려운 1골차 경기가 될 거라 예상했다. 북한은 처음 경기할 때보다 점점 좋아진다고 느꼈고 앞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반 활발하지 못 했는데. -북한은 전체가 수비를 하다가 뺏어서 바로 정대세에게 연결하는 공격루트를 쓴다. 정대세를 비롯, 2선에서 빠져 들어가서 찬스를 노리는 게 상대의 주 공격방법인데 거기에 말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전술은 어느 팀이든지 까다롭다. 초반에 골이 안 터질 경우에는 위험부담이 상당히 많아진다. →최근 경기 경험이 없는 이근호를 선발로 내보냈는데. -상당히 능력 있는 선수다. 골은 못 넣었지만 위치선정이나 공간을 파고 드는 게 뛰어나다. 오늘도 완전한 찬스를 2~3차례 만들었다. 스트라이커로 우리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본선 진출에 어느 정도 다가섰나. -한 경기 덜한 상태에서 1위로 올랐다. 6월6일 UAE와 원정경기에서 결판나지 않을까 본다. 유리한 상황이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생활 속 행복 찾기] 실직 후에 찾아온 행복

    [생활 속 행복 찾기] 실직 후에 찾아온 행복

    2008년 6월 다니던 출판사를 퇴직했다. 아내는 지금 같은 불경기에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고 계속 만류를 했지만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다. 나이가 50이 되면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여기저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를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몇 달 전부터는 이빨이 아파서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유 없이 발이 부어올라 신발을 신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질병 때문이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나 자신을 찾는 것.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남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 얼마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인가 하는 것을 처절하게 느낄 뿐이었다. 회사를 나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앞길이 막연했지만 더 이상 늦출 수도 없었다. 퇴직할 때의 마음은 딱 한 가지. 내 행복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별명은 투덜이스머프였다. 별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눈이 정확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정말 투덜이스머프였다. 일거리는 많으면서 월급은 조금 준다고 사장에게 투덜거렸고, 알아서 척척 일처리하지 못한다고 직원들에게 투덜거렸다. 집에서는 해주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투덜거렸으며 아들이 하는 일도 못마땅해 투덜거렸다. 나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할 수는 없었다. 직장을 그만 둔후 나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를 투덜거리게 한 모든 요소들을 극복하기로 한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경제적인 문제. 처음 얼마 동안은 퇴직금과 실업수당으로 버티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안 가 바닥이 났다. 아내가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나 부탁하기도 했지만 쉽게 일거리가 생기지 않았다. 그즈음 108배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108배를 채웠지만 하면 할수록 어떤 묘미가 있었다. 피곤한 날도,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도 108배를 하고 잤다. 108배를 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108배를 할 때 소원을 빈다. 몇 달 지나자 명확하지 않았던 목표도 분명해지고 일거리도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이 생기면서 아내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아파트 관리비와 월세, 차량유지비, 보험료, 반찬값 등을 내가 내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건강.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취한 방법은 쑥뜸을 뜨는 것이었다. 요양을 겸해서 찾아간 경남 함양에서 쑥뜸으로 유방암을 치유한 사람을 만났다. 내 건강상태를 말했더니 쑥뜸을 떠보라고 했다. 별 의심없이 쑥뜸을 했더니 다음날부터 바로 반응이 있었다. 부었던 발이 가라앉고 숙변이 설사로 빠지기 시작했다. 설사는 석 달여 동안 지속되었는데 가을에 다시 쑥뜸을 시작하자 바로 멈추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즈음 15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조그마한 동산 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곳은 도심지 길가에 있어서 늘 차 소리가 들리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는데 새로 이사한 곳은 공기가 좋고 집 뒤에 산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밤에 잠이 잘 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이사를 하고 건강이 회복되자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꽃들을 들여놓자 집이 환해졌다. 수족관에 가서 열대어 몇 마리도 사들였다. 부모님 댁에서 난 화분 두 개도 가지고 왔다. 전에는 화초를 가꾸지 못해서 얼마 안 가 죽어버리던 것이 이제는 겨울에도 싱싱하다. 추운 날을 피해 물을 조금 데워 물을 주는 등 정성을 다한 결과였다. 열대어는 몇 마리 죽긴 했지만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FM 라디오를 산 것도 기쁨을 주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TV를 켰는데 잠결에 들리는 소리가 유쾌하지 못한 뉴스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하루의 기분이 엉망이었다. 이젠 TV 대신 라디오에서 들려나오는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식구들을 위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니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이 50에 행복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글 공윤복 자유기고가
  •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말 없음의 시’라고 할까. 침묵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깨달음의 시’라고 해야 할까. 한국 여성 시단의 최고 원로인 김남조(82)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묵시(默詩)’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월 깊어져 지금은 침묵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할 말들이 그치진 아니합니다.” 60년 가까이 시업(詩業)을 이어온 이 노성한 시인에게 아직도 시로써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제 시인은 하고 싶은 말들을 침묵, 아니 그 이상의 언어로 전하려 한다. 서울 효창동 비탈의 하얀 단독. 창밖 백목련 그림자가 우련히 비쳐 드는 2층 응접실에서 만난 시인은 예의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 이후 지금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내며 불굴의 시혼(詩魂)을 살라온 천생 시인. 얼마 전에는 한지에 요즘 보기 드문 납활자를 사용한 수제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시는 땀과 눈물의 수제품”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이처럼 공력이 든 활판시집이 더없이 맞춤해 보인다. 시집에는 그동안 써온 1000여편의 시 중에서 가려 뽑은 100편의 작품이 실렸다. “무릇 좋은 시란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해요. 시의 하늘은 종국에는 그런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최근 젊은 시를 호명하는 용어로 굳어진 ‘미래파’ 시에 대해서는 사뭇 마뜩잖은 표정이다. “‘형의 두개골을 파먹고… ’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게 이른바 미래파라는 건데, 요즘 시가 점점 기괴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불온한 서정의 섬뜩한 시가 아닌 순연한 정조(情調)의 따뜻한 시를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시는 영혼 혹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영혼이란 육체와 따로 노는 영혼이 아니다. 늘 육체와 함께하는 영혼, 육체를 입은 영혼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사변적일지언정 공허하지 않다. 좀처럼 관념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유정함, 종교적인 경건함, 만유에 대한 감사, 세상과의 화해·용서의 마음”이 생생한 시어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참담한 영혼의 고통을 맛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다. ●자신의 시대 업신여기는 건 모순 시인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한국전쟁의 참화도 몸소 겪었다. 처녀 시집 ‘목숨’은 그 전쟁의 와중에 탄생했다. 표제시 ‘목숨’에는 시인의 고단했던 삶의 한 자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산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중략)반만 년 유구한 세월에/가슴 틀어박고/매아미처럼 목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이 모두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罰族)이더라도/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그래도 죽지만 않는/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름겨운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참혹한 상황, 시인은 오죽하면 ‘벌족’이라는 말을 썼을까. “지금 우리 삶이 힘들지만 식민지 시절보다 슬프고 6·25때보다 더 가혹하겠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대를 업신여기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자기부정이에요. 인생의 수틀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색상과 잘못 기워진 자국도 남지만 그것까지 포함해 산다는 건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니 보수니 좌(左)니 우(右)니 하며 분열을 앓고 있다. 상생의 길은 없을까. “어린 아이들이 빨갛고 파란 예쁜 자동차를 보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돌을 던지게 만드는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문학 쪽도 마찬가지예요. 이수익·신달자 같은 괜찮은 시인도 성향이 어떠어떠하다고 한국 대표시인 목록에서 빼고 그랬지요. 편 가르고 증오하는 마음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야 합니다.” 시인에게 사랑의 대상은 무궁하다. 사랑의 총량 또한 무한하다. “떫은 사랑일 땐/준 걸 자랑했으나/익은 사랑에선/눈멀어도 못다 갚을/송구함뿐이구나”(‘사랑초서’ 53)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더욱 넉넉한 사랑이 필요한 때다.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 밖엔 길이 없음’을 설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진리는 지극히 평범한 데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男)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일까. 시인의 시에는 굳이 ‘페미니즘적’이랄 게 없다. 스스로도 페미니즘 운동엔 별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 또한 사랑의 프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여성적인 여성은 인간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남성적인 남성 역시 인간적인 남성이고요. 양쪽 모두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겠어요. 여성이 여성이기에 받는 사랑의 몫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퍽이나 선명한 논리다. ●부권 상실 풍조에 아쉬움 시인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지적해온 부권(父權)상실 풍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TV 드라마에서도 여걸형 가모장(家母長)이 뜨는 시대.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부권의 역조현상이 점점 가속화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혀 줘야 합니다. 뒷방에 내앉거나 머슴이나 문지기의 자리에 있어선 안 되지요. ‘기눌림’을 풀어줘야 해요. 남자에게는 큰 틀을 세우는 능력이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요즘 시류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남 탓 하지 말고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의 원로의 충고로는 충분한 값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원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지금 헨리 키신저(86) 전 국무장관 등 7080세대 원로그룹이 정부 대외정책의 ‘선봉’에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우리에게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원로회의가 생겼다. 김 시인은 공동 의장을 맡았다. 어떤 형태의 세속정치와도 절연된 삶을 살아왔기에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말에서는 한층 진정성이 느껴진다. “38년간 대학에 있으면서 어떤 보직도 맡지 않았어요. 내 문학에 상처를 줄까봐서였지요. 지난 독재정권 시절엔 전국구 의원을 하라고 찾아온 이에게 ‘날 빼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며 통사정해 돌려보낸 적도 있어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심정입니다. 식민지 시절을 생각하면 나라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인데, 정치도 국민 노릇도 너무 미숙하기만 하니….” ●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라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시가 그의 후기작에 속하는 ‘좌우명’이다.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답기를,/능금 익히듯 사람들 마음에 공들이고/충직한 농부에서 모범을 취하여라/백지를 능가하는 글을 쓰고/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말하여라/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를 동일하게 경애하며/다수의 복지를 섬기는 이에게/앞자리를 대접하고 아울러 그 줄에 서거라/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며/행복에 앞서 가치를 생각해라…” 삶의 잠언, 나아가 우리 사회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국민교육헌장’ 같은 시다. 김 시인은 그의 애제자인 신달자 시인이 첫 시집을 냈을 때 ‘봉헌문자’라는 제목을 지어 줬다. ‘평생 문자를 받들며 살라.’는 뜻이다. 봉헌문자는 결국 그의 명제가 됐다. “시를 쓰는 건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지만 그 측은한 길동무와 언제까지 함께하리라.”고 지금도 다짐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7년 만해대상 수상 시집 ‘귀중한 오늘’ 출간 이후 80줄이 넘어 새로 쓴 시만 30여편. 60편쯤 모이면 내년에는 열일곱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문학은 내게 병이면서 치유”라고 말하는 노시인. 그의 바람은 시의 언어가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어 미움으로 얼룩진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시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뜨거운 기도의 문을 연다. 글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숙명여대 교수(1955∼93년), 한국시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의 회장 역임 ▲예술원상, 영랑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은관문화훈장 받음 ▲저서:‘목숨’ ‘나아드의 향유’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 ‘바람 세례’ ‘마음 안의 마음’ 등 16권의 시집과 ‘잠시 그리고 영원히’ ‘먼 데서 오는 새벽’ 등 12권의 수필집 등 다수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 [WBC 위대한 준우승] 日우승 원동력은 철벽마운드+두꺼운 선수층

    일본이 2006년에 이어 2회 연속 WBC를 제패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이번 대회에 참가한 16개국을 통틀어 투·타에서 가장 균형 잡힌 전력을 갖춘 덕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전반적인 분석이다. 결승까지 9경기를 치르는 동안 일본의 팀 평균 방어율은 1.71에 불과했다. 일본보다 낮은 나라는 예선 탈락한 도미니카공화국(0.31)뿐이다.메이저리그에서 3년째 정상급 선발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를 비롯해 일본 프로야구 3관왕인 이와쿠마 히사시(라쿠텐), 다르비슈 유(니혼햄) 등이 버틴 마운드는 철벽이었다.마운드에 비해 무게감은 덜 했지만, 공격력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의 팀 타율은 .299로 전체 5위에 머물렀지만, 4강 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공포의 핵타선’ 미국(.296)이나 한국(.243)보다 타격이 활발했다. 결국 일본의 우승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충격에 빠졌던 일본은 이번 대회를 위해 스즈키 이치로, 조지마 겐지(이상 시애틀) 등 총 16명의 메이저리거들을 불러 모았다.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등 모래알이나 다름없었던 중남미 등의 국가와는 달리 ‘애국심’과 ‘승부 근성’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었다.이런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일본 야구의 저변이 그만큼 넓다는 방증이다. 프로야구 역사가 70년이 넘는 일본에는 4000개가 넘는 고교 야구팀에서 많은 선수가 땀을 흘리고 있다. 고작 50여개에 불과한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주말마다 학교별 대항전이 끊임없이 열리고 야구를 ‘국기’로 생각할 만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즐기는 풍토 속에서 배출된 선수들이 일본을 세계 야구 정상에 올려놓은 것이다.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9회말 동점과 연장 10회초 통한의 재역전 순간

     앞서가면 따라 잡고 또 달아나고…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은 동점과 역전을 되풀이한 명승부 중의 명승부였다.엉성한 판정과 일본의 비신사적인 플레이,고영민과 임창용의 뼈아픈 실수 등을 제외하면 하라 다쓰노리 일본 감독이 예고한 “100년에 한 번 나올 승부”’를 펼쳤다.명승부였다.  이날 결승전 막판 전 국민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두 장면을 되돌려 본다.  ●이범호 ‘꽃보다 안타’로 9회말 극적인 동점  2-3으로 한국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말이 시작됐다.일본은 뒷문을 잠그기 위해 다르비슈 유를 올려보냈고,일본 벤치는 희희낙락거리며 승리를 확신한 듯했다.2아웃 주자 1,2루.막판까지 몰린 한국.점수는 2-3.  타석에 들어선 6번 타자 이범호.앞서 8회말 2루타로 추격의 물꼬를 텄던 이범호였다.하지만 막강한 다르비슈가 마운드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동점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앞타자 추신수가 삼진으로 물러나며 일부 팬들은 “졌다.”고 벌써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이범호는 흔들림이 없었다.그의 표정은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무표정했다.악다문 입술만이 우승을 향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르비슈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혼신의 힘을 향해 공을 뿌렸다.하지만 이범호의 기세가 앞섰다.이범호는 다르비슈의 3구에 날카롭게 방망이를 휘둘렀고,그 공은 그대로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고 지나갔다.김현수의 1루 대주자로 나와 2루에 있던 이종욱은 뒤를 볼 것도 없이 내달렸고,홈에 안착해 동점을 만들었다.내내 무표정하던 이범호가 활짝 웃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을 따라붙었다.  ●이치로 ‘내가 끝낸다’ 10회 결승타  9회말 터진 극적인 동점포로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한국팀.10회초를 얼른 넘기고 10회말 공격에서 ‘끝장’내기를 내심 기대하던 때.임창용이 마운드에 올라있는 한 손쉽게 경기가 진행될 거라 예상했다.‘뱀직구’를 앞세운 임창용은 한국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확실한 승리카드였다.  하지만 우치가와가 가볍게 툭 갖다댄 공이 우익수 앞 안타가 되며 상황은 한국에 불리하게 돌아갔다.이나바가 예상대로 번트를 대 1아웃 주자 2루를 만든 상황에서 이와무라가 좌전 안타를 쳐 1,3루가 됐다.  이후 타석에는 대타 가와사키 무네노리가 등장해 1구째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외야에 다다르지 못하고 유격수 뜬공으로 붙잡혔다.  10회초 2아웃 주자 1,3루 3-3 동점인 상황.언듯 보면 9회말 한국이 동점을 만들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타석에 들어선 것은 ‘일본의 자존심’ 이치로.결승 경기 이전까지 타율 .211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자국 언론으로부터 ‘전범’이라는 말까지 들었야 했던 그였다.하지만 앞선 4타석에서 2안타를 만드는 좋은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정면승부를 택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임창용이 계속 ‘뱀직구’ 등으로 이치로를 공략했지만,이치로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끈질기게 유인구를 저스트 미트,파울로 만들며 버텼다.1루 주자가 도루를 해주자 2,3루가 된 뒤,임창용이 8구째를 뿌린 순간 움츠려있던 이치로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뽑아냈다.이치로의 ‘카운터 한 방’은 주자 2명을 모두 홈에 불러들였고 이것으로 승부는 사실상 끝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나온 마지막 점수였다.  일본은 더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10회말 한국이 추격에 실패하며 경기는 3-5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18일간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2번째 WBC에서 한국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시각장애인들은 올록볼록한 6개의 점을 사용해 읽고 씁니다. 그들은 매끈한 종이 위에 잉크로 쓴 글자를 묵자(墨字)라고 부릅니다. 맹인들에겐 이 묵자야말로 침묵하는 글자, 보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점자에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맹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종이 위에 솟은 점들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손때와 땀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개의 점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들의 열손가락을 따라가 봤습니다. ‘도도도독’ ‘탁탁탁’ ‘톡, 톡’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3학년1반 교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다. 오전 10시10분, 2교시 영어수업이 한창이다. 오늘은 음식 이름을 영어로 적고 발음해 보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검은 점판과 뾰족한 점필을 꺼내 알파벳을 찍기 시작했다. 시선은 책상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점판에 종이를 끼운 다음 아이들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점을 찍어 나간다. 읽을 때는 종이를 뒤집어 볼록하게 튀어나온 점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더듬어 읽는다. 최성문 교사가 “로스트 비프. r, o, a…f. ‘구운 쇠고기’라고 한글 뜻도 써보세요.”라고 말한다. 빠른 속도로 점필을 놀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윤이(9)는 머뭇거리기 일쑤다. 지윤이가 “f가 몇 번이었지?”라고 혼잣말을 하자, 옆에 있던 준성(8)이가 냉큼 “1, 2, 4!”라고 알려준다. 6점의 위치번호를 가르쳐 준 것. 지윤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프레시 피시(fresh fish)’에서도 알파벳을 까먹은 지윤이는 “h는 몇 번이야.”라고 묻는다. 준성이는 “1, 2, 5”라고 소리쳐 답해 준다. ●머리 희끗한 60대 정용설씨 주경야독 7살 때 뇌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지윤이는 맹학교에 1년 늦게 입학했다. 다른 아이보다 점자를 늦게 익힌 탓에 실력이 반 친구들에 비해 처지는 편이다. 지윤이는 “점자를 처음 배울 때는 ‘아야어여’ 모음이 어려웠어요. 시험을 많이 보면서 괜찮아졌는데 영어 점자는 또 다르니까 헷갈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60대 노인과 30대 남성이 더듬더듬 점자책을 읽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 시력을 잃은 중도실명자들을 위한 직업재활학급이다. 점자는 물론 침구, 안마 등의 과목을 2년간 이수한 뒤 직업안마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서민택(36)씨와 정용설(60)씨는 이달 초 한빛맹학교에 입학했다. 2005년 각막혼탁 판정을 받고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서씨는 “5년 전부터 혼자 책을 보면서 점자를 조금씩 배웠어요. 손끝의 감각을 익혀 보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네요.”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서씨의 꿈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정안인(正眼人·비시각장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굳이 점자를 익히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은 없어요. 하지만 맹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점자와 안마업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용설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체력검사를 하는데 100m 달리기 결승지점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단다. 그 후로 시력이 차츰 나빠져 중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점자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던 정씨는 나이가 들자 공부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2007년 성북복지관에서 처음 점자를 접하게 됐다. 정씨는 “점자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긴 한데 나같이 손에 감각 없는 늙은이한테는 어려워. 젊은 애들이 한 달 걸려 읽을 책을 우리는 석 달 동안 읽어야 해.”라고 말했다. 푸념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뭉툭하게 닳아버린 몽당연필 같은 손가락 끝으로 일본어 교과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묵자도서 워드파일 입력후 점자로 번역 지윤이와 정용설씨가 보는 점자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국점자도서관을 찾아가 궁금증을 풀었다. 1969년 세워진 도서관은 점자도서를 제작하고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달 30~40권의 책이 제작에 들어간다. 첫 단계는 4층 자료입력실에서 이뤄진다. 입력봉사자들이 묵자도서의 내용을 일일이 키보드로 쳐서 워드파일로 저장한다. 보통 한 명이 한 권을 입력하는 데 1~6개월이 걸린다. 입력된 파일은 점역 소프트웨어를 통해 1초 만에 점자로 번역된다. 점역교정사가 점자 맞춤법에 맞게 교정을 보고 나면 제판 단계로 넘어간다. 1층 인쇄실에서 알루미늄 판에 기계로 점자를 새긴다. 판 사이에 종이를 끼운 뒤 롤러로 밀어 요철을 만든다. 그 종이를 모아서 제본하면 한 권의 점자책이 완성된다. 한 권을 만드는 데 최소 4~6개월이 걸린다. 지난해 8월 출간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올 2월에 완성됐다.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11월에 출간됐지만 현재 자료 입력 중이다. 6~7월은 돼야 점자책으로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6개월 늦게 신간을 받아보는 셈이다. ●박경리의 ‘토지’ 무려 99권 차지수 정보서비스 팀장은 “일반 묵자책 1권이 점자책 3~4권으로 불어난다.”고 말했다.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풀어쓰기 때문에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많지 않다. 일반도서 30쪽 분량이 점자도서 150쪽에 육박한다.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은 10권이지만 점자책으로는 총 60권 분량이다. 총 21권인 박경리의 ‘토지’는 무려 99권에 달한다. 따라서 점자책이 부피가 크고 무거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가볍다. 가벼운 백상지를 쓰기 때문에 책 한 권이 120g에 불과하다. 점자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도 쓰인다. 한빛맹학교 3층에 있는 관악합주실은 매주 수·금요일이면 아름다운 악기소리로 가득 찬다. 40명의 시각장애인 학생단원으로 구성된 ‘한빛 브라스앙상블’의 연습날이기 때문이다. 김용복 감독의 지휘로 단원들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OST 음반을 연주했다. 팀파니, 큰북 등으로 구성된 타악기 파트와 트럼펫, 트럼본, 튜바 등의 관악기 파트가 감미롭고 조화로운 연주를 보여 줬다. 멜로디를 담당하는 ‘퍼스트 트럼펫’ 노종훈(18)군의 연주는 단연 돋보였다. 노군은 맨 앞줄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며 악기를 불었다. 트럼펫 소리는 청아했다. 중1 때 음악을 시작한 노군은 트럼펫에 흥미와 소질을 보이면서 올해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 진학했다. 고3 때 점자 악보를 접하면서 그의 연주가 확 달라졌다. 이전에는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음을 무작정 외워야 했다. 그러나 5선보와 음표 등을 6점으로 표기한 점자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악보에 적힌 표현기법을 고스란히 살려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노군은 “소리에 깊이가 묻어나기 시작했어요. 악보에 드러난 작곡가의 의도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악보 읽는 게 서툰 그는 매주 3시간 음악점자 수업을 듣는다. 노군은 “음악교사가 되어 시각장애인은 물론 정안인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악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빛맹학교에서 음악이론 강의를 맡은 이명신(40) 강사는 “악보는 음악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도구입니다. 글을 모르고 문학에 대해 말할 수 없듯이 악보를 모르면 음악을 안다고 하기 어렵지요. 특히 맹인 음악가에게 점자악보는 자신의 음악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길이 돼줍니다.”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루이 브라유, 세계 최초 6점체계 창안… 송암 박두성,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반포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1824년 세계 최초로 6점 체계의 점자를 만들어 보급한 ‘점자의 아버지’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1926년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은 ‘맹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린다. 루이 브라유는 1809년 프랑스 파리 인근의 시골마을 쿠브레에서 태어났다. 브라유는 세 살 때 마구 제작자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송곳으로 왼쪽 눈을 찔렸다. 이 사고로 오른쪽 눈도 감염돼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파리왕립맹학교에 들어간 브라유는 12살 때 바르비에 장교가 군사용으로 고안한 12개의 점자를 접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송곳을 이용해 6개 점자를 창안했다. 6점 체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한번에 모든 점의 위치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브라유는 직접 만든 점자가 채택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43세 때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인 브라유(braille)는 ‘점자’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 맹인들에게 빛을 가져다 준 송암 박두성은 188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에 들어가 시각장애인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일본어 점자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두성은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0년 점자 연구에 착수했다. 1926년 조선어 점자연구회를 조직하고 ‘훈맹정음’을 창안, 반포했다. 박두성은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가 ‘맹인의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한결같이 맹인교육에 헌신했던 박두성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올해로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는 1월4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송암이 훈맹정음을 반포한 11월4일은 ‘점자의 날’로 기려지고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한지혜, ‘구두 디자이너’ 되기 위해 이태리行

    한지혜, ‘구두 디자이너’ 되기 위해 이태리行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에덴에 동쪽’에서 좋은 연기를 보인 한지혜가 구두 명장의 산실인 이태리 피렌체로 유학을 떠난다. 한지혜는 세계적 구두 디자이너 브랜드‘지니 킴(JINNI KIM)’과 손잡고‘구두 디자이너’의 영역에 도전, 오는 23일부터 약 2주간의 일정으로 이태리 피렌체로 떠나 현지 장인들의 구두를 향한 숨결을 직접 체험할 예정이다. 한지혜는“구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구두를 향한 장인의 땀과 정성, 열정에 경의를 느꼈다. 세계적 명성의 살아있는 장인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고 밝히며“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현지 장인들의 뛰어난 감각과 실력, 그리고 열정을 통해‘정식 구두 디자이너’로써 한 걸음 나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 촬영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 디자인 기초 과정을 배워나가며 첫 구두 디자인 도전에 열의를 보였던 한지혜는 드라마 종영 후, 휴식도 잊은 채 구두 디자인 삼매경에 빠져있다고. 평소 패션 관련 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한지혜는 패션의 명소 이태리 유학을 계기로 전문적인 구두 디자이너로써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2030 세대 젊은 여성들의‘셀러브리티 스타’로써의 입지를 굳혀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이번 한지혜의 이태리 유학 스토리는 오는 5월, 케이블 채널 올리브 TV 의 특집 프로그램 ‘it’s a beautiful day-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예당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이동준 기자 juni3416@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공연리뷰] 쥘리에트 비노슈 ‘인-아이’

    무대 중앙에 놓인 커다란 벽, 나무 의자 두 개. 폭 16.4m, 깊이 25m의 무대 위에 간소한 소품이 놓여 있다. 불이 꺼지고 조명이 들어온 커다란 벽 양쪽에서 두 주역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이어 “나는 열 네 살이었다.”는 독백이 흐른다.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전문무용수도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마흔 다섯에 춤에 도전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아이(in-i·내 안에서)’는 이렇게 시작했다. 19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혁신적인 안무가로 평가받는 아크람 칸과 비노슈가 남녀의 사랑에 대한 내면과 감정 변화를 이야기한다. 한 여자와 남자가 사랑에 빠지며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함께 살게 되지만 서로 다름에 갈등한다. 다툼과 오해 끝에 헤어지고 다시 화해하는 이야기를 위해 비노슈와 칸은 부딪치고, 입 맞추고, 화내고, 울부짖으며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70분 동안 무대를 뛰어다닌다. 벽은 둘 사이를 갈라 놓는 장벽이기도 하고 조명을 이용해 침대와 창문이 놓인 방이 되기도 한다. 고난도 기교는 보이지 않는다. 문애령 무용평론가는 “비노슈의 몸짓은 데뷔한 사람 같지 않게 대단히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 막 무용계에 데뷔한 비노슈를 위해 칸이 자신의 기교와 감성을 한 단계 떨어뜨려 작품 완성도까지 낮춰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들의 감정 변화를 몸짓과 함께 대사로까지 설명해 주는 지나친 친절함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의도를 이해하게끔 한다. 비노슈의 ‘전공’을 살린 자연스러운 말투와 귀여운 표정, 남자를 향해 절규하는 연기력이 오히려 이 무용작품의 관전포인트로 부각될 듯하다. 이 공연을 위해 지난해 2월부터 모든 영화 촬영 스케줄을 미루며 연습에 몰두하고 해외 순회 공연까지 나선 비노슈의 열정에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날 공연장에는 영화계 인사와 연예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의 신선한 변신을 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듯. 공연은 21일까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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