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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0억원대 통 큰 ‘주식 선물’

    1100억원대 통 큰 ‘주식 선물’

    지난해 모두 8조원에 달하는 혁신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 제약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임성기(76)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1100억원대 개인 보유 주식을 그룹사 전 임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선물한다.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임직원들은 월 급여의 10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식으로 받게 됐다. 직원 1인당 평균 약 4000만원 정도다. 한미약품그룹은 임 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90만주를 한미약품 그룹 직원 약 2800명에게 지급한다고 4일 밝혔다. 2015년 12월 30일 한미사이언스의 종가(12만 9000원)로 환산하면 모두 11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는 임 회장이 보유한 개인 주식의 약 4.3%, 한미사이언스 전체 발행 주식의 1.6%에 해당하는 물량”이라면서 “증여되는 주식 수량은 지난해 장 마감일을 기준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임성기 회장은 “적자와 월급동결 상황에서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게 견뎌준 임직원에 위로가 됐으면 한다”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큰 성취를 이룬 한미약품 그룹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빚을 느껴 왔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글로벌 제약기업인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에 모두 7개 혁신 신약에 대한 8조원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화제가 됐다. 계약이 발표될 때마다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해 1월 2일 주당 1만 5200원이었던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해 말 약 10만원 가까이 뛰었다. 약 2000만주의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보유해 온 임성기 회장은 1년간 2조원이 넘는 평가 차익을 거둬 제약업계 최고 부호에 올랐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8월의 브라질, 지금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8월의 브라질, 지금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훈련하세요?”(기자) “음, 몇 시간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루 종일 운동해요.”(양궁 선수 강채영) 지난 22일, 대부분의 사람은 지인들과 회포를 풀며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기지만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는 다른 달력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227일’이라고 적힌 전광판이 크리스마스트리 대신 번쩍이고 있었고,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캐럴을 대체했다. ‘한계를 넘어 리우로’라고 적힌 플래카드에서는 연말 분위기는 고사하고 묘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태릉선수촌에 연말연시란 없었다. 그들의 달력은 올해 8월 열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힘든 훈련에 숨을 헐떡이다가도 ‘만약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이 활짝 웃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태릉의 새벽, 그곳엔 열정이 있다 오전 6시. 아직 사방이 어둑어둑한 시간이지만 태릉선수촌은 시끌벅적했다. 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유도, 양궁, 펜싱, 체조, 역도 국가대표 선수 150여명이 내는 기합 소리와 운동장 스피커에서 ‘노동요’처럼 흘러나오는 최신 가요가 뒤범벅돼 태릉선수촌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지만 선수들은 늘 해 왔던 일이기 때문인지 능숙한 몸동작으로 순식간에 체조를 끝마쳤다. 이후 곧바로 조깅이 시작됐다. 두꺼운 점퍼와 모자·장갑으로 중무장했지만 선수들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계속 나왔다. 운동장 5바퀴를 돈 것으로 조깅을 끝마친 남자 펜싱 플뢰레의 손영기(31·대전도시공사)에게 힘들지는 않냐고 슬쩍 물어보니 “바닥이 얼어서 오늘은 그나마 조금 뛴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깅 정도로는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엄청난 훈련량을 견뎌 온 ‘내공’이 느껴졌다. 조깅을 마친 뒤 선수들이 급히 어디론가 향하기에 식사를 하는가 싶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웨이트트레이닝 장비가 있는 ‘월계관’이었다.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남자 유도 선수들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동료를 어깨에 얹고 훈련장을 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선수일지라도 한 바퀴만 뛰고 나면 이마부터 몸통, 발까지 땀이 안 나는 곳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인지 처음엔 제대로 붙이던 구호도 나중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곁에 있던 서정복 유도대표팀 감독에게 ‘왜 서로를 들쳐업고 뛰느냐’고 묻자 “메치기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과 비슷한 체중의 선수를 들고 뛰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체력과 지구력을 기르는 동시에 한판승을 위한 체중 감각도 함께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유도 선수들도 ‘20년의 한’을 풀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여자 유도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조민선이 66㎏급 금메달을 딴 이후 ‘노골드’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자 유도팀을 맡고 있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코치는 더욱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스트레칭을 하는 도중 선수들의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곧바로 “자세!”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자 선수들은 이날 남자 선수들도 타기 힘들다는 외줄로프를 타기도 했다. 이 코치가 “세 번만 타자”고 소리를 지르자 선수들은 능숙하게 10m 높이의 외줄에 올라갔다. 이렇게 1시간가량 운동하면 새벽훈련이 마무리된다. 오전 7~8시쯤부터는 조식과 세면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전훈련(오전 9시 30분~낮 12시), 오후훈련(오후 2시 30분~5시 30분), 야간훈련(오후 7시 30분~9시)까지 마쳐야 하루가 끝난다. 식사·세면·수면을 빼고는 몽땅 운동에 투자하는 일정이다. ●훈련의 연속, 힘들지만 행복하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의 극한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선수들 몸 곳곳에는 영광의 상처들이 가득했다. 펜싱 사브르의 ‘맏형’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오른손과 왼손의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 10년 넘게 하루 7~8시간씩 펜싱검을 잡고 운동하다 보니 오른손 인대가 파열되고 붓는 일이 빈번했다. 이것이 반복되니 나중에는 부기가 안 빠져 오른손이 육안으로 판단하기에도 왼손의 1.2~1.3배는 돼 보였다. 게다가 손의 신경들이 많이 끊겨서 피부 감각도 둔감해진 상태다. 김정환은 “오른쪽 손은 항상 마취 주사를 맞은 것 같은 상태여서 꼬집어도 (왼손에 비해) 40% 정도밖에 아픔을 못 느낀다”며 “오른손의 경우 특정 각도로는 쟁반이나 무거운 책을 잡지 못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펜싱검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악력) 강도는 충분히 돼서 문제가 없지만 일종의 직업병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오죽하면 선수들 사이에 국가대표팀 하다가 국가유공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유도 선수들의 귀는 이른바 ‘만두귀’로 변해 있었다. 의학용어로 ‘이개혈종’(耳介血腫)이라고 불리는 만두귀는 훈련 도중 상대방이랑 부딪치고 도복에 쓸리면서 실핏줄이 터지는 일이 반복돼 귀가 울퉁불퉁하게 부푼 것을 말한다. 체육계에서는 이런 모습이 만두와 비슷하게 생겼다며 ‘만두귀’로 부르고 있다.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유도 선수들도 대부분 만두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열심히 훈련하다가 생긴 것일 뿐”이라며 고된 훈련의 ‘훈장’처럼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2012 런던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양궁의 기보배(28·광주시청)도 하루에 많게는 400~500번 활시위를 당기다 보니 손이 성할 날이 없다. 아무리 핸드크림을 발라도 활을 쏠 때 주로 사용하는 검지·중지·약지에는 단단한 굳은살이 박여 있다. 주위에서는 ‘손이 그래서 어쩌냐‘고 걱정이지만 정작 기보배는 “굳은살이야 다른 선수들도 다 가지고 있다. 오히려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힘들지만 우리에겐 목표가 있다 반복되는 훈련에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힘들긴 하다면서도 올림픽을 생각하면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자 유도 ‘20년의 한’을 풀겠다고 나선 57㎏급의 김잔디(25·양주시청)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계훈련을 어떻게 견뎌 내는가에 따라 내년 리우올림픽에서의 메달 색깔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며 “목표는 금메달로 정하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에겐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기대를 한몸에 받은 채 2012 런던올림픽에 나섰지만 16강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해 눈물을 삼켜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부담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부담감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면서도 “부담감도 그만큼 관심을 받아서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부담감’이라고 여기며 훈련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일본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2년 전 한국에 온 재일교포 3세 안창림(22·남자 유도 72㎏급)의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훈련은 항상 힘들지만 이것을 견디고 시합에서 1등 하는 상상을 하면서 운동하고 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서 뛰는 것은 나의 꿈이었기 때문에 마무리를 잘해 꼭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33세로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 중인 김정환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대표팀 인생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로 훈련을 하고 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상대 선수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후회 없이 멋있게 시합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상대 선수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 ‘차세대 여성 신궁’ 강채영(20·경희대)은 2016년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올림픽에 출전해 (기)보배 언니처럼 2관왕을 하고 싶다. 남보다 한 발을 더 쏘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이 끝난 뒤에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날 선수들에게 올림픽 메달에 자신이 있냐는 우문(愚問)을 건네면 그들에게선 “우리는 외국 선수보다 훈련량이 많다”는 현답(賢答)이 돌아오곤 했다. 깨어 있는 내내 계속해 훈련을 반복하는 그들이기에 스스로가 가장 많이 훈련한다고 설명하더라도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정해 준다’는 말이 있지만 태릉선수촌 선수들의 훈련량을 보면 하늘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느껴졌다. ‘월계관’에서의 힘든 훈련을 마친 뒤 리우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묻는 질문에 “열심히 준비하고,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숙소로 돌아가던 남자 유도 81㎏급 왕기춘(28·양주시청)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촌스럽게…소소하게…나눔으로 뭉친 신창마을

    촌스럽게…소소하게…나눔으로 뭉친 신창마을

    도봉구 창2동 주민센터에 조금 특별한 마을공동체가 있다. ‘신창마을 시끌벅적 사랑방’이다. 창2동에 있는데 ‘신창마을’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이상했다. “행정단위가 아닌 신창시장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역에 맞춰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마을공동체는 교육, 복지, 일자리 등 현실적이 목표를 하나씩 가졌지만 신창마을 사랑방은 말 그대로 ‘촌동네의 따뜻한 아랫목’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봉구는 신창마을 사랑방 회원들이 한 달 동안 직접 손으로 뜬 목도리 100개를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전달했다고 30일 밝혔다. 작은 선물이지만 한땀 한땀 회원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김주희 대표는 “밤낮없이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보며 작은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는데 사랑방 회원들이 동참해 준 덕에 목도리 선물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추석 때는 노인, 다문화가정과 함께 추석맞이 송편 빚기를 했다. 송편을 빚는 데 필요한 쌀과 모싯잎, 깨, 콩 등은 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이 조금씩 내놨다. 이렇게 50명이 옹기종기 모여 송편을 빚고 동네 노인들에게 음식도 대접했다. 지난달에는 노인들을 위해 김장도 담갔다. 사랑방에선 주민들이 모여 수공예품을 함께 만들기도 한다. 또 한쪽에선 배움방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아이들이 책 읽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사랑방 관계자는 “큰일은 아니지만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라며 웃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사람 향기 나는 공동체 복원의 첫걸음은 정(情)”이라며 “마을공동체 지원을 강화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초보 농사꾼 ‘생생 필독서’

    초보 농사꾼 ‘생생 필독서’

    전남 고흥군이 초보 농사꾼들의 길잡이가 될 농부들의 삶을 수기집으로 펴냈다. 고흥 땅에 터전을 잡고 부농(富農)을 꿈꾸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22명의 귀농·귀촌 농부·어부와 토박이 농부의 삶을 담았다. ‘희망을 일구는 고흥 농부들’이란 제목의 책자는 154쪽 분량이다. 인생 2모작으로 귀농을 계획하는 도시 은퇴자와 초보 농사꾼들에게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골생활을 동경해 내려왔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서도 후회할 여유조차 없었던 일상, 마을 사람들과 오해 없이 농촌 생활을 해야 하는 중요성, 시행착오에 대한 아픔 등도 엿볼 수 있다. 귀농·귀촌인들이 제2의 고향 고흥에서 벼농사와 채소, 과수 재배, 가공·유통, 축산, 산림, 수산업 분야 등에 땀흘리는 모습과 토박이 농사꾼들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하다. 대기업에서 30년 만에 정년퇴직한 뒤 2009년 고흥 땅을 찾은 귀농인 송유종(61)씨는 “한우를 키우는 나로서는 고흥은 행운의 땅이다”라고 뿌듯해했다. 송씨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귀농을 하라”며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처럼 고흥의 이주는 ‘해피고흥’을 만드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송씨의 농장은 2012년 친환경 인증농장·2014년 전남도 친환경녹색축산농장에 지정됐고 도지사 표창까지 받았다. 청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명예퇴직해 2008년 5월 거금도에서 염소농장을 하는 이강원(63)씨는 “시골에서는 죽기보다 살기 싫다는 아내를 1년간 설득한 끝에 지금은 억대 농장주가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순천대에서 1등급 육질을 인정받고 지난해 9000만원, 올해 2억 1000만원의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유자나무 4500그루를 심었으나 연로한 어머니가 삼복더위에 잡초를 뽑는 모습에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몽땅 뽑아내고 1986년 새꼬막 양식업을 시작한 정상률(59)씨는 연매출 30억원을 올리고 있다. 중국 선원 100명을 채용하고 북한과 교역해 나가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전북 익산에서 7년간 유기농 농산물을 납품하다 암 선고를 받았던 주동일(58)씨는 일조량이 큰 고흥으로 와 커피를 재배하면서 가슴 벅찬 삶을 살고 있다. 고흥은 일조량이 풍부해 커피 재배에 제격이었다. 지난해 2월 지금의 과역면에 새 커피농장을 차렸다. 불과 2년 만에 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년에 1만명의 체험객이 찾고 연매출이 1억원이다. 명경순 군 농업축산담당은 “고흥에 사는 참농부들의 진솔한 마음뿐 아니라 농사 노하우가 유익한 참고 자료가 돼 농어민 소득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고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남과여Why] 노 메이크업에 짜증 잦은 그녀, 권태기 증후군?

    [남과여Why] 노 메이크업에 짜증 잦은 그녀, 권태기 증후군?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편해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애틋한 마음’이 사라져 애정이 식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인에 대한 애정이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 생기는 시기를 ‘권태기’라고 하는데요.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올해 미혼남성 329명, 여성 344명을 대상으로 ‘최근 연인 사이의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진 경험이 있는가?’라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75.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권태기’는 이별의 일반적인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쩌면 이별의 ‘직전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이 권태기. 이 시기에 대해서 성인남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남녀 모두 ‘1년이상~2년미만’때 권태기 징후성인남녀는 어느 정도 연애를 했을 때 권태기를 느낄까요?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2013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1년 이상~1.5년 미만’, 여성은 ‘1.5년 이상~2년 미만’에 주로 권태기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빨리 싫증을 느끼긴 하지만,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회사원 김선종(34)씨는 “여자친구들과 헤어진 시기를 돌이켜보면 대부분 1년을 조금 넘긴 시기였다”면서 “여자친구가 익숙해지면서 ‘처음 연애 때처럼 두근거리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주로 헤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그렇다면 주로 어느 순간에 남성들은 ‘두근 거리지 않는다’고 느낄까요?‘연애 권태기 징후’를 묻는 질문에 남성의 42%가 ‘노 메이크업, 간편한 옷차림’을 꼽았습니다. 이어진 답변으로는 ‘잦아진 짜증’(29.6%), ‘뜸해진 연락’(18.4%), ‘만남 횟수의 감소’(10.0%) 등이 있었고요.회사원 박호진(29)씨는 “대학생 때 CC(캠퍼스 커플)였던 전 여자친구가 함께 공부를 하는데 너무 안 꾸미고 나와 헤어짐의 원인이 된 적이 있다”면서 “시험 기간에 데이트 나가는 것처럼 예쁘게 하고 나오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머리조차 감지 않고 나온 모습은 충격적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떤 경우에 ‘우리 관계가 권태기구나’라는 것을 직감할까요? 여성 응답자는 무려 47.4%가 ‘준비 없는 만남’을 권태기의 징조로 꼽았습니다.뒤이은 답변으로는 ‘만남 횟수의 감소’(29.8%), ‘기념일을 기억 못하는 경우’(13.9%), ‘뜸해진 연락’(8.9%) 등이 있었습니다.공무원 최수아(29)씨는 “연애 초반에는 남자친구가 데이트 코스 동선을 개략적으로 짜왔다”면서 “1년이 넘어가니 만나자마자 ‘어디 갈까?’라고 묻는 등 아무 준비 없이 나온 경우가 많아졌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어디 갈지 정하지를 못해 한여름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린 적이 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헤어지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자는 “이벤트나 여행” 여자는 “대화로 푼다”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권태기의 징후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던 남녀가, 권태기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인데요.‘연애 권태기 극복 방법’을 묻는 질문에 남성은 ‘이벤트 준비’(35.6%), ‘여행 계획을 세운다’(27.8%) 등 ‘새로운 행동’을 꼽았습니다. 반면 여성은 행동보다는 ‘대화로 푼다’는 답변이 35.4%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긴장감을 준다’(29.1%), ‘이벤트 준비’(19.2%), ‘시간이 약’(16.2%)이라는 답변을 보였습니다.교사 정세훈(32)씨는 “1년 6개월쯤 만났을 때 여자친구와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느꼈고, 과거 같이 찍은 사진을 모아 동영상을 만드는 등 이벤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면서 “이후 관계가 다시 돈독해졌고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말했습니다.반면 회사원 박지윤(31)씨는 “권태기에 남자친구가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면서 “이벤트를 준비한 마음은 고맙지만 우선 대화를 통해 서로 서운한 점을 푸는것이 먼저 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결혼정보업체 더원노블 행복출발 측 관계자는 “연애 권태기를 그대로 방치하면 이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권태기가 오면 숨기지 말고 상대에게 표현을 하고 주변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다”고 전했습니다.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좋은 아빠’ 생각보다 쉽다

    “아빠 산에 오르기 할래.” “아빠는 지금 바쁘다.” “그래도 해 줘.” “어쩔 수 없군. 자, 올라와 봐.” 여섯 살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인 ‘아빠 산에 오르기’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빠는 서 있는 상태에서 아이의 양손을 깍지 껴 잡은 다음 아이가 어깨에 오를 때까지 참아 내면 됩니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듯 아빠의 무릎, 허벅지, 배, 가슴을 차례차례 밟고 어깨 위에 올라탑니다. 지난번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고 따라 해 봤는데, 아들이 너무 즐거워해 이 놀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아무 때나 해달라고 조릅니다. 요새는 메뚜기처럼 껑충껑충 뛰어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다 저의 소중한 부위를 발로 차 버리는 바람에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어깨 레슬링’도 가끔 합니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아들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버티며 받아 주는 놀이입니다. 어느 정도 받아 주다 아들을 꽉 붙들고 “어림도 없다”고 외친 뒤 바닥에 자빠뜨립니다. 아들은 웃으며 또 달려듭니다. 가끔은 못 이기는 척 뒤로 드러누우면서 아들을 껴안고 “이야, 힘이 아주 세졌네”라면서 ‘오버액션’을 해 주면 효과 만점입니다. 네 살 딸은 ‘무릎 오토바이’를 좋아합니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딸을 올려놓고 팔을 쭉 뻗은 뒤 엄지를 펴서 마치 오토바이 핸들을 잡은 것처럼 만들어 줍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무릎을 위아래로 천천히 구르다가 “자갈밭이다”라고 외치면서 무릎을 세게 엇박자로 굴러 주면 딸은 재밌어서 소리를 꽥꽥 질러 댑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 보면 ‘아빠는 몸으로 놀아 준다’는 말을 실감하곤 합니다. 땀도 나고 기분도 좋습니다. 놀아 주는 방법을 모른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터넷 육아 카페 등에 다양한 방법이 올라와 있습니다. 아이와 몸으로 노는 방법을 수록한 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은 지금까지 5000가지가 넘는 아빠 놀이를 만든 ‘놀이의 달인’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낸 아빠 놀이 책이 10권에 이릅니다. 그의 책 ‘놀이만 한 공부는 없다’의 머리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자라 주었다. 잔소리하는 대신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한 달에 한 번씩 서점에 다녔다. 시간이 있을 때는 전국을 누비며 아이들과 놀았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좋은 아빠’라고 하지만, 매일 하루 1분씩 20년 동안 놀아 준 것밖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 얼마 전 중3 아들과 중1 딸을 둔 어떤 형님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집에 들어와 보면 아이들은 항상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말엔 골프 치느라 바빴고, 가끔 쉬는 날엔 모자란 잠을 자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놀자고 달려들면 형님은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잠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진짜 내 아이들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었다고 합니다. 쓰디쓴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는 그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이제라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한 그를 응원합니다. gjkim@seoul.co.kr
  • “日, 위안부 타결 땐 朴대통령 조기 방일 추진”

    외교부는 오는 28일 서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갖는다고 25일 발표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뤄 낸 뒤 박근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기시다 외무상이 28일 당일 일정으로 방한해 윤 장관과 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양국 간 현안 및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일 양국은 외교장관회담 하루 전인 27일 서울에서 위안부 문제 협의를 위한 제12차 국장급 협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외교장관회담에서 위안부 문제가 타결될 경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 대통령이 내년에 정상회담을 열어 타결 내용을 공식화할 전망이라고 25일 보도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지혜를 짜내 전력으로 임하고 땀을 흘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타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예단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자제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두 정상의 지시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한 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측과 협의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기시다 외무상의 연내 방한 추진 등의 막후에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 라인이 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종적인 일정이 결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일본 측이 지난 24일 언론에 흘리는 등 서울 회동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한국 측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眞朴’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출마선언 표절 의혹 살펴보니...

    ‘眞朴’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출마선언 표절 의혹 살펴보니...

    4·13 총선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52·인천 연수)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민 전 대변인이 지난 15일 발표한 출마선언문 내용 일부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지난 4월 국회 연설문과 일치해 화제가 됐던 연설문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4월 연설과 지난 7월 원내대표직 사퇴의 변에서도 언급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민경욱 전 대변인도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라며 자문자답 형식을 썼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저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습니다”고 했고, 민경욱 전 대변인은 “저는 삶의 무게에 신음하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출마선언문에는 단어 선택과 배열 순서가 똑같은 문장도 나온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흘려 노력하는 보수” 부분과 민경욱 전 대변인의 “제가 꿈꾸는 건강한 삶이란,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흘려 노력하면 인정받고" 부분이다. 이밖에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원내대표직 사퇴의 변에서 ‘헌법 1조 1항’을 언급했고,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은 ‘헌법 10조’를 인용해 출마선언문에 밝혔다. 지난 10월 청와대를 나오면서 ‘진실한 사람’ ‘진박’으로 불리는 민경욱 전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연설을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의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출마선언문은 민경욱 전 대변인의 선거운동을 돕는 보좌진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연설문 작성과 관련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서희 디자이너, “슈즈 큐레이션, 구두를 사랑하는 고객을 위해 만들었어요”

    오서희 디자이너, “슈즈 큐레이션, 구두를 사랑하는 고객을 위해 만들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구두만 보면 그렇게 설레더라고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 힘이 지금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슈즈 브랜드 바이로라(by Laura, www.bylaura.com)를 운영하는 오서희 디자이너. 그녀는 어릴적부터 하이힐을 신고 다닐 정도로 구두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구두에 대한 오 디자이너의 열정은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디자인이 탄생하는 디자인 랩에서부터, 장인들의 땀이 녹아든 구두공장,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런웨이, 밤낮 없이 바쁜 동대문시장까지. 오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구두에 자신의 색을 더욱 짙게 물들이기 위해 불철주야로 뛰고 있다. 오 디자이너의 이러한 열정은 다양한 업무 경험과 만나 슈즈 큐레이션이라는 독특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마케팅, 수출까지 업무를 전반적으로 다루며 셀 수 없이 많은 발을 접했어요. 그러면서 구두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구두 선택에 대해 조언을 하게 됐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발의 형태, 문제점, 슈즈 취향을 다루는 상담이 늘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구두를 신고 만족해 하는 고객들을 보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됐어요.” 고객 각자의 발 형태와 문제점 등 니즈를 고려해 슈즈를 만드는 ‘슈즈 큐레이션’ 서비스는 오로지 오서희 디자이너의 슈즈 브랜드 ‘바이로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이즈와 디자인만 보고 구매하는 기성제품의 경우 발 모양을 고려하지 않아 예쁘지만 발이 불편해 신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슈즈 큐레이션을 통해 구두를 제작해서 신으면 편안하면서도 예쁜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오서희 디자이너는 고객들의 발을 꼼꼼히 살펴보고 맞춤형 구두를 제안한다. 발 사이즈, 형태, 모양, 발가락 길이, 걸음걸이부터 개인적인 취향까지 세심하게 파악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서희 디자이너는 “구두를 사랑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슈즈 큐레이션을 시작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더욱 많은 고객들이 맞춤형 수제화에 대한 가치를 직접 느끼고 알 수 있도록 노력하는 디자이너이자 친구가 될거에요.”라고 말했다. 한편, 오서희 디자이너가 이끄는 수제화 전문 바이로라는 롱부츠, 스틸레토힐, 플랫슈즈, 샌들 등 다양한 종류의 디자이너 슈즈를 선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매주 손과 발 되어주는데… 딸보다 낫지”

    “매주 손과 발 되어주는데… 딸보다 낫지”

    해마다 12월이 되면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들의 신산한 삶에는 화려하고 들뜬 세밑 풍경이 그려내는 그림자가 한층 더 길고 진하게 드리워진다. 동시에 그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서울신문 기자들이 서울 성북구 ‘정릉골’과 종로구 숭인동 쪽방촌을 담당하는 경찰관과 독거노인 돌보미(재가관리사)를 20일 동행 취재했다. “애기야, 어쩐 일로 여길 다 왔누.” 지난 20일 독거노인 돌보미(재가관리사) 일일체험을 위해 찾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일대 ‘쪽방촌’ 노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낯선 젊은 얼굴을 ‘애기’라고 불렀다. 16년차 베테랑 돌보미 이진희(54·여)씨도 그들에게는 살가운 ‘막내’였다. 돌보미는 집안일과 잔심부름, 병원 동행 등을 하는 독거노인의 손과 발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그들을 부르는 이름에는 ‘복지 서비스’라는 딱딱한 단어로는 다 담지 못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노막례(75) 할머니의 집부터 찾았다. 종로구에만 7명의 돌보미가 각각 하루 평균 서너 곳을 방문한다. 짐을 풀기가 무섭게 청소부터 시작했다. 걸레를 다섯 번 이상 빨아 가며 집안 구석구석을 닦았지만 할머니의 성에는 차지 않는 듯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집살이하는 기분으로 집안일을 얼추 끝내자 할머니는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이제 ‘수다 보따리’를 풀 시간인 것이다. 정신없이 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겨우 밥 한 술 뜨려는데 이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일 방문하기로 돼 있는 김모 할아버지의 김치 심부름이었다. 일정에 없어도 이렇게 연락이 오면 별 수 없다. “원칙대로만 하려고 하면 이 일 못 해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 이씨를 따라 일어섰다. 치아가 안 좋은 할아버지를 위해 반찬가게에서 사온 김치 한 포기를 잘게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예정대로 김복례(84)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보미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씨는 김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요강부터 집어 들고 깨끗이 닦았다. 경력 서너 시간 남짓인 ‘초짜’ 돌보미도 쭈뼛대며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한참을 쓸고 닦은 뒤에는 몸단장에 나선 할머니의 머리를 매만지는 것도 돌보미의 몫이다. 얼마 전 넘어져 뒤통수를 다쳤다는 할머니의 말에 빗질을 하며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도 조심스레 살폈다. 김 할머니는 10여년째 살림을 돌봐주는 돌보미가 가족 같다고 했다. “친자식도 제 부모를 매주 안 찾는 마당에 딸보다 낫지.” 김 할머니의 윗집에 사는 조단림(87) 할머니도 4년째 돌보미의 도움을 받는다. 이날은 조 할머니가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최근 할머니가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고생했던 터라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발부터 담그고 목욕을 시작했다. 샴푸 향기를 가득 풍기는 할머니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헌 옷은 비벼 빨았다. 쪽방촌의 모든 빨래는 손으로 이뤄진다. 세탁기는커녕 온수라도 잘 나오면 다행이다.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문 앞에 할머니의 ‘일용할 양식’인 우유가 놓여 있었다. 구의 지원으로 독거노인들에게 하루 하나씩 배달되는 180㎖ 들이 팩이다. 대접할 것 없는 텅 빈 냉장고를 아쉬워하던 할머니가 아이처럼 기뻐하며 우유를 한사코 애기의 손에 쥐어 줬다. 못 이기는 척 받아든 우유팩에서 훈기가 느껴졌다. 숭인동 노인들이 이 추운 겨울을 나는 비결인 듯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자체단체장 25시] ‘청렴 DNA’ 뚝심 시장, 청정 해양관광도시를 만들다

    [자체단체장 25시] ‘청렴 DNA’ 뚝심 시장, 청정 해양관광도시를 만들다

    전남 22개 시·군 중 인구 30여만명으로 최대 도시인 여수시는 3년 전 시청 공무원의 80억원 횡령 사건으로 비리도시라는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여수는 지난 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에서 도내 1위, 157개 자치단체 중 10위에 올랐다. 주철현(56) 여수시장이 취임 이후 반부패 청렴 특별대책으로 ‘시민공무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친절도와 청렴도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온 결과다. 주 시장은 25년간 특수·공안·강력부에서 일했던 검사 출신이다.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인으로는 드물게 대검찰청 선거전담 연구관과 과장도 맡았다. 대검 강력부장 시절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대변해 제5회 대한민국 법률대상 인권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소농에 목수로 생업을 이은 가난한 집안의 1남 3녀 중 둘째인 그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를 잊지 않았다. 주 시장은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며 생활 행정을 중시한다. 동행 취재를 한 지난 16일 따뜻한 지역인 여수에서는 드물게 눈까지 내린 찬 바람 속에서도 직접 현장에 들러 공무원들을 격려하고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었다. 주 시장은 공식 일정을 오전 10시 웅천 공공마리나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 시장은 마리나 시설을 개발해 여수시를 ‘국제 해양관광의 중심’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이곳에 국내 최대인 500석 규모의 마리나 항만을 조성해 국제 마리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양레저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시는 지난 7월 정부의 거점형 마리나 항만 개발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비 300억원을 지원받아 거점형 마리나 항만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여수는 주변이 365개의 아름다운 섬들로 둘러싸여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수심도 적당해 마리나 항만을 조성하기에 최고의 적합지로 불린다. 요트·윈드서핑·카약 등 다양한 해상 스포츠를 즐기고 선소 유적지, 예울마루 등을 활용해 역사와 문화를 어우르는 해양관광과 휴양활동이 가능한 최적지로 육성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주 시장은 6명의 자문위원들로부터 접안 시설이 부족해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곧바로 공무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등 열린 시정을 펴는 모습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는 계류장과 3층 규모의 클럽하우스 등도 꼼꼼히 살폈다. 이어 오전 11시 여수상공회의소 주관의 2015 하반기 여수기업사랑협의회 위원회에 참석했다. 시와 여수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25개 단체가 가입된 협의회는 친기업 정서를 시민들에게 확산시키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주 시장은 도심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민과 기업이 공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수산업단지 대기업들과 상생발전 공동 업무협약을 체결해 꾸준히 추진 중이다. ㈜엘지화학·롯데케미칼 등 18개 대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기업들은 지역민 우선 채용과 지역 생산품 구매, 지역 내 중소기업을 이용한다는 약속이다. 시는 회사 로고를 제작해 청사 현관에 걸어 주고 도움을 주는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 준다. 산단 내 기업들의 창립기념일에 회사기를 시청 게양대에 걸어 주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박용하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시민들과 기업 간 촉매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며 “기업들도 더 책임감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 시간의 회의 끝에 위원들과 점심을 한 주 시장은 여수의 별미인 통장어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주 시장은 생선·해초류 등 바닷가 음식은 다 좋아한다. 요즘은 외지인들에게 살아 있는 장어를 통째로 잘라서 넣은 통장어탕과 굴구이 등을 추천한다. 오후 4시 30분에는 강풍으로 운항이 중단된 여수 해상케이블카 현장을 방문했다. 전국 최초로 바다 위를 통과하는 해상케이블카는 지난해 12월 개통 이후 지난 15일까지 219만명이 찾은 여수의 대표 관광 상품이다. 시민단체들의 반대와 지역 경제계의 찬성 등으로 갈등이 계속되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운항 허가를 내준 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운영회사인 여수포마㈜는 입장권 판매 수익금 일부와 건물사용료 등으로 올해 12억여원을 시에 기부했다. 130명의 고용 창출 효과도 거뒀다. 오후 6시에는 여수엑스포역 광장에 마련된 KBC 광주방송 생방송 투데이에 출연해 관광객 1300만명 돌파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시는 지난 11일까지 지난해보다 31.3% 증가한 1303만명이 찾을 정도로 관광도시로 정착하고 있다. 제주에 이어 2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등록된 42개 관광지점에서 공식 집계한 기록이다. 주 시장은 저녁 회식 후 한 시간 정도 걷거나 청사에 있는 탁구장에서 땀을 뺀 후 귀가한다. 75타까지 쳐 본 골프는 접은 지 오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직원들과 직접 족구를 할 정도로 체력도 좋다. 테니스는 수준급이다. 오랜 검사 생활과 농촌 출신이다 보니 표현이 서툴고 말투가 딱딱해 본의 아니게 오해도 받곤 한다. 검사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상대방을 편하게 해 준다. 한번 만나본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는 말을 한다. 지난 15일 30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장미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 부인과 단둘이 저녁을 먹고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 4월부터 직원들이 결혼하면 부부생활과 관련된 책과 결혼 십계명이 새겨진 액자를 선물하고 덕담도 건넨다. 주 시장은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대표 브랜드 대상에서 해양관광 도시 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대표적 관광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며 “국제 해양관광도시의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길섶에서] 찜질방 송년회/최광숙 논설위원

    모임이 이어져 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연락책인 총무가 부지런해야 하고, 튀는 이가 없어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서인지 한 모임은 십 년이 넘도록 우의를 다지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 변호사, 고위 공직자, 교수, 언론인 등 여성 6명이 멤버다. 남산 길 등을 가볍게 걸은 뒤 함께 브런치를 하는 식으로 격의 없이 만난다. 지난 주말 망년회를 시내 한 찜질방에서 가졌다. 추운 날씨이기도 하지만 허리 아픈 나를 위한 배려였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식사하거나 차 마시는 것보다 뜨거운 한증막에서 나란히 누워 허리를 지지면서 땀을 내니 다들 ‘힐링’이 된다며 좋단다. 어디 그뿐인가. 집안일이나 퇴직 후의 미래 설계와 같은 개인적인 일부터 정치·경제 등의 국내외 세상사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누니 인생 공부, 세상 공부가 따로 없다. 이날 새 계획도 세웠다. 매년 사진을 찍어 모임의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 고교 졸업 후 60년이 넘도록 매월 차를 마시는 모임을 갖는 칠레 할머니 6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티타임’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호호 할머니가 되도록 함께 삶에 대한 유쾌한 수다를 이어 간다면 멋진 일 아닌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한방으로 잡는 건강] 3세 미만 소아 식욕부진증, 군것질은 절대 안 돼요

    아이들은 1차 급성장기가 끝나고서 두 돌 전후로 잠시 식욕부진을 겪는다. 밥을 잘 먹던 아이도 먹는 양이 줄고 지나치게 안 먹어 부모 속을 태우기도 한다. 소아 식욕부진증은 만 3세 미만에서 나타난다. 밥을 몇 숟가락만 먹고선 입을 다물거나 음식을 입에 물고 삼키지 않아 식사에 1시간 이상 걸리는 아이들도 있다. 일부는 배고프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아 음식을 챙겨 먹이지 않으면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최소 한 달 이상 밥을 잘 먹지 않거나 배고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엄마 등 보호자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며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은데도 음식을 거부하면 식욕부진증으로 진단한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엄마가 억지로 먹이려 할수록 아이는 점점 더 안 먹으려 하기 때문에 아이와 엄마의 관계만 안 좋아진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섭식장애를 보인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덜 친밀하고, 아이를 통제하기 어려워 부모가 지시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아이를 둔 엄마는 자신의 음식 솜씨와 부족한 육아 능력을 탓하며 자책하는데 이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식욕이 다른 아이보다 적은 탓이다. 한의학에서는 기질이 예민하고 비위 기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예민한 기질을 보완하고 비위 기능을 돕는 한약 처방을 한다. 기질이 예민하지 않고 식욕만 없는 아이에게는 소건중탕, 평위산, 사군자탕 등 비위 기능을 높이는 약을 처방하며 땀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등 속열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양격산이나 백호탕류를 처방한다. 증상이 약한 아이는 단기간 한약 처방을 해도 식사량이 는다. 혹은 식사 시간이 단축되거나 2~3개월 후에 체중이 1㎏ 정도 늘어난다. 증상이 완화됐다고 한약 복용을 중단하면 장기적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복용 기간은 한의사와 먼저 상의하는 게 좋다. 약 처방이 도움을 줄 순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의 노력이다. 아이의 식욕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고 식습관을 교정해야 한다. 식사 외에 군것질은 하지 않도록 한다. 또 아이에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잘 먹으면 크게 칭찬한다. ■도움말 신현숙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부회장(아이누리한의원 분당점)
  • 20~30분마다 화장실 가면 ‘과민성 방광’

    20~30분마다 화장실 가면 ‘과민성 방광’

    사람은 일반적으로 하루 4~6번 소변을 본다. 급하면 화장실을 찾아 뛰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두 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화장실만 봐도 소변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요의(尿意)를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30분마다 화장실을 찾고 소변을 본 뒤 1~2분 이내에 다시 소변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이도 있다. 이런 증상을 ‘과민성 방광’이라고 한다. 명순철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소변이 급해 달려가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일도 흔하다”면서 “소변을 참기 힘들어 직장을 잃는 사례도 있는 만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전문의와 상의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명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소변을 참기 힘든 것도 병에 속하나요. A.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병이라고 할 수 없겠죠. 하지만 하루 8번 이상 화장실을 가면 과민성 방광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런 환자는 어디를 가든지 화장실 위치부터 파악할 정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과민성 방광 환자의 실직률이 일반인보다 2~3배 높고 화장실에서 낙상사고를 당할 확률이 30%라고 합니다. Q. 증상이 심하면 어떻게 됩니까. A. 20~30분마다 화장실을 찾는다고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환자는 소변을 보고 돌아서서 화장실을 나오다가 다시 화장실을 들어가는 거예요. 공중화장실만 보면 요의가 느껴져서 참을 수 없는 환자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이나 교우관계가 제대로 이뤄지겠습니까. Q. 계절과도 관련이 있나요. A. 계절에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다만 겨울에는 땀이 잘 배출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방광에 소변이 많이 모여서 증상이 더 잘 나타날 수는 있겠죠. 또 갑자기 추워지거나 따뜻해지면 교감신경 기능이 높아져 방광이 더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Q. 과민성 방광의 원인은 뭔가요. A. 요로감염, 요로폐색, 방광수축력저하, 방광결석, 간질성 방광염 같은 방광요도질환 때문에 나타나기도 하고 간질성 방광염과 방광암 같은 병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성은 괄약근 약화, 남성은 전립선비대증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요. 과민성 방광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본인 스스로 증상을 줄일 순 없나요. A. 보통 ‘케겔운동’이라고 부르죠. 골반근육 강화 운동이 도움이 됩니다. 또 소변을 배출하게 하는 커피, 녹차 같은 카페인 음료와 탄산음료 섭취는 줄여야 합니다. 변비가 있으면 배에 힘을 많이 줘서 방광에 압력이 가해지죠. 그래서 섬유질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 합니다. 변비가 있으면 물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또 소변을 볼 때는 최대한 끝까지 완전배뇨하도록 연습해야겠죠. 만약 효과가 불만족스러우면 방광 예민도를 떨어뜨리는 약물치료나 신경조정술을 받으면 됩니다. 비수술적 치료로도 80%가 효과를 보기 때문에 너무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빠르다, 빠르다… 中 고속철 ‘굴기’

    빠르다, 빠르다… 中 고속철 ‘굴기’

    ‘중국 개혁 개방의 총지휘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부총리였던 1978년 10월 일본을 방문해 신칸센을 탔다. 일본 측 인사가 시속 240㎞인데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바람처럼 빠르다. 그런데 이런 기차가 일본에 왜 필요한가”라고 답했다. 고속철은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나 필요할 것 같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덩샤오핑의 신칸센 탑승 경험은 중국이 고속철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으나, 그 후 20년이 흐른 1998년에야 ‘철도 속도 제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7년간의 노력에도 기차의 시속은 140㎞에 머물렀다. 결국 2004년에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고속철 선진국에 손을 내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의 ‘고속철 굴기(?起)’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11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싸고, 빠른 고속철을 건설하는 국가가 됐다. 도대체 중국의 무슨 힘이 고속철 선진국을 추월하는 굴기를 가능하게 했을까. ●한 해 1500량 생산… 작년 매출 5조 5000억원 11일 중국 지린성 정부가 서울신문 등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창춘(長春)궤도객차유한공사의 고속철 열차 공장을 공개했다. 여의도 면적의 1.7배(490만㎡)에 이르는 거대한 공장에 들어서자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전 세계 고속철 시장의 49%를 석권하고 있는 국유기업 중처(中車)집단의 자회사로 ‘허셰(和諧·조화로움)호’로 불리는 중국의 고속열차를 한 해에 1500량씩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303억 위안(약 5조 5000억원)이었다. 중국 고속열차의 40%가 드넓은 이 동토에 세워진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모방 공장’ 아닌 고부가 첨단산업 급변하는 中 공장 내부에선 쇠를 깎는 굉음과 최첨단 전자 장비 그리고 숙련 노동자들의 민첩한 손놀림이 어우러져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비행기 격납고를 연상케 하는 규모의 개별 공장마다 열차 70량이 한꺼번에 조립되고 있었다. 1954년 철도부 직속으로 설립된 이 공장에서는 1만 8000여명의 노동자와 1200여명의 연구진이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류보(劉波) 기업문화부장은 “전국 각지에 1만 7000㎞를 깔아 본 경험과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하며 키운 기술력 덕택에 이젠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중국 고속철이 선택받을 정도로 성장했다”면서 “가격 경쟁력에서는 우리가 일본, 유럽에 앞선다”고 말했다. 조잡한 제품을 모방하던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고부가 가치의 첨단산업으로 급변하는 중국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7년 만에 전국 1만 7000㎞ 깔아… 경험 축적” 실제로 중국의 차량 경쟁력은 일본과 독일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력의 상징인 최고 속도에서도 지난해 시속 605㎞ 시험 운행에 성공해 세계 최고 기록을 깼다. 그동안 세계 1위는 프랑스가 2007년에 세운 574.8㎞였다. 한국의 최고 기록은 ‘해무’가 세운 시속 421㎞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열차의 수명은 30년 이상이며 최고 속도에서도 소음이 65dB을 넘지 않는다. 달리는 열차에서도 와이파이가 가능하며 2521개의 센서 카메라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달리는 상황에서도 지진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좌석 사이 공간이 3.36m에 이르고 높이가 4.05m나 돼 다른 국가들의 고속철보다 넓고 편안하다. ‘일본 기술을 추월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기술 담당 매니저인 왕레이(王雷)는 “각국이 중점을 두는 기술이 달라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서 “세계 유수의 메이커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자 경쟁자”라고 말했다. ●자국 고속철,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 돌이켜 보면 중국의 고속철 전략은 치밀하고 대담했다. 우선 선진국에 시장을 내어주는 대신 기술을 받아들여 자체 제작 능력을 갖췄다. 이후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 건설 노하우를 축적해 아프리카 등 우호적인 개발도상국에 차량을 수출했다. 차량 수출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차량과 빠른 건설이라는 ‘결합 상품’을 무기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더 나아가 자국의 고속철을 세계 철도기술 표준으로 만들어 한 해 900억 유로(약 250조원)에 이르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고 한다. 특히 초기의 시장과 기술의 맞교환 전략이 주효했다. 신칸센(일본)·이체(독일)·테제베(프랑스) 등은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 이전 경쟁’을 벌였고 중국은 기술을 빠르게 소화했다. 이렇게 축적한 기술로 중국은 2008년 베이징~톈진 구간을 처음으로 개통한 뒤 7년 만에 총연장 1만 7000㎞의 고속철을 깔았다. 전 세계 고속철의 60%에 해당한다. 풍부한 시공 경험은 공기(工期) 단축을 가져왔고 값싼 노동력은 공사비 절감으로 이어졌다. 건설 비용은 ㎞당 8700만~1억 2900만 위안(약 160억~230억원)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3분의2 수준에 불과하다. 공기도 유럽이나 미국의 4분의3 수준이다. 8000㎞ 길이의 고속철로를 6년이면 완성할 수 있어 ‘차이나 스피드’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특히 중국은 다양한 지질과 기후라는 악조건도 기술 향상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하얼빈~다롄 고속철은 세계 최초로 영하 40도부터 영상 40도까지 80도에 이르는 기온 차를 극복하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우루무치~란저우 구간에는 해발 3607m, 길이 16.3㎞의 고산 터널이 포함돼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풍부한 운영 경험을 쌓은 중국 고속철은 이미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터키에 고속철도 차량을 수출했고 올해 6월엔 러시아의 첫 고속철도인 모스크바~카잔 고속철도 사업을 따냈다. 중·일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반둥 간 150㎞ 고속철 공사도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 9월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일본이 눈독 들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로스앤젤레스 간 370㎞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고속철을 포함한 중국의 철도 차량 수출액은 267억 7000만 위안(약 5조원)이며 해외 시장이 80여개국에 이른다. 중국은 시 주석의 신(新)실크로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09년 고속철 해외진출 전략을 공식 발표하면서 유라시아 고속철, 중앙아시아 고속철, 범아시아 고속철 등 3개 노선의 건설을 전략적으로 추진해 왔다. 글로벌 고속철 네트워크 건설을 통해 석탄, 철광석 등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글 사진 창춘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커버스토리] 8명이 번 76억… 금값이 된 땀값

    [커버스토리] 8명이 번 76억… 금값이 된 땀값

    ‘17억원, 11억원, 24억원, 6억 7000만원, 2억원.’ 올해 국내 프로 야구·축구·골프·배구 등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선수들이 연봉과 상금 등으로 받은 금액이다. 올 한 해 동안 각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은 평범한 직장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억 소리 나는 연봉’을 챙겨 갔다. 인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에서는 이미 10억원대 연봉자가 늘고 있지만 각 구단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MVP들은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올해를 빛낸 스포츠 스타들이 흘린 ‘땀 냄새’와 그 후의 ‘돈 냄새’를 추적해 보았다. ●프로야구 테임즈 50% 올라 내년 150만 달러… 선수 평균 연봉의 14배 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에릭 테임즈(29·NC)는 시즌이 끝난 뒤 NC와 150만 달러(약 17억 7000만원)에 재계약했다. 메이저리거 출신인 에스밀 로저스(30·한화)가 기록한 190만 달러(약 22억 4300만원)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지난해 연봉(100만 달러)에서 50%가 인상된 높은 금액이다. 올해 프로야구 평균 연봉(1억 1247만원)과 비교해 봐도 14배에 달하는 고액이다. 올해 홈런 47개를 쏘아 올린 테임즈는 담장을 한 번 넘길 때마다 2500만원씩 벌어들인 셈이었다. 올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하면 내년부턴 홈런 하나당 3700만원꼴로 늘어난다. 한국 야구 최초로 ‘40홈런-40도루’를 달성하고 두 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며 활약한 테임즈의 가치를 NC가 인정해 준 결과다. 테임즈는 정규리그 MVP와 타격 4개 부문(타율·장타율·출루율·득점)에서 1위를 하며 3700만원 상당의 승용차와 상금 1200만원을 부수입으로 챙겼다. ●‘제2 전성기’ 36세 이동국 활약에 2년 연장 계약… 11억 벌어 프로축구 연봉킹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이동국(36)은 최근 소속팀과의 협의 끝에 계약을 2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2009년 입단 이후 9년간 내리 전북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전북은 올해도 13골 5도움의 활약을 펼치며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된 이동국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 정확한 금액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구단은 이동국에게 올해 연봉(약 11억원)과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돌아오는 시즌에도 올해만큼 골을 넣는다면 1골당 8500만원씩 버는 셈이다. 이는 K리그 국내 선수 중 최고 대우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지난해 국내 축구 선수 평균 연봉(1억 6300만원)의 무려 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동국의 나이가 올해 36세로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는 지났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북이 그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진다. 최강희(56) 전북 감독은 지난 1일 K리그 시상식에 참석해 “MVP는 당연히 이동국이다. 36세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해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KLPGA 전인지 24억 수익 MVP 중 연봉퀸… KPGA 이태희는 2억4000만원 201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대상을 받은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는 이번 시즌 KLPGA 투어에서 5승을 거두며 총 9억 1376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대상·상금왕·다승왕·최저타수상·베스트플레이어상 등을 휩쓸며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뿐 아니라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미국여자골프(LPGA) US여자오픈을 제패하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도 2승을 추가하며 올 한 해 동안 총 24억원을 벌어들였다. 주니어 시절부터 전인지를 낙점하고 후원해 준 하이트진로 측은 “수백억원의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됐다”며 싱글벙글한 모습이다. 또 다른 ‘태극낭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는데, JLPGA에서 활동 중인 이보미(27·마스터즈 GC)는 홀로 7승을 쓸어 담으며 2억 3049만엔(약 21억 8000만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이 액수는 일본 남녀 프로골프투어를 통틀어 한 시즌 역대 최고 상금이다. LPGA에서 활동 중인 박인비(27·KB금융)는 5승을 거두며 상금 랭킹 2위에 해당하는 263만 달러(약 31억원)를 벌어들였다. 또 연간 대회 성적을 누적해 집계하는 ‘레이스 투 CME 글로브’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15만 달러(약 1억 7700만원)를 추가로 받았다. 상금과 보너스를 합치면 32억 7700만원에 달한다. 이 같은 활약으로 박인비는 LPGA 데뷔 9년 만에 누적 상금이 1258만 달러(약 148억 5600만원)를 돌파하며 박세리(1256만 달러)를 제쳤다. 역대 LPGA 선수 중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반면 남자 대회인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며 절대 강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올해 12개 KPGA 투어에서는 각기 다른 12명의 챔피언이 탄생했다. 그중에 차곡차곡 가장 많은 랭킹 포인트를 쌓은 선수는 이태희(31·OK저축은행)였다. 그는 2190점을 기록하며 이수민(2185점·CJ오쇼핑)을 제치고 대상 타이틀을 꿰찼다. 이태희는 총 2억 4000만원의 상금을 챙겼지만 전인지가 KLPGA에서 딴 상금의 4분의1 수준에 그쳤다. 오히려 ‘한·중 핑퐁커플’ 안재형(50)-자오즈민(52)의 아들인 안병훈(24·CJ오쇼핑)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유러피언(EPGA) 투어에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시즌에만 상금 241만 7356유로(약 31억원)를 벌었다. 이와 별도로 지난 9월 귀국해 출전한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하며 상금 2억원을 추가로 챙겼다. 이 같은 활약으로 안병훈은 한국 선수 최초로 올해 EPGA 투어 신인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남자농구 양동근 6억7000만원 토종가드 연봉 1위… 여자농구 2년 연속 MVP 박혜진 2억 ‘모비스의 보배’ 양동근(34)은 지난 시즌 출전시간 1위(1886시간), 스틸 1위(97개), 어시스트 2위 (263개), 자유투 성공률 2위(85.4%)로 기록타이틀을 독식하며 MVP를 수상했다. 팀도 그의 헌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작년보다 7000만원이 인상된 6억 7000만원(연봉 5억원+인센티브 1억 7000만원)으로 보수를 정했다. 이는 국내 가드 연봉 중 1위에 해당하며, 남자 프로농구 10개 구단의 국내 선수 평균 연봉(1억 3600만원)의 5배에 달한다. 모비스의 한 관계자는 “구단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양동근이 우리 팀에서 은퇴를 하고 코칭스태프로도 성장했으면 한다”고 말하며 양동근에 대한 구단의 애정을 드러냈다. 2년 연속 MVP를 수상한 박혜진(25·우리은행)은 지난 5월에 있었던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작년보다 5000만원이 인상된 2억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박혜진은 이번 시즌에도 2라운드 MVP에 오르며 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박혜진 선수는 위성우 감독이 팀에 오고 나서 기량이 많이 늘었다. 본인도 그러한 부분 때문에 현재 구단에 만족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남자배구 3연속 MVP 레오 재계약 불발… 여자배구 이효희는 2억원 올해 4월 3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레오(25·전 삼성화재)는 재계약이 불발됐다. 당시 삼성화재는 한 시즌 역대 최다 득점인 1282점을 꽂아 넣으며 승승장구한 레오를 붙잡기 위해 서둘러 그와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막상 새 시즌이 다가오자 레오는 차일피일 날짜만 미루고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송사에 휘말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끝까지 레오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계약은 파기됐다. 레오는 아직도 새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여자프로배구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던 니콜 포셋(29·전 도로공사)은 현재 중국리그에서 뛰고 있다. 지난 2월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가 외국인 선발 방식을 바꾸면서 선발 연령과 연봉 등에 제한을 뒀는데 니콜이 여기에 걸려 한국서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MVP에 선발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 팀에 꼭 필요한 선수였는데 상당히 아쉽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니콜과 공동으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던 이효희(35·도로공사)는 2014년에 이미 연봉 2억원에 2년 계약을 하고 현재 팀에서 활약 중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프로야구] 늦게 낀 황금 장갑, 더 반짝였다

    ‘무명에서 최고 선수로….’ KBO리그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골든글러브는 ‘국민타자’ 이승엽(삼성)이 무려 10번째 수상하는 등 특급선수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상이다. 그러나 지난 8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외국인 3명이 역대 최다 수상을 기록했고, 변죽만 울리던 일부 토종 선수들이 가세해 수상자 편중 현상을 덜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외야수와 유격수 수상자인 유한준(34·kt)과 김재호(30·두산)이었다. 오랜 무명 생활로 인지도가 낮은 데다 경쟁 상대들이 강해 골든글러브와는 인연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눈물과 땀의 대가로 생애 첫 ‘황금장갑’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두 선수 모두 “오랜 세월 기다렸던 상”이라며 감격했다. 유한준은 데뷔 11년, 김재호는 12년 만에 첫 수상이다. 유신고·동국대를 졸업한 유한준은 2004년 2차 3라운드 20번째 순위로 현대에 입단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2010년 넥센 주전 자리를 꿰지만 이렇다 할 활약이 없어 주목받지 못했다. 그해 타율 .291에 9홈런 79타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로 돌아섰지만 지난해부터 타격에 눈을 떴다. 지난해 타율 .316에 20홈런 91타점으로 중심 타선에 올라서더니 올해 타율 .362(2위)에 188안타(1위) 23홈런 116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그는 넥센과의 계약에 실패하며 시장에 나와 kt와 4년 60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최형우(삼성), 손아섭(롯데), 이용규(한화) 등 내로라하는 스타를 제치고 간절히 원했던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다. 유한준은 “내년에도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김재호는 서울 중앙고를 졸업한 뒤 2004년 1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도 군 복무를 마치고 2008년 복귀했지만 간판 손시헌의 짙은 그늘에 가려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손시헌이 FA로 NC로 떠나면서 주전 자리를 확보했고 올 시즌 타율 .307(126안타)에 3홈런 50타점으로 14년 만에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게다가 ‘프리미어12’에서는 주전 유격수로 맹활약해 김하성(넥센)를 제치고 골든글러브를 움켜쥐었다. 김재호는 “오랫동안 기다린 상이다. 곧 결혼할 신부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두산의 주전 유격수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고 올해 상을 받게 돼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의정 포커스] “서민 부채 줄여 주는 빚 탕감 프로젝트 진행”

    [의정 포커스] “서민 부채 줄여 주는 빚 탕감 프로젝트 진행”

    “강북구도 성남시나 은평구처럼 빚 탕감 사업을 할 계획입니다.” 구본승(41) 강북구 행정보건위원장은 의회에서 가장 젊은 의원으로 스스로 ‘마당쇠’라 부르며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9일 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구 의원은 올해 구 예산에서 중복되는 홍보물 설치 등 뻔한 예산 낭비를 막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재선 구의원으로 지난 7월부터 시작한 두 번째 의정 활동 동안 사회경제 활성화, 소상공인 지원, 공유촉진,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촉진 등 10여개 이상의 조례를 대표 발의했다. 모두 서민들에게 힘이 되는 조례다. 그가 또 준비하는 사업은 성남시와 은평구에서 하는 ‘빚 탕감 프로젝트’다. 이름은 빚 탕감이지만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는다. 악성 채무를 건전한 부채로 바꿔 국가 경제의 암적 요소인 가계부채 문제도 해결하고, 서민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사업이다. 대부업체로부터 장기연체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면, 채무자들은 악성 사채 대신 적정 이자율의 빚을 갚으면 된다. 구 재정이 어렵지만 어려운 시민에게 가장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사업이라고 구 의원은 분석했다. 구의회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의정 활동 공개 조례’도 준비한다. 의원들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알려 의정 활동의 자극제로 삼고, 시민들의 구의회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생각이다. 구 의원의 의정 활동 목표는 자녀 교육을 위해 결혼해 강남으로 떠난 친구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연로한 부모 근처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자] (1) 주민이 앞장서 체육관 만드는 일본… “강사 섭외도 직접” 생각부터 다르다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자] (1) 주민이 앞장서 체육관 만드는 일본… “강사 섭외도 직접” 생각부터 다르다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시오이리 초등학교 3학년 간다 우시오(9)의 삶은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하는 한국 학생들과는 많이 다르다. 오후 2~3시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교내 체육관에 있는 실내 축구 교실과 수영장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공을 차고 물장구를 치며 땀을 흠뻑 흘린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큰 간다는 중·고등학교에서도 계속 축구를 할 예정이며 기회가 되면 프로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간다는 “축구 교실에 오면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이겼을 때의 쾌감도 알게 된다”며 “친구들과의 인간관계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간다의 축구 강사는 일본프로축구 J리그 도치기에서 활약했던 사사키 류타(27). 학교가 운영하는 방과 후 클럽이라고 해서 강사의 질이 낮지는 않다. 고교 시절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유망했던 사사키는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하자 유소년 양성의 길을 택했다. 한 번 수업에 받는 강습료는 1만엔(약 9만 4000원)밖에 되지 않지만,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사사키는 “내가 유치원 때부터 배웠던 축구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왔다. 프로 생활을 그만둔 뒤 주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내 재능을 살릴 기회를 얻었다. 긴 안목으로 어린 선수들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습을 통해 학창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찾은 이도 있다. 실내 비치발리볼 강사 다카다 아키히토(28)는 중학교 때 부활동으로 이 종목을 처음 접한 뒤 흠뻑 빠졌다. 하지만 비치발리볼은 일본에서 활성화된 운동이 아니라 고교 졸업 뒤에는 더이상 할 수 없었다. 다카다는 일반 대학으로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현재 강사와 선수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다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내가 좋아하는 비치발리볼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만족한다. 내 수업으로 인해 비치발리볼이 더욱 보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2년 개교한 이 학교는 5년 전부터 교내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했다. 축구, 농구, 배구, 가라테, 배드민턴, 실내 비치발리볼 등 20개 종목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은 물론 인근 초등학생과 중학생, 남녀노소 750여명이 이용 중이며 회비는 성인 기준 월 1500엔(약 1만 4000원)을 낸다. 강습료와 시설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부과한다. 이 학교가 지역 생활체육의 메카로 자리잡은 건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는 지역 재력가이자 비치발리볼 강사 다카다의 아버지 다카다 다다노리(61)를 중심으로 학부형들이 뜻을 모은 덕이다. 학창 시절 배구를 좋아했으나 마땅히 할 곳이 없어 아쉬운 기억만 가졌던 그는 학교의 탁월한 체육 시설을 주민을 위해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농구코트 2면을 설치할 수 있는 실내체육관, 25m 레인이 설치된 옥상 수영장, 육상 트랙까지 갖춘 운동장이 주민들의 체력 증진 시설로 탈바꿈했다. 도쿄도체육협회 요시다 아키코 스포츠진흥과장은 “시오이리 초교는 민과 관이 합심해 생활체육 증진에 앞장선 모범적인 사례다. 일본의 학교와 생활체육이 활성화된 건 정부의 노력보다도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오이리 초교의 프로그램은 정부가 약간의 비품 구입비를 지원한 것 외에는 모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운영된다. 주민이 직접 강사를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등 모든 것을 도맡는다. 일본 내각부가 올해 성인 1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주 1회 이상 운동을 한다고 밝힌 비율은 40.4%에 달한다. 특히 60대는 50.3%, 70대는 46.4%가 꾸준히 운동한다고 답해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일본은 은퇴로 인해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들도 발달된 생활체육 인프라를 통해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다. 일본 스포츠청 히토코토 다로 지역진흥 담당 참사관보좌는 “일본에는 총 1만여개의 야구장이 있으나 1997년 이후 중앙정부가 야구장 건립에 예산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지역에서 필요한 체육시설은 민간 등이 나서 자체적으로 건립하는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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