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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女 ‘엽기 패륜’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두 명과 어머니, 오빠 등 가족들을 실명시키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의 수법으로 6억여원의 보험금을 타낸 20대 여인이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8일 주부 엄모(29)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과 존속중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엄씨는 2000년 5월 남편 이모(당시 26세)씨의 눈을 날카로운 핀으로 찔러 상처를 내 실명하게 한 뒤 4차례에 걸쳐 이씨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붓고 흉기로 배를 찔렀다. 엄씨는 2002년 2월 이씨가 후유증으로 숨지자 보험금 2억 8000여만원을 타냈다. ●남편 2명 잇따라 같은 방법으로 살해 엄씨는 4개월 뒤 임모(31)씨와 재혼해 같은 수법으로 오른쪽 눈을 멀게 했으며, 임씨도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2003년 1월 보험금 3900여만원을 수령했다. 엄씨는 이어 2003년 7월 같은 수법으로 친어머니 김모(55)씨, 같은 해 11월에는 친오빠(31)를 실명케 했다. 특히 친오빠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링거호스에 기관지확장제를 주입, 심장발작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올 1월에는 집에 불을 질러 실명한 오빠와 동생(27)에게 화상을 입혔다. 이를 통해 가족 명의로 들어 있던 보험료 2억 7100여만원을 챙겼다. ●보험금 노리고 친가족들에까지 범행 집에 불을 내 갈 곳이 없어진 엄씨는 이전에 파출부로 고용했던 강모(46·여)씨 집에서 생활했으나 지난 2월 이곳에도 불을 질러 강씨 남편(51)을 숨지게 하고, 강씨와 딸(24)을 다치게 했다. 엄씨는 강씨 집 방화과정에서 입은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 대치동 B병원에 입원했으며 이곳에서도 불을 내려고 비상계단에 석유를 뿌렸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그러나 엄씨는 두 번째 남편 임씨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구속수사를 면했고, 지난 1일 아들이 숨진 뒤에는 장례를 핑계로 경찰 수사를 피했다. 하지만 엄씨는 장례 중인 지난 3일 아들과 같은 중환자실에 있던 교통사고 환자를 문병 온 전모(24·여)씨에게 다이어트 알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인 뒤 역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하게 했다. 경찰은 “누나 근처에만 가면 가족들이 다친다.”는 엄씨 동생의 진술을 확보, 엄씨의 행적을 추적해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엄씨의 남편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사망해 엄씨 범행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단 살인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경찰 “딸 사고사 이후 마약에 손대” 경찰은 엄씨가 2000년 2월 첫 남편 이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사고로 숨지자 마약에 손을 대게 됐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엄씨는 딸이 사망한 직후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딸을 화장한 뒤에는 불만 보면 “딸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며 방화까지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엄씨가 9개월간 보험설계사로 일한 적이 있고 범행 전 첫 남편 이씨에게 한달 만에 4개의 보험을 들도록 권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핀으로 안구를 살짝 건드리면 염증이 퍼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 등 보험과 의학관련 지식을 범행에 악용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엄씨의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엄씨에게 마약을 건네준 공급책을 파악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독자의 소리] 가정폭력 사회적 인식 확대를/신달수 법무부 청주보호관찰소 충주지소

    지난 주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술에 취해 병으로 누워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괴롭히고 자신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묶어 목 졸라 살해한 중학생이 존속살해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한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재판을 받던 가정폭력 가해자가 증언을 하려던 피해자를 법정에서 둔기로 때려 상해를 입혔다고 한다. 우리는 가정폭력에 대하여 이제까지 가정과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왔다.1998년 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가정폭력이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묵인이 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자로 전락하게 만들고 법정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 범죄는 다른 폭력사범과 다른 특징이 있다. 그것은 폭력의 행사가 지속적이고 상습화되어 있으며 그 원인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최초 경찰의 신고 당시 이미 오랜 기간동안 폭력에 시달려 왔으며 참지 못하는 극한상황에 도달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법기관은 그 피해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여 가벼운 훈방이나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 보호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제 가정폭력이 범죄행위라는 인식의 확대와 함께 국가·사회·일반국민들이 재범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방관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청소년들을 살인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달수
  • 범죄피해자 지원 어떻게

    범죄피해자 지원 어떻게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너무 미미했다. 흉악범죄가 급증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피해자들을 돕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민간차원의 지원 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범죄 피해자 보호 대책을 마련, 민간활동을 돕는 한편 재정지원책도 강구하고 있다. 피해자 지원 현황과 사례,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전국 55곳에 설립돼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지원센터의 봉사자들은 피해자와 법정에 함께 가고, 사건 진행정보를 알려주며, 의료·생계지원도 한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지원센터는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률·의료상담은 물론 생계지원까지 사례 1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아내가 남편을 청부살해한 사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아내는 구속되고, 세 남매만 남았다.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아버지가 숨진 집에서 살아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닥쳐왔다. 이에 지원센터는 아이들 집을 자주 찾아가 말 벗이 되고, 밥과 반찬도 챙겨줬다. 구청과 협의해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소년소녀가장으로 선정되도록 도왔다. 덕분에 지난 2월부터 아이들은 다달이 98만 8000원을 받게 됐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아이의 전학도 주선했다. 전세금 금융지원을 얻어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사례 2 병든 할머니와 홀로 살던 중학생 A양이 성폭행을 당했다. 지원단체는 혼돈상태에 빠진 A양을 쉼터로 옮기고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자원봉사자가 매주 방문, 청소하고 밑반찬을 만들었다.A양도 안정을 되찾고 학교에 다시 등교하고 있다. 사례 3 피해자 B(16)양과 C(19)양은 의붓아버지에게 4년간 성폭행을 당했다. 친어머니는 딸들이 산부인과 치료를 받을 만큼 다쳤는데도, 거짓말이라며 아버지를 두둔했다. 충격을 받은 아이들에게 지원센터는 정신과 치료 등을 무료로 받도록 돕고, 학비도 지원했다. 취업을 원하는 큰 딸이 중소기업에서 면접을 보도록 주선했다. 사례 4 강도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 D씨는 법정 증인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상황이 떠올라 D씨는 가해자를 마주하기가 겁났다. 연락을 받은 검찰 직원이 D씨 집을 방문, 함께 법정까지 갔다.D씨가 증언하는 동안에도 직원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D씨는 “낯설고 두려웠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사고로 처음 시작 피해자보호센터는 2003년 9월 대구지하철 사고 200일을 맞아 구미에서 처음 개설됐다. 지하철 방화로 목숨을 잃은 190명의 유족들에게 체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공기관은 아니고 민간에서 만든 기관이다. 지난해 7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붙잡히면서 피해자보호 활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전체 범죄건수는 205만 8360건으로 2003년(191만 6631건)보다 7.4% 증가했다. 살인 4.8%, 강간 10.1%, 폭력·협박 42.1%, 절도 61.6% 늘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범죄피해자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민간 지원센터 설립을 지원했다.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 중앙센터를 비롯해 전국에서 센터가 잇따라 들어섰다. 상담과 더불어 의료·법률지원, 살인 현장 청소도 맡고 있다. 중앙센터 최혜선 사무처장은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10년 동안 악몽에 시달리다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면서 “피해자 대부분이 작은 도움에도 감동하고 위로받는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 조균석 차장검사는 “앞으로 전문가가 경찰과 함께 사건 현장에 출동, 피해자를 상담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면서 “체계적 지원만이 2차,3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원부족이 걸림돌 민간이 주도하는 지원센터는 재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법무부는 피해자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지원센터를 후원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 사무실을 빌려주는 것 외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규정한 ‘피해자보호법’을 입법예고했지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피해자 지원대책을 기다리느라 처리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원센터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우 크다. 월급을 주지 못해 상근자가 떠나고, 자원봉사자 교육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일반 후원금도 없는데 정부까지 지원하지 않으니 대부분 문 닫을 형편”이라면서 “초창기엔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미·김천시의 경우 설립할 때 약속대로 매년 1억원씩 후원하고 있다. 활동도 활발해 1년 6개월 만에 상담건수는 1000건을 웃돌고 있고, 후원자도 302명으로 늘었다. 법무부는 최근 지원센터를 긴급 지원하고자 국무총리 산하 복권위원회에 복권기금 61억원을 신청했다. 한 검사는 “범죄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면서 “범죄·재해피해자를 사회적 소수로 인정,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영철사건 피해자 지원은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 유족은 어떤 지원을 받았을까. 일부 유족들이 정부가 지급하는 범죄피해자구조금 100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사건 피해자는 여성과 노인 20명.2명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3명의 유족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자 15명의 유족만 수사를 받거나 법정 증인으로 나섰다. 피해자 7명의 가족은 지난해 10월에,4가족은 지난달에 구조금을 신청해 받았다. 매년 5월과 10월 주던 구조금을 앞당겨 지급한 것이다.4가족은 신청자격이 되지 않았다. 구조금은 각 가족당 1000만원. 유족이 여러명인 경우 300만원이나 500만원씩 나눠가졌다. 그러나 구조금이 적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범죄 피해자가 사망하면 1000만원,1∼3급 장애를 입으면 300∼600만원을 준다. 합의금이 없는 경우엔 치료비에도 훨씬 못미치는 액수다. 신청요건도 까다롭다. 피해자가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고, 가해자가 친인척이면 안 된다. 또 피해자의 잘못으로 사건이 발생해도 구조금을 신청할 수 없다. 이에 지난해 신청 123건, 지급액 6억 4940만원에 그쳤다. 이는 일본보다 30배 적은 수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유영철 사건으로 구조금이 알려져 신청은 늘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여전히 돈을 받는 피해자는 적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선진국 사례 범죄 피해자 지원은 1970년대 미국과 영국·독일 등에서 처음 시작했다.1995년에는 일본도 뒤따랐다. 미국은 1975년 전국피해자지원기구(NOVA)를 설립한 뒤 ‘피해자 및 증인보호법’과 ‘범죄피해자법’을 잇달아 만들었다. 지원단체는 1만여개. 심리학자·변호사·사회활동가·의사가 상담·진단·치료를 맡는다. 정부는 벌금 중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단체를 후원한다. 처음엔 우리나라처럼 가해자가 가족이면 보상받지 못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영국은 증인보호협회가 피해자를 지원한다. 자원봉사자는 범죄가 발생하면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피해자를 위로하고, 정신과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를 소개한다. 독일은 1976년 ‘범죄피해자보상법’을 만들었지만,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호응을 얻지 못했다.1986년 법률을 바꿔 혜택을 늘렸다. 경찰이 앞장서 피해자 지원단체를 세웠다. 전국 400개 단체에서 자원봉사자 23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보상금 신청은 물론 수사·재판에도 함께 간다. 자금은 회원 회비와 기부, 벌금으로 채운다. 스위스에선 정부가 주민 수를 기준으로 범죄 피해자 단체에 지원금을 나눠준다. 단체는 2년마다 회계보고서와 제공한 서비스를 보고해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 말 한 어린이가 트럭에 부딪혀 사망하면서 피해자 지원에 눈을 떴다. 피해아동 아버지는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전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가해자가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그는 “어린 아들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울부짖었다. 그의 울분은 일본 대륙을 뒤흔들었다. 가해자는 기소됐고, 정부가 관계 부처회의를 열어 범죄피해자 지원대책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지원센터도 이때 만들어졌다. 국회에선 관련 법안을 만들었다. 범죄피해자는 각종 정보는 물론 피해보상금, 공영 임대주택 우선 입주권도 얻는다. 범죄피해자를 노인·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 인정, 복지 혜택을 준 것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오랜만에 듣는 ‘대장간의 합창’

    오랜만에 듣는 ‘대장간의 합창’

    올봄 오페라 무대는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고정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만나볼 수 없었던 명작무대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38년만에 ‘마탄의 사수’를 국내 공연하더니 이번에는 ‘일 트로바토레’가 관객들을 설레게 한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신경욱)이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새달 7일부터 10일까지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린다.1960년 5월 고려오페라단이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 공연된 적이 몇 차례 없었던 드문 무대다. 베르디의 대표작이면서도 국내 무대가 드물었던 가장 큰 배경은, 노래가 유달리 많은데다 여러모로 스케일이 방대해 제작을 엄두내기가 어렵다는 점. 노래를 무리없이 소화해낼 가수를 물색하는 작업 자체가 국내 형편으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공연계의 해설이다. 거기에 비극으로 점철되는 내용도 쉽게 대중들을 포섭하기에 버거워 제작자들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혀왔다. 영주는 자신의 아들에게 마법을 씌운 죄로 집시 노파를 화형에 처하고, 집시의 딸은 다시 영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유괴하면서 빚어지는 비극이 주요 줄거리. 집시 노파의 화형이 끝난 잿더미 속에서 아이의 유골이 섞여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형이 친동생을 무참히 살해하게 되는 끔찍한 비극이 재연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장간의 합창’‘저 타는 불꽃을 보라’ 등 이 작품만큼 유명한 합창과 아리아를 많이 내놓은 오페라도 드물다.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활약해온 노장 안토넬로 마다우 디아즈가 연출을 맡았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대단히 어려운 오페라이지만, 이 작품을 연출한 경험이 여덟차례나 되는 만큼 역동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무대를 꾸며볼 것”이라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박탕 조르다니아가 지휘한다. 테너 김남두, 카멘 치아니, 소프라노 폴라 델리가티, 김인혜,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가브리엘라 포페스쿠, 바리톤 양효용, 김승철, 베이스 임철민, 김요한 등이 출연한다.3만∼15만원.(02)399-172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제2의 O.J 심슨’ 블레이크 4년만에 무죄 평결 ‘눈물’

    결혼후 6개월된 아내를 총기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제2의 O J 심슨’으로 불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71)가 4년 만에 결국 무죄 평결을 받았다. 16일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이 평결 결과를 낭독하자 블레이크는 미소지으며 변호인를 껴안은 뒤 머리를 책상에 대고 울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려 변호인이 건넨 물컵을 엎지를 정도로 거의 졸도 상태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나는 희망을 잃어본 적이 없다.”며 “여러분이 백만년을 산다한들 나보다 더 은총받은 이를 만나기 힘들 것”이라며 감격했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지난 1967년 영화 ‘차가운 피’에서 형장으로 향하는 살인범 연기로 각광을 받았고 70년대 인기 드라마 ‘베레타’로 에미상까지 수상한 블레이크는 지난 2001년 5월 아내 보니 리 베이클리(당시 44세)를 이탈리아식당 앞에 주차된 자동차에서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검찰은 처음엔 베이클리의 의도적 임신으로 결혼의 덫에 걸렸다고 생각해 격분했던 블레이크가 나중엔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로지에게 푹 빠져 모녀간을 떼어놓으려 했었다고 주장했다. 베이클리는 블레이크와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말론 브랜도의 아들 크리스티안과 양다리를 걸칠 정도로 남자관계가 복잡했다. 유전자 검사에서 블레이크가 생부라는 사실이 확인돼 2000년 11월 결혼했다. 현재 4살인 로지는 블레이크의 성인 딸이 키우고 있다. 블레이크는 베레타를 끝으로 사실상 은퇴한 상태였고 이번 재판에 1000만달러 이상을 써 ‘알거지’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삶을 바꾼 7시간

    미국의 기독교 가정이라면 거의 모두 소장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이 법정 살인극을 벌인 흉악범의 ‘백기투항’을 이끌어냈다. 헤어진 애인을 강간한 혐의로 지난 11일 재판을 받던 중 총기를 난사해 판사 등 4명을 살해한 브라이언 니콜스(33)는 이튿날 새벽 애틀랜타 근교 아파트 주차장 앞에서 애슐리 스미스(26)와 맞닥뜨렸다.3년 전 남편이 흉기에 찔려 숨진 뒤 5살난 딸을 친정에 맡기고 음식점 종업원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스미스는 결박당해 화장실 욕조에 처박혔지만 결코 평온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경우 딸이 고아가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녀로부터 “식사다운 식사”인 팬케이크를 대접받은 니콜스는 그녀를 완전히 믿게 됐고, 이내 스미스는 서가에 꽂혀 있던 이 책의 한 구절을 니콜스에게 차분히 들려주었다. 니콜스가 자신과 맞닥뜨리게 된 것도 하느님의 섭리이며, 교도소로 가게 될 그의 운명 또한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 전도에 나서라는 ‘삶의 목적’을 부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니콜스는 다시 한번 들려줄 것을 요구했고 스미스가 응하자 7시간만에 그녀를 풀어주었다. 경찰이 다가오자 그는 입고 있던 흰색 셔츠를 벗어 흔들며 투항했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새들백 밸리 공동체 교회 담임목사인 릭 워런이 쓴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는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욱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애슐리는 14일 밤 미 전역에 방송된 TV인터뷰에서 “니콜스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며 나를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로 여겼다.”며 “니콜스가 범행 현장을 중계하는 TV 화면을 보면서 ‘정말 내가 저기 있었느냐.’고 했다.”며 울먹였다.CNN도 워런 목사를 출연시켜 책에 얽힌 뒷얘기들을 다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가족을… 무너지는 가정

    ■ 명문대 출신 20대, 아버지 살해청부 어머니와 짜고 인터넷 청부용역카페에 아버지의 살해를 의뢰한 유명 사립대 출신의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범행을 공모한 어머니가 이미 숨져 살해 동기 등 사건의 전모는 의문을 남긴 채 미궁으로 빠지게 됐다. ●“교통사고보다 폭탄이 확실” 가족이 더 적극적 서울 수서경찰서는 7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청부용역카페에 사제폭탄으로 유명대학 교수인 아버지(52)를 살해해달라고 부탁한 김모(25)씨를 존속살해 예비·음모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이미 구속된 ‘제거전문킬러’라는 카페 운영자 김모(29)씨에게 “계획이 성공하면 장례식이 끝난 뒤 3일 안에 1억원을 주겠다.”며 아버지 살해를 제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은 지방에서 따로 생활하는 남편 모르게 신용카드 과다사용 등으로 진 빚 8000만원으로 고민하던 어머니 박모(50)씨가 아들에게 먼저 제의했다. 이들은 강의가 있는 주중에 김 교수가 머무르는 대학 숙소의 주소와 출퇴근 경로, 주차위치 등을 카페 운영자에게 넘겨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어머니가 ‘아버지가 죽으면 나오는 보험금 등 2억원 가운데 1억원은 빚을 갚고,1억원은 사례비로 주자. 아버지가 없으면 우리 둘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면서 “평소 자식이 아니라 제자를 대하는 듯한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고, 어머니가 불쌍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가 이전에도 다단계로 1억 3000여만원의 빚을 져 변제과정에서 남편과 불화를 겪었다.”고 전했다. ●‘킬러’검거로 덜미…어머니는 스스로 목숨 끊어 이들의 범행은 지난달 24일 카페운영자 김씨가 다른 범행으로 경찰에 붙잡히면서 들통났다. 경찰은 김씨의 은행 계좌 입금내역을 확인한 뒤 곧바로 이들 모자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김씨는 조사 과정에서 “어머니가 빚 독촉을 받고 있었고, 나 역시 지난해 12월 대전 유성 터미널에서 머리에 둔기를 맞고 납치됐다.”고 거짓 진술했다. 경찰은 “납치 시점 등에 대해 모자의 진술이 엇갈렸고, 김씨의 머리에도 둔기에 얻어맞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카페운영자와 아들이 통화한 내역이 확인되자 아들을 추궁했다. 카페운영자의 소지품에서는 아들과 아버지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등이 나왔다. 어머니 박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지 나흘 만인 지난달 28일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반항하거나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아들과 아내가 그랬을리 없으며, 강압수사로 허위 자백했다.”고 서울 동부지법에 탄원서를 냈다. ●“나도 죽여달라?”의문점 남아 사건은 모자가 짜고 아버지를 죽이려 한 ‘인면수심 살인극’으로 일단 결론이 났지만, 핵심 열쇠를 쥔 박씨가 숨지는 바람에 수사는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 먼저 박씨가 처음 범행을 의뢰할 때 제3자를 가장,“김씨 부부를 죽여달라.”고 자신의 살해까지 청부한 것으로 드러나 궁금증을 낳고 있다. 아들의 진술대로 돈을 노린 범행이라면 박씨가 자신도 죽여달라고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 교수가 평소 “내가 죽으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해왔으며, 김 교수가 사망했을 때 보험금도 1억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등도 단순히 돈만을 염두에 둔 범행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메일 내역을 모두 삭제할 정도로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하려 한 이들 모자가 경찰에서 허술하게 둘러대다 덜미가 잡힌 부분도 석연치 않다. 엄격한 아버지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살인계획에 동참했다는 아들의 행동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다른 목적으로 단독범행을 저지른 아들이 숨진 어머니에게 혐의를 미뤘거나 제3자가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목숨을 끊기 직전 남편에게 ‘미안하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지만, 어머니의 이메일 아이디를 알고 있는 아들이 위장한 것일 수도 있다.”면서 “단독범행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실직가장, 아내·아들 죽이고 딸은 중태 사업에 실패한 뒤 실직자로 지내던 30대 가장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 11살짜리 아들을 살해하고,9살짜리 딸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태에 빠뜨렸다. 대구 달서경찰서에 따르면 6일 오후 10시쯤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모 아파트에서 최모(39·무직)씨는 아내 김모(33)씨가 “취직은 않고 술만 마신다.”며 이혼을 요구하자 말다툼을 벌이던 중 흉기로 김씨를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잠자고 있던 아들을 목졸라 숨지게 했다. 최씨는 이어 딸에게도 목을 조르고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딸은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경찰조사 결과 최씨는 지난 93년 모 자동차회사에서 퇴직한 뒤 식당과 비디오가게 등을 운영하다 장사가 안돼 그만두고,3년여 전부터 일정한 직업 없이 지내오다 미장원을 하며 생계를 꾸려오던 아내와 부부싸움이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내가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자주 이혼을 해 달라고 하기에 술김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7일 최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끔찍한 인터넷 심부름카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인터넷 청부용역 카페에 부인과 자녀의 살인을 의뢰한 비정한 가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 이 청부용역 카페 운영자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압력에 시달리던 50대 주부는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8일 인터넷 청부용역 카페에 부인과 두 자녀의 살해를 청부한 이모(36)씨와 ‘살인계획’을 짠 카페 운영자 김모(29)씨를 살인예비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부인(32)과 딸(8)·아들(5)이 사고로 모두 사망했을 때 4억원 남짓 지급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에 가입한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청부용역 카페에 살인을 의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씨로부터 “세 사람을 살해하면 5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와 함께 ‘착수금’ 400만원을 받고 살인을 저지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이른바 대포차량으로 외출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치어 살해하려 했으며, 이 시도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집안에 LP가스를 틀어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경찰은 이씨가 5년 전 컴퓨터 관련 직장을 그만둔 뒤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카페를 개설한 김씨는 또 캐나다 유학생 정모(20·여)씨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남자친구의 하반신과 오른손을 못쓰게 해달라.”는 의뢰와 함께 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오전 7시45분쯤 김씨로부터 빚독촉을 받던 박모(50·여)씨가 강남구 대치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방산업체에 근무하는 아들(25)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12월 말 한 남성으로부터 “빚 8000만원을 받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선수금 160만원을 받고 박씨를 협박해 왔으며, 아들이 2차례에 걸쳐 6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이 대학교수인 박씨는 김씨가 일가족을 청부살인하려한 혐의로 검거된 뒤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일단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로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백문일의 국제경제 읽기] 中경제의 걸림돌 ‘性比 불균형’

    1850년 중국의 한 북부지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뭄과 기아로 식량이 부족하자 마을 어른들은 여자 아이들을 대거 살해했다. 이후 이곳 남자들의 25%는 신부가 없어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범죄집단으로 무리를 짓다가 군벌에 편입됐다. 남자가 여자보다 많아 지역사회를 황폐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렇다면 성비(性比)의 불균형이 중국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는 성비보다 인구 수가 관심이다. 머릿수가 노동력이자 소비의 원천이기 때문에 인구가 많을수록 성장 잠재력에 보탬이 된다. 그러나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 인구 증가는 성장에 ‘짐’이 될 수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선 경제가 부양할 수 있는 ‘적정 인구선’을 넘으면 식량부족과 실업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중국이 10년간 9%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도 ‘1자녀 갖기’ 정책을 추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당국이 두 번째 아이를 강제 낙태시키는 끔찍한 ‘행정력’까지 불사해 인구 억제책은 부분적으로 성공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들을 얻는 것을 일종의 ‘노후 보장책’으로 보는 중국의 풍토에선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아들을 포함해 2자녀 이상을 두면 세금 등 각종 불이익을 받자 남아선호 사상에 물든 중국인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성별부터 가렸다. 여아로 확인되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낙태시켰다. 그 결과 중국 어린이들의 남녀 성비는 지난해 119대100으로 나타났다. 세계 평균인 105대100보다 불균형이 훨씬 심하다.20년 이내에 중국 남성 3000만∼4000만명이 결혼할 짝을 못 찾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농촌지역의 초·중등학교에서는 75% 안팎이 남자다. 미 브리그햄 영 대학의 밸러리 허드슨 교수는 행동분석적 측면에서 ‘총각 신드롬’을 밝혔다. 기혼 남성들은 가족들을 위해 법과 질서를 지키지만 미혼 남성들은 살인과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론에 불과하지만 미혼 남성들의 증가는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재정부담을 높여 중국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딸만 둔 가정에 연 180달러씩 지급하려 하지만 별무신통이다. 선진국은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로 연 0.5% 포인트씩 성장이 둔화될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인구가 많은 게 고민이지만 나중에는 ‘득’이 될 수 있다.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1자녀 갖기’보다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성비 불균형이나 빈부격차 해소에 더 주력할 때인 듯싶다.
  • 아들등 가족, 돈노려 아버지 청부납치 기도

    가족들의 사주를 받은 무허가 경호업체 소속 경호원들이 거대 종교단체 대표를 청부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은 최근 심부름센터 직원이 생모를 살해하고 영아를 납치한 엽기 사건으로 경찰이 사생활 침해사범에 대한 특별단속에 들어간 가운데 발생했다. 강원 횡성경찰서는 26일 아버지가 관리하는 현금 2700억원을 노린 큰아들 등 가족들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약속받은 뒤 D종교단체 종무원장 경모(83)씨를 납치하려 한 박모(27)씨 등 사설 경호업체 직원 4명을 긴급체포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납치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달아난 이 경호업체 대표 정모씨 등 3명은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5일 오전 9시50분쯤 횡성읍 읍하리 J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경씨를 납치하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량의 타이어를 파손시킨 뒤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때마침 이를 목격한 환자 김모(35)씨의 신고로 박씨 등 4명은 붙잡히고 나머지 3명은 달아났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FGI’라는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로 경씨의 장남(65)과 며느리, 딸, 사위, 외손자 등 가족 5명으로부터 수억원의 사례금을 받기로 하고 납치를 의뢰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난 22일부터 가스총과 야구방망이, 무전기 등을 소지한 채 횡성지역에 머물며 모의했다. 경씨는 D종교단체의 횡성도장 건립을 위해 횡성읍의 한 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납치를 의뢰한 가족들은 아버지가 송사를 벌이고 있는 이 종교단체 대표 확인소송에서 승소하면 2700억원의 현금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노려 아버지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 단체는 산하에 각급 학교재단, 의료재단, 영농법인 등을 거느리고 있다. 횡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일요영화]

    [일요영화]

    ●우나기(MBC 밤 12시30분) ‘나라야마 부시코’ 등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1997년작.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평범한 회사원 야마시타는 어느날 익명의 편지를 받고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다. 배신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는 아내를 살해하고 곧장 자수한다.8년 뒤, 모범수로 가석방된 야마시타는 작은 이발소를 차리고 새 삶을 시작하지만, 우연히 기르게 된 뱀장어(우나기)만을 말벗으로 삼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은둔자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야마시타는 근처 연못가에서 자살하려던 여자 게이코를 구해 주고 이발소에서 일하게 해준다.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예전 감방 동료가 나타나 야마시타의 과거를 폭로하는가 하면, 게이코의 애인이었던 도지마가 이발소로 찾아오는 등 크고 작은 소동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급기야는 도지마가 불량배들을 이끌고 이발소로 들이닥치는데….117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에블린(KBS1 오후 11시50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 2002년작. 피어스 브로스넌, 소피 바바소 출연.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불합리한 가족법 때문에 딸과 생이별한 아버지의 실제 투쟁을 영화화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도일은 올해 일곱 살 난 딸 에블린과 아들 둘, 아내와 함께 조촐히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도일이 실직자 신세가 되고 아내까지 집을 나가버리자 아이들은 가족법에 따라 강제적으로 수녀원으로 보내진다.92분.
  • 펄벅 평전/피터 콘 지음

    펄벅 평전/피터 콘 지음

    ‘펄벅평전’(피터 콘 지음, 이한음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읽으면서 펄 벅(Pearl S. Buck)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설인 ‘대지’의 또 다른 주인공을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펄 벅의 80 평생은 소설의 주인공 왕룽일가의 일대기만큼이나 파란만장하고 거친 것이었다. 왕룽일가는 펄 벅이 평생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살며 만난 평범한 중국인들의 전형이었고, 그의 몸속 깊이 체화된 채 삶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유전자 같은 것이었다. 오래 전 ‘대지’를 감동적으로 읽으며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점에 놀랐고, 어떻게 한 외국인 여자가 격변기 중국의 모습, 그것도 표피가 아닌 속살의 모습을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이번 평전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요, 작가로서의 명성에 가려진 사회운동가 펄 벅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한 조명이라고 할 수 있다. 펄 벅의 삶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그는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선교사인 부모와 함께 중국에 건너와 40여년간 거대한 대륙에서 펼쳐지는 격변기의 풍랑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1934년 일본의 침략으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치솟으면서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두 나라를 모두 사랑하고 가슴에 품었지만 한 평생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아웃사이더로 살아간 ‘파란 눈의 동양인’이었으며,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문화적 이중초점’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지’의 주인공들, 즉 평범한 중국인들은 그의 인생, 특히 작품활동과 사회운동에 강력한 유전자로서 작용했다. 관습처럼 행해지던 여아살해를 피해 살아남으면 전족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고, 성장하면 남편과 아들에게 단순한 일꾼이요 종 노릇을 넘기 어려웠던 중국 여성들의 고난은 그를 훗날 맹렬한 여성운동가로 인도한다. 또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가족을 팽개친 채 전도에만 열중하는 아버지와 그로 인해 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어머니, 지체아인 딸, 인종차별적인 개신교 선교사들의 모습도 그의 머리에 그대로 각인된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작품활동과 함께 왕성한 인권운동을 펼친다. 일곱명의 아이를 직접 입양해 길렀고, 미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 개선, 버려진 아이들을 돕기 위한 여러 기구들을 설립 운영했다.1950년에 설립한 웰컴하우스,1964년에 세운 펄벅재단이 이같은 활동의 중심이 됐다. 특히 펄벅재단(후일 ‘펄벅인터내셔널’로 바뀜)은 아시아 10여 나라에서 미국인과 동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2만 5000명에게 의료혜택과 교육기회를 제공해왔다. 또 동서협회 설립, 잡지 ‘아시아’ 발행 등 동서문화 이해와 교류에 적극 나섰으며,1940년대엔 악명높은 중국인 이민배제법 철폐운동,2차대전 때는 일본계 미국인 억류정책에 대한 강력한 항의운동을 펼쳤다. 이는 그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살며 동서양간 몰이해의 폭을 조금이나마 좁혀보려는 몸부림이었다. 그같은 인종적 몰이해에서 얼마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정책과 행위들이 표출됐는지, 그는 몸소 체득해온 터였다. 이같은 활동은 상당수의 미국 보수층 백인들의 반발을 샀다. 적극적인 인권활동은 우파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반공산주의 발언으로 좌파의 불신을 받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FBI의 적대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평전엔 펄 벅의 사회활동 안쪽에 숨은 인간적인 내밀한 삶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특히 중국에서 성장하면서 광신적인 아버지 아래서 겪었던 외로움과 소외감, 조개 속 모래알처럼 불편했던 첫 결혼생활과 이혼, 지체아로 낳은 아이를 키우던 고통 등. 그는 고독하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노심초사하면서도 당당하고 때로는 독선적일 정도로 일에 몰입한다. 그러면서도 부모와 자식에게 얽매여 있고, 온갖 마음의 상처들을 곱씹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펄 벅은 이같은 개인적 삶의 내밀한 모습들을 그가 죽기 직전 낸 자서전에서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 ‘나의 세계’에선 자신의 부모는 물론, 첫번째 및 두번째 남편인 로싱 벅과 리처드 월시의 이름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저자는 이 책을 ‘문화일대기’라고 지칭한다. 일반인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왜곡되어 있던 당시 중국과 미국의 분위기와 문화, 인물들이 펄 벅과 함께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격변기의 중국과 미국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십년 동안 그녀의 집과 활동본부 역할을 한 필라델피아 북부 벅스 카운티에 있는 그린힐스 농장은 지금 펄벅인터내셔널 본부이자 펄벅기념관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펄의 침실엔 비단옷, 도자기, 서예작품 등 중국 물품들이 유리상자에 담겨 있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19세기 중국 여성들의 뭉개진 발을 담던 전족신 한 쌍이다. 펄은 평생 이 ‘아름다운’ 물품을 가까이 두고서 권력이 약자에게 일상적으로 어떤 고통을 가하는지 끊임없이 되새겼다고 한다. 펜실베이니아대 영문과 교수이자 펄벅인터내셔널 위원장인 지은이 피터 콘은 평전 집필에 대해 두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펄 벅의 진면모와 활화산 같았던 그의 생애를 되살려내기 위해, 또 하나는 제니퍼 경 콘이란 딸을 얻게 해준 개인적 빚을 갚기 위해서다. 제니퍼 경 콘은 20년 전 김경림이란 이름으로 영양실조와 온 몸에 염증이 난 상태로 그의 삶 속에 들어왔고, 지금은 대학졸업 후 요리사이자 작가로서 뉴욕시에 있는 한 재단에서 집 없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고 한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후세인 측근 ‘케미컬 알리’ 법정 심리

    |바그다드 AFP 연합|쿠르드족 수만명을 학살해 악명을 떨쳤던 알리 하산 알 마지드(일명 ‘케미컬 알리’)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측근 중 가장 먼저 18일(현지시간) 이라크 법정에 출두, 심리가 진행됐다. 이번 심리는 후세인과 측근 11명에 대한 재판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한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라드 알 주흐이 수석판사는 이번 심리는 정식재판과는 별도로 진행된 것으로 정식 재판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고 BBC와 CNN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심리가 끝난 뒤 언론에 공개된 비디오에 따르면 ‘케미컬 알리’는 전 국방장관 술탄 하심 아흐마드와 수갑을 찬 채 이라크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에 나타났다. 이라크 남부군 전 사령관이자 후세인의 사촌인 알 마지드는 쿠르드족 약 10만명을 학살한 혐의로 지난해 8월 미군에 의해 체포됐다. 한편 총선을 6주 앞두고 19일 나자프에 폭탄테러가 발생,30여명이 숨지고 바그다드의 하이파거리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3명이 총격을 받고 숨지는 등 무장세력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18일에는 압델 살람 아레프 전 이라크 대통령의 딸과 사위가 바그다드 자택에서 무장 괴한들에 살해되고 손자가 납치됐다.
  •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1793년 프랑스혁명의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인 장 폴 마라는 고질인 피부병 때문에 반신욕을 하며 집무를 보던 중 반대파의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마라의 동지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3개월 만에 완성한다. 암살자가 들고 온 편지, 피묻은 칼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듯 화면에 그대로 놓여 있는 ‘기록화’ 같은 작품이다. 자객의 단검에 살해된 마라의 시신은 실제로는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마치 격무에 시달리다가 잠이 든 ‘시민의 일꾼’ 같은 모습으로 이상화했다.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그림이 10여 개월의 복원과정을 거쳐 새 단장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는다. 21일부터 내년 4월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가 바로 화제의 전시다. 소개되는 화가는 다비드, 푸생, 부셰,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코로, 모네, 시슬레, 피사로,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뒤피, 피카소, 들로네 등 88명. 미술애호가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이다. 프랑스 랭스미술관에서 70여점을 대여받은 것을 비롯,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릴, 말로, 몽펠리에, 피카르디 미술관, 트루아 역사박물관 등에서 모두 119점의 작품을 빌려 왔다. 전시는 시대별로 서양 미술 400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7세기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한 장중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국립 미술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고전주의 양식,18세기 귀족사회가 낳은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 산업기술의 발달로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사조들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와 20세기 야수파, 큐비즘 등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초대형 전시인 만큼 전시작 중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마티스가 친필 글씨를 새겨 랭스미술관에 기증한 ‘재즈’ 판화집, 엽서 한 장 크기인 1호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여인의 코발트빛 옷과 장밋빛 혈색이 생생하게 묘사된 르누아르의 유화 ‘대본낭독’ 등이 공개된다. 특히 ‘대본 낭독’은 워낙 크기가 작아 도난 위험이 커 한번도 해외에서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지만 특수액자를 제작해 이번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고대의 여러 조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앵그르의 두 작품 ‘샘’과 ‘물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본 작품들이다. 이밖에 근대회화의 시조인 푸생의 ‘두 발을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 뒤프레누아의 ‘리코메드 왕의 딸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율리시스에게 들킨 아킬레스’,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의 ‘협로’,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벨 일의 바위’, 피사로의 ‘루브르’, 고갱의 ‘건초 말리는 사람’, 뒤피의 ‘마리-크리스틴 카지노’, 고갱의 판화 ‘테 아릴 바이네(왕가의 여인)’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입장료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02)2113-347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남편살해 여성 83% “상습 학대 경험 있다”

    남편살해 여성 83% “상습 학대 경험 있다”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 그 절반은 남편을 상대로 범행했으며 이들 남편살해범의 83%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법무부가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김영희 교수에게 의뢰해 지난 1월 청주여자교도소 수감자 436명을 심층면접한 결과 드러났다. 청주여자교도소에는 전국 살인죄 여성수감자의 96%가 수용돼 있다.‘남편살해 여성의 심리사회적 특성’보고서는 15일 서울여성의 전화 주최의 토론회에서 보고된다. 여성수감자의 살해 대상과 동기를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여성 살인범 절반이 “남편 죽였다”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 531명 중 조사에 응한 436명을 면접한 결과에 따르면 57.1%인 249명이 살인을 저질렀으며 이 가운데 남편을 살해한 경우가 53.4%에 달했다. 남편살해 여성의 82.9%가 폭력 등 상습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25%는 결혼 전부터 한달에 한번꼴로 폭행을 당했으며, 남편이 자녀나 친여동생을 성폭행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의처증에 시달렸고, 남편이 집안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경우도 조사됐다. 일부 남편은 성장한 딸의 옷을 벗기고, 아내에게 무릎을 꿇도록 강요, 위에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대부분 의처증으로 고통받아 남편 A(54)씨는 술만 마시면 아내 B(55)씨가 살림을 못한다며 때렸다. 지난해 5월 술취한 남편은 반찬이 맛없다며 입속 음식물을 뱉어 아내에게 던지려 했다. 두 딸이 말렸지만, 남편의 욕설과 행패는 4∼5시간이나 계속됐다. 참다 못한 아내는 이불로 남편의 얼굴을 감싼 채 20여분간 목을 졸랐다. 딸들은 아버지의 팔, 다리를 잡았다.B씨는 살인죄로 징역 5년을, 딸은 존속살해방조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여성 살인범들은 남편을 살해한 동기로 44.5%인 57명이 폭행,35.2%가 치정,15.6%가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원한(7.8%)·격분(7.8%)·격투(7%)가 뒤를 이었다. 이들은 남편을 살해할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사라진다는 것 이외에 재판을 받거나 교도소에 갇힌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27%가 무기징역을, 나머지는 평균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남편살해 여성의 또다른 특징은 결혼 전 교제기간이 짧았다는 것이다.6개월 이하가 41.6%로 가장 많았고,6개월∼1년(31.5%),1∼3년(18%),3년 이상(6.7%) 순이었다. 정은주 박경호기자 ejung@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레옹2 와사비(SBS 오후 11시45분) 뤽 베송이 제작,각본을 담당하고 ‘택시 2’의 제라드 크라직 감독이 연출한 코믹 액션물.19년 전 자신을 떠난 일본인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건너간 프랑스 경찰관이 생면부지의 딸과 만나게 되고,거액의 돈과 야쿠자가 개입된 애인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파리경찰청 소속의 위베르 경사(장 르노)는 어느날 용의자를 체포하던 중 경찰국장의 아들에게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2개월간 정직당한다.그런 와중에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19년 전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일본인 아내 미코가 유일한 상속자로 위베르를 지명하고 죽었다는 것.도쿄로 날아간 위베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액의 유산과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딸 유미(히로스에 료코).위베르는 결국 미코가 일본 정부요원이었으며,야쿠자 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조직 내부에 침투해 야쿠자 두목의 돈을 빼돌렸기 때문에 살해됐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105분. ●마지막 일몰(EBS 오후 1시50분) 로버트 앨드리치 감독의 1961년작.커크 더글러스,록 허드슨,도로시 앨런 주연.급진주의자였던 감독의 영향으로 정치적 혼란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도 도덕이 무너진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브렌던 오말리(커크 더글러스)는 과거의 연인 벨(도로시 맬런)을 찾아 멕시코에 도착하지만,그녀는 이미 한 술주정뱅이의 아내가 돼 있다.벨의 남편은 텍사스로 소떼를 몰고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보안관 데이나 스트리블링(록 허드슨)은 브렌던을 처단하기 위해 쫓아오고… 120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영화 ‘사이코’ 여배우 재닛 리 사망

    |로스앤젤레스 연합|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물 ‘사이코‘에서 샤워 도중 무참히 살해당하는 여자 역을 맡은 재닛 리가 3일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77세. 유족을 대변하는 하이디 새퍼는 “리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리는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1년간 앓았으며 네 번째 남편인 로버트 브랜트와 영화배우인 두 딸 제이미 리 및 켈리 커티스가 임종을 지켰다. 금발의 리는 1960년 제작된 ‘사이코’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지명돼 스타덤에 올랐다. 히치콕 감독은 미치광이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45초의 욕실 장면을 찍기 위해 7일간 70여 차례나 촬영,리는 촬영중 가장 오래 샤워한 여배우라는 진기록을 갖게 됐다. 리는 ‘리틀 우먼(1949년)’‘터치 오브 이블(1958년)’‘맨추리안 캔디데이트(1962년)’‘바이바이 버디(1963년)’ 등 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美대선 1차 TV토론] 흥분한 부시, 규칙 어기고 케리 공격

    [美대선 1차 TV토론] 흥분한 부시, 규칙 어기고 케리 공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케리 후보는 지난달 30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대학에서 열린 1차 TV토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토론회 평가가 곧바로 지지율로 연결될지는 불투명하지만 부시 대통령 쪽으로 거의 기울던 대선 승부의 시계추를 일단 멈추는 효과는 가져온 것 같다. ●“케리의 계획이 더 구체적” 토론회 직후 CBS가 “누가 토론을 잘했느냐.”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케리 후보가 44%대 26%로 부시 대통령을 앞섰다.ABC 조사에서도 케리 후보가 45%대 36%로 우세했다.MSNBC의 웹사이트에 140만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즉석투표에서도 케리 후보가 잘했다는 응답이 62%로 부시 대통령이 잘했다는 반응(38%)을 압도했다.토론회 직후 ABC와 NBC,CNN 등 미국의 주요 방송에 출연한 ‘부동층’ 유권자들은 “케리 후보가 생각보다 강인하며 이라크전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러나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가 지지율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92년 선거 당시 빌 클린턴·조지 H 부시·로스 페로 후보간의 첫번째 토론 평가는 30 대 16 대 47로 페로 후보가 가장 앞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 후보 캠프는 “반전의 전기를 잡았다.”며 들뜬 분위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케리 후보의 마이클 매커리·조 록하트 보좌관은 “세번의 토론이 끝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조적 토론 스타일 5000만명 이상의 유권자가 지켜본 것으로 추산된 첫 TV 토론에서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는 대조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부시 대통령은 토론 내내 TV카메라를 직접 응시하며 직선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살려나갔다.NBC의 분석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토론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한 단어는 ‘자유’ ‘열심히 노력’ ‘(케리의) 혼란된 메시지’ 등이었다. 케리 후보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쟁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이라크전과 관련해 일관된 입장을 지켜왔다고 거듭 강조했다.특히 케리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언급하면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려는 듯 체포가 아닌 ‘살해(Kill)’해야 한다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케리 후보가 많이 사용한 단어는 ‘잘못된 방향’ ‘동맹’ ‘계획’ ‘방향 전환’ 등이었다. 이날 토론회는 후보간의 직접적인 질의와 응답을 금지했지만 부시 후보는 이따금씩 흥분한 모습으로 케리 후보를 향해 직접적인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케리 후보가 이라크 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부시 후보는 30초간의 초과 발언시간을 요청하고 연설대를 케리 후보쪽으로 돌려 반박했다. 반면 케리 후보는 대부분 사회자 질문에 답하고 토론하는 형식을 취했고 약간 비스듬한 자세를 취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던 대통령 부인 로라와 쌍둥이 딸,케리 후보의 부인 테레사 하인즈도 무대로 올라와 서로 인사하며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dawn@seoul.co.kr
  • 8년만에 브라운관 복귀 최수지

    8년만에 브라운관 복귀 최수지

    “결혼한 뒤 몇년이 지나도 친정은 변함없이 편하잖아요.마찬가지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는데 전혀 낯설지 않네요.(웃음)” 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 최수지(36)가 8년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지난 87년 데뷔작인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상큼한 여대생으로,대하드라마 토지에서는 ‘서희’역으로 열연하며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녀는 97년 SBS 드라마 ‘부자유친’을 끝으로 연예계를 떠났다.당시 그녀는 미군 군의관 백진범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지난 2002년부터는 남편이 한국 근무를 자원하면서 귀국,현재 대구에서 일곱살 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4일 첫 전파를 탈 MBC 소설극장 ‘빙점(극본 조희,연출 강병문)’.이미 국내에서 드라마와 영화로도 소개된 미우라 아야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그녀는 이 작품에서 병원장의 아내 윤희역을 맡았다.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사이 어린 딸이 유괴돼 살해당한다.이후 남편이 복수심에 불타 유괴범의 딸을 입양,함께 키우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는 아이를 증오하고 구박하는 비극적인 여인이다. “연기가 제 천직이란 생각을 하루도 버린 적이 없어요.연기자는 영원히 연기자예요.은퇴가 있을 수 없죠.”연기자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 떠났지만,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에 아쉬움이 있을 수 없단다.그녀는 “지금 나이에도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어 행복하다.”며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드라마 출연을 다시 결심한 데는 남편의 배려가 큰 힘이 됐다.“미국에 있을 때는 물론 귀국한 뒤에도 수차례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아이와 남편을 위해 포기했죠.남편이 감동을 받았나 봐요.이번 ‘빙점’은 남편이 먼저 나서서 ‘해보고 싶으면 꼭 해보라.’며 적극 지지하더라고요.”남편과 어린 딸 생각에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마자 고속철을 타고 대구로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 승부를 걸자는 욕심은 없어요.먼 훗날 ‘내가 이 역을 잘해냈구나.’라는 느낌이 들면 되는 것이지요.눈가의 주름살은 어쩔 수 없지만,영원히 여러분들 곁에 친숙한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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