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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승 멤버가 올림픽 가야할까, 유럽파가 가야할까

    우승 멤버가 올림픽 가야할까, 유럽파가 가야할까

    아시아 챔피언십 엔트리 23명이었지만 올림픽은 18명으로 5명 줄어들어이번 대회를 뛰지 않은 이강인 백승호 합류에 와일드카드 3명까지 합류시이번 대회 우승하며 올림픽 본선 티켓 따낸 23명 중 10명은 올림픽 못나가올림픽 개막 한 달 전후로 최종 멤버 발표···김학범 감독 깊은 고민의 시간 한국 축구 올림픽 9회 연속 본선 진출과 사상 첫 아시아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김학범호 앞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제한된 올림픽 엔트리 안에 혼신을 다해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낸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포함시켜야 할지, 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파와 와일드카드를 새로 합류시켜야 할지 잔인한 선택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경우 병역특례를 받는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엔트리 포함 여부는 선수 개개인에게는 형평성과 공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U23 대표팀은 지난 26일 밤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8분 터진 장신 수비수 정태욱(대구FC)의 헤더 결승골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제치고 우승컵을 품었다.  대회 첫 우승과 도쿄행 티켓 확보를 모두 달성한 김학범호의 눈은 이제 도쿄로 향하고 있다. 유럽파 중 정우영(독일 프라이부르크)은 합류하고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 백승호(독일 다름슈타트)는 빠졌지만 6전 전승 우승이라는 출중한 경기력을 선보인 대표팀이라 올림픽 최고 성적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부풀고 있다. 모두 11차례 올림픽 본선에 나갔던 한국 축구는 2012년 런던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다.  도쿄올림픽 출전 엔트리는 18명(골키퍼 2명, 필드 플레이어 16명)으로, 이번 U23 대회 엔트리보다 5명이 적다. 기본적으로 1997년 1월 1일 이후 태어난 만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데 나이 제한을 넘는 ‘와일드카드’ 3명을 포함할 수 있다. 김학범 감독이 와일드카드를 모두 활용하면 이번 우승 멤버 23명 중 8명은 올림픽에 갈 수 없고, 이번 대회에 소집하지 못한 이강인, 백승호까지 올림픽에 합류한다면 자리는 더욱 좁아져 10명이 올림픽에 갈 수 없다.  본선 티켓을 따낸 과정을 생각하면 이번 예선(U23 대회) 우승 멤버들로만 올림픽에 가는 게 합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피땀 흘리며 뛰어 본선 진출을 따냈더니 정작 본선에는 다른 선수가 가고 자신은 탈락할 경우 당사자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시아권뿐 아니라 유럽, 미주 등 전 세계에서 참가하는 본선은 예선보다 수준이 훨씬 높아 국내파와 해외파, 와일드카드를 가리지 않고 전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한국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딸 때 박주영, 정성룡, 김창수가 와일드카드로 힘을 보탰다. 김학범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한 2018년 팔렘방·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도 손흥민, 황의조, 조우현이 맹활약을 펼치며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그런데 만약 U23 대회 엔트리 23명 중 13명만 본선에 갈 수 있다고 쳐도 그 13명을 어떻게 추려 낼지도 고민이다. 김학범호는 주전, 후보 구분 없이 철저한 로테이션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며 누구 하나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선수들이 없기 때문이다. 골키퍼 포지션(3명)을 빼놓고는 모두가 그라운드를 밟았고, 19명이 선발 출장을 경험했을 정도로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았다.  곧 올림픽대표팀으로 변신하는 김학범호는 오는 3월 말과 6월 초 A매치 일정에 맞춰 다시 소집돼 3~5차례 평가전을 치를 전망이다. 운명의 올림픽대표팀 최종 명단은 올림픽 한 달 전쯤 발표될 전망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비욘세, 빨간색 드레스에 드러난 S라인 몸매 ‘당당 포즈’ [EN스타]

    비욘세, 빨간색 드레스에 드러난 S라인 몸매 ‘당당 포즈’ [EN스타]

    가수 비욘세의 근황이 공개돼 화제다. 26일(한국시간) 비욘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사진에는 비욘세가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빨간색 롱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완벽한 S라인 몸매를 드러낸 비욘세의 당당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서 비욘세는 브이로그 영상을 통해 자신이 175파운드(약79kg)라며 몸무게를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한편, 비욘세는 지난 2008년 가수 제이 지와 결혼해 2012년 첫째 딸 블루 아이비를 낳았으며 지난 2017년 6월 쌍둥이 남매 루미와 서를 얻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민주당 영입 이수진 “단칸방 둘째딸…사법개혁 완수할 것”

    민주당 영입 이수진 “단칸방 둘째딸…사법개혁 완수할 것”

    “사법개혁 잘 아는 판사가 국회에서 힘 보태야”더불어민주당의 4·15 총선 13번째 영입인사가 된 이수진 전 판사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영입식에서 “사법개혁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한 법을 정비하고, 국민의 실제적인 삶을 개선하는 좋은 법률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전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사건 판결이 지연된 의혹이 있다고 폭로했고, 이번에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판사의 정치권 진출이 삼권분립을 흔든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법원에서 사법개혁 활동을 오래 해 왔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국민과 함께 국회에서 사법개혁을 완수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 전 판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을 놓고 “제가 여당에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법원에 계신 분들도 충분히 저를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 작업에 대해서는 “김 대법원장의 의지에 대해선 신뢰하고 있다”며 “(그가) 기본적인 (사법개혁) 정책 방향은 그대로 끌고 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사법개혁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판사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힘을 보태고, 저 같은 사람이 좀 몰아붙여서라도 여당이 사법개혁을 제대로 완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탄핵 문제에 대해서는 “법관이라도 잘못하면 탄핵을 당하고, 징계받아야 하는 것이 촛불 혁명의 정신이자 국민 상식”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선 아주 열심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이 전 판사는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눈물짓기도 했다. 이 전 판사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는 언니 월급 8만 5000원으로 시골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4남매 둘째 딸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치료비가 없어 전북 도민이 모아 준 성금으로 어머니 다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며 “일찍부터 남의 집을 전전해 더부살이해가며 학교에 다녔다. 생활비를 버느라 대학 진학도 늦었다”고 털어놨다. 한편 이 전 판사는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과잉수사’라고 비판한 데 대해선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재판 결과를 보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에 대해선 “그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다”며 “나중에 좀 더 알아보고 말씀드리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출마 계획과 관련해선 “지역구 출마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아직 결정 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8일 14호 영입 인재를 소개할 예정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진태현♥박시은, 입양 대학생 딸 공개 ‘비하인드 스토리는?’

    진태현♥박시은, 입양 대학생 딸 공개 ‘비하인드 스토리는?’

    ‘동상이몽2’ 진태현♥박시은이 입양한 대학생 딸을 공개한다. 27일 방송되는 SBS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에서는 진태현♥박시은 부부가 대학생 딸을 공개입양하게 된 사연이 공개된다. 진태현, 박시은 부부는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 보육원에서 만난 대학생 딸을 지난해 공개 입양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두 사람의 대학생 딸이 등장, 세 사람이 함께하는 일상이 최초로 공개된다. 세 사람의 첫 만남부터 한 가족이 되기까지 5년간의 비하인드스토리가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특히, 세 사람은 처음으로 가족이 됐다고 느낀 순간과 입양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 등을 허심탄회하게 밝혀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진태현, 박시은 부부가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 딸을 입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증이 모아지는 가운데, 아내와 있을 때는 ‘귀여운 남편’ 진태현은 딸이 등장하자 ‘엄근진 아빠’로 변신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180도 달라진 ‘아빠’ 진태현의 모습에 MC들도 “아버지로선 완전 다르다”, “드라마에서 봤던 모습이 보인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취미생활을 위해 은밀히 어딘가로 향하는 진태현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의 반전 취미생활에 모두 깜짝 놀랐다고. 그런가 하면 그의 취미생활은 이윽고 박시은에게 발각되며 부부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연 박시은을 뒷못잡게 만든 진태현의 은밀한 취미생활은 무엇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대학생 딸과 함께하는 진태현♥박시은 부부의 일상은 27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SBS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에서 공개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코비 추모장 된 그래미 시상식 앨리샤 키스 “여긴 코비가 세운 집”

    코비 추모장 된 그래미 시상식 앨리샤 키스 “여긴 코비가 세운 집”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41·미국)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그가 20년을 한결같이 몸담았던 LA 레이커스의 홈 구장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제62회 그래미상 시상식이 열렸다. 식 초반부터 코비 추모로 장식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첫 무대에 나선 리쪼(LIZZO)는 “오늘밤은 코비를 위한 밤”이라며 발라드 ‘Cuz I Love You’를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사회자 앨리샤 키스는 코비를 추모하는 데 이날 공연을 헌정하겠다며 보이즈 투멘과 어울려 아카펠라 버전으로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를 들려줬다. 이날 아침 일찍 들려온 NBA 레전드의 비보에 시상식 무대 뒤쪽에 있던 팝스타들과 예술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안타까운 레전드의 마지막에 집중됐다. LA에서 자란 빌리 에일리시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 내 생각에 ‘아, 이건 가짜 뉴스일 거야’ 싶었다. 모두가 코비를 알고 있는데 이건 정말 믿기지 않는다. 말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충분히 전할 수가 없다”고안타까워했다. 그래미 시상식 사회를 두 번째로 보는 키스는 자신의 첫 멘트 때문에 장내가 숙연해진 것을 의식한 듯 “음악계의 가장 성대한 밤에 우리 아티스트 가운데 최고의 스타를 축하하기 위해 여기 모였지만 로스앤젤레스는 물론 미국, 전세계가 영웅을 잃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은 미칠 것 같은 슬픔을 모두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글자 그대로 코비 브라이언트가 세운 집안에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서 있다”면서 “당장 코비와 가족, 오늘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은 우리 정신, 우리 가슴, 우리 선수들, 그리고 이 건물 안에 살아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키스는 “난 코비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안다”며 “그가 영예롭게 느끼도록 이 자리를 축하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쇼 후반에는 런-DMC가 레이커스 구단이 영구결번하기로 한 등 번호 중 하나인 24번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앞서 코비는 이날 아침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쪽으로 48㎞ 떨어진 칼라바사스 근처에서 타고 가던 헬리콥터가 추락해 숨졌다. 부인 바네사 사이에 둔 네 딸 가운데 한 명인 지아나(13)와 자신이 세운 맘바 농구센터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던 청소년 선수와 부모, 코치 등 모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포토] 코비 브라이언트 탑승 헬기 추락 현장

    [포토] 코비 브라이언트 탑승 헬기 추락 현장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서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41)가 탑승한 헬리콥터가 추락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대응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브라이언트와 그의 13세 딸 등 다수가 숨졌다. AP 연합뉴스
  • 블랙 맘바, 딸과 함께 하늘로…NBA 전설 코비, 헬기사고로 사망

    블랙 맘바, 딸과 함께 하늘로…NBA 전설 코비, 헬기사고로 사망

    딸 농구 경기 위해 전용 헬기 타고 가다 헬기 사고로 딸과 함께 사망LA레이커스에서 20시즌 뛰며 우승 5회, 득점왕 2회 차지한 NBA 별농구팬들 스테이플스센터 몰려 추모, 후배 선수들은 운동화에 추모글미국프로농구(NBA)의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가 불의의 헬기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됐다. 42세. 26일(현지시간) 아침 브라이언트와 둘째 딸 지아나 등이 탑승 중인 전용 헬리콥터가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칼라바사스에 추락해 탑승자 9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이날 로이터,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들은 지아나의 농구 경기 참가를 위해 이동 중이었으며, 지아나의 팀 동료와 팀 동료 부모 중 한 명, 조종사 등이 함께 사망했다. 브라이언트는 네 딸을 두고 있다. 칼라바사스 시도 트위터를 통해 브라이언트의 사망을 확인했다.아버지도 NBA 선수였던 브라이언트는 고교 졸업 직후 대학 농구를 거치지 않고 NBA 무대로 직행했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로 샬럿 호니츠의 지명을 받고 2주 뒤 곧바로 LA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됐다. 그리고 2016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LA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은퇴까지 한 팀에서만 뛴 건 NBA 사상 그가 유일하다. 아프리카 독사에서 따온 ’블랙 맘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20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1345 경기에 출전해 평균 25득점, 5.2리바운드, 4.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3만 3643점을 넣어 카림 압둘 자바(3만 8387점), 칼 말론(3만 6928점), 르브론 제임스(현역)에 이어 이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5위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3만 2292점)이다. 2006년에는 토론토 랩터스를 상대로 81점을 몰아넣어 1962년 윌트 체임벌린의 100득점 다음 가는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브라이언트는 득점 욕심이 지나치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NBA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3만 득점에 6000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일 정도로 도우미 역할도 많이 했다. 이밖에 그는 샤킬 오닐과 함께 LA레이커스를 NBA 3회 연속 우승으로 이끈 것을 포함해 NBA 우승 5회(2000~2002·2009·2010), 올스타 18회, 득점왕 2회(2006·2007), 정규리그 MVP 1회(2008), 플레이오프 MVP(2009·2010), 올스타 MVP 4회(2002·2007·2009·2011) 등 화려한 커리어를 남겼다. LA레이커스는 그의 등번호 8번과 24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는 2003년 미 콜로라도의 한 리조트에서 19세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합의된 성관계를 주장했고 검사도 중범죄인 성폭행 혐의를 배제하기는 했지만 영광의 나날에 오점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그는 사망 하루 전 자신을 추월해 NBA 역대 득점 3위에 오른 제임스에게 생애 마지막 트윗을 남겼다. 2년 전부터 LA레이커스에서 뛰고있는 제임스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상대로 3만 3655점을 기록하자 “내 형제에게 많은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브라이언트와 미국대표팀으로 함께 뛰며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던 제임스는 갑작스런 비보에 “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당신이 정녕 위대해지길 원한다면, 그리고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위해 끝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격적으로 제로 결점의 선수였다. 그의 기술과 선수로서의 열정 덕분에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전·현직 미국 대통령도 애도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끔찍한 뉴스”라고 적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유족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고 했다. 브라이언트의 팬들은 LA 레이커스의 홈경기장인 스테이플스센터를 찾아 조화와 농구화를 모아놓고 슬픔을 드러냈다. NBA 선수들은 이날 브라이언트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적은 농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한 앨리샤 키스 “영웅을 잃었다”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한 앨리샤 키스 “영웅을 잃었다”

    팝 가수 앨리샤 키스가 미국 프로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했다. 27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는 제62회 그래미 어워드(2020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침통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앨리샤 키스는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 우리는 또 한 명의 영웅을 잃었다”며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안나를 언급했다. 앨리샤 키스는 이어 “코비 브라이언트가 저희의 마음 속에, 영혼 속에 기도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에도 함께할 것이다. 여러분 잠시만 그들을 마음 속에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과 함께 힘을 합쳐 달라. 쇼를 이렇게 시작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 조금이라도 설명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 모여서 같이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 끌어 모아서 즐깁시다. 가장 아름답구 강력한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자.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는 것은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코비 브라이언트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당국에 따르면, 추락사고는 이날 오전 10시쯤 발생했다. 사고 당시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안나을 포함해 5명이 헬기 안에 탑승해 있었다. 당국은 생존자는 없으며 현재 사고 원인 등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여기는 중국] 우한 봉쇄에도 아랑곳…바이러스 창궐 지역 향하는 의료진들

    중국 우한 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가중되는 가운데 총 1230명의 의료진이 해당 지역에 파견된 것이 확인됐다. 중국 당국이 지난 23일 전염병 확대 방지를 위해 우한시 봉쇄 정책을 공개한 직후 전국 각지 의료진이 우한 시 일대에 역귀성한 셈이다. 위생건강위원회(이하 위건위)는 중국 전역에서 지원 받은 의료팀 1230명을 시내 곳곳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파견했다고 26일 밝혔다. 위건위는 현재에도 부족한 우한 시 일대의 의료진 문제를 해결키 위해 지속적인 의료 전문가들의 자원을 모집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에 파견된 의료진 중에는 지난 2003년 중국에서 발병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이하 ‘사스’) 사태 시기 자원봉사자로 활약한 의료진 상당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 중국 당국에 의해 봉쇄된 우한시 일대에 전국 각지에서 줄을 잇는 의료팀 소식에 현지인들의 응원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 23일 봉쇄 정책 시행 이후 우한시로 연결된 고속도로, 항만 등이 모두 단절된 상황에서 전세기를 통한 의료팀이 속속 도착하는 분위기다. 가장 먼저 우한시 일대에 도착한 의료진은 지난 24일 광둥성 일대에서 모집된 의료 지원팀이다. 이들은 우한시 봉쇄 소식이 중국 전역에 공개된 지 불과 8시간 만에 우한시내 병원에 도착, 박수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광둥성 출신의 의료팀은 중증의학과 의사 15명, 간호사로 구성된 의료팀 83명 그 외 검사과 전문의 8명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둥성 출신의 의료 지원팀은 현재 우한 중산대학교 부속 제1병원에서 호흡과, 감염성 질환과·병원 감염관리과, 중증의학과, 검사과 등지에서 부족한 손길을 돕고 있는 상황이다.이에 앞서 중국 중앙군은 당국의 비준을 거쳐 육해공군내 의료 전문가를 우한시 병원에 파견한 바 있다. 총 450명으로 구성된 해당 의료진은 육군, 해군, 공군 내에서 받은 지원 의료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총 150명으로 구성된 의료팀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비한 후베이 지역의 폐렴 대응 의료팀으로 불린다. 이들은 지난 24일 자정 우한시에 도착한 이후 줄곧 중증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격리 치료를 담당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생명이 위독한 중증환자들을 격리한 ‘위독중증환자구제분대’를 구성, 호흡기 감염성질환전문의를 통한 감염 통제에 중안점을 두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또 같은 날 시안(西安)과 충칭(重庆) 등지에서 지원한 의료팀 역시 3대의 공군전용 수송기를 통해 우한시에 도착한 상태다. 특히 이들은 시안, 충칭의 의료팀 가운데는 약 18년 전 당시 발병한 ‘사스’ 사태에서 활약한 의료진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이들의 지원 손길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보도되자 중국 현지에서는 의료팀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중국 최대 명절 ‘춘제(春節)’ 기간 동안 상당수 의료진이 고향 대신 우한시 소재 병원의 의료 자원을 선택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들에 응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현지 누리꾼들은 “보수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생사의 문제를 넘어 우한에 출정한 의료팀을 응원한다”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지난 25일 우한시 의료팀에 합류한 원저우 시 출신의 리바오휘 인민병원호흡기과 전문의의 자녀는 온라인상에 “엄마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길 기다릴 것”이라면서 “강인한 어머니가 무사히 귀환할 것을 믿고 있다”고 밝혔다. 리바오희 전문의는 원저우 시 인민병원 호흡기과 의사로 그의 딸 리씨엔 양은 올해 17세의 고등학생이다. 지난 25일 우한시 의료 자원을 떠난 리 씨의 딸 리씨엔 양은 “이런 이별의 경험이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떠나는 어머니를 위해 가족들은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응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사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의사의 천직이라는 어머니의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면서 “특히 국가가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어머니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는 전문 의료진이 우한에 힘을 보태 달라”고 촉구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코비 브라이언트 헬리콥터 추락 사망, 딸 지아나도 함께

    코비 브라이언트 헬리콥터 추락 사망, 딸 지아나도 함께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41·미국)가 26일(현지시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딸 지아나(13)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브라이언트 부녀는 이날 아침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중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칼라바사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쪽으로 48㎞ 떨어져 있다. 연예 전문 TMZ 닷컴은 이번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지만 나중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관리들은 조종사와 탑승객 8명 등 9명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코비 부녀는 칼라바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우전드 오크스에 있는 맘바 아카데미에 농구 경기를 하러가다 변을 당했다. ESPN은 이 경기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다른 선수와 부모가 헬리콥터에 동승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브라이언트는 아내 바네사, 지아나를 비롯해 나탈리아, 비앙카, 카프리 등 네 딸을 뒀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실은 트위터를 통해 신속대응팀이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으며 생존자는 없다고 밝혔다. 칼라바사스 시(市)도 트위터를 통해 브라이언트의 사망을 확인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추락 헬기는 시코르스키사의 S-76 기종이라면서 FAA와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NBA 선수였던 조 브라이언트를 아버지로 둔 코비 브라이언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니츠의 지명을 받은 후 곧바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돼 201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을 줄곧 LA 레이커스 유니폼만 입었다. 팀을 다섯 차례 NBA 정상에 올려놓았고, 18차례 올스타팀에 선발됐으며, 두 시즌 득점왕에 올랐다. 2008년 정규리그 MVP, 이듬해와 2010년 플레이오프 MVP, 올스타 MVP 4회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NBA 통산 득점은 3만 3643점으로 카림 압둘 자바(3만 8387점), 칼 말론(3만 6928점)에 이어 세 번째였다가 공교롭게도 하루 전 르브론 제임스(레이커스)가 그를 넘어서 NBA 역대 네 번째로 많은 득점 기록을 갖게 됐다. 레이커스는 브라이언트의 선수 시절 등번호 8번과 24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이날 그의 비보를 듣고 마크 큐번 댈러스 구단주가 자신의 팀에서 한 번도 뛰지 않은 코비의 등 번호 24번을 영구결번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브라이언트는 생전 마지막 트윗으로 “그 게임(농구)을 ‘킹 제임스’(르브론)를 향해 지속해서 더 진전시켜가면서, 내 형제에게 많은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자신의 득점 기록을 넘어선 제임스에 찬사를 보내며 격려한 것이다. 제임스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코비)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당신이 정녕 위대해지길 원한다면, 그리고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위해 끝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제임스는 또 “그(코비)는 공격적으로 제로 결점의 선수였다. 당신이 그를 막아서면 그는 3점슛을 때렸고 당신이 몸으로 그를 밀쳐내려 해도 그는 당신의 주변을 돌아 미들레인지에서 득점했다. 그의 기술과 선수로서의 열정 덕분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트와 제임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대표로 함께 뛰었다. 샤킬 오닐, 데론 윌리엄스, 토니 파커 등 NBA 레전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육상 레전드 우사인 볼트 등이 믿기지 않는 브라이언트의 죽음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레이커스의 홈 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 앞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보를 접한 팬들이 몰려와 추모의 꽃을 바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설연휴 끔찍사고…어머니집에 불질러, 아버지와 다투고 극단선택

    설연휴 끔찍사고…어머니집에 불질러, 아버지와 다투고 극단선택

    밀양서 집에 불질러 어머니 숨지게 한 아들 검거경남 밀양경찰서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 한 혐의(현존건조물 방화 치사)로 아들 B(43)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B씨는 이날 오전 4시 25분쯤 밀양시 무안면 1층짜리 단독주택에 불을 질러 어머니 A(76)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와 함께 이 주택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누군가 주택에 불을 지르는 것 같다”는 인근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 있던 B씨를 검거했다. 당시 B씨는 손에 흉기를 들고 경찰과 잠시 대치했지만 반항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주택을 모두 태우고 출동한 소방대원 등에 의해 40여분 만에 꺼졌다. 소방대원들의 현장 수색 중 주택 내부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집에 불을 지른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행 동기와 A씨의 사망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설날 아버지와 다툰 뒤 극단 선택한 20대 여성 설날에 아버지와 다툰 20대 여성이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6일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28분쯤 부천시 중동 한 아파트 방 안에서 A(26·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과 119구조대원이 발견했다. 앞서 A씨의 아버지 B씨는 “4시간 전에 말다툼을 한 딸이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며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119구조대원은 잠겨있는 문을 강제로 열었으며 숨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딸이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B씨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다툼의 이유 등 자세한 경위는 수사 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난방문제로 아버지와 다투다 흉기 휘둘러 난방문제로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2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존속살인 혐의로 A씨(20)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A씨는 전날(25일) 오후 4시5분쯤 경기 광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 B씨(49)를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사건 직후 출동한 소방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집안이 추워 보일러 온도를 높여야겠다고 말했는데 추우면 옷을 입으라고 말한 아버지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아들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B씨에 대한 부검을 27일 진행할 예정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김경희 건재 확인, 정성장 “사망설 주장한 이들 뭐라고 할까”

    김경희 건재 확인, 정성장 “사망설 주장한 이들 뭐라고 할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가 2013년 9월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약 6년 4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김경희는 지난 25일 삼지연극장에서 진행된 설 명절 기념공연을 김정은, 리설주, 김여정 등과 함께 관람함으로써 안팎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공개 활동은 2013년 9월 9일 정권 수립 65주년 경축 노농적위군 열병식과 평양시군중대회 및 조선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참석이었다. 그런데 이 공개활동 전후에 김경희는 계속 신부전증, 고혈압, 뇌종양, 발가락 문제 등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는 상황이었다. 김경희는 이미 2012년에 싱가포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이듬해 5월에는 파리에서 뇌종양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는 러시아에서 발가락이 휘는 문제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13년 12월 12일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사흘 뒤 발표된 김국태 당중앙검열위원회 위원장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후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했지만 건강이 더 나빠져 장기간 입원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한때 삭제된 김정일 기록영화에서도 김경희 영상이 복원됐고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에 ‘김경희’라는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동명이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며 신변이상설은 계속됐다. 국가정보원은 2017년 8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를 통해 김경희가 평양 근교에서 은둔하며 신병치료 중이라고 밝혔고 통일부는 그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에 선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김경희의 건강 상태는 매우 위중했지만 서서히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고, 파리 유학 중이던 딸 장금송의 자살, 2013년 남편 처형 등을 겪으며 알코올 중독, 우울증, 치매 등을 앓고 있다는 설들이 제기돼 왔지만 이번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과거 마른 체격이었던 것에 비해 다소 살이 붙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 동안에도 김경희는 김정은 기록영화에 한동안 계속 모습을 드러내 공개활동을 장기 중단한 것은 장성택 처형보다 건강 문제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적했다. 김경희가 공석에 다시 등장하긴 했지만 그가 현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고 2010년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의에서 선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32명 중 지금도 이 핵심 지위에 남아있는 인물은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 부위원장 한 명일 정도로 북한 지도부의 핵심 파워 엘리트가 거의 전면적으로 교체됐기 때문에 김경희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정 센터장은 봤다. 김경희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다시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 이후 김정은 가족의 불화와 갈등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백두혈통의 결속과 김정은 가족의 화합을 대외적으로 뽐내 김정은 위원장의 정면돌파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 한 가지 돌아볼 대목은 백두혈통인 김경희가 사망했다면 북한이 이를 숨길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랫동안 김경희 사망설을 주장했던 국내외 언론들이다. (강성산 전 북한 총리의 사위인) 탈북자 강명도씨, 강씨의 주장과 김경희 독살설을 보도한 미국 CNN, 2014년 10월 김경희 사망설을 주장한 산케이신문, 김경희가 자살했다고 주장한 NK지식인연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고 정 센터장은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슬 퍼런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조용히 항거한 세 여성

    서슬 퍼런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조용히 항거한 세 여성

    보통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이 있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독일 베를린에서도 조용한 레지스탕스 활동이 있었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다른 이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엄청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요란하지 않게 꾸준히 도운 여성 셋을 소개했다. 먼저 러스 윙켈만. 아버지가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는 등 가족 가운데 16명이 수용소로 보내져 희생됐다. 하지만 열네 살의 그녀는 유대인 혈통을 감추고 정원 움막에 2년이나 몸을 숨겨 살아남았다. 그녀는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공포를 지금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처음에는 우리 모두 나치의 위험성을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지만 차츰 분명해지더니 1938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다”고 돌아봤다. 윙켈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트 샬롯테 글로에덴 같은 베를린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고발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흔히 리젤롯테나 릴로로 알려져 있는 글로에덴은 남편 에리히와 함께 베를린 자택에 유대인들을 숨겨준 다음 독일을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여행권을 구해줬다. 부부는 1944년까지 무려 5000명 가까운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는데 그 해 7월 16일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프리츠 린데만 장군이 게슈타포에 검거되면서 정체가 발각됐다. 부부와 그녀의 어머니는 플로첸제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변호사 견습생이었던 릴로는 직접 가족을 대변했다. 하지만 판사는 선고의 90%가 사형일 정도로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해서 가족 모두 길로틴 처형을 당했다. 끝으로 펠리시타스 나를로크인데 어느날 현관 문을 두들겨 도움을 요청한 유대인 여성 차바 베르그만에게 숨을곳을 마련해줬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었지만 10대였던 그녀가 선뜻 문을 열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는 마침 딸이 여행 중이던 이웃 여성의 딸인척 살게 해주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녀는 “누구라도 나랑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차바의 손자 알렉스 하벨은 “그녀의 개입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난 전쟁과 해방 이후 우리와 함께 20년을 더 사시다 가신 할머니를 못 ?을 것이다. 유대인 속담 ‘한 사람을 구하면 세상 전체를 구한 것과 마찬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산다. 펠리스타스와 그 가족이 그 일을 해낸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장윤정 집, 담벼락 없는 2층 벽돌집…어디?

    장윤정 집, 담벼락 없는 2층 벽돌집…어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장윤정 집이 26일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 아나운서 도경완 부부는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이다. 이들 부부의 일상이 공개되며 남다른 규모의 집도 눈길을 끌고 있다. 앞서 방송을 통해서도 공개된 장윤정 도경완 집은 울타리나 담이 없는 2층짜리 벽돌집이다. 위치는 판교 백현동으로 알려졌다. 집 내부에는 각종 상패와 상장이 가득 채워진 진열장과 노래방 기계가 자리하고 있다. 2층에는 첫째 아들 연우의 감수성을 키워주는 놀이공간이 마련돼 있다. 한편 장윤정은 아나운서 도경완과 2013년 결혼해 2014년에는 아들 연우 군을, 2018년 11월에는 딸 하영 양을 품에 안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트럼프가 생이별시킨 과테말라 부자 20개월 만에 LA 상봉

    트럼프가 생이별시킨 과테말라 부자 20개월 만에 LA 상봉

    “작은 아이였는데 금세 많이 컸네요.” 과테말라 남성 다비드 솔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1년 8개월 만에 만난 아들 바이런(9)을 보더니 무릎 한 쪽을 꿇고 3분 정도 껴안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고 AP 통신이 23일 전했다. 지난 2018년 5월 미국 국경수비대 요원들이 당시 일곱 살이던 바이런을 구금 시설에 수용하고 자신을 추방해 생이별한 지 20개월 만이었다. 바이런은 정부 시설을 전전하다 지금은 텍사스주에 사는 홀리 시웰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솔은 미국 연방법원 판사가 망명을 희망하는 난민들을 미국 정부가 방해한 것이 불법이 맞다고 판결하며 자녀들을 상봉할 기회를 제공하라는 명령을 내린 데 따라 이날 LA 국제공항을 찾은 아홉 부모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연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이별 정책이 불러온 파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일 수 있었지만 탄핵 심판과 이란과의 긴장 등에 묻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아홉 가족 외에도 수백, 어쩌면 수천 가족이 2년 가까이 생이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자녀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부모 가운데 한 명을 변호하는 린다 다킨 그림은 “그들은 로또를 맞은 셈”이라며 “아직도 가족 생이별 정책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가족들의 생이별을 부른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이 2018년 봄에 공식 시행하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 4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부모에게서 떼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미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8년 6월 대나 사브로 판사는 정부가 가족을 떼내는 일을 그만 두고 부모와 자녀를 재결합시키라고 명령했다. 미국은 무관용 정책을 시행하기 전부터 이런 반인륜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관공서들은 이를 제대로 기록하지도 않았다. 자녀들을 가둔 구금센터들은 너무 북적였고, 음식과 물, 의료 행위 지원도 부족했다. 적어도 470명의 부모들이 자녀 없이 추방됐다.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서류에 억지로 서명한 결과였다. 자녀 일부는 미국 정부 시설에 구금됐고 나중에 후원자들, 대체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내졌다. 조국으로 추방된 아이들도 있었다. 미국 시민권 연맹은 사브로 판사에게 아직도 미국에 아이들이 남아있는 부모 일부를 미국에 돌아가게 만드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사브로 판사는 11명의 부모를 돌아오도록 허락했고 다른 7명은 도움을 주지 말도록 했다. 솔이 타고 온 비행기에는 에스빈 페르난도 아레돈도도 있었는데 훨씬 극적인 사연을 갖고 있었다. 딸 중 한 명인 안드레아(13)는 가족과 헤어져 한달 전부터 혼자 텍사스주를 떠돌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부모 기록을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 안드레아는 2018년 5월 12일 아버지 에스빈을 만났다, 그리고 나흘 뒤 두 딸과 함께 있던 어머니와 만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머니와 두 딸은 망명 심사를 통과했는데 아버지는 통과하지 못했다. 아들 마르코(17)는 과테말라시티에서 갱단원으로부터 총에 맞아 숨졌다. 아레돈도는 이날 세 딸을 껴안았다. 미키마우스와 디즈니의 다른 캐릭터가 들어간 핑크빛 땀복을 입은 막내딸 앨리슨(7)을 품에 안은 채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취재진에게 “내가 살아온 대로 사는 일은 아주 힘들다”고 말했다. 부인 클레비 예레스(41)는 세 딸과 함께 남편보다 한 시간 전 쯤 LA 공항에 나타났다. 클레비는 24일 샌디에이고 이민관세국(ICE) 사무실에 나타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바이런을 돌보는 시웰은 바이런이 많이 안전해진 느낌을 갖게 됐지만 구금시설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얘기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뉴스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 소식을 유심히 보기도 한다고 했다. 영어 실력이 많이 늘어 통역 어플리케이션에 의존하는 일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시웰은 “사람들은 이 소식을 가슴 따듯한 얘기로 만들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절망적인 얘기”라며 “우리가 왜 이런 일을 이 아이와 가족에게 해야 하는지 충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바이런의 사연은 정확히 똑같은 처지에 놓인 수천 명의 다른 아이들을 상징할 뿐”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세리나 윌리엄스, 왕창에게 덜미 호주오픈 3회전 탈락

    세리나 윌리엄스, 왕창에게 덜미 호주오픈 3회전 탈락

    세리나 윌리엄스(9위·미국)의 메이저대회 최다승(24회) 도전이 일찌감치 무산됐다.세리나는 24일 호주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여자단식 3회전에서 왕창(29위·중국)에게 1-2(4-6 7-6<7-2> 5-7)로 졌다. 2017년 호주오픈 이후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는 윌리엄스는 3년 만에 패권 탈환을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메이저대회 단식 통산 23회 우승, 마거릿 코트(은퇴·호주)의 24회 다음으로 많은 승수를 올린 세리나는 이번 대회에서 24번째 우승을 노렸지만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2017년 이 대회 도중 임신 사실을 알고도 우승까지 차지한 그는 그해 9월 딸을 낳고 2018년 상반기 코트로 돌아왔다. 출산 이후 2018년과 2019년 윔블던, US오픈에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친 윌리엄스는 ‘엄마’가 된 이후로는 메이저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9세인 윌리엄스는 지난해 호주오픈에서는 8강까지 올랐다. 그는 지난해 US오픈 8강에서 왕창을 2-0(6-1 6-0)으로 가볍게 꺾었으나 이날은 2시간 41분 접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2세트 게임스코어 4-5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 서브 게임을 따내 힘겹게 승부를 3세트로 넘긴 세리나는 3세트에서도 고비를 넘기는 듯했다. 게임 5-6으로 뒤진 자신의 서브 게임에서 15-40으로 더블 매치포인트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듀스를 만든 것. 그러나 왕창은 세리나의 포핸드가 아웃 판정을 받아 어드밴티지를 잡았고, 다시 잡은 매치포인트에서는 상대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면서 ‘대어’ 윌리엄스를 낚았다. 올해 28세인 왕창은 지난해 US오픈 8강에 이어 생애 두 번째 메이저 대회 16강에 진출했다. 다음 상대는 캐럴라인 보즈니아키(36위·덴마크)를 2-1(7-5 3-6 7-5)로 물리친 온스 자베르(78위·튀니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럭비공, 어디로 튈지 몰라요…우린 땀으로 ‘기적’ 만들어요

    럭비공, 어디로 튈지 몰라요…우린 땀으로 ‘기적’ 만들어요

    기적 같은 승리로 도쿄행 티켓 따내 진천선수촌 추운 날씨에도 ‘땀범벅’ “1승도 어렵다고요? 메달 딸 겁니다”“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 중국전 트라이를 생각해!” 지난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모인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맹훈련을 이어 갔다. 몸을 푸는 가벼운 훈련을 마치고 실제 연습 경기에 들어가자 선수들은 숨을 헐떡였고 몸이 금세 땀으로 뒤범벅됐다. 전후반 각 40분으로 진행되는 15인제 럭비와 달리 올림픽 종목인 7인제는 전후반 각각 7분의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만큼 선수들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훈련에 임했다. ●럭비 도입된 지 96년 만의 쾌거 서천오(53) 감독이 이끄는 한국 7인제 남자럭비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인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1923년 한국에 럭비가 도입된 지 96년 만에 이룬 기적이자 실업팀 3개(한국전력공사·포스코건설·현대글로비스)와 국군체육부대, 대학팀 4개(고려대·연세대·경희대·단국대)에 불과한 척박한 환경에서 이뤄 낸 쾌거다. 올림픽 진출 자체도 드라마틱했다. 준결승 상대인 중국과의 경기는 전반 종료 전 중국에 7점을 내주며 끌려가다가 후반 종료 20여초를 남기고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전에 가서 승리했다.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한 일본과 함께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는 홍콩을 상대한 결승전도 전반에 선취점을 내줬지만 후반에 동점을 만든 뒤 이어진 연장에서 승리하며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일본, 홍콩에 밀려 3회 연속 동메달에 그쳤던 설움을 씻어 내는 통쾌한 승리였다. 서 감독은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을 때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면서 “훈련 중인 지금까지도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든다”고 말했다. 처음 나가는 올림픽인 데다 본선 진출 팀 가운데 최약체로 꼽히지만 선수들의 자신감은 남달랐다. 현실적으로 1승도 어렵다는 전망이 있지만 선수들은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2017년 특별 귀화한 안드레 진 코퀴야드(29)는 “아시안게임 동메달은 우리 실력만 보면 실패한 것”이라는 도발적인 말을 꺼내면서 “환경만 제대로 갖춰졌으면 더 나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장 박완용(36)도 “작은 목표는 3승이고 큰 목표는 메달권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열악한 환경 극복한 모두가 에이스 현재까지 7인제 남자럭비는 개최국 일본을 포함해 한국과 케냐, 호주, 영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피지, 미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1개국이 도쿄올림픽 출전을 확정한 상태다. 6월 열릴 대륙간 예선에서 마지막 합류 팀이 정해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인구 90만명에 불과한 피지가 영국을 43-7로 꺾고 금메달을 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전체 선수가 1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지만 선수층이 얇은 만큼 선수들의 유대감은 남달랐다. 주목해야 할 에이스를 지목해 달라는 질문에 “우리는 모두가 에이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완용은 “럭비는 득점을 만들 때 한 사람이 아닌 전체가 다 연결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잘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선수들끼리 믿음이 워낙 강하다. 아시아 예선 때도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드레 진 역시 “각자의 포지션에서 팀을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는 게 우리의 팀 컬러”라며 “아시아 예선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득점한 선수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우리 팀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림픽 출전을 이뤄 낸 종목이지만 국내 환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두 ‘무관심’을 럭비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럭비 관련 단체들의 홍보 활동이 미미하고, 제대로 된 시설도 선수촌밖에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다. 럭비장의 국제 규격은 ‘길이 100m 이내, 폭 70m 이내’로 축구장의 국제 규격(길이 100~110m, 폭 64~75m)과 비슷하지만 럭비를 할 수 있는 럭비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시안게임 메달 종목임에도 정작 아시안게임 땐 숙소 경쟁에서 밀려 자리가 없을 때도 있었다. 개최국 일본의 경우 등록 선수가 11만명이 넘고 프로 경기가 아닌 대학럭비 선수권 결승전에만 6만명 넘는 관중이 입장하는 등 럭비 인기가 상당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서울신문 1월 13일자 25면>. 대표팀 막내 김진혁(25)은 “일본은 일반인 관중도 많은데 우리는 경기에 부모님이나 학생들밖에 안 오는 실정”이라고 밝혔다.●조직력은 최강… 과학적 분석 도입 대표팀은 지난 아시아 지역 예선 때부터 처음으로 전문 코치와 함께 과학적인 분석을 도입했다. 선수들의 몸에 GPS가 달렸고, 남아공 출신 일본유통경제대학 코치 찰리 로가 순간 심박수 200을 넘나드는 선수들의 몸 상태와 주파 거리를 체크해 선수 교체 타이밍도 잡아냈다. 7분이라는 짧은 경기 시간 속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낼 수 있었고, 올림픽 진출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서 감독은 “전력면에서는 최약체라고 하지만 7인제 럭비는 짧은 경기 시간 속에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종목”이라며 “기후 환경이 비슷한 일본에서 열리는 만큼 시스템적으로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의외의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스피드도 있고 체격도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선수층이 얇은 건 단점이지만 서로를 잘 아는 선수들끼리 뭉쳐 조직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팀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꿈꾸는 것은 럭비 발전이다. 한국 럭비는 이미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후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서 감독은 “럭비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이 기회를 빌려 협회나 럭비인들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것 같다”면서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럭비 보급이 많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드레 진 역시 “럭비를 비인기 종목에서 인기 종목으로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선수촌 곳곳에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정점으로 간다’는 문구를 붙여 놨다. 자체 규율도 만들었다. 지각과 체중 관리, 식단 관리 등인데 벌금을 내는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지키고 있다. 대표팀을 이끄는 박완용은 “다들 같은 목표가 있고 자기 역할을 해 줘야 이길 수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선수들 모두 더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진천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30대 #청년 #여성 #1%. 더불어민주당 정은혜(37), 자유한국당 신보라(37), 바른미래당 김수민(34) 의원의 공통점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30대는 이들 셋뿐으로, 전체 300명 의원 중 1%다. 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20~30대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턱없이 적은 숫자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청년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제2의 산나 마린(지난해 34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된 핀란드 여성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을까. 세 의원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세대교체 아닌 공존 필요… 黨 육성한 청년 인재 많아야” ●청소년기부터 정치 참여하는 법 배워야 “대통령 언급이 없었더라면 민식이법이 과연 통과했을까요. 의원들은 이슈가 돼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국회에 저와 같은 아기 엄마가 10명만 있었더라면 함께 ‘으으’ 힘을 모을 수 있었을 거예요. 제가 발의한 스토킹 방지법 역시 다들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잘 안 된 이유는 필요성을 직접 느끼는 20~30대가 국회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7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 의원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청년 정치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 공존 차원에서 국회에는 70대도, 20대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18세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핀란드에서 34세 총리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2006년 청소년들이 지역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한 청소년기본법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우리는 중고교에서 근현대사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데,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형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영입도 중요하지만 당에서 성장한 육성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21살에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가 입당한 뒤 유세 지원 율동팀부터 비상근·상근 부대변인, 대선캠프 지원, 비례대표 후보를 차례로 거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정당도 연예기획사 같은 양성 시스템 만들자 그는 “정당도 연예기획사처럼 청소년 때부터 정당 활동이나 교육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당직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청소년들이 훌륭한 정치인, 훈련받은 정치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좋은 정치인을 고르는 유권자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례대표 16번으로 출마했던 정 의원은 이수혁 전 의원이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지난해 10월 의원직을 승계했다. 17개월 된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그는 100일 남짓한 의정 활동 중 남성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라떼파파법’ 등 12가지 생활법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 다시 한번 도전해 이 법안들을 꼭 이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청년기본법 통과까지 4년… 또래 동료 없어 한계 느껴” ●당내 청년정치학교 운영… 인재 풀 늘고 있어 “국회의원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면서 통과되는 걸 지켜보고 싶었죠. 하지만 ‘반쪽 국회’에서 찬성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4년이란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신보라 의원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반발한 한국당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자신이 대표 발의한 청년기본법에 대해 ‘나 홀로’ 찬성 토론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충돌’ 등으로 얼룩진 20대 국회 막바지 본회의를 통과한 청년기본법은 2016년 5월 30일 20대 개원 첫날 한국당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 청년을 독립된 세대로 규정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국가 책무를 정의한 법안이다. 초선 의원이 꺼내 든 법안을 ‘1호’로 확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막상 발의된 이후 통과까지 4년이 걸렸다. 신 의원은 “국회에 30대 국회의원이 3명에 불과하고 힘을 합할 또래 동료 의원이 없어 겪은 한계가 많았다”면서 “청년기본법에 4년이 걸린 것은 국회에 청년 의제에 대한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을 못 미더워하는 시선에 대해 “우리 사회에 30대 스타트업 리더들도 많지 않으냐”며 “신선식품 배송 ‘마켓컬리’, 요가 브랜드 ‘젝시믹스’ 등을 이끈 것도 30대”라고 했다. ●일회성 영입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 체계화를 신 의원은 향후 한국 정치에 청년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란 희망적 전망을 했다. 그는 “청년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저도 당의 청년정치학교를 3기수째 운영하고 있는데 역량 있는 인재 풀이 늘고 있다”면서 “일회성 영입에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지난해 임신·출산을 경험했다. 정기적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 자녀에 한해 함께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불허한 일이 화제가 됐다. 신 의원은 “청년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라, 출산과 육아가 기쁨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서 국회 세대교체와 구성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인천 미추홀갑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특정 직업군 국회 민의와 멀어… 시민 참여 정치 하고파”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환경 만들어 줘야 “국회의원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정치 자체가 목적인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소수 권력자의 정치가 아닌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어요.” 김수민 의원은 “‘직업 정치인’이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화 투사, 법조인, 교수, 보좌관 등 특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동질성 강한 국회를 유지해 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여성이나 2030세대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민의와도 동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청년 정치’라는 표현에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청년의 존재를 상수가 아닌 변수로 소모품 취급했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며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린 정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안으로 ‘내일티켓’이라는 참여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 정치 실험을 했다. 일상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시민들이 법안과 정책을 고민하고 직접 발의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도였다. 그는 “저희 의원실에서 만들어진 법안 90%는 시민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저는 하나의 그릇이 됐을 뿐”이라고 했다. 일정 규모 이상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한 법안, 온라인 게임 내 지나친 성적 발언을 성희롱으로 포함하는 법안 등이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조국 사태’ 겪으며 21대는 청년이 주역 될 것 정치권에서 높아지는 ‘세대교체’ 바람이 21대 국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란 전망도 내놓았다. 김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여러 가지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중 하나는 각 당의 청년 공천경쟁”이라며 “역설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기득권 불공정에 박탈감을 느낀 청년세대가 변화의 주역이 될 거란 기대다. 피선거권을 낮출 필요성도 언급했다. 11세에 입당해 19세에 국회의원이 된 구스타프 프리돌린 스웨덴 녹생당 대표 사례도 들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각자가 원하는 내일의 모습은 다 다르기 때문에 제 말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면서 “많은 청년들이 국회에 입성해 새로운 길을 함께 개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앙골라 전직 대통령의 딸 축재 도운 은행장 극단적 선택

    앙골라 전직 대통령의 딸 축재 도운 은행장 극단적 선택

    앙골라 전직 대통령의 딸을 아프리카 최고의 여성 부호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줬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포르투갈 유로빅 은행 대표 누누 리베이루 다쿤하(45)가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리스본의 자택 차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AP 통신 등이 23일 보도했다. 유로빅 은행은 38년 동안 앙골라를 통치했던 호세 에두아르도 두스 산투스 전 대통령의 맏딸인 이사벨 두스 산투스(46)가 지분 42.5%를 갖고 있다. 이사벨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재산을 모아 20억 달러(약 2조 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자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힌다. 이사벨이 오늘날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 다쿤하가 횡령 및 돈세탁 등의 도움을 준 것으로 앙골라 검찰은 보고 있다. 포르투갈 경찰은 다쿤하가 최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달 초에도 자살을 시도했다는 증언들, 주검을 둘러싼 정황 등 모든 것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앙골라 검찰이 이날 오후 이사벨과 다쿤하를 돈세탁, 부실경영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고 발표한 뒤 얼마 안돼 다쿤하의 죽음이 알려졌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사벨은 2016년 6월부터 18개월 동안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돈세탁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영국 BBC 방송 등의 탐사 보도에 따르면 이사벨은 산투스 전 대통령이 2017년까지 38년 동안 집권하는 동안 토지, 석유, 다이아몬드, 통신 등의 분야에서 막대한 이권을 챙겼다. 이사벨과 그녀의 남편이 이끄는 사업은 홍콩에서 미국까지 400개 이상의 회사와 자회사로 구성돼 있으며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5500만 달러짜리 저택과 3500만달러짜리 요트 등 막대한 부동산을 거느리고 있다. 이사벨은 아버지가 허가한 사업권을 통해 앙골라 국부를 착취하고 다이아몬드 수출과 이동통신사의 지분을 획득해 국민들의 등골을 파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앙골라 법원은 지난달 말 이사벨의 은행 계좌 등 자산을 동결하는 명령을 내렸다. 앙골라 검찰은 나아가 이사벨을 자국 법정에 세우기 위해 국제 체포영장 발부를 추진할 수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사벨은 아버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포르투갈, 영국 등 외국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는 독립 이후 27년 동안 내전을 벌였고,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풍부하지만, 부패 등으로 국민 대부분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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