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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쳐야 뜬다’ 정형돈, 쌍둥이 딸에 “꼬마 아가씨들” 애칭...딸바보 예고

    ‘뭉쳐야 뜬다’ 정형돈, 쌍둥이 딸에 “꼬마 아가씨들” 애칭...딸바보 예고

    ‘뭉쳐야 뜬다’ 정형돈이 쌍둥이 딸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며 연예계 공식 ‘딸 바보’를 예고했다. 지난 2012년 12월, 결혼 3년 만에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된 정형돈은 그동안 한번도 방송에서 딸들을 공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딸 바보 아빠’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정형돈은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뜬다’ 녹화를 위해 떠난 태국 패키지 여행 중에도 수상시장을 방문해 딸들을 위한 시계 선물을 구입하는 한편, 라텍스숍에서는 딸들에게 선물할 베개를 구입하는 등 다정한 아빠의 면모를 드러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 딸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형돈이 방송을 통해 딸들과의 통화를 공개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그는 며칠간 떨어져있던 가족과의 애틋함 때문에 영상통화를 걸었다. 이어 정형돈은 딸들과 통화를 하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가하면, “내일 봐요. 꼬마 아가씨들~”등의 달콤한 인사까지 건네며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였다. ‘연예계 공식 딸 바보’에 등극하기에 충분했다는 후문이다. 그간 방송에서 좀처럼 보인 적 없었던 정형돈의 달달하고 다정다감한 ‘딸 바보’의 모습은 10일 토요일 오후 9시 40분 ‘뭉쳐야 뜬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JTBC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What lips my lips have kissed)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어디서, 어째서 그랬는지 나는 잊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팔이 아침이 될 때까지 내 머리를 받쳐 주었는지도 그러나 오늘 밤 내리는 비는 문을 두드리고 한숨지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망령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고요한 고통이 솟아오른다 이제 다시는, 한밤중에 소리치며 내게로 돌아올 일 없을,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젊은이들로 하여. 그리하여 겨울 되어 외로운 나무 하나 서 있다 나무는 어떤 새들이 하나씩 사라져 갔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가지들이 훨씬 잠잠해졌음을 안다 어떤 연인들이 왔다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속에서 얼마동안 노래했던 여름이 이제 더이상 내 속에서 노래하지 않음을 나는 안다. What lips my lips have kissed, and where, and why, I have forgotten, and what arms have lain Under my head till morning; but the rain Is full of ghosts tonight, that tap and sigh Upon the glass and listen for reply, And in my heart there stirs a quiet pain For unremembered lads that not again Will turn to me at midnight with a cry. Thus in winter stands the lonely tree, Nor knows what birds have vanished one by one, Yet knows its boughs more silent than before: I cannot say what loves have come and gone, I only know that summer sang in me A little while, that in me sings no more. - 최승자 번역 * 슬프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힘이 있다. 아~ 이런 시에 무슨 설명을 덧붙여야 하나. 나뭇가지와 새처럼 구체적이고 쉬운 비유,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는 한 줄 한 줄이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휘젓는다.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1892~1950)라는 이름을 나는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시선집 ‘죽음의 엘레지’를 통해 처음 접했다. 자신의 체험을 보편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서정시인이면서 밀레이는 또한 독을 품은 페미니스트였다. ‘어느 입술이 내 입술에 키스했는지, 어디서 어째서 그랬는지 나는 잊어버렸다’로 시를 시작하는 대담함은 아무나 갖기 힘들다. 1920년대에 여성시인이 감히 자신의 입술을 노래한다? 저 점잔 빼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에서였다면 밀레이는 주류 문단에서 소외됐을지도 모른다. 남성적인 이름인 ‘빈센트’를 고집할 만큼 자아가 강했던 그녀는 신대륙 미국에서 활동했기에 마음껏 자신의 개성을 발산하지 않았나 싶다. 밀레이는 미국 메인 주에서 간호사인 어머니와 학교선생인 아버지 사이에서, 세 딸 중의 맏딸로 태어났다. 밀레이가 열두 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해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엄마는 딸들에게 야심만만한 자신감과 독립심을 고취시켰다. 근무지를 따라 이동이 잦았지만 시간만 나면 엄마는 딸들에게 셰익스피어와 밀턴을 읽어 주었다. 1912년, 스무 살의 밀레이는 엄마의 권유로 시 대회에 출전해 ‘르네상스’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4등으로 입상했다. 입상한 작품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자마자 언론이 들끓었다. 누가 보더라도 밀레이의 작품이 가장 뛰어났던 것. 1등을 차지한 아무개도 “밀레이의 ‘르네상스’가 최고의 시”라며 당혹감을 표현했고, 2등을 한 참가자는 자신이 받은 상금 250달러를 밀레이에게 주었다. 밀레이의 ‘4등’이 지역문화계의 스캔들이 되었고, 소문을 듣고 그녀의 낭독회를 찾아온 어느 부유한 부인은 밀레이의 미래를 위해 대학 장학금을 내놓았다. 명문여대인 바사대학을 다니며 밀레이는 당대의 급진적인 여성운동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첫 시집 ‘르네상스와 다른 시들’을 발간하고, 여성들 사이의 사랑을 그린 희극을 쓰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밀레이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사했다. 좁은 다락방에 살며 생활비를 벌려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쓰고 보헤미안처럼 살았던 시절을 그녀는 “아주, 아주 가난했지만 아주, 아주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밀레이는 공공연한 양성애자였다. 1923년 서른한 살의 밀레이는 마흔세 살의 노동법 전문 법률가 유진과 결혼했다. 페미니스트였던 유진은 결혼 이후 밀레이를 위해 낭독회 등 문학행사를 주선했다. 그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남편 덕분에 밀레이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갔다. 밀레이 부부는 26년의 결혼생활 동안 서로에게 자유를 허용하며 두 명의 독신자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밀레이는 젊은 제자를 애인으로 두었고 남편인 유진도 마찬가지. 둘은 뉴욕의 근교에 농장을 사들여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어 직접 기른 채소를 먹었다. 그들의 행복은 1949년 유진이 암으로 죽으며 끝났다.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살던 밀레이는 1950년 어느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소설 ‘테스’의 작가 토머스 하디는 밀레이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는 두 개의 매력이 있다. 고층빌딩 그리고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시. 그리하여 겨울 되어 외로운 나무 하나 서 있다. 어떤 새들이 왔다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을 밟으며, 내 속에서 노래했던 여름을 추억해야 하리.
  • 새끼 밴(?) 칠면조 요리에 깜짝 놀라는 소녀들

    새끼 밴(?) 칠면조 요리에 깜짝 놀라는 소녀들

    부모님이 꾸민 어처구니 없는 장난에 충격에 휩싸인 딸들의 반응을 담은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5일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 요리를 먹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겼다. 앞서 부모님은 딸들을 놀려주고자 칠면조 안에 몸집이 작은 새를 넣어 요리하고, 세 딸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먹기 좋게 칠면조를 자르던 딸들은 조리된 칠면조에서 몸집이 작은 새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딸들은 이것을 칠면조 새끼라 생각하고 충격에 휩싸인 나머지 자리를 피하기까지 한다. 이에 아빠가 칠면조는 새끼를 배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지 않느냐고 되묻자 딸들은 속았다는 허탈함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진·영상=Good Going/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99세 할머니 미국 귀화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99세 할머니 미국 귀화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99세의 콜롬비아 할머니가 미국에 귀화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17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아메리카 마리아 에르난데스는 1988년 딸들 중 한 명이 미국으로 모셔왔지만 28년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 퀸즈의 자기 집 거실에서 귀화 증명서에 서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정식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 에르난데스는 취재진과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웃으면서 행복하다”면서 “나는 세계의 수도인 뉴욕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다”라며 작은 성조기를 흔들어보였다.  콜롬비아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에르난데스 할머니는 12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지금은 손자도 22명 증손자도 12명으로 늘어났다. 미국 시민과 결혼해 시민권을 취득한 에르난데스의 딸 오르텐시아 마르티네스(69)는 원래 자신의 아들을 돌보는데 도움을 얻기위해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왔다고 말했다. 딸과 사위의 도움으로 에르난데스는 미국 영주권(그린카드)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오랜 미국 생활끝에 에르난데스 할머니에게 영주권을 갱신하는 대신 미국시민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고, 에르난데스는 그렇다고 대답해 귀화를 신청했다.  그는 아직도 지팡이를 짚고도 잘 걸어다니며, TV를 보거나 지역 노인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서 활동한다. 장수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는 “자녀들과 함께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일을 하고 있고 모두 착하다”고 말했다.  미국 이민국(CIS)은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미국 시민이 된 이민자는 총 73만여명이며 그 중 뉴욕 지역에서 귀화한 사람은 8만 4000여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네 딸 키우는 아빠의 육아일기 “즐거워 죽겠어~”

    네 딸 키우는 아빠의 육아일기 “즐거워 죽겠어~”

    영국에 사는 사이먼 후퍼는 9살 첫째부터 6살 둘째, 그리고 10개월 된 쌍둥이 자매까지 무려 네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다. 여기 그의 아내까지 더하면 총 다섯 여인과 한 집에 살고 있는 것. ‘눈칫밥을 먹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는 아내는 물론 네 딸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무려 25만 명을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가 네 딸과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첫째 딸이 “지루하다”면서 각종 이모티콘을 붙여 보낸 메시지에 그가 당황하는 모습인 것이다. 또한 둘째 딸이 첫째와 함께 자신을 괴롭히거나 싸움이 났을 때 중간에서 뜯어말리는 등 그의 일과는 쉴 틈이 없어 보인다. 물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쌍둥이 자매를 돌볼 때 그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즉 한시라도 딸들에게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육아 따위 이제 싫다”라는 절규어린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에는 위화감이 없다. 오히려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육아가 너무 너무 즐거워’라는 듯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실 여기에는 ‘육아는 너무 힘들지만, 매우 즐겁고 보람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그의 믿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훈훈한 사진을 통해 육아에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맞다’라는 공감을, 아직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이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 역시 후퍼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또한 딸들과 일상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침대 구석으로 밀려나더라도 딸들에게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다면 아마 ‘내일도 힘내자!’와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사진=ⓒ father_of_daughters / 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실베스터 스탤론 “미모의 제 딸들을 소개합니다”

    실베스터 스탤론 “미모의 제 딸들을 소개합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할리우드에서 열린 ‘2017 미스 골든 글로브(2017 Miss Golden Globes)’ 시상식에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가운데)이 아내 제니퍼 플래빈(왼쪽 두번째), 딸 시스틴,스칼렛, 소피아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미스 골든 글로브’는 매년 헐리우드 스타의 자녀를 대상으로 열리는 시상식이며 올해는 스탤론의 딸들이 수상했다.A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미녀 자매 출동’…실베스터 스탤론의 세 딸들

    [포토] ‘미녀 자매 출동’…실베스터 스탤론의 세 딸들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2017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할리우드 배우이자 감독인 실베스터 스탤론의 딸들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실베스터 스탤론, 미모의 아내와 딸들과 함께

    [포토] 실베스터 스탤론, 미모의 아내와 딸들과 함께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2017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할리우드 배우이자 감독인 실베스터 스탤론(가운데)이 아내(왼쪽 두번째)와 딸들과 함께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부싸움 뒤 경찰서 다녀온뒤 둔기로 70대 남편 살해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30일 부부싸움으로 경찰서에 다녀온 직후 남편을 둔기로 살해한 살인 혐의로 김모(66·여)씨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6일 오전 3시 30분쯤 집에서 자고 있던 남편(74)을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이틀 뒤인 지난 28일 새벽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범행 두 시간여 전인 같은 날 오전 1시쯤 “부부싸움을 하고 있으니 와달라”며 경찰에 신고, 출동한 경찰관들에 의해 남편과 함께 경찰서로 임의동행했다. 경찰은 그러나 김씨 부부가 고령인 데다 심야 조사를 거부하자 먼저 남편을 귀가 조처하고 이후 거동이 불편한 김씨를 순찰차에 태워 귀가 조처했다. 김씨는 귀가한 뒤 남편이 잠들자 범행했고 딸의 신고로 현행범 체포됐다. 김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 문제 때문에 그동안 갈등이 심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지난 7월과 8월에도 한 차례씩 “남편이 때렸다”며 부부싸움을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경찰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적은 없다”는 함께 사는 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남편의 폭행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규정상 심야 조사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없는데 고령인 남편과 부인 모두 심야 조사를 거부했고 당시 부부싸움 내용이 심각하지 않아 귀가 조처했다”며 “‘마음에 멍이 들었다’는 부인 진술 등에 비춰 그동안 남편에 쌓인 불만이 한순간에 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첫방송 관전포인트 “제목에 낚이면 안돼”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첫방송 관전포인트 “제목에 낚이면 안돼”

    28일 저녁 8시 30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배우들이 자신감 넘치는 웃음 바람을 예고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연출 김석윤, 임현욱, 극본 이남규, 김효신, 이예림, 제작 드라마 하우스)는 슈퍼맘 아내 정수연(송지효)의 바람을 눈치 챈 애처가 남편 도현우(이선균)와 익명 댓글러들의 부부갱생프로젝트를 다룰 유쾌한 코믹바람극. 여기에 이혼 전문 ‘쓰변’(쓰레기 변호사) 최윤기(김희원)와 내조의 여왕 은아라(예지원) 부부, 그리고 찌질한 방송 PD 안준영(이상엽)과 건어물녀 방송작가 권보영(보아)이 커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코믹 터치로 그려낸다. 안방극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웃음 셔틀’ 배우들이 직접 전하는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 이선균-송지효, “부부 성장드라마, ‘격공’을 확신한다.” 이미 탈고된 12부 대본을 읽어보며 “웰메이드 드라마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는 이선균, 송지효는 “바람난 아내와 ‘헬’복한 남편의 모습을 통해 부부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우리 부부의 성장 스토리에 시청자분들이 웃으며 격하게 공감하실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 김희원-예지원, “부부 자가 진단 절호의 기회, 짠내 나는 코믹 드라마 될 것” “욕먹을 각오도 되어 있다”는 일명 ‘쓰변’이자 바람의 신으로 등장하는 김희원은 “바람을 즐기다보니 아주 민망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물론 재미는 보장한다”라고 자신하며 “웃는 와중에 짠내 나는 ‘이.아.바’의 묘한 매력을 기대해달라”라고 당부하기도. 예지원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아지 같은 남편과 이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결혼이 무엇인지 부부란 어떤 의미인지 자가 진단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이.아.바’를 강력 추천했다. ◆ 이상엽-보아, “제목에 낚이지 마세요. 가족 휴먼 드라마입니다” “우리는 ‘이.아.바’의 로코로코한 재미를 담당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만의 ‘뜻밖의’ 케미도 있다”라고 두 사람만의 호흡을 자랑한 이상엽과 보아는 “제목에 깜짝 놀라셨을 거다. 하지만 절대 제목에 낚이면 안 된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굉장히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남편, 아내, 아들, 딸들을 돌아보게 되는 가족 휴먼 드라마가 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파타’ 트와이스 정연, “걸그룹이라서 관리…공승연 타고나”

    ‘최파타’ 트와이스 정연, “걸그룹이라서 관리…공승연 타고나”

    ‘최파타’ 트와이스가 몸매 관리 비결을 밝혔다. 25일 방송된 SBS 파워 FM ‘최화정의 파워 타임’에는 걸그룹 트와이스가 출연했다. 이날 최화정은 공승연의 아버지가 유창준 셰프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또한 최화정은 “언니가 배우 공승연이더라. 몰랐다”면서 “좀 다르게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정연은 “아버지 집에서도 요리 많이 해주신다”고 밝혔다. 이에 최화정은 “그런데도 딸들이 어떻게 날씬하냐”고 물었고, “저는 걸그룹이라서 관리를 많이 하고, 언니는 타고난 것 같다”고 답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中 화상채팅 손님은 다 한국사람”…탈북여성의 희망 분투기

    “中 화상채팅 손님은 다 한국사람”…탈북여성의 희망 분투기

    탈북여성 서씨(30)의 삶은 기구했다. 여러 나라의 국경을 연신 넘어야 했다. 모멸감 속에서도 살아야 했다. 악착같이 삶에 집착했던 건 아기에 대한 모성과 새로운 세상, 새 희망을 향한 본능적 갈망이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밤중에 집에서 일을 했다. 춤추고, 교태 부리는 듯한 여러 몸짓을 보여주는 건 차라리 쉬웠다. 남자들은 때로는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고, 때로는 몸의 특정 부위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른바 '음란 화상채팅'이었다. 그때마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컴퓨터 카메라 앞에 서서 그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그게 목숨을 부지하며 하루 몇 달러 푼돈이나마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음란화상채팅에는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도 접속하곤 했지만, 절대다수의 주고객은 남쪽의 한국 남성들이었다. 서씨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있는지조차 궁금한-희망을 찾아 북한 고향땅을 떠났지만 중국에서의 삶은 더 가혹했고 더욱 치욕스러웠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라오스비엔티안에서 만난 한 탈북여성 서씨의 기구하고도 험난했던 삶의 역정과 함께 탈북자 중에서도 더욱 소외되는 여성들의 삶의 양태를 들여다봤다. 그는 중국에서 화상채팅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실제로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제 착각이었죠. 그곳은 짐승 같은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어요." 그는 2008년 탈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실상 인신매매되듯 팔려가 중국인 남편을 만났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남자였다. 서씨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몇 번만 있을 뿐이었고요"라고 남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아이를 둘씩이나 낳으면서도 하릴없이 몇 년 동안 '온라인 성노예'로 살아야 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방안에서 일을 시작한 첫 날 3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이력이 붙은 어떤 시기에는 한 주에 많으면 120달러까지도 벌어봤다. 하지만 더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고향을 등지며 바랐던 삶이 아니었다. 서씨는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나도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시 이 곳을 떠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5살 먹은 첫째 딸은 중국인 남편 곁에 재운 뒤 야심한 밤에 18개월 된 둘째딸 지연이(가명)만 등에 업고 도망쳤다. 아이는 남편 호적에 등록했기에 중국인으로 살 수 있지만, 둘째는 달랐다. 무적자, 불법인생으로 살아야할 처지였다.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탈출이다. 끊을 수 없는 모정 앞에 눈을 질끈 감은, 첫 번째 탈출 때보다 더 가슴 미어지는 발걸음이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신세인 탈북여성 2명과 함께 버스와 차를 갈아타며 며칠 동안 대륙을 가로질렀고, 어둑한 밤을 틈타 불법으로 라오스 국경을 걸어 넘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한 뒤에야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비엔티안에서 꼬박 이틀 동안 이들과 인터뷰를 가진 워싱턴포스트는 "자신의 사연을 자극적인 표현과 내용으로 부풀리곤 하는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그들이 직접 겪은 일을 때로는 별 것 아닌 듯, 때로는 부끄러워 하면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중국에 머무는 탈북 여성 20% 정도는 음란화상채팅에 동원되곤 한다. 온라인성노예인 셈이다. 아니면 1만 달러(약 1200만원)에 중국남성에 팔려가 사실상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서씨와 함께 라오스로 온 두 김씨 여성은 모두 한국행을 원했다. 하지만 서씨는 달랐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으로 가고 싶다"면서 "내 딸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며, 그동안 겪은 모든 고생 또한 보상이 있을 것이고, 우리의 운명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스스로 자기암시를 하듯, 주술을 걸듯 끊임없이 되뇌었다. 보상이 없다면 모든 고생이 헛된 꼴이 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향했다. 탈북자들이 가장 흔히 이용하는 루트였다. 하지만 그날 하필 큰 비가 내리며 메콩강에서 이동을 안내해주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들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태국 방콕의 한 수용소로 가야 했다. 서씨는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상태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관계자는 서씨와 그의 딸 면담을 가졌고, 앞으로 최소 네 달 정도 걸려야 망명신청 수용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롯데家 신영자 ‘딸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신경 써달라’ 언급했다

    롯데家 신영자 ‘딸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신경 써달라’ 언급했다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자신의 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아들 명의의 유통업체 B사 등에서 지원해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 심리로 21일 열린 신 이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B사 대표 이모(56)씨는 신 이사장이 B사 등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자녀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지급한 경위를 진술했다. 신 이사장은 에스앤에스인터내셔널 설립 당시 딸들이 설립자본금을 내지 못해 B사에서 가지급금을 내줬다. 이후 이 돈이 변제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신 이사장이 ‘딸 아이들이 돈이 없어 어려워하니 회사에서 신경 써달라’고 언급했다고 이씨는 밝혔다. 이씨는 결국 자신의 성과금을 부풀려 받은 뒤 그 차액으로 가지급금을 반환했고, 신 이사장 딸들이 실제 일은 하지 않으면서 B사 등에서 월급을 받아가는 게 향후 문제 될 수 있다고 신 이사장에게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신 이사장은 이씨의 건의를 받아들여 급여 지급을 중단하라고 하면서 “딸들이 섭섭해 하니 좀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 이사장은 B사 등에 딸 3명을 이사·감사로 올려놓고 급여 명목으로 35억 6000여만원을 지급하게 하고, 이들 업체 자금 11억 7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주로 해외 화장품 브랜드의 면세 사업을 하던 B사가 네이처리퍼블릭과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도 신 이사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씨는 “2014년 초 신 이사장이 ‘국산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 관광객에게 인기 있고 매출도 많으니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가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은 이미 한모(브로커)씨가 업무를 하고 있어 회사가 계약을 맺기 어렵다”고 보고하자 신 이사장이 화를 내면서 “한씨는 나와의 친분을 이용해 (네이처리퍼블릭에서) 돈을 받는 것 같다. 나와는 상관없으니 계약을 진행하라”고 했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의 면세점 매장 위치 변경 청탁과 관련, 한씨를 통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돈을 받은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신 이사장이 한씨와의 사이가 틀어지자 B사 앞으로 수수료 명목의 돈을 받아 챙겼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대선 3차 TV토론에 참석한 미모의 트럼프 딸들

    美대선 3차 TV토론에 참석한 미모의 트럼프 딸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딸인 이반카 트럼프(왼쪽)와 티파니 트럼프가 1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학에서 열리는 3차 TV토론에 참석하고 있다.AF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중국→라오스→태국→?’ 탈북여성의 험난한 오딧세이

    ‘북한→중국→라오스→태국→?’ 탈북여성의 험난한 오딧세이

    탈북여성 서씨(30)의 삶은 기구했다. 얼마 전까지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재운 뒤 밤중에 집에서 일을 했다. 춤추고, 교태 부리는 듯한 여러 몸짓을 보여주는 건 차라리 쉬웠다. 남자들은 때로는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고, 때로는 몸의 특정 부위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른바 '음란 화상채팅'이었다. 그때마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컴퓨터 카메라 앞에 서서 그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그게 목숨을 부지하며 하루 몇 달러 푼돈이나마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음란화상채팅에는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도 접속하곤 했지만, 절대다수의 주고객은 남쪽의 한국 남성들이었다. 서씨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있는지조차 궁금한-희망을 찾아 북한 고향땅을 떠났지만 중국에서의 삶은 더 가혹했고 더욱 치욕스러웠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라오스비엔티안에서 만난 한 탈북여성 서씨의 기구하고도 험난했던 삶의 역정과 함께 탈북자 중에서도 더욱 소외되는 여성들의 삶의 양태를 들여다봤다. 그는 중국에서 화상채팅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실제로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제 착각이었죠. 그곳은 짐승 같은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어요." 그는 2008년 탈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실상 인신매매되듯 팔려가 중국인 남편을 만났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남자였다. 서씨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몇 번만 있을 뿐이었고요"라고 남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아이를 둘씩이나 낳으면서도 하릴없이 몇 년 동안 '온라인 성노예'로 살아야 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방안에서 일을 시작한 첫 날 3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이력이 붙은 어떤 시기에는 한 주에 많으면 120달러까지도 벌어봤다. 하지만 더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고향을 등지며 바랐던 삶이 아니었다. 서씨는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나도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그리고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시 이 곳을 떠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5살 먹은 첫째 딸은 중국인 남편 곁에 재운 뒤 야심한 밤에 18개월 된 둘째딸 지연이(가명)만 등에 업고 도망쳤다. 아이는 남편 호적에 등록했기에 중국인으로 살 수 있지만, 둘째는 달랐다. 무적자, 불법인생으로 살아야할 처지였다.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탈출이다. 끊을 수 없는 모정 앞에 눈을 질끈 감은, 첫 번째 탈출 때보다 더 가슴 미어지는 발걸음이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신세인 탈북여성 2명과 함께 버스와 차를 갈아타며 며칠 동안 대륙을 가로질렀고, 어둑한 밤을 틈타 불법으로 라오스 국경을 걸어 넘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한 뒤에야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비엔티안에서 꼬박 이틀 동안 이들과 인터뷰를 가진 워싱턴포스트는 "자신의 사연을 자극적인 표현과 내용으로 부풀리곤 하는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그들이 직접 겪은 일을 때로는 별 것 아닌 듯, 때로는 부끄러워 하면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중국에 머무는 탈북 여성 20% 정도는 음란화상채팅에 동원되곤 한다. 온라인성노예인 셈이다. 아니면 1만 달러(약 1200만원)에 중국남성에 팔려가 사실상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서씨와 함께 라오스로 온 두 김씨 여성은 모두 한국행을 원했다. 하지만 서씨는 달랐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으로 가고 싶다"면서 "내 딸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며, 그동안 겪은 모든 고생 또한 보상이 있을 것이고, 우리의 운명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스스로 자기암시를 하듯, 주술을 걸듯 끊임없이 되뇌었다. 보상이 없다면 모든 고생이 헛된 꼴이 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향했다. 탈북자들이 가장 흔히 이용하는 루트였다. 하지만 그날 하필 큰 비가 내리며 메콩강에서 이동을 안내해주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들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태국 방콕의 한 수용소로 가야 했다. 서씨는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상태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관계자는 서씨와 그의 딸 면담을 가졌고, 앞으로 최소 네 달 정도 걸려야 망명신청 수용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떡 장수, 메밀묵 장수, 국수 장수, 활기에 넘치고 가지가지 소리가 있는 시장, <페르시아 시장>이 아니고 전쟁이 밟고 지나간 장터에도 음악은 있다. 장난감 파는 가게에 인민군들이 서 있고 그들이 돌아갈 때 누이와 동생, 아들과 딸들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 박경리의 작품, ‘시장과 전장’(1964)에 묘사된 남대문 시장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한국전쟁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유일한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흡사 붉은 양탄자 층층이 올린 아라비아 페르시아 시장 뒷골목에서 양탄자가 날아오르는 요술처럼, 남대문시장에서도 피난민들의 남루한 삶을 날려 줄 마법의 램프 속 도깨비가 남대문시장에는 있었을 듯하다. 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시장4길 21. 흔히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없다는 말같이 도깨비처럼 뚝딱 소리 한 번에 모든 물건을 다 구할 수 있어 ‘박격포’까지 판다는 허명(虛名)마저 되새김질하는 시장이 바로 ‘남대문시장’이었다. 남대문시장은 지금도 명실상부 의류를 비롯해 각종 섬유 제품, 액세서리, 안경 같은 잡화, 주방용품, 공산품, 토산품, 수입 상품, 농수산물 등 1700여 종의 물품들이 거래되는 한국 제일, 최고(最古), 최대 전통시장임은 분명하다. 대지면적으로만 2만 467㎡, 건물연면적으로는 6만 4613㎡에 달하며, 점포 수는 이미 만 여곳 이상이 성업 중인, 하루 4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발도장을 찍는 서울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곳에는 도소매를 겸하는 전문 상가가 있어 일반 손님들도 원하는 물품이 소량이라도 편리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서울 시민의 넉넉한 안살림을 채워주는 곳간과도 같은 곳이다. 최근에는 남대문 시장이 한류(韓流)의 중심지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아메요코(アメ)시장이나 대만 최대 재래시장 디화지에(迪化街)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연 1순위 관람코스로 새롭게 등장하여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심사를 남대문 시장은 품고 있다. ●옛 모습은 숭례문 밖 생선 팔던 칠패(七牌)시장 남대문시장의 역사는 이러하다. 원래 17세기 초부터 한양 도성에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물품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시전(市廛)상인들이 종루(鐘樓) 행랑을 중심으로 모여 조선팔도 모든 물목들을 어깨 힘 잔뜩 넣은 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도성 외부에 인구가 몰리는 17세기 후반 남대문과 서소문 밖을 중심으로 상가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바로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칠패(七牌)시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18세기 중엽, 서울 동부의 어의동(於義洞) 근처에도 또 다른 상가가 등장하게 되는 데 이는‘동대문시장’ 전신인 ‘이현(梨峴)상가’였다. 이로 인하여 서울 도성 안팎의 상가는 종루 시전상가와 이현, 칠패 상가를 합하여 삼대시(三大市)로 나뉜다. 제각각 취급하는 물품도 다양해서 종루 시전상가는 궁궐이나 관아, 그리고 양반 사대부가에 필요한 사치품이나 중국 수입물품, 생활용품을 판매하였다. 반면 남대문시장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칠패시장은 마포나루터와 인접해 있어 새벽녘 마포(麻浦) 서강(西江)을 거쳐 들어오는 곡식이나 생선같은 상품들을 도성 안 서민들에게 대주었다. 특히, 칠패의 어물전(魚物廛) 명성은 지금의 노량진 유명세보다 훨씬 윗길이었다. 따라서, 지금도 남대문 시장의 대표 음식인 '갈치조림'의 명맥이 뜬금포처럼 등장하지 않은 연유가 바로 이러하다. 18세기 후반 한양 도성을 기록한 당시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회현동, 죽전동, 주자동, 어청동, 어의동, 이현, 명문 등지에 칠패시장에서 미리 매점매석한 어물이 산처럼 쌓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지역은 번성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1914년, 우리나라 제1호 시장으로 등록 구한말에 이르러 칠패시장의 규모가 종로와 남대문로를 뒤덮을 정도로 성장하자 대동미와 대동포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宣惠廳)으로 시장의 중심 터전이 옮겨가게 되고 이로부터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의 자리가 옛 선혜청 자리로 잡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에 의해 시장 경영권이 당연히 넘어가게 된다. 1922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중앙물산주식회사로 시장의 경영권이 넘어가고 조선의 유통을 장악하려던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남대문 시장은 1936년경 등록된 상인의 수만 무려 230여 명이 될 정도로 급성장한다. 또한 1930년대 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8만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은 활성화되어 현재 남대문 시장의 규모가 만들어진다. 당시 주요 거래 품목은 미곡(米穀)과 과일, 채소, 생선 등 농수산물과 식료품이었으며, 이 외에도 고기류나 생활 잡화도 취급하여 명실상부한 거래액 규모에서는 조선 최대 전통시장의 면모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남대문 시장은 동대문시장과 아울러 서울의 중심시장 자리를 지켜온다. 1947년에 215개의 점포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1952년에 252개로 늘어났고, 종전 후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150개의 점포와 500여 개의 노점들이 생업을 이끌어가는 공간으로 살아 남아 있었다. 특히 휴전 이후 남대문시장은 주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룬다. 전후복구를 위한 미군의 구호물자와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군용품,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내려오던 적산(敵産) 사치품과 밀수품 들이 거래되면서 소위 ‘도깨비’처럼 단속을 피해 물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남대문 시장 안에서는 빈번하였다. 특히 50,60년대 정부에서 유통 금지 물품으로 단속을 하던 밀수품들인 카메라, 양주, 담배, 시계, 양산 등이 남대문 시장 곳곳에 등장했다가 없어지곤 해서 당시 서울 시민들의 호기심을 가득 받기도 하였다. 또한 미군들의 군복, 담요, 시레이션(C-ration) 박스 등 접하기도 힘든 고급 군수물자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어 항간에는 ‘박격포’도 살 수 있다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퍼지기도 하였다. 1960, 70년대에는 빈번한 불난리를 피해 시장 건물 현대화사업에도 박차를 가한 기간이었다. 1969년 1월에는 지하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이 완공되었고, 이후 1975년까지 667개의 점포가 추가되어 그 때의 건물들이 현재까지 이르러 지금의 시장의 틀을 만들었다. 1980년대는 바야흐로 남대문 시장 전성시대였다. 흔히 ‘남문’패션이라고 해서, 베이비붐 세대들인 1970년대 생 아동들이 학교에 입학할 즈음 전국적으로 아동복에 대한 수요가 넘쳐흘렀고 이를 남대문시장이 감당하였다. 40대 이상이라면 지금도 귀에 익숙한 ‘부르뎅’, ‘원 아동복’ 등의 아동복 브랜드가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의 ‘워너비’ 메이커가 되었다. 또한, 신발류로는 ‘프로스펙스’, ‘르까프’, ‘까발로’, ‘타이거’, ‘슈퍼카미트’, ‘프로월드컵’ 등의 브랜드가 등장하여,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를 넘어 전국 각지로 어린이들의 동심을 흔들어 놓았다. 특히 어린이날 전후로는 물건을 떼러온 ‘봉고’들이 남대문 시장 입구 10Km부터 줄지어 서있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남대문시장의 호황은 1997년 IMF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더구나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등장하고 인근의 동대문 시장이 의류 특화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남대문시장은 의류 중심의 상권이 대거 액세서리, 안경점, 여성 전문 패션, 그릇, 내복류 등으로 이동하여 2000년대를 맞이한다. 오늘날 남대문시장은 비록 예전의 ‘박격포’까지 팔 기세의 위세는 점점 사그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발을 굳건히 붙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한류상품, 인삼, 김, 가죽 제품 등과 같은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상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17세기 후반에 출현한 어물 유통의 중심지, 남대문 밖 칠패(七牌)시장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남대문 시장. 현재 인터넷, 모바일 쇼핑 등의 변화된 유통 환경에서도 그 옛날 나랏님도 어쩌지 못하던 난전(亂廛)시장 특유의 질긴 생명력을 한류(韓流)의 물살을 타고 단단히 이어가길 바란다. <남대문시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너무나 당연하다. 남대문시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초심자에게 남대문 시장은 경복궁, 남산 타워와 아울러 기본 탐방 코스다. 2. 누구와 함께?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가 보면 좋다. 추억과 더불어 시장 골목골목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3. 가는 방법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권유한다. 지하철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제일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규모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다. 점포수가 만 개가 넘으니 넉넉한 시간을 두고 둘러보는 것이 낫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80년, 90년대의 부르뎅 아동복이나 원 아동복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에게는 그 당시만 못하더라도 여전히 전통시장 특유의 진한 삶의 내음은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많다. 6. 꼭 봐야할 상점이나 거리는? -수입상품거리나 그릇 도매점, 액세서리 상가도 볼만한 것이 많다. 특히 수입상품상가 강추! 7. 먹거리 추천? -원래 남대문시장 최고의 인기 음식은 단연 갈치조림이다. 갈치조림골목은 남창동 본동상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회현역 5번 출구 인근의 칼국수 골목도 유명하다. 또한 안경점 골목 주변의 노천 생갈비도 먹을 만하다. 이외에도 곰탕, 닭곰탕 등등의 먹거리 투어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시장. 8. 홈페이지 주소는? -www.namdaemunmarket.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남대문 시장 만으로 한나절 넉넉하다. 주변이 바로 명동이어서 남산이나 경복궁, 광화문 등지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우선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전체 지도를 꼭 보고 가야한다. 또한 전문적인 상가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매 목적에 맞는 상가 위치를 미리 알고 가면 좋다. 그리고 주차 문제는 심각해서 반드시 주차장에 세워 두어야 견인, 과태료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에누리 없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공희정 컬처 살롱] 단막극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

    [공희정 컬처 살롱] 단막극의 귀환이 반가운 이유

    1970~80년대 학생 잡지에 실린 하이틴 스타들의 인터뷰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자주 나왔다. “어떻게 배우가 되셨어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명동을 걸어가다가 픽업됐어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솔깃한 이야기였다. 혹시나 나에게도 ‘픽업’의 행운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명동을 향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 지금은 없어진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나들이는 명동 성당까지 이어졌다. 친구들은 휘황찬란한 유행의 동네에 넋이 나갔지만, 난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 감독님을 의식하며 한껏 폼을 잡고 걸어갔다. 그날 아무도 날 ‘픽업’해 주진 않았다. 지금처럼 복합상영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십대를 위한 영화도 적었던 시절 픽업되지 못한 아픔을 안고 난 자연스럽게 TV와 친해졌다. 코미디, 외화, 쇼 등 무엇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것은 KBS ‘TV 문학관’의 영향이 컸다. 몇 날 며칠 걸려야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한 시간여 만에 오감으로 완독할 수 있는 이 단막극은 활자보다 입체적이고 독서보다 효율적이었다. ‘삼포 가는 길’, ‘배따라기’, ‘등신불’, ‘젊은 느티나무’, ‘김약국의 딸들’, ‘독짓는 늙은이’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나는 단막극으로 섭렵했다. 그렇게 드라마 사랑이 깊어지면서 한때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꿈은 원대했고, 결과는 처참했지만 미완의 내 걸작들은 아직도 꿈의 상자 안에 간직돼 있다. 그때 단막극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에겐 교본과도 같은 장르였다. 1980년 KBS ‘TV문학관’을 시작으로 MBC ‘베스트 셀러극장’, SBS ‘오픈 드라마 남과 여’가 순차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때 지상파 방송사는 단막극을 정규 편성했었다. 연속극과 다른 집약된 감동이 있는 단막극은 신인 작가와 배우, 감독들의 꿈의 산실이었고,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다른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TV가 16부 내외의 미니시리즈, 50부 내외의 주말 드라마, 150부 내외의 일일 연속극에 익숙해지면서 드라마는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하게 됐다. 단막극은 자본의 논리 앞에 맥없이 무너졌고, 미래의 거장을 꿈꾸는 신인들의 등단 무대도 함께 사라져 갔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 가을 단막극이 돌아왔다. 비록 일 년에 몇 달, 한정적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귀한 존재가 되긴 했지만 단막극의 귀환은 반가웠다. 신인 배우들의 연기는 신선했고, 신예 작가들의 이야기는 색달랐으며, 입봉하는 감독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오랜 시간 꿈을 향해 달려왔을 그들의 비상은 더 없이 힘찼다. 중국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스타들도, 한 회당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작가료를 받는 작가들도 미숙함에 주눅 들고, 낯섦에 긴장됐던 신인 시절이 있지 않았겠는가. 그들에겐 꿈을 향해 어설프게 첫발을 내디뎠던 그 ‘마당’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세상이 할 일은 더 넓은 ‘마당’을, 더 많은 그들의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꿈을 이뤄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꿈을 펼쳐 볼 마당을 만들고 이를 지켜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간담회 갖는 故 백남기씨 딸들

    간담회 갖는 故 백남기씨 딸들

    5일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고(故)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오른쪽)?백민주화(왼쪽)와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외신기자 대상으로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울광장] 사시 폐지 헌재 결정 이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시 폐지 헌재 결정 이후/오일만 논설위원

    사시 폐지에 대한 합헌 결정 이후 법조계 안팎이 시끄럽다. 입학부터 졸업, 취업 과정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로스쿨이 유일한 법조인 양성 루트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 5대4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설 정도로 로스쿨 제도가 갖고 있는 결함 역시 심각하다. 10년 가까이 끌어 온 사시존치 논란이 헌재 판정으로 종식되기는 사안이 너무도 엄중하다. 국가 통치의 근간인 사법 정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쿨 제도 자체가 억대에 가까운 비용과 대학 졸업 후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입학 때 자소서에 부모의 직업을 못 쓰게 하고 장학금 혜택을 늘린다고 해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현대판 음서제’로 비판받는 로스쿨 제도가 부와 권력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면 현행 로스쿨 제도를 통해서만 변호사는 물론 판검사까지 뽑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로스쿨 출신을 대상으로 판검사 선발을 시작했지만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법원은 전문성, 정의감, 청렴성 등 10개 평가 기준을 제시했지만, 애초부터 정성평가라는 한계가 있다. 법조계 주변에선 판검사 선발 직후부터 “모 국회의원, 모 시장, 모 장·차관 아들딸들이 어찌어찌해서 뽑혔다”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다. 실력으로 합격한 당사자들에겐 참으로 억울한 노릇이지만 성적이 공개되지 않고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실력과 스펙을 가진 ‘흙수저’들이 탈락했을 경우 이런 소문들이 꼬리를 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법시험 제도에선 성적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이런 저열한 공정성 시비 자체가 발붙일 수 없었다. 빈부격차가 악화되는 현실에서 금수저 논란은 자칫 사법 정의 자체를 부인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는 소지도 안고 있다. 고시 낭인 양산이나 다양성 결여 등 사법시험 폐지 이유로 거론된 사안들은 인체로 보면 피부병에 불과하지만 공정성 시비 자체는 궁극적으로 사법 정의 자체를 흔드는 심장병으로 비유될 수 있다. 가장 공정한 채용 시스템은 합격자가 만족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합격자가 승복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은 동서고금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헌재 결정 당시 사시 폐지에 반대했던 조용호 재판관의 말을 들어 보자. “로스쿨 제도는 필연적으로 고비용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고 특별전형제도나 장학금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근본적 한계가 있다. 입학 전형의 불공정과 학사 관리의 부실 등은 공정성에 대한 신뢰와 상실을 초래한다.”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시행 8년째인 로스쿨 제도의 매몰 비용은 물론 전체 변호사 수의 25%에 육박하는 현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순기능을 키우고 제도적 단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하지만 로스쿨 원트랙으로 사법부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이번 헌재 결정은 ‘2017년 12월 31일 사시폐지’를 적시한 현행 변호사시험법 부칙에 대한 판단인 만큼 70년간 존속해 온 사법시험의 존재 당위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9명중 4명의 헌재 재판관들이 지지한 사시 존치의 목소리를 경청해 빠른 시일 내에 변호사시험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사시 존치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로스쿨에 입학할 형편이 안 되지만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우회적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차디찬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꿈을 키우는 이 땅의 많은 청년들에게 시작도 하기 전에 희망을 접으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변호사 예비시험이란 제도를 두고 있다.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안고 있는 기회 평등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다. 모든 이에게 기회를 주는 것, 이는 사법 정의의 첫걸음이자 법치국가의 근본이나 다름없다.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로스쿨 제도 하나로 우리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은 공정성과 기회의 평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oilman@seoul.co.kr
  • 만취 상태로 등교한 여학생들…무더기 퇴학처분

    만취 상태로 등교한 여학생들…무더기 퇴학처분

    잔뜩 술에 취해 등교한 여고생들이 무더기로 퇴학을 당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레안드로 알렘이라는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가 음주 등교한 여학생 8명을 퇴학처분했다고 현지 언론이 2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사건은 학생의 날 다음 날 한 기독교 학교에서 벌어졌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8명이 인사불성의 상태로 등교했다. 특히 2명은 상태가 심각했다. 한 학생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 학생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또 다른 여학생 역시 교실에서 구토를 하는 등 만취한 상태였다. 이 학생 역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현지 언론은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만취 상태로 등교한 여학생 2명이 모두 지역에서 유명한 가문의 딸들이었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6명 역시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숙취가 심각했다. 알고 보니 8명 학생은 20일 저녁부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21일까지 이틀 연속 술을 마셨다. 여학생들은 보드카 등 증류주를 집중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관계자는 "(미성년자의 음주는 금지지만) 학교 밖에서 술을 마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음주 등교한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8명 전원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학교는 학생관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교장을 문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선 매년 9월 21일을 학생의 날로 지킨다. 입춘과 겹치는 한 이날은 수업이 없다. 학생들은 간식을 챙겨 공원 등 야외로 나가 하루를 즐긴다. 대낮 음주 등 종종 탈선이 일어나 주요 공원 등에는 경찰이 배치되곤 한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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