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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부 11명,자서전 「날마다 일어서는 부부」 펴내

    ◎“가부장 사회속 여성의 「아픔」 담아”/뿌리깊은 남아선호·권위적 남편등/자신들이 겪여왔던 인고의 삶 고백 여성학을 공부한 11명의 주부들이 자신들이 걸어온 그동안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한 자서전적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제목은 「날마다 일어서는 부부」. 어린시절엔 딸이라는 이유로,결혼을 하고나서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주부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또 권위를 앞세우는 남편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화해….어느 한 여성만의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고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공동된 삶을 반추하게 하는 여성들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날마다 일어서는 부부」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주부들이 한 남자의 아내로,헌신적인 엄마로 살아온 세월에 허무함을 느끼면서 어느날 문득 남편의 성공이 자신의 가슴속에 난 빈 공간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는 이야기가기둥을 이룹니다』 92년부터 52주간에 걸쳐 주부들에게 여성학을 지도했던 여성학자 박혜란씨의 설명. 박씨는 특히 주부라는 이름아래 가려졌던 춥고 어두웠던 세월이 각자 이야기는 다르지만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의 용기있는 끈질긴 극복의 삶이 결국 「여성」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고 밝히고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주부들에게 마치 「내 이야기」같은 감동을 준다고 덧붙인다. 실례로 결혼생활 30년 경력의 김혜원씨(59·전 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는 딸 셋을 낳은후의 눈물겨운 아들낳기 작전과 철저한 가부장제도하에서 살아가는 남편(변호사)과의 갈등 및 육아 때문에 「잘 가르치는 고3 영어교사」자리를 그만둬야 했던 이야기들을 적었다. 그밖에도 이인서씨(52·서일전문대 교수)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오빠와 남동생들 틈에서 치이면서 부모와 대립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부터 딸 셋을 낳고 창피하니 셋중 하나는 남장을 시키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40이 넘어 아들을 출산했을때 기뻐해야 할지 어쩔지를 고민해야했던 이야기를,전풍자씨(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공동대표)는 지금까지의 삶을 미루어 볼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은 시부모·남편·자녀 등 3대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어머니 세대보다는 내가,나보다는 내 딸들이 더 좋은 삶을 가꾸어 나갈것을 적었다.
  • 불 법정에 선 나치일가/파리=박정현(특파원코너)

    ◎“전범” 투비에 부인·자녀도 증인 신세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재판소에는 한 가족이 법정에 섰다. 그것도 중죄재판소에서다.2차대전의 나치 협력자인 올해 79세의 폴 투비에가 종전49년만에 법정에 선 것이다.그의 부인 베프테(69)와 아들 피에르(44),딸(46)은 증인 자격으로 나왔다. 투비에는 나치독일하의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1943년 만든 민간보안대의 리옹지역 대장을 지내면서 독립운동가와 유태계 프랑스인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전쟁이 끝나자 투비에는 자취를 감췄으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은둔생활을 해오던 투비에는 지난 89년 니스의 한 수도원에서 검거 됐고 64년 제정된「반인류범죄 불말소법」에 의해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투비에는 동료의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리옹의 거리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시민7명이 목숨을 잃게하는등 잔학상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그의 재판도 이같은 피해자 친지들과 인권단체등의 숱한 진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사형을 촉구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그의 가족들은 전후50년가까운 투비에의 도피생활때문에 자신들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투비에의 부인은 21살이던 지난46년 당시 오빠를 찾아온 투비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며 71년 퐁피두대통령이 사면을 내린 직후의 6개월이 결혼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했다.그의 아들과 딸들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해야만 했고 이름과 주소등 신원이 공개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면서 「가족의 미래는 아버지의 석방여부에 달려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온갖 고생을 한 가족들의 처절한 진술이 계속되는 동안 당사자인 투비에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듣기만 했다.투비에 공판이 속개될 오는 6월6일엔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작전에 참가했던 퇴역군인등 8백여만명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동시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전범과 투비에같은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조사와 심판이 한창이다.역사의 심판은 50년이란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한울타리 가족」 이끄는 김동열씨댁(훈훈한 우리가정:9)

    ◎늦게 귀가땐 딸 머리맡에 「사랑의 메모」/식구들 주1회 마주앉아 마음열고 대화/「부모역할 훈련」까지 받으며 참부모되기에 열심 주유소업을 하는 김동렬(42)·유인화(39·주부)씨 부부 가정은 1주일에 한번씩 가족회의를 연다.가족회의의 의장은 막내 다미(서울 대영국교 5년)를 포함해 네식구가 돌아가며 맡는다.「우루과이 라운드」등 아이들에겐 버거운 사회적 이슈가 때로 회의의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다혜(서울 여의도중 2년)·다미 두 자매는 신문과 스크랩을 찾아보며 미리 공부할 정도로 열심이다. 『가족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마련한 것인데 아이들의 생각이 요즘 어디 머물고 있는가 알수 있어 생활지도가 가능하고 사회적 관심도를 높여 지적 발달을 돕는 계기도 됩니다』 가족회의로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이 가정은 3년전 가족회의를 통해 각자 맡은바를 충실히 함을 뜻하는 「제 자리를 찾자」를 가훈으로 정한 후 매달 실천사항과 매주 실천과제를 만들어 지킨다.두딸이 모두 어리지만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된 결정이니만큼 부모의 간섭없이도 각자 공부나 휴식 TV시청 등을 해나간다. 따로 과외공부를 해본적이 없어도 두 자매의 학교성적은 늘 상위권.김씨는 과외공부 대신 이웃 아이들과 공부모임을 갖도록 해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우치도록 했다. 『아빠는 좋은 친구예요.짜증이 날땐 위로해주시고 유머로 기분을 풀어주기도 하세요』국민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 다미의 말이다. 김씨는 아무리 바빠도 딸들과 하루 1∼2시간씩 대화를 하며 늦게 귀가한 날에는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어 잠든 딸의 머리맡에 놓아주기도 한다. 『옛어른들은 자녀를 속으로 사랑해야한다며 표현을 금하셨지만 사랑을 마음에 품고만 있어선 안됩니다.사랑을 표현하고 아픈 마음을 알았을때는 다독거려 줘야지요』 자녀를 위해 스스로 카운셀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김씨는 「부모역할 훈련」을 받았을 정도로 참부모되기에 열심이다. 그가 이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기를 목표로 삼은 것은 지난 91년 미국음악그룹 「뉴키드 온더 블럭」내한공연장에서의 사고를 본 후.아버지들이 자녀교육에 방관자로만 머물고 있어 이런 현상이 배태됐다고 느낀 그는 이웃들과 함께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고 지난해 「한울타리 가족」모임의 결성을 통해 범사회적인 가족운동으로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울타리 가족」은 가족 이기주의적인 모임이 되길 거부합니다.자녀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에 관심을,다함께 사랑을」을 표어로 내건 한울타리 가족운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열여덟 가족이 모인 한울타리 가족 모임은 지난해 자녀들의 성교육을 위한 시간과 산간마을 어린이와의 교류행사를 갖고 최근에는 서울근교 도봉산에서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이는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서울 아현동 윤순희씨/우리집에선:4(녹색환경가꾸자:25)

    ◎「폐식용유 비누」 만들어 이웃 나눠쓰기 4년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기 시작한지 올해로 4년째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누를 만들었던지 제가 만든 비누를 연결하면 글쎄,서울부터 부산까지는 안되어도….여하튼 수만장은 될 겁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주부 윤순희씨(51)는 동네에서 「폐식용유 비누공장 아줌마」로 불릴만큼 많은 숫자의 폐식용유 비누를 만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수질환경 보호를 외쳐온 소문난 환경 파수꾼.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폐식용유가 강물을 오염시키고 가정에서 사용한 폐식용유를 무심코 하수구에 쏟아부었을 경우 오염된 강물을 원상복귀시키려면 튀김기름 5백㎖에 3백ℓ들이 물통으로 3백30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윤씨는 그때부터 비록 작은 힘이라도 자신부터 수질보호 운동을 실천하기로 결심한후 쓰고 버리는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윤씨는 폐식용유 비누의 경우 폐식용유와 가성소다(양잿물)·물만 있으면 되므로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고 만드는 과정도 아주 간단하다고 밝힌다.물론 가성소다를 구입하기 위해 화공약품을 파는 종로5가까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정도 노력없이는 결코 푸른 환경을 가꿀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 『폐식용유 비누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눠주게 되면서 부터는 가정에서 나오는 기름만으론 원료가 부족,중국집이나 통닭집처럼 튀김기름을 많이 쓰는 곳에 부탁,버리는 기름을 모아왔는데 집이 언덕배기라 들고 올라오려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이때문에 처음엔 식구들이 『괜한짓을 한다』며 싫은 소리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환경을 지키려는 윤씨의 정성에 감동,가족은 물론 이웃도 모두 협력자가 돼주고 있다고 밝힌다. 『폐식용유 비누를 만들땐 먼저 커다란 스테인통에 가성소다를 넣고 물을 부어 1∼2분쯤 가성소다를 녹인후 기름을 붓는데 그다음 나무 막대기로 쉬지않고 한 30분쯤 반드시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줘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들지요』 그런데 윤씨는 요즘 이 과정을 남편 이학선씨(56·사업)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너무 수월하다고 자랑스러워 한다.그외에도 멀리서 기름이나 가성소다를 운반해오는 날은 남편과 딸들이 버스 정류장 등에서 기다렸다 들어주며 격려할 정도라고. 『집 사람은 비누만 만드는것이 아니고 신문지와 병종류를 중심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우유팩을 모으며 특수 휠체어를 만드는 주재료라는 알루미늄 캔 꼭지를 모으는등 하도 여러가지를 하기때문에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 같아요.그래서 처음엔 신경질도 났지만 우리 환경은 남이 아닌 나를위해 지켜야 한다는 아내의 굳은 의지를 지켜 보면서 그냥 아내 혼자만의 일인양 모른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남편 이씨의 이야기. 이씨는 특히 물과 가성소다를 섞어 젓는 과정에서 연기가 나고 열이 오르면 뜨거워지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해서 스스로 자청,그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기름을 부은후 잘 저어 물엿처럼 되면 두부목판이나 우유팩에 일일이 부어 보관했다가 한 20일쯤 지나면 비누로 쓰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도 모두 남편 이씨가 챙겨야 할 몫이다. 『폐식용유 비누는 써본 사람이 아니면 그 효과를 모른다』고 말하는 윤씨 부부는 『강물오염의 주범인 합성세제보다 세탁효과가 우수한것은 물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설거지를 할때 세제대신 쓰면 분해가 빨라 그릇에 세제가 남아있을 염려가 없어 더없이 위생적』이라며 다소 번거롭더라도 모든 주부들이 하나가 되어 이 운동에 참여하길 희망했다.
  • 친가보다 외가 좋아하는것은(박갑천 칼럼)

    외손자는 업고 친손자는 걸리면서 업은놈 발 시리니 빨리 가자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경중이 뒤바뀐 경우를 두고 쓰이지만 말뜻 그대로 외조부모는 외손자를 귀여워 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귀여워해 봤자 외손자는 외손자다.자라면 제 성바지 찾아 가버리니 소용이 없다.그래서 『외손자 귀애하느니 절굿공이를 귀애하지』하는 속담도 생겨났다.지난 날에는 더러 외손봉사하는 예도 있긴 했다.그런 경우야 귀애할 만도 했다고 하겠다.하지만 그게 얼마나 되었겠는가.그러니 외손자는 그저 재롱부릴 때나 예쁠 뿐이라는 뜻의 속담이었다. 처가와 측간은 멀수록 좋다 했고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할까보냐고 했다.그러나 처가쪽으로 가서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특히 처가에 딸만 있는 경우가 그러했다.처가의 힘이 되어 준다는 뜻이었으리라.그 처가에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외가에서 자라면서 외가와 가까워진다.율곡 이이의 아버지(이원수)도 그 비슷한 처지 아니었던가 한다.신사임당과 혼인하던 그해에 그의 장인(진사 신명화)이 세상을 뜬다.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인 처가에서 사임당은 둘째였다.사임당은 그런 형편의 친정을 못잊어 못떠났던 듯하다. 그랬기에 율곡은 외가에서 태어나 여섯살때 서울 친가로 가기까지 외가에서 자란다.외할머니 용인이씨가 재주있는 외손자를 얼마나 사랑했겠는가.세살난 율곡에게 석류열매를 보이면서 무엇 같으냐고 물었을때 「피낭쇄홍주」(부서진 빨간구슬을 껍질이 싸고 있다)라는 옛시의 문구로써 대답한 외손자가 아니던가.다섯살 때는 어머니 사임당이 병으로 눕자 외할아버지 사당에 가서 낫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빈 효자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전국 남녀중고생 2천명을 대상으로 생활·의식설문조사를 한바 있다.그 가운데는 『친가와 외가중 어느 쪽과 더 가까이 지내는가』하는 항목도 끼인다.여기서 친가가 25.5%인데 비해 외가는 36.5%로 훨씬 높은 응답이 나왔다.여학생만의 경우는 더하다.친가 23.9%에 외가는 40.2%였다지 않은가. 이는 위축되어 가고 있는 부권과 관계된다 할 것이다.아내가 시댁보다 친정과 가까이 하는 사이아이들도 그쪽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난다.외사촌 뿐 아니라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의 아들딸들,즉 이종사촌들과도 친사촌 보다 가까워진다.그렇게 변했다.하지만 그런 말이라도 나오는 지금은 낫다.앞으로는 차츰 그 여러 사촌들도 없어져 갈것이 아닌가.「하나만 낳기」시류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 부드러워지는 「YS패션」(청와대)

    김영삼대통령의 맵시가 달라지고 있다.검게 물들인 머리의 색깔이 좀 엷어졌다.전에 없이 꽃무늬가 든 넥타이를 자주 맨다.앞머리는 이마쪽으로 약간 끌어내리고 있다.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올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변화,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의미는 무엇일까.대통령의 측근들은 『머리색깔이 너무 진하니까 오히려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그러나 넥타이는 특별히 변했는지 우리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넥타이에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취임식에서 그는 빨강과 쥐색 줄무늬 넥타이를 맸다.클린턴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붉은색과 감청색,미색의 3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였다.대통령취임후 공식석상에서 맨 넥타이의 모두가 줄무늬거나 체크·둥근 원이 들어 있는 비교적 단순한 무늬였다.그러나 3일 대통령의 경찰병원 위문 때와 해외공관장 만찬석상에서의 넥타이는 붉은색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진 것이었다. 김대통령의 패션 스타일은 검정이나 감청색 양복에 붉은색이 들어가는 넥타이로압축된다.여기에 가운데가 움푹 꺼지도록 매는 「YS식」 넥타이매듭이 상표다. 양복은 제일모직 VIP복지로 만든다.양복을 맞추는 곳은 오래된 단골집인 체스트 필드 양복점. 김대통령의 패션은 그런점에서 취임전과 후가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머리염색을 연하게 하고,헤어스타일을 부드럽게 하고,꽃무늬 넥타이를 매는 의미를 새삼스레 찾는 것도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는 독특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다섯켤레가량의 구두를 지니고 있다.모두 끈이 없고 상표도 똑같다.찰스 주르당.국내업체가 상표를 도입해 만들고 있는 신발이다.신발크기는 2백65㎜. 대통령이 되고나서 켤레수가 늘어났지만 상도동에 있을 때는 구두가 늘 한켤레였다.3당합당후 한번은 신발장에 있는 구두를 출입기자가 들어봤다가 6만원이란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있는 것을 발견,화제가 됐었다.굳이 이 상표를 고집하는 것은 가죽이 다른 신발들보다 연해서 발이 편하다는 설명.9만2천원짜리. 구두나 신발에 대한 검약정신은 악연을 가진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비슷하다.상도동에서 청와대로 이삿짐을 싸고 옮긴 사람들은 측근들이 아닌 청와대 경호실 사람들이었다.경호원들은 신발장에 있던 낡은 운동화를 별 생각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다음날 경호실은 그 운동화를 다시 찾느라 소동을 벌여야 했다.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대통령의 하나밖에 없는 조깅화였기 때문이다. 지금 김대통령에겐 조깅화가 두켤레 있다.모두 코오롱 제품.황영조선수를 세계제일의 마라토너로 키운 코오롱이 2억원인가를 개발비로 들여 개발한 조깅화다.원래는 그것도 한켤레밖에 없었는데 미국 방문에 앞서 예비용으로 하나를 더 구입했다고 한다.대통령은 장학로제1부속실장에게 돈을 주면서 한켤레를 더 사오라고 했다.2만7천원. 미국서 클린턴과 조깅하는 사진이 국내언론에 전송된 직후 한 신문사에서는 대통령이 신은 운동화가 미국산 나이키가 아니냐 하는 얘기가 나왔었다.무늬가 나이키와 비슷한 탓이었다.그러나 사진 원판을 확대해 보니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는 결론에 이르러 가십으로는 쓰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김대통령에게 많은 것은 넥타이다.넥타이에 대해서만은 멋을 부린다.두 며느리와 미국에 사는 딸들이 주로 공급하고 있다.
  • 교보문고 「스테디셀러」 매주 발표/국내 첫시도

    ◎2년전 발간된 책중 20위까지 선정/“오랜기간 꾸준한 인기로 독자에 어필”/지난주 박경리작 「김약국…」 “1위” 차지 「나온지는 오래됐지만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을 뜻하는 스테디셀러는 발간후 몇달동안 집중적으로 팔리는 베스트셀러보다 양서라고 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가 내용과는 상관없이 시류를 타고 반짝인기를 누릴 위험성이 있는 반면 스테디셀러는 그 질을 이미 독자들로 부터 검증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책들이 스테디셀러인지를 밝히는 것은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는 바람직한 독서정보라 할 만하다. 교보문고가 올들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주일 단위로 스테디셀러를 뽑아 20위까지 그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교보문고측이 정한 스테디셀러의 기준은 발간된지 2년이 지난 책으로서 부문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들지 못한 서적이다. 이에따라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의 판매량을 집계한 두째주의 스테디셀러 순위에는 60년대 나온 박경리작 「김약국의 딸들」과 78년 6월 출간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등 60·70년대 작품이 각각 1편,80년대 작품 9편,90년대 작품 9편이 올라갔다. 이들 스테디셀러를 분야별로 보면 ▲소설 8 ▲인문·시 각 3 ▲아동·경제경영 각 2 ▲비소설·교양과학 각 1등이다. 판매량은 1위인「김약국의 딸들」이 1백9부,20위인 북회귀선(헨리 밀러작)이 35부였다. 이에앞서 지난 7일 발표된 첫 스테디셀러 순위(93년12월23일∼94년 1월5일기준)에는 두째주 순위에 계속 오른 책외에 ▲권력이동(앨빈 토플러)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토지 1(박경리) ▲여자의 남자 1(김한길) ▲사람의 아들(이문열) ▲장미의 이름 상(움베르토 에코) ▲아리랑(님 웨일즈)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우동 한 그릇(구리 료헤이)등 9편이 있었으나 1주일만에 순위에서 탈락했다. 현재 국내 대형서점들은 1주일 단위로 제각기 집계한 종합및 분야별 베스트셀러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교보문고의 경우 순위에 든 책은 많으면 3백∼5백부,적게는 10여부정도 나가고 있다. 교보문고측은 스테디셀러 집계를 새로 내게 된데 대해 『베스트셀러 순위가 독자들의 책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게 현실인데 그 대상이 새로 나온 책 위주인데다 상업적 출판물이 많이 포함돼 있기때문에 이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스테디셀러 순위를 별도로 뽑았다』고 밝혔다.
  • 극우지도자 지리노프스키 성향/극단적 민족주의 「합리」로 치장

    ◎“건전한 비판” 호언불구 향후행보 관심 지리노프스키는 과연 서방언론들이 경악하듯 극단의 위험한 파시스트인가.아니면 25%에 달하는 러시아유권자들이 선택한대로 러시아를 구할 유일한 대안의 인물인가. 선거운동기간 중 그가 「내뱉은 말」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분명 러시아가 처한 모든 어려움을 외국의 탓으로 돌리는 외국인 혐오주의자,러시아민족주의자이다.하지만 제1당의 위치를 확고히 굳힌 지금 그는 이와는 반대로 온건,합리주의자로 대접받고 싶어한다. 그는 승세를 굳힌 14일 하오 모스크바시내 슬라비안스카야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한때 얼룩무늬 군복에 수류탄을 주렁주렁 달고다니던 모습과는 달리 이날 그는 검은정장에 턱시도차림으로 세계언론앞에 섰다.그리고는 거의 전시간을 자신은 파시스트,반유태주의자,외국인 혐오주의자가 아님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러시아의 영토확장,러시아군의 해외파병에 반대하며 발트3국 주둔군의 철수를 지지한다』고 말했다.국내정치에서도 자신은 제1야당으로서 건전한 비판과정책대안 제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파시스트라는 것은 선거에 진 세력들이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바로 이날 아침 언론들은 전날 그가 독일과 일본에 대해 원폭투하 운운한 말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그는 독일 NDR­TV와의 회견에서 『내가 크렘린에 들어서면』 러시아내정에 간섭하는 독일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독일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혹은 체르노빌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그리고 『일본도 마찬가지 꼴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기간중 그는 발트3국을 포함,카자흐,그루지야등 구소련영토,나아가 핀란드,알래스카까지 되찾겠다고 호언했다.반서방 구호와 러시아자존심의 회복을 내걸고 생활고에 찌든 유권자들의 불만을 대리충족시켰다.『외국인 장사치들이 우리 딸들을 희롱하고 우리 자원을 뽑아내가고 있다.옐친은 우리 경제를 송두리째 미국에 팔아치우고 있다』고 외쳤다.많은 러시아인들은 그의 연설이 황당하지만 통쾌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조차 지금 자기들이 찍은 표의 결과에 놀라고있다.물론 러시아는 이제 강력한 대통령제의 헌법을 갖게됐고 국정이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서울대에 장학금1억 기탁/운수사간부 숨진아들 기려(조약돌)

    ○…금강운수 이사인 이천만씨(65·서울 동대문구 제기동)는 17일 지난 8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에서 유학중 심장마비로 숨진 아들 상태군(당시 28세)의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후배들이 이어받아 달라며 아들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1억원의 장학기금을 전달했다. 이군의 어머니 최정숙씨(65)는 『일찍 죽은 아들을 떠올리면 가슴 아프나 장학금을 받게될 새로운 아들·딸들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며 울먹였다. 이군은 지난 88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뒤 스톡홀름에서 미국유학준비중 아침조깅을 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 “선거 돈안드는 영국식으로”/김 대통령

    ◎여·야 정치특위 재개 맞춰 강조/실명제는 정치개혁도 목표/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김영삼대통령은 23일 『선거법 개정에서 돈 안드는 영국의 선거제도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자당 원외지구당위원장단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영국도 현재의 우리나라 처럼 금권타락선거가 판을 쳤으나 19세기말 부정선거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지금은 돈 없는 사람도 출마할 수 있고,국회의원이 다음 선거준비로 돈 걱정을 하는 일은 없다』고 전제,이같이 밝혔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국회의 정치특위재개 시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선거관계법의 개정에서 영국식으로 돈이 들지 않는 선거제도를 채택토록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목된다. 이와관련,이경재 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은 지금껏 약간의 돈이 들더라도 이를 후원회를 통해 조달하는 미국식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날 영국식에 관심을 보인것은 철저한 정당선거를 통해,한 지구당의 선거에 선거공보값 7백∼8백만원밖에 들지 않는 방식을 요구한 것으로 선거법 개정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금융실명제는 개혁중의 개혁으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깨끗한 정치를 이룩하려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하며,과거의 선거형태로는 이나라 정치를 바로잡을 수 없는 만큼 선거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돈 안드는 선거로 과감하게 개혁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면서 『달라져야만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고,아들 딸들에게 자랑스런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우즈베크공(중앙아의 한인사회:중)

    ◎국회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민족화합정책으로 이민초기 고충 해소/극면성 바탕 경제발전 기여… 자긍심 높아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약45만명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그들 가운데 3분의2에 달하는 30여만명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1937년,18만여명에 달하는 연해주 거주 동포들이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온 이후 그들은 황량한 박토 중앙아시아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역이었다.강제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형제들,아들 딸들이 죽었지만,그리고 이주된 후 창문도 없는 토굴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우리 동포들은 천부적인 근면성과 탁월한 농사 기술로 콜호스(Kolkhoz)라고 하는 수많은 협동농장을 건설했고 지역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농사를 지어냈다. 현재는 그곳의 정부나 공·사기업에 진출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포도 많이 있고 대학교수 등의 전문 인텔리들도 그곳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그들은 지금까지의 중앙아시아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고 대체로 중류 이상의 다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카자흐공화국에서 동포지도자들을 직접 만났을때 그들의 표정에서 한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마아타에서의 일정을 끝낸 우리 조사단은 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했다.우즈베키스탄의 국기가 선명히 그려진 아에로플로트기는 기내 방송을 러시아어에 앞서 우즈베크어로 시작하고 있었다.우즈베크공화국은 TV나 라디오 방송,상점의 간판이나 공문서 작성 등을 이미 우즈베크어로 공식화했다.총인구 2천만명중 70%에 달하는 우즈베크민족의 비율과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독재가 급속한 탈러시아화 및 우즈베크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사회발전 모델은 카자흐공화국과 마찬가지로 터키식의 발전방식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종교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인접한 이란 등지의 회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는 달리 온건하고 대중적인 성격의 종교문화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민족화합 정책과도 잘 부합하고 있었다.그러나 현지의 우리나라 교회들이 십자가를 옥외에 걸지 못할 정도로 타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통령 민족문제 담당 비서관 사이도프와 우즈베크 공화국 의회 국제외교위원장 지야모프를 차례로 면담했다.그들은 한결같이 한인들의 우수성과 근면성에 대해 칭찬하고 한인들은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으로서 다방면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잘 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민족화합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들은 올해 초 일부 국내언론에 보도된 우즈베크 민족주의자들이 금년내로 한인들에게 이 지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이에 대해 대단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또한 「재CIS 고려인연합회」가 자치주 추진과 관련하여 우즈베크 안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민족화합정책이 다민족국가에서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그들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족분규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한인인 블라디미르박이 회장으로 있는 치르치크시의 비철금속내열합금 공장과 지모페이황이 회장인 타슈켄트주의 폴리타젤 협동농장을 방문했다.그곳을 방문케된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우즈베크 정부의 배려때문이었다.우리동포들은 한결같이 몸집이 크고 건장해 보였다.지도급 인사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몸에 밴 듯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특히 우리는 폴리타젤 농장에서 1937년 강제이주후 눈물겨운 노력으로 정착지를 개간하고 훌륭한 터전으로 변화시킨 동포 1세들을 만날 수 있었다.칠순이 넘었음에도 아주 건강한 모습이던 그들은 인심 또한 후하여 농장에서 재배한 갖은 과일과 고기를 보드카와 함께 대접해 주었다. 사실 필자는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강제이주 초기의 파란만장한 신산고초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단,술자리에서의 어우러짐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마저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이유없이 즐겁고 흥겨운 마음을 확인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일일 것이다.안무혁 의원과 필자는 합금공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 칼을,폴리타젤 농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상을 선물로 받았다.우리 문화와 우리 풍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었으면 더 좋았으리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이미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인 것이다.
  • 마약추방의 길 함께 걷는다(사설)

    마약문제는 흔히 남의 일로 생각하기 쉽다.일부 연예인이나 유홍업소 종사자등 특수계층과 관련된 문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가 마약의 중간착지에서 마약소비국으로 바뀌었다.최근 마약인구가 급격히 확산되어 올해 마약류사범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두배반이나 늘어났다.이같은 증가추세가 계믿된다면 올 한해동안 마약류사범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망이다.호기심과 무지와 주변권유로 인해 마약이 애주가들에게 「술깨는 특효약」으로,주부들에게 「살빼는 약」으로,운전사들에게 「졸음을 쫓는 약」으로,농촌 일터에 「피로회복제」로 둔갑하여 스며들고 있으며 부유층 자녀들의 향락추구용으로 퍼지고 있다.우리의 가정이 더 이상 마약으로부터 안전지대가 될수 없음이 명백해져가고 있는것이다.게다가 최근 북한이 양귀비를 대량재배해서 생산한 아편을 국제마약조직을 통해 우리쪽에 밀반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국가안전기획부가 마약센터를 설립,국가안보 차원에서 강력 대처해 나가기로 한 터다. 마약이 우리 「발등의 불」이 된 셈이다. 이같은 시점에서 서울신문이 서울(19일)과 부산(20일)에서 갖는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예방을 위한 국민대행진」은 큰 의미를 갖는다.올해로 네번째가 되는 이 행진은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단합된 국민의 힘을 모아「마약없는 밝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마약복용이 호기심과 무지에서 비롯됐다 할지라도 한번 그 마수에 걸려들면 복용하는 그 개인은 물론 가정을 파괴시키고 나아가 사회와 나라의 기초를 뒤흔들다.마약은 복용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약값 마련을 위한 강·졸도,지하경제의 범죄악용등으로 이어지는 인류공동의 적이다. 마약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진 틈을 비집고 올해 들어 마약류 사범이 급증한 것을 보면 마약을 복용한 청소년들이 길거리에 드러누워 있는 미국에서처럼 마약이 청소년층까지 파고들 날이 멀지 않았다는 우려가 든다.우리의 아들·딸들이 마약에 중독됐다고 상상해보자.생각조차 끔찍한 일이다.그러나 본드흡입등 환각상태에서 저질러지는 청소년범죄가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현실이다.청소년층에 침투한 각성제 흡입이 마약으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마약퇴치에 온 국민이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마약퇴치는 정부나 전문단체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마약류의 감시자가 되어야겠다. 이제 더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일이된 마약퇴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서자.
  • 사고 판 미인(외언내언)

    부끄러워서 볼낯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무색(하다)」이나 「무안(하다)」이라는 말은 미인과 관계된다.감상시중의 걸작이라고 회자되어 오는 백락천의 장한가속에 「무안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바 그말이 거기 연유한다고 말하여지기 때문이다. 양귀비의 아름다운 자태에 눌려 다른 미인들의 빛은 바래고만다고 노래하는 대목은 이렇다.『…눈동자를 돌려 한번 웃으면 백미가 생기나니/육궁의 분바르고 눈썹그린 미인들 얼굴빛이 없구나(육궁분대무안색)』.양귀비 앞에서는 어떤 미인도 「무색(무안)」하게 된다는 뜻이었다.일상의 언어생활에서는 「무안」을 심리적측면으로,「무색」은 객관적판단의 측면으로 갈라쓰는 경향이다. 미인을 선발하는 행사를 치르면서 한 지방언론사의 고위직간부가 사기꾼이 무색해질 짓거리를 했다.미스경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참가자의 부모등으로부터 돈을 받고서 진·선·미를 정했다지 않은가.때가 어느때인가.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의 서슬이 시퍼런 시점이 아닌가.그 와중에서 시퍼런 서슬을 무색케하는 불정을 서슴지 않았다니….세상 무서운줄 모르는 못된짓이었다.물론 돈챙긴 언론사간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돈을 바치고라도 입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제약회사 회장이나 참가자 부모들의 전시대적 발상의 소행도용서하기는어렵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려먹을 수 있다(유전가사귀)고 했다.호랑이수염 아닌 문어 머리칼도 구해올수 있다고 했고.돈은 그렇게 힘이 세다. 근자에 성가와 명망을 한꺼번에 떨어뜨리고 있는 저명·유명인사들도 그 힘센돈을 잘못챙겼다가 얹혀서 그리된것 아니던가.돈의 위력이 그렇고보니 그힘 빌려 미인을 조작하려 했음은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도 하겠다.하지만 들통나버린 이제와서 볼때 그부모들은 제딸들을 『분별없는 미인은 마치 돼지코에 장식한 보석과 같다』(성경)는 신세로 만들어버린 꼴 아닌가.부모가 할짓이 아니었던 것을….
  • 불 영화제/상영방화 84편 확정

    ◎46년작 「자유만세」서 「서편제」까지/해외서 열린 한국 최대 “영화축제” 오는 10월20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될「퐁피두센터,93 한국영화제」의 상영방화 84편이 확정됐다.46년 작품인「자유만세」부터 최근의「서편제」에 이르기까지 흑백21편,컬러가 63편이다.이들 영화는 영화제 기간동안 세번씩 상영된다. 퐁피두영화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가진 해외영화제중 기간과 상영편수면에서 최대규모다.이 영화제는 특히 해방이후 최근까지 한국의 대표작들을 망라해 상영함으로써 프랑스와 유럽전역에 우리영화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소개하고 해외판로도 개척할수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3백50석 규모의 퐁피두센터 갸랑스 영화관의 영화제는 전세계의 평론가들의 관심이 높다. 프랑스 문화성 소속의 국립공공기관 퐁피두센터는 이곳에서 시중의 일반영화는 상영하지 않고 매년 2∼3개국의 외국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해왔다. 이 영화제를 공동 주관하는 영화진흥공사와 한국영상자료원,주불 한국문화원은 그동안 관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전작품에 불어자막을 넣었다. 상영작품은 다음과 같다.「자유만세」「마음의 고향」「양산도」「피아골」「자유부인」「시집가는 날」「지옥화」「하녀」「박서방」「로멘스 빠빠」「이생명 다하도록」「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오발탄」「마부」「연산군」「김약국집의 딸들」「쌀」「갯마을」「남과 북」「산불」「안개」「감자」「바보들의 행진」「영자의 전성시대」「삼포 가는 길」「겨울여자」「족보」「장마」「깃발없는 기수」「바람불어 좋은 날」「짝코」「피막」「만추」「어둠의 자식들」「만다라」「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바보선언」「안개마을」「꼬방동네 사람들」「오염된 자식들」「과부춤」「불의 딸」「물레야 물레야」「태」「뽕」「길소뜸」「황진이」「장남」「내시」「티켓」「씨받이」「연산일기」「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칠수와 만수」「안녕하세요 하나님」「기쁜 우리 젊은 날」「아제아제 바라아제」「아다다」「개그맨」「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구로아리랑」「남부군」「수탉」「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우묵배미의 사랑」「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꿈」「청송으로 가는 길」「그들도 우리처럼」「나의 사랑 나의 신부」「장군의 아들」「개벽」「피와 불」「하얀 전쟁」「김의 전쟁」「결혼이야기」「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첫사랑」「벙어리 삼룡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서울 황제」「서편제」.
  • “검증 거치지 않은 자료”거듭 강조/부정입학·편입자명단 발표 안팎

    ◎사대측에 건네진 기부금 총액 230억/연대,“감사당시 지적 있었지만 승복못해” 교육부는 8일 지난 86년이후 각 대학교별로 실시한 감사자료를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그동안 각종 교육비리로 만신창이가 된 교육계를 이번 감사자료 공개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이 파장에 대해 몹시 우려하는 모습. ○…교육부가 지난 86학년도 입시이후 부정입학자 명단을 일괄 발표하던 8일 장·차관실 등 교육부에는 명단이 공개된 학부모·학생들의 원망섞인 항의전화가 빗발. 대부분 부정편·입학생들의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로 학부모들은 학생명단 공개조치를 비난한 반면 학생들은 뒤늦게 명단을 발표한 일관성없는 교육행정을 맹비난. 학부모들은 『아들·딸들도 모르게 부모된 잔정에 그만 입학시켰으니 죄가 있으면 부모 죄이지 아들·딸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학생 명단 공개처사를 강렬히 비난했다고. 한편 『신문을 보고 자신이 부정입학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머니를 꺼낸 한 대학생은 『사회정의를 위해 일단 교육부 조치가 옳았다』고 일응 수긍하며서도 『이제 학교도 다닐수없고 친구들 보기도 부끄럽게 됐다』며 『입학 당시에 부정 입학 사실을 았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간 교육부의 미온적인 처사를 비난하더라고,. ○…교육부가 지난 88년 1월이후 지금까지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를 통해 입학 및 편입을 둘러싸고 학부모와 학교측이 주고 받은 것으로 발표한 기부금 등은 모두 2백30억4천6백만원에 이르고 있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그 이유는 교육부의 경우 여러가지 한계때문에 감사에서 밝혀내지 못한 부정입학 기부금이 추후 검찰수사를 통해 확인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검찰 확인부분이 이번 발표에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 부정입학 사례가 가장 많이 적발된 대학은 전주 우석대였으며 기부금 액수면에서는 92∼93학년도 입시에서 68명으로부터 70억6천만원을 받은 광운대이며 다음은 성균관대·한성대·우석대·동국대 등의 순이었다. ○…연세대는 교육부가 공개한감사자료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적극 부인. 학교측 관계자와 해당 교수들은 90학년도에 교수자녀 6명과 이중국적자 2명등 모두 8명을 지망학과정정 및 정원외 입학형식으로 부정입학시켰다는 교육부의 발표내용에 대해 『이제와서 명단을 공개하는 교육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교육부측을 강도높게 비난. 김수일교무처장은 이날 상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연세대에 부정은 없다』고 전제,『교육부 감사당시 그러한 지적이 있었지만 학교측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고 일축. ○…지난 88·89년 모두 27명을 부정입학시킨것으로 드러난 고려대는 교육부 감사발표에 냉담한 반응.총장을 비롯해 기획처장·교무처장 등 관련 실무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우거나 아예 출근조차 하지않아 교육부 발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애써 회피하려는 눈치.김정배부총장은 이와관련,『교육부 감사결과는 이미 검찰 조사결과 밝혀져 총장해임 등 조치가 취해진 내용으로 새로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측에서도 이에대한 대책회의 등을 새삼 마련할 계획이 없다』고 애써 강조. ○…한성대의 경우 90년 실시한 교육부 감사에서는 90학년도 입시때 학교측이 33명의 성적을 조작해 부정합격시켜주고 모두 10억원의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 냈으나 이는 뒤에 검찰 수사결과 확인된 부정합격자 및 수수금액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한 것이어서 교육부 감사의 한계를 노출. 교육부는 검찰 수사에서 부정합격자수가 무려 94명에 이르며 기부금 수수액도 32억8천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나 당시 재단이사 이희순씨,교무처장 김용정씨,사무처장 유무열씨를 포함해 모두 7명의 관계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았는데도 추가확인된 61명의 부정입학자 및 학부모 명단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공개를 기피. ○…교육부 관계자는 부정 편·입학자명단을 지난 88년부터의 감사자료에 의거해 공개한 것은 이때부터 대학입시제도가 선지원 후시험제도로 바뀌어 입시부정의 소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 이 관계자는 또 『89학년도 입시부정 연루자의 경우 업무방해죄의 공소시효가5년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사직당국에 형사고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 감사에서 이미 대학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은 만큼 이제와서 관계자들을 고발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난색을 표시. ○…성기선감사관은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 자료가 해당대학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부정 편·입학생 본인 및 학붐』의 확인,수사기관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수차례 강조,자료의 부정확으로 인해 제기될 수 있는 만일의 시비에 대비하는 모습.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김 장학사 3억 챙겼다/대입 정답유출

    ◎함씨 세딸에 답빼준 대가 여관 구입/91·93년 호텔서 부인통해 전달/92년 매입땅 자금출처도 조사 검찰은 20일 교육평가원 김광옥장학사(50)가 지난해에도 부동산을 구입하는등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점을 중시,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재산추적에 나섰다. 검찰은 김장학사가 지난해 3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아파트재개발지역의 대지 69㎡(시가 1억5천만원)를 사들인 사실을 밝혀내고 자금출처를 캐고 있다. 대입학력고사 정답유출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형사3부(송광수부장검사)는 이날 김장학사가 91학년도 입시때부터 한서대 이사장인 함기선씨(52)의 부인 한승혜씨(51)로부터 모두 3억원을 받고 함씨의 세딸들에게 정답을 빼돌린 사실을 밝혀내고 김장학사·김장학사의 부인 김영숙(47)·한씨등 3명을 구속했다.함씨는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이날 귀가시켰다. 김장학사가 지난해 구입한 대지는 재개발아파트지역 안에 있는 것으로 아파트공사가 끝나면 44평형까지 분양받을 수 있어 현재 시가는 거의 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수사결과 김장학사는 출제본부 호텔에서 정답을 적은 메모지를 작성,이를 호텔로비에 슬쩍 떨어뜨린뒤 대기하고 있던 부인 김씨가 주워 한씨에게 전달하는 수법으로 정답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김장학사는 이를 위해 91년과 93년 전·후기대 입시본부가 차려진 서울캐피탈·팔레스호텔에서 정답을 미리 빼내 16절지 3분의1 크기로 접어 가지고 있다가 입시 3일전 문제지를 성남의 대한교과서로 보낼때 이를 호텔로비에 떨어뜨렸다. 한씨는 맏딸과 둘째딸의 91학년도 학력고사 정답을 받기전인 90년10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김장학사의 부인 김씨에게 3억원을 수표로 건네줬다는 것이다.김장학사는 이 돈으로 서울 수유동에 4층짜리 여관 영빈장을 구입했다. 한편 검찰은 대입학력고사 출제본부에서 시험관리요원을 지휘감독하는 관리대표직을 맡았던 평가원 과학·실업교과실장 김종억장학관에 대해서도 신병을 확보하는대로 소환·수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김장학사가 자신 이외에는 이사건 공모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장학관을 비롯,다른 관계자의 묵인·방조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 대물림의 꿈(외언내언)

    「나의 영혼은 신에게 바치며 나의 육신은 땅에 바치며 나의 유산은 내 혈연에 남기노라」 1594년 천재적 건축가 시인 화가인 미켈란젤로는 그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자신(영혼)을 3등분하여 세 자녀에게 맡기고 죽었다. 대체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거액의 재물을 남기기도하고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를 물려주기도 한다.또 도자기나 공예등 기술을 전승시켜 가업을 잇게 하기도 한다. 며칠전 이창호 시카고 총영사의 장녀가 제27회 외무고시에 합격,우리나라 외교사상 최초의 부녀외교관으로 탄생됐다. 이렇게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녀는 「나도 아버지 처럼」「어머니 처럼」되고자 한다.아버지가 교수면 나도 교수,변호사이면 나도 변호사,특히 예능계열에선 2대·3대에 걸친 화가 음악가들이 얼마든지 있다.물론 누구나가 자녀들에게 자신의 일을 권고하거나 이끄는 것은 아니다.나는 딱딱한 과학자이니 오히려 내 딸은 예술가가 됐으면,내 직업은 골치 아프고 발전이 없으니 내 자식만큼은 다른 직업을 가져줬으면 하는 수도 있다.그러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면 내 아이도 나와같은 직업을 택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어릴때부터 부모의 독특한 기술를 지켜보면서 그 숨결까지도 느낄 수 있는 자녀가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가. 전남 보성의 옹기장이 이학수씨는 9대째 옹기를 굽고있고 유명한 보부상인 개성상회는 3대째.2대째이던 한창수씨는 「재산을 잃더라도 신용을 잃지말라」던 부친의 정신까지 이어받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것은 부모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를 자신의 평생직업으로 삼는데 망설임이 없을 때의 예이다. 딸들을 의사로 만들어 「의사일가」를 이루고 싶었던 함기선씨의 경우는 딸들에게 무리하게 의과지망을 강요,그 과정에서의 부모의 비양심을 물려받아 악순환의 되풀이나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완전한 교육을 자녀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훌륭한 유산」이라던 영국시인 토머스의 말이 새삼 김언처럼 들린다.
  • 마틴 루터 킹의 꿈/뉴욕에서(임춘웅칼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그많은 어려움과 그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그리고그 꿈은 미국의 땅에 뿌리박은 꿈이라고 말입니다.나는 멀지 않아 이 나라가 일찍부터 지켜 내려온 믿음,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그 진리를 당연한 것으로 믿는 그 신조의 참뜻에 따라 살게 될날이 올 것이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나는 나의 아들 딸들이 그들의 피부색깔이 아닌,그들의 인격에 따라 평가될 날이 멀지 않아 오게 될것이란 꿈을가지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오늘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25만명의 인파가 운집했던 워싱턴 광장에서 행한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의 감명깊은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문의 일부분 이다.킹목사는 그로부터 5년 후인 1968년 4월4일 한 저격범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올해는 킹목사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무참히 쓰러진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그래서 요즘 미국에서는 그를 기리는 각종 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지난 4일 뉴욕의 맨해턴에서는 킹목사 추모대행진이 있었다. 데이비드 딘킨스 뉴욕시장을 비롯한 수천명의 흑인들이 중부 맨해턴의 2번가를 묵묵히 시위했다.그런데 이날 흑인민권행진에는 뉴욕한인회등 한인단체에서 나온 한국인 2백여명이 끼어 있어눈길을 끌었다. 기록이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도 미국의 민권운동에 한국인이 참여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킹의 꿈은 바로 한국인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는 현실을 이제야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리라. 킹목사가 세상을 떠난지 25년이 지난 지금 그의 꿈은 과연 얼마나 실현된 것일까.최근 뉴욕 타임스지와 CBS방송이 이 의문에 대한 여론조사를실시했다.흑인의 45%만이 조금 나아졌다고 응답했으며 52%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빠졌다고 응답하고 있다.흑백 구별없이 미국인 전체적 으로는 52%가 개선됐다고 보았으며44%는 같거나 나빠졌다고 보고있다. 킹목사가 멀지 않아 실현되리라던 그의 꿈은 「멀지 않아」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킹의꿈은 오랜 세월을 두고,어쩌면 몇세기후에나 실현될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64년 통과된 민권법안은 분명히 킹목사가 확신을 가지고 벌인 민권운동의 소산이다.그가 없었어도 언젠가는 민권법이 햇볕을 보긴 했겠지만64년에 실현되지는 못했을 것이다.다만 그 법률의 정신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변화는 혁명적인 방법으로도 쉽게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체험하고 있다.그러나 시작이 없으면 비록 아주 작은 꿈이라도 영원히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도 역사는 아울러 가르쳐 주고 있다.
  • 더 부끄러워하자/윤오숙 방송위홍보부장(굄돌)

    대학입시부정에 대한 기사가 연일 거듭 될수록 그 규모와 비례하여 추함을 더해간다.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식의 장래를 돈으로 사는 눈먼 모정도 그렇고,아들 답안지를 슬쩍 고친 채점교수 아버지도 그렇고,한탕주의에 빠져 대리시험응시로 성실하게 쌓아갈 미래를 불확실한 것으로 망쳐버린 젊은 청춘도 그렇고 이들을 사주한 교사 일당도 그리고,대학발전을 부정한 돈으로 도모한 대학총장도 그렇다.조사경찰에게 자식생각하는 부모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빗나간 모정이나 피해학생에 대한 가책을 갖기보다는 남편출세에 지장을 염려하는 장군 아내의 지어미다운 마음 또한 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아 발전을 이룩한들 진정한 상아탑이 될리 없으련만,성실히 공부해온 학생을 불합격시킨 대가로 키워온 거짓의 성에 우리 아들 딸들의 교육이 볼모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다.또한 합격조작으로 불합격된 애들의 실망과 상심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야 될까.나 자신의 경험을 돌아 보아도 학교성적이 웬만하여 큰 걱정없이 대학에 합격한 큰 딸과는 달리 공부가 시원치 않은 둘째가 대학에 실패해 재수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피해 학생들의 억울함이 가슴저리게 와 닿는다. 타인의 것이어야 할 합격의 기쁨을 빼앗아 자기 자식에게 안기는 부모들은 그릇된 애정이 자녀들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부모 봉양을 위해서라면 용서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식 먹이려고 쌀 한 톨이라도 훔쳤으면 그것은 도적질로 생각했던 옛날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구속된 관련자들이 손으로,모자로,머플러로 카메라에 노출을 애써 피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아직은 양심이,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우리 모두 그들의 허물을 자식 키우는데 용빼는 재주없는 부모된 죄로 슬쩍 동정심이 들지도 모른다.뉴스보도의 표현대로 죄없는 아버지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공직을 내놓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지도 모른다.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 자식들에게 자칫 맹목적인 사랑을 줄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담임 선생님께 드린 부끄러운 봉투를,자식의 버릇없음을,정의롭지 못한 마음을,건강한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낸 것을… 무릇 자식 잘못 기른죄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그리고 그들은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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