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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검찰, 옐친과 딸들 뇌물스캔들 조사

    [모스크바 AP 연합] 유리 스쿠라토프 러시아 검찰총장은 3일 보리스 옐친대통령과 그의 딸들이 크렘린 뇌물 스캔들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옐친 대통령에 의해 직무가 정지됐지만 상원의 동의거부로 사퇴를철회, 명목상 검찰총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스쿠라토프는 크렘린이 건물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업체 메타벡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와관련해 옐친 대통령과 그의 두 딸 타치아나 디야첸코와 옐레나 오쿨로바가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스쿠라토프 총장은 스위스 검찰측으로부터 옐친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메타벡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혐의가 담긴 서류들을 접수했다고 밝히고옐친대통령에 대해 조사에 협조하고 진상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크렘린은 이날 옐친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해외에 은행계좌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 케네디家여성 가문부흥 일군다

    케네디 가문의 희망이던 존 F 케네디 2세의 사망 이후 케네디가를 다시 일구어낼 주역들로 케네디가의 여성들이 집중 조명받고 있다. 조지프 케네디와 함께 케네디가의 신화를 이룩한 로즈 피츠제럴드(95년 작고)이후 3대에 걸친 케네디 가의 여성들은 모두 18명.남성들이 부와 권력,그리고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가족사를 써내려가고 비극이 끊임없이 엄습하는동안,이 여성들은 집안을 추스려가며 자기 맡은 분야에 매진,친정과 외가의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케네디 2세 사망후 가장 각광받는 여성은 68년 암살된 로버트 상원의원과부인 에델(71)의 맏딸인 캐슬린 케네디 타운젠드(48).94년 매릴랜드주 부지사로 선출된 이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케네디가 여성 가운데 선출직에 오른 최초의 인물.고향도 아닌 매릴랜드주의 2002년 주지사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그녀는 그에 앞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내년 러닝 매이트로도 거론되고 있다.특히 30명에 달하는 3세대 맏이로 케네디가의 구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케네디 대통령의 유일한 직계가 된캐롤라인 케네디 쉴라스버그(42)는사생활 노출은 극도로 꺼리는 편이지만 실력있는 변호사로 맹활약중.언론으로부터 ‘잠재적인’ 케네디가의 부흥사로 주목받고 있다. 조지프 케네디의 3녀인 유니스와 서전트 쉬라이버의 딸 마리아 쉬라이버(44)는 미국 대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케네디가 여성.NBC방송의 인기 뉴스 진행자로 앵커 사상 처음으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영화배우 아놀드 수왈츠제네거와 결혼,방송·연예부문의 총아로 성장하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를 지낸 오빠와 남동생들 사이에 끼어있던 2세대 진케네디 스미스(71)는 94년부터 98년까지 5년동안 아일랜드 대사를 역임했다. 지난해 아일랜드 평화협정 체결에 톡톡히 공을 세워 케데디가의 ‘딸’임을만천하에 입증했다. 캐슬린의 어머니이자 고 로버트 상원의원의 부인 에델은 케네디가에 11명의 3세대원을 충원한 며느리로 케네디가의 피붙이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지만케네디가의 기둥 역을 맡고 있다.남편을 비롯,데이비드·마이클 등 두 아들을 잃는 슬픔 속에서 케네디가 비극을 이겨낸 인물.언론의 스폿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지는 않지만 자기분야에서 커리어를 쌓는 3세대 여성들로 우선로버트 상원의원의 딸들로 캐슬린의 두 동생을 들 수 있다.유복녀 로리(31)는 다큐 필름 제작자로 맹활약중이고 매리(40)는 인권운동가로서 쿠오모 주택·도시개발 장관의 부인이다. 또 조지프의 5녀인 패트리샤의 딸 로빈 로포드(38)는 자연보호 운동가및 장애인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버림받은 아픔 진솔한 詩語로

    비둘기는 항상 두 마리가 함께 왔다/비둘기를 보면서/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는데/그 비둘기와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비둘기처럼 다정한’,서울D초등교 2년 고모양)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녀들이 시집을 발간했다.시집의 제목은 ‘저 파란하늘이 있어 이제는 울지 않을래’(도서출판 토우).서울 구로구 구로6동 가톨릭재단의 아동보호시설 ‘나눔의 집’(원장 주춘옥·52)에서 살고 있는 8명의 초·중·고 소녀들이 창작한 79편의 시가 실려 있다. 13년 전 문을 연 ‘나눔의 집’에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명의 딸들이 주원장을 엄마라고 부르며 함께 살고 있다. 이 소녀들은 김유권(金裕權·46)·조윤주(趙允珠·36)씨 등 현역시인들로부터 1년간 지도를 받고 공동 창작시집을 펴냈다.시집은 이들이 고교 졸업후독립하는 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발간됐다.김씨는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소녀들이 자신만의 아픔을 진솔한 시어로 승화시켜 잔잔한 감동을준다”고 말했다. 주원장은 “시집발간을 계기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박경리‘김약국의 딸들’獨출판사서 번역 출간

    박경리씨의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독일 펜드라곤 출판사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출간됐다. 박씨의 작품이 독일어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소설은 1860에서 1920년까지를 배경으로 남해안의 작은 도시 통영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성수와그의 아내 한실댁 그리고 다섯 딸의 운명을 다뤘다. 펜드라곤 출판사는 그동안 김원일씨의 ‘바람과 강’,김광규씨의 ‘조개의깊이’,이문열씨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현대한국작가선’으로 출판했으며 한수산씨의 ‘부초’와 양귀자씨의 ‘원미동 사람들’도 펴낼 예정이다.
  • 6·3 再選 선거전-합동연설회 이모저모

    여야 후보들은 23일 6·3재선거 첫 합동연설회에서 표심(票心)을 놓고 공방전을 벌였다.중앙당 불개입 원칙에 따라 여당의원들은 연설회장 출입을 삼간 반면 야당의원은 상당수가 연설회에 참석,대조를 보였다. 서울 송파갑 잠실초등학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장에는 2,000여명이 청중이 운집,열기를 실감케 했다.후보들은 저마다 자기가 지역현안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중앙당 불개입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자민련 의원중 박구일(朴九溢)의원만이모습을 보였다.어준선(魚浚善)의원은 연설회장 밖에서 김희완(金熙完)후보의 설득으로 되돌아 가기도 했다.반면 한나라당은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을 비롯,소속의원 30여명이 참가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국민연금,햇볕정책,정부조직개편 등 현정권의 정책을 일일이 비판하면서 출마의 당위성을 역설했다.이후보는 이 지역최대 현안인 재건축문제에 대해 “주민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대로 차질없이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제2의 정치인생을 송파에서 시작할 수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자민련 김후보는 “종로,구로 다 안 나가겠다던 분이 송파에 나온 것 자체가 우리 송파를 우습게 본게 아니냐”고 반문한뒤 “내 딸들에게 더 이상 실패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지지를 호소했다.이어 “소록도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이후보의 아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선이 끝난 뒤미국으로 건너갔다”면서 “이런 마당에 어떻게 이후보가 송파에 남겠다는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무소속 임동갑(林東甲)후보는현 정치를 싸잡아 비난한 뒤 “소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인천 계양·강화갑 계양구 효성 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연설회에서후보들은 정치현안과 깨끗한 정치를 화두로 설전을 벌였다.국민회의는 소속의원들이 일체 참석하지 않은 반면 한나라당은 김덕룡(金德龍)·권익현(權翊鉉)부총재,당3역 등 지도부를 비롯,30여명이 동원됐다.1,500여명이 몰린 연설회장에는 시민단체에서 깨끗한 선거 실천 캠페인을 벌였으며 선관위는 공명선거 서명식을가졌다. 첫 연설에 나선 국민회의 송영길(宋永吉)후보는 “지역을 알고 서민의 편에서 국민의 정부 개혁작업을 도울 사람을 뽑아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이어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려는 마당에 한나라당은 정국불안을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후보는 그러나 “현 정부는 무슨 일이든 하다가 잘못되면 전 정권에게 책임을 돌린다”면서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그치지않는 내각제 공방과 국정운영능력 부족이 국론분열과 정국불안의 근본원인”이라고 반박했다.안후보는 또 “상대후보 비방이나 돈선거,사랑방 좌담회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무소속의 김요섭(金約燮)후보는 “기성 정치권에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당리당략을 초월한 지역일꾼이 나설 때”라고 주장했다. 박찬구 박준석기자 ckpark@
  • ‘98 사회통계로 본 생활상-어떻게 달라졌나

    통계청이 지난해 국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장남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효(孝)의 개념에 큰 변화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직업관이 바뀌는 등 경제난이 사고방식에 끼친 영향도 많았다. ●부모는 능력있는 자녀가 모셔야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비율은 98년 기준 30.8%로 94년의 36.3%에 비해 상당폭 줄었다.반면 장남 이외의 아들이 모시는 경우는 14.9%에서 19.4%로,딸이 모시는 경우는 3.5%에서 4.3%로 각각 늘었다.부모의 실제 생계부양자(동거여부와 상관없이)도 장남이 27.0%로 5년전의 33.1%에 비해 줄었고 장남 이외 아들은 7.6%에서 10.9%로,부모 스스로 해결한다는 응답은 37.6%에서 41.6%로 증가했다. 특히 “실제와 상관없이 누가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능력있는 자녀”라고 답한 경우가 절반 가까운 45.5%에 달했다.94년의 27.2%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반면 “아들과 딸들”이라는 막연한 대답은29.1%에서 14.5%로 감소했다.“장남”이라는 답은 19.6%에서 22.4%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한편 사위가 장인·장모를 모시고 사는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절반정도만 노후준비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가구주는 53.3%로 94년(53.0%)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학력이 높을수록(대졸이상 69.5,고졸 55.1,중졸 45.8%) 준비를 많이 했다.직업별로는 전문관리직이나 사무직이 72.9%로 높은반면 농어업숙련직과 기능노무직은 각각 48.0%와 52.6%로 낮았다. ●부엌안 불평등은 여전 맞벌이 부부에게 가사분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가 51.2%,“부인이 주로 하지만 남편도 분담해야 한다”가 43.7%로 대부분(90.8%)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분담상태를 보면 공평하게 분담한다(5.7%)와 부인이 주로 하지만 남편도 분담한다(46.5%)는 경우는 절반 정도밖에 안됐고 “부인이 전적으로 책임진다”가 44.3%에 달했다.특히 남편만 취업한 경우 부인이 주로 가사를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90.6%인 반면 부인만 취업한 경우 남편이 주로가사를 담당해야 한다는 의식은 42.5%에 불과했다. ●보수보다 안정성 직업선택의 기준으로 안정성(41.5%)을 으뜸으로 꼽았다. 다음은 발전성 20.7%,보수 18.2%,자아성취 16.2% 순이었다.95년에는 안정성이 29.6%,발전성 29.2%,보수 27.1%,자아성취가 10.5%였다. ●부엌데기는 싫어 여성의 경우 가정일에 관계없이 계속 취업하겠다는 응답이 30.4%로 95년의 24.7%에 비해 상당폭 늘었다.반면 가정에만 전념하겠다는 응답은 95년 12.1%에서 8.5%로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 50~60년대 한국멜로영화 회고전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사전행사의 하나로 7∼9일 서울 예술의 전당 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한국 멜로영화 회고전’이 열린다.회고전에는 50∼60년대의 한국멜로영화 6편이 상영된다.상영작은 ‘귀로’(감독이만희·67년작) ‘단발머리’(김수동·67년작) ‘애와 사’(최경옥·70년작) ‘자매의 화원’(신상옥·59년작) ‘성녀와 마녀’(나한봉·69년작) ‘속,벽속의 여자’(박종호·70년작) 등이다. 이어 영화제 기간인 18∼23일에는 행사장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학사기생’(김수용·66년작) ‘자유부인’(한형모·56년작) ‘김약국 집의 딸들’(유현목·63년작) ‘남편’(조문진·69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김수용·66년작) 등 5편이 추가 상영된다. 이들 멜로영화에는 문정숙(귀로),문희(애와 사),최은희(자매의 화원),남정임 및 고은아(성녀와 마녀) 등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들이 나온다. 영화상영 일정은. 영상자료원 7일 오후 2시 단발머리,4시 귀로 8일 오후 2시 자매의 화원,4시 애와 사 9일 오후 2시 (속)벽속의 여자,4시 성녀와 마녀 동숭홀 18일 오전 11시 김약국집의 딸들 19일 오후 6시30분 자유부인 20일 오후 1시30분 미워도 다시 한번 21일 오후 4시 학사기생 23일 오후 1시30분 남편 (02)-3476-0663
  • [기고]지역감정 극복을 위한 제언

    요즘 반가운 소식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자연현상과 더불어 찾아온 정치권의 봄이다.언뜻 보면 정치인은 아무 일도 안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사계(四季)를 이끌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국산영화 ‘쉬리’가 뜨고 있는 현상이다.이미 93년 ‘서편제’의 흥행기록을 넘어섰다.이처럼 완연한 봄소식은 우리의 잠재력에 기인하며 모두가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한때 우리 국민의 관심을 이끌었던 ‘서편제’는 섬진강을 가운데로 하여서쪽에서 발달한 판소리의 유형이다.섬진강은 지리산과 함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영호남을 말없이 아우르고 있다. 사실 영호남이라는 이름은 지리적 접근도가 낮은 시절에 행정관리적 측면의 지명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해방 이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고 산업화 과정을 지나오면서 크게 변질돼 지역주의 행태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숱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면서 마치 두 지역사이에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있는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산이 놓여 있는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까지 부리는 부류마저 나타났다. 이처럼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가 있다는 설이 있다. 첫째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둘째는 소위 지역 유지로 행세하면서 주로 다방에서 외상 차를 마시는 사람,셋째는 막연히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데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상대방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할 경우가 있다.그것은 하도 어처구니 없어 말문이 막히기 때문이다.한때 떠돌았던 ‘호남 호황설’도 그런 경우다.70년대에는 호남지방에서 ‘롯데껌’이 진열·판매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대로 믿었던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지난 2월 하순 許京萬전남지사는 부산,대구,울산,진주,마산,포항,안동 등영남권 중진 언론인들을 초청했다.초대에 응한 분은 28개사(방송 17,신문 11)에 총 30여명.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만나 얘기를 나누고 전남지역 삶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일행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이중 광주를 처음 방문한 분이 50%를 넘었다.평소 사회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는 언론인이지만 호남체험의 빈도는예상외였다.목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100%에 가까웠다.‘목포의 눈물’로 이름난 항구도시 목포를 전남도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둘러보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한번 비교되는 것은 이분들이 대부분 동남아 등 해외는 2∼3회 이상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김포국제공항.IMF 그늘에 잠깐 어두워진 듯싶더니 어느새 북적거린다.제주도 가기보다는 하와이나 태국이 더 가깝다는 것이다.눈에 보이는 자기 집 뒷산은 고이 두고 말로만 듣던 알프스산을 먼저 찾아나서는 여행패턴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과소비를 지적하기 전에 남북간(서울행) 도로보다 동서간 도로는 왜 이렇게 멀리 느껴지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지도를 펼쳐들고 있는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세계 해전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 누구냐고.‘이순신 장군’이라고 답하면 또 물어야 한다.역사의 현장을 찾아보았느냐고.이순신의 넋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리지 않는 남해안에 있다.어른 자신들도 깨달아야 한다.천리길 서울보다 가까운 지방끼리 제대로 된 왕래 한번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끈끈한 유대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한다.경북 안동의 서애 유성룡 집안과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집안끼리 400년교류관계를 연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가서 보면 안동의 하회탈은 경상도민의 순수한 인간성을 보여주고있다.전남에 가서 보면 진미(眞味)를 느낄수 있다.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모두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정겨움을 맛볼수 있다.이처럼 동서문제는 영호남인이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안동 한번 가봅시다.그리고 전라도 한번 오시지요. 조보훈 전라남도 정무부지사
  • 굄돌-대학 수험생 부모들에게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는 일을 인생에 세 가지 큰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대학 입학이라는또 하나의 큰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본 부모라면 그 고통이 어떠한가를 잘 알 것이다.그 고통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마음껏 신나게 뛰어놀고 자연을 알고 즐기며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책을 읽고 사색을 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사랑을 배울 나이에 대학 입시라는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받는 그날을 위해 하루 하루를 살고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청소년 기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공부라는악마와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워야 하는 우리 아들 딸들이 얼마나 불쌍하고안쓰러운지 우리 부모들은 잘 알 것이다.이같은 대학 입시와 관련 학부모의한 사람으로,선생으로 몇 마디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대학은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는 분명하지만 인생의 행 불행 성공 여부와는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대학을 안 나와도 행복한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며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이얼마든지 있다. 둘째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는 입시생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과 어떤 분야를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세째 자신의 성적과 능력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꼭 어느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나와야만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자신의능력 수준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성실히 공부한다면 얼마든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어떤 대학 무슨 과를 나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아름다운 인성 그리고 자연 및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조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느냐가 중요시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 한 실직가정에 국경넘은 온정

    ◎WP紙,前 보험사 간부 딱한 사정 밀착취재/수천달러까지 성금답지… 딸 美유학 제의도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한국의 한 실직 가장에 대한 미국인들의 성원이 답지하고 있다. 지난 11월22일자 미 워싱턴 포스트에 소개된 한국인 실직 가장 金명윤씨(39)가 주인공. 워싱턴 포스트는 金씨 기사를 본 미국인들이 연말 연시를 맞아 金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보내온 성금이 자신의 회사에 답지하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포스트의 케빈 설리번 기자가 당시 한국에 몰아닥친 경제위기 여파로 실업자가 증가,한국의 중산층 가정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을 金씨 가족의 밀착취재를 통해 보도한 게 계기가 됐다. 이 신문은 金씨가 서울의 모 보험회사 간부로 있다 지난해 경제난 여파로 실직,부천 부근에서 스포츠 모자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며 그의 생활을 3개면에 걸쳐 소개했다. 미국인들이 이 기사를 통해 金씨의 어려운 사정을 잘 이해,고통을 이겨내는 金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격려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현금을 보내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설리번기자를 통해 전달된 헌금은 이미 4,000달러. 외국인들의 격려편지도 함께 전달됐다. 어떤 독지가는 金씨의 12살,9살된 딸들에게 중도에 포기한 바이올린 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들은 한결같이 金씨 가족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해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 만물상 雲霧는 이산가족 한숨인듯/금강산 기행 一報

    ◎꼬불꼬불 1만2천봉 단풍옷 벗고 비경 뽐내/60대 실향민들 “고향이 저긴데” 눈물의 산행/北 안내원 붙임성 있게 인사… 사진찍기는 거부 19일 미명의 금강산 유람선 위에서 첫 대면한 북한 장전항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등진 작은 포구는 정적 속에 누워 있었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해안을 따라 단조롭게 들어선 수채화의 풍경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꼬리를 무는 남한의 여느 작은 항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선 절차를 밟으면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정작 무거운 기분이 얼마간 풀렸다. 감시병의 앳된 얼굴 때문인지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하는 안도감조차 들었다. 현대그룹의 유람선 관광에 동참한 기자의 금강산 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외금강 초입에 들어서자 온갖 상념도 이내 천하절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금강산은 어느새 초겨울이었다. 산봉우리들은 나신을 뽐내고 있었다. 가을의 풍악산에서 이름표를 바꿔 단 개골산의 미학은 기막힌 조화 그 자체였다. 만물상 코스는 유람선 관광일정 중 첫산행길이었다. 금강산의 주요 22개 관광코스 중에서도 손꼽히는 산행로였다. 꼬불꼬불 이어진 106굽이는 줄곧 감탄을 자아내는 비경들이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관음폭포∼육화암∼만상정을 잇는 21㎞ 구간은 관광버스로 달렸다. 현대측이 새로 닦은 도로 양옆에는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철조망 울타리는 금강산 일원이 군사요새임을 말해줬다. 남쪽사람과 북한주민의 접촉을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의지가 읽혀졌다. 마침내 재래식 화장실 하나만 덩그러니 기다리는 만상정 주차장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비경인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까지는 도보였다. 1.5㎞에 이르는 등산로는 60대 이상의 관광객들에겐 힘든 길이었다. 나이든 실향민 다수는 먼발치에서 세명의 신선을 닮았다는 삼선암과 귀신 형상의 귀면암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측 관광가이드들은 천선대에서 채 3분의 1도 못미친 지점에서 고령자들을 돌려세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딸들의 만류를 “이번이 아니면 생전에 고향 가까이갈 수 없다”며 뿌리쳤던 朴유희 할머니(77)도 마침내 눈물을 머금었다. 만물상은 오를수록 장관이었다. 하지만 앞자락의 연봉들과 숨바꼭질하듯 좀처럼 온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마침 내리는 싸락눈 속에 남녀 순찰대원들이 굽이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직 금강산 안내원들이었다. 남쪽에서 온 가이드들에게 자리를 내 준 사람들이었다. 구룡폭포로 통하는 길목의 앙지대에서 만난 금강산 관리원 張英愛씨(28·여)는 붙임성있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기에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금강산을 버리고는 시집 못갑니다. 죽어도 금강산을 베고 죽을 겁니다”라고 억센 북한 사투리로 답했다. 남쪽 기자들의 농을 떨쳐내려는 듯 “저 위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으니 어서 가보시지요”라고 발길을 재촉해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천선대 문턱에서 만난 한 북한 처녀는 길을 묻자 얼굴부터 빨갛게 물들였다. 몇 발자국 더 걷다 문득 張씨의 설명이 떠오르며 천선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놀던 곳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말안장 같은 안심대를 지나 쇠사다리를 곧장 오르니 커다란 바위구멍이 나타났다. 금강산의 여덟 돌문 중 하나인 하늘문이었다. 그제서야 천하절승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에 섰음을 깨달았다. 멀리 옥녀봉과 세존봉,비로봉 등 준봉들이 시립하고 있었다.
  • 김지원씨 새 장편 ‘낭만의 집’

    ◎로맨스 부부·다섯 딸의 삽화같은 이야기 파인 김동환 시인과 소설가 최정희를 부모로 둔 작가 김지원(56)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당연하다는 듯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에게 있어 문학을 한다는 것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영향은 동생 김채원에게로 이어져 그 역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를 통해 자연스레 문학의 늪에 빠진 작가 김지원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사는 것은 사랑을 배우고 완성해 가는 과정이지요” 화해와 조화의 정신 속에 사랑을 이뤄가는 것,그 드높은 ‘인간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살아가고 문학을 한다. 김씨가 이번에 펴낸 새 장편소설 ‘낭만의 집’(작가정신)에는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 있다. 로맨스 부부임을 자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다섯 딸의 삽화같은 이야기가 소설의 줄기를 이룬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시대적 질문과 함께 자신의 오랜 문학적 화두인 애정과 인연의고리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 속의 다섯 딸들은 저마다 애정의 속성 혹은 애정의 조건을 보여준다. 독점적인 소유의 사랑,저돌적인 맹목의 사랑,영성적인 신비의 사랑….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 시대 사랑의 문법이 될 수 없다. 결국 작가가 내세우는 것은 헌신적인 예지의 사랑이다.
  • 적과 내통하는 반역아들/金三雄 주필(時論)

    매국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이완용과 송병준처럼 외적에게 나라를 판무리가 있는가 하면 적국에 빌붙어 모국을 침략하는 국적도 있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맏아들 男生은 대표적 국적의 하나다. 동생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자 당나라로 도망쳐 적군을 이끌고 와서 형제를 치고 모국을 멸망시켰다. 내외의 정세를 간파한 연개소문이 사망하기 직전 아들 3형제에게 “너희 형제는 서로 사랑하기를 물과 물고기처럼 하거라. 화살이 합치면 강하고 이를 나누면 부러진다”(환단고기)는 유언까지 남겼지만 권력에 눈이 먼 자식들은 골육상쟁끝에 남생의 반역으로 가문과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조선조 연산군때의 姜弘立은 명나라 원군 요청을 받고 오도원수(五道元帥)에 임명된 장수였다. 임진란 당시 명나라의 은고를 입은 조정은 그를 원정군 사령관으로 삼아 후금(後金)의 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明)·조(朝)연합군은 일패도지하고,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했다. 일설에는 당시 정세를 꿰뚫은 연산군이 기회를 보아 후금에 합세하라는 밀지 때문이었다고는하지만, 문제는 그후 일어난 일이다. 후금 정벌에 나섰던 강홍립이 적군의 선봉장으로 모국을 친 것이다. 일신의 이해로 적국에 빌붙고 적병을 끌어 모국을 치는 반역행위는 그러나 옛 역사 이야기만은 아니다. ○용공음해 뒤편서 적과 내통 지난해 대선은 과거 어느 선거에 못지않은 이른바 ‘사상논쟁’으로 시종했다. 김대중 후보에 대한 용공음해가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여권이 총동원되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북측과 가깝지 않으냐는 음해였던 것이다. 이런 이면에서 지금 재판중인 권영해 안기부장이 벌인 용공조작은 ‘적과의 동침’을 주제로 하는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상대를 용공으로 매도하면서 뒤편에서 벌인, 적과 내통하는 파렴치성과 반국가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다. 입만 열면 반공과 안보를 떠드는 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적과도 서슴지 않고 내통하는 범죄는 이적행위 바로 그것이다. ○북한군에 총격요청이라니 그나마 이런 행위는 ‘적대적 공조’ 관계의 고전적 수법이라 한다. 권력에 환장한 자들이 ‘선거용’으로북한군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요청했다니, 이들의 타락과 반국가 행위가 어디까지일지 망연할 따름이다. 그것도 이회창 후보의 친동생과 비선그룹에서 자행된 음모라는 데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과거 선거때나 주요시국이면 어김없이 벌어진 안보사건이 모두 이렇게 북한과 내통하여 ‘짜고 친 고스톱’이었단 말인가.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과 15대 총선때 판문점북한군총격사건도 ‘적과 내통’한 각본이었는가? 검찰은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을 한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배후를 밝히고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 모두를 외환(外患)죄로 엄벌해야 한다. 단순히 선거에 이기기 위해 우리 아들 딸들에게 총을 쏘라고 거래한 반역자들, 자칫 전쟁으로까지 치달을지 모를 도박을 벌인 모험주의자들을 뿌리뽑아야 한다. 국기를 흔드는 엄청난 이적행위가 관련자들의 ‘고문’ 주장으로 희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했단 말인가. 고문이 자작극이거나 허위로 드러나면 그 교활성도 단죄해야 한다.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은 매국 이적행위다. 결코 ‘고문’ 문제로 양비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구려 멸망의 아픔과 정묘호란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 敵의 총격을 부탁하는 세력(사설)

    지난해 말 대선 직전에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秘線)조직이 북한군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가해오도록 요청했다는 검찰 수사발표와 “이 사건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 일부와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고위 사정당국의 확인내용은 일각을 다투어 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아들딸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다.여전히 대남적화 야욕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군에게 총격전을 해오도록 요청했다는 것은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닌 우리 국민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검찰은 96년 4·11총선 직전 북한군이 판문점으로 무장병력을 대거 이동시킨 것도 선거판세에 영향을 주기 위한 당시 여권의 공작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굳이 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선거때마다 吳益濟 편지사건,尹泓俊 기자회견 등 북풍조작으로 북의 안보위협을 걱정하는 국민의 보수심리를 자극해 선거국면을 집권세력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갔던 것을 기억한다.이들 세력은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자만하며 불법을 저질러왔다.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힘입어 金大中정부가 들어섰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런 죄악들이 계속 묻히며 또 저질러졌을 것이다. 북측과의 상호 의존적 적대관계,나아가 적과의 내통관계는 결국 부패권력을 구조화했다.부패권력은 이를 온존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들의 비리와 치부를 감추기 위해 계속 국민을 속이는 파렴치를 범했다.이들은 정권을 재탄생시킨 전리품으로 인사독점은 물론 이권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다.이러한 불법이 반세기 가까이 자행되면서 부패커넥션에 의한 병든 기득권 세력이 양산돼 오늘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불러왔고,국민에게는 무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그런데도 반성은 커녕 그간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국민정부의 개혁과 사정작업에 도처에 덫을 놓고 방해를 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 총격 유도사건은 민족정기와 오도된 가치관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한나라당은 벌써부터 李會昌 죽이기라느니 모함이라느니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정쟁 사안이 아니다.판문점 총격유도 사건은 얼마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의원 비리 수사와는 근본적으로 질이 다르다.국가의 정체성을 유린한 ‘적과의 내통’을 흐지부지했다가는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검찰은 배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위법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그것만이 그같은 죄악이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 방책이 되며,후진 정치문화의 모순과 폐단을 척결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사정 당국이 밝힌 ‘稅盜사건’ 전말

    ◎지난해 12월 제보 받아 동아건설 수사때 단서/서상목 의원이 이석희씨에게 부탁/세무조사 압력 10곳서 86억 거둬/사과상장 등장… 호텔방도 이용 정치권 사정(司正)의 핵심은 국세청을 동원,불법으로 대선자금을 모금한 이른바 ‘세도(稅盜)사건’이다.그러나 세도사건으로 야기된 경색정국은 이제 야당의 장외공세,지역감정 조장 등으로 본말이 전도된 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정당국이 밝힌 ‘세도 사건’의 본말은 이렇다.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측근인 徐相穆 의원이 지난 15대 대선 때 친분관계에 있는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 등에게 대선자금 모금을 부탁했다.李전차장등은 세무조사를 핑계로 압력을 넣어 10개 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 86억8천만원을 거뒀다.林采柱 전 국세청장도 대선자금 모금에 개입,구속됐다.따라서 세도사건은 한나라당이 국세청이라는 공권력을 동원,선거자금을 모은 악성 범죄행위로 徐의원이 깊숙이 개입,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검찰에 따르면 한보사건에서 화제가 됐던 사과상자가 등장하고 호텔방을이용하는 신종수법도 선보였다.구체적인 혐의 내용이 확보됐다는 반증이다. 사정 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대선 때인 지난해 12월 제보를 받고 너무나 엄청난 사건인데다 확인을 할 수 없어 설마 설마 하다 동아건설 비리사건을 수사하면서 단서를 잡았다”고 고백했다.야당이 주장하는 ‘표적사정’‘야당파괴공작’ 주장은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은 검찰수사가 있자 이를 편파적인 대선자금 수사로 규정,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다.국민회의는 국세청이 직접 나서 기업의 세금을 도둑질한 사건이라며 본질 훼손을 경계했다.그러나 한나라당 李基澤 전 총재권한대행,金潤煥 전 부총재의 검찰소환이 구체화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했다.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李전대행의 “金大中 정부가 부산경제를 죽이고 부산의 아들 딸들을 직장에서 몰아내며…”등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계기가 됐다.국민회의는 26일로 예정된 한나라당의 대구 집회가 지역감정 조장의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집회중단을 촉구했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여당의 단독국회를 구실삼아 역공을 펴고 있다.세도사건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메아리 없는 공방만 계속되는 형국이다.
  • 민주열사 열전:1­2/張俊河 선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체제 맞서 ‘불굴의 투쟁’/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 항일운동/해방후 ‘사상계’ 창간 반독재투쟁 선도/朴正熙정권 끝내 부정… 의문의 추락사 “오늘의 헌법(유신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이에 우리 국민은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1973년 12월23일 상오 10시 서울 YMCA회관 회의실.통일당 張俊河 최고위원이 준비된 성명서를 읽어내려가는 순간 수십명의 보도진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咸錫憲·白樂濬·金壽煥·白基玩·桂勳梯·兪鎭午씨 등 각계 지도급 인사 3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이 일로 張俊河 선생은 白基玩씨와 더불어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다. 일제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으로 항일투쟁에 나섰던 張俊河 선생.그는 정부수립 이후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골짜기에서 불귀의 객이 될때까지 반독재 투쟁의 선두에 있었다.5·16쿠데타 때까지는 월간잡지 ‘사상계’를 무기로,그 이후에는 직접 몸을 던져 독재와 싸웠다.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78)은 張俊河 선생을 ‘애국자·혁명가·인격자이며 권모술수와 배금주의를 배척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그의 죽음을 서러워했다. ‘사상계’를 빼놓고는 그의 반독재투쟁사를 말하기 어렵다.그의 손아래 동서로 사상계에서 편집부장을 지낸 劉庚煥씨(61·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는 “張俊河 선생은 자신이 발행하던 사상계에 신앙에 가까운 애착을 보였다”고 했다.사상계는 자유당 독재가 강화되자 오히려 반독재 정론지로써의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59년 2월호에는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란 제목으로 언론사상 초유의 ‘백지 권두언’을 냈다.58년 12월 자유당 정권이 야당의원들을 끌어내고 국가보안법을 개악시켜 통과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쿠데타 이후에도 張俊河 선생은 61년 7월호에 실린 咸錫憲 선생의 ‘5·16을 어떻게 볼까’란 제목의 글로 중앙정보부장 앞에 불려가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빨리 민정이양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또 각종 집회연설을 통해 朴正熙 대통령에게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밀수왕초’,‘매혈자’등으로 몰아부치고 국가원수모독죄 등으로 구속된다.이러한 투쟁은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과 반유신 개헌 백만인 청원운동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의 반독재투쟁에 대해 白基玩 통일문제연구소장(65)은 “단순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분단체제로 몰아가려는 반통일세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했다.劉庚煥씨는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면서 반공주의자였다.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에 총부리를 들이댔던 朴正熙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쿠데타는 후세에 좋지 않다는 신념으로 朴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회고했다. 張俊河 선생의 일생을 지배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가 광복군 대위 시절 쓴 다음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영혼 저 노을처럼 번지리/겨레의 가슴마다 피빛으로/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조국의 역사 속에 피빛으로.◎張俊河와 朴正熙/광복군대위­일본군중위 출신부터 달라/남로당관련 등 박정희 약점 과감히 들춰 5·16 쿠데타 이후 張俊河 선생이 숨질 때까지 ‘張俊河는 朴正熙의 천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그만큼 앞뒤 안가리고 朴대통령에게 모멸감을 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1966년 삼성계열의 한국비료가 대량의 사카린을 밀수한 사건이 발생하자 재벌밀수규탄대회에 초청된 그는 朴대통령에게 ‘밀수왕초’란 이름을 선물했고,3개월간 옥고를 겪는다.67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그해 4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朴대통령에게 ‘매혈자’란 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베트남전 참전을 두고 한 말이었다.이로 인해 국가원수모독죄로 3개월간 옥살이를 하게 되나 오히려 6월 총선에서 옥중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또 “朴正熙는 과거 남로당 조직책으로 조직원 동료를 팔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장교로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인물” 등 朴대통령의 최대 약점들을 과감하게 들추어냈다. 張俊河 선생의 이런 행태에 대해 평전 ‘재야의 빛 장준하’를 썼던 朴敬洙씨(68)는 “張俊河 선생의 朴正熙관은 애초부터 멸시와 경멸이었던 것 같다. 상대가 일본군 중위일때 그는 우국충정의 광복군 대위였다는 자부심을 항상 갖고 있었고,朴正熙의 갖은 폭력을 겪으면서도 분노에 앞서 그 인격 자체를 대단치 않게 본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헌을 위한 백만인 청원운동으로 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됐던 張俊河 선생은 출감하자 75년 1월 朴대통령에게 ‘박정희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격적으로 공표하고 민주헌정의 회복을 촉구한다. ◎유족들의 생활/결벽중에 가까운 청빈으로 가족들 큰 고통/문상객도 자기먹을 쌀 가져올 정도로 궁핍 “월급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17살때 시집왔다는 張俊河 선생의 미망인 金熙淑 여사(71)의 말이다.사상계 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張俊河 선생이 생을 마감했을 때 남은 것은 20만원짜리 월세방과 쌀 한 됫박뿐이었다고 전해진다.한 문상객이 미망인의 손을 붙들고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거냐”며울자 망연자실해 있던 金여사는 “언제 저 양반이 생활비 가져온 적 있나요”라고 남의 얘기 하듯 했다고 한다. 白基玩씨는 “문상올 사람들에게 자기 먹을 쌀을 가져오라고 연락을 했었다”며 “당시 부의금에 약간의 돈을 보태 전셋집을 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이렇게 지나칠 만큼의 청빈에 대한 그의 결벽증은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수 밖에 없었다.사상계에 대한 탄압으로 항상 빚에 쪼들렸던 것도 이유가 됐다. 3남2녀중 장·차남인 호권·호성씨는 대학 문턱도 못 밟아봤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세 아들중 호준씨는 아버지의 모교인 한신대를 나와 목사로 있다.딸들은 이대를 졸업했으며 미국과 제주도에 각각 살고 있다. ◎비극의 수수께끼/추락사한 유해 겨드랑이 피멍자국/17m 벼랑에서 떨어진 안경은 말짱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張俊河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풀·나무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라.” 張俊河 선생이 숨져 누워있던약사봉 골짜기의 이 표석문의 ‘멋 훗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당시 검찰의 ‘추락사’발표는 실로 의혹투성이였다.그때 徐燉洋 의정부지청 당직검사는,張俊河 선생은 벼랑에서 떨어져 귀밑 부분이 함몰돼 뇌진탕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그는 등산 도중 일행과 떨어져 金龍煥씨(중학강사)와 같이 하산하는 도중 경사가 급해 소나무를 잡고 발을 딛는 순간 나무가 휘어지면서 미끄러져 떨어졌다는 것이다. 徐검사는 사고 다음날 새벽 1시경 현장에 도착,캄캄한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마쳤다.그리고 그날 낮 金龍煥씨를 검찰로 불러 조사기록을 작성했을 뿐이었다.이때문에 당시 ‘재야대통령’이라고 불리던 張선생의 사인을 서둘러 추락사로 발표한 의혹을 샀다. “집에 도착한 고인의 유해를 보니 겨드랑이 밑 양쪽 팔에 피멍이 있었어요. 엉덩이와 팔 두군데 주사기로 찔린 듯한 자국도 있었고요.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사체가 너무 깨끗했습니다.순간 양쪽 팔을 붙들린 채 끌려갔다고 직감했지요” 서울 상봉동 셋집에서 장례 대소사를 떠맡았던 劉庚煥씨의 증언이다.또 金龍煥씨가 말한 하산코스가 등산장비 없이는 도저히 내려오기 어려운 벼랑이어서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코스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張俊河 선생이 갖고 있던 커피보온병과 끼고 있던 안경이 17m 높이의 벼랑에서 돌밭으로 떨어져 말짱했다는 불가사의한 의혹 등도 나왔다. 劉庚煥씨는 또“소나무가 휘어진 자국이라며 金龍煥이 말한 부분에 동그랗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칼로 벗겨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張俊河 선생 연보 ▲1918 평북 의주에서 아버지 張錫仁 목사와 어머니 金京文 여사의 4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남 ▲1932년 평양 숭실중 입학 ▲1940년 일본신학교 입학 ▲1944년 1월 金熙淑 여사와 결혼,20일 후 학도병으로 입대 ▲1944년 7월 일본군 탈출,중국군 가담 ▲1945년 1월 중국 중경의 광복군에 편입 ▲1945년 11월 金九 선생과 함께 입국,비서로 활동 ▲1948년 한신대 졸업 ▲1953년 월간 ‘사상계’ 발행 ▲1962년 막사이사이 언론문학부문 상 수상 ▲1971년 일본군 탈출과 광복군 시절을 담은 저서 ‘돌베개’ 출간 ▲1972년 7·4 공동성명 지지 ▲1973년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수많은 의혹을 남긴채 숨짐
  • 서양화가 李大源(이세기의 인물탐구:175)

    ◎빛을 데생하는 화단의 신사/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작품에 그대로/화폭마다 생명력 약동 축제분위기 넘실/‘물방울처럼 영롱한 화경’… 독자 영역 이룩 만약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봄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본 사람이라면 서양화단의 원로 李大源 화백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쏘는듯한 붓길은 비로드에 싸인 보석더미와 그 보자기를 펼치는 순간의 차갑고도 투명한 광채(光彩)의 이미지다. 겨울에는 오색 찬란한 꽃망울이 예감되고 무더운 장마에는 무지개빛 서광이 번뜩인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온통 색채의 의장(意匠)이 장식되어 못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송곳처럼 수면에 꽂히는가하면 색채의 향연이 옥구슬처럼 농원에서 굴러다닌다. 광활한 공간에 만약 그의 그림이 한점만 걸려 있어도 그곳에는 생명의 결실과 축제의 분위기가 넘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그림은 미술’ 임을 확고히 지켜나간다. 아무리봐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행복감에 젖어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탐미적 향기에 도취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초기의 여거도(與居島)등 섬이나 산그림을 보면 웅걸(雄傑)한 호방함과 분방함이 도사리지만 그림의 내면은 오늘의 별빛 미래를 산뜻하게 예고했다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야트막한 산야와 그 아래 펼쳐진 과수원풍경,수목에서 솟아나는 활기와 생동감은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는 말대로 가장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능성과 미묘한 조율(調律)을 변주로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동감 變奏 그러기 위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상에 의존하기보다 다시한번 새롭게 사물을 관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용으로 작가의 내면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이른바 살아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연못에 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무의미하게 멀리 서있는 부동의 풍경화가 아니라 햇빛에 찰랑거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살아숨쉬는 소우주로서 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그의 붓길은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짧은 사선과 직선과 곡선이 그때마다 의외성을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평론가 박래경은‘상식적이지 않은 시선과 범상치않은 구도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추가하여 추상화된 그림세계에 연결되고 있다’고 예언한바 있다. 예를들어 지난 60년에 그린 ‘담쟁이’는 불꺼진 창과 밋밋한 벽으로 기어오르는 메마른 덩굴에 머물고 있으나 그로부터 2년후인 62년에는 같은 벽으로 기어오르는 덩굴이라도 빨강과 황금색등 색채의 축연을 조직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른바 12계절이라해도 좋을만큼 시절따라 시간따라 환상적인 보랏빛이 발휘되고 같은 유형의 색깔이 변조되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과 정신적 탐구를 성취해낸다. ○59년 첫 개인전 열어 이경(二耕) 이대원, 가장 흔히 회자되기는 그는 화단의 신사요 멋쟁이다. 그의 그림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칫 가질수 있는 퇴폐적인 낭만이나 고뇌나 파토스 대신 아파테이아의 초연(超然)이 깃들여 있다. 그와 경복고 동문에다 절친했던 고고학자 김원룡박사에 따르면 ‘말쑥한 성품으로 태어나서 평탄한 청춘시절을 보내고 만년소녀로 소문난 아름다운 미인의 내조를 받으며 정상의 예술가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을 거쳐 집에서는 딸들과 훌륭한 사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과연 이대원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항상 멋있는 옷을 입어 화단의 드레서로 소문나 있고 미식가애 주가에다 집과 학교와 파주농원에까지 화실이 세군데나 되어 화단의 귀족’ 같은 존재지만 그의 어느 일면에도 ‘속물취(俗物臭)’는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어느장소에서나 시와 정취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지성적 풍모에 단정한 매너로 인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볼수록 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화단의 김흥수 권옥연과 잘 어울리고 최기원과 이만익, 삼성문화재단의 손기상 상무와도 각별한 사이다. 경기도 문산에서 농림회사에다니면서 그 일대 꽤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一耕 李鍾林씨와 金善伊씨 사이에서 삼남중 막내.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로 이사해서 청운공립보통학교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때 선전에 연속 입선, 경복고를 졸업할때까지 미술공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친이 미술학교만은 강경하게 반대하여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제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만을 그렸고 59년에 첫개인전, 한때는 우리나라 화랑의 효시로 기록되는 반도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가족은 의사이던 부인 李鉉金 여사와의 사이에 딸 다섯, 63년간 살고 있는 유명한 혜화동집은 지난 89년 출간된 ‘혜화동 50년’의 바로 그 무대다. ○한때 반도화랑 운영 그의 미술역정은 파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면 ‘출중하고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 빛을 데생하는 화가’란 말로 압축된다. ‘선과 점과 조직을 사용해서 그것으로부터 그의 붓은 그가 창출한 수많은 색채로 형태를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엄청난 재능들은 레스타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그림속에 있는 모든 것은 화사함과 고요함과 기쁨’에 틀림없다. 현대작가중에서 이러한 자연적인 교훈을 자신의 창작으로 성취한 사람은 별로 흔치않다. 물방울처럼 튀기는 영롱한 화경에서 그가 이룩한 이대원식 표현이란 바로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일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범우주적인 진솔한 정서와 삶의 즐거움만이 투영되어 날이 갈수록 싱싱하고 청청한 빛을 발한다. 사람을 반기는 그의 색채점묘화는 보는 이의 가슴에 루비나 사파이어같은 보석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눈이 부시게 비춰주게 될것이다. ◎그의 길 ▲1921년 경기도 문산 출생 ▲1938­40년 선전 출품 ▲1945년 경성제대 법과졸업 ▲1959년 첫개인전(중앙공보관화랑) ▲1959­60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 ▲1962­68년 신상전·동인전출품 ▲1967­86년 홍대 미술대 교수·대학원장·학장·총장 ▲1971년 개인전(반도화랑) ▲1973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한국현역화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위원 ▲1977년 개인전(현대·신세계) ▲1978년 중화민국 중화예술원 명예철학박사,영국국제하계미술전 출품 ▲1979년 뉴욕 한국화랑초대개인전 ▲1981년 회갑기념전, 성균관대 명예철학박사, 파리 살롱도톤느 출품 ▲1983·85년 현대화랑 개인전 ▲1986년부터 홍대 명예교수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박물관회회장,개인전(강남현대) ▲1988년 부산개인전 ▲1988­91년 국제현대미술제 및 아시아국제미술전 출품 ▲1989년 개인전,대한민국예술원회원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1995년 ‘이대원 1990­95년’개인전(갤러리 현대) 국민훈장목련장(73년) 5·16민족상(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4년) 오지호미술상·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95년) 역서 柳宗悅저 ‘한국과 그 예술’(74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96년) 화집 ‘이대원’(81년) ‘이대원,혜화동 50년’(89년)
  • “戶主制 폐지 혈연부정 아니다”

    ◎호적제도 공부모임 산파역 고은광순씨/“호적은 일 잔재… 단지 공문서일뿐”/주민등록과 일원화 등 대안 제시 호적제도 폐지.가부장제가 온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선뜻 거론하기 민감한 문제다.‘호적제도 공부모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호적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그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지난달 11일 하이텔 여성문제 동호회 ‘페미니스트들의 천국’에서 태어난 이래 매주 한번씩 꼬박꼬박 모임을 가져왔다. 모임의 산파역인 한의사 고은광순씨(43)는 이른바 ‘페미니즘’에 좀 관심을 가져봤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진보적 지면들을 통해 여성문제를 다루는 이런저런 칼럼들을 발표해온 그는 여성단체에서 벌이는 ‘엄마성 함께쓰기’운동에도 앞장서 자기 이름에서부터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알고보면 호적이란 갑오경장때 일본이 주입한 잔재지,우리 문화도 아니예요.그 일본조차 40년대 벌써 폐지했고 우리만 세계유일의 호적 국가로 남아있는 셈이지요” 유림을 비롯,남성들의 호주제 폐지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은 다 오해에서 나왔다는게 그의 주장이다.“호주제 없이는 씨족사회,친족,혈연이 다 부정되는듯 여기는데 실제로 씨족유지 기능을 맡는 것은 족보지,호적이 아니거든요.호적은 국가가 국민을 파악하는 공문서일 뿐이지요” 막상 공부를 해보니 호적의 역기능이 주민등록으로 충분한 것을 중복기재하는데서 오는 행정 비효율성에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에서 기승을 부리는 남아선호 역시 다분히 호적제도의 핵심인 호주제 탓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에선 손자가 처보다,미혼 딸이 엄마보다 호주 승계서열이 높습니다.남자 핏줄만이 씨를 이을 수 있다는 관념에서지요.때문에 대를 못 잇는데 무슨 소용이냐며 해마다 3만명의 딸들이 뱃속에서 죽어갑니다” 호주제 위헌가능성에 대해선 법조계 내부에서도 공감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법개정이 가져올 오랜 가부장제 관념과의 충돌을 우려,주춤거리고 있다.따라서 ‘호적제도 공부모임’은 앞으로 호주제 폐지문제를 시민운동 차원으로 공론화해 간다는 계획이다.또 나름대로 대안도제시하고 있다. “호적을 부부와 미혼자녀의 기본 가족별로 구성하는 방법,1인 1호적을 갖도록 하는 방법,주민등록체계와 일원화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어떻든 호주제가 없어지지 않고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남아선호,여아낙태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6·4 지방선거 D­10/표밭 공략

    ◎휴일 잊은 한표 호소… 교회로 시장으로/高建 후보­“개혁정책 펼 수 있게 밀어달라”/崔炳烈 후보­“여권 후보 공개토론 기피” 주장 6·4 지방선거가 중반에 이른 24일 여야 각 정당 지도부는 휴일임에도 불구,선거중반 판세점검을 기초로 후보들의 백중(伯仲) 및취약지구를 중심으로 순회하며 지원유세를 강화했다.그러나 선거전이 점차 가열되면서 후보자들 가운데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국민회의·자민련◁ 국민회의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鄭均桓 사무총장 주재로 중앙선대위 집행위원 간담회를 열어 중반 선거판세를 점검분석했다. 공식 선거전이후 첫 휴일을 맞은 이날 高建 후보는 북한산 입구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벌인데 이어 주요 교회를 돌며 한표를 호소했다. 高후보는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산을 물려주기 위해 대대적인 정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그는 또 25일 방송될 KBS라디오 방송연설을 녹화,“국민의 정부가 힘있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집권여당 후보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자민련의 韓英洙 부총재는 서울 강남 구민회관앞의 정당연설회에 참석하는 등 하오내내 강남 일대에서 후보지원활동을 벌였다. ▷한나라당◁ 崔秉烈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상오 서울 도봉산 입구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유세한뒤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방송대학 체육대회에 참석했다.崔후보는 이어 옛 민주당 마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민회의 高후보의 병역 문제를 거듭 거론했다.그는 “60년대에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이라면 高후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해명을 요구했다.그는 “수도권의 여권 후보들이 후보간 공개토론을 기피하고 있다”며 “여권이 주요시간대의 TV토론을 계속 거부한다면 신문과 방송광고를 통해 여권 후보들의 토론기피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주장했다. 孫鶴圭 경기지사 후보는 성남과 분당지역에서 개인연설을 펼쳤다.특히 전날 발대식을 가진 孫후보의 ‘희망유세단’도 이날 대학가,시장,공장,북부지역,남부지역 등 5개 권역별로 나눠 지원 유세에 나섰다.安相洙 인천시장 후보는 하오 인천백화점 앞마당에서 ‘인천 살리기 대토론회’를 갖고 “인천의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市)가 부채액수와 내역을 솔직히 알리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평론가 김현자씨 등 共著 『한국여성시학』

    ◎여성詩에 나타난 ‘정체성 갈구’/모성·육체·외출의 모티브 통해 남성적 질서로부터의 일탈 꿈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여성작가의 자리는 오랫동안 빈 칸으로처리돼 왔다.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는 자신들이 주변인 또는 타자로 인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여성작가들은 자기 안에 내재한 욕망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인식의 주체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으려는 여성작가들의 노력은 여러 층위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의식은 여성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고유한 구성요소이면서도 늘 반란을 꿈꾸게 하는 ‘모성’과 ‘육체’ 그리고 자기만의 방 찾기라는 ‘외출’의 모티브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출간된 ‘한국여성시학’(김현자 등 지음,깊은샘)은 이 세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우리 여성문학 특히 여성시학의 현단계를 점검한 연구서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에서는 먼저 여성의 생물학적 모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자칫 성차별적인 모성 담론의 근거가 될 수있음을 지적한다.그것은 여성의 불평등과 억압의 조건을 형성함으로써 주체적인 자아로 자기 세계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순치시키고,여성을 성적·정치적·사회문화적 주변인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양상을 이 책에서는 김승희의 ‘엄마의 발’이라는 시를 예로들어 살핀다.“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 못하는 구나/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착하신데/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 이 시에서는 본능적인 모성성과 자아정체성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모성의 미덕이라고 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저편에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한 여성의 비극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또한 여성의 ‘육체’를 ‘불화와 화해의 시학’이란 주제 아래 다룬다.여성시인들은 결핍되고 열등한 몸,허구화한 몸으로서의 자기 육체를 거부한다.그것은 성적 매력이 강조되거나 성적 폭력 아래 놓인 몸,도구나 사물로서의 몸,모성의 현현체(顯現體)로서의 몸 등 주체적인 몸이 아니라 거짓 욕망에 이끌린 몸이기 때문이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 시인들은 자해(自害)와 가사(假死)라는 신체분해의 극단어법과 통과의례적인 죽음이라는 상징적인 방법을 끌어안는다.“한밤중 흐릿한 불빛 속에/책상 위에 놓인 송곳이/내 두개골의 살의처럼 빛난다/고독한 이빨을 갈고 있는 살의/아니 그것은 사랑”(최승자 ‘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 시인 최승자는 자신의 몸을 종종 ‘사산(死産)의 자궁’에 비유하는 한편 일종의 의사(擬似)죽음 속으로 자기 몸을 몰아넣는다. 시인은 이처럼 허구화한 자신의 몸을 상징적으로 분해,남성적 질서의 삶으로부터 일탈을 꿈꾼다. ‘마녀되기’조차 감수하는 시인의 이러한 시도는 과감한 자기변형의 형태를 보여주는 미국의 현대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시세계를 연상케 한다.이런 여성 시들은 비록 비(非)리얼리즘적인 환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새롭다.그 시적인 통렬함은 여성 억압의 깊이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지금’의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존재다.특히 문학에 나타난 여성의 역사는 ‘워킹(walking)의 역사’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나 자기만의 방을 찾아 나선 울프의 주인공은 낯익은 예다. 하지만 그 외출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때로는 육체의 쓰라린 고통을 동반하는 시지프스의 끝없는 산행 혹은 밀랍 날개가 태양에 녹아 내려버리는 이카루스의 비상의 형태로도 나타난다.천양희 시인의 시 ‘새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꿈과 몸짓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낸다. “새장의 새를 보면/집 속의 여자가 보인다/날개는 퇴화하고 부리만 뾰족하다/…참을 수 없이 가볍게 날고 싶지만/삶이 덜컥,새장을 열어 젖히는 것 같아/솔직히 겁이 난다” 시를 쓰는 행위는 곧 문화를 쓰고 읽는 행위다.그런 만큼 더 화해롭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여성의 의식이 성숙되고,그것을 시로 구체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럴 때 비로소 여성시는 단순히 여성들만의 삶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여성문화의 향방을 제시해 주는 담론으로 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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