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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2)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4.풍경의 미학 정신. 최하림의 시는 역사와 실존이 부딪치는 자리에서 수행되는 치열한시적 사유의 세계이다.두 테마에 대한 집요한 천착 과정을 통해서 그가 보여준 절제와 균형의 미학은, 그의 시세계에 시적 긴장을 유지할수 있는 동인이었다.질곡의 한국현대사를 통과하면서,그리고 그 현실에 부단한 시적 대응을 견지하면서도 특정한 관점에 경도되거나 생경한 직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그의 시가 자신을 시적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성찰에서 시적 사유를 시작한다는 것은,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는 미적전략이다.관조와 응시를 통해 세계에 접근하는 최하림의 시적 방식은,심미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시적 태도인 셈이다.역사와 현실에 대한집요한 시적 장고(長考)는 그의 시가 기초한 진지한 미학 정신에서연유한다. 이 미학정신을 구현하는 시적 형식으로 최하림은 풍경화(風景化)의방식을 사용한다.그것은 ‘겨울’,‘골짜기’,‘밤’,‘눈’,‘개’,‘새’,‘강’,‘어둠’,‘바다’,‘사내’ 등 시대적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는 소재들을 동원하여 현실을 암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그상황을 시인의 내면적 정서나 정신적 지향과 겹쳐서 하나의 압축된풍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이러한 그의 시적 방법은 현실에대한 내적 관조와 깊은 침잠이 선행되어야 하는 창작 방법이다. 현실에 대한 직설적 토로나 생경한 비판의 형식이 아닌,그것을 하나의 형상으로 구축하는 최하림의 미학 정신은 그의 시가 발딛고 있는 기지이자 오늘의 시점까지 그의 시를 추동시킨 문학적 원동력이다.그 심미적 시정신은 자신과 현실적 사태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토양인 셈이다. 큰 나무들이 넘어진다 산과 산 새에서/강과 강 새에서 마을 새에서/길을 벗어난 사람이 어디로인지 달리고/길러진 개들이 일어서서/추운겨울을 향하여 짖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걸어간다/저녁 그림자처럼 걸어간다 마을도/나루터도 사라지고 과거도 현재도/보이지 않는다/날아가는 새들의/불길한울음만 공중에 떠돌며/얼어붙은 겨울을 슬퍼하고/// 언덕도 상점도폭설에 막히고/거리마다 바리케이트 쳐져/사람들이/어이어이어이 울부짖고/갈색 옷을 입은 사내 몇,들리지 않는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소리로/진정하라고 말하고 그 소리들이 모여/겨울나무를넘어뜨린다/// 꽁꽁 언 새벽 여섯 시,地靈처럼 걷는/사람들 새로 우리들은 걸어간다/살얼음의 아픔이 여울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갈기를 날리고,/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단의 사내들이/사냥개를끌고 온다 개들이 짖는다/이제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꿈이여/눈과 같은 결정체로 三韓의 삼림에 내리어오라/기다리는 노변에서 상수리숲도 우어이우어이/울고 겨울새도 울고 우리도 울고 있다.― 「겨울 精緻」 전문 암담한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인 풍경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음울한 절망의 정조가 ‘우리’라는 대명사와 결합되고 등장하는 소재들이 암울한 시대적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시는비극적 현실을 환기하는 한 반영으로 읽힌다. 산에서는 숲을 숲이게만드는 ‘큰 나무들이’ 사라져 가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입을 다물고 걸어가는’ 상황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몰수된 황폐하고 암담한 현실이다. 폭설로 봉쇄된 암담한 겨울,새의 울음과 숨죽인 통곡만이 가득한 강제와 감시의 현실을 시인은 ‘地靈처럼 걷는 사람들’이라는 섬뜩한죽음의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 갈기를 날리는’ 듯한 것으로 생생하게 경험되는 현실의 고통은,출구에 대한 욕망의 절실함만큼이나 격렬한 것으로 감각된다.꿈마저 얼어붙은 전망부재의 현실에서 ‘우리들’은 눈을 부르고 있다.하늘을 향해 ‘내리어오라’고 주술처럼 되뇌이는 사람들의 바람 속에는 일말의 가시적인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우리의 암울한 질곡의 현대사를 최하림의 시는 이렇게 묘사한다. 당대 현실에 대한 아무런 직설적 비판이 없는데도 이 시가 보여주는 암담하고 폭압적인 상황은,상황 자체로써 이미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수행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형상화된 현실은그것이 그리는대상 자체보다 생생하며,그것의 문제적 국면은 증폭되어 표출된다.구체적 풍경이 발휘하는 형상력은 시적 정서와 의식을 보다 직핍하고절실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감당한다.문학의 본질적인 힘은 바로 이구체성에서 발원하는 것으로서,삶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그것의 미적 형상화는 문학을 다른 제도와 구별짓는 힘의 원천이다.심미주의의 좌절은 야만주의를 부른다. 거친 육성과 생경함 속에 건설된시는,시간의 거센 물살을 견뎌낼 수 없으며,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조잡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 풍경을 통해 현실을 형상화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사실적 풍경도 정신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다음의 시에서 우리는 풍경과 의식이 상호 작용하여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구체적 형상으로드러내는 최하림 시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이 내리니/나뭇가지들이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포물선을 그리며휘어지다가/눈을 털고 일어나고,/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고 한다/오후 내내 그 일을 단조롭게/반복한다 우리가 날마다/아침을 시작하고또/시작하는 것과 같으다/// 이런 날/하늘은 지붕 가까이/내려와 멈추고 세상 길도/들녘에서 모습을 지운다/나는 천근 무게로 눈꺼풀이/내려 앉아 꿈속처럼 눈을 감는다/아이의 속뼈같이 여린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사라지고 또다시 가지들이/떠올라 머나먼 마을에/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눈벌판을/마구 쏘다니고 싶지만/나는 결코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지/못한다 눈은 나를 덮고 또 덮으며/종일 내려 쌓인다 ― 「아무 생각 없이 겨울 풍경 그리기」전문 이 시에는 오랫동안의 응시를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는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최하림의 [바라보는 시]가 빈번하게 펼쳐 보이는 눈여겨보지 않은 사물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정겹게그려진 작품이다.나뭇가지들이 ‘눈을 털고 일어나고 다시 털고 일어난다’는 묘사 속에는 순진무구의 서정성이 담겨 있다.비어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정경들이 시인의 투명한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최하림의 최근시가 보여주는 정결한 세계는 이러한 시선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적 특질은 그러한 맑은 시선이나 그 시선에 포착된 자연 대상의 아름다움보다,오히려 그것을 정신성의 세계로 고양시키는 시의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눈내린 상황을 인간의 일상으로전환시키고,그것을 다시 보편적 시간의 세계로 확대하는 방식은,사물의 정경을 정신의 풍경으로 환치하는 최하림 시의 특징이라 하겠다. 여기서 눈의 의미는 일상성으로,그리고 다시 시간의 무게로 전이되면서,‘지붕’과 ‘길’과 ‘들녘’에 내린 눈은 사람과 마을을 지우는무화(無化)의 상징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인이 ‘눈을 감고’ 의식의심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개별적 존재들을 지워버리는 시간의 냉혹함이다.명멸하는 ‘아이의 속뼈같은’ 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머나먼 마을’이란, 존재들이 묻힐 시간의 영원한 심연을 의미한다.이 마을의 광경은 시인의 의식이 형상화한 정신의 풍경인 것이다.말할 수 없는 비극성을 삼키고도 저토록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고요 속에 잔혹함을 내포한 시간의 벌판을 시인은 ‘사나운 짐승’이 되어‘마구’ ‘마구 쏘다니고’ 싶다.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존재의 비극적 충동이다.시간의 고요한 위력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보잘 것 없음,정화된 풍경 속에 내재한 동적 충동의 이유인 것이다.외부의 풍경을 정신화하고 정신을 풍경화함으로써,이 시는 생의비극성을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최근의 시들을 중심으로 최하림의 많은 시들은 정적(靜寂)의 풍경을노래한다.투명하고 정결한 정서를 보여주는 이 시들 속에는 사물과의화해를 꿈꾸는 생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꿈꾸기가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바라보는 일이 종내에는 어둠으로 귀착될 것임을 시인은 안다.어둠은 죽음이고,어둠은 무(無)이다.삶에 내재하는 비극성이 동적 충동을 부른다.그가 보여주는 정화의 풍경은존재의 비극성이 미만한 시간의 풍경이며,그래서 생의 충동으로 가득한 허무의 비가(悲歌)이다. 최하림의 역사적 상상력과 실존적 고뇌는 구체적 풍경을 통해서 생생하게 형상화된다. 반성적 거리에 뿌리를 둔 이 풍경의 형식 속에는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이러한 정신에 기초한 시적 사유의 세계는 그 깊이만큼의 집요함과 강인함을 내포한다.역사와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미학정신이 최하림의 시세계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5.다시 꿈꾸는 아침의 역사 현재적 삶이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의의있는 연결이라는 신념이 없다면,인간은 생의 종말을 단순히 불길하고 허무한 상징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고통스러운 역사와 유한한 존재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간의 냉혹함 앞에서,최하림은 인간의 자세를 생각한다.절망적인 역사와실존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이는최하림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시적 사유의 대전제이다.최하림에게 역사와 실존은 삶이 끌고 갈 두 개의 테마이다.‘지옥 같은 역사’의기억과 질병을 통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황폐한 삶의현장을 다시 응시한다.“보이지 않는 들판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들판」) 냉엄한 역사적 현실과 인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안고 건너야 하는 그 들판은, 정신의 강인함이 요청되는 고되고 지난한 삶의 현장이다.최하림은 들판을 건너는 방법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길의 줄기찬 모색과 그 모색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내 눈이 너를 보고/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밭고랑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우리도 어느 날,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볼 것이다 긴 낫 들고,그림자 드리우며,/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나는 잠시,햇빛에 싸여,/걸음이 미치지 않는곳의 신비를 본다/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 「밭고랑 옥수수」전문 건강한 아침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들을 깨우고 새벽을여는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모색을 그리고 있는 이 시에는 역사의 운동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차츰차츰 열리’는 역사의 새벽을 ‘감추인 아침’이라고 적고 있는 표현에는,[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의식의 개안을 통해 아침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시인의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감당할 수 없이 밝아오’는 ‘경이로운 아침’은 그것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동안’,다시 말해 정화된 응시의 시간이 있고 나서야 찾아오는 국면인 것이다.이는 ‘오래오래’ ‘멈춘 평화’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건널 수 있다는 「들판」의 사유와도 상통한다.이응시의 시간은 ‘처음의 나그네’를 ‘부지런한 농부’로 전환시키는인식의 계기이다. ‘이슬을 털고’ ‘들을 깨우고’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들며 역사의 새벽을 걸어가는 이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걸음에서,‘숨소리 깊은 들’은 건강한 생명력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개인에게 의식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러한 상상력 속에는,역사란 개인의 고통과 반성을 통해서 성취되는 변증법적 삶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들을 찾아 나서는 ‘농부들’은 바로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굳건한 존재로 선 역사적 주체들인 것이다.‘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함과 그 길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고통과 반성을 거친 자들의 가슴 속에 찾아온다.역사는,아니 역사적 삶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패배 속에서 다시 꿈꾸는 것임을,최하림은 새벽을 여는 농부들의 힘찬 발걸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역사적 세계에 대한 염원은 최근 시들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아침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노동으로 빛난얼굴을 하고 아버지는/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아침의 유대속에서 아침의 빛을 뿌리며//온다 새로운 아이들이 따뜻한 유대 속으로/온다 무성한 시간의 숲을 헤치고/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포르릉포르릉 날며”(「아침 유대」,5·6연)에 그려진 것처럼,찬란한 역사의아침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서 열리는 세계이다. 황폐한대지를 갈고 고르는 노동을 통해서 이룩되는 역사, 그 노동으로 다져진 아버지의 ‘빛난 얼굴’은, 고통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역사의 변증법적 운동력을 상징한다.개인의 고통과 줄기찬 노동이 역사를 일구어 간다.역사의 아침은,고통을 견디고 또다시 꿈꾸는 강인한 정신 속에 깃드는 것임을 최하림의 시는 보여준다. [농부의 대지적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최하림의 역사 의식은 인간적 실존에 기초한 공동체의 연대를 모색한다.그 삶이란 “모서리들이/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모서리들이/닳아지고 모서리들이 정다워지면서/죽음 가까이 죽음처럼 둥글”(「모카커피를 마시며」)어 지는조화와 화해의 삶이며, 모든 존재의 동질적 비극성에 기초한 관용과사랑의 정신에서 연유하는 삶이다.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유대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은 ‘목적이 없고 관객이 없으므로 그들 자신이 춤이고 즐거움’(「즐거운 딸들」)이 되는,과정 자체가 하나의 목적을이루는 삶이다.존재에의 연민에 뿌리를 둔 공동체의 유대는,개인의실존과 역사가 만나는 인간적 역사의 모습이며,냉소주의와 자기아집에 대항하는 부단한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집요하게 존재와 역사의 막막함을 들여다보는 최하림의 질긴 시적고투의 역정은,속도와 효용성이 주도하는 현실세계에 있어서 시의 역할을 재고하게 하는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밤새도록 죽지를눈에 박고 졸며 혼몽 속을 헤매’(「눈을 맞으며」)는 굴뚝새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실종된 역사를 고통스럽게 견뎌내는 최하림의 고독한 견인주의는 우리에게 시와 시인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시의 진정한 자리는 인간적 진실을고민하고 탐색하는 반성적 사유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미학 정신 위에서 건설되며,인간적 진실은 경험과 존재가, 사색과 생이 만나는 자리위에 구축된다. 시의 위의(威儀)는 준엄한 자기 반성과, 그 반성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간 진실에의 깨달음에서 발현된다.최하림이 한 작은 글에서 ‘창조적 정신을 잃고 관성에 의지하는 시’가 ‘지상의 평화를 헤친다’고했던 고백은,시적 정신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새로운 세기의시의 모습이 인간과 역사를 보다 창조적인 시각으로 열어 보일 길찾기가 될 것이라면,최하림의 시적 작업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극복해야 할 언덕이다.더불어 그의 시가 현재를 넘어서 또다른 세계에 도달할 것을 믿는 것은,그의 진지하고 강인한 정신의 역투에 대한믿음에서이다. 김문주
  • 대한매일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최하림론(1)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시의 자리-최하림론. 1.거친 육성(肉聲)과 혼돈을 넘어서 고야의 한 그림에는 황폐하고 공포스러운 표정의 크로노스가 자식을잡아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속의 주인공 크로노스는 ‘시간’을 상징하는 신으로서 자식을 낳는 족족 잡아 삼키는데,자식 중에하나인 제우스를 삼켰다가 제우스의 아내 메티스〔‘숙려(熟慮)’라는 뜻의 여신〕가 준 약을 마시게 되어 그를 토해놓는다.아버지의 뱃속에서 놓여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에가두어 버리고 은(銀)의 시대를 펼친다. 인간 상상력의 한 중요한 테마가 실현되어 있는 크로노스의 신화에서, 우리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의 뿌리 깊은 욕망을확인할 수 있다. 크로노스의 자식들인 우리 인간은 그의 뱃속에서 삶을 영위하지만,그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을 열망한다.종교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신화적 상상력을 실현하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 밖에 존재할 수 없으며,인간의 삶이란 결국 시간과 벌이는 고투의 흔적이다.시간은 모든 고통의 원천이자 자기동일성의 근원적 조건인 것이다.우리는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생의 좌표와 의미를 가늠하고 수정한다. 시간이 거쳐가고 남은 자리에 부려져있는 소모와 쇠약, 또 한켠에서 벌어지는 생성의 현장은 인간의 근원을 돌아보게 하는 냉엄한 지표이다. 인간의 경험과 욕망을 담아내는 문학은 궁극적으로 시간과 투쟁하는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한다.시의 경우,이 대결의 양상은 정서적 직접성과 대상의 중층성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는데,여기서 대상의 중층성이란,현실과의 역동적 상호 작용 속에서 구축되는 한 시인의 작품 세계에는 현실의 시간적 궤적과 생리적 연치가 더해가면서 변모하는 한자연인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음을 말한다. 시에는 시대와 개인을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시는 시대와 개인,역사와 인간이 삼투하며 길항하는 생생한 내면의 현장이다.한 시인의 시세계를 조감함으로써 우리 자신 속에도 깃들어 살고 있는 시간의 신이 한 인간의 몸을 빌어 건네는 전언을 들을 수 있으며,아울러 몸 속에 지핀 시간과의 길고도 험한 싸움을 수행하는 한 정신의 고언(苦言)도 듣게 되는것이다. 이미 다섯 권의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1976),『작은 마을에서』(1982),『겨울 깊은 물소리』(1987),『속이 깊은 심연으로』(1991),『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1998) ― 을 상재한 바 있는 최하림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압축된 풍경과 서정적 형식을 통해 형상화해 왔다.그의 시에서 우리는 지나온 역사의 의미와 그 현실을 통과한 한 개인의 정신의 풍경을,더불어 몸을 받은 존재로서 시간을 경험하는 한 인간의 고단한 삶의역정을 보게 된다. 최하림의 시가 현실참여적 성격을 보이는 1970,80년대는 전사회적으로 정치적 열기가 강렬한 시기였다. 소위〈시의 시대〉로 불렸던 이 연대(年代)에 시가 발휘한 힘은 분화(噴火)를 꿈꾸던 당대인의 욕망과 상상력에서 발원한 것이었다.극렬한 용출을 욕망하게 만든 억압적 상황은 역설적으로 시에 힘을 실어주었던 배후(背後)였으며,현실의 후광 속에서 시는 단일하면서도강렬한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와 현실의거대한 깃발 아래,개인의 실존에 대한 시적 사유의 깊이나 언어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도 하였다. 시 장르의 폭발력이 외부에 있었던 만큼,현실적 열기가 지나간 현장에는 작부들의 사이비 신세타령만이 웅성댈 뿐,역사와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들은 이제 실종되고 없다.80년대가 부려놓고 간 피폐하고 앙상한 언어의 잔해들 위로,묵시록적 상상력과 정신분열증적 언어들이 쇄말리즘의 안개 속에 밀려와 있고,‘시의 죽음’이 풍문처럼떠도는 상황에서 한 세기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미만하던 세기말의 암울한 전망과 우려가 새로운 세기의 도래와함께 말끔하게 제거되면서,그 자리에는 기술자본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광란의 질주에 도취되어,그것에 저항하고 개입할 의지를 포기한상혼(商魂)들이 혼몽 속을 헤매고 있다. 최하림 시의 독자적 가능성은,‘역사적 연대’의 흔적들이 썰물처럼빠져나간 이 흉흉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천착을 서정적긴장 속에서 일관되게 수행해 오고 있다는 점,아울러그러한 작업이 자기 존재,나아가 존재 일반에 대한 깊은 성찰에까지닿아있어 시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7,80년대의 날선 육성(肉聲)과 90년대의 세기말적 언어들을 넘어서는 치열한 시적 사유를 만나게 된다.깊은 고통과오랜 침잠의 시간들이 동행하는 그 세계에서,우리는 ‘역사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개인의 실존적 고뇌들이 진지한 역사적 상상력과 조우하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역사와 개인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최하림의 시적 태도는 우리 시대 문학의 자리를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강인한 정신 속에 길이 있다.길을 만들고,그 길을 가는 것은 문학의 태생적인 운명이다.그것은 포기하지 않는 꿈이,문학의 배태(胚胎)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2.역사의 공범의식,그 도덕적 순결성〈아우슈비쯔〉는 시간의 진행을 진보의 역사로 인식했던 인류에게근본적인 반성의 계기였다.근대의 쌍생아인 자본주의와 역사주의 모두에 가능태로 잠복해 있던 폭력적 욕망이 그 포악성을 드러낸 자리에서 역사는 시간의 근본적인 의미와 방향을 인간으로 하여금 되묻도록 요구하였다.20세기의 인류에게 〈아우슈비쯔〉가 있었던 것처럼우리 현대사의 한 극점에는 〈광주〉가 놓여있다.역사적 상상력의 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결과적으로 역사적 현실로부터 선회하는 최초의 기점이 되었다.그것은 고통의 진원지를 응시하는 힘의부족에서 연유한 것이었는데,〈광주〉를 문제삼던 많은 사람들은,아예 〈광주〉가 서있던 ‘역사의 자리’를 떠나버리고 말았다.바로 이지점이, 최하림을 여타의 시인들과 갈라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한국사의 비극적 상징인 [광주]를 통과하면서,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권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혁을 지나면서 최하림은 역사와 존재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사유 속으로 침잠한다.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의 붕괴를 그는 외부적 현실을 통해서 해소하지 않고, 역사를 내면속에 소환하는 방식으로 끌어안는다.역사의 내면화는 필연적으로 역사를 윤리학의 차원으로 환원한다.역사는 익명의 타자의 것이 아닌,주체의 윤리적 실천의 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 대한공격적인 정서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반성적 사유가 시의 주를 이루게 된다.낭만적 격정과 들끓는 고뇌로부터 한걸음 비켜선 자리에서 최하림은 지나온 역사와 시간을,그리고 시와 인간을 응시한다. 어둠과 함께 온 기억들에 싸여 나는/나를 밝혀주지 못하는 불빛을본다/빛이 멀면 편안하다 죄가 많은/우리는 죄들이 두렵고 어둠이 내려서/아름다우니 어둠에 몸 섞는다/이런 밤 새들은 얼마나 조심스레/그들의 하늘을 날았던지/내 영혼은 어디를 방황했던지/검은 유리 같은 공기 속에서 길들은/보이지 않게 밤으로 이동하고/새로운 추억이짐짝처럼 마른 나무 밑에 쌓인다/시간이 별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흘러 간다/시간을 따라서 광목도로 어디쯤 걸음을 멈추고 쉴 곳이 있을것이다/잠시 유숙할 집이 있을 것이다/우리에게 범한 죄를 우리가 사할 때가 있을 것이다/한 사람에게만은 사랑이었고 배반이었던 여자도어디쯤 있을 것이다/그러나 세상은 결국너를 버리고 달려간다/세상은 고통스럽고 일어서는 자는 숨을 수 없어서 불행하다/내 가슴은 사직처럼 허물어져간다/예감을 노래해선 안 된다/나는 밤으로 간다 잘있거라/한번도 힘껏 꽃잎 피지 못하고/한번도 힘껏 울어보지 못한/정다운 말들아 내 딸들아 ―「光木道路」 전문 한바탕의 회오리 같은 역사가 훑고 지나간 내면 세계에,짙은 허무와체념이 배음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쓸쓸한 어조 사이로 배어나오는고통과 절망 속에,내면으로 귀환한 역사의 흔적이 음각되어 있다. 이흔적이 구체화된 기억의 형상은 최하림의 역사 인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초로서,그의 시 곳곳에는 역사가 남기고 간 상처가 고통의 기억으로 잔존해 있다.그 기억의 공간은,‘절망의 부레 찢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악마구리같이 아우성치며’(「말하기 전에,나는」) ‘피투성이 된 붉고붉은 입술들’(「우리들은 오늘도」) ‘갈가리찢긴 육신의 목소리’(「무등산」)들이 ‘합창을 이루는’, 아비규환의 절규가 가득한 곳이다.이러한 고통스러운 공포의 기억을 조성한과거는‘몇 대의 트럭이 난폭하게 거리를 질러가고’(「부식 동판화」) ‘탐욕스러운 개들이 안개 속으로 달려가’ (「고통의 문지방」)며 ‘사나이가 시간을 죄스레 칼질하고 생채기에서 뚝,뚝, 피가 흐르는’(「상처」),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진 광란의 시간이다.주목할 점은 이러한 과거의 기억이 역사 자체의 이미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시적 화자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죄와 벌’의 이미지로 출현한다는 사실이다.이는 “기억의 아이들이 붉은 얼굴로 지나가고/어디서인지 흰 이를 드러내며 킬킬킬킬/웃는 아이”(「섬진강」)와 같이 과거의 기억에 대응하는 심리적 이미지가 대체로 자조적이고 자학적인 형상으로 각인되어 시인의 내면에 환기된다는 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역사적 현장을 투과하면서 굴절,각인된 이러한이미지들은 시인이 과거의 역사를 자기반성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최하림에게서 과거는 부정적 실체라기보다,폭압적 상황을 결과적으로 방기했던 고통스런 부채의 시간인 것이다. 역사를 내면화하는 이러한 방식은 최하림의 많은 시편들을 의식의풍경으로 읽게 만든다.인용된 시의 배경인 ‘어둠’의 상황은 죄의식속에 고통스러워하는 화자의 내면을 상징한다.‘빛’과 대조되는 ‘어둠’은,공포와 방황의 시간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윤리적 자의식의내면 상태를 보여준다.이 어둠 속에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과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각인시켜놓은 고통스러운 상흔,시간을 역사의 진보로 인식한 20세기적 사유의 참담한 좌절이 가로놓여져 있다. ‘빛’으로 생각했던 역사와 시간의 배반을 절망적인 체념으로 추억하면서도,자신을 ‘어둠과 함께 온’ 역사의 주체로 사유하는 시인에게 과거의 기억은 ‘짐짝’ 같이 둔중한 고통의 추억이 될 수밖에 없다.광포한 역사의 기억이 형벌과 같은 공포의 대상이라면,그 기억의공간 속에서 시인은 자신을 유형수(流刑囚)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역사,패배의 역사를 주체가 되어 감내하려는 태도는 최하림시의 역사 의식과 도덕적 순결성의 원천이다. 역사의 폭력에 희생된영혼들이 ‘보이지 않는 내 맘속의맘까지도 감시한다’(「죽은 자들이여,너희는 어디 있는가」)는 토로나,‘말’에 대한 자학적인 공격,그리고 시의 언어를 형벌로 인식하는 태도 등은 최하림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의식의 내면으로 소환하여 현재의 윤리적 검열의 내적장치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베드로] 연작시들과 [소록도] 시편들은,자신을 불행한 역사의 공범자로 인식하는 시인의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다.가롯유다뿐만 아니라베드로 역시,예수를 로마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긴 공범자라는죄의식이 죽음과 패배의 시대를 통과한 최하림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있는 것이다. 포악한 현실의 암묵적 공범이라는 이러한 윤리적 자의식은 “우리에게 범한 죄를 우리가 사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대용서의 전제를 마련한다.이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으로서,우리는 최하림의 시에서 개인의 윤리성의 문제로 화육(化肉)한 역사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그에게 있어서 역사는자신의 [시와 삶]을 향해 끊임없이 윤리적 질문을 투척하는 고통의실체인것이며,시는 역사에 바치는 고해성사인 셈이다.따라서 시 초반부의 ‘빛이 멀면 편안하다’는 진술은,회한과 고통이 배어있는 역설적 고백으로서,이러한 도덕적 순결성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종교적인 성격에까지 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최하림의 시는 시간을 보는 시각에서 지상으로 복귀한다. ‘사랑’이자 ‘배반’이었던 역사와, 역사의 연인들은 시간의 무심한흐름 속 ‘어디쯤 걸음을 멈추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시인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명멸하는 역사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세상은 결국 너를 버리고 달려갈’ 것이고 역사의 전망을 모색하는 자는 ‘숨을 수 없어서 불행할’ 것이지만, 그래도 시인은 다시그 역사의 암담한 ‘밤으로 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예감을 노래해선 안 된다’는 당위적 진술과 ‘나는 밤으로 간다’는 고백 사이에는, ‘역사의 진보’라는 믿음의 종말이 몰고온 뼈아픈 각성과 현재의 암담함을 감내하겠다는 고뇌의 의지가 가로놓여 있다.시간의 냉혹함을 응시하는 유한한 역사적 존재의 허무와 절망을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결코, 역사적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한 정신의 비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역사를 자신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계기로 수용하면서도,다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최하림의 엄격한 현실주의에서 우리는 고결한 지상의 세계와 만난다.미래를 밝혀줄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을자기 성찰의 자리로 삼는 그 강인한 정신의 고도(孤島)는 우리에게시의 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3.인간의 실존,그 처연한 고요 현재는 과거의 기억 위에서 진행되며 모든 삶은 시간 속에 묻힌다는명제는,최하림 시의 기본 전제이다. 최근 시집『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에는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와 실존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이 시집에 수록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동일 제목의 두 편의 시는 최하림의 시적 작업이 그동안 집요하게 천착해온 두 테마를 압축해서 보여준다.두 편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집]이란,하나는 우리 모두가 다시 꿈꾸며 세워야 할 역사적 미래를 의미하고,나머지 하나는 실존적개인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적막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 두 개의 테마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인간실존의 주제가 보다 근원적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것이 최하림 시의보다 깊은 심층을 이룬다고 하겠다.이는 역사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개인적 실존의 문제를놓지 않고 역사적 현실을 응시하는 그의 자세는, 한 평론가의 지적대로 그를 ‘고전적 정신의 표상’으로 이해하게 하는 요인이다.개인의존재성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문제에 육박해가는 이러한 특징은 최하림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그의 시의 미덕이다.[집으로 가는 길] 두 번째 작품에서 우리는 그가 도달한 개인적 실존의 한 극점을 보게 된다. 많은 길을 걸어 고향집 마루에 오른다/귀에 익은 어머님 말씀은 들리지 않고/공기는 썰렁하고 뒤꼍에서는 치운 바람이 돈다/나는 마루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내 그런/내가 눈물겨워진다 종내는 이렇게 홀로/누울 수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아니라 마룻바닥에 감도는 처연한고요/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고요에 이르렀구나/한 달도 나무들도 오늘내 고요를/결코 풀어주지는 못하리라 ―「집으로 가는 길」(88쪽)전문 이 작품은 소리가 멎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깊은 고적(孤寂)의 세계를 보여준다.원초적 고요에 휩싸인 흑백필름 같은 이 침묵의 세계에서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실존의 풍경을 본다.모성의 자궁에서 나와 영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은,그가 출발한 고요의 세계와 도착할 침묵의 집 사이에 존재한다.그 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길을 가야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 ‘많은 길을 걸어’ 귀환하는 ‘고향집’은 실존의 근원지로서,길의 출발이었던 ‘어머니’조차 존재하지않는 무(無)의 세계이다.‘공기는 썰렁하고’ ‘치운 바람이 도’는그 적막의 세계에서 ‘벌렁 드러눕는’,이 시의 가장 처연한 대목은존재의 고단한 무게와 허무함을,행위를 통해 서늘하게 표현하고 있다.존재의 무게를 부려놓는 행위는 주검이 되어 땅에 몸을 누이는 행위를 환기시킨다.여기에서 시인이 도달한 ‘처연한 고요’가 감도는 ‘마룻바닥’은 내가 떠나온 어머니,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도달했을 인간 보편의 공간이자 삶 속에 내재한 근원적인 침묵의 세계이다.죽음이란,결국 존재를 끌고 다니던 침묵이 보편적인 고요의 세계로 돌아가 합류하는 영역인 것이다.그 거대한 절대 침묵의 세계 속으로의 편입,그것이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 ‘처연한 고요’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진술은, 시인이 이미 이 상태를 경험했음을 의미한다.그것은 사물로부터의 소외를 처절하게 체험했던 투병기간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시인이 도달한 이‘처연한 고요’의 세계는 그의 시에 등장하는 ‘무색계’(「구천동시론」)의 심연을 이루는 정서이다.색신(色身)과 물질의 속박을 벗어나 순정신적 세계를 의미하는 무색계는,최근 시집(『굴참나무 숲에서아이들이 온다』)에 다수를 차지하는 만물과 교감을 누리는 시들의정신적 바탕이라 할 수 있다.사물로 스며들고 사물에 개방되어 만물과 동화(同和)를 경험하는 투명하고 정결한 세계는,이미 무색계에 들어와 있는 상태로서,사물과의 자유로운 정신적교감을 보여주는 이시들 속에 처연한 정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이 ‘무색계’가 육체적 실존의 끝을 기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의 시세계에 한 축을 이루는 개인적 실존의 문제는 그의 시에배어있는 허무와 쓸쓸함의 원천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존재의 막막함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실존의 처연함,그 서늘한 고요를 감지하게 된다.어떠한 과장이나 포오즈도 용납하지 않고 존재의 현실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그의 준엄한 태도는,현학적 사변과 요설,감상적 자기 연민과 소영웅주의가 만연한 오늘의 문학적 현실을 반성케 하는 시정신의 본질을 보여 준다.언어의 사원에서 울려나오는 서늘한 사유는,삶이 부과한 시의 자리이자 시가 돌아가야 할 시원(始原)이다. 김문주
  • [네티즌 이슈] 여성부 신설

    ■여성의 세력화에 도움. 여성부 신설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기존 여성특별위원회 기능 이외에 보건복지부·노동부에서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 ▲윤락행위 방지 ▲여성 사회교육의 활성화 ▲종군위안부 생활안정 지원업무 ▲일하는 여성의 집 등의 업무를 이관받게 되었다고 한다. IMF경제위기 이후 여성이 공식 영역에서 퇴출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7배 정도로 높은 우리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세력화와 동시에 심리적 세력화이다.여성부 신설은 곧 이와 연결될것으로 기대된다.육아휴직과 영유아 육아를 위한 ‘1시간 일찍 퇴근하기’가 주위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데 이유는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직장에선 출산·육아휴가로 일손이 달리기 때문이다. 휴직·출산휴가자 대신에 임시직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영유아 육아시간 1시간확보는 의무사항으로 제도를 보완하면 좋겠다. 독일에는 여성문제수임관 혹은 동등지위의 수임관이 행정기관뿐 아니라 사기업에도 존재해 여성 채용이나 재교육,해고 등에서 차별받지않는가를 감시하고 3년마다 여성장려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직원 200명,혹은 20명당 한명 중에서 공모를 통하거나 비밀투표로 여성문제수임관을 뽑는다는데 우리도 이런 제도를 고려해 보면 좋겠다. 또 가정폭력방지에 대해선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했을 때 보통 3개월만에 명령이 내려지는데 미국에선 10일 정도임을 참고해 좀 더 신속히 처리되도록 제도 보완을 기대해 본다. 윤락행위 방지를 위해선 아셈 2000 민간포럼 여성분과 참가자 일동이 발표한 대책을 참고하면 좋겠다.성을 사는 자에 대한 처벌 및 성매매 방지 교육과 매매춘 여성의 사회복귀를 위한 사회복지체계 마련,그리고 양성평등 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캠페인·홍보활동 강화가 필요하다.매년 7월에 있는 여성주간행사에 미국의 ‘딸’날(딸들을 일터로 데려가는 날) 같은 행사를 함께하여 소녀들이 외모보다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사춘기 이전과 같은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도록 도와준다면 좋겠다.남북한 여성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여 민족사적 염원인 남북통일의 시기를 앞당기는 일에도 여성부가 기여하고자 한다는 데 박수로 환영하며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안병선·서울 양천구보건소 의사 quasy@chollian.net. ■성공의 열쇠 따로 있다. 여성부는 시민운동단체가 아닌 정부부처이다.모든 정책은 대중의 마인드에 파고 들지 못한다면 실패한다.그 대중 속에 남성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99년말 군가산점제 폐지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불만에서 드러나듯이 여성부가 무조건적인 여성권익만을 주장하는 부처가 된다면 원치 않는 잡음도 걱정된다. 그간 여성운동이 좀 더 마음을 열고 설득했더라면 대부분 여성의 동지가 될 수 있는 ‘보수적일지 모르지만 사악하지 않은 남성’들을한꺼번에 적으로 만든 예에서 보듯이 여성권익의 문제를 너무 감정적으로 다뤄왔다는 비판을 잊어서는 안된다.즉 근본적인 것은 가부장적권위주의가 습관화해 있는 한국인의 의식과 태도의 전환을 여성부 신설만으로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을 우선 불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여성부 신설이 한국여성운동의 진일보라는 데만 안주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시스템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물론입으로는 진보를 외치고 성차별 타파를 이야기하더라도 몸에 젖은 권위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설득을 회피하고 남성들의 무지만을 탓한 여성 진영의 태도 역시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우선 여성부는 일부 엘리트 여성들이 뭉쳐 여성 권익을 찾는다는 이미지를 빠르게 탈피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또 ‘성별의 문제’가아닌 기회균등을 저해하는 비민주적인 한국사회를 개선하는 ‘인권의문제’임을 설득하고 남성 일반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설득전략과 지속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 모든 남자에게 그저 “반성하라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을 전제로정책을 세우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원래 여성의 것을 되찾는 여성부의 정책이 남자의 것을 빼앗는 운동으로 오해된다면 곤란하다.여성 소외는 결국 남성 소외를 의미한다는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성에는 기득권이지만 모든 부분에는약자임이 분명한 보통 남자들과 공동전선을 펼 때 여성부는 성공할수 있을 것이다. 이승휘·영화칼럼니스트 simba@chollian.net
  • [외언내언] ‘上里果園’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륭(隆隆)한 흐름이다.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웃음판이다/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중략)/…멧새,참새,때까치,꾀꼬리,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1954년 현대공론 11월호에 실렸던 미당(未堂)의 시 ‘상리과원(上里果園)’의 일부다.과수원의 꽃을 보며 느낀 삶의 기쁨을 그린 것으로보이는 이 작품의 현장은 논 가운데 있던 과원이다. 당시에는 ‘상리큰과수원’으로 불렸고 현재는 전북 정읍시 상동 시내 한 복판의 정읍교육청 자리다.누이동생이 주인이었던 그곳에 미당이 다니러 왔다가 어린 조카딸들과 그 친구들이 웃어대며 뛰노는 모습을 보며 썼던시가 아닌가 싶다. 지난 24일 타계한 미당을 두고 혹자는 ‘한국의 시선(詩仙)’ ‘살아 있는 한국시사(詩史)’‘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는 등찬탄을 아끼지 않는다.한편 그의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의 행적을 두고 ‘친일파’ 또는 ‘친권력적’이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이런 엇갈린 평가속에서 사람들은 예술과 인간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주장하기도 한다.아마 그의 행적이 그의 예술이 이룬 성과를 가릴까하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시만 떼어놓고 볼 때 그는 분명 ‘언어의 주술사’‘한국의 시선’이라는 칭송을 들어 부족함이 없는 시인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일제말기 친일잡지인 ‘국민문학’ 편집일을 보면서 친일시나 종군기를 썼던 일은 설사 당시로서는 ‘대세’였다 할지라도 가족과 가산을 버리고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해볼 때 ‘시인’이라는 ‘공인’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실수’였다.후에 친일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에 대한 참회없이 변명으로 일관한 것은 그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또 비록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독재자 ‘이승만회고록’ 집필이라든지,81년 전두환 대통령후보를 위한 TV연설에 나와 그를 칭송한 일 등 ‘친권력적’행적은 그가 이룬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미당을 따라다니는 ‘덫’이었다.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죽는다.인간을 떠난 예술이란 허구다.그런 뜻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시인이라는 미당의 타계는 ‘공인’으로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새삼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그것은 미당시의 아름다운 ‘상리과원’에 드리운 검은 구름이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EBS 고전의 향기속으로

    EBS가 고전의 향기 물씬 나는 ‘한국영화 걸작선’,‘세기의 명연주’등 프로그램 2편을 들고 겨울 안방극장을 노크한다.12월 9일부터방영되는 ‘한국영화걸작선’(매주 토요일 오전 11시50분)은 50∼60년대 추억의 영화를 보여준다.‘마부’,‘오발탄’,‘김약국의 딸들’,‘맨발의 청춘’,‘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미워도 다시한번’등 왕년의 걸작들을 영화전문 진행자의 해설과 주연배우,감독 등의인터뷰를 곁들여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세기의 명연주’는 10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8시50분에 방송된다. 프랑스 예술전문 프로덕션인 ‘이디알레’가 50년대부터 75년까지의연주실황을 디지털 기술로 리마스터링했다.피아니스트 ‘에밀 질’,‘아르투로 루빈슈타인’,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등 거장들이차례로 소개된다.
  • 판소리·무용·전통무예 어우러진 총체극 ‘우루왕’

    한때 신라 궁궐의 중심이었던 경주 반월성터.지금은 조선시대때 축조됐다는 석빙고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세월에 씻겨 옛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대신 울창한 소나무숲과 너른 뜰을 가득 채운 잔디밭으로경주 시민들이 즐겨찾는 나들이 장소가 됐다. 지난 13∼15일 밤 이곳 특설무대에서 선보인 국립극장의 총체극 ‘우루왕’은 천년고도의 신비와 전설이 깃든 옛 왕궁터를 배경으로 하기에 제격인 공연이었다.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서사무가 ‘바리공주’의 설화를 한데 뒤섞은 드라마틱한 구조도 그러려니와 판소리를중심으로 굿,전통무예,춤 등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연극적 판타지는 2,500여명의 관객들을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신화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고조선무렵으로 설정된 먼 과거,우루왕에게는 가화,연지,바리 세딸이있었다. 우루왕은 감언이설로 효심을 표한 가화와 연지에게 땅을 둘로 나눠주고,꿈에 나타난 어머니의 불길한 예언을 전하며 양위를 반대한 바리는 성밖으로 내쫓는다.그러나 우루왕은 곧 두 딸들에게 배신당하고,그 충격으로 미치광이가 되어 광야를 헤맨다.한편 바리는아버지의 광증을 전해듣고 치료약인 천지수를 구하러 험난한 길을 떠난다. 인간의 아집과 욕망을 정교한 서사로 풀어낸 ‘리어왕’의 비극은,이작품에서 부모의 병을 고치기위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생명수를구하러 다니는 ‘바리데기’설화와 만나 원작과 전혀 다른 상생의 메시지로 결말을 맺는다.대본을 쓰고,총감독한 국립극장 김명곤 극장장은 “서구의 대결과 갈등의 문화를 감싸안는, 구원과 상생의 한국적 세계관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우루왕’은 극단,창극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산하단체가 모두 참여했다.바리의 죽은 어머니역을 맡은 명창 안숙선,뮤지컬배우 김성기(우루왕)신예 이선희(바리공주)를 비롯해 무대에 서는출연진만 70여명.여기에 국악관현악단과 타악그룹 공명,첼로 주자 등30여명의 연주팀도 라이브로 참가해 국악과 양악을 넘나드는 독특한음악을 선사했다. 총체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판소리와 성악이 공존하고,전통 한국무용과 광대의 몸짓이 조화를 이룬다.특히 전 출연진이 등장해 전통무예와 고구려 벽화를 응용한 춤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출한 전투 장면과 대나무잎을 흔들며 굿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9m높이의 망루와 기와문양 등으로 무너진 왕궁을 효과적으로 재현해낸 3층 규모의 무대세트도 인상적이었다.안숙선의 소리는 중요한대목마다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으며, 광대들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감칠맛났다.다만 바리공주역의 이선희는 소리는 좋으나 무대경험이 없어서인지 어색한 연기와 동작으로 배역의 비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아쉬웠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초청작으로 야외무대에서 먼저 공개된 이작품은 오는 12월15∼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재공연된다. 경주 이순녀기자 coral@
  • 조총련동포 1차방문단 입국 이모저모

    22일 오전 11시40분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를 통해 서울땅을밟은 조총련계(總聯) 동포 1차 고향방문단은 연신 파란 서울 하늘을쳐다보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왼쪽 가슴에는 하나같이 김일성주석의 사진이 새겨진 ‘휘장’을 달고 있었다. ◆방문단장인 박재로(朴在魯·77) 총련 부의장은 도착 직후 “57년만에 그리던 고향을 방문하게 돼 감개무량하다”면서 “북·남 수뇌의회담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시작됐으며 혈육의 정으로 맞아주는 남녁 동포들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최고령자인 장진섭씨(93)는 “60여년만에 고향 경주를 방문하게 됐다”면서“서울이 몰라보게 발전했다”고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딸 셋이 고향 전북 익산 등에 살고 있다는 국복권(鞠福權·91)씨도 “55년만에딸들의 얼굴을 본다는 생각으로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김포공항에는 상봉 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한 가족 100여명이 마중을나와 껴안고 울부짖었다. ◆오후 1시10분쯤 강남구 삼원가든에 도착한 방문단은 1시간 남짓 불고기와 냉면으로 점심식사를 했다.대부분 일흔살 이상의 고령임에도불구하고 밥을 한공기씩 먹은 뒤에도 냉면을 한그릇씩 더 주문해 깨끗이 비우는 등 ‘고향의 맛’을 즐겼다. ◆방문단은 오후 4시부터 워커힐호텔에서 시작된 개별상봉에서 가족들을 만나 부둥켜 안고 혈육을 만난 기쁨을 나눴다. 전영우 이창구 안동환기자 ywchun@
  • 최세진씨 5일 고희기념 연주회

    그는 행복해보였다.백발 사이로 듬성듬성 검은 머리가 비치기 시작한초로의 ‘젠틀맨’은 드럼세트 스네어를 두드리며 나이에 어울리지않은 활기에 풍덩 빠져있었다. 5일 오후8시 LG아트센터에서 고희기념 무대를 갖는 원로 재즈드러머최세진씨.청담동의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에서 연습중인 그를 만났다. “53년에 걸친 재즈인생에 재즈를 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없습니다.”최씨는 하루 4∼5시간을 연습에 바치고 있다고 했다.그는 연습내내아들뻘되는 쿼텟 멤버들에게 ‘선생’이란 존칭을 썼다.후배로서 무대에 함께 서는 보컬리스트 웅산은 “선생님은 한번도 낯을 붉히신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공연 제목은 ‘최세진과 함께 하는 코리언 올스타 2000,“평소 아들딸들이 잔치를 해야한다고 우겼지만 ‘무슨 소리냐.내가 절이나 받고 있어야 하느냐’고 했지요.후배·제자들과 함께 재즈인생을 되돌아보는 무대가 더 보람있다고 생각한 거죠. ”처음엔 조그만 클럽이 거론됐는데 ‘원스∼’의 임재홍 사장이 “무슨 소리냐”며 덜컥 LG아트센터를 계약해버려 일이 커졌다. 그는 인사동 뒷골목에서 깡통을 두드리다 47년 우연히 고 김정구씨에게 눈에 띄어 태평양가곡단에 들어가 드러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옥윤·정성조 등의 동료들과 한국재즈협회를 발족했고 건축가 고김수근씨와 함께 공간사랑에서 재즈공연을 열기도 했다.80년대 디스코 바람에 무대가 좁아지자 홍콩으로 건너가 16년을 보내는 개인적아픔도 겪었다.그때 익힌 국제적 교류는 국내 어느 연주인도 따라오지 못할 대목. “무대에서 내려오면 나이를 먹는다”고 얘기하는 그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 출강하고 밤에는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영원한 현역’이다.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열심히 공부해서 국제적으로큰 인물이 돼 ‘재즈강국’을 건설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과“밴드를 만들면 최소한 2∼3년 정도는 헤어지지 말고 매달려보라”는 주문이다. 이날 무대에 서는 재즈인은 80여명.김수열 최선배 정성조 신관웅 류복성 등 한국 재즈 1세대들이 총출연하고 양준호 정말로 웅산 김현정등 후배와 제자들이 함께 한다.02-514-3689임병선기자
  • [대한시론]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잘 아는 재일교포 한분이 며칠전 고향을 찾아왔다.한 살 때 부모를따라 일본에 건너가 고생이란 고생은 몽땅 겪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없고 일을 나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고 근처 밭에 나가 배추,시래기를 주어와 국을 끓여 먹으며 자라서 이제는 일본 사회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분이다. 너무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서 그 어머니는 평생토록 고향에 대해 등을 돌리고 살았다고 한다.온가족을 남부여대해 남의 땅으로 내몬 고향을 뭣 때문에 그리워하느냐고.그러나 늙고 편찮으셔 돌아가실 나이가 되자 그토록 완강하던 어머니가 고향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한번만 가보고 싶다고,아들 낳았다고 너울너울 춤추던 고향집 마루를한번 밟아 보고 싶다고.먹을 것이 없어 주저앉아 펑펑 울던 그 고향집 초라한 부엌에 쌀 가마니 몇 개만 들여 놓는 걸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들은 병 들어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고향을 찾았다.이제는 옛 모습이라고는찾을 길 없어진 고향에가니 잘 걷지도 못하던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언덕 위에서 있는 느티나무를 향해 훠이훠이 올라가시더라고 했다.이제 그 어머니는 백골이 되어 소원대로 고향땅에 묻혀 계시고 그 아들이 예순이 훌쩍 넘어 병든 몸으로 고향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자기는 한 살 때 고향을 떠나 고향에 대한추억도 전무하고 일본에서도 성공해 잘 살고 있는데 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렇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것이다.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보면서 사흘 동안 어찌나울었던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전에는 추석 귀향길 뉴스를 읽고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도대체 두어 시간이면 후딱갈 고향을 열 몇 시간씩 정체를 만들면서 다녀오는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았다는 것이다.그것도 갔다가하룻밤 자면 또 그 고생을 하며 돌아올 것을. 그러나 이번에 그 상봉장면을 내내 지켜보면서 그 분은 모든 의문이풀렸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가지고 있는 한(恨),서러움,그리고 효(孝)에 대해 이해를 하고 나니 갑자기 어린애처럼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고향에 가고 싶어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200명의 이산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저마다의 한과 설움,그리움이 200가지 모양으로 보여지면서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다. 눈물의 화합,눈물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나도 종일을 훌쩍거리면서 거기에 내 설움까지 겹쳐져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경험을 했다.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고 여름내내 전화한통 넣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리워지고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딸들이 못견디게 보고 싶어 부랴부랴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렇다.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 국민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가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에게 고개를 들수 없도록 미안할 수밖에 없다.가족은 무조건 함께 살아야한다.함께살 수 없으면 보고 싶을 때 만나게라도 해줘야 한다. 이제 얼마 안남은 추석,우리는 모두 고향으로 가기 위해 전국의 길을 꽉 메울 것이다.그러면서 이 고생을 하면서라도 구애받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고 그곳에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부모님을 뵐 수 있다는 사실을 각별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1,000만 이산가족이라고 한다.그분들이 함께 모여 살지는 못하더라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장소라도 하루빨리 만들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손숙 연극배우·전 환경부장관
  • ‘흑진주’ 윌리엄스 자매 운명의 대결

    ‘시스터 액트(Sister Act)’.15개월 먼저 태어난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20·미국)가 여자 테니스 세계1위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를 2-1(6-3 4-6 6-4)로 물리치자 관중석에 앉아 마음을 졸이던 세레나 윌리엄스(19)는 주먹을불끈 쥐며 언니의 준결승 입성을 기뻐했다. 윌리엄스 자매가 6일 밤 윔블던 테네스대회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혈연을 초월한 혈투를 벌인다.116년전 모드-릴리안 와트슨 자매의 결승전 이후 첫 자매간의 메인경기이자 66년 이 대회 2회전에서 게일-카롤 세리프 자매가 맞붙은 이후 처음이다. 역대전적은 지난 94년 먼저 프로로 전향한 비너스의 3-1 우위.그러나 세레나는 가장 최근 경기인 지난해 10월 그랜드슬램컵 결승에서 언니를 눌렀고지난해 US오픈 우승으로 97년 같은 대회 준우승에 그친 언니를 앞선다.186㎝ 77㎏의 비너스가 체격면에서 세레나(178㎝ 65㎏)보다 낫지만 파워는 오히려 동생이 앞선다는 평이다. 비너스는 “세레나는 네트 앞에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잔혹한 승부사”라고 평가했다.농담을 즐기는 세레나는 “둘중 한사람은 쓴맛을 보겠지만 둘중 하나는 결승에 진출하는 셈”이라며 여유를 보였다.쌍둥이 못지않은 우애를 자랑하는 자매는 지난해 20세기 최초로 프랑스오픈,US오픈 복식을 석권하는 등 환상의 복식조로도 유명하다.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는 장례식 참석때문에 ‘딸들의 전쟁’을 지켜보지 못하지만 둘에게 똑같이 75달러씩을 거는 부정(父情)을 보여줬다. 지난해 이 대회 1회전에서 힝기스를 무너뜨렸던 옐레나 도키치(호주)와 대회 2연패를 노리는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의 준결승전도 관심을 끌만하지만 세기의 자매대결에 묻혀 버렸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남녀차별금지법 시행1년/ 앞선法 못따르는 의식’머나먼 性평등’

    *성과와 과제.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백경남) 남녀차별신고센터.9명의 조사관이 상담전화를 받느라 바쁘다.주저하는 목소리의 여성이 조사관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다. “사장님이 어제 회식에서요.블루스를 추자고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고….회사 가기가 너무 싫고 무서워요…”“사장의 행위는 명백한 성희롱입니다.여성특위에 정식으로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하시죠”“불이익이 있으면 어쩌지요”“만일 시정명령을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고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비용을 특위에서 지원하니 걱정마십시오”“…”숱한 논란끝에 제정되었던 남녀차별금지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차별금지법)이 오는 7월1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그동안 관행으로 눈감아 왔던 성희롱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단초를 마련한 차별금지법은 한국여성의 인권을획기적으로 신장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남녀차별금지법 시행이후 올 5월까지 여성특위 차별신고센터에는 총 1,500여건의 상담이 들어왔다.고용상의 차별부터 직장내 성희롱 등에 대한여성들의상담,고발이 기다렸다는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리 결과도 괄목할 만 하다.지방의료보험조합내 승진인사 차별 시정권고조치,성희롱 동사무소 동장 징계,진료중 성추행 의사에 손해배상금 판정 등등….또한 대학 예능계신입생 성별 구분모집에 대해 직권조사를 시도,해당 대학으로부터 폐지를 약속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와함께 수치심 등의 이유로 저조했던 직장내 성폭력,특히 성희롱에 대한여성들의 신고의식도 높아졌다.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최영애)에 접수된 상담내역을 보면 성폭력사건 2,584건중 직장내 강간,성추행,성희롱등직장내 성폭력이 570건으로 22.2%를 차지한다.98년도 14.6%에 비해 훨씬 높아진 수치다. 성폭력상담소 장윤경 사무국장은 “차별금지법 실시로 여성들의 권리의식이한층 강화된 것 같다”며 “여기에는 징계등 처벌 조항의 확보가 큰 역할을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난 93년 서울대 신교수 사건을 통해 성희롱문제가 우리사회의 수면위로 떠오른지 6년만의 결실이었다. ‘선량한 남성들까지 범죄집단으로 매도한다’는 비난이 터져나오고, 남성 국회의원들에 의해 규정이 상당히 완화되는 등 산고(産苦)도 컸다. 시안 마련 단계에서부터 법의 시행까지 전체 과정을 지켜본 여성특위 박우건정책조정관은 “차별금지법은 세계적으로도 선진적 법안”이라며 “미국은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에서 유사한 법률을 운용하지만 여성전담기구에서여성인권을 다루는 국가는 한국이 최초”라고 자평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완전히 성공작이라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성희롱과 관련해 가해자가 아닌 사업주의 처벌만 명시돼 있고 여성특위가 결정한 시정권고 등의 조치에 불응할 경우에는 피해자가 직접 민사소송을내야하는 등 부담이 크다. 다음은 공공기관과 사기업에 연 1회이상 의무화된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문제.현재까지 공공기관의 성희롱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있다.여성특위에 따르면 국가기관 2,717곳중 97%인 2,238곳이 교육을 받았고지자체도 303개기관중 87%가 교육을 마쳤다.그러나 종업원 10인이상 사기업체의 교육실태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실태조사가 어렵다는 것은 처벌도 유명무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성들의 60%이상이 5인이하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세소규모사업장의 집단교육 등의 방안이 무척 시급한 실정이다. 형식적이고 허술한 교육도 문제로 지적된다.여성특위 인터넷게시판에 글을올린 회사원 이태규씨는 “모든 남자직원을 성희롱 예비 범행자로 간주하는것도 억울한데 뻔한 내용으로 강제교육을 듣고 있자니 시간이 아깝다”며 성희롱 교육을 꼬집었다. 의식이 여전히 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98년 1,31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적이있다’는 여성이 84%,‘행한 적이 있다’는 남성이 85.3%나 됐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순결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의 신고를 방해한다.여성특위의 올해 상담사례 544건중 신고서로 정식 접수된 것은 87건으로 겨우 10.6%에 그친 것도 신고로 인한 제2의 피해를 우려한 것으로 볼수 있다. 정강자 여성민우회 대표는 “이달 초 열린 UN여성 총회에서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보고하자 전세계 참석자들이 깜짝 놀라더라”며 “그러나 선진적제도와는 별개로 실효성에서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절반의 성공’에 그치지 않기 위한 선결과제는 뭘까.정 대표는 “강력한 법 집행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별개선위원회에 시정권고를넘어 명령권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고 말한다.법적 선진성과 의식적 후진성 사이의 괴리를 깨기엔 가벼운 시정권고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그는또한 “여성들이 직종별 문제를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허윤주기자 rara@. *인터뷰/ 남녀차별신고센터 조진우 조사관. “성희롱사건엔 무엇보다도 증거가 우선입니다.억울한 마음에 무작정 신고부터 하시지 마시고 증거를 꼭 챙기세요” 여성특위 차별개선조정관실 조사담당관 조진우과장이 여성 피해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당부다. 행시출신인조진우과장은 정무2장관실에서 일하다 6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친뒤 지난 2월조사담당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책임을 맡은 남녀차별신고센터는 9명의 조사관이 고용차별,성희롱 상담과 신고접수를 담당한다. 조과장이 차별신고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월초 부산에서 발생한 동사무소 동장의 여직원 성희롱사건. 마침 설날연휴가 겹쳐 신고접수 1주일만에 연락을 해보니 그동안 온갖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여직원이신고포기 의사를 비쳤다. 가까스로 설득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무조건 문제를덮으려고만 하는 사회의 뿌리깊은 관행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절감했다.이사건은 결국 동장을 징계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내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조과장은 “성차별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적절한 선에서 합의하는 것이가장 바람직하다”고 전제하고 종종 이런 여성특위의 태도가 성차별문제를해결하는 데 ‘지나치게 유연하다’는 비난을 받기도한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유연한 합의’는 여성이 나중에 직장에 복귀해 적응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최선의 해법이라고 믿고 있다.성희롱 사건을 심사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증거다.성희롱이 발생하는즉시 제3자에게 알리거나 녹음을 해두면 나중에 조사관이 심사할때 아주 요긴하다.구체적 행위가 담긴 항의편지를 써서 보내되 만일을 대비해 사본을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한편 조사관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냉철한 자세를 꼽는다. “얼마전 중소기업 여직원의 ‘여자라서 승진에서 밀렸다’는 신고를 조사해보니 회사측 인사책임자의 설명은 영 달랐어요.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보고정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조과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특위내에 전문성있는 ‘차별개선위원회’가없다는 점.현재 차별신고에 대한 최종결정은 특위위원장,노동부 등 관련부처차관 6명,위촉위원 7명으로 구성된 ‘여성특위 전원회의’가 대신한다. “전원회의 만으로는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아 일처리가 어렵습니다.앞으로여성부로 조직이 격상되더라도 법률전문가들로 보강된 ‘차별개선위’가 설치되지 않으면 실효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윤주기자. *제5회 여성주간 새달 1∼7일. 제5회 여성주간 행사가 ‘21세기,이제는 여성’을 주제로 7월1∼7일 다채롭게 펼쳐진다. 남녀평등 구현과 여성권익 신장을 위해 96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여성주간’은 여성특위 등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민간여성단체들이 대거 참여한다. 여성특위는 전국적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기념식 장소를지방으로 옮겨,부산시 문화회관에서 7월5일 오후2시30분 개최하기로 했다.각계인사 1,500여명이 참가하는 기념식에선 유공자 포상 및 남녀평등 글짓기대회 우수작 시상,합창공연 등이 열린다. 또한 서울에서는 여성주간을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덕수궁,창경궁,종묘 등 4대고궁을 일요일인 2일 오전9시부터 여성과 동반가족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여성단체들이 준비한 행사중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딸기(딸들아,기지개 펴자)콘서트’.2일 오후4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DDR경연대회,페이스페인팅,마임 등 퍼포먼스축제와 여성인디밴드 콘서트가함께 어우러진다. 전국주부극단연합회는 1∼14일 여의도 굿모닝증권 300홀에서 주부들의 자아정체성과 애환을 그린 제4회 전국주부 연극제를 개최한다. 이밖에 ‘성차별 없는 세상만들기 글짓기 대회’(서귀포시여성단체협의회 3일),‘한중일 여성문학 국제학술대회’(한국여성문학학회 5∼6일),‘차이를넘어 하나로-어울림 여성예술제’(충북여성장애인회 7일)등 7개행사가 여성특위 지원으로 마련된다. 허윤주기자
  • 리뷰/ 英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 ‘말괄량이 길들이기’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그리고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다듬어진 탄탄한 극적 구조속에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고전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그러나 동시에 여성길들이기라는 소재 때문에 근래에 이르러서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논란의핵심이 되기도 한다. 딸들을 소유물처럼 아버지가 임의로 결혼시키는 관습,한 여자를 두고 당사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남자들끼리 벌이는 내기와 흥정,그중에서도 말괄량이 주인공을 강압적으로 길들이는 남편의 성공담 같은 줄거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성적 담론과 권력구조로 풀어보려는 현재의 눈으로 보자면 당장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인다.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낡아보이는 소재를 어떻게 현재의 관객에게 호소력있게 전할 것인가.1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의 무대는 그같은 과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냈다.‘바로 여기’‘바로 지금’이라고 희미하게 읊조리는 말로 시작되는 공연에서 떠돌이 배우들이펼치는 원작의 극중극은 인터넷으로 접속되어 관객들이 함께 보는 극단의 홈페이지 공연이 된다. 컴퓨터 모니터인듯 간결하게 디자인된 금속성의 무대는 최대한 간결하게 운영하면서 무대 중앙에 또 하나의 무대를 세우고 푸트라이트처럼 조명을 설치한 것은 인터넷으로 접속한 극중극이라는 컨셉을 시각적으로 잘 받쳐준다.그에 비해 셰익스피어 시대의 의상을 정확하고 풍족하게 되살린 의상은 고전의 품격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백미인 언어를 고스란히 전하려는 무대에서 고전에 대한 영국인들의 경외심이 느껴지면서 대사를 일일이 번역하지 않고 줄거리만 전달해 달라는 극단측의 요구가 이해된다.공연을 보다보면 대사는 이해하지 못해도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마치 모두 알아듯는 듯한 묘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배우들의 정확한 발성을 통해 전달되는 운문대사 특유의리듬과 멜로디가 마치 음악처럼 아름답다.실내악 연주처럼 정확하게 앙상블을 이루며 움직이는 배우들의 경쾌한 등·퇴장과 동작들이 극단의 저력을 재삼 확인해준다. 다만 극중극에서 고전의 복원에 치중한 나머지 당시 사회적인 문맥과 극중극으로 처리된 전체구조를 살펴볼 때 발견할 수 있는 이 작품의 보편성,즉 권력으로 푸는 남녀관계를 뛰어넘어 정체성과 환상에 대해 언급하는 셰익스피어의 속내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절제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이혜경 연극평론가·국민대교수
  • ‘사각의 링’ 딸들의 전쟁

    ‘딸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프로복싱 전 헤비급챔피언의 딸들이 ‘사각의 링’에서 만난다. 무하마드 알리의 딸 라일라 알리(21),조 프레이저의 딸 재키 프레이저 라이드(38)에 이어 조지 포먼의 딸 프리다 포먼(23)이 새달 19일 데뷔전을 갖는다.여기에다 프리다의 데뷔전 상대도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잉게마르 요한슨의 딸인 마리아 요한슨이 유력해 여자 복싱계가 한층 ‘무거워’질 전망이다. 현재 알리의 딸 라일라는 6전6KO승,프레이저의 딸 라이드도 3전승(2KO승)을올리며 ‘철권’을 자랑하고 있다. 복싱계는 벌써부터 이들의 맞대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특히 라이드와 프리다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라일라와의 대전을 고대하고 있다.라일라의 아버지 알리는 지난 74년과 75년 각각 포먼과 프레이저를 KO로 물리친 적이 있다.그러나 이들의 대결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우선 체중조절이 선행되야 한다.현재 라일라는 슈퍼미들급,라이드는 헤비급이다.데뷔 예정인 프리다도 라이트헤비급의 체중이다. 한편 한국도 여자 프로복싱 활성화를위해 조만간 정식으로 여자 선수를 확보할 예정이다.현재 전국의 체육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자 선수는 50여명에 이르고 있다. 박준석기자
  • 오늘 19회 ‘스승의 날’ 2題

    *”가르치는 보람이 최고의 행복”. “스승은 어린 제자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단다.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못지않게 중요한 직업이 바로 교사야” 오는 8월 정년을 앞둔 서울 세검정초등학교 3학년 담임 박래송(朴來松·62·서울 은평구 녹번동) 교사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섯 딸과 두 사위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부터 ‘교육가족상’을 받는박교사가 부인 이팔연(李八然·65)씨와 함께 14일 저녁 외손자 김건희군의11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가족상 수상을 자축하기 위해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서울 강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장녀 학숙(學淑·39)씨,서울 상수초등학교교사인 차녀 학현(學現·36)씨와 둘째 사위인 서울 원광초등학교 교사 김동중(金東仲·38)씨,셋째 사위이자 서울 광양고등학교 교사인 박홍섭(朴洪燮·37)씨가 먼저 달려왔다. 곧이어 서울 삼선초등학교 6학년 교사인 넷째딸 지순(志純·30)씨가 도착했고,강원도 원주 부론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막내딸 소영(昭映·28)씨가 마지막으로 왔다.가족 모임에는 학생들을 인솔하고 야영을 떠난 셋째딸학주(學周·32·서울 문창중학교)씨와 육사 출신으로 육군 중위인 막내 외동아들 성하(星夏·25)씨만 빠졌다. 33년 6개월 동안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가장 박교사로부터 교단에 선 지 1년 1개월 된 막내딸까지의 경력을 모두 합하면 이 가족의 총 교직경력은 111년 5개월이나 된다. 7명의 선생님이 모이자 가족 모임은 교무회의를 하는 것같았다. 딸과 사위들은 박교사에게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면서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노는 곳으로 여기는 학생들이 많다”고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박교사는 “아무리 교직생활이 힘들어져도 선생님은 제자를 자식보다사랑해야 하고,학부모들에게도 항상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자들로부터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박교사는 지금까지 길러낸제자들의 연락처를 꼬박꼬박 챙길 정도로 꼼꼼하다.박봉으로 넉넉한 생활은하지 못하지만 제자를 길러내는 보람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박교사는 딸들에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이고 보람있는 교사의 길을 걷기를 요구했고,딸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나이가 지긋한 아버지의 제자들이 찾아올 때 아버지가 가장 부럽다는 막내딸 소영씨는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남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아버지의 고집과 제자 사랑을 배우고 싶다”며 대선배인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이창구기자 window2@. *여중 임시교사 김명신씨 '인터넷 글쓰기' 큰 반향.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글을 썼는데 이젠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한 임시교사가 지방의 여중에서 두달간 일하면서 소개한 ‘인터넷신문을 통한 글쓰기’가 학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최근 전남 영광여중에서 두달간 임시교사로 일한 김명신씨(34)가 도입한 ‘인터넷 글쓰기’ 방식이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89년 광주 조선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10년째 교직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예비교사.지난 3월 이 학교에 채용된 김씨는 2학년국어를 가르치던 중 학생들이 글쓰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를 ‘글쓰기 연습장’으로 활용할 것을 권유했다. 이 사이트에 올린 학생들의 글이 오마이뉴스의 1면톱을 장식하면서 김씨의‘인터넷 글쓰기 지도’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며칠 만에 2학년의 절반인 200여명이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학생들은 이후 ‘오마이뉴스 영광여중 동아리’를 구성하는 등 높은 열의를 보이고 있다.한 학생은“선생님의 글쓰기 지도는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말했다. 김씨 역시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느낀 점을 사이트에 올렸다.‘아이들과 밥비벼 먹던 날’‘교실연가(戀歌)’‘선생님 왜 저만 갖고 그래요’‘4·19엔이 노래를 함께 부릅시다’ 등 교육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많은 독자를확보했다. 14일로 계약기간이 끝나 학교를 떠난 김씨는 “말썽꾸러기들이 수준급의 글을 써 깜짝 놀랐다”면서 “평면적인 지도보다 재미를 곁들인 방식으로 잠재된 자질을 찾아내는 일이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재일동포 1세대의 삶·애환 그려

    제주도 토박이극단인 놀이패한라산이 일본작가 오다마 코토의 원작을 연극화한 ‘아버지를 밟다’(김수열 연출)를 서울무대에 올린다. 13·14일 국립극장소극장.(064)753-5332 60년전 돈을 벌러 현해탄을 건넜던 아버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고향 제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 일곱명의 딸들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오고, 마을은 장례절차로 떠들썩하다. 딸들은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그리고 ‘북조선인’으로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일본에서 별 문제없이 서로 왕래하며 살던 이들은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의갈등을 통해 아버지의 삶과 조국의 현실을 깨닫는다. 극은 아버지가 일본에서 겪은 고단한 삶과 장례절차가 등장인물들의 회상방식으로 전개된다. 원작자인 오마다 코토는 자신의 장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재일동포 1세대의 삶과 애환을 그렸다. 이순녀기자 coral@
  • [여성 선언] 딸들을 위한 ‘안티’ 걸기

    지난 4월27일 수백만의 미국 소녀들은 매우 뜻깊고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부모나 후원자,친척이나 친구와 함께 어른들의 일터로 나가 생생한 직업세계를체험하면서 자신들의 근사한 미래 모습을 그리며 자신감과 희망을 한껏 키웠던 것이다. 이들에게 이처럼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 날이 ‘딸들을 직장에 데려가는 날’(Take our daughters to work day)이기 때문이었다.93년부터 매년4월 넷째 목요일에 실시되고 있는 이 행사는 소녀들에게 확고한 직업의식을통해 자신감과 자존심,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미즈재단에 의해 시작됐다. 11세때는 자신감에 차 있던 소녀들이 16세가 되면 혼란에 빠진다는 조사결과에 충격을 받은 재단측은 이같은 현실을 극복할 방법을 찾다가 이 행사를고안해낸 것이다. 현재 이 행사는 미국의 각 가정과 학교들,언론과 기업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거의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돼 있다.올해의 경우 미국 기업의 거의절반이 소녀들의 방문을 받은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소녀들에게 특히 권장되는 일터는 과학이나 공학건축분야 등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온것들로서,올해는 특히 미항공우주국(NASA)과 여성우주인들이 소녀들의 큰관심을 끌었다.이 행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소녀들이여,야망을 가져라!’(Girls,be ambitious!)가 될 것 같다. 야망은 이제 더 이상 남성적인 것이 아니다.소년에게든 소녀에게든 건강한야망은 세상의 지평을 넓혀주고 성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계발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나는 지금까지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지만 솔직히 글쓰기가 내가 지닌 능력중 최고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약하다.다른 능력들을 시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소녀였을 때 정치가나 사업가나 법조인이나 과학자는 한 번도 내 가능성의 영역 안에 고려된 적이 없다.주위의 누구도 여자인 내가 그런 직업을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그런 긍정적인 역할모델도 없었다. 내가 글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능력보다는 글쓰는 여자들이 몇안되는 역할모델 중에서 가장 멋지게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만약 그렇다면 내 인생은 최선의 길을 봉쇄당하고 만 셈이다. 지금의 10대 소녀들은 우리세대보다는 확실히 넓은 선택의 기회를 누리고있다.그러나 아직도 그녀들은 야망을 갖거나 실현하는데 있어 미국 소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국여성의 한계’에 갇혀 있다.다양한 직업세계와 강력한 역할모델들을 경험하며 용기백배하고 있는 미국 소녀들 얘기를 하면서마음이 답답해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지금 보이는 한국 소녀와 미국 소녀의 차이는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그만큼의 두 나라간 국력차이로 나타나지않을까. 2001년부터는 독일에서도 같은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다.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어린 딸들에게 성의 족쇄들을 풀어주고 직업세계의 야망을 고취시키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딸들을…’ 행사의 스폰서가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갭,힐튼,IBM,뉴욕타임스 같은 기업들이라는 사실은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행히 이 땅에서도 올 봄 딸의 손을 잡고 가볼 만한 신나는 행사 하나가열린다.5월 20일에 개최되는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그것이다.‘딸들을…’ 행사의 핵심이 ‘소녀들의 외모보다는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고 보면 두 행사는 소녀들을 외모 제일주의로 몰고 가는 세상에 대한 ‘안티’걸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우리의 딸들을 위한 안티 걸기-이 봄,꽃보다 예쁜 딸들을 보며 우리 어른들이 품어야 할 화두가 아닐까. 김신명숙 이프 편집위원·작가
  • [독자의 소리] 미성년 매매춘 근절에 모두 나서야

    서울 종암경찰서 신임서장이 관내 미아리 텍사스촌의 미성년자 매매춘을 뿌리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김 서장에게 협박전화가걸려오는 등 첫걸음부터 순조롭지 않은 모양이다.그동안 우리사회는 인간에대한 사랑을 잊고 산 것이 사실이다.그중에는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인간경시 풍조도 한몫 낀다.매춘은 인류역사와 함께 지속돼온 인류사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류가 저지른 범죄 가운데 가장 추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교복을 입고 순수한 꿈을 꾸며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키워가야 할 나이에 붉은 전구가 처량하게 비치는 쪽방에서 자신의 몸을 유린당하는 소녀들.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들을 ‘팔자’려니 하고 방치해온 것이사실이다.그들을 우리 딸들이라고 다시한번 생각하고 사회의 품속에 보듬는김서장의 노력이 빛을 발했으면 한다.이 기회에 말로만 그녀들을 동정하지말고 미성년자 매춘을 근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승주[서울 광진구 구의2동]
  • [대한포럼]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

    “여자가 남자보다 더 깨끗하고 공정하다”는 주장이 있다.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생물학적 본능,즉 종족보존의 모성본능이 여성을 남성보다 더공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해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을 벌이고있는 김강자(金康子) 총경은 이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경기도 양평경찰서장으로 ‘러브호텔’과 ‘티켓다방’의 불법영업 단속에 나선 김인옥(金仁玉) 총경도 여성이다.지난해 멕시코시의 알레한드로 헤르츠 경찰청장은 “본성상 여성은 남성보다 더 도덕적”이라면서 교통단속 경찰관을 여성으로 전원 교체한 바 있다.김강자 총경은 ‘미아리 텍사스촌’ 관할 파출소장을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각설하고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이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경찰청은 10일 전국의 53개 대규모 윤락가에서 50일동안 미성년 윤락행위를 집중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여성·시민단체도 여기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서울 성북구청은 청소년 윤락행위를 신고할 경우 20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실시하기로 하고 신고전화를 개설했다.이 전쟁을 처음 시작한 김총경에게는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와 각계의 격려가 쇄도하고 있다.여성단체 등의 격려방문이줄을 잇고 격려전화가 5분에 한번꼴로 걸려온다.미성년 윤락녀들에게 일자리와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회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미성년 매매춘이 금방 뿌리뽑힐 것 같은 기세다.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불행히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매춘이 성경에도 기록된,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어서만이 아니라 미성년 매매춘의 뿌리가 이 사회에 너무 깊게 박혔기 때문이다.김강자 총경이 뉴스피플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 뿌리가 얼마나 지독한지 보여준다.옥천경찰서장 재임시절 그는 많은 10대 여자아이들이 ‘사기죄’로 고발당한 것을 발견했다.티켓다방에서 윤락행위를 하던 아이들이었다.가출청소년인 이들은 직업소개소를통해 티켓다방으로 팔려가 하루 1만5,000원짜리 티켓을 10장씩 끊으며 생활했다.하루 10차례의 윤락행위를 한 것이다.업주들은 순진한 꼬마들에게 5만원짜리 옷을 20만원에 파는 등의 수법으로 (아이들의)빚을 늘렸다.“세상에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경찰서장이기 이전에 두 딸을 가진 엄마로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김총경은 분개했다. 이처럼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들을 꾀어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끝내는사기꾼으로 모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욕망의 거리에 내팽개쳐진 우리 딸들이 전국적으로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당국은 추산한다.전국의 매춘업소와 유흥접객업소 종사자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그러나 퇴폐업소 종업원의 절반 정도가 미성년자라는 주장도 있고 ‘원조교제’ ‘명함영업’ 등 윤락업소에 몸담지 않고 하는 미성년 매매춘도 성행하고 있어 윤락의 구렁텅이에빠진 소녀들이 얼마나 될지 정확히 헤아려보기가 사실 두렵다.게다가 이들을 구해내야 할 단속요원들은 업주와 유착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성년 매매춘 근절은 공급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수요차원에서도 접근해야한다.공급 차단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강도높은 단속이 지속적으로펼쳐지는 한편 윤락업주의 전업유도·윤락녀 취업알선 등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할것이고,수요 차단을 위해서는 우선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한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한 이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는 한 미성년 매매춘 단속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나아가 모든 남성이 아버지나 오빠의 입장에서 딸이나 누이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소녀 매매춘 근절에 나서야 한다.우리 사회의 잘못된 접대문화,‘영계’를 찾는 왜곡된 남성의식이 하룻밤 ‘실수’쯤으로 용납되고,금기를 깬다는 명분 아래 무분별한 노출증과 관음증이 만연하고 성의 상품화가 노골화한 세태를 바로 잡으려면 여성의 도덕성 뿐만 아니라 남성의 도덕성이 더욱 필요하다. 임영숙 논설위원ysi@
  • “청혼때 함께 죽기로 약속”남편 자살

    유방암을 앓아오던 아내가 숨지자 청혼때 아내와 함께 죽기로 한 약속에 따라 40대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9일 오후 1시쯤 울산시 남구 무거1동 장모씨(45·꽃행상업)집에서 장씨가 안방 손잡이에 스타킹으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둘째딸(17)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장씨가 숨진 방에는 3년전부터 유방암을 앓아온 아내 김모씨(41)도 외출복차림으로 반듯이 누운 채 함께 숨져 있었다. 장씨의 둘째딸은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오던 어머니가19일 오전부터 몹시 아프다고 해 아버지가 간호를 했었다”며 “이모부가 찾아와 함께 안방 문을 열어보니 부모님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4장의 유서에서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들 못지않게 사랑하는 너희엄마를 혼자 보내기 가슴아파 같이 동행한다.청혼때 함께 가기로 한 약속을지켜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남겼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현장] 지나친 환대에 무색해진 국제경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몇차례 국제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50·창원시 대방동)는 ‘F-3코리아 그랑프리대회’를 주관하는 경남도가 대회에 참가한 선수·임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초 예상을 빗나간 광고 유치 부진과 2배 가까이 불어난 경주장 건설비로적자 대회가 뻔한 줄 알면서 매일 선수단을 특급 호텔과 유명 관광지로 초청,호화판 오찬과 만찬을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대회조직위원회가 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동원한 ‘레이싱 걸’에게 외국선수들과춤추게 하고 술을 따르게 했다. 도는 자동차 관련산업을 육성시킨다는 취지로 이번 대회를 유치했다.이를기계공업도시인 창원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호기로 삼고 갖가지 계획도 세웠다.그중 한가지가 선수단의 환영연에서 송별연에 이르는 오찬과 만찬 및위안행사. 도는 이번 대회를 전후해 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의 주관으로 모두 7차례의 오찬과 만찬행사를 열고,‘선수 위안의 밤’과‘출연진 댄스페스티벌’을 두 차례 가질 계획이다. 지난 23일 선수단이 도착하자 도지사는 도청 도민홀에서 선수·임원 환영만찬을 베풀었다.식사는 인터내셔널호텔에서 날라온 양정식이었다.24일에는 창원호텔에서 ‘선수 위안의 밤’이 열렸으며,25일에도 도의회 의장과 행정부지사,농협 경남본부장 등이 주관하는 환영만찬을 했다. 대회가 시작된 26일 도교육감과 경남경찰청장,경남은행장 주관으로 국내선수와 진행요원에게 저녁 식사대접을 했으며,이어 27일에는 인기 연예인 등이 참가하는 호화 전야제가 호텔에서 열린다.그리고 28일에도 대규모 오찬행사와 송별파티가 계획돼 있다. 이밖에 26일 ‘도지사와 함께하는 선수 위안의 밤’이 열렸으며,‘출연진댄스페스티벌’은 28일 열린다. 김씨는 “대회가 열리면서 겪는 교통체증과 소음 고통 등은 참을 수 있지만외국선수들을 불러와 지나치게 환대하고,우리 딸들이 그들에게 헤픈 웃음을흘리며 술을 따르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도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자존심마저 버린 데 대해 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참가 선수들에게 창원시와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필요한 행사”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구겨진 도민들의 정서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정규 전국팀기자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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