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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23일 신년특별연설 준비한 원고로 강의형 진행

    노무현 대통령의 23일 밤 신년특별연설은 ‘프롬프터’의 도움 없이 원고를 바탕으로 한 ‘강의형 연설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즉석연설은 아니지만 연설원고가 ‘프롬프터’에 뜨는 그대로 읽는 딱딱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은 22일 이에 대해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데 설득력과 호소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연설은 지난해 백범기념관에서 진행됐던 것과 달리 청와대 영빈관에서 오후 10시부터 1시간 정도 이뤄진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중국은 편안한 이웃”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가 적극적인 설득형으로 변신했다? 한국 부임 1년 5개월째를 맞는 닝 대사가 딱딱한 외교사절의 전형에서 벗어나 ‘친근한 이웃, 중국’을 선전하는 홍보맨으로 나섰다. 지난 18일 ‘21세기 동서포럼’(공동회장 김한규 전총무처 장관·오상현 손해보험협회 회장). 초청강사로 나선 닝 대사는 낮은 자세로 한국을 치켜세우고 두 나라 협력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1시간여에 걸쳐 유창한 한국말로 ‘편한 이웃, 중국’을 강조했다.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이날 강연 주제는 ‘15주년을 맞는 한·중관계.’“그동안 중국은 한국의 현대화 성과를 배우기 위해 힘을 다해 왔다.”고 운을 뗀 뒤 최근 고개를 든 중국위협론을 의식한 듯 중국 발전이 한국에 주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느라 애를 썼다. 이날 초청 강연에는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 이은영(열린우리당)의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김치통·장롱 속 훼손 지폐 다시보자”

    ‘장롱, 가스레인지, 김치통 속에 숨어있는 지폐를 찾아라.’ 한국은행은 지난해 불에 타거나 습기 등에 훼손된 지폐(소손권)를 9억 800만원어치를 교환했다고 17일 밝혔다.교환건수는 7216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액수와 건수가 각각 5.2%,3.1%가 증가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새돈을 찍어내는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한은은 이날 뭉칫돈을 안전한 은행 대신 김치통이나 가스레인지, 장롱,‘땅속’에 묻어두었다가 훼손시킨 재미난 사례도 함께 발표했다.●핀셋으로 돈 세기A씨는 행상을 하며 모은 돈을 김치통에 김장 김치 담그듯이 차곡차곡 100만원씩 다발로 담아놓았다. 이것을 사위와 인테리어업자가 함께 발견해 한은 화폐교환 부서로 가져왔다. 한은 관계자는 “습기찬 김치통에서 오랫동안 젖었다 말랐다를 거듭한 터라 나무처럼 딱딱히 굳어 다발 자체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면서 “교환국의 차장과 직원들 4명이 매달려 4∼5시간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분리해 교환해줬다.”고 설명했다. 김모(경기도 용인)씨는 3000만원을 가방에 넣어 집창고에 보관하다가 돈다발이 부패한 것을 발견하고 교환했다. 박모(부산시 사하구)씨도 장롱을 교체하던 중 용돈으로 받아 모은 1500만원이 부패한 것을 발견하고 교환했다. 땅속에 묻기도 했다. 전북 김제에 사는 한 할머니는 1200만원을 비닐에 싼 뒤 땅속에 묻었다가 낭패를 봤다.B씨는 오랫동안 쓰지 않는 가스 오븐레인지 안에 200만원을 보관했다가 태워서 교환 요청을 했다.●재도 챙겨라훼손된 화폐의 교환 조건은 정해져 있다. 한은은 훼손 화폐가 원래 크기와 비교해 면적이 4분의 3이상이면 액면 금액 전액을 모두 교환해준다.5분의 2이상이면 반액만 교환해준다. 불에 탄 경우에는 ‘원형유지’가 관건이다. 한은 관계자는 “불에 탄 돈이라도 재가 원형을 유지하면 돈의 면적으로 인정하므로 재를 떨어내서는 안 된다.”면서 “금고나 지갑 등 보관용기에 든 상태로 불에 탔을 경우에는 용기 그대로 운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훼손된 거액의 돈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에 대해 “돈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은행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가진 노년층 때문”이라면서 “특히 행상을 해 돈을 모았거나 자식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장기간 간직하다 훼손시키는 일이 많다.”고 밝혔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광진公 ‘직원과 릴레이 대화’ 신선

    “무슨 말이라도 좋습니다.”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대한광업진흥공사. 다소 딱딱했던 조직 분위기에 요즘 새바람이 불고 있다. 취임 한달여를 맞은 이한호 사장이 새해 들어 ‘직원과의 릴레이 대화’를 시작하면서다.23일까지 계속된다. 주임에서부터 고참 과장에 이르기까지 네 그룹으로 쪼개 대화 테이블에 초대했다. 경영 전반에 대한 창의적 의견을 듣고 있다. 애로사항도 수렴한다. 이 사장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이다.4성 장군 출신의 사장 앞에서 직원들이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처음엔 낯설고 어려워하던 직원들이 나중엔 경쟁적으로 입심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 사장의 유머감각 힘이 컸다. 그는 군인 출신답지 않게 언변이 좋다. 이 사장은 대화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 정리해 경영에 반영할 작정이다. 아예 ‘최고경영자와의 대화’를 분기별로 정례화시킬 방침이다. 이같은 ‘열린 경영’을 토대로 사업 다각화와 이미지 통일(CI) 방안을 담은 40주년 프로젝트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사장은 15일 “일단 방향과 전략이 정해지면 남는 일은 추진뿐”이라고 잘라 말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링컨’ 젊어졌네

    ‘링컨’ 젊어졌네

    ‘링컨’이 젊어졌다. 고급 리무진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 포드사의 링컨이 4000만원대 모델을 내놓았다. 모델명은 ‘링컨 MKZ’. 디자인을 날렵하게 바꾸고 가격 거품을 뺀 것이 특징이다. 링컨의 트레이드 마크인 ‘창살 그릴’만 그대로 놔둔 채, 전체적인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꿨다. 링컨 하면 연상되는 무겁고 딱딱한 느낌을 없애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내부 인테리어는 프리미엄 승용차 부문 베스트 인테리어상을 받기도 했다. 배기량은 3500㏄. 세계 10대 엔진중 하나인 신형 듀라텍 V6 엔진을 얹었다.‘스타워스’의 루카스 필름이 이 차량에만 공급하는 영화관 수준의 카오디오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4390만원에 책정됐다. 경쟁 모델인 닛산 인피니티의 G35나 도요타 렉서스 ES350보다 훨씬 싼 편이다. 한국포드 정재희 대표는 “강력한 힘과 스타일을 갖춘 링컨 MKZ로 미국차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올해 500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녹색공간]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 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2005년 6월, 모교인 베를린 공대에서 2주간 열린 ‘신재생 에너지 워크숍’에 참석하러 독일을 방문했다. 주말에 나는 유학 초창기에 살던 베를린 남부 첼렌돌프를 찾았다. 20년이 지난 오랜 기억을 더듬어 기다란 낡은 2층 연립주택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지만 모두 비슷비슷해 도저히 예전에 살던 집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마침 한 노부부가 나와 바그너 할아버지의 옛집을 가르쳐 주었다. 헤르만 바그너. 바로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독일인 음악가. 그 노부부는 바그너 할아버지의 이웃으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음악명가 바그너가의 한 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100세까지 사시고 7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한 딸이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바로 1시간 전에 휴가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1985년, 독일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바그너 할아버지는 갓 결혼한 가난했던 우리 부부를 1년간이나 집세도 안 받고 함께 살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당시 85세 고령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한 겨울에도 방의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딱딱한 대나무 침대에 달랑 담요 한 장만 덮고 주무셨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거나 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들어갔고 이어서 느린 동작의 중국식 기공체조를 했다. 대개 오전 11시경이나 돼야 간소하게 채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키가 크고 마른 몸매였지만 매우 건강하셨다. 할아버지는 가끔 나를 불러내 뒤에 있는 공원에서 탁구를 치곤 했는데 어찌나 체력이 좋으신지 1시간이 넘도록 쳐도 지치질 않아 오히려 내가 먼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도망쳐 나올 정도였다. 가끔 갓 결혼한 우리 부부를 저녁에 초대해 함께 유기농 식사를 나누었고 매달 제자 음악인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할아버지는 독일인이면서 소시지는 물론 우유도 안 드실 정도로 지독한 채식주의자였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로 발전한 배타적인 현대 서구 물질문명이 많은 자연친화적 소수 문명을 파괴해 왔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자원과 화석에너지 남용으로 지구의 생태계 파괴를 초래해 인류문명 전체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파괴적인 현대문명의 대안으로 동양의 자연철학이 담긴 노자와 장자를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동양인이면서도 서양철학에는 일찍이 눈을 떴으나 정작 동양철학은 아는 게 없어서 매우 부끄러웠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환경에 눈을 뜨게 된 나는 학위 내용도 주정폐수의 자원화 처리를 주제로 마쳤고 오늘날 노래 등 문화를 통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 요즘 기상이변의 심화로 지구촌은 점점 황폐화하고 있다.3년 전 미 국방부 기후변화 보고서인 펜타곤 리포트의 경고에 이어 얼마 전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도 직접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1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엄청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해양부는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북대서양 난류의 유입이 지난 20년간 30%나 줄어들어 이상기후가 심화되면 생태계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재앙은 코앞에 와있을지도 모른다. 엘니뇨로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로 맞는 2007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보도이다. 평년 평균기온이 영하 10도이어야 할 모스크바는 요즘 영상 5도를 가리키고 있고 북극곰은 얼음이 얼지 않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자 해안마을을 습격했다고 한다. 이제 바그너 할아버지의 경고대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이기영 호서대 식품생물공학과 교수
  • [김석의 Let’s wine] 아이스와인 즐기기

    [김석의 Let’s wine] 아이스와인 즐기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와인, 아이스와인은 눈의 여왕에게 잡혀 있어 그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 왕자의 구출로 마법에서 풀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게 되는 어느 동화 속 공주 같은 와인이다. 가장 화려하면서, 그 추운 겨울을 꿋꿋이 이겨낸 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처음 발견된 아이스와인은 때이른 찬 서리가 빚어낸 우연의 결과물이다. 아이스와인을 위해, 독일 농부들은 포도밭에 찬 서리가 내리고 섭씨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올 때까지 기다려, 추운 겨울에 포도를 수확한다. 하늘이 시기해 포도를 다 못쓰게 할 수도 있고, 운 좋게 아이스와인을 얻을 수도 있다. 또, 포도의 수확은 일출 전에 이루어진다. 해가 떠 얼음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은 포도알이 기온이 올라 녹기 시작하면 맛이 죽어버리기 때문. 이상기온으로 따뜻한 겨울이 오면 아이스와인은 생산조차 되지 않는다. 대체로 한 그루에서 한 잔 분량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진귀한 와인이다. 아이스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는 현재 독일과 캐나다이다. 아이스와인의 원조인 독일의 품종은 리슬링인데, 독일의 리슬링 아이스와인은 최고급 와인으로 손꼽힌다. 세계 최고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에 따르면 평가 99점 이상의 최고 와인 반열에 독일 와인이 열 개가 올라 있는데, 그 모두가 리슬링 아이스와인이라고 한다. 반면 본고장 독일에 비해 다소 열악한 캐나다는 최고의 아이스와인 생산량을 지니고 있으며 비달 품종을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비달 품종으로 생산한 아이스와인은 리슬링 아이스와인처럼 우아하지는 않지만 신선함이라는 특색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젊은 아이스와인은 신선함이 매력적이고, 오래된 아이스와인은 신사 같은 엘레강스한 느낌을 주며 복합적인 맛을 자랑한다. 어린 비달 아이스와인의 달콤한 맛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숙성된 리슬링 아이스와인은 가장 소중한 때에 가장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음미할 것을 권장할 만큼 향미나 달콤함의 깊이가 다르다. 아이스 와인은 보통 식사 후 디저트 와인으로 마신다. 때로 코스별로 나오는 디너에서는 식전주(aperitif)로 마시기도 하지만 보통은 식후에 마셔 입안을 달콤하고 개운하게 정리하여 식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시는 것. 맛 자체가 달기 때문에 케이크, 푸딩, 쿠키, 치즈 등 후식과 함께 먹는데, 아이스크림, 디저트용 파이나 치즈 중에서는 로크포르, 블루 치즈, 고곤졸라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디저트가 되기 때문에 따로 다른 음식 없이 와인만 마셔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단, 섭씨 5∼7도로 차게 해서 마셔야 좋다. 또한 아이스 와인은 비교적 입구가 좁고 볼 모양이 플룻처럼 날씬하게 빠진 잔에 담는 것이 좋다. 단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혀 바로 앞쪽에 떨어지는 것보다 처음 와인을 입에 넣었을 때 약간 뒤쪽에 떨어져서 산도를 먼저 맛보는 것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와인총괄 부회장(금양인터내셔널 상무)
  • 자치구 홍보 ‘블로그 시대’

    자치구 홍보 ‘블로그 시대’

    ‘구청 홈페이지가 딱딱하면 구청 블로그로 가볼까.’ 구로구가 구민들이 부담없이 구청 소식을 접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의견 개진도 할 수 있도록 블로그(blog.paran.com/digitalguro)를 운영키로 했다. 구는 10일 “네티즌들 사이에 ‘블로그’ 운영이 보편화된 만큼 구정의 갖가지 소식을 블로그로 전한다면 알찬 정보 전달과 함께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이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 관계자는 “구청 홈페이지는 사실 딱딱한 구정 홍보보다 정보전달 내용이 많지만 관공서 홈페이지라는 인식 때문인지 주민들의 방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면 이런 거부감을 가진 주민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블로그 개설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 블로그 개설 작업을 벌였다. 현재 블로거 500여명이 ‘블로그 홈피’를 다녀갔다. 블로그는 크게 5가지의 카테고리로 이뤄져 있다.▲구로야 뭐하니?(예방접종, 세금납부 소식) ▲구로야 놀자!(문화·예술 공연 안내) ▲구로 배움터(자치센터, 문화원 강좌 안내) ▲구로 사랑방(주민들이 자유롭게 글을 남기는 곳) ▲삶의 향기(생활경험, 맛집 소개) 등으로 구성됐다. 구는 블로그 운영을 통해 구정의 정보전달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 개진도 가능해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주민들의 구정참여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눈물의 훈련소 입소식 ‘화려한 병영쇼’ 변신

    눈물의 훈련소 입소식 ‘화려한 병영쇼’ 변신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되곤 했던 육군 훈련소의 ‘눈물바다’ 입소식이 사라지고 있다. 거센 삭풍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운데 8일 오후 논산 제2훈련소 연병장에서 열린 신병입소식. 국민의례와 훈련소장 훈시에 이어 ‘어머님 은혜’ 제창으로 대미를 장식하던 ‘최루성’ 레퍼토리 대신 ‘병영 버라이어티 쇼’를 무색게 하는 흥겨운 무대가 펼쳐쳤다. 군악대의 연주에선 딱딱한 군가 대신 클래식과 팝송 가락이 흘러나오고 공중전화 카드가 상품으로 걸린 장기자랑에선 ‘사회 물’ 덜 빠진 장정들의 현란한 개인기가 펼쳐진다. 훈련소 관계자는 “가족과 친지들이 겪는 이별의 아픔을 달래고 국민에게 더욱 다가가는 군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행사 분위기를 확 바꿨다.”고 말했다. 훈련소의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습니다.’,‘∼습니까.’로 대표되는 ‘군대식’ 말투가 병영 분위기를 지나치게 무겁게 만든다며 최근 훈련소장 지시로 ‘부드러운 말투’ 사용하기 캠페인이 진행중이다. 과거 상상도 못했던 “좋은 하루 되세요.”,“편안한 밤 보내세요.” 같은 ‘사제어’들이 거리낌 없이 오간다. 욕설과 폭언 근절을 위해 지난 2일엔 ‘청정지역 선포식’까지 가졌다. 훈련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내무시설, 식당 등 병사들이 생활하는 모든 곳에선 욕설과 강압적 말투를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위반시 훈련병들에게는 전화·매점사용 금지 등이 벌칙으로 주어지고, 기간병들은 영창이나 군기교육대 입소 등의 처벌이 뒤따른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

    1. ‘인공정원’ 으로서의 ‘시’를 넘어서 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어떤 체험의 순간을 지금-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이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시작품들 가운데, 이 순간을 상투적인 표현들로 재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구체적인 체험 속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생(生)의 순간들과 그 감각적 비의(秘義)들은 관례화된 문법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장르의 전래적인 형식과 표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되었든, 지금까지 ‘시’가 보존해 온 관습적 전범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과격하게 실험하는 ‘전위적인 현대시’가 되었든, 이러한 ‘상투성’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현대적인(modern) 산물에 요구되었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문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이장욱의 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과 풍경들을 1인칭 화자의 감정과 의식과 가치를 표상하기 위한 대리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왕(旣往)의 관례화된 ‘시’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서정은 만상을 일인칭의 내면적 고도(高度)에 걸어두는 방식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창작과 비평》,2005년 여름,70쪽)라는 그의 진술은 우선 ‘시’(‘서정’) 장르의 일반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통상적인 ‘시’ 문법에 대한 그의 반감(反感)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장욱이 재래(在來)의 ‘시’의 문법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와 반감은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만상’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동일적인 영혼을 표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專有)하며, 마침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상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휘발시키는”, 조작된 ‘인공정원’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공정원’으로서의 ‘시’(‘서정’)가, 세계의 그 풍요로운 다양성을 또한 사물과 사건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육체적 질감들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밀폐된 서정적 우주”로 복속시켜 버리거나 혹은 그 바깥으로 추방시킨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그에 따르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시’의 문법은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시인의 ‘일관된 가치와 의미와 정서’에 의해 세계의 만상들에 얼룩져 있는 ‘혼탁한 사물성’을 그 바깥으로 밀어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1인칭 화자의 나르시시즘적인 ‘인공정원’이 가공될 수 있을 뿐, 세계 그 자체의 참다운 실상들이 발견될 수 없다. 2. 표상의 외부와 마주침의 유물론 “객관적인 아침/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깨어나고/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구름을 통과하는 비행기와/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리진다./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희미한 풍경 같아서.”(‘객관적인 아침’ 전문) ‘객관’(object)이란 철학적 인식론에서 주체의 의식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의 시선과 지시작용(designation)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어떤 미지(未知)의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객관’이란 주체의 의식 바깥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 혹은 세계이기는 하나, 주체의 시선과 자기의식에 의해 호명되고 포획되어, 이미 ‘있다’고 알려진 어떤 인식적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장욱에게 ‘객관’은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객관적인 아침’은 ‘나’와 ‘당신’과 ‘침묵’과 ‘종이 비행기’가 서로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시간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아침’이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주체의 시선과 사유에 이미 포착되어 있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자기회귀적인 의식의 궤도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 또는 사물 그 자체가 지닌 복수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기왕(旣往)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시작품의 경우라면, 위의 시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단 하나의 소실점’을 위해 봉사하였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내면 풍경의 표상(表象)들로 고용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것들은 시인이 설정한 ‘소실점’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존재를 보존한다. ‘내 시선의 끝’에서는 모든 사물이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그대와 나’라는 인간의 ‘시선 바깥’에선 ‘멸종 위기의 식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허공’에 ‘포자’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인간이 설정한 세계의 위계질서와 그것의 ‘소실점’ 역시 하나의 ‘희미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하늘’이라는 자연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까닭은 분열되고 오염된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도원(桃園)’을 표상(表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은 자기 내부에서 발아한 동일자의 표상(representation)들만을 세계로부터 수집할 따름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위(僞)와 악(惡)과 추(醜)를 볼 수 없으며, 그것들과 결코 마주칠 수 없다. 이 영혼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고백하며, 고백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는 ‘절규’의 첫 구절은 시인 이장욱이 가진 인식론적 지평을 축약하여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다양한 상징적 편린(片鱗)들로 산포되어 나타난다. 이 편린들은 예컨대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두 그루 전신주는 아름답고 밤눈은 내리고 녹슨 제 땅에서 제 어둠을 파 내려갔으므로 단 한 번도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그 오래된 이야기”(‘이상한 나라’),“꽃은 15층 베란다에 서서 까마득한 지상을 가늠하는 자와 그 흐린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꽃은, 오로지 나무일뿐 인 무서운 나무들 사이에서 아직도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사라지는 꽃’),“하지만 너무 흔한 최면처럼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이 너무 흔한 최면처럼 실편백에 내리는 빗물이, 다시 나를 이끈다는 것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다”(‘너무 흔한 풍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구들은 1인칭의 나르시시즘적인 영혼이 웅변하는 ‘기억’과 ‘고백’과 ‘이야기’가 ‘거짓’이거나, 세계의 풍요로운 실상과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폐쇄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는 이장욱의 인식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이 볼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 자신일 뿐이며, 그것이 도취하고 열망하는 자연의 풍경은 ‘너무 흔한 최면’일 따름이다.‘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사물의 풍경이 ‘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에만, 시인은 ‘너무 흔한 풍경’을 재생하지 않을 수 있고,‘이 당대적 상투성의 거리’(‘상투적’)를 벗어날 수 있다. 이 벗어남은 1인칭의 고백적 화법이 마련한 자기 동일적인 표상체계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밀려닥치는 우발적 사건과 그것에 수반되는 ‘낯선 것의 폭력’을 통해 시작된다. 세계의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실재성과의 마주침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간 것이다.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가는 하오의 육신 쪽으로 수직 낙하하는 겨/울 잎, 겨울 잎 안에서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겨울 잎의 풍경 속을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으나./그것은 무성하고 울울한 저 너머, 횡단 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오래도록 통과할 숲의 풍경./나무에 깃들여 사라진 벌레들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어젯밤 꿈속을 나는 거/닐었는지도. 말하자면 그 꿈속의 눈 내리는 거리를./그러므로 이곳은 겨울 잎과 햇빛과 벌레들이 이루는 세/계. 뚜레주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나오는 늙은 사내는/어젯밤의 아주 쓸쓸한 수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떨어지는 겨울 잎에 눈을 두고 지나쳐갔으나 우/리가 그 겨울 잎이 기억하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의심의 여지가 없는 겨울 잎’ 부분)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사태들의 일부로서 성립된다. 우리가 그 자신들의 눈앞에 어떤 사물과 사건의 잔상(殘像)조차 데려다 놓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물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지나가는’ ‘겨울’의 ‘거리’에 드러나 있는 것은 ‘겨울 잎’이나,‘겨울 잎 안’에는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 것이’며,‘우리’가 ‘떠올리지 않’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들이 이루는 세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모든 1인칭의 시점(視點) 내부에 선재하는 명석 판명한 대자의식(對自意識)으로서의 ‘나’의 확실성이 아니라,1인칭 주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만상들이며 그것들이 이루는 변화와 이행의 과정이다. 결국 시인 이장욱이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형태와 공간적 점유들로 구분지어진 사물과 사건의 가시적(可視的)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구분의 경계들을 횡단하는 힘들의 배치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지닌 복수(複數)의 가면(假面)으로서의 ‘자세’와 ‘포오즈’이며,‘지나가’고,‘사라지’고,‘통과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이다.‘겨울 잎’ 속에는 ‘사라진 햇빛’이 ‘있었’듯이,‘나’와 ‘그대’의 ‘생’에는 ‘사라져가’고 ‘흘러간’ 것으로서 ‘무성한’ ‘잎 새’와 ‘숲’과 ‘천천히 사라진 햇빛’도 ‘있었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명징한 감각과 사유가 아니라,‘꿈속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상상(想像)을 통해서만 겨우 감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있었던 것’들이다. 위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지나가다’,‘사라지다’,‘통과하다’ 등등의 동사들은 어떤 사물과 사건의 고정된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어떤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들은 ‘시’ 장르의 통상적인 화법 내부에 선재하는 자기의식의 투명성을 표상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과 그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지나치다’,‘건너가다’,‘흐르다’,‘멀어지다’,‘스쳐가다’ 등과 같은 동사들 역시 세계의 ‘천변만화’하는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이질성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표상적인 감정과 가치로 바꾸어버리는 ‘시’ 장르의 관례화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3. 假面과 ‘脫’ 인격적 주체로서의 화장 이장욱의 시가 ‘시’ 장르의 통상적인 문법에 내재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자기회귀’라는 ‘상투적’인 ‘최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적 화자’를 단일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전제하는 관례적(慣例的) 설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를 ‘시적 화자’의 분열적이고 다수적(多數的)인 목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이며,‘서정’의 화법에 내재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순결성과 엄숙한 고백체를 조롱하고, 그것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숱한 가면(假面)들을 폭로하는 것이다.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엽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만한 일일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금홍아 금홍아’ 부분)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이상’(李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이상’과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로 표기되는 여러 작중 화자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없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이상’(李箱)이면서 ‘이상’이 아니며, 또한 ‘이장욱(李章旭)이면서 ‘이장욱’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말해,‘이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인격적 실체로서의 고유명사 ‘이상’(李箱)이 아니라, 그가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취한 하나의 정념과 태도로서의 ‘나’(假面)일 뿐이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전제하는 고유명사 ‘이상’(李箱)이거나 혹은 ‘이장욱’(李章旭)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황과 그 순간적 배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념(情念)과 태도로서의 ‘나’일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나’는 그 정황과 배치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변양(變樣)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부기(附記),“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箱(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逢別記’,‘終生記’ 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에서 ‘箱과 나의 불편한 관계’란 하나의 자기 동일적인 인격체로서의 ‘이장욱’이 ‘이상’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시적 화자를 차용하거나 혹은 ‘이상’(李箱)의 목소리를 재연(再演)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불화(不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목소리 속에 ‘이장욱’의 목소리가, 또는 ‘이장욱’의 정념(情念) 속에 ‘이상’의 정념이 서로를 전제하면서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공명은 ‘이상’과 ‘이장욱’이라는 경험적 인격체 전반이 공유하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둘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에만 존속(存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뿐”이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 더 나아가 모든 발화의 상황 속에 놓인 화자의 존재론적 특성을 축약하여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시’ 장르가 전제해왔던 화자의 자기 동일성은 실상 ‘위조’된 것일 뿐이며, 화자는 시인의 전(全) 인격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시적 정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하나의 가면(정념)에 불과하다.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의 이러한 변양과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는,1인칭 고백체의 화법은 ‘사기’,‘거짓’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사기치지 말라,高手는 그냥 느낀다, 그대 생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표식은, 그대의 육체이다”,“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당신이 당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됩니다.”(‘편집증 환자가 앉아있는 광장’) 등은 이장욱이 1인칭 화자의 자기애적(自己愛的) 순결과 정직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1인칭의 발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조’와 ‘위장’과 ‘가장’을 들추어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거의 모든 시 속에 스며있는 위악적(僞惡的) 포즈와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는 1인칭의 발화 상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백적 화법의 위선(僞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혐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하여,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시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를 자기의식(自己意識)의 명석 판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상성의 외부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병리적(病理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혹은 괴물과 같은 존재자들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투명인간’,‘킬러’,‘도플갱어’,‘뱀파이어’,‘좀비’ 등과 같은 화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화자의 진술 자체를 신빙성(信憑性)이 결여되거나 불명료한 어사(語辭)들로 구성함으로써, 시작품 내부의 단일한 ‘의미화’(signification) 주체로서의 화자를 그 중심의 자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그를 지나 그녀를 지나 그대를/지나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정오를 지나 새벽을 지나 오/후 네 시를 지나 그리고 어느 이상한 날에 빈 공터와 당구/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문득 흥겨운 술집의 죽은 친/구의 화사한 여자들의 기나긴 과거를 걸어가는 어느 이상/한 날”(‘결국,’ 부분) “그렇지. 나는 어쩌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시 모른다. 행복할 리도 황폐할 리도 없는 바람들/이 애초에 공릉동의 주민이었는지도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모든 빛들은 현재형으로 명멸한다. 너무 상투적인/가? 하지만 그때 한 마리 늑대가, 월계동 쪽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문득 망망한 비가/내렸는지도, 혹시 모르지. 그의 마른 등을 향해 몇 장의/ 낡은 신문이 날아들었는지도.”(‘공릉동의 바람 속으로’ 부분)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여행중이었던/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생각하는 사람’ 부분) 위의 시편들에서, 화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명징하고 확실한 것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결국,’에서처럼,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동대문 운동장’과 ‘정오’와 ‘오후 네 시’라는 구체적 지시어들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집요한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언어의 체계 혹은 일상적인 개연성의 세계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공릉동의 바람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과거 추측의 의미를 지닌 어미(語尾),‘-이었는지도’의 반복과 기억의 불명확성을 표현하는 ‘모른다’라는 서술어의 반복에 의해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상실한다. 결국 그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어법들로 인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 이야기 등과 같은 의식 내용을 능동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의 한 구절은 화자인 ‘나’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화자를 ‘사로잡아’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언술됨으로써, 시의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주관)와 그 구성 요소로서의 대상(객관)의 관계를 역전(逆轉)시킨다.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 “어쩌면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라는 구절 역시, 화자의 진술을 합리적으로 독해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만들면서, 화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원하는 어떤 의미의 계열도 자명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거나 또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인 미지(未知)의 것이 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어사(語辭)들의 반복적 활용은 전래의 시적 관습에서 전제되었던 단일한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를 그 의미화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게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장욱의 시는 재래의 ‘시’ 장르에서 화자에게 관례처럼 부여되어왔던 의미화의 지배권을 박탈함으로써, 화자의 단일한 감정과 의식과 가치가 아니라,‘脫’인격체로서의 시적 주체의 복수적인 가면들과 정념들, 그리고 사물들 그 자체의 다양한 변양들을 시의 새로운 의미 내용으로 새겨 넣는다. 아마도 그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실재성과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적 화법을 고안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4. 비선형적 시간과 존재의 주름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를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분열적 주체로 조형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시제(時制)이다. 그의 시는 시간의 일정한 단위 분절을 통해서만 수립되는 ‘현재’의 시제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중첩시킨다. 즉 어떤 특정한 외연(外延)으로 수렴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그 외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동시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어지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투명성이 사라지게 되며, 그것의 명료한 경계 분할이 흐릿해지게 된다.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결정’ 부분)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하자/드디어 당신과 나는 10년 후의 야구를 이해한다./누군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치자/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그리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필사적으로 달려갔다”(‘10년 후의 야구장’ 부분) “자꾸 다르게 보여/당신은 이미 태어났는데/당신은 사랑을 했었는데/당신은 지난해의 가을을 여행 중인데/당신은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막 떠올려 미소 지었는데”(‘정확한 질문’ 부분) ‘결정’에서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는 ‘다가온다’라는 현재시제 동사의 주어가 됨으로써 ‘지금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10년 후의 야구장’에서는 ‘1루 베이스’가 ‘10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서,‘달려갔다’는 과거시제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정확한 질문’에서는 ‘지난해의 가을’이라는 과거 시점의 명사가 ‘여행 중인데’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와 결합되는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제의 혼란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공존은 어떤 특정한 현재적 사태 속에 감싸여져 있는 잠재성(virtuality)의 차원을 시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위의 시들에서 표현된 ‘생각’과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화자의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명징한 자기의식과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위에서 구축되는 주체의 실존적 동일성과 연대기적 서사(narrative)를 일그러뜨리는 존재의 주름들이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이다. 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시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예컨대,“일어나지 않았던(일어났던)”이라는 과거시제나 “일어나지 않을(일어날)”이라는 미래시제는 모두 현실성(actuality)의 척도를 통해서만 측정되고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현실성의 차원은 실상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 가운데 그 일부가 선택되거나 배제됨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잠재성의 차원은 그러므로 일정한 외연을 가진 어떤 ‘현재’로 수렴되지 않으며,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늘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주어진 물질적 사태로서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항상 ‘실재하는 것’(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삼 분전의 잠’ 부분) 이 시를 단지 특정한 ‘잠’ 속에 나타난 잡다하고 무질서한 꿈의 내용 혹은 그 환상적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화자의 현실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망각과 오해와 무의식의 무한한 잠재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속에서 우리는 ‘삼 분 전의 문’과 ‘삼십 년 전의 그대’와 ‘삼일 전의 기슭’이 동시에 결합되거나 병치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과거)과 ‘일어나고 있는 것’(현재)과 ‘일어날 것’(미래)은 선형적인 질서를 벗어나 한데 뒤엉키며, 시간은 산술적 단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연대기(年代記)를 벗어난다. 이것은 곧 꿈의 본질적 특성이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의 조합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라는 구절은 이 시의 의미가 단지 화자의 ‘잠속’에 나타난 꿈 이미지들의 재구(再構)를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네 번이나 반복된 ‘잠에서 깨어’는 이 시의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잠’의 안쪽만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모래산에 쌓이네”에서 ‘쌓이네’라는 술어(述語)는 ‘모래산’이 퇴적(堆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 잠 깊은 모래산’은 그것이 화자의 신체에 부수되는 어떤 행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내면적인 것인 동시에 퇴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억’이다. 따라서 ‘잠’이 비단 현실적인 ‘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내 잠 깊은 모래산’은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 혹은 ‘나의 의식에서 지워져버린 망각들’로 해석된다.‘기억’ 또한 의식 주체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실상 그 자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칭과 시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축되는 개연적 서사(허구)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의 내부에는 망각되고 삭제된 그 무엇이 여전히 어떤 잉여로서 남아있게 된다. ‘잠재성’의 차원은 단지 환상이나 몽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이다. 잠속의 꿈과 의식되지 못한 무의식과 기억의 사슬에 무수하게 주름 잡혀 있는 망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내 잠 깊은 모래산’에 무수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이 기거하고 있듯이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또한 인칭과 시점을 달리한 숱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명성은 주체의 의식과 기억의 자명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잠재성의 차원들이 실재한다는 것의 자명성이며, 주체의 단일한 의식(기억)이 조작된 서사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의 자명성이다. 모든 1인칭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그들의 처지와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인칭 주체의 자기의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무리 많이 추가되고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을 포착할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충만한 기억도 ‘모래산’처럼 부서지기 쉬운 공허(空虛)와 무의미(無意味)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는 삶의 근원적인 공허와 무의미를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언어이며, 이러한 현자(賢者)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표현한다. 현실성의 내부에 잠재성이, 의식의 내부에 무의식이, 기억의 내부에 망각이, 무한한 주름들로 감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만,‘우연’은 이 세계의 진상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어떤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5.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 “서랍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어느 날 문득 서랍 속으로 돌아오듯/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오래전의 목소리./……/어느 순간 너를 습격하는 상형문자들./너의 내부에서 드디어/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날이 있다./혹은 돌아오는 날.”(‘복화술사’ 부분) ‘시적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시간은 시인이 어떤 신비를 능동적으로 예감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습격하듯이’ 밀려닥치는 우발성의 시간이며,‘상형문자’로서의 시적 언어가 시인의 관습적 감각과 사유를 폭력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면서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그러므로 능동태(能動態)의 시간이 아니라 수동태(受動態)의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시인에게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세계의 만상들이 그 자신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순간은 “너(시인)의 내부에서 드디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명징한 의식과 관습적 표상작용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기에,‘돌아오는 목소리’(반복)인 동시에 ‘다른 목소리’(차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돌아오는’)은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세계의 풍요로운 만상들이며, 이 반복을 통해 차이(‘다른’)를 발생시키는 것은 ‘너의 목소리’ 곧 시인의 관례적인 감각과 도식들이다. 김수영이 ‘絶望’에서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모든 미학적 실천과 시적 창조의 공간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례적 감각과 도식을 매번 혁파하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우리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든 우발성들을 용기 있게 승인해야 하며, 이 우발성들이 우리들에게 가해 오는 ‘낯선 것의 폭력’과 과감하게 마주쳐야만 한다. 이장욱의 말처럼 “이 고투를 통과한 자에게만”,‘시적 에피파니’는 비로소 그 자신을 개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고투를 체험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어떤 ‘에피파니’의 순간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시에서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충직한 순결성을, 일상적 경험 속에서 피어나는 순박한 인간애를, 그 아름다운 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적 감동의 순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1인칭의 자기애적인 영혼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조화이자 이상적인 도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는 이것들이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세계의 잔인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진정으로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혜안(慧眼)과 비전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수한 가면과 정념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그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만상을, 현대적 일상의 그 지루한 반복과 권태를, 저토록 리얼하고 또 잔인하게 묘사해준다면, 그의 시는 하나의 예술로서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찬
  • 佛대선후보 ‘동영상 격돌’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여야의 두 유력 후보가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인터넷 맞대결’로 연초 정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경선에 단독 출마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지난해 11월 사회당 후보로 선출된 세골렌 루아얄이 동영상 신년 대국민 연설로 맞붙었다. 기선을 제압한 것은 루아얄. 그는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신년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블로그(http:///www.desirsdavenir.org)에 아마추어가 촬영한 듯한 비디오 동영상의 연설문을 올렸다. 이에 질세라 사르코지도 몇 시간 뒤인 1일 새벽 당 홈페이지(http:///www.u-m-p.org)에 집권의지를 담은 동영상을 띄웠다. 원래 ‘블로그 정치’는 루아얄의 ‘특허품’인데 사르코지가 맞불을 놓은 셈이다. 두 사람의 ‘인터넷 대결’은 레임덕 조짐을 보이는 시라크 대통령의 신년 연설보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현지 언론이 앞다퉈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대권 가도를 향한 두 사람의 승부가 예측불허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여러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은 각축을 벌였다. 두 후보는 이번 ‘인터넷 대결’에서도 대조적 스타일로 유권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단색의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사르코지는 단호한 어조로 표심을 자극했다. 강성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리기 위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예의 ‘딱딱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그는 “좌파나 극우파가 아닌 중도파와 함께 프랑스가 모든 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반면 루아얄은 차분한 톤으로 ‘여성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다. 화환 모양으로 장식한 옷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시종 미소를 머금으며 “시민에 봉사하고 보통 사람과 함께 건설할 새 공화국을 위해 블로그의 다양한 논쟁에 참여해 달라.”고 특유의 ‘참여 민주주의’를 호소했다.vielee@seoul.co.kr
  • [EBS플러스1]

    07:00 겨울방학특강 과학08:40 고1 예비과정 영어, 수학10:20 겨울방학특강(재) 문학, 비문학, 영어영문독해112:50 겨울방학특강(재) 수학, 사회, 영어영문독해215:20 겨울방학특강(재) 과학, 국어, 영어17:00 고1 예비과정(재) 영어18:00 고1 예비과정(재) 수학19:00 고1 예비과정(재) 문학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24세 엔돌핀 동생과 60세 흰머리의 미소천사 형은 36세 차의 돼지띠 형제. 신통방통 시원한 점괘가 술술 풀리는, 돼지 신 내린 일월돈신.50㎏ 뺀 돼지총각.12세로 최연소 카이스트 입학자인 똘똘이. 카리스마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협객 등 화제의 돼지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놀라운 돼지띠, 진짜를 찾아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송씨는 경선에게 양평의 땅문서를 주지 않았느냐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세영은 땅문서가 어디 있는지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찾는다면 경선과 반씩 나눠 갖겠다고 농담한다. 같은 시각, 건우는 서경과의 비밀 보금자리인 양평 별장에 도착해 요리를 하며 서경을 기다린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중국에서 결혼 비용도 500만원 정도 비싼 서양 결혼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중국 칭다오에선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야외결혼식을 치른다. 드레스부터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당하는 예식 산업과 회사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의 달라진 예식문화, 서구화의 또 따른 면을 보여준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귀농을 하고 나서 선웅이에게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 바로 이웃집의 민재와 서연 남매. 이 두 귀여운 남매는 학교 갔다 오는 선웅이를 항상 마중 나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이젠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평소와 다른 길로 선웅이를 데리러 가던 우경씨가 그만 길을 잃고 마는데….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늘 같은 옷에 같은 헤어스타일, 개성 없고 딱딱해 보이는 내 남편의 이미지. 당당하고 멋진 남편을 만들기 위해 주부들이 나선다. 같은 정장도 더 멋지게 입는 방법이 있다. 얼굴형과 체형에 맞는 와이셔츠 고르는 법부터 넥타이 코디법, 그리고 액세서리 활용법까지 멋쟁이 남편 만드는 비법을 공개한다.
  • 월북화가 이석호 동양화전

    월북으로 잊혀진 동양화의 거장 이석호(1904∼1971)전이 서울 갤러리북에서 오는 3월30일까지 열린다. 한국전쟁 이전 이당 김은호에게서 수학하며 이응노와 2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 이석호는 북으로 가서 몰골채색화의 대가로 자리잡는다.윤곽선 없이 과감한 붓획으로 사물을 그려내는 몰골법을 통해 딱딱하지 않고 풀어진 듯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구현해냈다. 이석호의 대표작 30여점은 국보로 지정돼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고 갤러리북측은 소개했다.(02)751-9653.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회갑맞은 한병희교수 ‘수필 등단’ 화제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과학자가 회갑 나이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해 화제다. 주인공은 충남대 화학과 한병희(61) 교수로 최근 문학계간지 ‘서울문학’의 제30회 공모전에서 ‘결실의 기쁨’이라는 수필로 신인상을 받았다. 이공계 화학과 교수인 그가 펜을 잡게 된 것은 1983년 충남대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딱딱한 글을 쓰기보다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야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일년에 수필집 등 100권 이상의 책을 독파했다. 지역 신문 등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며 ‘필력’을 쌓았다. 그의 글 소재는 10년 간의 미국 유학생활, 고향 청양에서의 유년 성장기,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감흥, 인생무상의 감회 등 주변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이번 신인상을 수상한 수필 ‘결실의 기쁨’도 가을을 맞아 만물이 결실을 갖는 데 인간이 얻는 수확이 무엇인가를 묻는 담백한 문체의 글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Book Review] 위대한 발명은 협동작업의 산물

    퀴즈 하나. 고대부터 있었으나 현대식은 미국의 엘리샤 그레이브스 오티스가 1854년 제작했다.1857년 뉴욕에 최초로 설치됐으며,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이것은 시속이 130㎞에 달했다.2001년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에는 이것이 255개 있었으며, 매일 5만 8000여명이 이를 이용했다.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엘리베이터다. 매일 승강기를 타면서 내부에 붙어 있는 상표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오티스란 발명가의 이름에서 벌써 정답을 찾아냈을 것이다. 퀴즈 둘.17세기 중반부터 이것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최초의 것은 피아노 건반과 흡사했다.1872년 미국의 총포제작자 필로 레밍턴이 현재의 이것과 비슷한 것을 제작했다. 많은 여성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계기가 되어 여성해방의 물꼬를 튼 것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타자기.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젠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됐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타자기 덕에 타이피스트나 비서로 일할 수 있었다. 퀴즈 셋. 물, 설탕, 탄산, 식용색소 E150d(캐러멜 색소), 인산, 아로마, 카페인…. 그리고 비밀로 유지되는 고유한 혼합방식.1886년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 존 스티스 팸버튼은 두통과 피로, 우울증 치료제로 어떤 시럽을 개발했다. 곧 이 시럽은 부작용이 많았던 모르핀을 대신하게 됐다. 팸버튼은 이 시럽에 소다수를 첨가하여 음료로 판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히트 상품이 됐다. 이 음료의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표인 코카콜라다. 콜라나무의 열매와 코카나무의 잎에서 추출한 카페인과 코카인이 함유된 코카콜라의 이름은 팸버튼의 회계 담당자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후 사업가 아사 캔들러가 코카콜라의 상업적 권리를 획득하여 1892년 코카콜라사를 설립했다. 코카인의 중독효과가 문제시되자 코카콜라사는 고유의 맛을 내는 코카나무 잎을 그대로 사용하되 코카인 성분만 제외시켰다. ‘세계를 바꾼 가장 위대한 101가지 발명품(플래닛 미디어 펴냄, 김현정 옮김)’은 저자 한스 요아힘 브라운이 주관적으로 신중하게 선정한 101가지 발명품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라운은 독일 함부르크 헬무트 슈미트 대학의 교수로 근대사회사, 경제학사, 기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자 브라운 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많은 사람들이 101가지 발명품 목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왜 코카콜라가 위대한 발명품이냐부터 시작해서 볼펜이 빠졌다, 피임약 대신 비아그라를 넣어야 한다 등등. 연대순으로 나열된 발명품 목록은 독자들에게 ‘발명’이란 흥미로운 주제에 계속 심취할 수 있게끔 하는 자극제로 동원됐다. 저자는 발명이 ‘단계적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무수한 발명들이 대부분 한 사람의 천재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속적 노력을 통해 완성됐다는 것이다. 발명은 협동작업의 결과며, 존경받는 위대한 발명가의 주변에는 그와 함께 발명을 일궈낸 공동연구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발명의 통사(通史)인 셈이나 결코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주방에서 쓰는 전자레인지를 처음 만든 곳이 군수장비 회사라는 등의 발명 뒤의 사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저자의 주관적 101가지 발명품 목록과 나만의 세계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목록을 비교하며 논박을 벌이는 재미도 클 것이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교육정보에 이렇게 목말라 할 줄이야”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렇게 교육 정보에 목말라할 줄은 몰랐습니다.” 올해 ‘대한민국 신지식인상’ 교육부문에서 상을 받은 부산시교육청 홍보기획팀 임석규(42) 부팀장은 29일 “신지식인에 선정된 것은 교육청 동료들의 도움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공을 주위에 돌렸다. 신지식인 교육 분야에서 교사가 아닌 일반행정직 공무원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 부팀장은 2004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부산시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개그맨 이경규, 탤런트 최지우를 부산교육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부산의 교육정책을 스폿 광고로 제작해 부산과 서울지역의 상업용 전광판에 송출함으로써 부산시교육청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교육이 권위적이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을 지우고 학생 등 수요자의 편에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부팀장은 지난해 11월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으로 교육뉴스를 제작해 방송함으로써 교육홍보에서 돋보이는 능력을 발휘했다. 부산교육뉴스는 부산지역 11개 유선 TV 방송사와 제휴, 매주 10분 분량으로 다양한 교육정보와 정책을 제공했다. 유선방송 가입자가 165만명에 이르는 만큼 전파력은 놀라웠다. 더구나 자체 설문조사 결과, 뉴스를 본 시민의 88%가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대답,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임 부팀장은 “부산교육뉴스를 처음 제작할 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면서 “부산교육뉴스를 방송하기 위해 지역 방송국을 40여차례나 찾아가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산교육뉴스는 2500여건의 뉴스를 제공하며 학생, 학부모, 교직원, 시민 등 620여명을 인터뷰함으로써 교육현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혁신공무원상을 수상하기도 한 임 부팀장은 “내년에는 부산교육뉴스에 논술영어 등을 주제로 하는 ‘테마가 있는 기획방송’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이 한권의 책] 상생경영시스템 갖춰야 성장 가능

    지난 수년간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확대되면서 중소기업 취업기피 현상이 심화되었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져도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인력난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중소기업은 인적자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 기술력, 영업력 및 관리력 취약으로 인한 총체적인 경쟁력 약화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경제의 미래 전망도 낙관하기 힘들다. 지난 수년간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확대되면서 중소기업 취업기피 현상이 심화되었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져도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구직난과 인력난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중소기업은 인적자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 기술력, 영업력 및 관리력 취약으로 인한 총체적인 경쟁력 약화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경제의 미래전망도 낙관하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정부는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핵심적인 정책으로 채택하고 사회적 확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생협력의 선도주체인 대기업 경영자들의 인식과 의지가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현장부서에서는 과거의 관행이 여전하다. 상행협력이 당위성 강조의 차원을 넘어서 지속적 실천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론적 뒷받침과 현실적 실천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번에 상생협력연구회에서 저술한 ‘상생경영’(상생협력연구회 지음, 김영사 펴냄)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적합하게 씌어진 책이다. 이 책은 상생경영의 필요성을 기업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기업경쟁력은 개별기업의 역량이 아닌 공급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기업시스템의 연결역량에서 나온다. 제품개발, 조립생산, 공급사슬이 상호연결성과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신뢰에 기초한 기업간 관계의 품질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어야 함을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씌어진 책은 딱딱하고 지루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에 의해 집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다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협력의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하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거부감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뢰를 통해 부품업체와 장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이 연결의 정밀도를 높여서 기술개발과 원가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상생협력을 정부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건전한 기업생태계 육성을 위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기업내부에 확산되기 위해서는 체계화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도 이론적 뒷받침과 실천방법론이 필요하다. 이제 ‘상생경영’은 선택이 아닌 기업생태계의 필수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건강한 기업생태계가 뒷받침될 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기를 바란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 e채널, 생활속 궁금증 푼다

    생활속의 궁금증을 풀어보는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엽기황당 실험실 브레이니악’이 케이블TV e채널에서 매주 목·금 오전 9시50분, 오후 7시40분에 방영된다. 엔터테인먼트와 과학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으로 생활속 호기심을 자극하는 온갖 과학이론과 별난 정보들에 대한 의문을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해결한다. 딱딱한 과학 정보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뿐 아니라 엽기적이거나 황당한 정보를 전달한다.
  • 고구려 사극 3色 지존 쟁탈전

    고구려 사극 3色 지존 쟁탈전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내년에는 새로운 전기를 맞으면서 안방팬들의 ‘구경거리’가 더욱 쏠쏠해진다. 우선 ‘주몽’의 송일국,‘대조영’의 최수종에 이어 ‘연개소문’에서 사극지존으로 불리는 중견 탤런트 유동근이 가세하기 때문이다. 극중 전개에서 송일국은 고구려 건국, 최수종은 발해건국이라는 흥미진진한 무대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나름대로 특유의 카리스마로 무장할 것은 뻔한 일이다. ‘연개소문’에서의 유동근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시청률을 끌어올리면서 왕년의 사극팬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그나마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왔던 수양제가 물러나고 유동근이 등장하면서 명실상부한 ‘연개소문’이 될 수 있기 때문. 유동근은 이미 극 초반 당나라의 이세민(서인석)과 안시성 전투를 벌일 때 잠깐 등장해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드라마 전개도 긴장의 고삐를 더욱 잡아당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연개소문’의 경우, 연개소문이 수나라에서 고구려로 들어가 기득권 세력들과 갈등을 겪으며 권력 기반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또 ‘주몽’은 소서노와 함께 ‘고구려’라는 새로운 깃발을 내걸고 지금까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국민 드라마’로 불린 자존심을 지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대조영’은 고구려의 멸망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는 과정이라는 생소한 사극무대와 함께 그의 연기력이 함께 버무려진다. # 엇갈린 사랑의 주몽 ‘주몽’의 인기비결은 ‘사랑’이다. 빠른 전개와 탄탄한 이야기 구성, 딱딱한 옛 언어 대신 듣기 편한 현대어 사용 등을 내세운 퓨전사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몽을 관통하고 있는 코드는 ‘사랑’이다. 주몽과 소서노의 애틋한 사랑, 해모수와 유화 그리고 유화와 금와 황제의 사랑얘기가 그동안의 인기비결로 꼽는다. # 전통 사극의 길을 걷고 있는 대조영 대조영은 이와는 달리 전통사극으로 스케일이나 내용면에서 훨씬 진보적이고 역사적이다. 화려하고 거대한 고구려 역사가 아닌 뒤안길의 고구려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 살짝 비켜 있는 ‘발해’를 주제로 했다는 점도 재미나다. 만주와 연해주를 지배하고 해가 지지 않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동아시아의 강국인 발해를 처음 다룬 사극이다. # 대역전을 노리는 연개소문 사실 지금까지 연개소문은 전통 사극이면서도 멜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사극의 주인공도 ‘수양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래서 연개소문엔 고구려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내년 1월에 수양제가 죽임을 당하면서 명실상부한 연개소문을 그릴 예정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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