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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행정] 친절한 도봉 만들기

    [현장행정] 친절한 도봉 만들기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전화응대 민원서비스 최우수구로 평가받은 도봉구가 친절행정 생활화를 위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친절 프로그램을 운영해 관심을 끌고 있다. 도봉구는 매주 월요일 친절 조례를 시작으로 민원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롤플레잉 교육, 전화친절 자가진단 프로그램 확대, 자신의 행동패턴 분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최선길 구청장은 “딱딱하고 권위적인 관(官)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주민에게 다가서는 구청으로 변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전화응대 민원서비스 최우수구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기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친절한 구청으로 변신 민원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롤플레잉’ 교육은 직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금문숙(친절봉사팀)씨는 “나의 행동에 대해 민원인이 어떻게 느꼈는지 반성하는 시간이었다.”면서 “앞으로도 항상 주민의 입장에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는 지난달 10일 신규직원 77명에게 롤플레잉 교육을 실시했다. 주민과 접촉이 많은 동주민센터 직원 155명과 구청의 대표적인 민원관련 5개부서, 보건소와 시설관리공단 직원 362명 등 모두 594명을 순차적으로 교육하기로 했다. 또 구는 스스로 본인의 친절도를 평가·개선할 수 있는 전화 친절 자가 진단 학습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바로 ‘마스터 코칭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화 안내음성에 따라 자신의 통화내역을 다시 듣고 자기진단·단점파악·보완개선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또 자신의 친절도가 자동적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월 시범운영을 거쳐 구청, 동주민센터, 보건소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운영 후 개인 평가결과 90점 이상 취득자가 운영 전에 비해 월평균 100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기반성으로 친절도 향상 나서 구는 직원 스스로 자신의 행동유형을 파악하는 DiSC 교육(Dominace·주도형, Influence·사교형, Steadiness·안정형, Conscientiousness·신중형)을 실시, 민원인에게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DiSC는 인간의 행동유형(성격)을 주도형, 사교형, 안정형, 신중형 등 4가지로 분리한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유형을 파악하고 비슷한 행동유형을 가진 동료를 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즉 거울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구는 먼저 전직원을 대상으로 자기 행동 유형 파악(PPS·프로파일 진단)진단을 실시한다. 진단결과에 따라 DiSC유형으로 나눠 유형별 그룹 워크숍을 갖는다.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남택명 문화공보과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친절하고 신속한 민원서비스”라면서 “끊임없는 친절서비스 교육과 프로그램 개발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스마일 도봉’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다모부터 추노까지…퓨전에 빠진 사극

    다모부터 추노까지…퓨전에 빠진 사극

    그야말로 사극 천하다. 그것도 왕과 관료들을 둘러싼 세력다툼을 그린 진부한 사극이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현대식으로 맞춘 퓨전사극이 대세다. 퓨전사극은 말 그대로 이것과 저것이 마구 혼합된 새로운 사극이다. 사극의 주인공들이 한복을 입고 현대어를 쓰거나, 최근 유행하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선보이자, 신선함을 느낀 시청자들은 푸전사극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퓨전사극이 눈길이 끄는 이유가 단순히 외적인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내시·기생 등 전에는 주목하지 않은 새로운 소재나, 현대극에서도 자주 쓰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 등의 눈요기는 퓨전사극이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새로운 장르가 되는데 큰 몫을 했다. ◆‘다모’부터 ‘추노’까지… 퓨전사극의 스타트를 끊은 드라마는 2003년 방영한 MBC TV ‘다모’다. 하지원·이서진 주연의 다모는 종전 사극에서 볼 수 없던 화려한 액션신과 스펙터클한 영상, 빠른 전개와 색다른 소재로 ‘다모 폐인’이라는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운 MBC TV ‘태왕사신기’는 퓨전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사극 제작역사에서 전무한 CG를 도입함으로서 판타지의 영역까지 다가간 태왕사신기는 그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 고조선시대를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블록버스터 퓨전사극으로 기록됐다. 이와 다르게 코믹으로 완전무장한 퓨전사극도 있다. SBS TV의 ‘일지매’는 기존의 무겁고 딱딱한 사극의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감동과 유머가 넘쳐흐르는 사극을 표방해 인기를 끌었다. 빠른 전개는 기본이요, 사극답지 않은 편안한 대화체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웃음코드가 퓨전사극 일지매의 성공요인이 됐다. 그리고 2010년, KBS TV ‘추노’가 블록버스터급 퓨전사극의 역사를 또 한 번 새로 쓰는 중이다. 사극에서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짐승남’의 초콜릿 복근과 고속촬영기법 등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면에 힘입어 4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밖에도 개화기의 경성을 다룬 KBS TV ‘경성스캔들’(2007), 코믹퓨전사극을 주창한 KBS TV ‘쾌도홍길동’(2008), 제주도와 해녀를 내세운 MBC TV ‘탐나는도다’(2009) 등이 웰메이드 퓨전사극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유머와 명품 조연은 필수 ‘역사 비틀기’ 지적도 인기몰이에 성공한 퓨전사극은 ‘유머’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애초부터 ‘코믹퓨전사극’을 콘셉트로 내세운 사극이 등장하기도 했다. 다모부터 추노까지 퓨전사극의 계보를 돌이켜보면, 유머코드는 ‘사극은 고루하고 진부하다’는 인식을 타파하는데 활약한 1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인기 퓨전사극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바로 ‘명품조연’이다. 다모의 이한위, 일지매의 이문식, 태왕사신기의 오광록 그리고 추노의 김지석·성동일 등은 극중 코믹함을 살리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주는 감초이자, 때로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는 퓨전사극에도 문제점은 있다. 역사적 배경과 인물, 사건을 토대로 한 사극이 극의 재미와 시청률에 기인해 과도한 역사 비틀기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한층 젊어진 사극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의 새로운 시청자층을 TV앞에 앉히는데 성공했지만, 이들에게 그릇된 역사지식 또는 허구의 사실을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올바른 역사관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똑똑함을 갖춘 퓨전사극이야말로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지금의 드라마 시장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결녀’, 톡톡 튀는 3인3색 패션스타일

    ‘아결녀’, 톡톡 튀는 3인3색 패션스타일

    MBC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이하 아결녀)의 주인공들 패션이 화제다.결혼하고 싶은 커리어 우먼들의 일과 사랑을 솔직하고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는 드라마 아결녀에서 주인공인 박진희 엄지원 왕빛나는 각각 다른 배역의 직업과 성격에 맞게 다양한 스타일링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동시통역사 엄지원, 도도-러블리 스타일엄지원은 한영 동시통역사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커리우먼이지만 실생활에서 알고 보면 푼수기질이 다분한 사랑스러운 정다정 역을 맡았다. 이런 역할에 맞춰 엄지원의 패션 또한 도도하지만 러블리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엄지원은 전문직 여성의 커리어가 드러날 수 있는 강하면서도 베이직한 스타일에 허리곡선이나 리본을 이용,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을 부드럽고 여성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또한 엉뚱하면서도 귀엽고, 러블리한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따뜻한 느낌이 나는 파스텔 톤의 화려한 컬러와 모직코트로 연출을 했으며, 플라워와 고급 실크 느낌의 원피스를 믹스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귀여운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다.특히 그녀는 장갑과 우화함의 상징인 젊은 층 스타일의 화려한 진주로 포인트를 주며 럭셔리한 분위기를 극대화 시켰다.엄지원의 스타일리스트 박희경 실장은 “극중 도도함과 러블리 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특히 컬러 부분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엄지원 씨의 맑고 투명한 흰 피부가 파스텔 톤 컬러와 잘 일치가 돼 스타일이 더 살아났다.”고 말했다.이어 “여성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허리 곡선을 강조하는 자켓 위주로 스타일링 했다.”며 “엄지원 씨는 가늘한 허리에 적당한 골반 크기를 지닌 여성스러운 몸매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방송기자 박진희, 편안-심플한 시크 스타일엉뚱하고 발랄하며 모든 일에 열정적인 보도국 방송 기자 역을 맡은 이신영 캐릭터 박진희는 기자다운 털털하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심플한 시크 스타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신영 캐릭터는 한방병원 의사와 연애 감정이 싹트다 끝나고 열두살이나 어린 하민재(김범 분)와 톡톡 튀는 러브라인을 구성하고 있다.박진희는 부스스한 웨이브 헤어에 편안한 남방이나 티셔츠에 청바지를 즐겨 입고, 깔끔한 자켓으로 스타일을 연출해 활동적인 기자만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그리고 스타일링에 포인트가 되는 알록달록한 컬러의 이너를 매치해 활동적인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불어넣고 있다.레스토랑 컨설턴트 왕빛나, 화려한 트렌디 스타일 잘나가는 레스토랑 컨설턴트이자 파티 플래너인 김부기 역의 왕빛나는 그 직업만큼이나 카리스마 있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을 보여준다.제일 큰 변신은 일명 ‘부키컷’이라고 불리는 언밸런스 헤어 스타일로, 그와 함께 오프숄더 형태의 과감한 의상이나 화려한 퍼 자켓으로 당당한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왕빛나는 사랑에 관해서도 자유롭고 개성이 강한 성향의 캐릭터에 따라 박진희나 엄지원 보다는 강력하고 트렌디한 스타일의 액세서리를 활용했으며 다양한 소재의 의상을 소화하며 ‘파티의 여왕’이라는 극중 수식어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뽐내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채현주 기자 chj@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뮤지컬 리뷰]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리뷰] ‘맨 오브 라만차’

    ‘맨 오브 라만차’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뮤지컬은 아니다. 히트 뮤지컬 공식에 해당하는 화려한 스펙터클이 등장하지도 않고, ‘선남선녀’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내용이 어렵고 딱딱한 구석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래 2007, 2008, 2010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앙코르 공연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수차례 공연을 재관람하는 비율이 높을 만큼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지난해는 ‘더 뮤지컬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돈키호테에 대한 ‘공감대’에 있다. 소설 원작자인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동일시시켜 ‘극중극’ 형태로 극을 이끌어간다. 역사 이래 돈키호테에 대한 해석은 무모한 천방지축의 대명사부터 척박한 현실 속에서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까지 다양했지만, 이 작품은 후자에 방점이 더 찍혀 있다. 때문에 라만차의 괴상한 노인 알론조가 자신을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우는 기사로 착각하는 과정은 우스꽝스럽다기보다 비루한 현실과 싸우는 현대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준다.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그는 더 이상 미치광이 노인이 아닌 ‘슬픈 수염의 기사’ 돈키호테의 모습이다. 돈키호테가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로 시작되는 명곡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를 때면 객석에도 비장한 긴장감이 감돈다. 돈키호테가 거울의 기사를 통해 초라한 현실을 깨닫고 알론조로 돌아오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2007년부터 돈키호테 역을 맡은 류정한은 ‘맞춤 옷’을 입은 것처럼 때로는 아이같은 천진함을, 때로는 고집센 노인의 완고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돈키호테에 의해 여관의 창녀에서 돈키호테의 ‘환상 속 레이디’ 둘시네아로 다시 태어난 알돈자 역의 김선영은 격정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15일까지 LG아트센터. 1588-5212.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목욕전 물한잔… 목욕후 커피피해야

    목욕전 물한잔… 목욕후 커피피해야

    겨울철이면 요통 환자들은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즐겨 찾는다. 겨울에 더 심해지는 요통을 줄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무턱대고 목욕을 하기보다 몇 가지 점에 유의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겨울에 요통이 심해지는 것은 근육의 수축과 긴장 때문이다. 이에 척추와 추간판(척추 연골)을 보호해야 할 근육이 오히려 뼈와 신경조직에 부담을 줘 허리 통증이 심해진다. ●왜 요통은 겨울에 심해질까 척추나 관절은 많은 근육과 뼈로 구성되는데, 근육이 부드럽지 않고 딱딱하면 인체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혈액순환 장애도 요통을 부른다. 기온이 낮아지면 근육이 굳어 혈액순환이 어렵게 되고, 이 때문에 근육과 인대가 더욱 딱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이로 인해 추간판이나 관절에 영양 공급이 안 돼 허리가 약해지거나 요통이 악화된다. 비만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체중 1㎏이 늘면 허리가 받는 하중은 5㎏이나 늘어난다. 겨울에는 체중도 쉽게 증가한다. 추위에 맞설 체지방을 축적하려는 인체의 생리적 욕구 때문이다. 여기에다 과음·과식, 운동부족 등도 비만을 부추긴다. 요통에는 온욕이 좋다. 전문의들은 “겨울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회복뿐 아니라 추위로 위축된 근육이나 관절이 풀리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허리 통증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인체의 하루 수분 배설량은 2.5ℓ정도. 따라서 배출되는 만큼의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목욕하기 전 물이나 우유를 한 컵 정도 미리 마셔주면 목욕 때 빠져나가는 수분을 보충할 수 있으며 신진대사도 촉진시킨다. 하지만 목욕 후 커피·담배는 피해야 한다. 흡연은 척추의 혈액순환을 방해해 디스크 변형을 초래할 뿐 아니라 뼈로 가는 무기질의 흡수를 방해해 척추의 퇴행을 촉진시킨다. 커피도 뼈에서 칼슘을 빼내 디스크나 인대 손상을 받기 쉽다. 35∼40도의 물은 체온과 비슷해 편안한 목욕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뜨거운 물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근육이 지나치게 이완돼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허리와 골반 주위의 인대들이 지나치게 이완되면 허리뼈가 쉽게 비뚤어지며, 그 사이의 디스크가 쉽게 밀려나기 때문이다. 입욕 시간도 1회에 30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머리는 서서 감아야 요통 환자는 머리를 감을 때 허리를 숙이지 말고 선 자세를 취하는 게 좋다. 허리를 숙인 자세가 통증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샴푸에 5분 이상이 걸려 그만큼 허리 부담이 늘어나므로 선 자세에서 샤워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 따뜻한 물로 허리를 마사지하면 인대와 근육이 풀어져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목욕 후에는 보온해야 목욕 후 무리한 마사지는 인대와 근육에 충격을 가해 허리 손상을 부추길 수 있다. 목욕을 하면서 이미 인대와 근육이 이완된 상태이기 때문에 마사지를 받으면 손상 위험이 높아 요통환자가 아니라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체중을 이용해 허리 부위를 누르거나 몸을 비트는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목욕 후에는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갑자기 찬 공기에 노출되면 혈관이 수축돼 관절 주위의 피부, 근육과 힘줄에 분포된 혈관의 혈류량이 줄어 세포로의 영양 공급량이 줄고, 근육과 인대가 수축되면서 통증이 발생하기 쉽다. 또 관절을 둘러싼 활액막과 연골조직도 기온이 떨어지면 뻣뻣해져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동네 목욕탕엘 가더라도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고도일병원 고도일 원장
  • [Weekly Health Issue] 치질

    [Weekly Health Issue] 치질

    치질은 수많은 포유류 중에서도 인간만이 가진 질환이다. 문제는 직립이다. 항상 척추를 곧추세우고 생활하는 까닭에 엉뚱하게 골반이 몸통의 하중을 고스란히 받게 되고, 골반 가운데 자리한 항문은 죽는 순간까지 하중의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직립의 원죄가 낳은 질병이 치질이다. 치질은 정도의 문제일 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된다. 특히 겨울철에 증상의 발현도가 높고, 쉽게 악화되는 치질에 대해 대장·항문 전문 대항병원 김도선 대표원장으로부터 듣는다. ●치질이란 어떤 질환인가? 항문과 그 주변에 생기는 질환으로, 덩어리가 생기는 치핵, 항문 내벽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위 조직에 고름이 차는 치루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를 치질의 3대 유형이라고 한다. 이 중 치핵이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흔히 치핵을 치질이라고 한다. ●치질을 현대병이라고도 한다. 왜 그런가? 분명한 것은 현대인들이 육류 위주의 식생활과 잦은 음주, 고강도 스트레스 등의 영향에다 활동량이 부족해 전례 없이 치질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현대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치질의 일반적인 증상을 짚어 달라. 치핵은 항문 안쪽 점막 및 점막하 조직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부풀어 오르거나 늘어져 빠져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초기에는 별 증상이 없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출혈과 함께 항문 덩어리가 밖으로 밀려 나오며, 정도에 따라 심한 통증도 생긴다. 항문이 찢어지는 질환인 치열은 배변 때 출혈과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심한 경우 배변 후 몇 시간씩 변기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치루는 항문 안에서 밖으로 샛길이 생기고, 그 길을 따라 진물이나 고름이 계속 새거나 때로는 방귀나 변이 새는 유형이다. ●특히 한국인이 유의해야 할 원인은 무엇인가? 치질의 원인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배변 습관이 문제이며,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거나 복압을 높이는 과격한 운동, 지나친 스트레스 및 과로·음주 등도 꼽힌다. 이 밖에 여성은 임신·출산·지나친 다이어트에 의해 치질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장이 길기 때문에 원활한 배변을 위해서는 채소류를 통한 식이섬유 섭취가 필수적이며, 조깅 등 규칙적인 운동으로 장 운동을 도와야 한다. 또 폭음과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 등 잘못된 음주문화도 치질을 악화시킨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왜 문제가 되는가?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중력의 영향으로 항문 주위 혈관이 늘어난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 풍선이 차차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장시간 앉아서 근무를 하면 항문 괄약근이 느슨해지고 복압이 작용해 쉽게 항문 혈관이 확장된다. ●치질의 유병률과 발생 추이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정확한 유병률은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3년간의 수술 건수를 기준으로 추정하면 2006년 21만 7756명, 2007년 21만 5987명, 2008년 21만 5476명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치질로 입원한 환자 수는 11만 9809명으로 전체 질병 중 최다를 기록했다. 발생추이의 특징은 최근 들어 여성 환자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진과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항문이 밖으로 밀려나온 탈항상태와 통증의 정도다. 치질 증상은 4단계로 나뉜다. 먼저, 항문이 밀려 나오지 않고 출혈만 있으면 1도, 항문이 밀려 나왔지만 배변 후 저절로 들어가는 상태면 2도, 밀려 나온 항문을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3도, 손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4도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3·4도면 수술이 필요하며, 출혈이 심하면 빈혈 등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탈항이 심하지 않더라도 통증이 있거나 불편이 심하다면 수술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각 치료법의 한계와 부작용은? 초기라면 내복약이나 좌약·좌욕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특히 좌욕은 통증의 주원인인 항문괄약근을 이완시켜 통증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초기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으로 치핵을 가라앉힐 뿐 치핵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따라서 1도라도 좌욕으로 증상이 없어지지 않으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2도 정도는 고무밴드를 이용해 치핵 덩어리를 떼어내는 고무밴드 결찰술이나 열로 응고시키는 적외선 응고법 같은 간단한 비수술적 치료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면 치핵절제술이 필요하다. 한때 유행했던 레이저 치료는 시술시간은 짧지만 수술 부위가 깔끔하지 못해 완벽한 치료가 어렵고, 재발률이 높아 최근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치질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보다 규칙적인 배변습관이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배변하는 습관을 들이고, 한번에 5분 이상 변기에 앉아 있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화장실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들고 가지 않는 게 좋다. 배변은 덤프트럭에서 모래가 쏟아지듯 부드럽게 변을 보는 ‘1·1·5법’(1일 1번 5분 이내)이 이상적이다. 또 변이 너무 딱딱해지지 않도록 야채류와 고구마·감자 등 구근류, 콩·과일·해조류 등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다. 장시간 고정된 자세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수시로 자세를 바꾸거나, 틈틈이 가벼운 체조를 해주는 것도 좋으며, 외출 후에는 약 5분 정도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는 것이 항문 건강에 좋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정년앞둔 노기관사의 철길인생 40년

    정년앞둔 노기관사의 철길인생 40년

    영동선. 일제 치하의 설움 속에서 착공돼 해방 뒤에는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힘들게 완공된 철도다. 산업화 시기엔 석탄을 나르며 활기로 들썩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성쇠와 궤를 같이한 영동선은 바로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하지만 영동선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제 더 이상 들어오는 이도 떠나는 이도 없는, 시간이 정지된 과거를 달리고 있다. 31일 방송되는 SBS 스페셜 ‘영동선을 아시는가’는 영동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본다. 불과 30년. 영동선은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 방송은 영동선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노()기관사의 얘기로 시작한다. 철길 인생 40년, 정년 6개월을 앞둔 그는 오늘도 비좁고 딱딱한 의자 위에 앉아 기차를 움직이고 있다. 과연 그의 눈에 비친 영동선은 어떤 모습일까. 영동선이 달려온 길을 따라 노기관사의 눈에 비친 굴곡진 시대의 삶과 아직 영동선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묻어둔 이야기를 조명한다. 영동선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틋한 삶도 전한다. 산골짜기 험준한 지형 탓에 버스의 접근이 애초 힘든 이곳에서 기차는 유일의 교통수단이자 사람과 세상을 이어줬던 다리였다. 기차역을 손수 짓고 열차를 세워야 했던 사람들. 돈벌이를 찾아 살기 편한 곳을 찾아 사람들이 거의 떠난 그곳에 노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외로움을 숙명처럼 여긴 채 살아가고 있다. 문명과 동떨어진 고립된 세상에서 오직 기차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일구어 가고 있을까. 과연 그들에게 기차는 어떤 의미일까. 방송은 산간 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의 비경을 바탕으로 너무 빨리 잊혀졌거나 미처 몰랐던 시대의 아픔을 되새긴다. 193 ㎞. 결코 짧지 않은 철길을 달리는 동안 영동선은 시간을 역행한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메주가 구수하게 익어가며 원형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 바다의 비릿한 짠 내를 품고 있는 철로변 마을 풍경들로 시청자들에게 아련한 감동과 추억을 전한다. 오후 11시10분 방송.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공자, 엄숙주의 옷 벗다

    공자, 엄숙주의 옷 벗다

    여러 고전들 중 ‘논어’만큼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책이 또 있을까.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잘 읽지 않는 책”이란 비아냥을 듣는 것이 논어다. 잘못된 관습, 누추한 전통, 진보를 가로막는 수구반동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뿐 속 내용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자왈 맹자왈’이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실생활에서 능률과 빠름은 도외시한 채 오래된 원칙, 규범만을 내세우는 상황을 꼬집을 때 자주 쓴다. 쉽게 말해 고리타분한 사람, 혹은 논리의 대명사가 ‘공자’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이른바 ‘공자왈’을 집대성한 ‘논어’에 대해 보다 가볍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책이 나왔다. ‘논어 교양 강의’(진순신 지음, 서은숙 옮김·돌베개 펴냄)다. 저자는 경전으로서의 논어가 아니라 여러 고전들 가운데 한 권의 책으로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야 “공자가 딱딱한 청동갑옷에 밀폐된 성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노인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요즘에도 흔히 쓰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경구는 ‘선의인’(鮮矣仁)이란 세 글자가 들어가야 완전해진다. 학이편 제3장에 나오는 말로 ‘낯빛을 곱게 하는 사람 치고 인자한 이가 드물다.’란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의인’이다. 문장대로라면 ‘인선의’(仁鮮矣)라 표현해야 옳다. 그런데 인(仁)과 선(鮮)의 순서를 뒤바꾼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공자가 ‘드물다.’를 강조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 풀이한다. ‘저 녀석은 안돼.’보다 ‘안돼, 저 녀석은.’이라고 표현해 ‘없다’, 혹은 ‘드물다’ (鮮)에 중점을 두었다는 얘기다. 책은 이처럼 논어 전체의 자자구구에 대해 세세하고 몸에 와닿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당시 시대 상황 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타이완 출신의 진순신(86)은 일본에서 활동하며 ‘중국 역사소설 장르를 확립한 인물’로 손꼽히는 작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호방한 문장으로 정평이 난 그는 책을 통해 “엄숙주의의 덫에 갇혀 있던 논어를 해방시키기 위해 에세이를 쓴다는 자세를 견지했다.”며 “동양 최고의 고전을 통해 실제 삶의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요리남’ 이선균·진구, 음식으로 女心 잡는다

    ‘요리남’ 이선균·진구, 음식으로 女心 잡는다

    이선균, 진구 등 요리하는 남자들이 TV와 스크린을 동시에 사로잡고 있다. MBC 드라마 ‘파스타’의 이선균과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식객: 김치전쟁’의 진구는 맛과 여심을 동시에 사로잡는 천재 요리사로 변신했다. ◆ 진구, 3대 ‘식객’ 성찬의 훈훈한 ‘김치전쟁’ 영화 ‘식객’의 김강우와 드라마 ‘식객’의 김래원에 이어 진구가 영화 ‘식객: 김치전쟁’(이하 식객2)의 3대 성찬으로 분한다. 영화 ‘마더’, ‘기담’ 등에서 어둡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주로 선보여온 진구는 ‘식객2’를 통해 서글서글한 훈남 식객으로 변신해 동네 아주머니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는다. ‘식객2’의 백동훈 감독은 “진구는 원작 만화 ‘식객’의 성찬과 가장 닮은 배우”라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진구는 “‘식객2’에서 한바탕 음식을 배워 이제는 김치뿐만 아니라 계란말이나 전, 나물무침 같은 고난이도의 음식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전작 ‘식객’에서 선보였던 화려한 소고기 대결에 이어 최고의 김치맛을 찾기 위한 대결을 그린 ‘식객2’는 전통적인 손맛을 고수하는 성찬과 한식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요리사 장은(김정은 분)의 대결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는 28일 관객과 만난다. ◆ 이선균, ‘파스타’계의 옴므파탈 셰프 장난스러운 진구의 성찬과 반대로 이선균은 드라마 ‘파스타’에서 직설적이고 까칠한 요리사현욱을 연기한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남자배우로 각광받던 이선균은 이번 작품에서 다소 신경질적인 캐릭터로 변신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극중 이선균은 주방 안에서의 완벽함을 추구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사들은 거침없이 해고하는 살벌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딱딱한 모습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여성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식을 책임지는 ‘식객’의 진구와 천재적인 감각의 이탈리안 셰프로서 ‘파스타’ 등 다양한 이태리 음식들을 선보이는 이선균은 올 상반기 음식은 물론 여성들의 마음까지 요리할 계획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이룸영화사, MBC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양화가 김주연씨 울산 현대百 전시회

    동양화가 김주연씨가 21일 현대백화점 울산점 갤러리 H에서 채색화 전시회를 개막했다. 31일까지 열린다. 김씨는 봄과 가을에만 개관하며 일본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인 노무라 미술관에서 한국인으로 두 번째 회화전을 가진 동양화가다. 김씨가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작품은 대상이 세밀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고 풍부한 감성이 내재된 한국 전통 채색화 20여점이다. 김씨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전통 채색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채색화의 홍보와 보급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나와 경북대 미술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씨는 지금까지 단체전 80회와 개인전 11회를 가졌다. 2005년에는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알려진 뉴욕에서 열린 ‘아트엑스포 2005’에 작품을 전시해 전세계 작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전통 채색화는 1980년대가 지나면서 되살아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몸에 종양 덮인 ‘거북 여인’ 충격

    돌멩이처럼 딱딱한 종양이 몸 곳곳에 난 중국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외신에 소개됐다. 오스트리안 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후난성 북서부 장가계에 사는 티안 옌팅(22)은 5년 전부터 허리와 다리 등 부위에 사마귀처럼 딱딱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점점 심해지는 증상에 그녀는 병원을 찾았다가 사마귀와 같은 종기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닌 유전병 증상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의료진이 진단한 티안의 병은 혈관종(angiomas)의 일종으로, 혈관과 림프관에 거대하게 팽창한 종양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매우 희귀한 증상이다. 종양이 몸 곳곳의 피부에 딱딱한 비늘처럼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이 여성을 ‘거북 인간’이라고 놀렸다. 병원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비싼 수술비 때문에 주저했다. 또래 친구들은 캠퍼스에서 청춘을 즐기고 있으나 티안은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부모를 돕고 있다. 딱딱한 의자에 앉거나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종양이 터지면서 과다 출혈을 일으켜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 티안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 나도 공부를 하고 싶지만 버스를 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한다. 정말 답답하다.”고 속상해 했다. 옌팅을 담당한 의사는 “이 유전병을 가진 사람을 종종 치료해 봤지만 이 여성처럼 종양이 몸에 많이 난 환자는 처음”이라면서 “빠른 시일 내에 제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스마트폰, 소프트웨어 발전의 계기로/이찬진 터치커넥트 사장

    [시론]스마트폰, 소프트웨어 발전의 계기로/이찬진 터치커넥트 사장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요즘 언론에 아이폰이 언급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아이폰을 좋아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이 대치해 마치 국지전(局地戰)을 벌이는 듯하다. KT와 SKT, 삼성전자 등은 자존심을 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고래들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에 새우등 터지는 회사들도 있다. 아이폰은 출시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랬지만 출시 후에도 드라마 같은 상황을 연속 낳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이폰의 출시로 대한민국의 모바일 인터넷이 비로소 시작됐다고 장담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외국에서만 발전했던 업무용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소비자용 스마트폰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이제야말로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다고 확신을 갖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폰의 출시를 계기로,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의 제대로 된 시작이라는 기본적인 접근 말고 조금 다른 그리고 조금은 엉뚱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스마트폰용 앱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1인 창조기업’이다. 물론 치열한 앱스토어(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주 확률이 낮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확률이 없는 것보다는 확률이 낮은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존의 이동통신사가 지배하고 있는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창의력을 몇 사람의 이동통신사 실무자에 의해서 재단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앱스토어라는 큰 틀에서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니, 세상이 변한 것은 맞는 말이다. 소프트웨어는 자신만의 창작이고 즐거움이며 무한한 가능성이다. 물론 큰 상업적 성공이 따르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적정한 노력과 적당한 성과, 그리고 보람이 있으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앱은 이제 음악과 동영상이라는 대표적인 미디어 외의 모든 디지털 콘텐츠를 포장해 담는 그릇을 통칭하게 됐다. 즉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소프트웨어 외에 e-북, 버스노선 안내도, 박물관의 안내책자, 방구소리, 동네 상가록 등 모두가 우리가 말하는 앱이 된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컴퓨터라는 딱딱한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앱이고 또한 소프트웨어고, 콘텐츠라는 유연한 생각을 갖게 해줄 것이다. 필자가 아이폰에 대해 생각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어떤 분은 순수 토종 소프트웨어 ‘글’을 만든 사람이 외국 제품인 아이폰을 강조하니, 이는 결국 배신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신다. 모르긴 해도 진심이 반쯤 섞인 말씀을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해드린다. 글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하는 IBM PC 호환기종에서 운영체제인 MS-도스(DOS)와 윈도스(Windows) 위에서 동작했다. 볼랜드(Borland), 비주얼 스튜디오(Visual Studio)로 개발했고 가장 덕을 본 주변기기는 휴렛팩커드(HP)의 데스크젯이었다. 글 때문에 덕을 본 우리 소프트웨어 회사는 별로 없는데, 아이폰은 수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으니 어떤 쪽이 더 애국이냐고…. 필자는 묻고 싶다. 주위에 있는 분들로부터 “아이폰을 보고 나서 다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듣는다.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몸속 저기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아이폰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아이폰이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희망과 보람을 줄 수 있다면, 글의 성공을 보고 소프트웨어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소프트웨어가 3D 업종이다.”라고 한탄하는 많은 분들께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내 마음의 씻김굿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변신/이시원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변신/이시원

    등장인물 변신남(남·46세), 조사원(남·30세), 여직원, 남직원, 젊은 여인, 교복1·2, 양복남자, 전당포주인, 딸(변신남의), 아내(변신남의), 문신 남자, 교도관, 사람들1·2·3·4, 노숙자들 ※변신남과 조사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역은 1인 다역을 하도록 한다(젊은 여인?변신남의 아내/여직원?변신남의 딸, 사람들2, 노숙자/교복1·2?사람들3·4, 노숙자/양복남자?문신남자/전당포주인?교도관, 노숙자/남직원?사람들1, 노숙자). 시 간 현재 무 대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장소들은 각각 구체적으로 재현되기보다는 공간·디테일·조명 등으로 처리되며, 소도구는 극의 진행에 따라 사용한다. 시간과 장소의 전환은 ‘변신남’의 회상을 재현하는 것에 바탕을 두며 특별한 논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물의 이동 또한 사실성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여행하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 민원실 민원창구에 앉아 있는 여직원. 한 젊은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여직원 어서 오십시오. 시민의 안전을 지켜드리는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입니다. 젊은여인 (가쁜 숨을 내쉬며) 내 남편 어디 있어요? 여직원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젊은여인 내 남편이요. 여직원 연락을 받고 오셨습니까? 젊은여인 전화요. 전화가 왔었어요. 여직원 아, 그럼 남편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젊은여인 김상수. 여직원 김상수님…(컴퓨터로 조회해 보고) 두 분이신데…, 혹시 관리번호 받으셨습니까? 젊은여인 번호요? 아, 번호.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주며) 이건가요? 여직원 네, 맞습니다. 3-17이면··· (찾고) 아, 저희 쪽에 계시네요. 잠시만요. (인터폰으로) 3-17번 보호자 분 오셨습니다. (끊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젊은여인 내 남편, 괜찮은 거죠? 여직원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고 있었습니다. 젊은여인 어디 다친 데는 없구요? 여직원 그러시리라 예상되지만, 나중에 정확한 검진은 필요하실 겁니다. 젊은여인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얼마나 걸리나요? 여직원 …네? 젊은여인 원래대로 돌아오는 시간이요. 여직원 개인차가 좀 심해서, 보통은 일주일에서 한 달인데 요즘은 더 짧거나 길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직원이 상자를 들고 나온다. 젊은여인 (남직원의 손에 들린 상자를 보자마자, 와락 달려들듯) 자기야. 남직원이 상자를 내밀고는 뚜껑을 열어 젊은 여인에게 보인다. 상자 안에는 덩그러니 머그컵 하나가 들어 있다. 젊은여인 (여직원을 쳐다보고는) 컵이네요? 여직원 (한번 들여다보고는) 네, 컵이네요. 뭘로 변신하셨는지 전해 듣지 못하셨나요? 젊은여인 (컵을 본다) 남직원 남편 분은 오늘 아침 을지로2가 대로변에서 컵으로 변신하셨습니다. 젊은여인 머그컵으로요? 남직원 예. 젊은여인 이게 설마 내 남편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죠? 남직원 (주머니에서 남편의 신분증을 꺼내 건네며) 정확한 변신 추정시간은 오전 8시 50분경이고, 운전을 하시던 중에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을지로 일대가 잠시 마비가 됐었습니다만, 다행히 저희 관리국의 발 빠른 긴급대응으로 출근 대란은 없었습니다. 젊은여인 말도 안 돼…. 아침까지 말짱했는데요. 남직원 요즘 유행하는 변신의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옷도 소지품도 남기지 않은 채 신분증만 덩그러니 남는 경우죠. 젊은여인 (컵을 받아들고 바라보다가) 남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남직원 빠르면 일주일 이내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젊은여인 돌아오기는 하는 거예요? 남직원 (여직원에게) 안내를 충분히 안 해드렸나요? 여직원 그게…. 젊은여인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남직원 대개는 돌아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문제죠.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발생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는 질병이라서 아직 임상 단계입니다. 통계도 잡혀 있지 않고, 아직 질병으로 분류하기에도 뭣하고 해서 지켜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젊은여인 그건 안 돌아온 사람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남직원 너무 염려 마십시오, 돌아오실 겁니다. 다만 깨지지 않게 주의하셔야 합니다. 깨지기 쉬운 물건으로 변신하셨을 경우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거든요. 잘못하다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도 어느 한 곳이 불구가 될 수도 있고, 기억이나 신경들이 뒤엉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젊은여인 (컵을 보며 울먹이는) 자기야…. 남직원 자동차는 신청서를 작성해주시면 일주일 이내에 순서에 따라 댁으로 배달이 될 겁니다. 그리고 남편 분께서 본 모습으로 돌아오시면 저희 본부민원실이나 희망2과로 연락 주십시오. 그럼 저희가 직접 방문하여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직원 언제든지 전화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종이를 내밀며) 여기 인수증에 사인해주시겠어요? 남직원, 머그컵을 챙겨 상자에 담으려고 하는데 젊은 여인이 컵을 들어 바라본다. 젊은여인 (컵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곰이에요. 남직원 예? 여직원 (그림을 보고) 어머 그러네요. 젊은여인 남편이 동물을 아주 좋아했는데…. 곰처럼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었어요. 오늘 아침에도 늦었다고 그러면서 헐레벌떡 나갔었는데. (남직원을 향해) 그런데 왜 곰이 되지 않고, 하필 머그컵이 됐을까요? 남직원 …. 젊은여인 머그컵이 된 사람도 있었나요? 남직원 글쎄요. (여직원을 쳐다보며) …잘 모르겠습니다. 여직원 머그컵이 흔한 건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어떤 분은 칫솔이 되기도 하셨고 선풍기나 베개가 된 분도 계시거든요. 심지어는 스티커가 된 분도 계시는걸요. 젊은여인 스티커요? 여직원 네. 다섯 살짜리 따님의 장난감 휴대폰에 안전하게 붙어 있다가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셨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젊은여인 그렇구나. (그림을 보며) 당신 이렇게 뚱뚱하지 않았잖아. 곰처럼 생기진 않았었는데. 여직원 외모와 변신은 별개랍니다. 젊은여인 그래도 컵은 좀. 남직원 왠지 여유로워 보이시는데요, 남편 분. 젊은여인 …. 남직원 꿀을 넣은 차 한 잔을 생각하셨을지도 모르죠. 변신하던 그 순간에요. 여직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 짓는) 남직원 머그컵은 아주 낭만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여인 그런가요? 남직원 남편 분의 쾌속 복귀를 기원하겠습니다. 여직원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 희망2과도 남편 분의 쾌속 복귀를 기원하겠습니다. 젊은 여인은 남직원과 여직원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어둡다. 상심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머그컵을 상자에 넣으려고 하는 젊은 여인. 그러다가 그만 손에서 머그컵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머그컵. 놀라서 얼어붙은 세 사람. 젊은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암전. 어둠 속에서 뉴스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뉴스캐스터(목소리) 최근 무작위적인 변신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오후 2시경 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깨뜨려 죽음으로 몰고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화양동에 사는 서른두 살 박모 여인은 오늘 오전 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인수받기 위해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를 찾았습니다. 인수증에 사인을 하기 전, 남편임을 확인하기 위해 컵을 들고 자세히 살피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인데요. 검찰은 직원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를 범한 박모 여인을 구속하고 실수가 아닌 고의적 훼손, 즉 살인이 아닌지를 검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박모 여인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시민단체에서는 과실치사에 해당되는 사건인 만큼 박모 여인에게 무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뉴스가 시작되고 잠시 후, 희미하게 조사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변심남과 조사원이 문서를 작성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가 끝나면 무대 완전히 밝아진다. 컴퓨터에 뭔가 기록하는 조사원과 맞은편에 앉아있는 변신남. 변신남은 반팔 남방차림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사원 (자판을 두드리며) 깨어났는데 새벽이었단 말씀이시네요. 변신남 그렇다니까요. 조사원 쓰레기 집하장에서 말이죠. 변신남 정확히는 쓰레기 더미 사이였어요. 사방이 쓰레기봉투였고 머리 위로도 몇 덩이 쌓여 있었습니다. 조사원 얼마 동안이나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시구요? 변신남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거 아닙니까. 조사원 그걸 알려 드리려면 저희 쪽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변신남 하고 있잖아요. 8월 1일. 그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조사원 휴대폰의 마지막 문자기록과도 일치하네요. 변신남 다 말했잖아요. 8월 1일 저녁에 마누라랑 딸이랑 쇼핑 간다고 문자가 왔어요. 바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직자에겐 집에 아무도 없는 게 천국이거든요. 조사원 그리고 집에서 맥주를 한잔 하신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맥줍니까? 변신남 맥주가 우리 집 찾는 거랑 뭔 상관입니까? 조사원 알코올 성분이 선생님 몸에 어떤 반응을 일으켜서 변신 또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 수도 있는 거잖아요. 변신남 나 술 쎄요. 맥주 세 캔에 필름 끊기고 그런 거 안 해요. 조사원 (기록하며) 세 캔이라··· 아까는 하나 드셨다고 안 하셨나요? 변신남 하나고 셋이고 그 정도로는 멀쩡하다니까요. 이건 술과는 상관이 없어요. 어느 순간 머리가 띵하더니 깨지게 아팠고 그 다음엔 기억이 없다니까요. 조사원 예 알았습니다. 어떤 걸로 변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시구요. 변신남 그냥 깨어나 보니까 처음 와 본 곳이었고, 그 전의 모습을 보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 조사원 변신 순간에도 혼자셨나요? 변신남 그걸 기억하면 내가 여기서 똑같은 얘기 반복하고 있겠어요? 조사원 오늘이 9월 30일입니다. 두 달 만에 돌아오신 분도 흔치 않지만 이렇게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 분은 없었거든요. 사람에 따라 기억이 돌아오는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변신 후 복귀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구요. 변신남 미치겠네 진짜. 휴대폰 기록과도 일치한다면서요. 조사원 잘 생각해보세요. 변신했다가 돌아온 분들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개 기억하고들 있었습니다. 변신남 이유가 있을 거 아뇨. 이렇게 사람들이 변신하는 이유를 알면, 나도 그러그러해서 변했겠구나 추측도 하고, 그러면 자연히 내가 변신했었는지 단순 기억상실인지 분간도 가능하고. 조사원 저희도 원인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로 커지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구요. 변신남 최선만 다하면 뭐해요. 밝혀진 건 모두에게 알려서 스스로 원인을 제거하고 정확하게 진단해서 치료하도록 해야지. 뭐든 불투명해서 좋을 거 없잖아요. 조사원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 그런 거죠. 아니면 밝힐 단계가 아니거나요. 변신남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예요. 질병은 만방에 알려 함께 고쳐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니요? 나 같은 케이스의 변신이 또 있을지 누가 알아요. 조사원 저희도 이게 변종인지 조사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변신남 마누라랑 집 찾아달라고 했더니 이제 변태취급까지 하는 거요? 여기서 하는 일이 뭔데. 변신한 사람들, 아니 물건들, 집 찾아서 안전하게 돌려보내주고, 돌아오면 변신한 이유가 뭔지 파악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구요. 조사원 진정하십시오. 안 도와드리겠다는 게 아니라 집에서 변신했는데 깨어나 보니 쓰레기장이었다는 건 저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거기다가 변신해 계셨던 기간도 길고, 어떤 걸로 변신해 있었는지조차 모르신다면서요. 변신남 나도 이상하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닙니까. 조사원 보통은 변신을 했을 경우 신고가 들어옵니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시민들이 발견하고 신고를 해주시거든요. 저희 직원들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도 있구요. 하지만 선생님께선 변신이 아니라 단순한 기억상실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나 막중한 책임감 같은 걸 느끼셨냐는 질문에도 아니라고 답하셨잖습니까. 변신남 내 마누라랑 딸이 없어지고 집이 이사를 갔다니까요. 조사원 그 점도 이상하구요. 변신남 변신이 틀림없어요. 내 기억에서 지워진 두 달 사이에 뭔 일이 생긴 겁니다. 집이 사라지고 가족들도 연락이 안 되고. 뭔가 사고가 있는 게 틀림없다구요. 조사원 집에서 변신했다면 왜 사모님이 신고를 안 하셨겠어요. 변신남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겁니다. 조사원 혹시 몽유병 같은 거 앓으신 적은 없으시죠? 변신남 지금 장난합니까? 조사원 병력 사항 질문란에 적혀 있어서 그럽니다. (뭔가 기록하고)쓰레기장 주변 CCTV를 조사 중이니까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누군가 쓰레기장에 선생님을 옮겨 놓은 게 포착되면 역추적을 통해서 이동 경로가 파악되겠죠. 스스로 쓰레기장에 들어가지는 않으셨을 거 아닙니까. 변신남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내 발로 쓰레기장에 들어가겠어요? 조사원 알겠습니다. 변신남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냈다거나 하는 건 다시 알아볼 순 없습니까? 조사원 아까 알아봐 드렸잖아요. 변심남 그 사이에 또 뭐가 들어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조사원 경찰서 조회 결과로도 확인되는 게 없고. 저희 쪽에도 신고된 게 아직 없습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돼서 바로 뜨거든요. 변신남 …. 조사원 조만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다 보니까 신고를 하지 못한 걸 수도 있으니까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요. 변신남 (풀이 죽는다) 조사원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제일 빠릅니다. 변신남이 기억을 더듬어 회상으로 넘어간다. 그 때, 돌멩이 하나가 변신남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온다. 돌을 주워드는 변신남.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변신남 그날도 다른 날처럼 아침 일찍 출근을 한다고 집을 나왔던 것 같아요. 월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화요일이었나? 회사에 안 나가면서부터 요일 구별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서요. 딸은 방학이라 오전에 영어학원을 갔을 테고, 마누라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에어로빅에 갔을 겁니다. 구립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다 나왔는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육교가 하나 있어요. 그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경찰이랑 얘기하고 있는 걸 봤습니다. 무대는 육교가 서 있는 도로가로 바뀌고 변신남이 돌멩이를 들고 육교 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다. 경찰의 모습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고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만 경찰과 인터뷰하듯 이야기한다. 변신남은 육교 건너편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교복1 진짜예요. 한순간에 변했다니까요. 교복2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교복1 바로 이 육교예요. 교복2 저기 위에 보이시죠? 우린 그냥 걸어가고 있었어요. 교복1 독서실은 반대쪽인데 떡볶이랑 순대 먹으려면 여기로 지나가야 되거든요. 교복2 그 시간에는 원래 육교에 사람이 없어요.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횡단보도가 있거든요. 교복1 우리는 그냥 여기로 건너요. 조금 편하자고 돌아가고 그러는 거 우린 안 하거든요. 이런 날씨에는 육교로 건너고 그러는 게 더 낭만적이잖아요. 교복2 오늘은 다른 날보다 사람도 없고 거리가 한산하면서 묘하게 나른했어요. 교복1 네, 그냥 단순히 여름이라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아지랑이가 세상을 녹일 것 같은 그런 날 있잖아요. (교복2에게) 좀 영화 같지 않았냐? 교복2 많이 영화 같았지. 교복1 그치그치. (앞을 보며) 한 아저씨가 육교로 올라오고 있더라구요. 와이셔츠를 입고, 보통 키에 그냥 흔한 아저씨였는데요, 우리는 반대쪽에서 올라갔고요. 교복2 그런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그 아저씨 몸이 흐물거려 보였거든요. 교복1 아냐. 희미해 보이는 것 같았어. 옅어졌달까. 교복2 흐물거리던데. 교복1 희미해졌다니까. 교복2,1 (동시에 강하게 부정하며) 아니에요. 거짓말 아니라니깐요. 교복1 얘랑 저랑 말이 다른 게 아니라 표현방식이 다른 거예요. 교복2 원래 같은 걸 봐도 느끼는 회로 방식이 달라서 그래요. 교복1 아무튼요··· 그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다가, 점점 줄어들더니··· 교복2 한순간에 펑. 교복1 ‘펑’은 맞는데 스모그는 없었지? 교복2 맞아. 스모그가 없어서 더 마술 같았어요. 교복1 만화영화 보면 사이즈가 팍팍 줄어들면서 변신하는 장면 있잖아요. 교복2 슬로모션처럼요. 촤르르르륵. 교복1 딱 그랬다니까요. 그러더니 호호아줌마처럼 펑, 교복2 하고, 돌멩이가 됐다니까요. 교복1 네? 아, 네. 저희가 원래 호흡이 척척 맞아요. 돌멩이요? 교복2 그게요…. 교복1 사실 그 돌멩이 때문에 저희가 제보를 드린 건데요…. (교복2에게) 내가 말해? 교복2 (끄덕인다) 교복1 얘가요…, 장난으로 그 돌멩이를 차버렸거든요. 교복2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요…, 그 아저씨가 돌멩이로 변해서, 그걸 보는 순간 제 눈을 믿기 힘들어서, 한번 건드려본다는 게 그만…. 진짜 살짝 찼는데 밑으로 굴러 떨어지더라구요. 교복1 육교에서 차니까 당연히 밑으로 떨어지죠. 제가 봐도 진짜 살짝 찼거든요. 교복2 그래서 우리가 막 찾았는데 이 돌멩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교복1 가로수 밑이랑 인도 쪽도 샅샅이 뒤져 봤어요. 교복2 근데 그 아저씨 진짜 돌멩이로 변한 거 맞죠. 교복1 사람들이 이상한 걸로 변한다는 얘긴 되게 많이 들었는데, 우린 말만 들었지 처음 봤거든요. 교복2 당근 처음이지. 왕 놀랐다니까요. 교복1 나도 완전 놀랐잖아. 교복2 아니라구요? 왜요? 맞는 거 같은데. 교복1 우리가 직접 봤다니까요. 교복2 그 돌멩이는 어디 있는지 우리가 모르죠··· 몰라서 경찰서에 신고한 거죠. 교복1 아,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에도 신고하려고 했는데요 교복2 일단 돌멩이부터 찾아야 될 거 같아서요. 원래 뭐 찾는 건 경찰아저씨들이 더 잘하잖아요. 교복1 돌멩이 어딨냐고 물어보시는 거 보니까, 변한 거 맞죠. 그거 변신이죠? 교복2 맞아 맞아. 아저씨 얼굴 굳어지는 거 보니까 맞다. 교복1 (깜짝 놀라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우리는 그냥…. 그럼 직접 찾아보시면 되잖아요. 돌멩이를 들고 가서 신고 안 한 건 우리 잘못이지만, 그래도 목격자 신고는 했잖아요. 도서관도 안 가고 조사까지 받고. 교복2 그런데… 그 돌멩이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교복1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변신남이 두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변신남 혹시, 이 돌멩이 찾나? 교복1, 2 (눈이 휘둥그레져서) 오 마이 갓! 바로 이거예요. (뺏듯이 가져가서 경찰에게 보여주는) 이 돌멩이예요. 확실해요. 육교 위에 굴러다닐 만한 돌이 아니잖아요. 변신남 …그냥 돌멩인데. 교복1 이런 짱돌이 육교에 있는 거 보셨어요? 교복2 (돌을 바닥에 내려놓고 살짝 차본다) 맞아요. 느낌이 똑같아요. 교복1 경찰서로요? 교복2 우린 무죄인 거죠? 그냥 참고인으로요? 교복1, 2 재잘거리며 경찰을 따라 나간다. 교복1, 2 (나가면서) 그러지 말고 변신대책본부로 가면 어때요. 거기가 어떤 덴가 구경하고 싶어요. 포상 같은 건 없나요? 사회봉사 가산점 같은 건요? 무대 중앙은 어두워지고 조사원이 앉아 있는 조사실 쪽이 밝아진다. 변신남이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앉는다. 조사원 그 돌멩이라면 저도 기억합니다. 유일했었죠. 변신남 그 사람은 돌아왔습니까? 조사원 일주일 쯤 뒤에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제 담당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변신남 자살이요? 조사원 뛰어내리려고 점찍어둔 산에 큰 바위가 있는 절벽이 있었는데, 거기로 가는 길이었답니다. 그러다가 변신을 하게 됐구요. 변신남 다시 뛰어내린 건 아니겠죠? 조사원 별 소식 없는 걸 보면 힘내서 잘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변신남 다행이군요. 하필 돌멩이라니…, 그걸 보니까, 혹시 변하게 되더라도 돌멩이로는 변하지 말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돌멩이는 좀…, 씁쓸하지 않겠습니까? 조사원 그러네요. 사이. 남직원 그 다음엔 어디로 가셨습니까? 노숙자들이 무대 위로 나온다. 한 줄로 서서 변신남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노숙자들. 그들은 공원에서 배식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다. 변신남,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뒤에 서서 따라간다. 변신남 늘 가던 공원에 갔습니다. 점심은 항상 여기 와서 먹거든요. 점심값도 아낄 겸 해서요. 그런데 그날은 어떤 양복 입은 남자와 밥을 같이 먹게 됐습니다. 무대는 공원 벤치로 바뀐다. 변심남이 사랑의 밥차에서 타온 도시락을 들고 벤치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똑같은 도시락을 든 양복 남자가 벤치에 다가온다. 양복남자 다른 벤치가 꽉 차서. 변신남 (자리를 조금 비켜준다) 양복남자 (앉으며) 찬이 점점 부실해지네요. 변신남 예, 뭐. 두 사람, 먹는다. 양복남자 우리 구면이죠? 변신남 (양복남자를 한번 쳐다보고) 그런 것도 같고…. 양복남자 대개는 얼굴 익힐 만하면 안 보입니다. 노숙자도 아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밥 타먹기 뻘쭘하니까 그렇죠. 변신남 …. 양복남자 실례지만, 뒤쪽에 있는 인력 사무소에 나오십니까? 변신남 아닙니다. 양복남자 옷차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저도 아닙니다. 변신남 …. 양복남자 하지만 일자리는 구하고 있죠. 변신남 면접이 있으셨나 봅니다. 양복남자 웬걸요. 이 나이에 면접 볼 데나 있겠습니까. 변신남 그럼…,(넥타이를 바라보는) 양복남자 아, 이거요? 뭐 흔한 케이습니다. 정리해고 당한 걸 집사람도 아는데, 제가 집에 있는 걸 도무지 싫어해서요. 산책하는 기분으로 편한 옷이라도 입고 나갈라치면 티 좀 내지 말라고 해서 늘 이런 차림입니다. 변신남 예…. 양복남자 (서류가방을 들어 보이며) 만화책도 몇 권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빌려드리죠. 변신남 예, 그럼 있다가. 두 사람, 먹는다. 양복남자 들으셨어요? 변신남 뭘요? 양복남자 어제 뉴스에 나왔잖아요. 회의실 단체 변신 사건. 변신남 아, 그거요. 양복남자 거기, 제가 다녔던 회삽니다. 아침마다 매출신장 몇 퍼센트 달성을 외치며 으쌰으쌰하는 회의가 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세뇌 같은 건데 그게 또 서로 경쟁이 붙고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아가면 압도되는 묘한 마력이 있거든요. 아무튼 그 회의실에서 무려 다섯 명이나, 똑같은 시간에, 변신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돼지저금통으로 변한 사람은 분명 박부장일 거예요. 원래 돼지같이 생긴 데다가 먹는 거랑 돈에만 욕심이 많았거든요.  변신남 . 복남자 (먹으며) 밥통으로 변한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누군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아침을 안 먹고 왔을까요? 아니면 가족들 굶기게 될까봐 걱정을 했었나. 아무튼 월요일 아침마다 회의실 벽에 영업실적표가 나붙는데, 아침을 든든히 먹어도 그거 보면 속이 쓰리죠. 쇠주걱으로 긁어대는 것처럼 말입니다.  변신남 .  양복남자 제가 쓸데없는 얘길 했나요? 식사하시는데.  변신남 괜찮습니다. 어딜 가나 그런 얘기들뿐인데요.  양복남자 보건당국은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곳이면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불안해서야 원.  변신남 국가재난설정 단계도 경계단계로 올라갔다고 하던데요.  양복남자 아무리 봐도 질병본부보다는 처음부터 재난본부에서 나섰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변신남 재난이든 질병이든 원인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말이죠.  양복남자 (먹으며)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 변하잖아요.  변신남 우리 같은 사람들이요?  양복남자 이치가 그렇잖아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변신을 한다 이겁니다.  변신남 그만큼 피로가 쌓인 사람들이니까, 몸의 변화도 다르겠지요.  양복남자 우리는요? 나야말로 피로가 켜켜이 쌓인 사람인데.  변신남 사람마다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어떻게 재겠습니까.  양복남자 물론 상대적이겠죠. 그래도 노숙자는 안전하답니다. 걱정이 덜하니까요.  변신남 그럴 수도 있겠네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요.  양복남자 예술가는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막중한 책임의식 같은 걸 가지진 않을 테니까.  변신남 꼭 그렇지만도 않겠죠.  양복남자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이건 뭐 소설 같은 데가 있지 않습니까?  변신남 .  양복남자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만 변신한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그 사람들 일자리, 우리한테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변신남 그럼 우리도 변하겠죠.  양복남자 그래도 좋으니까 그 자리를 꿰차고 싶은 심정입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이렇게는 더 못살겠어요.  변신남 아직 다른 도시까지는 확대되지 않았답니다. 사람들이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양복남자 서울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좋은 대책일 수 있겠네요.  변신남 그렇게 되면 서울 경제는 누가 돌립니까?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일자리도 줄어들고.  양복남자 팔팔한 젊은 인력을 마구 뽑지 않을까요?  변신남 젊은 사람도 일하게 되면 똑같아지는 거 아닐까요? 살아남으려면 사회화되고 기성화될 테니까요.  양복남자 이럴 땐 내가 사회적 동물이란 게 싫어진다니까요.  변신남 사는 거, 퍽퍽하죠.  양복남자 예. 밥도 퍽퍽하고. (기합을 넣듯) 그래도 우리 주눅들지는 말자구요. 서로 변하지 말고, 매일 여기 나와서 밥 먹읍시다. 사랑의 밥.  변신남 긍정적으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양복남자 다 살아지는 법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변신남 부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여유가 생깁니까.  양복남자 그런 게 있습니다.  변신남 (씁쓸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덮는다)  양복남자 흠흠. 이건 비밀이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주는 건데, 처지도 비슷하고 나쁜 분도 아닌 것 같으니 내가 쓰는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변신남 방법이요?  양복남자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다. 쓸모 있는 걸로 변신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법이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금으로 된 롤렉스시계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마누라한테 전당포에 맡기라고 하는 거죠. 밤이 되면 몰래 변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되고요.  변신남 그게 가능합니까?  양복남자 내가 이 더운 날 밥차에서 도시락까지 얻어먹으면서 거짓말 하겠어요? 불법으로 변신 기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는데, 관심 있으면 소개해 주리다. 하지만 그걸 연마하려면 보통 수행으로는 어림없어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의 기를 몽땅 정수리에다 모으려면 (가슴을 탁 치며) 여기랑 (머리를 치며) 여기가 타들어가는 거 같거든요. 이런 더위는 아무 것도 아니죠.  변신남 믿기지는 않지만, 가능만 하다면야 뭘 못하겠습니까.  양복남자 아니, 가능은 한데, 먼저 믿어야 연마가 가능하다니까요.  변신남 그런 얘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요.  양복남자 계속,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나, 나는 왜 이렇게 사나, 나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 쓸모가 없구나, 차라리 금덩어리로 변해라. 그런 생각을 아주 간절히 혼신을 다해서 하는 거죠.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많은 짐들을 머리 가득 넣고 가슴으로 우는 거예요.  변신남 가슴으로 울어요? (모르겠다는 표정)  양복남자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 의무 같은 것들을 가슴에 채우고. 아 이거 말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주위를 살피더니) 내가 딱 한 번만 보여줄 테니까 잘 봐요. 어차피 최소 한 시간은 변신해 있어야 하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만화책 보면서 기다리슈.  변신남 (못미덥게 쳐다본다)  양복남자 참 나. 내 기술을 무시하시네. 변신한 거 보고 놀라지나 마시라니까.    양복남자, 벤치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 기를 모으는 자세를 취한다. 한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고,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한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는 변신남. 그 순간, 눈앞에서 양복남자가 사라진다. 순식간이다.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황금 롤렉스시계.    변신남 (시계에 대고 다급히) 이봐요.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요! (시계에 귀를 대보고) 이봐요, 괜찮은 거예요? (안절부절못하고) 이거 어떡하지? 진짜 변한 건가? 그럼(휴대전화를 꺼내 신고하려다가) 거기 변신대책본부죠? 저기(엉겁결에 전화를 끊는다) 아니지. 아, 이거 어떡하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시계에 대고) 이봐요, 말 좀 해봐요. (시계를 흔들어보는) 괜찮아요? 대답 좀 해요.  변신남은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누구에게 도움이라도 청하려는 것처럼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되돌아오더니, 주위를 살피고 롤렉스시계를 잽싸게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뜬다.    무대 어두워지고 조사실 창구만 밝아지면, 거기 조사원이 앉아 있다. 변신남,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조사원 아니 진짜로 그렇게 변신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변신남 (끄덕인다) 내 눈으로 봤다니까요.  조사원 말이 안 되죠. 그런 일이 있다면 왜 저희가 몰랐겠어요.  변신남 진짜라니까요.  조사원 그 양복 입은 남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변신남 나야 모르죠.  조사원 모르다니요? 주머니에 넣으셨잖아요. 신고는 하셨습니까?  변신남 (고개를 젓는다) 신고는 안 했지만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조사원 아까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잖아요.  변신남 얘기하다 보니까 생각이 난 거죠.  조사원 하지만 아직까지 변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모두 유언비어예요.  변신남 결혼하셨습니까?  조사원 아니요.  변신남 혼자 사쇼?  조사원 부모님이랑 함께 삽니다. 신남 변신 자격미달이네요. 우리 조사원님은 어깨에 짊어질 무게가 하나도 없으시니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조사원 아직 증명된 원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신남 중년의 남자들이 왜 그렇게 많이 변한다고 생각합니까.  조사원 드물긴 하지만 젊은 남자들도 종종 변합니다. 여성 가장들의 변신도 늘고 있는 추세구요.  변신남 그 사람들이야 특별 케이스고.  조사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긴 하겠지만, 유럽에선 사람이 벌레로도 변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필요하면 막 변했습니다.  변신남 그 사람이 왜 벌레로 변했겠습니까? 소설이나 신화 속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왜 지금 일어날까요?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이 변신하는 거 보셨습니까?  조사원 (고개를 가로젓는다)  변신남 행정하시는 분들이 이러니까 문제라구요. 사회 곳곳에 골고루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정확히 봐야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거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 줄 알아요?    갑자기 무대 중앙이 밝아지면서, 변신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교도소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남자가 무대 중앙으로 나와서 웃옷을 벗어붙인다. 온몸은 문신투성이지만 어딘가 둔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는 이소룡 흉내를 내듯 기를 모으고 변신 기술을 연마 중이다. 그러다가 비장한 각오를 밝히듯,    문신남자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변신에 성공해서 여기만 나가면 엄마 호강시켜 줄게. (다시 기를 모으고 숨을 후 내뱉으며) 아자!  교도관 거기 3113번. 허튼수작하지 말랬지?  문신남자 우리 엄마가 집에 혼자 계세요. 우리 엄만 너무 나이가 많아서 거동도 불편하다구요. 끼니도 제때 못 챙겨먹을 텐데. 연탄불은 꺼지지 않았는지.  교도관 한여름에 무슨 연탄불이야. 너는 앞으로 5년은 더 썩어야 돼.  문신남자 여름이요? 제가 여기 들어온 지 한 계절도 안 지났단 얘깁니까?  교도관 이상한 변신 같은 거 연마했다간 가만 안 둘 줄 알어. 힘은 아껴뒀다가 노동 시간에나 쓰란 말야.    교도소 옆방에서 철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재소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져 폭동처럼 들려온다.    소리 우리에게 변신의 자유를 허용하라! 허용하라! 우리의 변신 권리를 사수하자! 사수하자!    거리의 사람들 인터뷰가 이어진다.    사람들1 언제 변신할지 모르니까 불안할 수밖에요.  사람들2 그게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3 변신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숨을 참으면 된대요.  사람들4 한번 변신하면 면역이 생긴다고 하던데요.  사람들1 내성이 생긴 변종변신도 생겨났다면서요?  사람들2 약으로 조절이 가능한데 일부러 임상실험을 안 하는 거 맞죠. 사람들3 복수하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대요. 변신하면 죽이려고요. 사람들4 날 감시하는 게 틀림없어요. 내가 변신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겠죠. 사람들1 변신하면 배설은 어떻게 해결하죠? 사람들2 우리 아이랑 기르던 개가 이상해요. 변신한 것 같아요. 사람들3 언젠가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변할까봐 걱정돼요. 사람들4 변신 기술을 개발해서 정치적 무기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1 우리에게는 농업적 근면성이 있으니까 그 정도 변신 기술 개발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사람들2 전쟁시엔 적군을 모두 사물로 변신시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사람들3 노력하면 애완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인 잘 만나면 애완동물로 사는 게 나을 때도 많잖아요. 사람들4 내 남편은 똑같은 모습의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어요. 외모는 똑같은데 분명 그이는 아니거든요. 사람들1 우리 집 가전제품들은 모두 사람들이 변신한 것 같아서 쓰질 못하겠어요. 사람들2 잘못 건드렸다가는 살인죄가 적용되는 거잖아요. 사람들3 남성을 중심으로 바뀌는 거면 여자 동성애자들은 안전한 거죠? 사람들4 저는 열두 살 소녀가장이에요. 무료백신은 안 놔 주나요? 사람들이 우왕좌왕 거리를 왔다갔다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변신한 사람들로 거리가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마비가 된다. 사람들이 질러대는 소리들과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뒤섞여 정신없다. 사람들1·2·3·4 도와줘요, 청소기로 변했어요. / 여기 점퍼로 변한 사람이 있어요. / 어머, 이게 웬 모자지? / 장롱이에요, 거리 한가운데 장롱이 서 있다구요. / 와, 예쁜 목걸이네. / 앗! 오물 묻은 양말. 으윽 드러워. / 볼펜이다. / 장갑이에요. / 가위를 찾아주세요. / 여기 일회용 면도기가 한 무더기 있어요. / 마우스잖아. / 자전거로 변한 남편을 어떤 여자가 타고 갔어요. / 부서진 카세트네. / 사람이 두통약으로 변신한 거예요. 먹으면 안돼요. / 찢어진 천사 날개 못 보셨나요? / 무슨 의자가 이렇게 딱딱해. / 스카이 콩콩이요? 변신한 사람들로 일대 혼란을 일으키던 사람들이 사라지면 바닥에는 변신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변신대책본부 직원들이 거리로 나가 떨어진 물건들을 수거하느라 정신없다. 조사실에 있던 조사원도 거리로 나가 직원들과 물건을 수거하고 그들과 함께 무대 밖으로 나간다. 조사원이 없는 조사실에 혼자 남겨진 변신남. 변신남만의 회상은 전당포로 이어진다. 무대는 전당포가 된다. 변신남, 전당포로 들어간다. 변신남, 주머니에서 롤렉스시계를 꺼내 주인에게 내밀면 주인, 확대경을 한쪽 눈에 끼고 시계를 감정하기 시작한다. 변신남 시곗줄만 보지 말고 문자판도 좀 보세요. 전당포주인 …(살핀다) 변신남 전체가 18K예요. 나사 하나까지 다. 전당포주인 …어디서 난 거요? 변신남 게다가 문자판은…. 전당포주인 그러니까 어디서 난 거냐구. 변신남 사업하시던 형님이 물려주신 겁니다. 전당포주인 다들 물려받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변신남 장물 아닙니다. 전당포주인 (확대경을 뺀다) 변신남 아니, 좀 더 자세히 보시라니까요. 안쪽에는 순금이에요, 순금. 전당포주인 갖고 가쇼. 변신남 예에? 전당포주인 그냥 가져가시라고요. 변신남 왜 그러시는데요. 훔쳐오거나 흠집 있는 물건 아니라니까요. 전당포주인 (쳐다본다) 변신남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전당포주인 훔치지 않았으면 어디서, 주웠소? 변신남 예? 전당포주인 그런가보네. 변신남 됐습니다. 전당포가 여기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귀한 물건 들고 나와서 푼돈 좀 만들어보자고 이런 모욕까지 들을 건 없잖습니까. 전당포주인 (시계를 다시 본다) 변신남 막말로 이 정도 물건이면 사장님 손해 볼 거 없잖아요. 전당포주인 신데렐라 얘기 아쇼? 변신남 뭔데렐라요? 전당포주인 12시만 넘으면 호박으로 변하는 신데렐라 말이오. 변신남 왜요, 금시계 보니까 갑자기 금마차라도 생각나십니까? 전당포주인 호박이면 죽이라도 쑤어 먹지만 사람으로 변해버리면 난처해지죠. 요즘 전당포에 변신사기가 판을 칩니다. 변신남 …. 전당포주인 어떻게 장담하시겠소? 변신품이 아니라는 거 말이오. 변신남 속고만 사셨나. 사람이 이렇게 좋은 시계로 변하는 거 보셨습니까? 전당포주인 팔찌, 목걸이, 순금 트로피. 더한 걸로도 변할 수 있지요. 변신남 이건 우리 형님이 사업차 외국에 갔다 오시면서…. 전당포주인 (말 자르듯 망치를 내놓는다) 이걸로 한번 내리쳐 보시든가. 변신남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전당포주인 증명을 해보시라구요. 변신남 내가 못할 거 같아요? 전당포주인 그야 나는 모르지요. 변신남 시계가 망가지면 가격이 떨어질 텐데 그건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전당포주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보다야 덜 손해죠. 망가져도 제값은 쳐 드리지. 만약 사람이 변신한 거라면, 그 사람이 다시는 못 돌아오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명심하쇼. 이 세상과는 영영 빠이빠이란 말이요. 저번엔 진짜로 내리친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나 끔찍했던지. 돌아오긴 했는데 반병신이 되었습디다. 평생을 병원에 누워 사는 수밖에. 변신남 그럴 일 없습니다. 이건 진짜 시계니까. 전당포주인 그럼 쳐 보시오. (빨리 쳐보라는 시늉) 변신남 (망설인다) 전당포주인 (떠보듯) 형님이 주신 거라면서…, 아까우면 그냥 갖고 가시든가. 변신남 (결정한 듯 내리치려 하지만 망치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전당포주인 뭐해요 안 내리치고. 변신남 진짜 이거 망가져도 제값 쳐주는 거죠? 전당포주인 증명만 해 보인다면야. 변신남 (심호흡.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얏! 전당포주인 (순간적으로 변신남의 팔목을 잡아채는) 잠깐! 변신남 (멈칫) 전당포주인 됐소. 맡겠소. (시계를 종이 상자에 넣으며) 길에서 변신한 사람들 주워다 돈벌이 하는 사람들 숱하게 봤지. 나도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도리는 지키고 살아야 될 거 아뇨. 사람이 있어야 사람한테 사기도 치고 돈도 뜯고 그럴 거 아니요. (돈을 지불한다) 양심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는 복귀가 안 되는 거 알죠? 당신을 믿어보리다. 형님이 주신 거라면서? 소중한 것일 테니까 꼭 찾으러 오쇼. 변신남 …(돈을 받아든다) 전당포주인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만 변신한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죠? 변신남, 대답 없이 돈을 들고 나간다.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무대 어두워지고, 다시 조사실만이 밝아진다. 변신남, 조사실 의자에 앉는다. 조사원, 땀을 닦으며 들어와, 정장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앉는다. 조사원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본부 수거담당 쪽에서 급히 사람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런데 어디까지 했었죠? 아, 그래서 그 시계는 어떻게 했습니까. 변신남 시계는… 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그 벤치에 갖다 뒀습니다. 그 사람은 한 시간 뒤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구요. 그날 밤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조사원 (엷게 웃으며) 여전히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군요. 최대한 솔직히 말씀해주셔야 선생님뿐만 아니라 조사에도 도움이 됩니다. 변신남 …. 조사원 그 다음엔 바로 집으로 가셨습니까? 변신남 예. 집에 가보니까 아내와 딸이 있었습니다. 조사원 만나신 거네요? 변신남 그런 거나 마찬가지죠. 이제 생각 났습니다. 조사원 아까는 혼자 술을 드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변신남 그러니까 그게··· 조사원 말을 자꾸 바꾸시면 안 됩니다. 변신남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겁니다. 조사원 예. 일단 얘기를 해보세요. 변신남 집에 갔는데 딸이 밥을 먹고 있었어요. 무대는 변신남의 집.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딸. 변신남이 집으로 들어간다. 변신남 나 왔어. 딸 (쳐다보지도 않고 밥을 먹는다) 변신남 학원은 어떠냐? 딸 (대답 없다) 변신남 요즘 대학생들은 배낭여행 많이 가던데. 넌 안 가도 되니? 딸 (아빠를 무시하며) 엄마, 국 좀 더 줘. 아내, 나온다. 아내 (변신남에게 왔냐는 인사도 없이) 그만 먹어. 살쪄. 딸 배고파. 변신남 나는 밖에서 먹고 왔어. 장 과장이 삼계탕 잘하는 집을 안다고 해서. (아내와 딸은 듣지도 않는데 과장되게) 어휴, 배부르다. 딸 (엄마에게 말하지만 아빠에게 들으라는 듯) 한밤중에 밥 먹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지금 먹어두면 좀 좋아. 덜그럭 덜그럭 잠이나 깨우고. 아내 (밥을 퍼서 변신남 앞쪽에 갖다 놓는다) 변신남 (침을 꿀꺽 삼키며) 배부른데···. 아내 먹어. 변신남 오이냉국 맛있어 보이네. 그럼 조금만 먹어볼까. 변신남이 못이기는 척 식탁에 앉자 딸이 식탁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변신남 (돈을 꺼내 놓으며) 저번에 맡았던 공사 말야. 그 쪽 업체에서 대금이 들어왔나봐. 월급도 제때 못줘서 미안하다고…. 보너스다 생각하라면서 주더라구. 아내 (남편을 돌아본다) 변신남 아파트 융자금 밀린 거 꽤 되잖아. 부족하겠지만 좀 보태라고. 아내는 남편을 돌아보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돈을 들고 들어간다. 혼자 남아 밥을 먹는 변신남. 공원에서 도시락을 타먹을 때보다 더 퍽퍽한 느낌이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시간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둘러봐도 피아노는 없다. 밥을 먹다 말고 창밖을 바라보는 변신남. 보이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닮은 형체도 색깔도 없는 허공뿐…. 피아노 소리가 변신남의 가슴을 쓰다듬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힘들다….’ 식탁 위의 조명이 꺼질락 말락 불안하게 깜박인다. 변신남 어, 이게 왜 이러지? 변신남이 일어나서 전구를 이리저리 만지며 돌려본다. 피아노 소리 점점 커지다가 뚝 멈추면, 짧은 암전과 함께 변신남이 변신한다. 그가 앉아 있던 식탁의자 위엔 장난감 피아노 하나가 놓여 있다. 아내와 딸이 나온다. 아내가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뉴스캐스터(목소리) …머그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깨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박모 여인에게 무죄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검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죽은 김씨와 아내 박모 여인은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밝혀졌습니다. 사건 당일에도 박모 여인은 남편의 변신 소식을 듣자마자 변신대책본부를 찾았다가 이런 변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어떤 정황으로도 남편에 대한 고의성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검찰은 박모 여인의 사례를 ‘매우 특이한 사건’으로 보고 그녀에게 살인이나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박모 여인은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적 쇼크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런 그녀에게 시민들의 위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딸 (TV를 끄고) 저건 당연히 무죄 아냐? 고의로 죽인 것도 아니잖아. 아내 고의가 아니었는지는 저 여자밖에 모르지. 딸 던진 것도 아니고 미끄러져서 놓친 건데. 아내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야. 딸 대체 어떤 사람들이 변신을 하는 걸까. 아내 글쎄다. (빈 식탁을 보고는) 니 아빤 밥 먹다 말고 또 어디 갔대니? 딸 자주 없어지잖아. 아내 아빠가 돈을 주더라? 딸 어디서 구했을까. 이제 더는 빌릴 사람도 없을 텐데. 아내 먼저 얘길 안 하니,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회사 잘린 지가 얼마야. 딸 (장난감 피아노를 발견하고) 이게 뭐야? 아내 그게 뭐니? (살펴보는) 하여튼 이런 걸 왜. 딸 (피아노를 눌러보며) 소리도 안 나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해. 아빠가 주워온 것들로,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이야. 아내 고장 난 걸 왜 들고 왔대니. 점점 이상한 버릇만 생기고. 딸 어떻게 좀 해봐. 언제까지 아빠 저러는 거 모른 척 할 건데. 아내 우리가 이런데 아빠는 오죽하겠니. 딸 아빠도 힘들지만 우리도 힘들잖아. 나…, 아빠가 매일 노숙자들이랑 밥 먹는 거 싫어. 아내 …. 딸 우리 이 집 팔고 이사 가면 안 돼? 더 작은 집으로. 아내 이게 어떤 집인데. 아빠가 젊을 때부터 벌어서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집이야. 여길 어떻게 나가. 딸 갚을 돈이 더 많잖아. 아내 생각 좀 해보자. 딸 아빠도 참, 그냥 확 터놓고 얘기를 하든가. 거짓말도 하루 이틀이지, 6개월을 뭐하는 거냐구. 아내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아빠야. 그거라도 없으면 니네 아빤, 죽어. 딸 그런 모습 더는 못 보겠어. (흉내를 내며) 삼계탕 먹었더니, 아휴 배부르다. 아내 (장난감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거 어따 치워라. 딸 몰라. 고장난 거, 갖다 버려. 아내 니가 버리든가. (방으로 들어간다) 딸 (따라 들어가며) 저런 것 좀 주워오지 말라고 해 제발.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장난감 피아노. 옆에 서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변신남의 모습처럼 쓸쓸하다. 딸이 눌러보던 버튼이 뒤늦게 작동하는지 장난감 피아노에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텅 빈 공간에 홀로 선 변신남만이 그 멜로디를 듣고 있다. 변신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전화벨소리. 조사실의 불이 켜지고 조사원이 전화를 받는다. 변신남은 다시 조사실의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조사원 그래? 알았어. (끊고) 찾았답니다. 변신남 뭐를요? 조사원 사모님과 따님 찾았답니다. 이제 힘들게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 전에 여기로 출발하셨다니까 잠시 후면 도착하겠는데요? 변신남 그래요? (표정 어두워진다) 조사원 기쁘지 않으십니까? 표정이 왜 그러세요? 변신남 아니요. 그냥··· 조사원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게 돼서 그러신가보네요. 오후 내내 조사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변신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뭘로 변신하셨는지만 기억하시면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신남 다 끝난 건가요? 조사원 집도 찾으신 것 같으니까, 먼저 가족들 만나보시고 마무리하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사원 밖으로 나가고 변신남 초조해한다. 긴장한 얼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인다. 밖에서 조사원의 목소리 들린다. 조사원(목소리) 오셨습니까? 허영범씨는 안에 계십니다. 사모님이랑 따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얼마나 걱정을 하시던지. 이쪽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조사실의 불빛이 깜박인다. 변신남, 고개를 들어 깜박이는 불빛을 쳐다본다. 불이 꺼진다. 짧은 암전 후, 조사원 들어온다. 조사원 어? 왜 불이 꺼져 있지? 조사원, 불을 켠다. 변신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변신남이 앉았던 자리 옆에 똑같은 의자가 하나 더 놓여 있다. 조사원 원래 여기 의자가 두 개였었나? (주위를 둘러보며) 허영범씨. 허영범씨. 어디 계세요? 허영범 씨. 허영범씨. 변심남을 찾는 조사원의 목소리만 허공에 가 부딪친다. <끝>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현직기자, 뉴스를 노래하다

    현직기자, 뉴스를 노래하다

    “크라잉넛이 주로 대중적인 멜로디와 은근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만드는데, 장르와 메시지 강도는 다르지만 그러한 부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습니다.” 11년차 현직 기자가 뉴스를 테마로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해 화제다. 김형찬(38) 한겨레신문사 편집1팀 기자가 주인공. 최근 ‘뮤직뉴스1-기억해’를 내놨다. 직장인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다고 하나,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앨범에 담긴 12곡을 모두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했다. 5년 작업 끝에 나왔다는 이 앨범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청년 실업, 루저 논란, 명품 중독, 촛불시위, 이산가족 등 각종 사회 이슈들을 담고 있기 때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등 올해 우리 곁을 떠난 ‘바보들’에게 바치는 노래, 4대강 사업이 사람과 환경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염원하는 노래도 있다. “기자이기 때문에 접하게 되는 사회 각 분야의 일들을 모티프 삼아 노래하게 됐습니다. 요즘 대중가요가 사랑 노래로 넘쳐나는데,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획일화되는 것 같아 다양성을 주고 싶었죠.” 사회 이슈를 담고 있다고 해서 집회 현장에서 불려지는 강한 노래를 떠올린다면 섣부른 오해다. 노래들은 쉬운 멜로디에 부드러운 음색이 보태져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반전 메시지를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헤어지게 된 연인 이야기에 녹이는 식으로, 딱딱할 수 있는 주제에 사람 이야기를 곁들여 노랫말도 친근하다. 게다가 발라드, 포크,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로 앨범을 구성해 듣는 재미가 있다. “사회적 이슈들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죠. 듣는 이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대중적인 멜로디를 입히려 공을 들였고, 노랫말도 거창하지 않게 서정적으로 다듬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창 시절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지만 음악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9년 서울신문사에 입사, 사회에 발을 디딘 뒤 노래에 대한 열정을 거부할 수 없어 직장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사내 밴드 ‘공덕쓰’ 외에도 프로젝트 밴드 ‘뮤직뉴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초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든 뒤, 처제를 보컬로 내세워 디지털 싱글을 내기도 했다. 이번 앨범 수익금의 일부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우리 소리를 우리 정서에 맞게 접목시킨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두 번째 뮤직뉴스가 벌써 기대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여기자 ‘-20도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가다 ①

    여기자 ‘-20도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가다 ①

    우스갯소리로 첫 키스와 군대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첫 키스는 평생의 추억이 되지만 군대에서 고생한 기억 역시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에 훈장처럼 새겨진다고 예비역들은 입을 모은다. 그 중에서도 야외에서 4박 5일 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혹한기 훈련은 예비역 병사들에게는 가위질로도 도려낼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다. 하루 종일 군화 속 언 발을 동동 굴려 봤거나 새벽녘 차가운 서리에 맞으며 잠이 깨어 본 사람이라면 찬 바람이 부는 계절만 와도 당시 기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혹한기 훈련은 겨울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지만 영하의 기온에, 씻지도 배불리 먹지도 심지어 제대로 ‘싸지도’ 못하는 극한 상황에 놓인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존 전쟁이다. 때문에 예비역들은 패기 넘치게 전 훈련과정을 소화하고도 시쳇말로 군대 생활 최고의 ‘개고생’으로 혹한기 훈련을 기억하기도 한다. 본지 여기자는 엄동 속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병사들의 노고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혹한기 훈련에 직접 참여했다. 17일부터 훈련 중이던 30사단 91여단 소대에 합류해 병사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을 받고 텐트에서 자며 혹한기 훈련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왔다. 훈련 내용을 2편에 걸쳐 연재한다. ◆ 군사훈련, 생애 두번째 경험 <첫째날 오전 9시 30분> 천하의 미실도 예측 못한 기습적인 한파였다. 달력에 표시된 훈련 날짜가 다가올 수록 기온은 매섭게 내려가더니 취재 당일인 18일이 되자 급기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 오전 9시 께 경기도 파주에 있는 야전지휘소에 도착했을 때 기온계 수온은 영하 10도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홍성우 대령은 “날짜를 제대로 잡고 오셨다.”며 호탕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겼다. 전날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는데 이날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인터넷 고무신 카페인 ‘짬밥같이먹기’ 회원들이 적극추천한 대로 내복 두 벌을 껴입고 핫팩 여러 개를 준비했지만 추위에 대한 공포에 벌써부터 턱이 덜덜 떨렸다. 이날 기자는 생애 두번 째로 군복을 입어봤다. 지난 10월 부사관 훈련학교에서 취재 차 유격훈련을 받았을 때에 이어 두번째 하는 경험이다 보니 이번에는 꽤 능숙하게 갈아 입을 수 있었다. 남자 동기들에게 그 장점에 대해 익히 전해 들었던 군용 점퍼인 일명 ‘깔깔이’를 입어보니 생각보다 재질이 부드럽고 보온력도 뛰어났다. ◆ 병사들과의 떨리는 대면식 <오전 10시> 야전지휘소에서 정훈 장교인 이선경 중위와 함께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무건리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소대원들과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수색 정찰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3면을 감싸고 있는 훈련장에서 5분 여를 기다렸을까. 야수의 울음소리처럼 묵직한 굉음을 내며 장갑차 넉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 위용을 드러냈다. 장갑차 한 대당 1개 분대 9명씩, 서른 명 남짓한 병사들이 장갑차에서 내렸다. 얼굴에 위장을 한 병사들은 목도리와 귀마개, 두꺼운 장갑 등으로 추위에 맞선 모습이었다. 소대를 이끄는 윤용훈 중위와 인사를 나눈 뒤 병사들과 덜리는 첫 대면식을 가졌다. 남동생과 같은 건강한 청년들을 보니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영하의 추위도 녹일 것 같은 병사들을 뜨거운 눈빛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걸 느꼈다. 간단하게 소개를 마친 뒤 분대장인 김영진 병장의 도움을 받아 얼굴에 위장크림을 발랐다. 요즘 부쩍 는 눈가의 주름이 신경이 쓰였지만 얼굴을 삼색으로 칠하니 진짜 군인이 된 것 같은 사명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 날다람쥐처럼 뛰어오르고 싶었으나…<오전 10시 30분> 곧바로 이어진 임무는 야산 수색이었다. 세워둔 장갑차 바로 앞에 서 있는 야산을 민첩하게 수색해 물론 가상이지만 적군을 찾아내는 것이 훈련 목표다. 고등학교 2학년 체력장 때 세운 17초 대의 100m 달리기 ‘공식’ 기록으로 늘 큰소리 쳐왔으니 스피드만큼은 다른 병사들에게 질 수 없었다. 다른 병사와 5m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상체를 낮춘 자세로 신속하게 정상까지 수색하는 것이 관건이다. 생각 같아서 날다람쥐처럼 폴짝폴짝 산을 타고 싶었으나 과도하게 옷을 껴입은 탓에 딱 추억의 개그코너 ‘큰 집 사람들’처럼 뒤뚱거리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서리를 잔뜩 머금고 얼어버린 낙엽을 밟고 미끄러지는 굴욕을 맛봤다. ‘뛰다→넘어지다→일어나다→뒤뚱거리다’를 반복한 지 얼마 안되서 몸이 달아올라 뜨거워 졌다. 불과 30분 전만해도 턱이 흔들리도록 떨었는데 추위도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을 정복(?)한 뒤 다시 추억의 ‘큰 집 사람들’처럼 뒤뚱거리며 내려오니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찬 공기가 목구멍으로 전해지자 더운 날씨 속에 받았던 유격훈련과는 또 다른 상쾌함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 전투식량으로 한 끼 <오후 1시> 임무를 마치고 다시 장갑차로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조종수 1명과 병사 2명이 검게 칠한 얼굴에서 유독 하얗게 보이는 눈을 굴리며 장갑차 주변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배고픈 병사들의 지친 기색을 눈치챈 소대장은 “점심 전까지 낙엽이나 갈대로 장갑차를 위장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장갑차 위장을 마치니 배의 꼬르륵 소리는 좀 더 커졌다. 배고픔이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던 기자는 점심 메뉴가 잡채밥이라는 소리에 한층 더 흥분해 3일 배를 곯은 짐승처럼 눈을 이글거렸다. 뜨거운 물을 붓고 몇 분이 지나니 마술사가 마법을 부린듯 딱딱했던 봉투 안 내용물이 한 끼 식사로 변해 있었다. 한 입 떠서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는 잡채밥 속 잡채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짭짤한 양념을 밥에 비벼 먹을 만 했다. “양이 많으니 못 먹겠으면 두 끼에 나눠 먹어도 된다.”는 정훈 장교의 조언을 사뿐히 넘기고 “맛있다.”를 연발하며 게 눈 감추듯 먹으니 병사들은 “체력은 몰라도 식성은 하나는 군대 체질”이라고 농을 던졌다. 전투식량을 가뿐하게 비우고 나니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절실하게 생각났다. 아쉬운 대로 냉수로 목을 축여야 겠다는 생각에 미리 채워온 수통 뚜껑을 열었더니 물이 꽝꽝 얼어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까부터 병사들이 “수통에 물 얼지 않은 사람 물 좀 달라.”며 열심히 물 동냥을 하던 이유가 있었나 보다. ◆ 장갑차 기동 훈련 <오후 2시 30분> 점심 식사를 모두 마치자 혹한기의 불청객인 한기가 찾아왔다. 훈련할 때 등과 발 등에 났던 땀이 차가운 바람에 식자 엄청난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전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군화 속 발은 꽝꽝 얼어 감각이 없었고 너무 움츠렸던 나머지 어깨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부위가 뻗뻗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기동 명령이 떨어졌다. 전 병력이 또 다른 진지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일반 보병은 걸어서 이동해야 하나 기계화 부대는 장갑차를 이용해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다. 훈련 받는 병사 입장에서야 지옥 같은 행군을 피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지만 홍성우 대령에 따르면 장갑차로 인한 불의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더욱 철저한 정신 훈련이 필요하다. 전 대원이 탑승했다고 확인되자 다른 기계화 보병 소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다른 진지로 이동했다. 소대장은 특별히 부조종수 자리를 초짜 병사인 기자에게 내주는 배려를 해줬다. “아마 얼굴이 많이 따가울 겁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조종수인 차원석 병장이 장갑차를 조종하자 비교적 좁은 장갑차 안에는 동굴 속 메아리처럼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언 땅 위를 움직이다 보니 장갑차는 요동 쳤고 그 안에 있는 병사들 역시 손잡이를 붙잡고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부조종수는 장갑차에 몸을 반쯤 뺀 상태로 주변 상황을 주시하며 특별한 무전 마이크로 조종수에게 말해주면 되는데 장갑차를 타보기는 커녕 두눈으로는 처음 본 기자는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즐겼다. 뒤늦었지만 본분을 잊었던 점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하고 싶다. 파주=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동영상=김상인 VJ bowwow@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佛 브루니·英 윌리엄의 선행 한파로 얼어붙은 유럽 녹이다

    카를라 브루니(42) 프랑스 대통령 부인과 윌리엄(27) 영국 왕자의 ‘노숙자’와 연관된 선행이 한파로 얼어붙은 유럽에 훈훈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브루니는 자택이 있는 파리 도심 16구에서 만난 노숙인 데니스(53)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어 화제다. 그는 8살인 아들 오렐리앙을 학교에 바래다주다가 길에서 데니스를 만난 뒤 친구가 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데니스는 프랑스 연예 주간지 클로저와의 인터뷰에서 “브루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50유로나 100유로짜리 지폐를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종종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브루니는 자신의 최신 음악앨범에 사인을 한 뒤 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니스는 “브루니가 다음 앨범에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친절한 브루니는 추운 날 길에서 잠을 자야 하는 데니스를 딱하게 여겨 한달 동안 호텔에서 머물게 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데니스는 “노숙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삶의 방식이 있기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대신 브루니가 선물한 군용 모포로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우정은 브루니가 노숙자들이 발행하는 잡지 머캐덤과 인터뷰를 하면서 알려졌다. 브루니는 이 인터뷰에서 “노숙자들의 의지를 거스르면서 그들을 도울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데니스는 “브루니와 친구가 된 뒤 경찰들이 더이상 성가시게 굴지 않는다.”면서 “아무래도 그가 경찰에 민원을 넣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는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지난 15일 밤 런던 템스강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근처에서 노숙 체험에 나섰다. 청소년 노숙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이날 윌리엄 왕자는 노숙인을 돕는 시민단체 센터포인트 운영자 세이 오바킨과 개인비서만 동행한 채 골목길 쓰레기통 뒤에 자리를 잡았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종이박스를 이불 삼아 몸을 누인 윌리엄은 밤새도록 찬 바람에 시달렸다. 새벽녘엔 청소차에 치일 뻔하기도 했다. 윌리엄 왕자는 “빈곤, 정신질환, 마약 및 알코올 의존, 가정 해체 등이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면서 “내가 노숙자 문제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2012년 런던 패럴림픽서 애국가 울릴래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서 애국가 울릴래요”

    “수영천재 펠프스를 이긴 독일의 비더만 선수처럼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애국가를 울리겠습니다.” 23일 오후 인천의 한 실내수영장. 박성수(17·혜광학교)군이 힘차게 물살을 가른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눈이 아닌 온몸으로 보며 물살 헤쳐요” 박군은 언뜻 봐서는 정상인과 다름없다. 하지만 10㎝ 앞 사물을 겨우 분간할 정도로 ‘준맹(準盲·안경을 쓰고도 시력이 0.3에 이르지 못하는 정도의 시력 장애)’이다. 박군은 팔 뻗으면 닿을 거리의 수영장 벽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열살 때부터 익힌 물살 세기와 팔 젓는 횟수를 세며 매번 정확히 턴 지점을 찾는다. 어머니 최영임(48)씨가 박군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 것은 임신 8개월째. 담당 의사는 “태아의 뇌에 종양이 있어 위험하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고 단단히 일렀다. 그렇지만, 최씨는 첫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성수군을 얻은 기쁨도 잠시. ‘뇌량이형성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는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박군은 다른 아이보다 두 배는 무거운 머리 때문에 첫 돌이 지나도 제대로 걷지 못했고, 무릎 관절과 발목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일년 내내 깁스를 해야 했다. 그래도 최씨는 성수군이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게 신기하고 고마워서 눈물을 삼켜야했다. 박군이 여덟 살 무렵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했다. 코 앞 사물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계단에서 넘어져 이마를 다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몸이 굳고 앞도 볼 수 없는 박군을 어떻게하든 살려보려고 최씨는 수영장을 찾았다. 걷는 것 조차 힘들어하던 박군은 물속에서 가벼워진 몸 덕택에 땅에서보다 잘 움직일 수 있었고, 곧장 물과 친해졌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던 기억탓에 ‘수영만큼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각오로 밤낮으로 연습했다. ●“시각장애인 돕는 선생님 되고 싶어” 피나는 연습은 지난해 전국체전 3관왕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고 지난 여름 미국에서 열린 세계유소년선수권 접영 5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층이 두터운 선진국과 달리 선수 열 명이 안 되는 한국이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땅 위보다 물 속이 더 자유롭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시각장애인을 돕는 수영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희망을 밝힌 박군은 다시 물에 뛰어들었다. 글 사진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돈 많아도 가정과 건강은 살 수 없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행운의 편지’가 화젯거리다. 최초 발신자는 삼성전기 박종우 사장이다. 17일 삼성전기에 따르면 박 사장이 이 편지를 처음 쓴 것은 지난 4일. 박 사장은 임원들에게 보낸 자필 메일에서 “힘들었던 올 한해 정말 수고 많았다. 상황이 안 좋았지만 큰 성과를 올렸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열심히 하자.”고 격려했다. 이 편지가 직장인들에게 회자된 것은 메일 말미에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순 없다. 돈으로 의사를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 등 내용의 네덜란드 속담을 주변 사람 20명에게 보내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이 적혀 있기 때문. 박 사장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삼성전기 임원들은 이를 사원들에게 보냈고, 결국 삼성전기 사원들을 통해 현대, SK, 금호아시아나 등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받는 이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다. 연말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행운의 편지 내용 자체도 훈훈할뿐더러 딱딱하게 느껴지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어려운 세무용어 쉽게 바뀐다

    압날(押捺)하다→도장을 찍다, 주서(朱書)→붉은 글씨, 연부연납→연 단위 분할납부. 어렵고 딱딱한 세무용어가 쉽고 부드럽게 바뀐다. 국세청은 한자 위주의 권위적인 세무행정 및 세법 용어 356개를 알기 쉽고 명확하게 바꾸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신고안내문 등에 쓰이는 세무행정 용어는 당장 바꾸고, 법률상 용어는 내년 초 기획재정부에 관련 법 개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우선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을 납세자들이 알기 쉽게 바꾼다. 예찰(豫察)은 사전점검, 복명(復命)은 보고, 품신(稟申)은 건의, 신립(申立)은 신청으로 바꾸는 식이다. 지나치게 줄여 쓴 표현은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풀어쓰거나 명확한 단어로 개선할 계획이다. 지급조서가 지급명세서로, 업태가 영업형태로, 연부연납이 연 단위 분할납부로 각각 바뀐다. 권위적인 용어를 순화해 세무지도는 세무안내, 관허자료는 인·허가자료, 공부징취비는 공문서발급비로 각각 변경을 추진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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