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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의 신용사회/박정호(굄돌)

    미국에서 첫 근무할때 겪은 어려움중의 하나는 내가 미국사회에서 신용이 없다는 점이었다.미국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지만 크레디트카드가 없어 1백달러짜리 현찰을 내놓으면 점원이 두세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10∼20달러짜리 상품을 사고도 당연히 크레디트카드를 내는 그들의 생활습관으로서야 1백달러짜리 고객은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크레디트카드를 내고 1년쯤 지나서부터는 크레디트카드를 발급해주겠다는 카드회사의 요청이 몇건씩 몰려와서 즐거운 고민도 해야했지만 미국은 확실히 고도의 신용사회라는 인상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도 크레디트카드가 번성하지는 않은 편이며,소액은 역시 현금지불이 선호되고 있다.그러나 일본에서는 크레디트카드 보다도 더 귀중하게 취급되는 신용의 심볼­「고객의 얼굴」이 있다.단골술집에서 손님은 청구액을 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고,주인은 바가지 씌우는 일 없이 월말 청구,결제하는 방식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조금 더 발전하면 사인조차 하지않고 손 한번 흔들고 술집을 나서면 그만이다. 어느 전임총리의 단골 술집에서는 그에게 다른 손님의 반값정도 밖에 술값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이유인즉 30년 이상의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라는 것. 남을 속이면 자신의 신용이 추락하고 이에따라 「나카마 하즈레」(동료에게 따돌림을 받음) 신세가 되면 지역사회에서 발붙일 터전이 없게 된다.일본인들은 이같이 지역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신용에 흠이 가는 언행은 가급적 절제를 하는 편이다. 미국이 컴퓨터에 의한 평가를 바탕으로한 신용사회라면 일본은 이웃이나 지역사회에 의한 평가가 더욱 중시되는 신용사회라는 인상이다.이제 우리도 전세계 조사대상국 1백67개국중 국가신용도 27위(유러머니지 94년3월 발표)를 보다 상위권으로 올려놓도록 힘을 기울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 연립주택 식수탱크에 농약투입 30대 여영장

    【남양주=김명승기자】속보=경기도 남양주경찰서는 2일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식수탱크에 농약을 뿌린 정해연씨(39·여·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699의1 삼성연립 다동 101호)를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씨는 평소 이웃에 따돌림을 받은데 앙심을 품고 지난달 28일 하오6시쯤 자신이 사는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삼성연립 다동 옥상의 식수탱크에 나방살충용 농약 1천g을 뿌린 혐의를 받고있다.
  • 조회찬씨(진보 정당추진위대표)의 체험적 학생운동 비판

    ◎“주사파 친북통일운동은 시대착오”/“국민의 지지 못받는 통일운동 가치없어/북인권 눈감으며 독재노선 추종은 모순”/사회주의 체제가 낙원아님은 동구몰락으로 증명 『맹목적인 김일성주체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주사파 학생들은 이제 케케묵은 이념의 틀을 깨고 새롭게 거듭 나야 합니다.변화를 두려워한 노동·학생·통일운동은 이제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노동자 계급의 전위정당 결성을 통한 민중혁명으로 사회주의정권 창출을 꿈꾸며 학생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던 노회찬씨(39).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인 그는 『국민적인 지지가 없는 학생운동·통일운동은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며 『최근 일부 주사파학생들의 친북통일운동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태풍 더그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10일 하오 1시 서울 마포구 서교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노씨는 소탈하게 인사를 나누자 담배를 피워 물고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었다. 『기존의 학생·재야단체의 노동·학생·통일운동이 실패한 것은 친북적인 이미지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거슬러 올라가면 재야운동권의 일부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시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노대표는 최근 「주사파의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는 서강대 박홍총장의 발언과 관련,『주사파 학생들이 북한의 민주화·인권문제등은 도외시하거나 옹호·방관하면서 북한 노동당의 입장이나 정책을 비판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다』고 비판했다. 『주사파 학생들의 무모한 주체사상 몰입이 결국 재야 운동권전체가 친북성향의 통일운동을 하는 것으로 치부됐으며 순수한 통일운동세력들마저 국민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겁니다』 통일운동에 대한 균형있는 시각과 객관적인 관점만이 국민들의 호응을 얻는다고 강조하는 노대표는 주사파 학생들의 낙후된 의식,즉 「가자,오라」는 등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감상적인 통일논리,범민족대회의 비순수성등이 기존 통일운동에 염증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80년 노동운동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해 노동운동을 하다 89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돼 92년 출소한 경력이 말해주듯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했던 노대표가 기존의 사회주의 노선에 나름대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 것은 89년부터.폴란드·루마니아등 동구권 국가와 구소련의 사회주의 몰락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기존의 노동운동에 자체반성을 하게 됐다는 것.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동구권에 불어닥친 민주화바람은 사회주의가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죠.사회주의는 일당독재로 점철됐고 부의 공평한 분배도 제대로 안됐다는 사실에 시민들이 분노하고 항변했던 것입니다』 노대표는 불행히도 우리나라 대학가만이 이데올로기에 파묻혀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민간통일운동의 활성화와 정부규제의 완화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정부당국의 무분별한 공권력투입이 오히려 주사파들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때문에 비주사파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사파에 끌려다니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근 통일운동을 위한 순수민간단체들의 잇따른 발족과 관련,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통일만 되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무조건 만나고 보자」는 감상론적 통일논의에 쐐기를 박는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념적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국민적인 참여를 유도해 공개적인 지지를 받고 룰에 의해 심판받는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92년 4월 민중당의 해체와 동시에 발족된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노대표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맹종하는 주사파는 조만간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분단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건전한 통일운동을 위한 제도와 정책대안마련에 혼신의 힘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남총련 무법행각 언제까지/최치봉 전국부기자(현장)

    ◎열차 강제정차 2번째… 동료 빼돌려 23일 하오3시30분 전남대정문으로부터 5백여m쯤 떨어진 광주시 북구 신안동 신안철교위.이 학교 학생 대여섯명이 붉은색 깃발을 흔들며 철로로 뛰어올랐다. 시속 80㎞ 속도를 내며 광주역으로 진입하던 서울발 광주행 제257 무궁화호열차(기관사 김종철·50)는 1㎞ 전방에서 이들을 발견하고 급제동,열차의 속도가 떨어지자 객차문이 열리고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뛰어내렸다.이들은 지난 18일 서울 홍익대 폭력시위와 송정리역 인근 열차강제정차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중인 전남대 총학생회장 진재영군(23·남총련 부의장)등 32명의 남총련 간부와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전남대정문에서 학생들의 시위를 막고 있던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근을 지나 대학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남총련이 이날 진군등 간부들을 구출하기 위해 펼친 「작전」시간은 5분도 채 안걸렸다. 이번 사건은 지난번 송정리 열차강제정차사건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는 상황아래서 또다시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남경찰청은 지난 19일부터 서울 홍익대 폭력시위등을 주도한 남총련소속 대학생을 검거키 위해 광주톨게이트·터미널등에 2백여개의 임시검문소를 설치했다가 23일부터 병력을 철수했다. 그동안 전북대등지에서 피신해오던 전남대총학생회장등 30여명은 경찰의 검문이 허술해지자 하오3시30분쯤 광주 도착예정인 무궁화호열차를 전북 이리역에서 아무 제지없이 올라탔다. 이들의 광주도착 1시간여 앞선 하오2시쯤부터 조선대생 2백여명과 전남대생 4백여명은 각각 광주지검앞과 전남대정문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미 학생들이 흘린 정보에 따라 전남대주변에 4개 중대,지검앞에 2개 중대를 배치,학생들의 시위에 대비하고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이 미리 구상한 병력분산계획에 의해 철저하게 따돌림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애정을 갖고 학생들을 대하려 하지만 이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를 더이상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경찰고위간부의 말처럼 남총련행동의 비순수성을 엿보게 한 또하나의 사건이었다.
  • 여야­당정관계 호전 “민자 기지개”/「무기력증」 벗어나는 민자

    ◎잇단 악재 떨치고 국조타결 계기 자신감 장기간 무기력 증세에 빠졌던 집권당이 5월중순을 넘기면서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거듭되는 악재로 야당에 치이고,잇단 당정갈등으로 정부쪽에서도 홀대를 받았던 민자당이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의 물꼬가 트이면서 전반적으로 자신감과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의 지난 4월은 그야말로 악몽의 한달이었다.지난 3월11일 청와대 영수회담을 계기로 여야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뒤 상무대 공사대금의 정치자금 유입의혹,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정을 둘러싸고 터진 이행계획서수정파동,사전선거운동 시비,북한핵 관련 외교의 혼선,이회창전국무총리 사퇴파동등 악재가 끊임 없이 이어져 여권 전체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집권당으로서의 자신감과 권위를 상실하고 세월만 보내야 했다. 5월 들어서도 이같은 무기력증세는 계속 이어져 야당의 공세에 따라 대변인단이 교체되고 「농안법」시행 유보결정 때는 정부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설움도 맛봤다. 그러나 이제 한고비는 지나갔다.무엇보다 한달넘게 끌어온 국정조사의 실현으로 꼬인 여야관계가 풀려가고 있다.특히 여야 동반자 관계를 강조한 민주당 이기택대표의 19일 발언은 민자당에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해주고 있다. 고질병처럼 돼버린 당정갈등의 치유전망도 어둡지 않다.당정은 최근 김태수전농림수산부차관의 기자회견 발언을 둘러싸고 한때 감정적 대립상태에까지 이르렀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정이 짜고 한 콤비플레이처럼 사태를 수습했다. 민자당은 특히 당에 대한 청와대의 사기진작 제스처에도 크게 고무돼 있다.김영삼대통령은 지난 16일 신임 대변인단을 청와대로 부른데 이어 초·재선의원들을 잇따라 청와대로 불러들여 당의 바닥여론을 듣고 분발을 당부하고 있다.민자당은 이를 대통령의 당에 대한 기대 표시와 분발 주문으로 해석하며 아울러 정국운영의 당주도를 강조한 지난달 말의 언급이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19일 문정수사무총장이 김도언검찰총장에게 보낸 항의성 유감표명 전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문총장은 전화에서 「농안법」 관련 정치권 로비의혹이제기돼나온 진원지를 따지며 검찰의 수사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자당은 연초 국가경쟁력의 강화라는 기치아래 정기전당대회를 연기하는등 정치보다는 국정전반의 생산성강조에 비중을 두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의 왜소화가 결국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따라서 문총장의 발언은 이같은 민자당의 정치력 복원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 가락시장의 난맥상(심층분석/농수산물유통)

    ◎낙찰가 조작… 수수료 탈세 “비리투성이”/「출하촉진」 농안기금 대출… 운영비 전용/중매­매참인 추천땐 수천만원 “뒷돈”/도매법인/경매사­중매인 결탁,불법낙찰도 일쑤 도매시장의 생명은 공정한 거래에 있다.그날의 표준농산물가격을 결정하는 특수한 기능을 갖고 있는 가락도매시장은 이점이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공정성을 해치는 요소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우선 경매사부조리를 꼽을 수 있다.경매사는 공정거래를 실행하는 최일선의 일꾼이다.「도매시장의 꽃」으로 모든 경매농수산물의 가격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경매를 실시할 때의 우선순위결정은 물론 호가때의 출발가격등을 마음대로 정한다.도매시장이 법정이라면 법관과 같은 위치에 있다. ○경매사횡포 극심 이처럼 막중한 공적임무를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분은 지정도매법인의 말단직원으로 돼 있다.더구나 하오7시부터 하루 12∼15시간씩 근무하는 열악한 근무조건은 이들을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한다.바로 여기서 일부경매사의 횡포가 시작된다. 가장 일반적인 부조리는특정중매인과의 결탁.품질이 좋은 물건이나 품귀현상을 빚어 중매인들끼리 경쟁이 치열한 품목을 특정중매인에게 밀어주고 금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낙찰자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도 경락받지 못한 중매인이 나중에 항의하면 『가격표시손가락을 못봤다』 『손가락을 늦게 냈다』며 오히려 핀잔만 준다. 특정경매사와 특정중매인이 유착된 것을 아는 사람은 대충 알지만 불이익을 의식해 그냥 넘어가고 만다.출하초기에는 좋은 가격을 유도했다가 성수기에는 형편없는 가격으로 깎는 「후려치기」수법도 성행한다.주로 법인간에 물량확보경쟁을 벌일 때 사용되고 있다. 경매사가 소속된 법인의 간부가 제3자의 이름을 빌려 출하한 경우엔 「마음먹은 가격」만큼 중매인들의 호가가 나오지 않으면 「더 불러」소리가 노골적으로 나오기도 한다.심한 경우 출하원표를 조작해 낙찰가를 수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사들의 비리가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따져봤자 불이익만 돌아오기 때문이다.한 품목의 경매를 한시간안에 끝내기 위해 평균 2∼3초에 한건씩 경매를 빨리 진행해야 하는 실정이다.중매인들의 「합법을 가장한 범죄」는 「야구심판의 오판」정도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이에 끝까지 반발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잘못보이면 끝장 서울가락동도매시장 D청과 소속의 중매인 강모씨(63)의 경우가 대표적이다.강씨는 지난해 월평균 2천5백만원의 경매실적하한선을 채우지 못해 중매인자격을 박탈당해 행정소송을 내놓고 있다.월2천5백만원의 경매실적으로는 수수료수입이 5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마저 채우지 못했다.경매사들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래 경매사들에 대한 중매인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으나 서울시의 조치는 극히 미온적이다.『행정소송이 들어오면 복잡해진다』며 관리공사에 「재검토」지시를 내리고 대부분 유야무야된다는 것.현재 가락시장에는 1백89명의 경매사가 있다.5개 청과법인에 1백43명,3개 수산법인에 46명등이다.90년부터 도매시장관련 법규로 치르는 자격시험을 통해 배출되고 있으나 「과일및 채소감별사」란 별명이 말하듯 오랫동안 시장바닥에서 익힌 경험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록상장」 관례화 더욱 폐해가 심한 것은 도매법인이다.불법위탁거래과정에서 얻는 수수료수입만도 엄청나다.이른바 「기록상장」을 통한 것이다.규격화·포장화가 덜된 탓도 있지만 경매를 통하지 않고 도매법인과 중매인이 짜고 상장경매를 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도매법인은 가락시장관리공사에 내는 시장사용료(0.5%)는 제대로 내지 않는 반면 출하농민으로부터는 시장사용료보다 2∼3배나 많은 1∼1.5%의 수수료를 강제로 징수해 나눠먹고 있다.53개 경매품목중 수박·멜론과 고구마·감자·양파등과 파슬리등 양채류가 대부분 이같은 서류조작으로 거래된다.기록상장때 주로 쓰는 수법은 실제거래가보다 시세를 크게 낮춰 거래금액의 6%인 상장수수료부담을 덜어주는 것.법인이 산지수집의 대가로 중매인들을 봐주는 셈이다.반입물량을 절반이하로 속이기도 한다.이때엔 반입되지 않은 물량에 대해서도 6%의 수수료를 받고는 시장사용료는 떼어먹는다. 가락시장 전체의 지난해 거래규모가 2백42만6천t에 1조6천9백40억원에 이르고 있으나 이는 실제거래량 전체의 70%에도 못미친다는 지적이고 보면 엄청난 규모의 탈세가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도매법인들은 또 출하촉진을 위해 농안기금에서 대출받은 돈의 상당부분을 내부운영자금으로 쓰고 있다는 것.지난해 출하촉진자금이 1백73억원이었고 이중 1백33억원이 청과부에 배당됐으나 도매법인이 개설했다고 신고한 산지출장소를 보면 농협 1천4백54곳을 제외하면 중앙청과 5곳,동화·한국청과 3곳,서울청과 1곳뿐인 점으로 미뤄봐도 출하촉진에는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중매인들의 부실채권을 방지하기 위해 부동산담보채권외에 최소 6천만원의 거래보증금을 예치하도록 해놓고는 이를 운영자금으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이자조차 중매인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농협공판장만 예외다. ○임대계약 횡포도 도매법인은 가락동공사와 건물일괄임대계약을 한 뒤 온갖 횡포를 저지르며 더 큰 재미를 보고 있다.85년부터 지난해까지 중매인 7백25명을 실적미달·법규위반등으로 정리하고 5백37명을 새로 허가했다.가락시장주변에서는 『중매인의 추천권을 가진 법인이 최소 3천만원을 받고 중매인으로 추천해주며 중매인으로 빠져나간 매매참가인(매참인)자리를 메울 때도 엄청난 돈을 챙기며 이들은 모두 법인의 비자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파다해 국회등의 로비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농·수·축협을 제외한 6개 도매법인의 총자본금이 1백95억여원이고 주주가 1백9명에 불과한 이들 도매법인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사무실을 내줄 수 없도록 돼 있는 불법매매참가인에게 도매법인구역안의 점포를 불법임대한 것만도 중앙청과 19명,서울청과 7명에 농협공판장도 3곳으로 알려지고 있다.비허가상인들에게는 앞으로 개장될 구리도매시장이나 서남권(양천구)도매시장 개장때 중매인이나 매참인허가우선권을 따낼 수 있다며 장래(?)를 기약하며 돈을 받고 유혹,불법영업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들의 숫자만 무려 5개 청과에 1백13명이나 된다.불법매매참가인과 비허가상인을 합한 1백42명은 전체 채소중매인 6백32명의 무려 22%에 이르는 것으로 가락시장은 무법천지인 셈이다.
  • 패션업체:1(이탈리아 중소기업탐방:1)

    ◎“다품목 소량” 주문생산으로 승부/새 상품 샘플제작 1년넘게 준비/한시즌 2백∼3백가지 모델 고유브랜드로 수출 세계와 미래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 국가경쟁력의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선진국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서울신문은 국제화·세계화를 위한 기획연재물 「일본농업탐방」에 이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이탈리아 중소기업을 집중분석하는 장기시리즈를 연재한다.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시에서 북쪽으로 1백20㎞ 떨어진 모데나 지역의 작은 도시 콘코르디아,이 곳에서 30여년간 니트 웨어만 생산해 온 바로니사는 근로자 79명으로 해마다 2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체이다. 모두 자기 상표로 생산,일본 유럽 미국 등 세계 10여개국에 수출한다.그러나 창고는 늘 비어 있다.재봉틀은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재고는 쌓이지 않는다.도매상에게 넘기기 전,하루 이틀 보관하는 게 고작이다.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할인이나 덤핑 매출을 하는 법도 없다.당연히 재무구조가 튼튼하고 새 상품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우리나라에서는 연례행사로 굳어진 정기 바겐세일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지난 66년 회사가 설립된 뒤로 이같은 경영상태에는 변함이 없다.1백% 주문으로 옷을 만드는 생산 체제 때문이다.한국의 업체처럼 일단 제품을 만들어 놓고 고객을 찾는 선생산 후판매는 일체 않는다.한마디로 「주문이 없으면 판매도 없다」.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건 이 회사뿐이 아니다.섬유수출 왕국인 이탈리아의 5만8천여 의류업체 중 베네통,GFT 등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세계적 브랜드의 메이커를 빼고는 99%가 주문생산 체제이다.그러나 주문을 받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땀을 흘려야 한다. 주문은 철저하게 완전 경쟁속에서 이뤄진다.얼굴이나 연고는 통하지 않는다.지난 시즌의 상품보다 새로운게 없으면 주문은 하나도 없다.보통 상품을 만들기 1년∼1년6개월 전부터 시즌을 준비한다.먼저 수천여 직물 업체가 참여하는 원단 전시회에서 원단을 고른 뒤 디자인을 한다.디자이너가 모델을 정하면 재단사와 재봉사는 수백개의 모델에 맞춰 한가지 샘플을 만든다. 샘플이 나오면 1월(여름옷)과 6월(겨울옷)에 열리는 피에라(전시회)에 참여,평가를 받는다.도매상이나 소비자의 눈을 끌면 지난해보다 주문이 2∼3배 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반대이다.때문에 패션 업체들은 더 많은 주문을 받기 위해 시즌마다 디자인을 다르게 하고 새로운 원단을 찾는다.여기에서 이탈리아 패션의 품질과 명성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바로니사의 경우,지난해 8월부터 올 여름 상품을 준비했다.사장인 지안카를로 바로니씨가 원단을 직접 고르면 부인 데안나와 딸 스테파냐가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든다.이 과정에만 4개월 이상이 걸린다.샘플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고 매주 원단·디자인·최근 유행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생산직 근로자도 토의에 참여,자유롭게 의견을 내놓는다.한가지라도 문제점이 지적되면 작업은 처음부터 다시 한다. 관리 담당인 안드레사 포지양은 『컬렉션에 나온 소비자나 에이전트의 눈은 생산자보다 더 정확하다. 나중에문제점이 지적되면 새 모델은 그자리에서 생명이 끝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백50가지의 새 모델을 갖고 피렌체의 「피티」피에라에 참여,주문을 받았다.지난 3월부터 생산에 들어가 올 여름 상품을 도매상에게 넘기고 있다.그러나 아무리 주문이 많아도 한가지 모델에 1백50∼2백개 이상의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같은 제품이 많으면 품질이 뛰어나도 소비자가 외면하기 때문이다.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품질도 높이고 값도 제대로 받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니 사장은 『주문의 많고 적음은 품질에 달려있다.품질은 아이디어에서 나오고 아이디어는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며 『기계는 단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그야말로 「기계」에 불과할 뿐』이라며 주문생산 체제하에서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피렌체시 동남쪽 안코나가에 위치한 여성정장 생산업체 안나 크리스티나 코스티의 코스티 사장도 『생산 라인을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그러나 전문성이 떨어져 다음 시즌에선 소비자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주민이떨어지고 생산을 못하면 회사는 문을 닫게 된다』며 『오랫동안 여성 정장만 만들었기에 고객으로부터 인정받고 품질도 높일 수 있는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시장조사,판매량 구축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게다가 전문성도 모자라 생산성도 떨어진다는 얘기이다.결국 더많은 주문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이 전문성도 높이면서 품질도 낫게 했다는 것이다.지난 59년 가내 수공업으로 출발,35년간 여성 정장만을 고집한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티 역시 1백% 주문생산을 한다.처음 의류 하청업체로 출발,20여년간 여성 정장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뒤 지난 86년 딸 크리스티나와 사위 알렉산드로를 경영에 끌여들였다.이탈리아 기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족 경영을 통해 화합을 다지면서 인력을 최소화했다.총 근로자는 40명,이중 관리직은 코스티 일가를 포함해 1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 1월 밀라노 피에라에 2백가지 모델을 갖고 참여,99% 주문을 받았다.지난해 매출은 35억원,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내다봤다.딸과함께 디자인을 맡고 있는 사장 부인 크리스티나씨는 『한가지 일을 오래 하면 의문점이 많이 생긴다.새로운 의문점을 해결할 때마다 품질은 개선된다』며 『특히 섬유업은 디자인을 비롯해 원사나 원단,유행 등 여러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피렌체 섬유연합회 간부로도 일하는 알렉산드로씨는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이나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은 적은 없다.치열한 경쟁속에 안정 경영을 유지한게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한가지 보탠다면 임금상승률이 연5% 남짓인 물가상승률을 밑돈 것도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바로니사나 안나 크리스티나 코스티사의 생산직 근로자 월 평균 임금은 60만∼70만원(세금과 보험료 연금 포함하면 1백20만∼1백40만원)으로 최근 10년간 임금 상승률이 3%선을 유지했다. 지난 50년대말까지 영국과 프랑스,미국 등 선진국의 섬유 하청국가였던 이탈리아가 30여년만에 패션 왕국으로 발돋움 한데는 디자인,염색,가족 경영 등 여러가지가 거론된다.그 중심에는 늘 주문생산이 버티고 있다.이탈리아 섬유산업협회장 안젤로 파비아씨는 『이탈리아의 패션은 수많은 중소업체가 이끌어간다.이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끊임없는 개발을 한다. 그 배경에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주문 생산이 있다.이것이 바로 이탈리아 패션의 경쟁력이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어떤 나라인가/92년 1인소득 2만1천달러/섬유·가구등 산업 지역별 특화 국토 면적은 30만1천2백77㎢로 우리나라(남북한)의 약 1.36배이며 인구는 6천여만명이며 인구는 6천여만명이다. 주산업은 관광과 공업·농업으로 밀라노 중심의 북부 공업지역과 로마·나폴리 등 남부 관광·농업지역으로 나뉜다. 공용어는 이탈리아어이며 북부의 독일계,프랑스계,오스트리아계,슬라브계 등 소수 민족은 자주 말을 쓴다. 종교는 로마 카톨릭의 본산지답게 99%가 카톨릭 신자이다. 통치 형태는 대통령제이며 임기는 7년으로 연임 가능하다. 국회는 상하 양원제다. 지난 92년 국내총생산(GDP)은 1조1천2백20억달러로 세계 5위이며 1인당 GDP는 2만1천달러로우리나라의 3배 수준이다. 수출은 93년 1천5백21억달러,수입은 1천3백77억달로로 무역수지는 80년대 이후 처음 1백44억달러(잠정치)의 흑자를 냈다. 산업은 지난 50년대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하청을 받는 수준이었으나 50년대말 경제개발 정책을 적극 펴 산업을 지역별로 전문화됐다. ▲섬유·의류는 밀라노,피렌체,비첸차 ▲식품은 쿠네오,나폴리 ▲금속기계는 토리노,볼로냐 등으로 특화됐다. ▲피혁제품은 피렌체,피사,안코나 ▲가구는 밀라노,페스카라 등이 유명하다. 1주일에 40시간만 일하며 사무직 근로자의 급여는 연평균 1천6백만∼2천5백만리라(8백만∼1천3백만원)이다. 우리나라와는 1884년에 한·이수호통상조약을 맺었으며 6·25 전쟁때는 68적십자 부대를 보냈다. 지난 59년 공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됐다. 지난 92년 대한수출은 8억7천만달러,수입은 13억4천8백만달러였다.
  • 놀이:상(서울 6백년 만상:13)

    ◎대보름밤 광통교엔 다리밟기 인파/고려때 전래… 밤새도록 “액막이 긴행렬”/삼문밖­아현 편갈라 만리현서 돌싸움 한양의 정월 대보름 밤은 장안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다리밟기」(답교)행렬로 절정을 이루었다.쟁반같은 둥근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도성의 남녀들은 운종가(종로)의 종루로 몰려들어 인경소리를 들은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이 깊도록 다리를 밟았다. 「이날 다리(교)를 밟으면 한햇동안 다리(각)의 병을 앓지않고 건강하게 지낼수 있으며 액운도 면할 수 있다」는 민속신앙에서 출발한 다리밟기는 고려때부터 정월 보름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으나 한양과 그 주변일대가 가장 대표적인 중심지였다.특히 광통교(지금의 광교부근)와 수표교(청계천2가부근)주위는 몰려 나온 도성안 백성들로 크게 붐볐으며 밀려드는 인파로 3일동안 계속될 때도 적지 않았다.이날만은 도성의 통금이 해제될 정도로 다리밟기의 참여도는 높았다. 지금의 석촌동일대에선 한달 내내 다리를 밟았으며 마포·노량진·살곶이다리·장안동·뚝섬·송파일대에선탈춤과 농악놀이·무동춤이 어우러진 신명하는 축제의 한마당을 벌였다. 옛 기록들은 『자신의 나이대로 또는 12달을 상징해 12개의 다리를 밟으려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밤을 지새웠다』고 적고 있다.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도 장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채 외간 남자들과 줄을 서서 극성맞게 다리를 밟았다.때문에 풍기문란시비가 일어 한때 법으로 금지한 일도 있었다. 사대문 안팎에서 유행했던 「편싸움」도 다리밟기와 함께 한양의 대표적인 놀이로 꼽힌다.일명 「돌싸움」(석전)으로 불린 이 놀이 역시 정월 보름을 전후해 성행됐다.마을과 마을,지역과 지역간에 집단적으로 행해진 편싸움은 하천을 사이에 두거나 서로 백여보가량 떨어진채 상대방에 돌을 던지며 상대방의 진지로 쳐들어가 상대편 마을어귀에 서 있는 당나무까지 도달하면 승부가 갈렸다.돌은 밤알보다는 작아야 했고 상대방의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는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이를 어긴자는 그 지역에서 따돌림당하는 사회질서교육기능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아침무렵 열서너살 안팎의 어린아이들의 편싸움으로 시작돼 정오무렵 젊은이들의 대결로 이어져 하루종일 진행됐다.저녁무렵엔 돌에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의 상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상대편과 어울려 잔치판을 벌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경도잡지는 『삼문(동·서·남대문)밖과 아현(아현동일대)사람들이 때를 이루어 패를 나눈다음 만리현(공동덕동부근)에서 돌 던지고 고함자르며 달려들어 석전을 벌인다.삼문밖편이 이기면 경기도에, 아현쪽이 이기면 다른 도에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는데 용산과 마포쪽 젊은이 작당해 아현쪽을 돕는게 상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중상자가 속출했던 이노리는 4대문 4소문 안팎과 만리현·우수현(도동∼후암동부근 )등에서 가장 성행했다.. 고구려,신라등에서 연원을 찾을수 있는 편싸움은 집단의식을 드높인다는 이유로 일제에의해 금지되기도 했다. 재담과 창등이 결합된 가면극의 하나인 「산대놀이」도 당시 한양에서 성행했다.32개탈이 어우러져 12마당을 이루는 송파산대놀이가 대표적이었으며 구파발,노량진,애오개(아현동일대)등도 산대놀이패가 거주하면서 정월대보름,사월초파일,단오,칠월백중등에 「장」을 열어 인기를 끌었다.굿중패,남사당패라 불리는 직업 유랑연예인들에 의해 공연됐던 전통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일명 박첨지놀음·홍동지놀음)도 사대문안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조선이 유교를 숭상했지만 사월초파일에 등을 켜서 복을 비는 관등놀이는 고려때의 연등회를 이어 커다란 민속놀이로 지켜져 왔다.용,봉황,표범,물고기,학등 갖가지 모양의 등을 만들어 종로등 각 시장에 달았고 여염집에서도 등을 달아놓고 복을 빌었다.
  • EC “환영” 일·호 “우려”/NAFTA통과 각국 반응

    ◎가·멕시코, “보호무역 철폐” 축제 분위기 ▲캐나다=로이 맥클레런 캐나다 무역장관은 이날 『미하원의 대외지향적인 태도와 보호주의 경향에 대한 거부결정을 환영한다』며 장 크레티엥 신행정부출범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대미협상에서 진전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크레티엥 신임총리는 무역보조금 규제와 분쟁해결을 위한 보다 강력한 기구운용을 요구하며 캐나다 상·하원을 통과한 NAFTA의 공식선포를 늦추고 있는데 맥클레런장관은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캐나다 업계 지도자들은 이날 크레티엥 정부에 대해 NAFTA를 조속히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멕시코=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은 이날 표결직후 방송을 통한 성명에서 『오늘의 결과는 비준을 향한 마지막 단계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적 견해에 대한 거부』라고 강조했다. 이날 멕시코 TV들은 미하원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표결상황을 직접 중계했으며 특히 미국무역회관에 마련된 대형 TV앞에 모인 멕시코와 미국의 기업가들은 찬성표가 가결정족수인 2백18표를 넘는 순간 환성과 함께 축배를 들며 기뻐했다. ▲EC=EC는 NAFTA가 미하원을 통과한 뒤 즉각 성명을 통해 이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기구의 대외문제위원장인 레온 브리튼경은 워싱턴에서 성명을 통해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고 밝히고 『나는 항상 NAFTA를 바깥세계에 대해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북미시장을 열겠다는 한 협정으로 이해해왔다』고 말했다. ▲일본=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우리나라는 NAFTA 찬성결정을 환영하며 만일 부결이 됐더라면 보호주의자들에게 승리가 돌아갈 뻔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전문가들과 업계 분석가들은 NAFTA가 일본에 미칠 영향이 불투명하다고 보는 한편 NAFTA가 자동차부문 등에 규정하고 있는 원산지규정과 관련,미국시장에서 일본상품들이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호주=피터 쿡 호주 무역장관은 NAFTA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클린턴대통령이 약속한 「측면흥정」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NAFTA의 통과가 가져오는 잇점에 가려 이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측면흥정은 무역의 시각에서 볼 때 우려를 주지 않을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NAFTA가 부결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하고 만 셈이라고 지적했다.
  • “칭기즈칸 무덤을 찾아라”/몽골·일 공동탐사작업 4년째

    ◎옛수도 아우루그 위치 확인/위성·레이더 동원… “자원 노출” 땅파기 반대 13세기중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대몽골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은 과연 어디에 묻혀 있을까.소련의 개방화와 함께 불기 시작한 몽골의 「칭기즈칸 열풍」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칭기즈칸 무덤찾기작업은 올해도 결실을 보지 못한채 해를 넘길 것 같다. 지난 4년여동안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아 사막과 초원을 누벼온 몽골·일본 두 나라의 공동탐사단은 최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올 여름까지의 탐사결과에 대한 평가회를 갖고 사실상 칭기즈칸 무덤찾기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번의 무덤찾기작업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몽골과 일본 양측간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후속 탐사계획에 적극적이어야 할 몽골측은 심드렁한 표정이고 일본측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은연중 불만의 뜻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측은 이번에 요미우리(독매)신문사가 경비를 부담,위성과 헬리콥터·지상 레이더장비 등 각종 최첨단장비를 동원했지만 지하유적 발굴의 기본이랄 수 있는 땅파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는 문화사업을 빙자해 지하 광물자원을 속속들이 파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몽골쪽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일체 굴토작업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데 따른 것이다. 조사단은 이같은 제약으로 비록 칭기즈칸무덤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수만㎦의 면적을 훑어오는 동안 약 3천5백기에 달하는 고분의 위치를 확인하고 많은 석기도구들을 찾아내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특히 몽골내 카라코람 이외의 다른 몽골제국 수도로 믿어지는 아우루그를 울란바토르 동쪽 2백50㎞지점에서 재확인했다.아우루그의 존재는 칭기즈칸이 이 부근에 묻혀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해주는 실마리로 공동조사단은 드디어 그의 무덤에 가까이 접근했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에서 몽골측이 소극적으로 나오자 일본측은 이제 자기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칭기즈칸의 무덤에는 역사와 문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 이의 발굴작업에 대한 주변국들의 관심은 지대했다.우선 내몽골 영토문제가 걸려있는 중국은 칭기즈칸무덤이 이곳에서 발견될 경우 몽골측이 이를 근거로 영토문제를 제기할 것을 우려,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더구나 칭기즈칸이 몽골인들에게는 영화와 자부심의 역사인데 반해 중국인들에게는 피지배와 굴욕의 상징이어서 그의 무덤 발견이 전혀 반가울리 없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구소련이 70년간에 걸쳐 몽골을 지배하면서 칭기즈칸의 거론조차 금지시켰던데는 민족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물론 있었지만 이면에는 슬라브족들의 뼈에 사무친 적개심도 작용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처럼 칭기즈칸의 「부활」에 대해 마뜩치 않은 표정인데 반해 일본이 적극적인데는 또 그나름의 사연이 있다.일본인들 사이에는 칭기즈칸이 12세기 말 권력싸움에서 패배한뒤 대륙으로 탈출한 무사 요시쓰미 미나모토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본국에서의 패배자가 세계를 지배했다는 이같은 속설은 일본인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여서 이 사업을 추진한 요미우리신문에는 독자들의 호기심에 영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부어지고 있다.
  • 자성과 각오 그리고 신뢰(사설)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에서의 군의 명예는 「직업」으로서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자세,즉 민주적가치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좌우된다.이는 60년대 이후 80년대말까지의 우리 정치상황 다시말해 「권력과 군부」,「군부와 권력」의 상호관계에 따라 군의 역할과 명예가 달라졌다는 사실로도 입증될수있다. 어느사회에서건 군은 국민의식과 국가사회적위상의 표상이다.그래서 군은 충직 강건해야한다.그러나 시민과 사회는 그들 군의 이미지가 무조건 강하고 용맹스럽기 보다는 지혜롭고 합리적이기를 원한다.전쟁에 임해서는 무조건 저돌적인 공격의 군대여야하지만 그 뒤안에서는 사태를 분석하고 사이를 판단하며 때로는 물러서서 차후를 도모하는 전략적 지혜를 갖춘 군을 국민은 기대한다.그런점에서 우리 군은 이제 누가뭐래도 거듭 태어나고있다.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괄목할만큼 지혜롭게 성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국민의 군대」로서의 재탄생을 다짐한 군부의 결의가 그것을 보여준다.무엇보다 『과거처럼 정치에 관여하는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것은 결코 용납하지않을것』이라는 각오와 결의에 국민들은 신뢰를 갖게된다.여기에는 과거에 대한 회오와 자성위에서 용맹강건과 함께 지혜와 여유도 아우르겠다는 불퇴전의 자세가 함축돼있다. 지나간 한 시대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한국 정치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언제나 군부가 첫째였다.그러나 군내부에서는 달랐다.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이 친척·친구등을 만나러 「사회」(시내)에 나갈때 군복입기를 꺼려할만큼 따가운 눈총을 느꼈다고 실토했던것이 그 시기였다.시민사회로부터 그들은 무언중에 따돌림을 당했다. 90년대들어 군부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국회(의원),재벌,시민단체등의 다음으로 밀려났다.군 스스로 내부지향적 임무수행에 눈을 돌리고 과거를 반성하게됐다.오늘 우리 군의 결의는 그 자성과 회오의 값진 소산이다. 군 내부로 눈을 돌릴때 오늘날 국내외적 정치안보정세의 변화보다도 실제로 직업군인들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것은 진급,보직,처우 그리고 사회적 명예문제라 할수있다.일부 정치군인들을 비롯하여 그 「하나회」와 「알자회」등등이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얼마나 훼손시켰는지는 이제 그들보다 국민이 더 잘 알게 됐다. 군인이란 직업은 속세의 복잡한 관계를 떠난 탈속성,생사를 건 위험성,규율과 명령이라는 부자유성을 감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더 존중된다.따라서 군이 세속적 이익추구에 몰입할때 그런 덕목은 깨지는 것이다.오늘 군의 제2창군의 각오는 오랫동안 훼손돼온 명예와 긍지의 복원이며 잃었던 덕목에의 회귀이다.그래서 더욱 값지고 마음 든든한것이다.군에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 대만 국민당/총통선거 내년 조기 실시

    ◎민진당 집권 저지·「홍콩이양」대비/이등휘 연임 노려/정권연장 시비 등 정국파란일듯 【홍콩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은 날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민진당의 집권을 막고 오는 97년 홍콩의 중국이양을 앞두고 당초 96년으로 예정돼 있는 총통선거를 2년 앞당겨 내년에 조기실시, 이등휘 현총통을 연임시키려 계획하고 있다고 홍콩의 중립적 권위지 명보가 28일 보도했다. 명보는 이등휘 총통의 측근인사가 96년에 선거가 실시되면 중국과 대만간의 양안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홍콩의 중국이양 1년전에 지도자가 교체돼 대륙정책에 영속성이 없게되고 더욱이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이 만약 집권하면 대만에 최대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이에 따라 내년에 총통선거를 조기실시해 이등휘 총통이 이번 제14차전당대회에서 통과된 4년제 임기에 따라 98년까지 계속 집권하면 97년 홍콩이양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통 조기선거는 헌법 개정권을 가진 국민대회가 헌법을 수정해야 가능한데 국민당의 이같은 계획이 알려짐에 따라 앞으로 대만정계는 ▲연임 및 집권연장 시비를 비롯 ▲총통직선여부 등 개헌시비 ▲따돌림을 받은 민진당의 정치공세 등으로 일대파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 수하르토 비동맹의장 곳곳서 따돌림/도쿄G7회담 이모저모

    ◎보안당국,“테러우려” 전철역 휴지통 철거 ○클린턴만 겨우 만나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대통령은 8일 이번 G7회담의 정치선언에서 비동맹문제가 빠지고 각국 지도자 소개에서도 자신이 비동맹운동(NAM)의 의장자격으로 온 사실 자체도 언급되지 않자 몹시 실망하는 눈치. 수하르토대통령은 이에 앞서 자신이 1백8개국가가 가입돼 있는 단체의 지도자임을 내세워 G7의 각국 지도자와 집단회동을 가지려 했으나 이 마저 실패. 클린턴대통령은 수하르토와 만나 회담을 가졌으나 정작 미국관리들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만난 것이지 비동맹국가 의장자격으로 만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 ○…도쿄 보안당국은 G7정상회담을 위해 약 3만6천명의 경찰을 배치한데 이어 섬세하고도 기상천외한 안전대책을 마련했는데 바로 회담기간 시내 전철역 구내 쓰레기통과 무인 사물보관함을 모두 없애버린 것. 7일 도쿄공항과 연결되는 노선의 하마마추초역에서는 모든 쓰레기통에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가 씌어져 있고 『7월6일 첫차부터 7월10일 하오 3시까지 보안상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음』이라는 안내문이 부착. 도쿄 전철당국 대변인은 테러분자들이 폭발물을 숨겨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내 전철역에서 쓰레기통을 없앤 것이라고 설명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참아달라고 호소. ○비용싼 미용사 대동 ○…최근 비싼 돈을 내고 이름난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맡겨 물의를 빚었던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부인 힐라리 여사는 이번 일본과 한국 방문에 실비의 봉사료를 받는 미용사를 대동. 이 미용사는 워싱턴에서 「비지지 익스프레스」라는 염가 미용실 체인점을 경영하고 있는 실반 멜로울로 이 미용실에서는 유럽식의 깔끔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머리커트에 기준요금인 17달러만을 받고 있다는 것. 멜로울씨는 미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 편으로 도쿄에 와 대통령의 손님으로 미대사관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의 여행비용은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부담하고 있다고. 힐러리 여사는 지난 5월 2백70달러의 요금을 받는 뉴욕의 프레데릭 페카이 미용실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백악관 당국자들은 힐러리 여사가 미용사를바꾼 것은 『현재의 머리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국민여론에 신경 ○…클린턴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참석키 위해 7일 도쿄에 도착한 뒤 하루내내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지도자들과 연쇄적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등 분주한 스케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또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엔 회담에 관한 논평을 자제하도록 돼있음에도 불구,미국의 아침 TV뉴스시간에 맞춰 기자회견을 갖는 등 미국민들의 여론동향에 무척 신경을 쓰는 모습. ○일 국민 무관심 일관 ○…전 세계에서 몰려온 1천6백여명의 기자들이 G7정상회담 취재에 열을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쿄시민들은 이번 회담에 무관심으로 일관. 도쿄시민들은 G7정상회담보다는 오는 18일로 예정된 중의원선거에 훨씬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형편.
  • 「떠오르는 태양」서「사정낙엽」으로/「6공 황태자」박철언의원의 성쇠

    ◎인사·북방정책·합당과정 “실세중 실세”/“권력지향… 노 정권 망쳤다” 비난 받기도 박철언의원이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와 마주 앉았다.단지 조사를 받는다는 차원을 넘어 사법처리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검찰 고위직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몇년 전을 생각하면 그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6공초·중반 정확히 3당합당직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권력의 황태자」였다.주변의 모 인사는 「떠오르는 태양」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정상급 인사들까지 그의 눈치를 살폈고 권력지향의 사람들은 그에게 줄을 대려고 애를 썼다.노태우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는 주요 인사와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그의 힘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였다. 힘이 지나치면 부작용도 클 수 밖에 없다.그는 권력핵심부에서 독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인사들도 어느 순간 그에게 등을 돌렸다.그는 자신의 몰락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그를 아는 상당수 사람들은 「자업자득」「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방자하다고까지 비친 독선적 행동이 부른 당연한 결과라는 시각이다.한 여권인사는 그가 철저하게 권력지향적이었고 지나치게 권력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0년 국보위 법사위원으로 차출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서울지검 평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당시 국보위에 참여한 검사는 불과 3명 뿐이었다.발탁의 배경에는 노전대통령의 처고종사촌이라는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공이 출범하면서 그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들어갔고 얼마후 법무비서관을 맡았다.당시 정치풍토쇄신법·학원안정법등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법안을 구상하는데 이론적 기초를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장세동 전청와대경호실장이 안기부장에 임명되면서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특별히 요청,그는 안기부장특보로 자리를 옮겼다.5공 핵심부의 두터운 신임에 따른 결과였다.검찰에도 적을 두고 있던 그는 얼마후 검사장급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그는 사시 8회 출신으로 동기들은 아직 한사람도 검사장에 오르지 못했다.안기부에 재직하면서 그는 권력의 주요정보를 당시 민정당대표이던 노전대통령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87년 대선 당시 월계수회를 구성,노전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고 노전대통령의 핵심참모로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6공출범과 함께 청와대정책보좌관을 맡은 그는 노전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속에 국정전반을 주도했다.13대 전국구 의원을 겸직한 그는 89년에는 정무제1장관에 취임,당정업무 전반을 장악했다.그는 각종 인사에 관여했고 특히 서열을 중시한 검찰등 권력기관의 인사에 깊이 개입,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3대 공천에서의 5공인사 대거 탈락,뒤이은 5공청산,정호용의원파동에 막후역할을 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그는 전전대통령이 말한 『손좀 봐야 할 사람』가운데 첫 손가락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3당통합 직후까지도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이른바 「신TK」의 중심으로 한때 그의 주변에는 30∼40여명의 의원들이 모였다.차기대권후보로 까지 거론되기도 했다.그의 정치적 야망은 노전대통령이 사조직인월계수회를 관리하라고 지시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대표이던 김영삼대통령과의 대립은 그의 정치적 위상을 급전직하시켰다.그는 90년 3월 김대통령의 구소련행을 수행하고 귀국,『내 한마디면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다』고 말해 김대통령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그 여파로 그는 정무장관에서 물러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91년 4월에는 월계수회에서도 손을 떼야만 했다.이후 민자당 대권경선에서 반YS노선을 걸으며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지난해 10월 민자당을 탈당,국민당에 입당했다.6공후반 그는 노대통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는 처지가 됐다.아직도 민자당의 많은 민정계 의원들과 6공시절의 각료들은 『노대통령의 초반은 박철언씨가 망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 박철언의원/「월계수회」배경,6공 막강 실세로 군림

    ◎“「진상」 밝혀 보복의혹 없게해야” 박의원은 6공 초기 권력의 황태자로 불릴만큼 노태우전대통령의 통치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비상한 기억력과 조직적인 기획·판단력,그리고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받았다.노전대통령과는 친인척관계.그만큼 노전대통령의 총애가 두터울 수 밖에 없었고 권력 지향적 인사들이 그에게 줄을 대려고 애를 썼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6공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책보좌관,13대 전국구의원을 지냈으며 89년에는 정무제1장관으로 당정업무에 있어 명실상부한 실세로서 군림했다.90년 3당합당도 그의 주도에 의해 성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후 한동안 그가 이끌던 월계수회를 배경으로 차기 대권의 유력한 후보로까지 지목되기도 했다.「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무렵이다.그러나 민자당 대표이던 김영삼대통령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그의 위상은 급전직하,6공말기에는 노전대통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는 처지가 됐다.92년 민자당 대권후보 경선과정에서 반YS노선을 걷다 그해 10월 민자당을 탈당하고 국민당에 입당했다. 박의원은 지난 80년 국보위 법사위원을 거쳐 5공때는 청와대·안기부 요직을 맡았으며 6·29선언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사시 8회 출신. ▷일문일답◁ ­홍여인과의 관계는. ▲5∼6년전에 하얏트 호텔 헬스클럽 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처음 만난 것 같다.그 뒤 헬스클럽회원 20여명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홍여인을 가끔 봤다.87∼88년 홍여인의 평창동 집으로 헬스클럽 회원 7∼8명과 함께 초대받아 식사를 한 적도 있다. ­홍씨는 검찰수사에서 돈을 건네주었다고 진술했는데. ▲나를 두고서 말들이 많다.술자리에서 어쩌다 한번 만나도 누가 누구의 애인이라느니 따위의 소문이 금방 나돈다.6공시절 나를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과정에서 어느 누군가 나를 팔아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검찰이 소환하면. ▲떳떳하게 소환에 응하겠다.이번 사건은 명백히 모든 진상이 밝혀져 수사방향이 특정인에 대한 정치보복적 수사가아니냐 하는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대북제재 거부 어려운 중국/최두삼 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중국은 유엔안보이의 대북한제재에 과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한 이래 외교관측통들은 줄곧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보면 적어도 겉으로는 끝까지 북한을 감싸고 돌 태세다.중국은 북한에 대한 어떠한 국제적 제재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의 유엔안보리 상정마저 반대해왔다. 이같은 입장은 유엔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파견된 중국관리들의 직접적인 행동 뿐 아니라 지난달 23일의 전기침외교부장,31일의 이붕총리 기자회견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중국측이 북한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북한의 입장만을 지지해갈 것인지 예단키는 어렵다는게 외교관측통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다시 말해 지금까지 북을 감싸고 도는 것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확보작전 때문이란 해석이다. 현재 IAEA가입국들을 비롯,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유독 중국만이 계속 지지를 표명할 정도로 북한의 존재가 그렇게 중국에 중요하지는 않다는게 첫째 이유다.중국은 지난 71년 유엔에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20여년동안 단독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이는 국제사회의 큰 물줄기를 혼자서 거역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중국이 이같은 전통을 쉽게 파기하기는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근래에 들어 중국이 처한 외교적 입장 역시 그렇게 강력한 편이 못된다.지난 89년의 천안문 유혈사태 이후 줄곧 서방측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온 데다 소련­동구몰락 이후부터는 국제적인 고립감을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서방측과 가까워지려는게 중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 비추어 군사제재가 아닌 경제분야의 제재에는 결국은 못이긴채 기권함으로써 제재의 길을 터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인다면 북한의 핵개발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나라가 실은 중국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들수 있다.북이 핵을 개발하면 일본과 한국이 가만히 있을리 없고 그렇게되면 동북아 유일의 핵보유국이라는 데서 오는 갖가지 이익들이 모두 사라진채살벌한 핵외 공포속에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 AIDS왕국 태국/“20세기 신의 저주” 퇴치 전쟁 선포

    ◎5개년계획 수립… 민관합심 추방나서/보균자 40만명… 윤락녀중심 급속 확산/매춘인정하는 국민의식·빈곤이 최대 적 태국은 지난 84년 에이즈 보균자가 처음 발견된 이래 20세기의 페스트라고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의 공포속에 살고 있다. 태국정부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에이즈 바이러스(HIV)보균자는 40만명정도. 그 숫자는 「매춘천국」답게 윤락여성들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매춘여성의 에이즈 감염률은 방콕 북서쪽의 나콘파톰이 67%,태국북동부 파야오 66%,치앙라이 57%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에이즈는 방콕등 대도시에서 매춘에 종사하다 에이즈감염이 확인돼 고향으로 돌아간 윤락 여성들이 고향에서도 매춘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태국 보사부가 지난 6월 태국 북서쪽 메이홍손지방 사람들을 대상으로 혈청검사를 실시한 결과 12%가 HIV양성반응을 보인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한해에만도 1만여명의 HIV양성반응 여성들이 출산,4천여명의 신생아가 에이즈균에 감염된채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정부는 정국불안을 초래하고 외국관광수입이 줄어들것을 우려해 최근까지 에이즈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거나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해 왔다.그러나 일단 감염되면 현대의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무서운 질병인 에이즈가 이처럼 급속히 전파돼 위험수위에 이르자 지난 9월 8억7천만바트(약2백60억원)의 예산을 책정,「에이즈 예방·통제 5개년계획」(92∼97년)을 세우고 에이즈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추안 리크파이총리를 위원장으로 40명의 정부각료,기업가,비정부단체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가 각계 각층의 긴밀한 협조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또 그동안 정부의 무관심속에서도 꾸준히 에이즈 추방캠페인을 벌여온 태국적십자본부,태국가족계획협회(PPAT),인구·공동체 발전협회(PDA)등 10여개 비정부기구들도 새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업을 전개중이다. 특히 태국가족계획협회는 에이즈예방캠페인을 주요사업으로 채택,에이즈의 확산방지를 위한 교육과 예방을위한 각종 홍보를 가족계획사업과 함께 추진중이다.태국 보사부와 내무부의 협조하에 60개 방콕의 빈민굴에서 에이즈퇴치시범사업을 전개중이다. 방콕시의 하천과 운하를 끼고 들어선 1천1백여개의 빈민굴 가운데 하나인 촌프라탄의 경우 평상시에 유치원으로 쓰는 건물에서 에이즈캠페인을 벌인다.태국가족계획협회 보건소에서 나온 간호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지역내 여성들에게 에이즈에 대해 상담과 교육을 한다. 2명의 자원봉사자들은 20여명의 그룹을 중심으로 좀더 수월하게 에이즈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룹토론을 이끌고 간간이 게임과 노래를 하고 비디오,카세트등을 듣기도 한다.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현재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즈예방캠페인을 총괄하는 태국가족계획협회의 솜홍 파타이차이폰사무총장은 『이 지역 국민학교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부모의 자녀들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받고 다른 학부형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없어진것만해도 큰 변화』라면서 『예산과 인력은 태부족이지만 에이즈퇴치 캠페인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용기를 얻어 전체 빈민굴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에이즈를 물리치기 위해 관·민 협조하에 지속적인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태국사람들의 성에 대한 그릇된 사고방식이다.얼마전 태국적십자본부가 북부지역의 12∼14세 어린이들에게 매춘을 하는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물은 결과 13%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98%가 직업으로서 매춘행위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응답했다.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매춘행위를 해서 번돈으로 가난한 부모들에게 보답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사고의 전환을 위해 정부는 지속적인 홍보사업을 펼치고 이들이 매춘을 하게되는 가장 큰 원인인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기업가들은 이들에게 적당한 직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태국 에이즈퇴치운동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안보리정상회담/유엔 역할 강화 추진

    ◎소 붕괴이후 증폭되는 국제분쟁 적극 개입/핵확산 봉쇄·화학무기 연내폐기 선언할 듯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 정상회담이 3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존 메이저 영국총리 제의로 성사됐다. 신임 부르토스 갈리 유엔사무총장도 이번 회담을 적극 거들었다는 후문이다. 유엔의 재건을 공약하고 있는 갈리총장으로서는 상견례를 겸해 유엔을 움직이는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호소도 하고 각국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크다. 회담은 31일 하루로 일정이 잡혀있다.하룻동안 15개 이사국 정상들이 다같이 짤막한 연설을 하기로 돼 있으므로 실질적인 토의는 불가능한 일이다.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번 회담을 사진이나 찍기 위해 모이는 회담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냉전체제 붕괴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확실한 전망이 없고 이런 상황때문에 유엔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되는 때에 유엔을 움직이는 나라들이 유엔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유엔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보면 이번 회담은 「사진찍기」보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은 신생 러시아가 구소련을 대신하여 유엔무대에 공식 데뷔하는 자리이며 천안문사태이후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중국의 외교적 복권기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회담준비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외교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표결이나 결의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대신 공동선언문이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언문은 세계평화유지에 유엔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확인하고 유엔은 이제 평화유지 노력뿐 아니라 평화유지를 위해 평화창조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선언문은 또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화학무기를 금년말까지 폐기토록 명시하며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무기거래를 제한하는 노력의 지지를 밝히게 될것이다. 미·영·중·프랑스·러시아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희귀한 일이다. 유엔평화유지군 유지문제,군축,인권문제등이 언급될 것이나 실질토의에는 미치지 못할것 같다.다만 유엔의 예산문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론될 것으로보인다.유엔은 현재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 있다.유엔관리들은 지난해 정규예산 10억 달러중 40%를 넘어선 4억3천9백만 달러가 연체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미국이 연체가 제일 많아 1억4천만 달러이고 러시아 영국 프랑스도 모두 빚을 지고있다.중국만 유일하게 연체가 없는 나라인데 부담률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상예산 외에 유엔은 금년 캄보디아와 유고슬라비아에 평화유지군을 유지하는데만 10억 달러 이상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갈리총장은 이번 기회에 각국의 연체문제에 대한 정상들의 확실한 언질을 받아내야 할것같다. 비록 「사진찍기」에 바쁜 하루가 되겠지만 유엔의 역할이 각별히 중요해진 때에 유엔을 움직이는 주요국 정상들이 유엔에 모여 유엔의 앞날을 논의하는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실보다는 득이 많은 회담이 될것이다.
  • 사면초가의 고르비 운명

    ◎카자흐도 연방유지 포기… 군부도 등돌려/3개공,최고회의 조차 불인정… 퇴진 압박/미·EC등 서방서도 대소 경원 동결 조치로 따돌려/고립무원의 소 연방 대통령 앞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운명의 시각이 촌각으로 다가서고 있다. 독립국가공동체를 결성한 3개공화국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포위망을 점점 좁혀 고르바초프를 사임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고르바초프 자신은 사임을 거부하고 있지만 아르메니아가 이 공동체에 합류할 것임을 밝혔고 고르바초프의 연방유지 노력에 대한 최대 지지세력이었던 카자흐공화국마저 10일 국명에서 「연방」과 「사회주의」를 삭제한다고 결정,사실상 연방유지 노력을 포기한 것으로 보여 고르바초프가 설 땅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랫동안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으로 일해온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가 10일 『현 정황에서 고르바초프의 사임은 불가피하며 고르바초프가 곧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고르바초프 진영에서 고르바초프의 사임가능성을 밝힌 첫 발언이며 소련사태가 새로운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촉구한 최고회의 임시회의 소집이 신문에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스 3개공은 연방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최고회의조차 이미 법적으로 유효한 기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참을 밝히고 있어 최고회의가 열릴 전망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이처럼 소련의 주력인 3개공화국이 고르바초프를 제쳐놓은 상황속에서 고르바초프가 할 수 있는 방안은 아무 것도 없다. 샤흐나자로프의 말대로 고르바초프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개혁가」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단지 6년의 짧은 기간에 70년 가까운 공산독재가 낳은 온갖 「부의 유물들」을 타파하고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가장 위대한 개혁가로서도 불가능한 일일 수 밖에 없었다.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서방으로부터의 원조를 충분히 끌어들이는 길외에는 없었다.그러나 소련의 장래에 의심과 불안을 품은 서방은 소련에 대한 원조를 충분히,그리고 신속하게 제공하지 않았다.이로인해 경제는 점점 악화됐고국민사이의 인기도는 최저로 떨어졌다. 소련 국방장관으로부터 3개공이 결성한 독립국가공동체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는 러시아공화국 지도자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부마저도 고르바초프에게 등을 돌렸다. 미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또 워싱턴포스트지는 『소련내의 거의 모든 공화국들이 독립할 것이며 미국은 이들을 승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아직 3개공의 독립국가공동체를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사태추이를 보아 이를 인정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뿐만 아니라 EC와 일본등 서방세계의 대부분이 독립국가공동체 결성소식에 즉각 대소차관의 동결내지는 재조정을 결정했다.고르바초프가 이미 서방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대내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인데다 믿었던 서방으로부터도 정작 필요할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된 고르바초프가 택할 길은 사임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8일의 긴급성명에서 연방통제에 대한 포기를 강력히 거부하면서 결코 사임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고르바초프 자신의 감정적 반발에 따른 솔직한 심경토로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르바초프도 현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고르바초프 사임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아무래도 3개공으로 결성된 독립국가공동체가 주축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리고 옐친러시아대통령이 이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개공 공동체도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게 사실이다.최대의 과제는 역시 경제를 소생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연방에서 공동체로 바뀐다고 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갑자기 나올리 없다는 점에서 경제는 이들 공동체의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공동체에 합류하지 않을 다른 공화국들과의 협력관계조성 또는 다른 공화국들과의 분쟁발생 가능성도 이들이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또하나의 문제는 옐친의 독선적인 태도와 러시아의 지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이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이다.3개공 공동체내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이 공동체의 앞날도 극히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3개공 공동체는 외교·국방을 공동관장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같은 정체는 아직 한번도 존재한바 없는 새로운 것으로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같은 일을 추진해 나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다.따라서 독립국가공동체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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