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600 턱 밑까지… 정부 개입으로 1552.4 마감
미국 증시가 주저앉은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추가된 돌발 악재가 없는데도 시장이 연 이틀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이 때문에 환율이 급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나 경제주체들의 위기 인식이 안이하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국내 시장을 짓누르는 요인은 동유럽 부도(디폴트) 위험, 외환보유액(2월 말 기준 2015억달러)에 육박하는 유동외채(지난해 말 기준 1940억달러), 슬금슬금 오르는 국가부도위험지수(2일 기준 CDS 프리미엄 4.65%포인트), 수출 급감, 외환보유액 가용성 논란 등이다.
하지만 계속 제기돼 왔던 문제들이다. 오히려 3월 경상수지 35억달러 이상 흑자 가능성, 은행 단기 외화사정 개선 등 추가된 소식 중에는 호재들도 적지 않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동유럽과 한국을 동일시하는 외신의 잇단 부정적 보도가 기폭제가 됐지만, 새로운 대형 악재는 없다.”면서 “(투자자들이)좀 더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같은 주문은 비관론 진영에서도 나왔다. 환율 1600원 상승론을 줄기차게 펴왔던 이진우 NH선물 기획조사부장은 “언론에서 패닉(공황) 운운하면 끝이 가까워졌다는 때라는 게 그동안 시장이 보여준 예외없는 공식”이라면서 “미 증시 급락에도 생각보다 잘 버텨낸 3일 시황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몇 주 더 고전은 하겠지만 환율 천장(달러당 1600원)을 거의 확인한 만큼 1480원대까지 다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천장이 뚫렸다고 생각해 달러를 더 사재기하는 세력은 크게 낭패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국도 최근의 요동 장세 이면에는 투기 세력의 가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 급락 가능성을 점치는 이도 있다. 노상칠 국민은행 트레이딩팀장은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교환) 자금을 적극적으로 풀면서 은행들의 단기 외화 사정은 괜찮다.”면서 “외환대책 발표 이후 초기 실효성 논란과 달리 해외 쪽에서도 우리나라의 장기채권 매수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참가자들 모두 지금의 환율 수준이 높다고 인식하면서도 달러화의 글로벌 강세 때문에 선뜻 매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팔자 주문이 나오기 시작하면 매수 세력도 없다.”며 급락 가능성을 내비쳤다. 실제 외국인들은 지난달 1조 8000억원에 이어 이달 들어서도 지난 2일 현재 6363억원어치의 한국 채권을 순매수했다.
이날 한은이 실시한 한·미 통화스와프자금 30억달러 경쟁입찰에서도 낙찰금리가 평균 연 1.316%, 최저 연 1.00%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은행들의 외화자금 여력을 입증했다. 하나은행이 이날 유럽계 ING은행으로부터 1년 만기 조건으로 5000만달러 차입을 성공시킨 것도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박찬익 모건스탠리 전무는 “미국 증시가 1995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꺼진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형 악재”라면서 안이한 인식을 경계했다. 그는 “한국은 글로벌 경제에 취약해 경기 침체가 의외로 길어질 수 있는 만큼 슈퍼추경 편성, 구조조정 가속화, 금리 추가 인하 등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