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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김치세계화 대장정 떠나는 ‘김치버스’ 류시형 팀장

    [김문이 만난사람] 김치세계화 대장정 떠나는 ‘김치버스’ 류시형 팀장

    우리 식탁에 김치가 없다면 어떨까. 노래 하나 들어보자.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입맛을 바꿀 수 있나~’ 김장철이 다가온다. 해마다 이맘 때면 주부들은 올해 배춧값은 어떻고 고춧가루 값은 어떤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올해에는 고춧가루 값이 다른 해보다 비싸다고 걱정들이 많다. 다른 것은 몰라도 월동준비의 대표작은 김치이기 때문이다. 어떤 직장은 김장 보너스로 주부들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한다. 한식 세계화라는 말이 요즘 흔하게 거론된다. 성과는 아직 미약하다지만 한국 음식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는 상상은 즐거운 일이다. 일본의 초밥이 세계 무대를 누비듯 우리 한식이 그렇게 못할 일도 없을 터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김치는 어떨까. 젊은 청년 3명이 김치 세계화를 위해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주인공은 류시형(28)· 김승민(28)·조석범(24)씨다. 이들은 오는 23일 ‘김치버스’를 타고 400여일간 30여개국 대장정에 나선다. 제목도 그럴 듯하다. ‘천년의 맛 세계인과 함께’라는 주제로 김치의 현지화, 퓨전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알린다. 지난 1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세계김치문화축제 개막식 때 출정식을 했고 첫 도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지구촌 김치로드를 개척한다. 이들 3명은 경희대 조리학과 선후배 사이로 팀장인 류씨의 아이디어로 ‘김치버스’가 탄생됐다. 김치버스는 25인승 중형버스의 의자를 뜯어내고 실내에 주방시설과 잠자리용 평상을 설치한 캠핑카로 세계 각국의 야외 광장에서 김치요리를 즉석에서 선보일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됐다. 버스 뒤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김치버스가 가는 여행길은 대강 이렇다. 강원도 동해항에서 카페리에 올라 러시아로 간 뒤 유라시아를 돌고 대서양을 건넌 다음, 북미대륙과 태평양을 거쳐 귀국한다. 총 길이만 해도 20여만㎞에 달한다. 이들의 활동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 페이스북과 유튜브, 홈페이지 등으로 실시간 중계될 예정이다. 방송 제작을 위해 PD 1명도 동행한다. 지난 18일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김치요리 시연회를 갖는 화제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이들은 전시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팀의 리더인 류씨와 집중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고 나머지 둘에게 대장정을 나서는 소감이 어떤지만 물었다. “김치버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김치버스가 출발을 하게 됐는데 그 분들의 조언과 응원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계획한 400일 동안 사고 없이 몸 건강하게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의 김치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제 꿈이 뚜렷한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요리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김치버스 프로젝트는 저에게 뚜렷한 색을 입혀주는 그런 기회가 될 것입니다.”(김승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면서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행복하기를’ 제가 좋아하는 여행에 대한 구절입니다.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떠나는 길이지만 항상 즐겁게 여행을 하고 무사히 돌아오고 싶습니다. 또 팀원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더 많이 성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꿈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것입니다.”(조석범) 머나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눈초리에서 자신감과 비장함이 느껴졌다. 김씨는 류씨의 한 학번 후배이자 동년배다. 조씨는 류씨의 4년 후배로 휴학 중이다. 김치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류씨와 별도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전시장 야외 의자. 김치는 어떻게 제공하고 자동차 점검과 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다. “신선한 김치는 감칠배기(광주김치 대표 브랜드)가 중간중간 제공하고 자동차 수리는 현대자동차가 맡게 됩니다. 김치는 원래 현지 배추로 직접 요리하려고 했으나 김치의 장점인 ‘발효’를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30~40㎏ 분량의 김치를 국내에서 직접 공수받기로 했습니다. 때문에 배송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 걱정입니다(웃음). 하지만 현지에서 겉절이나 오이김치 등을 만들어 시식하는 행사도 가질 계획입니다.” 김치요리는 어떤 식으로 선보일까. “우리가 다닐 나라가 30여개국이나 됩니다. 각 나라마다 요리가 물론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들만의 요리에 김치를 얹혀 버무려 김치의 위력을 알릴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가면 김치피자를 즉석에서 만드는 것이지요. 미국에 가면 김치핫도그와 김치햄버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이번 세계김치문화축제 기간(10월 15~19일) 동안 각 국가별로 김치요리 시연회를 가졌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 주재 각국 대사들과 외국인들도 참석해 직접 맛을 보기도 했다. 반응은 ‘원더풀’이라고 류씨는 말했다. 김치버스를 타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려면 경비도 간단치 않을 텐데 어떻게 마련했을까. “소요 경비는 총 3억원 정도인데 현대자동차와 경희대, 그리고 세계김치문화축제위원회, 감칠배기 등으로부터 2억원 정도 후원을 받았습니다. 예산이 다 마련되지 않아도 23일 예정대로 출발하게 됩니다. 우리 셋은 젊잖아요. 그게 곧 밑천이거든요(웃음).” 류씨는 2006년 7월부터 219일간 26개국을 편도 항공권과 26 유로 등 총 80만원으로 ‘나홀로 무전여행’을 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길에서 많은 친구를 만나 그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한국의 문화와 요리 얘기를 하게 됐지요. 대부분 한국의 요리에 대해 잘 모르더라구요. 무척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김치버스 투어 계획은 그때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김치를 그들의 음식에 버무리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한국의 음식이 비빔밥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식에 김치를 넣으면 새로운 요리가 되고 인상 깊게 파고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류씨는 무전여행에서 돌아와 김치버스 제안서를 곧바로 만들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신뢰성 등의 이유를 들어 계속 ‘퇴짜’ 맞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듯 류씨의 열정이 결국 통하면서 꿈이 이루어졌다. 류씨는 세계 무전여행에 앞서 대학 1, 2학년때 두 차례나 국내 무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무전여행할 때 저를 차에 태워주신 한 아주머니께서 그러더군요. ‘우리 딸도 지금 유럽에서 무전여행 중인데’라고 말입니다. 잔잔한 제 마음에 큰 파동이 생겼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비범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고 안전보다 기회를 택하자고 했습니다. 세계 무전여행도 바로 그때 생각하게 됐습니다. 무전여행때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 부자, 가난한 사람들 가릴 것 없이 사귀었습니다. 주로 20~30대 젊은 친구였는데 약 200명은 사귀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소중한 친구들이었고 무전여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김치버스 투어때 언어 문제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자신했다. 류씨의 고향은 부산. 중학교 3학년 때 조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자는 출발에서 그랬단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사진과 여행 취미를 더했다. 무전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26유로’라는 책을 펴내 어엿한 여행 전문가로 또 하나의 이름을 새겼다. 그는 이번 김치버스 투어를 준비하면서 동료 김씨와 같이 1종 면허까지 땄다. 둘이 번갈아가면서 운전한다는 계획에서 그랬다. 류씨는 해병대에서, 다른 두 명은 육군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장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백과사전에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여행이든 요리든 열정적으로 해서 그 분야에 큰 꿈을 이루고자 합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유명한 요리기획자라고나 할까요(웃음).”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우리는 경희대 조리학과 선후배 사이 ●류시형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호텔경영대학 조리학과를 나왔다. 대학 1,2학년때 국내 무전여행을 두 차례나 했다. 2006년 7월부터 219일간 26개국 무전여행을 했다. 알래스카 오지탐사, 남아공과 중국 배낭여행, 서울도보 여행, 개인사진전, 학교 앞 김밥장사, 파티 플래너, 메뉴 컨설턴트 등의 경험이 있다. 2008년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경희대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2009년에는 세계 무전여행기 ‘26유로’ 책을 펴냈다. 올해 4월 일본JTV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여행작가 겸 요리사로 김치버스 프로젝트 팀장을 맡고 있다. ●김승민 류씨와 같이 경희대 조리학과를 나왔으며 레스토랑 동천홍 서울대점 근무(2006), 중식 레스토랑 Mei-Chan 근무(2007), 경희대 음식 페스티벌 주방팀 파트 셰프(2009~2010), 중식 레스토랑 장가방 근무(2011), 현재 요리사로 활동 중이다. ●조석범 한국국제요리경연 경희대학교 Live부문 금상, 전시부문 은상(2010) 등을 수상했으며 2010년 제1회 조리경영학회 학술제에서 메니저로 참여했다. 현재 경희대 조리학과 휴학 중이다.
  • 신용카드·인터넷·화상통화 120년 전에도 있었다?

    신용카드·인터넷·화상통화 120년 전에도 있었다?

    1951년 일본의 데쓰카 오사무는 2003년 4월 7일 탄생할 로봇을 그려냈다. 키 135㎝에 몸무게 30㎏인 이 로봇은 무쇠로 만들어진 단단한 팔과 레이저 빔을 발사하는 손가락을 갖고 있었다. 로켓 엔진을 단 다리로 하늘을 날 수 있었고,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엉덩이에서는 발칸포를 뿜었다. 바로 ‘우주소년 아톰’의 탄생이었다. 그 후 60여년이 지난 2012년 오늘, 오사무가 그린 ‘미래’는 벌써 과거가 됐다. 하지만 현실 속에 아직 아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있지만 하늘을 날고 악당을 물리치기는커녕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다다르지 못한 목표다. 인간은 현실에 만족하기보다 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존재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상상하고, 또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상은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하나하나 정복됐고, 우리는 그 혜택 위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이 만화 속 아톰을 단지 허황한 상상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것도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인류 발전의 속도를 바꿔놓은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주도한 가장 큰 원동력은 ‘공상과학’(SF) 소설이었다. 과학자들은 SF작가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황당한 기계와 기술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성된 기계, 궁극적인 기술이 어떤 모습인지를 아는 것만큼 뚜렷한 목표는 없다고 여겼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SF는 미래의 사회학”이라고 단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SF작가들이 그린 미래는 오늘날 얼마나 이뤄졌을까. 미국의 ‘이노베이션 뉴스데일리’가 ‘실제가 된 SF의 예언’이라는 기사에서 이 같은 궁금증에 답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있는 작가들의 상상력은 마치 미래를 미리 보는 듯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1 달착륙 “미국 플로리다의 한 기지에서 세 명의 남성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캡슐에 앉아 달나라로 떠난다. 그들은 달에 도착해 달 표면을 걷는다. 돌아올 때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떨어져 미국 해군의 배가 이들을 건져낸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사진 위) 얘기가 아니다. 1865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에 등장하는 달여행 시나리오다. 베른은 로켓은커녕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대포를 이용한 달여행을 상상했고, 소설 속 장면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현됐다. 아폴로11호의 귀환캡슐을 바다에서 찾아낸 미 해군 함정의 실제 이름은 ‘콜롬비아’였고, 베른의 배는 ‘콜롬비아드’였다는 점까지 비슷했다. 후세 과학자들이 가장 놀란 점은 베른이 소설 속에서 “우주인들은 우주 공간에서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고 묘사한 부분이었다. 19세기에는 이 같은 사실을 추정할 근거조차 없었던 때였다. 2 인터넷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98년 ‘1904년의 런던타임스에서’라는 짧은 소설을 썼다. 트웨인은 ‘텔렉트로스코프’라는 전화선을 이용한 시스템을 소설에 등장시켰다. 전 세계를 연결하고 무한한 정보와 매일매일의 뉴스를 전달할 수 있으며, 쌍방향 논쟁도 가능했다. 심지어 각각의 정보는 카테고리에 의해 분류돼 있었다. 미 국방부가 초창기 인터넷의 모태로 불리는 ‘알파넷’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이었다. 3 원자폭탄 영국 작가 허버트 G 웰스는 1914년 ‘자유로워진 세계’라는 글에서 “1956년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데 핵물리학을 이용한 새로운 폭탄이 등장한다.”고 적었다. 웰스는 “폭탄이 폭발하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땅은 복구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웰스는 당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주도로 막 태동한 핵물리학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있었지만, 30년이 지난 뒤 그의 상상은 일본(사진 아래)에서 그대로 현실화됐다. 4 레이더 젊은 시절 전기 기사로 일했던 미국의 휴고 건즈백은 1911년 ‘랄프 124C 41 플러스, 2660년의 로맨스’라는 책을 썼다. 현재의 지식으로 보자면 이 책은 미래학 사전이나 마찬가지다. 형광등, TV, 리모컨, 테이프 레코더 등은 물론 태양광에 대한 아이디어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은 것은 “일정한 파장을 가진 전파를 쏘면 반사돼 오는 전파를 관측해 금속 물질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살필 수 있으며, 비행체의 거리도 알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쓰이는 레이더에 대한 정확한 묘사였다. 건즈백은 1926년 세계 최초의 SF전문지 ‘어메이징 스토리스’를 창간했고, 현재 가장 권위있는 SF상인 휴고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5 온라인신문 영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SF작가로 꼽히는 아서 C 클라크는 1968년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출간했다. 클라크는 “밀리초에 불과한 순간이면 어떤 신문의 헤드라인이든 금방 찾아볼 수 있다. 모든 뉴스는 매시간 자동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영어만 할 수 있는 사람도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썼다. 소설 속에서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뉴스 위성’이었다. 클라크는 인공위성을 정확하게 예측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6 탱크 허버트 G 웰스는 미래의 원자폭탄뿐 아니라 전쟁용 기계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1903년 발표한 단편소설에서 웰스는 ‘랜드 아이론클래즈’라는 이름의 기계를 선보였다. 30m 정도 길이의 이 기계는 8쌍의 바퀴로 굴러가며 안에서 42명의 군인과 7명의 지휘관이 탑승했다. 자동으로 조종되는 포신은 전방위로 돌아가며 8쌍의 무한궤도 바퀴에 의해 굴러가도록 설계됐다. 13년 뒤 소설속의 기계는 탱크라는 이름으로 실제 전선에 등장했다. 7 가상현실게임 비디오게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러나 2년 전인 1956년 아서 클라크는 이미 훨씬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은하제국의 멸망 후를 그린 소설 ‘도시와 별’에서 인류의 후손들은 중앙 컴퓨터에 의해 통제되는 도시 다이어스퍼를 건설한다. 시민들은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천년을 산 뒤 사후에는 의식이 기억은행에 저장되고 다시 몸이 만들어지는, 이를테면 부활하는 불멸의 생을 산다. 시민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꿈 속에서 마치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8 비디오 채팅 미국의 통신회사 AT&T는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세계 최초로 ‘영상전화’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보다 50년 전인 1911년 휴고 건즈백은 ‘랄프 124C 41 플러스, 2660년의 로맨스’에서 ‘텔레폿’을 설명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벽에 설치된 텔레폿의 커다란 화면 앞에서 몇 개의 단추를 누르는 것만으로 여자친구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9 신용카드 미국 소설가 에드워드 벨러미는 1888년 ‘2000년에서 1887년을 돌이켜보면’이라는 책을 썼다. 1888년 잠든 사람이 2000년에 깨어나 변한 사회상을 살펴보는 내용의 이 책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용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 카드로 모든 물건을 구매한다. 벨러미는 이 카드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상품은 물론 서비스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썼다. 10 스쿠버다이빙 19세기까지 사람이해저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모자를 쓰고, 크고 무거운 옷을 입은 뒤 배와 연결된 공기호스를 끼우고서야 가능했다. 그러나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해저탐험을 제시했다. “철로 된 통에 압력을 가해 공기를 채운 후 등에 매고 내려가면 7~8시간 이상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 “經協 매개로 북한 이끌어내 동북아 평화보장 지렛대로”

    “經協 매개로 북한 이끌어내 동북아 평화보장 지렛대로”

    사할린 가스관 연결,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을 골자로 한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방안은 지난 참여정부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 마련했던 동북아경제공동체방안의 일부다. 당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할린에 진출한 석유 메이저들이 가스관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직간접적으로 의사타진도 이뤄졌었다.”면서 경협사업의 성사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동북아 지역사회로 이끌어 내고 동북아 지역 평화와 안보를 보장받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협의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동북아경제공동체안 2006년 첫 보고 →동북아시대위원회의 구상은 무엇이었나. -큰 화두는 가스, 원유, 전력, 철도 분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을 동북아 사회로 이끌어 낸다는 것이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실무적으로 깊이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상당히 세밀하게 다듬은 수준까지 갔으나,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고 남·북·러 간의 협력이 어려워 실제 진척까지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경제협력은 어느 정도까지 추진됐었나. -철도연결은 러시아 철도공사와 코레일이 자주 회동을 가졌었다. 천연가스 사업은 가스공사가 사할린에서 연간 150만t을 들여오기로 하는 성과도 있었다. 당시 사할린에 진출한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이 관심이 많았다. 특정 회사와는 직간접적으로 의사타진도 했다. 복합 물류사업은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철도와 해상물류를 연결하는 복합물류 사업은 부산항~나진항을 러시아·유럽 철도망과 잇는다는 구상이었다. 대규모 물류, 해운회사가 참여하는 1차 컨소시엄까지도 구성됐었다. ●北은 中의존 벗고 러는 존재감 회복 →남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사업이 잘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만성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은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우리는 안보 레버리지가 생기는 것이다. 협력사업에는 항상 대화와 실무 접촉이 일어나야 하고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기능적으로 신뢰가 쌓이면 북한이 도발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협력사업을 많이 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도 보장이 되고, 남북한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득이 된다. ●북·러는 합의… 남북 대화만 남아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나.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려면 러시아를 잡는 게 방법이다. 러시아도 북한을 잡음으로써 동북아 지역에서 소련 붕괴 후 잃었던 존재감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는 나진항에도 깊은 전략적 필요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 접경지역인 하산과 북한 나진 사이에는 철도가 연결돼 있다. 중국이 나진에 도로와 철도를 놓는다는 것은 러시아가 수수방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는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으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회의에 초청할 수도 있다. 중국을 적절히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남·북·러 경제협력사업이 잘되려면? -수행원 명단에 강석주, 김계관이 있다는 것은 6자회담과 핵문제의 앞날에 대해 더불어 얘기하자는 뜻이다. 가스관 사업이 잘되려면 이런 것들(핵문제 등)이 패키지로 묶여서 풀려야 한다. 지난 한·러 외교장관회담에서 원론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 북한과 러시아도 합의를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남북이 대화를 잘 해서 이 문제를 실무차원에서 협의하는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0분) 산악인 고(故) 고미영씨는 생전 “포기란 배추를 셀 때 하는 말”이라고 얘기할 만큼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품으로 발견된 일기장에는 뜻밖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009년 14좌 경쟁이 치열했을 무렵 히말라야 산중에서 작성된 그의 일기장에는 사랑하는 연인 때문에 흔들렸던 여자로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사모아는 남태평양에서도 폴리네시아적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우폴루 섬과 사바이 섬 등 두 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남태평양 특유의 화산 풍경과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천국 사모아의 속살을 찾아 떠나본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영희는 기창에게 온갖 비위를 맞추며 드라마 아이디어를 구한다. 기창은 이런저런 조건을 내세우며 영희와 아이디어 거래를 한다. 둘 사이의 살벌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서로 협동해 가는 파트너십으로 바뀌어 가는데…. 수봉은 며느리도 들어오는 마당에 더 이상 지하에서 지낼 수 없다며 화영에게 방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0분) 인터넷 도박 업계는 최대 32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속에는 오늘도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도박판에 갖다 바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게임머니를 돈으로 바꿔주는 환전상을 하거나, 일명 ‘짱구방’ 등 일반 이용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인데….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1970년대 뉴욕은 빈곤과 범죄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다. 그러나 현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인 멜팅폿이다. 뉴욕은 전 세계 금융자산의 40%가 모여 있는 금융의 도시,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로 불린다. 21세기 명품도시로 새롭게 태어난 뉴욕, 그 과정을 따라가 본다. ●영상앨범 산(KBS2 일요일 오전 7시 40분) 천상의 트레킹 코스인 스위스 융프라우. 빼어난 알프스의 고봉들 가운데 최초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등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융프라우의 예측 불가능한 날씨 덕분이다. 그만큼 융프라우는 변화무쌍하다.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씨 속에서 과연 일행은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을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동화 피터팬 속의 팅커벨과 영화 반지의 제왕 속의 레골라스, 그리고 노르웨이 전설 속에 등장하는 트롤까지. 이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다. 실제로 요정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만났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 ‘광장’의 반란…국내 M&A 법률자문 김앤장 누르고 4위서 1위로

    ‘광장’의 반란…국내 M&A 법률자문 김앤장 누르고 4위서 1위로

    ‘다윗이 골리앗을 치다.’ 규모면에서 국내 3위에 불과한 법무법인 광장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1위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처음으로 눌렀다. 김앤장 대 세종·태평양·광장·율촌 등으로 나뉜 ‘1강다중’(一强多中)의 국내 로펌 시장에 지각변동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다. 기업자문 시장을 둘러싼 로펌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6일 미국의 종합 미디어그룹인 블룸버그가 자체 집계한 올해 상반기 한국M&A 법률자문 순위에 따르면 광장은 거래총액 139억 4700만 달러(약 14조 8000억원)로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부동의 1위였던 김앤장은 99억 6600만 달러(약 10조 6000억원)로 2위에 머물렀다. 태평양은 51억 7900만 달러(약 5조 5000억원), 세종은 26억 3100만 달러(약 2조 8000억원), 율촌은 12억 달러(1조 2700억원)로 각각 3, 4, 10위에 그쳤다. 지난 1일부터 발효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영국계 로펌들의 공세가 예상된 가운데 국내 로펌들은 일찌감치 송무(소송)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큰 기업자문 시장에 집중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외국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M&A 시장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이를 반영하듯 올 상반기 국내 M&A시장의 총 거래액은 292억 9000만 달러로 지난해의 2배 규모를 기록했다. 광장은 3~4년 전부터 M&A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문화·대형화에 힘써 왔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지적재산권, 노동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키웠다. 분야별 소규모 팀을 구성하고, 대형 거래가 있을 때는 각 팀을 하나로 뭉쳐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올 초 세종의 공정거래팀 소속 변호사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상반기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이마트 분할과 현대건설 매각 자문을 맡을 수 있었다. 광장은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12.3%(4위)에서 올해 47.5%로 껑충 뛰었다. 반면 김앤장은 지난해 42.4%에서 올해 34%로 내려앉았다. 다만 거래건수에서는 김앤장이 49건으로 47건인 광장보다 조금 앞섰다. 김앤장과 광장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만 봐도 각각 394명, 248명으로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난다. 실제 기업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 수도 김앤장 300여명, 광장 90여명이다. 광장의 김상곤 변호사는 “비록 변호사 수는 적지만 각 팀이 힘을 합쳐 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면서 “현재 진행 중인 대한통운과 SK텔레콤 자문까지 합치면 하반기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상위권을 제외한 5위부터 20위까지는 대부분 외국계 로펌들이 독식했다. 지난 1일부터 발효된 한·EU FTA로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인 영국계 로펌 링클레이터스, 앨런 앤드 오버리, 디엘에이 파이퍼 등이 순위에 올랐다. 영국계 로펌 클리퍼드찬스는 오는 20일쯤 서울에 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기존 변호사 7명에 13명을 외부에서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개방 전부터 외국계 로펌들이 약진하는 현상에 대해 국내 로펌들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국제적 업무능력을 갖춘 변호사를 적극 영입해 외국계 로펌의 공세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광장의 김상곤 변호사도 “국내기업이 해외기업을 인수하는 ‘아웃바운드 딜’ 시장이 잠식당할 우려가 있다.”면서 “먼저 찾아가는 자세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러 대통령 극동 방문때 김정일과 회담 가능성”

    다음 주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러시아 극동 지역 통신인 프리마미디어가 23일 보도했다. 프리마미디어 통신은 여러 소식통들에게 확인한 내용이라며 확실한 정보라고 밝혔으나 더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오는 29일에서 다음 달 1일 사이 내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극동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기간에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영화 ‘풍산개’(23일 개봉)는 기존의 김 감독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상당히 대중성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는 김기덕 사단의 대표주자인 전재홍(34) 감독이 있다. 그를 지난 1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시사회 때 ‘풍산개’는 토털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였나. -첫 장편 영화인 ‘아름답다’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했지만, 그 덕(?)에 국내에서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를 고집하는 비흥행 감독으로 낙인 찍혀 버렸다.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내가 보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김기덕 사단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연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기존 김기덕 필름의 영화는 롱테이크(한번에 길게 찍기)에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드는 작품이 많았다면, ‘풍산개’는 빠른 스피드를 강조했다. 액션과 코미디는 물론 여성 관객을 겨냥한 멜로까지 넣었다. 제 나이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김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셨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간 뒤 오스트리아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전공하는 등 주로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분단 소재 영화를 다루기가 어렵지 않았나. -해외에 살면 남북 상황을 더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라 학교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을 느꼈다. 저를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는 6·25전쟁이 흑백 영화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분단 영화는 이념적인 접근도 많았다. 왜 우리는 3시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편지나 소포도 주고 받지 못하는지 30대의 시각에서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남북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풍산은 상당히 거칠면서 말 한마디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풍산을 복수의 화신이 아닌, 남북 통일에 대한 이상을 표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표준말을 쓰면 한국사람 같고, 북한 사투리를 쓰면 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일부러 대사를 넣지 않았다. 풍산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풍산개는 주인에게는 온순하지만, 호랑이도 잡는 맹수다. 외적으로는 강인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따뜻한, 그런 상반된 매력을 가진 인물로 풍산을 표현하고 싶었다. →TV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인기를 누리는 윤계상의 주연 캐스팅이 잘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윤계상씨 캐스팅을 반대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해외에 있어서 그룹 god의 윤계상보다는 영화 ‘집행자’의 연기자로 그를 기억했다. 드라마 속의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영화에서 180도 변신시키는 것이 재밌었다. 한겨울에 몇 번씩 차가운 물에 들어가준 윤계상씨에게 고맙다. 잘해서 여러번 시켰더니 나중엔 “감독님이 악마 같다.”며 웃더라. 윤계상씨도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노개런티(무보수)로 참여한 것도 화제다. 김기덕 감독도 “나를 일으켜준 영화”라고 했는데. -돈을 생각한다면 누가 이 영화를 하겠나. 오직 열정으로 뭉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김 감독님이 나에게 시나리오를 줬을 때, 우리에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폐허 같았다. 총 2억원의 적은 제작비이지만, 영상과 음악 디테일 등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 →김 감독이 신작 ‘아리랑’에서 한국 영화계를 신랄히 비판했는데. -곁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저로서는 김 감독님이 제작자뿐만 아니라 감독으로 다시 눈을 뜬 것에 대해 감사한다. ‘돌파구’(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들의 모임) 회원인 장훈 감독은 친형 같고 돈독한 사이다. 시사회 때 훈이 형을 초대했지만, ‘고지전’(장훈 감독의 차기작) 후반작업 때문에 오지 못했다. 김 감독님과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다. 촉망받는 성악도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계기가 뭔가. -어렸을 때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성악을 했다. 대학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와 닿지 않았다. 스물 아홉 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봤다. 다행히 어머니가 대찬성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김 감독 제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가까이에서 본 김 감독은. -김 감독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음악과 비주얼 등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났다. ‘빈집’은 아이디어도 색다르다. 내게 김 감독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다. 영화에 대해 아무 배경이 없는 나를 믿어주고 내 재능을 유일하게 인정해 주신 분이다. 사람들은 감독님을 상당히 거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상하고 제자에 대한 애착이 많은 분이다. 언제나 “너 자신을 믿으라.”고 다독이고 격려해 주신다. 인터뷰 때마다 전 감독은 “겁이 없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풍산개’에서 자신의 실력을 2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그는 앞으로 빠르고 젊은 감각의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상업적인 흥행도 욕심이 난다는 전 감독. 그는 김기덕 사단이 낳은 ‘겁 없는 신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국장부터 신입까지… 금천구는 ‘열공중’

    금천구가 의욕적으로 펼치는 독특한 공무원 교육이 화제다. 구는 수직적인 질서에 익숙한 간부들에게 수평적 토론과 리더십을 이끌어내기 위한 국·과장급 강화 교육에서부터 팀장급 이하 독서교육, 신규 채용 직원에게는 동 주민센터와 주요 시설 등을 도보로 방문하도록 하는 등 전 공무원이 교육을 통해 창조적 역량을 기르도록 주문하고 있다. 차성수 구청장은 “문제는 간부다. 젊은 공무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국·과장들이 잘 이해하고 함께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인식으로 교육은 상급자부터 차례로 실시된다. 교육을 맡은 ‘지식나눔네트워크 발전전략연구소’ 석종득 대표는 6일 “교육을 처음 맡았을 때는 공무원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쉬는 시간인데도 서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며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10여년을 구청에서 일해도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 않으면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당신이 남태평양 한 가운데 표류한다면 어떤 물건들을 가져가겠습니까.’라는 식의 특정 상황을 던져주고 토론에 붙이면서 공무원들도 집단 토론에 눈뜨기 시작했다. 신종일 기획홍보과장은 “그동안 대화와 소통에 문제없다고 여겼는데 교육을 받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 가정과 직장에서의 의사소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구는 또 6급 이하 전 직원에게 필수도서 또는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매월 전문업체에 의뢰, 자신이 읽은 책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의견을 서술하고 채점하는 방식으로 독서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구가 이처럼 1000여명에 이르는 전 직원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옛날식 상명하복 환경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씻고 집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주말 영화]

    ●고질라(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프랑스는 남태평양 프렌치 폴리네시아 군도에서 30년간 수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핵폭탄의 눈부신 섬광과 엄청난 위력에 섬에 살고 있던 파충류들과 해안에 살고 있던 각종 생물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다. 시간이 지나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인 초대형 일본 원양어선이 침몰되어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처참한 몰골로 발견되고, 파나마의 숲과 해안에서는 뉴욕으로 향하는 초대형 발자국이 발견된다. 이에 체르노빌에서 핵오염 이후의 지렁이 DNA 돌연변이를 연구하던 핵감시 위원회 소속의 타토폴로스 박사와 미 국무부가 급파한 여류 생물학자 엘시 채프먼이 사건을 조사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국 해안에 정박된 배들이 일시에 뒤집어지고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재해가 잇따른다. 조사 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생명체가 뉴욕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마침내 뉴욕에 나타난 이 괴물은 거대한 생명체 ‘고질라’로 뉴욕의 빌딩들은 거대한 괴력에 초토화돼 가고, 닉은 이 괴물이 무성생식으로 알을 품었거나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스토마고(KBS1 토요일 밤 1시) 영화는 브라질의 한 감옥에서 시작된다. 교도소 생활이 진행되는 가운데 플래시백으로 과거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나타는 돈 한푼 없는 무일푼으로 시골에서 대도시로 들어온다. 한 허름한 식당에서 무전취식하다가 주인에게 걸렸고, 그 대가로 부엌 옆의 조그만 골방에서 숙식하며 식당 일을 하게 된다. 그는 요리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주방을 맡게 된 이후 그가 만든 크로켓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한편 창녀인 일리나는 노나타가 만든 크로켓의 기막힌 맛에 홀려 공짜로 먹는 대신 노나타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이가 된다. 또 손님 중에 유명한 이태리 식당 보카치오의 주인이 우연히 그 맛을 보고 노나타를 스카우트하게 되는데…. ●훌라 걸스(MBC 일요일 밤 12시 40분) 1965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탄광마을. ‘하와이안 댄서 모집’ 전단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소녀 사나에. 그녀는 이것이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친구 기미코를 설득한다. 폐광의 운명을 맞은 마을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탄광회사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바로 하와이안 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훌라 댄스 쇼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 선생 마도카가 도쿄에서 내려오고, 본격적인 훌라 연습은 시작된다. 기미코는 훌라 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에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에 맞서 집을 뛰쳐나와 댄스 교습소에서의 힘든 생활을 시작한다. 한편 겉으론 화려한 댄서이지만 아픈 사연을 간직한 마도카는 이러한 소녀들의 모습에 감동해 시들었던 자신의 꿈이 소중하게 되살아남을 느낀다.
  • 제니퍼 박 스타우트 美국무부 부차관보 ‘혈육의 나라’ 찾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 美국무부 부차관보 ‘혈육의 나라’ 찾다

    증손녀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망향의 비통함에 애끓다 이국땅에서 숨진 증조부가 꿈에 그리던 그런 나라로 훌쩍 커 있었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한국명 박지영·35). 미 국무부의 부차관보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그가 지난 16일 미국 외교관 자격으로 ‘혈육의 나라’를 찾았다. 지난해 9월 부차관보로 임명된 뒤 처음이다. 그의 증조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과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 주필을 지낸 백암 박은식(1859년 9월~1925년 11월) 선생이고 할아버지는 광복회장을 역임한 항일무장투사 박시창 장군이다. 국무부 내 가장 젊은 부차관보 중 한명인 그는 “증조할아버지의 영향 덕에 정치·외교에 대한 관심이 내 핏속에 흐르는 듯하다.”며 밝게 웃었다. 2012년 여수 엑스포 등 한국에서 진행 중인 미국의 공공외교 현장을 점검하려고 방한한 스타우트 부차관보를 18일 서울 남영동 주한 미 대사관 공보원에서 만났다. ●워싱턴에서 태어난 임정 대통령 증손녀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197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이자 박시창 장군의 둘째 아들인 박유종(72)씨가 유학길에 올랐다가 미국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세계 정치의 수도’에서 그는 백악관과 의회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정부와 정치, 공공정책에 대한 관심을 품었다고 한다. 그가 국가 운영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운명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부모님이 ‘너의 친지들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관직에 있거나 정치를 했기 때문에 너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조국이 일제 식민치하에 놓였던 1937년 중국에서 태어나 떠돌았던 ‘디아스포라’였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한국을 찾을 때 증조할아버지가 잠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곧잘 들렀다. 스타우트 부차관보의 말처럼 그의 혈육에는 ‘정치의 피’가 흐르는 듯했다. 증조부 외에 큰아버지인 박유철(73) 광복회장 내정자 역시 국가보훈처장을 지내며 녹을 먹었다. 박 이사장은 “지영이가 어려서부터 영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미 의회에서 보좌진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정무직인 부차관보 자리에 올랐다. ‘소프트파워’(정보와 문화, 예술 등을 앞세운 영향력)를 유독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중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아시아계 여성이 미국 주류사회의 심장부에 파고들며 느꼈을 고충은 컸을 듯해 어려움은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한국계로서 불리한 점은 전혀 없다.”며 “(서양계 외교관보다)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문화와 가치, 국민을 이해하는 데 수월해 이점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美장학프로그램 벤치마킹할 만” 어린 나이 또한 상대국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임무로 삼는 그에게 장점이라고 한다. 젊고 소탈한 성격 덕에 타국의 대학생을 만나 얘기하기가 수월하다. 또 “젊은이의 소통 도구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활용에도 익숙해 그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정보를 얻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흘간의 짧은 일정 동안에도 육군사관학교와 주한 미 대사관 한국 청년 모임 등을 찾아 의견을 듣는 등 분주하게 보냈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한국의 공공외교 정책을 위해서도 조언했다. 핵심은 “국제사회가 한국에 바라는 지원을 해 마음을 사라.”는 것. 특히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를 타국에 전수한다면 국가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명성을 활용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풀브라이트 프로그램(국제장학프로그램)이 공공외교를 시작하는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균미·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나와 통일] “한국은 北에 식량 지원하고 北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1991년 11월 25일. 남북의 여성이 분단 46년 만에 서울에서 얼굴을 맞댔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판문점을 넘어와 남북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 이를 성사시킨 사람은 남한의 여성도 북한의 여성도 아니었다. 4년 넘게 남북한의 메신저 역할을 한 시미즈 스미코 전 일본 사민당 의원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남북 분단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주장하는 시미즈 의원으로부터 남북 여성 교류를 성사시키기까지의 뒷얘기와 현 남북관계에 대한 소회를 들어 봤다. →4·15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북한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요즘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년(2012년)을 앞두고 축하 분위기였다.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와 달리 주택이 잘 정비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살구꽃과 개나리꽃이 아주 예쁘게 폈고, 분위기가 휴일에 축제가 더해져 즐거워 보였다. →외부에서는 북한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내년에 강성대국을 앞두고 국민 경제 강화를 최우선하는 한편 굉장히 자신감에 차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늦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몇 번째 방북인가. -24번째다. 1972년에 간 게 처음이었다. →어떤 계기로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됐나. -1972년 북한의 초청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조선반도가 인식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에서 박물관, 역사전시관 등을 보고,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른바 여성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내가 일본의 이런 야만적인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니 엄청 충격을 받았다. →남북이 분단된 데에 일본의 책임을 느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한반도가 짓밟힌 뒤, 해방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되지 않았나. 일본이 패전했기 때문에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보고 희생자가 된 것이다. 식민지배가 원인이 돼 분단이라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1년 남북한 여성 교류에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됐나. -1987년 8월 이우정 당시 여성단체연대 공동대표가 ‘원자폭단 금지 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 왔다. 감시를 피해 밤에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가 한국의 민주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이 대표가 북한 동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동족인데도 사십년 넘게 못 만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일본에서 북한 여성을 만날 수 없겠느냐.”면서 남북한 여성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일본이 북한과 국교가 맺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 대표의 열정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무려’ 여연구 당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몽양 여운형의 딸)을 말하는 게 아닌가(웃음). 그 이후 4년간 인편을 통해 북한에 편지를 보낸 끝에 일본 대회 개최가 결정됐다. 아마도 김일성 주석에게 편지가 전달됐던 것 같다. →굉장히 긴 노력 끝에 이뤄 낸 결실이었다. -이 대표는 남북이 만난다고 하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테니 ‘아시아 평화의 여성의 역할’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행사 준비도 문서로는 일절 남기지 않고, 구두로만 전달해 몰래 준비했다. 정체가 드러날까 봐 참가자도 모호하게 했다. 미키 무쓰코(고 미키 다케오 전 총리의 부인), 오타카 요시코 자민당 참의원 등을 초청했다. 나중에 정부으로부터 “자민당 행사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성공이었다(웃음). 일본에서 열린 첫 대회에 1000명 이상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집회에서 남북한이 뜻을 모았나.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남북한 여성의 교류를 확대하고, 위안부 문제도 함께 해결하자고 뜻을 모았다. 정치의 벽을 부수는 것은 역시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같은 해 11월에 서울에서 제2차 대회가 열렸다. -한국 여성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 통일원을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 집회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결국 여연구가 아버지 여운형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약속한 일정엔 없었던 일이라고 정부에서 문제를 삼아 도중에 북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깨진 건 참 유감이었지만, 집회 당시 마치 남북이 통일된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했다. 남북한 여성들이 껴안고 울고 웃는 모습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단의 책임을 느꼈다.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남북 교류가 굉장히 활발했던 것 같다. -민중들의 교류, 대화가 없으면 화해와 통일로 갈 수 없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을 때 드디어 밝은 시대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군사적 관점으로만 상대를 보면 미움과 분노밖에 생기지 않는다. 작년에 여러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긴장을 없앨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북통일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일본이 (남북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동북 아시아 지배의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상황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시대는 100년도 더 갈 것이다.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나라가 되기 어렵다. 그걸 이룩하는 게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다. 남북 간의 대립이 있더라도 지원 의지가 없으면 대화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인간은 한번 지원을 해 준 나라는 잊지 않는다. 일본인은 전쟁 후 미군의 건빵·탈지분유 등을 받으면서 점령군에 대한 적대감이 없어졌다. 역시 음식이라는 건 인간에게 일상생활에서 없으면 가장 괴로운 것 아니냐. 북한도 여러 지원에 대해 한국 동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좋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어떤 형태가 가장 좋을까. -다른 나라가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건 다른 나라의 간섭 없이 같은 민족끼리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양측의 좋은 점을 취하고 통일을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군사적 대립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실현될 것라고 생각한다. 조선 민족은 긴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항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에서 조선의 민족성에 크게 놀랐다.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경제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해 지혜를 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지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와 통일] (3) 양영희 재일동포 2세 영화감독

    나는 재일교포 2세다. 오사카에 살고 있고 어릴 때 조총련계 북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1971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오빠 셋을 북한으로 보냈다. 그때는 북한이 지상낙원인줄 알았으니 아들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오빠네 가족들을 만나러 평양에 갈 때마다 가족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굿바이, 평양’은 1995년부터 13년 동안 평양을 오가면서 찍은 영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통일이 돼서 남북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한국, 일본,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 체제의 안정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문제를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평양에 있는 오빠네 가족들은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생필품과 먹을거리, 엔화가 없으면 생활이 거의 어렵다. 북한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진짜 목소리도 없다. 나는 평양에 갈 때마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나오는 장군님 찬양공연을 본다. 13년간 내용은 똑같다. 나는 평양에 있는 동안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 나는 영화 개봉 때문에 한국을 여러번 갔다 왔다. 이어진 땅에서 같은 한국말을 하고 같은 김씨, 박씨가 살고 있는데 남한 사람은 푸짐하게 먹고 북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서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한반도의 절반, 너희들 그냥 참고 살아.”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통일은 잔인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분단된 지 워낙 시간이 많이 흘러 과격한 방법으로 통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되어야 한다. 통일이 어렵다면 이메일이나 전화, 편지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선택권이 없이 북한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관심은 무책임이나 다름없다. 일본 사람들은 남북의 통일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북한은 무섭다거나 밉다는 거부감이 강하다. 간혹 독일 통일 얘기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더 잘사는 한국이 10년은 고생하겠지. 북한은 동독보다도 수준이 떨어지니까 더 힘들지 않겠어?”라고 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그냥 놔둘 순 없다. 일본에서도 북한에 간 사람이 많다. 1959년 북송사업을 시작으로 9만명 이상을 보냈다. 당시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것은 일본도, 남한도 아닌 북한이었다. 나의 오빠들이 북한에 갔을 때 나는 여섯살이었다. 당시에 부두에서 만경봉호를 탄 오빠들을 배웅하면서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빠들을 보낸 기억이 개인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시대적인 흐름을 목격한 목격자가 됐다. 책임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목격자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2006년 ‘디어, 평양’이라는 영화를 개봉한 이후 나는 북한에서 입국 금지조치를 당했다. 북한 정부는 나에게 사죄문을 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으로 낙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죄문 얘기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제도나 권력자에 대한 혐오감이 그 땅에서 사는 보통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나라가 싫다고 해서 사람까지 미워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요즘 이집트, 리비아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북한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모른다. 북한사회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만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만 안 되면 좋겠다. ●약력 ▲47세 ▲도쿄 조선대학교 ▲뉴욕 뉴스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미디어연구과 석사 ▲‘디어 평양’(2006)으로 선댄스국제영화제 다큐 월드시네마 심사위원 특별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 등 수상
  • 분단선 넘어온 눈물…北風 부는 충무로

    분단선 넘어온 눈물…北風 부는 충무로

    2011년 봄, 충무로의 화두는 북한이다. 엄밀히 말하면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북을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실의 남북 관계는 여전히 한겨울 터널 속이지만, 스크린에서는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에 주목한 북한 소재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적인 감동 코드 내세운 북한 영화 봇물 한국 영화사에서 ‘쉬리’ 이후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은 꾸준히 제작돼 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피해갈 수 없는 소재의 보편성과 현실성 때문에 최근까지도 ‘국경의 남쪽’(2006), ‘크로싱’(2008), ‘의형제’(2010) 등 분단의 아픔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계속 만들어졌다. 하지만 올해 선보이는 북한 관련 영화는 이념이나 정치색을 배제하고 일상적인 감동 코드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들이 다수를 이룬다. 특히 탈북자, 재일교포, 조선족 출신 감독들이 직접 보고, 겪고, 느낀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시각과 생생한 현실감이 살아 있다.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이 만든 ‘굿바이, 평양’은 북한과 일본 오사카에 각각 30년째 헤어져 살고 있는 이산 가족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에서 조총련 간부로 살아온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린 양 감독은 이번에는 막내 조카 선화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6㎜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고모!”라고 부르는 앙증맞은 조카 선화와의 첫 만남부터 반복적인 정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거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등 평양의 한 가족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하지만 그 담담한 시선 뒤에는 ‘디어 평양’ 이후 북한 입국이 금지된 양 감독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선화를 통해 바라본 자신의 정체성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난 3일 개봉했다.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량강도 아이들’(17일 개봉)도 북한의 량강도 두메산골에 남한에서 날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가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 영화.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제작 및 연출을 맡았던 정 감독은 실제 북한의 어린이들로만 출연진을 구성하고, 억압된 북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주목한다. ‘두만강’(17일 개봉)과 ‘무산일기’(4월 7일 개봉)는 탈북자들의 실상에 사실적으로 접근한 영화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조선족 출신의 재중교포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북한과 국경을 맞댄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탈북자와 조선족의 갈등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 프랑스 파리 국제영화제 2관왕, 러시아 이스트웨스트 국제영화제 2관왕을 차지했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행복을 찾아 남한에 왔지만 서로 불신과 상처만 쌓이는 탈북 주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레드 콤플렉스’ 약화… 북한에 대한 시각 변화 영화 관계자들은 북한 소재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 소재의 다양성 측면도 있겠지만, 사회문화적인 시각의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이전에 북한은 거시적으로 정치적인 이미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미시적으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는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영화 ‘량강도 아이들’의 홍보를 맡고 있는 영화사 샘의 최혜경 실장은 “북한에 대한 시각이 이데올로기에서 그 체제하의 사람들로 옮겨지면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북한 관련 영화가 제작돼도 배급사나 상영관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고 북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생기면서 북한 관련 영화가 늘어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레드 콤플렉스’가 약화되고 흔들리는 북한 체제를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줄어드는 등 이념적인 문제가 누그러졌고, 영화적으로도 자유분방한 소재가 나오는 추세”라면서 “독일 통일 이후 ‘굿바이 레닌’ 등 동독 관련 영화가 많이 나온 것처럼 최근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서 북한에 대한 모순을 다루고 동시에 남한 사회를 되돌아 보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소재 영화들은 만든 지 2~3년이 된 작품들로 최근에 빛을 본 경우가 많다. 영화계는 이들 북한 영화들이 코미디 열풍을 잠재운 실화 영화 ‘아이들...’의 흥행과 ‘파수꾼’, ‘혜화, 동’ 등 작지만 강한 독립 영화의 선전과 맞물려 의미있는 성공을 거둘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최혜경 실장은 “북한 관련 영화들은 삶에 밀착되어 사실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공감을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영화제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영화적인 완성도도 뛰어나다.”면서 “스마트폰 확산으로 각종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입소문이 난 독립 영화 선전이 이어지고 있어 그 어느때보다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중동혁명과 소프트파워] 알자지라에 치이고 CCTV에 밀리고 힐러리 ‘미디어 공공외교’ 자아비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정권 초부터 외교방향을 ‘소프트파워’ 구축으로 정했다. 군사력을 앞세운 하드파워 시대가 저물고 정보·문화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됐음을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임기 후반에 접어든 지금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진단이 다른 누구도 아닌 힐러리의 입을 통해 나왔다. 2일(현지시간) 힐러리가 의회에서 내뱉은 진단을 곱씹어 보면 미국 외교의 위상과 고민을 확인하게 된다. 힐러리는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돈을 앞세운 ‘초청 외교’ 앞에서 갈수록 초라해지는 미국의 현주소를 전했다. 그는 “중국은 태평양 지역에서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피지나 파푸아뉴기니에 국제개발처(USAid·미국의 국제원조기관)의 깃발을 꽂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힐러리가 정보 전쟁에서 졌다고 자인한 것도 충격적이다. 돌이켜보면 튀니지 민주혁명 이후 중동에서 미국이 보인 행보엔 결함이 있었다. 처음부터 사태의 향배를 제대로 예견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다 뒤늦게 민심을 좇기에 바빴다. 민심에 밀착하지 않고 기존 관행에 안주하다 정보전에서 쓴맛을 본 것이다. 힐러리가 아랍권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를 극찬하면서 미국 방송을 혹평한 것은 귀를 의심할 정도다. 알자지라는 9·11테러 이후 오사마 빈 라덴 등을 인터뷰하면서 명성을 떨친 탓에 미국인에게는 사실상 적국의 매체로 각인돼 왔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진지한 뉴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알자지라에 경박하기 짝이 없는 미국 상업방송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힐러리 장관이 지적한 것은 결국 미국이 추진해온 ‘미디어 공공외교’가 중국이나 러시아에 밀리고 있다는 자아비판이나 다름없다. 상대국 정부뿐 아니라 상대국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에서 뒤처지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이념과 호감도를 높이는 일은 외교관뿐 아니라 각 정부기관, 개인, 비정부기구 등을 포괄한다. 특히 미디어 역할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이 중국에 뒤처지기 시작한 것에 대한 위기의식을 토로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 민주·공화를 아우르는 원로들로 구성된 스마트파워위원회는 스마트파워 활성화를 선언했지만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경제위기까지 겪으면서 이의 해결에 몰두하느라 결과는 답보 상태다. 힐러리의 토로는 최근 들어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확산시킬 미디어의 전쟁에서도 밀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규모에서나 활동력에서나 중국의 CCTV, 신화통신 등에 이미 따라 잡힌 상태다. 힐러리의 문제 제기가 지금의 외교·정보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일신시킬 계기가 될지 아니면 단순한 자괴감의 표출일지 주목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서울 강국진기자 carlos@seoul.co.kr
  •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스타트] ‘삼세번’… 기필코 이룬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스타트] ‘삼세번’… 기필코 이룬다

    ‘Happy 700, 평창은 더이상 울지 않는다.’ 해발 700m에 자리잡고 있는 강원도 평창. ‘Happy 700’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열망하는 평창의 캐치프레이즈다. ‘눈과 얼음의 고장’ 평창이 세계 속에 다시 한번 우뚝서는 날을 위해 마음과 마음을 모았다. 지난 10년간 두번의 실패와 눈물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꼭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각오로 강원도민들이 똘똘 뭉쳤다. 100년만의 최대 폭설로 모든 것이 흰 눈 속에 묻힌 강원도. 하지만 적막한 그 속에서도 2018동계올림픽만은 꼭 유치해야겠다는 함성이 백두대간 곳곳에 합창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는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평창 승리의 함성이 울리는 그날을 위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시작됐다. 총성 없는 전쟁, 올림픽 유치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겠다는 치열한 전쟁이 막이 올랐다. 국가와 지역이 힘을 합치고 이웃나라와 먼나라 구분 없이 내편 만들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전 국민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동계올림픽 유치 3수에 나선 강원도와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세 번째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프랑스 안시를 시작으로 다음달 5일까지 강원도 평창, 독일 뮌헨 순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사평가위원회의 현지실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치전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결과는 모른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펑펑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 14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실사를 위해 구닐라 린드베리 IOC 위원을 포함한 14명의 실사단이 평창을 찾았다. IOC에 제출한 ‘후보도시 파일’을 기초로 경기장과 숙박, 환경, 기상, 안전시설 등 올림픽을 개최할 여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집중 점검하게 된다. 실사단의 점검이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시선 또한 평창으로 집중되고 있다.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는 세 번째 도전인 이번 만큼은 꼭 ‘평창의 꿈’을 이뤄내 국제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미 하계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올해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는 만큼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네 번째의 굵직한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일궈낼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지금까지 그랜드슬램을 이룬 나라는 프랑스 등 4개국에 불과하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한국은 세계 5번째로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나라로 기록된다. 실사 기간 동안 평창과 강릉지역에 내린 폭설로 경기장 일대가 하얀 눈밭으로 변한 것도 실시단에게 동계올림픽 후보지에 대한 강한 첫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m가 넘는 눈 속에서 치러지는 실사지만 2018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좋은 징조라고 반기고 있다. 실사단에게 ‘보다 진전된 평창, 준비된 평창’을 보여준다는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두번의 유치과정을 거치면서 스키점프장과 바이애슬론 등 13개 경기장 가운데 7개 경기장이 완공됐고, IOC본부호텔로 활용할 인터컨티넨탈호텔과 미디어빌리지로 사용할 홀리데인호텔도 완성됐다. 알펜시아리조트의 낮은 분양률로 인한 부정적인 요소도 정부의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시행 결정으로 말끔히 해소될 전망이다. 알펜시아 관광단지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영주자격을 주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중국 등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창유치위는 콤팩트한 경기장 배치를 통해 올림픽을 선수 중심으로 치러내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실사단에게 모든 경기장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원주∼강릉간 복선전철 계획은 기본설계가 완료돼 올해 착공할 예정이고, 제2영동고속도로도 건설에 착수하는 등 교통망 확충도 유치전에 든든한 힘을 보태게 된다. 특히 실사 기간 내내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기는 유치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국민의 91.4%와 강원도민 93%, 평창군민 93.4%의 높은 지지률은 평창 유치전의 든든한 후원자다. 평창은 두번에 걸친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의 아쉬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첫 도전에서는 평창을 평양으로 알고 있을 정도의 ‘무’에서 시작했다.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벌인 1차 투표에서 최고 득표를 했지만 캐나다 밴쿠버에 역전패를 했다. 4년 뒤인 2007년 결정된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는 러시아 소치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다. 모두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놓쳐 안타까움이 컸지만 강원도와 평창을 세계에 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는 평창,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 등 3개 도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신들은 벌써부터 평창과 뮌헨이 2강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지난 2차례 유치전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다만 세번의 유치과정에서 쌓은 IOC위원들의 신뢰와 높은 인지도, 당위성 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분위기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의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도 평창 유치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은 2002년 솔트레이크(북미), 2006년 토리노(유럽), 2010년 밴쿠버(북미), 2014년 소치(유럽) 등 유럽과 북미에서 치러져 아시아 대륙의 개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진선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 특임대사는 “지난 두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세 번째 실패는 없도록 하겠다.”면서 “강원도민들의 눈물을 씻겨주기 위해서라도 꼭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강조했다.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K-리그 시민구단 새모델 도전 허정무 인천 감독

    [피플 인 스포츠] K-리그 시민구단 새모델 도전 허정무 인천 감독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허정무(56) 감독은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업’을 이뤘다. 그런데 월드컵 이후 그의 행보는 상식 밖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감독 유임 권유를 고사하더니, 지난해 8월 연고도 없는 인천의 사령탑을 맡았다. 인천은 대기업 스폰서가 없는 시민구단이라 허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대우를 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천이 K-리그 우승에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춘 팀도 아니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그리고 5개월이 흘렀다. 지난달 30일 올 시즌을 대비한 인천의 전지훈련지인 괌에서 허 감독을 만났다. ●“시민구단의 모범 되겠다” 3주 동안 남태평양의 따가운 태양 아래 지내다 보니 얼굴은 까무잡잡해졌지만 훈련 중인 선수들을 향한 허 감독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또 기대만큼 움직이지 못하는 선수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선수들은 체력훈련 뒤 곧바로 전술훈련에 돌입했다. ‘지옥훈련’이었다. 그래도 선수들은 허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허 감독은 “겨울에 힘들게 훈련한 것이 시즌 막판에 힘을 발휘한다.”면서 “지난 시즌 후반기에 인천은 전반에 세 골을 넣고도 후반에 네 골을 내줘 지는 팀이었다.”고 체력훈련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좋은 성적을 내려면 좋은 선수들이 많아야 되는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시민구단에서 그건 불가능하다.”면서 “그래서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격차를 줄이는 데 훈련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왜 인천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었더니 허 감독은 뜬금없이 “시민구단이 살아야 된다.”고 답했다. 그는 “시민구단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모델인데,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지원이 대기업 구단만큼 좋지 않아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기 힘들어서 성적은 대부분 하위권이다.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지원은 계속 줄어든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데, 2013년부터 승강제가 시행된다.”면서 “송영길 인천시장과 인천 구단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칠 수 없기도 했지만, 인천을 모범적인 시민구단으로 만들어 보임으로써 K-리그에 시민구단이 뿌리를 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인천행 급행열차’를 탄 것은 한국 축구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던 셈이다. 올 시즌 목표로 리그 우승을 내건 허 감독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시즌 11위였던 우리가 우승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면서 “하지만 우승을 목표로 어리석을 만큼 꾸준하고 변함없이 노력하다 보면 우승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걸어온 그의 축구 인생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허 감독 취임 뒤 인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김봉길 수석코치는 “체계가 생겼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자유분방한 팀’이라는 불가피한 별명이 붙었던 인천. 하지만 허 감독이 온 뒤 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는 것이 구단 프런트와 선수들의 설명이다. 허 감독은 오합지졸처럼 제각각이던 선수단을 꽉 틀어쥐었고, 인천은 공동의 목표인 우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표팀 두 번 맡으니 100년 내공 쌓여 허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대표팀 감독을 두 번이나 맡았다. 1998년 처음 대표팀을 맡아 2000년 아시안컵 직후 사퇴한 대표팀 1기 시절 허 감독은 이제는 ‘레전드’가 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알 힐랄), 설기현(포항) 등을 처음 발탁했다. 당시 주변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이 발탁한 이들은 이후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또 핌 베어벡 감독 이후 다시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은 2008년 기성용(셀틱)과 이청용(볼턴) 등 당시 갓 스무살밖에 되지 않은 유망주들을 발탁했다. “너무 어리다.”는 주변의 우려에도 이들은 남아공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이영표-박지성 이후의 대표팀을 이끌어 갈 재목들로 성장했다. 그러고 보니 허 감독은 욕먹으면서 남(거스 히딩크와 조광래 감독) 좋은 일만 해 준 지도자였다. 그는 “내가 잘 뽑은 게 아니라, 그 선수들이 잘한 것일 뿐”이라며 “어쨌든 대표팀 감독 한 번 하면 50년의 내공이 쌓인다. 그걸 두 번이나 했으니 벌써 100살은 넘은 셈”이라며 웃었다. 허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있으면서 함께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면서 “그래도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가서 당당하게 우리 선수들이 제 기량을 남김없이 보여줬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선수로 출전해 실력은 못 보여주고 사람만 쫓아다니다 디에고 마라도나 허벅지 한 번 걷어차고 돌아오는 데 만족해야 했던 그때와 지금의 한국 축구는 확실히 다르다는 뜻이었다. ●세대교체 자연스럽게 진행돼야 그는 박지성, 이영표의 은퇴에 대해 “언제 다시 쓰일지도 모르는데 너무 딱 잘라서 은퇴라고 하니까 좀 아쉽다.”면서 “그래도 자기들이 알아서 잘 결정했겠지.”라고 했다. 또 “지성이, 영표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거니까.”라며 “세대교체는 하는 듯 하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이 제일 좋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고 그러면서 물 흐르듯….”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후임자에게 잔소리가 될까 봐 신중한 모습이었다. 대표팀 감독 당시 전술적인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미드필드를 두껍게’, ‘공격을 날카롭게’ 등 이야기로는 그럴듯하지만 경기장에서 그런 전술을 실현하는 것은 조기축구라도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면서 “특히 선수 특성을 잘 아는 프로팀이 아닌 대표팀 감독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래도 그런 지적은 악플에 비하면 고마웠다.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제공해 줬다.”고 덧붙였다. 마음고생이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다. ‘대표팀 때보다 부담은 덜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허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담이 더 크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잘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선수들과 함께 웃으며 땀 흘리는 모습은 ‘두 골 타이’를 매고 있을 때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글 사진 괌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고충처리인 유상덕<미디어전략실>△전략기획부장 임창용△전략기획부 차장 윤상윤<편집국>△체육부 선임기자 김민수△사회부 의학전문기자 심재억△국제부 차장 박찬구△산업부 〃 이순녀△사회2부 〃 최병규△영상콘텐츠부 〃 임병선<멀티미디어국>△뉴미디어사업부 차장 임천택 ■외교통상부 ◇과·팀장 <담당관>△정책홍보 문성환△외신 전혜란△의전총괄 전근석△의전외빈 이호식△기획재정 김준구<과장>△동북아협력 허승재△동남아 구홍석△서남아태평양 김은영△한미안보협력 김태진△중미카리브 윤찬식△서유럽 홍상우△군축비확산 임상범△개발정책 임정택△조약 김정한△여권 이우철△경제공동체 신송범△동아시아통상 김창년△통상투자진흥 이상호<외교안보연구원>△총무과장 이영규 △기획조사〃 정상천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 승진 △문화예술국 문화정책관 문영호◇고위공무원 전보△국립전주박물관장 곽동석 ■여성가족부 ◇과장급 승진 △복지지원과장 고의수△다문화가족 교육협력팀장 안상현◇과장급 전보△홍보담당관 조민경△법무정보화〃 이남훈<과장>△운영지원 김권영△성별영향평가 홍현주△경력단절여성지원 박현숙△가족정책 윤효식△권익지원 이은희 ■조달청 ◇국장급 전보 △전자조달국장 김재호△부산지방조달청장 지순구 ■경찰청 ◇경정 승진 <일반>△정보3 유재용△경무 장진영△감찰 정문석△인사 김상형△교통기획 조우종△감찰 김희남△홍보 김성식△생활안전 장일영△경비 류재혁△보안1 유종근△외사기획 이강석△정보3 김정환△외사기획 박종섭△재정 양재헌△감사 정한규△정보4 이정찬△감찰 탁병훈△기획조정 이용욱△정보1 박종우<수사>△수사 김성기△외사수사 조상복△사이버 정석화△특수수사 강승관△인권보호 이충섭<정보통신>△본청 정보통신2 변종문△서울 경무 김문재<항공>△경북 경비교통 김태철<여경>△서울 성동 진점옥△본청 교통안전 최은정△서울 3기동대 유경숙△경기2부 여성청소년 윤성인△부산 외사 옥영미◇경감 승진 <일반>△정보4 이종관△정보3 표재우△보안2 박정재△경무 노병훈△규제개혁법무 변재원△생활안전 민경화△정보1 이종두△감사 안두환△보안3 최영호△보안3 김영도△정보4 박찬수△인사 허근행△정보2 하덕재△정보통신2 추엽△교통안전 박한복△장비 김진호△경비 홍석환△정보1 조영욱△인사 이금수△장비 김우영△교통기획 허순무△보안2 유홍열△미래발전 추성국△생활안전 김점상△경비 김종석△대테러 박준식△홍보 이기호△외사정보 김형욱△재정 민상식△외사수사 천승기△보안3 김진홍△정보1 노우찬△외사기획 이승보△정보3 정규장△복지정책 이기중<수사>△특수수사 이용한△사이버 유만균△수사 유지훈△마약지능 공석래△중앙 형사학 조태준<정보통신>△경기 정보통신2 강세권△본청 정보통신1 김홍수△서울 정보통신 박태규△인천 정보통신1 한병수△제주 정보통신 고기방<항공>△서울 경비2 박노원△경기 항공대 오대섭<여경>△부산 생활안전 이은실△경북 경주 윤경애△본청 외사수사 최현아△본청 정보1 이영미△경기 남양주 서미숙△서울 송파 장미나△서울 영등포 안옥희△서울 청문 김선주△부산 금정 임종도△서울 남대문 조효경△서울 성북 배향자△본청 여성청소년 김경숙△경기 군포 한명자△광주 광산 차성숙△인천 생활안전 김재옥△충북 보안 구연순△서울 강서 박미숙△서울 청문 이선례 ■해양경찰청 ◇경정 승진 임용 예정 △군산 271함장 박경래△서해청 기획예산계장 심우춘△감사담당관실 김평한△동해청 보안계장 노우룡△복지계장 김은준△인천 501함장 고영재△울산 장비관리과장 정귀찬△해안경계태스크포스(TF) 김철환△정보과 신용희△남해청 광역수사팀장 서래수△부산 1005함장 홍순언△학교 총무계장 노흥재△태안 1507함 박경순 ■부산시 ◇3급 승진 △부산시(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파견) 김기영◇4급 승진△재난안전담당관 이윤형△환경자원공원사업소장 안병구△동래구(국장요원) 심재화△부산경제진흥원 파견 김양환△동남권광역경제발전위원회 〃 이주석△상수도사업본부 화명정수사업소장 서만석△엄궁농산물도매시장 관리사업소장 김광진△국제수산물도매시장 〃 김영대◇4급 전보△시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이경희△인재개발원 교육기획과장 김상호△서울사무소장 정태룡△아동보호종합센터장 김정호△부산시 유도형<담당관>△감사 안광호△조사 정영노△정책기획 송삼종△유시티정보 김우생△건설정책 하종덕<과장>△과학산업 정수현△창조도시기획 정완식△자치행정 안종일△고령화대책 김종곤△교통정책 마창수△교통운영 이동점△수산진흥 김종범△도시계획 김종철△시설계획 이갑선<국장요원>△영도구 전유찬△남구 김병철△사상구 여준모△동구 정정규<파견>△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하차헌◇4급 교육훈련 파견△부산시 이병진(외교안보연구원 교육파견) 황동철(지방행정연수원 교육파견) 이화숙 유재학 김광설 임채홍 ■KBS ◇국장급 △보도본부 보도국 주간(인터넷뉴스) 김대회◇본사 부장급△감사실 기획·경영감사부장 정인균△인적자원실 인사운영〃 이영태△대외정책실장 정지환△시청자본부 총무국 후생안전부장 허종환△울산방송국장 손정식<편성센터> [부장]△아나운서 김관동△DMB 김용두△편성운영(직무대리) 신기섭<보도본부 보도국(편집)> [부장]△뉴스제작2 김종명△뉴스제작3 임흥순△라디오뉴스제작 김석호<보도본부 보도국(취재)> [부장]△정치외교 이강덕△사회1 김종진△국제 김진수<보도본부> [부장]△시사제작국 탐사제작 윤제춘△〃 시사제작2 감일상△스포츠국 스포츠취재(직무대리) 채일△〃 스포츠제작 정경훈△보도영상국 영상취재 이중완△〃 영상편집 구재영△보도운영 조하룡<콘텐츠본부 라디오센터>△라디오1국 EP 박기완△라디오2국 EP 이인숙△라디오운영부장 이윤복<제작리소스센터>△영상제작국 총감독 한상정 양기성△제작리소스운영부장 김광석<정책기획본부> [부장]△기획예산국 기획 김대회△〃 예산 정구봉△〃 계열사정책 박범서[단장]△남북협력기획 김정훈◇지역·직할부장급 <시청자본부 수신료정책국>△경기남부사업지사장 최용규△경기동부〃 유병돈<부산방송총국>△기술국장 박우근<광주방송총국>△보도국장 김광상△시청자서비스〃 오영철<청주방송총국>△보도국장 김혜송◇프로젝트팀장△정책기획본부 디지털전략추진단장 송준호 ■대한지적공사 △지적연수원장 변용근△지적연구〃 최종만△대구·경북본부장 이찬우 ■도로교통공단 ◇위원 △교통공학연구실장 김동효◇1급△운영복지처장 이상민△광주 편성제작국장 이준용<지부장>△서울 손진우△인천 최동호△광주·전남 김윤태△경북 임영철△울산·경남 한원섭◇2급△전문자격교육처장 이재항△편성제작국장 김석송△광주 관리심의국장 이재섭(본부장 직무대리)<운영지원부장>△서울 이의수△대구 정욱영<교육홍보부장>△서울 이두희△충북 이재훈△대구 기경문△경북 곽문수<안전시설부장>△제주 김기완△전북 김용석<방송기술국장>△광주 전용호△인천 방덕진<편성제작국장>△인천 곽영은△강원 이혜숙◇3급△광주·전남 안전시설부장 주용철△강원 운영지원부장 송준규△경북 〃 양해준<대구>△편성제작국장 김종우△관리심의〃 예동오<대전>△편성제작국장 김형주△방송기술〃 백승기 ■한국화학연구원 <센터장>△환경자원연구 김범식△에너지소재연구 홍영택△정보전자폴리머연구 원종찬△나노바이오융합연구 서영덕△대사증후군치료제연구 안진희△의약화학연구 허정녕△화학분석 김종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획행정실장 안두현△글로컬협력센터소장 이명진 ■새마을운동중앙회 △기획조정국장 이종열△조직사업〃 오성재<사무처장>△서울시지부 송중근△경기도지부 박상선△울산시지부 김재범△강원도지부 박영호<중앙연수원>△연수부장 김정수△전임교수 임병원 ■한국기술교육대 ◇본부장 △노동행정연수원 교육본부장 서광범△능력개발교육원 연수사업〃 김승곤△생활협동조합〃 허동갑◇산학협력단△경영지원실장 이승구 ■한국일보 ◇부장대우 △편집국 편집위원 김진각 ■하나금융지주 ◇팀장 승진 △사회문화팀 김기홍△IR팀 함헌평◇팀장 전보△준법지원팀 김태경△재무기획팀 서문기△정보전략팀 김선철 ■하나은행 ◇부장 승진 △부동산금융부 이병식◇부장 전보△검사부 강성묵△국제금융부 권순철△마케팅전략부 김성엽△여신관리부 류성욱△IT기획부 문종귀△IT시너지지원부 박근영△경영관리부 박용진△대전영업부 서동춘△인력지원부 송여익△시스템운영부 안재훈△영업추진부 윤순태△IT정보개발부 이윤규△인재개발부 이창근△명동영업부 장현석△IT금융개발부 정현식◇실장 전보△자금결제실 김윤경◇팀장 전보△고객만족팀 노유정△회계팀 박일우△자금시장기획팀 이대현△영남영업지원팀 이성우△외환업무팀 조현준◇지점장 승진△원효로 김관회△서신동 김덕기△매탄 김성환△염창동 김종태△봉은사로 박상연△서여의도 백승학△구미 서호열△대구죽전 석영철△센트럴시티 송형호△도산로 윤병철△역삼역 이성은△사직동 임광민△노은중앙 장성일△예산 정용석△변동 조형△범일동 최주현△용산전자상가 황순구◇지점장 전보△광장동 강계섭△서천 강범서△혜화동 강영호△초량 강정화△합정역 강현국△동탄솔빛나루 강환주△인동 강희주△테헤란로 고경래△대방동 고용대△문정동 고태진△태평동 권경미△하안동 권기욱△삼양동 길희석△종로6가 김결호△성환 김광명△천천동 김광옥△수지상현 김남희△두정동 김대환△신월7동 김덕기△수서역 김동규△서초로 김동훈△63빌딩 김득환△금산 김성규△연수 김성호△판암동 김수완△올림픽선수촌 김승환△용문역 김영욱△둔촌역 김영하△원동 김완식△오정동 김용성△반포중앙 김용술△원주 김재옥△등촌동 김정기△남산동 김종성△용인동백 김종준△이매동 김주섭△야탑역 김진국△조치원 김창환△목동역 김치정△잠실레이크팰리스 김태용△대동 김형태△둔산뉴타운 김희자△올림픽 김희정△수송동 노도용△매봉 노용식△개금동 노익재△서소문 문기영△제주 문상도△대연동 박광욱△강남구청역 박단일△일산풍동 박영환△학익동 박장래△삼성1동 박장호△대덕테크노밸리 박정산△은평뉴타운 박조미△대덕특구 박창구△여수 박태성△대림동 배기웅△행당동 백명훈△대전 백재현△화성향남 변병천△화양동 서일호△싱가포르 서지수△동백역 성만용△일원동 소광섭△대치역 송수호△뉴욕 송종근△역촌동 송흥근△신사동 신규호△인사동 신동준△원당 신정호△논산 안상봉△인천논현 안재동△해운대 양현종△봉선동 양회성△개봉동 오성천△신흥동 오영기△경복궁역 유경희△인하대 유명훈△상인동 유병길△아차산역 유정열△일산백마 윤기산△월곡동 윤성철△부평 윤영철△중앙일보 윤일희△황실 윤재식△목포 이관송△정림동 이근진△청파동 이병래△용전동 이병환△행당역 이상봉△고대 이상숙△서산 이상주△부천상동 이승재△망우동 이영섭△공릉동 이영주△세류동 이원근△서판교 이장성△천안 이장호△구리 이재구△대전역전 이재호△오금동 이정규△구로동 이정화△문정로데오 이정화△영주 이제철△길동사거리 이준헌△길음뉴타운 이지현△전민동 이창우△반포남 이태수△중촌동 이한흠△수지신봉 이현숙△둔촌동 임영만△신림동 임정상△잠원역 임종재△신천역 임현주△일산후곡 장기목△효자촌 장정옥△삼전동 전갑수△이천 전명권△호수마을 정기돈△쌍용동 정무영△온양 정문귀△금남로 정민식△상무 정삼균△고잔동 정상근△당진 정상식△분당중앙 정석화△관양동 정용국△청담애비뉴 정천석△충남대병원 정태웅△후곡마을 조규오△범어역 조상래△만촌동 조성현△연신내역 조영모△구포 조영현△부사동 조해식△철산동 주건영△마산 주상식△홍성 채수인△잠실 최맹규△면목역 최윤근△응암동 편도경△구리롯데 하복래△서대문 한인섭△동탄 홍동표△노은 홍석△역삼동 홍성민△은행동 홍성현△둔산크로바 홍정옥△광진교 홍필희△경기광주 황재군△용두동 김두식△강남기업센터 김봉호△역삼중앙 김종순△나운동 김창길△송도신도시 김태오△황금동 박일원△온천장역 방태배△신마산 송형두△우장산역 안정숙△칠곡 이재태△개포사랑 장환춘△우방타운 정해완△교대역 김진영◇지점장 겸 기업금융전담역(RM) 승진△음성 박병간◇지점장 겸 기업금융전담역(RM) 전보△동수원 강대형△김포 강명현△청주 강태희△석촌동 권순목△천호동 금준동△공덕역 김권균△김해 김권수△시흥남 김병호△홍대입구역 김상운△오산 김원규△용인 김윤호△포승공단 김장호△인천 김정수△한남동 김종순△포항 김현수△무교기업센터 남수준△공항로 류창홍△검단 박영철△남동공단 박의수△성남 박춘기△남서울 박훈기△사상 석용권△주엽역 손진△도당동 송용민△서초센터 윤상훈△광주 이경승△익산중앙 이기문△양산 이상주△성서 이석수△신탄진 이택호△삼성동 이현재△삼성센터 이호성△무역센터 임영호△논현역 장병걸△천안기업센터 전우홍△삼성역기업센터 정성관△하단 정양식△역삼역기업센터 정해진△시화 조현철△천안공단 진세득△평촌역 차주필△평택 차태근△분당 최창원△대전기업금융센터 홍석만◇기업금융전담역(RM) 승진△잠실역 김희성△광주 문종원△을지로기업센터 박태규△남역삼기업센터 배현철△상공회의소 신진식△천안공단 유운기△남서울 장성순△여수 정상기◇기업금융전담역(RM) 전보△대기업영업2본부 강효창 권순목 김시훈△동수원 권인기 이장우△전주 김남△대전영업부 김영곤 차응호△중부영업본부 김영광 정근수△천안기업센터 김정국 박영식△남동중앙 노재권△대기업영업1본부 박경신 이강휴 조규평△서초센터 박병준△인천영업본부 박윤수 이경식△성서 박정제△온양 배석영△부동산금융부 백승훈△가산디지털 성영수△시화공단 안민제△성남 왕준상△강남중앙영업본부 유승엽 유중근 황선욱△조치원 유재덕△테헤란로 윤선종△대덕특구 이병규△대전기업금융센터 이병식△구미 이수강△숭의동 이승전△기업여신지원팀 이승희△인천 이정원△도당동 이창환△남동공단 전봉구△삼성역기업센터 정승화△당진 조원경△양산 최양호△기업여신지원팀 태수용 양시연 이영준△반월공단 가만호△수원 박재호△부산 부경훈△동래 서민국△양재동 송성태△구로디지털 이용훈△순천 이재익△트윈타워 이승태◇Gold PB 승진△압구정 김영훈△이촌동 안종담△서압구정 유보영◇VIP PB 승진△대구중앙 김정근△서면 박승주△잠원동 정희숙△서초 황복희◇WM 승진△Wealth Management본부 정성진
  • 日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뿌리와 실체

    日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뿌리와 실체

    일본프로야구의 최강의 팀은 누가 뭐라 해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1934년 창단해 리그 우승 42회, 그중 절반인 21차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야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이승엽(오릭스)이 몸담았던 팀이기에 한국에도 다수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구단이기도 하다. 요미우리는 1934년 ‘대일본 도쿄야구구락부’란 팀명으로 일본 최초로 창단됐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으로 원정경기를 떠나면서 팀 이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도쿄 자이언츠’로 바꿨고 이후 외래어인 자이언츠 대신 ‘도쿄 교진군’으로 그리고 1947년부터 지금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란 팀명을 유지하고 있다. ‘교진’은 자이언츠를 일본어로 할때 거인이란 뜻으로 팀 명칭이 바뀐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교진군(巨人軍)’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일본내에서 요미우리를 지칭해서 사용하는 말이기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덧붙여 야구를 즐기는 팬이라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을 아무런 의식없이 ‘교진군’ 또는 ‘거인군’이라고 따라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진팀의 창단 주역은 경찰출신의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자 지금은 세계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신문의 사주였다. 당시 야구팀을 가르켜 무슨무슨 군(軍)으로 불렀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군국주의가 정점을 향해 내달렸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성행하는 스포츠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단연 ‘야구’다. 즉 절대인기의 야구를 통해 군에 대한 반감을 약화시키고자 했음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1934년 창단된 ‘대일본 도쿄야구구락부’가 일본최초의 야구팀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2개의 팀이 존재하긴 했지만 관동대지진의 혼란스러움 속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가 교진(거인)이란 팀명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당시 미국의 최고 인기팀인 뉴욕 자이언츠의 명성을 감안해 모방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물론 교진이 창단된 이후 1936년 창립된 ‘일본 직업야구연맹’에 속했던 팀들도 군(軍)을 사용하긴 했었다. 한큐군(현 오릭스 버팔로스)이나 나고야군(현 주니치 드래곤스)과 같이 당시 직업야구연맹에 속한 7개 팀들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도 무슨무슨 군(軍)으로 부르는 팀은 오직 요미우리뿐이다. 요미우리를 아직도 군(軍)으로 부르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단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자행되어 왔던 요미우리팀, 더 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신문의 폐악질을 보면 어느정도 유추할수 있는 부분은 있다. 일본야구에서 요미우리신문이 갖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은 자사신문뿐만 아니라 요미우리 구단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는 ‘스포츠호치’ 물론 ‘니혼 TV’ ‘요미우리 TV’ 등이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장악은 포장된 정직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폐해와 연결된다. 수구보수 세력이라 해도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닌 요미우리의 이 거대한 영향력은 일본의 커미셔너 즉 일본야구기구(NPB)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구단주에 의해 일본야구가 움직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아직도 요미우리를 거인군(軍)이라 하는것도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수 없다. 유명한 CF송이 오랫동안 전파를 타면 어느순간부터는 제품보다 노래가사가 머리속에 박혀버리는것과 같다고나 할까. 요미우리를 응원하는 일본인중에 누구하나 거인군(巨人軍)이라 부르는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깊은 고민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이것은 과거 군국주의 시대를 무의식적으로나마 인지하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요미우리를 응원하는 한국의 일부 야구팬들이다. 물론 어느 팀을 응원하든지 그건 개인의 자유 선택이다. 하지만 요미우리를 지칭해 ‘거인군’ ‘교진군’이라 부르는게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알고서나 사용했으면 싶다. 이건 요미우리팬이냐 안티냐의 문제가 아닌 최소한의 상식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충무로·할리우드 물량공세 개봉박두

    충무로·할리우드 물량공세 개봉박두

    지난해 국내 극장가는 사상 최고 호황을 누렸다. 2009년 1조 998억원으로 입장 매출 1조원을 처음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사상 최고치(11월 기준 1조 486억원)를 경신했다. 2010년 전체 매출은 1조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매출이 늘어난 것은 영화 관람료 인상 몫이 컸다. 전체 관람객은 줄어들었다. 한국 영화는 점유율과 매출액 모두 하락했다. ‘잭팟’도 드물었다. 국내 영화는 ‘아저씨’(622만명)와 ‘의형제’(546만명)가, 해외 영화는 2009년 말 개봉한 ‘아바타’를 빼면 ‘인셉션’(587만명)이 유일하게 500만명을 넘어섰다. 몇몇 적신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올해 국내 영화 시장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대작들이 많이 밀고 들어오고 3차원(3D) 입체 영화 개봉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할리우드 강세라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 약세를 점치기도 하지만 제작비 100억원대의 국산 대작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어서 성급한 비관론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00억대 통큰 국산영화 출격 올해 가장 관심이 쏠리는 작품은 강제규 감독의 다국적 프로젝트 ‘마이웨이’다. 강 감독은 다시 한번 전쟁 스펙터클에 도전하며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8년 만에 영화계로 복귀한다. 장동건을 비롯해 일본의 오다기리 조, 중국의 범빙빙 등 아시아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독일 나치 병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갖고 있는 국내 최대 제작비(160억원)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이다. 순제작비 300억원이 거론된다. 연말쯤 개봉 예정. 설 연휴를 앞두고 오는 27일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코믹 사극 맞대결을 펼치는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도 대작에 가깝다. 전쟁 장면이 많아 제작비가 80억원가량 투입됐다. 2003년 히트작 ‘황산벌’의 속편으로 백제 멸망 뒤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며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다. 정진영, 이문식이 ‘황산벌’에 이어 또다시 출연한다. 여름에는 괴물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SF) 해양 스릴러 ‘7광구’가 주목된다. ‘화려한 휴가’로 광주 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그렸던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망망대해의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지는 괴생명체와 인간의 대결을 그린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 1000만명 관객 돌파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았고, 하지원, 안성기 등이 출연한다. 3D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리는 작품이다. 100억원대의 전쟁 스펙터클 ‘고지전’도 여름을 공략한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로 흥행 감독 입지를 굳힌 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박상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써 관심이다. 고지 탈환을 위해 목숨을 건 공방을 벌이는 남북 병사들의 사연을 담았다. 신하균과 고수가 출연한다. 가을 즈음에는 새로운 오토바이 액션이 선보인다. ‘퀵’이다. ‘해운대’ 커플 이민기와 강예원이 주연을 맡았다. 오토바이 퀵 서비스 맨이 폭발물을 배달하게 되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다. ‘뚝방전설’의 조범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연말에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이 범죄 스릴러 ‘도둑들’을 갖고 돌아올 예정이다. 강우석 감독 등 지난해 ‘이끼’ 멤버들이 그대로 뭉쳐 청각장애인 야구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를 그린 ‘글러브’(1월 개봉),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규만 감독의 ‘아이들’(2월 개봉),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3월 개봉)도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美 대작 시리즈물 속편 상륙 할리우드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이 대세다. 신세대 공포 영화의 대명사 ‘스크림’이 11년 만에 찾아온다. 전편의 주인공들이 뭉치고 웨스 크레이븐이 메가폰을 잡은 4편이 4월 공개된다. 3D다. 조니 뎁 주연의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5월에 찾아온다.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올랜도 블룸, 키이라 나이틀리가 하차한 대신 페넬로페 크루즈 등이 가세했다. ‘엑스맨’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엑스맨 : 퍼스트클래스’는 6월 개봉 예정이다. 원래 시리즈보다 더 앞선 시절을 그리는 프리퀄인 이 작품에서 ‘원티드’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자비에 교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국내에서 1편과 2편을 합쳐 1500만명 관객을 사로잡았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3’가 7월 여름 대목의 정점을 찍는다.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 외계 생명체 ‘트랜스포머’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시 3D로 로봇의 화려한 변신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샤이아 라보프가 여전히 주연. 감독과의 불화로 하차한 메건 폭스 대신 영국 출신의 모델 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합류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판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3D도 여름 시장을 겨낭한다. 어둠의 제왕 볼드모트와 죽음의 마법에서 살아남은 해리포터가 드디어 목숨을 건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여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트와일라잇 시리즈 완결판의 첫 포문인 ‘브레이킹던 1부’는 11월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수많은 여심(女心)을 설레게 했던 로버트 패틴슨과 테일러 로트너의 매력이 흥행 요소. 2부는 2012년 개봉 예정이다. 연말은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4’를 통해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3D 여부는 아직 미정. 드림웍스가 5월 선보이는 ‘쿵푸 팬더2’와 디즈니가 6월 출격시키는 ‘카2’,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손을 잡고 연말에 선보일 예정인 디지털 3D ‘틴틴의 모험’ 등 할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들도 관심거리다. 홍지민·이경원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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