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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고봉 12개째 등정 오은선씨, 女산악인 중 세번째로

    여성 산악인 오은선(43)씨가 히말라야 고봉(8000m 이상) 14개 중 12개째를 올랐다. 오씨는 10일 오후 무산소로 해발 8125m 높이의 히말라야 고봉인 낭가 파르밧 정상을 밟았다. 전날 마지막으로 캠프를 나선 뒤 11시간 동안 눈보라를 이겨 내고 이룬 쾌거다. 히말라야 12개 봉을 정복한 여성산악인은 오씨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여성 산악인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 등 3명뿐이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이어 히말라야 14좌 중 12개봉 등정에 성공한 오씨는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휴대전화’ 개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휴대전화’ 개발

    실수로 화장실 변기에 휴대전화를 빠뜨려도, 실수로 휴대전화를 오븐에 넣고 구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휴대전화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브랜드로 유명한 랜드로버사가 소님 테크놀로지 연구팀과 합작해 만든 휴대전화 에스원(S1)은 먼지나 진흙이 절대 기기 내로 침투할 수 없으며, 건물 2층 높이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부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가장 큰 특징은 온도에 강하다는 것. 실제로 지난 달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탐험가 라눌프 핀즈가 실험한 결과 영하 20도의 눈 속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60도의 고온 에서도 끄떡없었으며 최고 100도의 초고온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사용 시간은 대기 상태에서 1500시간 정도이며, 연속 통화할 때는 18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밖에도 방수가 가능한 카메라와 GPS, 라디오, 웹서핑 등의 기능과 시끄러운 곳에서 통화할 때 소음을 막아주는 기능 등을 탑재했다. 일반 휴대전화에 비해 튼튼한 ‘체력’을 자랑하지만, 혹시나 고장이 나더라도 3년간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더욱 안심하고 쓸 수 있다. 이번 달부터 영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랜드로버 에스원의 가격은 한화로 약 63만원이다. 사진=랜드로바 에스원(S1)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일 TV 하이라이트]

    ●반갑습니다 선배님(KBS1 오후 7시30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16개 봉우리를 오른 전설의 산악인 엄홍길이 모교인 동두천 중앙고등학교(옛 양주고등학교)를 찾아간다. 산을 싫어하던 그가 산을 오르게 된 학창시절의 이야기, 16좌 등정이라는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져 있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된다. ●장화 홍련(KBS2 오전 9시) 장화가 수면제를 먹고 실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태윤이 병원으로 달려온다. 하지만 이혼을 하겠다는 태윤의 마음은 변함이 없고, 오픈식에 장화를 제외하기로 한다. 일렉트론시티 일산점 오픈식 날, 태윤은 홍련을 데리고 간다. 그런데 갑자기 장내가 술렁이고, 화려하게 치장한 장화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소개팅에 나간 희진은 그곳에서 우연히 장우를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더욱 친해진 희진과 장우.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왠지 묘한 배신감이 드는 준수. 준수의 진짜 속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한편 상필은 함께 사업을 해보자고 종신에게 자꾸 바람을 넣고, 이를 보는 미선은 불안함을 느낀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11시15분) 샤이니의 꽃미남 막내 태민이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무대에 등장한다. ‘MC리의 믿거나 말거나’에 출연한 태민은 시트콤 출연을 통해 다져진 개그연기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전래동화 ‘혹부리영감’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선배 가수와의 깜짝 전화연결까지 준비한다. ●얼쑤! 한국어쇼(EBS 오전 6시) 요즘 돌고르마씨는 집안일에, 아들 종찬이를 돌보는 것 외에도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바로 미용 기술을 배우는 것. 한국으로 일하기 위해 온 몽골 사람들이 의사소통 때문에 원하는 머리를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미용 기술을 배워 그들이 원하는 머리를 해주고 싶다는 돌고르마씨를 만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6년 만에 베이징에서 열린 대규모 한국 상품전에 112개의 한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다양한 상품들을 선보였다. 전염병 발생이 많은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조류인플루엔자나 살모넬라 등에 안전한 ‘살균계란’과 코 삽입형 마스크 등 아이디어 제품들로 3000건이 넘는 상담 실적을 올렸다.
  • [씨줄날줄] 불 - 수 - 도 - 북/노주석 논설위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수-도-북’은 마니아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산 사람들의 정복 대상이기도 하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군(山群)을 단번에 종주하는 고난도 산행을 일컫는데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줄인 은어이다. 여기에 사패산을 끼워 ‘불-수-사-도-북’이라고도 부른다. 매주 금요일 밤 지하철 4호선 상계역 주변에 가면 첫 행선지인 불암산을 향해 출발하는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산행 코스는 대개 정해져 있다. 총 연장 45㎞를 무박 2일에 주파한다. 15시간에서 20시간쯤 걸린다. 잠을 자지 않고 종주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이다. 한두 번 실패는 예사다. 한번 등정에 성공하면 마라토너처럼 시간 단축을 위해 애쓴다. 불-수-도-북이 서울 강북을 대표하는 이상향이라면 강남지역에는 ‘강남 7산’이 있다.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삼성산을 잇는 46㎞의 비교적 평탄한 코스이다. 대구에는 팔공산 종주길로 알려진 전장 46㎞의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가, 대전에는 둘레산 58㎞를 잇는 ‘보-만-식-계’(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가 어제 총 길이 137㎞의 불-수-도-북과 강남 7산의 서울지역을 망라한 ‘그린 트레킹 네트워크’ 코스를 2011년까지 완공한다고 발표했다. 남산∼인왕산∼북악산∼낙산을 잇는 20㎞구간의 내사산(內四山) 숲길과 북한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 117㎞ 구간의 외사산(外四山) 숲길을 명품 걷기 코스화한다는 계획이다. 기대가 크다. 내사산과 외사산은 한강과 함께 서울이 내세울 수 있는 천혜자원이다. 관광상품화 전망도 밝다. 문제는 지도 위에 선 긋기다. 자전거길의 복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면 서울시가 그어 놓은 자전거길이 얼마나 황당한지 다 안다. 지도에는 그려져 있지만 갈 수 없는 길이 태반이다. 주무국장인 서울시 도시푸른국장이 모든 코스를 직접 답사할 각오로 꼼꼼하게 챙길 것을 권한다. 숲길이 완성되는 날 필자도 도전장을 던질 작정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양성평등 부진땐 책임묻는 제도적 장치를”

    “양성평등 부진땐 책임묻는 제도적 장치를”

    “막연한 양성평등 정책은 의미가 없습니다. 부서 내 모든 업무에서 얼마나 양성평등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해 조직성과에 반영해야죠.”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젠더와 미디어’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석란(61) 유엔개발계획(UNDP) 양성평등국장은 심포지엄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정책을 위해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사람 옆에 훌륭한 사람 있어야” 한 국장은 여성들이 육아부담 때문에 사회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육아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이 돼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훌륭한 남자 뒤에는 훌륭한 여자가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훌륭한 사람 옆에 훌륭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부 역할 강화와 관련, 한 국장은 “정부 최고위층에서 여성부가 각 부처를 상대로 정책을 조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업무중복 여부만 따지면 여성부가 설 자리가 없다”면서 “여성부 스스로 정책을 조정하고 의제를 선도하는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성평등 부문서 한국 갈 길 멀어” 한 국장은 “국가별 비교에서 여성비중 순위가 국회의원은 82위, 장관은 132위밖에 안 된다. 한국인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면서 왜 양성평등 정책에선 경쟁심을 발휘하지 않는 걸까?”라며 양성평등 부문에서 한국은 갈 길이 멀다고 꼬집었다. 한 국장은 한국인 여성 가운데 유엔기구에서 일하는 최고직위의 간부다. 1985년 인턴부터 시작해 25년 가까이 세계 각지를 무대로 활동했으며, 한국의 양성평등정책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아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산악인 고미영 8000m급 3개 등정

    상명대는 체육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여성 산악인 고미영(41)씨가 9일 오후 7시25분 히말라야 다울라기리(해발 8167m) 등정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고씨는 지난달 1일 세계 5위봉인 마칼루봉(8463m) 정복에 성공한 지 17일 만에 칸첸중가(8603m) 정상을 밟은 데 이어 다울라기리 등정까지 성공해 단기간에 8000m급 3개의 고봉을 오르는 활약을 보였다.
  • 맨손으로 218m 건물 오른 ‘스파이더 맨’

    ‘스파이더맨’으로 불리는 프랑스 산악인 알랭 로베르(46)가 또 한 번 ‘맨손으로 건물 오르기’ 도전에 나섰다. 1996년부터 세계 각지의 고층 건물을 맨손으로 등정한 로베르는 지구 기후변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이 같은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지난 2일 호주 시드니의 218m 높이 건물 앞에 도착한 로베르는 가벼운 준비운동 뒤 곧바로 건물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 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전장치 하나 없이 맨손으로 건물을 오르기 시작한 로베르는 30분 만에 건물 옥상에 올라 ‘지구 기후변화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그는 ‘이색 도전을 구경하려고 몰린 사람들 때문에 결국 교통 체증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평소 교통 체증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주장해온 그에게는 역설적인 이유였다. 평소 자신의 도전에 자부심을 내비친 그는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나는 이 도전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편 로베르가 빌딩을 오르는 퍼포먼스로 경찰의 미움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에는 305m 높이의 시드니 타워를 오른 ‘죄’로 1000달러(약 124만원)의 벌금을 냈으며 2003년에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에 올랐다 ‘관광객들을 놀라게 한 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철의 여인’ 오은선 히말라야 도전기

    ‘철의 여인’ 오은선 히말라야 도전기

    남성들도 견디기 힘든 뼈를 깎는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 정상들을 하나하나 밟아가는 여성 산악인이 있다. 200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지난해 로체와 브로드피크 등 4개 고봉 연속 등정 성공으로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은 산악인 오은선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올해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에 도전하고 있다. 3일 오후 10시에 방송하는 KBS 1TV 2009 특별기획 ‘도전은 계속된다’는 세계가 주목하는 그녀의 히말라야 도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현재 오은선은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이미 11개를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모두 남성 전문산악인들조차 어렵다는 무산소 등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그가 히말라야에 족적을 남겨 가는 속도다. 강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할 틈도 없이 그녀는 잰걸음을 걷고 있다. 11번째로 그녀가 오른 봉우리는 히말라야 고봉 중 7번째로 높은 다올라기리(8167m).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한 지 15일 만의 쾌거였다. 해발 8586m 칸첸중가는 히말라야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히말라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 ‘하늘 위에 빛나는 보석’으로 불린다.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코스가 어렵고 위험해 그 명성에 비해 산악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는 산을 정복하겠다고 떠난 수많은 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묻혀 있기도 하다. 오은선은 이곳조차 인천공항을 떠난 지 49일 만에 정상을 밟고 돌아온다. 그녀의 도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쉴 틈이 없다. 그녀의 11좌 등정 성공으로 여성 최초 14좌 완등 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여성산악인 겔린테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은 12좌 등정에 성공해 그녀를 앞서고 있다. 오은선은 다시 회복의 시간도 없이 12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방송은 그 강추위와 산소부족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도전을 위한 한발한발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을 전하며 그 도전의 가치를 함께 새겨본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19차례 에베레스트 오른 ‘슈퍼 셰르파’ 화제

    한 번도 오르기 힘든 에베레스트를 19차례나 등정한 셰르파가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셰르파는 히말라야 산맥에 살면서 등산대의 짐 운반과 길 안내꾼으로 유명하다. 네팔산악협회에 따르면 네팔 셰르파 족인 ‘아파’(Apa·48)씨는 지난 21일 외국 산악팀의 길 안내를 맡아 이들과 동행해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통산 19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이다. 정상에 올라 “지구 기후 변화 금지”(Stop Climate change)를 외친 그는 약 30분 뒤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 1989년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뒤 매년 정상에 오른 그는 누구보다도 산을 사랑하는 셰르파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의 친구 다와 스티븐은 “그가 19번째 등정에 성공해 매우 기쁘다.”면서 “매년 얼음이 녹아 에베레스트 등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의 성공이 지구 온난화 반대 운동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셰르파 ‘나미’(Nami)는 ‘아파’의 뒤를 이어 15차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에베레스트 남서벽 루트 산악인 박영석씨 첫 개척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원정에 나선 산악인 박영석(46)씨가 가장 험하다는 남서벽 등정로를 뚫었다.원정대장 박씨는 진재창 부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과 함께 20일 오후 6시15분(한국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고 국내 원정대측에 전했다. 이들은 19일 새벽 8350m 높이의 ‘캠프 5’를 출발, 14시간여 만에 정상에 올랐다. 지난 15일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닷새 만. 이들이 오른 남서벽 루트는 수직 거리가 무려 2500m나 되는 ‘마의 등정로’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원정대가 도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영국과 러시아 등정대만이 이 길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한국인으로는 박 대장이 처음. 더욱이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에서 한국인이 자체 루트를 개척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연합뉴스
  • ‘코리안 루트’ 열어 에베레스트 등정 의미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티베트 이름 초모랑마)에서도 ‘악마의 벽’으로 통하는 남서벽에 세계 세 번째로 루트를 열어 정상을 밟은 박영석(46·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의 쾌거는 어느 정도 의미를 지닐까.    ●남서벽 루트 등정 성공한 세 번째  지난 2003년 5월22일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이는 116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1953년 5월29일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첫 등정에 성공한 뒤 1988년까지 정상을 밟은 이가 200명이 안 됐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파인 셈. 장비의 첨단화 덕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정상을 밟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1988년 이전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2003년 5월22일 하루에만 116명이 정상을 밟은 것은 그만큼 정상 정복이 쉬워졌다는 반증이 된다.  지난해 등반 시즌이 끝날 때까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이는 4109명이었다.박 대장처럼 두 차례 이상 밟은 경우도 한 차례로 쳤을 때는 2700명이다.1953년부터 1988년까지 35년 남짓 동안 200명이 안 됐던 숫자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19년새 3800여명으로 불어난 셈이다.  하지만 박 대장이 코리안 신 루트를 개척한 남서벽은 달랐다.1975년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 팀,1982년 옛소련 팀 외에 이곳을 통해 서릉에 올라 정상을 딛고 선 경우는 27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박 대장은 1977년 고(故) 고상돈이 한국인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이후 20여개의 에베레스트 등정 루트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인이 연 루트를 통해 정상을 밟았다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베이스캠프(5364m)에서 박영석 원정대와 함께 지낸 동아일보 기자에 따르면 이번 봄시즌에 40여개 등반대는 거의 모두 네팔 쪽의 노멀 투트(남동릉)를 통해 정상 도전에 나섰다.남서벽을 택한 원정대는 박 대장 원정대가 유일했다.  그렇게 남동릉을 거쳐 정상에 오른 40여개 원정대 가운데 영국인 라눌프 피엔스(65)가 있다.피엔스는 남극과 북극에 에베레스트까지 올랐다.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최고령 영국인과 첫 영국인 연금 생활자로 기록됐다.지금까지 최고령 등정자는 네팔인 민 바하두르 세르찬으로 76세였다.  피엔스는 2005년 심장에 이상을 느껴 포기하고 지난해에도 탈진으로 아쉽게 물러선 데 이어 세 번째 도전 만에 쾌거를 이뤘다.  영국 BBC의 피엔스 등정 동영상을 보면 박영석 원정대가 오른 남서벽의 위용이 드러난다.    ●하켄 60개 자일 3500m “순도 100%의 신루트”  보통 기존 루트와 절반 이상 겹치면 ‘변형 루트’로 공인받는데 박영석 루트는 남서벽의 서쪽 편을 따라 100% 새롭게 길을 내 순도가 높은 새 루트를 뚫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캠프2(6500m)부터 캠프5(8400m)까지 하켄(암벽이나 빙벽을 등반할 때 바위나 얼음에 박는 큰 쇠못)을 60여개 박았고 자일 3500m 가량을 연결했다.원정대는 카트만두로 돌아가 네팔 관광부에 등정 사진과 비디오,각종 등반기록을 보여주면서 브리핑을 하게 된다.보통 사나흘 뒤에 네팔 관광부는 등정 인증서를 내주면서 신 루트 개척과 정상 등정을 공인한다. 20일 새벽 0시40분(한국시간 오전 3시55분) 캠프5를 출발해 오후 3시 정상을 밟은 박영석 원정대는 5시간을 하산,남동릉 루트의 캠프4(7800m)에서 잠을 잤다.당초 21일에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19시간 50분을 걸은 피로를 풀 겸 캠프2(6500m)에서 휴식을 취했다. 박 대장은 21일 오후 무전기를 통해 “낙석이 총탄처럼 날아왔고 대원들이 입은 원피스(상하 일체의 고산등산복)는 칼날같은 돌부리에 창호지처럼 찢어졌다.지금 걸을 때마다 원피스 속에 있던 오리털들이 풀풀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10년 안에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코리안 신루트를 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10년 뒤면 56세가 되는데 훌륭한 후배들을 믿고 뜻을 이루고 말겠다는 집념을 밝힌 것. 박 대장은 정상 눈밭에 1993년 두 번째 도전에서 목숨을 잃은 남원우 안진섬,2007년 세 번째 도전에서 눈사태에 희생된 오희준 이현조의 사진들을 올려놓고 하산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첫 한국인 루트 뚫고 등정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첫 한국인 루트 뚫고 등정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티베트 이름 초모랑마) 정상을 한국인이 새로 낸 길을 따라 올랐다.1977년 9월15일 고(故)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초등 이후 32년 만에 이룬 쾌거다. 박영석(46·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가 20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6시15분) 남서벽 코리안 신 루트를 통해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고 동아일보가 전했다.박 대장과 진재창(43) 부대장, 신동민(35), 강기석(33) 대원은 이날 밤 0시40분(한국시간 오전 3시55분) 캠프5(8400m)를 출발해 14시간20분 사투를 벌인 끝에 정상에 마침내 우뚝 섰다.오전 8시18분 서릉루트의 최대 난코스인 70m 높이의 스텝을 올라선 뒤 오전 10시14분 50m 높이의 스텝을 넘어섰다.특히 박 대장은 지난달 1차 정상 도전 때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을 딛고 나흘 동안 2000m의 수직벽인 남서벽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지난 3월19일 출국 이후 63일 만에 들려온 원정 성공 소식이다. 이로써 한국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에 처음으로 ‘코리안 루트’를 갖게 됐다.또 20여개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루트 가운데 ‘박영석 루트’가 새로 생기게 됐다. 히말라야 산맥의 거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 루트를 낸 것은 1975년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 팀,1982년 옛소련 팀에 이어 세 번째다.이로써 박 대장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 이상14좌와 7대륙 최고봉,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것)을 달성한 데 이어 다시 세계 산악계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됐다. 1991년과 1993년 두 번 도전했다 연거푸 고배를 든 뒤 2007년 세 번째 도전에서 박 대장은 산악인 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피눈물’을 흘렸다.해발 8000m까지 진출했지만 눈사태로 아끼던 후배 오희준과 이현조를 잃은 것.두 후배를 잃은 것은 1993년 남원우와 안진섭에 이어 두 번째였고 공교롭게도 이들을 남서벽에 모두 묻은 것이 5월16일로 똑같아 기막힌 악연에 당시 원정대는 울어야 했다.박 대장이 두 사람의 시신을 찾아내 장례를 치르면서 삭발한 채 통곡했던 일은 두고두고 산악인들 입에 오르내렸다.감동적인 다큐 영화 ‘길’에도 상세히 소개됐다. 박 대장은 지난해 9월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맸지만 또다시 악천후에 가로막혀 산을 내려와야 했다. 4전5기 끝에 남서벽에 새 루트를 열어 정상까지 밟은 박 대장은 “정상에 선 것이 꿈만 같다.한국 산악의 자존심을 세운 것 같아 기쁘다.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에 계속 나서겠다.”고 밝혔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원정대는 28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산악인 고미영씨 캉첸중가 등정

    산악인 고미영씨 캉첸중가 등정

    여성 산악인 고미영(42)씨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캉첸중가(해발 8603m) 정상을 밟았다. 코오롱스포츠는 18일 고씨가 네팔 현지시간 오전 11시 캉첸중가 등정에 성공했다고 알려왔다. 지난 1일 세계 5위봉인 마칼루봉(해발 8463m)에 오른 지 17일 만에 캉첸중가마저 정복한 고미영씨는 세계 8000m 이상 14개 봉우리 가운데 9개 등정을 마쳤다. 고씨는 2006년 10월 6위 봉인 히말라야 초오유(8201m)를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8년 8월 K2(해발 8611m), 10월 히말라야 마나슬루(해발 8156m) 무산소 등정 등 8000m급 이상 봉우리를 2년 8개월 만에 9차례 잇달아 올라 여성 산악인으로는 최단 기록을 세웠다. 여성 산악인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14좌 완등을 목표로 한 여성 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씨와 벌이는 경쟁도 뜨거워졌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14일만에 마라톤 완주한 하반신마비 군인

    지난 달 23일 열린 런던마라톤대회에서 불굴의 의지로 완주에 성공한 한 남성의 스토리가 감동을 주고 있다. 함께 출발한 선수들이 경기가 펼쳐진 당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그는 달랐다. 무려 14일이 지나서야 결승점을 통과한 것이다. 목발을 짚고 42.195㎞를 완주한 필 파커(Phil Packer)는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그는 보스니아, 코소보, 북아일랜드 등지에서 16년간 군인으로 복무했지만 지난해 2월 로켓 폭발 사고로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진단 결과는 하반신 마비. 그는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굴하지 않고 목발을 짚은 지 1년 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시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상이군인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뜻 깊은 도전이었다. 하루에 2마일 씩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힘든 도전 속에서 그를 지탱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주위의 관심과 격려였다. 그의 곁에는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준 주치의와 가는 길목마다 뜨거운 박수로 격려해 준 시민들이 있었다. 런던의 택시기사부터 경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14일 동안 총 5만 2400보를 내딛은 그의 곁을 지켰다. 완주 직후 “시원섭섭하다.”며 소감을 밝힌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1년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도전이었다.”면서 “그러나 14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며 나를 지지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어 “길에서 나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마라톤 기록’을 세우며 감동을 선사한 그는 다음 달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국립공원에 있는 엘카피탄(El Capitan) 등정에 도전한다. 한편 필 파커는 이번 마라톤을 통해 목표 기금액인 100만 파운드 중 37만 파운드(약 7억원)를 모으는데 성공했다고 영국 타임즈가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미영 히말라야 마칼루 등정

    여성 산악인 고미영(41)씨가 세계 제5위봉 마칼루에 올랐다.코오롱스포츠는 3일 “고씨가 지난 1일 네팔 현지시간 오전 10시40분 마칼루(8463m) 등정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고씨는 이로써 히말라야 8000m급 14개좌 가운데 8개 봉우리 등정에 성공했다. 고씨는 고산등반을 시작한 첫해인 지난 2006년 봄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한 것을 제외하면 4년 동안 8회 연속 등정하는 쾌거를 올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서울 도봉산에 가면 다른 산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이들이 있다. 해발 650m 지점에 자리잡은 산악구조대, 전국에 3개뿐인 경찰산악구조대 중 하나다. 서울에선 북한산구조대와 더불어 등산객들의 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 상춘객들의 이어지는 이맘 때, 그들에겐 봄을 즐길 여유가 없다. 26년간 등산로에서 조용히 사람과 산을 지켜 왔을 뿐이다. 생명을 지키는 의무감과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그들이 ‘산에서 배워 사람들에게 베푸는’ 등정길을 따라가 봤다. 글·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산악구조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녹색점퍼 차림의 구조대원들의 순찰길을 따라나섰다. 구조대 산장에서 마당바위 쪽으로 가다 신선대로 방향을 트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다. 10분쯤 지났을까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대원들은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는 손오공 같았다. 다들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발걸음은 마치 솜털 같이 가벼워 보였다. 세 갈래 길 앞에 다다르니 등산로를 벗어나 낙엽이 쌓인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인명을 구조할 때 이용하는 단축 루트라고 한다. 김준석(22) 대원은 “구조할 때 헬기가 뜰 수 있는 날은 절반밖에 안 된다. 대부분 우리들이 들쳐 업거나 들것에 싣고 119구급대가 있는 산밑까지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대부터 주봉, 포대능선을 거쳐 사패산까지가 구조대의 영역이다. 하루 24시간 비상대기체제다. 도봉산은 대부분 암반과 기암절벽으로 돼 있어 안전사고가 잦은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125명이 다치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3월 현재까지만 17명이 다치고 3명이 숨졌다. 지난달 28일엔 1만 4245명이 방문해 하루 동안 구조 헬기가 세 번이나 떴다. 구조대원이라고 다치지 말란 법은 없다. 김병철(54) 대장은 “지난해 송추에서 신선대로 오는 길목에서 사고가 접수됐는데 우리 대원이 구조하러 뛰어가다가 돌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골절됐다.”면서 “사람 구하기도 전에 대원들이 먼저 일 치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나더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득주(45) 대장은 아침에 올라오면 근처 석굴암에 들러서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올린다. 종교는 없지만 지난해 5월 도봉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생긴 버릇이다.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의경 신분이라 아직 어린 대원들은 산에서 인생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홍기문(22) 대원이 겪은 첫 사망자는 아직도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칼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20대 남자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결혼을 미뤄 왔다고 한다. 결혼할 때까지 약혼녀가 뒷바라지해 준 끝에 어렵게 취직했다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약혼녀와 등산복을 맞춰 입고 다정하게 손잡고 도봉산을 찾았다. 가파른 암벽 앞에서 약혼녀를 산에서 내려가는 길로 먼저 보내고 혼자 바위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삶을 배운다. “구조하면서 오히려 저희가 더 배웁니다. 삶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산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홍 대원은 순찰을 돌다 사망지점을 밟을 땐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눈에 선해진다. 그럴 땐 영혼이 산을 맴돌지 말고 편한 곳으로 가시라고 잠시 두 손도 모아 본다. 대원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이 차분하고 얼굴은 부처처럼 온화하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현장에선 나이가 서너배 많은 어르신도 그들의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산은 인생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급한 맘에 성급히 추월하거나 준비없이 덤벼들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엔 오히려 사고가 적다. 노인들의 사고 빈도도 낮다. 험한 날엔 일부러 조심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이다. ‘등산 좀 했다.’고 자부하는 30~40대들이 잘 다친다. 사고는 순간이다. 대원들은 “산에선 1초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라며 신신당부했다. 구조대원들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때문에 ‘One for all, all for one(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의 정신이 강조된다. 고참이니 신참이니 하는 위계 질서는 중요치 않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로프처럼 단단히 엮여져 있어야 한다. 전득주 대장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원을 뽑을 때 신체조건보다 인성을 더 본다.”고 소개했다. ●“등산도 경쟁의 장이 돼서 안타깝다” 조난 접수가 들어오면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려도 온 산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김준석 대원은 “그럴 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발 빨리 찾아서 구하게 해달라는 간절함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급장비가 담긴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힘든 걸 느낄 새도 없이 뛰고 난 다음날이면 옴짝달싹 못한다. 등산객들이 봄꽃을 즐기는 쉼터가 그들에겐 촉각을 다투는 응급현장이자 삶의 배움터다. 사망자가 생길 땐 내 탓인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전 대장에겐 지난해 12월에 사망한 40대 여성의 경우가 그랬다. 영하 12도가 넘는 칼바람 추위에 해질 무렵쯤 만장봉에서 추락자 신고가 접수됐다. 전 대장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헬기 예열시간을 벌려고 미리 헬기 요청을 띄워 놓고 현장에 나선 사이 최종 결재를 기다리다 시간이 좀 걸렸다.”면서 “그날따라 사정상 헬기는 뜨지 못했고 구조대가 병원으로 옮겼지만 환자는 결국 숨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주5일제 이후 등산객이 급증했지만 등반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즐기는 게 아니라 남보다 앞서서 산 정상을 올라가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전 대장은 “원래 우리의 산 문화는 ‘입산(入山)’이다. 굳이 정상을 밟지 않아도 물 좋고 바람 좋은 바위에 걸터 앉아 시 한 수 읋고 피리부는 풍류를 즐기는 쪽이었다.”면서 “그런데 서양식 산행 문화가 도입되면서 언제부턴가 정상탈환이 목표가 돼버렸다. 등반시간을 단축해야 된다는 생각에 산도 대결의 장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다.”며 멀리 산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몸짱·마음짱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등산로는 대원들에겐 생명길이다. 구조대에 들어오면 먼저 도봉산 등산로 지도를 그리고 읽는 법부터 배운다. 지난달 23일 입산한 막둥이 김수호(21) 대원은 아직도 등산 루트를 정확하게 외지 못했다. 마당바위~관음암~칼바위~신선대~포대능선 등 주 순찰 코스는 서너곳. 그러나 산악구조대원이라는 명함이라도 들이밀자면 등산로 수십 개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김 대원은 그러면서도 “사고 다발지역인 칼바위, 포대능선쪽은 자신있다. 순찰 때마다 앞장서서 가보곤 한다.”며 자랑했다.  등반대에 들어오면 3주 정도는 구조요청 접수, 응급처치 연습 등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한다.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되는 몸이다. ‘물살’로 입산해서 한 달이 지나면 배가 들어가고 6개월이 지나면 잔근육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산할 때쯤엔 다들 몸짱으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은신처도 생기게 마련이다. 홍 대원은 “마당바위로 가는 길목에 아지트가 있다.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햇볕이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바위가 험하지 않아 힘들 때면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입산해서 처음 내려다 봤던 서울 야경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홍 대원은 “새까만 바탕에 별빛처럼 박힌 도심의 불빛을 보고 고참들에게 ‘절경 보고 왔습니다.’고 보고했더니 막 웃더라. 그것도 한달만 지나면 지겨워진다고.”라며 웃어 보였다.  하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최고참 박서광(22) 대원 눈에 비친 산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박 대원은 “의외로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도 많다. 술이 취했거나 다투는 사람들, 불법취사를 하거나 인화물질을 소지한 이들까지. 안 된다고 말하면 막 대하는 분들도 많다.”며 씁쓸해했다. 의무경찰기간을 대충 때우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박 대원은 “우리에게 ‘대충’이란 없다. 산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은 우리뿐이고 또 그 우리도 그 속에서 많은 걸 배운다.”며 힘주어 말했다. ■ 도봉산 산악구조대는 총8명 24시간 비상대기 26년째 ‘생명 지킴이’로 1983년 3월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학생 산악연맹 소속 7명이 암벽에 매달려 동사한 사고가 일어났다. 119구조대가 출동했지만 꽁꽁 언 로프 때문에 바위 아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 비극을 계기로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구조대가 생겼다. 24시간씩 교대근무하는 대장 3명과 대원(의경) 5명이 한 식구다. 도봉산 정상 선인봉 약 300m 아래의 암벽 밑에 위치한 구조대는 2003년 12월, 99㎡(약30평) 남짓한 아담한 단층 목재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침실 2개와 주방, 화장실을 갖췄지만 대원들은 그전까지 움막 같은 곳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물도 맘놓고 쓸 수 없었지만 지난해 11월 근처 샘(푸른샘)을 연결해 그나마 생활이 나아졌다. 대원들은 “이제는 등산객들이 언제고 방문해도 마음껏 물동냥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1t짜리 물탱크와 정화조를 갖춰 도봉산 환경 문제도 해결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순찰로 시작해 순찰로 끝난다. 아침 6시30분쯤 일어나 끼니 때와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2인 1조로 짜여 무전기를 동반하고 순찰을 돈다. 하루 최소 7시간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구조대에 도착하면 마스코트인 혼혈 진돗개 ‘마초’가 먼저 맞아 준다. 앞서 자리를 지켰던 흑삽살이가 병으로 아쉽게 저 세상으로 간 뒤 들여온 녀석이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심하게 짖지는 않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초’란 이름이 붙었다. 낯을 익히면 금방 짓궂게 달려드는 놈이다. 구조대를 힘빠지게 하는 것은 오래된 구조 매뉴얼과 부실한 현장 지원이다. 구조헬기는 소방방재청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져야 뜰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선 가슴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장까지 6명, 소규모 살림에 의경 한 끼 부식비 1200여원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객들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도움받은 이들이 고맙다며 산 아래 맡겨 놓는 김치 한 통에 오늘도 대원들은 밤낮없이 도봉산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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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네팔에 초등학교 짓는 산악인 엄홍길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네팔에 초등학교 짓는 산악인 엄홍길

    그것은 한 사나이가 히말라야 산신(山神)과 주고 받은 숙명의 약속이었다. “제발 나를 (산에서)살려 보내주신다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데 일생을 바치겠나이다.”라고 20년 동안 간절히 빌고 빌었다. 마침내 사나이는 신의 가호 아래 2007년 5월 히말라야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했다. 그리고 이제 네팔의 어린이들을 가슴으로 품기 시작했다. ●교실·강당 갖춘 현대식 건물… 내년초 완공 영원한 산악인 엄홍길(49·㈜ 에델바이스)씨. 지난해 12월 ‘불멸의 도전’ 사진집을 출간할 때였다. 20년 산악인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기후변화 현장 탐험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자연사랑, 인간사랑, 꿈과 희망의 전도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해 ‘엄홍길 휴먼재단’(이사장 김앤장 대표변호사 이재후)이 설립됐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것. 이달 말 엄씨는 휴먼재단 일행 30여명과 함께 출국해 다음달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네팔의 쿰푸히말라야 팡보체 마을에서 기공식을 갖는다. 규모는 2개의 교실과 강당이 있는 현대식 건물로 내년 초 완공된다. 이에 앞서 4일부터 한 달동안 서울 종로구 구기동 ‘시우터 아트 무한스페이스’에서 ‘희망, 그 새로운 도전’이라는 엄씨의 에베레스트 사진전이 열린다. 히말라야 16좌의 아름답고 고요한 정상의 모습, 등반일지 속에 담긴 성공과 실패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수익금은 네팔 어린이들의 배움터를 만들어주는 데 쓰인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지하 전통찻집에서 엄씨를 만나 악수를 했더니 역시 히말라야 산 사나이의 기(氣)가 강한 전율로 다가왔다. 먼저 네팔에 초등학교를 짓게 된 동기부터 물었다. “1985년부터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지요. 첫번째도 실패했고 이듬해 등정할 때도 실패했습니다. 두번째에는 네팔 팡보체 마을에 살고 있던 셰르파와 동행했는데 기상악화로 불행하게도 추락사를 당해 시신도 못 찾았습니다. 당시 그는 결혼한 지 3개월밖에 안 됐지요. 1988년 세번째 등정에 성공한 뒤 팡보체 마을에서 유가족인 부인과 어머니, 여동생과 자녀도 만났습니다. 그때 제가 학교를 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곳에는 어린이가 50여명이 사는데, 초등학교 시설이 열악해 제대로 배우질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결국 제가 목표를 이루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히말라야 신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산간오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 주고 싶어 팡보체 마을이 어떤 곳이냐고 했더니 “수도 카트만두에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해 해발 2700m 지역에 내린 다음 3박4일 동안 걸어가야 하는 네팔 북부의 산간오지”라고 하면서, 작년 연말에도 치과의료 봉사단원들과 다녀왔으며 이번에도 의료봉사도 하고 문구용품 전달식도 가질 예정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신의 청춘 대부분을 히말라야에서 무사히 보낸 만큼 앞으로는 그 보답을 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사망한 셰르파 부인은 여전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등정을 하면서 동료도 잃고... 살아남은 자로서 유가족을 지키고... 현지 어린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일을 해야지요.” 상명대 석좌교수로 일주일에 6시간 강의를 한다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주말 산행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느냐고 했다. 무작정 오르지 말고 산을 사랑하고 속삭이라고 하면서 “알파인 스틱 두 개를 사용해 오를 때는 짧게, 내려올 때는 조금 길게 하면 덜 힘들고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그는 주말을 이용해 지인들과 함께 도봉산과 북한산 등을 산행한다.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울산 산악인 ‘희망의 8400m’ 오른다

    울산 산악인 ‘희망의 8400m’ 오른다

    울산 산악인들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네팔의 마칼루(8463m) 등정 길에 오른다. ‘희망 원정대’로 이름 지어진 이번 원정대는 오는 27일 오후 7시 울산 중구 남외동 MBC컨벤션웨딩 안젤로홀에서 ‘2009 희망 마칼루원정대 발대식’을 갖고 다음달 19일부터 5월17일까지 60일간의 일정에 들어간다. 원정대는 이상호 대장이 이끌며 조창배 부대장, 김영태 등반대장, 이정훈·한영준·이동대·정수열·강연룡·윤치원 대원 등 9명의 산악인으로 구성됐다. 이상호 대장은 이미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북미의 매킨리, 유럽의 엘브로즈, 남미의 아콩카구아,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등 각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했고, 남극 탐험에도 성공한 바 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인사]

    ■기획재정부 ◇국장급 △사회예산심의관 김규옥△대변인 박철규△복권위원회 사무처장 이재구△성장기반정책관 주형환 ■교육과학기술부 ◇고위공무원 △외교안보연구원 파견 정무경◇서기관△대통령실 파견 배태민△인사과 강상욱△과학기술정책실 나치수<승진>△장관정책보좌관실 최준환△인사과 황보은△운영지원과 이상연△대변인실 이강국△감사관실 박규성 정영준△기획조정실 박준성 이영찬 김광현△인재정책실 박지영 하헌석△평생직업교육국 구영창 이필남 최규봉△교육자치기획단 김현주 유지완△교육복지지원국 배동인△과학기술정책실 함진주 김희상△학술연구정책실 최병만 이용학 황성환 최보영△국제협력국 박대림△한국체대 주명현△감사관실 이용해△인재정책실 임병권 ■농림수산식품부 ◇국장급 전보 △식량정책단장 최희종△축산정책〃 이창범 ■지식경제부 ◇과장급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 박태성△국가균형발전위원회 파견 최영수 ■노동부 ◇전보 △고용정책실 고용평등정책관 허원용 ■인천도시개발공사 <본부장>△사업1 이춘복△사업2 김병규<처장>△재무 남찬일△사업개발 한형호△민간사업 김영은△감리단장 박기완△설계 최동일△공사 장관구△기술 윤재성△재생사업 이순복△아시안게임지원본부 총괄사업 이행노△감사 김명환<본부장>△도시재생장 송기태△아시안게임지원 함형호<처장>△보상 김종기△단지 홍성찬△관광 정치오△검단사업 맹기호△경영 김인규△기획 윤태흥 ■경향신문 ◇파견 <㈜인천경향신문> △대표이사 강성보△편집국장 손동우 ■북경한미약품 △동사장 임종윤△총경리 임해룡
  •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강익중 ‘삼라만상’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강익중 ‘삼라만상’

    “언젠가 백남준 선생님을 모시고 미국 월가(街)의 금융인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월가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변화들에 대해 깊이 있게 말씀하시자 모두들 신기해했다. 그러던 중 ‘30세기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번쩍 깨어났다. 그때 아이와 같이 씩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낮에도 별을 보는 분이구나.’라고 혼자 생각했다.” 화가 강익중이 백남준을 기리며 한 말이다. 1000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 그런 혜안을 한 핏줄의 선배로 두고 뉴욕에서 창작활동을 한다는 게 강익중에게는 꽤나 큰 힘과 자극이 됐다. 그런 까닭에 199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멀티플 다이얼로그’라는 이름으로 백남준, 강익중 2인 전을 열어 주었을 때 강익중은 뛸 듯이 기뻤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를 하게 되니 그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을까. 그때 이후 강익중 또한 1000년 앞을 내다보는 자세로, 우주를 조망하는 마음으로 창조의 길을 걸었다.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40돌을 맞아 열고 있는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내년 2월7일까지)은 이 두 예술가의 재회가 자아내는 멋진 조화를 보여 주는 자리다. 그야말로 거인들의 기(氣)와 운(韻)이 생동하는 장려한 파노라마다. 전시의 기본 성격은 본질적으로 강익중이 작고한 백남준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자리한 미술관의 램프코어 벽면을 크고 작은 작품 6만여점으로 울타리 치듯 뒤덮은 데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난다. 나선형으로 도는 램프코어의 길이는 약 200m에 이르는데, 그 길이의 벽면을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다 채웠으니 보는 사람은 작품의 주제나 내용을 떠나 일단 그 양에 압도되고 만다. 수작업의 양이 이처럼 많아지면 그 자체로 질이 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듯한 느낌에 양을 질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우리 전래의 삼층석탑에 그 조형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은 그런 점에서 이 탑 주위를 도는 신실한 탑돌이처럼 보인다. 세상 어떤 탑돌이도 이만큼 수고롭지는 않을 그런 탑돌이다. 백남준에 대한 그의 존경의 깊이가 이와 같다. 물론 이 탑돌이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등정이다.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산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밟아 올라간 등정이다. 스승과 선배에 대한 진정한 존경은 그를 극복하는 것이다. ‘청출어람’하는 것이다. 선배 백남준에게 오마주를 표하는 후배 강익중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거인을 보게 되는 것은 우리 미술계의 큰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한번 더 함께 전시를 하자.”던 백남준의 말이 의례적으로 던진 게 아니라 진짜 원하던 바였음을 생생히 확인시켜 주는 전시다. <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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