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등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종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빙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폭죽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원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23
  • 최초로 헤엄쳐 영국 일주 에즐리, 157일 동안 뭍에 오르지 않아

    최초로 헤엄쳐 영국 일주 에즐리, 157일 동안 뭍에 오르지 않아

    영국 모험가 로스 에즐리(33)가 영국을 구성하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근해를 헤엄 쳐 한 바퀴 돈 최초의 인간이 됐다. 157일 동안 한 번도 뭍에 오르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바다 조류와 씨름하며 2864㎞를 헤엄쳤다. 그가 먹어 치운 바나나만 500개가 넘었다. 피트니스 전문가이기도 한 에즐리는 지난 6월 1일 켄트주의 항구로 유명한 마게이트를 떠나 지난 3일(현지시간) 돌아왔는데 300여명이 그의 대기록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해변에 몰려 환대했다. 강한 조류에 맞서 싸우고 가을이 되면서 엄청 차가워진 수온을 견뎌야 했다. 폭풍은 물론 해파리들의 괴롭힘도 만만찮았다. 어깨 통증은 만성이 됐고 수영복 찰과상에다 바닷물의 염분 탓에 혀가 갈라지는 등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뭍에 오른 에즐리는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물 속에만 있어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뒤 여전히 “헤엄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지겨워하지 않는다”며 다음 도전할 거리를 찾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매번 조류가 그의 역영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조류 덕에 최고 8.7노트의 속력으로 헤쳐나가기도 했다며 “이 정도면 돌고래가 쫓아오는 속도”라고 농을 했다. 그는 마중 나온 수백명의 응원단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런 환대를 받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며 “이렇게 마중을 받고 사람들이 바나나에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오픈워터(난물) 수영연맹에 따르면 에즐리는 1998년 베노아 르콩트가 대서양에서 작성한 종전 최장 기간 바다 수영 기록(73일)을 곱절 이상 늘렸다. 그는 지난 2014년 4월 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로프 등정을 19시간 만에 해내 기네스 세계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 기록을 해낸 것은 자동차 한 대를 끌면서 마라톤 완주를 한 지 두 달 밖에 안 됐을 때였다. 지난해에도 그는 마르티니크와 세인트루시아 사이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100파운드 짜리 나무 트렁크를 끈 채 수영하려다 완영하는 데 실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법원 “인공암벽 타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전문등반 아니다…보험금 지급해야”

    법원 “인공암벽 타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전문등반 아니다…보험금 지급해야”

    인공암벽을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은 보험금 지급이 거부되는 ‘전문등반’이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 김도현 부장판사는 스포츠클라이밍 도중 다친 A씨가 한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는 4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5년 경기도의 한 인공암벽시설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던 중 바닥으로 떨어져 척추를 다쳤다. A씨는 앞서 체결한 종합보험 계약을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해당 보험의 약관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동호회 활동 등을 목적으로 전문등반을 하는 경우’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보험 약관은 전문등반을 ‘전문적인 등산 용구를 사용하여 암벽 또는 빙벽을 오르내리거나 특수한 기술, 경험, 사전훈련을 필요로 하는 등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A씨가 대학교 산악부 출신으로 졸업 후에도 산악회 대장을 맡아 세계 6대륙 최고봉을 등정했고, 한국산악연맹 등산 아카데미의 강사로 활동했으며, 두달간 사고가 발생한 인공암벽을 11차례나 이용한 점 등을 보험사는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것만으로는 사고가 난 등반이 전문등반이라고 보기 어렵고, 동호회 활동을 목적으로 등반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인공암벽을 등반하는 데는 전문 장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공암벽은 자연암벽과 달리 손으로 잡거나 발을 딛기 위한 인공 확보물과 추락했을 때 충격을 완화할 탄성 매트 등의 시설이 있다”면서 “비록 단독 등반은 금지돼 있지만, 초보자라도 숙련자를 동반하거나 사전에 교육을 받으면 등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호회 활동 목적으로 전문등반을 한다는 것은, 전문등반을 함께하는 것이 목적인 동호회에 가입하고 실제로 회원들과 등반을 하는 것”이라면서 “사고 당시 A씨가 동호회 활동 목적으로 등반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중절모에 파이프 담배, 1921년 에베레스트 등정 나선 영국인들

    중절모에 파이프 담배, 1921년 에베레스트 등정 나선 영국인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대원이 중절모를 쓴 채 파이프 담배를 물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21년 저유명한 조지 말러리(영국) 경이 군인 겸 탐험가 찰스 하워드 뷰리가 이끄는 탐험대에 가이 불록과 함께 참가해 노스콜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던 때 촬영된 사진 중 하나다. 당시 탐험대는 서구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 산군에 발을 들여놓았다. 1924년 6월 8일 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 슬로프에서 숨지기 3년 전의 일이다. 뷰리 탐험대는 노스콜을 통해 정상을 눈앞에 뒀으나 바람에 막혀 돌아서고 말았다. 당시 이들의 탐험은 세계 최고봉 정상에 인간이 오를 수 있음을 입증해낸 의미가 있었다. 이 사진들은 원래 질산 은염 네거티브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벨기에의 살토 울빅 스튜디오가 디지털 사진으로 전환했으며 29일부터 영국 런던의 왕립지리학회에서 무료 전시된다고 BBC가 미리 소개했다.이 사진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높은 초오유 아래 키예트락 빙하를 담은 것인데 말러리가 카메라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에베레스트를 찍는다면서 유리 판을 반대로 놓아 엉뚱하게 초오유를 촬영한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나중에 말러리는 카르타 빙하에 이르렀을 때 쯤에 완벽하게 카메라를 작동해 네팔인 세르파들을 제대로 담았다.세 세르파들이 로프를 이용해 장비를 끌어올리려고 애쓰고 있다. 당시 산소통 같은 것도 없어서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장비나 지원 모두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트렉 일부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맬러리가 건너는 모습을 스냅으로 담았다.블록이 촬영한 이 사진에는 “조지 말러리가 거미처럼 등정했다”고 설명이 붙여져 있었다. 그는 노스콜 등정을 이끄는 맨앞에 있었다.뷰리는 나중에 의원이 됐는데 해발 고도 6858m에 설치한 캠프를 촬영하고 “바람 부는 콜 캠프”라고 칭했다.셰카르 초테 수도원의 티베트 불교 승려들 모습이다.말러리 경이 촬영한 이 사진은 눈덮인 에베레스트 산군을 렌즈에 담은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촬영한 지점과 시점을 “해발 6096m의 캠프-마지막 날”이라고 적어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2m 고층 빌딩 맨손으로 오른 ‘스파이더 맨’ 포착 (영상)

    202m 고층 빌딩 맨손으로 오른 ‘스파이더 맨’ 포착 (영상)

    프랑스의 ‘스파이더 맨’으로 불리는 암벽 등반가 알랭 로베르(56)가 영국 런던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는데 성공했다. 영국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는 이날 런던에서 3번째로 높은 빌딩인 202m 높이(안테나 높이 포함 230m)의 헤론 타워(Heron Tower)를 맨손으로 등정하기에 도전했다. 현지 경찰은 한 남성이 맨손으로 빌딩 벽을 오르고 있다는 신고 전화를 접수한 뒤 급하게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경찰이 오후 1시 37분경 현장에 도착했을 때, 로베르는 이미 빌딩의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40분만에 헤론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간 로베르는 “나는 그저 이 빌딩에 내가 오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라면서 “오르기 전까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다만 빌딩 외벽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를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로베르는 무사히 도전에 성공했지만 벌금형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와 미국, 한국, 홍콩 등지에서 맨손으로 고층 빌딩에 오른 경험이 있는 로베르는 그 때마다 현지 당국에 의해 불법 침입죄 등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6월에는 안전장비 없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123층, 554m 높이)를 75층까지 등반하기도 했다. 당시 송파경찰서는 롯데월드타워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로베르를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한편 로베르는 밧줄이나 벨트를 착용하지 않고 전 세계 고층 빌딩을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부다비 국립은행, 대만 타이베이 101, 홍콩 청콩센터 등 150개 고층 빌딩을 등반했다. 몸에 부착한 카메라로 외벽을 타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창호, 그 친구 자체가 산이었지” 눈물의 추모 행렬

    “김창호, 그 친구 자체가 산이었지” 눈물의 추모 행렬

    김 대장 모교인 서울시립대에 마련 “제자였지만 산악인으로서 열정은 존경” “정상 등정 포기하면서 도움 줬던 사람” 내일 오후 2시 영결식까지 조문객 맞아영정 속 김창호 대장은 오른손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란히 꽃들에 둘러싸인 4명의 모습도 환하긴 마찬가지였다. 17일 오전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대강당에는 이른 시간부터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이날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온 김창호 대장과 임일진 다큐 감독, 격려차 들렀다가 변을 당한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의 시신은 서울 강남 성모병원에 안치됐고, 유영직 대원의 시신은 의정부 추병원에, 이재훈 대원의 시신은 부산 서호병원에 안치됐다. 김 대장의 모교인 이곳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19일 오후 2시 합동 영결식이 열릴 때까지 조문객을 맞는다. 2006년과 이듬해 고 박영석 대장 등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며 김 대장과 인연을 맺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장애인인 내가 등반하는 것을 김 대장이 많이 도와줬다. 정상 등정을 포기하면서까지 희생했다”고 돌아봤다. 영정 곁에는 푸른 바탕에 흰 글씨로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고,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 장관들, 구자열 LS 회장, 엄홍길 대장 등 산악인들이 보낸 조화가 곁을 지켰다. 김 대장의 산악부 시절부터 스승인 이동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제자인 그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고, 산악인으로서 열정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장과 시립대 무역학과·산악부 동기로 공항에서 운구를 했던 염제상씨는 “친구 자체가 ‘산’이었다”며 “산에 대한 애착이 많았고, 정말 순수하게 사람들을 좋아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거벽 등반가인 김세준씨는 “괴짜이기도 했지만 학구파였다”며 “미주나 유럽 산악인들도 아끼는 친구였다. 창호의 실력과 향후 계획 때문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장이 졸업한 경북 영주제일고(옛 영주중앙고) 다목적관실에도 분향소가 차려져 장욱현 시장을 비롯해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알파인 대장 김창호/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알파인 대장 김창호/김성곤 논설위원

    주말인 지난 13일 히말라야 해발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창호(49) 대장을 포함한 한국인 5명이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7193m)에 ‘코리안 웨이’를 개척하던 중 눈보라와 눈사태로 조난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원정대를 이끈 김 대장은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무산소 등정에 성공, 세계 산악계에 그 이름을 드높였다. 그는 대규모 원정대를 구성, 고산 캠프를 설치하고, 셰르파와 산소탱크 등의 도움을 받아 정상 등정조를 정상에 올리는 ‘극지법’보다는 6인 이하로 구성해 스스로 장비를 지고 등반 루트를 개척하고, 산소탱크 등의 도움 없이 정상에 오르는 ‘알파인 등반 방식’을 고집했다. 등반 시 “셰르파와 짐을 똑같이 나누라”고 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짧은 역사에 비해 한국은 등반 강국이다. 고(故) 고상돈 대원이 1977년 세계에서 58번째, 한국에선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이후 40여년 만에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자를 6명이나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 성공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1971년 마나슬루(8163m) 등정에 나섰다가 빙하 틈으로 떨어져 숨진 김기섭 대원을 시작으로 한국인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지현옥 원정대장이 1999년 안나푸르나(8091m)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실종됐다. 영화 ‘히말라야’의 주인공인 박무택은 2004년,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은 2009년 히말라야의 별이 됐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1993년)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이 이끈 원정대도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다 눈사태로 실종됐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근처에서는 히말라야 등반이나 트레킹 도중 숨진 사람들의 추모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는 박영석 대장과 지현옥 대장 추모비도 있다. ‘천상에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을 그대들이여,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 이곳에서 산이 되다’라는 글이 새겨진 박영석 원정대 추모비와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당당했다’라고 적힌 지현옥 추모비를 보면서 한국 트레커들은 막걸리를 올리며 눈자위를 붉히곤 한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도전 정신이 발전을 이끌었다. 그것이 산이든 어디든 인간 한계 극복을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2억원이면 일반인도 수많은 셰르파와 장비들의 도움으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등정시키는 상업 등반이 설치는 판이다. 알파인 방식을 고집한 김 대장과 그 팀의 비보가 안타까운 이유다. 김성곤 논설위원 sunggone@seoul.co.kr
  • 늘 새 방식, 새 루트 개척한 산사나이… 히말라야의 별이 되다

    늘 새 방식, 새 루트 개척한 산사나이… 히말라야의 별이 되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 亞 황금피켈상 2번 수상…국제적 인정 “안전한 귀환이 진정한 하산”이라던 그 눈사태·강풍이 캠프 덮쳐 끝내 하산 못해 구르자히말 직벽 아래 베이스캠프 화근 이재훈·유영직 대원, 정준모 이사도 숨져그렇게도 산을 깊이 사랑하더니 산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지난 12일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구르자히말(해발고도 7193m) 베이스캠프에서 추락 사망한 김창호(49) 대장은 늘 산을 새로운 방식, 새로운 루트로 탐험하려고 노력하던 참산악인이었다. 지난 7일 구르자히말의 남쪽 3000m 직벽 아래 해발 3500m 지점에 도착한 원정대는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걸어서 하루 걸리는 구르자카지 마을에 내려가 있던 여섯 번째 한국인 대원이 11일 밤부터 교신이 되지 않아 다음날 올라갔더니 베이스캠프는 온데간데없고 대원들은 텐트에 갇힌 채로 추락해 협곡 아래 500m 지점에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김 대장과 이재훈(25)·유영직(51) 대원, 영화 ‘히말라야’ 제작에도 참여한 다큐 감독 임일진(49)씨,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들른 정준모(54) 한국산악회 이사 등 한국인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 등 모두 아홉 구의 시신은 14일 아침 동원된 대형 헬리콥터로 모두 수습됐다. 구르자히말은 정상을 발 아래 둔 이가 30명에 그치고 1996년 이후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 8000명 가까이 등정한 에베레스트(해발고도 8848m)보다 더 위험한 산이다. 더욱이 이번 원정대는 직벽 아래 비좁은 지형에 캠프를 설치한 것이 화근이 됐다. 참변의 원인은 눈사태와 강풍 두 가지로 나뉜다. 이날 현장을 둘러본 구조 전문가인 수라지 파우은 “세락(serac·빙하의 갈라진 틈에 의해 생긴 탑 모양 얼음덩이)과 눈이 높은 산에서 떨어져 캠프 부지를 때리면서 생겨난 강력한 돌풍이 대원들을 날려 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김 대장은 세계 최단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올랐고,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 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국제 산악계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2016년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 남벽 직등을 세계 초등하는 등 늘 고정 로프와 고소 등반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코리안웨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왔다. 자금이나 인력을 많이 동원하지 않고 소규모 원정대를 꾸려 자신이 직접 기록하고 정찰해 꼼꼼히 자료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줄였다. 늘 기록을 중시하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등반 기술을 몸으로 전수하고 싶어 했다. 미답봉과 새로운 루트를 여는 ‘코리안웨이’ 원정대원 얼굴이 자주 바뀐 이유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에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지인이 미국 존 뮤어 트레일을 다녀온다고 하자 자신이 아끼던 침낭을 기꺼이 빌려주는 따듯한 면도 있었다. 외교부는 2명의 신속대응팀이 15일 카트만두로 출발해 시신 운구 및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하게 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창호 대장 등 시신 9구 모두 수습, 전문가도 “왜 이런 변이”

    김창호 대장 등 시신 9구 모두 수습, 전문가도 “왜 이런 변이”

    그렇게도 산을 깊이 사랑하더니 산으로 영원히 떠났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구르자 히말(해발고도 7193m) 베이스캠프를 덮친 강풍 때문에 협곡 아래로 추락사한 김창호(49) 대장은 늘 산을 새로운 방식, 새로운 루트로 탐험하려고 노력하던 참 산악인이었다. 14일 아침 대형 헬리콥터를 동원해 김 대장과 한국인 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 등 아홉 구의 시신을 모두 수습해 이날까지 수도 카트만두로 운구할 계획이라고 외교부가 밝혔다. 김 대장과 이재훈(25)·유영직(51) 대원, 영화 ‘히말라야’ 제작에도 참여한 다큐 감독 임일진(49)씨,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들른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 등이 네팔인 가이드들과 함께 변을 당했다. 지난 7일 구르자 히말의 남동면 3000m 직벽 아래 해발 3500m 지점에 도착한 원정대는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걸어서 하루 걸리는 구르자카지 마을에 내려가 있던 여섯 번째 한국인 대원이 11일 밤부터 교신이 되지 않아 다음날 올라갔더니 베이스캠프는 온데 간데 없고 대원들은 텐트에 갇힌 채로 추락해 협곡 아래 500m 지점에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구르자 히말은 정상을 발 아래 둔 이가 30명에 그치고 1996년 이후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어 8000명 가까이 등정한 에베레스트(해발고도 8848m)보다 더 위험한 산이다. 더욱이 이번 원정대는 직벽 아래 비좁은 지형에 캠프를 설치한 것이 화근이 됐다.시신 수습을 도운 미국의 구조 단체 ‘글로벌 레스큐’의 댄 리처즈는 “베이스캠프가 마치 폭탄에 맞은 것처럼 처참한 몰골”이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고도에서는 이 정도로 심한 강풍이 불지도 않고, 경험 많은 원정대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 판단해 베이스캠프 자리를 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은 세계 최단 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올랐고,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 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국제 산악계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2016년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까지 남벽 직등으로 세계 초등하는 등 늘 고정 로프와 고소 등반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지향했다. 자금이나 인력을 많이 동원하지 않고 소규모 원정대를 꾸려 자신이 직접 기록하고 정찰해 꼼꼼히 자료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줄였다. 늘 기록을 중시하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등반 기술을 몸으로 전수하고 싶어 했다. 코리안 웨이 원정대원 얼굴이 자주 바뀌는 이유이기도 했다. 생전에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지인이 미국 존 뮤어 트레일을 다녀온다고 하자 자신이 아끼던 침낭을 기꺼이 빌려주는 따듯한 면도 있었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의 긴급 지시에 따라 외교부는 신속대응팀을 구성해 2명이 15일 카트만두로 출발해 시신 운구 및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하게 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히말라야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눈폭풍에 사망

    히말라야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눈폭풍에 사망

    네팔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에서 한국인 5명이 등반 도중 눈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주 네팔 한국대사관은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 히말 원정 도중 실종됐던 김창호(49) 대장 등 한국인 원정대 5명의 시신을 13일(현지시간) 새벽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해발 35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가 눈사태에 파괴된 채 전날 발견됐다”면서 “이어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의 시신이 오늘 새벽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Koreanway) 구르자 히말 원정대’는 지난 9월 28일 구르자 히말 등반을 떠났다. 이들은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으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원정대는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4·식량·의료 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구성됐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으로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부터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현지 영자 매체인 히말라야타임스가 한국인 사망자 중 1명으로 보도한 정준모는 애초 원정대 명단에 없었다. 원정대는 원래 6명으로 구성됐지만 건강 문제로 1명을 산기슭에 남겨둔 채 남은 5명이 네팔인 가이드 4명과 함께 등반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당초 12일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돼도 이들이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서 잔류했던 동료가 네팔인 가이드 1명을 올려보내 베이스캠프가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베이스캠프는 눈사태가 덮쳐 거의 완전히 파괴돼 있었으며, 캠프 주변에서 원정대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정대는 12일 밤 해발 3500m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눈폭풍 등 강풍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현지 경찰 대변인 역시 AFP통신을 통해 “우리는 사고가 눈폭풍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구조수색 헬기 조종사가 시신들이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네팔 대사관 관계자도 “이들이 등반 도중 강풍에 휘말리면서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베이스캠프 바로 근처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됐고, 나머지 시신 8구는 계곡 아래에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기상 상황이 13일 오전까지 좋지 않아 현장을 수색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이 머물렀던 캠프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최소 하루 동안 트레킹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현지 경찰관 비르 바하두르 부다마가르는 13일 오전 구조 헬기가 이륙했지만 악천후로 착륙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조헬기 조종사는 AFP 통신에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텐트가 날아갔다”면서 “너무 얼음으로 뒤덮인 상황이라 수색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원정대원들의 시신 수습과 운구를 위해 네팔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본부와 주네팔대사관은 사고신고 접수 즉시 재외국민보호대책반 및 현장대책반을 각각 구성했다”면서 “네팔 경찰 당국과 베이스캠프 운영기관 등을 접촉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시신 수습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시신을 수습하려면 구조 헬리콥터를 띄워야하는데 현지 날씨가 나빠 오늘은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14일 새벽부터 현지 날씨를 고려해 수습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조 헬리콥터가 투입되더라도 마땅히 착륙할 장소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헬리콥터에서 구조대원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시신을 수습해야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현지에서 소형헬기로 수색한 결과 시신은 발견하였으나, 소형헬기로는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수습장비를 구비한 헬기를 이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신을 수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시신 발견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시신 발견

    한국인 등반가 5명이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에서 눈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주 네팔 한국대사관은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원정대 5명의 시신을 13일(현지시간) 새벽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해발 35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가 눈사태에 파괴된 채 전날 발견됐다”면서 “이어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의 시신이 오늘 새벽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Koreanway) 구르자 히말 원정대’는 지난 9월 28일 구르자 히말 등반을 떠났다. 이들은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으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구르자 히말은 네팔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 산군에 있는 해발 7193m의 산봉우리다. 원정대는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4·식량·의료 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구성됐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으로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부터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현지 영자 매체인 히말라야 타임스가 한국인 사망자 중 1명으로 보도한 정준모는 애초 원정대 명단에 없었다. 원정대는 원래 6명으로 구성됐지만 건강 문제로 1명을 산기슭에 남겨둔 채 남은 5명이 네팔인 가이드 4명과 함께 등반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당초 12일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돼도 이들이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서 잔류했던 동료가 네팔인 가이드 1명을 올려보내 베이스캠프가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 베이스캠프는 눈사태가 덮쳐 거의 완전히 파괴돼 있었으며, 캠프 주변에서 원정대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경찰 대변인 역시 AFP통신을 통해 구조수색 헬기 조종사가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8명이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기상 상황이 13일 오전까지 좋지 않아 현장을 수색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이 머물렀던 캠프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최소 하루 동안 트레킹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현지 경찰관 비르 바하두르 부다마가르는 13일 오전 구조 헬기가 이륙했지만 악천후로 착륙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조헬기 조종사는 AFP 통신에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텐트가 날아갔다”면서 “너무 얼음으로 뒤덮인 상황이라 수색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원정대원들의 시신 수습과 운구를 위해 네팔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본부와 주네팔대사관은 사고신고 접수 즉시 재외국민보호대책반 및 현장대책반을 각각 구성했다”면서 “네팔 경찰 당국과 베이스캠프 운영기관 등을 접촉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시신 수습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현지에서 소형헬기로 수색한 결과 시신은 발견하였으나, 소형헬기로는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수습장비를 구비한 헬기를 이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신을 수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 김창호! 네팔에서 눈폭풍 캠프 덮쳐 대원 8명과 함께 산화

    아 김창호! 네팔에서 눈폭풍 캠프 덮쳐 대원 8명과 함께 산화

    젊은 산악인들과 함께 미답봉을 오르겠다는 김창호(49) 대장이 스러졌다. 김 대장과 대원 등 한국인 5명을 비롯해 네팔인 가이드와 세르파 4명 등 적어도 9명이 12일(이하 현지시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라울리기리산 근처 구르자 히말에서 눈폭풍이 베이스캠프를 덮쳐 모두 세상을 등졌다고 현지 히말라야 타임스가 전했다. 김 대장은 이재훈, 유영직, 정준모 대원, 다큐 감독 임일진 등과 함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해발고도 6000~7000m대 봉우리들을 새로운 루트로 오르는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정준모 대원은 원래 김 대장 일행이 아니었는데 어떤 경위로 합류해 함께 변을 당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국 BBC는 소형 헬기가 13일 김 대장 등 대원 8명의 시신을 육안으로 확인했지만 나머지 한 구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전했지만 네팔 주재 한국 대사관은 한 구의 시신은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발견됐다고 엇갈리게 전했다. 현지 경찰 구조대는 시신을 수습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다른 헬기를 투입해 시신을 수습하고 우리 대사관은 유족들의 네팔 방문과 시신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히말라야 타임스에 따르면 ‘트레킹 캠프 네팔’의 왕추 셰르파 상무이사는 이날 저녁 거대한 눈사태로 라울라기리산 남향 중턱에 있는 구르자 베이스캠프가 파묻히면서 이들이 급경사면으로 추락해 숨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더 높은 캠프로 등반을 계속하기 위해 날씨가 양호해질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는데 강한 눈폭풍이 덮치면서 산사태가 일어나 해발 3500m에 있는 베이스캠프를 덮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까지 남벽 직등으로 세계 초등해 ‘마이 드림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에 첫발을 뗐다. 그는 세계 최단 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오른 인물이다.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국제 산악계에서도 인정받았다. 화려한 등반 업적이나 수상 실적보다 더 중요한 건 알파인 스타일로 한국 등반사의 새 지평을 계속 열었다. 2007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했다가 박영석 원정대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2013년 재도전하면서 해발고도 0m에서 카약과 사이클, 캐러밴, 8848m의 정상 도전까지 모두 무산소로 해낸 게 출발점이었다. 2016년에는 자전거로 유라시아를 횡단했다. 남들이 깔아놓은 캠프와 고정 로프, 고소 등반 셰르파 없이 대원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지향한다. 강가푸르나 원정에 들인 돈은 3600만원으로 기존 방식의 절반에도 밑돈다. 모두 공평하게 짐을 들고 대장이 식사 당번을 맡기도 한다. 한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가 여섯이나 되지만 남이 깔아놓은 루트로 오른 봉우리 숫자만 헤아린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도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는 등정의 의미를 제대로 찾자는 게 알파인 스타일의 요체다. 김 대장은 지난해 2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전의 고산 등반은 글이나 강연으로만 전수됐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말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경험하고 노하우를 익혀 다음에 같은 정신으로 다른 후배들을 이끌고 새로운 코리안 웨이를 개척하는, 이른바 ‘새끼 치기’를 해 나가는 식”이라고 강조했다. 5년쯤 뒤에는 ‘유어 드림 프로젝트’를 꾀한다. 김 대장은 “평생 히말라야에 도전했는데 잘 안 된 분의 꿈을 이뤄 주거나 산악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과 함께 어느 봉우리를 오른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족으로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로 서울숲 조경 설계에도 참여한 부인과 세 살 딸 단아가 있다. 생전에 고인은 “단아가 다섯 살쯤 되면 가족 셋이서 캐나다 유콘강에 카약을 타러 가려고 적금을 붓고 있다”고 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부처마다 ‘성평등 부서’… 여가부와 시너지냐, 옥상옥이냐

    부처마다 ‘성평등 부서’… 여가부와 시너지냐, 옥상옥이냐

    “부처 차원에서 미투 등 대응 필요” 경찰·검찰 이어 복지부도 설치 나서 “업무 중복” “책임 분산하나” 지적 법무·교육부는 전담 부서 설치 미정경찰청과 대검찰청에 이어 보건복지부도 올해 안에 성평등 전담 부서를 설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이런 움직임이 전 부처로 확산될 모양새다.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부처 차원의 대응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여성가족부의 업무와 중복돼 행정력이 낭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여성가족부 등에 따르면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과 올 초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 이후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근절과 여성 권익 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성평등의 문제를 여가부의 의무로 여기지 말고 각 부처 행정 영역에서 고유 업무로 인식해 달라”며 중앙 부처 내 성평등 담당 부서 설치를 북돋았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달 7일 “부처가 내놓는 정책에 성평등 관점을 제고하겠다”며 장관 직속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성평등 담당관도 두겠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낙태 의료인 처벌이나 출산력 조사는 기존에 있었던 것임에도 성평등 관점이 부족하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아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담 부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미투 운동의 계기가 됐던 대검은 앞서 성평등·인권담당관을 만들었고 경찰청도 성평등정책담당관을 임명하고 관련 부서를 뒀다. 국방부는 지난달 3일 민간위원 9명과 군 위원 3명으로 구성된 양성평등위원회를 신설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으나 해당 업무를 여성부(현 여가부)가 전담하면서 자연스레 폐지되거나 부처 내 다른 부서로 이관되며 축소됐다. 1998년 ‘여성정책담당관’이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복지부, 교육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 도입됐지만, 2005년 여성부에 ‘성별영향분석평가’ 업무가 생기면서 행안부와 복지부는 해당 부서를 폐지했고 법무부와 고용부, 교육부, 농식품부는 다른 부처로 업무를 이관했다. 성별영향분석평가란 법령이나 계획, 사업 등 정부(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시·교육청) 주요 정책을 수립, 시행하는 과정에서 남녀의 신체적·사회경제적 특성 등을 분석 평가해 정부 정책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별 성평등 담당 부서가 신설될 경우 기존 여가부 업무와 중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과거 여가부가 해당 업무를 전담하면서 각 부처들이 업무 중복을 막고자 여성정책담당관 제도를 폐지·축소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투 파문 이후 성희롱·성폭력 이슈에 대해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여가부가 성평등 관련 업무를 부처별로 쪼개 책임을 분산하려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여가부가 성희롱·성폭력 전담 부처로 각인되면서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회와 함께 정부 관련 성평등 이슈에 대해 총괄하게 됐다”면서 “그렇다면 여가부가 주축이 돼 다른 부처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맞는데 오히려 각 부처가 스스로 감시 타워를 설치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올해 신설되는 전담 부서들은 성별영향분석평가 외에 성희롱·성폭력 이슈 등 성평등과 관련된 다양한 사안을 다루는 부서”라면서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하는 부서가 이를 대신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도 일반 부서에서 해당 업무를 성평등과 관계없는 일과 함께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행안부도 업무 중복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어느 부처보다 성평등 전담 부처 마련이 시급한 곳이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인데 세 부처에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데 있어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부처는 법조계·문화체육계·스쿨 미투로 ‘성평등 담당 부서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안팎의 권고를 받은 바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문체부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성평등과 관련해 11억원을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반영했으며, 여가부와 이를 전담할 부서 설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휠체어 끌고 등에 업고 27명이 한 여성을 해발 4270m 올리다

    휠체어 끌고 등에 업고 27명이 한 여성을 해발 4270m 올리다

    여생을 휠체어에서 지내야 하는 미국의 모험심 넘치는 여성을 해발 1만 4000피트(4270m)의 산 정상에 데려가기 위해 무려 27명이 힘을 모았다. 물리적 높이에서 이전까지 올라 보지 못한 경지이기도 했고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화제의 주인공은 유타주에 사는 네리사 캐넌으로 척추를 다쳐 평생을 휠체어에서 지내야 한다는 선고를 받은 지 2년 됐다. 장애를 얻은 뒤에도 카약과 자전거는 물론, 스키와 스포츠 클라이밍 등을 해왔는데 그래도 산에 오르는 일은 언감생심이었다. 더욱이 해발 1만 4000피트의 고산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꿈같은 일이 이뤄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동트기 직전 덴버의 베어슈타트 산 들머리를 출발해 휠체어에 앉은 채로 많을 때는 서너 명이 달려들어 옮겨주다가 나중에 등산로가 좁아지자 차례로 다른 이의 등에 업혀 정상을 발 아래에 뒀다. 하는 일도 달랐고 심지어 캐넌을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콜로라도주의 비영리 자선단체 ‘걸림돌은 없다’가 벌인 ‘캐넌을 1만 4000피트에 데려가기’ 프로젝트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참여자 중에는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릭 베이헨마이어도 있었는데 그는 프로젝트 기금을 모으는 데도 앞장섰다. 이렇게 정상에 오르는 데 5시간, 내려오는 데 5시간이 걸렸다. 캐넌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며 “너덜지대를 지나 마지막 정상에 오르는 릿지 능선에서 정말 힘들었는데 마침내 해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때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가 치밀어 올라왔다”고 감격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사진 WKRC 방송 동영상 캡처
  • 북, 남북정상 백두산 등반 보도…“민족사에 특기할 역사적 사변”

    북, 남북정상 백두산 등반 보도…“민족사에 특기할 역사적 사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함께 백두산에 오른 사실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21일 보도하면서 “북남 수뇌분들께서 민조의 상징인 백두산에 함께 오르시어 북남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의 새 시대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기신 것은 민족사에 특기할 역사적 사변”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중앙통신은 “삼천리 강토를 한 지맥으로 안고 거연히 솟아 빛나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반만년 민족사에 특기할 격동의 순간을 맞이하였다”면서 이 같이 전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부부의 백두산 등정에 남측 수행원들과 북측 간부들이 동행했다. 통신은 남북 정상이 백두산 장군봉에서 오랫동안 전경을 감상한 뒤 천지에 내려가 호반을 거닐며 백두산에 오른 소감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이어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 부부가 장군봉과 천지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남북 인사들이 서로 어울려 뜻깊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도 펼쳐졌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문 대통령 일행의 삼지연 도착, 삼지연에서 남북 정상의 오찬, 삼지연 공항에서 문 대통령 환송과 관련한 내용도 별도 기사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통신은 문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전날 오전 8시 15분 삼지연 공항에 착륙했으며, 그 이전에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도착해 문 대통령 부부를 영접한 사실도 전했다. 통신은 또 다른 기사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부부가 삼지연 초대소 오찬에 앞서 삼지연 연못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두 정상이 못 가에서 산책하며 환담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삼지연에서 귀로에 오르는 문 대통령을 공항에서 환송한 소식도 전하면서 “북남 수뇌분들의 역사적인 9월 평양 상봉과 회담은 북과 남이 손잡고 마련한 귀중한 성과들을 더욱 공고히 하며 북남관계를 새로운 평화의 궤도, 화해·협력의 궤도에서 가속적으로 발전시켜 통일 대업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 데서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평양회담 효과’ 文대통령 지지율 60%선 회복

    부동산 가격 폭등 등 경제지표 악화로 40%대까지 추락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다시 60%선을 회복하며 상승세를 보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0일 발표됐다. 리얼미터가 지난 17∼19일 전국 성인 남녀 1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 포인트),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9월 2주차 주간집계 대비 6.3% 포인트가 상승한 59.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정 수행을 잘 못 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7.9% 포인트가 하락한 33.8%로 집계됐다. ‘모름·무응답’은 1.6% 포인트가 오른 6.8%였다. 최근 소득주도성장 논란 등 경제지표 악화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동안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14일 일간 집계에서 52.2%를 기록한 후 ‘2018 남북 정상회담 평양’이 개최되기 하루 전인 17일에는 53.0%로 상승 곡선을 보였다. 또 문 대통령의 평양 도착에 이어 인민군 의장대 사열 등 북한의 이례적인 환대가 보도된 18일에는 큰 폭으로 상승해 57.7%가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백두산 등정 계획이 보도된 19일에는 61.4%로 올랐다. 이는 지난달 6일(63.2%) 이후 일간 집계로는 처음으로 60%대를 회복한 수치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9월 2주차보다 4.6% 포인트 오른 45.1%를 기록, 7월 2주차(45.6%)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45%대를 회복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또 셀피 찍다 그만, 이스라엘 18세 청년 요세미티 추락사

    또 셀피 찍다 그만, 이스라엘 18세 청년 요세미티 추락사

    이스라엘의 18세 청년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셀피를 찍다가 추락해 숨을 거뒀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토메르 프랑크푸르터의 시신을 고국에 송환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2개월 일정으로 미국을 관광하고 있었으며 셀피를 찍는 과정에 발을 헛디뎌 높이 250m 아래 계곡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휩쓴 화마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최근 재개장했는데 프랑크푸르터는 다시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변을 당했다. 지난달에도 두 산악인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엘 카피탄을 등정하려다 굴러 떨어져 삶을 마감했다. 지난 5월에는 또다른 산악인이 하프돔에서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 9월에도한 영국 산악인이 엘 카피탄의 바위에 짓눌려 생을 마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스티브잡스 혼외딸 “아버지, 신음소리 낸 뒤 지켜보게 해”

    스티브잡스 혼외딸 “아버지, 신음소리 낸 뒤 지켜보게 해”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혼외 딸 리사 브레넌-잡스(40)가 비망록 ‘스몰 프라이(Small Fry, 하찮은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비정한 아버지 잡스에 대해 말했다. 잡스는 23세 때 고교 시절부터 사귀었던 크리산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딸 리사를 낳은 뒤 DNA 친자 확인까지 거쳤지만 한동안 인정하지 않고 재정적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크리산은 식당 청소 일 등을 하며 정부 보조금을 받고 어린 딸을 키웠다. 크리산은 성공한 잡스에게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예쁜 집을 봐뒀으니 사 달라고 부탁했지만, 잡스는 그 집을 “아름답다”고 말한 후, 자신과 그의 아내 로렌 파웰과 함께 이사했다고 리사는 회고했다. 1991년 파웰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 잡스는 리사를 딸로 인정했다. 그러나 잡스는 딸 앞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리사는 “어느 날 잡스가 파웰과 키스하면서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며 연극에서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자리를 뜨려 하자 잡스는 ‘거기 있어. 우리는 가족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야. 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신음하며 넘실대는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봤다”고 책에 썼다. 그는 NYT 인터뷰에서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았다.단지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법원으로부터 친자 확인을 받고 10여 년이 흐른 뒤 잡스는 또다시 아버지임을 부정한다. 애플 웹사이트에 올린 최고경영자(CEO) 이력에 아이를 세 명이라고 기재했다. 파웰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만 기재한 것이다. 앞서 리사는 패션잡지 배니티 페어에 소개된 비망록 발췌문에서 “그에게 나는 정상을 향한 등정 과정에서 하나의 ‘오점’이었다.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그가 원했을지도 모를 위대함과 미덕에 대한 서술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화해했고 잡스가 암 투병을 할 때 리사는 그 곁을 지켰다.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던 잡스는 그녀 앞으로도 유산을 남겼다. 리사는 NYT 기자에게 “아버지는 오랜 시간 나를 딸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지만, 나는 그를 용서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잡스의 미망인 파웰 잡스와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은 성명을 통해 “리사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당시 우리의 기억과 극적으로 다른 그녀의 책을 읽는 것은 슬플 것”이라며 “우리가 아는 아버지 스티브는 리사를 사랑했고, 그녀가 어렸을 때 당연히 했어야 했던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요칼럼] 성평등정책과 인원충원 무산, 정부 인력정책의 철학 묻는다/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금요칼럼] 성평등정책과 인원충원 무산, 정부 인력정책의 철학 묻는다/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정부가 업무를 수행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개 논의의 쟁점은 예산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데 예산이 어느 정도 확보될 것인가가 공무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정부의 예산 배분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는 권한이 크지만, 고민도 클 것이다.그러나 예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력일 때가 있다. 예컨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 신규 부서의 설립 등 과거에 없던 업무를 계획하고 이를 담당할 부서나 인력을 충원하려고 할 때다. 부처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무원 증원은 대개 행정안전부가 결정권을 행사한다. 중요한 권한이 주어진 만큼 그 책임에 대해 공론장에서 치열한 토론도 필요하다. 정부 부처의 인원을 늘리고 줄이는 일이 행안부만의 관심사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큰 틀은 국정과제 추진 로드맵과 총리실, 청와대 등 더 높은 수준의 권력기관에서 결정되겠지만, 미시적인 수준의 조정은 행안부의 결정 사항일 것이다. 각 부처는 몸집을 불리려 할 것이고, 이 줄다리기에서 때로 과감하게 때로 신중하게 요구들을 쳐내는 일은 분명히 곤혹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서고 여러 가지 개혁과 새로운 정책들을 추진하는 시기에는 이 임무가 훨씬 더 복잡하고 무거워질 것이다. 또한 무조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인 새 정부의 많은 관료는 국가의 책임과 관료의 소명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복지와 경제발전 등 여러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스웨덴과 덴마크, 독일 등은 정부가 자신의 책무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적극적으로 시장과 사회에 개입해 온 국가들이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고 있는 정부의 인력 충원 정책을 보면 새 정부 인력 정책의 철학이 무엇인가 의문이 생긴다. 그 예로, 지난 4월 경찰청에서는 ‘성평등정책과’를 신설하고 인력 충원 계획을 세웠다. 멀리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피해자들과 관련 여성단체들의 오랜 요구이자, 가까이는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운동’과 최근 집회에서 제기된 핵심과제가 경찰의 성인지적(性認知的) 업무수행이기 때문이다. 여성 경찰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고 성인지적 업무 수행을 관장하는 부서도 없었기에 그동안 경찰로서도 속수무책,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올해 과를 신설하고 업무체계를 조직하는 등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지만, 정작 문턱은 행안부에 있었다. 인원 확보 계획이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여성들을 위해서 뭘 더 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폭력 등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안전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찰의 업무수행 전반에서 성인지적 의식과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다. 광화문이든 혜화동이든 수많은 여성이 뜨겁게 외쳐 온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행안부 장관마저 반성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던가. 오랫동안 굳어져 온 제도와 관행, 문화와 의식을 바꾸는 것이 개혁이라면, 경찰의 성인지적 역량 강화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이 시대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제를 실현하고자 조직을 정비하고 사람을 들이는 일이 정부의 임무가 아니고 무엇이랴. 날마다 이런저런 정책들을 발표하지만, 무엇이 실제로 집행되는지, 정부 정책의 효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일각의 의심을 넘어서려면, 사람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라. 관행적인 몸집 늘리기와 개혁을 위한 부처 혁신을 구별하는 식견이 공직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K2 정상서 스키 타고 하강…세계 첫번째 성공 (영상)

    K2 정상서 스키 타고 하강…세계 첫번째 성공 (영상)

    폴란드 출신의 유명 모험가가 세계 2위 고봉 K2에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타고 하강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등 해외언론은 폴란드의 안드레이 바르겔(30)이 22일 K2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데 성공한 세계 첫번째 인물이 됐다고 보도했다.     과거 히말라야의 여러 고봉을 등정한 후 스키를 타고 내려온 바 있는 그는 이번에 K2를 그 목표로 삼았다. 해발 8,611m에 달하는 K2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특히 산악인 사이에서는 가장 등정하기 힘든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K2 등반에서 그는 산소 장비 없이 정상에 올랐으며 이어 스키를 타고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또 그의 위험천만한 스키 하강 장면은 함께 등반한 형제가 드론을 띄워 담아냈다. 바르겔은 "지난해에도 K2 스키 하강에 도전했으나 기상 악화로 아쉽게 접어야했다"면서 "K2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이번에 성공하게돼 매우 행복하다"고 밝혔다.   CNN 등 해외언론은 "K2는 '잔인한 산'이라는 악명이 있을 만큼 그간 수많은 산악인이 등정 중 목숨을 잃었다"면서 "등정에 성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산악인으로서는 큰 위업으로 바르겔의 기록은 대단한 성과"라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삼육대,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염원 등반

    삼육대,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염원 등반

    삼육대학교(총장 김성익)는 개교 112주년과 남북 화해 분위기를 기념해 ‘통일 청년이 간다 –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주제로 남북한 최고봉을 등반했다고 18일 밝혔다. 김성익 총장과 김용선 학생처장, 재학생 25명은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한라산과 백두산을 올라 한반도 평화 통일을 염원했다. 남북한이 평화로 다시 하나 됨을 기원하고, 한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취지다. 등반대는 한라산에 오를 때 폭우로 인해 출입이 통제돼 삼각봉 대피소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중도 탈락 없이 전원 무사히 등정에 성공했다. 백두산에서는 맑게 갠 날씨 속 천지의 장엄한 풍광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또한 이들은 6.25 전쟁 당시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보고, 압록강에서 북한을 조망하며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간접경험했다.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 장군총, 오회분오호묘 등 고구려 문화유산도 답사하면서 역사관을 길렀다. 김 총장은 함께 한 학생들에게 통일의 중요성과 영향력 등을 강조하며 조국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나아가려는 포부를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수경 부총학생회장(유아교육과3)은 “남북한 화해의 바람이 통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등반을 준비했다”며 “한반도의 긴장관계가 완화돼 육로로 백두산에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