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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In&Out] 한국전쟁을 그린 염상섭의 ‘취우’ 속 여성은/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한국전쟁을 그린 염상섭의 ‘취우’ 속 여성은/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이번 학기에 공부하는 소설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 발표된 소설이며 이른바 전쟁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국 역사와 사회를 어느 정도 접하게 되었고 그중에 중요한 위상을 지닌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읽은 적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한 적은 없었으나 관련 저서나 논문은 종종 읽었다. 그러나 한국문학 중 식민지 시대의 문학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다 보니 1950년 이후에 발표된 문학이나 소설들과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이 시대의 소설을 공부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전쟁’이라는 단어에서 끔찍함, 잔인함, 전투, 군인, 두려움, 트라우마 등과 같은 단어나 분위기가 불가피하게 떠올랐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주제가 이번 학기에 읽어야 하는 소설에도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문인들은 전쟁이라는 사건에 처했을 때 당연히 자기 작품에 시대상을 그대로 담았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생각은 맞지 않았다. 배움이 짧아서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학기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읽은 작품은 4편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들은 전쟁의 어두운 상황을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작품을 읽었을 때 꽤 흥미롭게 느꼈고 그 시대가 문학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투사되었고 반영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중에 흥미롭게 여긴 주제들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읽었던 전쟁소설은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연재된 염상섭의 ‘취우’이다. 해방 이전부터 활동한 염상섭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여러 작품을 집필했는데 ‘취우’는 장편소설로 당시를 이해할 중요한 소설이라고 평가된다. 이 소설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분위기가 포착된 묘사들이 여러 부분에서 발견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는 일상생활의 이야기가 거론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주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도 아주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전쟁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여성은 때때로 ‘미망인’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작품에 나온 여성 인물은 ‘미망인’이라고 해도 전형적이지 않다. 가령 이 작품에서 ‘강순제’라는 여주인공은 영어 실력을 갖춘 무역회사의 비서로 ‘원피스’를 자주 입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 설정을 염두에 두었을 때 모던여성, 즉 신여성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작가가 그 당시의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궁금했다. 피란해야 하는 상황이고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와 잠시 헤어지게 된 상황에 놓여 있으나 ‘강순제’는 절박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었고 오히려 생활력이 강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그려졌다. 이러한 점이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라고 여겨졌고 이 여성이 당대 여성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인물이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취우’ 이외에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과 최정희의 ‘그와 그들의 연인’(1956~1957)에서도 여성 인물의 비중이 크다. 이 중에서 최정희의 ‘그와 그들의 연인’이라는 작품이 눈에 띄었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윤상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청춘 혹은 여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세 작품은 한국전쟁 소설이니만큼 이데올로기적인 면도 드러나 있지만 두드러지게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성, 여성 인물 이야기 등과 관련한 다른 면이 흥미롭게 잘 그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시기에 나온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도 동시에 공부할 수 있어 이번 학기 수업이 아주 감사하다. 학기 중에 읽을 다른 소설이 매우 기대된다.
  • 죽음, 불행 속에 꽃피는 인간애

    죽음, 불행 속에 꽃피는 인간애

    사랑하는 아들이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되고(‘허물’), 6년 만에 어렵게 임신한 아이를 유산한다(‘하얀 바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어느 시인의 죽음’). 이상욱 작가의 소설집 ‘기린의 심장’ 속 등장인물들은 이처럼 예기치 못하게 죽음을 맞닥뜨린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불행을 겪으며 공허함과 고독, 절망을 느낀다. 작가는 SF와 순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종합선물세트’처럼 기발한 상상력으로 한데 묶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불행은 사회 부조리와 연결돼 있다. 수록작 ‘연극의 시작’에서 지하철 화재로 딸을 잃은 노인은 자식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을 납치해 복수한다. 영준은 공장에서 과도한 연장근무와 팀장의 폭력으로 왼손을 잃고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일이 지하철 화재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이유로 노인에게 납치된다. 영준은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가해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는 연쇄적으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시인의 죽음’에서는 외계인 가브족이 등장하고 지구인들은 그들에게 백기 투항한다. 가브족이 인류를 멸종시키지 않는 대신 일부 인간만 식재료로 사용하기로 하자, 지구 대표는 인육 공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제물이 되는 대상은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 없는 계층이다. 하지만 작가는 적자생존의 시대에도 인류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공무원 대수는 가브족의 식재료로 선택된 고등학생 용천의 시를 읽고 감동해 대신 제물이 된다. “죽음이 주는 안식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비가역성을 담보로 합니다”(153쪽)라는 고백처럼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모든 것이 끝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작가가 설정한 죽음은 이처럼 무언가 변화를 가져온다. 단편 9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읽으면서 계속 불행을 되새기게 되지만 그 끝에선 그것을 견디는 힘과 희망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문장부호까지 그대로… 고전 번역의 진화

    문장부호까지 그대로… 고전 번역의 진화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읽히는 해외 고전들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가들에겐 도전의 영역이자, 높아진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기도 하다.도서출판 삼인은 최근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①를 고종석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했다. 1943년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첫 출간한 ‘어린 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의 주인인 소년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풍자적 소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인 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프랑스어의 흐름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 작가는 원작이 채택한 문장부호를 그대로 살렸다. 예컨대 “-다들 너무 잊고 있는 거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101쪽)에서 보듯 대화와 지문을 한 문장 안에서 분리하지 않고 프랑스식 표기를 존중한 것이다. ‘강들과 바다들’처럼 어색한 복수어도 일부러 프랑스어처럼 번역했다. 주인공 어린 왕자는 ‘그’라고 부르는 기존 번역서와 달리 ‘그 아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대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새움 출판사는 영국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② 직역판을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으로 내놓았다. 오웰이 1945년 공산주의를 비판하려고 지은 이 책은 동물을 의인화한 풍자 소설이다. 평소 직역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역자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기존 번역본에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라고 했던 ‘I had no intention of doing that’을 “난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로, “내가 고의로 죽인 건 아냐”였던 ‘Who will believe that I did not do this on purpose’는 “이게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누가 믿을까?”(53쪽)로 직역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각색 없이 부각시켰다. “캐릭터의 성격을 잘 보여 주기 위한” 의도다.문학세계사는 최인자·신현철 평론가가 번역한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③을 펴냈다. 1998년 미국 로버트 템플 부부가 주해한 책을 원문에 충실하게 완역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원래 어른을 위한 처세술이 담긴 책이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150여편을 삭제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교훈집으로 알려졌다. 역자들은 동성연애자의 사랑을 다룬 ‘제우스와 수치심’(32쪽)이나, 교훈보다 삶의 냉혹함만 느낄 수 있는 ‘굶주린 개’(251쪽)와 같은 이야기 등을 엮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번역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대 사회와 문화에 맞게 번역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원전에 충실한 번역은 당연하게 추구해야 하며 이제는 학문적 깊이와 새로운 연구 경향도 반영하는 번역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원작의 맛’ 최대한 살리자…고전 해외 문학 번역 출간 잇따라

    ‘원작의 맛’ 최대한 살리자…고전 해외 문학 번역 출간 잇따라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읽히는 해외 고전들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가들에겐 도전의 영역이자, 높아진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삼인은 최근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고종석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했다. 1943년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첫 출간한 ‘어린 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의 주인인 소년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풍자적 소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인 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프랑스어의 흐름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고 작가는 원작이 채택한 문장부호를 그대로 살렸다. 예컨대 “-다들 너무 잊고 있는 거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101쪽)에서 보듯 대화와 지문을 한 문장 안에서 분리하지 않고 프랑스식 표기를 존중한 것이다. ‘강들과 바다들’처럼 어색한 복수어도 일부러 프랑스어처럼 번역했다. 주인공 어린 왕자는 ‘그’라고 부르는 기존 번역서와 달리 ‘그 아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대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새움 출판사는 영국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직역판을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으로 내놓았다. 오웰이 1945년 공산주의를 비판하려고 지은 이 책은 동물을 의인화한 풍자 소설이다. 평소 직역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역자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기존 번역본에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라고 했던 ‘I had no intention of doing that’을 “난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로, “내가 고의로 죽인 건 아냐”였던 ‘Who will believe that I did not do this on purpose’는 “이게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누가 믿을까?”(53쪽)로 직역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각색 없이 부각시켰다. “캐릭터의 성격을 잘 보여 주기 위한” 의도다.문학세계사는 최인자·신현철 평론가가 번역한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 무삭제 완역본을 펴냈다. 1998년 미국 로버트 템플 부부가 주해한 책을 원문에 충실하게 완역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원래 어른을 위한 처세술이 담긴 책이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150여편을 삭제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교훈집으로 알려졌다. 역자들은 동성연애자의 사랑을 다룬 ‘제우스와 수치심’(32쪽)이나, 교훈보다 삶의 냉혹함만 느낄 수 있는 ‘굶주린 개’(251쪽)와 같은 이야기 등을 포함해 엮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번역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대 사회와 문화에 맞게 번역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원전에 충실한 번역은 당연하게 추구해야 하며 이제는 학문적 깊이와 새로운 연구 경향도 반영하는 번역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나타샤/손성진 논설고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렇게 시작한다. 백석은 기생 진향(김영한)을 사랑했고 평생 잊지 못했다. 나타샤는 곧 진향일 것이다. 나타샤는 슬라브어식 여성 이름이다. 왠지 긴 금발 머리에 우수에 찬 눈빛이 그려진다. 백석의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장인물인 나타샤를 말한다고도 한다.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나타샤 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만인의 연인’이라는 닉네임에 어울릴 만큼 소설 속의 나타샤를 잘그려냈다. 영화의 OST인 ‘나타샤 왈츠’는 경쾌한 곡이지만, 춤을 추는 헵번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때만큼 아름다워서 가슴이 뭉클하다. 그보다 더 뭉클하게 다가온 ‘나타샤 댄스’(Natasha Dance)라는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다. 직업 무희(舞姬)로 보이는 나타샤와의 짧은 사랑 이야기다. 나타샤를 사랑하는 남자는 나타샤의 춤을 보고 싶어 하면서 나타샤의 고통스러운 삶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올해 나이 일흔셋이 된 아일랜드 팝 가수 크리스 디 버그가 불렀다. 감미로우면서도 서글픔이 절제된 버그의 가려진 가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sonsj@seoul.co.kr
  • 여전한 무지와 빈곤, 차곡차곡 쌓여가는 현실의 분노

    여전한 무지와 빈곤, 차곡차곡 쌓여가는 현실의 분노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이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1862년 소설 ‘레 미제라블’을 발표한 빅토르 위고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처럼 이 책은 장 발장이나 팡틴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프랑스 빈민층에 속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면면을 그려 낸다. 물론 이것이 이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 전부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이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무지와 빈곤 등이 사라지지 않아서다.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레주 리 감독은 영화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소설과 제목이 같지만 내용이 같진 않다. 레주 리는 21세기 프랑스의 불쌍한 사람들을 포착한다. 단 주요 배경인 파리 외곽에 위치한 몽페르메유는 동일하다. 여러 이민자가 모여 사는 이곳은 낙후 지역이자 우범 지대로 알려졌다. 레주 리 본인이 이민자로서 여기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의 뼈대가 되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경찰들의 불심검문이다. “열 살 때 나는 불심검문을 처음 당했다.” 레주 리 스스로 밝힌 사실이다. 불편한 진실은 그가 몽페르메유가 아닌 부유촌인 파시에 살았다면,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다면, 불심검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년기를 보냈으리라는 점이다. 경제력과 인종 차이는 단순한 다름이 아니다. 정치적 차별을 야기하는 구별 짓기다. 이 영화는 몽페르메유를 담당하는 세 명의 경찰을 등장시켜 이 같은 실상을 드러낸다. 적당한 야합과 강압적 군림이 그곳을 통치하는 정의라고 믿는 두 명의 기존 경찰과 그것은 타락한 정의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한 명의 전입 경찰이다. 후자에 아무래도 너그러운 눈길이 머문다. 그렇지만 그가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몽페르메유 아이들 눈에도 그는 달리 보이지 않는다. (상관의 명령으로) 기존 경찰들과 한 조를 이뤄 다니는 까닭이다. 부패하고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무리를 향한 아이들의 적대에 그 역시 포함된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영화 후반부는 차곡차곡 쌓인 아이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장면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쁜 어른들을 응징하는 앙팡 테리블, 곧 무서운 아이들로 변모한다.원작 ‘레 미제라블’에도 유사한 역사적 사례가 나온다. 뮤지컬과 영화 버전에서는 민중의 노래가 불리는 1832년 6월 봉기다. 시민 권리를 억압하는 왕정에 저항해 젊은 공화주의자들이 일으킨 항쟁에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도 동참한 바 있다. 봉기가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봉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과 동조자들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당신도 얼마든지 거기에 휘말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권의식에 기반한 폭력이 존재하는 한, 이 영화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유니버설발레단-예술의전당, 6월 4~6일 ‘돈키호테’ 공연

    유니버설발레단-예술의전당, 6월 4~6일 ‘돈키호테’ 공연

    유니버설발레단이 희극발레 ‘돈키호테’로 올해 첫 무대를 연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예술의전당과 공동기획으로 6월 4일부터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돈키호테’를 공연한다고 6일 밝혔다. 발레 ‘돈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루드비히 밍쿠스의 음악과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만들어졌다. 1869년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초연하며 성공을 거둔 뒤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인기 작품이다. 발레로 그려지는 돈키호테는 달리 매력 넘치는 아름다운 여인 키트리와 가난하지만 재치있는 이발사 바질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돈키호테는 시종 산초와 함께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을 돕는 조력자이자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여기에 지중해의 낭만과 스페인의 정취가 녹아있는 무대와 의상, 코믹한 발레마임으로 표현되는 등장인물들의 좌충우돌 해프닝, 고난도 발레 테크닉과 화려한 춤들이 이어져 고전발레의 정수로도 꼽힌다. 유니버설발레단을 비롯해 전세계 발레단이 선보이는 ‘돈키호테’는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에 뿌리를 둔 알렉산드르 고르스키 버전 안무를 바탕을 한다. 고르스키는 스승의 원작에 2막 ‘둘시네아가 된 키트리의 바리에이션’과 3막 ‘부채를 든 키트리의 바리에이션’ 등을 넣어 이전 버전을 더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97년 당시 예술감독이자 23년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발레단) 전성기를 이끈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의 개정 안무로 국내 첫 선을 보였고, 그 해 무용평론가들이 뽑은 최고의 무용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2017년 이후 4년 만으로 고전발레에 스페인 춤이 어우러진 화려한 무대를 만날 수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남성 중심 서사가 만들어 내는 차별적 세상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남성 중심 서사가 만들어 내는 차별적 세상

    지난해 11월 미국의 선거일을 앞두고 위키피디아에서는 작은 소동(목격자에 따라서 전쟁에 가까운 분란)이 있었다. 아이오와주 상원의원 자리에 도전하는 민주당의 테리사 그린필드라는 여성 후보에 관한 항목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흔히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특히 영문 위키피디아의 경우) 많은 자원봉사 편집자가 철저한 원칙과 룰을 바탕으로 올라오는 글을 검토하고 기준에 못 미칠 경우 편집하거나 삭제한다. 특정 인물에 관한 항목은 ‘전기’(biography)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문 위키피디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키피디아는 아무나 자기 이름과 경력을 올리고 홍보하는 웹사이트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린필드의 경우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임에도 일부 편집자가 “자격에 미달한다”고 항목 생성을 거부하면서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걸 정하느냐”는 논쟁이 생긴 것이다. 논란이 커지면서 위키피디아의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까지 개입하게 됐고, 지금은 그린필드의 항목이 생겼지만 그 과정에서 위키피디아의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작성자, 편집자가 남성 일색이라는 현실이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12개 언어로 된 위키피디아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90%가 자신을 남성이라고 밝혔다. 돈도 주지 않는 일에 왜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모여 글을 쓰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 논의가 필요하지만, 원인이야 어찌됐든 그 결과는 심각하다. 현재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특정 인물을 다루는 전기 항목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즉 위키피디아는 남성들이 모여 남성에 관한 글을 쓰는 장소인 셈이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을 표방하는 “세계 최대의 집단지성 네트워크”는 남성들을 위한, 남성들의 사이트가 됐다.‘누가 작성하든 잘만 쓰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넷플릭스의 드라마 ‘지니 앤 조지아’에는 흑인 여학생인 주인공이 영문학의 고전들을 읽는 상급반 수업 첫 시간에 교사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생님이 나눠준 강의계획서에 등장하는 책 16권 중에서 14권을 남성 저자, 15권을 백인 저자가 썼다는 거다. 학생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내재화하게 되는데 저자들이 대부분 백인 남성이라면 흑인 여성인 자신의 목소리는 죽어 버린다는, 당돌하면서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의 대사이지만 주인공의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강하게 제기된 주장이고, 벌써 많은 학교가 이를 받아들여 여성과 다양한 인종의 글을 수업에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내가 받은 교육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980년대 후반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수업 시간, 특히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 저자의 글이었다. 지금도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다. 2018년 중학교 1학년 8개 과목 교과서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여전히 등장인물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한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에서 이름이 밝혀진 저자 중 여성은 20%가 조금 넘는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남성이 만물의 중심이고, 여성은 남성에 의해 묘사되고, 인격을 잃고 객체화되는 세상이다. 오혜진 문화연구자는 김훈의 소설에서 여자들은 “늘 냄새로만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김훈은 여성 등장인물들을 ‘가랑이의 젓국 냄새’, ‘젖냄새’ 등의 수식어로 묘사하고, 세월호 3주기를 기념한 글에서도 ‘젊은 어머니의 몸냄새’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여성은 그저 자신의 후각으로 인지되는 살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김훈도 같은 1940년대에 출생한 조정래에 비하면 거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처럼 보인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하소설로 꼽히는 ‘태백산맥’은 끔찍한 수준의 성폭력 묘사로 가득하다. 대부분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서 넣었다기보다는 남성의 시각에서 즐기도록 묘사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이 겪는 인격 파괴보다는 폭력을 가하는 남성, 혹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몸을 관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이 가해자 남성을 기다리고, 성폭력을 당하는 중에 흥분하고 있다는 묘사까지 빼놓지 않는 태백산맥은 한국문학의 수치스러운 과거라 판단한다. 하지만 이 작가들을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작가가 되기까지 읽었던 책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성장하던 1950~1960년대에 여성 작가가 남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얼마나 읽을 수 있었을까?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여자를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매우 서툴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안 쓰면 될 거 아니냐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꾹 참고, 그들이 여성이 쓴 글을 읽을 수 없었던 환경을 생각해 보자. 여성은 왜 등단하기 힘들었으며, 여성이 쓴 글은 왜 출간되지 않았을까? 그 답 역시 남성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역시 1940년대생 소설가인) 박범신은 여성 소설가 정유정의 작품 ‘7년의 밤’에 쓴 추천사에서 정유정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 아마존”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이유는 정유정의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가 “여성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라고 ‘칭찬’한다. 즉 남성의 문체는 여성의 문체보다 우월한데, 정유정은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남성적인 글을 쓰니까 추천한다는 얘기다. 나이 든 남성 작가들이 그렇게 (스스로) 감탄해 마지않는 남성적인 글이라는 게 맨날 여성의 살냄새 얘기, 젖가슴 타령이라는 점에서 남성적 서사가 좋은 글의 기준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눈은 세상의 기준이 됐고,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가령 몇 해 전 한성숙 네이버 부사장이 신임 대표로 내정됐을 때 쏟아져 나온 기사들은 하나같이 그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을 가졌다고 썼다. 진부한 묘사를 사용한 게으름은 둘째 치고, 그가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의 대표 자리에 가기까지 해낸 업적과 보여 준 업무 능력도 그런 기사를 쓴 사람들 눈에는 그저 명절날 부엌에 앉아 묵묵히 전을 부치는 맏며느리의 장점 정도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디에서부터 고쳐야 할까?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자가 역사를 쓰기 전까지 모든 사냥의 역사는 사냥꾼을 위대하게 묘사할 것”이라는 격언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까지 세상은 남성들만을 찬양할 것이고, 여성들을 찬양할 때는 ‘모성애’, ‘여성 특유의’ 따위의 족쇄를 붙일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서시장에서는 “남성 작가가 쓴 책을 여성 독자들이 읽는다”고 했지만 더이상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성들의 진부한 시각에 질린 여성 독자들이 여성이 쓴 책을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는 남성 작가들이 이름을 약자로 숨기거나 여성 필명을 사용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어느 나라나 책을 사는 사람들은 여성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남성 작가들은 갈수록 책을 팔기 힘들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여성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를 발굴해 일을 맡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전히 남성이 많지만 여성 감독과 프로듀서, 작가의 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넷플릭스에서 만나는 작품 중에는 성평등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지니 앤 조지아’ 역시 작가와 프로듀서가 모두 여성이고, 에피소드의 감독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이 만들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대사였던 거다. 과거의 “명작”들이 차별적 묘사들 때문에 버림받는다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인류의 절반에게만 기회를 줬을 때 나온 작품보다 앞으로 모두에게 기회를 줄 때 나올 작품이 훨씬 더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우선 성차별적 작품들, 남성 중심의 서사로 자라나는 여자아이들의 사고를 제한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인류 사회는 보잘것없고 편견에 찬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하고 발전했다. 코드미디어 디렉터
  • 감추고 싶은 아픔이 드러난다면

    감추고 싶은 아픔이 드러난다면

    남편에게 감추고 싶었던 아내의 과거 성폭행 피해가 우연히 남편이 지켜보는 앞에서 낱낱이 드러난다면, 이 부부의 일상은 어떻게 변할까. 남편은 아내의 고통에 대해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 오는 8일 개봉하는 박선주 감독의 영화 ‘비밀의 정원’은 비밀로 묻어 두고 싶은 성범죄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수영 강사인 정원(한우연 분)은 목공소에서 일하는 남편 상우(전석호 분)와 이사를 준비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들 곁은 다정하고 든든한 이모 혜숙(염혜란 분)과 이모부 창섭(유재명 분)이 지킨다. 하지만 어느 날 정원이 받은 전화 한 통은 잊고 싶은 10년 전 기억을 소환한다. ‘고등학생 때 나를 성폭행했던 가해자가 잡혔다.’ 집으로 찾아온 경찰관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부부 사이 달콤한 일상은 얼음처럼 차가운 나날로 바뀐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 상우는 어떻게 말을 꺼낼지 몰라 망설이고, 정원은 상우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고등학생이 된 정원의 여동생은 10년 전 자신을 탓한다. 꾀병을 부린 탓에 엄마와 병원에 가느라 정원이 혼자 남아 일을 당했다고 자책하면서 가족의 고통은 가중된다. ●대사만큼 감정 드러내는 ‘침묵’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만큼 침묵의 순간에도 집중하며 감정을 쌓아 간다. 정원의 가족이 비밀에 부친 사건이 서서히 수면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서로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영화가 유도하는 건 관계의 격한 파장보다 잔잔한 치유의 시간이다. 가족 한 명 한 명 찬찬히 들여다보는 섬세한 연출이 감동을 살린다. 관객은 상우가 어떤 식으로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까 궁금해하며 몰입하게 된다. 정원의 이모가 정원에게 한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라는 말은 성폭행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죄책감을 피해자가 안고 가야 하는 불합리한 시선에 대한 항변으로 읽힌다. ●영상미로 담아낸 아픔 극복 과정 영화의 매력은 피해자에 대한 가족의 위로와 배려에 그치지 않고 정원이 스스로 두려움과 악몽을 극복하고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데 있다. 다만 정원이 집을 떠나 이모 집에서 살게 된 배경 등은 언뜻 이해되지 않아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이해하는 과정을 정교한 화면 구성과 영상미로 묘사해 지루함을 상쇄한다. 지난해 오사카아시안영화제 재능상 등 3관왕을 차지한 저력이다. 박 감독은 “10년 전 사건으로 고향이라는 근본적 공간을 상실한 정원이 가족과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통을 분담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음미하듯 이해하고 싶으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12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경계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무지다

    경계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무지다

    곁에 있다는 것/김중미 지음/창비/384쪽/1만 4000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주요 양당 후보들이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원주민 이주 문제와 철거민, 노점상, 쪽방촌 주민 생존 방안에 대한 구체적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술 더 떠 지역 발전을 위해 이들 삶의 터전을 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다고 한다면 주거권과 생존권은 누가 보장할까.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로 빈민가 청소년의 애환을 대변한 김중미 작가가 20여년 만에 도심 재개발과 빈곤 대물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곁에 있다는 것’으로 독자에게 돌아왔다. 1970년대 여성 공장 노동자의 투쟁부터 도시 재생 사업의 민낯, 비정규직 청년의 노동 환경, 청소년의 눈으로 본 세월호 사건과 촛불집회까지 생생하게 그렸다. 열아홉 살 여성인 지우, 강이, 여울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인천 은강구 한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지우에게는 은강방직 투쟁을 이끈 해고 노동자였던 이모할머니 옥자의 삶을 소설로 남기겠다는 꿈이 있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강이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호조무사를 꿈꾸고, 공부를 잘하는 여울이는 가난한 은강에서 벗어나고자 대학 입시에 매달린다. 가정 환경은 다르지만 세 친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하지만 구청에서 관광 활성화를 명목으로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쪽방 체험관’으로 개발하겠다고 하자 이들의 마음은 크게 흔들린다. 자본의 논리 앞에 가난마저 상품화하고 삶의 터전을 전시하겠다는 발상에 분노한 청소년들은 반대 서명운동에 나선다.작가의 눈길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함께 나눠야 살아갈 수 있는 동네 이웃에 꽂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은 옥자의 싸움으로서 자본의 논리에 맞선 연대는 세대 간의 단절을 뛰어넘는다는 걸 보여 준다. 영화감독을 꿈꾸다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바꾼 지우의 언니 연우나 명문대와 아파트만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여울이 엄마 은혜는 등장인물 간 긴장을 불어넣는 묘미가 있다. 작가는 인간성을 저버린 개발 논리에 반기를 들었지만 희망도 함께 이야기한다. 청소년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정치를 바꾸는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함께 촛불을 들지 못하는 친구들을 기억하며 마음을 나눈다. 강이는 베트남에서 온 란이와 가까워지며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서로 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별은 정면으로 볼 때보다 곁눈질로 볼 때 더 반짝인다”(241쪽)는 지우의 말은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선 이들의 눈길로 볼 때 더 빛나는, 변두리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 준다. 가난이 사라진 사회는 불가능해도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가능하다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무지라는 점을 일깨우는 듯하다. 작가는 “2020년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알게 됐다. 바이러스는 계급을 차별하지 않지만, 바이러스를 대하는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불평등의 벽을 허무는 길은 존중과 섬김, 연대와 사랑을 복원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부자 되는 법에 관심이 쏠린 세태에도 한결같이 약자의 고통과 빈곤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의 열정이 경이롭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존재의 불안’ 달래는 방법 알고 싶다면 詩를 만나라

    ‘존재의 불안’ 달래는 방법 알고 싶다면 詩를 만나라

    낯선 자리에서 어쩌다 문학, 그중에서도 시 전공자임을 밝힐 때가 있다. “저는 잘 모르는 어려운 공부를 하시는군요.” 이런 겸손한 반응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때로는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핀잔주는 것인지 모를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먹고살기 쉽지만은 않으시겠어요.” 네, 그러니까 생계에 보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쓴 책 좀 사 주세요. 언젠가는 이렇게 한번 대꾸해 봐야지 싶다. 그 사람이 내가 출간한 책을 사든 말든, 시가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야 변하지 않겠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시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효용성을 따지는 질문에 대한 영화적 답변이 하나 더 마련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 읽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직장을 계속 다니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겠다 싶어 퇴직을 결행한 사람(오하나), 장기근속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김수덕), 갑자기 해고를 당해 복직 투쟁 중인 사람(임재춘), 특별한 계획 없이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안태형),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페미니즘 예술가로 활동하는 사람(하마무). 영화 초반부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각각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이들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주제가 ‘존재(자)의 불안’임을 알 수 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는 존재자를 ‘있는 것’으로, 존재를 ‘있음’으로 구분한다. 더 쉽게 풀이하자. 존재자는 먹고살기에 급급한 ‘생존’을 뜻하고, 존재는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는 ‘삶’으로 등치된다. 요컨대 이들은 존재자로서의 생존과 존재하는 삶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다 그러하듯이. 이때 이수정 감독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바로 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시의 가치를 역설한다. “허무와 절망뿐인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함께 느껴 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했다. 시는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가장 진실한 언어이며 기도이자 노래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시가 여하한 힘을 갖는지는 곰곰 생각해 볼 사안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가 잘나가는 양지인보다는, 소외된 음지인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호시절만 누리는 이는 시를 읽지 않는다.그래서 영화 후반부 다섯 명의 등장인물은 자신이 감응한 시를 읽는다. 이것은 물론 먹고사는 생존, 즉 존재자의 불안은 해소하지 못한다. 시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한데 시는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를 묻는 삶, 즉 존재의 불안을 달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그것은 무슨 연유로 가능한가? 이를 알고 싶다면 ‘시 읽는 시간’을 한번 보시라고 권할 수밖에. 내가 쓴 책에도 이를 해명해 뒀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 부탁드린다. 존재자의 불안은 서로서로 도와서 줄어드니까.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어딜 가도 덩그러니… 우리 삶은 왜 이러니… 원래 그래, 아이러니

    어딜 가도 덩그러니… 우리 삶은 왜 이러니… 원래 그래, 아이러니

    가족 아픔·옛 실수서 벗어나려고새 공간으로 옮겨간 등장인물들평화 대신 고립·폐쇄 수렁 속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따지면서도수수께끼 같은 삶 속 희망 한 줄기빽빽한 숲 헤쳐 나가는 감동 선사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산골로 이사하거나(‘어쩌면 스무 번’), 사업 실패로 남편이 실종되자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할머니가 해외로 시집간 딸의 집을 찾는다(‘플리즈 콜 미’). 편혜영 작가의 여섯 번째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 속 등장인물들은 원래 머물던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새로 옮겨 간 공간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고립되고 폐쇄적이다. 이들은 가족의 아픔이나 과거의 작은 실수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곳으로 떠나지만, 더욱 무서운 수렁에 빠지게 된다.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은 주인공 ‘나’가 인적이 드문 시골의 삶에 적응할 즈음, 자신을 찾아온 보안업체 직원들에게서 오히려 공포를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를 그렸다. 보안업체 직원들이 보안을 이유로 침입이라는 폭력적 형태로 자신의 회사와 계약할 것을 강요해서다. ‘호텔 창문’의 운오는 19년 전 강에 빠졌다가 사촌형에게 구조됐고, 사촌형은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큰어머니는 운오에게 사촌형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고 강요하지만, 운오는 자신을 괴롭히던 형이 자신을 살린 걸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불쾌하다. 직업군인 출신 이진수는 식당을 차리고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육우를 한우로 속여 판 것이 적발돼 집을 팔아야 할 처지에 놓이고, 옛 부하의 추궁을 듣는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홀리데이 홈’) ‘플리즈 콜 미’의 주인공 미조도 해외에 있는 딸의 집도 버틸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딸을 대학에 보내려고 보험에 가입한 엄마의 노력이 한순간의 사고로 헝클어지는 모습을 그려 낸 ‘미래의 끝’도 미래를 전망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시련이 닥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도움이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224쪽)는 독백처럼 작가는 우리 삶이 직면한 문제들은 언제 어떻게 풀릴지 확실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통만 준다는 점을 생생히 보여 준다.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마냥 절망 속에 가둬 두지 않고 잠시나마 따스하고 부드러운 순간들로 이끌기도 한다. 미조와 딸은 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나서도 서로 애틋하게 바라보고, 보험 아줌마(‘미래의 끝’)는 혼자 남겨진 ‘나’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엄마가 미처 채워 주지 못한 가족애를 대신 느끼게 해 준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조명하고 이러한 감정을 외면하는 인물도 등장하지만, 이들이 저마다 감정에 맞서는 이야기의 끝에는 ‘언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하는 숙고의 시간이 남는다. 우리 삶이 거대한 아이러니이자 한 편의 추리 소설 같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게 아닐까. 작가는 “내게 있어 소설은 언제나 처음에 쓰려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자리이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춘다”며 “이제는 도약한 자리가 아니라 착지한 자리가 소설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다”고 했다. 독자는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긴장감 속에서 삶의 애틋함을 느끼고 빽빽한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암울해 보여도, 우리를 둘러싼 일상을 고밀도로 압축해 삶의 이면을 들춰 주는 단편 8편이 반갑기만 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우리는 존재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 자오의 말 [김정화의 WWW]

    “우리는 존재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 자오의 말 [김정화의 WWW]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한국인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날 시상식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중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클로이 자오(39·본명 자오팅)다. 자오의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이날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는 쾌거를 이뤘다. 골든글로브에서 여성이 감독상을 받은 건 1984년 영화 ‘엔틀’(Yentl)로 처음 수상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이후 37년 만이다. 아시아계 여성으로선 최초다. “조용한 인디 드라마 제작자에서 이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감독”이라고 한 미 연예매체 벌처의 평가처럼 자오는 일약 스타가 됐지만, 갑자기 찾아온 행운 같은 건 아니다. 그간 차근차근 쌓아온 궤적이 막 빛을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중→영→미 떠돌이 삶…“내 영화는 미국인 정체성 관한 것” 자오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노매드랜드는 미 언론인 제시카 브루더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아이오와주 네바다에서 공장과 기업들이 붕괴한 후, 남편을 잃은 여성 펀(Fern)이 홀로 밴을 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NYT)는 “안정감과 ‘뿌리 뽑기’ 사이, 집이 주는 환상적인 위안과 광활한 길의 위험한 유혹 사이의 긴장감이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아시안 감독이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을 담은 로드 무비를 만든 건 그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자오는 어린 시절 중국에서 자라다 10대 때 영국에서 기숙학교 생활을 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학업을 마쳤다.부모는 부유했지만 그를 자주 혼자 내버려뒀고, 자오는 일본 만화와 마이클 잭슨, 왕가위로 그들의 빈틈을 메워나갔다. 장국영과 양조위가 출연한 왕가위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너무 좋아해 아직도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매번 일종의 의식처럼 챙겨볼 정도다. 대학에선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금세 자신의 길이 아니란 걸 깨달았고, 졸업 후 2년 간 바텐더로 일하는 등 각종 일을 전전하다 결국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에 들어갔다. 자오가 현재 함께 사는 파트너이자 영화 감독인 조슈아 제임스 리차즈를 만난 것도 뉴욕대 시절이다. 리차즈는 자오에 대해 “지독하고 극단적이다. 내가 영화 학교에서 만나고 싶었던 협력자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반면 자오는 실제 이를 실행한 사람”이라며 “그래서 나는 그 기차로 뛰어 올랐다”고 돌아봤다.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옮겨 다닌 유목민 같은 삶은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5년 리차즈와 함께 만든 첫 장편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Brothers Taught Me)와 2017년 ‘로데오 카우보이’(The Rider), 그리고 노매드랜드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아이덴티티,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자오는 “베이징에서 자란 나는 항상 몽골에 가는 걸 좋아했다. 어린 시절은 대도시와 넓은 평원으로 가득했다”며 “20대 중반 뉴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조금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이렇게 ‘젊은’ 나라에서는 미국인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며 “내가 온 5000년 역사의 중국에서보다 이곳에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훨씬 활발하다”고 했다.“배우 아닌 현실 사람들에 애정” 실제 유목민과 생활하며 촬영 자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화 속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현지 지역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자오는 사람들이 실제 사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며 “가능한 한 (전문 배우가 아닌) 현실 속 사람들을 영화에 쓰려고 한다”고 했다. 영화감독이지만 완전히 과장되거나 새로운 상상 속의 일을 창조하기보단 지금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자오는 자신을 “시간을 기록하는 일에 종사한다”고 표현하며 실제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다”며 “(영화 제작은) 내 생각, 내 관점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매드랜드에서 그려지는 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이 배우가 아닌 실제 유목민이다. 자오는 “그들이 하나의 이슈의 희생자로서 소비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며 “영화 속 등장인물이 품위를 갖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자오와 펀 역을 맡은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포함한 제작진은 실제 유목민과 같이 밴을 타고 생활했다. 수개월간 사막, 평원, 바다를 오갔고, 야영장과 트럭 정류장, 월마트 주차장, 작물 수확 농장을 전전했다.자오의 철학은 다른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맥도먼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것에 가까웠다”고 했다. 골든글로브에 앞서 지난해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167관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도 자오의 진정성이 세계인의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오는 올해 개봉을 앞둔 마블의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의 제작과 각본도 맡았다. 처음으로 성소수자 슈퍼히어로가 등장할 예정이다.코로나19 이후 중국인은 물론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 발언이 커진 현재, 자오의 활약은 더욱 주목받는다. BBC는 “자오가 최초의 유색 인종 여성으로서 최고의 감독이 되는 역사를 만들면서 전 세계 아시아인이 ‘행복한 눈물’로 화답했다”고 했다. 언론인 디프 트란은 트위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여전히 이국적이고, ‘질병’으로 공격받는 시대에 클로이 자오와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건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오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미국인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클로이 자오는 누구 · Chloé Zhao(赵婷)1982 중국 베이징 출생2000 미국 LA로 이주, 지역 공립학교 졸업마운트 홀리요크 대학 정치학 전공2010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 단편 ‘딸들’(Daughters) 제작2015 장편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Brothers Taught Me) 제작, 선댄스 영화제 초청2017 ‘로데오 카우보이’(The Rider) 제작, 칸 영화제 후보2020 ‘노매드랜드’(Nomadland) 제작,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2021 골든글로브 작품상·감독상 수상   ‘이터널스’(Eternals) 제작
  • 새 학기 ‘집콕’ 어린이들엔 독서가 제격…선생님들이 추천하는 책은

    새 학기 ‘집콕’ 어린이들엔 독서가 제격…선생님들이 추천하는 책은

    새 학기를 맞아 설레는 3월이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어린 자녀가 집에서 독서를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나, 학부모로서는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어떤 책을 읽게 할지 고민이다.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가 교육 현장의 교사, 사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발간한 ‘2021 추천도서목록’을 통해 추천한 어린이 문학 목록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초등 고학년엔 성장·심리·역사 소설 등 추천 초등학교 5~6학년을 위한 문학으로는 ‘5번 레인’, ‘내 가방 속 하트’, ‘내 친구의 집’, ‘너를 만났어’, ‘너의 운명은’, ‘맞바꾼 회중시계’ 등이 있다. ‘5번 레인’(은소홀 지음, 문학동네 펴냄)은 초등학교 수영선수인 한 소녀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미움·사랑·갈등·이해·용서라는 다양한 감정을 겪음으로써 1등을 못했더라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면 큰 가치가 있다는 걸 깨우치게 된다.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작이다.‘내 가방 속 하트’(주미경 지음, 창비 펴냄)는 사랑, 미움 등 아이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쓴 동화 일곱 편이 담긴 작품집이다. 짝사랑하는 아이의 문자에 심장 소리가 멋대로 자라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내 친구의 집’(우미옥 지음, 사계절 펴냄)도 다섯 단편을 모은 책으로 등장인물로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고민이 있다. 조용한 성격의 고학년 여자아이들에게 권한다. ‘너를 만났어’(이선주 외 2인 지음, 씨드북 펴냄)는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이야기 세 편을 담은 모음집이다. 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여러 인물을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의 운명은’(한윤섭 지음, 푸른숲주니어 펴냄)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 열한 살 소년이 지게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항일운동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이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맞바꾼 회중시계’(김남중 지음, 토토북 펴냄)도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와의 만남을 그려낸 역사 동화다. 주석과 부록을 실어 이해를 도왔고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추천한다.●중간 학년엔 신박한 동화나 우정·모험 이야기 3~4학년용 문학 도서로는 ‘길 위의 길’, ‘나는 황태자, 놀부 마누라올시다!’, ‘바바얀과 마법의 별’, ‘복도에서 그 녀석을 만났다’, ‘코리와 악어 공주’ 등이 있다. ‘길 위의 길’(안순희 지음, 머스트비 펴냄)은 조선 제일의 소목장인 아버지의 재주를 물려받은 소희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여자인 소희가 소목장의 길을 걷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나, 소희의 모습은 꿈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나는 황태자, 놀부 마누라올시다!’(이송현 지음, 산하 펴냄)는 놀부 마누라의 처지에서 본 새로운 버전의 ‘흥부전’이다. 무능한 흥부를 질책하는 놀부 마누라의 심정이 이해되는 새롭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바바얀과 마법의 별’(키쿠 아다토 지음, 박신순 외 1인 옮김, 한솔수북 펴냄)은 춥고 어두운 동굴에 사는 괴물 ‘바바얀’의 여행 이야기로 우정과 모험을 다뤘다. ‘복도에서 그 녀석을 만났다’(이혜령 지음, 책과콩나무 펴냄)은 학교 폭력과 괴롭힘의 문제를 다뤘다. 나를 괴롭히던 녀석이 다른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느끼는 혼란스러운 심리를 어린이의 시각에서 그렸다. ‘코라와 악어 공주’(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이혜원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는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의 조기 교육에 지친 공주의 하소연을 통해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조명한다. 어른들도 함께 읽을 만하다.●저학년 학생에겐 읽기 쉬운 우정·동물·판타지 동화 1~2학년이 읽을만한 문학 도서로는 ‘공룡 친구 꼬미’, ‘돼지 저금통의 기차 여행’, ‘이불 바다 물고기’, ‘피터와 에르네스토는 단짝이야’, ‘황금 글똥의 비밀’이 있다. ‘공룡 친구 꼬미’(김혜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소녀 하나와 꼬마 공룡 ‘꼬미’의 따스한 우정을 그렸다. 시공간을 초월한 우정이 감동을 주고 철학적 주제로 다채롭게 담았다.‘돼지 저금통의 기차 여행’(무라카미 시이코 지음, 김숙 옮김, 북뱅크 펴냄)은 주인공 겐이치가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돼지저금통을 데리고 할머니네 집에 가는 이야기다. 돼지저금통을 의인화한 발상이 신선하고, 그림책 독서에서 글 책 독서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이불 바다 물고기’(황섭균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는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의 판타지 단편 동화집이다. 이야기들이 아이의 작은 상처조차 읽어내고 보듬는 듯 섬세하다. ‘피터와 에르네스토는 단짝이야’(그레이엄 애너블 지음,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는 나무늘보 피터와 에르네스토의 우정과 모험, 위기를 그린 만화다. 대화체 중심이라 저학년 어린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황금 글똥의 비밀’(김미형 지음, 바람의아이들 펴냄)은 밥 먹고 똥을 싸는 것처럼, 생각하면 글을 써야 한다고 하는 선생님과 학생 윤솔이의 이야기다. 작가는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일러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뺏긴 아들, 뺏은 아들, 엄마 그리고 우리

    뺏긴 아들, 뺏은 아들, 엄마 그리고 우리

    자녀 실종 충격으로 입원한 주인공목격한 아이 몰래 데려와 수색 나서상처 입은 가족들, 모성애 통해 용서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실종 아동은 1만 9146명에 달한다. 이 중 105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 아동 가족의 70%가량은 가족 해체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올 정도로 가족의 아픔은 어느 무엇보다 잔인하다. 아이를 잃어버린 이들에겐 안타까움이 일고, 아이를 유괴한 이들에겐 대부분 여지없이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만약 유괴된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남의 아이를 납치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감정을 드러내게 될까. 스릴러 소설 ‘유괴의 날’(2019)에서 유괴범과 유괴된 아이의 연대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물었던 정해연 작가가 이번엔 신간 ‘구원의 날’로 우리가 이런 가족의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질타한다. 작가는 실종 아동 부모의 시선을 통해 상실에 대한 치유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했다.소설 속 주인공 예원은 3년 전 불꽃놀이 축제 인파 속에서 여섯 살 아들 선우를 잃어버린다.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조절장애에 빠진 예원은 결국 요양원에 입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선우와 똑같이 동요를 개사해 부르던 아이 로운을 만나자 충동적으로 로운을 데리고 나온다. 로운이 선우를 예전에 한 기도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원과 남편 선준은 선우를 찾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 유괴범 낙인이 찍히는 것도 감수한다. 문제의 기도원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폐쇄적 사이비 종교 단체와의 대립, 긴장감은 스릴러 소설 특유의 재미다. 작가는 예원 부부의 일상을 통해 아이를 잃어버리고 난 후 상호 불신과 균열로 파탄 난 가정과 이중적 심리를 여과 없이 보여 줬다. 예원은 “만약 그때 내가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죄책감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선준은 경찰이 선우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아내에겐 이를 숨긴다. 유전자 검사로 시신이 선우가 아니라고 드러났지만, 앞으로 ‘희망 고문’을 계속할 것을 생각하면 기쁠 수만은 없다.독자는 로운을 납치한 예원 부부에게 더욱 감정이 이입될 수도 있다. 로운은 엄마 주희의 방치로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인 데다 예원을 실제 엄마처럼 따르기 때문이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죄책감을 느끼는 예원과 로운을 방치하고 시설에 보낸 무책임한 주희, 이를 통해 작가는 육아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없는 우리 사회를 고발한다. 하지만 “엄마란 존재는 결국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270쪽)에서 보듯, 모성애는 여전히 희망이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만, 결국 용서를 통해 서로 구원한다. 가족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용서하고 보듬을 수 있는 것 역시 가족이다.작가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손을 잡고, 놓고, 놓친다. 하지만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있다. 그걸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잡은 손을 놓아 버릴 때도 있지만, 진심과 용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가슴속엔 모처럼 훈기가 가득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연극 ‘봇물은 터졌는디…’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연극 ‘봇물은 터졌는디…’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중장년과 청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고 천승세 작가의 30분짜리 단막극인 ‘봇물은 터졌어라우’를 연출가 고건령씨가 2막 9장의 90분짜리 장막으로 각색한 ‘봇물은 터졌는디…’다. 극단 아트맥(대표 이명희)이 기획 제작했으며 1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씨어터 쿰에서 펼쳐진다. 전라도를 배경으로 거칠어 보이지만, 진솔하고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남도 특유의 순박한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외동딸 꼼실이와 함께 떡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과부 꼼실네와 외아들 준섭이를 군대에 보내고 혼자 외롭게 사는 홀아비 돈술이와의 갈등 관계를 풀어나가며 진행된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동네 방죽도 사들인 꼼실네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물을 나눠 주면서도 돈술이의 논으로 가는 물길을 막아 갈등 끝에 싸움까지 벌인다. 사실 꼼실네는 마음속의 연정을 눈치 없이 외면하는 돈술에 대한 원망 때문에 물길을 막은 것이다.‘봇물은 터졌는디…’는 지역 간 화합도 도모한다. 사투리가 가진 언어적 가치와 향토적 정서를 이해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기획 의도도 있다. 산업 발전과 더불어 급격하게 이뤄진 가족 해체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된 노인 문제에도 초점을 맞췄다. 고령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인 치매에 대한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도 된다. 연출가 고씨는 “중년에서 말년에 이르는 등장인물을 통해 시대와 환경의 한계를 넘어선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이기도 하다”면서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잊었던 향수를 자극하고, 청년층에게는 매우 어려웠던 과거사를 간접 경험해보도록 해 세대 간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배우와 극단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연습할 때 마스크를 써야 했고, 극단에서는 방역에 신경을 곤두서야 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서로 대사를 맞추다 보면 매일 마스크를 두세 장씩 갈아 쓰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명희, 정영신, 김영인, 김명중, 손정욱, 김은현, 박웅선, 지성근, 이현주, 최진명, 배태민, 윤슬기, 이지윤 등이 출연한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은 오후 4시와 7시, 일요일은 오후 4시이다. 월요일은 공연이 없다. 김영중 선임기자 jeunesse@seoul.co.kr
  • “이렇게 자라면 어때서” “이렇게 키우면 어때서”… 어른 편견 꼬집는 ‘아이’

    “이렇게 자라면 어때서” “이렇게 키우면 어때서”… 어른 편견 꼬집는 ‘아이’

    너무 일찍 어른이 된 보호종료아동베이비시터로 싱글맘 도우며 연대고달픈 삶에 맞서 ‘진짜 어른’으로많은 서사에서 출산과 육아, 그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을 이야기한다. 당사자는 부모이거나 아이다. 영화 ‘아이’는 그 중간에 선 사람의 삶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는 육아가 두려운 ‘철부지 엄마’와 부모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애어른’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보호종료 아동 출신인 유아학 전공 대학생 아영(김향기 분)은 ‘싱글맘’ 영채(류현경 분)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영채에겐 생후 6개월 된 남자 아기 혁이가 살아가는 이유다. 영채는 혁이를 자신의 아이같이 돌보는 아영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지만, 어느 날 혁이에게 사고가 일어나자 자신의 책임을 아영에게 돌려 죄책감을 지우려 애쓴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영채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해 혁이를 입양 보낸다. 부모 없이 자라며 힘들었던 아영에게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인물은 서로 연민하고, 갈등하고, 각자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성장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회가 외면해 온 돌봄의 사각지대를 들춰낸다. 아영이 대학에서 아동학을 배우지만, 실제 어린이집 보육 실습에 들어가자 집에 가기 싫은 아이를 달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괴리가 있다. 보호종료 아동이 사망하면 무연고자 신분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이들에겐 충격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불우하고 암울한 현실에 집중하거나 신파로 끝나진 않는다. 김현탁 감독은 “저런 사람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저런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에 대해 반문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영화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고달픈 삶을 헤쳐 나가는 등장인물들의 강한 생활력과 연대에서 나온다. 유흥업소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영채나 보육원을 나와 악착같이 살아가는 아영은 방식이 다를 뿐 홀로 자립해 보겠다는 인물이다. 처음엔 악덕 업주인 줄로만 알았던 유흥업소 사장 미자(염혜란 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면서 연대감을 완성한다. 영화 속 아영이 영채에게 건네는 “내가 도와줄게요”라는 대사는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가 돼 다가온다. 영화는 큰 웃음 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다 시끌벅적하게 끝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희망’이 담겨 있어 훈훈하다. 다만 여성과 육아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관객에겐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진짜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에 공감하는 이 세상 모든 어른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상영시간 112분. 15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누군 앉아서 10억 벌고”…기안84, 이번엔 문 걷어찼다

    “누군 앉아서 10억 벌고”…기안84, 이번엔 문 걷어찼다

    “똑같은 신분에서 한 명은 귀족, 한 명은 노예. 그것을 결정한 것은 직업이 아닌 아파트” 3일 공개된 웹툰 ‘복학왕’ 329화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웹툰 작가 ‘기안84(37·본명 김희민)’가 연재 중인 ‘복학왕’에서 또다시 부동산 시장의 상황을 풍자했다. 이날 네이버 웹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기안84 작가의 복학왕 329화 ‘입주 2화’를 보면, 아파트에 입주한 주인공이 감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서 집값 놀라 ‘머리가 깨지는’ 장면을 그렸던 그는 이번에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갈등을 웹툰에 담았다. 자신의 집을 갖게 된 그가 이사 작업을 하는 인부에게 “이게 꿈은 아니죠?”라고 묻자, 인부는 “젊은 친구가 능력 있다”며 “(집값이) 20억까지 갈 거라는 말이 있으니 절대 팔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주인공은 “돈을 그렇게 쉽게 벌어도 되나”라고 반문하고, ‘위로의 전화조차 가식으로 들릴까봐’ 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주인공이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벌어도 되느냐”고 하자 이사 작업을 하는 인부는 “그렇게 벌지 어떻게 버느냐. 월급 모아서 부자 되려고 그랬느냐”라고 반문한다.주인공은 지인의 중식당에서 배달을 시킨다. 배달을 온 지인은 현관문을 쉽사리 열지 못한다. ‘새집이라 문 여는게 좀 다르다’는 주인공의 말에 현관문을 발로 차 부숴버린다. 지인은 항의하는 주인공에게 “물어줘? 어차피 집값 많이 올랐잖어”라며 “누군 뺑이쳐서 100만원 벌고 누군 앉아서 10억 벌고, X같다”고 한다. 주인공이 “형도 나중에 (집을) 사면 된다”고 하자, 지인은 “언젠간 집값 폭락하겠지?”라고 묻는다. 이에 주인공은 “이사 첫날부터 재수 없게, 뭔 폭락이냐. 이제 폭등 시작이구만”이라고 답한다. 이어 “다 잘 살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왜 점점 서로 미워하게 되느냐”고 한탄한다. 독자들은 부동산 시세가 폭등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유주택자와 무주택자간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반응을 보였다.배경 속 보름달에 ‘문재인 대통령 저격’ 해석 기안84는 웹툰 ‘복학왕’을 통해 부동산 폭등 상황을 지속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기안84는 앞선 웹툰에서도 보름달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가끔은 기가 막힌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집 살길은 보이지 않는게”라는 대사를 넣었다. 이를 본 독자들은 웹툰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독자들은 ‘닿을 수 없다’며 ‘달’을 가리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 ‘달님’을 뜻한다는 추측도 했다. 기안84는 또 다른 회차에서 등장인물의 머리가 도로에 부딪혀 깨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매회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기안84의 웹툰을 놓고 독자들 사이에서는 “통쾌하다”는 반응과 “너무 정치적이어서 불편하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집값 폭등에 머리 깨졌다” 기안84 풍자에 갑론을박[이슈픽]

    “집값 폭등에 머리 깨졌다” 기안84 풍자에 갑론을박[이슈픽]

    기안84, 웹툰 ‘복학왕’ 통해 또 부동산 풍자 웹툰 작가 ‘기안84’(37·본명 김희민)가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을 통해 또다시 최근 부동산 상황을 풍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기안84는 복학왕을 통해 청약 광풍, 로또 청약, 집값 급등 등의 상황을 풍자했다. 기안84는 지난 26일 복학왕 328화 ‘입주 1화’에서 집을 사기 위해 쉬지 않고 배달 일을 하는 등장인물을 그렸다. 이 인물은 성실히 배달 일을 해 월 500만원까지 벌었지만 며칠새 또 오른 집값에 충격을 받는다. 특히 바닥에 쓰러지며 머리가 깨지기까지 한다. 반대로 아파트를 산 또 다른 인물은 아파트 명의가 자신의 이름으로 돼 있다며 감격하는 장면이 나온다.25평 아파트 13억원…등장인물 좌절 웹툰 속 ‘햇볕마을 25평 아파트’는 매매가가 13억원으로 나온다. ‘집 없는 현실이 지옥 그 자체’, ‘청약 같은 건 당첨을 바라는 게 희망고문’, ‘빌어먹을 아파트’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은 “풍자도 적당히 하자”, “웹툰에서 정치 이야기 하지 마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기안84를 비판했다. 등장인물의 머리가 깨지는 장면이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를 뜻하는 ‘대깨문’을 연상시킨다는 해석도 나왔다. 반면 표현의 자유라며 기안84를 옹호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웹툰 댓글을 통해 “요즘 20~30대가 주식이나 코인에 매달리는 이유”라며 “리스크가 크다는 걸 알아도 그 이외의 방도로는 자가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데 별 수 있냐”고 지적했다.“너희나 실컷 살아” 기안84, 임대주택 풍자도 기안84는 앞서 복학왕 326화에서도 부동산 상황을 풍자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과 임대주택에 대해 “선의로 포장만 돼 있다. 난 싫다. 그런 집은 너희들이나 실컷 살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기안84는 지난해 10월에도 등장인물이 “한강이 보이는 마당 있는 주택은 몇 년 만에 몇십억이 올랐다고 한다. 이건 진짜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가진 놈들은 점점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장면을 그려 부동산 문제를 꼬집었다. 당시 ‘달’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달님’을 의미한다며 기안84가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다시 보면 다른 느낌… 난세에 돌아온 삼국지

    다시 보면 다른 느낌… 난세에 돌아온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판 출간황석영 번역작, 한시·삽화 더해넷플릭스 압축판 8부작도 인기중국의 대표적 역사소설 ‘삼국지’(원제 삼국지연의)는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정의와 의리, 경영과 처세, 인생에 대한 성찰로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널리 읽힌다. 꾸준히 인기를 끈 ‘삼국지’가 최근 만화, 소설 등 여러 부문에서 다시 출간됐다.문학동네는 고우영(1938~2005) 화백의 생전 대표작 만화 ‘고우영 삼국지’를 개정한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전 10권)을 지난 15일 출간했다. 1978년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 삼국지’는 이듬해 첫 단행본 출간 때 폭력과 선정성 등의 이유로 100여쪽이 삭제·수정됐다 2002년 무삭제 완전판으로 복간됐다. 이번엔 고 화백의 아들인 고성언씨가 컬러판으로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맡아 의미를 더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가독성을 높이고자 손글씨로 적었던 해설 전체와 대사 일부를 인쇄체로 바꾸고 주 독자층인 40~60대를 고려해 판형도 키웠다”고 설명했다.창비는 지난달 황석영 작가가 번역한 ‘삼국지’를 17년 만에 개정해 내놨다. 2003년 초판 발행 이후 200만부 이상이 팔린 이 책은 개정판에서 기존 10권을 6권으로 재편집했다. 원작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210수의 한시와 중국 인물화의 대가 왕훙시가 그린 컬러삽화 150여장이 수록됐다. 황 작가는 ‘옮긴 이의 말’에서 “삼국지를 찬찬히 다시 보면서 읽을 때마다 자신이 처한 사정과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밝혔다.교보문고 관계자는 “지난해 삼국지 관련 도서 판매액은 2019년보다 20%가량 늘어났다”면서 “코로나 19로 가정 내 독서 수요도 늘어난 데다 삼국지의 주요 사건들을 골라 쉽게 설명하는 ‘설민석의 삼국지’가 발간된 이후 삼국지 열기가 재점화됐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소설 담당 김효선 과장도 “지난해엔 소설가 이문열의 ‘삼국지’(RHK 발행)가 새로 출간되는 등 삼국지 시리즈는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삼국지의 인기는 온라인 동영상 시장(OTT)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0년 출시된 중국 대하드라마 95부작 ‘삼국지’가 인기를 끌자 이를 8부작으로 압축한 ‘삼국지 극장판’을 지난해 8월 출시했다. 문학평론가인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는 “충의의 상징인 관우와 사심을 버리고 공직에 헌신하는 제갈공명이라는 두 등장인물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다”며 “온갖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함께 지식인의 표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읽히게 된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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