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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선물] 금강제화

    [설 선물] 금강제화

    금강제화 상품권은 남녀 정장화, 캐주얼화 등 모든 종류의 구두는 물론 골프웨어, 등산웨어, 신사복, 핸드백,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전국 130개 시의 400여 금강제화, 랜드로바, 레노마,PGA 투어, 버팔로 단독매장, 백화점, 대리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가격대는 5만∼50만원으로 다양하다. 금강제화측은 “10만원짜리 상품권이 가장 많이 팔리지만 최근에는 15만원 이상의 고액 상품권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어르신들에게는 발이 편한 제품들이 인기다. 겨울철에 특히 요긴한 미끄럼방지 기능은 물론 신발의 무게를 가볍게 하거나 지압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기능성 신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금강제화의 ‘바이오소프’는 일반 구두의 가죽보다 훨씬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해 만들어 걸을 때마다 구두 창이 자연스럽게 꺾여 신발이 편하다. 가격은 15만 8000∼17만 8000원대다. 젊은 여성들에겐 발가락 끝이 살짝 보이는 핍토오픈 구두를 선물하면 좋다. 금강제화측은 “올봄에는 핍토오픈 구두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면서 “봄은 물론 여름까지 신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밝혔다. 가격은 15만 8000∼20만 8000원. 아이들을 위한 레노마 체크무늬 아동화는 코팅처리가 되어 있어 쉽게 때가 타지 않는다. 바닥에는 고무창이 있어 미끄럼 방지기능도 있다. 가격은 7만원.
  • 울산, 생태도시로 진화

    울산, 생태도시로 진화

    국내 대표 공업도시이던 울산이 자연생태공원 도시로 끝없이 변신하고 있다. 도심의 호수와 야산, 강변 대숲 등 천혜의 자연을 살려 만든 수십만∼수백만㎡에 이르는 웰빙·생태공원이 3곳이나 조성돼 밤·낮없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 대규모 공원 3곳을 잇는 24㎞에 이르는 도심 산길인 ‘솔마루길’ 조성 사업이 2010년 완공 예정으로 진행 중이다. 울산 남구 선암동에 있는 대규모 선암저수지가 수변공원으로 조성돼 31일 문을 연다. 유역 면적이 1.2㎢에 이르는 이 저수지는 비상 급수용인 공업용수 200만㎥ 저장 규모다. ●공업용 저수지가 수변공원으로 도심 야산에 둘러싸여 주변 경관이 매우 좋다. 수자원공사 소유로 그동안 수질보전과 안전 등을 이유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남구는 수자원공사에 협조를 요청해 방치돼 있던 저수지를 수변공원으로 만드는 공사를 2005년 12월부터 시작했다. 철조망을 걷어내고 저수지 둘레를 따라 모두 3㎞에 이르는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 곳곳에 쉼터와 전망시설, 꽃단지·꽃터널·장애인 탐방로 등을 조성했다. 수자원공사 예산과 구·시비 등 모두 64억원이 들었다. 출입 금지로 방치됐던 저수지가 안전하고 쾌적한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 김모(여·38)씨는 “저수지에서 노는 철새를 보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호수가를 산책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흡족해 했다. ●도심 3개 공원 잇는 산책로 24㎞ 조성 구는 선암동 수변공원이 위치한 신선산에서 옥동 울산대공원∼삼호산∼남산∼중구 태화강 대숲공원까지를 잇는 산책로 솔마루길을 조성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솔마루길은 소나무가 많은 산의 마루를 연결한 길이라는 뜻이다. 도시안 숲속의 긴 산책로다. 야산에 나 있는 기존 등산로를 활용해 조성한다. 곳곳에 구름다리·전망대·정자 등을 만들고 차길 때문에 등산로가 끊긴 곳은 친환경적인 인도교를 놓아 잇는다. 남산 아래 태화강에는 보행 전용 인도교인 ‘십리대밭교’를 건설해 강 건너 대숲공원과 연결한다. 십리대밭교는 경남은행이 기부해 6월 완공 예정이다. 울산대공원은 남구 신정동·옥동에 위치한 364만㎡에 이르는 국내 최대 생태공원이다. 울산을 터전으로 성장한 SK㈜가 기업이윤의 지역사회 환원사업으로 1020억원을 들여 조성해 울산시에 기증, 울산의 명물이 됐다. 태화강변 15만㎡의 대숲생태공원은 도심에 위치한 국내 최대 크기의 자생대밭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지난 2004년 말 개장했다. 울산시는 대밭과 인접한 태화들 43만 9217㎡도 대숲공원과 연계해 세계적인 생태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한다. 상반기에 실시설계를 마치고 착공해 내년 말 완공 계획이다. 김두겸 울산 남구청장은 “도심에서 호수와 산, 강변대숲으로 조성된 자연생태공원을 거치면서 20㎞가 넘는 숲속을 걸을 수 있는 도시는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여성 산악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 고미영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여성 산악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 고미영씨

    산은 인생의 ‘기댈 언덕’이자 ‘휴식처’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산을 찾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1500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 200만명에 미치지 못했던 등산인구가 2003년 600만명,2005년에는 1000만명을 각각 돌파했다. 국민들의 레저휴양 욕구가 얼마나 급증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른 각종 등산사고도 늘어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등산할 때 ‘3대 기술’이 있다는데 “혹시 들어보셨나요?.” 귀가 솔깃해진다. 첫 번째는 ‘에너지 생산’이고, 두 번째는 ‘에너지 보존’이다. 그리고 ‘에너지 절약’이 세 번째. 과연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 산악인 고미영(42)씨의 설명을 우선 들어보자. 산에 가서 배낭에 넣고 온 오이나 김밥, 초콜릿 등을 먹는 것이 바로 ‘에너지 생산’이요, 날씨에 따라 옷을 어떻게 입느냐 하는 것이 ‘에너지 보존’이라고 했다. 대개 머리와 목 등에서 약 30%의 에너지가 손실되는데 모자를 쓰는 것도 에너지 보존의 차원이라고 했다. 또한 산을 오르내릴 때 두 다리 외에 스틱 등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란다. 그리고 팔에 30%, 다리에 70%의 에너지를 분배해야 무리하지 않는 등산이 된다는 것. 다리에만 에너지를 집중시킨다면 무릎과 발목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등산화의 끈을 오를 때에는 느슨하게, 내려올 때에는 꽉 조여주어야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얕은 산이라고 해서 대충 운동화나 신고 오른다는 것은 금물이며 꼭 쿠션이 좋은 등산화를 신으라고 권유한다. ●“7개대륙 최고봉도 정복할래요” 고씨의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오는 까닭은 그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고산씨가 그에게 ‘등산의 3대기술’을 전수받았다. 고씨는 원래 평범한 9급 공무원 출신. 어느날 취미로 암벽오르기를 시작했다. 그러던 1997년 아시아챔피언십 클라이밍대회에 출전, 우승을 하면서 이 대회에서만 6연패를 기록했다. 여세를 몰아 암벽과 빙벽 부문에서 세계랭킹 5위까지 오른 국내 최고의 스포츠클라이머가 됐다. 2005년 고산등반으로 종목을 바꾼 그는 산악인들이 가장 꺼릴 정도로 위험하다는 파키스탄 드리피카(6447m) 등정에 국내 최초로 성공, 산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어 2006년 초오유(8201m) 등정을 시작으로 지난해 3월 에베레스트(8848m),7월 브로드피크(8047m),10월 시샤팡마(8027m) 등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1년에 3개나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런 그가 올해에만 로체(8516m),K2(8611m), 마나슬루(8163m)를 등정할 예정이다.2011년까지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울러 7대륙 최고봉에도 동시에 도전한다. 이를 위한 대장정을 지난 1월6일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과(6959m) 정상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 어느때보다 각별한 새해를 맞이했다. 고씨를 만나던 지난 주 청계산(서울 서초구쪽) 입구에는 이날따라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는 만년설이기 때문에 눈이 지겹겠다고 하자 “(그 곳에는)낙석과 낙빙의 위험이 있지만 오늘의 눈은 참으로 곱게 내려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고씨는 자택인 서울 잠실에 머물 때면 자신이 개발한 등산코스, 즉 청계산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4㎞에 이르는 등산로를 35분이내에 주파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새해 첫 등정을 아콩카과 고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 산은 바람이 워낙 심해 등정하기가 까다로운 곳인데 중간에 후퇴없이 무사히 성공할 수 있어 출발이 좋다.”면서 “아시아 최고봉에는 이미 올랐고 7대륙 등정을 목표로 세운 만큼 올해의 시작을 남미 최고봉에서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고산등반때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고 하자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알파미’라는 쌀, 그리고 즉석국과 밑반찬 등이다.”고 귀띔한다. 평생직장이나 다름없는 공무원에서 왜 험한 고산등반을 택했을까. 지체없이 “인생을 살면서 편하게 사는 것보다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성취감을 만끽하고 싶었다.”면서 “어떤 한계에 도전하고 성공했을 때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대답이 나온다. 특히 부모에 대해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평상시 심장박동수가 1분에 46회일 정도로 강인한 체질을 타고나 고산에서 흔히 겪는 고소증을 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씨는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 국가직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23세 때 그는 살도 빼고 건강도 다질 겸 우연히 ‘클라이밍 모임’에 가입했다. 31세되던 해에는 아예 공무원 생활을 접고 남성도 힘들다는 클라이머로 본격적으로 변신했다.1997년 아시안챔피언십 클라이밍대회에 첫 출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타고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2001년에는 아시아무대를 뛰어넘어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냈고 그해 여러 경기를 종합한 랭킹 5위에 이름을 올렸다.2년 뒤에는 아이스클라이밍 월드랭킹 5위를 차지했다. 암벽·빙벽 두 종목 모두 ‘톱5’에 든 셈이다. 뿐만 아니라 2006년에는 입문 3주 만에 한국산악스키대회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 주위를 놀라게 했다. 순간적인 근력(클라이밍)과 지구력(산악스키)에 자신을 얻은 그는 얼떨결에 드리피카봉을 오르면서 ‘고봉등정’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과 처음 원정갔는데 고소증세도 없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드리피카 꼭대기는 말 그대로 칼날처럼 뾰족해 엉덩이 하나 겨우 걸칠 정도로 위험해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딱 4팀만 성공했으니까요. 당시 정상 암벽(직벽)에서 로프가 끊어져 60m아래로 추락했는데 허리만 다치고 다행히 목숨을 건진 것도 고산등반에 더욱 욕심을 내게 됐지요.” ●심장박동수 1분에 46회 ‘타고난 체질´ 그가 오르는 등반코스는 대부분 영하 30도의 혹한과 강한 눈보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직은 괜찮아, 이 정도를 못견디면 어려운 일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느냐.’고 다짐한다. 특히 정상에서 식사를 할 때 “난 세계 유일의 낙원식당에서 법을 먹는다.”고 외친다. 그러면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 히말라야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 1%도 안 되고, 바로 내가 그 안에 속해 있다.”며 희열을 맛본다. 혼자 설악산을 가끔 찾는다는 그에게 ‘산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찍 엄마가 돌아가셨지만 늘 엄마의 품인 것을 느낀다. 언제든지 안기면 따뜻하고 편안하고 그저 말없이 받아주는 곳”이라고 자신의 철학으로 대신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한국인의 질병] (20) 치질

    [한국인의 질병] (20) 치질

    연간 입원 환자 수가 가장 많은 질환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망자가 가장 많은 ‘암’이라고 답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치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제대로 앉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가 많다는 것. 지난해 발행된 ‘2006년 건강보험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한 해에 치질로 입원한 환자는 21만 4500여명으로, 단일 질병 가운데 환자 수가 가장 많다. 치질 입원 환자 수는 2000년 12만명에 불과했지만 6년새 두 배로 증가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인 것. 미국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50세 이상 환자의 50%가 치질을 경험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50세이상 50%가 경험… 겨울에 많아 치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대장·항문 전문병원인 대항병원 이두한(51) 대표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치핵은 풍선을 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겨납니다. 풍선을 불면 커지는 것처럼 항문에 힘을 주면 치핵이 커지고 힘을 빼면 줄어듭니다. 주로 노인에게 많이 나타납니다.60년 산 사람은 30년 산 사람보다 치핵이 늘었다가 줄어든 경험이 많기 때문에 항문 주변 조직이 많이 늘어질 가능성이 높죠.” 치질은 항문 안팎의 질환을 모두 포함한다. 항문 밖으로 근육이나 혈관 덩어리가 빠져 나오는 ‘치핵’,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위가 자주 곪아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나 대변이 밖으로 새는 ‘치루’ 등이 그것이다. 치핵의 대표적인 증상은 항문 조직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탈항’(脫肛)이다. 치핵이 항문 안쪽에 생길 때 나타나는 탈항은 선홍색의 출혈과 내부 조직의 통증을 일으킨다. 항문 외부에 치핵이 생긴 경우에는 출혈이나 탈항의 위험은 적지만 피부 속으로 출혈이 일어나 피가 엉키는 혈전 증상이 나타난다. ●변기에 오래 앉는 습관이 원인 치루가 생기면 염증이 반복되다가 항문 주변 조직에 구멍이 생기는데, 대개 통증은 없지만 종양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반드시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항문이 찢어져 출혈이 생기는 치열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무리하게 변을 계속 보게 되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만성화된다. 치질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화장실 이용 습관 때문이다. 항문에 힘을 뺀 채 변기에 오래 앉아 있게 되면 중력에 의해 항문 주위에 피가 고이고 혈관이 팽창해 치핵으로 발전한다. 즉, 화장실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거나 장기간 앉아서 진행하는 업무, 쪼그리고 앉는 음주 습관이 주요 원인이 된다. 복압이 올라가는 골프, 보디빌딩, 등산 등도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여성은 활동성이 떨어져 남성보다 발병 위험이 다소 낮지만 임신 후 골반 근육이 내려올 때 치질의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치핵은 주로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요. 오래 앉아 있거나 복압이 올라가는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죠. 여성은 임신 뒤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항문 주변 조직이 잘 붓게 되죠. 출산 시 과도하게 힘을 주면 항문 안쪽 조직이 밖으로 빠지면서 들어가지 않아 치질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피만 나고 항문 바깥 쪽으로 치핵이 빠져나오지 않은 초기 환자에게는 적외선을 이용한 ‘응고법’, 전기나 레이저를 이용해 조직을 태우는 ‘소작술’ 등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들 시술법은 일시적으로 증세를 호전시키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치핵을 뿌리째 뽑기 위해서는 의사가 눈으로 보면서 치핵 덩어리를 절제해야 한다. 치질 수술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수술에 비해 통증이 크지 않다. 특히 치루는 그냥 낫는 법이 없고 근본 원인인 ‘치루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염증이 재발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수술을 해야 한다. “치질 수술은 무통 주사로 통증을 조절하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증상이 심하다고 해도 3∼4일간 입원하면 큰 문제 없이 완치할 수 있어요.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작은 부위만 절개하면 되기 때문에 치유 기간을 더 짧게 줄일 수 있죠.” ●치루관 뿌리째 제거해야 뒤탈없어 치질을 미리 예방하려면 배변 습관이나 화장실 이용 행태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힘을 주거나 자주 화장실을 찾으면 치핵이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변이 조금 남은 느낌이 있더라도 배변감을 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변의 양이 많으면 배변 시 힘을 주지 않아도 돼 치질의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채소와 같이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소화는 잘 안되지만 변의 양을 늘리기 때문에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혈관을 확장시키고 출혈을 일으키는 음주는 자제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활동력을 높이면 배변이 원활해지기 때문에 가벼운 운동도 좋다. 변비는 항문에 자주 힘을 주도록 하므로 미리 치료해야 한다. 환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검증되지 않은 무허가 시술법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치핵 조직을 썩게 만드는 ‘괴사제’는 괄약근 조직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위험하다. 괄약근이 약해지면 배변량을 제대로 조절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살이 썩는 약은 비수술적 치료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발이 되기 쉽고 합병증으로 근육 조직이 완전히 손상될 수 있어 피해야 합니다.‘획기적인 최신 비법’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경험 있는 전문의를 만나 근본적인 수술법에 대해 상담 받아 보세요.”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주말탐방] 쩐의 전쟁 ‘0.1초의 승부사’

    [주말탐방] 쩐의 전쟁 ‘0.1초의 승부사’

    “지금 올라온 것 체결해 주세요. 네.8만 5500원이에요.14만주.” 지난 22일 오후 2시30분. 증시 장 마감을 30분 앞두고 수화기를 든 박재영(36) 팀장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신운용 15층 운용지원팀 트레이딩룸.5명이 일하는 이 곳의 분위기는 미국발(發) 경기침체의 여파로 주가가 온통 곤두박질쳐 ‘난리’가 난 바깥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한결 느긋해 보였다. 박 팀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늘처럼 장이 크게 빠지는 날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라면서 “주가가 오를 때 훨씬 바쁘다.”고 했다. ● “펀드매니저는 작전부장, 트레이더는 보병” 그는 트레이더(trader)다. 국내에선 일반인들에게 아직 낯설다. 트레이더는 자산운용사에 소속돼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펀드매니저가 고객이 맡긴 돈을 어떻게 운용할까 중·장기적으로 전략을 짜고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면, 트레이더는 증시 상황을 체크하면서 시시각각 매매 여부를 판단한다. 펀드매니저가 (주식 매매)‘전투 작전’을 짜는 작전부장이라면 트레이더는 실제 주식시장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빗발치는 총알 속을 내달리는 보병이다. 큰 틀에서 매매를 결정하는 것은 펀드 매니저의 몫이지만 트레이더는 급변하는 증시 상황을 빠르게 판단, 매매의 방향과 규모 등에 영향을 미친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는 초 단위의 시간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박 팀장의 임무는 주식과 채권의 매매 주문을 총괄하는 것. 이날 하루에만 900억원에 가까운 주식매매를 체결했다. 팀장인 그는 자신의 매매는 물론 팀원들의 중요한 매매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박 팀장의 일 평균 매매 규모는 900억∼1000억원 수준이다. 그는 “시간과 가격, 거래량에 따른 다양한 기준에 따라 매매를 한다.”면서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중요한 매매는 펀드매니저와 상의해 매매 방향을 순간순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 장중엔 휴대전화 거둬 자물쇠 채운 사물함으로 정보와 돈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트레이더에 대한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시스템)는 엄격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주식 투자는 일절 금지돼 있다. 장중에는 휴대전화를 거둬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 둔다. 박 팀장은 “개인적으로는 펀드 등 간접투자만 한다.‘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투자를 아주 잘 할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하다.”며 머쓱해 했다. 트레이더의 하루 일과는 정말 빡빡하다. 오전 6시에서 밤 11시까지 주식에서 시작해 주식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점심 때는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 바쁠 때는 주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는 가끔 밖에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일이 터지면 밥 먹다가 숟가락을 내던지고 다시 들어와야 한다. 저녁 약속이 있어도 과음은 금물이다. 다음날 업무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매매 전략과 시장의 움직임이 일치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숨막히는 업무 특성에 따른 스트레스와 건강 관리는 이젠 습관이 됐다. 새내기 트레이더 시절 매일 점심을 햄버거와 자장면으로 해결했더니 몸무게가 금세 10㎏ 늘어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이후부터는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주말마다 등산을 하고 있다. 매매가 잘 안될 때는 잠시라도 밖에 나가 찬 바람을 쐰다. 요즘에는 마라톤에 재미를 붙였다. 올해 목표는 하프 마라톤 완주다. 거액을 주무르지만 연봉은 일반인들의 생각처럼 대단하지는 않다. 그는 “개인적인 연봉은 회사 규정상 밝힐 수 없지만 국내 자산운용사 과장급에 준하는 연봉에 업무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따로 받는다.”고 귀띔했다. ● 전공제한 없고 자격증도 필요 없어 현재 국내 50개 자산운용사에 소속된 트레이더는 약 100여명에 이른다. 경영·경제학 전공자가 많지만 전공에 제한은 없다. 보통 자산운용사에 입사한 뒤 교육을 받고 트레이더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운용전문인력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펀드매니저와는 달리 자격증도 필요 없다. 박 팀장도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다. 모의투자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6년 ‘전국 대학생 모의투자게임’에서 은상을 받으면서 트레이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직 트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국내에선 정착되지 않은 걸음마 수준이다.8년 경력의 박 팀장이 1.5세대 정도다. 그만큼 가능성도 많다. 업무 특성상 펀드매니저나 증권사 브로커로 자리를 옮겨 활동 영역을 넓히는 트레이더들도 적지 않다. 그는 “앞으로 트레이더의 역할은 국내 주식 매매는 물론 세계 시장 매매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이라면서 “전문성을 키울 만한 미개척 분야”라고 소개했다. 요즘처럼 증시가 요동칠 때 트레이더인 그의 생각은 어떨까. 박 팀장은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주식 투자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환경에서 개인이 기관보다 투자를 잘 하기는 어려운 만큼 멀리 내다보고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에 장기투자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충고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수익률대회 1위’ 그들은 지금 증권사들의 실적 수익률 대회에 입상한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을까. 대회 당시 직업은 다양하지만 그 이후 대부분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잠깐 증권사에 근무하기도 하지만 조직에 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매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입상한 수익률 대회를 개최한 증권사의 재테크 설명회에 강사로 등장, 투자기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때로는 수익률 대회 입상자끼리 투자자문사를 차리기도 한다.2006년 말 출범한 나눔투자자문이 대표적이다.2005년 한화증권 수익률 우승자인 박진섭 사장,2003년 동원증권(현 한국증권) 수익률 대회 출신의 유수민 이사,2002년 메리츠증권 수익률 대회 김동일 이사로 이뤄져 있다. 수익률 게임의 원조는 한화증권이다.1999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1년에 두번씩 개최하기도 해 지난해 18회까지 대회를 치렀다.‘주식 살 때와 팔 때’라는 책을 쓴 최진식 마이다스 주식투자연구소장이 이 대회를 통해 유명해졌다. 최 소장은 1999년 열린 1회 한화증권 수익률 대회에서 두개의 계좌에서 두달 만에 각각 2850%와 1600%의 수익률을 냈다.2000년 열린 한화증권 수익률 대회에서도 1771% 수익률로 다시 1등을 거뒀다. 한 때 한화증권에 입사했으나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은 층 전용의 수익률 대회로는 2003년 12월에 시작된 동양종금증권의 영파워랠리가 있다. 이 대회 3위 입상자까지 특별채용된다.5회까지 대회가 치러졌고 지금까지 13명이 입사했다. 지난해 열린 영파워랠리에서 우승한 한승훈씨는 현재 신입사원 교육 중이다. 가족 전체가 전업투자자로 활동, 수익률 대회를 휩쓰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전업투자자로 활동 중인 박현상씨와 처가 식구들은 ‘여수 고래 패밀리’라고 불린다. 그들 가족은 각종 대회 입상은 물론 우승도 휩쓸고 있다. 수익률 대회는 특정 기간에 최고의 수익률을 거두는 사람이 우승한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은 장기투자보다는 단기투자에 집중하게 된다. 증권사가 매매수수료를 거두기 위해 수익률 대회를 연다는 비판도 있다. 수익률 대회 입상자는 “평소에는 장기투자를 하는데 대회에서는 입상해야겠다는 생각에 단타매매를 하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손실에도 인내는 필수 장기분산 투자가 최고” 예상과는 달리 연초부터 주가가 폭락하면서 증권포털 사이트인 ‘팍스넷’(paxnet.moneta.co.kr)에는 주식시장을 떠나는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36세의 결혼 5년차 학원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는 주식시장에서 자진퇴출을 선언하고 “두려움과 공황상태”라고 심경을 밝혔다.2006년 4월 들어와서 지금까지 날린 돈은 수천만원. 주변에서 ‘누가 돈 벌었다더라.’는 얘기에 현혹돼 3000만원을 들고 주식 투자에 ‘입문’했다. 그러나 기다리기 싫어하는 초조함이 투자를 실패로 이끌었다. 그는 “꿈에 거지꼴을 하고 있는 악몽을 자꾸 꾼다. 이젠 정말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 전업투자자는 “전업투자는 도박과 다름없는 짓”이라면서 “전업투자를 하는 동안 어딜 편히 가지도, 다른 것을 편히 해본 기억이 없다.”고 돌이켰다. 또 “1000만원 정도 잃고 나가는데 무엇보다 이 정도에서 정신차려서 이 바닥 뜨는 것이 다행이고 행복하다.”며 자신의 처지를 ‘성공담’으로 소개했다. 25살의 한 복학생은 지난해 9월에 주식을 시작, 다행히(?) 최근 1700∼1720선에서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았다. 그는 “이젠 주식에 매달리는 시간에 충분한 휴식과 운동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곳에 투자하더라도 여유자금으로 냉정하게 하겠다.”며 증시에 작별을 고했다. 개미 투자자들의 위로와 충고도 이어졌다.7년 동안 주식 투자를 했다는 한 투자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투자자라면 회사를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며, 그것이 자신에게도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것임을 빨리 깨닫기 바란다.”면서 “좀 더디더라도 장기분산 투자가 최고”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손실을 보았을 경우 초조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 바닥에서 승자의 편에 서기 힘들다.”면서 “적어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수익의 가능성을 포기하더라도 손해를 보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몇 년을 버텨내면 수익은 저절로 찾아온다.”며 인내를 당부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트레이더란 자산운용사에 소속돼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펀드매니저가 고객이 맡긴 돈을 어떻게 운용할까 중·장기적으로 전략을 짜고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면, 트레이더는 증시 상황을 체크하면서 시시각각 매매 여부를 판단한다.
  • [누드 브리핑] 구청장車는 이동탈의실?

    초고층 빌딩과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싶은데 땅이 없어 한숨 쉬는 구청장이 있습니다.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구청장에게는 승용차가 이동식 옷장격입니다. 집 값이 오른 지역주민들이 구청장을 업고 다닌다고 하네요.●초고층에 오페라하우스 입맛만 맹정주 강남구청장이 최근 사석에서 “우리도 초고층 주상복합빌딩을 짓고 싶다.”며 중구, 용산구에 이어 ‘초고층’을 노래부르는 대열에 합류했는데요. 새 정부와 서울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자 욕심이 난 것 같아요. 맹 구청장은 이어 “지역에 국내 첫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꿈도 아직 접지 않았는데, 초고층 빌딩 옆에 지으면 제격일 것”이라고 한술 더 떴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을 땅이 강남에 없으니 꿈일 뿐”이라며 입맛만 다셨다고 하네요.●구청장의 변신은 무죄 “내 자동차엔 양복 3벌, 운동복 2벌, 캐주얼 3벌, 구두 2켤레, 운동화 1켤레, 등산화 1켤레가 실려 있어요.” 자동차의 주인은 연예인이 아니라 양대웅 구로구청장입니다. 분·초를 다투며 성격이 다른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니 관용차에는 갖가지 옷이 가득하답니다. 매일 자동차에서 멋진 ‘변신’을 시도합니다. 24일에도 오전 간부회의, 구의회 업무보고, 건축위원회, 구로6동 동정설명회, 구로6동 현장순시, 그린파킹 주민추진위원회 등의 강행군을 소화한 양 구청장은 양복, 캐주얼, 양복으로 번갈아 갈아입으며 스타일을 바꿨는데요. 동정설명회 때 양복차림이었다가 현장순시 때는 캐주얼 차림인 양 구청장을 본 한 주민은 “분명히 조금 전에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신기하다.”며 양 구청장의 변신에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하네요. 양 구청장은 “지동차에서 옷을 자주 갈아입을 때는 연예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답니다.●“집값 올라 고맙습니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이 연초에 지역 주민들로부터 다량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주민 인사회에서도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하네요. 이 구청장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강한 추진력으로 길게는 10여년간 정체된 지역 숙원사업들을 차례차례 해결한 덕분입니다. 창동차량기지 이전과 교육특구 지정, 경전철 유치, 당현천 복원공사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러다 보니 지역 집값도 자연스레 상승, 주민들이 반기는 눈치입니다. 편지 내용에는 그동안 소외된 지역 집값을 올려줘서 감사하다는 말들이 주를 이뤘다고 하는군요.시청팀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6) 전북 남원시 산내면 팔랑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6) 전북 남원시 산내면 팔랑마을

    텐트를 흔드는 빗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녘에야 잠시 밖으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 본 바래봉(1165m)은 하나의 섬이었다. 천왕봉까지 이어진 경쾌한 능선 사이로 파도처럼 일렁였던 구름, 해초같이 흔들렸던 철쭉, 그리고 바다에 우뚝 선 외딴 섬인 양 안개에 젖어 있던 봉우리.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카메라를 들었을 땐 이미 모든 풍경이 쓸쓸히 떠나버린 후였다. 그날의 바래봉은 전설처럼 아득하다. 지금 그 곳 앙상한 나뭇가지엔 겨울 한철 찬바람뿐이겠지만 가지마다 붉은 꽃잎으로 화할 5월이면 팔랑마을도 등산객들의 꽃무리로 복작복작 활기를 띨 것이다. ●5월이면 꽃구경 온 등산객들로 북적 얼추 700고지. 따라서 바래봉 산행은 벌써 절반쯤 끝낸 셈이다. 정확히 팔랑마을을 출발한 산길은 바래봉에서 남쪽으로 1.5㎞ 진행한 팔랑치(1010m)로 가 닿는다. 기실 ‘바래봉 철쭉’은 팔랑치 철쭉을 말하는 것인데 바래봉 능선에서 철쭉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팔랑치 인근이기 때문이다. 팔랑마을은 그 팔랑치 아래에 있다. 걸음걸이로 치자면 약 50분 거리다.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남원시이지만 경상남도 함양군이 약 6㎞, 전라남도 구례군은 약 7㎞로 삼도가 적절한 간격으로 어우러졌다. 한자로는 여덟팔(八) 사내랑(郞) 자를 쓰며, 이름 그대로 아들을 많이 낳는 마을로 통한다. 건물 수는 훨씬 더 많지만 실제 팔랑의 거주 호수는 7가구로 단출하다. 한때는 초등학교 분교가 들어설 만큼 사람이 많았는데,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지리산 인근의 독가촌들을 모두 이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고사리, 꿀, 산나물, 송이 채취에 민박까지 겸한다. 남원시의 지원 하에 민박마을로 돌아선 건 20년 전쯤. 전엔 농사도 제법 일궜다지만 멧돼지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1년 내내 수고를 해도 하룻밤 습격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또 주민들이 마을을 버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일부가 다시 팔랑으로 돌아와 정착했지만 ‘가나안농산(063-636-3553)’ 김재문(57)씨 댁은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벌써 4대째 살고 있는 땅이다. 김씨는 군 생활 34개월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고사리·꿀 채취… 민박으로 더 유명 6년 전쯤 민박집을 새로 지었지만 정작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대대로 살았던 아궁이 흙집이다. 여름엔 추워서 반팔을 입고 온 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낼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모기도 없다. 요즘 같은 계절엔 민박이나 산나물 채취 일을 잠시 놓아 두고 여행이라도 다니면 좋을 텐데 “여기처럼 좋은 곳이 없는데 나가서 뭔 고생이오.”라며 손사래를 친다. 며칠 전쯤 바래봉 어깨 너머로 많은 눈이 내렸다. 지리산 서북릉 기슭이어서 눈이 많은 마을이다. 자고나면 30㎝씩 쌓여 있다. 김씨의 표현대로라면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다. 폭설 시엔 산내면자율방범대에서 트랙터로 길을 내줘 통행이 가능하다. 할 줄 모르는 인터넷도 지난해 개통됐다. 다만 이곳 역시 유선이 들어오지 않아 비싼 값을 주고 TV 시청을 해야 한다고. 당분간 감내해야 할 산마을의 불편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진입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을 거쳐 남원시 인월면에서 뱀사골 쪽으로 들어선다. 팔랑마을은 861번 도로에서 약 2㎞ 지점으로 시멘트 포장길 가장 끝 지점이다. 버스는 남원이나 함양으로 간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이나 달궁행을 타고 갈 수 있다.
  • [Let´s Go] 雪原, 우린 눈신 신고 누빈다

    [Let´s Go] 雪原, 우린 눈신 신고 누빈다

    모처럼 찾아온 동장군이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안방에서 따뜻한 아랫목만 끼고 있자니 좀이 쑤신다. 밖으로 나가자는 가족들의 성화에 몸을 일으켜 보지만 갈 곳이 마땅찮다. 스키장을 가려니 얇은 지갑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눈썰매장은 어떨까. 무난하게 하루를 보낼 수는 있겠지만, 끝없이 펼쳐진 눈부신 설원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이럴 때 스노슈잉(Snowshoeing)이 딱 좋은 대안이 된다. 가족은 물론 친구나 연인끼리 눈덮인 겨울 풍경을 만끽하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신종 레포츠다. 건강도 돌보고, 눈구경도 실컷 하고, 게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으니 돌팔매질 한 번에 새 세 마리를 잡는 격이다. 스노슈잉이 막 도입되기 시작한 강원도 평창을 찾았다. # 우리의 전통 ‘눈신´ 설피와 비슷 스노슈잉은 눈 쌓인 설원에서 즐기는 등산 또는 트레킹을 이르는 말이다. 신발 위에 우리의 전통 ‘눈신’인 설피와 비슷한 스노슈즈를 덧신는 것이 일반적인 겨울산행과 다른 점. 배우기 쉬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많은 산소를 소비하는 유산소 운동이어서 운동량이 부족한 겨울철에 적합한 레포츠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 일본 등 동계 스포츠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진작부터 스키와 함께 겨울 레포츠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불과 3∼4년 전. 당시엔 일부 산악스키 애호가들이 스키를 메고 산을 오르기 위한 보조도구 정도로만 이용됐다. 그러다 평창군 그린투어사업단 박대원씨가 계방산, 운두령 등 평창 일대 눈길 트레킹에 스노슈잉을 접목시킨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한때 계방산 산악구조대원이었던 박씨는 “평창은 물론 강원도 일대엔 숲길, 계곡 등 아름다운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자동차로 이동하며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겨울 풍경과 만날 수 있죠. 겨울엔 갈 엄두도 못 냈던 곳을 스노슈즈를 신고서라면 어렵잖게 갈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눈길을 스노슈즈를 착용한 채 걷기 때문에 일반적인 걷기와 달리기보다 운동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노슈즈의 폭만큼 발 사이를 약간 벌리고 걷는 게 요령. 오르막길에서는 직선보다 대각선으로 오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때 발은 조금 더 벌리고 보폭은 줄인다. 내리막길에서는 발뒤꿈치의 크람폰(발톱)을 주로 이용하되,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 어떤 장비가 필요한가 스노슈즈는 눈에 빠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안된 스포츠 용품. 바인딩과 바닥(데킹), 보행시 편안한 회전을 돕는 발회전 지지대,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크람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 전체를 고정시키는 전통적인 설피와 달리 발의 앞부분만 바닥판에 연결시킨다. 발뒤꿈치만 따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산행 스타일과 몸무게, 적설량 등에 따라서 적정 크기도 달라진다. 가격은 일반 트레킹용 국내산이 15만원선, 수입산이 25만원선. 스노슈즈를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평창군 용평면 계방산장 등에서 운영하는 스노슈잉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www.yes700.com,(033)333-4441. 눈이 신발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해 주는 스패츠, 다소 험한 지역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스틱 등은 가져가는 게 좋다. 복장의 경우 보온이 잘되는 가벼운 소재의 옷과 모자, 장갑, 등산화 차림이면 충분하다. # 어디서 즐기나 대표적인 곳이 대관령 일대의 구릉지다. 삼양 대관령목장 주변과 고랭지채소밭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적설량이 풍부한 정선군 함백산 일대의 고원지대, 인제군 진동리 부근과 진부령 부근, 제주도 한라산 등도 빠질 수 없는 장소다. 이들 산간지대는 3월 말까지 눈이 녹지 않아 스노슈잉을 즐기는 데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박대원씨가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계방산 노동계곡과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 부근 척천리, 그리고 ‘바람마을’로 불리는 횡계2리 야지마을 등에서 주로 이뤄진다.2∼4㎞,2시간을 넘지 않는 가족 중심의 트레킹 코스다. 당일 어른 2만 5000원, 어린이 2만원.1박2일은 1인당 6만원 선.011-494-7603. 글 사진 평창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주의사항은 스노슈잉은 미끄러짐과 속도에 좌우되지 않는 유일한 레포츠다. 누구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지만, 어떤 아웃도어 활동에도 위험은 예외가 없는 것. 다음 사항에 항상 유념해야 한다. (1) 안전하다고 확신되기 전에 얼음판 위를 걸어서는 안 된다.(2) 지형을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특히 눈 위에 새 눈이 쌓인 경우 눈사태의 위험이 있다.(3) 눈에 묻힌 철조망이나 구덩이 등 장애물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4) 초콜릿 등의 비상식량, 여분의 옷 등을 준비한다. # 가는 길 영동고속고로→속사 나들목→이승복 기념관 방면 좌회전→31번 국도→계방산장
  • 광주, 주요 간선로 진·출입로 확장

    광주시내 주요 간선도로와 이어지는 진·출입로 확충 등으로 도심 교통흐름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올해 모두 1500억원을 들여 새로 6개 노선을 확장하는 등 22개 노선 63㎞ 구간의 공사를 추진한다. 올 신규 사업은 ▲백운주유소∼월산마을(1.6㎞)▲하남산단 외곽도로(16.43㎞)▲일곡∼용전간 확장(1㎞)▲광주∼화순간 확장(2.4㎞)▲동아여중고∼남부 경찰서간 확장(390m)▲시청∼유촌마을 간 도로 개설(640m) 등 6건이다. 백운주유소∼월산마을 구간이 개통되면 서구 화정동 주민들이 우회도로를 이용해 시내외 진·출입이 빨라진다. 대표적인 체증 구간이었던 광주∼화순간 교통 흐름도 크게 개선된다. 이 구간은 현재 4차로(폭 18m)에서 8차로(40m)로 확장되면서 시내 진·출입 구간의 ‘병목현상’이 사라질 전망이다. 무진로 종점인 60호 광장에서 어등산 관광단지를 거쳐 과학기술원을 연결하는 하남산단외곽도로(11.5㎞) 공사도 착공된다. 이 사업이 끝나면 하남산단 진입도로와 호남고속도로 광산IC 교통량이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계속 사업으로 광산구 본덕동∼임곡 구간(18.5㎞)과 호남고속도로 동림 나들목에서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첨단산단(2단계) 진입도로도 착공된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길

    [신경림 누항 나들이] 산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길

    지난가을 육로로 개성을 거쳐 평양을 가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산에 나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러 해 전 중국에 가서 압록강이나 두만강 너머로 북한의 헐벗은 산을 보았고 금강산을 가면서 평양에서 묘향산을 오가면서 산이 극도로 황폐해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실제로 북한의 속살 깊이 들어와 그 사실을 확인할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식량 증산을 위해서 높은 산까지 계단식 밭으로 개간하다 보니 산사태가 나고, 달리 연료가 없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때면서 더욱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동안 북한 당국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3년 전 금강산에서 세계시인대회가 열렸을 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석했던 일본 시인이 남북의 산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휴전선 부근의 산을 가리키면서 저것이야말로 남북의 현실이 여과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북한과는 달리 남쪽 산은 나무로 빼곡 들어 차 있어, 가령 조상의 산소를 산속에 썼다면 한두 해만 걸렀다가는 찾아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온통 잡목이어서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지만, 일단 산림녹화에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북한처럼은 아니겠지만 우리 산도 헐벗은 산의 대명사였다. 그때 일본을 다녀오던 사람은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일본의 울창한 숲을 보다가 우리 헐벗은 산을 대하면 한없이 슬퍼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와 일본의 차이가 없다. 그동안의 극성스러운 산림보호정책과 연료 혁명이 주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 가지 잘못된 집단기억이 있다. 일본의 침략이 있기 전에는 우리 산림이 울창했는데 강제 병합 후 그들의 남벌로 황폐해졌다는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예컨대 19세기 말 한국을 네 차례나 여행한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은 기행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부산에 첫발을 딛는 느낌을 “부산의 갈색 땅을 드러낸 산들은 여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2월로서는 황량하여 가까이하기가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고 쓰고 있으며, 서울 근교의 모습도 “경관은 푸른 데가 적고 단조롭다. 과수와 비실비실한 소나무 외에는 나무가 없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독립문이 들어 있는 옛날 사진을 보면 인왕산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나무 외에는 연료가 없으니 남벌이 성행했을 것이고 화전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지 못해 산이 황폐해졌던 모양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적어도 몇 백 년 사이에는 가장 울창하고 아름다운 산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우리가 유사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데 요즘 우리 산들, 특히 도시 근교의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자꾸 산으로 파고 들어오는 개발이 가장 큰 범인이겠으나, 등산객이나 유산객들도 만만치 않은 산의 훼손자다. 지난해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입산료를 폐지하면서 산 인구가 두 배 세 배로 늘어, 가령 북한산의 경우 한해 동안 산을 찾은 사람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단체에서는 한 달에 세 번 산에 오르던 사람은 두 번으로, 두 번은 한 번으로 줄이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을 정도다. 산에 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산은 오르는 사람뿐 아니라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도 즐길 권리가 있다. 여기서 이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컨대 북한산을 두고 생각할 때 산을 오르지 않고도 즐길 수 있게끔 산을 일주할 수 있는 환(環)도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노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이는 뜻없는 일이 아닐 것이다. 대운하 같은 거대한 계획에 묻혀 우리들의 작은 삶의 결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신경림 시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2007 CEO대상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때는 1884년(고종21) 음력 10월17일,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이었다. 당시 개화당의 거두이며 우정국총판(郵政局總辦)이었던 홍영식. 그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새로 세워진 우정국의 낙성식에 정부고관과 외국사신들을 초청, 한창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 민가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연회장은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금위대장(禁衛大將)이자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은 반사적으로 가장 먼저 불이 난 곳으로 달렸다. 바로 이때,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고 피흘리며 쓰러졌다. 이날 연회에 참석한 독일인 외무협판(外務協辦) P.G. 묄렌도르프는 민영익을 얼른 자기 공관으로 데리고 가서 미국인 의사 H.N. 앨런을 황급히 불렀다. 머리와 안면부에 예리하게 깊은 상처를 입은 민영익은 동맥이 끊어지는 등 출혈이 심해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다행히 민영익은 앨런의 치료를 받고 3개월 만에 완치됐다. 그러자 고종과 민씨 가문에서는 이같은 기적에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라워했다. 그럴 것이, 조선의 내로라하는 내의원들은 벌꿀을 펄펄 끓여 환부에 들이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앨런의 치료를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고종과 궁중의 신임을 얻은 앨런은 관립병원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그래서 1985년 4월 한국 최초의 국립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이 설립된다. 또 앨런은 관립의학교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나중에 지석영 선생이 초대 관립의학교장을 맡아 근대의학 발전에 많은 공로를 세우게 된다. ●스포츠 의학 명의… 연골재생시술 1인자 그러던 1907년 3월 관립의학교는 당시 서울에 설치됐던 치료기관 광제원과 합쳐 대한의원으로 개칭됐다. 이 대한의원은 1909년 새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시계탑건물(빨간벽돌)이다. 지금도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울대병원의 행정업무를 관장해오고 있다. 아울러 이 건물 입구에는 지석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어 우리나라 병원사(史)를 실감케 해준다. 성상철(60·정형외과) 서울대병원장의 집무실도 바로 100년의 빨간벽돌 건물 안에 있다. 성 원장은 지난해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이 병원 시계탑 건물 앞에서 개최,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서울대병원은 국내 서양의학의 효시인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중앙병원”이라면서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출범과 발전의 토양이 됐던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뿌리깊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대한민국 의학의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성 원장은 지난해 3년 임기의 서울대병원장에 연임됐으며 병원 원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7년 올해의 CEO대상’에서 최고 영예인 ‘종합대상’에 뽑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u(유비쿼터스)-헬스산업 활성화 포럼’ 초대의장에 선출되는 등 의료발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성 원장은 인공관절 치환술과 관절경수술 등으로 이미 스포츠의학의 명의로 소문나 있다. 특히 연골배양 이식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켜 연골재생 시술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작고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사위이자, 서울대의대 1회 졸업생으로 경남 거창에서 60년 가까이 ‘자생의원’을 개업, 지역의료 봉사에 일생을 바쳐온 성수현(86)옹의 아들이기도 하다. 화제거리는 이 뿐만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10·26과 12·12사건때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의사였다. ●“박지성도 나한테 왔어야 했는데…” 집무실에서 직접 만난 성 원장은 나이보다 꽤나 젊어보였다. 명의여서, 아니면 서울대병원장이어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있는 것일까.“그저 잘 웃는 편이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유머를 섞어가며 좌중을 웃기려고 한다. 웃음만큼 명약이 없는 것 같다.”면서 긍정적인 생활이 건강유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또 음식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데 최근들어서는 인절미 한두개와 우유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고 부연했다. 잠시 짬이 생기면 청계천과 삼청공원을 찾아 걷는다고 했다. 술은 한때 폭탄주를 열잔 넘게 마실 정도로 즐겼지만 지금은 조금 자제하는 편이란다. 그는 나이들게 되면 관절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통증이 오면 대개 3주 이상 지속되는데 붓는다든가 눌러서 아프면 전문의를 찾아야 하며 관절에 무리감이 느껴지면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지성 선수의 무릎 연골재생 수술 얘기가 나오자 “우리나라의 수준도 세계적이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에서 수술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개 연골파괴의 경우, 그 상처부위가 100원짜리 동전 크기 이내라면 재생수술로 완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자랑한다. “우리 병원은 올해를 제2의 도약, 즉 세계와 경쟁하는 해로 삼았습니다. 서울대병원의 강점인 최고의 브랜드 파워와 의료진, 연구역량 및 4개병원(본원, 분당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보라매병원) 인프라를 앞세워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울대병원이 개원 100년을 맞이한 오늘날 연간 입원환자만 100만명, 외래환자가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 규모로 발전했다는 것. 특히 2005년 국내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과학논문 인용색인(SCI) 등재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 1000편을 돌파했으며 파킨슨센터, 뇌자도(腦磁圖)센터 등 중심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 아울러 병원부지내 연면적 8400여평, 지상 4층, 지하 6층 규모의 외래암센터가 오는 2009년 완공되면 생명공학(BT)산업의 핵심영역인 첨단치료개발센터와 함께 명실상부 ‘글로벌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진료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아시아의 의료허브병원으로 거듭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아버지 존경” 성 원장은 어릴 적부터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슈바이처나 나이팅게일 등을 다룬 책을 자주 읽게 됐다.”고 술회했다. 성 원장의 아들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로 있으니 3대째 이어지는 의사집안인 셈이다. 성 원장은 부친에 대해 “부자간을 떠나 의사로서 무척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성 원장은 군복무시절 특별한 경험을 한다.15사단 전방을 거쳐 국군서울지구병원(서울 경복궁 옆)으로 근무지를 옮겼을 때 국가원수 시해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러니까 10월26일 저녁 병원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지요. 현관 입구에 쭉 도열해 있는데 김계원 청와대비서실장이 달려오고 그 뒤에 최규하 국무총리와 장인(신현확 경제부총리) 등이 급히 병원으로 들어오더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의무소령이었던 성 원장은 10·26 사건 현장에서 여러발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경호요원으로 유일하게 숨이 멎지 않은 채 실려온 박상범 전 경호실장의 수술을 맡아 기적적으로 소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곧이어 발생한 12·12사건 때에도 총상을 입은 많은 군인들을 치료하게 된다. 그는 경남고 21회 출신. 동기로는 현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허창수 GS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있다. 동기들과는 등산과 골프, 당구모임 등을 통해 취미별로 일년에 몇차례 만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거창 출생. ▲경남고 졸업(21회). ▲73년 서울대의대 졸업. ▲78년 서울대병원 인턴 및 레지던트 수료. ▲83년 서울대대학원 의학박사. ▲85∼86년 미국 하버드대 정형외과 연구원. ▲81년∼현재 서울대의대 정형외과 교수(무릎관절 외과). ▲2002∼04년 분당서울대병원장. ▲04∼현재 서울대병원장, 국립대병원장협회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07∼현재 제17차 한·일정형외과학회 대회장.
  • 대관령 옛길 테마등산로 조성

    강원 강릉시 대관령 옛길을 테마 등산로로 개발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17일 강릉시에 따르면 올해 3억원을 들여 대관령 국사서낭당∼반정∼제민원까지의 6㎞ 구간에 주막과 전망대, 등반 안전 편의시설, 신사임당과 율곡선생 모자 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 대관령 옛길의 문화적 의미를 재조명해 단오 등과 연계, 스토리텔링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 차원에서도 대관령 주변의 자원인 알펜시아, 용평스키장, 대관령 풍력단지, 눈꽃축제, 대관령국제음악제, 감자 큰잔치 등과 연계한 4계절 관광 자원코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듯했던 대관령이 관광 명품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도는 대관령을 4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 계획을 수립, 관광공사와 강릉·평창 등 기초자치단체와 공동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4개 권역은 ▲대관령 휴게소권(휴게소, 전망대, 익스트림 스포츠, 곤돌라 등 레저 및 위락기능) ▲대관령 고원권(고원 체험, 등산, 트레킹, 생태 등 체험형 관광자원) ▲대관령 중정권(대관령 옛길 테마, 휴식공간 등) ▲강릉 어흘리권(웰빙 먹을거리타운, 자연생태 휴양촌) 등이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20&30] ‘물먹은 인사’ 그들의 속마음

    [20&30] ‘물먹은 인사’ 그들의 속마음

    직딩(직장인)들에게 ‘인사´는 곧 ‘만사´다. 뻔한 유리지갑에, 까탈스럽고 때론 무능력한 상사들을 견뎌내며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이유는 힘들지만 언젠가는 꿈을 펼칠 때가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 그 날을 위해 원하는 부서에서, 원하는 업무를 하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현실은 비참할 때가 많다. 인사가 끝난 뒤 흡족한 마음에 표정관리(?)를 하는 이들은 많아야 20∼30% 정도일 뿐. 최근 인사에서 ‘물을 먹은’ 김세현(32·여·A건설)씨와 박주원(30·B전자)씨, 인사 파트에서 근무하는 유재용(33·K건설)씨와 장선희(27·여·M컨설팅·이상 가명)씨의 인터뷰를 가상대담으로 꾸며봤다. 임일영 이경주 장형우기자 argus@seoul.co.kr 1 “실력보다는 인맥이 중요” 김세현(이하 김) 난 건설회사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해외사업직군으로 입사한 지 4년째예요.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토목영업부로 발령을 내더니 올해까지 4번 연속 ‘스테이(잔류)’ 시키더군요. 물론 인사 때마다 해외사업부를 지원했지만 후배들은 인사이동이 원하는 대로 척척 나는데 난 말뚝을 박은 꼴이어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적어도 뽑은 파트에서 한 번은 기회를 줘야하는 것 아닌가요. 유재용(이하 유) 인사부에서만 5년차입니다. 솔직히 인사가 실력으로만 움직이면 좋겠지만 그 외의 변수가 너무 커요. 학벌같은 ‘라인(연줄)’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가장 많죠. 우리 회사는 고려대가 가장 세고 그 다음이 연세대, 한양대 정도가 힘을 발휘하죠. 솔직히 우리 회사에 들어올 정도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연에 의해서 한번 ‘물 좋은’ 부서에 들어가면 다시는 안 나옵니다. 그러니 변두리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는 부서에 진입하기가 더욱 힘들죠. 솔직히 능력대로 인사 이동이 되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네요. 장선희(이하 장) 저는 해외업무가 많은 컨설팅업체에서 2년째 인사를 담당하는데 해외인사는 정말 힘들어요. 한 번은 동남아지사로 발령난 선배가 씩씩거리며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뺨을 때리더군요. 그 상황에서 다른 인사팀 선배들을 둘러보니 모두다 아무일 없는 듯 업무에만 집중하더라구요. 나중에 팀장이 “강해져라.” 한마디 툭 던졌을 뿐이죠. 인사를 내는 것도 힘들지만 흔들리지 않고 인사를 밀어붙이는 게 더 힘들었어요. 박주원(이하 박) 경영지원팀에서만 3년째인데 전략팀으로 가고 싶어요. 솔직히 실력 만으로 될 것이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아요. 사장의 모친상, 이사의 부친상 때 만사 제쳐두고 거의 살다시피했어요. 술을 매일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인사이동이 안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건강 때문이래요. 건강검진에서 ‘간수치 위험’,‘고혈압 의심’이 나왔거든요. 부서이동 하겠다고 열심히 술 먹었더니 건강만 나빠지고 오히려 부서 이동의 장애물이 되다니요. 김 저는 인사에 물 먹은 지 2년째되던 해에 인사부장을 찾아갔어요. 부장이 미안해 하시면서 내년에는 될 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안 됐죠.3년째 인사부에 있는 동기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넌 싹싹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 천성은 못바꾼다지만 간부들 앞에서 맞짱구도 치고 늘 웃으면서 ‘이건 아부가 아니라 처세술이야.’라고 되뇌었어요. 하지만 4년째 인사 때는 이사와 줄이 닿아 있는 바로 밑 후배가 해외사업부로 갔어요. 그날 부서 선배가 해외사업부 가봤자 별 것 없다며 위로라고 하는데 미치겠더라구요. 전 해외사업직군으로 들어왔는데 계속 엉뚱한 곳에서 앉아있으니…. 유 제가 겪어보니 인사부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인사이동을 못한 사람들이 그럴 듯한 핑계를 대는 겁니다. 보통은 1년만 더하면 원하는 부서로 갈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그리고 현재 부서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재인지 설명하곤 합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상황에 따라 다시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 회사의 경우는 인사팀의 결정권이 60%이고, 해당부서장의 결정권이 40%입니다. 해당부서장이 현재 팀원이 최고라고 말하면 인사팀에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부서원 평가는 해당 부서장이 하니까요. 2 일을 너무 잘해도 골치? 박 솔직히 건강에 이상이 있을지 몰라 전략팀으로 못간다고 하니 황당하기만 하고, 회사에 애착도 안생기네요. 올해부터는 경조사는 거의 안챙기고 있어요. 주말에 등산동호회에 가입했고, 못읽은 책들을 읽고 있어요. 친한 선배들도 전략팀장이 바뀔 때까지는 불가능하니 결혼에나 신경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인사이동에 불이익이 따른다고 하던데요. 장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일을 너무 잘해서 운이 억세게 없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저희 회사는 아프리카처럼 험한 지역에서 2년 정도 고생하면 그 다음엔 모두가 선호하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게 배려해주는 것이 관례거든요. 그런데 험한 곳에서도 일을 잘 한다면서 곧바로 중동지사로 발령을 내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는 너무 잘해서 ‘피 봤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죠. 유 맞습니다. 솔직히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에서 일한다고 돈 더주는 것도 아니죠. 남들보다 월등히 일을 잘 한다고 표가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곳에서 잘 해주면 조용하고 편하니까 계속 시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장 한 번은 한 부지사장이 아프리카 지사장으로 간다며 능력있는 동문 후배 김모씨를 요청했어요. 그리고 김씨의 공으로 인정을 받더니 2년 만에 지사장은 미국으로 이동했죠. 하지만 정작 그동안 고생시킨 김씨는 챙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힘든 곳에서는 협력자였지만 좋은 곳에 가면 무서운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결국 김씨는 일을 잘 한다는 이유로 차기 지사장도 놓아주지 않아 4년을 아프리카에서 일해야 했어요. 김 나는 밑에 있던 해외사업직군으로 들어온 후배들이 다 떠나 이제 경쟁자도 없어요. 물론 토목 분야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아요. 열심히 일해야 해외파트로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선배들이 가끔씩 “토목영업부의 ‘꽃’인 줄 알았더니 ‘기둥’”이라고 말하는데 불안이 엄습하더군요. 회사에서 나를 방치해 놓은 동안 2년차부터 꾸준히 타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어요. 해외파트로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애써 무시했을 뿐이죠. 하지만 요즘은 제의가 들어온 회사들 중에서 고르고 있어요. 규모는 조금 작지만 토목계열로 스카우트해서 해외직군으로 보내주는 약정을 해주겠다더군요. 박 전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도 못믿겠어요. 조직이라는 게 원래 자기들의 일원이 될 때까지는 온갖 감언이설을 다하지만 막상 가족이 되면 입장을 바꾸니까요. 3 “떠나겠다” 벼랑 끝 전술 유 우리 회사에선 인사에 불만이 쌓여 회사를 옮기겠다면서 인사부와 일종의 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만일 이번에 원하는 부서로 안옮겨주면 다른 회사로 가겠다.”고 얘기하는 식이죠. 그 사람이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고, 회사가 아쉬워할 실력자라면 해볼 만한 것 같아요. 인사부는 고민을 시작하겠죠.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최대한 비슷한 부서라도 보내줍니다. 혹은 1년 뒤에 보내준다는 약속이라도 하죠. 물론 혼자서만 인재라고 생각한다면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회사에서 시원하게 보내줄 수도 있겠죠. 장 인사철이 되면 갑자기 식사 약속이 너무 밀려요. 만일 거절할 경우에는 ‘누구하고만 밥을 먹었다.’며 뒷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다 참석해야 하죠. 밥이 아니라 스티로폼을 씹는 기분이에요. 박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반 사원들은 인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느 부서가 인원이 넘치는지, 내가 원하는 부서의 팀장이 인원을 늘릴 것인지 등을 알려면 인사부 사람과 한번 쯤은 식사해야 하잖아요. 정보를 알아야 ‘소원수리(wish list·인사이동 희망 지원서)’도 쓰고요. 김 그런데 소원수리가 효력이 있기는 한가요?네 번이나 떨어져 보니 윗사람들이 열어 보기나 하는지, 괜히 의견을 수렴하는 척하려고 쇼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더라구요. 유 물론 읽어봅니다. 읽어보지만 의미를 별로 안둬서 문제죠. 게다가 알게 모르게 윗선에서 ‘누가 어디를 지원했다더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비밀이 안 지켜지는 셈이죠. 하지만 젊은 세대는 윗세대처럼 속물스러운 로비를 안해서 다행이에요. 당당하게 원하는 곳을 말하고 밥이나 술 한 잔 하는 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인사부보다는 가고 싶은 곳의 해당 팀장을 공략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박 지난 연말 전략팀장과 술 한 잔 할 기회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팀장이 “주원씨는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지만 건강 문제가 걸려. 전에 있던 두 팀장이 왜 주원씨를 안뽑았는지 알겠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당황했죠. 그런데 그 부서의 친한 선배 말이 “술 한 잔으로 인사이동이 되면 누가 못하느냐.”고 말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김 그래도 뇌물 같은 것은 못건네겠어요. 스스로 실력이 있다는 자존심일지도 모르지만, 받는 사람도 오히려 제가 싫어지지 않을까요? 실력 외의 것으로 어필하려 든다면 말이죠. 4 “인맥 줄대기, 나도 모르게 답습” 유 제가 인사부에서 배운 것은 인사이동은 결국 시류를 잘 타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업부서를 거친 사장님의 경우 모든 직원이 영업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업직 사원에게는 인사부나 경영전략팀으로 들어올 기회가 생기는 셈이죠. 반면 기술직 출신 사장님은 기술을 알아야 그것을 토대로 경영전략도 세워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럴 때는 기술직이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입니다. 결국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부서로 갈 확률은 거의 없어요. 학연이나 지연이 없다면 말이죠. 김 대학 시절에는 학연·지연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인사에서 계속 물을 먹으니 나도 모르게 같은 대학 출신 부서장들을 수소문하게 되더군요. 나도 모르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싫을 때가 있어요. 장 개개인은 자신이 제일 소중하지만 회사에서는 개인을 부속품으로 부려야 하니까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인사가 공평하면 말이 안 나올 텐데 공평의 의미도 당사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인사에 불만을 갖고 직장을 그만둔 선배 가운데 오히려 잘 된 사람들도 많아요. 그럴 때는 회사가 오히려 배가 아프지 않을까요? 박 글쎄요. 어디서나 월급쟁이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인사 정책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죠. 취직공부할 때는 붙기만 하면 좋겠다고 고민했는데 사람이 참 쉽게 변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수뇌부가 바뀌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겠죠. 그때까지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려고요.
  • [단체장 새해설계] 박광태 광주시장

    [단체장 새해설계] 박광태 광주시장

    광주시는 올해 역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 박광태 시장은 민선 3기부터 지역 살림살이를 챙기는 데 모든 행정력을 쏟았다. 그런 성과가 요즘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는 ‘생산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파란불을 켜고 있다. 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수출 및 생산 증가율도 광역시 중 4년째 1위를 기록했다.5인 이상 사업체 증가율도 1위를 차지했다. 박 시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 벽두부터 각종 현안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줄곧 서울에서 살다시피 한다. 지역 일은 행정부시장이 도맡도록 했다.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준비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그는 차기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이명박 사람들’과도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간접시설 확충 계기 박 시장은 U대회를 통해 광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세계속의 ‘광주’는 비엔날레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하지만 체육계 등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3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집행위원들이 현지 방문실사를 편다. 숙박·교통·경기장 시설 등 모든 분야가 망라된다.5월31일 예정된 개최도시 결정을 위해 러시아·캐나다·스페인·폴란드 등과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그는 최근부터 지역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을 수차례 찾아가 U대회 지원을 요청했다. 박 회장도 “U대회가 반드시 광주서 열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이 대회가 광주로 유치되면 국비 등을 지원받아 각종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확충할 수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생산 유발 9500억원, 부가가치 4500억원, 고용 3만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국제대회 유치가 버거웠지만 최근 200실 규모의 특급 호텔을 착공했다.”며 “U대회를 반드시 유치해 도시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올 가을 예정된 2008광주비엔날레와 정율성음악제 등 굵직한 국제대회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준비중이다. ●금융·유가·환율 파장 최소화 새정부가 출범하고 총선이 예정된 만큼 변화와 정치적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 불안, 고유가, 환율하락 등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둔다. 박 시장은 “미래 성장에 중심을 둔 첨단산업 지원과 투자유치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3대 주력 산업인 자동차·디지털 가전·광산업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대 목표이다. 문화콘텐츠·첨단부품소재·디자인·신에너지 등 4대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또 가정내 초고속 광통신망(FTTH), 발광 다이오드(LED), 나노기술 등 5대 신기술 응용산업의 육성기반도 다진다. 투자유치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인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 집중한다. ●문화로 먹고 사는 도시 조성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도 순항할 전망이다. 박 시장은 “문화로 밥먹고 사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제정된 ‘특별법’과 관련 조례를 토대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종합계획’을 지역실정에 맞게 보완한다. 전문가 등으로 전담팀을 구성, 자체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시민 공감대를 형성한 뒤 중앙정부와 협의에 나선다. 랜드마크 기능보완을 위한 상징 조형물을 설치한다. 음악·공예·디자인·게임·영상 등 문화콘텐츠사업 활성화에 나선다. 이 사업은 2004∼2023년 5조 2900여억원이 투입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도심내 7대 문화권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자리·건강 등 노인복지 강화 광주시내 노인은 현재 11만 3000여명으로 해마다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박 시장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건강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이들의 노후 생활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2009년까지 남구 노대동 일대 41만여㎡에 ‘빛고을 실버타운’을 건립한다. 이곳엔 1855억원이 투입돼 노인복지회관, 문화센터, 종합체육센터, 노인요양원 등이 들어선다. 단계적으로 골프장과 퇴행성 전문병원, 치매병원, 재활전문병원 등도 건립된다. 시설과 규모면에서 전국 최대이다. 북구 효령동에도 2009년까지 11만여㎡ 부지에 ‘북부 노인복지타운’이 건립된다. 일자리 지원시설과 여가문화·평생학습·체육시설 등이 설치된다. 이밖에 1000만그루 나무심기, 제3순환도로 착공, 어등산관광단지 조성 사업 등도 추진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편하게 즐기는 눈꽃산행

    편하게 즐기는 눈꽃산행

    저기 산이 있다. 이른 새벽 부지런히 서둘러 그 산을 오르면 멀리 산자락 위로 빨간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아름다운 산하가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흐르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산에서 장애우나 노약자들은 이런 풍경의 유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현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전혀 방법이 없지는 않다.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 경남 합천 오도산 등은 자동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명산이다. 전북 무주의 덕유산처럼 관광곤돌라를 타고 정상을 밟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설화(雪花) 가득한 설천봉까지 오르는 데 15분이면 넉넉하다. ■ 오도산 아침 7시20분. 여명이 산을 깨우는 시간. 초롱초롱했던 별빛이 조금씩 사그러지며 산자락 주변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어둠은 여명과의 싸움에서 패퇴해 달아나며 샛파란 하늘을 토해냈다. 그리고 구름에 휩싸인 산봉우리 위로 시뻘건 해가 솟아 올랐다. 오래전부터 근동의 사진작가들 입에 오르내렸던 저 유명한 오도산(吾道山) 일출이다. 햇살이 사위를 비추자 발 아래로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산들이 제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첩첩첩 산산산이다. 크고 작은 수십개의 봉우리가 넘실대는 ‘산들의 바다’를 눈으로 따라잡기조차 벅찰 지경이다. 오도산 정상은 1134m. 합천의 진산 가야산(1430m)보다는 못해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다.2㎞ 정도 떨어져 있는 두무산(1039m) 등과 더불어 가야산맥의 말단봉을 이룬다. 서쪽으로 숙성산, 백운산 등의 고봉준령들이 성벽을 이뤘고, 북쪽은 가야산, 남쪽은 황매산 등이 에워싸고 있다. 멀리 집산연봉들 사이로는 호리병을 연결해 놓은 듯한 모양새의 합천호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오도산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어 접근하기 좋다. 차량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교행할 정도로 폭이 좁다. 가야마을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10㎞쯤. 한굽이를 돌 때마다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산하가 번갈아 펼쳐진다. 오도산 정상은 현재 한국통신 무인중계소에 막혀 있다. 하지만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해맞이 기념비 주변 등 도로 곳곳에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길 :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을 나서면 삼거리. 오른쪽은 해인사 가는 길, 왼쪽은 야로·합천 방향 1084번 지방도로다. 왼쪽길을 따라 고개를 하나 넘으면 26번 국도와 만난다. 이 길을 타고 묘산면 방향으로 직진해 묘산면 소재지까지 간다. 묘산초등학교를 지나 500m쯤 가면 면소재지 끝부분 오른쪽에 ‘가야마을’ 이정표와 함께 ‘오도산 중계소’ 표지판이 나온다. 오도산 인근에 해인사, 영암사지, 합천호 등 둘러볼 만한 곳도 많다. 묘산면사무소 055)930-4031. ■ 덕유산 덕(德)이 많아 그 많은 눈을 이고 있었던 겐가. 언제나 좋은 덕유산이지만 겨울이면 유난히 빛을 발하는 설국(雪國)으로 변한다. 덕유산은 남쪽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눈이 많다. 서해의 습한 공기가 거봉을 기어오르다 힘에 겨워 눈을 뿌려대기 때문이다. 무주리조트 스키장 한 쪽의 관광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향했다.5분쯤 지났을까. 양팔에 주렁주렁 눈송이를 안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에 겨운 듯 하나같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곧이어 설천봉(1520m) 정상. 느닷없이 펼쳐진 설국의 풍경에 관광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기묘한 자세로 가지를 비틀고 선 고사목들이 눈을 의심케 했다. 설천봉에서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까지의 표고차는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잰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한 거리.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린이는 물론, 양말을 아이젠 삼고 오르는 노인들의 모습도 곧잘 눈에 띈다. 내친 걸음, 삼남을 굽어보는 향적봉에 올랐다. 해발 1614m. 한라산과 지리산, 그리고 설악산 등에 이어 네 번째다. 정상에 서자 북으로 적상산을 발아래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 서쪽은 운장산과 대둔산, 남쪽은 지리산,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금오산 등이 눈으로 뒤덮인 등산로와 함께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영·호남을 가르며 100리길 대간(大幹)을 이루는 덕유연봉의 장쾌한 파노라마다. 이런 곳을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가는 길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나들목→좌회전→적상면 삼거리→좌회전→사산삼거리→좌회전→치목터널→구천동터널→무주리조트. 향적봉까지 오르려면 아이젠 착용이 필수다. 앞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간혹 한 쪽 신발에만 아이젠을 착용한 관광객이 미끄러지며 뒷사람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 관광곤돌라 왕복 어른 1만 1000원, 어린이 8000원.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4시.(063)322-9000. ■ 함백산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높이가 1573m에 달해 태백의 지붕이라 불리는 태백산(1567m)보다 높다. 예로부터 묘고산이라고도 불렸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과 같은 의미로, 신성한 산이란 뜻이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길 중 하나가 함백산 오르는 길이다. 함백산 정상의 방송 송신탑까지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됐다. 백두대간의 중부지역 최고봉답게 함백산 정상은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북쪽으로 은대봉, 두문동재가 이어지는 능선과 금대봉, 매봉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서쪽으로는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두위봉, 백운산, 장산이 펼쳐진다. 쾌청한 이른 아침이면 동해 일출 전망도 가능하다. 함백산 인근의 만항재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 천국. 겨울엔 눈덮인 설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영월과 정선, 그리고 태백이 모두 이 지역에서 만나, 하늘아래 가장 높은 삼거리를 이룬다. 해발 1330m. 지방도로 중 가장 높은 414번 도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고한읍사무소 033)560-2615. 인근 태백시에서 열리는 눈축제 행사장을 찾아가도 좋겠다. 제15회 태백산눈축제가 1월25일∼2월3일 태백산도립공원과 황지연못, 여성회관 앞 얼음썰매장, 태백 레이싱파크 등에서 열린다. 눈 미끄럼틀, 튜브 봅슬레이 등 탈거리와 태왕사신기 얼음조각 등 볼거리로 가득찼다. 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에 도장을 받아 하이원스키장 매표소에 제시하면 관광곤돌라, 리프트권 등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550-2081,2828, 태백산 도립공원 550-2741,2745.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국도→석항→31번국도→화방재(어평재)→414번 지방도→함백산, 만항재. 눈이 많이 오면 길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글 사진 무주·합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달에 만난사람] 5년만에 복귀한 엄마선수 허윤정

    [이달에 만난사람] 5년만에 복귀한 엄마선수 허윤정

    그는 프로 선수로 뛰던 스무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농구 코트 안에서 살았고, 개인 사정으로 농구를 그만둔 후 코트 밖에서 5년을 살았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한 번도 농구 코트를 떠나지 않고 줄곧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간 주부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선수 때 못지않게 분투했지만, 마음속에 늘 다른 파도가 일었다. “우린, 가만히 집에 못 있는 사람이잖아요. 몸을 움직이고 싶고 땀 흘리고 싶고. 걸핏하면 새벽에 대청소라도 해야겠다며 서랍을 뒤집어엎었죠.” 등산도 하고 요가도 하고 꼬맹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기도 하면서 농구 주변을 기웃대다, 서른을 앞둔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간절한 것을 왜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망설이는 건 아줌마의 미덕이 아니잖아? 그는 용기를 내 출신 팀인 삼성생명 비추미여자농구단의 문을 두드렸다. “다시는 농구 때문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 둘 딸린 아줌마가, 그것도 5년을 쉬고서 다시 뛰겠다니 팀으로선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고 곤란했을 거예요. 감독님이 테스트를 허락하신 것만으로도 소원은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왔어요. 신기해요. 신기하죠?” 두 달간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 끝에 센터 허윤정(30세)은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왔다. 그는 2라운드까지 진행된 2007~2008 정규 리그에서 열 경기 모두 주전으로 뛰었다. 182cm의 큰 키로 외국인 선수 없이 치르는 올 시즌 경기에서 팀의 골밑을 지켰다. 이로써 여자프로농구에서 활약하는 ‘엄마 선수’가 신한은행의 전주원과 더불어 둘로 늘었다. 신명이 있으니 지금이 더 낫다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농구할 때는 농구 생각만 나요. 나 자신이 농구를 처음 배우는 아이 같아요. 딸아이들도 처음 숙소생활을 시작했을 땐 오늘 하루만 자고 가면 안 돼?’ 하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이제는 ‘하룻밤 잤으니까 운동하러 가도 돼’ 하고 선심을 쓴 다니까요.” 일곱 살, 네 살인 하나와 두나를 돌보는 것은 남편 이용석 씨의 몫이다. 남편의 든든한 후원이 없었다면 운동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뒷바라지가 힘들지 않느냐고 남편에게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인상 안 써서 좋다. 지금이 더 낫다.” 체력도 달리는 것 같고 아직도 경기에 들어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어쩌면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유리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이 참 아까워요. 그땐 왜 그렇게 부정적이었을까요? 꼭 어린아이 투정하듯이 농구를 했어요. 왜 안 될까, 왜 못할까 투덜거리기만 했지 정작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마지막이잖아요. 저한테는 돌아갈 길이 없어요. 그때 지금 같은 정신과 열정으로 농구를 했으면 아마 국가대표도 됐을 거예요.” 할 수 있다. 그리고 참을 수도 있다. 그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엄마 선수’를 꿈꾸는 다른 사람들에게 발판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해서 ‘저런 기회가 올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의욕이 지나칠까 봐 스스로 경계하고 있었다. 나란히 182cm의 큰 키에 운동을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 튼튼하고 씩씩한 건 당연한 일. 키가 훌쩍 자란 일곱 살 하나와 여섯 살 같은 네 살 두나를 보고 주변에선 벌써부터 한마디씩 한다. “엄마처럼 운동하면 좋겠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나오면 된다. 저는 정덕화 감독님의 이 말이 참 좋아요. 농구를 다시 시작하고서 가장 의지하는 말이에요. 예전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게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1분이 됐건 10분이 됐건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충만해지는 법을 알았어요. 열심히 하되 욕심은 안 부려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기회도 온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농구에 대해 이제야 깨닫는 게 많아요.” 점심식사 후 휴식시간이 끝나자 그는 옷을 갈아입고 오후 연습에 들어갔다. 선수들이 감독의 매서운 지도를 받으며 연습하는 체육관 안은 열기나 흥분보다는 긴장과 엄숙감이 흘렀다. 이곳은 프로농구의 현장인 것이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 허윤정 선수는 자신의 포지션인 ‘센터’를 팀의 ‘기둥’이라 표현했다. “키가 큰 센터는 링 가운데서 다 볼 수 있거든요. 링의 상황을 파악해 다른 선수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고요. 리바운드같이 궂은일을 도맡으면서 경기 흐름에 따라 수비와 공격을 넘나들어야 하니 기둥이라 할 만하죠.” 열혈 아줌마 허윤정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역할이 또 있을까. 2008년 1월
  • [서울신문 신춘문예-시당선작] 가벼운 산/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 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항공기·여객선 결항 속출

    올 들어 처음으로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가 전국을 강타한 가운데 남부지방에는 폭설까지 겹쳐 이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속출했다. 특히 방제작업에 하루가 아쉬운 충남 태안 지방에서는 추위와 거센 바람으로 방제작업을 중단, 주민들을 안타깝게 했다.●눈길 교통사고도 잇따라제주 전역에 강풍주의보, 대설주의보, 풍랑경보가 동시에 발효되면서 항공기와 여객선 운항이 무더기로 중단됐다. 이날 오전 7시35분 김포행 아시아나항공기 1편을 제외하고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제주항공, 한성항공의 제주발 항공편 105편이 결항됐다. 항공기 운항은 오후 1시부터 재개됐다. 또 해상의 풍랑주의보가 풍랑경보로 바뀌면서 4∼6m의 높은 파도가 일어 제주항에서 전남 완도·목포, 부산, 인천을 잇는 12개 항로의 여객선 12척이 출항을 못했다. 추자도와 우도, 마라도 등 섬주민들도 발이 묶였다. 눈길 교통사고도 잇따랐다.30일 오전 8시35분쯤 전남 화순군 춘양면 변천리 도로에서 군내버스가 논으로 굴러 승객 박모(39)씨 등 5명이 다쳤다. 앞서 8시5분쯤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고창∼담양간 고속도로에서 최모(66)씨의 트럭이 관광버스를 들이받아 최씨가 부상을 입었다. 새벽 3시쯤 영광군 군서면 남죽리 굽은 길에서 이모(46·여)씨의 무쏘 승합차가 전복돼 승객 7명이 다쳤다. 대관령이 영하 13.2도, 철원 영하 9도, 춘천 영하 7도 등 강원도내 전역은 동장군의 엄습으로 수도계량기가 터지는 사고가 속출했다. 광주시와 전남·북 공무원들은 온종일 비상근무에 들어가 눈길에 염화칼슘과 모래를 뿌리며 제설작업을 벌였다.20㎝가량 폭설이 내린 광주시내 주택가와 상가에서는 시민단체와 통·반장들이 눈치우기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태안 앞바다 방제 작업 중단충남 태안 앞바다의 방제작업도 전면 중단됐다. 해경 방제대책본부는 서해 앞바다에 풍랑경보가 발표된 데다가 눈까지 내려 해상 및 해안 방제작업을 31일까지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10∼15㎝의 눈이 내린 충남 서산과 태안 등엔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 아산 태안 당진 서산 보령 서천 등지엔 강풍주의보, 서해중부 전 해상에 풍랑경보가 발효됐다. 이날 서해 전해상에 초속 16∼22m의 강풍과 함께 4∼6m의 파도가 일었다. 윤혁수 방제대책본부 경비구난국장은 “혹한과 강풍 등으로 작업자의 안전사고가 우려돼 방제작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오전에 일부 방제작업을 벌였으나 오후엔 중단됐다. 여수 앞바다 화물선 사고의 14명 실종자 수색도 기상악화로 중단됐다.한편 이날 원유찌꺼기인 타르덩어리가 전남 신안 앞바다까지 밀려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목포해경 등 20여명이 출동, 타르덩어리 50㎏을 수거했다.●유원지 썰렁, 스키장은 북적연말이지만 추위로 전국 유명산과 유원지, 시내 번화가는 썰렁했지만 스키장과 백화점은 인파가 몰렸다. 등산객들로 붐비던 제주 한라산과 광주 무등산 등도 이날은 한적했다. 인천 남동구 인천대공원과 광주 북구 패밀리랜드 등 주요 유원지와 인천 로데오거리, 광주 충장로 등 번화가는 혹한으로 썰렁했다. 하지만 대도시 백화점과 대형유통센터 등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북 무주리조트에는 1만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스키와 스노보드 등을 타며 설원 낭만을 만끽했다.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기고] 아차산에서 고구려 해맞이를/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너른 벌판 위를 달리던 한줄기 바람이 갑작스레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곳. 백두대간의 광주산맥 끝을 이루고 남쪽을 향해 우뚝 솟아 아차(峨嵯)라고 불리는 곳.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함께 고구려인의 기상과 숨결이 가득한 그 곳이 아차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250여년 동안 각축을 벌이다 고구려가 160년간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다. 고구려의 군사보루인 홍련봉을 비롯해 17개의 보루 유적(사적 455호)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시 기념물 15호), 신라 의상대사가 문무왕 12년에 창건한 영화사와 천연 암굴 등 유적이 많다. 현재는 평일 5000여명, 휴일 1만여명의 등산객들에게 휴식과 활력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 내려 오솔길을 따라 약 15분만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아차산에서는 해마다 새해 첫 태양을 바라보며 한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해맞이를 위해 등산로를 오르다 만난 약수터에서 샘물 한 모금을 마시면 묵었던 고단함이 씻겨지고 정갈한 마음이 든다. 무자년 첫날 오전 7시47분이면 해맞이 광장에서 첫 태양을 볼 수 있다. 아리수를 붉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태양이 떠오르면 한해의 소망을 빌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우렁찬 환호성이 1500년 전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한 고구려의 함성이 되어 울려 퍼진다. 대북타고와 2008개의 풍선이 두둥실 떠올라 해맞이 인파의 꿈과 희망을 싣고 날아오른다. 아차산 정상에서 사방 아래를 둘러보면 길게 누운 용처럼 한강이 흐른다. 경기도 남양주 일대와 서울 강남·송파의 너른 벌판, 남한산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곳이다. 팔각정에서 아차산성길로 접어들면 1500년 전 삼국의 흥망성쇠 역사를 간직한 아차산성을 볼 수 있다. 아차산 입구 맞은편에는 홍련봉 1·2보루가 있다.2004년 고려대 매장문화연구소가 발굴한 홍련봉은 남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구려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등 문화재가 출토된 곳이다. 아차산에는 17개 보루 가운데 9개의 보루가 광진구에 있다. 이 한반도 남단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인 아차산에 고구려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차산 기슭에 그동안 발굴된 유물과 새로 출토될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할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북한, 중국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의 재현 및 온달장군, 평강공주 고분, 강서대묘 고분과 평양성도 재현할 계획이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공원은 단순한 지역사회 문화시설이 아니다.‘미래를 꿈꾸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에 박물관 건립 촉구 범시민서명운동에 1만여명의 시민이 동참했다.10만명의 의지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민간기구인 사단법인 ‘아차산고구려역사공원조성추진회’를 발족해 민간 차원의 박물관 지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사공원은 송파구에 건립 중인 ‘한성백제박물관’과 강동구의 ‘선사유적지’를 연계한 트라이앵글의 ‘역사·문화·관광벨트’를 구축,1200만명 외국인관광객 시대를 여는 서울 브랜드 마케팅의 충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 쥐띠 해의 첫날, 해돋이를 보러 교통대란을 겪으며 굳이 먼 지방까지 갈 필요 없다. 새해 첫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가족, 이웃과 함께 손 맞잡고 출발하자.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선조인 고구려인이 올랐던 길을 따라 아차산에 올라보자. 서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일출의 감동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희망찬 새해 첫날 아차산에서 모든 이들의 건강과 행복, 화합과 번영을 기원한다. 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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