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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전남 여수에서 경남 거제까지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 중 남해와 통영 사이에 자리 잡은 사량도는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높이가 398m에 불과하지만 설악산 용아장성을 축소해놓은 듯한 옹골찬 암릉을 품고 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능선을 걷다 보면 물뱀의 등을 타고 한려해상을 유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본래의 산 이름은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었는데 ‘망’자가 떨어져 지금은 그냥 지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 사량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 해금강권’에 속하고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사량면에 해당하지만, 사천(삼천포)에서 더 가깝다. 사량도는 크게 윗섬과 아랫섬이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동강(桐江)이 흐르고 있다. 동강은 두 섬 사이의 해협으로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윗섬에는 지리산과 옥녀봉(261m) 등이 불끈 솟아 있고, 아랫섬에는 칠현산이 일곱 봉우리를 펼치고 있다. 주변에는 대섬(죽도), 노아도, 누에섬, 나비섬(잠도), 수우도 등의 빼어난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사량도란 이름은 섬 자체가 뱀 모양으로 생겼고 뱀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산행 코스는 돈지에서 출발해 지리산, 불모산 달바위, 옥녀봉을 거쳐 진촌으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달바위∼옥녀봉 구간은 워낙 가팔라 위험구간도 있지만, 안전시설이 잘 설치돼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산행 들머리는 아담한 포구를 끼고 있는 돈지 마을이다. 돈지분교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을 20분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시원하게 뚫리면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쪽빛 바다 위에 뜬 수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삼천포가 아른거린다. 주능선에 올라붙은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돈지항이 물 위의 연꽃처럼 아름답다. 그 옆으로 작은 왕관처럼 보이는 섬은 이순신 장군이 대나무 화살을 얻었다는 대섬(죽도)이다. 평탄한 능선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와 섬을 구경하며 1시간쯤 가면 지리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사량도의 지리산과 옥녀봉은 1979년 삼천포산악회가 개척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개척의 주역인 김봉호씨에 의하면 섬에는 석란, 풍란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멧돼지들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멧돼지들은 바다 건너 고성 땅에서 건너온 것인데, 언젠가 해초를 쓰고 건너오는 멧돼지를 마을 어부들이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윗섬에는 멧돼지가 없지만 아랫섬 대곡산 부근에 30여마리가 살고 있다. 정상에서 30분쯤 내려오면 사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은 사량도 윗섬에서 유일한 절인 성자암과 옥동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내지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옥녀봉까지는 아직 2.54㎞가 남아 있다. 호젓한 숲길을 지나면 가파른 칼날 능선이 이어진다. 이 길은 위험하므로 안전한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 슬픈 전설이 서린 옥녀봉 불모산 정상인 달바위(400m)는 거대한 암봉으로 사량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이곳에서 가마봉(303m), 연지봉, 옥녀봉을 넘는 구간이 사량도에서 가장 빼어난 능선이다. 낙타의 등 같은 세 개의 봉우리를 연속적으로 타고 넘으며 펼쳐지는 한려해상의 풍광은 사량도가 아니면 보기 힘든 절경이다. 가마봉에서 급경사 철다리를 내려와 암릉을 기어오르면 너른 암반이 펼쳐진 연지봉이다. 아랫섬 칠현봉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동강 해협에는 꽃잎처럼 배가 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이곳에 주저앉아 “참말로 호수 같네!”하며 동강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연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로프로 엮은 나무사다리 길이다. 흔들리지 않으므로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에 이른다. 이 봉우리는 욕정에 눈먼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딸이 옥녀봉에 올라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 전설은 사실 여부보다는 외딴 작은 섬에서 가정 및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강력한 터부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대항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옥녀봉을 내려오면 해송 숲을 지나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는 진촌마을에 닿는다. 돈지 마을에서 시작해 지리산, 옥녀봉을 종주하고 진촌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약 8㎞, 5시간쯤 걸린다. 등산로가 잘 정돈돼 있지만, 곳곳에 위험 구간이 있으므로 초보자들은 꼭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사천, 통영에서 사량도 가는 배가 다닌다. 삼천포→사량도는 삼천포항에서 06:30 08:00 11:00 13:30 16:30에 출발하는 일신해운(055-832-5033)을 이용한다. 40분쯤 걸리고 요금 왕복 8,000원. 통영→사량도는 가오치항에서 오전 7시∼오후 5시10분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사량호(055-642-6016)를 탄다. 사량도 내에서는 금평∼돈지 마을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요금 1000원. 배가 출항하는 삼천포항과 통영의 활어시장에는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난다.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경호관 “죽고 싶은 심정” 울먹여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경호관 “죽고 싶은 심정” 울먹여

    경남지방경찰청은 2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경남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서거 당일 시간대별 행적을 짚어나가는 현장검증을 벌였다. 현장검증은 오전 5시35분부터 시작해 3시간가량 걸렸다. 현장검증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수 비서관과 함께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 및 법의학 전문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의 안전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이 경호관은 “미칠 지경이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며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무전용 리시버를 귀에 꽂고 점퍼 차림에 흰색 마스크와 회색 모자, 등산화를 착용해 당시 상황을 재연한 이 경호관은 현장검증에서 수차례 울먹이는 등 힘겨워했다. 이 경호관은 사저를 출발한 직후의 상황은 비교적 담담하게 당시의 기억을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 오전 5시47분쯤 사저를 출발해 등산로 입구 마늘밭에서 일하던 주민 박모씨에게 “마늘 작황이 어떻노.”라고 물었고 박씨는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안좋심더.”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호관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는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이 떠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했고 간간이 울먹였다. 당시 정토원까지 뛰어가는 대목에서는 “몸이 안 좋아 못 뛰겠다.”고 말해 경찰 대역이 뛰어갔다 왔다. 경찰은 이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에서 정토원까지 왕복한 시간이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으나 현장 경찰관이 재연한 결과 2분43초로 조사돼 진술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 한동안 오열했다. 이 경호관은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전 대통령을 발견하기까지의 긴급했던 당시 과정을 보여줬다. 이 경호관은 정토원 등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산 아래로 내려왔다. 부엉이 바위 입구에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오면서 불현듯 “바위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현장검증에서 이 경호관이 말했다. 이 경호관은 “하산 도중 부엉이 바위 아래에 물체 같은 것이 보여 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시각은 6시51분쯤. 이 경호관은 즉시 휴대전화로 경호동에 있는 신모 경호관에게 연락해 “차를 빨리 대기시켜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어깨에 들쳐업고 산 아래로 내려와 2차례 인공호흡을 실시한 뒤 6시59분쯤 경호차량 뒷좌석에 태워 김해 세영병원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호관이 사라진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다 들른 정토원에서는 이 경호관과 정토원 선진규 원장 간의 맞대면도 있었다. 이 경호관이 정토원 요사채 앞에서 선 원장을 확인한 뒤 합장하고 “VIP 오셨나요.”라고 물었고, 선 원장은 말 없이 오른손을 가로저은 것으로 확인됐다. 선 원장은 이 경호관의 말이 맞다고 한 뒤 위치만 조금 앞쪽이라고 조정했다.김한수 경남경찰청 강력계장은 “이번 현장검증은 이 경호관이 일부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진술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가고 싶은 섬’ 외연도 철제 탐방로가 웬말

    “이러다 ‘가고 싶지 않은 섬’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가고 싶은 섬’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일부 주민들이 이 사업이 자연친화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제동을 걸어 8월 완공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보령시는 이 마을 뒷산에 펼쳐진 천연기념물 136호 상록수림(3만 2295㎡)에 길이 700m 폭 1.4m의 탐방로 데크를 만들다가 일부 주민이 반발, 180m 정도만 깐 채 진척이 안 되자 공사팀을 모두 철수시켰다고 2일 밝혔다. 주민들은 “콘크리트와 철제 데크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데크는 콘크리트 기초 위에 철제를 설치한 뒤 나무를 덮는 형태이다. 이 때문에 탐방로와 함께 설치하려던 1㎞의 해안산책로 및 570m의 등산로 건설사업은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문화부 관광진흥기금 60억원과 지방비 71억원 등 모두 131억원이 투입된다. 외연도는 2007년 전남 청산도·홍도, 경남 매물도 등 3개 섬과 함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됐고, 가장 빠른 사업 진척도를 보여왔다. 외연도는 충남 서해안 서쪽 맨 끝에 있는 유인도로 183가구 487명의 주민이 있다. 이곳 상록수림은 500~600년 된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가 군락을 이뤄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보령시 관광과 김재호씨는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곳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간 관광객은 1만명이 넘는다. 김복수(46) 외연도청년회장은 “탐방로 대신 상록수림 진·출입로를 명확히 표시하고 가파른 곳은 나무 계단을 만들라고 시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이대로라면 탐방로가 오히려 ‘반환경 시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상록수림이 있는 산은 해발 73m밖에 안되는데 무슨 시설이 필요하냐. 천연기념물 속에 철제를 설치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노 前대통령 발견시각 또 달라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현장인 경남 김해시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 대한 1일 현장조사 결과 추락 흔적이 2곳에서 발견됐지만 혈흔은 찾지 못했다. 또 서거 당일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시간은 지난 27일 수사결과 발표 때보다 6분이 늦은 오전 6시51분으로 추정됐다. ●유서 작성중 경호원에 인터폰 이노구 경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은 이날 중간 수사발표에서 “사저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경호동에 ‘산책을 가겠다.’고 인터폰을 한 시간은 오전 5시35분쯤으로 지난 27일 발표했던 오전 5시45분보다 10분 빠르다.”며 “서거 당일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은 3분 뒤 사저 앞에서 기다렸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 작성을 오전 5시21분 시작해 44분에 최종 저장, 유서를 작성하던 도중에 경호관에게 등산을 가겠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장은 또 “이 경호관이 오전 6시52분쯤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차를 대라.’며 경호동에 있던 신모 경호관과 통화한 사실로 미뤄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발견된 시간은 오전 6시51분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국과수, 현장서 추락 흔적 2곳 발견 경남지방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40여명을 동원, 이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30분 동안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충격, 낙하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부엉이 바위 정상에서 국과수 관계자 2명이 각각 다른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면서 투신지점과 충격지점, 낙하지점을 조사했다. 또 고가사다리차를 타고 들어가 같은 조사를 벌였다. 경찰과 국과수는 현장조사를 통해 부엉이 바위 아래쪽 2곳에서 ‘섬유흔’(섬유조각, 실 등)을 수거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정상에서 투신, 떨어지면서 하단부에서 두 차례 부딪친 것으로 추정된다. 국과수 관계자는 그러나 “바위에서 혈흔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하루 1만명 추모행렬 봉하마을에는 이날 하루 조문객이 1만명가량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 추모객들은 이날 경찰이 현장조사를 위해 부엉이 바위를 통해 정토원을 올라가는 등산로를 폐쇄하자 마을에서 부엉이 바위를 바라본 뒤 우회하는 길을 통해 정토원을 방문했다. 창원 강원식·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부엉이바위 섬유흔 盧 것 아니다”

    “부엉이바위 섬유흔 盧 것 아니다”

    1일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현장감식에서 발견된 섬유흔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옷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닌 것으로 일단 확인됐다.혈흔은 찾아내지 못했다.  또 서거 당일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시간은 지난달 27일 수사결과 발표 때 보다 6분이 늦은 오전 6시51분으로 추정됐다.  ●”추락 지점과도 상당히 떨어진 거리”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은 이날 “부엉이 바위에서 발견한 섬유와 노 전 대통령 옷의 섬유를 확인한 결과 전혀 다른 소재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섬유흔이 발견된 위치도 노 전 대통령이 추락한 지점과 1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추락 지점과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하지만 혹시나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이 추락한 지점에는 덤불가지가 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섬유흔이 발견된 지점은 추락 지점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상의 목 부위에 찢어진 부분이 있었지만 찢겨진 부분은 없었다.”며 “발견된 섬유가 노 전 대통령의 옷에서 찢겨져 나온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서거 당일 노 전 대통령의 상의는 현장에서 수거했다.”며 “내일 이뤄질 현장검증은 당시 행적을 재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지방경찰청과 국과수는 40여명을 동원,이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30분 동안 노 전 대통령의 투신과 충격,낙하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감식을 실시했다.  이 청장은 사저 폐쇄회로(CC)-TV 녹화장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유족측에 공개 여부를 질문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며 “유족의 동의를 받아서 할 수 있다면 하겠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 발견 시간 또 달라져  앞서 이노구 경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은 중간 수사발표에서 “(지난달) 23일 오전 6시52분쯤 (첫 발견자인) 이모 경호과장이 신모 경호관에게 무전기로 ‘차 대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초 경찰은 오전 6시45분에 이 경호과장이 추락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그 전에는 오전 6시20분 부엉이바위 위에 서 있는 고인을 사저 경비초소에 근무하던 의경이 발견해 경호동 연락초소에 신고했으며 6시45분에 투신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사과장은 “이 경호과장이 6시47분쯤 ‘부엉이바위 밑으로 빠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약수터 쪽으로 뛰어 내려왔고 파란 물체가 보여 무전 통신으로 ‘차 대라.’고 신 경호관에게 말했다.”며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시간은 6시50분에서 51분 사이로 보인다.”고 말했다.이 경호과장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점검한 결과 6시47분까지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6시56분쯤 은회색 경호차량이 사저를 떠난 것을 CC-TV 녹화화면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당초 경찰의 두번째 수사 결과 발표에선 6시45분쯤 차량이 출발한 것으로 돼 있었다.이에 따라 김해 세영병원 도착 시간도 당초 7시에서 7시20분으로 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몸을 던진 시간이 ‘정토원 원장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경호관이 부엉이바위를 떠난 6시17분 이후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할 때 고인이 홀로 방치된 시간도 35분 안팎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 과장은 “이 경호과장이 당초 노 전 대통령 발견 시점을 잘못 말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을 놓친 시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며 “이 경호과장이 서거 당일 세 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호처에 문서보고를 통해 ‘투신 당시까지 함께 있었다.’는 내용의 허위 보고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이 경호과장의 문서보고 시점은 각각 오후 1시29분,1시51분,2시12분이었다.  ●봉하마을 하루 1만명 추모행렬  추모객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봉하마을에 하루종일 1만명 가량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된다.추모객들은 경찰이 현장감식을 위해 부엉이바위를 통해 정토원을 올라가는 등산로를 폐쇄하자 마을에서 부엉이바위를 바라본 뒤 우회하는 길을 통해 정토원을 방문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행정플러스] 소방공무원 기동복 바뀐다

    소방공무원의 주황색 기동복이 검은색 계열로 바뀐다. 소방방재청은 1일 ‘소방공무원 복제규칙’ 개정령을 공포하고, 이달부터 소방공무원의 기동복과 근무복, 신발의 디자인과 색상 등을 바꾼다고 밝혔다. 개정령에 따르면 현재 소방공무원이 가장 많이 입는 주황색 기동복은 상의의 경우 검회색과 주황색, 하의는 검회색으로 각각 바뀐다. 소재도 기존보다 빨리 마르고 보온성과 통기성, 신축성이 뛰어난 폴리에스터와 폴리프로필렌, 나일론 등을 혼용한 특수소재로 개선된다. 신발은 기존의 신사화같은 단화와 부츠형 기동화뿐 아니라, 평상시나 출동할 때 겸용으로 신을 수 있는 등산화 형태의 활동화가 새로 지급된다.
  • 지자체 너도나도 하천 복원사업 문제점 및 대책은

    지자체 너도나도 하천 복원사업 문제점 및 대책은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심 물길 살리기 사업이 붐을 이룬다. 친환경 생태하천을 조성하겠다며 예산신청을 하거나 앞다퉈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돌덩이와 콘크리트로 겉치레만 화려하게 꾸며 “무늬만 생태하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도 없이 경쟁적으로 하천복원 작업이 진행돼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천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복원으로 되레 하천기능을 악화시키는 사례도 속출한다.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생태하천 복원사업 현황과 문제점, 정부대책 등을 취재했다. 서울대 입구에서 시작돼 안양천까지 흐르는 도림천의 물길 살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도림천 복원 사업은 올해 초부터 관악구와 동작, 구로, 영등포 등 4개 구가 함께 추진하고 있다. 도림천 물길살리기는 내년 5월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구로와 영등포구 구간은 연말까지 공사가 끝난다. ●올해 생태하천 조성 2744억원 투입 31일 도림천 복원사업 현장을 찾았다. 서울대 입구에서부터 안양천 합류 지점까지는 14.02㎞. 하천을 따라 걸으며 현장을 살펴보았다. 이미 개천의 물흐름을 유도하는 둑은 돌이나 풀 등을 심어 마무리된 곳도 있다. 지금은 진입로와 생태 탐방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관악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안양천까지 내려보내고 주변에는 생태 탐방로 등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부족한 물은 인근 지하철역사나 빗물저류시설에서 물을 퍼올려 흘려보낸다는 계획이다. 도림천은 서울대 입구부터 지하철 2호선 신림역과 구로디지털단지역, 그리고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신도림역을 경유해 안양천으로 흘러든다. 하구쪽 구로구와 영등포구가 맡은 구간에는 자연형 생태하천 조성이란 큼지막한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작업과정을 보면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멀다. 하천으로 흘러드는 폐수관이나 물길은 손도 못대고 하천 양쪽 둑에 돌덩이를 쌓고, 인도와 자전거도로 등 편의시설 조성에 공을 들인다. 석축 사이사이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게 고작이다. 공사 현장에서 책임자를 만나 하천바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하상(하천바닥) 작업은 계획상 잡혀 있질 않고 현재 자전거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만들고 있다.”고 답변했다. 인근에서 흘러드는 하수관 정비는 엄두를 못낸다고 덧붙였다. 해당 구청 담당자 역시 “예산부족으로 하천바닥은 신경을 못 쓰고 시에서 추가예산이 책정돼야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엄청난 돌덩이로 강둑을 쌓고 사람 다니기 편하게 만드는 게 생태하천 복원인 셈이다. 안양천과 만나는 지점, 오염된 물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생태하천 조성으로 생태기능이 악화된 사례도 있다. 전북 전주시는 2006년 말 전주천 복원사업을 마무리했다. 130억원을 들여 하천 중간의 콘크리트 보를 철거했다. 대신 물고기길(어도)을 설치하고 버드나무 등 다양한 물풀도 심었다. 하지만 사람 중심의 하천복원이 이뤄지면서 정작 하천 생태계는 심하게 망가지는 우를 범했다. 하천과 가까운 20여곳에 조경시설과 체육시설이 난립, 생태하천이란 말이 무색하다. ●先 둑 조성·後 폐수관 수질관리 등 문제 전남 광주천도 마찬가지다. 광주천은 무등산 용추계곡에서 발원, 도심을 거쳐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광주시는 1999년부터 광주천 복원사업에 착수, 아직도 진행중이다. 2009년 말까지 7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일부 구간에는 생태하천 이미지와 맞지 않게 나무로 만든 차단벽을 설치한 상태다. 충북 청주시 역시 2002년부터 13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무심천을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홍수 예방과 조경을 이유로 하천 기슭에 자연석 수천 개를 계단처럼 설치했다. 광주천의 나무 차단벽과 무심천변의 자연석은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본래 취지인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멀다. 하천의 자연스러운 멋은 없애고 볼거리만 살리면서 동식물 서식지는 물론 침식과 퇴적 같은 하천의 고유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자체 단독으로 추진되는 하천복원사업은 연간 100여건이나 진행된다. 이처럼 국비 지원없이 지자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제대로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2744억원을 투입, 전국 90곳의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생태하천 복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본류와 지류·실개천까지 연계 사업으로 확대 추진되고 있다. 복원규모도 커지고 사업비도 지난해에 비해 112%나 증가했다. 1970∼1980년대 개발 붐을 타고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던 도심 하천의 물길을 되살리는 작업도 올해부터 추진된다. 환경부는 ‘청계천+2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안으로 전국 20곳을 선정,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미 상반기에 10곳이 선정됐고 하반기에 추가로 10곳을 선정한다. 1차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곳은 대구 범어천, 대전 대사천, 의왕 오전천, 의정부 백석천, 춘천 약사천, 제천 용두천, 충주 충주천, 아산 온천천, 마산 교방천, 통영 정량천이다. 이들 하천 개보수에 국비 2982억원과 지방비 1464억원 등 4446억원이 투입되며 3∼6년에 걸쳐 복구작업이 이뤄진다. 2단계 착수지역 10곳은 올해 하반기에 선정돼 2011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생태계 복원뿐만 아니라 도심 온도저감, 녹색 생활공간 확보,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붐 타고 실개천 복원사업 봇물 서울시도 올해 안으로 도심 5곳에 인공 실개천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일부 관련사업 공사를 발주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인공수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심속 실개천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도시 전체에 뻗어 있는 인공수로 폭이 50㎝에 전체 길이가 15㎞로 생활용수와 관광상품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종로구 대학로의 실개천은 혜화동 로터리로부터 이화 사거리까지 1030m 구간에 폭 2m 규모로 조성된다. 성동구 뚝섬역 부근에는 길이 280m, 폭 1~2m의 실개천이 만들어진다. 성북구 국민대 앞에도 길이 150m 폭 0.7m, 구로구 가로공원에는 길이 360m 폭 2m인 실개천이 생긴다. 또 송파구 지하철 5호선 방이역 부근 남부순환로변에 길이 1500m 폭 1.2m의 실개천이 조성된다. 실개천은 인근 지하철 역이나 한강물을 끌어들여 인근 하천으로 흘려 보내게 된다. 인공 실개천 주변에는 분수와 조경시설이 설치돼 도심 속 작은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내년에 6곳 2011년에 5곳을 추가로 선정해 실개천을 조성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최지용 선임연구위원은 “하천 복원사업이 생태복원과 거리가 먼 환경정비 작업에 그치고 있다.”면서 “하천의 규모와 이용실태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생태적 평가 등을 토대로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경찰 치안센터서 살인극

    경찰 치안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40대 남자가 흉기를 휘둘러 조사를 받던 민간인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남자를 몸수색도 하지 않고, 수갑도 채우지 않았다가 추가 범행 후에야 실탄을 쏴 잡는 등 현행범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31일 오전 3시45분쯤 경북 경산시 압량면 경산경찰서 진량지구대 산하 압량치안센터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연행된 김모(48·회사원)씨가 참고인 진술을 하던 주점 주인 A(52·여)씨의 옆구리와 가슴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렀다. A씨는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씨는 김모 경장이 쏜 실탄 2발을 오른쪽 넓적다리에 맞아 관통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경장도 김씨가 휘두른 칼에 찔려 상처를 입었다. 사건 당시 김씨는 치안센터 출입구쪽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등산용 가방에서 흉기를 꺼내 3m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A씨에게 다가가 흉기를 휘둘렀다. 경산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갑자기 A씨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구석으로 몰더니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렸다.”며 “김 경장이 이를 제지하려고 공포탄 1발에 이어 실탄 2발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시쯤 경산시 압량면 부적리 모 유흥주점 앞에서 주점 주인 A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만류하던 직장 동료 안모(38)씨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치안센터에 붙잡혀 왔다. 치안센터 경찰관들은 김씨가 안씨에게 휘두른 흉기를 사건 현장에서 빼앗았지만, 소지품 수색을 하지 않아 등산용 가방에 있던 흉기를 발견하지 못했고, 수갑도 채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치안센터에는 경찰관 3명이 있었지만 A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걸 제지하지 못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꽃게는 잡지만 7년 전 악몽이 ☞핵우산 명문화 추진 왜 ☞장병은 줄어드는데 ★들은 늘어 ☞”소통이 곧 민주주의” 정부가 솔선해야 ☞유족들 대국민 감사글 전문 ☞민속마을 고택 사들여 술판 ☞뽀송뽀송하게 운전하려면 ☞”분양권 뜬다던데” 큰코 안 다치려면  
  • [길섶에서] 대륙횡단 트레일러/박재범 논설실장

    “다음주 미국에 일하러 가네. 대륙횡단 트레일러를 몰 거야.” 50대를 넘어서면서 친구들의 삶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한 친구는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더니 뜬금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썩 잘나간 편은 아니었어도 아주 뒤처지지도 않았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적당히 공부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어 장교로 군을 제대하고,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IMF 경제위기 당시 회사가 어려워져 퇴사한 이후 한동안 지방의 어느 대학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기도 했다. 그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수년 전 작으나마 창업한 이후부터였다. 언제까지 등산이나 다녀야 하느냐며 벌인 일이었다. 물론 그 창업은 그가 평생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빨아들였다. “굉장히 힘들다던데, 자네 같은 백면서생이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나. 난 아직 젊어.”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치열한 생존경쟁을 넘어온 이른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업보인가. 지천명의 나이에 겪는 좌절에도 오히려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박재범 논설실장
  • [도시와 산] 대구 팔공산

    [도시와 산] 대구 팔공산

    남쪽으로 힘차게 내달리던 태백산맥이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서 우뚝 솟았다. 대구·경북의 영산(靈山) 팔공산이다. 요즘 팔공산은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더 멀어진다. 하루 7만~8만명이 찾기 때문이다. 대구시 인구가 250만명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팔공산에서 주말과 공휴일을 보내는 셈이다. 그만큼 대구 시민에게 없어서는 안될 휴식 공간이다. 편안하게 팔공산을 찾기 위해서는 평일이 좋다. 팔공산 동화사지구에 있는 산중식당 주인 김유진(39·여)씨는 “주말과 휴일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잡기가 힘들다.”고 귀띔했다. 동화사지구 상가촌 중심거리 중앙분리대의 한 바위에 새겨진 시 한 수가 험난한 팔공산 산길을 예고했다. ‘험준한 공산이 우뚝이 솟아서/ 동남으로 막혔으니 몇달을 가야 할꼬/ 이 많은 풍경을 다 읊을 수 없는 것은/ 초췌하게 병들어 살아가기 때문일까.’ 매월당 김시습의 ‘팔공산을 바라보며’ (望公山)라는 글이다. 팔공산의 이름은 신라 때 ‘공산’이었다. 원래 ‘꿩산’인 것을 한자로 표기하려다 보니 공산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팔공산 일대 일부 지형은 꿩을 닮았다. 동화사 너머 ‘치산리’(雉山里)가 그곳이다. 치산리에 대해 경북도교육청이 발간한 ‘경북 지명유래 총람’은 “주위 지형이 쪼그리고 앉은 꿩 모습을 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기록했다. ‘팔공산’이란 명칭은 1530년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와서 처음 등장한다. ●팔공산 정상 비로봉 곧 시민의 품에 팔공산은 정상인 비로봉(1192m)을 중심으로 동·서로 20㎞에 걸쳐 능선이 이어져 동봉(1155m)과 서봉(1041m)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봉인 비로봉은 금지된 땅이다. 1960년대 말 군사보안, 통신시설 보호 등의 이유로 철조망과 쇠말뚝에 몸을 내어준 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동봉을 팔공산 정상으로 여기는 시민들이 많다. 팔공산 정상을 시민들에게 돌려달라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비로봉의 문이 열리게 됐다.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 최재덕 소장은 “이르면 9월쯤 대구 방향쪽으로 쳐져 있는 철책을 걷어낼 것”이라며 “이를 위해 9000만원의 예산도 확보해 뒀다.”고 밝혔다. 아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팔공산은 ‘한국 산악운동의 메카’다. 산악인들을 대거 배출한 ‘전국 60㎞ 극복 등행대회’가 매년 열려서다. 이들은 대구·경북 산악인들이 대한산악연맹을 창립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산악운동사에 반드시 조명돼야 할 소중한 존재다. 대구시산악연맹 갈판용(64) 고문은 “1959년 팔공산에서 열린 제1회 대회가 올해로 51회를 맞는다.”며 “이 대회를 통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을 무수히 배출했으니 팔공산이 우리나라 산악운동의 요람이라고 자부할만 하다.”고 말했다. ●팔공산은 불교문화 성지 팔공산은 불교문화의 성지다. 팔공산의 대표 사찰 동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9교구 본사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중건할 당시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서 동화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 마애좌불좌상(보물 제243호)을 비롯한 7점의 보물이 있다. 부인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진 초조대장경을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제2석굴암은 경주 석굴암보다 250년 앞서 만들어졌다. 팔공산을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431호)이다. 머리에 평평한 돌 하나를 갓처럼 쓰고 있어 갓바위로 더 잘 알려진 높이 4m의 불상이다.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영험이 있어 입시철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불교신자들이 찾는다. 대구 얼찾기 모임 이정웅(64) 회장은 “팔공산은 조계종의 발상지이고 곳곳에서 불교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다. 또 동화사는 신라 불교 공인 이전에 창건됐다. 이로 미뤄 팔공산 일대에 얼마나 불교문화가 성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태골코스가 가장 인기있는 등산로 등산로는 동화사 코스, 갓바위 코스 등 수없이 많다. 정상까지 거리는 3~9㎞, 소요시간은 2~6시간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된 수태골 코스다. 수태골~암벽바위~국도림폭포~동봉(3.5㎞)까지 약 2시간 소요된다. 김현주(46·여·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수태골의 맑은 계곡물과 새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져 올 때마다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동화지구~동화사~염불암~동봉에 이르는 3.4㎞ 2시간 코스는 불교문화 탐방코스로 인기다. 동화사에서 염불암까지 확 트인 길은 등산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계곡의 수려함이 팔공산의 산세와 더불어 일품을 이룬다. 동화사 집단시설지구에서 해발 820m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 효과적인 수단이다. 약 1.2㎞ 구간을 왕복 운행하며 정상에는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휴게소도 마련돼 있다. 팔공산은 여름이면 더욱 바빠진다. 아예 팔공산으로 집을 옮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동화지구와 파계지구, 가산산성 등 3곳의 야영장에는 대구의 지독한 더위를 피해온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곳에는 500여동의 텐트촌이 형성돼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래저래 팔공산은 대구시민들을 오랜 세월 보듬어 왔고 시민들은 그 품에 기대어 살아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고려 개국 공신들 피의 함성 들리는 듯 팔공산은 고려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팔공산’이라는 시에서 ‘눈 속에 오동꽃이 피었더라기/ 팔공산 동화사에 오르는 길에/ 고려의 두 장군이 피를 흘린 곳/ 주춤서 슬픈단가 외어보았소.’라고 했다. 팔공산 일대는 통일 신라 말 왕건의 고려군과 견훤의 후백제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927년 후백제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왕건은 이곳에서 후백제군과 격전을 치른다. 후삼국 통일전쟁의 3대 전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공산전투’ 혹은 ‘동수대전’이다. 왕건은 이 전투에서 자신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쳤고 1만명에 이르는 고려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왕건이 살 수 있었던 것도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의 목숨을 빌려서였다. 신숭겸은 팔공산에서 포위당해 위기를 맞았을 때 자신이 왕인 양 꾸며 행동함으로써 변장한 왕건에게 탈출할 시간을 벌어준 후 전사했다.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전사한 자리인 팔공산 지묘동 일대에 지묘사, 미리사 등의 사찰을 세워 명복을 빌게 했다. 이들 사찰은 고려 멸망 뒤 폐사됐다가 1606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유영순이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를 세웠다. 또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왕건의 군대가 크게 패한 고개라 해 ‘파군재’라 부른다.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의 큰 바위는 왕건이 탈출해 잠시 앉았다고 해 ‘독좌암’, 표충사 뒷산은 왕건을 살렸다는 뜻에서 ‘왕산’이라고 한다. 팔공산 입구인 불로(不老)동은 왕건이 도망쳐 이곳에 이르자 어른들은 피란가고 아이들만 남아 있어 붙여졌다. 위험을 피해 한숨을 돌리고 찌푸린 얼굴을 활짝 편 곳은 해안동이다. 왕건이 도주하던 중 나무꾼을 만나 주먹밥을 얻어먹었다가 나중에 나무꾼이 다시 그 자리에 내려와 보니 왕건이 온데간데 없어졌다고 해서 ‘왕을 잃은 곳’이란 뜻의 ‘실왕리’(시랑리)로 불린다. 한밤중에 달이 중천에 떠 탈출로를 비췄다고 해서 반야월(半夜月)이고 이곳에 도착해서야 왕건이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고 해서 ‘안심’이다. 대구시는 최근 이 길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 ‘10년차’ 배수빈 “이승기는 프로페셔널한 배우” (인터뷰②)

    ‘10년차’ 배수빈 “이승기는 프로페셔널한 배우” (인터뷰②)

    (인터뷰①에 이어) 드라마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 촬영장 분위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이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됐을 때 시청률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 전국시청률 30%를 눈앞에 둔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인기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네 남녀 주인공, 이승기 한효주 배수빈 문채원 역시 찰떡궁합으로 불릴 만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고 있었다. 맏형 배수빈은 “드라마를 촬영하러 현장에 가는 자체가 즐거워요. 갈 때마다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어 행복해요.”라며 화기애애한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호흡은 어때요? “정말 좋아요. 세 명은 비슷한 또래들이고 제가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다들 정말 잘 하고 있어요. (이)승기는 나이가 어린데도 완벽을 추구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프로적인 냄새를 느낄 수 있어요. 또 (한)효주는 리액션이 강한 친구예요. 함께 연기하기가 정말 좋죠. 또(문)채원이는 지난 번 ‘바람의 화원’ 때도 그랬지만 자주 부딪히는 신이 없네요.(웃음) 채원이는 (‘바람의 화원’에서 맡았던) ‘정향’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평소에 굉장히 조용한 스타일인 것 같은데. “(재차 확인하며) 그렇게 보이세요? 전 평소에 정말 재밌게 살아요. 하는 게 되게 많거든요. 워낙에 산을 좋아해서 취미가 등산이에요. 낚시도 좋아하고 혼자 스쿠터타고 여행도 다녀요. 촬영이 없을 때는 밖으로 계속 돌아다녀요. 저를 많이들 부러워하시더라고요. 이것저것 나가서 하는 게 많다고. 제가 원래 집에 있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라 시간을 그냥 집에서 보내면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촬영 없을 때 더 바쁘죠.(웃음)” -배우의 길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독특하던데. “전 사진도 찍고 음악도 하고 싶어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물론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일단은 저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일을 하게 됐죠. 그 재능을 제일 먼저 발견하신 게 어머니고요.” “사실 전 이쪽 일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배우가 되면 어떻겠냐고 권해주셨어요. 그 말씀을 들은 후 화면에 나오는 제 자신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배우가 되고 싶었던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됐네요.” - 데뷔 후 달라진 게 있어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전과 변한 게 없어요. 먹는 거 입는 거 다 똑같잖아요.(웃음) 물론 사람들이 저를 알아본다는 게 변했지만 그 외에는 없어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궁금하고 신기한 것에서 비롯되는 거죠. TV에서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는 신기함이랄까. 모든 직업은 프로페셔널해요. 다만 배우는 얼굴이 알려졌을 뿐 특별한 건 없어요. ”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면. “언젠가 배우가 감정의 노동을 하는 거란 말씀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노동’이라고 표현하면 하고 싶지는 않고요. 배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직업이잖아요. 작가분들이 텍스트에 담아낸 이야기를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1999년에 처음 연기를 시작해서 올해로 10년 됐어요. 사실 초반에는 잘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다보니 창조적이고 재밌는 일이 됐어요. 대본에 박힌 글씨를 제가 카메라 앞에 서서 표현해낸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새벽 봉하마을을 떠나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 화장 등 서울을 다녀오는 긴 여정을 마치고 30일 새벽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긴 유해는 이날 새벽 봉하마을에 도착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올랐던 등산로가 아닌 산 뒤쪽의 자동차길을 이용해 정토원에 올랐다. ●49재후 봉하마을 사저 옆 묘소로 유족들은 정토원 앞뜰에 제단을 차려 영정과 유골을 모시고 반혼제(返魂祭)를 지낸 뒤 유골을 법당인 수광전 안 부처님 앞으로 옮겼다. 반혼제는 세상을 뜬 사람을 화장한 뒤 다시 혼을 불러 집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개문계(開門戒·불법에서 문을 여는 의식)와 삼보계(三寶戒) 독송에 이어 유족들은 부처에 예를 올리고 유골함을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혼의 위패를 두는 영단(靈檀)에 임시로 안치했다. 영단에 안치한 뒤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 등이 49재 초제를 지내는 것을 끝으로 유골 안치 의식은 마무리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이 삶을 마감한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사이 봉화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조그마한 사찰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에서 각각 250m쯤 떨어져 있다. 1920년 김해시 한림면 지역 한 지방 유지가 세운 신앙도량 ‘자암사’가 정토원의 모태다. 1968년 당시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선진규(75) 현 원장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사찰 규모를 확장하고 봉화사로 개명한 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을 해왔다. 봉화사는 이후 화재로 전소돼 선 원장이 1984년 다시 사찰을 건립해 정토원으로 개명했다. 정토원은 식당 및 방문객 숙소로 쓰는 2층 벽돌건물, 선 원장 등이 거주하는 요사채,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수광전 등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생전에 선 원장은 정신적 지주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진영 대창초등학교, 진영중학교 선배로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다. 어릴 적부터 정토원에 자주 들렀던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선 원장을 정신적 지주로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향 뒤에도 종종 정토원에 들러 선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의 모친도 생전에 정토원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자주 올렸던 곳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수광전에는 고인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국민장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자리했다. 정토원 신도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토원에서 가끔 신도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돌아올 곳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애통한 영혼을 잘 보듬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골 일반인에게 노출 안해 선 원장은 “법당에 안치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일반인에게는 노출하지 않는다.”면서 “법당 주변 경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뒤 화장해 유골을 임시 안치했던 전례가 없어 경찰은 유골 경비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로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 추모객 및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에 대비해 적절한 경비대책을 세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지가 선정돼 정식 안장될 때까지 정토원에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에 대해 엄격한 경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해 강원식 박성국기자 kws@seoul.co.kr
  • [길섶에서] 야간 산행/박정현 논설위원

    해가 많이 길어졌다. 하지가 한달 가까이 남았는데도 저녁 여덟시쯤 돼야 어두워진다. 퇴근길 동료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는데 날이 훤하다. 집에 곧바로 들어가기 아쉬워 집 부근 북한산 탕춘대에 오르기로 했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신문과 책을 들고 등산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마주친 등산객들은 수상쩍은 옷차림을 힐끗힐끗 돌아본다. 땅거미가 내친걸음을 재촉한다. 자주 오르던 곳이어서 지리를 훤히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가까웠던 것 같은 길이 멀게 느껴진다. 혹시 내려가는 길을 놓친 건 아닐까. 까딱하면 산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엉겁결에 동행한 동료는 바쁜 걸음에 숨을 헐떡인다. 거친 숨소리가 원망 소리처럼 들린다. 길을 찾아 하산길에 접어들었지만 울창한 나무에 가려 어둠이 급속히 찾아온다. 마침내 드러내는 민가의 불빛이 얼마나 반갑던지. 동료와 함께 북한산 아래 음식점에서 막걸리 잔을 부딪치면서 서로 다짐한다. 다시는 ‘야간 산행’을 하지 말자고.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5080] 평생학습 시대… 손자보다 배울게 많아요

    [5080] 평생학습 시대… 손자보다 배울게 많아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생동안 배우면서 살아간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배움에 소홀해질 수 있다. 배워서 써먹을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심하게 앉아 있다 질병과 싸우며 보내는 노년보다, 배우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노년이 훨씬 값진 인생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노후에 배워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초·중·고교에 다니며 국어·영어·수학 공부에만 전념하는 손자들보다 배울 수 있는 학문의 영역은 훨씬 더 넓다. 도전 불가능한 영역은 없다. ●노래도 배우고 건강도 다지고 노후에 집에만 갇혀 있으면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자녀들이 속까지 썩인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웃지 못하면 몸까지 경직된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면 박수를 치게 되고 저절로 춤까지 추게 된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건강해진다. 단순히 따라부르기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운동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멀티학습이 바로 ‘노래’다. 노래는 병도 예방한다.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면 뇌에서 항 스트레스 호르몬인 엔돌핀이 분비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일 때 나오는 뇌파인 알파(α)파가 생성되기 때문에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등 심각한 노인성 질환과 스트레스까지 예방할 수 있다. 특히 노래는 노인과 가족 간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 함께 웃다 보면 서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집에 와서 최신 유행가를 부르는 할머니·할아버지를 보면 자식, 며느리, 손자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노래를 따라부르게 될 것이다. ●노후웰빙은 체조로부터 노후에 무엇이든 배우라고 하는 목적은 병든 기간을 단축시키자는 데 있다. 병이 들고 난 뒤 배워서 병을 낫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병에 걸리기 전 잘 배워서 건강을 유지하자는 차원이다. 이러한 노후 건강유지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건강체조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쉬운 동작들을 매일 10분씩만 꾸준히 해도 관절염이나 척추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몸이 유연하다면 요즘 유행하는 요가를 배워도 좋다. 굳이 등산이나 조깅처럼 다소 격렬한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건강체조만으로도 건강한 인생 5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제일노인대학장 장두현 목사는 “규칙적인 건강체조를 하는 목적은 제일노인대학의 전화번호인 ‘9988-230’에 있다.”면서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영(0)면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병원에 누워 있다가 죽는 삶만큼 불쌍한 삶이 없다.”면서 “노후 웰빙과 웰다잉은 체조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종이접기의 비밀 노인성 질환 중 가장 치명적인 병이 바로 치매·뇌졸중·파킨슨병 등과 같은 뇌질환이다. 특히 한평생 살면서 함께 살아 온 사람들과 쌓아온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치매만큼 안타까운 병도 없다. 이런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특효약이 바로 종이접기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면 제일 먼저 종이접기를 배운다. 네모난 색종이를 길이에 맞게 접고, 같은 크기로 자르는 것이 유아기 아이들의 사고력·공간지각력·창의력 등을 길러주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노인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손 감각과 지각력이 떨어지므로 종이접기를 통해 두뇌회전을 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시사상식을 배워라 평생교육기관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명사초청특강’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실시되는 특강에는 국회의원, 구청장, 간부급 경찰, 의사, 대학교수 등 각계 저명 인사들이 초청돼 강의를 한다. 노인들에게 특강은 바로 사회학습의 장이다. 노인정에서 수다 떠는 차원과는 사뭇 다르다. 노인들은 ‘세상이 이렇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간다.’ 등 시사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지역소식도 접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해 왔던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예를 들어 경찰 관계자로부터 “차가 없는 건널목 빨간 신호등에 느린 걸음으로 건너가다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면 앞으로 건널목에서는 항상 조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특강을 통해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보는 것도 좋다. ●인터넷은 누구나 노인들의 인터넷 열기가 뜨겁다. 요즘 인터넷을 못하는 노인은 왕따를 당할 정도라고 한다. 노인대학에서는 컴퓨터실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다. 노인들은 컴퓨터를 통해 문서작성법과 이메일 주고받기, 인터넷 검색 등을 배워두면 좋다. 컴퓨터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남들과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쉽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일부 노인들은 컴퓨터를 통해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e쇼핑을 하기도 한다. 멀리 나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손자 장난감을 주문해주는 할머니·할아버지. 생각만 해도 멋지다. ●피해야 할 것들 간혹 건강을 위해 수지침이나 뜸을 배우는 노인들이 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이런 것들은 피하는 게 좋다. 나이가 들 수록 사소한 감염에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의료기관이 아닌 이상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또 노인들은 피부가 약하기 때문에 뜸을 뜨다가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탁구, 게이트볼, 배드민턴 등의 스포츠도 노인들이 하기에 안성맞춤인 운동들이다. 하지만 무리하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건강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과 건강 수준에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는 게 좋다. 사실 배우는 데 특정한 장소나 도구가 필요한 운동은 여건이 충족돼야 할 수 있는 번거로움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부광노인대학 가기안 사무국장은 “양로원, 경로당, 요양원 등의 복지시설에서는 노인에 대한 1차원적인 접근을 하는데, 노인들의 지적 수준, 문화적 수준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노인들이 배워야 할 것들도 수준을 높여 코드를 맞춰가야 한다.”면서 “젊은 시절 재능을 다시금 펼칠 수 있는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유골함 정토원 부모위패 곁 임시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새벽 봉하마을을 떠나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 화장 등 서울을 다녀오는 긴 여정을 마치고 30일 새벽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봉화산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긴 유해는 이날 새벽 봉하마을에 도착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올랐던 등산로가 아닌 산 뒤쪽의 자동차길을 이용해 정토원에 올랐다. ●49재후 봉하마을 사저 옆 묘소로 유족들은 정토원 앞뜰에 제단을 차려 영정과 유골을 모시고 반혼제(返魂祭)를 지낸 뒤 유골을 법당인 수광전 안 부처님 앞으로 옮겼다. 반혼제는 세상을 뜬 사람을 화장한 뒤 다시 혼을 불러 집으로 모시는 의식이다. 개문계(開門戒·불법에서 문을 여는 의식)와 삼보계(三寶戒) 독송에 이어 유족들은 부처에 예를 올리고 유골함을 수광전 오른쪽 벽에 마련된 영혼의 위패를 두는 영단(靈檀)에 임시로 안치했다. 영단에 안치한 뒤 유족과 스님, 장의위원 등이 49재 초제를 지내는 것을 끝으로 유골 안치 의식은 마무리됐다.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이 삶을 마감한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 사이 봉화산 중턱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조그마한 사찰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에서 각각 250m쯤 떨어져 있다. 1920년 김해시 한림면 지역 한 지방 유지가 세운 신앙도량 ‘자암사’가 정토원의 모태다. 1968년 당시 동국대 총학생회장이던 선진규(75) 현 원장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사찰 규모를 확장하고 봉화사로 개명한 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을 해왔다. 봉화사는 이후 화재로 전소돼 선 원장이 1984년 다시 사찰을 건립해 정토원으로 개명했다. 정토원은 식당 및 방문객 숙소로 쓰는 2층 벽돌건물, 선 원장 등이 거주하는 요사채, 일반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수광전 등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생전에 선 원장은 정신적 지주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진영 대창초등학교, 진영중학교 선배로 노 전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다. 어릴 적부터 정토원에 자주 들렀던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선 원장을 정신적 지주로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향 뒤에도 종종 정토원에 들러 선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의 모친도 생전에 정토원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자주 올렸던 곳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수광전에는 고인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국민장 기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자리했다. 정토원 신도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토원에서 가끔 신도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곤 했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돌아올 곳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애통한 영혼을 잘 보듬어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골 일반인에게 노출 안해 선 원장은 “법당에 안치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일반인에게는 노출하지 않는다.”면서 “법당 주변 경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뒤 화장해 유골을 임시 안치했던 전례가 없어 경찰은 유골 경비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로 안치된 봉화산 정토원에 추모객 및 관광객이 많이 몰릴 것에 대비해 적절한 경비대책을 세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지가 선정돼 정식 안장될 때까지 정토원에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에 대해 엄격한 경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해 강원식 박성국기자 kws@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골프장서도 막걸리 판다

    골프장서도 막걸리 판다

    ‘서민의 술’ 막걸리가 골프장에 본격 입성했다. 전통주 전문업체 국순당은 태광, 레이크사이드, 아시아나, 신원 등 수도권 일대 주요 골프장에 캔막걸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28일 밝혔다. 과거에도 더러 페트병 막걸리를 파는 골프장이 있긴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국순당 측은 “지난달 몇몇 골프장에 캔막걸리를 시범 공급한 결과 반응이 좋아 판매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골프장 그늘집이나 클럽하우스에서는 사케나 맥주, 와인 등을 주로 판매해 왔으나 최근 캔막걸리도 간편해진 용기와 막걸리 인기 부활 등에 힘입어 ‘당당하게’ 메인메뉴 항목에 이름을 올렸다. 국순당 캔막걸리는 4월 한달 동안 약 1만개 팔렸다. 박민서 국순당 과장은 “막걸리가 과거 촌스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웰빙술로 자리잡고 있다.”며 “특히 등산 후 마시는 ‘하산주’, 운동 후 마시는 ‘뒤풀이주’로 인기를 끌면서 막걸리 입점을 요청하는 골프장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묘소 → 생가 → 사저 → 정토원 → 부엉이바위 ‘2시간 코스’

    [노 前대통령 국민장] 묘소 → 생가 → 사저 → 정토원 → 부엉이바위 ‘2시간 코스’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추모객과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 등이 국민에게 ‘역사현장’으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재외동포나 외국인에게도 국내 언론을 통해 관심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봉하마을 방문 코스는 마을회관~노 전 대통령의 묘소~생가~사저~봉화산 등산로~정토원~부엉이바위~마을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코스를 한 바퀴 둘러보는 데에는 2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방문객들이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현재 고인의 빈소로 쓰이는 마을회관이 바로 나타난다. 자동차는 마을회관 주차장에 세워두면 된다. 봉화산 안쪽으로 3~5분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660㎡)에 이르면 분향 등 간단한 추모행사를 가질 수 있다. 묘소 앞에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작은 비석도 세워진다. ●복원 중 생가엔 유품 등 전시 동쪽으로 50여m쯤 이동하면 노 전 대통령의 생가와 귀향 후 1년여간 기거했던 사저가 나온다. 생가는 고인의 서거로 현재 복원공사가 중단(공정률 30%)돼 개관 시기가 당초 목표인 8월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 생가는 지상1층 2개동(몸채 37.26㎡, 아래채 14.5㎡)과 뒤편에 지상1층, 지하1층의 관광객 쉼터로 조성된다. 생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유품이 전시된다. 사저(연면적 1277㎡)는 고인이 지난해 2월 귀향 이후 권양숙 여사와 1년여 동안 생활한 곳이다. 권 여사가 사저에 계속 머물면 내부를 쉽게 볼 수 없겠지만, 권 여사가 터전을 옮기면 기념관 등으로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사저를 나와 경호초소를 지나면 해발 169m의 봉화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마늘밭을 지나 산에 오르면 곧 부엉이바위가 보이고, 그 오른쪽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노 전 대통령 자신과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이 나온다. 방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마지막 숨결이 서린 이 길을 따라 걷게 된다. ●‘용서·화해의 場’ 부엉이바위 정토원을 나와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면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부엉이바위 정상은 노 전 대통령이 ‘용서와 화해’를 기원하며 세상과 마지막 인연을 끊은 곳. 바위 정상에서 발 아래 소나무밭을 내려다 보면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끝난 이후에는 보호망이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北 “서해상 안전항해 담보못해”

    북한이 27일 남한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실제적인 행동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제2차 핵실험에 대응해 PSI에 전면 참여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이다. 북측은 서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 서해 5개섬 인근에서의 도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남한 정부의 PSI 전면 참여가 조선반도(한반도)를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남한의 PSI 전면 참여를 “우리(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며 “평화적인 우리 선박들에 대한 단속, 검색행위를 포함해 그 어떤 사소한 적대행위도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용납 못할 침해로 낙인하고 즉시 강력한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성명은 “(북)조선 서해 우리(북한)의 해상군사분계선 서북쪽 영해에 있는 남측 5개섬(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법적 지위와 그 주변수역에서 행동하는 미제 침략군과 괴뢰 해군 함선 및 일반 선박들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뒤인 그해 9월2일 인민군 총참모부 ‘특별보도’를 통해 서해 격렬비열도부터 등산곶까지의 해상 대부분을 북쪽 관할 수역으로 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2000년 3월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발표하고 남측 선박은 북측이 지정한 2개의 수로를 통해서만 운항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성명은 또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정전협정이 구속력을 잃는다면 법적 견지에서 조선반도는 곧 전쟁상태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며 우리 혁명무력은 그에 따르는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남측의 PSI 전면 참여는) 국제법은 물론 교전 상대방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 된 조선정전협정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고 명백한 부정”이라고 밝혔다. 정전협정 제15조에 ‘한국(남북한을 의미)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고 명시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전시에 상응한 실제적인 행동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jrlee@seoul.co.kr
  •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오름 탐방로 개방

    제주도는 7월18일 시작하는 2009 국제트레킹대회를 계기로 세계자연유산인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거문오름의 새로운 탐방로 8㎞를 개방한다. 이 탐방로는 말발굽 모양의 해발 456.6m 거문오름 분화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봉우리 아홉개를 순환하는 코스로 분화구의 전경은 물론 주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화산체를 조망할 수 있다. 현재 거문오름 탐방로는 정상에서 곧바로 분화구로 들어가는 5㎞ 코스만 개방돼 있다. 거문오름은 신생대 4기인 10만∼30만년 전 분출한 용암이 지표의 경사면을 따라 북동쪽 해안선까지 흘러가며 만들어졌으며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용암 동굴 20여개가 있다. 고상진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장은 “새 탐방로는 지형이 험준해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곳에는 데크(갑판)를 설치 중”이라며 “탐방객에 의한 훼손을 최소화하고자 등산용 지팡이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경호관 “보이지 않는다” 전화 뒤 30분간 봉화산 헤매

    [노 前대통령 국민장] 경호관 “보이지 않는다” 전화 뒤 30분간 봉화산 헤매

    27일 경찰은 2차 수사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오전 사저를 나서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의 행적을 전면 재발표했다. 출발시간부터 시작해 이동경로, 투신시간, 발견시간 등이 이전 발표와는 모두 달랐다. 26, 27일 이틀 동안 이병춘 경호관을 상대로 한 조사내용이 바탕이다. 23, 25일 조사를 토대로 1차 발표한 내용과 같은 대목은 ‘담배와 관련된 대화가 오고 갔다.’는 것뿐이다. 경찰의 2차 브리핑에 따르면 폐쇄회로(CC)TV 자료를 통해 밝혀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출발 시간은 5시47분이다. 1차 브리핑 때 경찰이 발표한 5시50분보다 3분 빠르다. 유서 작성시간과 이 경호관이 ‘등산을 나간다.’는 노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은 시점(5시45분) 등 출발 이전 상황은 이전 조사와 동일하다. 사저를 나선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은 등산로 입구 마늘 밭에서 일하던 박모씨를 만나서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이어 오전 6시7분쯤 정토원 입구 90m 지점까지 올라갔으나 노 전 대통령이 “힘들다. 내려가자.”고 말해 발길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시간은 6시10분쯤.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라고 말한 뒤 “담배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라고 되묻자 “그럼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말했고 이 경호관은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6시14분쯤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선(진규) 법사가 계시는지 보고 오지.”라고 지시했고, 이 경호관이 “모셔 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 봐라.”고 했다. 이 경호관이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부엉이바위에 다시 도착한 때는 6시17분쯤. 노 전 대통령은 자리에 없었다. 이 경호관은 휴대전화를 이용, 사저 경호동에 있는 신모 경호관에게 “심부름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으니 내려오시는가 나와서 확인 좀 해라.”고 지시했다. 이 경호관은 이후 마애불 등산로와 부엉이바위 등산로, 호미든관음상, 봉화산청소년수련원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이 경호관은 나물 캐는 오모(57·여)씨, 젊은 부부 한 쌍 등을 만나 노 전 대통령에 관해 탐문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어 6시30분쯤 정토원 앞에 다시 도착한 이 경호관은 선 법사가 “무슨 일이냐, VIP 오셨냐.”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답하곤 부엉이바위로 다시 출발했다. 35분쯤 부엉이바위에 간 이 경호관은 경호동의 신 경호관으로부터 “정토원에 가보라.”는 전화연락에 “아니 없더라.”라고 답하면서 순간적으로 부엉이바위 아래를 떠올렸다고 진술했다. 이 경호관이 약수터 밑에서 부엉이바위 아래 산 아래쪽을 보고 모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것은 6시45분. “사고가 났으니 차를 대라.”고 지원을 요청한 뒤, 노 전 대통령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봉화산 아래 공터로 이동해 인공호흡을 두 차례 시도했다. 이후 도착한 차량에 탑승, 52분 김해시 세영병원으로 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창원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공시족’에게 공직이란?…달라진 의식들 “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전액 지급하라” 인천 도심 난투극 조폭 108명 검거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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