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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벽안의 이방인으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언론투쟁의 선구자였던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이 선생이 묻힌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8일 열렸다.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영국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배설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생전에 ‘신문의 할 일은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워 정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소개했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가 되던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상을 보고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를 항일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근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서다 일제의 탄압으로 1909년 5월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배설 선생은 임종 순간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신중해야/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신중해야/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도덕이 개혁되고 건강은 보존되며, 산업이 살아나고 훈령이 확산되며, 대중의 부담은 줄어들고 경제가 반석에 오른다.”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는 제러미 벤담의 첫마디. 벤담은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창조품이 최고의 효율적인 통제 시스템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 이른바 일망(一望) 감시체제의 탄생! 파놉티콘의 기획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는 단 한 사람만으로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감시·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한 노출과 은폐다. 곧 중앙의 감시탑은 항상 어두워 그 안이 감춰진 반면에 주변의 감방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죄수들의 방은 햇빛을 들이는 거대한 실외창과 저녁이면 점등되는 등불로 늘 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앙의 간수는 밤낮으로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할 수 있으나 죄수들은 간수를 볼 수 있기는커녕 간수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죄수는 규율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못할뿐더러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하여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참으로 ‘완벽한 통제의 유토피아!’ 그러나 비대칭적인 시선을 통해 감시의 극대화와 영구화를 도모한 벤담의 원형감옥은 당시 영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파놉티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미셸 푸코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감금과 교정은 물론 훈련·노동·교육·치료 등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장치로 폭넓게 활용되었고, 그럼으로써 이를 본뜬 감옥·군대·공장·학교·병원 등 갖가지 전문기관들이 근대 이후 창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산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규율권력’의 야심 때문이다. 푸코에 따르면 그 성격과 목적 등에서 근대의 규율권력은 전근대적 처벌권력과는 완전히 다르다. 처벌권력은 공개교수형과 같은 구경거리로서의 처벌 행위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공공연히 과시한다. 반면에 규율권력은 감금형과 같은 지속적이고도 밀폐된 교정 행위를 통해 자신의 힘을 은밀하게 행사한다. 이는 권력 행사의 목적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처벌을 통해 복종을 강요하는 처벌권력과는 달리, 규율권력은 훈육을 통해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함은 물론 이에서 더 나아가 ‘유용한 생산적인 신체’를 산출코자 애쓰기 때문이다. 곧 ‘쓰임새가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나아가 완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순종적인 신체’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규율권력의 목표인 것이다. 이를 통해 ‘유동적이고 혼란하며 무익한 수많은 신체와 다량의 힘’을 ‘가장 사소한 움직임에서까지도 순종하는 신체’로 뒤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가 볼 때 현대 사회는 거대한 파놉티콘과 다름없다. 곧 ‘개인들을 분류하고 공간 안에 고정시키고 배분하며, 등급을 매기고, 최대한의 시간과 최대한의 신체적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인들의 육체를 훈련하고, 그들의 연속적인 행동에 규율을 부과하며, 그들을 빈틈없는 가시성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그들 주위에 온통 관찰·등록·평가의 장치를 조직’해대는 ‘감시 사회’가 오늘날의 실상인 것이다. 최근 여당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모든 전기통신사업자는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고, 검찰 등의 수사기관에 고객의 통화 내역 등을 제공하며, 1년 범위 이내에서 통신사실 확인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지능·첨단 범죄를 잡아내고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여당의 변(辨)이다. 그러하기만 바랄 뿐이다. 결코 이 법이 파놉티콘으로의 길이 아니길 정말로 소망할 따름이다.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딴 산 등불 하나/손택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외딴 산 등불 하나/손택수

    외딴 산 등불 하나/손택수 저 깊은 산속에 누가 혼자 들었나 밤이면 어김없이 불이 커진다 불을 켜고 잠들지 못하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누군가의 불빛때문에 눈을 뜨고 누군가의 불빛때문에 외눈으로 하염없이 글썽이는 산 그 옆에 가만히 등불 하나를 내걸고 감고 있는 산의 한쪽 눈을 마저 떠주고 싶다
  •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빈자일등 빈자일적/김성호 논설위원

    불교경전 현우경에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애틋한 사연이 전한다. 난타라는, 먹을 것도 없을 만큼 가난한 여인에 얽힌 이야기이다. 부처님께 바칠 등(燈)을 위해 잠도 안 자고 가가호호 정성스레 구걸 끝에 결국 등을 마련, 부처님 앞에 올릴 수 있었다. 밤이 되어 모든 이들이 바친 등이 꺼졌지만 난타의 등만이 남아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꿋꿋한 정성과 올곧은 뜻이 세상의 으뜸 빛이 된다는 교훈으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회자된다. ‘빈자일등’의 교훈에 얹어 지금 세상의 도마에 오른 두 전·현직 대통령을 떠올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험한 시절 인권변호사로 학생, 노동자 등 가난한 약자의 편에 섰다가 독재정권의 핵심에 정면칼날을 들이대 청문회 스타로 부각, 낡은 부패정치 청산을 외치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천주교 사제로 가난한 빈민들과 부대끼며 헌신적인 사목활동을 펴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다가 지난해 “갱과 나치 전범의 천국을 민주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 대통령이 된 파라과이의 루고이다. 양심과 인권의 대변자로 우뚝 섰다가 ‘몹쓸 인간’으로 급전직하한 두 대통령을 보면 정말 세상사는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은 측근·친인척과 연결된 뇌물수수며 공금 횡령 혐의를 받고 있고 한 사람은 주교시절과 대통령 취임 후의 여성 편력으로 낳은 ‘대통령의 아들’이 뒤늦게 줄줄이 나서는 바람에 현대판 ‘주홍글씨’로 입방아에 올랐으니. ‘빈자의 등’에서 가난한 이들의 적, ‘빈자일적(貧者一敵)’으로의 추락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사람 중 노 전 대통령의 몰락이 우리에게 더 큰 아픔이다. 청렴과 도덕성의 상징으로까지 통하며 ‘빈자일등’의 우상이었다가 쓰나미 같은 실망과 충격을 휘몰아다 준 옛 영웅. 드라마에서도 드물 만큼의 급반전 결말을 본 관객, 국민은 충격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 퇴임 후에도 옛 영웅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아든 100만명의 인총이 위안을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낸 전도자에 앞서, 가난하고 아픈 자들의 편에 섰던 실천적 혁명가로서의 예수는 더 빛이 난다.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메고 따르라.’며 제자들에게 호통쳤던 예수의 가르침은 다름아닌 자기희생과 모범의 다짐이다. “노무현 한 개인의 몰락이 노무현 가치와 이상 전부의 몰락이 아니길 바란다.”는, 그냥 평범한 이들의 마지막 애정은 그래서 당당함의 요구로 향한다. 세상의 눈총을 받는 비리와 잘못에 대한 모면식 뻣대기가 아닌 진실에의 솔직하고 당당한 처신을 바라는 것이다. 30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은 지금과는 훨씬 다른 길 위에 놓이게 된다. ‘불구속 기소’와 ‘구속’을 저울질하는 세간의 앞선 설왕설래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법의 칼날은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평생 낮은 데로 임해 살면서 가난한 자의 어머니로 통했던 성녀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촌음을 헛되이할 수 있느냐.”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쉼 없는 배려와 희생을 요구한 마지막 유언이다. 헌신적 사랑과 배려의 미담이 공허할 뿐인 지금 꺼져 가는 마지막 등불의 실낱같은 희망은 진실앞의 당당함, 그것뿐일 것이다. ‘貧者一燈 貧者一敵’. 통재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드러난 거짓말…‘權 방패’ 뚫리기 시작했나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드러난 거짓말…‘權 방패’ 뚫리기 시작했나

    ‘권양숙 방패’가 뚫렸다. 권 여사가 청와대 관저에서 받아 빚 갚는 데 썼다고 해명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3억원(2006년 8월)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차명계좌에서 고스란히 발견됐기 때문이다. 권 여사의 3억원 해명이 거짓말로 들통남에 따라 똑같은 방식, 똑같은 이유로 받았다고 진술한 100만달러(2007년 6월)도 허위일 가능성이 커졌다.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돈을 빌렸고, 자신은 최근에야 알았다.”는 노 무현 전 대통령의 프레임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권 여사가 왜 본인과 관련 없는 돈을 본인이 받았다고 했을까, 그게 수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처음 체포됐을 때 그는 박 회장한테서 현금 3억원을 받아 개인적으로 썼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사람사는 세상’에 사과문을 올려 “저의 집(부인)이 부탁해 빌린 돈”이라고 밝히자, 정 전 비서관은 3억원과 100만달러 모두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말을 바꿨다. 영장실질심사 때도 정 전 비서관은 중간 전달자라는 사실확인 진술서를 권 여사가 법원에 제출했고, 그 덕분인지 영장이 기각됐다. 지난 11일 검찰 조사에서도 권 여사는 같은 진술을 반복했다. 그러나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통해 검찰은 숨겨진 3억원을 발견하는 동시에 권 여사의 거짓말까지 밝혀냈다. 권 여사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검찰은 공무원인 정 전 비서관과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죄’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려고 자연인인 권 여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른바 ‘사법처리 피하기 작전’이다.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자연인간 거래는 특별한 청탁이 없고, 빌린 것이라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지난해 3월 차용증을 써주고 박 회장한테 빌린 15억원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작전의 총지휘자를 검찰은 법률가인 노 전 대통령이라고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통해 ‘전략적 메시지’를 던졌고, 측근들이 조직적으로 말 맞추기를 했다는 시각이다. 19일 정 전 비서관을 긴급체포해 대검찰청에 붙잡아 둔 것도, 그를 고립시켜 노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소통할 수 없었던 정 전 비서관은 결국 이날 계좌의 3억원이 박 회장한테서 받은 것이라고 시인했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항복하면서 “증거를 대라.”며 검찰을 공격하던 노 전 대통령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했다. 100만달러는 물론 500만달러(지난해 2월)의 전말까지 알고 있는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협조하면, 노 전 대통령의 치부는 낱낱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정 전 비서관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주목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웃과 고통 나누면 모두가 부처”

    “이웃과 고통 나누면 모두가 부처”

    새달 2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16일 봉축사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세간에 출생했다.”면서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우리 이웃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가 부처”라고 밝혔다. 지관 스님은 “번뇌의 중생계가 다하는 날은 기약할 수 없으며, 고통의 바다 아닌 곳 또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혜로운 마음과 자비로운 행동으로 고통받는 중생과 동행하는 일”이라고 고통 분담을 강조했다. 천태종 총무원장 정산 스님은 “부처님은 일체중생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일체중생을 행복하게 하고자,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고 평등함을 알리고자 오셨다.”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와 네가, 이 세상 모든 일체가 부처임을 알고, 모든 이를 차별과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살펴볼 때 내가 부처가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은 “불자들은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켜서 어둠을 깨치고 세상을 밝게 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고통받는 사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진흙 속에서 청결함을 잃지 않는 연꽃 같은 삶을 살고 항상 연등을 밝히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혹독한 일제의 탄압 아래에서 자주독립을 향한 희망의 등불을 높이 든 3·1운동의 가장 커다란 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항일투쟁의 통일적인 구심점을 갖기 위해 국내외에서 여러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중 가장 뚜렷한 것이 4월13일과 23일에 각각 수립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성정부’이다. 한달 전 3월17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 의회정부’가 수립됐다. 같은 해 9월11일 이 세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통합임시정부로 정비돼 광복에 이르기까지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총본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호와 정치체계에서 광복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주춧돌이 됐다.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한 선열들은 다시 찾을 조국은 물러난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복벽(?)’이 아닌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현 헌법의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바탕으로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우리 국민은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라사랑 정신으로 굳게 뭉쳐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지금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렵다. 90년 전 선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조국 광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임시정부를 세워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있도록 했다. 선열들이 보여준 겨레사랑 정신과 이론과 실천을 함께 아울렀던 용기와 지혜를 되새기고,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의지와 힘을 모아야겠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 [영화리뷰] ‘노잉’

    [영화리뷰] ‘노잉’

    알렉스 프로야스가 2004년 ‘아이, 로봇’의 성공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노잉(Knowing)’은 재난 또는 재앙을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분명하지만 이전까지와는 다른, 기존 공식을 깨는 전복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주인공인 존 코스틀러(니컬러스 케이지)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 것을 알고 막아 보려 한다. 하지만 부질 없는 일이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초개 같이 목숨을 버리는 영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완벽한 영웅주의에서 살짝 비껴갔다. 보통 인류는 간발의 차이로 멸망의 위기를 피한 뒤 가슴을 쓸어내리며 교훈을 되새기지만 ‘노잉’은 이러한 공식에서도 벗어난다. 왜 인류가 위기에 몰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딱히 설명도 없다. 지난 50년 동안 대형 참사들로 징조(sign)는 계속됐고,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을 뿐이다. 종말을 3~4일 앞뒀을 때까지 정작 인류만 그 사실을 몰랐다. 인류의 명맥을 잇게 하는 것도 인류가 아닌 다른 존재의 임무다. 1998년 미미 레더가 연출한 ‘딥 임팩트’처럼 불화가 있던 가족 구성원들이 자연스레 화해하고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는 장면을 곁들이는 등 가족애에 무게를 둔 것은 비슷한 점이다. 기존 공식을 비트는 것은 일단 신선함을 준다. 영화는 대형 항공기가 추락하고, 선로를 이탈한 지하철이 참사를 불러오는 장면을 ‘블록버스터답게’ 그려내며 이야기를 바느질하지만 스크래치가 난 레코드 판에서 바늘이 연속적으로 튀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언뜻 보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련의 숫자가 담긴 예언서를 얻게 되며 이어지는 초반부는 영화 ‘식스 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냄새가 나는 미스터리물로 간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는 ‘데스티네이션’(2000) 느낌으로 징검다리를 삼은 뒤 막바지로 치달으며 휴거, 천사, 아담과 이브, 에덴의 동산, 생명의 나무 등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미지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나 호주에서 자란 프로야스는 CF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경력을 쌓다가 ‘크로우’(1994)로 할리우드 데뷔를 했던 연출자다. 이소룡의 아들인 브랜든 리가 촬영 중 숨지며 더 유명세를 탔던 ‘크로우’에서 그는 디스토피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비주얼로 주목받았다. 이후 영화 관객들에게 ‘다크시티’(1998)라는 또 하나의 SF 컬트를 선사하며 아우라를 뿜어 냈다. 첫 번째 블록버스터였던 ‘아이, 로봇’까지도 독특한 색깔을 유지했으나 이번 ‘노잉’에서는 그 색깔이 상당히 바랬다. 16일 개봉.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조인성, 日서 입대 전 마지막 팬미팅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

    조인성, 日서 입대 전 마지막 팬미팅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

    배우 조인성이 군 입대 전 마지막 일본 팬미팅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조인성은 지난 3일과 5일 일본 오사카, 도쿄에서 이틀에 걸쳐 일본 팬들과 팬미팅 ‘Thanks a Million’을 가졌다. 소속사 관계자는 “군 입대전 일본 팬들과 가지는 마지막 자리인만큼 조인성이 팬미팅 기획단계부터 팬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팬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조인성은 기타를 메고 뜨거운 감자의 ‘생각’을 부르며 팬미팅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조인성은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배우가 된 지금까지의 모습 등 자신의 29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을 보며 당시의 일화들을 들려준 그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또 조인성은 성시경의 ‘두 사람’을 감미롭게 열창한 후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아니어서 연습을 많이 했는데 어땠는지 모르겠다. ’캄캄한 밤 길을 잃고 헤매도 우리 두 사람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리’라는 노래 가사처럼 여러분도 나와 같은 기분이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인성은 직접 객석을 돌며 팬들과 가까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는 카메라로 직접 팬들의 모습을 찍는가 하면 일일이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등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메시지 카드를 타임캡슐에 넣은 그는 “이 타임캡슐에 넣은 여러분의 모습과 메시지는 잠시 헤어질 2년 동안 내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이 메시지는 제대해서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조인성은 말을 하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는 등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일본팬들은 일본 유명 가수 KAN의 노래 ‘사랑은 이긴다’를 합창해 조인성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팬들의 깜짝 노래 선물에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조인성의 모습에 감동한 팬들은 행사장을 눈물 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5시간 동안의 팬미팅을 성황리에 마친 후 조인성은 “항상 팬미팅을 마무리 할 시간이 오면 마음이 아프고 아쉬웠는데, 이번 만큼은 나를 기다려주고 항상 응원해 줄 여러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헤어짐이 슬프지만은 않다.”며 “더욱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도록 2년 이라는 시간, 헛되지 않게 보내겠다.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한편 조인성은 오는 4월 6일 공군 진주 교육사령부에 입소,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 현역으로 군복무에 임하게 된다. 3월 말에는 국내 팬미팅을 통해 군입대전 팬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사진제공=sidusHQ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90돌 3·1절에 나라의 장래 다시 생각한다

    해마다 3월이 오면 일제의 총칼에 맞서 자주독립을 외친 3·1운동을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3·1절 90돌이어서 감회가 한결 새롭다. 하지만 뜻깊은 경축일을 앞두고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장래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 등 세계 만방 피압박민족에게 등불이 됐던 것처럼 우리가 수십년 동안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제3세계 국가의 모범이 돼 왔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투자위축, 환율 폭등, 취업난, 실질 소득 감소 등으로 인한 고통은 국민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 주고 있고 양극화로 인한 고통이 중·하 계층에 집중되면서 지역간, 세대간, 노사간, 계층간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태다. 사회발전의 비전과 방법론은 제시되지 않은 채 보혁갈등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갈등을 수습하기보다는 갈등에 안주하고, 갈등으로 먹고살면서 실망과 분노를 자아 내고 있다. 새로운 편가르기와 편중인사로 국민 통합의 기회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남북한이 힘을 모아 분단을 극복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남북은 오히려 대결과 긴장의 길로 치닫고 있다. 북은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으며 매일 같이 남측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남에서도 북에 대해 따뜻한 손길을 더 뻗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거니와 종교적, 이념적 차이를 넘어 독립선언을 외쳤던 90년 전의 그날처럼 다시 한번 남북이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9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과 새 출발의 힘찬 나팔을 불었다. 우리도 바로 지금 절망과 비탄의 사슬을 끊고 단결과 위기극복의 북소리를 힘차게 울릴 때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층이 도덕과 법을 지키는 데 솔선수범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도 집단의 논리만 되풀이하지 말고 국민 단합의 자세로 갈등과 위기의 골을 넘어서야 한다. 90돌 3·1절-나라의 장래를 깊이 성찰하면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기원정사 등 초라해도 “스스로를 등불로 하라” 부처 가르침은 오롯이

    네팔의 룸비니와 인도의 슈라바스티, 쿠시나가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부터 깨달음을 얻은 정각(正覺), 그리고 전법(轉法)후 열반까지의 궤적이 담긴 불교 성지들이다. 비록 옛 모습을 잃거나 많은 부분 훼손됐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신과 철학, 흔적을 더듬어 전세계에서 찾아드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조계종 총무원이 이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 본지 김성호 선임기자가 동행했다. 지난 14일,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의 슈라바스티. 전날 델리발 새벽기차에 몸을 실어 8시간만에 발을 디딘 럭나우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6시간을 더 달려 밤늦게 슈라바스티에 도착한 순례 일행은 잠을 설친 채 첫 순례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어둠 속 ‘갈 길이 머니 서둘러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자의 성화에 일행들이 눈을 비비며 오른 버스. 비포장도로나 다름없는 거친 길을 막춤 추듯 덜컹거리며 질주하기 시작하자 스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부처님 재세 당시의 16개 나라 중 가장 강력했다는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사위성)는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의 기원이 된 도시”라는 설명에 귀를 세우다보니 어느새 기원정사 입구. 80년을 살았던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경을 비롯, 현재 전하는 경전의 3분의2 정도를 설한 곳이자 24회의 안거를 날 만큼 생전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기원정사가 아닌가.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혀 입구를 들어서자니 한국말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손을 벌려 한푼 적선을 애타게 청해오는 어린 걸인들이 빙 둘러 막아선다. 첫 순례지에 가졌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조금 ‘헐렁하다’ 싶은, 일말의 허탈감을 안고 들어서니 붉은 벽돌 더미와 오랜 수령의 나무들이 갇힌 듯 큰 정원에 듬성듬성 서있다. 부처님 아들인 라훌라와 제자 사리불존자의 이름을 딴 스투파(탑)들. 이름만 스투파일 뿐, 붉은 벽돌로 나지막이 쌓아놓은 벽돌더미가 초라하다. 2500년 전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던 집이며 대중 설법이 줄곧 이어지는 큼직큼직한 승원들이 줄지어 섰을 터이지만 대부분 파괴·훼손된 채 지금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조촐한 스투파며 승원터가 순례객들을 무심하게 맞을 뿐. 처음 시작된 그 나라에서 이젠 명맥조차 잇기 힘든 작은 종교로 쇠퇴한 불교의 위상이 그대로 읽힌다. 사위국의 큰 부자인 급고독(수닷타 장자)이 성도(成道)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사위국 기타 태자의 땅을 어렵게 사들여 지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기수급고독원’, 즉 기원정사.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기원정사에선 1년 중 안거철 3개월 동안만 주석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개인 거처이던 향실과 강의가 열리던 거대한 승원 터를 지나 걷다보니 이윽고 금강경을 설한 그 유명한 자리 간다 쿠티. 미얀마를 비롯한 각지에서 찾아온 스님과 신도들이 제각각 터를 잡고 앉아 불교 경전들을 독송하는가 싶더니 한국 순례단의 즉석 법회가 시작된다. 조계종이 가장 중요시하는 소의경전인 금강경 표준본을 최근 완성한 사실을 부처님께 알리는 법회. 금강경을 처음 설한 곳에서 여는 금강경 봉정 법회여서일까.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성지를 찾은 한국 스님, 신도들의 낭랑한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기원정사를 나와 1.5㎞쯤 차로 달리다보니 그 옛날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는 사위국의 너른 영토가 펼쳐진다. 옛 사위국 영토에서 맞닥뜨리는 불교 경전 속 흔적들. 스승 부부의 꼬임에 빠져 99명을 죽여 살인마로 전락한 앙굴리마라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감화되어 개종한 뒤 살았던 굴속 생활, 멸종된 망고 나무를 순식간에 키워내 이교도들을 굴종시킨 기적,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기원정사를 지어준 수닷타 장자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간다.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갖고 국경을 넘어 도착한 네팔 땅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 서둘러 찾은 탄생지 룸비니 동산. 이른 시각인데도 순례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느 나라인지 모를 옷차림의 순례객 틈에 끼어 걷다 보니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은 곳에 세웠다는 마야데비 사원이 눈에 든다. 탄생지의 발굴 현장 자체를 사원으로 만든 독특한 기념공간. 신발을 벗고 안에 드니 탄생 직후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발걸음을 떼었다는 아기부처의 족적을 보려는 순례객들로 북적인다. 사방에 회랑처럼 두른 관람로를 떼밀리듯 순례객들에 밀려 돌아나오니 마야 부인이 몸을 씻었다는 너른 사각 연못 언저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본 사람들이 복원을 맡아 엉뚱하게도 이렇게 큰 목욕지를 만들어놓았다.”는 어느 스님의 볼멘 소리. 열반지 쿠시나가르행 버스에 몸을 실어 룸비니 동산을 떠난 지 한참 됐는데도 스님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시 국경을 넘어 전날 왔던 길을 거슬러 7시간만에 만난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 먼저 다비장을 들르자는 일행의 의견을 모아 찾은 붉은 벽돌 스투파가 황혼의 햇살을 받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장례를 치렀던 역사적 현장. 순례객들의 탑돌이 행렬을 따르다보니 탑 뒤쪽에 8개의 작은 스투파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 사후 이곳에서 다비해 수습한 사리를 차지하려 전쟁까지 벌이려 했던 당시 여덟 나라가 사리를 가져가 각각 세웠다는 사리탑의 모형들. “먼 훗날 내 몸이 한 군데로 모일 것”이라 예언했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하나된 몸, 즉 평화로운 정토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몸을 뉘어 열반에 들었다는 부처님의 열반상을 모신 열반당은 다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주말과 공휴일이면 주민들의 가족공원으로 변하는 이곳이 과연 불교 4대 성지인지 의심스럽다.”는 안내자의 귀띔. 열반당까지 이어진 잔디밭 위의 쓰레기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 아래 마지막으로 몸을 뉘었다는 사라쌍수에서 위안을 찾는다. 오른 팔로 머리를 괴고 오른쪽 옆구리를 침상에 붙인 채 두 발을 포개어 고요히 누운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당 뒤편엔 열반 길까지 스승을 끝까지 모셨던 제자 아난다 스투파가 서 있다. 결국 열반지가 된 쿠시나가르로 향하기 전 마지막 안거에 든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자신을 집으로 삼아라. 그리고 법으로써 등불을 삼고, 법으로써 집을 삼아 이에 귀의하여야 한다.” 부처님 생전의 모든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해 나중에 불경 편찬의 결정적 역할을 한 아난다 존자. 그는 이렇게 지금도 부처님 뒤에 앉아 묵묵히 스승의 말을 전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사랑, 용서… 그 분이 남긴 귀한 유산”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인 소탈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가 타종교인들의 머리도 숙이게 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다”는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삶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메시지이자 물질만 추구하는 시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뒀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그의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덕(성균관장·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간의 벽을 허물었던 분이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이 별다른 종교분쟁 없이 지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분의 덕이 크다.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창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종교를 더 배려한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김남조(시인)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갔다 왔는데 추위에 몇시간씩 떨면서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의 아름다움을 봤다. 사람들 마음 속에 더 많은 공감과 더 좋은 유대가 이뤄지게 한 것도 그 분의 유산이다. 고인의 큰 뜻이 후세까지 전달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에 언제나 조언을 제시하는 귀한 유덕(遺德)이 됐으면 한다. ●정호승(시인) 결국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온몸으로 남겼다.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추모열기를 보면서 추기경이 종교인 차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 온 하나의 구심점 또는 우리 삶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리가 그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깨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안진(시인) 내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정도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추구한 그의 모습이나 “고맙다.”나 “사랑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물질이나 명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종교인의 삶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장무(서울대 총장) 그의 선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생과 사랑을 몸소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실천한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석연(법제처장)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에 진실과 관용에 기초한 공동체적 유대가 필요하다. 추기경은 하느님의 나라로 떠나면서도 그 유대를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고 정부나 국회는 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국민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떠난 그의 정신을 생각해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강지원(전 청소년보호위원장)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희망의 등불이 돼 줬고 불의에 대해 가차없이 질책했던 분이다. 그러면서 약자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데 대해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들 마음의 등불이 돼 주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그의 정신을 깊이 새겨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외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신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김 추기경께서 직접 대중가요 ‘애모’를 부르는 것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사회를 위해 애써 오신 그의 선종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커다란 손실이며,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정치권 “큰 별이 졌다”

    정치권은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한결같이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모든 신앙인의 표상이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족적을 남긴 김 추기경의 영전에 온 국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민족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의 등불을 밝힌 고인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김 추기경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때 국민과 동행한 정신적 지도자였고, 이념적 중간이 아닌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하신 분”이라면서 “김 추기경의 마음을 이어받아 따뜻한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김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었고, 어두웠던 시절에는 빛이었고, 그분의 삶은 사랑이었다.”면서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가톨릭 신자로서 만났지만 40년 이상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고 인연을 소개한 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도자가 남긴 말씀이 우리 사회가 바르게 가는 지침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1만(萬)원권(券) 미리 좀 구경합시다

    1만(萬)원권(券) 미리 좀 구경합시다

    오는 6월1일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 1가마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된다. 2천9백년전 기자조선때 자모전(子母錢)이 생겨난 이래 가장 고액권인 1만원짜리 화폐가 생겨나기 때문. 석굴암 부처님의 인자스러운 모습이 담긴 새 1만원권은 전등불에 비추어 보거나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색깔들이 들어 있어 위조는 1백% 불가능. 가로 17.1cm,세로 8.1cm인 1만원권은 지금의 5백원짜리 보다 조금 큰편. 흑갈색을 주색(主色)으로 하고 앞면에 10가지 색깔, 뒷면에 4가지 색깔이 들어 있으며 앞면엔 무궁화꽃과 석굴암 부처님 그림이, 뒷면엔 불국사 전경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1만원권 종이의 질. 영국에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온 용지는 면 80%, 아마 20%를 섞은 최고급지로 위조화폐를 막기 위해 오른쪽 중앙부에는 세로로 은선(가능 쇠줄로 종이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음)이 들어있고 왼쪽 중앙에는 희게 비어 있는 자리가 있는데 이곳을 전등불이나 햇볕에 비추어 보거나 물속에 넣어보면 또 다른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석굴암 12여래상중 오른쪽 2번째 불상). 게다가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가는 색실이 종이 속에 들어있어 가짜 1만원권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김성환(金聖煥) 한국은행 총재는 『우선 올해안에 연말 회폐 발행고 1천억원(추산)의 15%에 해당하는 3백억원 어치의 1만원권을 찍어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1만원권이 생겨나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나 걱정하고 있으나 한국은행측은 1천원이나 5천원권이면 몰라도 1만원권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가 처음 생겨난 것은 기자조선 흥평왕 9년(서기전957년)으로 되어있다. 기록상엔 자모전(子母錢)을 만들어냈다고 되어 있으나 이 자체가 돈 이름이 아니고 큰돈(母錢) 작은돈(子錢)의 두 종류가 있었던 듯. 이보다 앞서 삼한시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했다. 기자조선때 첫화폐 등장…지폐 나온건 불과 80년전 이후 철, 구리, 은, 금등으로 동전이 계속 통용되어 오다가 종이로 된 돈이 처음 생겨난 것은 이조 고종3년인 1893년 이니까 고작 80년전. 태환서(兌換署)에서 만들어낸 우리나라 첫 지폐는 호조태환권으로 지폐 한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들어있고 두 용이 끌어안은 여의주속에 『이 환표는 통용하는 돈으로 교환할 것이라』(此券以通用正貨交換也)고 쓰여있다. 엄격히 말하면 화폐라기보다는 정부발행의 보증수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조 광무6년(1902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이 남의 나라에서 「부기명식 일람출급 어음」즉, 화폐를 만들어냈다. 이 돈은 우리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돈을 받지 않았다. 이러자 일본측은 군함을 인천항에 몰고 와 이의 통용을 우리나라 정부에 강요, 결국 공식허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은행권의 시조. 우리나라의 1만원은 미화로 28$에 해당한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최고액의 지폐는 얼마짜리일까? 현재까지로는 미국에서 발행된 10만$짜리가 최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천9백만원이나 된다.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나 현재 통용되지는 않고 일부 애호가들의 「컬렉션」용으로만 쓰이고 있을 뿐. 미국에서도 1만$ 짜리가 통용되고 있는데 1944년부터 찍어냈으나 해마다 사용량은 줄어들어 65년까지 3백76장이 시중에 나돌았을 뿐.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 『이 행운을 찾아가십시오』란 팻말과 함께 장식용으로 걸려 있기도 하다. 액면가치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서기 303년에 만들어진 10「아우레이」금화. 단 1개밖에 없는 이 금화는 경매에서 7만5천$에 팔렸다. 지폐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중국 사람들로 기원전 119년에 만들어냈다고. 그러나 지폐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7세기 당(唐)나라 시대 때부터 라고. 그러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은행권이 발행된 것은「스톡홀름」은행권. 지금까지 1662년 12월에 찍어낸 5「다렐」짜리 지폐가 남아있는데 이 지폐는 3백여년을 전해와 지폐로선 최고령자. 가장 큰 지폐는 중국 명(明)나라 때의 1관(貫)짜리로 가로33cm, 세로 23cm로 어린이들 책가방만한 크기. 가장 크기가 작은 지폐 역시 중국 것으로「저장」지방 은행이 1908년에 만들어낸 5푼(分) 짜리로 세로 3cm, 가로5.5cm로 성냥갑보다도 작다. 화폐는 아니지만 1961년 1월 24일 1억1천9백59만5천6백46「파운드」의 액면 값이 적힌 수표가 「라자드·브러더스」회사에서 발행되었다. 이 수표는 영국「포드」자동차판매에 관계된 거래에서 쓰인 것으로 종이에 적힌 가치로는 지금까지 사상 최고. 사람들이 지페를 널리 쓰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경화(硬貨)의 역사는 꽤 오래다. 기원전 700년께 옛 「터키」에서 금과 은을 섞어 경화를 만들어낸 게 동전의 할아버지. 1659년「스웨덴」에서 만들어진 10「다렐」짜리 동전은 무게가 17.5kg이나 되었다니 많은 돈을 갖고 다니려면 꽤나 무거웠을 듯. 또 「야포」섬의 토인이 쓰던 「후에」라는 석화(石貨)도 꽤 커서 직경이 3.7m나 되었다고. 이쯤 되면 돈이 아니라 바위를 굴리고 다니는 기분이었을 듯. 이 돌돈 1개로 아내 2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800년께 인도의 남부「콜파타」지방에는「바늘머리」라고 불리던 동전이 이었는데 1개의 무게가 불과 6.5g.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1654년에 만들어진 인도「무갈」제국의 2백「물」금화는 명목가치로나 실질가치로나 금화로선 세계 최고. 금2.2kg이 들어 있었다니 돈으로 쓰지 않고 금으로 쪼개 팔아도 본전을 뽑았다고. 가장 가치가 없던 금화는 남「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쿠루가」금화. 값은 3「펜스」. 인류의 역사만큼 돈의 역사도 오래여서 세계에서 단 1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동전도 모두 1백여종이나 있다고. <창(昌)> [선데이서울 72년 4월 23일호 제5권 17호 통권 제 185호]
  • [정종욱 월드포커스] 오바마 정부의 출범과 한·미관계

    [정종욱 월드포커스] 오바마 정부의 출범과 한·미관계

    버락 오바마가 희망과 통합의 새 시대를 약속하면서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많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약속했지만 오바마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의 취임은 특별한 역사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취임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흑인 대통령일 뿐 아니라 통합의 대통령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통합의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그는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을 뿐이다. 흑백 인종 통합에 본격적 시동을 건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링컨 전 대통령과 킹 목사가 모두 괴한의 흉탄에 목숨을 잃은 것도 역사의 무게 때문이었다. 통합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제 오바마가 새로운 흑백 통합의 시대를 열었다. 오바마는 단순한 흑인이 아니다. 그는 케냐와 인도네시아인을 아버지로 가진 다인종이다. 단순한 흑백의 어느 한 쪽이 아니라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인종의 핸디캡을 딛고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성공함으로써 미국에서는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그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시대는 이제 막을 올렸을 뿐이다. 그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2년 전 그가 변화를 약속하면서 백악관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대통령 출마를 불가능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오바마 자신도 그저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백악관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돌발적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역사상 유례없는 월가의 금융위기가 그가 내세운 변화라는 호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당선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대통령 오바마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경제위기이다. 그는 당선된 직후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 최고의 통합경제팀을 구성하고 의회를 설득해서 8000억달러의 긴급 예산을 확보했다. 그래도 전망은 밝지 않다. 제일 큰 문제가 실업이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50만명 이상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현재 실업률은 7.2%로 16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흑인들은 12%가 실업자이다. 실업뿐만이 아니다. 미국인 100명 중에 1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흑인은 15명 가운데 1명꼴이다. 아직도 통합의 꿈은 멀기만 하다. 외교 역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2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가 약속한 대로 이라크에서 철군을 강행하면 이기는 전쟁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공약을 외면할 수도 없다. 아프간 전쟁도 이라크보다 더 험한 싸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란이 핵 개발을 계속하고 있고 북한 역시 오바마의 직접 강경 외교(dir ect and tough diplomacy)를 놓고 벼랑 끝에서 줄타기를 계속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아시아의 새로운 다자주의 틀 속에서 어떻게 엮어낼지도 오바마의 아시아 외교팀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후 한·미 관계의 우선 과제는 새로운 지역 및 세계 질서의 창출에서 양국의 협력 방안과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나 아프간 파병과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현안도 이 속에서 풀어가야 한다. 오바마가 제시한 꿈은 미국만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자 인류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가 제시한 변화와 희망이 우리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이제부터 양국 정부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방과후 공부방 성적향상 큰 도움”

    ‘방과후 공부방을 통해 우리 학생들의 마음과 성적이 변하고 있습니다.’성동구는 최근 왕십리2동 주민센터 2층 다목적방에서 ‘2008 방과후 공부방 평가보고회’를 열고 올해 성과를 분석하며 내년 운영방향을 논의했다고 30일 밝혔다.보고회는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한 방과후 공부방 학생들을 칭찬하고 학용품,간식 등을 지원해준 단체장,주민들에게 1년 동안의 성과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다.주민자치위원과 직능단체장,방과후 공부방 학생들의 학부모 및 자원봉사자 등 60여명이 참석한 보고회에는 차영집 왕십리2동장의 경과보고와 학생들의 소감발표,다과회의 순서로 진행됐다.특히 방과후 공부방 학생들이 공부방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토대로 장래희망을 발표한 ‘나의 꿈,나의 미래’에서 임경선(11·무학초 4)양은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면서 “어렵게 살고 계시는 부모님에게 집도 사드리고 공부방 학생들에게 맛있는 간식도 많이 사주고 싶다.”고 말해 주위를 흐믓하게 했다.구는 내년에도 마술교실,에어로빅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눈썰매 교실 등의 체험교실 을 통해 학생들의 소질을 개발하고 학습능력 향상에 힘쓰기로 했다.또 각 직능단체로 구성된 후원회에서도 방과후 공부방에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차 동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를 위한 방과후 공부방은 우리 미래의 등불이 될 것”이라면서 “공부뿐 아니라 학생들이 바르고 옳게 커나갈 수 있도록 각종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어려울수록 나눔과 배려 잊지 말자”

    “어려울수록 나눔과 배려 잊지 말자”

    기축년 새해를 1주일 앞둔 종교계가 일제히 각 종단 신자와 국민을 향한 새해 인사를 내놓았다.불교,천주교,개신교,민족종교 대표들이 24일 나란히 세상에 발표한 신년법어와 신년사는 한결같이 어려운 경제상황속 나눔과 배려를 당부하고 있다.그러면서 각 종교의 특성을 살린 다짐과 약속들이 담겨 눈에 띈다.각 종교 수장들의 신년법어와 신년사를 요약 소개한다. ■불교계 ●법전 조계종 종정 세계(世界)는 보리(菩提)가 널리 퍼져 군생(群生)이 도업(道業)을 이루니/눈앞에 다가서는 모든 장악(障嶽)은 무너지고/대지(大地) 위에 되풀이되는 전도(顚倒)의 고통이 그칩니다./만물(萬物)은 이택(利澤)을 베푸는 대시문(大施門)을 열고/사람들은 근기에 따라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기틀을 얻으니/목인(木人)은 봉황(鳳凰)을 타고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철우(鐵牛)는 걸림 없는 법륜(法輪)을 굴려 모든 중생(衆生)을 평등케 합니다./탐(貪)하는 이는 장애(障碍)의 풍운(風雲)이 높아질 것이고/베푼 자는 오늘의 화택(火宅)을 벗어나는 길을 열 것이니/치우친 곳에서 만나지 못하고/현현한 가운데에서는 잃지 않을 것입니다. ●혜초 태고종 종정 常有欲以觀其?(상유욕이관기요) 常無欲以觀其妙(상무욕이관기묘) 己丑新年心淸淨(기축신년심청정) 自他共成普賢道(자타공성보현도)/욕심이 지나치면 부분밖에 볼 수 없고 욕심을 여의면 전체가 보인다네.기축년 새해에는 항상 청정심을 잃지 말고 너와 나 모두 같이 큰 소원을 이루세. 마음이 너그러우면 복이 두꺼워지고 생각이 좁으면 하는 일이 옹색해집니다.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을 열고 분수를 지키며 주어진 인연을 소중히 하여,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본성을 잃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제자리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도용 천태종 종정 一念普觀無量劫(일념보관무량겁) 無去無來亦無住(무거무래역무주) 如是了知三世事(여시료지삼세사) 超諸方便成十力(초제방편성십력) /한 생각에 무량세월 널리 살펴보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으며,또한 머무는 것도 없구나.삼세가 일념이고 일념이 삼세이니 지혜로써 밝게 보아 연꽃 행을 펼쳐보라.모든 아픔은 희망의 등불이 켜지는 과정이요,불행은 행복의 동반자이다.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저 소나무 모진 시련 이겨내며 비바람에 꺾이지 않는 뿌리를 가꾸나니.동업대중이여,백 길 절벽에서 한 발 더 나아가라.그제야 알게 되리라.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독교계 ●정진석 추기경 고통과 역경 중에서도 더 발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얻어야 할 것입니다.허망하고 옳지 않은 곳에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하느님의 말씀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해서 삶의 길을 찾고 위로와 희망도 그 안에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새해에는 더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고,더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고,보다 겸손한 마음과 여유로움을 갖기를 바랍니다.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실망과 후회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그리스도인들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영적 각성과 회개의 눈물은 언제나 외적인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담대함과 용기로 승화되어 세상을 변화시켜왔습니다.한국교회가 믿음을 퇴색시키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지양하고 사회를 섬길 때 영광스러운 역사가 재연될 것입니다.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며,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를 향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2009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삼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새해는 여러 면에서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될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물신만능의 가치관을 버리고 한 영혼,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며,자신만을 위한 탐욕을 포기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일에 나서야 하겠습니다.교회는 자신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평화,생명,정의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자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고통의 때를 헤쳐 나갑시다. ■민족종교 ●경산 원불교 종법사 모든 난국의 근본은 자원의 부족이나 물질의 부족,지식의 부족도 아닌 오직 도덕성의 빈곤임을 절감하게 됩니다.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인간의 내면에 갊아 있는 본심을 찾아 지켜야 합니다.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속이지 말고,사람을 속이지 말고,진리를 속이지 않는 참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원칙이야말로 우리 사회질서의 바탕이며 목탁과 같은 것입니다. ●안운산 증산도 종도사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습니다.남을 이겨야 내가 잘 되는 상극(相克) 세상은 곧 가고,남이 잘 돼야 내가 잘 되는 상생(相生)의 세상이 반드시 열립니다.상생(相生)의 한 마음(一心)으로 천지와 세상사람 모두가 기뻐하는 참된 성공을 향해 소걸음으로 나아갑시다.소걸음처럼 꾸준히 덕을 닦아 다같이 잘 되고,다같이 기뻐하는 참된 성공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김동환 천도교 교령 분명 쇠운(衰運)이 지극하면 성운(盛運)이 옵니다.성운을 맞이하려면 현숙한 모든 군자가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이루어야만 합니다.어두운 생각보다는 새롭게 변화하는 밝은 한해가 되기 위하여 다 같이 노력합시다.집집마다 웃음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깔깔깔]

    ●아내가 죽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당하게 된 어떤 남자가 묘석에 이같은 비문을 새겼다. ‘내 인생의 등불은 꺼졌도다.’ 몇년이 지난 뒤 재혼할 여자가 생긴 그 남자는 장로에게 물었다. “죽은 아내의 묘비에서 그 말을 지워 없애는 게 좋겠지요?” 그러자 장로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다만 다음 구문을 덧붙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그러나, 또 새로운 등불이 켜졌도다’라고.” ●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 송년회로 술자리가 많은 연말에 음주운전은 금물.세계 각국의 음주운전 형벌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시길…. ▲엘살바도르:총살형 ▲불가리아:초범은 훈방,재범은 교수형 ▲터키:30㎞ 떨어진 곳에 버린 뒤 집까지 걸어 오게 한 후 집에서 구속 ▲핀란드:한달 월급 모두 몰수
  • [CEO 칼럼] 우리가 투자할 곳은 자기 자신이다/박중진 동양생명보험 부회장

    [CEO 칼럼] 우리가 투자할 곳은 자기 자신이다/박중진 동양생명보험 부회장

    겨울답지 않은 영상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그러나 펼쳐 든 신문 지면은 살얼음판이다.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 한파는 세계경제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유럽권,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미칠 충격이 상당히 클 것 같다.  산업별 구조조정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있다.건설과 저축은행에 이어 조선업까지 구조조정의 파도가 밀려가고 있다.물론 마구잡이식 가지치기가 아니라 옥석을 가리겠다는 뜻이다.일부 기업은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고,인적 구조조정이 뒤따르고 있다.신문에서 전해진 한기가 손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서민들 입장에서는 불안이 커지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이럴 때 서민들은 맨 먼저 손쉬운 소비 지출부터 줄이고 본다.때문에 실물경기는 대형할인매장 매출마저 끌어내리고 있다.악순환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양새다.  힘든 시기가 닥친 것은 분명하다.필자는 어려울 때마다 책을 찾는다.한 박자 쉬어가며 주변 상황을 복기하는 여유를 찾고,책 속에서 지혜를 빌린다.특히 옛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을 즐겨 읽는다.옛것을 익혀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나 할까.‘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현혹되지 말지니,급히 서둘면 철저히 이루지 못하고,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면 큰 일을 이루지 못 하느니라.’논어(語)의 자로 편에 실린,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온고지신도 논어에서 나온 고사성어다.요즘 세태에 등불로 삼아도 손색이 없는 명문이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뜬소문이나 단편적인 경제뉴스에 휩쓸려 몸과 마음마저 상처를 입는 이들이 종종 발견된다.  지나치게 위축된 나머지 수년 동안 쌓아온 펀드나 보험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과다한 대출이나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한 투기에 가까운 투자는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그러나 자신의 경제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손해가 났다고 청산을 하면,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급히 서두르는 꼴이 된다.  경기는 일정한 사이클이 순환된다.지금은 단지 침체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증시에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이 있는데 호황일 때 거품이 지나쳐 침체의 골이 깊게 파이고 있다.지금 봐서는 마냥 어두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그 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에 따라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기간이 달라질 뿐이다.과거 석유 파동 때도 그랬고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그렇게 세계경제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금 우리가 투자할 곳은 자기 자신이다.서두르지 말고 큰 일을 이루려는 긴 안목으로 조급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신발 끈을 다시 매자.어차피 인생은 길다.  무엇보다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평상시 하던 대로 저축을 하면서 적정한 수준에서 외식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가족과 여가생활을 즐긴다.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거나 외국어를 익히며 자기계발에 나선다.필자의 경험에 미루어 이렇게 축적된 실력과 활력을 발산하는 인재를 홀대할 기업은 없다.어쩌면 이것이 개인과 경제를 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박중진 동양생명보험 부회장
  •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47) 기녀와 하룻밤

    ‘밤길’(그림 1)은 신윤복의 작품인데,신윤복 풍속화 치고는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나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논하는 자리에서,혹은 풍속화로 만든 달력이나 기념품 등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없다.하지만 이 그림은 퍽 꼼꼼히 따져볼 만한 것이다.그림 위쪽에 하현달이 떠 있는 것을 보면 밤이 분명하다.또 담뱃대를 문 기생이 팔에 털토시를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겨울밤이 틀림없다.참고로 말하자면,조선시대 여자는 몸 전체를 가리는 방한의(防寒衣)가 없었으므로 단지 팔에 털토시만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여자의 털토시 말고 방한구(防寒具)는 또 있다. ●화려한 옷차림 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 등불을 들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어린 사내종이 오른쪽 팔에 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털가죽으로 만든 이 물건은 위쪽에 끝을 죄는 줄이 있다.곧 펼친 상태에서 착용하고 끈을 죄어서 오므리는 것이다.끈이 있는 방한구로는 풍차나 만선두리 같은 것이 있지만,이 그림만으로는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어쨌거나 방한구를 착용하거나 들고 나선 추운 겨울밤인 것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왼쪽의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별감이다.이 사람을 순라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결코 아니다.이 사람은 앞서 ‘기방의 난투극’에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는,기방의 운영자 대전별감이다.대전별감은 옷차림이 화려하다 했는데,이 그림의 복색을 보아도 과연 그렇다.대전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홍의(紅衣) 안에 푸른 색,분홍색,갈색 누비옷을 겹쳐 입고 있다.신발 역시 가죽신이다.또 초립 아래는 방한구인 털가죽으로 만든 ‘풍뎅이’를 쓰고 있다.과연 서울 시내 복색의 유행을 주도하는 별감답게 잔뜩 사치한 모양이다.  기생과 대전별감 사이에 있는 남자는 양태가 넓은 갓을 쓰고,중치막을 입고,가죽신을 신었다.양반이다.기생과 기부(妓夫)인 대전별감,그리고 이 양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그림 속의 인물이 말을 하지 않으니,알 수가 없다.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물들의 동작을 보자.중치막을 입은 양반은 오른손으로 갓의 양태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고,대전별감은 왼손으로 앞을 가리킨다.저 쪽으로 가라는 신호로 보인다.기생은 대전별감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양반 왼쪽에 있다.즉 기생은 대전별감과 떨어져 양반과 함께 밤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양반과 기생이 같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은,그들의 앞에 사방등을 든 어린 사내종이 길을 인도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만하다. 자,그렇다면 어떤 장면인가.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원래 기부는 기생과 동침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그날 밤을 손님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나는 이 그림이 기부인 대전별감이 고객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이의가 없으신지? ●기녀제도 양반들의 성욕 위해 500년 유지 기생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하지만 기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조선조에 와서 기생을 없애려고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 일파의 거듭된 요청으로 일시 기생이 없어지지만,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다시 기생제도가 부활하였다. 전에 언급했듯 기생은 두 가지 목적으로 존재하였다.춤과 노래를 익혀 궁정과 양반들의 잔치에 동원되는 것,그리고 하나는 양반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조선 양반 체제는 양반-남성의 결혼이란 합법적 방식을 벗어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갑오경장 때까지 거의 500년 동안 관기제도(官妓制度)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그림(2) 역시 신윤복의 작품이다.제목은 ‘국화 옆에서’.서정주의 시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그림의 왼쪽에는 국화꽃이 피어 있고,오른쪽에는 사내와 늙은 할미가 있다.그리고 그 앞에는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처녀가 있다. 사내는 아직 앳된 기운조차 느껴지는 젊은 나이고,여자는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젊은 처녀임을 알 수 있다.남자가 웃통을 벗고 있는 것으로 보아,조금 전까지 남자는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이제 막 대님을 치는 것으로 보아,바지도 벗었다가 이제 다시 주워 입는 것이다.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그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자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남자와 여자는 이미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곧 이 사내는 여자의 초야권을 샀던 것이다.흔히 ‘머리 얹어준다.’는 말은,기생의 초야권(初夜權)을 사서 땋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동기(童妓)의 초야권을 사는 사람은 이부자리와 의복과 당일의 연회비를 담당해야만 했는데,아마도 젊은 오입쟁이는 그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조방군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늙은 할미다.얼굴이 검고 깡마르고 약간 간교하게 보이는 할미는 입을 가리고 여자에게 소곤대고 있다.내용이야 확인할 수 없지만,여자를 어르고 달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 할미는 도대체 누구인가?어두운 성의 거래에는 반드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수호지’에서 바람둥이 서문경과 유부녀 반금련 사이에 다리를 놓아 간통을 성사시킨 것은 이웃에 사는 늙은 여자 왕파였다. 그렇다면 그런 역할을 하는 여자가 과연 있었던가.19세기의 가사 ‘우부가(愚夫歌)’에 그런 여자가 나온다. ‘우부가’는 세 사람의 어리석은 사내의 행각을 그린 작품이다.개똥이·꼼생원·꾕생원 세 사내는 돈을 펑펑 써대며 온갖 놀이와 황당한 행각으로 결국 재산을 거덜내고 파멸하고 만다.그 중 꼼생원의 행각을 그린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리 모여 노름 놀기,저리 모여 투전질에/기생첩 치가(治家)하고,오입장이 친구로다/사랑에는 조방군이,안방에는 노구할미”   보다시피 꼼생원이 하는 일은 패가망신하는 일이다.맨 끝부분의 조방군과 짝을 이루고 있는 노구할미란 부분에 주목해 보자.조방군이란 기부를 말하는 것으로 기생의 성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자다.따라서 노구할미 역시 그런 성의 판매를 중개하는 사람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노구는 한자로 쓰면 ‘?’가 된다.문자 그대로 직역하면,‘늙은 할미’ 뜻이지만,사실은 뚜쟁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노구장이’란 말이 있는데,이것은 뚜쟁이 노릇을 하는 늙은 할미라는 뜻이며,‘노구질’이라고 하면 뚜쟁이 노릇이란 뜻이다.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上雪)’에 장안 계집을 깡그리 노구질하다 못 해서 조카딸까지 팔아먹는 것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곧 노구질이란 늙은 할미가 하는 뚜쟁이 노릇을 말하는 것이다.그림(2)의 할미의 정체는 밝히자면 이런 것이다.  물론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다.나는 그림(2)의 젊은 여성을 기생으로 보았는데,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서울의 기생과 지방의 기생의 출신 성분이 같지만,기생업의 경영 방식에 다른 점이 있다.즉 서울의 기생은 기부(妓夫),즉 남자가 기생을 지배한다.그림(1)에서 등장하는 대전별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하지만 지방의 기생은 기모(妓母),즉 기생의 어미가 지배한다. 기모의 경우는 춘향이와 월매를 떠올리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생은 모두 서울의 기생들이다.그렇다면 기부가 나오지 않고 노구할미가 난데없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 것이다. 물론 젊은 여성이 기생이 아닐 수도 있다.여염집의 가난한 젊은 처녀 혹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여성일 수도 있다.이럴 경우 그림(2)의 할미는 돈 많은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추측은 가능하지만 어떤 쪽도 확언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우선 덮어둘 수밖에.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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