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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면> ‘우리가 비니시우스다’, R.마드리드 선수 모두 등번호 20번 달고 출전

    23면> ‘우리가 비니시우스다’, R.마드리드 선수 모두 등번호 20번 달고 출전

    ‘우리 모두가 비니시우스다’.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라리가) 라요 바예카노전이 펼쳐진 25일(이하 현지 시각)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축구장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의 플래카드와 현수막이 넘실댔다. 선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린 모든 선수가 비니시우스의 이름과 등번호 ‘20’이 들어간 유니폼을 맞춰 입고 그라운드에 섰다. 관중들은 ‘우리는 비니시우스와 하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 선수들을 응원했다. ‘적진’에 선 라요 바예카노 선수들도 뜻을 함께했다. 두 팀 선수들은 ‘인종차별을 축구에서 쫓아내자’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함께 들어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카림 벤제마의 선제골과 후반 44분 호드리구의 결승골로 후반 39분 동점골을 넣은 라요 바예카노를 2-1로 따돌렸다. 비니시우스와 같은 브라질 출신의 흑인 선수 호드리구는 ‘극장 결승골’ 뒤 오른 주먹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숙이는, ‘블랙 파워 경례’ 세리머니를 펼쳤다.베르나베우 축구장이 하나가 된 건 지난 22일 발렌시아 홈 경기 때문이었다. 경기 후반 발렌시아 팬들이 비니시우스를 향해 ‘원숭이’라고 외친 뒤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이어졌다. 비니시우스는 경기 막판 석연찮은 이유로 퇴장까지 당했다. 비니시우스는 경기가 끝난 뒤 소셜미디어(SNS)에 “이번이 처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니다. 라리가에서는 인종 차별이 일상화됐다”라며 한탄했다. 다음날인 23일 브라질 상파울루 스페인 영사관 앞에서는 비니시우스가 겪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물인 코르코바도 언덕의 ‘구원의 예수상’은 ‘검지만 당당한 예수’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1시간 동안 조명을 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연설 도중 “가난한 소년에서 삶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가 돼가는 선수가 경기장에서 모욕당하는 건 불공평하다“ 강조했다.스페인축구연맹(RFEF)은 발렌시아 구단에 5경기 관중석 일부 폐쇄와 4만 5000유로(약 64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경기 도중 비니시우스가 목 졸린 장면은 생략하고 상대를 때린 장면만 송출해 퇴장을 유도한 VAR 심판 6명은 해임됐고, 비니시우스의 퇴장 징계는 취소됐다. 브라질 대표팀 동료 하피냐는 레알 바야돌리드와의 라리가 36라운드 경기 도중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는 언더셔츠에 ’밝은 눈보다 피부색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 투쟁하겠다’라는 글귀를 내보이기도 했다. 유럽 빅리그에서 인종차별 행위는 이제 새삼 맞은 일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프턴), 라리가의 이강인(마요르카) 등 한국 선수들도 피부색을 빙자한 증오의 표적이 되고 있다.
  • 국가대항전 나서는 고진영 “우승 할 수 있다”

    국가대항전 나서는 고진영 “우승 할 수 있다”

    “올해도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자 골프 국가대항전인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셔널 크라운(총상금 200만 달러)에 출전하는 고진영이 필승을 다짐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TPC 하딩파크에서 개막하는 한화 라이프플러스 인터내셜 크라운 공식 기자회견에서 고진영은 “우리가 또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중국이나 호주, 미국도 강팀인데 좋은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는 대회인 만큼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창설된 이 대회는 올해로 4회째다. 2014년과 2016년 대회는 미국에서 열렸고 스페인과 미국이 차례로 정상에 올랐다. 2018년에는 인천에서 개최됐으며 당시 김인경, 유소연, 박성현, 전인지가 출전한 우리나라가 우승했다. 이후 2020년 영국 런던에서 4회 대회가 개최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하다가 올해 5년 만에 재개됐다. 8개 나라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 태국, 호주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A조는 미국, 스웨덴, 잉글랜드, 중국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고진영과 전인지, 김효주, 최혜진으로 대표팀을 꾸리고 대회 2연패를 노리고 있다.고진영은 “2018년 우리나라가 우승할 때 저는 다른 대회에 출전하느라 나가지 못했다”며 “2020년 대회는 코로나19로 취소됐는데 올해는 출전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한국 대회에는 팬들이 많이 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은 여자 골프 인기가 미국에 비해 더 높은데 이번 대회에 많은 팬이 오셔서 미국에도 여자 골프 인기가 많아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2018년 막대로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전인지는 이제 최고참으로 대회에 나선다. 전인지는 “사실 막내일 때가 더 편했다”고 웃으며 “후배들이지만 다 훌륭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제가 따로 조언할 것은 없고 좋은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한국 대회여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다”며 “정말 대단한 한 주였고, 13번 홀에서 제가 홀인원을 할 뻔했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처음으로 대회에 나서는 김효주는 “매 대회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국가대항전에 나올 기회를 얻게 됐다”고 각오를 전했고,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 ‘막내’ 최혜진은 “언니들이 잘 챙겨준다”며 “좋은 선수들과 이런 대회에 나오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 나서며 각각 의미가 있는 등번호를 선택했다. 전인지는 “8월에 태어났고, (한국·미국·일본에서) 메이저 8승을 거둬 8번을 골랐다”고 말했고, 최혜진은 “생일이 (8월) 23일, 나이도 23살, 좋아하는 선수인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도 23번”이라고 말했다. 김효주는 “7번을 하려고 했는데 고진영이 먼저 택해서 리오넬 메시의 등번호 10번으로 했다”고 설명했고, 고진영은 “7월 7일생이어서 7번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은 대회 첫날인 4일 호주를 상대하고 5일 태국, 6일 일본과 차례로 조별리그 경기를 치러 4강 진출 여부를 정한다.
  • 튀르키예 구호대 파견 장병들, LG트윈스 시구·시타 나선다

    튀르키예 구호대 파견 장병들, LG트윈스 시구·시타 나선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서 생존자 구조활동을 펼쳤던 해외긴급구호대 장병들이 프로야구 시구와 시타를 맡는다. 국방부는 해외긴급구호대 1진으로 튀르키예에 파견됐던 장병들이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LG트윈스 홈 개막전의 시구·시타 행사에 참여한다고 6일 밝혔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재난신속대응부대 지역대장 서석관 소령이 시구를, 국군의무사령부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장 김동훈 중령이 시타를 맡는다. 시구를 맡은 서 소령은 구호대에서 총괄장교로 활약했다. 시타를 맡은 김 중령은 외상 전문의로 생존자 응급처치 등 긴박한 임무를 수행했다. 구호대 장병들은 구호대의 튀르키예 현지 도착 일자를 반영한 ‘28’과 구호자 수를 뜻하는 ‘8’을 등번호로 새긴 운동복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다. 국방부 군악대대가 특별공연과 애국가 제창 및 연주를 맡는다. 서 소령은 “구호대 활동을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국민들과 현지 주민의 성원에 감사하며, 시구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뜻깊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앞으로도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솔선수범의 자세로 군 복무에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LG트윈스는 구호대 1진 파견 장병들과 해당 부대원들에게 이번 경기 관람 좌석을 제공한다.
  • ‘11번’ 캡틴 역사 된 날, 팀은 ‘No.1’

    ‘11번’ 캡틴 역사 된 날, 팀은 ‘No.1’

    KBL 3번째 ‘와이어 투 와이어’김상식 감독 복귀 시즌서 정상은퇴 양희종, 영구결번 겹경사LG·SK·모비스 2위 다툼 치열 프로농구 안양 KGC가 KBL 역대 세 번째로 ‘와이어 투 와이어’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4강 플레이오프(PO)에 직행했다. KGC는 26일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3 프로농구 정규시즌 홈경기에서 변준형(18점 5어시스트)과 오마리 스펠맨(15점 14리바운드), 오세근(15점 7리바운드)의 활약에 힘입어 원주 DB를 76-71로 눌렀다. 37승16패를 기록한 KGC는 공동 2위 창원 LG, 서울 SK(이상 35승18패)와의 간격을 2경기로 벌렸다. 이에 따라 KGC는 남은 한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정규 우승을 확정했다. 4강 PO로 직행한 KGC는 4위와 5위의 6강 PO 승자와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다툰다.먼저 열린 경기에서 SK가 LG를 74-69로 잡아 주며 정규 우승을 확정하고 홀가분해진 KGC는 17년간 팀에 헌신한 캡틴 양희종의 은퇴식은 물론 우승 세리머니까지 안방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양희종의 등번호 11번은 구단 역대 1호 영구결번이 됐다. KGC의 정규 우승은 2016~17시즌 이후 6시즌 만으로, 구단 역대 두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단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라 의미를 더했다. 2011~12시즌 원주 동부(현 DB), 2018~19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에 이어 KBL 역대 세 번째 대기록이다. 김상식 감독은 KGC 지휘봉을 잡고 무려 8년 만에 프로농구 무대로 돌아오자마자 정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특히 김 감독은 간판 슈터 전성현이 고양 캐롯으로 이적하는 등 전력 누수가 컸으나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리더십으로 팀 조직력을 극대화하며 시즌 개막 전 KGC를 중하위권으로 낮춰 보던 전문가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제 KGC는 6시즌 만에 역대 두 번째 통합 우승, 2020~21시즌 이후 2시즌 만에 네 번째 챔프전 우승에 도전한다. 김 감독은 “너무 기쁘고 선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한 가족 같은 팀워크로 1위를 할 수 있었다. 통합 우승도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했다. 한편 1위와 함께 4강 PO에 직행하는 2위는 오는 29일 최종전에서 가려지게 됐다. LG와 SK가 나란히 이기거나 져 최종 승률이 같아지면 상대 전적이 3승3패이기 때문에 골득실에서 앞선 LG가 2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LG와 SK가 모두 패하고 최종전까지 2경기 남은 4위 현대모비스(33승19패)가 2연승하면 세 팀이 동률을 이뤄 현대모비스까지 2위를 노려 볼 수 있다. KBL은 정규경기 결과 두 팀 이상의 성적이 같을 경우 해당되는 팀의 상대 전적, 골득실, 다득점 등의 순으로 순위를 정한다.
  • 98세 美 할머니가 5㎞를 59분에 뛰어, 보통 26~36분 걸리는데

    98세 美 할머니가 5㎞를 59분에 뛰어, 보통 26~36분 걸리는데

    미국의 98세 할머니가 5㎞를 한 시간 안에 달려 화제가 되고 있다. ‘마라톤 핸드북’에 따르면 보통 달림이들이 이 거리를 평균 완주하는 시간은 26~36분이어서 백수(白壽)를 앞둔 할머니가 곱절 밖에 안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0일(현지시간) 웹진 ‘골캐스트’(GoalCast) 등에 따르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베티 린드버그 할머니는 지난달 25일 센테니얼 올림픽 파크에서 진행된 ‘2023 퍼블릭스 애틀랜타 마라톤’ 5㎞ 부문에 출전, 59분 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빨간색 조끼에 등번호 A7841번을 단 백발의 린드버그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한다. 약간 숨이 차 보이지만 손목의 기록 측정용 시계를 확인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이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 소식은 이번 주 초 ABC TV의 인기 아침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GMA)를 통해 전국에 소개됐고, 린드버그 할머니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GMA는 린드버그 할머니가 “95-99세 그룹 5㎞ 세계 신기록 보유자”라고 소개했다. 이 할머니의 개인 최고 기록은 지난해 2월 애틀랜타 피치트리 마라톤 대회 5㎞ 부문에 출전해 세운 55분 48초다.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사는 베티 애슐리 할머니가 96세이던 2017년 작성한 1시간 28분 36초 기록을 무려 30분 이상 단축한 것이었다. 개인 최고 기록보다 못한 기록이 나온 데 대해선 대회 코스가 언덕이 많아 뛰지 않고 빠르게 걷는 전술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지역 매체 인터뷰를 통해 “계속 움직이자”가 생활 신조라고 밝혔다. 1924년에 태어난 그는 64세 때인 1988년 딸과 사위를 차로 마라톤 대회 장소까지 데려다주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뒤 트레이닝을 받으며 꾸준히 대회에 참여했다. 웬만하면 동네를 다닐 때도 걸어 다니는데 그렇다고 트레이닝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가 몸도 만들고 요가 수업도 밥는 등 정말로 몸을 가만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달릴 때는 힘이 들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면 모든 통증이 사라지면서 또 다른 도전을 꿈꾸게 된다”고 말했다. 당연히 SNS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넘쳐난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요즘 난, 한 블록 걷는 것도 버거워하며 하지 않으려 했다. 진심으로 놀랍다”면서 “린드버그 할머니가 ‘모든 것은 정신력에 달렸다’는 사실을 다시 입증해 보였다”고 적었다. 다른 이는 “정말 대단하다. 할머니로부터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오는 26일 다른 대회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 WBC 한일전에 기시다 총리 등장한 이유는

    WBC 한일전에 기시다 총리 등장한 이유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한국과 일본과의 경기에서 시구에 나섰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7시쯤 시구했다. 등번호 101번의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기시다 총리가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난 오른쪽에 떨어졌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이 기시다 총리가 던진 공을 받았다. 기시다 총리의 등번호가 101번인 이유는 그가 현재 일본의 101대 총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평소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고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했고 지역구인 히로시마에 홈구장이 있는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카프’의 열성적인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16년 외무상이었던 당시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를 홍보하기 위해 히로시마 카프 경기에서 시구하기도 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기시다 총리의 한일전 시구 일정이 알려지자 한일 관계 개선 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진흥이 목적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8일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결책을 확인하고 “한국 측이 국내를 설득해 이 안을 발표한다면 일본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6일이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발표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의 한일전 시구도 한일 관계 개선의 의지로 이미 계획했던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오는 16일 정상회담과 함께 만찬도 할 예정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2018년 5월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회담 이후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으로는 약 5년 만이다.
  • 이현중, G리그 데뷔전 7점 9리바운드 4어시스트

    이현중, G리그 데뷔전 7점 9리바운드 4어시스트

    미프로농구(NBA) 도전에 나선 이현중(23·산타크루즈 워리어스)이 NBA 하부리그인 G리그 데뷔전에서 3점슛 1개 포함해 7점 9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현중은 2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의 카이저 퍼머넌트 아레나에서 열린 2022~23시즌 G리그 오스틴 스퍼스와의 홈 경기에서 19분을 뛰며 팀의 126-105 승리에 힘을 보탰다. 등번호 28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이현중은 1쿼터 종료 6분 54초 전 코트를 밟았다. 1쿼터에서 3점 슛 2개를 모두 놓쳤으나 2쿼터 종료 1분 57초를 남기고 3점 슛을 림에 꽂아 G리그 데뷔 득점을 올렸다. 이현중은 후반에도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스틸과 블록슛도 각각 1개씩을 기록했다. 장기간 경기를 뛰지 않은 탓인지 3점슛 5개를 던져 1개 성공한 것을 포함해 야투율이 20%에 그쳤다. 가드 포지션임에도 리바운드를 9개나 올린 점은 눈에 띈다. 산타크루즈에서는 레스터 퀴노네스가 30득점 10리바운드, 제이스 존슨이 19점 22리바운드로 활약했다. 3연승을 달린 산타크루즈는 서부콘퍼런스 8위(10승9패)로 올라섰다. 이현중은 미국 데이비드슨대 3학년이던 지난해 NBA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으나 드래프트 일주일을 앞두고 발 부상을 당하며 고배를 마셨고, 한국으로 돌아와 6개월간 재활에 매진해야 했다. 재활을 마치고 지난달 미국으로 떠난 이현중은 지난 20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산하 산타크루즈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이날 데뷔전을 시작으로 2022-23시즌 남은 일정을 함께 소화한다. 매니지먼트사인 A2G는 “이현중의 몸 상태는 완벽히 회복된 상태이며, 미국에서 한 달간 전문적인 농구 및 컨디셔닝 훈련해 복귀 준비를 마쳤다”며 ‘이미 산타크루즈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중은 A2G를 통해 “다시 코트에서 뛸 기회를 얻게 돼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시즌 중반에 팀에 합류한 만큼 빨리 적응해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 이현중, NBA 디딤돌 G리그 합류

    이현중, NBA 디딤돌 G리그 합류

    미국프로농구(NBA)에 도전하는 이현중(23)이 NBA 하부리그인 G리그에 합류했다. G리그는 지난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현중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산하 팀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산타크루즈도 22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선수 명단에 이현중을 가드 포지션으로 올렸다. 등번호는 28번이다. 한국 선수가 NBA 하부리그에서 뛰는 건 하승진, 방성윤(이상 은퇴), 이대성(대구 한국가스공사)에 이어 네 번째다. 이현중은 1984년 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인 성정아씨의 아들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간판이자 NBA 슈퍼스타인 스테픈 커리의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이현중은 데이비슨대 3학년이던 2021~22시즌 미국 대학농구(NCAA) 무대에서 28경기에 출전해 평균 32분을 뛰며 15.8점, 6리바운드, 3점슛 38.1%를 기록해 NBA 입성의 꿈을 부풀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NBA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하다 드래프트를 1주일 앞두고 발등을 다쳤다. 결국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된 이현중은 한국으로 돌아와 6개월간 재활한 뒤 지난달 15일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G리그 팀과 계약해 NBA로 콜업을 노리거나 서머리그에서 뛰며 NBA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이현중은 출국 전인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에서 “좀비처럼 도전하겠다”며 “실패해서 좌절할 때는 다시 좀비처럼 일어나 도전하고, 또 쓰러지면 또 좀비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타크루즈는 9승9패로 서부콘퍼런스 15팀 중 9위에 자리하고 있다. 2022~23 G리그 정규시즌이 다음 달 26일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산타크루즈는 14경기를 남겨 놓고 있어 이현중이 빠르게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셀틱 데뷔전 눈도장 오현규, 이번엔 데뷔골?

    셀틱 데뷔전 눈도장 오현규, 이번엔 데뷔골?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셀틱 데뷔전에서 후반 교체로 짧은 시간을 뛰고도 강한 인상을 남긴 오현규(22)가 데뷔골에 재도전한다.셀틱은 2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셀틱 파크에서 리빙스턴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24라운드 홈 경기를 치른다. 지난달 30일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정규리그 원정 경기(셀틱 2-0 승)에서 교체 명단에 올라 후반 37분 일본 선수인 후루하시 교고와 교체돼 데뷔전을 치른 오현규는 2경기 연속 출전을 노린다. 사흘 만에 열리는 경기라 직전 경기에서 교체로 몸을 푼 오현규의 첫 선발 출격도 기대해볼 수 있다. 등번호 19번이 적힌 셀틱 유니폼을 입은 오현규는 데뷔전에서 교체로 10분이 채 안 되는 경기를 뛰었지만, 한 차례 날카로운 크로스를 시도하고 상대 수비와 적극적인 경합을 펼치는 좋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축구통계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도 오현규에게 평점 6.28점을 부여하며 무난한 평가를 내렸다. 다만 스포츠몰과 후스코어드 등 현지에선 리빙스턴전에 오현규 대신 후루하시와 조타, 리엘 아바다의 스리톱 선발 출격을 전망하고 있다.리그 3연승이자 최근 공식전 5연승을 달린 셀틱은 승점 64(21승1무1패)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라이벌인 2위 레인저스(승점 55·17승4무2패)에는 승점 9점 앞서 있다. 이번 상대인 리빙스턴은 리그 4위(승점 32·9승5무8패)다. 스코틀랜드 리그에선 올 시즌 상위권 팀으로 꼽히지만, 셀틱과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차이가 크다. 최근 세 차례 맞대결 전적에서도 셀틱이 모두 이겼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말에도 셀틱이 홈에서 2-1로 이겼다.지난 시즌 프로축구 수원 삼성에서 팀 내 최다인 13골을 넣은 오현규는 지난달 25일 셀틱과 5년 계약을 맺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활약한 기성용(서울)과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뛴 차두리 FC서울 유스 강화실장 이후 한국 선수로는 세 번째다. 오현규는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들진 못했지만, 27번째 예비 선수로 대표팀과 16강까지 동행했다. 이후 겨울 이적시장에서 셀틱의 러브콜을 받고 첫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 짧았지만 눈도장 콱… 오현규, 유럽 데뷔전서 ‘택배 크로스’

    짧았지만 눈도장 콱… 오현규, 유럽 데뷔전서 ‘택배 크로스’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셀틱에 입단한 오현규(22)가 5일 만에 정규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셀틱은 30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던디의 태너다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십 23라운드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오현규는 후반 37분 일본인 선수인 후루하시 교고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팀이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등번호 19번을 달고 투입된 오현규는 데뷔전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왕성한 활동력으로 벤치와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오가며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상대 수비수를 압박해 공을 빼앗아 돌파를 했고, 동료들의 패스를 받기 위해 손을 들며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오른쪽 측면에서 한 차례 날카로운 크로스를 시도했고, 상대 수비수와 경합할 때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축구 통계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오현규에게 평점 6.28점을 매겼다. 지난해 국내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에서 뛴 오현규는 지난 25일 셀틱과 5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뛴 기성용(서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활약한 차두리 FC서울 유스 강화실장 이후 셀틱 유니폼을 입은 세 번째 한국인 선수가 됐다. 2022시즌 K리그1에서 팀 내 최다인 13골을 넣은 오현규는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예비 선수로 선발돼 국가대표 선수단과 카타르에 동행했지만 끝내 정규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후반에 두 골을 넣은 셀틱은 21승1무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승점 64를 기록하며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라이벌인 2위 레인저스(17승4무2패)와는 승점 9 차다. 리그 경기 3연승, 최근 공식전 5연승을 내달린 셀틱의 다음 일정은 2월 2일 리빙스턴과의 홈경기다.
  • 오현규 셀틱과 5년 계약... 등번호 19번

    오현규 셀틱과 5년 계약... 등번호 19번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 공격수 오현규(22)가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이적한다. 셀틱은 25일(한국시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오현규와 5년 계약을 했다”고 발표했다. 등 번호는 19번이다. 구체적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적료는 300만유로(약 40억원)로 알려졌다. 수원도 이날 “오현규가 셀틱 소속으로 활약하게 된다. 구단 유스팀 출신으로는 권창훈(김천), 정상빈(그라스호퍼)에 이어 세 번째 유럽 진출”이라며 “새로운 앞날과 멋진 활약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셀틱은 기성용(서울)이 2009∼2012년, 차두리 FC서울 유스 강화실장이 2010∼2012년에 몸담은 팀으로, 한국 선수가 입단한 것은 오현규가 세 번째다. 오현규는 설 연휴 기간 영국 런던에서 이적에 필요한 서류 절차를 진행했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이동해 메디컬 테스트도 완료했다. 셀틱은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 전부터 오현규에게 관심을 보여 왔다. 오현규는 지난해 K리그1 36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13골(3도움)을 넣었고, FC안양과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선 결승 골로 수원의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리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오현규는 카타르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으나, 예비 멤버로 발탁돼 카타르에서 국가 대표팀과 함께 훈련했다. 월드컵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셀틱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셀틱은 4∼5차례 오현규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처음 제시한 100만유로(약 13억원)보다 세 배 높은 이적료를 제시했다. 셀틱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오현규를 데려오게 돼 기쁘다. 그는 젊고 재능이 있는 공격수로 자신의 커리어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 굶주려 있으며, 발전하고 성공하기를 열망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글래스고에 연고를 둔 셀틱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1부리그)에서 통산 52차례나 정상에 오른 팀으로 올 시즌도 선두(승점 61·20승 1무 1패)를 달리고 있다.
  • “굿바이 축구 황제” 펠레 영면, 왜 공동묘지 9층에 안장됐을까

    “굿바이 축구 황제” 펠레 영면, 왜 공동묘지 9층에 안장됐을까

    암 투병 중 타계한 ‘축구황제’ 펠레가 3일(현지시간) 상파울루주의 항구 도시 산투스에서 영면에 들었다. 자신의 축구 인생 전성기를 보낸 산투스 FC의 홈 경기장이 내려다 보이는 네크로폴 에큐메니카 공동묘지의 9층에 자리했다. 펠레는 현역 시절 활약한 산투스 FC의 홈 경기장인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서 전날부터 진행된 24시간 추모 행사 이후 이곳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역시 축구 선수였던 펠레의 아버지 돈지뉴가 현역 시절 입었던 유니폼 등번호가 9번이었던 점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곳에서는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이 내려다 보인다. 앞서 경찰 호위 속에 경기장을 빠져나온 운구 행렬은 올해 100세 된 펠레 모친의 거주지 앞에 잠시 멈췄고, 거리에 늘어선 군중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보내며 작별 인사를 했다. 펠레 사진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경의를 표하는 팬도 있었다. 펠레 여동생은 집 발코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펠레는 1956년부터 1974년까지 산투스FC 소속으로 뛰며 660경기, 643골의 기록을 남겼다. ‘왕이여 만세’라는 글귀를 인쇄한 대형 플래카드와 펠레 등번호 ‘10’ 장식물 등으로 메워진 1만 6000석 규모의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서 전날 오전 10시쯤부터 진행된 펠레 공개 조문에는 약 23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산투스 경찰은 추산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역시 이날 오전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와 고인을 추모한 뒤 유족을 위로했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비롯한 축구계 인사도 대거 참석했다.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찾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특사단 역시 직접 조문하고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밤새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일부 조문객은 2∼3시간 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고 산투스FC 측은 전했다. 펠레는 지난해 12월 30일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등으로 입원해 치료받다가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대장암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현역 시절 펠레는 국가대표 경기 92경기에 나와 77골을 넣었다. 그의 77골은 브라질 선수 A매치 최다 골 기록으로 현역 선수인 네이마르는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펠레는 1958년과 1962년, 1970년 등 세 차례 브라질 대표팀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 ‘축구황제’ 펠레 18년간 뛴 산투스에서 영면

    ‘축구황제’ 펠레 18년간 뛴 산투스에서 영면

    유일하게 월드컵을 세 차례 정복했던 ‘축구 황제’ 펠레가 영면했다. 지난해 12월 30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한 펠레의 장례가 3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주 항구 도시 산투스의 빌라 베우미루에서 엄수됐다. 산투스는 펠레가 18년간 몸담았던 프로팀 산투스FC의 연고지이며, 빌라 베우미루는 홈 경기장이다. 펠레는 1956년부터 1974년까지 산투스FC 유니폼을 입고 660경기를 뛰며 643골의 기록을 남겼다. 상파울루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있던 펠레 시신은 팬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전날 새벽 경찰 호위를 받으며 1시간 거리의 경기장으로 옮겨졌다. 검은색 운구차가 도착하자 일찌감치 배웅 나온 수천명의 팬들은 황제의 마지막 길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담았다. 1만 6000석 규모의 관중석에는 ‘왕이여 만세’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비롯해 등번호 10번의 펠레가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장식물 등이 가득했다. 펠레의 아들 에디뉴와, 펠레 이후 산투스FC에서 10번을 달았던 제 호베르투 등이 브라질 국기와 산투스FC의 깃발로 덮인 관을 센터서클에 세워진 하얀색 천막까지 운구했다. 관의 윗부분 뚜껑을 열어 둬 팬들은 고이 잠든 펠레의 모습을 잠시라도 보며 조문할 수 있었다. 조문 행렬은 하루 종일 길게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1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부터 시작된 조문은 24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판티노 회장은 “우리는 큰 슬픔을 안고 이곳에 있다”면서 “펠레는 영원하다. 그는 세계 축구의 아이콘”이라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축구장 한 곳은 펠레 이름을 붙여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장례 막바지에 경기장을 찾았다.
  •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 한날 일반인 조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 한날 일반인 조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축구 황제 펠레의 조문이 한날 진행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지난해 마지막날 선종한 지 이틀 만에 그의 시신기 일반에 공개된 2일(현지시간) 동 트기 전부터 작별 인사를 전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등 첫날에만 6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려 추모 열기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져 오전 9시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조문 시작 전부터 타원형의 성 베드로 광장 한 바퀴를 다 두를 정도로 대기 줄은 길게 이어졌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신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도 다른 일반 조문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AP 통신과 만난 카스퍼 추기경은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나약함이 아니라 힘과 위대함의 표시”라며 “그는 더는 교황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았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오후 7시 첫날 조문 일정을 마무리한 뒤 약 6만 5000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조문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치안 당국이 첫날 추모 인파로 예상한 2만 5000∼3만명을 곱절 이상 넘어섰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반 조문객보다 먼저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안식을 기원했다. 첫날 조문 행사는 10시간 진행됐는데 3일과 4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으로 늘어난다. 5일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다. 그 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교황청은 이탈리아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장례 미사에 공식 초대했다고 밝혔다. 또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뜻에 따라 장례 미사는 간소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예고했다.같은 날 브라질 상파울루 남동쪽 항구 도시 산투스의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는 펠레와 마지막 작별을 하려는 추모객들이 새벽부터 운집했다. 하얀 옷을 차려입은 팬들 사이로 축구팀 산투스FC 유니폼을 어깨에 두른 나이 지긋한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브라질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준비하거나, 젊은 시절 펠레와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가슴에 품고 있는 이도 있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남반구의 한여름 더위에도 조문객들은 지친 기색 없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켠에서는 맨발의 아이들이 축구공으로 트래핑을 하거나 패스 놀이를 하고 있어 언뜻 보면 리그 경기나 축제를 기다리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평생을 축구에 헌신했던 축구 황제가 이승에서 보내는 마지막을 기리는 축구 꿈나무들 나름의 조문 방식인 듯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펠레의 일반인 공개 추모 절차는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24시간 일정으로 그가 18년 동안 몸담았던 산투스 FC의 홈 구장인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에서 진행됐다. 1만 6000석 규모 관중석에는 ‘왕이여 만세’라는 글귀를 인쇄한 대형 플래카드와 펠레 등번호 ‘10’ 장식물 등으로 꾸며졌고, 경기장 밖 펠레 조형물에는 지난 며칠간 팬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펠레의 시신은 축구장 정중앙, 센터서클에 안치됐다. 하얀색 천막 아래에 꽃다발로 장식된 관은 뚜껑을 열어둬 팬들이 펠레의 모습을 잠시라도 볼 수 있게 했다. 시신은 브라질 국기와 산투스FC 깃발로 덮였다.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 때처럼 조문객들은 원칙적으론 관 앞에 한동안 멈춰 서지 못하고 행렬을 따라 이동해야만 했다. 다만,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잠시 기도하는 팬들의 열정까지 무리해서 막지는 않았다. 유족들은 팬들에게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하며 슬픔을 달랬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비롯한 축구계 인사와 외국 추모 사절들도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유족을 위로했다. 현지 매체들은 조문 대기 줄이 낮 한때 2∼3㎞에 달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추모 행렬은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의 조문은 3일 오전 10시쯤까지 할 수 있다. 그 뒤 펠레는 근처 네크로폴 에큐메니카 공동묘지에서 영면에 든다. 이곳은 14층 건물인데 펠레는 9층에서 영면하며 빌라 베우미루 축구장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 [포착] 호날두 인기 식었다?…사우디 이적 후 유니폼 불티나게 팔려

    [포착] 호날두 인기 식었다?…사우디 이적 후 유니폼 불티나게 팔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의 인기는 아직 식지 않은 모양이다. 아랍뉴스 등은 3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명문 프로축구팀 알나스르가 호날두 영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 나스르는 지난 30일 밤 호날두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호날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등번호인 7번이 새겨진 알 나스르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세계 최고 연봉을 받게 됐다.호날두는 알 나스르와 2025년 6월까지 파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고정연봉으로만 연간 7000만유로(약 946억원)를 수령하고, 여기에 계약금 1억유로(약 1352억원), 초상권 등 인센티브를 합하면 연간 2억유로(약 270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1위인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의 연봉인 1억 414만 유로(약 1445억원)에 2배 가까운 천문학적 금액이다. 호날두는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영상과 사진만 올려도 보너스를 받는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팔로워 5억 명을 돌파했으며, 지금까지 2000만 명이 더 늘었다. 이에 덩달아 알 나스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급증하고 있다. 호날두 영입 전까지 80만 명이었던 팔로워 수는 현재 870만명까지 늘었다. 호날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현지 호날두 팬들은 입단 공식 발표가 나오기 몇 시간 전부터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있는 알 나스르 구단 기념품 판매장인 메가 스토어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입단 확정 후에는 그의 유니폼을 손에 넣고자 더 많은 팬들이 몰려 나왔다. 이에 매장 주변은 당분간 교통이 통제될 만큼 혼잡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알 나스르 역시 호날두 영입을 확정한 이날부터 불티나게 팔리는 그의 유니폼을 마치 돈을 인쇄하듯 찍어내고 있다. 호날두의 새 유니폼을 구한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저마다 카메라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호날두의 유니폼 가격은 300리얄(약 10만 원)로 알려졌다. 호날두는 알 나스르에서 감독을 선택할 권한도 가진다. 미국 CBS스포츠는 이날 “호날두는 자신이 원할 경우 감독을 경질할 수도 있는 전례없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알 나스르는 그야말로 호날두FC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호날두는 지난 11월 당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에릭 텐 하흐 감독을 맹비난하는 인터뷰를 했다가 계약 해지를 당했다. 또 카타르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과 불화설을 겪었고 이후 16강·8강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3에서 1283까지, 숫자로 본 펠레

    3에서 1283까지, 숫자로 본 펠레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는 30일(한국시간) 82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여러 기록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펠레의 이야기를 숫자로 살펴본다.▲ 3 = 펠레는 현역 시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컵을 세 차례나 들어 올렸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브라질의 첫 우승에 기여했고,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정상에 섰다. ▲ 6 = 1956년부터 1974년까지 브라질 산투스에서 뛴 펠레는 브라질 1부리그에서 6번의 우승(1961∼1965년, 1968년)을 경험했다. 또 그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선 6개의 도움을 작성해 단일 월드컵 최다 도움 기록을 세웠다.  ▲ 10 = 펠레의 등번호. 펠레가 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등번호 10은 ‘에이스’의 상징이 됐다. 영국 ‘더선’에 따르면 펠레는 이 번호를 우연히 달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1958년 월드컵에서 내게 10번이 주어졌다. 10번 유니폼을 입는 게 누구에게도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내가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입게 됐다”고 말했다. ▲ 12 = 펠레의 월드컵 통산 득점. 그는 총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4경기를 소화하며 12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 17 = 펠레는 역대 최연소인 17세 249일의 나이에 월드컵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이 기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77 = 브라질 A대표팀에서 92경기를 소화한 펠레는 77골로 대표팀 통산 득점 1위에 올랐다. 현재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는 브라질의 네이마르(파리생제르맹)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자신의 A매치 77번째 골을 넣어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 92 = 공식전과 비공식전을 통틀어 펠레가 달성한 해트트릭 수. ▲ 127 = 1959년 펠레는 산투스에서 127골을 넣었다. 이는 한 선수가 단일 클럽에서 1년간(1∼12월) 기록한 최다 득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 643 = 펠레는 산투스에서 659경기에 출전해 643골을 넣었다. 2020년 12월 스페인 FC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리오넬 메시(파리생제르맹)가 이 기록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단일 클럽 최다 골’이었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공식전 672골을 넣었다.▲ 757 = 펠레가 브라질 대표팀과 클럽팀 공식전에서 넣은 득점은 757골로 알려져 있다. ▲ 1283 = 브라질 축구협회와 펠레, 그의 소속팀이던 산투스가 주장하는 득점 수는 757골보다는 훨씬 많은 1283골이다. 여기엔 친선경기와 투어 경기 득점도 상당수 포함된 데다 오래된 기록들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펠레의 득점 기록을 놓고는 이견이 있는데, FIFA는 1366경기에서 1281골을 넣었다고 집계했다.
  • “천국은 펠레라는 큰 별을 얻었지만 우리는 영웅을 잃었다” 전 세계 애도 물결

    “천국은 펠레라는 큰 별을 얻었지만 우리는 영웅을 잃었다” 전 세계 애도 물결

    82세로 타계한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에 대해 세계 축구계에는 일제히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브라질 축구대표팀 최고의 스타인 네이마르(파리생제르맹)는 펠레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30일(한국시포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펠레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올리며 애도했다. 네이마르는 “펠레 이전에 ‘10번’은 하나의 번호에 불과했다. 어디선가 이 문구를 봤는데, 이 아름다운 문장은 미완성이다. 나는 ‘펠레 이전에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적었다. 네이마르는 현재 브라질 대표팀에서 펠레가 과거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쓰고 있다. 그는 “펠레는 모든 걸 바꿨다. 그는 축구를 예술로, 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어 “펠레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 흑인들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축구와 브라질은 ‘왕’의 덕분에 지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마법은 남을 것이다. 펠레는 영원하다!”고 고인을 기렸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며 여러 기록에서 펠레를 ‘소환’했던 리오넬 메시(파리생제르맹)도 인스타그램에 펠레와 함께 나온 사진을 게시하고 “편히 잠드소서”라고 썼다.포르투갈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는 “영원한 왕 펠레에게 단순히 ‘안녕’이라고 하는 건 지금 축구계 전체를 감싼 고통을 표현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기준이 되는 존재”라고 추모했다. 그는 “펠레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한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타르월드컵 득점왕 킬리안 음바페(프랑스·파리생제르맹)도 “축구의 왕은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바르셀로나)는 “천국은 새로운 별을 얻었고, 축구계는 영웅을 잃었다”는 글과 펠레의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남겼다. 펠레와 미국 뉴욕 코스모스에서 함께 뛰었던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는 “축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잃었고, 나는 가장 특별한 친구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그는 “1977년 미국에 간 건 그와 같은 팀에서 뛰고 싶어서였다. 그와 함께 뛴 건 내 커리어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며 “US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그가 내게 ‘형제’라고 부른 건 내겐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고 떠올렸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은 “그는 사람들이 꿈꾸게 했다. 어린 시절 펠레가 되는 게 꿈이 아니었던 사람이 있었겠는가”라고 고인의 위대함을 표현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월드컵을 든 펠레의 흑백 사진으로 바꾸고, 그의 업적 등을 전했다.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펠레는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한 유일한 선수였고, 그의 기술과 상상력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어떤 선수도 꿈꾸지 못할 일들을 해냈다”고 돌아봤다. 인판티노 회장은 “그의 삶은 축구 그 이상이었다. 그의 유산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며 “우리는 모두 펠레의 육체적 존재를 잃은 것을 애도하지만, 그는 오래전에 불멸의 존재가 됐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축구협회는 “펠레는 역대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 그 이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브라질을 선사했다”며 업적을 기렸다. 펠레가 현역 시절 가장 오래 뛴 클럽인 브라질 산투스는 소셜 미디어에 왕관 사진과 함께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로 펠레를 표현했고, 현역 시절 경기 영상과 ‘킹 펠레,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유럽축구협회(UEFA), 잉글랜드축구협회(FA)를 비롯한 유럽 각국 협회와 구단들도 추모 물결에 동참했다. UEFA는 “펠레는 축구의 첫 번째 ‘글로벌 슈퍼스타’였고,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성장하는 데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펠레를 ‘우리의 스포츠를 초월하고, 놀라운 커리어를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비범한 재능을 가진 선수’로 표현하며 애도 메시지를 냈고,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널 등 각 클럽도 추모의 글을 올렸다. 리버풀 클럽은 그를 축구의 ‘아이콘’으로 불렀고, 스페인 FC바르셀로나는 “펠레가 축구를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칭송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펠레의 부고를 전하며 “축구는 왕을 잃었다”고 했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펠레는 올림픽 가치의 진정한 신봉자이자, 올림픽 성화의 자랑스러운 운반자였다. 그에게 올림픽 훈장을 수여한 건 특권이었다”고 밝혔다.펠레는 올림픽에 출전한 적은 없지만, 1999년 IOC가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를 상대로 한 실시한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투표에서 1위에 오른 바 있다. 그는 자국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건강 문제로 성화 점화 등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브라질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주자 중 한 명으로 나섰다.
  • 내전을 멈추게도 만들었던 축구 황제, 득점 기록은 이견 있어

    내전을 멈추게도 만들었던 축구 황제, 득점 기록은 이견 있어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29일(현지시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소속팀 산투스가 해외 투어의 일환으로 내전 중인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를 방문해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렀을 때 펠레를 보기 위해 48시간 전쟁을 멈췄다는 것이다. 펠레는 1940년 10월 23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소도시인 트리스 코라송이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다. ‘펠레’는 애칭이었는데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스스로도 자서전에다 이름의 의미를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으나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 돈지뉴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축구선수의 꿈을 품었다. 아홉 살이던 1950년 브라질월드컵 결승 라운드 우루과이와의 마지막 경기를 비기기만 해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1-2로 역전패하는 바람에 우승을 놓쳤다. ‘마라카낭의 비극’이었다. 펠레는 라디오 중계를 듣던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고, 아버지를 위해 브라질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키겠다고, 우루과이에 설욕하겠다고 예수상 앞에서 다짐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축구클럽에서 재능을 키우다 아버지의 소속팀이었던 바우루AC의 유스팀에서 뛰게 됐다. 1956년에는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인 바우데마르 지브리투의 추천으로 명문 산투스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열다섯 살 때였다. 1957년 7월 ‘코파 로카’(Copa Roca)란 이름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정규 친선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1-2로 졌으나 펠레는 태어난 지 16년 259일 만에 득점, 지금도 브라질 최연소 A매치 득점자로 남아 있다. 펠레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58년 스웨덴월드컵이다. 월드컵 최연소 득점·멀티골·해트트릭·우승 등 불멸의 기록이 쓰였다. 키 168㎝에 열일곱 살이었는데 옛 소련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르며 환상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세계인의 시선을 붙잡았다. 웨일스와 8강전에서는 1-0 승리를 안기는 결승골을, 프랑스와의 준결승(5-2 승)에서는 해트트릭을, 개최국 스웨덴과의 결승(5-2 승)에서도 두 골을 몰아 넣으며 브라질이 처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앞장섰다. 그의 등번호 10은 에이스의 상징이 됐다. 유럽 명문 클럽의 유혹이 쏟아지자 1961년 브라질 정부는 ‘국보’로 정해 국외 진출을 막았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본선까지 네 대회에 연속 출전해 14경기를 치르며 12골을 넣었다. 브라질은 1962년 칠레월드컵에서는 펠레가 부상으로 두 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대회 2연패를 이뤘고, 1970년 다시 정상에 올랐다. 세 차례나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펠레뿐이다.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살인적인 태클로 펠레가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브라질은 4대회 연속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을 수도 있다. 그의 부상을 계기로 1970년 월드컵에서는 레드·옐로카드 및 선수 교체 제도가 도입됐다. 펠레는 1971년 7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 친선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A매치 통산 기록은 92경기 77골이다. 브라질 국가대표 통산 최다 골 기록으로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가 올해 카타르월드컵에서 펠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펠레가 뛴 경기에서 브라질은 67승 14무 11패의 성적을 냈다. 1974년까지 줄곧 산투스에서만 뛰면서 660경기에서 643골을 뽑았다. 단일 클럽 최다 골 기록이었으나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바르셀로나(스페인) 소속이던 2020년 12월 이 기록을 넘어선 뒤 778경기 672골로 늘렸다. 펠레는 1975년 북미사커리그(NASL)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해 1977년까지 세 시즌을 더 뛰었다. 그의 득점 기록에는 이견이 있다. 산투스는 펠레의 통산 득점을 세계 기록인 1283골(1364경기)이라고 주장한다. 산투스에서도 1091골을 넣었다고 집계한다. 하지만 친선경기와 투어 경기 득점이 상당수 포함된 데다 정확성이 떨어져 산투스, 뉴욕 코스모스, 브라질 대표팀에서 뛸 때 작성된 757골이 국제스포츠통계재단(RSSSF)이 인정하는 펠레의 공식전 총 득점이다. 축구 역사에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받지만, 본인은 자서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했다. 산투스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인 인터콘티넨털컵과 남미 클럽대항전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두 차례씩 우승했다. 브라질 1부리그에서 6회 우승과 득점왕 3회를 차지했고, 상파울루주 리그에서는 10회 우승 및 득점왕 11회를 달성했다. 은퇴 후에도 축구해설가, 친선대사 등으로 활동했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최초의 흑인 장관으로 1995년부터 3년 동안 일했다. 그는 장관으로 자유계약선수제 확대, 심판이익단체 결성 허용, 축구협회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리그 창설 등의 내용이 담긴 브라질축구 개혁법안, 이른바 ‘펠레법’을 마련했다. 펠레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는데도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뽑혔고, 그 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축구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인 고(故) 디에고 마라도나 등과 함께 함께 2000년 FIFA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 손흥민 유니폼 등 축구 국가대표 기념품 천안으로

    손흥민 유니폼 등 축구 국가대표 기념품 천안으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에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과 축구공이 충남 천안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천안시는 22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친필 사인한 유니폼과 축구공을 기증받았다. 이날 기증받은 기념품은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의 환영 만찬에서 전달된 기념품과 같다. 축구공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FIFA로부터 연습을 위해 받아 사용하던 40개 볼 중 1개로 선수들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친필 사인이 새겨진 대표님 유니폼과 함께 이번 월드컵 대회에 손흥민 선수에게 제공했던 등번호 7번의 유니폼도 눈길을 끌었다. 기념품은 시민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시청사 로비에서 일정 기간 전시를 거쳐 천안시가 건립을 추진하는 ‘축구 역사박물관’에 보존하고 전시할 수 있도록 관리된다. 박상돈 시장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기념품. 대한민국 축구 140년 역사를 체계적으로 조망하게 될 ‘축구 역사박물관’ 건립에도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천안시와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월 ‘축구 역사박물관’ 건립 및 운영에 관한 업무 협약을 맺고 유물확보와 전시 운영 등의 협력에 나섰다.
  • 메시 유니폼, 프랑스 술집 발 매트로 등장…과격 팬들의 ‘뒤끝’

    메시 유니폼, 프랑스 술집 발 매트로 등장…과격 팬들의 ‘뒤끝’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의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발 매트로 사용한 프랑스의 한 술집이 보인 행태가 논란이다. 아르헨티나 방송 ‘Tyc Sports’등 다수의 매체들은 프랑스 파리의 한 술집 입구에 메시의 유니폼이 발 매트로 놓여있는 것을 확인, 결승전에서 패배한 프랑스 일부 과격 팬들이 메시를 향해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메시 이름과 등 번호가 적힌 유니폼이 술집 입구 바닥에 놓여있었다. 메시의 이 유니폼은 술집을 찾아오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밟고 지나갈 수 있는 입구 정면에 놓인 것. 또, 유니폼 옆에는 ‘술집에 들어오기 전, 신발을 닦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이 같은 논란을 부추겼다.뿐만 아니라,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패배가 확정된 직후 일부 프랑스 팬들은 광장에 운집해 아르헨티나 국기를 불태웠고, 또 다른 팬들은 메시 유니폼과 사진을 찢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일부 급진적 성향의 프랑스 팬들은 메시의 소속팀이 프랑스리그1에 소속된 프로 축구클럽 파리 생제르맹FC라는 점을 상기하며 “메시가 계속 이 팀에 소속돼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팬들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메시는 프랑스 축구팀에서 뛰면서 막대한 연봉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막는 주역이 됐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영웅이 됐다. 이게 맞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팬들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 상당수 축구팬들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가 크로아티아를 꺾고 우승했을 당시를 대조하며 “당시 크로아티아 팬들이 음바페 선수의 유니폼을 발로 밟고, 프랑스 국기를 훼손한 적이 있었느냐”면서 “이런 식의 과격한 반응이야 말로 진정한 패배자의 모습이다”는 등의 정반대의 반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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