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수첩」 열쇠 쥐고 있다/「유서 진위파문」 수사의 언저리
◎6가지의 김·강씨 필적감정/“정황증거도 있다” 자신감/검찰/감정엔 원본 필요… 성격등도 판명 가능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는 과연 누가 쓴 것일까.
검찰이 문제의 유서필적이 김씨의 것이 아니라고 발표하자 온통 세인의 관심이 이곳에 쏠리고 있다.
검찰이 유서작성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측은 『검찰이 진상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이 찾고 있던 김씨의 수첩을 검찰에 제출,이 수첩이 사건해결의 중요한 열쇠로 등장했다.
이 수첩을 접수한 검찰은 다시 『수첩의 필체가 강씨의 것과 비슷하다』며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정을 의뢰하면서 문제해결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강씨측도 이날 『김씨의 또다른 필적이 발견됐다』고 공개하는 등 검찰발표를 반박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 같은 공방은 그 결론에 따라 검찰이든 「전민련」으로 대표되는 재야 쪽이든 어느 한쪽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강력부는 그 동안의 수사에서 ▲김씨의 유서 ▲홍양의 메모지 ▲김씨의 주민등록증분실신고서 ▲김씨가 누나에게 선물한 책과 카드의 필적 ▲강씨의 경찰자술서 ▲강씨가 김씨에게 건네준 「정세연구」 책자필적 등 6가지 필적을 감정,명백히 필적이 다른 점과 같은 점을 확보한 상태여서 일단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듯 보인다.
검찰은 이와 함께 김씨의 수첩에 대한 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것은 이 수첩이 지난 8일 김씨의 분신자살 직전 친구 홍 모양을 통해 「전민련」에 넘겨졌으나 검찰의 수차례 제출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에서야 검찰에 제출돼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수첩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전민련」측이 복사해 나누어 보다 복사본을 찢어버린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건네받은 원본에는 이것이 없었던 점으로 보아 이 역시 단기간에 조작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관건이 되는 필적감정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신력을 갖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맡고 있어 이에 대한 진위여부의 시비는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필적은 동일인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다소 모양새가 변하기도 하나 글씨의 시작과 끝맺음,연필에 가하는 압력에 따른 글자 각도,흘림체의 연결모양 등에서 특징이 남아 있어 금세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말이다.
감정과정은 반드시 원본을 이용,확대해 살펴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글씨쓴 사람의 성별 성격 체격 나이 등도 가려낼 수 있다는 것.
감정결과는 「동일감정」과 「감정불능」 두 가지로 나오는데 이때 「감정불능」은 감정을 할 수 없다는 뜻과 동일인 필적인지를 알 수 없다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이번 수사에서 김씨의 유서와 홍양이 지녔던 메모지,강씨의 진술서 등은 감정결과 「동일필적」으로 나왔고 김씨의 필적과 유서의 비교에서 「감정불능」의 판정이 나왔었다.
검찰이 이제까지의 수사에서 확신을 갖고 조사해온 까닭은 이 필적 말고도 여러 가지 정황증거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김씨의 유서내용과 홍양의 메모지 내용 가운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김씨의 유서는 『아버지,어머니』로 시작해 『기설』로 끝을 맺고 있으나 김씨가 여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줄곧 누나가 키워오며 학비 등을 대왔음에도 누나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점 등이 유서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유서 뒷장에 쓰인 재야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전자기술학교를 중퇴한 김씨로서 많은 사회서적을 읽었더라도 격에 맞지 않는 전문단어들이 등장한 것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은 이 유서가 김씨가 불러준 것을 누가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김씨의 의사와는 전혀 달리 운동권에 깊숙이 개입된 제3의 인물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양이 지녔던 메모지 내용도 또한 검찰을 의심케 했던 부분이다.
검찰은 지난 1월 강씨의 소개로 만난 김씨와 홍양이 불과 3개월밖에 안된 사이에 메모지 내용만큼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는가를 의심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으로 강씨가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로 필적감정에 성과를 거두어온 반면 재야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반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지난 19,20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강씨는 『이번 수사는 전혀 사실과 다른 악의에 찬 날조』라면서 『가속화하고 있는 민주화요구로 궁지에 몰린 현정권이 치졸한 조작극을 벌인다』고 비난하고 나서는 차원에 머물렀다.
강씨는 또 자신의 필적을 부인하면서 지난 87년 옥중에서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모 언론기관을 통해 감정을 의뢰했으나 결과는 아직 안 나온 상태다.
아무튼 검찰의 수사로 강씨의 자살방조나 교사가 밝혀질 경우 법정에서의 증거능력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동안 시위를 주도해온 「전민련」 등 재야의 위상을 크게 흔들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