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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꿩의 보금자리/이춘규 논설위원

    1970년대 끝자락 겨울. 대학에 다니다 입대하기 위해 잠시 고향에 머물렀다. 동네 악동들과 어울려 가끔 객기를 부렸다. 혹한기 훈련에 대비한다며 저수지 물을 빼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다. 밤엔 소나무에서 잠자던 꿩을 잡아 야식을 했다. 잠자는 꿩은 불빛을 들이대면 꼼짝 못한다. 그러면 적절한 수단을 써 잡았다. 31년이 흐른 겨울날 초저녁. 도심 한복판 아파트 단지 큰 나뭇가지 위에 꿩 네 마리가 앉아 있다. 통통하다. 닭들이 닭장 속 홰 위에 앉은 모습이다. 잠자는 것 같다. 그곳에서 계속 잠을 잘까.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 봤다. 네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자고 있다. 이후 잠자는 꿩의 모습은 혹한을 잊게 했다. 거의 매일 수마리가 나무를 옮겨 가며 잠잔다. 낮엔 인근 미군부대에서 지내다 밤에는 까치·비둘기 등도 많이 자는 단지 내 숲으로 날아든다. 해치려는 사람이 없으니 귀한 꿩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31년 세월이 악동들의 사냥감 꿩들을 도심 속 소중한 생명체로 탈바꿈시켰나.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기록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상식’에 거침없는 메스를 들이댔다.  장 교수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며,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편다면 성장여력도 충분하다.”면서 “한·미 FTA가 오히려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파헤친 ‘상식의 오류’를 주제별로 질문·답변 형식으로 구성했다.    ●고도성장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에서 보듯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와 체감이 괴리되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도 많다. 일각에서는 ‘통큰치킨’ 논란에서 보듯 과거 과감한 설비 투자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던 재벌기업이 이제는 중소 자영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한국경제가 성장여력을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부에선 끊임없이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보인다’ 하는 비관론을 펴면서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단순하게 말한다면 성장동력을 찾기 귀찮으니까 자꾸 그런 얘길 하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게 맞다. 만약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둔화되는 것이라면 그 추세가 완만해야 하는데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6% 정도였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추진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증거다.  ‘중국이 쫓아온다’는 샌드위치론도 말도 안되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와 제일 못하는 나라를 빼고는 세상 모든 나라가 언제나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이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태국은 1990년대까지 노동집약을 무기로 한국을 추적했지만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임금이 낮은 대신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인 임금 수준도 낮고 기술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 끝났다고 볼 게 아니다. 왜 쫒아오는 국가만 걱정하고 도망가는 국가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추적 때문에 이제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지만 그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단단히 똬리 틀고 앉아 있다. 금융업이 겉보기엔 좋아보여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융혁신이란 사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말 심각하게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수십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게 지금처럼 적당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 하는 생각하니까 자꾸 제조업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결국 설비투자하고 기술개발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성장동력 없어진다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언제는 경제여건이 쉬워서 경제발전했나? 언제는 선진국들이 낮잠 자는 틈에 경제성장했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된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60년대 포항제철 건설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세계가 다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해냈다.        ●경제성장을 위해 한미 FTA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 등 적극적인 FTA 정책을 추진하면서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체결하는 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서로 시장도 커지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수준에서 차이가 큰 나라와 FTA를 하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도 그렇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한국이 미국이나 EU와 FTA를 한다면 자동차나 전자 등 일부 분야는 이득을 좀 볼지 모르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등에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비롯해 한국이 GDP 4만불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언제는 FTA 덕분에 고도성장했나.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기를 쓰고 기술개발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FTA가 갖는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글을 읽어봐도 한미FTA가 경제성장에 미미한 도움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FTA 타결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2% 증가라고 했다가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비판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6%로 전망치를 바꾼 전례가 있다. 경제학 예측에서는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고 어떤 모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조차도 한미FTA 명분으로 삼기엔 한참 부족하다.        ●기업자금조달 위해 주식시장 활성화해야 한다?    ▶돈줄이 막혔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이 이뤄지지 않고 과거 개발 독재 당시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간접금융방식도 없어진 지금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외환위기 이전 방식은 은행중심 경제 시스템인 반면 지금은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이다 (@@@)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되돌리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좋은 게 있으면 되살려야 한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은행중심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은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대출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총대출금 중 8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몇 년만에 가계대출이 85% 정도가 돼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 은행들은 엄청나게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차압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쉽게 돈벌게 해줘선 안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한국의 투자자본 조달에서 주식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로 영국(7.0%)이나 미국(-4.9%)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돼 버렸다. 이제는 대기업조차 과거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몰려왔다 나가는 과정에서 거시경제까지 불안해진다. 이제는 M&A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포이즌필이나 스웨덴·벨기에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독일식으로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골고루 참고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해야 겠지만 기존 선진국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정책은 관치경제다?    ▶과거처럼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했다. 이에 대해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선별적 정책이 나쁘다는 얘길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도 항상 선별을 한다. 모든 계열사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 정부가 선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책목표에 따라 지원방식이나 지원방향은 달라지게 돼 있다. 개입 방식도 은행을 통할수도 있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대규모 조립가공산업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대기업에게 은행대출을 집중해줬다. 지금 단계에선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물론 초기자본이 많이 필요한 에너지 같은 분야는 대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현재 대기업이나 수출 기업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제도적 대안이 절실해 보인다.  -1966년 상위 10대 재벌 중 세 곳만이 1974년 상위 10위 안에 남았다. 1974년 상위 10위 기업 중에서 1980년에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은 5곳에 불과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런 구조변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는 몇 가지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쟁 상대가 될 만한 기업이 성장하는 걸 막는다거나, 하청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납품단가를 깎아서 싹을 잘라 버리는 행태가 존재한다. 규제를 통해 그걸 막아야 한다. 단순히 ‘상생하자’고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이 잘 이뤄지는데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게 아니다. 정부가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규제를 강화해서 대기업 행태에 제동을 건 덕분이다.  그 다음에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게 부품소재 산업이다. 우리나라 무역적자 가운데 일본과 무역하면서 발생하는 적자가 제일 많은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산업에서 경쟁력이 없어서 발생한다. 더구나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품소재 수입의존도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어림없다. 문제는 부품소재산업은 고도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보거나 중소기업들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고급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서 꼭 개발해야 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기술개발하도록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세번째, 정치적 차원을 봐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지만 한국은 양상이 더 심각하다.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과거 사회통합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복지제도에 제약이 많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편 정책이 바로 특정 영역에서 대기업에게 진입 규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 식당이나 치킨집이 그렇게 많은 것도 과거 그런 방식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 유지를 도모해준 덕분이었다. 이게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해왔는데 그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재벌들이 특정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서비스업이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데 재벌이 진출하면 생산성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처럼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죽기살기로 저항하고 결국 생산성도 못 높이고 갈등만 첨예해지는 것이다. 내 주장은 차라리 대기업에게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그 재원으로 기본생활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식으로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기업들은 세금도 내기 싫고 옛날처럼 사업규제를 받기도 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은 척결대상이다?    ▶민주화 이후 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과 개발계획은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받으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대세가 됐다. 이를 꾸준히 비판해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정희 독재시대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 박정희가 잘했단 말이냐’ 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아직도 군부독재의 망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건 잘했지만 이런건 못했다는 걸 용납을 못하는 자세, 그런 이분법이야말로 박정희와 그 이후 군사독재가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그건 마치 북한에 대해 한 가지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친북 낙인을 찍는 식이다. 그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성공’을 말하는 건 독재를 찬양하는게 결코 아니다. 사실 민감한 문제라는 건 잘 안다. 당시 투옥되는 등 피해를 본 분드링 많다. 선뜻 용납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이분법을 극복할 때만이 군부독재 유산이 청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위해 주주중심 경영해야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극히 일부 주식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꾸준히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참여연대 등이 벌인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최근 ‘회사 돈 빼돌리는 총수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일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재벌 총수의 횡령을 막자는 걸 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건 소액주주운동은 국제적 맥락에서 봤을 때 주식으로 돈을 버는 펀드매니저들이 ‘우리도 끼워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주주자본주의와 소액주주운동이 강화됐는데 그 이후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에는 전문경영인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소액주주운동의 명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연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써서 재벌을 비판하니까 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주주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한 건데, 박정희 문제 못지않게 재벌문제도 민감하니까 재벌옹호론자로 오해를 산다. 내 입장은 참여연대가 좋은 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로운 논리를 정의로운 논리로 잘못 인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적대타협은 물넌거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통해 국가·자본·노동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달성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 제안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현실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 얘길 처음 했던 때는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식하고 재벌조차도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던 때였다. 지금은 그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재벌들 자체도 금융자본화 경향이 가속화됐고 정부도 그런 흐름에 동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6년 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복지국가를 목표로 제시했을 때 개혁·진보진영에서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복지국가는 기본 전제로 깔고 방법론을 갖고 논쟁하고 있다. 그걸 지렛대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당시 구상했던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겠지만 정신 자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계속 바뀌는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벌들 예뻐서 이러는게 아니다. 지금같은 식으로 그냥 놔두면 재벌들이 제조업은 버려둔 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거나 외국 금융자본에게 다 먹히게 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자본의 출처가 러시아 마피아인지 이탈리아 마피아인지도 불분명한 투자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누구와 싸워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정씨 재벌 이씨 재벌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과 싸우는게 낫다. 자본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재벌들과 타협하는게 낫다. 재벌들 미우니까 재벌 해체하고 외국자본 들여와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다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 가로막는다?    ▶‘더 나은 자본주의’로서 ‘복지국가’를 강조하기만 그 길로 가기 위한 ‘동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주체 혹은 동력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시나리오를 얘기해주길 바라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동력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이라고밖에 얘길 못하겠다. 현실적 조건을 봐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복지국가 담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치세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이 스웨덴처럼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도는 나라도 아닌 상황에서 노동 중심으로 복지국가 하자고 해서는 얘기가 먹히질 않는다. 특정집단이 논의 끌어갈 상황이 아니고, 둘째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주체다 하는 식으로 얘길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진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마음만 바꾸면 안 될 일도 된다는 점이다. 그게 민주국가가 위대한 점 아니겠는가.        ●복지정책은 빈곤층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    ▶무상복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3+1 복지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포퓰리즘과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일단 ‘무상’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다. 반면 의무급식에 대해 ‘부자복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부자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니까 부자들도 엄연히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부자복지’를 문제삼으려면 왜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용어 문제를 빼고 민주당이 내세우는 3+1 복지정책은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나는 보편적 복지확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은 빈곤층을 대상으로한 복지정책만 얘기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결국 부자한테 돈을 뺏어서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미국처럼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조세저항만 높아지게 된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복지를 잘해야 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가령 복지가 안 돼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성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와 법대로 몰리면서 이공대 기초학문 분야가 어려움에 빠졌다. 복지제도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지가 안되니까 저출산문제가 가중되고, 복지가 안되니까 자녀들에게 엄청난 사교육을 시키려는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 복지가 안되니까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        ●대처 총리가 영국병 고쳤다?    ▶영국은 석유산업과 금융업, 프리미어리그를 빼고는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대처 총리의 감세와 복지지출 삭감 등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논거로 자주 거론된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영국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장근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이 ‘대처리즘’을 많이 얘기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영국병’이란 것은 영국병이란 건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영국병은 실체도 없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당장 경제성장률을 보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영국 경제성장률이 1인당 2% 안팎이다. 대처 총리 등장 이후인 1990년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2%이다. 변화가 없다.  대처가 과감하게 복지 삭감했다거나 세금을 엄청나게 깎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대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봐도 복지지출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최고소득세율을 엄청나게 깎은 건 맞지만 그건 극히 일부 고소득자에게만 해당될 뿐이고 또 간접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세수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특별히 더 작은 정부가 된 것도 아니다.  대처가 노조를 꺾고 세금은 깎고 금융업 키운 것을 두고 영국을 살렸다고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처야말로 영국병의 원인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가장 뒤진 철도시설과 설비투자 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도 대단히 악화됐다. 영국의 소득분포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율이 1975년에 5.37%였는데 1998년에는 9.57%가 됐다. 대처 총리 정책으로 제조업은 다 무너지고 금융 분야만 강해졌지만 그마저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은 지금 앞으로 뭐 먹고 사나 걱정하는 신세다. 물론 대처 이전에 영국 노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산업별 노조가 아니라 직능별 노조가 많다보니 한 직장에 노조가 대여섯 개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경영진이 노조들과 협상을 마무리해도 노조 하나만 거부해도 파업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노조가 강했을 때와 노조가 약해진 이후 경제성장률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처가 노조를 희생양삼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책 속표지에 쓴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모가 화제다. 이 메모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것 두세 가지를 꼽아달라.  -먼저 우리나라에 우선 한정시켜 보자면,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세계 1위 (최소한 OECD 1위)를 하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 주당 노동 시간, 복지 지출(OECD 꼴찌에서 2위, 꼴찌는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 되는 멕시코) 등 분야에서도 앞으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정말 깨질 것 같지 않던 한국의 남아선호 현상이 깨진 것을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꼭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전에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이야기했듯이 선진국이 후진국을 압박하는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지금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선진국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후진국 지위를 방금 벗어나 아직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두 세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 문제에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는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경제학은 계량분석만 잘하면 된다?    ▶한국 사회과학계는 미국식 영향으로 계량분석에만 치중하면서 현실 현실 설명력을 잃고 대중들과 괴리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고민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온다. 너무 수학이나 통계 쪽으로만 발전하니까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긴 하는데 왜 배우는지 잊어버린 셈이다. 영미 경제학계에서도 교육방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계량분석만 배워서는 나중에 길을 잃어버린다. 뭘 배울지 목표를 정하고 큰 그림을 배우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테크닉만 배우니까 그것에 빠져 버리는거다.    ▶그동안 제도경제학에 입각해 한국과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천착해 왔다. 한국에선 낯선 분야인 제도경제학을 소개해달라.  -쉽게 말해 ‘덜 추상화한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경제학은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논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경제학은 현실을 좀 더 복합적인 제도의 망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기업을 놓고 보면 국가별 차이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직형태나 사회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고 접근한다. 역사적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현실을 봐야지 이론만 보면 상상력을 제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드는 예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고 대부분 주택을 국가가 공급하고 GDP에서 공공부문 비중도 엄청나게 크다. 어떤 단일한 경제이론으로도 싱가포르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지 않으면 특정 이론에만 빠지게 되고 그런 눈으로 싱가포르 보면 제대로 설명을 못하게 된다.  사실 제도경제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제도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대단히 범위가 넓다. 일반적인 흐름은 제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제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 미치는가를 많이 보려고 한다. 개인은 물론 자유의지가 있고 개인 선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영향 미치는 건 어떤 제도적 환경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덴과 한국에서 똑같이 정부 역할 축소를 말하더라도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관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일본 신용강등 파장] 복지확충 ‘빛나는 코리아’… 稅부담 외면땐 ‘빚더미 코리아’

    [일본 신용강등 파장] 복지확충 ‘빛나는 코리아’… 稅부담 외면땐 ‘빚더미 코리아’

    일본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국가신용등급이 한단계 하향조정되면서 우리나라도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의 나랏빚 증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무상 복지 논쟁이 정책에 반영될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신용평가기관인 S&P가 27일 일본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한 데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일본과 미국의 적자감축 부진을 경고하고 나섰다. 또 다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도 앞서 일본에 이어 이날 미국에 대해서도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내비쳤다. IMF는 14개 주요국 재정 및 공공채무에 관한 보고서에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과 미국이 시장의 호의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2011년 이후까지 이행될 신뢰 있는 재정감축 계획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일본은 현재 사상 최고 수준의 재정적자와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나랏빚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설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채와 차입금, 정부의 단기채권을 합한 일본의 전체 국가채무는 올 연말 GDP 대비 204.2%로 악화되고, 내년에는 210.2%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0년도 말인 올해 3월 말에 비해 1년 만에 54조 6036억엔이 증가하는 것이다. 일본의 2011년도 일반회계 예산은 92조 4000억엔이지만 세수는 40조 9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공기업의 특별회계 잉여금 등을 모두 긁어모아도 재정부족분을 메우려면 44조 3000억엔의 국채를 새로 찍어야 한다. 이처럼 일본의 국가 부채비율이 높은데도 국가신용등급이 ‘AA’를 유지했던 것은 국채 대부분을 일본의 가계와 기업들이 사들였기 때문이다. 외국의 일본 국채 보유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1인 가구를 제외한 가구당 저축액은 2009년 11월 말 현재 1521만엔(약 2억원)으로 직전 조사(2004년) 때보다 35만엔(2.2%) 감소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자) 700만명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내년 이후에는 연금 부담도 급증할 전망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28일 “현재는 괜찮다.”고 말한다. 지난해 나랏빚은 394조 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4.2% 수준이다. 2009년 나랏빚은 359조 6000억원으로 GDP 대비 33.8%였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높은 변동률을 보이다가 2003년 21.6%로 20%대에 올라선 뒤 2006년 31.1%로 처음 30%대를 넘어섰다. 2007년 30.7%, 2008년 30.1%로 다소 줄어드는 듯했으나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GDP 대비 나랏빚 비율은 198%로 추정된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129%) 및 아일랜드(104%)보다 높다. 일본은 2006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 재정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현재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026년에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고령화 문제는 일본과 비슷하겠지만 규모는 일본보다 좀 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박 센터장은 “복지 문제를 재원문제와 함께 다루고 조세부담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세부담률을 GDP 대비 20.5%로 유지할 경우 2050년에 GDP 대비 나랏빚은 116%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사회복지분야 지출이 GDP 대비 2009년 9.4%에서 2050년 22.3%로 급증하는 것이 주 원인이다. 지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나랏빚 비율이 양호하지만 재정악화 속도가 빨라 2050년에는 그 격차가 사라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백웅기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부담률을 높이지 않고 복지 지출 비용이 무상복지 등으로 인해 늘어날 경우 국가 부채가 늘어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신중론을 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당시 잘못된 신용등급 평가로 된서리를 맞은 신용평가기관들이 각 나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조세부담률을 크게 높일 가능성은 적다.”며 정부의 철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일본의 신용등급 강등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국가채무 과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그동안 엔화가 워낙 강세였기 때문에 수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본의 신용등급 하향으로 엔화 약세 압력이 강해지면서 그동안 수혜를 누렸던 국내 수출산업, IT, 화학, 조선, 자동차 업종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경하·황비웅기자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언어목록/주병철 논설위원

    지인이 느닷없이 물었다. 언어목록이 뭔지 아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니 다른 사람과 소통은 잘하느냐며 핀잔을 준다. 인터넷을 뒤져봤다. 언어목록의 사전적 의미는 가나다순, 또는 사용 문자의 목록을 뜻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인이 말한 언어목록의 의미는 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마다 각자가 자주 쓰는 독특한 언어 영역이 있단다. 그 영역이 그 사람만의 언어목록이라는 것. 그런데 계층별, 남녀노소별로 구사하는 언어 영역은 천차만별일 터. 기성세대의 언어목록에는 한자나 진부한 단어 등이 두드러지고, 젊은 세대는 ‘인터넷 용어’가 많을 게다. 연령대와 학력, 직업, 성별, 지역, 성격, 기호 등의 정보가 가득 담겨 있는 게 언어목록이란 얘기. 그래서 누구와 소통을 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언어목록을 꼭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젊은 층과 대화할 때 노년층의 언어목록을 들이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소통에도 꽤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싱글 라이프] 스마트 혁명 만능인가 시대 필수품 족쇄인가

    [싱글 라이프] 스마트 혁명 만능인가 시대 필수품 족쇄인가

    직장인들이 빽빽이 들어찬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손에 든 소설책과 신문, 귀에 꽂은 MP3 플레이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 되는 것 빼고 다 된다.’는 스마트폰이 이들을 ‘점령’했기 때문. 작고 네모난 작은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는 수백 가지의 기발한 ‘애플리케이션’(앱)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이 어느새 유행을 좇고 정보에 민감한 이들에게 필수품이 됐다. 반면 365일 24시간 나를 노출시키고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스마트폰이 피곤하다는 사람들의 한탄도 나온다. 두 얼굴의 스마트폰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스마트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상천외 없는 게 없는 무궁무진 앱의 세계 지난해 11월 국산 스마트폰을 구입한 대학생 장현석(26)씨는 이후 스스로를 ‘게임 종결자’가 됐다고 말한다. 평소 노트북으로 각종 온라인 게임을 찾아 즐기는 장씨는 스도쿠 게임, 플래시 게임 등을 하다 밤을 꼬박 새운 뒤 부랴부랴 등교하기도 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장씨는 이제 각종 게임 앱을 다운받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갖 게임을 즐기고 있다. 장씨가 요새 빠져 있는 게임은 ‘동물퍼즐천국’. 여러 동물들의 얼굴이 빼곡히 차 있는 화면에서 같은 동물들을 3마리 이상 한줄로 배열하면 사라지는 게임이다. 장씨는 틈만 나면 동물퍼즐천국을 실행해 손가락으로 부지런히 화면을 두드린다. “단순한 게임이라 더욱 중독성이 강하더라고요.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게임에 푹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장씨는 게임 때문에 실수도 많이 했다. 장씨는 “지하철을 탔다가 원래 목적지보다 세 정거장이나 더 가서 내리기도 하고, 버스 정거장에서 게임을 하다 버스를 두 대씩이나 놓친 적도 있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초보 교사인 윤지민(26·여)씨가 요새 푹 빠져 있는 앱은 ‘P 얼굴인식’. 자신과 가장 닮은 연예인을 찾아주고 생김새가 얼마나 비슷한지 퍼센트로 수치까지 나타내주는 앱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얼굴인식을 해 보자고 카메라를 얼굴 앞으로 들이대는 통에 알게 됐다. 평소 눈도 작고 스스로를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셀카’를 잘 찍지 않았던 윤씨지만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심 미모로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 나올 확률도 기대했다. 방 안 스탠드 아래서 조명을 한껏 받고 찍은 사진을 얼굴인식 앱에 입력한 결과… ‘탤런트 문근영과 80% 일치!’ 문구가 뜨는 순간 윤씨는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 문근영의 팬은 아니었지만 큰 눈과 귀여운 외모의 문근영과 80%나 닮았다는 데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윤씨는 당장 화면을 캡처해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블로그에 전송했다. 생각보다 효과는 컸다. 사진을 본 일본과 중국 남성들이 친구 추가를 요청해 왔다. 윤씨는 “예쁜 여자 연예인을 닮았다는 게 사람을 이렇게 기분 좋게 할 줄 몰랐어요. 나도 꾸미면 예뻐질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손연경(27·여)씨가 좋아하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고양이 앱이다. 혼자서 놀기에 심심할 땐 고양이를 불러내 노래를 부르고 잠시 후 고양이의 입을 통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다시 들으며 웃기도 한다. 자기 최면을 걸고 싶을 때는 “연경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는 말을 고양이에게 되풀이하게 해 스스로 만족하기도 한다. 손씨는 “혼자 있어도 이 앱 때문에 무료하지 않게 보낸다.”며 미소 지었다. 스마트폰 실시간 채팅 앱… 회의까지 진행 “친구들이 카카오톡으로 약속을 정하고 저만 장소를 통보받을 때 스마트폰이 없어서 참 불편하구나 느꼈어요.” 대학생 이유라(24·여)씨의 휴대전화는 과거 한창 유행했던 까만색 슬라이드폰이다. 2007년 7월에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이씨의 휴대전화는 여태 한번도 고장이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함을 자랑한다. 손에도 익어 작동이 편하지만 이씨도 최근 들어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주위 친구들이 전부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 자신만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며칠 전 학교 친구들과 개강 전 시간표를 함께 짜기 위해 만나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정한 약속장소와 시간을 이씨에게는 달랑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친구들은 스마트폰 앱 중 하나인 실시간 채팅 앱 ‘카카오톡’을 이용해 이미 약속을 다 정한 것이다. 이씨는 “친구들끼리 실시간 채팅을 하면서 장소를 잡는데 저는 거기에 낄 수가 없잖아요.”라면서 “일일이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면서 물어보는 것보다 채팅이 훨씬 편하겠죠.”라며 울상을 지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학생 한선아(23·여)씨는 카카오톡 없이는 과제 해결이 어려울 정도다. 과제를 위한 조 모임을 카카오톡에서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에 개설된 채팅방에 조원들이 한데 모여 문자로 회의를 진행한다. 문서를 공유할 일이 있으면 문서를 띄워 놓은 노트북 화면을 카메라로 찍어 채팅방에 올린다. “이렇게 기가 막힌 방법이 있다니 놀랐어요.” 한씨는 바쁜 대학 졸업반에게 ‘카카오톡 조 모임’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취업을 위해 면접도 보러 다녀야 하고 토익 학원도 가야 하니 여러 조원들이 동시에 시간을 내서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스마트폰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조 모임을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퇴근 후에도 업무의 연장… 쉴 틈 없는 보고 “족쇄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내가 어디 있든 다 안다는 느낌이랄까.” 경기 분당에 사는 회사원 신현준(29)씨는 반년 전쯤 “업무에 유용하니 스마트폰 사용을 권장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회사 메일을 연계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등 편리한 기능이 있지만 신씨는 일부러 그런 기능을 활용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회사메일을 보면 편리하긴 하지만 퇴근한 뒤에도 실시간으로 메일을 확인해야 해 회사일을 계속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귀찮더라도 노트북을 켜서 메일을 확인하는 게 더 낫다는 게 신씨의 생각이다. 신씨는 또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뒤 업무강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의 각종 앱과 기능을 사용하면 일은 편하지만 그만큼 신속하게 처리하게 되니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하는 느낌”이라면서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휴대전화를 쳐다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대기업 차장 3년차인 김명규(45·가명)씨에게도 스마트폰은 디지털 족쇄다. 김씨는 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말라는 얘기가 나오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됐다. 터치폰을 사용조차 한 적이 없던 김씨는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는 데만 2개월이 걸렸다. 점차 스마트폰에 익숙해지자 김씨에게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회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회사에서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영업 실적을 보고받기 때문. 또 김씨는 이제 부산에 출장가서도 스마트폰으로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바로 답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씨는 “예전엔 휴대전화로는 인터넷이 안 돼서 회사 메일을 안 봐도 됐지만 이제는 출장 가서도 회사 일을 신경 쓰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윗선에 수시로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김씨는 “편리함 때문에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해 스마트폰이 족쇄가 됐다.”고 했다. 김씨는 “어쩔 땐 회사가 스마트폰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감시하는 건 아닌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없어 괴로워 새내기 회사원 김성준(30)씨는 요즘 동기들이 자기만 빼고 하나둘 스마트폰을 구입하자 울상이다. 혼자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것 같아 소외감도 컸다. 특히나 출퇴근길 지하철을 탈 때면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빠른 길을 찾거나 소설을 읽는 등 시간을 활용하는 것 같은데 혼자서 그냥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민망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크게 난감했던 일이 생겼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와 종로에서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영화를 잘못 예매하는 바람에 취소해야만 했던 것.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바로 예매 취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둘 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아니라 김씨는 PC방을 찾아 종각역 부근에서 30분을 헤맸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바로 다른 영화를 예약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렵사리 찾게 된 PC방에서 가까스로 영화를 취소할 수 있었지만 김씨는 “스마트폰이 없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면서 “스마트폰을 이래서 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를 계기로 고민 끝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의 위약금 40만원을 내고 다음 주에 스마트폰을 구입할 계획이다. 김양진·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정부청사 일회용컵 없애기 ‘용두사미’

    정부청사 일회용컵 없애기 ‘용두사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18일 환경부와 손잡고 일회용컵 없는 매장 만들기를 선언하면서 한때 떠들썩하게 전개됐던 관가의 ‘일회용컵 없애기’ 운동의 실효성 여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서울신문이 18일 세종로·과천·대전 정부종합청사를 대상으로 ‘종이컵 없는 청사’ 시행 여부를 파악한 결과 시도는 있었으나 성과는 거의 없는 일회용 정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청사가 일제히 ‘종이컵 없는 청사’ 만들기를 시도한 것은 2009년 5월. 환경부가 ‘일회용품 줄이기 추진계획’ 권고 공문을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에 띄우면서부터였다. 당시 환경부는 자원절약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해 공공기관의 상주 직원들에게 개인용 다회용컵(머그잔)을 사용하고 방문객용으로도 다회용컵을 비치하게 하는 실천수칙을 마련했다. 단,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종이컵은 회수대를 설치해 철저히 재활용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캠페인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경우는 전 직원들에게 다회용컵을 일괄 지급하기도 했다. 캠페인 이후 청사 내 상주 직원들의 다회용컵 보유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당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법무부의 경우는 본부 직원 760명 가운데 570명(75%)이, 지식경제부는 전체 811명 가운데 750명(92%)이 다회용컵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종이컵을 다 사용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 부처의 머그잔 보유 실태를 집계 중”이라면서 “우리 부의 경우 일회용 컵 대신 개인컵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국장실의 경우 손님들이 있어 일회용컵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과천 사회부처의 한 사무관도 “처음엔 개인용컵을 사용했지만, 일일이 씻기가 번거로워 일회용컵 사용 횟수가 늘고 있다.”면서 “세제를 이용한 세척으로 물 사용량이 늘어나면 경제적으로는 더 손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세종로 중앙청사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캠페인을 통해 전체 상주 직원(4140명)의 90% 이상이 머그컵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라면서 “게다가 하루평균 1000명이 넘는 청사 방문객들에게까지 친환경 잣대를 들이대는 건 더더구나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로 청사에서는 한때 민원실 등 외부인용 자판기 컵을 다회용 플라스틱으로 대체했으나, 세척과정에서의 위생 논란으로 결국 종이컵을 몰아내지 못했다. 정부대전청사도 마찬가지다. 대전청사는 환경부의 권고 캠페인에 한발 앞서 2006년 자발적으로 일회용컵 줄이기 운동을 펼친 곳이다. 친환경 정책의 하나로 청사 내 자판기와 일부 사무실 컵을 플라스틱 재활용컵으로 바꾸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으나, 위생 및 비용 문제로 얼마 못 가 유야무야됐다. 한편 스타벅스는 25일 서울 매장 29곳을 시작으로 올해 안에 전체 330개 매장 안에서는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금까지는 손님의 취향에 따라 다회용컵(머그잔)과 종이컵을 함께 사용했다. 개인 컵을 사용하는 고객에게는 가격을 300원 할인해 준다. 매장 밖으로 커피를 가져가는 ‘테이크 아웃’ 판매는 현행처럼 일회용컵이 제공된다. 유진상·황수정·박승기기자 sjh@seoul.co.kr
  • 휘발유값 ℓ당 ‘100원+α’ 내린다

    휘발유값 ℓ당 ‘100원+α’ 내린다

    정부가 서민 물가 안정을 위해 불합리한 휘발유 가격을 바로잡기로 했다. 휘발유의 경우 ℓ당 100원대에 이르는 과도한 유통비용(추정 마진)을 줄이고 정유사들이 휘발유 가격을 실제 사 오는 국제유가가 아닌 국제상품가격에 연동하면서 생기는 숨은 마진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ℓ당 10원만 저렴해도 먼 거리 주유소도 찾아가는 서민들의 형편을 고려할 때 원가구조와 유통구조 등에 최대한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의미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4일 과천청사에서 주요 부처 물가 담당자들이 모인 가운데 제1차 서민물가 안정회의를 열고 이 같은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임 차관은 “휘발유 등 석유제품은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물가 인식 바로미터로 국제유가 상승 시 휘발유값이 더 많이 올라가고 유가가 내리면 휘발유값이 더 적게 내리는 가격 비대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식경제부가 중심이 되고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특별 태스크포스를 즉시 구성해 석유 가격에 대한 대책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추정한 정유사의 유통비용은 유가가 배럴당 135.47달러로 최고였던 2008년 5월 넷째 주에 106.39원이었고, 지난달 다섯째 주(유가 102.34달러)에는 102.1원이었다. 유류세 및 관세 증가와 환율 영향으로 유통비용이 다소 줄었지만, 정부는 100원을 넘어서는 유통비용 자체가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석유 가격의 등락과 상관없이 100원 이상의 유통비용을 지속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는지 반문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휘발유 평균가격에 비해 ℓ당 셀프 주유소는 29원, 자가폴 33원, 마트는 76원이나 저렴한 점도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휘발유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정부는 원가구조에서는 업체가 실제 구매하는 국제유가가 아닌 국제상품가격에 국내 휘발유 도입 가격을 연동하면서 생기는 마진폭이 있는지 집중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15일부터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와 경유를 모두 리터당 20원씩 자율인하한다고 14일 밝혔다. 이경주·황비웅기자 kdlrudwn@seoul.co.kr
  • [현장 행정] 구청장과 주민간 소통·화합 결실… 구로구청 앞 광장 시위·집회 ‘뚝’

    [현장 행정] 구청장과 주민간 소통·화합 결실… 구로구청 앞 광장 시위·집회 ‘뚝’

    서울 구로구에는 여느 행정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원인들의 집회가 없다. 구청 앞 집회와 시위를 탓할 일만은 아니지만, 때론 정도나 요구가 지나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14일 구로구에 따르면 민선 5기 들어 구청 앞 집회가 사라진 비결은 바로 ‘소통’과 ‘화합’이다. 변화의 시작은 이성 구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구청장이 앞장서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화합을 이루겠다.”고 밝힌 후 주민들과의 접촉 면을 넓히면서부터다. 이 구청장은 “공무원은 법과 규정을 들이대며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주민을 도와줄 방법을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소신을 가지고 이 구청장이 먼저 행동에 옮겼다. 그는 취임 후 6개월 동안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하루 평균 10~20차례 민원인이나 주민과 상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척시장의 민원 분쟁이었다. 고척시장은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이뤄진 쇼핑센터로 1971년부터 영업을 해오다 2008년 건물 소유자가 임대차계약 종료 등으로 명도소송을 제기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상인들은 매일같이 구청을 찾아와 사무실과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다. 24시간 점거농성까지 했다. 상인들의 집회는 구청 광장 집회 37일, 구청 점거농성 79일, 민원제기 방문 29일 등 145일이었다.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이던 이 분쟁은 이 구청장이 취임하고 개발주와 상인들 사이에서 중재와 타협을 시도한 끝에 지난해 10월 양쪽이 보상에 합의하면서 종결됐다. 지난 연말에는 구로구가 지역의 통·반장 인원을 줄이려는 개혁이 기존 통·반장들의 반발을 샀다. 이 구청장은 집무실의 문을 활짝 열고 통·반장들을 불렀다. 그는 주민 수에 비해 통·반장의 수가 많아 행정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점과 점진적으로 주민 수에 비례해 통·반장 수를 조정한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현재 통·반장의 임기는 보장한다는 약속을 해 통·반장들의 마음을 돌려놨다. 그의 대민 소통이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던 구청 앞 광장을 평화의 광장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글 사진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지하철서 “결혼해줘” 애걸복걸 고백男 결국…

    지하철서 “결혼해줘” 애걸복걸 고백男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에서 프러포즈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 최근 중국 베이징의 승객으로 가득한 열차에서 턱시도를 입은 20대 남성이 여자 친구에게 결혼 해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 남성은 지하철에 타자마자 노란색 재킷을 입은 여자 친구 앞에 무릎을 꿇고 흰색 꽃과 반지를 내밀었다. 인생의 반려자가 돼달라는 의미였다. 시종일관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프러포즈가 당황스러운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해달라.”고 애걸복걸한 지 2분이 지났을까. 여성은 마침내 남성이 내민 꽃다발을 받아들였다. 남성은 준비한 반지를 여성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주며 환한 웃음을 지었고, 이 광경을 웃음을 참으며 곁눈질하던 승객들도 그 때서야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의 프러포즈다 보니 난감한 상황도 여러 번 일어났다. 짓궂은 승객들은 두 사람의 얼굴 가까이에 휴대전화기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갑자기 걸인이 나타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로맨틱한 분위기가 깨질 뻔 했다. 집요한 설득 끝에 결혼 승낙을 받아낸 남성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여자친구를 와락 끌어안았으며 키스로 훈훈하게 프러포즈를 마무리 했다. 영상을 본 중국 네티즌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혼한 남성의 용기에 감탄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프러포즈”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으며 여성들은 “로맨틱하지도 않고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지하철 프러포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싸움 말리다 코뼈 부러진 ‘배트맨’ 굴욕 화제

    영화 속 슈퍼히어로 복장을 하고 영웅을 자칭한 남성이 길거리서 격투 끝에 굴욕을 당한 웃지못할 사연이 웃음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피닉스 존스라는 남성은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가면과 망토를 걸치고 전기충격기를 소지한 채 일주일에 서 너 번 미국 시애틀의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도시 평화를 위해 자의로 순찰에 나선다는 이 남성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며 정의감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지난 8일 정의감에 불타 순철을 돌던 중 길거리서 격하게 다투는 두 남성을 발견한 그는 곧장 다가가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두 사람에게 다가간 피닉스는 한 남자에게 헤드락을 걸어 제압시킨 뒤 곧장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또 다른 남자가 그에게 총을 들이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피닉스가 붙들고 있던 남성은 그의 팔에서 풀려나자마자 그에게 주먹을 날렸고 결국 ‘자칭’ 영웅은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과 굴욕을 안고 말았다. 더욱 웃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실제 미국의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 방송인이어서 가면을 벗은 채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을 알아 본 시민이 다수였다는 사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장을 규제할 이유는 없지만 자칫 위험한 사건에 끼어들었다가 화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애틀의 한 경찰은 “영웅 흉내는 그만 내는 것이 좋겠다. 범죄현장을 목격하면 바로 신고하고 피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우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죽을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난 개의치 않는다. 순찰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종종 겪는다.”며 태연한 반응을 보여 경찰의 우려를 높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문화마당]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현기영 소설가

    [문화마당]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현기영 소설가

    무한질주. 모두가 달려간다. 우승열패의 이 속도전 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정신없이 죽을둥 살둥 달려간다. 도대체 이 속도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어떤 파국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속도 이외의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실업자들은 양산된다. 일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혹한 노동력 착취에 시달려야 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이 무한질주의 무서운 속도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도 망가뜨려 강과 숲, 논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폭력적으로 뚫고 내달리면서 시멘트의 회색 풍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강이 콘크리트 수로로 만들어지듯. 인간의 자유도, 강의 자유도 없다.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 강은 자유롭게 흘러야 하고 인간은 강가의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왔지만, 본디는 자연으로부터 왔다. 요즈음엔 인간이 인간을 낳고 기르지만, 과거에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인간을 낳고 길렀다. 내면에 축소된 자연을 늘 간직하고 있는 인간, 그것이 본연의 인간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각, 자연스러운 행동은 바로 그러한 내면이 만들어 낸다. 4대 강, 그 강들이야말로 인간을 낳고 키워낸 모태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형편은 어떤가. 인간은 자유를 빼앗긴 도구적 인간이 되어버렸고, 수만년을 유유히 흐르며 인간을 낳고 키워 온 저 어머니 강들은 무도한 폭력 앞에 흐름의 자유를 잃고 강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앞 강물, 뒷 강물’하고 노래했던 소월의 음률도 더 이상 없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라는 비유도 더 이상 소용없게 될 판이다. 수만년의 유구한 시간이 만들어 놓은 대자연의 질서를 어찌 비틀고 왜곡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어미에게 칼을 들이대는 패륜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질타한 종교인들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도구적 인간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비리에 둔감하고 눈물도 고갈되어 있기 마련이다.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예컨대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심정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아니, 그 슬픔과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공감 없고, 슬픔 없는 세상을 한탄하여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것은 내가 가끔씩 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4대 강의 슬픔이 어찌 타자만의 슬픔이겠는가. 저 강들은 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낳은 모태이며, 우리가 도구적 인간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늘 지향해야 할 정신적 지표로 존재한다. 우리가 아무리 눈물에 둔감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을 때가 있다. 예컨대 강둑에 홀로 서서 서편 하늘과 강물 위에 붉게 번진 장엄한 낙조를 볼 때 느닷없이, 까닭없이 눈물이 솟구치는 수가 있다. 우리의 내면에 남아 있던 자연의 조그만 흔적이 몸 밖의 대자연과 제대로 만나는 순간의 감동인 것이다. 내가 저 대자연의 어쩔 수 없는 일부로구나, 하는 자각이 눈물을 솟구치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저 강이 낳은 자식이다. 어머니 강을 방관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달려가야겠다. 온갖 생명을 보듬은 자연인 저 강들은 자연을 허물어 세운 도시보다 더 잘 꾸며지고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롭다. 강이 가르치는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 자유와 평화를 본받기 위해서라도 강의 흐름은 손상되어서는 안 되겠다. 어서 가야겠다. 저 어머니 강을 만나기 위해 급히 달려가야겠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 2차례 세계대전·한국전쟁·인종청소·대학살·내전…20세기 왜 피로 물들었나

    2차례 세계대전·한국전쟁·인종청소·대학살·내전…20세기 왜 피로 물들었나

    20세기는 진보의 시대다. 1900년 이후 100년 동안 인류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전에 견줘 연평균 성장률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 기술은 발전하고 지식은 축적됐다. 그래서 인간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다. 사람들은 효율적인 노동으로 이전보다 세 배가 넘는 여가 시간을 갖게 됐다. 민주주의와 복지 개념이 확산됐다. 그러나 20세기는 폭력이 놀랄 정도로 크고 격렬하게 진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어떤 시대보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기였다. 문명화된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웃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원시적인 살해 본능을 폭발시켰다. 잔악함과 섬세한 기술이 결합한 결과, 20세기 총 사망자 수는 1억 6700만명에서 1억 88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세계적인 석학 니얼 퍼거슨(46)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는 말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을 꼽을 때 심심치 않게 순위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퍼거슨 교수는 ‘증오의 세기’(이현주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인종 청소 및 대학살, 내전 등에 의해 20세기가 피로 물든 까닭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인종 및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다. ●다인종 지역 정치분열 등 원인 들어 퍼거슨 교수는 ‘인종상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 인종이 뒤섞인 지역이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고 진단한다. 또 먹고 사는 문제가 힘겨워지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소수 민족 집단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다민족 거대 제국이 해체된 이후 분쟁 지역이나 권력의 공백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퍼거슨 교수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 및 통계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20세기에 일어난 전쟁, 특히 1, 2차 세계 대전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짧게 언급됐지만 한국전쟁 부분도 흥미롭다.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서양인들은 3차 대전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세계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격렬한 파괴가 초반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18개국이 참전했고, 3년 동안 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원자폭탄이 인류를 파멸시킬 정도로 파괴력을 키워 세계 열강들이 전면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게 가장 그럴 듯한 이유라고 퍼거슨 교수는 분석한다. 그리고 그는 세계 전쟁이 끝난 시점을 한국전쟁 휴전 협정이 맺어진 1953년 7월 27일로 본다. ●서양, 한국전쟁을 당시 3차대전 인식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핵무기를 보유한 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나오는 ‘치킨 게임’을 벌이며 냉전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유지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퍼거슨 교수는 착각이라고 일축한다. 1945년부터 1983년까지 1900만~2000만명이 100차례 정도의 대규모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나는 곳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달라졌고, 초강대국들은 정면에서 싸우기보다 대리전을 치렀을 뿐이라는 게 퍼거슨 교수의 주장이다. 물론 1980년대 중반 이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60% 이상 줄었고, 195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21세기가 낙관적이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같은 종교, 같은 유전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상당히 잘 통합되어 있는 곳이더라도 문명 체계가 급속하게 무너질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21세기의 불안 요소라는 생각도 슬며시 내비친다. 그가 던지는 의미심장한 질문 하나. “중국의 경제 성장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퍼거슨 교수가 현미경을 들이대듯 20세기에 일어난 증오를 깨알처럼 관찰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그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인플루엔자보다 더 지독한 변종과 전염병을 만들어낼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의 개입으로 인류 역사가 갑자기 끝나기 전까지, 인간에게는 같은 인간이 최악의 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지난 세기의 전쟁을 야기했던 동인(動因)들을 이해할 때에만 다음 세기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일갈한다. 아쉽게도 그 동인을 발본색원할 방법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4만 5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판사들 성폭행범에 관대한 잣대는 뭔가

    성폭행범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건장한 20대 청년 3명이 12살짜리 어린 소녀를 집단 성폭행해도 무죄라고 판결하고, 어린 친딸을 상습 성폭행해서 임신까지 시킨 아버지에겐 감형이란 은전을 내린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면수심의 성폭행범에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뭔지 묻고 싶다. 근시안적인 법 논리에 빠져 법보다 우위에 있는 도덕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닌지 재판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는 검사가 기소한 특수준강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 부분은 별도로 따져 볼 문제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성폭행이 아니라 성관계라고 표현하는 등 재판부의 너그러움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12살에 불과한 미성년자를 상대로 집단 성폭행, 혹은 집단 성행위를 저질러도 죄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재판부는 피해 소녀가 차비를 받았기 때문에 기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엄연히 불법인 성매수마저 무죄란 말인가. 재판부는 검찰의 법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든, 어떤 근거를 마련해서라도 그들을 처벌하는 게 마땅했다. 그 소녀가 재판장의 딸이었다면 그런 판결을 내렸을지 묻고 싶다. 이 사건과 아버지 감형 사건은 각각 2심 고등법원과 최종심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8살짜리 초등생을 만신창이로 만든 조두순 사건 때도 관대한 판결로 물의를 빚자 엄격한 양형기준을 제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전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살인죄 등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성범죄 척결 의지는 아직도 빈약하다. 내년 4월까지 확정키로 한 최종안에는 성 범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기준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래서 일선 판사의 관대한 잣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성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건강한 잣대이다.
  • [사설] 與대표의 ‘경솔한 입’ 어디가 끝인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그제 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여성을 ‘자연산’에 비유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것도 장애아동 요양시설을 방문한 뒤 동행한 여기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평소 얼마나 여성을 우습게 알았으면 그런 자리에서 대놓고 여성 비하 발언을 할 수 있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그의 비뚤어진 성 의식은 가히 ‘중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같이 있던 원희목 비서실장도 여기자들에게 일일이 “성형했냐.”고 물었다니 야당이 한나라당을 ‘성희롱당’이라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사적인 얘기라는 한나라당 해명이 통하기 어려운 것은 그의 경솔한 언행이 반복되고, 갈수록 가관이라는 점이다. 집권 여당 대표가 ‘보온병 포탄’ ‘봉은사 좌파스님’ 등의 발언으로 국민을 화나게 만들고, 자성은커녕 부적절한 발언을 멈추지 않으니 집권 여당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나 싶다. 오죽하면 TV 개그프로그램의 소재가 되었겠는가.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더 이상은 안 된다.” “총선 치르기 어렵다.”며 대표 교체론이 나온다고 한다. 그의 실책이 반갑기만 한 민주당에서는 아예 “대표직을 물러나지 말라.”며 계속 사고를 쳐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집권당 개혁을 이끌고 국회선진화의 한 축을 맡아야 할 인물이 술자리에서조차 함부로 뱉기 민망한 발언과 실언을 줄기차게 쏟아낸다면, 과연 정치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등에서 보았듯 사회지도층에 거는 국민의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도덕성·청렴도 등에서 과거와 다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당 대표의 의식수준은 여전히 아득한 봉건시대를 넘나들고 있는 듯하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며, 국정 운영에도 도움을 주는 집권당 대표를 만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낙담한 국민의 한숨이 깊어만 간다.
  • 야구공짜표 요구했다… 뉴욕주지사 6만弗 벌금

    데이비드 패터슨(56) 미국 뉴욕 주지사가 공짜 티켓 몇장에 낭패를 보게 됐다. 패터슨 뉴욕 주지사가 지난해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무료 경기표를 요구했다가 6만 달러(약 6900만원)가 넘는 벌금을 물게 됐다고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뉴욕주의 공공청렴위원회는 패터슨 주지사가 2009년 치러진 뉴욕 양키스 대 필라델피아 필리스 월드시리즈 경기표 5장을 무료로 받아 공무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그에게 6만 2125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공공청렴위원회는 성명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 패터슨 주지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위해 마련한 경기표 2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850달러를 지불하려 했다고 거짓 증언했으며, 이는 “자신의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한 “주지사가 당시 열린 경기의 의식에 참여했지만, 그것으로 그에게 자신의 아들과 아들 친구를 위한 무료 경기표를 얻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패터슨 주지사가 물게 될 벌금에는 공무원법 위반에 대한 벌금 및 당시 월드시리즈 경기표 값인 2125달러가 포함됐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는 공무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무료 입장권 등을 확보하는 행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지난 9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시에서도 소속 공무원들이 관계 기관으로부터 공짜 티켓을 받지 못하게 하는 조례를 만드는 절차에 들어갔다. 시 윤리위원회는 당시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시장이 각종 행사에 공짜 티켓을 받고 참석하고서도 이를 시장이 받은 선물로 간주하고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급히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데스크 시각] 신뢰 받는 검찰을 기대한다/최용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신뢰 받는 검찰을 기대한다/최용규 사회부장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1999년 법무부의 새해 업무보고 때 남긴 휘호다. 검찰의 역할과 위상을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11년이 지났다. 지난 20일 법무부 새해 업무보고 자리. 이명박 대통령(MB)이 “스스로 신뢰받고 존경받지 못하면 공정사회를 만드는 중심에 설 수 없고, 국가발전에도 저해 요소가 된다.”고 대놓고 일갈했다. MB가 도덕성과 윤리성을 입에 담는 대목에서는 검찰이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일반 국민조차 참담함을 느꼈을 터다. 검찰의 위기를 정면으로 반박하던 전직 검찰 간부의 말이 떠오른다. 서초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검찰 자체가 권력인데 검찰 위기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물’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최근 검찰에 소환된 재벌 총수의 발언은 그렇다치자. 검찰이 부회장·사장·상무 등 120명 가까운 임원을 소환 조사했으나 건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 회장과 핫라인인 재무최고책임자(CFO)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도 법원이 기각했다. 먼지털이식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4개월 이상 뒤진 결과치곤 초라하다. 이뿐이 아니다. 박연차 게이트 이후 1년반 만에 몸풀기에 나섰다는 대검 중수부도 마찬가지다. 다 망한 기업 사장조차 요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 애처롭다. 중수부가 어떤 데인가. 저승사자도 걸리면 벌벌 떨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수사를 받다 목숨을 던졌다. 그런데 나이 쉰도 안 된 기업주는 배째라는 식이다. 온갖 증거를 들이대고 비자금 용처를 캐물어도 꾹 다문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구속된 그는 아예 검찰수사에 더 이상 못 나오겠다며 버티기까지 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출소 후 재기를 꿈꾸고 있는 그는 검찰, 청와대, 한나라당이 자신을 도와주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또 있다. 태광은 어떤가. 죄다 압수수색하고 수십명을 데려가 조사하고, 그야말로 기업 손발 다 묶어 놓았는데 사주 모자(母子)는 끄떡없다. “해 봐야 별 것 없을 것”이라는 그룹 간부의 말은 조롱으로 들린다. 물론 재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일류검사 집단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2부가 ‘한명숙 늪’에 빠져 발을 못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 수사도 부실수사로 상처뿐인 영광이 됐다. 왜 이렇게 엉망이 됐을까. 한 검사장이 내부 게시판에 언론 탓으로 돌리기도 했으나 과연 그럴까. 누가 뭐라 해도 검찰에 문제가 있다. 우선 수사력의 한계다. 얼마 전 만난 한 공직자는 “검찰이 인지수사하는 것은 이제 끝났다.”고 단언했다. 특히 기업 관련 수사는 그렇다고 했다.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였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사건이 불거졌을 경우, 기업들은 검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기업은 자체 법무실 말고도 대형 로펌을 끼고 있다. 데려다 조질 수도 없고 치열한 법리싸움을 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최근 대기업 수사에서는 수사 대상인 기업이 검찰의 수를 빤히 읽고 대비할 정도다. 국세청 등 전문가들의 확실한 도움 없이는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요즘 국세청이 검찰 말을 고분고분 들을까. 국세청도 많이 변했다. 검찰이 수사 관련 자료를 요청해도 “압수수색 영장 가져오라.”며 자료를 선뜻 내주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검찰의 수사권이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헤쳐 나가겠는가.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국민의 신뢰일 것이다. 여론이 검찰편이라면 난관일지언정 돌파 못할 벽은 아니다. 그런데 올 한해 검찰상을 들여다 보자. ‘스폰서검사’니 ‘그랜저검사’니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왔는가. 더구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두고 검찰은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하지만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일이다. 결국 이런 것들이 검찰 신뢰를 뭉갠다. 곧 새해다. 신뢰 받는 검찰을 기대한다. ykchoi@seoul.co.kr
  • “한식에 어울리는 와인 만들고 싶었을 뿐… 환대 놀라워”

    “한식에 어울리는 와인 만들고 싶었을 뿐… 환대 놀라워”

    “난 그저 일개 농부일 뿐인데….” 이른바 ‘남대문 와인’으로 화제가 된 와인 ‘그랑 폭트 뒤 수드’를 만든 주인공이 세 번째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지난 14일 4박5일 일정으로 서울에 온 ‘샤토 갸호’의 프랑수아 게즈(32) 사장은 프랑스 보르도 시골 마을에서 작은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자신이 이토록 환대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옛 모습 되찾은 남대문 보고 싶어” ‘그랑 폭트 뒤 수드’는 지난달부터 국순당이 수입해 판매하는 와인. 라벨에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의 그림이 들어 있게 된 사연과 수입 배경이 보도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서울신문 11월 27일자 15면> 16일 오전 남대문을 찾아간 게즈 사장은 세 가지에 놀랐다. 매서운 추위와 해체된 남대문의 모습, 그리고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 때문이었다. 자신이 한 일이 그렇게 큰 일인가 하는 신기함과 놀라움에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2007년 처음 먹어 본 갈비 맛에 쏙 빠진 그는 단지 “한국 음식에 잘 어울리는 와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국순당 관계자로부터 한국에서 일고 있는 남대문 와인과 자신에 대한 관심을 전해들은 그의 첫 반응은 “왜?”였다고 한다. “너무 뜻밖이어서 그저 놀랍다.”는 그는 문화재청의 배려로 30분간 남대문 복원 작업 현장을 둘러봤다. “(남대문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는 소박한 소감을 밝힌 뒤 2012년에 복원 예정이라는 설명에 “옛 모습을 되찾은 남대문을 꼭 보고 싶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문화재신탁기금과 후원 협약 이번 방문의 큰 목적은 문화재신탁기금과의 협약식이다. 국순당이 국내 판매수익금의 일부(병당 1000원)를 기부하겠다고 하자 그 또한 선뜻 동참을 표시한 것.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프랑스와 일본에서 팔리는 와인에 대해 병당 500원씩의 기부가 약속됐다. 일반 음식점으로는 처음으로 남대문 와인을 상에 올렸던 ‘벽제갈비’도 같은 뜻을 밝혔다. 이처럼 다른 나라 문화재에 대한 그의 순수한 사랑은 앞서 감동과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27일 기사가 나간 후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연일 화제가 돼 1200병만 들여온 국순당은 밀려드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또한 트위터에 ‘남대문 와인’에 대해 언급한 뒤 담당자에게 지시, 이날부터 이마트에서도 판매한다고 국순당 관계자는 귀띔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국회 폭력’ 고소·고발전 비화

    국회 폭력 사태로 예고됐던 고소·고발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던 이회창 대표를 가로막아 본회의 참석을 무산시킨 민주당 소속 당직자 6명의 신원을 최근 파악하고 이번 주중에 관련자들을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할 방침인 것으로 15일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공무를 방해한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미 고소장 작성을 마쳤고, 내부 검토를 거쳐 이르면 16일쯤 수사기관에 접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장 진입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에게 얼굴을 가격당해 입원치료 중인 민주당 강기정 의원도 김 의원을 상해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원의 보좌관은 “강 의원이 처음에는 ‘고소까지 한다면 나도 한나라당과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 11일 김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정당방위였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실망했다.”면서 “더구나 김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격려전화까지 받았다고 자랑하던데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말했다. 강 의원 측은 이미 관련 사진과 동영상 등 채증자료도 모두 확보해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강 의원은 당시 민주당 의원들의 진입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국회경위 A씨의 뺨을 때려 폭행 혐의로 이미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내부에선 “당시 강 의원이 노골적으로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입장을 방해한 국회 경위들의 행태에 격분한 측면이 큰데, 관련된 국회 경위들도 모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앞으로 맞고발 사태로 비화될 여지를 남겨뒀다. 한나라당도 폭력 사태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사무총장실과 원내행정실을 주축으로 폭력사태에 가담한 야당 보좌진과 당직자들에 대한 채증작업이 거의 마무리단계”라면서 “고발 여부는 당지도부에 일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고소·고발전 비화 양상에 대해 한 의원은 “국회 폭력사태를 용납해선 안 되겠지만, 법적 잣대만 들이대다 보면 대화와 협상이 미덕인 국회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설] 수뇌부 퇴진 계기 강한 국군으로 거듭나라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이 6개월 만에 퇴진했다. 석연찮은 재산 형성이 문제였다고 한다. 올들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국가안보가 위기를 맞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육참총장이 과거의 개인적 이유로 물러난 것은 매우 유감이다. 황 총장의 퇴진으로 육군 수뇌부의 인사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군은 일촌의 지휘공백도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군은 지난 4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취임과 동시에 강군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황 총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것도 신임 장관과 함께 군 개혁을 선도하고 강한 군대를 만드는 작업에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의 계기야 어찌됐든 이명박 대통령과 김 장관은 연평도 피폭 이후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야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군 수뇌부를 확실히 개편해야 한다. 우선 임관 기수별 자리 이어받기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않고 오로지 군인의 길만을 걸어온 야전군 출신 지휘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절실하다. 황 총장과는 경우가 다르겠지만, 합참과 해·공군 수뇌부도 언제든 물러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합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책임질 일이 터졌을 때조차 자리에 연연해선 안 된다. 이번 연평도 피폭과 관련해서 합참의장과 각군 총장들도 지휘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임명된 지 3~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는다면 그 또한 강군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안보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뇌부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폭은 군으로서는 6·25 이후 가장 치욕스러운 사태이며, 지금의 안보상황은 너무도 엄중하다. 군 수뇌부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강한 군대, 기강이 바로 선 군대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연평도 피폭으로 국민은 안보위협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젊은이들은 힘들기로 소문난 해병대 수색병과를 앞다퉈 지원했다고 한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더욱 강인하게 키우는 일은 군의 몫이다. 수뇌부 교체를 국군이 무적의 강군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뻔~한 신데렐라 드라마는 가라, 오! 묘한 로맨틱 판타지가 왔다

    뻔~한 신데렐라 드라마는 가라, 오! 묘한 로맨틱 판타지가 왔다

    요즘 안방극장이 모처럼 달달하다.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 가든’ 덕분이다. 지난 8일 경기 여주 마임 비전빌리지의 ‘시크릿 가든’ 촬영 현장에서 주인공들에게 인기 비결을 직접 물어봤다. ●까도남·까도녀의 달콤쌉싸래 로맨틱 코미디 “나에게는 이 여자가 김태희고, 전도연이다.”라고 외치는 까칠한 재벌2세 김주원(현빈)과 “삼신 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세상 편하게 사는 남자와는 놀 주제가 못 된다.”고 받아치는 길라임(하지원). 그렇고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로 갈 뻔한 드라마는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로맨틱한 대사와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 사이에서 두 인물의 로맨스를 긴장감 있게 잡아낸다. ‘삼식이’에서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으로 업그레이드된 현빈과 어떤 역이든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하지원의 연기력은 이들의 로맨스에 묘한 설렘을 더한다. 보이시한 매력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하지원은 “시나리오도 좋고 현장 분위기도 좋지만, 설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시크릿 가든’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오스카 역을 맡은 윤상현은 “첫눈에 반한 남녀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연출력이 긴장감의 원천”이라면서 “오스카는 그런 긴장감을 풀어주는 존재다. 쥐었다 풀었다 하는 매력이 있는,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까도남’ 캐릭터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삼식이’라는 별명도 이때 붙었다)이후 5년 만에 전성기 때의 인기를 회복한 현빈은 “주위에서 ‘김삼순’ 때보다 더 좋다고들 해 놀랐다.”면서 “그때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여서 그런지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대사 못지않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도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배우들은 주원과 라임의 ‘윗몸일으키기’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주원이 윗몸일으키기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발을 잡아주는 라임의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며 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하지원은 “그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살짝 설레였다. 주원이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도 너무 좋았다.”면서 함박 웃음을 지었다. ●영혼 바뀌는 판타지에 코믹코드까지 중무장  또 하나의 인기 비결은 주원과 라임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빚어내는 판타지다. 오세강 책임 프로듀서(CP)는 “한동안 판타지가 뜸했는데, 희소성이 인기에 큰 작용을 한 것 같다.”면서 “성별은 물론 계층 간의 이동에서 오는 코믹 요소도 기존 멜로와의 차별화를 끌어냈다.” 고 자평했다.  ‘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티홀’ 등을 잇따라 히트시킨 김은숙 작가는 ‘시크릿 가든’에 로맨틱 판타지 장르를 차용함으로써 식지 않는 감각을 과시했다. 배우들은 판타지 연기의 재미와 어려움을 동시에 털어놨다.  원래 판타지를 좋아해서 몸이 바뀌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는 하지원은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훨씬 고민이 되고 힘들어서 비록 다른 사람들이 허구라고 생각할지언정 최대한 오버하지 않고 진지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남자로 바뀌는 꿈까지 자주 꾸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찍고 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현빈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꼼꼼히 뜯어 본 하지원은 녹화 필름을 돌려보며 현빈의 표정, 눈빛, 팔짱끼는 모습, 말투 하나하나를 연습했다고 한다.  현빈은 “한쪽 입꼬리를 무의식적으로 올리거나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저의 모습을 하지원씨가 그대로 따라해 무척 놀랐다.”면서 “저의 경우, 라임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면 또 다른 남자를 연기하게 될 것 같아 실제 라임이보다 여성스럽고 소녀같은 모습을 부각시켰는데 나중에 (연기 장면을) 모니터해보니 계산착오였다.”고 털어놓았다.  “워낙 바뀐 연기에 몰두하다보니 영혼이 제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상대방 말투로 대사를 하는 바람에 NG도 많이 냈다.”며 두 사람은 환하게 웃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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