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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끔찍한 그림이었다.생중계로 안방에 배달된 것은 넥타이 맨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뒤엉켜 밀치고 당기고 울부짖는 아비규환의 장면이었다.사람이 개에 물리면 뉴스가 못 되고 개가 사람에게 물리면 뉴스가 된다했던가.비일상적인 장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유럽이나 일본의 대중사진잡지들은 비행기 참사,빌딩 폭발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진을 찍어오게 한단다.비참한 시신들이 뒤엉켜 있는 사진이 실린 잡지는 매상이 평소보다 늘어난다고 한다.얼굴을 찡그리면서 눈을 가리지만,벌어진 손가락 틈새로 훔쳐보고 싶은 심정.씁쓸하지만 그것이 인간인가? 그래서 한국의 정치권도 흥행에 성공했는가.한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장사였다고 표정을 관리하고 있고,다른 쪽은 오히려 매상이 뚝 떨어져서 울상이지만 이번 장사는 그들 정치인들이 이겼다.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텔레비전 모니터 앞에서 날을 보내고,인터넷 게시판에 격문을 올린다.친한 동료들끼리도 둘로 나뉘어 고함을 지르면서 싸우고 택시기사와 승객이 멱살을 잡는다.상사와 부하가 맞고함을 지른다.그뿐이 아니다.자동차를 타고 국회로 돌진하고 혈서를 쓰고 자기 몸에 기름을 붓는다. 국민이 졌다.우리들은 또 한번 무참히 패배한 줄도 모르고 드디어 주인공이 된 양 들떠 있다.이 수라장 속에서 불쑥 자란 것은 분열과 증오요 사라진 것은 ‘진짜 정치’다.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은 민생현안이고 실종신고를 내야 할 것은 정책이다.선거가 채 한달도 남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당이 어떤 정책을 내놓았는지 우리는 모른다.어느 신문에도 어느 방송프로그램에도 각 정당의 정책을 비교하는 기사 한 줄 보이지 않는다.참으로 비정치적인 정당이요 비정치적인 언론이다.보이느니 충돌이요 들리느니 대결이다.그렇다.이것은 정치가 아니다.도박이다.암소든 집문서든 다 질러서라도 꼭 다 따먹고야 말겠다는 마지막 한판이다.국민은 투전판의 엽전인가.투계장(鬪鷄場)의 싸움닭인가. 선거철인데도 유권자들의 반응은 쌀쌀했다.이런 아수라판을 만들어서까지 온 국토에 정치를 넘쳐나게 하고 싶었다면 야도 여도 성공했다.그러나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강요된 정치과잉은 오히려 반정치(反政治)다.지금 정치는 없다.국민의 생활을 지켜주는 정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정치는 없다.속지 말기를.지금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진짜 정치는 저녁식탁의 콩나물 값을 관리하는 일이며,일자리를 늘리고 나와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부당하게 침해당한 소수자의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우로 갈라지고 동서로 나뉘고 상하로 찢어져서 여론조사결과표의 막대그래프로서만 존재할 것인가. 우리를 위협하던 총칼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그러나 더 간교하고 더 무서운 무기가 우리를 조준하고 있다.얼굴에 분을 바른 정치인들의 세치 혀끝,사적 이익을 공공복리로 포장하는 사이비지식인들의 곡학아세,제 마음에 드는 일만 반복하고 강조하고 확대하는 매체,이것들이야말로 함께 어깨 겯던 동지들이 서로의 목에 시퍼런 비수를 들이대게 하는 잔인한 무기다.우리를 아군과 적군으로 가르는 그 모든 시도는 폭력이다.정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흥분하지 말기를.다시는 차를 몰고 돌진하지 말기를.절대로 분신하지 말기를.불쌍한 동포의 멱살을 잡지 말기를.강요된 편싸움의 도구가 되어 친구의 얼굴에 침을 뱉지 말기를.우리는 좀더 ‘쿠~울’해져야 한다.할 일이 많다.보수의 탈을 쓴 정치자영업자들,진보의 이름으로 사욕을 채우는 함량미달의 정치꾼들을 솎아내기.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는 사교육비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온갖 강공책을 썼음에도 부동산 값은 왜 또 오르는지 물어보기.그 대책은 도대체 세우고 있는지 따지기 등등….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아껴야 한다.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그래야 진짜 정치가 시작되므로.사라진 정치를 되찾아 와야 하므로.그래서 여당도 야당도 아닌 국민이 이겨야 하므로.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강도범 CCTV에 찍혀 덜미

    대낮에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부를 상대로 강도짓을 한 40대 남성이 달아나다 폐쇄회로(CC)TV에 찍혀 덜미를 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1일 문모(45·주부)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금품을 빼앗은 박모(44)씨에 대해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박씨는 10일 오후 1시10분쯤 강남구 대치동 S아파트 108동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올라타는 문씨에게 흉기를 들이대고,현금 15만원과 신용카드 2장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대선자금 수사 중간결과] 수사팀 뒷얘기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모두 200여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투입돼 지금까지만 120일 넘게 진행된,국내에선 ‘매머드급’ 이다. 2년을 끈 이탈리아의 반부패 수사인 이른바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에 버금갈 만하다.대검 중앙수사부는 지난해 11월 초 남기춘 중수1과장과 유재만 중수2과장,이인규 원주지청장 등 부장검사급 3명과 평검사 12명으로 ‘드림팀’을 꾸렸고 지방검찰청에서 수사관들을 ‘차출’했다.지난 96년 당시 이종찬 본부장을 포함해 수사검사가 15명이었던 ‘12·12,5·18 특별수사본부’ 이후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수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대부분 현금 아니면 채권 형태로 지원됐기 때문에 자백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안대희 중수부장은 “만약 삼성그룹이 불법자금을 현금으로 건넸다면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삼성의 불법자금을 찾아낸 것은 사채시장에서 단서를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기 전까지 피의자들은 묵비권으로 일관했다.특히 안희정씨의 경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형을 높게 할 수 있다고도 했지만 안씨는 “나를 보고 정치자금을 전달한 기업인들을 내 입으로는 털어놓을 수 없다.”고 한동안 버텼다.안 부장은 “서정우씨 수사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서씨는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하다 하나씩 풀어가며 추궁하니까 ‘전율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안 부장이 정치권 등의 이의제기에도 아랑곳없이 수사를 밀어붙이자 ‘안대희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캐는 등 ‘안대희 신드롬’이 나타나기도 했다. 송광수 총장 역시 뚝심으로 안 부장에게 힘을 실어 줬으며 정치권의 근거없는 반발에는 특유의 언변으로 일침을 놓아 수사를 이끌었다. 구혜영기자 koohy@˝
  • 스톡옵션은 빛좋은 개살구?

    스톡옵션(주식매수 선택권)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7년이 다 돼 가지만 실제로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해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특히 올들어 스톡옵션을 행사한 사례는 지난 1월 초의 삼성전자 최도석 경영지원 총괄사장이 대기업 인사로는 유일한 실정이다. 스톡옵션제는 샐러리맨 출신 기업 임원들에게는 ‘대박에의 꿈’이다.그러나 이 혜택을 누리는 경우는 드물다.주가하락이나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행사하지 못하거나 퇴사해 스톡옵션 자격을 잃는 수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기업들의 상당수가 스톡옵션 적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이미 스톡옵션을 폐지했다.국내에서는 삼성이 스톡옵션제를 축소하고 있다. ●‘대박의 꿈’ 이룬 경우 드물어 1997년 4월 도입된 스톡옵션제는 우수인재 유치 등을 위해 입사 당시의 가격으로 일정시점이 지난 후 회사 주식의 매입자격을 주는 것이다.그러나 제도 도입 7년이 됐지만 실제 이를 행사한 경우는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과 삼성전자 최도석 사장 정도일 뿐이다.김 행장도 실제로 스톡옵션을 행사하기보다는 자사주를 받았다. 최 사장은 지난 1월9일 보유주식 1만 6651주 가운데 8000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약 15억 4600만원의 차익을 거뒀다.지난해 말에도 스톡옵션으로 14억원가량의 차익을 얻었다.이 돈은 모두 주주대표소송 배상금으로 사용했다. 일부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스톡옵션을 행사한 예는 있지만 실제로 큰 돈을 만진 임원은 거의 없다. ●부익부 빈익빈 스톡옵션의 효과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기업은 삼성그룹.특히 삼성전자는 주가가 지속적으로 올라 900여명의 임원이 평균 13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0년부터 매년(2002년은 두차례) 스톡옵션을 부여했다.주로 임원급 이상이 대상이지만 해외법인장,핵심 엔지니어 등은 부장급에게도 스톡옵션을 주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전·현직 임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은 45만주로 행사가격은 9만 8900원이다.지난 5일의 종가 17만 4500원을 기준으로 하면 주당 7만 5600원의 차익이 발생,총 340억원의 부수입이 생긴다.아직까지 스톡옵션을 행사한 전·현직 임원은 없다.유상부 전 회장이 9만 4023주를 보유 중이고,이구택 회장이 4만 7047주,강창오 사장은 1만 8819주를 갖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많다.KT는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 68만여주를 제공했다.스톡옵션을 행사 시기는 받은 날로부터 2년 뒤이다.가장 빨리 행사할 수 있는 임원은 이용경 (30만주)사장으로 오는 12월27일부터 가능하다. 행사 가격은 스톡옵션 취득 시기에 따라 5만 7000∼7만원.그러나 5일 종가는 4만 4000원이어서 권리를 행사하려면 주가가 최소 1만 3000원 이상 올라야 한다. 데이콤 사장을 지낸 곽치영 전 의원은 지난해 데이콤 사장 재직시 받은 스톡옵션을 포기했다.포기 배경에 대한 해석이 구구했다.실제로는 곽 전 사장이 스톡옵션을 부여받을 때의 주가는 4만원대였지만 포기할 때의 주가는 1만 3000원대로 실익이 없었다.이런 사례는 벤처기업에 더 많다.스톡옵션의 마력에 대기업을 마다하고 벤처기업으로 갔던 많은 인재들 가운데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한 사람은 드물다. ●회사 떠나면 그만? 김뇌명 전 기아차 부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회사를 그만뒀다.그러나 퇴사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말 기아차가 공시를 통해 김 부회장이 스톡옵션을 포기했다고 알려지면서 부터다.김 부회장이 스톡옵션을 보유했더라면 어느 정도의 차익은 기대됐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원해서 퇴직하면 스톡옵션은 회수된다.대신 면직되거나 감원차원에서 퇴직을 당하면 스톡옵션은 보유할 수 있다.비리 등에 연루돼 퇴사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스톡옵션을 ‘족쇄’라고도 표현한다.특히 현대상선 등 일부 기업은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대신 임원들의 급여를 동결하기도 한다.만약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에 오래 남아 있고,주가가 적당히 올라준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별 이득이 없는 셈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열심히 일해 회사를 발전시키고 이로 인한 과실을 스톡옵션을 통해 누리라는 것이지만 실제 이를 챙길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라며 “스톡옵션 행사시 주식시장에 부담을 줄 수도 있는 만큼 오히려 자사주나 성과급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곤 류길상 김경두기자 sunggone@˝
  •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낚시질을 하고 있던 강상(姜尙),즉 강태공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점쟁이가 말하였던 ‘반드시 도움이 될 인재’임을 꿰뚫어본 문왕은 그를 도성으로 데려와 국사(國師)에 임명한다. 강상이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문왕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인물임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공의 노력으로 주족(周族)은 발전을 거듭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한편 천하의 3분의2를 장악하여 상을 멸망시킬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상을 멸망시킬 계획만을 남겨둔 문왕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세 가지를 부탁한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희창 문왕이 남긴 그 유명한 세 가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좋은 일을 보면 게을리 하지 말고 즉시 가서 행해야 한다.둘째,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잡아야 한다.셋째,나쁜 일을 보면 급히 피해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즉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하라는 문왕의 행동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문왕이 죽자 강태공은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읊었던 조광조의 시조는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에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은 강태공처럼 임금인 중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중종은 보이지 않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빈 배(虛舟). 함께 힘을 합쳐 중종을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성천자로 만들고 자신은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처럼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는 개혁가가 되고 싶었던 조광조.그러나 그러한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그뿐인가.어느덧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빛에 물차는 제비들,즉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정상배(政商輩)만 오락가락 하고 있을 뿐이로구나. 만취하여 읊는 조광조의 시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숙연해졌다.정치를 개혁해보려던 젊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반역죄로 갇힌 죄수가 되어 텅 빈 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처연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고 나서 조광조는 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아 우리 상감이 보고싶다.아아 우리 상감이 어찌 이를 알리오.” 그때였다. 갑자기 술을 마시던 김식이 술병을 쥐어들었다.그리고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기 시작하였다.술병 속에서 술이 쏟아져 땅에 엎질러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 있던 김구가 크게 놀라 이를 만류하여 물었다.간신히 술을 얻어 마시긴 하지만 밤을 새워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아까운 술을 일부러 쏟아버리는 김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식이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였다. “쏟아버린 술을 다시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법이오.조대감.” 조광조를 힐문하는 김식의 말은 준엄하였다. “대감,우리는 이미 쏟아버린 술이오.엎질러진 물이오.” 김식은 쏟아버린 술로 흥건히 젖어 있는 흙을 두 손으로 떠올려 조광조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보시오,대감.이미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 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낚시질을 하고 있던 강상(姜尙),즉 강태공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점쟁이가 말하였던 ‘반드시 도움이 될 인재’임을 꿰뚫어본 문왕은 그를 도성으로 데려와 국사(國師)에 임명한다. 강상이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문왕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인물임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공의 노력으로 주족(周族)은 발전을 거듭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한편 천하의 3분의2를 장악하여 상을 멸망시킬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상을 멸망시킬 계획만을 남겨둔 문왕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세 가지를 부탁한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희창 문왕이 남긴 그 유명한 세 가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좋은 일을 보면 게을리 하지 말고 즉시 가서 행해야 한다.둘째,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잡아야 한다.셋째,나쁜 일을 보면 급히 피해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즉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하라는 문왕의 행동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문왕이 죽자 강태공은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읊었던 조광조의 시조는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에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은 강태공처럼 임금인 중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중종은 보이지 않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빈 배(虛舟). 함께 힘을 합쳐 중종을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성천자로 만들고 자신은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처럼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는 개혁가가 되고 싶었던 조광조.그러나 그러한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그뿐인가.어느덧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빛에 물차는 제비들,즉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정상배(政商輩)만 오락가락 하고 있을 뿐이로구나. 만취하여 읊는 조광조의 시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숙연해졌다.정치를 개혁해보려던 젊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반역죄로 갇힌 죄수가 되어 텅 빈 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처연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고 나서 조광조는 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아 우리 상감이 보고싶다.아아 우리 상감이 어찌 이를 알리오.” 그때였다. 갑자기 술을 마시던 김식이 술병을 쥐어들었다.그리고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기 시작하였다.술병 속에서 술이 쏟아져 땅에 엎질러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 있던 김구가 크게 놀라 이를 만류하여 물었다.간신히 술을 얻어 마시긴 하지만 밤을 새워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아까운 술을 일부러 쏟아버리는 김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식이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였다. “쏟아버린 술을 다시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법이오.조대감.” 조광조를 힐문하는 김식의 말은 준엄하였다. “대감,우리는 이미 쏟아버린 술이오.엎질러진 물이오.” 김식은 쏟아버린 술로 흥건히 젖어 있는 흙을 두 손으로 떠올려 조광조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보시오,대감.이미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 勢대결 치닫는 민주 내분

    민주당 내분이 강운태 사무총장과 유용태 원내대표의 진퇴 논란으로 집약되면서 전면적인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추미애 의원에 이어 중도성향 의원 20명도 23일 내분수습책으로 강 총장 퇴진과 선대위 조기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강 총장은 이들의 사퇴 요구에 대해 “생각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고,유 원내대표도 당내 정통모임 소속의원들과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나섰다.조순형 대표 역시 “강 총장이 퇴진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따라서 이들의 거취에 따라 내분의 향배가 결정될 것 같다. 설훈·조성준·김성순·박병윤·안상현 의원 등은 조찬회동을 갖고 조 대표와 추 의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선대위 조기 구성과 강 총장,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내분 수습책으로 제시했다.이들 초·재선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과의 명분없는 공조로 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성준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많은 의원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라며 “조속히 선대위 체제로 전환하고,공천작업도 선대위가 개혁적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들의 가세로 강 총장 퇴진 요구에 나선 의원들은 추미애·김경재·김영환 의원을 포함,23명에 이른다. 중도·소장파의 움직임에 맞서 정균환 의원과 유 원내대표 등 당내 정통모임측 의원 10여명도 전날 밤 긴급 회동,세 대결에 대비하고 나섰다.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추 의원의 출당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일단 당 결속에 주력하되 강 총장과 유 원내대표의 퇴진은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정리했다.강 총장도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장파 요구를 깊이 있게 생각할 가치를 못 느낀다.지금 와서 분당 책임론 등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분파주의에 불과하다.”고 맞대응했다. 조 대표 역시 선관위 조기 구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강 총장 등의 퇴진에는 선을 그었다.조 대표는 “잘못은 지도부에 있다.심부름한 사람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치마폭이 바지폭보다 넓다는데 포용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추 의원에 대한 불쾌감도 내보였다. 추 의원은 이날 남편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전북 정읍으로 내려갔다.며칠간 머물면서 숨을 고르려는 듯하다.공천갈등이 세 대결로 치달으면서 민주당 내분도 비등점이 멀지 않아 보인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외환銀 행장 ‘연봉 35억’ 논란

    지난달 30일 취임한 로버트 팰런 외환은행장의 연봉을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인력감축 문제로 외환은행과 대립하며 2개월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외환카드 노조가 18일 팰런 행장의 연봉이 300만달러(35억여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노조 관계자는 “신임 행장의 연봉이 3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스톡옵션과 주택 제공,해외출장 비용,자녀 학자금 등을 합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 직원의 연봉이 330억원에 불과한 외환카드에 대해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그 10분의1 이상을 연봉으로 챙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행장의 연봉내역이 나와 있는 이사회 의사록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임원보수 총액한도가 30억원으로 정해져 있어 외환카드 노조의 주장은 근거없는 흑색선전”이라며 “정확한 금액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100만달러도 안 된다.”고 말했다.또 팰런 행장이 이달 초 스톡옵션 90만주를 배정받았지만 이는 3년간 매년 30만주씩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는 데다 매년 근무기간을 다 채워야 하며 평균 주가상승률이 다른 은행보다 높아야 하는 등 조건이 있어 국내 스톡옵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은행측은 카드 노조가 팰런 행장과 외환은행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외환카드사는 이날 직급별로 월평균 임금의 10∼14개월치와 1000만∼3000만원의 특별지원금을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노조측에 통보했다.사측은 희망퇴직이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사측은 지난달 정규 인력의 54.7%인 362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밝혔었다. 김태균기자˝
  • [데스크 시각] 평등은 만능이 아니다/염주영 편집국 부국장

    평등 추구가 오히려 불평등을 초래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통계청은 지난달 말 20대 취업자의 절반이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발표했다.노동운동이 왕성하고 양대 노조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왜 젊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는 취약해지는 걸까.서울대는 얼마전 고교 평준화가 입시에서 부유층 자제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실증적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도입했던 제도가 왜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걸까.노동운동이나 고교평준화는 모두 평등 추구 성향이 강한데 불평등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런 사례는 또 있다.‘국민의 정부’를 지향한 김대중 정부 아래서 국민의 빈부격차는 권위주의 시대의 정부 때보다 더욱 커졌다.‘참여형 복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서도 빈부격차의 확대 추세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다.이 점도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왜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가. 셰익스피어가 런던 교외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 갔다.그가 들어서자 손님들이 모두 일어나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그러나 현관에서 청소를 하던 청년은 빗자루를 내려놓으면서 탄식을 했다.이를 본 셰익스피어가 물었다.“여보게,젊은이답지 않게 왜 탄식을 하고 그러나?” 그러자 청년은 말했다.“선생님이나 저나 똑같은 사람인데,선생님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저는 선생님의 발자국을 쓸어야 하는 청소부에 불과합니다.세상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셰익스피어와 청소부의 일화는 평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자신을 셰익스피어와 비교하며 불평등을 한탄하는 청소부.그가 생각하는 평등은 어떤 평등일까. 둘은 모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천부인권을 갖고 태어났다는 점에서 ‘똑같은 사람’이며,평등한 존재이다.그러나 둘은 서로 다르다.관심 분야가 다르고 적성도 다르다.능력과 업적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요컨대 인권을 얘기할 때는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지만,개성과 개인차를 얘기할 때는 저마다 ‘서로 다른 사람’인 것이다.그런데도 우리는 개성과 개인차에 대해 너무 쉽게 평등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 생각하는 평등의 개념이 크게 다른 것을 느끼곤 한다.평등이라는 언어의 그릇에 서로 다른 내용물을 담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는 평등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가난한 집 자녀들에게 불평등을 강요하는 제도가 됐다.‘문민’‘국민’‘참여’ 등의 가치를 신봉하는 민주정부가 ‘성장 신화’를 추구한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부보다 국민의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이런 변질의 바탕에는 ‘평등 만능주의’가 잠재해 있다.평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추구하지 못한 결과다.개인의 관심·적성·능력·업적 등의 차이를 도외시하고 모든 것을 획일적 평등의 잣대로 재려 해선 안 된다. 사회가 평등해지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정한 평등과 사이비 평등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부합하는 평등의 개념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결과의 차등’을 수용하는 것이다.‘결과의 평등’을 추구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음을 기억하자.자신보다 셰익스피어를 환대하는 세상을 한탄하는 청소부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하지 말자. 염주영 편집국 부국장 yeomjs@˝
  •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인 아테네의 입법가 솔론은 매춘을 영리 목적에 이용,최초로 공창제를 도입하고 그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한 인물이다.솔론의 여성관은 분명했다.여성은 아내 아니면 창녀였다.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한 것으로 말하면 장 자크 루소 또한 빠지지 않는다.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루소는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은 영광”이라며 현모양처론을 펼쳤다.‘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도 각도를 달리 해 보면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 ●`나쁜´ 창녀를 탄생시킨 건 위선적인 성도덕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김지혜 옮김,책세상 펴냄)은 이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성도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영국의 소호에서 매춘부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시각은 여러 면에서 전복적이다. 여성을 아내와 창녀로 나누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기원전 2000년경 고대 수메르에서 아내와 창녀를 분리하는 법이 처음 생겼다.저자는 여성을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된 데는 기독교의 위선적인 성도덕이 큰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그 반대편에 ‘비정상적인’ 여인의 표상으로 매춘부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에게 불도장이 찍히게 했다는 것이다.구약의 선지자들은 매춘부를 고집 세고 도발적인 여성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책은 매춘의 역사가 남성 중심의 기록임을 밝힌다.매춘의 기원을 고대문명의 ‘사원 매춘’에서 찾는 것은 저자 또한 기존의 역사가들과 다르지 않다.고대 가나안에선 종교적 매춘과 세속적 매춘이 모두 번성했다.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가운데 하나로 이름 높았던 코린트의 아프로디테 사원은 1000명이 넘는 ‘신성한’ 창녀들을 거느렸다.히에로둘레라 불린 이들은 여신의 시녀로 간주된 매춘부 계급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여성 사제가 정치·경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외면당해 왔다는 점이다.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왕이 매춘부를 겸한 여성 사제와 신성한 혼인을 치른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의례였음에도 단순히 ‘다산 의식’으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매춘 혹은 매춘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중세의 교회는 매춘을 금지하면서도 ‘필요악’으로 규정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정당화했다.“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수많은 왕과 주교들은 성도덕이란 잣대를 매춘에 들이대는 한편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매춘부들을 궁 안으로 데려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매춘부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범죄인류학을 창시한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매춘부들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한 뒤 그들은 모두 좁은 이마와 비정상적인 코뼈,그리고 거대한 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나아가 과학자들은 창녀가 고통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녀의 몸에 전기충격 실험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들이 확인한 것은 매춘부들 역시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나선 평범한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매춘,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해야 저자에 따르면 매춘부들은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그들은 성적 억압이 일상화된 가정을 떠나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에 몸을 팔았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매춘은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자발적인 매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매춘에 도덕적 굴레를 씌워 게토로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한 지배구조를 영속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반론/ 방폐장 대안없는 반대 안된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서울신문 1월15일자 15면 ‘열린세상’에 기고한 ‘방폐장 논란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은 많은 부분에 문제점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첫째,원자력발전을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뜬구름 같은 말이다.현재 전력의 40%를 담당하는 원자력을 태양에너지나 풍력으로 대체하려면 우리나라 전국토를 태양열 집광판이나 풍차로 가득 채워도 모자랄 것이다. 경제성은 더 큰 문제다.전력 생산비가 현재보다 10배,20배 비싸지면 국민생활도 생활이거니와 생산단가 상승과 이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로 우리나라 경제는 거덜날지도 모른다. 둘째,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그 증거로 원자력발전소의 고장 정지 건수를 언급한 것은 ‘고장’과 ‘사고’의 차이도 모르는 기술적 무지의 소치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자동차 고장을 사고라고 하지 않듯이 발전소 또한 마찬가지이다.아무리 정밀하고 안전한 기계라도 고장은 있을 수 있다.다만 그러한 고장이 사고로 연결되지않도록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느냐가 안전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3중,4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원자력발전소야말로 기술적으로 대단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원자력발전소 사고 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체르노빌 사고는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와는 달리 안전장치가 미비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셋째,서울대 교수들의 원전센터 유치 제안에 대해 안전성에 대한 정밀 조사도 없이 이루어진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발상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어떤 곳이든 원전센터 부지로 제안되면 부지 적합성에 대한 예비조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식적으로 유치신청을 하게 되고,유치신청을 받은 관계당국은 부지 정밀조사를 거쳐 이상이 없으면 최종부지로 선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번 서울대 교수들의 유치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단계인 것이다.공론화 과정이나 부지 적합성 조사는 앞으로 할 일이다.국가적 난제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구국 충정의 심정으로 ‘제안’한 일에 대해 절차가 어떻고 하며 비난의화살부터 들이대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한 나라의 에너지 문제는 이성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실현가능한,타당한 대안은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원자력은 위험하니 그만두어야 한다는 식의 감정적이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강양구 한국수력원자력(주) 부안건설사무소장
  • “칠레는 농산물수출 3대 강국” 엉터리자료 제시/눈·귀 막은 농촌의원들

    지난 8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무산시킨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이른바 ‘농촌당’의원 상당수가 정확한 근거 없이 농심(農心)을 자극하는 선정성 발언으로 일관해 비판을 받고 있다.이들은 관계부처에서 정확한 내용을 여러 차례 제출했음에도 불구,아예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등 FTA 관련 부처 당국자들은 FTA동의안 처리를 몸으로 저지하고 나선 일부 의원들이 “FTA가 체결되면 농촌이 붕괴된다.”는 논리를 강조하기 위해 잘못된 통계자료를 들이대고 있다고 밝혔다. 8일 본회의 반대토론에 나섰던 임인배(한나라당) 의원은 “칠레가 농산물 수출 3대 강국이기 때문에 FTA 대상국을 잘못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도 의사진행발언에서 칠레가 최대 농산물 수출국이기 때문에 대상국 선정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2002년 기준 세계무역기구(WTO) 통계에 따르면 농산물 수출국 1위는 유럽연합(2337억 달러)이며 그 다음은 미국(688억 달러),3위는 캐나다(326억 달러),4위 브라질(194억 달러),5위중국(188억 달러) 순이다.호주(171억 달러),아르헨티나(122억 달러),태국(116억 달러),인도네시아(90억 달러),말레이시아(90억 달러)도 10위 안에 들었고,칠레는 72억달러로 멕시코(89억 달러),뉴질랜드(84억 달러),러시아(77억 달러)에 이어 14위에 머물고 있다. 이들 의원은 “정부가 아세안(ASEAN)과 같은 주요 경제권과 FTA를 맺지 않고 농산물 수출강국인 칠레와 협정을 맺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고도 주장했는데,칠레는 아세안 회원국인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보다 수출 규모가 훨씬 적은 편이다. 이에 앞서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대표연설을 하면서 칠레와 FTA를 체결한 EU만큼 예외조항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잘못된 협정이라고 추궁했다. 그러나 우리는 칠레와 예외항목을 28% 확보했고,유럽연합은 22% 확보했다. 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잘 모르고 이같은 주장을 할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잘못된 내용을 수정하는 자료를 여러 차례 의원실에 보내고 설명했음에도 아예 못본 척하는 것은 국민은 물론,농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FTA 투표 저지조’까지 구성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른바 ‘농촌당’의원은 모두 62명.한나라당 농촌의원 모임인 농어촌의정회가 핵심이며 박희태 전 대표를 회장으로,이규택 김용갑 임인배 이방호 신경식 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에선 정균환 전 총무와 김옥두 의원,자민련에선 김학원 정진석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윤락녀들 ‘업주와의 투쟁’

    “밤낮으로 일했지만,빚만 늘어갔어요.몸도 마음도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지만 300만원이 없어서….이제 2년 6개월 동안 받은 고통을 보상받고 싶어요.” 성매매 업소에서 수년간 임금을 받지 못하고 매춘을 강요당한 여성들이 업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6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3명 등 성매매 피해여성 9명은 업주를 상대로 체불 임금과 정신적 피해보상금 9억 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 등 4개 법원에 냈다고 밝혔다.성매매와 관련,피해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법정투쟁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빚 300만원에 성매매업소에 발목 잡혀 박양은 지난 2001년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중 동네 오빠의 소개로 처음 티켓다방에 발을 들여놓았다.다방에서 차 심부름을 하던 박양에게 업주 조모씨는 외부로 ‘영업’을 나가도록 요구했다.박양이 이를 거부하자 욕설이 쏟아졌다.빚도 300만원으로 불어났다.티켓다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업주는 차용증을 들이대며 앞을 가로막았다.결국 박양은 배를 칼로 찌르는 극한 방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청소년보호위원회 산하 ‘성착취 피해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법률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1억 2200만원의 민사소송을 인천지법에 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청소년의 수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청소년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청소년수는 3만 3000여명.전국 티켓다방 1만 4242곳의 70%인 1만여곳이 청소년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청소년보호위원회 이승희 위원장은 “성매매 업주에 대한 사법처리가 집행유예·벌금형 등 온정주의에 치우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그는 “업주들이 청소년을 고용하는 이유가 엄청난 이익 때문이란 사실을 고려,민사소송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티켓다방 종사 청소년수 3만 3000여명 법률지원단 이성환 변호사는 “선불금을 갚지 못해 업주로부터 고소당한 성매매 피해여성을 돕던 중 이들이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해온 사실을 발견,집단 소송을 제기하도록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여성 9명 중 청소년 때부터 매춘을 강요당한 7명은 정신적 위자료를포함해 최소 1억원씩,나머지 2명은 체불된 임금과 인권유린 보상금 등 최소 5000만원씩 지급토록 요구했다.이 변호사는 “2002년 10월 미군 클럽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다 본국으로 추방당한 필리핀 여성 11명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우리나라 여성들이 공동 대응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동료 법정 증언 나섰다가 긴급체포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업주로부터 비인간적인 매춘행위를 강요당해도 법정투쟁에 나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성매매에 종사한 과거가 드러나면 윤락방지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받기 때문.이번에 소송을 낸 김모(26)씨가 바로 그런 사례다.지난달 5일 서울고법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동료 피해여성의 채무가 무효임을 입증하다가 원고인 업주의 신고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김씨도 업주에 대한 선불금 채무를 갚지 못해 기소중지된 상태였다. 정은주기자 ejung@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책꽂이

    ●이상 평전(고은 지음,향연 펴냄) “이상(李箱)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시대를 앞섰던 ‘모던 보이’ 시인 이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실험으로 가득찬 그의 삶과 문학의 모든 것을 시인의 감성으로 빚었다.1974년 출간된 뒤 저자의 전집에 수록된 것을 단행본으로 재출간.1만 3000원.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지음,추미옥 옮김,문학동네 펴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여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자 원작자인 작가의 네번째 소설집.프랑스 제일의 요리사가 혁명을 피해 북구에 간 뒤 마련한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다양한 경험을 들려준다.9000원.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안도현 지음,태동출판사 펴냄) 달콤한 감성의 시인이 밀란 쿤데라,백석 등 국내외 유명작가 등 100명에 얽힌 사랑과 관련한 빛나는 표현을 골랐다.원문에다 시인 특유의 해석을 덧붙여 아늑한 메시지를 던진다.8000원.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지음,최용만 옮김,푸른숲 펴냄) ‘살아간다는 것’‘허삼관 매혈기’ 등 영화나 연극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3세대 작가’의 세번째 장편.민중들의 힘든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모습이 희극적이다.1만원. ●자거라 네 슬픔아(신경숙 글,구본창 사진,현대문학 펴냄) ‘외딴 방’의 작가가 추억을 더듬어 자유롭게 쓴 에세이와,그에 어울린 다양한 사진이 만났다.어머니에 대한 단상,잊지 못할 영화 등을 소재로 신문에 연재한 것을 모아 펴냈다.1만원. ●광기의 다이아몬드(김록 지음,열림원 펴냄) 98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제목처럼 신예시인의 ‘광기의 상상력’이 곳곳에 번뜩인다.약간은 난해한 듯하지만 발문을 쓴 시인 성귀수의 안내를 따라가면 그 세계가 ‘광란’을 극단까지 밀고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6000원. ●오 헨리 단편선(김욱동 옮김,이레 펴냄) ‘마지막 잎새’ 등으로 단편 소설의 대명사로 통하는 작가의 작품집.‘크리스마스 선물’‘20년 뒤’등 삶의 애환을 다룬 주옥 같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만날 수 있다.1만 2000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강홍규 지음,나들목 펴냄) 6·25전쟁 이후 혼란스럽던시절 문인들의 기행과 일화등을 세세하게 들려준다.‘관철동 이야기’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했다.9000원.
  • 돋보기/거리로 나앉은 ‘명문’ 현대

    여자농구 ‘명문’ 현대 선수들은 KCC로부터 빌린 숙소와 체육관을 비워줘야 하는 시한을 하루 앞둔 30일에도 연습에 열중했다.그러나 서로를 독려하던 ‘파이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미소없는 얼굴로 이영주 감독을 힐끗힐끗 쳐다볼 뿐이었다.이 감독은 차마 선수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감독은 지난 3년 동안 총 30억원의 후원금 등을 지원해온 KCC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은 뒤 고심해온 끝에 내년 1월3일부터 삼천포와 마산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로 했다.말이 좋아 전지훈련이지 ‘유랑생활’이나 다름없다.숙소가 없고,호텔에 묵을 돈도 없어 여관을 전전해야 한다.연습장은 지역 여고팀에 ‘구걸’해야 할 판이다. 이 감독은 “KCC측의 재고 여지는 없는 것 같다.”면서 “일단 너무나 춥고 매정한 서울을 떠나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구단 관계자는 “1월27일 개막하는 겨울리그를 위해 수도권에 임대 숙소를 알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KCC로부터 ‘지원 중단’ 통보를 받아 이번 사태가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기는 하지만,겨울리그의 평양 개최를 야심차게 준비해 온 현대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구단주인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은 북측과 세부사항을 합의하기 위해 30일 금강산으로 떠났다. 선수들의 허탈감은 더하다.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선수진(전 신세계)과 박선영(전 삼성생명)이 “돈도 필요 없다.무조건 현대에서 뛰고 싶다.”며 팀에 가세하는 등 이번에는 반드시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선수들 모두가 다짐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KCC는 스폰서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유로 홍보효과 미비와 남자팀 육성 등을 들었다.그러나 농구인들은 KCC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KCC와 현대의 ‘경영권 다툼’이 더 큰 이유로 보고 있다.애꿎은 여자농구단이 ‘유탄’을 맞았다는 얘기다. 여자농구단을 난초처럼 아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지극 정성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엄정한 시장논리만을 들이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다.쫓겨나는 마당에서도 “그동안 지원해 준 KCC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착한 선수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정말 ‘묘안’은 없는 것일까. 이창구 기자 window2@
  • ‘김혁규 10년 경남道政’ 파헤친다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의 10년 도정이 도의회 행정사무조사를 통해 파헤져진다.김 전 지사의 ‘심벌마크’인 경영행정에 대해 도의회가 칼을 들이대자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사직을 사퇴한데 대한 보복이라는 지적과 함께 도청 공무원 및 산하기관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찮아 논란이 예상된다. 도의회는 29일 제210회 본회의에서 김충관 도의원 등이 발의한 ‘경남도 출자·출연기관 및 현안사업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내년 1월13일 구성되는 특위는 6개월간 ▲F3 및 F1국제자동차 경주대회 ▲김해관광유통단지 조성사업 ▲메카노 21사업 ▲생명공학 산업화사업 ▲해외시장 개척사업 ▲㈜경남무역 ▲경남도개발공사 ▲가온소프트㈜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특위 위원은 16명이다. 이들 사업은 김 전 지사가 재임시절 추진해온 핵심사업으로 사업성과와 타당성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도의회가 그동안 수차례 감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른체하다가 뒤늦게조사에 나선 것은 자가당착이며,특히 김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앙갚음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도청 공무원들도 “있을 때는 아무소리 않다가 나가니까 남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며 반발하고 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건강칼럼] 종마의 꿈

    40대 중반쯤의 말쑥한 신사가 병원을 들어선다.뭔가 결심을 한 표정이다.얘기를 나눠보니 음경이 너무 작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그런 문제로 고민할 나이를 넘은 것 같아 넌지시 물었다.“부인께서 불평하시나 보죠?”“그게 아니라 아들놈하고 목욕탕 가기가 창피해서요.”“아니,왜요?”“그 놈이 엄마를 닮아 키가 큰 건 좋은데,아,글쎄 그게 저보다 훨씬 크지 않겠습니까?중학생보다 작으니 영 체통도 서질 않고…”. 이처럼 남자의 성기는 더러 신체 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사춘기 애들은 털이 곰실곰실 돋는 친구와 화장실에서 성기를 맞대며 자란다.그러다 제 것이 좀 작아보이면 이유없는 열등감도 느낀다.사춘기 발육은 사람마다 차이가 커 조숙한 애에 비해 조금 늦은 애의 성기가 작은 것은 당연한데도….대개는 자라면서 인격이 성숙해져 ‘인간의 가치는 신체의 사이즈와 무관하다.’는 자각과 함께 이런 갈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런 갈등이 내면의 상처가 돼 성기 크기를 두고두고 고민하는 환자도 종종 대할 수 있다.적어도 과학적으로는 발기때 길이가 4㎝만 되면 성교가 가능하며,성적 만족감은 성기의 크기와 별 관계가 없다.경험이 없는 여성의 경우 너무 큰 성기가 통증을 일으키기도 한다.그러나 성기가 작아 콤플렉스를 느낀다면 의사는 마땅히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고,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술로 성기의 크기를 늘려 주기도 한다. 솔직히 나 자신 의사이지만,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성기확대술을 선호한다.대부분의 환자는 수술 결과에 만족하지만 크기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평하는 환자도 더러는 있다.그들에게는 아무리 자료를 들이대며 설득해 봐야 공염불이다.병은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임상 경험이 늘고 나이가 들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음경성형술을 받고 돌아가는 환자의 뒷모습이 무서워진다.그들이 등 돌리고 돌아올 때의 표정을 짐작할 수 없어서다.이제는 그들이 종마처럼 멍에없이 마음껏 초원을 달려보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철 선릉 힐비뇨기과 원장
  • 감사원 정책감사에 일부 경제부처 불만

    카드특감,외환보유고 운용의 적정성,워크아웃 관리실태 등 최근 감사원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특감방향에 대해 일부 경제부처들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과 정책적 판단을 요하는 경제정책에까지 감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욕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관계자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장기능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를 벌이면 대부분의 정책결정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복지부동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시각은 다르다.정부부처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혼선과 차질을 감사원이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상시 정책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치유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상황을 예방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전윤철 원장이 직원대상 특강에서 “바가지나 접시를 깬 공무원을 징계하기보다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주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는 주장이다.참여정부 출범 이후 공직기강 이완으로 인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는 등의 국정난맥상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박종구 감사원 기획관리실장은 “감사원이 부처의 정책형성과정이나 정책 내용결정에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주요 정책을 소수의 정책담당자들이 결정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폐단을 공론화시켜 예방기능을 강화하는 게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의 ‘감사운영 방안’을 보고했으며 노 대통령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며 정책감사 기능강화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이종락기자 j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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